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되니츠

독일의 군인 (1891–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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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되니츠(독일어: Karl Dönitz, 1891년 9월 16일 ~ 1980년 12월 24일)는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 해군 제독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잠수정지휘관, 잠수정지도자, 해군최고지휘관 및 히틀러 사후 국가대통령을 지냈다. 국가대통령 재임기간은 1945년 4월 30일 ~ 5월 23일이다.

카를 되니츠
독일어: Karl Dönitz
나치 독일 독일국의 제4대 국가대통령
플렌스부르크 내각
임기 1945년 4월 30일~1945년 5월 23일
전임 아돌프 히틀러(지도자 겸 국가수상 직함)
후임 테오도어 호이스(서독 연방대통령)
빌헬름 피크(동독 국가대통령)
수상 요제프 괴벨스
요한 루트비히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나치 독일 독일국의 제2대 해군최고지휘관
임기 1943년 1월 30일 ~ 1945년 5월 1일
전임 대제독 에리히 레더
후임 상급제독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장관 빌헬름 카이텔
총감 대제독 에리히 레더

나치 독일 독일국의 제3대 해전지휘부장
임기 1943년 1월 30일 ~ 1944년 5월 1일
전임 대제독 에리히 레더
후임 제독 빌헬름 마이젤
참모장 쿠르트 프리케(1941년 6월 30일 ~ 1943년 2월 28일)
빌헬름 마이젤(1943년 2월 28일 ~ 1944년 5월 31일)

나치 독일 독일국 잠수정지휘관
임기 1939년 10월 17일 ~ 1943년 1월 31일
전임 카를 되니츠 (잠수정지도자)
후임 주력함장 에버하르트 고트

나치 독일 독일국 잠수정지도자
임기 1936년 1월 ~ 1939년 10월 17일
전임 (신설)
후임 카를 되니츠 (잠수정지휘관)

이름
별명 사자(Der Löwe)
신상정보
출생일 1891년 9월 16일
출생지 독일 제국 베를린 근처 그뤼나우
사망일 1980년 12월 24일 (89세)
사망지 서독 함부르크 근처 아우뮈흘레
소속 독일 황립해군
국가해군
전쟁해군
정당 무소속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명예당원)
배우자 잉게보르크 베버(1916년 결혼)
자녀 3명
종교 루터교
서명
군사 경력
복무 독일 제국의 기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의 기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의 기 나치 독일
복무기간 1910년 ~ 1945년
최종계급 대제독 견장 대제독(Großadmiral; 5성장군)
지휘 SM UC-26 (1918년)
SM UB-68 (1918년)
어뢰정 (1920년대)
독일 순양함 엠덴 (1935년–36년)
제1잠수정전단 (1935년–36년)
잠수정지도자 (1936년–39년)
잠수정지휘관 (1939년–43년)
해군최고사령부 (1943년–45년)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상훈 오스만 전쟁기장

2급 1914년형 철십자장 1급 1914년형 철십자장 검 기사십자 호엔촐레른 가 훈장 2급 1939년형 철십자 약장 1급 1939년형 철십자 약장 1급 용감공 미하이 훈장 훈1등 욱일대수장 백색 해군공훈십자장

생애 편집

카를 되니츠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유보트(U-Boat: 잠수함) 함장으로 참전하여 영국군의 포로가 되었다. 종전 후에도 계속 해군에 남은 되니츠는 한동안 순양함 함장 등을 지내며 군 생활을 했고, 1935년 재군비 선언 이후 대령 계급으로 잠수정지휘관에 임명되어 잠수함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유보트 건조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의 경험과 당시 잠수함 건조 기술의 한계를 감안한 늑대떼 전술을 창안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후에도 잠수정지휘관으로서 영국 해군과 대서양 호송선단 전투를 결사적으로 벌였다. 윈스턴 처칠은 훗날 유보트를 가장 무서웠던 존재로 꼽았다. 에리히 레더 제독이 히틀러와 수상함대 문제로 갈등을 빚은 후 사임하자, 그의 뒤를 이어 해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2]

히틀러의 자살 후에는 히틀러의 정치적 유언에 의해 대통령(독일어: Reichspräsidenten)이 되었다. 히틀러괴벨스를 총리로 임명하였지만 그는 자살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되니츠의 1인 정부가 되었다. 동프로이센 및 동부지역 민간인과 군병력이 엘베강 서안으로 탈출해서 미군에 항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항복 협상을 지연시키기 원했으나 연합군은 즉각적인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3]

전후에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였으며, 《10년 20일》(독일어: Zehn Jahre und Zwanzig Tage)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1980년 12월 24일심장마비로 사망했다.[1]

군 복무 경력 편집

독일 황립해군 사관후보생 독일 황립해군 상급 사관후보생 독일 황립해군 소위 독일 황립해군 중위
   
1910년 4월 1일 1911년 4월 15일 1913년 9월 27일 1916년 3월 22일
국가해군 대위 국가해군 소령 국가해군 중령
     
1921년 1월 10일 1928년 11월 1일 1933년 10월 1일
전쟁해군 준장 전쟁해군 후방 제독 전쟁해군 부제독 전쟁해군 제독 전쟁해군 대제독
         
1939년 1월 28일 1939년 10월 1일 1940년 9월 1일 1942년 3월 14일 1943년 1월 30일

각주 편집

  1. Williamson 2007, 10쪽.
  2. Blair 1998, 283, 338, 569쪽.
  3. Blair 1998, 569쪽.

참고 문헌 편집


전임
(신설)
제1대 제1잠수정전단 베딩겐 전단장
 
1935년 9월 - 1936년 10월
후임
주력함장 오토 로이케
전임
(신설)
제1대 잠수정지도자
 
1936년 1월 - 1939년 10월 17일
(잠수정지휘관)
후방제독 카를 되니츠
(잠수정지도자)
준제독 카를 되니츠
제1대 잠수정지휘관
 
1939년 10월 17일 - 1943년 1월 31일
(권한대행)
주력함장 에버하르트 고트
전임
대제독 에리히 레더
제2대 전쟁해군 해군최고지휘관
 
1943년 1월 30일 – 1945년 5월 1일
후임
상급제독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전임
대제독 에리히 레더
제3대 해전지휘부
 
1943년 1월 30일 – 1944년 5월 1일
후임
제독 빌헬름 마이젤
(지도자 겸 국가수상 직함)
아돌프 히틀러
제4대 독일 국가대통령
 
1945년 4월 30일 – 1945년 5월 23일
후임
테오도어 호이스(서독)
요하네스 디크만(동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