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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

성씨(姓氏)

역사편집

시조 조맹(趙孟)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이다. 그는 풍양현(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 은둔해 살았다. 당시 신라를 정벌하던 왕건은 영해(현 경상북도 영덕)지방 전투에서 신라군에 참패를 당하여 휘하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중지를 모았을 때 한결같은 대답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 도인의 지략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에 왕건이 그를 찾으니 당시 나이가 70여 세였다. 이 때부터 신라 정벌의 길에 올라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삼국통일을 이루자 태조 왕건이 맹으로 이름을 내렸다.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이르렀고,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건을 만났다는 암굴(巖窟)이 있으며 현성암(見聖庵)을 세워 그를 수호하여 온다.

풍양 조씨는 신 안동 김씨, 여흥 민씨와 함께 조선 말 세도 가문 중 하나이다. 종묘배향공신 5명, 영의정 2명(조현명, 조인영)을 배출하였다.

관련 유적으로는 상주 양진당상주 청간정이 있다.

본관편집

풍양(豐壤)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일대의 옛 지명이다. 백제고구려에 속했을 때는 골의노현(骨衣奴縣)이라 불렸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황양(荒壤)으로 고쳐 한양군(漢陽郡)의 영현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풍양으로 고쳐 양주에 속하였다. 1018년(현종 9) 포주(抱州 : 抱川)에 이속되었다. 1427년(세종 9)에 다시 양주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에 양주군으로부터 신설된 남양주군에 편입되었다. 1995년 미금시와 남양주군이 통합하여 남양주시가 되었다.

파계편집

시조 직후 세계(世系)가 실전되고 몇 세대가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손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계조(系祖)로 하는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계조로 하는 평장사공파,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조보(趙寶)를 계조로 하는 상장군공파로 총 3계 5파가 있다. 각 계(系)는 서로 촌수를 가릴 수 없어 항렬을 따로 사용한다.

  • 전직공계(殿直公系) - 조지린(趙之藺)
    • 호군공파(護軍公派) - 조사충(趙思忠)
    • 회양공파(淮陽公派) - 조신(趙愼)
    • 금주공파(錦州公派) - 조임(趙𥙛(示+任))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신혁(趙臣赫)


  •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 조보(趙寶)
    • 이 파는 관향을 강진(康津←道康)으로 삼고 세종대왕 때 문신이자 조보의 8세손인 조주(趙注)를 시조로 하였으나, 정조 때 회양공파 후손인 조홍진(趙弘鎭)이 강진 현감으로 부임하고 호적을 살펴 조보가 조맹의 후손임을 확인한 후, 예조에 통보를 하고 임금의 재가를 얻어 풍양으로 환본(還本)하였다.

인물편집


항렬자편집

전직공계(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