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남
이인남(李仁男, 1559년 - 1592년 음력 4월 28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 군인으로 본관은 우계(羽溪), 자(字)는 원보(元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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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1559년 - 1592년 음력 4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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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조선 강원도 명주군 |
사망지 | 조선 충청도 충주시 탄금대 |
별명 | 자(字)는 원보(元甫) |
복무 | 조선 육군 |
복무기간 | 1583년 ~ 1592년 8월 16일 |
최종계급 | 남도우후 |
지휘 | 한성부->도원수의 부장 |
주요 참전 | 충주 탄금대 전투/임진왜란 |
기타 이력 | 1583년 과거 급제 |
서훈 | 선무원종공신 3등(宣武原從功臣三等) |
1583년(선조 16) 보인(保人)으로 알성무과(謁聖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선전관을 거쳐 남도우후로 재직 중 임진왜란을 당하여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도순찰사 신립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1604년(선조 36) 선무원종공신 3등에 추록되었다. 갑산도호부사 이준헌(李遵憲)의 아들이며, 이광식(李光軾)의 증손이다. 병마절도사 충장공(忠壯公) 이복남(李福男)의 동생이다.
생애편집
1559년생으로 그의 출생년월일은 족보에서는 실전되었다가 후에 무과방목이 한글로 국역되면서 출생년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증조부는 이광식(李光軾)이고, 할아버지는 이전(李戩)이며, 아버지는 흥덕현감과 갑산도호부사를 지낸 이준헌(李遵憲)이며, 어머니 전주이씨 이명복(全州李氏 李明福)은 평안도병마절도사 증 병조판서 이구침(李龜琛)의 딸이다.
어머니 전주이씨 이봉령은 정종의 왕자 수도정 이덕생(守道正李德生)의 5대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산부수 금손(群山副守 金孫)이고 증조부는 심곡수 숙인, 고조부는 풍산부정 이외이다. 친정어머니는 제주고씨로 병마절도사 고자겸의 딸이다.
전주 웅치 전투와 남원성 전투에서 활약하고 남원성에서 전사한 이복남(李福男)은 그의 둘째 형이었다. 큰형은 이귀남인데 43세의 나이로 일찍 죽었고 사망년대는 불명이다. 셋째 형은 이덕남(李德男)이다. 그의 가계는 무반 가계로 고조부 이지방과 증조부 이광식, 할아버지 이전과 종조부 이용 등은 모두 변방에서 장수로 활약하였다.
어린 시절과 초기의 행적은 미상이다. 보인(保人) 신분이었던 그는 1583년(선조 16) 알성 무과(謁聖武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589년 선전관을 거쳐[1], 1592년(선조 25) 남도우후가 되고, 그 해 임진왜란이 터지자 도순찰사 신립의 부관으로 출전, 그해 음력 4월 28일 도순찰사 신립, 부순찰사 김여물 등과 함께 충주 탄금대에서 올라오는 왜적과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전사하였다. 당시 숙부 이경헌(李敬憲), 이승헌(李承憲) 역시 신립장군의 군관으로 탄금대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하였다.
이때 김화현감으로 재직 중이던 그의 셋째 형 이덕남도 임진왜란 초기에 사망하였다.
그는 자녀가 없이 사망하였으므로 둘째 형 이복남의 차남 이경수(李慶受)를 양자로 입후, 후사로 삼았다. 이경수는 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604년(선조 36) 선무원종공신 3등에 추록되었다.
사후편집
그의 행적은 오랫동안 실전되었고, 그의 집안 족보에서도 2000년대 초까지 간략하게 실려 있다가 2010년 만력11년계미4월초4일문무과방목(萬曆十一年癸未四月初四日文武科榜目)이 하버드대학교 옌칭 도서관 소장본과 UCA버클리 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 확인되면서 과거 급제 기록과 인적사항이 알려지게 되었다.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포전(浦田)에 있다. 근처 헌릉(獻陵) 서쪽 언덕 내동부락 축좌에는 그의 양자 이경수의 묘가 있다.
가계편집
- 증조부 이광식(李光軾, 1493년 음력 9월 29일 - 1563년 음력 12월 1일)
- 증조모 함안이씨(咸安李氏, 1492년 12월 1일 ~ 1536년 10월 7일, 양간공 이세응(李世應)의 딸, 충렬공 이방실의 7대손)
- 조부 이전(李戩, 1517년 - ?)
- 조모 : 고성이씨(古城李氏), 형조좌랑 이광택(李光澤)의 딸, 자녀 없음
- 조모 : 하빈이씨(河濱李氏), 부장 이윤우(李允耦(手+愚))의 딸
- 아버지 이준헌(李遵憲, 통훈대부 갑산도호부사 겸 갑산진병마첨절제사)
- 어머니 평산신씨(平山申氏, 신직(申直)의 딸
- 어머니 전주이씨 이명복(全州李氏 李明福, 1536년 ~ 1586년), 수도군 이덕생 5대손 평안도병마절도사 이구침(李耉琛)의 딸
기타편집
양자 이경수, 양손자 이득우는 행적이 미상이며, 이윤구는 무과에 급제하여 가산군수에 이르렀지만 일찍 사망했다. 윤구와 그의 아들 문망의 묘는 연안군 홍장리 자좌에 있다.
참고 문헌편집
- 우계이씨세보
- 무보
- 무과방목
- ↑ 閔仁伯 苔泉集卷二, 討逆日記 任鎭安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