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타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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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긴 차가타이(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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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한자孛兒只斤 察合台 패아지근 찰합태, 1178년/1183년 12월 22일 ~ 1242년 7월 1일)는 몽골 제국의 칸으로, 몽골 제국의 초대 황제 태조 ]징기스칸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칭기즈칸으로부터 몽골의 법령 야식의 수호자로 임명되었다. 칭기즈칸으로부터 위구르 지방에서 서쪽으로 부하라사마르칸드에 이르는 옛 카라키타이 제국의 초원, 즉 일리, 이식쿨 호, 추 강 상류, 그리고 탈라스 지역을 답례로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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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타이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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Цагадай
Chagatai Khan.JPG
지위
차가타이 칸국
재위 1226년-1242년
전임 칭기즈 칸
후임 카라훌레구
이름
보르지긴 차가타이(몽골어: ᠪᠣᠷᠵᠢᠭᠢ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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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한자孛兒只斤 察合台 패아지근 찰합태)
묘호 성종(聖宗)
시호 충무황제(忠武皇帝)
신상정보
출생일 1183년 12월 22일
사망일 1242년 7월 1일
왕조 차가타이조
가문 보르지긴
부친 보르지긴 테무친
모친 보르테 우진 카툰
배우자 예술룬 카툰
토간 카툰
세빈치 카툰
자녀 보르지긴 무투칸
보르지긴 바이다르
보르지긴 예수몽케
기타 친인척 오고타이 칸(동생), 툴루이 칸(동생)
종교 텡그리교

차가타이는 주치의 출신 성분을 수시로 문제삼았고, 그와 갈등하였으며, 이는 후손 대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칭기즈 칸은 군사적 능력이 뛰어난 그 대신 툴루이오고타이 사이에서 후계자를 결정하게 되었다.

생애편집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차가타이 한국”의 시조이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유목생활을 계속했으며, 이로 인해 칭기즈 칸으로부터 “야삭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는 칭기즈 칸의 아들이 확실하였다. 후일 원나라에서 추존한 묘호는 성종(聖宗)이고, 시호충무황제(忠武皇帝)이다. 형 주치와 달리 칭기즈 칸의 아들임이 분명했으며, 형 주치의 혈통을 문제삼아 주치와 여러 번 다투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주치를 형제로 인정하지 않아, 친척들에게 다소 강하고 특이하고 기질이 강한 인물로 취급당했다. 그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냈다. 1219년부터 그는 주치의 계승권에 노골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겨울에는 일리 강 근처와 알말리크 근처에서 지냈고, 여름에는 쿠야쉬(Quyash)에서 지냈다. 두 곳 모두 일리 계곡에 있었고, 쿠아쉬는 오늘날 쿨자에서 멀지 않은 알말릭 부근이었다. 그는 자신의 형제들과는 달리 정착하지 않았으며, 죽는 순간까지 유목생활을 하였다.

1211년 차가타이는 오고타이와 함께 금나라 공격에 가담하여 여러 도시를 공략하였고, 1213년 산시하이난을 점령하고 양구를 공략하였다. 나중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호라즘 제국 정복에 동참하였다. 1218년 오타카르, 1220년 사마르칸트 정벌에 참여했다. 1221년 3월~4월 우츨르크를 점령하였다. 우츨르크 원정에 주치는 협력할수 없었으므로 주치의 입지는 더욱 약화되었다. 그는 주치의 혈통을 문제삼아, 주치와 수시로 분쟁하였다. 칭기즈 칸오고타이툴루이 사이에서 후계자를 고민하였고, 차가타이는 오고타이를 지지하였다. 오고타이가 과음을 하자 그는 오고타이를 찾아 지나친 음주를 문제삼기도 했다.

그의 이름에서 차가타이 한국이 생겨났으며, 그의 나라는 몽골투르크스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칭기즈 칸의 아들임이 분명했던 그는 형 주치킵차크 칸국의 상속권에 이의를 제기하며 주치의 혈통을 계속 문제삼았고, 이로 인해 주치와 여러 번 다투었다. 차가타이는 차가타이 한국을 1227년부터 1242년까지 통치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칭기즈 칸은 그를 “야삭의 수호자”라고 불렀다. 그는 야삭을 평생동안 준수하였고, 주위 사람들도 야삭을 준수하여 평화롭게 지내라고 했다.

그는 영토 안에 트란스옥시아나가 존재하였지만, 대칸 오고타이마흐무드 얄라바치에게 통치를 위임하여 그 지역에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였다. 마흐무드 얄라비치와 그의 아들 마스우드 얄라바치는 차가타이 한국의 문명화된 도시들을 대칸의 이름으로 다스렸다.

그는 오고타이의 즉위식에 참석하였으며, 1229년 9월 13일 오고타이의 즉위를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로서 큰아들 무투겐의 아들인 카라 훌레구를 지명하였다. 그러나 카라 훌레구는 4년간만 통치할 수 있었고, 대칸 귀위크 칸이수 뭉케로 차가다이 칸국을 다스리게 하였다. 다시 몽케가 대칸이 되자 카라 훌레구가 다시 칸에 임명되었다. 이와 같이 차카다이의 사후에 차가다이 한국은 자주적이지 못하였고, 카라코룸 조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차가타이는 몽골의 장수, 부족장, 정복지의 장수들로부터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차가타이가 폭력적인 사람 이었기 때문에, 그는 대규모 다민족 국가를 이끌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평하였다. 아들 무투겐이 1221년 호라즘 정벌 중 전사하고 다른 아들 벨게치 역시 1222년 사망했다. 첩에게서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의 뒤는 장남 무투겐의 아들들 중 막내 아들인 카라 훌레구가 계승했다.

가족관계편집

 
 
 
 
 
 
 
 
 
 
 
 
 
 
 
 
 
 
16. 보르지긴 카불
카불 칸
 
 
 
 
 
 
 
8. 보르지긴 바르탄
바가투르
 
 
 
 
 
 
 
 
 
 
 
4. 보르지긴 예수게이
바가투르
 
 
 
 
 
 
 
 
 
 
 
 
 
 
2. 보르지긴 테무친
칭기즈 카간
 
 
 
 
 
 
 
 
 
 
 
 
 
 
 
 
 
5. 올코노드 호엘룬
 
 
 
 
 
 
 
 
 
 
 
 
 
 
1. 보르지긴 차가타이 칸
 
 
 
 
 
 
 
 
 
 
 
 
 
 
 
 
 
 
 
 
6. 온기라트 데이세첸
 
 
 
 
 
 
 
 
 
 
 
 
 
 
3. 온기라트 보르테
우진 카툰
 
 
 
 
 
 
 
 
 
 
 
 
 
 
 
 
 
7. 초탄
 
 
 
 
 
 
 
 
 
 
 
 
 

참고서적편집

  •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크루쎄 저, 사계절[쪽 번호 필요]
전임
칭기즈 칸
(사실상)
제1대 차가타이 한국의 칸
1227년 ~ 1242년
후임
손자 카라 훌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