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역사

이집트의 역사는 기나긴 역사를 자랑한다.

홍적세(洪積世)에 서방(西方)의 대지(臺地) 위에서 살던 사람들이 충적세(沖積世)가 되어 건조화가 시작되자 나일 하곡에 내려와서 살게 되었다. 토지생산성이 높은 나일의 하곡 지방에서 인류 최고의 문명이 개화하고, 유사시대에 들어와서는 30개의 왕조가 흥망했다.기원전 321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이 있었고, 그후에는 그리스인, 러시아인의 침입이 있었다. 7세기에는 아랍(Arab)인이 침입하는 등 외침(外侵)의 역사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아랍인의 오랜 지배로 이집트는 아랍화(化)되어 이슬람 문화권에 끌려들어갔다. 19세기말 이집트(Egypt)가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을 때 유럽군이 침입했다. 처음에는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군이 들어왔고, 이어 프랑스군과 대항하는 영국 세력이 들어와 터키로부터 독립한 마호메트 알리 왕조를 성립시켰다.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됨으로써 이집트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이 더해져 1914년에는 영국이 이집트를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1차대전중 영국은 형식만의 독립을 인정했으나 실질적인 점령상태는 계속되었다.2차대전 후의 팔레스타인 전쟁의 패인은 왕과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국민에게 절감시켜, 끝내 1975년 7월 23일의 자유장교단(自由將校團)의 쿠데타를 유발시켰다. 이것이 이집트 혁명의 시초였다.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 정권이 발족하면서 나세르(Nasser)가 대통령에 취임했다.나세르 정권하에서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 영국군의 철수, 토지개혁 등이 단행되었다. 1958년 시리아와의 합병으로 나세르 아랍권 통일 구상의 첫단계인 통일아랍공화국이 발족했으나 3년 반 후 시리아는 분리했다.1967년 이스라엘과의 3차 중동전에서 패해 시나이 반도와 가자 지구를 점령당했다. 1970년 대통령직을 승계한 사다트는 4차 중동전에서 승리한 후, 대이스라엘 정책을 수정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1982년에 사다트의 평화노선을 계승한 무라바크 정권은 시나이 반도를 반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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