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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金薰, 1948년 5월 5일 - )은 대한민국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이며 한때 기자를 지낸 자전거 레이서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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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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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8년 5월 5일(1948-05-05) (71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암동
직업 소설가, 문학평론가
언어 한국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시민권 서울특별시
학력 휘문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영문과 중퇴
장르 소설, 평론, 수필
사조 모더니즘
대표작 칼의 노래(2001년), 현의 노래(2004년), 화장, 남한산성(2007년)
수상내역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부모 김광주(부), 정무순(모)
친지 형 2명,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
종교 천주교(세례명 : 아우구스티노)


목차

학력편집

약력편집

1948년 5월 5일, 서울 종로구 운암동에서 김광주(金光洲)와 정무순(鄭戊順) 사이에서 4형제의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광주는 광복 뒤 『경향신문(京鄕新聞)』 문화부장과 편집부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으로, 김구(金九)나 윤봉길(尹奉吉)과도 친교가 있었다. 아버지가 병상에 있는 동안 그의 대필을 맡기도 하는 등 김훈은 아버지 아래서 자연스럽게 소설 수양을 해나갔다.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였는데, 대학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이나 메리 셸리 등을 읽고 영문학의 낭만주의에 빠져 대학을 중퇴하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다시 영문과로 들어갔다(동기생들이 4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었다). 1973년에 군대에 입대하였고, 제대하고 아버지 김광주가 사망하면서 경제적인 곤란에 빠졌다. 이때 마침 여동생도 고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하였는데, 김훈 자신이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다」며 스스로 대학을 중퇴하고,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했다(~1989년).

신문기자 시절에 김훈은 「문학기행(文學紀行)」이라는 제목의 평론을 『한국일보』에 연재하는 등 문학자로서의 소질을 닦아나갔다. 그러나 1989년 돌연히 한국일보사를 퇴사하고 2년간 특별히 고정된 직업 없이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선택과 옹호』, 『풍경과 상처』라는 두 편의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1994년 겨울 『문학동네』 창간호에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전2권)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때 김훈의 나이는 47세였다.

작가로서 데뷔한 뒤로도 김훈은 『시사저널』의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를 지내는 등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병행했다. 그러나 2000년 9월 27일자 『한겨레21』에 실린 인터뷰가 세간에 문제시되자 김훈은 『시사저널』을 그만두었다. 그 후, 대표작 『칼의 노래』의 집필에 착수해 2001년에 발표하였다. 『칼의 노래』는 곧 한국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김훈은 이 소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로도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며 소설이나 에세이를 집필하고 있다.

연보편집

  • 1948년 5월 5일, 서울시 종로구 운암동에서 태어남
  • 1960년, 돈암초등학교(敦岩初等學校) 졸업
  • 1963년, 휘문중학교(徽文中學校) 졸업
  • 1966년, 휘문고등학교(徽文高等學校) 졸업
  • 1966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입학
  • 1968년, 고려대학교 영문과로 편입
  • 1970년, 군 입대
  • 1973년, 고려대학교 중퇴
  • 1974년, 지금의 부인 이연화(李燕和)와 결혼
  • 1995년, 『시사저널』 편집국장 대리(후에 편집국장)
  • 1995년, 문단에 등단
  • 1996년, 『TV저널』 편집국장
  • 1998년, 『국민일보』 출판국 국장
  • 2000년, 『시사저널』 퇴사
  • 2002년, 한겨레신문사 입사

작품 경향편집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다.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김훈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1]

김훈은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라고 밝혔다. 그의 희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상편집

일화편집

  • 휘문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 황석영이 한국일보에 대하소설 『장길산』을 연재할 당시 황석영의 담당 기자였다. 소설을 쓰다 구상이 막히면 잠적해버리곤 했던 황석영을 잡는 것이 당시 기자 김훈의 주요 임무였고, 결국 연재가 지연되면 지면을 메우기 위한 「지난 줄거리」 요약을 맡아 쓰기도 했다. 술만 취하면 이때 황석영과의 일을 두고 「그때 잡아서 죽여버리는 건데」라고 주정을 부린다며 황석영이 「무릎팍도사」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에는 『태백산맥』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소송에 휘말렸을 때, 검찰에서 요구한 관련자료를 제출하러 가는 조정래를 따라 검사실 문 앞까지 동행한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 자신의 자전거에 「풍륜(風輪)」이라는 애칭을 붙였다. 이 「풍륜」을 타고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한국 곳곳을 여행하고 쓴 것이 에세이 『자전거 여행』이다. 당시 김훈은 『자전거 여행』의 인세로 「풍륜」의 월부값 500만원을 갚겠다고 했고, 『자전거 여행』은 1000만원짜리 새 자전거를 사고도 한참 남을 두둑한 인세를 거두었다.[2]
 
오영환 등 소방공무원들과 함께
  • 평소 소방공무원에 대한 애정을 인터뷰와 글에서 표현한 바 있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 대한 글에서 6·25 전쟁 이후 잿더미가 된 가난한 서울에서 홀로 높게 솟아있던 소방서 망루와 그 망루가 줬던 안도감에 대해 서술하였다. 유년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신상조사서에 '소방수'라고 적었다고 한다.[3]
  • 1995년에 쓴 첫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의 주인공은 소방관이며, 2008년에는 경기도 119소방대원들 103명의 현장체험기를 모은 소방관 문집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출판도시문화재단 출간)의 편집도 맡았다.
  • 서울시 소방공무원인 오영환의 유년 시절과 의무소방원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인 「한 의무소방원의 꿈」 은 그가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한 단편소설 ‘손’의 모티브가 되었다.[4]
  • 김훈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이란 제목의 이책 서문에서 아래와 같이 소방공무원을 높게 평가하였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아름다움이 아직도 남아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서 확인한다.
  • 대학 2학년 2학기 방학하던 무렵 도서관에서 우연히 《난중일기》(이은상 역)를 읽고, 사실에 입각하는 그의 리얼리스트 정신에 매료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순신이 감당해야 했던 절망뿐인 현실, 절망의 시대에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것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절망을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 나가는 한 인간이라 이순신을 평가하고, 이순신의 문장을 무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며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언어라면서 "한국의 신문이나 저널에서 사용하는 사회적 담론이라는 것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라고 비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이런 언어가 횡행할 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만 심화될 뿐이며, 이런 단절은 이미 거의 다 완성되어 있는 듯 하다며 자신의 한국어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5]

저서편집

단편
* 『화장』(2004)
* 『언니의 폐경』 (2005)
단편집
* 『강산무진』 (2006)
장편
*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1994)
* 『칼의 노래』 (2001)
* 『현의 노래』 (2004)
* 『개』 (2005)
* 『남한산성』 (2007)
* 『공무도하』 (2009)
* 『내 젊은 날의 숲』 (2010)
* 『흑산』 (2011)
에세이
* 『선택과 옹호』(1991)
* 『풍경과 상처』 (1994)
* 『내가 읽은 책과 세상』 (1996)
* 『자전거 여행』 (2000)
* 『원형의 섬 진도』(2001)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2002)
*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2002)
* 『밥벌이의 지겨움』 (2003)
* 『자전거 여행2』 (2004)
* 『바다의 기별』 (2008)
* 『라면을 끓이며』 (2015)

가족편집

  • 아버지 : 김광주(1910~1973), 소설가 겸 언론인, 경향신문 기자 등으로 근무
  • 딸 : 김지연 이든픽쳐스 대표

각주편집

  1. 『월간조선』 2002년 2월호
  2. 머니투데이 2013년 3월 7일자
  3. "소방관은 거룩한 직업… 살려서, 살아서 돌아오라". 조선일보. 2012년 12월 6일. 2015년 1월 3일에 확인함. 
  4. “서울소방 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 소방사 오영환입니다.”. 2015년 11월 3일에 확인함. 
  5. 김훈, '회상' 《바다의 기별》 생각의 나무,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