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 감정

한국의 영향에 대한 나라별 평가
(2014년 BBC World Service 조사 결과) [1]
나라 긍정적 부정적 중립 편차
독일의 기 독일
24%
59%
17 -35
스페인의 기 스페인
21%
50%
29 -29
일본의 기 일본
13%
37%
50 -24
멕시코의 기 멕시코
22%
41%
37 -19
칠레의 기 칠레
21%
40%
39 -19
이스라엘의 기 이스라엘
11%
25%
64 -14
브라질의 기 브라질
32%
41%
27 -9
프랑스의 기 프랑스
42%
46%
12 -4
페루의 기 페루
16%
51%
33 -35
영국의 기 영국
45%
45%
10 0
인도의 기 인도
30%
23%
47 7
케냐의 기 케냐
36%
28%
36 8
중국의 기 중국
40%
32%
28 8
파키스탄의 기 파키스탄
31%
23%
46 8
캐나다의 기 캐나다
48%
39%
13 9
나이지리아의 기 나이지리아
46%
36%
18 10
러시아의 기 러시아
35%
23%
42 12
터키의 기 터키
38%
22%
40 18
인도네시아의 기 인도네시아
48%
27%
25 21
미국의 기 미국
55%
34%
11 21
오스트레일리아의 기 오스트레일리아
62%
27%
11 35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68%
26%
6 42
가나의 기 가나
63%
16%
21 47

반한 감정(反韓感情)이란 한국 문화·한국인 등을 싫어하는 감정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많은 충돌이 있었던 주변국(일본중국 등)과의 사이의 전통적인 감정적 마찰과 더불어 근대 이후 서구의 여러 나라와 교류를 시작하면서 생긴 문화적 편견이나 오해 때문에 발생한 한국을 싫어하는 감정이다. 근래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국내에 유입된 개발도상국 국가 출신의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 등 복합적인 이유에서 온 것도 있으나 와패니즈나 일본의 혐한세력들이 날조해 외국에 퍼뜨려서 오해를 사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위 통계표는 대한민국만을 통계하는 자료이다.

용어편집

일본에서는 혐한(嫌韓)이라는 용어가 반한 감정의 대표적인 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 외에도 반한(反韓), 염한(厭韓), 멸한(蔑韓), 증한(憎韓), 이한(離韓), 정한(征韓), 망한(亡韓)등 다양한 용어가 반한 감정의 맥락에서 쓰이고 있다.[출처 필요] 중국에서는 반한정서(反韓情緒) 또는 반한주의(反韓主義) 등의 말을 쓰고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 설명에 따르면, 혐한이란 용어는 적극적인 반대보다는 소극적인 혐오감을 표현하는 말이며, 이 자체가 한국이란 나라는 진지하게 반대할 만큼, 대단한 나라가 아니라는 멸시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1]

동아시아편집

일본에서의 반한 감정편집

일본의 반한감정은 소위 혐한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내용과 강도에서 여타 국가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하다.

전근대 일본편집

일본에서의 굴절된 한반도 인식은 고대 사서인 일본서기의 기술로부터 시작된다. 분립했던 여러 소국들을 통합하여 성립된 야마토가 편찬한 일본서기는 왕권의 강화 및 안정화의 목적으로 천황가의 초기가계를 조작하고 대외적인 위신을 높이기 위해 당시 한반도 국가들과 야마토와의 관계를 매우 왜곡되게 기술하였다.

그 때문에, 야마토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신라에 대해 신공왕후의 삼한 정벌 전설을 비롯 백제·가야 심지어 고구려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국가들은 시종일관 야마토에 조공을 바치거나, 원조를 요청해 오는 종속국으로 그려 놓았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야마토가 백제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를 보냈으나, 백강구 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게 대패하였다. 이후에 신라와 일본 양국은 사신을 주고 받는 등 외교적 관계를 회복하였으나, 일본은 신라를 자주 업신어기려 들었다. 특히 속일본기의 고마로 쟁장 사건 [2]과 같은 역사 조작을 통하여 반신라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였는데, 중국 혹은 신라측의 사서에서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일본 내 반한 감정은 다시 점화되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시민 등의 조선 장수에게 당한 패배에 대한 반발 심리를 기반으로 만든 가부키 공연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1609년 조선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회복한 이후, 12차례의 조선통신사에도 막부의 요청에 따라 파견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부터 일본 내 지식인을 중심으로 국수적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고, 곧 조선통신사 초청 반대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통신사 요청에 따른 비용 문제가 대두되어 1810년을 마지막으로 일본은 통신사를 요청하지 않게 되었다.

근대 일본편집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자, 후쿠자와 유키치 등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사상에 따라 그때까지 대등한 이웃나라였던 조선과 중국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은 서양인에 대한 열등감이 변질된 우월의식과 멸시감으로 변질되었다. 메이지 신정부의 국서에 대해 전통적 의례절차를 들어 이를 거부했던 조선에 대해 일찍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 정한론을 제기한 바 있으나, 정부의 주류는 일본의 국력이 아직 모자라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일전쟁러일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전통적 패권국인 중국과 서구 강국인 러시아를 물리쳤다는 자부심에 넘친 일본은 기존의 서양 모방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야마토 민족의 우수함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등한 조선인과 중국인 상을 조작하여 부각하는데 열심이었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대한제국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통치가 실시되었다. 일본인은 한국의 문화를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근대화를 명분으로 탄압을 자행하였다. 3·1 운동에서 한국인의 강한 저항에 부딪힌 일본은 문화 통치를 실시하여 탄압 대신 왜곡된 한국관을 심으려 하였다. 그리고 이를 내세워 한국인의 정체성, 역사, 문화를 철저히 없애고자 하였다.

일본인의 재일 조선인에 대한 반한 감정은 간토 대지진 이후 일어난 관동 대학살 사건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당시 재난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일본의 내각은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결과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조작해 반한 감정을 들끓게 하여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하였다. 이 사건으로 6,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학살되었다.

현대 일본편집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에 대한 비판은 진보진영 주도하의 군사독재에 대한 비판에서, 우파 진영에 의한 민족주의적 비판으로 바뀌어다

이 시기에 등장한 자유주의 사관(自由主義史観)은 그때까지 일본내에서 주류적인 역사관이었던 “한국은 일본 군국주의의 희생자이며, 피해자”라고 보는 풍조에 대한 반발을 보였으며, 한국에 대한 강한 반감·경멸심을 가지는 일본인을 증가시키는 영향을 주었다. 동시에 한국인의 반일 감정도 동반 상승시키는 효과도 가져다 주었다. 즉 혐한과 반일이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된 것이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본인 납치 사건을 통하여 많은 일본인들은 한일관계에서 한민족은 피해자이고, 일본인은 가해자라는 종래의 인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한민족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납치 피해자 중 요코타 메구미가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되어 일본인들의 공분을 자아내게 했고, 이후 종래의 수세적인 입장에서의 혐한에서 공격적인 혐한으로 전환되었다.

최근에는 오랫동안 진전이 없던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하여 일본내 우익 단체를 중심으로 혐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일부 우익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왜곡 문제가 대두되어 대한민국을 위시한 주변 국가들을 폄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에서 “혐한”이라고 하는 감정과 행동은 그 말과 함께 인터넷의 보급을 계기로 크게 퍼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오프라인 미디어에서는 제한적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한국인·한국 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담은 정보를 인터넷과 익명성이라는 도구와 조건을 통해 자유롭게 가공하고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 최대의 사이트인 2채널은 그런 정보들을 대량 생산·유통시키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일본인의 혐한 배설구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한류 (문화) 열풍이 일어나자 이에 반발하는 시각이 생겨났으며, 한류를 깎아내리려는 언론의 시도가 간혹 있었다. 혐한류와 같은 만화에서도 반한 감정이 드러나기도 한다. 일본의 혐한들은 유튜브에서 한국을 모욕하는 비디오를 제작해 타국에 반한 감정을 퍼뜨리거나 한국의 특정한 선수를 지목해 왜곡 동영상을 퍼트리고 있다.

중화권에서의 반한 감정편집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반한 감정은 대체적으로 1990년대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 이후에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주로 스포츠 등 사회/문화 분야의 이해 갈등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공한증은 반한 감정의 상징이 되었다. 200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2002년 FIFA 월드컵 4강에 진출하자 중화인민공화국은 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에도 관영 CCTV에서 공개적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4강은 심판의 도움이라고 폄훼하였으며, 이에 따른 반한감정이 잠시 득세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에서 개최된 2008년 하계 올림픽의 개막 행사는 언론에게만 비공식적으로 공개하였는데, 대한민국의 SBS(서울방송)가 이를 뉴스에 미리 보도하면서 반한 감정이 들끓기도 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이 강릉 단오제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것을 계기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를 자문화에 대한 침탈로 간주하면서 반한(反韓)감정이 들끓게 되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에서는 강릉 단오제 자체만을 등재 하였을 뿐 단오 자체를 한국의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시킨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후에도 중화권내 언론사의 보도와 근거없는 한국 원조론이 국내 여론에 널리 퍼지면서 반한 감정이 매우 격화되었다.

역사인식 차이에 있어서도 중국인의 반한론이 작용한다. 중국은 한국의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심한 반발에 중국은 중국인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었고 이는 중국인들이 “한국은 역사왜곡을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중국인의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인한 반한 감정이 고조되기도 한다.

2015년부터 대두된 한국의 미국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에서 지금까지 가장 큰 반한 감정이 표출되었다. 한국에 미군 사드배치가 결정되자 2017년 중국은 일명 “사드보복”이라 불리는 경제적 압박을 한국에 가하게 된다.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무차별 탄압, 한국 제품들 훼손 등을 하였고, 한국인들에 대한 혐한 정서가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이로 인해 한국의 가장 큰 수출국이자 수입국인 중국의 경제적 압박으로 한국 경제는 2017년 타격을 입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반한 정서를 심는 영상을 선전하는 등 매우 심한 혐한 행위를 보여주었다. 특히, 중국 고위 외교관은 “미국만 아니었음 한국은 진작에 손봤을 나라”라고 발언하여 한국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현재는 이러한 사드보복이 완화되었긴 하지만, 아직도 중국인들의 혐한 정서는 나아졌다고 보기 힘들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쇼트트랙 경기 중 중국 선수들이 줄줄이 실격을 당하고 한국 선수들이 메달들을 수여받았다. 이 사건으로 수 많은 중국인들이 SNS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보자”는 보복식의 글들을 퍼트렸고, 네이버 등 한국 포탈사이트에 수 많은 중국인들이 가입하여 한국 기사 댓글란에 중국어로 한국을 비판하고 멸시하는 댓글들을 달았다.

중화민국편집

중화민국의 반한 감정은 양국의 단교 이전인 1960년대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중화민국은 한국을 경제적인 라이벌로 생각해왔는데, 전반적인 한국의 국력이 중화민국을 능가한 이후, 이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하여 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후 중국 국민당 성향 정치인들이 지지를 위해서 반한감정을 악용해욌다.

또한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중화민국태권도 선수인 양수쥔이 한국계 필리핀인 심판에 의해 실격패를 당하자 이는 곧 한국의 책임이라며 반한 시위가 발생하였다. 마잉주(馬英九) 총통까지 나서서 아시안게임 주최 측에 대해 비난을 했다. 이를 통해 반한 감정이 매우 격화되기도 하였다.[3]

동남아시아편집

필리핀편집

2020년 9월 경 SNS와 같은 매체에서 한국에 반대하는 태그인 CancelKorea 운동이 전개되었다. 원인은 한 인터넷 스타의 문신 때문이었는데, 욱일기와 비슷한 형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은 해당 인터넷 스타에게 욕설과 필리핀에 대한 모욕을 서슴없이 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필리핀 뿐만 아니라, 다른 국적의 사람들도 한국에 대해 안좋았던 일을 공유하는 경우가 있어 반한 감정이 극대화되기도 했다.

서구권편집

미국에서의 반한 감정편집

미국내의 반한 감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 개발 논란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 1월 29일, 미국의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이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인종 차별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에서 미국 흑인들이 한인을 습격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아시아계 이민자 중에서는 한국계 이민자가 가장 임금을 적게 받으며 빈곤한 계층으로 보고되었다.

대한민국에 대한 반한 감정은 극히 드문 편에 속한다. 다만 K-POP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대한민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기타 지역편집

서양의 일부 네티즌들은 한국인들의 행동 때문에 반한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생긴다. 욱일기에 대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정보 공유를 했지만 분명히 욱일기가 아님에도 과격한 언사로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어, 꽃게와 같은 생물을 보면서 소스라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실제로 햄버거의 포장지에 그려진 꽃게 그림을 보고 욱일기를 형상화했다는 비난을 하는 등의 도를 넘은 모습을 보인 사례가 있다.[4][5]

대한민국편집

대한민국 내에서도 반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헬조선 이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사용된 적이 있는데,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대체적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다른 나라들은 한국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기원한다. 간혹 다른 한국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보며, 한국 사회가 희망이 없다고 단정짓는 경우도 존재한다.

반한감정이 생기는 이유편집

반한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이유를 간단히 정리했다.

  1. 한국에서 흑인과 동남아시아인들을 다소 차별하는 경우로 인해 반한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2. 역사적 또는 정치적인 이유로 반한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3. 백인 우월주의에 인한 반한감정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경우는 오늘날 극히 드물다.
  4. 한국에서 백인을 미의 기준으로 보는 문화로 인한 반한감정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5. 한국이 난민 또는 이민자를 잘 받지 않는 것으로 인한 반한 감정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6. 한국인이 동남아시아권 출신 불법 체류자에게 가혹하게 일을 시키거나, 급여를 횡령하는 등의 횡포로 인한 반한 감정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동남아에서는 한국인들이 동남아시아 출신을 무시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7. 외국인의 출신 국가를 중요시 하고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지는 대우로 인해 반한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외국인의 출신 국가가 미국이나 OECD국가 아니라면 차별대우를 하는 경우 흔하게 있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정말 많다.
  8. 자신이 만난 외국인은 한국어를 할줄 모를거라는 생각때문에 생기는 반한 감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한국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영어로 대화할려고 하는 것이다.이때문에 생기는 반한감정은 적지만 그렇다고 무시할수 없다.
  9. 같은 황인이고 주변국가인 중국, 베트남, 일본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심하다. 인터넷에서 비하단어인 짱깨, 쪽발이, 베트콩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 이로 인해 중국, 베트남, 일본에서 혐한이 나타나게 된다.
  10. 백인이어도 라틴아메리카아랍인일경우 무시하거나 멸시하고 이슬람교 차별로 반한 감정이 나타나게 된다.
  11. 사소한 오해 때문에 반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타 인종에 대해 교류가 적어 피부색이 다르거나 생김새가 다르면 호기심에 쳐다볼 뿐이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12. 일부 한국인들의 만행 때문에 반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타국의 게임 서버에 들어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소재를 꺼내들기도 한다. 해외의 여러 관광지에서는 낙서하지 말라는 경고문에 한국어를 적어놓기도 한다. 공공 레스토랑과 같은 곳에서 향이 강한 한국 전통음식들을 가지고 와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존재하며 심한 경우, 식당에서는 한국인은 받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하게 된다.

반한 감정에서 비롯된 멸칭편집

중국편집

  • 가오리방쯔 (高丽棒子) - 한국인에 대한 비칭이다.
  • 얼구이쯔 (二鬼子) - 두 번째 쪽발이라는 뜻으로 일제와 함께 중국을 침략한 것에서 유래했다.
  • 한방쯔, 한개 (韩棒子,韩狗) - 대한민국에 대한 비칭이다.

일본편집

  • (チョン)
  • 조센징 (쵸센진) (朝鮮人) - 의미 자체로 비하의 명칭은 아니나 의도를 가지고 비칭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도진 (土人) - 토인, 토착민, 미개인이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조선)의 후진성을 비꼬는 욕설이다.
  • 도쿠아진 (特亞人) - 한국인과 중국인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욕설이다.

대한민국편집

  • 헬조선 -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 및 문헌편집

  1. 日本 네티즌 世界에 나타난 對韓觀 硏究 세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일본어교육전공 교육학석사학위논문 정용목 2006
  2. 고마려 쟁장 사건이라고도 한다. [20일 부사 대반숙녜고마려가 당나라로부터 도착하였다. 고마려가 아뢰기를 “대당 천보 12년(753) 계사 정월 초하루 계묘에 백관과 여러 번국이 신년을 축하하였는데 천자는 봉래궁 함원전에서 조하를 받았습니다. 이 날 우리는 서반의 제2 토번 밑에 있었고 신라 사신은 동반의 제1 대식국 위에 있었습니다. 고마려가 따지기를 ‘옛부터 지금까지 신라가 대일본국에 조공한 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동반의 위에 있고 우리는 오히려 그 밑에 있으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장군 오희실이 고마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신라 사신을 서반 제2 토번 밑에 두고 일본 사신을 동반 제1 대식국 위에 서게 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속일본기 권19, 효겸천황 천평승보 6년(754)] 정월
  3. "너네 잘못이야" 태권도 반한감정, 우리 국민들 '뿔났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햄버거 포장도 '욱일기 딱지'…도 넘는 반일정서 - 한국경제 신문
  5. 버거킹, '게' 모양 디자인 햄버거 포장…일본 제국주의 '전범기' 논란 - 데일리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