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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드먼드 듀이(영어: Thomas Edmund Dewey, 1902년 3월 24일~1971년 3월 16일)는 미국의 법조인·정치인이다. 1930년대에 뉴욕주에서 지방 검사로 근무한 후, 1943년부터 1954년까지 뉴욕주의 주지사를 지냈다. 주지사를 지내면서 1944년 대선, 1948년 대선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모두 패했다.

토머스 듀이
Thomas Dewey
1948년 모습
1948년 모습
Thomas Dewey Signature.svg
뉴욕주의 제47대 주지사
임기 1943년 1월 1일~1954년 12월 31일
부지사 토머스 W. 월리스 (1943)
조 R. 핸리 (1943~1950)
프랭크 C. 무어 (1951~1953)
아서 H. 윅스 (대행, 1953)
월터 J. 마호니 (대행, 1954)
전임 찰스 폴레티
후임 W. 아베렐 해리먼
신상정보
출생일 1902년 3월 24일(1902-03-24)
출생지 미국 미시간주 오워소
사망일 1971년 3월 16일(1971-03-16) (68세)
사망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학력 미시간 대학교 (문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법학박사)
정당 공화당
배우자 프랜시스 허트
자녀 2명

본래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대에 뉴욕주 지방 검사로 발탁된 후 강력한 마피아 소탕에 나서면서 유명세를 얻게 됐다. 특히 러키 루치아노웩시 고든의 검거는 그를 일약 전국적인 인물로 올려줬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주지사 선거에 도전, 1938년 선거에서는 비록 낙선했지만 그 다음 선거에서는 당선돼, 1922년 동안 이어진 민주당 주정을 끝냈다. 주지사로 재직하는 동안 뉴딜 정책을 상당 부분 수용했으며, 여러 진보적 정책을 펼쳐 주민들의 큰 지지를 얻었다. 공화당 내에서 그는 로버트 A. 태프트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에 맞서 온건파를 이끌었는데, 이러한 그의 노선은 후임 주지사인 넬슨 록펠러가 계승했다.

뉴욕주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그는 총 3번 대선에 출마했다. 1940년 대선에서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이후 1944년, 1948년 대선은 모두 후보직을 거머줬다. 특히 1944년 대선에서는 4선에 도전하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 맞서 상당히 선전했다. 따라서 1948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현직 대통령인 해리 S. 트루먼을 꺾고 대권을 거머쥐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물론, 선거 직전까지 나왔던 여론조사를 뒤집고 그는 트루먼에게 패해 대권을 거머쥐지 못했다. 이후 1952년 대선에서는 온건파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리처드 M. 닉슨이 각각 대·부통령 후보로 선출되는 데 큰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