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일본어: 老中 로주[*])은 일본 에도 시대, 막부의 직책명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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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이란 막부에서 가장 명망높은, 최고 원로 가신들을 의미한다. 보통 4명에서 5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기는 1달에 한 번 정도 돌아가면서 정이대장군의 국정 수행을 도왔다.

정이대장군의 직속으로 국가 정사를 통솔하는 직책이나, 원래 에도 막부 이전부터 존재한 직명은 아니었다. 도쿠가와 집안의 요리키 제도에서 유래해 간에이 연간에 정식 관직 명칭으로 정착됐다. 로주의 '주(じゅう,中)'는 경칭이다. 노(老) 자가 들어갔듯이 쉽게 말해 에도 막부의 가로를 뜻한다.

로주의 최저 녹봉은 2만 5천 석의 수조권으로서, 로주의 일을 하더라도 녹봉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로주카쿠(老中格)'란 꼬리표가 붙는다. 로주는 막부의 직신(直臣)이나, 예외적으로 가로(家老)를 여럿 둔 지방 대영주들의 경우에도 가로의 우두머리에게 로주 명칭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다. 에도 무가정권각료에 해당하며, 그 중 필두를 로주슈자(老中首座)라 하여 총리격으로 삼았다.

그들은 지방의 다이묘들 감독을 지휘하였으며, 에도와 같은 주요 대도시들의 행정, 사법 처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되는지를 감독하였다. 이 외에도 온고쿠부교(遠国奉行)와 같은 관리들이 교토에 있는 중앙 조정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는 데에 힘썼으며, 그 외 다이묘, 거대 사찰, 신토 신사들과의 관계도 처리했다. 그외의 부교(감독관)들이 재정과 세입, 세출을 감독했고 모든 재정과 관련된 보고서를 막부와 로주에게 제출하도록 하였다. 로주들은 가장 중요한 사안들만 직접 개입하였으며, 쇼군을 직접 곁에서 도와 일을 처리하는 만큼 그 권력도 막강하였다. 다만 1867년 메이지 유신의 개혁 이후, 로주 제도는 봉건적이고 후진적이라는 명분 하에 해체되었고, 그들의 자리는 각종 장관과 부들이 대신 차지했다.

원칙적으로 로주가 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후다이 다이묘여야만 했으며, 5만 석이나 그 이상의 봉지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했다. 다만 이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많았으며 로주의 자리에는 지위나 재산에 상관없이 쇼군의 신임을 받는 사람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교토 수호직, 오사카 죠다이와 같은 대도시를 관리하는 고위 관리직에도 정이대장군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 주로 임명되었다.

정이대장군들은 종종 로주 중에서도 명망이 높고 능력있는 인물을 골라 대로(大老)로 임명하였다. 다이로의 지위는 오직 이이씨, 사카이씨, 호타씨와 같은 정이대장군의 최측근들만 오를 수 있었고, 정이대장군 다음가는 권력자로서 막대한 권력을 지녔다. 대로의 관직을 지냈던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자는 이이 나오스케이다. 이이 나오스케는 1860년, 사쿠라다몬 사건으로 에도성의 사쿠라다몬에서 살해당했다.

역대 노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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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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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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