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식
8식(八識, 산스크리트어: aṣṭavijñāna, astau vijñānāni, 영어: Eight Consciousnesses) 또는 8식신(八識身)은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 · 말나식 · 아뢰야식의 8가지의 식(識)을 말한다.[1][2] 8식은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5위, 즉 심법(心法: 8가지) · 심소법(心所法: 51가지) · 색법(色法: 11가지)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24가지) · 무위법(無爲法: 6가지)의 5가지의 그룹들[五位] 가운데 첫 번째 그룹인 심법을 이룬다.[2]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이 8식으로 나뉜다는 견해는, 8식을 그대로 인정하거나 8식에 암마라식(菴摩羅識) 또는 무구식(無垢識)을 더한 9식(九識)을 세우는 등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8식을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보면,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뿐만 아니라 화엄종 · 천태종 · 선종 등 대승불교 전반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견해이다.[3] 이에 대해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와 상좌부불교 등에서는 마음이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의 6가지 식(識), 즉 6식(六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4][5]
그리고 부파불교에서는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은 본래 1가지로 단일한 것이지만 그 발동 근거인 6경과 6근에 따라 나뉜다고 본다. 즉 마음의 체(體)가 하나라고 본다.[5]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는 마음 즉 8식의 체가 하나라는 식체일설(識體一說)의 견해와 8식 각각에는 별도의 체가 있다는 식체별설(識體別說)의 견해가 있다. 전자의 식체일설은 안혜 계통의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의 견해이고, 후자의 식체별설은 호법 계통의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와 중국의 법상종의 견해이다.[6]
용어
편집전5식·후3식
편집8식 중에서의 앞의 5가지 식, 즉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을 전5식(前五識) 또는 5식(五識)이라 하며, 뒤의 3가지 식, 즉 의식 · 말나식 · 아뢰야식을 후3식(後三識)이라 한다.[7][8] 전5식은 색(물질)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식(識)으로, 그 인식대상들을 각각 색경(색깔, 모양, 크기) · 성경(소리) · 향경(냄새) · 미경(맛) · 촉경(감촉)이라 하며 이들을 5경(五境)이라 한다.[7][8] 후3식 중 의식(意識)은 5경(五境)에 법경(法境)을 더한 6경(六境)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식으로 제6의식이라고도 불리는데,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에 근거하여 생겨나는 식이며, 다시 말나식은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거하여 생겨나는 식이다.[2][9][10][11]
전6식
편집8식 중 말나식과 아뢰야식을 제외한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을 전6식(前六識)이라고도 한다.
7전식·전식·전7식
편집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 등 대승불교에서는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 · 말나식의 7식(七識) 즉 7가지의 식은 모두 제8식인 아뢰야식으로부터 생긴 것 또는 아뢰야식이 전변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하여, 이들을 통칭하여 7전식(七轉識) 또는 전식(轉識)이라 부른다.[2][11][12] 또한 이들 7가지 식들을 전7식(前七識)이라고도 한다.
한편, 미륵 → 무착 → 세친 → 덕혜(德慧, Gunamati: 5세기 후반~6세기 전반) → 안혜(安慧, Sthiramati: 475~555 또는 510~570) → 진제(眞諦: 499~569)의 섭론종으로 이어진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13]의 논서들에서 전식(轉識)은 제7 말나식을 제외한 전6식(前六識)만을 의미한다.[12][14][15]
식의 명명법
편집8식 중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은 모두 각자의 소의근(所依根), 즉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 · 의근(意根)을 따라 그 이름이 세워진 식(識)들이다. 달리 말하면, 본래 1가지로 단일한 마음(즉 심왕, 즉 심법)을 구분할 때 소의근에 따라 6가지 식(識)으로 구분한 것이다.[2]
8식 중 말나식(末那識)과 아뢰야식(阿賴耶識)은 그 본질적 성질 즉 자성(自性)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식(識)들이다.[2] 말나식(末那識)의 본질적 성질은 언제나 심세하게 생각하는 것[恆審思量]으로,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사량(思量) 또는 의(意)라고 하며, 이 두 낱말은 모두 산스크리트어 마나스(manas)를 의역한 것이며 마나스를 음역하여 말나(末那) 또는 말나식(末那識)이라 한다.[2][16] 아뢰야식(阿賴耶識)의 본질적 성질은 인과의 종자를 함장하고 인연에 따라 그 종자를 현행 상태로 일으키는 것으로,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집기(集起: 쌓고 일으킴) 또는 심(心)이라고 하며, 이 두 낱말은 모두 산스크리트어 치타(citta)를 의역한 것이며, 이러한 성질을 가진 식을 아뢰야(阿賴耶) 또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2][17][18]
전5식과 의식
편집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고 하며, 의식(意識)을 제6식(第六識), 제6 의식(第六意識) 또는 제6의식(第六意識)이라고도 한다.[19][20][21]
대승불교의 8식 중 앞의 6식의 경우, 즉, 전5식과 의식(즉, 제6의식)의 경우, 이들 6식이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근거로 하여 전개된다고 대승불교에서는 주장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비록 이 차이가 사상적인 면에서 아주 커다란 차이이기는 하지만, 이들 6식의 성질과 작용에 대한 대승불교의 견해는 부파불교의 6식에 대한 견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자성분별·계탁분별·수념분별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전5식(前五識)은 심(尋)과 사(伺)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감성적 인식(感性的認識)이며, 감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인식대상의 자성(自性: 본질적 성질, 예를 들어, 빨간색의 경우 빨간색 그 자체 또는 노란색의 경우 노란색 그 자체)을 분별(지각)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자성분별(自性分別)이라고 한다.[22] 여기서, 심(尋)의 마음작용은 거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심구(尋求: 찾고 탐구함)라고 한다. 그리고 사(伺)의 마음작용은 정밀한 살펴봄의 마음작용 즉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작용으로 이 작용을 전통적인 용어로는 사찰(伺察: 정밀하게 살펴봄)이라 한다.[23][24][25]
이에 대해, 의식(意識), 즉 제6의식(第六意識)은 혜(慧: 판단)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오성적 인식(悟性的認識)이며 또한 염(念: 기억)의 마음작용을 본질로 하는 기억(記憶) 또는 재인식(再認識)이다. 오성적 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헤아리고 판단하여[計度]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계탁분별(計度分別)이라 하며, 기억 또는 재인식을 전통적 용어로 '기억[念] 또는 재인식[念]을 바탕으로 분별한다'라는 뜻에서 수념분별(隨念分別)이라 한다.[22]
무분별·유분별
편집전5식은 감성적 인식일 뿐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식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혜(慧: 판단)의 작용은 없고 심(尋)과 사(伺)의 작용만 있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이다. 불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없다'는 뜻에서 무분별(無分別)이라 한다. 여기에 의식 즉 제6의식의 오성적 인식과 기억 또는 재인식이 더해짐으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비로소 대상에 대해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가지게 된다. 확정적인 인식 또는 앎을 전통적인 용어로 '[확정적인] 분별, 식별, 요별 또는 앎이 있다'는 뜻에서 유분별(有分別)이라 한다.[22] 한편, 전5식의 본질적 성질로서의 무분별(無分別: 불확정적인 인식)은 반야바라밀다의 무분별지(無分別智)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설일체유부의 논사인 제바설마(提婆設摩)는 《아비달마식신족론》에서 무분별(無分別) 즉 불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전5식과 유분별(有分別) 즉 확정적인 앎(요별)으로서의 제6의식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정신적 대상(즉 법경)을 인식하고 정신적 행위(즉 법경에 대한 작용)를 행하는 제6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有六識身。謂眼識耳鼻舌身意識。
眼識唯能了別青色。不能了別此是青色。意識亦能了別青色。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青色。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青色。亦能了別此是青色。如青色黃赤白等色亦爾。
耳識唯能了別聲。不能了別此是聲。意識亦能了別聲。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聲。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聲。亦能了別此是聲。
鼻識唯能了別香。不能了別此是香。意識亦能了別香。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香。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香。亦能了別此是香。
舌識唯能了別味。不能了別此是味。意識亦能了別味。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味。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味。亦能了別此是味。
身識唯能了別觸。不能了別此是觸。意識亦能了別觸。乃至未能了別其名。不能了別此是觸。若能了別其名。爾時亦能了別觸。亦能了別此是觸。
意識亦能了別諸法。
謂或執為我。或執我所。或執為斷或執為常。或撥無因。或撥無作。或復損減。
或執為尊。或執為勝。或執為上。或執第一。或執清淨。或執解脫。或執出離。
若惑若疑。若猶豫。若貪若瞋。若慢若癡。若麤若苦。若障若靜。若妙若離。若如病若如癰。若如箭若惱害。若無常若苦若空若無我。
若於因謂因謂集謂生謂緣。若於滅謂滅謂靜謂妙謂離。若於道謂道謂如謂行謂出。
若有因若有起若有是處。若有是事。若如理所引了別。若不如理所引了別。若非如理所引。非不如理所引了別。— 《아비달마식신족론》, 제6권, 〈4. 소연연온(所緣緣蘊)〉. 한문본
여섯 가지 식신[六識身]이 있으니, 이른바 안식과 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 및 의식이다.
안식(眼識)은 오직 파란색[靑色]만을 요별(了別)할 뿐이며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意識] 또한 파란색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파란색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파란색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마치 파란색과 같아서 노란색ㆍ붉은색ㆍ흰색 등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이식(耳識)은 오직 소리[聲]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소리를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소리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소리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비식(鼻識)은 오직 냄새[香]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냄새를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냄새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냄새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설식(舌識)은 오직 맛[味]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맛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맛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맛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맛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맛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신식(身識)은 오직 감촉[觸]만을 요별할 뿐이며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의식 또한 감촉을 요별하는데 그러나 아직 그 이름을 요별하기 전이면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는 요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이름을 요별할 수 있게 되면, 그때에는 비로소 감촉도 요별할 수 있고 또한 ‘이것은 감촉이다’라고도 요별할 수 있다.
의식(意識)은 [색 · 성 · 향 · 미 · 촉의 5경을 확정적으로 요별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법(法, 즉 법경, 즉 정신적 대상)도 [불확정적으로도 또는 확정적으로도, 틀리게 또는 바르게] 요별한다.
이를테면 혹은 ‘나(我)’라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내것[我所]이라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아주 없다[斷]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항상 있다[常]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인(因)이 없다고 부정하기도 하고, 혹은 작용[作]이 없다고 부정하기도 하며 혹은 다시 손감(損減)시키기도 한다.
혹은 높다[尊]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뛰어나다[勝]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으뜸[上]이라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제일[第一]이라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청정(淸淨)하다고 집착하기도 하고 혹은 해탈(解脫)하였다고 집착하기도 하며, 혹은 벗어났다[出離]고 집착하기도 한다.
또는 미혹하고 의심하고 망설이기도 하며, 또는 탐내고 성내고 오만하고 어리석기도 하며, 또는 거칠다 하고 괴롭다[苦]하고 막힌다[障]고 하며, 또는 고요하다[靜]하고 미묘하다[妙]하고 여읜다[離]고 하며, 또는 질병과 같다 하고 종기와 같다 하고 화살과 같다 하고 괴롭히고 해치는 것[惱害]과 같다 하며, 또는 무상(無常)하다 하고 괴롭다 하고 공(空)하다 하고 나라는 것이 없다[無我]고도 한다.
또는 인(因)에 대하여는 원인이라 하고 쌓임[集]이라 하고 생김[生]이라 하고 연(緣)이라고 하며, 또는 멸(滅)에 대하여는 사라진다 하고 고요하다[靜]하고 미묘하다[妙]하고 여읜다[離]하며, 도(道)에 대하여는 길이라 하고 여(如)라고 하고 행(行)이라 하고 벗어난다[出]고 한다.
또는 인(因)이 있다고 하고 일어남[起]이 있다고 하며, 또는 이런 도리가 있다고 하고, 또는 이러한 일이 있다고 하며, 또는 이치대로 이끈 바[如理所引]를 요별하고, 또는 이치대로 이끌지 않은 것을 요별하며, 또는 이치대로 이끈 바가 아닌 것과 이치대로 이끌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을 요별한다.— 《아비달마식신족론》, 제6권, 〈4. 소연연온(所緣緣蘊)〉. 한글본
심려결탁·추탁·추구탁
편집심려(審慮)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살피고 생각하다'로 심사숙고(深思熟考: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하다)를 뜻한다. 《구사론》에 따르면 심려(審慮)는 결탁(決度: 확인 판단)과 함께, 정견(正見: 바른 견해)이건 악견(惡見: 잘못된 견해)이건 모든 견(見: 견해)의 마음작용의 본질[性] 또는 공능(功能)을 이룬다.[26][27] 결탁(決度, 산스크리트어: saṃtīraṇa)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판단하고[決] 헤아린다[度]'인데,[28] 불교에서는 '확인 판단'의 뜻의 용어로 사용되고 있어,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과는 차이가 있다.
《구사론》에서는 심려결탁(審慮決度)이 곧 견(見: 견해)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보다 정확히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을 견(見: 견해)이라 이름한다[審慮為先決度名見]"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6식(六識) 중 전5식은 '심려한 후 결탁하는 능력', 즉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이 능력은 6식 중에서 오직 제6의식만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여, 전5식과 제6의식을 분별하고 있다.[26][27] 정확히 말하자면, 세친은 《구사론》에서 '제6의식만이 견(見)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데, 이런 표현은 마음과 마음작용의 이론, 즉 심 · 심소(心 · 心所) 이론에 어긋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친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
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 《구사론》, 제2권. 한문본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정견(世間正見)은 오로지 의식(意識, 즉 제6의식)과 상응(相應)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五識)과 구생(俱生, 함께 일어남)하는 혜(慧)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審慮為先決度]'을 일컬어 견(見)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俱, 함께 일어남]하는 혜(慧)는 이와 같은 공능[能]이 없으니, 무분별(無分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과 상응하는 혜는] 견(見)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구사론》, 제2권. 한글본
또한 《구사론》과 《성유식론》에서는 '심려한 후 결탁하는 것[審慮為先決度]'을 추탁(推度: 추리 판단, 추리하여 판단함) 또는 추구탁(推求度: 추리하고 탐구하여 판단함)이라고도 말하고 있다.[29][30][31][32][33] 추탁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추측하다, 미루어 짐작하다 헤아리다'인데,[34] 불교 용어로서의 추탁의 의미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에서는 모두 견(見: 견해)이 혜(慧: 판단, 지혜)의 특수한 경우, 즉 따로 명칭을 붙일만한 일부인 것으로 본다. 즉, 혜(慧)가 더 광범위한 개념인 것으로 본다.[31][32][33][35]
말나식
편집아뢰야식
편집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고익진 (1989). 《한국 고대 불교 사상사》. 동국대학교 출판부.
-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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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2000). 〈아비달마불교의 새로운 인식을 위한 시론〉. 《한국불교학》 제27집판.
- 권오민 (2003). 《아비달마불교》. 민족사.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9,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49(25-149), T.1542(26-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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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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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6, T.1605).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576(16-228), T.1606(3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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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제바설마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K.947, T.1539).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47 (25-1), T.1539 (26-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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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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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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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우 조, 현장 한역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42,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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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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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연수(延壽) (T.2016). 《종경록(宗鏡錄)》.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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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제바설마 조, 현장 한역 (T.1539).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毘達磨識身足論)》.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39,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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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운허, "八識(팔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八識(팔식): 유식종(唯識宗)에서 나누는 식의 종류.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ㆍ말나식(末那識)ㆍ아뢰야식(阿賴耶識)."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星雲, "八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八識: 梵語 astau vijñānāni。瑜伽行派與法相宗五位法中之心法。即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共八識。其中眼等六識隨所依根而立名;末那識即為意,依其自性而立名;阿賴耶識依攝持諸法因果之義,亦即從自性而立名。或稱眼等五識為前五識,意識為第六識,末那識為第七識,阿賴耶識為第八識。又眼至末那乃阿賴耶所生、轉易故,總稱為轉識或七轉識;對此,阿賴耶為七轉諸法之因,故稱根本識、種子識。又有分八識為三能變,阿賴耶識名為初能變,末那識為第二能變,前六識為第三能變。
若就其性而言,眼等之前六識以了別為其性,緣色等六境,通善等三性;末那識以恒審思量為其性,乃有覆無記性,唯緣阿賴耶識之見分為自之內我;阿賴耶識為無覆無記性,以微細之行相緣自所變之器界、種子及有根身。地論家以阿陀那(末那識)為妄識,阿賴耶為真識;攝論家則以阿賴耶為妄識,別立第九無垢淨識;唯識家則謂識僅限八種,且此諸識皆為依他起性,即非真常淨識。〔入楞伽經卷八剎那品、成唯識論卷七、大乘法苑義林章卷一末〕(參閱「識」)" - ↑ 운허, "九識(구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九識(구식): 성종(性宗)의 학설. (1) 안식(眼識). 빛을 분별하는 것. (2) 이식(耳識). 소리를 분별하는 것. (3) 비식(鼻識). 냄새를 분별하는 것. (4) 설식(舌識). 맛을 분별하는 것. (5) 신식(身識). 감촉을 분별하는 것. (6) 의식(意識). 모든 법진을 분별하여 아는 것. (7)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을 분별하여 실아(實我)로 삼는 것. (8) 아뢰야식(阿賴耶識). 종자와 5근(根)과 기계(器界)의 3경(境)을 분별하여 이를 생기게 하는 것. (9) 암마라식(菴摩羅識). 무구식(無垢識)이라고도 하며, 진여(본체)를 식으로 인정하여 만유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 - ↑ 운허, "六識(육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六識(육식): [1] 객관적 만유의 대상을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6경(境)으로 하고, 이 6경에 대하여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고 알고 하는 인식 작용. 곧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 [2] 제6 의식(意識)의 준말." - ↑ 가 나 권오민 2003, 67쪽.
- ↑ 星雲, "識".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識: 梵語 vijñāna,巴利語 viññāna。音譯作毘闍那、毘若南。vijñāna 為 vi(分析、分割)與 jñāna(知)之合成語,乃謂分析、分類對象而後認知之作用。雖至後世時,心(梵 citta,巴同)、意(梵 mano,巴同)、識三語彙分別使用,然於初期時皆混合使用。依唯識宗之解釋,吾人能識別、了別外境,乃因識對外境之作用所顯現,故於此狀態之識稱為表識、記識(梵 vijñapti,音譯作毘若底)。
於大、小乘佛教皆立有六識說。六識各以眼、耳、鼻、舌、身、意等六根為所依,對色、聲、香、味、觸、法等六境,產生見、聞、嗅、味、觸、知之了別作用,此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等六種心識。喻如「六窗一猿」,六識之體為一,而起作用之門戶則六,概係六識說最初之意義。六識中,第六之意識稱為第六識,後世更賦予六識、意識、分別事識、四住識、攀緣識、巡舊識、波浪識、人我識、煩惱障識、分段死識等十名,稱為六識十名。
除以上六識外,唯識宗另舉末那識與阿賴耶識(即阿梨耶識),成立八識說。其中從眼識至身識之五識(與六識說相同),總稱為前五識。至第六意識,稱為前六識。至第七末那識(即第七識,或單稱七識),稱為前七識(或單稱七識)。前七識以阿賴耶識為所依,而緣各境轉起,故稱為七轉識或轉識。而前六識能清晰識別對象,故稱為了別境識。第七末那識稱思量識,第八阿賴耶識稱異熟識。據護法之唯識說,八識中第六與第七識具有執著虛妄之對象為我或為法之遍計性,故稱「六七能遍計」。而前五識與第八阿賴耶識因無我、法之執著,故稱此為「五八無執」。復次,印度之無相唯識派認為八識之體性皆同,故主張八識體一之說。但有相唯識派及唯識宗則謂其體性各別,而主張八識體別說;且二識乃至八識同時並起,同時轉起(俱轉),稱為八識俱轉。然而,小乘有部宗等不主張二識並起,異於前說。
攝論宗(真諦所創)於八識外另立第九阿摩羅識(菴摩羅識),成立九識說。阿摩羅識別名無垢識、真如識、真識,即所謂淨識,依此而言,第八阿梨耶識被解作妄識或真妄和合識。地論宗、天台宗亦有人主張此說。
真言宗立十識,即於八識之外別立二種:(一)多一識心,為生滅門之所依,相當於了知差別現象界之後得智。(二)一一識心,為真如門之所依,相當於體悟平等一如真理之根本智。
據真諦譯之世親所著攝論釋卷五謂,因阿梨耶識變異所生之識,共有: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世識、數識、處識、言說識、自他差別識與善惡兩道生死識等十一種差別。於此,「顯識論」舉出顯識與分別識二種,其中因阿梨耶識所顯現之顯識復分為:身識、塵識、用識、世識、器識、數識、四種言說識、自他異識與善惡生死識等九識;而分別識為虛妄分別之主體,又可分成有身者識與受者識二種,其看法大致與真諦所說相符。
又楞伽經卷一說三識,即:(一)真識,相當於阿摩羅識,或相當於阿梨耶識。(二)現識,相當於顯現萬法之阿賴耶識,或阿陀那識(即末那識)。(三)分別事識,即七轉識,或前六識。然真識之說僅見於楞伽經,而不見於梵本及其他譯本。按智吉祥賢之楞伽經註謂,現識為前五識,分別事識則為第六意識。
據大乘起信論所說,由於阿梨耶識中之根本無明在阿梨耶識上起動妄念,以至認識對象而生起執著心,其相狀可分為:(一)業識,起動業作之始相。(二)轉識,因業識作用,所生見照的主觀作用之相。(三)現識,轉識成為客觀之境所現之相。(四)智識,執著現識為實在之相。(五)相續識,對現識執著不斷之相。上記五種識總稱為五意,或五識;相當於三細六粗中之前五者。此外,依無明能起動阿梨耶識,而展開迷界之相狀,如風吹大海成浪,故喻稱為識浪。〔雜阿含經卷三十六、大毘婆沙論卷九、卷二十三、俱舍論卷二、卷九、釋摩訶衍論卷二、大乘義章卷三、成唯識論述記卷五末、俱舍論光記卷四、宗鏡錄卷五十、十住心論卷十〕(參閱「末那識」1941、「阿摩羅識」3671、「阿賴耶識」3676)" - ↑ 가 나 운허, "前五識(전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前五識(전오식): 유식종(唯識宗)에서 우리의 대경(對境)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을 여덟으로 나눈 가운데서, 안식ㆍ이식ㆍ비식ㆍ설식ㆍ신식의 5식을 총칭하는 말." - ↑ 가 나 운허, "五識(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五識(오식): 【범】 pañca-vijñāna 또는 오식신(五識身).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5경(境)을 인식하는 5종의 심식.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 곧 5경에 대하여 따로따로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닿는 작용이 있음." - ↑ 운허, "意根(의근)".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意根(의근): [1] 6근(根)의 하나. 전념(前念)의 6식이 멸하고, 후념(後念)의 6식이 일어날 의거가 되는 점으로 전념의 6식을 말함. 5식에는 5근이 있는 것같이, 의근은 특히 제6 의식의 근거할 데를 말함. 이를 의계(意界) 또는 의근계(意根界)라 하는 것은 『구사론(俱舍論)』의 말. 우리의 마음을 전념ㆍ후념에 나누고, 전념의 8식 심왕(心王)을 말함. 이것이 후념에 일어날 온갖 심적(心的) 현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 또 제7 말나식(末那識)을 제6 의식의 가장 가까운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은 『유식론(唯識論)』의 말. [2] 22근의 하나. 6식과 의근과의 7심계(心界)를 말함." - ↑ 星雲, "意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意識: (一)梵語 mano-vijñāna。六識(或八識、九識)中之第六識。在西洋哲學中視之為「能把握客觀對象之心機能」。廣義言之,即吾人所有諸種經驗,從原始之感覺至高度之思考均包括在內。凡能統攝多種經驗內容之作用,皆稱為意識。至於意識與物質之關係,乃哲學上之核心問題,觀念論(唯心論)否定物質之獨立性,視意識(思考、精神)為一切之根源;反之,唯物論視意識為物質(存在、自然)之產物。佛教則將精神分為三:(一)心(梵 citta,集起),即精神之主體。(二)意(梵 manas,思量)。(三)識(梵 vijñāna,了別),即精神之作用。意識所附帶微細之精神作用(心所),雖有各種類別,但與心、意、識能完全把握對象之綜合性精神作用(心王)仍有其區別。狹義而言,意識即指六識或八識中之第六識。意識與物質界、現象界之關係,在大乘佛教,以唯識宗為典型代表,特別強調物質界為意識所現,此即佛教所謂之唯心論,而非存在論立場所謂之唯心論,乃係自實踐論立場來強調心之整體性,不主張心和意識為唯一之存在。故知佛教所謂之心,並無實體可得(無自性),此為佛教教義之根本原理。 ...
要言之,第六意識乃八識中最猛利、最敏捷者,具有自由自在之能力,三界九地,一切迷悟昇沈之業,無一不由此意識所作。
又第七識為末那識,末那之梵語為 manas,意譯為「意」,思量之義,若採取意譯,則易與第六意識混同。然此二識於梵語原文中皆有「意識」之意,此因第六識乃以末那識為所依,故知第六識之所以稱為「意」者,即由「依意之識」而來;第七之末那識,其原文 manas,則表示「意即是識」,其識之本身即名為「意」。此乃兩者名義接近、所依與作用迥別,而一用音譯、一用意譯之緣故。" - ↑ 가 나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중기 이후의 대승사상 > 아뢰야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아뢰야식 阿賴耶識: 알라야비즈냐나(alayavijnana)의 음사(音寫)로서 아리야식(阿梨耶識)이라고도 쓰며, 유식설은 우주만유전개(宇宙萬有展開)의 근본으로서, 만유를 굳게 보지하여 잃지 않기 때문에 무몰식(無沒識), 만유를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장식(藏識), 만유발생의 씨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유식설에 의하면 우리들의 경험은 모두 의식(意識)으로 간주된다. 외계에 있는 빛의 파동(波動)도 눈(眼:視力)이 없으면 빛깔이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다. 즉 빛깔이 나타나는 것은 눈(眼)이 원인(原因)이며, 외계의 빛의 파동은 조연(助緣)에 불과하고, 눈(主觀)에 갖추어진 힘의 요소만이 빛깔(客觀)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눈은 빛깔의 주관적인 입장, 빛깔은 눈의 객관적인 입장에 불과하며, 이 양자는 동일 존재인 것이 주객(主客)으로 분열된 모습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식(六識)과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6경(六境)을 역설하고, 이 6식의 구석에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서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 또한 이들 7식(七識)이 성립되는 근거로서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 역설되고 있다. 아뢰야식은 인간의 생명력에 타고난 유전적 요소나 여러 행위의 결과로서의 기억, 그리고 이에 의해 형성된 성격 등이 결합된 심리적 기체(心理的基體)로서 이에 의거해서 인식이나 판단이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다. 7식이 현재적(顯在的)인 데 대해서 아뢰야식은 잠재적이며, 과거의 여러 행위, 즉 업(業)의 결과가 종자(種子)로서 감추어지고 보존되어 인연(因緣)이 합쳐지면 또다시 아뢰야식에서 7식으로 현행(現行)하며, 또한 7식에 의한 경험은 업(業)의 형태로 아뢰야식으로 훈습(熏習)되며 종자로서 보존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잠재적인 아뢰야식에서 7식이 생기며, 이것이 주객으로 분열되어 인식이 성립되는 경과를 전변(轉變)이라 하고 아뢰야식에 의거, 현실의 현상세계가 성립되고 있는 상태를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라고 한다. 이같은 외계의 일체를 식의 현현(顯現)으로 보고 그 유식관(唯識觀)을 익혀 아뢰야식의 본질을 개조(改造:轉依)하여 전식득지(轉識得智)해서 깨달음을 실현하려 하는 것이 유가행파의 입장이다." - ↑ 가 나 星雲, "轉識". 2013년 1월 11일에 확인
"轉識: (一)梵語 pravrtti-vijñāna。唯識宗所說轉起之前七識,即眼、耳、鼻、舌、身、意、末那等前七識。轉,轉變、改轉、轉起、轉易之義。謂前七識以阿賴耶識為所依,緣色、聲等諸境而轉起,能改轉苦、樂、捨等三受,轉變善、惡、無記等三性,故稱七轉識。又梁譯攝大乘論釋卷二稱之為「生起識」,然僅指前六識,而不包括第七識。〔入楞伽經卷二、瑜伽師地論卷五十一、卷六十三、成唯識論卷二至卷四、成唯識論述記卷三本〕(參閱「七轉識」)
(二)第八阿賴耶識之異名。為唯識宗所用。阿賴耶識有十餘種異稱,以阿賴耶識乃諸法所依起者,故有此異稱。〔唯識論了義燈卷四本〕
(三)為轉識得智、轉識成智之略稱。唯識宗主張,改轉有漏之第八阿賴耶識、第七末那識、第六意識及前五識,可依次得無漏之大圓鏡智、平等性智、妙觀察智、成所作智,此即轉識得智之義。〔成唯識論卷十〕(參閱「轉識得智」)
(四)為大乘起信論所說五意之第二。「無明門」中之「轉相」,於「識體門」稱為「轉識」。即轉變業識(為五意中之第一)之根本無明為能見之識。亦即與業識產生之同時,轉生見照之主觀作用。法藏之大乘起信論義記卷中末除了五意之第二稱為轉識外,亦以「事識」稱轉識。若配於八識,則五意之第二為轉識者,屬於第八識;事識為轉識者,屬於前六識。又慧遠之大乘義章卷三末依起信論之意,解轉識為第七識之異名,此異於法藏所說;復指事識為轉識,此則同於法藏之觀點。" - ↑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유식파의 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유식파의 계보: 唯識派-系譜 유식설(唯識說)은 비스반두 이후 인도의 사상계에 있어서 대단히 우세하게 되어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여러 가지 이상한 학파(異流)를 성립시켰다. 아상가. 바스반두에서 유래한 경식구공(境識俱空)을 주장하는 진실유식설(眞實唯識說)은 인도에서는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라고 호칭된다. 이는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90)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어 섭론종(攝論宗)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단 식(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 즉 경공심유(境空心有)의 방편유식설(方便唯識說)은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가 주장한 것으로서, 디그나가(Dignaga 陳那·域龍)에서 시작하여 무성(無性)을 거쳐 호법(護法 530∼561)에 이르러 대성하였다. 이는 현장 삼장(玄裝三藏)에 의해 중국·한국에 전해져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디그나가는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등을 저작하였다. 그는 지식근거로서 직접지각(直接知覺)과 추론(推論)과의 두 종류만은 승인하면서, 직접지각은 분별(分別)을 떠난 것이어서 내용이 없는 것이지만, 추론의 작용이 가(加)해짐으로써 구체적인 지식으로서 성립한다고 한다. 또 보편(普遍)의 존재를 부인하여, 그것은 타자(他者)의 배제(排除)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구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참뜻으로 말하는 개별자란 작용의 어느 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신인명(新因明)'을 확립하였다. 샨카라스바민(Sankarasvamin)의 <인명입정이론(因明入正理論)>(玄裝譯)은 그 입문서(入門書)인데, 중국·한국에서는 인명(因明)의 근본 전적(根本典籍)으로서 많이 연구되었다. 디그나가의 논리사상은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 法稱, 650?)에 의해서 더 한층 세밀한 것으로 되었다. 그에 의하면 각 순간이 승의(勝義)에 있어서 어떤 것이다. 우리는 각 순간의 연속으로서 의식의 흐름을 상정(想定)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과를 구별하였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2권. p. T31n1606_p0700a29 - T31n1606_p0700b06. 무상정(無想定)
"無想定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欲。出離想作意為先故。於不恒行心心法滅。假立無想定。已離遍淨欲者。已離第三靜慮貪。未離上欲者。未離第四靜慮已上貪。出離想作意為先者。解脫想作意為前方便。不恒行者。轉識所攝。滅者。謂定心所引不恒現行。諸心心法暫時間滅所依位差別。以能滅故名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2권. p. 34 / 388. 무상정(無想定)
"어떠한 것이 ‘무상정(無想定)불상응행법’입니까? 변정천(遍淨天)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그 상계(上界)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기에 그 출리상(出離想)을 작의(作意)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그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가 소멸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정이라 한다. [釋] ‘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읜 것’이란 이미 제3정려의 탐을 여읜 것이다. ‘그상계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다는 것’이란 제4정려 이상의 탐을 미처 여의지 못한 것이다. ‘그 출리상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운다는 것’이란 해탈상(解脫想)의 작의를 작전(作前)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다. ‘불항행’이란 전식(轉識)에 수렴하는 것이다. ‘소멸된다는 것’이란 정심에 끌려진 불항행이 현행해서 모든 심ㆍ심법이 잠시동안 의존하는 지위의 차별을 소멸시키는 것이니, 능히 소멸하는 까닭에 ‘소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 星雲, "末那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末那識: 末那,為梵語 manas 之音譯,意譯為意,思量之義。唯識宗將有情之心識立為八種,末那識即為八識中之第七識。為恆執第八阿賴耶識為「我」之染污識。為與第六意識(梵 mano-vijñāna,意之識,乃依末那之識)區別,而特用梵語音譯稱為「末那識」。此識恆與我癡、我見、我慢、我愛等四煩惱相應,恆審第八阿賴耶識之見分為「我、我所」而執著,故其特質為恆審思量。又此識為我執之根本,若執著迷妄則造諸惡業,反之,則斷滅煩惱惡業,徹悟人法二空之真理,故稱染淨識,又稱思量識、思量能變識。且其自無始以來,微細相續,不用外力,自然而起,故其性質為「有覆無記」;乃不引生異熟果,卻能覆聖道、蔽心性。" - ↑ 星雲, "阿賴耶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阿賴耶識: 阿賴耶,梵語 ālaya 之音譯。為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等識)之一,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又作阿羅耶識、阿黎耶識、阿剌耶識、阿梨耶識。略稱賴耶、梨耶。舊譯作無沒識,新譯作藏識。或作第八識、本識、宅識。無沒識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以其為諸法之根本,故亦稱本識;以其為諸識作用之最強者,故亦稱識主。此識為宇宙萬有之本,含藏萬有,使之存而不失,故稱藏識。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故亦稱種子識。 " - ↑ 星雲, "心意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心意識: 指心、意、識三者。心為梵語 citta 之意譯,音譯作質多,即集起之義。意為梵語 manas 之意譯,音譯作末那,即思量之義。識為梵語 vijñāna 之意譯,音譯作毘若南,即了別之義。大略言之,心是主體意與識是心作用之兩面。有關此詞之語意,大小乘論典有種種不同之說法。
據俱舍宗,心、意、識三者為六識之異名,其體實為同一。即心(心王)能集起各種精神作用或業,故稱為心;心能思惟量度,故稱為意;心能了知識別,故稱為識。或謂心有種種差別(從梵語 citta 所導出之種種義)之義、意有起識所依止(所依止)之義、識有依託於意而起(能依止)之義。
據大乘之解釋,心、意、識三者各別。唯識宗主張第八阿賴耶識能積集種子,故稱為心;第七末那識能思量起我執,故稱為意;前六識能認識對象,故稱為識。據大乘起信論載,阿賴耶識為心,五意為意,六識為識;其所異於唯識等說者,以意有五種別名,其餘說法均同。此外,佛性論卷三分別以六識心配於心,阿陀那識配於意,阿賴耶識配於識,亦異前述諸說。〔入楞伽經卷七、解深密經卷二、大毘婆沙論卷七十二、俱舍論卷四、瑜伽師地論卷六十二、成唯識論卷五、成實論卷五〕" - ↑ 운허, "前五識(전오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 ↑ 星雲, "五識".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 ↑ 운허, "第六識(제육식)".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 ↑ 가 나 다 권오민 2003, 67–69쪽.
- ↑ 권오민 2003, 69–81쪽.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350-351 / 583쪽.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권. p. T29n1558_p0010c16 - T29n1558_p0010c20. 견(見)
"何故世間正見唯意識相應。以五識俱生慧不能決度故。審慮為先決度名見。五識俱慧無如是能。以無分別是故非見。准此所餘染無染慧及諸餘法非見應知。"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권. p. 86 / 1397. 견(見)
"어떠한 이유에서 세간의 정견은 오로지 의식과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 것인가? 5식과 구생(俱生)하는 혜는 능히 결탁(決度)하지 않기 때문이다.78) 이를테면 먼저 심려(審慮, 심사숙고의 뜻)하고 결탁하는 것을 일컬어 '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5식과 구생하는 혜는 이와 같은 공능이 없으니, 무분별[→ 불확정적인 인식을 말함, 반야바라밀의 무분별지가 아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식상응의 혜는] 비견(非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준하여 그 밖의 염오하거나 염오하지 않은 혜와, 아울러 그 밖의 온갖 법도 비견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79)
78) 자성분별만을 본질로 하는 전5식과 상응하는 선혜(善慧)를 어떻게 세간의 정견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하는 뜻의 물음. 여기서 '결탁(決度, saṃtīraṇa)'은 확인 판단의 뜻이다.
79) 유신견 등의 5견 이외 탐 등과 상응하는 혜나 의식상응의 혜를 제외한 그 밖의 혜, 안근을 제외한 이근(耳根) 등의 모든 근과 일체의 무부무기의 혜, 무학의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그리고 혜 이외 그 밖의 법계소섭법(法界所攝法)은 심려 결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견'이 아니라는 뜻.(『현종론』 권제4, 한글대장경200, p. 83 참조)" - ↑ "決度", 《존 한자사전》.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4b24 - T29n1558_p0134c02. 추탁(推度)
"論曰。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此聖慧中八忍非智性。自所斷疑未已斷故。可見性攝。推度性故。盡與無生二智。非見性。已息求心不推度故。所餘皆通智見二性。已斷自疑推度性故。諸有漏慧皆智性攝。於中唯六亦是見性。謂五染污見世正見為六。如是所說聖有漏慧皆擇法故並慧性攝。"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6권. p. 1172 / 1397. 추탁(推度)
"논하여 말하겠다. 혜(慧)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으니, 유루혜와 무루혜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오로지 무루혜에만 '성(聖)'이라는 명칭을 설정하는데, 이러한 성혜 중에서 8인(忍)은 지(智)의 성질이 아니니, 끊어야 할 스스로의 의심[疑]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3) 그러나 '견'의 성질에는 포섭될 수 있으니, 추리 판단[推度]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진지와 무생지의 두 가지는 '견'의 성질이 아니니, 이미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이 종식되어 추리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밖의 성혜는 모두 '지'와 '견'의 두 가지 성질과 통하니, 이미 스스로의 의심을 끊었으며, 추리 판단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4) 온갖 유루혜는 모두 '지'의 성질에 포섭되지만, 그 중에서 오로지 여섯 가지만은 역시 또한 '견'의 성질이기도 하니, 이를테면 다섯 가지의 염오견과 세속정견의 여섯 가지가 바로 그것이다.5) 그리고 이상에서 설한 성혜와 유루혜는 모두 다 택법(擇法)이기 때문에 아울러 '혜'의 성질에 포섭된다.
3) 8인은 그것에 의해 끊어지는 의(疑)와 구생하여 그것을 끊으려고 하는 단계로서, 아직 '의'의 득에 장애되기 때문에 능히 결단(決斷)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인'은 일찍이 관찰한 적이 없었던 4제의 이치를 지금 비로소 관찰하는 것으로, 아직 되풀이하여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智)는 아니지만, 이 역시 추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見)'의 성질이다.
4) 앞서 언급한 8인과 진지·무생지를 제외한 그 밖의 유학의 8지(智)와 무학의 정견은 모두 추리 판단의 '견'이자 결단의 '지'이다.
5) 다섯 가지 염오견이란 유신견·변집견·사견·견취·계금취로서, 이것이 '견'을 본질로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9 주22) 참조."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1c11 - T31n1585_p0032a01. 견(見)과 혜(慧)의 관계
"云何惡見。於諸諦理顛倒推求度染慧為性。能障善見招苦為業。謂惡見者多受苦故。此見行相差別有五。一薩迦耶見。... 二邊執見。... 三邪見。... 四見取。... 五戒禁取。...."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308-310 / 583. 견(見)과 혜(慧)의 관계
"무엇이 ‘악견(惡見)심소’138)인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뒤바뀌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잡염의 혜를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악견은 고통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 악견의 행상(行相)은 구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 ... 둘째는 변견(邊見) ... 셋째는 사견(邪見) ... 넷째는 견취견(見取見) ... 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 이다]." - ↑ 가 나 황욱 1999, 61. 견(見)과 혜(慧)의 관계쪽
"‘見’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하여 그릇되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雜染의 慧로써 그 體를 삼으며,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으로써 業을 삼는다." - ↑ "推度", 《네이버 중국어사전》. 2012년 11월 20일에 확인.
- ↑ 권오민 2003, 192-197. 견(見)과 혜(慧)의 관계쪽"6수면설은 다시 그 중의 '견'을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계금취戒禁取·견취見取의 다섯 가지로 분별함으로써 10수면으로 발전한다. '견見(drsti)'이란 의식의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보편적 작용(즉 대지법) 중 '혜'로 분류되는 판단작용을 말하지만, 여기서의 '견'은 물론 그릇된 견해 즉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그릇된 견해 역시 확인 판단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