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李淸, 1936년 4월 23일 ~ ) 또는 셔먼 리(영어: Scherman Lee)[1]대한제국의 황족 출신 대한민국저술가, 연구인, 토목 공학자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현손이다. 의친왕의 차남 이우(李鍝)와 그의 부인 박찬주(朴贊珠)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위스콘신주 마케트 대학교를 나왔다.[2] 학술 경력으로는 석파학술원을 창설하여 흥선대원군 연구활동을 진행했으며, 그밖에 서울시립대학교 경영대학원 외래교수와 연세대학교의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1년 운현궁을 서울특별시에 매각하였고, 다수의 흥선대원군과 왕실 관련 문화재를 서울시에 기증하였다. 2006년 석파학술연구원을 설립하고,[3] 흥선대원군에 대한 연구 작업을 하고 있다.

이청
李淸
운현궁 이화문
운현궁 이화문
재위 1945년 ~ 1947년
신상정보
출생일 1936년 4월 23일(1936-04-23)(88세)
출생지 일본 일본 도쿄부
(현재의 도쿄)
학력 마케트 대학교
드폴 대학교 대학원
왕조 대한제국 황실
부친 이우(李鍝)
모친 박찬주
기타 친인척 동생 이종

생애 편집

생애 초반 편집

1936년 4월 23일에 아버지 이우의 도쿄 별저(別邸)에서 태어났다.[4] 1942년왕공족(王公族)의 신분으로 학습원(學習院)에 입학하였고, 1944년 6월에 귀국하여 운현궁(雲峴宮)에서 생활하였다.[5] 1945년 8월 7일에 아버지 이우가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되어 사망하자 이청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1945년 8월부터 1947년 신적강하(臣籍降下)까지 일시적으로 공위(公位)를 갖고 있었다.[6] 1945년 광복 이후 제정된 《구황실재산법》에 따라 황실 재산이 모두 국유화되었지만 운현궁은 어머니 박찬주의 노력으로 흥선대원군의 사저(私邸)임을 호소하여 국유화에서 제외되었다.[2]

1948년 7월 운현궁이 그에게 반환됐다.[7] 이청은 운현궁 가계의 채무정리로 운현궁 내 양관과 토지 일부를 덕성학원에 매각하고, 그뒤 운현궁 앞 삼일대로의 확장 과정에서 일부 대지를 정부에 수용당하거나 채무변제를 위해 일부 건물과 토지의 매각 등으로 운현궁 영역이 축소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195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50회)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0년 위스콘신주 마케트 대학교(Marquette University) 토목공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2]

연구 활동 편집

1970년부터 1년간 일리노이주 드폴대학교(DePaul University) 대학원 연구생으로 있었다.[5]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미국 테네시주 킹즈포트에 H. T Spoden & Associate 설계사무소의 엔지니어로 근무하였고, 1965년에서 1969년 사이에는 미국 테네시주 네쉬빌에 Boss H. bryan 합동설계사무소의 엔지니어로 근무하였다.[5]

1974년 동원 Engineering Consultant Ltd의 부사장을 역임하였고[5], 1991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였다.[8] 1998년부터 서울시립대학교 경영대학원 외래교수로 재직 중이다.[5] ASCE, NSPE, ACI, PCI, 대한토목공학회, 대한건축학회의 전 회원이었다.[5]

1993년 어머니 박찬주와 함께 운현궁서울특별시에 매각하고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거처를 옮겼으며,[9] 다시 평창동으로 이주했다. 1994년에는 연세대 강사였다.[8] 이청은 운현궁의 유지관리에 어려움을 겪다가 1991년 서울특별시에 운현궁을 매각하였고, 운현궁에 소장 중이던 각종 유물 또한 서울특별시에 기증하였다.

1993년부터 2018년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흥선대원군 초상을 포함하여 8,000여 점의 유물을 서울시에 기증했다.

또한 2018년 3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위치한 남연군묘(南延君墓) 및 일대 21,992m2의 토지를 예산군에 기증하였고, 2019년 1월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흥선대원군묘(興宣大院君墓, 경기도기념물 제48호) 및 일대 129,935m2의 토지를 경기도에 기증하였다.

2006년 사재로 세운 '석파학술연구원'에서 흥선대원군에 관한 동북아시아 역사 자료를 종합한 사료집인 《흥선대원군 사료휘편》을 출판하였다.[3]

2006년 9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증조부(이재면)와 조부(이준용)의 행적을 친일행위로 규정해 발표하자, 2006년 11월 헌법상 보장된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2007년 1월 18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10] 하지만 헌법소원은 2009년 10월 5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으로 인해 조사대상자 및 그 후손의 인격권이 제한받게 되더라도 부수적 결과에 불과할 뿐이므로 청구인이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 등을 갖추지 못한 채 헌법소원을 제기했기 때문에 부적법하다는 사유로 각하한다고 결정했다.[11]

학력 편집

기타 편집

2007년 흥선대원군의 처소였던 운현궁(사적 제257호·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유물 8000여 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으며, 지난해 4월에는 흥선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이 잠든 묘역을 충남 예산군에 기부하기도 했다.[12]

2018년 4월 경기도에 묘소와 주변 토지를 기증하였다. 흥선대원군 묘역 2555m2와 진입로 등 주변 임야를 합친 총 12만9935m2의 토지에 대한 소유권 이전 절차를 완료했2다. 공시지가로 약 52억 원에 이르는 규모다.[12]

대통령 이승만이 그를 양자로 달라고 요청했다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승만은 양녕대군의 16대 손으로 적통 왕가의 후손이 양녕대군 후손의 양자로 들어가느냐가 거절 이유였다.[13][14]

희망의한국신당 민족교육행정위원 직위를 거쳐 자유민주연합 국방안보교육행정특보위원 직위를 지내기도 한 이청은 운현궁의 가계를 계승하였으나 의친왕의 장남인 이건이 일본으로 귀화하여 의친왕의 차남인 이우의 장남으로서 가장 적합한 황통으로 인정되고 있으나 황실과 관련된 일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석파학술연구원 편찬 도서 편집

  • 흥선대원군 사료휘편(전4권)[15]
  •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1(승정원일기 외)[16]
  •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2(일본외교문서)[17]
  •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3(일본외교자료집성 외)[18]
  •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4(대원군전)[19]

가족 관계 편집

1966년 12월 25일 미국 유학 중이던 동생 이종(李淙)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사실상 독자가 되었고,[20] 1971년 결혼하였다.[2]

조선 왕실과 운현궁 가계도

계보 :   조선 왕실   흥선대원군의 4대조   운현궁


이종
제16대 인조
이왕
소현세자
이호
제17대 효종
이요
인평대군
이연
제18대 현종
이욱
복녕군
이순
제19대 숙종
이혁
의원군
이윤
제20대 경종
이금
제21대 영조
이훤
연령군
이숙
안흥군
이행
진종
이선
장조
이온
낙천군
이진익
이산
제22대 정조
이인
은언군
이진
은신군
이병원
이공
제23대 순조
이광
전계대원군
이구
남연군
이영
문조
이변
제25대 철종
이창응
흥녕군
이재원
완림군
이기용
자작
이광
의친왕의 7남
이환
제24대 헌종
이정응
흥완군
이재완
완순군·후작
이달용
후작
이해선이철주
이최응
흥인군
이재긍
완영군
이지용
백작
이해충이영주
백작
이하응
흥선대원군
이재면
흥친왕
이준용
영선군
이우
의친왕의 2남
이청
장남
여흥 민씨
여흥부대부인
풍산 홍씨
정실
남양 홍씨
정실
박찬주
박영효의 손녀
이종
차남
여주 이씨
계실
광산 김씨
계실
전순혁
소실
이진완
서녀
윤원선
윤치소의 3남
이문용
차남
전주 이씨
장녀
김인규
전주 이씨
차녀
김두한
주씨
소실
전주 이씨
삼녀
김규정
이희
제26대 고종
이척
제27대 순종
여흥 민씨
명성황후
여흥 민씨
순명효황후
해평 윤씨
순정효황후
영월 엄씨
순헌황귀비
이은
의민태자
이진
장남
마사코
의민태자비
이구
차남
이원
의친왕 9남의 장남
줄리아 멀록
1982년 이혼
경주 이씨
귀인
이선
완친왕
덕수 장씨
귀인
이강
의친왕
연안 김씨
의친왕비
수관당 정씨
측실
이건
장남
이충
장남
요시코
1951년 이혼
이옥자
장녀
이기
차남
함개봉
측실
이갑
9남
청주 양씨
귀인
이덕혜
덕혜옹주
소 마사에
소 다케유키
백작
전주 이씨
장녀
조경호
전주 이씨
삼녀
조정구
계성월
소실
이재선
완은군
이주용
전주 이씨
차녀
이윤용
남작


  • 아버지 : 이우(1912 ~ 1945)
  • 어머니 : 박찬주
  • 부인 : 김채영(1949 ~ )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미국에 거주하면서 사용했던 이름
  2. "이청 인터뷰 기사", 《동아일보》, 1991년 12월 11일.
  3. "이청씨, 한중일 역사자료 종합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4권 펴내", 《동아일보》, 2006년 1월 10일.
  4. <이희공계제3세이우공족보>(李熹公系第參世李鍝公族譜) Archived 2013년 11월 10일 - 웨이백 머신, 이왕직, 1940년.
  5.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Archived 2013년 11월 10일 - 웨이백 머신. 서울역사박물관, 2007.
  6. 大蔵省印刷局 編 (1945년 8월 11일). “官報 宮内省 告示 第21号 大勳位李鍝公殿下薨去ニ付長子李清公系ヲ襲ク” (일본어). 
  7. 조선말 왕족 애환 서린 ‘운현궁 유물’ 선뵌다
  8. 운현궁집사가 3억 빼돌려/대원군 5대종손 이청씨 재산관리인 국민일보 1994.08.26.
  9. "박찬주 부고 기사"[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경향신문》, 1995년 7월 15일.
  10. "대원군 고손 "증ㆍ조부 친일 안했다" 소송", 《연합뉴스》, 2007년 1월 18일.
  11. "흥선대원군 후손 제기한 친일진상규명법 위헌소원 각하" Archived 2014년 1월 16일 - 웨이백 머신, 《매일경제》, 2009년 10월 5일.
  12. “흥선대원군의 삶·당시 역사 재조명되길” 문화일보
  13. "태조 이성계 사후 600년, 조선의 황손으로 산다는 것", 《월간중앙》, 2010년 11월 8일.
  14. 역사의 굴레 너무 힘겨워” 중앙일보 2008.10.11.
  15. 석파학술연구원 저 (2005년 11월 30일).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현음사. ISBN 8985319590. 
  16. 석파학술연구원 저 (2005년 11월 30일).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1》. 현음사. 738쪽. ISBN 8985319604. 
  17. 석파학술연구원 저 (2005년 11월 30일).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2》. 현음사. 738쪽. ISBN 8985319612. 
  18. 석파학술연구원 저 (2005년 11월 30일).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3》. 현음사. 573쪽. ISBN 8985319620. 
  19. 석파학술연구원 저 (2005년 11월 30일). 《흥선대원군 사료휘편 4》. 현음사. 702쪽. ISBN 8985319639. 
  20. "이종 부고 기사"[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경향신문》, 1966년 12월 28일.
전임
이우
제5대 운현궁 종주
1945년 ~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