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성씨)

성씨

(趙, 曺)는 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조 趙편집

조(趙)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055,567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7위이다. 본관은 문헌에 200여 본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본관은 56본이며, 이 중에서 시조와 계대를 알 수 있는 본관은 풍양(豊壤)·한양(漢陽)·양주(楊州)·임천(林川)·배천(白川)·함안(咸安)·순창(淳昌)·횡성(橫城)·평양(平壤)·김제(金堤)·직산(稷山)·옥천(玉川) 등 20본이다.

조(趙)씨는 본관별로 시조와 유래가 다르고, 분적된 본관이 없기 때문에 동원동근(同源同根)을 주장하지 않지만, 조선 현종 때까지 동성이본도 통혼을 금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1] 한편,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서로 본관이 혼동되어 기록된 경우가 더러 있었다.[2]

인구는 한양 조씨(31.2%)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다음으로 함안 조씨(26.3%), 풍양 조씨(12.6%), 배천 조씨(6.7%), 옥천 조씨(5.1%), 평양 조씨(4.2%) 순이다.

  • 직산 조씨(稷山 趙氏) 시조 조성(趙成)은 백제 개국공신으로 전한다. 2000년 인구는 3,387명이다.
  • 풍양 조씨(豊壤 趙氏) 시조 조맹(趙孟)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로 풍양현(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천마산 동굴에 은둔하여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고 한다. 시조 이후 세계를 고증할 수 없어 조지린(趙之藺), 조신혁(趙臣赫), 조보(趙寶)를 각각 1세조로 하는 3계파가 있다.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이다. 2000년 인구는 113,798명이다.
  • 함안 조씨(咸安 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고려 대장군 원윤(元尹)이다. 2015년 인구는 282,890명이다.
  • 횡성 조씨(橫城 趙氏) 시조 조익(趙翌)은 평장사(平章事) 조첨(趙瞻)의 아들로 965년(광종 9) 고려에서 처음 실시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광종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으며, 횡성군(橫城君)에 봉해졌다. 후손인 조영인(趙永仁)이 1201년 문하시중에 올랐다.[3]2000년 인구는 5,337명이다.
  • 순창 조씨(淳昌 趙氏)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 때 순창호장(淳昌戶長)을 지냈다. 그의 5세손인 조인평(趙仁平)이 1177년(명종 7)에 망이·망소이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금오위낭장(金吾衛郎將),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2000년 인구는 17,923명이다.
  • 배천 조씨(白川 趙氏) 시조 조지린(趙之遴)이 고려 목종(穆宗) 때 이부시랑 지은대사(吏部侍郞 知銀臺事)로 임명되었고, 1011년(현종 2년)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참지정사(叅知政事)에 이르렀다.[4] 2015년 인구는 75,978명이다.
  • 임천 조씨(林川 趙氏) 시조 조천혁(趙天赫)은 본명은 조수강(趙守康)이고 송 태조 조광윤의 손자인 기왕(冀王) 조유길(趙惟吉)의 다섯째 아들이라 한다. 그는 송나라에서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서두공봉관(西頭供奉官)이 되었으나, 979년 조광의(趙匡義)가 황위를 찬탈한 이후 고려로 도망쳐 와서 임천(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11,040명이다.
  • 옥천 조씨(玉川 趙氏) 시조 조장(趙璋)은 고려시대 광록대부(光祿大夫)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다. 옥천(玉川)은 전라북도 순창군(順昌)의 마한시대 지명이다. 2000년 인구는 49,847명이다.
  • 양주 조씨(楊州 趙氏)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후기에 호장(戶長)을 지내고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에 추증되었다. 2000년 인구는 23,942명이다.
  • 김제 조씨(金堤 趙氏) 시조 조연벽(趙連壁)은 고려 고종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14,509명이다.
  • 한양 조씨(漢陽 趙氏)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德源府) 용진현(龍津縣 : 현 함경남도 문천시, 원산시 일대)에 세거해 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고려 조에 조순대부 첨의중서사(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냈다. 그의 독자 조휘(趙暉)의 후손들이 쌍성총관부의 총관을 계승했다. 고려 왕족이라는 설도 있다.[5] 후손들이 조선이 개국하자 한양(漢陽)으로 이거하여 한양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2015년 한양 조씨의 영흥 조씨를 합한 인구는 332,580명이다.
  • 영흥 조씨(永興 趙氏)는 함경남도 영흥군에 세거하던 가문으로 조인재(趙麟才)의 증손 조영무(趙英茂)는 조선 개국에 공을 세우고 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에 올라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죽은 뒤 태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조영무의 아들 조서(趙叙)는 1399년(정종 1)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봉상시박사(奉常寺博士)가 되었다. 그 뒤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사간원예의(司諫院禮議)·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에 이르렀다. 시호는 안정(安靖)이다.[6] 후손이 모두 법적으로 한양 조씨이므로 인구를 알 수 없다.
  • 신창 조씨(新昌 趙氏) 시조 조영규(趙英珪)는 조선 개국공신이며 이방원을 도와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현존하지 않는 문중이다.

무리 조 曺편집

조(曺)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398,26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27위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청양·강릉·함평·가흥(嘉興)·능성(陵城)·남평·영암(靈巖)·영광·장흥(長興)·화순 등 20본이 있다.

창녕 조씨(昌寧曺氏) 시조 조계룡(曺繼龍)의 득성설화지는 경상남도 창녕군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조에 예향(禮香)이라는 여성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겨드랑이에 조(曺)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며, 그 아이에게 진평왕은 성은 조(曺), 이름은 계룡(繼龍)으로 지어주었으며, 성장하여 진평왕의 부마가 되었다고 한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