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옹주

경신옹주(敬愼翁主, ? ~ 1480년 이후)는 조선의 왕족으로, 태종의 12녀이며, 어머니는 선빈 안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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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옹주
敬愼翁主
지위
조선의 옹주
신상정보
부친 태종
모친 선빈 안씨 (숙선옹주)
배우자 전의군 이완(全義君 李梡)
자녀 6남 1녀
이효충(李孝忠), 이신충(李信忠),
이예충(李禮忠), 이제충(李悌忠),
이의충(李義忠), 이경충(李敬忠),
강자정(姜子正)의 처

생애편집

태종선빈 안씨(숙선옹주)의 장녀로, 1430년(세종 12년) 10월 28일, 전의위(全義尉) 이완(李梡)과 혼인하여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1443년(세종 25년), 옹주의 아홉살 난 아들 갯똥[介同]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 석류(石榴)의 열살 짜리 아들 사민(思敏)과 장난치며 놀다가 사민에게 욕을 먹자, 경신옹주의 종들이 사민을 잡아들였는데, 석류의 딸이자 사민의 누나인 구장(仇莊)이 경신옹주를 나무라며 욕을 하자, 후에 이 사실을 안 이완은 석류에게 형장을 쳤는데, 엿새만에 석류가 죽었다. 이일로 이완은 의금부에 갇혀 국문(鞫問)을 받고, 직첩(職牒)은 회수되고 진천(鎭川)에 부처(付處)되었다.[1]

1467년(세조 13년), 경신옹주의 손녀인 이씨가 남편 황종동(黃終同) 일가에 소박을 당하고 모욕을 받자, 며느리 이씨의 아버지 이순경과 함께 상언을 올려 사헌부에서 쟁송을 형조에 넘기려 하였으나 무마된 소동이 발생하였다.

1468년(세조 14년), 경신옹주는 노비 분배 문제로 어머니 선빈 안씨(숙선옹주)와 송사를 다투어 안씨가 딸의 불효를 호소하니 세조가 의금부에 이 일을 조사시킨 끝에 경신옹주의 녹봉을 빼앗고 그 아들을 귀양보냈다. 또한 어머니 안씨의 임종에 이르러서는 올케인 남동생 익녕군의 아내 박씨(朴氏)와 갈등을 빚었다.[2] 같은 해 예종이 즉위하여 거둔 녹봉을 다시 경신옹주에게 돌려주었다.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1480년(성종 11년) 동생인 숙안옹주의 둘째 아들인 황제(黃濟)가 맹인 신연의 재물을 탐하여 그 딸 신씨를 첩으로 삼으려 할 때, 황제에게 거짓 혼서를 작성해주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능원은 경기도 양주시 고령에 있다.

가족 관계편집

  • 남편 : 전의위 이완(全義尉 李梡, ? ~ 1455)
    • 장남 : 이효충(李孝忠)
    • 차남 : 이신충(李信忠)
    • 삼남 : 이예충(李禮忠)
    • 사남 : 이제충(李悌忠)
    • 오남 : 이의충(李義忠)
    • 육남 : 이경충(李敬忠)
    • 장녀 : 진주인 강자정(姜子正)과 혼인

각주편집

  1. 《조선왕조실록》 세종100권, 1443년(세종 25) 5월 8일
  2. 《조선왕조실록》 세조 46권, 1468년(세조 14)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