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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慶州 月城)은 신라시대에 궁궐이 있었던 곳의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 불렀으며, 임금이 사는 이라고도, 재성(在城)은 조선시대부터 반월성이라고 불려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1]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월성
(慶州 月城)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종목사적 제16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300,299.2m2
시대신라
위치
경주 월성 (대한민국)
경주 월성
주소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387-1번지
좌표북위 35° 49′ 51″ 동경 129° 13′ 34″ / 북위 35.83083° 동경 129.22611°  / 35.83083; 129.22611좌표: 북위 35° 49′ 51″ 동경 129° 13′ 34″ / 북위 35.83083° 동경 129.22611°  / 35.83083; 129.22611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명칭편집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1]

역사편집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년)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1]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형태편집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 서, 북쪽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1]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누각, 관청, 왕궁과 같은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1]

복원편집

2025년까지 복원을 위해 국비 1천890억원, 지방비 810억원 등 2천700억원을 투입한다. 우선 2017년까지 140억원을 투입해 월성 발굴 조사 및 기초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궁궐 핵심의 복원에 착수한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발굴 조사 성과를 토대로 복원 가능한 유구(옛 물건) 등의 복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발굴 일정편집

1단계(2014∼2018년/5개년)로 월성 중앙부 시굴조사와 정문으로 추정되는 북문지와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를 발굴 조사 하고, 2단계(2019∼2023년/5개년)로 원지와 기타 유구 확인지역을 발굴하며, 학술대회 개최 및 발굴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각주편집

  1. 현지 안내문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