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최용덕 (1898년)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이자 군인, 정치가, 외교관. 대한민국의 제2대 공군참모총장.

최용덕(崔用德, 1898년 9월 19일1969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외교관이다. 아호는 창석(滄石).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제2대 공군참모총장, 1960년 6월 2일부터 1960년 8월 22일까지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본관은 경주 최씨.

최용덕
崔用德
1961년 7월 19일 당시 자유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총영사관 대사 착임한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중장 최용덕 대사
1961년 7월 19일 당시
자유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총영사관 대사 착임한
예비역 대한민국 공군 중장 최용덕 대사
前 제10대 대한민국 체신부 장관
임기 1960년 6월 2일 ~ 1960년 8월 22일
대통령 윤보선
부통령 허정
총리 허정
신상정보
출생일 1898년 9월 19일
출생지 대한제국 한성부
사망일 1969년 8월 15일(1969-08-15) (70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경주(慶州)
학력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경력 국방부 차관
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총영사관 대한민국 대사
정당 무소속
배우자 호용국(胡蓉菊, 1911.11.2.~1978.9.22.)[1]
별명 (號)는 창석(滄石)
일명(一名)은 최용덕(崔容德, 崔龍德)
종교 불교
군사 경력
1953년 당시의 최용덕 장군
1953년 당시의 최용덕 장군
군복무 중화민국 육군
중화민국 공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대한민국 대한민국 공군
복무기간 1916년 ~ 1955년
최종계급 ROK army Jungjang.svg 중장(中將)
지휘 공군참모총장
근무 공군본부

목차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이 문단의 내용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단을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각주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 토론 문서에서 나누어 주세요. (2013년 4월 30일에 문단의 출처가 요청되었습니다.)

한성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경상북도 경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황해도 해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훗날 1913년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에 건너가 1916년 바오딩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서왈보의 추천으로 중국 보정항공학교에 들어가 비행사가 되어 중국공군군관학교 교관, 수상비행대장, 공군기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22년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여 김상옥, 김시현등의 의거를 지원하였다.

1940년 중국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9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광복군 고급참모를 거쳐 1945년 광복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공건설위원회 주임, 광복군 총사령부 참모장 등으로 활약하였다.

광복 이후편집

1945년 8월 22일 만주군 출신 귀순자인 박정희 등을 받아들였다. 1946년 귀국하여 항공건설협회 회장에 추대되었으며, 김정렬, 장덕창등과 함께 공군 창설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미군정은 중국군 복무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군사교육을 받도록 요구하였으므로, 1947년 4월 조선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5월 육군소위로 임관하였으며, 7월 승진하여 육군항공부대 사령관으로 보임되다.

건국 이후편집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초대 국방부 차관에 임명되었다.

그 뒤 공군 항공기지사령관,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였다. 휴전 이후 1952년 12월 1일부터 1954년 11월 19일까지 제2대 공군참모총장, 1960년 6월 2일부터 1960년 8월 22일까지는 체신부 장관을 지냈다.

〈공군가〉의 작사자이기도 하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2]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