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굴 카미시 카툰

오굴 카미시 카툰(몽골어: ᠥᠭᠦ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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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γul Qaimiš Khatun, 한국 한자斡兀立 海迷失 可敦 알올립 해미실 가돈: ?-1251년)은 몽골 제국의 황후이자, 섭정으로, 귀위크 칸대카툰(제1황후)이며, 몽골 제국의 네 번째 대카툰이다. 남편이 1248년 죽자 3년간 카간직을 대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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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굴 카미시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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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몽골 대카툰
재위 1246년–1251년
전임 퇴레게네 카툰
후임 쿠툭타이 카툰
몽골 제국의 섭정
재위 1246년–1251년
전임 귀위크 칸
후임 몽케 칸
이름
오굴 카미시 (ᠥᠭᠦᠯ
ᠺᠠᠢᠮᠢᠱ
, 한국 한자斡兀立 海迷失 알올립 해미실)
시호 흠숙황후 (欽淑皇后)
신상정보
출생일 ??
사망일 1251년
왕조 몽골 제국
가문 메르키트부 오굴씨
배우자 귀위크 칸
자녀 코자, 나쿠
종교 텡그리

메르키트부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오이라트부 출신이라고도 한다.[1] 일설에는 쿠드카 베키의 딸이라는 설이 있다. 자매로 비슷한 이름의, 몽케 칸의 첩 오굴 투이미시 카툰(禿忒迷)과 혼동되기도 한다.

생애편집

오이라트부 출신 쿠투카 베키의 딸이다. 1216년-1219년 오굴씨가 칭기스 칸에게 반역했다가 진압당한 뒤 약탈혼 전통에 따라 칭기스 칸의 손자 귀위크의 처로 주어졌다.

귀위크의 정비로, 메르키트 족 출신 메르키트 울루헤이미시(蔑儿乞 乌兀儿黑迷失)가 일찍 사망하면서, 오굴 카이미시가 귀위크의 정비가 되었다.

1246년 귀위크퇴레게네 카툰의 몽골 귀족 설득과 모략으로 칸위에 올랐다. 귀위크가 칸위에 오른지 얼마 뒤 퇴레게네 카툰은 병사했고, 병약하여 자주 전염병에 걸렸던데다 을 좋아한 귀위크는 알콜중독과 질병으로 곧 사망한다. 카미시는 귀위크와의 사이에 코자나쿠 2남을 낳았다.

남편이 투르키스탄 원정을 가던 중 쿰셍기르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248년 에밀강가에서 우구데이가오르도를 소집했다. 귀위크는 생전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죽었고, 오굴 카미쉬는 오고타이 칸이 생전 후계자로 지정했던 시레문을 내세웠다. 귀위크의 부하 친친카이, 카다크, 발라 등이 카미시 카툰의 섭정 노릇을 보좌했다. 하지만 카미시 카툰은 시어머니 퇴레게네 카툰 같은 모략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고, 주로 무당들과 시간을 보냈다. 카미시 카툰의 아들 나쿠와 코자, 그리고 우구데이의 또다른 손자 시레문은 우구데이가의 카간위 독점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차가타이 칸국예수몽케가 이것을 지지했다.

엘지기데이프랑스 국왕 루이 9세에게 무슬림에게 대항하는 동맹을 맺자고 제의한 것이 오굴 카미시 카툰의 섭정기간 중 또는 그보다 약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루이 9세는 도미니코회 수도사 앙드레 드 롱쥐모를 사절로 답장을 보냈으나 오굴 카미시 카툰은 우선 몽골의 지배에 굴복부터 하라는 답장을 보내면서 몽불동맹은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2]

1249년, 청장 칸국바투 칸이 알라카마크에서 대립쿠릴타이를 소집하고 툴루이가의 몽케를 카간으로 추대했다. 오굴 카미시 카툰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발라를 보내 시레문 또는 다른 우구데이가 출신이 카간으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귀위크 칸의 왕비 오굴 카이미쉬 카툰은 다음 칸은 시레문(失烈門)이라며 몽케를 추대하는 것은 오고타이 칸의 유지를 어기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몽케는 누가 오고타이 칸의 뜻에 어긋났느냐며 반박했다. 몽케는 이전 쿠릴타이에서 귀위크를 칸으로 세운 사람들은 누구이고, 오고타이가 후계자로 세운 시레문이 대신 다른 사람을 세운 것은 누구인가, 오고타이 칸의 유언을 뒤집은 것은 오고타이 가문 사람들이며, 이제 또 시레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칸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할 자격은 있느냐며 반박했다.

1251년 툴루이가와 금장 칸국케를렌강가에서 다시 한 번 쿠릴타이를 열고 몽케의 카간 즉위를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오굴 카미시 카툰은 자기 아들 코자를 카간으로 내세웠고 우구데이가와 차가타이가는 오굴 카미시 모자를 지지했다.

우구데이가와 툴루이가의 싸움은 툴루이가의 승리로 끝났고, 우구데이가는 숙청되었다. 코자는 화남의 대남송전선 최전방으로 유배되었고 시레문은 사형에 처해졌다. 오굴 카미시 카툰과 시레문의 모친 카다카치 카툰은 체포되었다. 오굴 카미시 카툰은 벌거벗겨진 채 소르칵타니 베키 등의 앞에서 고문을 받았고,[4] 이내 살해되었다. 죄명은 몽케 칸 암살 음모 혐의였다. 그 시체는 펠트에 둘둘 말아서 강에 던져졌다.[5] 몽케 칸이 그녀의 사형을 직접 집행했다는 설이 있다.

몽케는 귀위크의 적자인 그녀의 아들 호자, 나쿠를 죽음은 면하게 했으나 변방으로 추방하였다. 후에 쿠빌라이 칸은 태묘를 건립하면서 그녀의 시호흠숙황후(欽淑皇后)라 하였다.

참고 자료편집

  1. René Grousset The Empire of the Steppes, p.272
  2. David Morgan The Mongols, p.159
  3. Rashīd al-Dīn Ṭabīb, Wheeler McIntosh Thackston Rashiduddin Fazlullah's Jamiʻuʼt-tawarikh, p.408
  4. Rashīd al-Dīn Ṭabīb, Wheeler McIntosh Thackston Rashiduddin Fazlullah's Jamiʻuʼt-tawarikh, p.500
  5. James D. Ryan, "Mongol Khatuns" Trade, Travel, and Exploration in the Middle Ages: an Encyclopedia, ed. John Block Frieman and Kristen Mossler Figg (Garland, 2000), p. 407.
  • Jack Weatherford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 Queens: How the Daughters of Genghis Khan Rescued His Empire's Crown 2010
전임
귀위크 칸
몽골 제국의 섭정
1246년 ~ 1248년
후임
몽케 칸
전임
퇴레게네 카툰
몽골 제국 황후
1246년 ~ 1251년
후임
쿠툭타이 카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