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장선(尹璋善, 다른 이름은 워싱턴 윤(Washington Yoon), 1920년 1월 27일 ~ 2004년 3월 25일)은 대한민국공무원, 외교관이다. 외무부 서기관, 주일대표부 서기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와 총영사를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좌옹윤치호기념사업회의 일을 맡아보았다. 좌옹 윤치호의 아들이고, 정치인 겸 사회사업가 오당 윤영선의 이복 동생이며, 피아니스트 윤기선의 친형이다.

윤장선
尹璋善
Washington Yoon
출생1920년 1월 27일(1920-01-27)
일제강점기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개성군 송도면 고려정
사망2004년 3월 25일(2004-03-25)(84세)
미국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개신교병원
성별남성 위키데이터에서 편집하기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국적
미국 미국 영구거주권
본관해평
학력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직업외교관, 공무원, 기업가
경력중앙무역주식회사 이사장
부모윤치호(부), 백매려(모)
형제윤길용(이복 숙부)
윤치왕(이복 숙부)
윤치창(이복 숙부)
윤영선(이복 형)
윤봉성(이복 형)
윤광선(이복 형)
윤봉희(이복 누나)
윤용희(이복 누나)
윤문희(동복 누나)
정광현(동복 자형)
윤무희(동복 누나)
윤은희(동복 누나)
윤명희(동복 누나)
윤기선(동복 남동생)
윤봉희(동복 누이동생)
윤영희(동복 누이동생)
배우자기세선
자녀윤원구(아들), 윤인경(딸), 윤효진(딸)
종교개신교
의원 선수
정당무소속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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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경기도 개성부 고려정에서 좌옹 윤치호와 그의 부인 백매려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치인 윤영선은 이복 형이고, 피아니스트 윤기선은 그의 친동생이었다. 경성제1고등보통학교(지금의 서울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해방 후 1948년 8월 15일 외무부의 관료에 임용되고, 외무부 서기관을 역임했다. 이후 6.25 전쟁 무렵에는 주일대표부 서기관이 되었으며, 1952년 주미한국대사관 상항(桑港,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副領事)가 되었다. 그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총영사를 역임하였다.

6.25 전쟁이 발생하자 형 윤영선은 아버지 윤치호가 쓴 윤치호 일기 중 1916년 ~ 1945년치를 윤장선에게 택배로 보냈으며 이 중 1944년, 1945년분 일기는 배송 도중 유실되었다. 윤장선은 미국의 집에 아버지 윤치호의 일기를 보관하고 있다가 2000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윤치호 일기 후반부를 국사편찬위원회에 기증하였다.

1974년 1월에는 무역회사인 주식회사 중앙무역의 이사가 되었고[1], 이후 미국에 건너가 생활하였다. 1984년에는 재미한인올림픽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2]

1998년 4월 3일 좌옹윤치호기념사업회에 이사로 참여하고, 윤치호기념사업회 부회장에 선출되었다. 2004년 3월 25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개신교 병원(Holliwood Presbyterian Hospital)에서 사망하였다.[3] 부인 기세순은 아나운서를 역임하였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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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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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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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일경제 1974년 1월 24일자 4면, 경제면
  2. 〈초읽기 올림픽 개막 앞으로 4일, 교민들 "하나로 뭉칠 좋은 기회"〉, 동아일보 1984년 7월 25일자 3면, 사회면
  3. [부음] 張善暎 예비역육군중령 별세 外 조선일보
  4. 윤치호, 《윤치호 일기:1916-1943》 (윤치호 지음, 김상태 역, 역사비평사, 2001) 635페이지
  5. 윤치호, 《윤치호 일기:1916-1943》 (윤치호 지음, 김상태 역, 역사비평사, 2001) 636페이지
  6. 오현주, 《성공하나 아픔은 아홉》 (출판사 금토, 1996) 118페이지
  7. 미국 캘리포니아 LA에서 사망
  8. [부고] 金世容 전 안성상공회의소 회장 별세 外[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중앙일보 2004.03.29
  9. 서울대학교 음대 제1회 졸업생
  10. 송경록, 《북한 향토사학자가 쓴 개성이야기》 (도서출판 푸른숲, 2000) 276페이지
  11. “1등 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012년 1월 1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12월 1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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