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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영 (화가)

대한민국의 화가

이도영(李道榮, 1884년(고종 21) ~ 1934년)은 일제 강점기의 화가로, 자는 중일(仲一), 호는 관재(貫齋), 면소(芇巢), 벽허자(碧虛子),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름은 도영(鞱頴)으로 쓰기도 하였는데 한국 최초로 1컷짜리 시사만화를 그렸다.

생애편집

이도영은 1904년 안중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 회화를 공부했으며, 1911년조선서화미술회 회원, 1918년서화협회의 발기인이 되었다. 1920년에는 일본 미술계를 6개월 동안 시찰했으며, 1921년에 열린 서화협회전에 출품했다. 이후 1923년조선미술전람회 심사위원을 맡았다.

이도영은 근대 초기에 활약한 안중식조석진의 예술을 하나로 집약시킨 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도영의 회화는 장승업의 영향을 받아 산수화와 인물화, 화조화, 기명화, 절지화 등에 특별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예는 행예의 정제연미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수묵화가였던 이도영은 한학적 소양의 깊이와 예리하게 번뜩이는 풍자로, 국운이 쇠해 갔던 당대에 대한 통렬한 비평을 했었고 『모필화임본』과 같이 보통학교 도화 교과서에도 수록되기도 하였다.

최초 시사만화가편집

1909년대한민보’의 이도영 화백의 만화가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도영은 1909년 대한협회가 창간한 일간신문 ‘대한민보’에 1909년 6월 2일 창간호부터 1910년 8월 31일 폐간될 때까지 1년 2개월 남짓 대한제국 최초로 시사 삽화를 그렸다.

이도영은 18세 때 조선왕조 최후의 화가였던 조석진과 안중식의 문하생이 돼 인물ㆍ동물ㆍ기명절지(器皿折枝) 등 전통적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구사했다.

1918년에는 동연배의 친구인 고희동ㆍ조석진ㆍ안중식 등 13인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해 서화협회를 창립시키고, 1920년대 이후에는 고희동과 더불어 서화협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교육과 민족계몽에 앞장섰던 민족 운동가이자 화가이기도 하다.[1]

작품편집

  • 추산도(秋山圖)
  • 연화백로도(蓮花白鷺圖)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

  • 「근대지식으로서의 사회주의」, 1920년대 신문 만평의 사회주의(이도영), 상허학회 저, 깊은샘(2008년, 77~7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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