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

(마가다 제국에서 넘어옴)

마가다(𑀫𑀕𑀥, 산스크리트어: मगधः, 힌디어: मगध)는 기원전 684년부터 기원전 321년까지 북인도비하르 남부를 중심으로 존재하던 십육대국 국가이다. 십육대국들 중에서도 제일 강력한 국력을 지녔던 국가로, 하리얀카 왕조 시대에 앙가, 코살라, 밧지 등을 정벌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는 등 십육대국 통일의 기틀을 다졌으며, 난다 왕조 시대에는 대부분의 십육대국 국가들을 정복하며 사실상 십육대국 시대를 종결시키는 등 당시 인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였지만, 이후 점차 쇠퇴하다 기원전 321년마우리아 제국의 창건자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 의해 멸망하였다.

𑀫𑀕𑀥
마가다

기원전 684년 ~ 기원전 321년
하리안카 왕조 ~ 사이슈나가 왕조 시대의 영토
난다 왕조 시대의 영토
난다 왕조 시대의 영토
수도기리브라자
(BC 684년 ~ BC 544년)
라자그리하
(BC 544년 ~ BC 460년)
파탈리푸트라
(BC 460년 ~ BC 413년)
바이샬리
(BC 413년 ~ BC 395년)
파탈리푸트라
(BC 395년 ~ BC 321년)
정치
정부 형태군주제
마하라자
기원전 7세기경?
기원전 543년 ~ 기원전 494년
기원전 494년 ~ 기원전 461년
기원전 329년 ~ 기원전 321년

브리하드라타(초대)
빔비사라
아자타샤트루
다나 난다(말대)
왕조
기원전 684년 ~ 기원전 543년
기원전 543년 ~ 기원전 413년
기원전 413년 ~ 기원전 345년
기원전 345년 ~ 기원전 321년

브리하드라타 왕조
하리얀카 왕조
사이슈나가 왕조
난다 왕조
입법판차야트
역사
 • 건국기원전 684년
 • 멸망기원전 321년
지리
위치비하르 남부
인문
공용어산스크리트어
국민어아르다마가다어
마가다어
민족마가다인

경제
통화파나
종교
주요 종교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아지비카교
기타
현재 국가인도의 기 인도
방글라데시의 기 방글라데시

역사편집

브리하드라타 왕조 (기원전 684년 ~ 기원전 544년)편집

기원전 7세기 무렵 마가다 왕국이 위치한 비하르 지역의 인도아리아인들은 비하리계의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중 비하르 남부에 거주하던 비하리계 부족인 마가다족을 지배하던 족장인 브리하드라타에 의해 기원전 684년에 마가다 왕국이 건국되었으며, 이후 기원전 544년 빔비사라에 의해 하리얀카 왕조가 등장할 때까지 브리하드라타와 그 후손들로 이루어진 가문인 브리하드라타 왕조가 마가다 왕국을 지배하였다.

하리얀카 왕조 (기원전 544년 ~ 기원전 413년)편집

빔비사라 (기원전 544년 ~ 기원전 494년)편집

기원전 544년에 빔비사라가 당시 마가다 왕국의 왕조인 브리하드라타 왕조의 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면서 하리얀카 왕조가 시작되었다. 빔비사라는 마가다의 기존 수도였던 기리브라자 인근에 있는 철광산 지역에 약 40킬로미터나 되는 성벽으로 에워싸인 신도시인 라자그리하를 건설한 후 그곳으로 천도하였고 기원전 538년에 갠지스 강의 델타 지대에 있는 중요한 항구국가인 앙가 왕국을 정복함으로서 갠지스 강의 항행(航行)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아들인 아자타샤트루를 앙가의 총독으로 파견해 다스리게 하였다. 또한 동시기 인물들인 고타마 붓다마하비라 등의 출가 수행자들이 활동하자 그들에게 뱃삮을 면제하는 명령을 내렸으며 고타마 싯다르타 측에게는 죽림정사 등의 사원들을 지어주는 등 수행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외에 마가다 왕국의 동맹국들을 확보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자주 추진하였으며 코살라 왕국 출신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코살라 왕국이 지배하던 도시인 바라나시를 혼인 지참금으로서 할양받기도 하였다.

아자타샤트루 (기원전 494년 ~ 기원전 460년)편집

기원전 494년 경에 데바닷타의 사주를 받은 아자타샤트루앙가에서 마가다로 귀환한 후 빔비사라를 감금하며 왕위에서 몰아낸 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는 아버지인 빔비사라와 마찬가지로 불교자이나교 등의 신흥 종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당시 마가다를 위협하던 리차비족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기원전 490년에 파탈리푸트라라는 이름의 신도시를 건설하였다. 이와 동시에 마가다 왕국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위하여 고대 인도 중에서는 최초로 투석기를 군대에 도입하였으며, 기존의 전차에 낫을 달아 낫전차라는 신무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1] 이 신무기들을 이용해 리차비밧지 등의 36개의 소국들을 합병시켜 국력을 강화한 마가다 왕국은 당시 마가다 왕국의 경쟁국이었던 코살라 왕국을 공격하였으며 결국 기원전 476년에 코살라 왕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우다야바드라 (기원전 460년 ~ 기원전 444년)편집

기원전 460년경 아자타샤트루가 사망하자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우다야바드라는 아버지인 아자타샤트루가 건설한 신도시인 파탈리푸트라가 마가다의 영토 중심지에 가까워 통치에 수월하다고 생각해 파탈리푸트라로 수도를 천도하였으며,[2] 그 후 프라드요타 왕조가 지배하는 아반티와의 전쟁을 벌이다 기원전 444년에 사망하였다.[3]

쇠퇴 (기원전 444년 ~ 기원전 413년)편집

우다야바드라 왕 사후 마가다에는 왕의 계승권을 에워싸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몇몇 계승권 주장자가 있었기 때문에 일련의 암살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다. 바라바르 구릉의 철광산이나 다르와르와 신푸르 지방의 동, 철의 광산과 상비군 덕택에 기원전 5세기에 번영의 극치에 달했던 이 왕국도 왕국 내부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졌고 결국 기원전 413년에 당시의 재상(宰相) 사이슈나가가 왕위에 오르면서 하리얀카 왕조는 막을 내렸다.

사이슈나가 왕조 (기원전 413년 ~ 기원전 345년)편집

마가다 왕국의 세번째 왕조인 사이슈나가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당시 마가다의 재상이었던 사이슈나가로써, 그가 기원전 413년에 하리얀카 왕조를 몰아내고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사이슈나가 왕조가 시작되었다. 왕위에 오른 사이슈나가는 마가다의 수도를 옛 밧지의 수도였던 바이샬리로 천도한 후 밧사아반티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기원전 395년 사이슈나가가 사망하자 사이슈나가 왕조의 2대 왕으로 즉위한 칼라쇼카는 마가다의 수도를 다시 파탈리푸트라로 천도하였으며, 그의 재위 기간 도중인 기원전 383년에 바이샬리에서 열린 제3차 결집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칼라쇼카의 사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난디바르다나는 형제들과 함께 마가다 지역을 사실상 분할 통치하였으며, 난디바르다나의 사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마하난딘 왕이 기원전 345년에 마하파드마 난다에 의해 살해되면서 사이슈나가 왕조는 막을 내렸다.

난다 왕조 (기원전 345년 ~ 기원전 321년)편집

기원전 345년에 사이슈나가 왕조가 권력다툼으로 몰락한 후 마하파드마 난다가 왕위에 오르면서 마가다 왕국의 네번째 왕조인 난다 왕조가 개창되었는데, 푸라나에 따르면 난다 왕조의 시조인 마하파드마는 마하난딘이라는 사람과 수드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1세기 그리스 출신의 로마의 역사가로 《알렉산드로스 전기》를 저술한 쿠르티오스 루포스의 기록에서는 이발사와 왕비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 두 기록 모두 난다 왕조의 시조인 마하파드마 난다가 하위 카스트 출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푸라나 문헌에 따르면 사이슈나가 왕조를 몰아내고 마가다 왕국의 권력을 장악한 마하파드마는 「모든 크샤트리아를 절멸시키고 유일한 왕으로써 통일할 것이다.」라고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십육대국 국가들을 전부 마가다 왕국에 합병시키겠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그리스인의 기록에서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대 인도는 파탈리푸트라 한 사람의 왕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난다 왕조 당시 마가다 왕국북인도 지역에 위치한 십육대국 국가들을 대부분 정복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이며, 후세의 칼링가 왕국의 전승이나 쿤타라 지방(데칸 고원 서부)의 전승 및 비문에 난다 왕의 지배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지역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즈음 펀자브 지역의 파우라바 왕국알렉산드로스 3세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파우라바의 왕 포루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난다 왕조가 보병 20만 명, 기병 2만 명, 전차 2000대, 전투 코끼리 3000마리 이상의 군대를 지닌다고 말하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인도 침공을 중단하고 철수한 것으로 보아 난다 왕조 시대의 마가다 왕국은 당시 세계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던 국가로 보이지만,[4] 기원전 321년경 사상가 카우틸랴의 보좌를 얻어 인도 북서부에서 거병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 의해 수도인 파탈리푸트라가 함락되면서 마가다 왕국은 멸망하였으며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당시 난다 왕조의 지배하에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던 마가다 왕국을 어떻게 멸망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오늘날에도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사회편집

행정편집

마가다 왕국은 기본적으로는 왕정 체제였지만 공화정 특성 또한 일부 지니고 있었다. 마가다 왕국 치하의 마을은 그라마카스라는 마을 이장과 판차야트를 통하여 마을을 다스렸으며, 마가다 왕국의 행정부는 행정적, 사법적, 군사적 기능으로 나누어졌다.

문화편집

동시대에 존재하던 다른 십육대국 국가들이 베다 경전과 스라우타 의례를 중시하는 브라만교를 숭배하는 베다 문명에 속했던 것과 달리, 마가다와 앙가베다의 권위를 부정하고 스라우타 의례를 반대하는 슈라마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는데,[5] 이 때문에 마가다 왕국은 베다 시대의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다른 십육대국 국가들과는 이질적인 문화권으로 취급받았으며,[6] 기원전 6세기경 마가다의 빔비사라 왕은 슈라마나 사상이 발전한 형태의 종교들인 불교자이나교를 후원하기도 하였다.

각주편집

  1. Roy, Kaushik, 1971-. Military manpower, armies and warfare in South Asia. London. ISBN 978-1-315-65517-8. OCLC 1082214357.
  2. Natubhai Shah 2004, 42쪽.
  3. Kailash Chand Jain 1972, 102쪽.
  4. Irfan Habib; Vivekanand Jha (2004). 《Mauryan India》. A People's History of India. Aligarh Historians Society / Tulika Books. ISBN 978-81-85229-92-8. 
  5. http://www.ahandfulofleaves.org/documents/Greater%20Magadha%20Studies%20in%20the%20Culture%20of%20Early%20India_Bronkhorst.pdf
  6. Witzel, Michael (1997). "Macrocosm, Mesocosm, and Microcosm: The Persistent Nature of 'Hindu' Beliefs and Symbolic Forms". International Journal of Hindu Studies. 1 (3): 501–539. JSTOR 20106493.

참고 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