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토론:한국의 역사/보존2

마지막 의견: 10년 전 (윤성현님) - 주제: 정안국 문제(2)

다른 국가에 대한 추가 여부 논의

두막루의 추가는 대략적인 총의가 모아진것 같은데 더불어 아사달님이 추가한 동란국, 정안국, 후발해도 적절한지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중 동란국은 제가 두막루를 지울 때 같이 삭제하였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1일 (수) 16:10 (KST)답변

만약 이에 대한 논의나 이의가 없다면 그 이전인 두막루, 동란국, 정안국, 후발해 4국을 모두 빼는게 최선의 방법일듯 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2일 (목) 02:41 (KST)답변
틀 하위항목에 어떤 것이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 및 의견이 필요한 것이겠습니다. 고려 이후는 정치변동에 따라 하위 항목이 들어가도 문제 없겠으나, 발해의 경우 하위항목으로 정치변동을 넣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겠지요. 저는 발해의 하위항목을 넣어도 좋지 않는가 생각하고, 정안국, 후발해가 들어가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란국은, 논의가 이어져 왔던 대로 반대입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12일 (목) 13:30 (KST)답변
일단 정안국과 후발해가 들어갈 만한지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는게 좋겠군요. 두막루랑 동란국은 결론이 난 사항 같으니 말이지요. 발해의 경우에는 정치변동이라면 4대 왕 대원의의 죽음같은 것이 다인지라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들어가기에는 발해 틀이 너무 조그맣기도 하니 정치변동은 넣을 필요 없습니다. 그러려면 고구려, 백제, 신라도 물론 들어가야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2일 (목) 14:16 (KST)답변
토론과 관계는 적은 사족입니다. 중국어판 한국사-틀에는 아사달님이 수정하셨던 대로 들어가 있군요. 중국인의 편집인듯 하지만요.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12일 (목) 15:00 (KST)답변
중국인 사용자가 한국어판에 있는 틀을 보고 그대로 베낀 것 같군요. 그건 그렇더라도 논의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죄다 토론:두막루에서만 얘기가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하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2일 (목) 17:06 (KST)답변
베낀 것 아닌 것 같군요. 저 틀을 편집한 중국인이 한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상당히 깊은 듯 합니다. 밑에 따로 자세히 적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2:23 (KST)답변
베낀 것 맞습니다. 귀하가 편집한 이후에 저 뒤에 변동이 있다하여서 무슨 깊이가 어쩌고가 아닙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4 (KST)답변
한국어판 위키백과의 한국사 틀에는 나오지도 않는 대위국, 장안국, 탐라국, 환국, 배달국 등 전부 중국어 위키백과에 추가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중국인이 한국어판 틀을 베꼈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겠습니다. 단지 두막루와 정안국 등이 추가되어 있다고 하여, 한국 것을 베꼈다고 섣불리 추측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오히려 저 중국인이 저보다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깊은 듯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0:26 (KST)답변
저는 정안국이나 후발해 등도 한국사 틀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앞선 토론에서 말했던 것이지만,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적잖은 수의 후계를 자처하는 국가들이나 괴뢰국들이 성립되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발해가 건국될 무렵까지 존속되기도 했죠. 고구려의 후계국은 빼놓고 발해의 후계국은 넣는다는 건 형평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학계에서도 이러한 후계국가나 괴뢰국에 대해서 한국사 연표에 굳이 싣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0:18 (KST)답변
그건 빼지 말고, 그냥 두시죠.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2:24 (KST)답변
확실한 이유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4 (KST)답변
동의합니다. 정안국이나 후발해가 대표주자도 아니고 후계를 자처했으면 뭐하나요. 역시 틀에 들어갈만한 자격 요건 '비중'이 성립되지 않는 것을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4 (KST)답변
정안국은 2대왕 48년간 지속된 국가이고, 발해를 계승한 국가임은 역사학계에서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인데, 굳이 한국사 틀에서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것도 '비중'이 없어서 빼나요? 겨우 1대왕 18년간 지속된 태봉보다는 '비중'이 크지 않을까요? 게다가 발해 밑에 조그마하게 메모로 처리된 것까지 굳이 빼려는 것은 좀 과도한 주장인 듯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0:38 (KST)답변
정안국도 정통이라면 후발해도 정통이 되나요? 태봉은 고려의 전신입니다. 후삼국 시대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던 나라이니 정안국이랑은 다르죠. 그리고 잠시만요. 후발해는 발해의 왕자가 세웠는데 정안국은 발해의 귀족이 세운게 아닙니까? 그리고 사실 이 둘이 딱히 비중이 있던적이 있나요? 후발해는 10년밖에 없었고 정안국도 멸망후 그 유민들이 고려에서 살길 원하는 주청을 올린 것 말고는 딱히 아는 게 없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12:48 (KST)답변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한 후 발해 유민들의 부흥 운동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오래 지속된 것이 바로 정안국입니다. 정안국에 대해서 별로 알려진 게 없다고 하셨는데, 정안국 문서를 보시면 자세한 사항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정안국의 2대왕 오현명이 송나라 태종에게 표문을 보내서 양국이 힘을 합쳐 거란을 토벌하자고 약속한 글 등 중요한 사료들도 꽤 많이 남아 있습니다. 태봉이 중요한 이유는 고려의 전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같은 시기에 존재한 정안국이 중요한 이유는 발해의 후계국가이기 때문일 겁니다. 류득공이 쓴 발해고에서도 정안국이 별도의 한 chapter를 차지할만큼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발해 유민들의 저항 운동 중에서 올야국, 흥요국, 대발해(대원국) 등은 겨우 1년만에 진압되었으나, 정안국만 유독 2대왕 48년간 지속되었으니, 발해 유민들의 발해 부흥 운동 중에서 정안국이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독립운동이 있었으나 그 중 상해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가장 비중이 컸던 것처럼 수많은 발해 부흥 시도가 있었으나 그 중에서 정안국이 가장 비중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정안국은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송나라 및 고려 등과 동맹을 맺자고 외교전을 펼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거란과 1차 전쟁, 2차 전쟁을 거쳐서 멸망하기는 했지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3:54 (KST)답변
그럼 후발해는 삭제해도 상관없으신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13:57 (KST)답변
제가 무슨 역사학자도 아니고 일개 위키백과 편집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윤성현 님이 제 개인 의견을 물으신다면, 저는 남겨둬야 할 '비중'을 기준으로 순서를 매기자면, 1순위 정안국, 2순위 동란국, 3순위 후발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정안국을 마지막까지 남겨둬야 할 국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류득공발해고에도 후발해나 동란국에 대한 서술은 많지 않으나 정안국은 별도 chapter로 뺄만큼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니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4:20 (KST)답변
정안국은 애매한 경우이긴 합니다만 동란국은 일단 거란이 세운 지방정부에 불과하고 정세에 별다른 영향력이 없었으니 미스고 후발해야 왕족이 세웠긴 했지만 고작 10년밖에 버티질 못했기에 틀에 넣기는 부족한 편이지요. 일단 정안국의 존치는 좀더 논의해야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17:23 (KST)답변

군정기

한국의 군정기한국의 미군정기로 이동된 점을 확인하고 한국사 틀에서도 이에 따라 반영하려고 하는데, 본문에 정의된 내용과 제목이 달라 일단 토론:한국의 미군정기#미소군정기에 의견을 남겼습니다. 제목과 정의된 내용이 안 맞는 점도 문제고, 만약 38선 이남의 미군이 다스린 지역만을 일컫는 문서라면 38선 이북의 소련이 다스린 지역도 이 틀에 포함시켜서 정리해야하는 문제도 있어서 어떻게 처리하기가 곤란하네요. 의견있으신 분은 해당 토론에 의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사 틀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의견 주신다면 더 좋고요:) -- Min's (토론) 2012년 7월 11일 (수) 22:12 (KST)답변

영어판과 일본어판의 한국사 틀에서는 한반도 분단으로 군정기가 연결되어 있군요. --천리주단기 2012년 7월 11일 (수) 22:46 (KST)답변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한국사 틀

위에 Mr.SamA_Shun 님이 알려주셔서 중국어 위키백과 사이트에 가 보았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와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오는 한국사 틀의 차이가 상당히 많군요. 우선 가장 눈에 확 띄는게 '탐라국'이군요. 수천년간 지속되다가 한국에 흡수된 독립 왕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인의 시각에 맞게, '한사군',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 등 중국이 한국을 지배했던 것들은 빠짐없이 추가해 두었군요. 일본을 싫어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조선총독부'는 작게 표시하고 반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상당히 크게 표시했네요. 다행히 '두막루'는 중국계가 아니라 한국계 국가로 편입시켰군요. 심지어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장안국'까지 추가한 걸 보면, 한국사에 대해서 상당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편집한 것 같습니다. Shibo77 이라는 중국인이 편집한 것 같은데, 중국어 위키백과에서 2005년 10월 26일부터 지금까지도 상당히 활발하게 편집하는 사람이군요.

이 틀을 보니까 참 많은 생각이 드는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01:59 (KST)답변

묘청의 대위국, 장안국은 둘다 괴뢰 정부이기 때문에 이곳에 올릴수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5 (KST)답변
그리고 일본을 싫어한다고 조선총독부를 작게 표시하나요? 일제강점기가 이미 크게 있는데 조선총독부를 크게 쓸 일도 없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03:28 (KST)답변
저는 한국사 틀을 그릴 때 일제강점기 밑에 조선총독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같은 크기로 추가해 두었는데, 저 중국인은 일제강점기 밑에 조선총독부는 작게 표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크게 표시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으나, 추측해 보면 중국도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니 감정이 좋을리 없겠죠. 그리고 대위국, 장안국이 '괴뢰 정부'가 맞나요? 그냥 내란(반란)을 일으키고 국가를 참칭(?)했다가 진압된 경우 아닌가요? 괴뢰국이라는 용어는 동란국이나 보덕국 등에는 적당하지만, 묘청의 대위국이나 김헌창의 장안국에 붙이는 것은 옳지 않은 듯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0:32 (KST)답변
왜 괴뢰 정부가 아닐까요? 결국 묘청이야 김부식 등의 개경파에 반대해서 스스로 나라를 건국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김헌창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왕위 계승에서 물러나자 이에 대한 반감으로 나라를 일으킨 것이죠. 단어 선택은 잘못되었네요. 아무튼 둘다 들어갈만한 비중은 아닙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12:51 (KST)답변
감정 문제로 치부하시면 곤란합니다. 위 틀은 ‘한국사’ 틀이지, ‘한반도 역사’ 틀이 아닙니다. 고로, ‘한국’의 정치 체제에 맞게 편집되어야 하고, 고로, 자연스럽게 ‘임시정부’가 추가된 것이죠. 무엇보다도, 같이 크게 지정할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하면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미관상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가람 (논의) 2012년 7월 13일 (금) 12:57 (KST)답변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의문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온 한국사 틀을 보면서 많은 의문이 듭니다. 현대 중국이 진행했던 동북공정은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하여 만주 지역을 한국이 아니라 중국 역사로 포함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는데요. 두막루, 정안국, 발해뿐 아니라 고구려, 부여, 고조선까지 전부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본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사실일까요? 중국 측 자료를 꽤 찾아보았는데,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한 증거가 없군요. 오히려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중국인 스스로가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한국사 틀에 넣어두었군요. 또한 제가 중국어 위키백과에 나온 '두막루' 문서를 찾아보았는데, 두막루는 부여계 국가라고 명확히 서술되어 있더군요. 좀 혼란스럽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한국 쪽에서 좀 과도하게 부풀린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됩니다. 혹시 동북공정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있으면 의견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6:53 (KST)답변

덧붙여 말하자면, 중국 측에서는 만주 지역에 있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한국의 옛 나라들을 중국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고 한국사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오히려 한국에 있는 일부 식민사학이나 반도사관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만주 지역을 한국사에서 제외하고 중국사에 포함시키려고 하는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6:59 (KST)답변
저를 주축으로 해서 공용에서 일어나는 흔한 편집 분쟁들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가람 (논의) 2012년 7월 14일 (토) 07:27 (KST)답변

틀 내 태봉의 위치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태봉이 후고구려로 지칭되는 국가라면, 백제 하단에 후백제가 위치하듯 태봉도 고구려 하단에 위치하는게 적절하지 않을까요? --비엠미니 2012년 7월 13일 (금) 12:45 (KST)답변

궁예의 태봉이 후고구려를 자처 것은 고구려의 왕통이랑은 상관없이 그저 고구려를 잇겠다는 구실이었기 때문에 아무쪽에나 없어서도 상관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 발해의 단락이 정안국, 후발해같은 나라까지 다 포함하고 있아사 이 상태에서 옮기면 틀이 어그러지거든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3일 (금) 12:50 (KST)답변
태봉이 후고구려를 자처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고구려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나라입니다. 아시다시피 태봉을 건국한 궁예는 신라의 왕자 출신이었습니다. 고구려는 태봉이 아니라 발해에 의해 계승되어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구려 멸망 후 보장왕의 아들인 고덕무가 건국한 소고구려는 요동 지방을 근거지로 약 135년간 지속되었는데, 나중에 발해에 의해 흡수 합병되었습니다. 고구려의 영토와 백성, 문화는 태봉이 아니라 대부분 발해로 이어졌다고 봐야 합니다. 현재 한국사 틀에도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발해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발해 전성기 때의 영토가 고구려 최대 영토보다 훨씬 더 넓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사 틀에서는 오히려 더 좁게 그려져 있는 것이 조금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구려 바로 밑에 태봉이 아니라 발해를 넣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4:09 (KST)답변
고구려의 후신을 자처하는 국가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정통성적인 측면에서는 대부분 그러하지 않으므로, 특별히 추가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틀을 고치면 그만이겠지요. --가람 (논의) 2012년 7월 14일 (토) 07:26 (KST)답변

보호 해제

분쟁이 해결된듯 싶어 보호를 해제합니다. 그리고 두막루 관련 토론은 보존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ChongDae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17:16 (KST)답변

아쉽지만 어쩔 수 없군요. 다수가 진리는 아니지만, 달리 다른 분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군요. 하지만 언젠가는 두막루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져서 다시 한국사 틀에 싣게 되는 날이 꼭 오리라고 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3일 (금) 21:07 (KST)답변
개인적으로 이 토론덕에 부여/고구려/발해계 국가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 토론 덕분에 그 국가들에 대한 문서에 대한 관심과 기여가 위키백과에서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케골 2012년 7월 14일 (토) 10:24 (KST)답변
보호는 해제되었지만 추가적인 토론이 더 필요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4일 (토) 09:53 (KST)답변
  • 환인-환웅으로 두어도 적절한가 // 다른 항목으로 대체할 수는 없는가
  • 부여의 시작을 현 틀보다 위로 끌어올리는 부분
  • 한사군 삽입 여부
  • 고려와 조선 세부 틀 내에 내용이 들어가도 되는지의 가부와 들어가면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가
일단 지금까지 논의와 제 생각을 덧붙여서 정리해 본 건데,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시면 첨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윤성현님처럼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15일 (일) 18:39 (KST)답변
환인 환웅 자체는 일단 존재 자체는 어찌보면 환단고기를 거의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환인 환웅이 저렇게까지 크게 나타내야 할까요? 부여의 시작은 기원전 2세기로 같은 시기에 건국된 동예, 옥저와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구요. 한사군 자체는 이미 동란국이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되었는데 들어가기도 뭐합니다. 일단 실효적 존재기간이 25년인데다가 국가도 아닌 군 4개인데 과연 비중있게 틀에 포함시켜야 할지는 의문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6일 (월) 05:16 (KST)답변
환인, 환웅은 삭제하였으면 합니다. --천리주단기 2012년 7월 16일 (월) 20:59 (KST)답변
저 역시 환인, 환웅은 고조선에서 간략히 다루는 것으로 충분하므로 연표에서는 삭제하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연표 표기로는 환인이 마치 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지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 Jjw (토론) 2012년 7월 17일 (화) 15:08 (KST)답변
제가 보기엔 환인, 환웅 부분은 총의가 모아진 것 같군요. 곧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환단고기상으로는 환인은 구석기 시대부터 존재해온 것은 사실이니까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18일 (수) 04:38 (KST)답변
환인/환웅은 환단고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고조선의 건국신화에 빠짐없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역사 교과서에도 환인-환웅-단군 등 고조선의 건국신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국사 틀에 이런 신화 이야기를 추가할 것인지 논의와 무관하게, 너무 지나치게 "환인/환웅 = 환단고기"라고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9일 (목) 21:57 (KST)답변
환단고기를 따지지 않고라도 구석기 시대 옆에 환인과 환웅이 나오는 것은 지나칩니다. 정사에서는 그깟 인물 두명을 저렇게까지 크게 나타낼 필요가 없고 특히나 위치한 것이 바로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역사적 시점이랑 똑같습니다. 아니든 뭐든간에 환인 환웅이 들어가는 것은 상당히 지나치구요. 그리고 틀이 상당히 조그맣게 나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1일 (토) 06:02 (KST)답변
논의의 쟁점이 빗나간 것 같군요. 환인/환웅을 한국사 틀에 넣자/빼자를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빠져 있습니다. 그걸 새로 추가하자는 사람도 현재 없습니다. 다만, 환인/환웅을 뺀 이유가 '역사'가 아닌 '신화'이므로 빼자든지, 혹은 '비중'이 낮아서 빼자든지 하는 것은 토론할 가치가 있는 주장이지만, '환단고기'에 나오니까 빼자는 말은 앞뒤가 안 맞다는 점을 지적한 것뿐입니다. 윤성현 님께서 "환인 환웅 자체는 일단 존재 자체는 어찌보면 환단고기를 거의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라고 위에 쓰셨는데, 그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환인/환웅을 인정한다고 하여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환인/환웅이 환단고기에 뭐라고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삼국유사/제왕운기/한국 국사 교과서 등에도 환인/환웅이 나오고 있는데, 굳이 환단고기에 나오니까 빼자는 말은 이상하다는 지적을 한 것뿐입니다. 환단고기에 고구려도 나오고 부여도 나오는데, 고구려와 부여도 환단고기에 나오니까 빼실 건가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즉, 환단고기에 나오니까 뺀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말이고, 다른 이유를 들어서 빼야 한다는 말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3:25 (KST)답변
아주 간단합니다. 환인/환웅이라는 크기가 이전 한국사 틀에서는 몇백년처럼 크게 있던데 정사로 따져봐도 그깟 인물 두 명을 저 틀에 넣기도 그렇거니와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군왕검이지 환인, 환웅이 아닙니다. 그저 천상의 신이지 한국사 자체라고 완벽하게 볼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크게 차지하고 있으면 정사가 아닌 위서 환단고기를 인정하는 꼴이 되며 그런 악용될 수 있는 소지를 위해서라도 지워야 합니다. 비중으로도 제가 말했듯 환단고기에서의 환인 7명, 환웅 20여명이 아닌 정사에서의 환인 환웅으로 본다 치더라도 일개 두명의 인물이 한국사 틀에서 크게 들어갈만한 비중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 저둘보다도 크니깐요. (재위기간만 1500년)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09:33 (KST)답변
  • 저는 환인/환웅은 이스라엘 역사서에 나오는 성서의 설화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하나님 = 환인, 하나님의 아들 = 환웅, 단군 왕검(한민족의 조상) = 아브라함(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그러므로 단군 왕검이 있으면 당연히 환인/환웅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중동지방에 파피루스라는 나무잎새가 있어 천연적인 기록문화가 발달되어 전해오던 전설과 신화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당시 한지같은 기록자료가 있었다면 "그깟 인물"이라는 말은 듣지 않았을 겁니다. 저의 생각은 간단하지만 자연스럽게 기술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 한국사의 틀이 옳게 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요? Lexus (토론) 2012년 8월 12일 (일) 18:27 (KST)답변
Lexus 님, 반갑습니다. 환인/환웅/단군이 한국사의 출발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요. 구체적으로 한국사 틀에 어떻게 추가하자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8월 13일 (월) 01:49 (KST)답변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로 구분되어 있는 3개시대를 통합 환인/환웅/단군으로 병기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유는 단군조선은 청동기시대와 맞물려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환인/환웅 시대는 구석기와 신석기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봅니다만 매우 피로도가 높은 편집이어서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관여를 꺼리고 있는 것같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을 포함하여 부족장 시대가 한국과 비슷한 이스라엘의 역사의 틀과 매우 비교되는 모습입니다. Lexus (토론) 2012년 8월 14일 (화) 12:20 (KST)답변

한국사 틀 수정

염려해 주신 덕분에 중국 베이징을 잘 다녀왔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한국사 틀이 많이 뒤틀려져 있더군요. 이것저것 삭제하면서, 코딩이 어긋나서 표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우선 가로폭이 지나치게 넓어져 버렸는데, 원래 상태대로 좁게 수정했습니다. 또한 두막루를 삭제하면서 코딩 오류가 나서 고구려 옆에 흰색 하나가 삐죽 튀어나온 문제가 있었는데, 제가 코딩을 조금 수정해서 다시 원래 상태대로 정상화했습니다. 워낙 여러 사람이 손을 대서 일일이 코딩 맞추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2012년 7월 9일 14:03에 제가 마지막으로 편집했던 한국사 틀을 기준으로 수정했습니다. 물론 이 틀에는 두막루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7월 9일 이후 이곳에서 논의된 사항을 모두 반영하였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다수의 뜻에 따라서 두막루도 뺐고, 동란국/후발해도 뺐습니다. 엊그제 환인/환웅도 빼자는 논의가 있었더군요. 일단 뺀 상태로 두었습니다. 위화도회군은 예전에 이미 빼기로 논의가 된 사항인데 그 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살짝 추가되어 있던데, 원래 상태대로 삭제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19일 (목) 21:44 (KST)답변

전부 되돌립니다. 가로폭이 넓어야지 안 그러면 큰 모니터에서는 깨져서 나옵니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은 임의로 빼지 마십시오. 자신의 의견을 다시 관철시키려 하는데 전부 되돌리도록 하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1일 (토) 06:03 (KST)답변
그리고 또 자기 마음대로 두막루를 가림 처리하셨는데 토론에서 논의된 총의와는 어긋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1일 (토) 06:08 (KST)답변
두막루는 한국사 틀에서 삭제되어 있던데, 제 개인 생각과는 다르지만, 삭제된 상태대로 두었습니다. 또한 주석 처리한 것도 삭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윤성현 님이 한국사 틀을 수정하면서 가로 폭이 너무 넓어져서 제 모니터에서는 표가 깨어진 것처럼 나옵니다. 저도 큰 모니터, 작은 모니터 등 여러 종류를 사용하고 있는데, 제가 최종적으로 편집한 틀은 깨어져 보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잘 보입니다. 하지만 윤성현 님이 편집한 틀은 집, 회사 등 모든 곳에서 다 깨어져서 보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틀 코딩을 수정한 것입니다. 또한 부여의 멸망 시기는 서기 494년으로 학계에서 보고 있는데, 윤성현 님 틀에서는 그보다 수백년 전에 멸망한 것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어서, 제가 원래 상태대로 복구한 것입니다. 위화도회군은 빼는 것이 좋겠습니다. 300년간 지속된 '두막루'라는 국가도 '비중'이 낮아서 빼는 마당에 이성계가 회군한 사건 1개를 굳이 한국사 틀에 추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위화도 회군이 조선 건국의 계기가 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두막루, 소고구려, 탐라국 등 '국가' 자체도 '비중'이 낮아서 추가를 못하는 마당에 1회적 사건을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3:17 (KST)답변
윤성현 님이 편집한 한국사 틀은 도저히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눈에 크게 띄는 것은 가로폭이 불필요하게 넓어진 점입니다. 그것 이외에도 고구려가 두 번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멸망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게 잘못 편집되어 있습니다. 문서의 '역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수정하기 전 상태를 살펴보면, 고구려가 1차로 신라에 의해 멸망당하고, 다시 2차로 멸망하여 발해로 이어진 것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습니다. 만약 윤성현 님이 고의로 이렇게 했다면 심각한 역사 왜곡이 되겠고,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위키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사 틀처럼 복잡하게 코딩된 틀을 함부로 고치기가 쉽지는 않을테니까요. 고의가 아니라 선의의 실수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1일 (토) 14:46 (KST)답변
틀에서 분명히 삭제를 하자고 결론이 났고 또 자신이 동의를 하셨으면 책임을 지셔야지 이런식으로 편법을 쓰나요? 두막루가 그렇게 아쉬워서 가림처리를 안하면 어디가 문제가 되나요? 그래서 크기를 조금 더 늘렸는데 도저히리는 말까지 써가면서 남의 편집을 그렇게 비꼽니까? 다시 크기를 늘리겠습니다. 그리고 위화도 회군이란 자체는 한국사에서 비중있는 사건으로 이전에 귀하가 아무런 토론도 없이 임의적으로 뺀 것을 이제와서 또 빼는 것도 형평성에 크게 어긋납니다. 토론에서 정해진 대로만 따르세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02:13 (KST)답변
윤성현 님, 또 논점을 벗어났군요. 지금 두막루에 대한 토론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사 틀에서는 이미 두막루가 빠져 있습니다. 제 개인 생각과 다르지만, 토론에서 나온 의견을 따라서 한국사 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제외해 두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도록 만들지 말아주세요. 그 뒤에 다시 윤성현 님이 와서 토론과 무관한 내용을 자꾸 추가, 삭제, 수정하니까 문제가 된 것입니다. 토론에서 나온대로만 해 주세요. Park4223 님이 마지막으로 편집한 내용으로 되돌리기를 했으니, 제발 한국사 틀을 함부로 손대지 말아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1:03 (KST)답변
그러신 분이 왜 <!--두막루--> 처리를 하셨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삭제가 되었다면 이에 대해 총의를 수긍하셔야지 이렇게 편법으로 다시 기입하면 총의를 어떻게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제외를 시켰다가 슬그머니 추가한건 귀하이십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1:35 (KST)답변
그리고 귀하가 돌린 버전은 고구려의 글씨가 가려져서 '고'자 밖에 나오질 않으며 발해 역시 세로로 쓰느라 정안국이 뒤로 밀려서 마치 발해가 고려 중기까지 있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틀의 크기가 커봐야 나쁠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글이 더 명확하게 보이고 좋은거 아닌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1:39 (KST)답변
'고구려'의 '고'자만 나온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또한 '발해'가 고려 중기까지 밀린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제 브라우저에서는 전혀 그런 이상한 현상이 없습니다. 참고로 제 브라우저는 Internet Explorer 9.0 버전입니다. 혹시 윤성현 님은 어떤 브라우저에서 그렇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말인가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2:01 (KST)답변

윤성현 님이 훼손한(제 생각에는 훼손이 명백합니다) 한국사 틀 문서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1:47 (KST)답변

고구려는 두 번에 걸쳐서 멸망했는가?

윤성현 님이 훼손한(제 생각에는 훼손이 명백합니다) 한국사 틀을 보면, 고구려가 두 번에 걸쳐서 멸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게 맞는 내용입니까? 고구려는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의해 1번에 멸망했습니다.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여러 나라들이 새로 건국되기는 하였으나, 고구려 자체는 서기 668년에 한 번에 멸망했습니다. 아시지 않나요? 이걸 두 번에 나뉘어 멸망한 것으로 틀을 수정하면 곤란합니다.

두번에 걸쳐서요? 제 모니터에서는 한 틀로 명백히 나옵니다. 훼손 운운하지 마십시오. 귀하의 어투가 계속 거슬립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27 (KST)답변
윤성현 님이 어떤 PC에서 어떤 브라우저를 사용하는지 모르겠으나,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Windows 운영체제에서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로 볼 경우에, 윤성현 님이 편집한 한국사 틀이 많이 깨어지고 이상하게 보입니다. 고구려도 두 번에 걸쳐서 멸망한 것처럼 잘못 보이고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4:17 (KST)답변
과거 윤성현님이 편집하신 틀에는 크롬엔 자잘한 블럭모양은 있는데 익스플로러에 실금이 떴군요. 이 부분은 현재 문제 없는것 같습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22일 (일) 16:31 (KST)답변
예, 지금은 IE, Chrome, Safari, FireFox, Opera 등 거의 모든 브라우저에서 한국사 틀이 정상적으로 잘 보입니다. 이 코딩 오류를 수정하느라 일요일 오후를 다 날렸네요... ㅠㅠㅠ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6:44 (KST)답변
운영 체제별로 윈도 XP, 윈도 비스타, 윈도 7, 윈도 8 릴리즈 프리뷰, 리눅스 계열의 여러 운영 체제들, iOS, 안드로이드, 윈도 폰 7......정도가 있고, 브라우저별로 인터넷 익스플로러 8, 9, 10 릴리즈 프리뷰, 구글 크롬, 파이어폭스, 사파리, 오페라 등등 다 확인하려면 좀 힘드시겠네요.--Park4223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19:19 (KST)답변
예, 맞습니다. 상당히 번거로운 작업입니다. 실제로 저희 회사에 각 PC별로 OS 종류와 브라우저 버전 등을 다르게 세팅하여, 실제 다양한 사용자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항상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어 OS뿐 아니라 중국어 윈도우즈, 일본어 윈도우즈, 영문 윈도우즈에서도 어떻게 보이는지를 다 테스트를 한 뒤, 서비스 제품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 틀은 회사 업무는 아니니까, 제가 그냥 몇 대 정도의 PC에서 테스트해 본 게 전부입니다. 또한 수십 대 이상 테스트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웹표준코딩을 하기 때문에 OS나 브라우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사 틀처럼 중간에 문법 오류가 숨어 있는 경우에는 IE에서는 자동으로 오류를 무시하고 보여주지만,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문법 오류의 영향을 받아서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문법 오류만 없이 잘 지켜서 코딩한다면, 대개의 OS와 대개의 브라우저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보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0:20 (KST)답변

부여는 동예와 같은 시기에 멸망했는가?

윤성현 님이 훼손한(제 생각에는 훼손이 명백합니다) 한국사 틀을 보면, 부여가 동예와 같은 시기인 3세기 경에 멸망했다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부여는 4세기(위구태왕의 서부여) 혹은 5세기(고구려에 편입된 시기)에 멸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부여의 멸망 시기를 백여년 혹은 이백년 이상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한국 역사학계의 의견과 다릅니다. 제가 이미 앞에서 같은 내용을 지적하였으나, 다시 또 훼손을 했습니다.

발해와 고구려는 일정 기간 함께 존재했나?

발해는 고구려 멸망 후 30년이 지난 698년에 대조영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발해와 고구려는 단 한 번도 역사상 동시에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윤성현 님의 틀을 보면, 발해가 1차로 고구려 땅을 병합한 후 다시 수 년 후에 2차로 고구려 땅을 병합한 것으로 오해될 수 있도록 틀이 잘못 그려져 있습니다. 명백한 문서 훼손이 아닌가요?

위화도회군을 한국사 틀에 추가하기로 결정한 바가 없습니다.

한국사 틀에서 두막루를 빼자/넣자고 한참 토론을 하는 와중에, 그 어느 기록을 살펴보아도, 위화도회군을 한국사 틀에 추가하자고 토론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아주 오래 전에 추가하자/삭제하자 토론이 한 번 있었고, 제가 반대 의견을 내서, 위화도회군은 한국사 틀에서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걸 다시 아무런 토론도 없이 살짝 집어넣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어느 기록을 살펴보아도 처음부터 추가된 것을 빼려면 어쨌거나 토론이 필요합니다. 귀하의 두막루 추가 행위가 아무런 토론없이 진행된 걸 생각해보시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26 (KST)답변
두막루 추가 행위 이전에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토론:두막루 페이지에서 두막루가 한국사의 일부인지 아닌지 2012년 5월 경에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토론의 결과 제가 주장한대로(=사실은 역사학계의 주장대로) 한국사의 일부로 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틀에 추가하자/말자를 직접적으로 토론하지 않았으나, 한국사의 일부로 토론이 모아졌으므로, 제가 한국사 틀에 추가한 것입니다. 독단적으로 몰래 살짝 끼워넣은 것은 아닙니다. 그 후 다시 천리주단기 님이 제기한 '비중' 문제로 인해 이번에 빼기로 토론을 한 것입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4:06 (KST)답변
그런 분이 편법으로 추가를 하나요? 직접적인 토론이 없던 건 없던 겁니다. 물타기하지 마십시오. 역사학계의 주장이라는건 귀하의 생각인데 아직도 여전하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5:05 (KST)답변
윤성현 님, 자꾸 논의를 왜곡시키지 말아주세요. 두막루가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는 점은 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한국사》 4권, 201쪽에 명백히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천리주단기 님이 '비중'이 작아서 한국사 틀에서 빼자고 했지, 두막루가 한국사의 일부가 아니라서 빼자고 한 적은 없습니다. '위화도회군' 역시 한국사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비중'이 작아서 뺀 것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6:17 (KST)답변
점점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시네요. 그래서 토론도 없이 무조건 빼느냐 이걸 따지는데 귀하는 계속 두막루의 존재감을 계속 얘기하시는군요. 논의를 왜곡시키는건 귀하입니다. 그러니 훼손 운운까지 하면서 편집을 악의적으로 보셨겠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7:46 (KST)답변
아사달님의 과거 토론기록을 보니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그리고 위화도 회군을 동일 선상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파악하여 위화도 회군을 제외하셨습니다. 그리고 틀을 길게 만드는 목적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단일 사건만으로 놓고 볼 때, 앞의 두 사건과는 달리 고려 주도 정치세력의 급변을 가져오고 이후 조선 건국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화도 회군을 추가하는 것이 오히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몽골 전쟁이라는 항목 내에 쌍성총관부-삼별초는 포함되는 내용이며, 굳이 중복해서 기재할 필요는 적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위화도회군을 틀 내에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23일 (월) 15:55 (KST)답변

갑신정변/갑오개혁/동학운동은 한 줄로 표시할 수 있습니다.

3가지 사건 모두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 사건이고, 시기적으로도 매우 비슷한 시기입니다. 한 줄로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데, 굳이 3개 사건을 두 줄로 나누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은 개화파의 주도로 의한 것으로 갑오개혁 자체는 갑신정변의 연장선상이지만 동학운동은 딱히 아닙니다. 이미 동학운동의 발단은 갑신정변 그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31 (KST)답변
한국사 틀은 수천년 역사를 표 하나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300년간 존재했던 '두막루'라는 나라도 '비중'이 작다고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후발해', '동란국' 등의 국가도 삭제되었습니다. '소고구려', '탐라국', '우산국' 등은 추가할 공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신정변/갑오개혁/동학운동이 서로 약간씩 성격이 다르다고 하여, 무려 두 줄이나 차지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3개의 사건이 한 줄에 충분히 들어가는데, 굳이 두 줄로 표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크게 보면, 3가지 사건 모두 조선이 서구 세력과 접촉하면서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겪은 내부적 진통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다르겠지만, 수천년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한 줄로 묶어서 표시할 수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도 성격이 많이 다르지만, 한 줄로 묶어서 표시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4:01 (KST)답변
두막루, 두막루 하지 마십시오. 두막루 홍보대사 같으시네요 점점. 논지만 집중하십시오. 왜 계속 이런 근대 사건에서 두막루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나와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죠? 두막루에 관한 토론이 아직도 안끝났습니까?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7:47 (KST)답변
무려 두줄이요? 고려에 비해서 조선이 40년정도 더 긴데 그정도의 길이는 비례해도 상관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학운동은 개혁과는 그것이 판이한 것이고 친개혁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따지고 보자면 동학운동과 을미사변은 다음 칸에다 서술하는게 나을 듯 싶습니다. 위화도 회군은 물러서도록 하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3일 (월) 08:44 (KST)답변
지금 틀:한국사 내에 고려-조선의 항목 모두, 시기별 사건들을 중심으로 대표 항목이라 생각되는 것이 적혀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성격의 통일성을 유지한다고 본다면, 갑신정변/동학운동/갑오개혁 순으로 적으면 문제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면 사건의 성격과 관계 없이 전체적 틀의 흐름과도 일치된다고 생각되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23일 (월) 15:38 (KST)답변
발생한 시기 순으로 보면, 갑신정변/동학운동/갑오개혁이 맞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고쳐도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특히, 갑오개혁은 밑으로부터의 거센 요구(즉, 동학운동)에 대한 지배층의 대응(즉, 갑오개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때도 동학운동을 먼저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으로 갑오개혁을 설명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0:56 (KST)답변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길게 써 줄 수 있습니다.

정식 명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입니다. 한국사 틀에 '조선총독부'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한 줄에 모두 잘 표기할 수 있습니다. 굳이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빼고 '임시정부'라고만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마도 일부 브라우저에서 두 줄로 넘어가는 문제 때문에 한 줄로 표시하고자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뺀 것 같은데요. 제가 괄호를 없애고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추가했습니다. 그냥 임시정부라고 하면, 러시아 임시 정부 혹은 이라크 임시 정부 등 다른 임시정부도 많기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괄호를 없애고 정식명칭인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표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국사 틀에서 러시아 임시정부가 나올 리는 만무하지요. 그렇게 보자면, 시대 구분에서 삼국은 중국의 삼국인지, 한국의 삼국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람 (논의) 2012년 7월 22일 (일) 11:59 (KST)답변
물론 '임시정부'라고 써 줄 수도 있습니다. 가람 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정식 명칭을 다 써 주어도, 두 줄로 안 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게다가 윤성현 씨 주장처럼 틀의 가로폭 자체를 넓히게 되면 당연히 한 줄에 들어가기 때문에) 굳이 약칭을 쓸 필요 없이 정식 명칭을 써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2:07 (KST)답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 크롬, 사파리 등은, 또한 버전별로 각각 다르기 때문에 단정짓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표는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배치 역시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확실히, 대각선 긋기(/)가 중간에 있는 편이 보기가 좋지 않겠습니까? --가람 (논의) 2012년 7월 22일 (일) 12:12 (KST)답변
시각적인 균형을 생각해 보면, 가람 님 말씀처럼 (/) 기호가 정 가운데 있는 것이 보기에는 좋은 것 같군요. '임시정부'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든 사실 큰 상관은 없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4:14 (KST)답변
임시정부가 뭐가 문제죠? 한국사에서의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정밖에 더 있나요? 경성임시정부 등은 결국 대한민국 임정으로 통합되었는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27 (KST)답변
아시겠지만, 임정이나 임시정부나 모두 정식 이름이 아니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식 이름입니다. 칸이 좀 남아서 정식 이름을 쓰자고 했던 것이고, 만약 너무 길어서 답답해 보이면, 약칭으로 '임시정부'라고 써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정식 국호이지만 '한국'이라고 써도 무방한 것과 같습니다. 다만 한국사 틀이 공식적인 틀이니까 '한국'이라는 약칭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명칭을 쓰는게 좋듯이, '임시정부'보다는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정식 명칭을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써도 칸이 좀 남으니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4:11 (KST)답변
정식 이름이긴 한데 한국사에서 임시정부라고 하면 다 대한민국 임정을 생각하는데 정식이름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한국 대신 대한민국이라 쓰는건 정식명칭이라서 쓰는 것이긴 하지만 북한까지 합친 통일한국이란 뜻도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부득불 쓰는 것입니다. 오해 마십시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5:08 (KST)답변

한국사 틀의 가로폭 문제

가로폭을 넓히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나, 지금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가로폭을 넓히는 것은 반대합니다. 새로 국가를 더 추가하거나 해서, 도저히 기존 틀에 표시하기 어려울 때는 한국사 틀의 가로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로폭을 넓히지 않고도 모든 국가와 사건을 표시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사 틀의 가로폭을 넓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가로폭을 넓혀야 가독성이 더 좋아집니다. 특히 지금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글자가 다음 줄로 겹쳐서 나오고 틀이 너무 작아서 공간이 너무 없어보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28 (KST)답변
참고 사진 한번 보시지요. 고구려가 '고' 자만 나옵니다. 귀하의 수정 이후 되돌려진 틀을 찍었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2:46 (KST)답변
참고사진 이미지가 지워져서 안 보입니다만... Park4223님이 이미지를 삭제해 버려서 볼 수가 없군요. 어디가 어떻게 깨어진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떤 브라우저이고 어떤 버전인지 알려주시면,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현재 프로그램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젊을 때 직접 코딩을 많이 했기 때문에 각 브라우저별로 모두 오류 없이 잘 보이도록 코딩은 맞춰줄 수 있습니다. 다만 어느 브라우저에서 어떻게 깨어지는지를 모르니까 답답합니다. 참고로 현재 한국사 틀은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에서 가장 잘 보이도록 코딩이 되어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3:46 (KST)답변
IE 9, 윈도 7로 해상도는 1600*1200인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5:06 (KST)답변
제가 코딩을 약간 수정했는데요. 기존 코딩에 문법 오류가 1개 숨어 있었는데, 찾아서 수정했습니다. 또한 IE9.0뿐 아니라 Chrome 및 Safari 브라우저에서도 잘 보이도록 코딩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혹시 지금도 한국사 틀이 이상하게 보이는지 확인 바랍니다. 만약 지금도 이상하게 보인다면, 번거롭겠지만 화면 캡처하여 이미지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5:50 (KST)답변
캡쳐는 가능하지만 저작권 때문에 찍기가 힘들고 일단 다시보면 "갑신정변, 갑오개혁, 동학운"하고 다음 줄로 "동"이 넘어가는군요. 한줄에 담기 너무 깁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3일 (월) 08:48 (KST)답변
"동학운" ~ "동"으로 줄이 넘어간다고 했는데요. 제가 여러 대의 PC에서 살펴보았으나, 그런 현상을 찾기가 어렵군요. 혹시 Windows PC에서 IE9.0에서 텍스트 크기를 확대해서 보고 있나요? 제가 브라우저에서 텍스트 크기를 125%, 심지어 150%로까지 확대해서 살펴보았는데도, 두 줄로 넘어가는 현상이 없었습니다만... 윤성현 씨가 어떤 PC 환경인지 궁금하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3일 (월) 20:25 (KST)답변
저 100%로 쓰는데요. 그리고 새로 참고사진 올렸습니다. 참고 사진 이렇게 깨져서 나오기 때문에 틀을 늘리던지 아니면 동학운동을 분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귀하의 컴퓨터에 맞게 나오기야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야 귀하의 컴퓨터일뿐 이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대조하신 것은 아니며 제 컴퓨터 화면에도 되도록 맞게 나오고 하게 싶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1:00 (KST)답변
하루동안 파일을 내버려두겠습니다. 그래도 답이 없으시면 제 해상도에 맞게 편집을 강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4일 (화) 16:19 (KST)답변
이건 왜 이렇게 보이는지 솔직히 말해서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첫번째 줄에 "강화도조약"과 "갑신정변"을 넣고, 두번째 줄에 "동학운동"과 "갑오개혁"을 넣는 방안은 어떨까요? 틀 자체의 가로폭을 늘리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불편해질 수 있으니, 두 줄로 바꾸고, "강화도조약" 1개를 더 추가하자는 제안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4일 (화) 23:10 (KST)답변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해상도에 대해 불편하다는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귀하의 눈에 불편하시니 그런거 아닌가요? 강화도 조약이 아무리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는 하나 을미사변보다는 약하고 또 뒤에 이은 을사늑약보다도 약하죠. 차라리 첫번째 줄에 갑신정변, 갑오개혁 두번째 줄에 동학운동, 을미사변이 나을 듯 싶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5일 (수) 02:34 (KST)답변
을미사변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사건인데, 한국사 5천년(적어도 2천년) 연표에 기록될만큼 중요한 사건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5일 (수) 23:57 (KST)답변
귀하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그렇다면 사실상 일본에게 특혜가 돌아간 강화도 조약은 들어갈만하다고 보시나요? 강화도 조약으로 이루어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단지 일본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 조처일 뿐입니다. 하지만 을미사변은 일국의 왕비가 시해된 것이 아닌, 을미의병이 발생하고 갑오개혁 자체가 실패하고 결국엔 대한제국의 성립의 근간이 된 아관파천의 원인이 됩니다. 곧 추가하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6일 (목) 02:14 (KST)답변
이의 없으신 것 같으면 곧 동학운동을 밑으로 내리겠습니다. 단 을미사변을 추가하자는 의견은 지우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8월 6일 (월) 10:56 (KST)답변
줄이 길어서 두 줄로 넘어간다고 하니, 그럼 차라리 "갑신정변"과 "동학운동"만 남기고 "갑오개혁"은 지우는게 어떨까요?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굳이 3개씩이나 써줄 필요 없이, 한 줄에 잘 보이도록 2개만 쓰는 방안이 어떨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8월 6일 (월) 18:59 (KST)답변
허면 그렇게 합의를 본것으로 알고 갑오개혁은 삭제하겠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8월 7일 (화) 09:37 (KST)답변
예, 잘 수정된 것 같습니다. 윤성현 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8월 7일 (화) 09:47 (KST)답변

구글 크롬, 애플 사파리 등에서도 잘 보이도록 코딩 수정

기존 한국사 틀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Internet Explorer 브라우저 기준으로 코딩이 되어 있어서, 다른 브라우저에서는 후백제의 길이가 너무 길게 나오는 등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많았습니다. 제가 부족한 실력이지만, IE 9.0뿐 아니라 Google Chrome 및 Apple Safari 브라우저에서도 한국사 틀이 잘 보이도록 코딩을 수정하였습니다. 한국사 틀의 내용은 건드리지 않고 틀의 코딩만 수정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5:47 (KST)답변

추가로 FireFox와 Opera 브라우저에서도 테스트를 했는데, 한국사 틀이 깨어지거나 이상하게 보이는 점이 없이 모두 예쁘게 잘 나옵니다. 참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7월 22일 (일) 15:59 (KST)답변
고생하셨습니다. Mr.SamA_Shun (논의/기여) 2012년 7월 22일 (일) 16:59 (KST)답변
갑신정변, 갑오개혁, 동학운동이 여전히 두줄로 나오는 것과, 위화도 회군 추가 문제만 빼곤 딱히 문제 없겠군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2년 7월 22일 (일) 17:48 (KST)답변
드디어 이곳에 평화(?)가 찾아왔군요. 돌이켜보면, 참 어려운 과정이었으나, 끝까지 상대방을 믿고 인내하고 양보하면서 서로 '합의'(or '타협'?)을 이루어낸 듯합니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동학운동" ---> 이건 일부 사용자 PC에서 두 줄로 보이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갑신정변, 동학운동"으로 줄였습니다. 그에 따라 한국사 가로 틀을 굳이 넓혀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위화도회군" 문제는 추가하자는 제안은 있었으나 제가 반대했고 다른 사용자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어서 그냥 추가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지나갔습니다. 어쨌든 이 정도 선에서 '한국사' 틀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두막루'의 한국사 틀 추가 문제는 비록 지금은 제가 '양보'(?)하여 삭제되었으나 먼 훗날 언젠가 학계의 확정된 의견이 나온다면, 그 의견에 따라서 추가 여부를 다시 논의하면 될 것입니다. 이 토론에 참가한 사용자 여러분들 모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8월 10일 (금) 23:45 (KST)답변

옥저의 멸망 시기

옥저는 56년 고구려 태조대왕에게 정복당했습니다. 옥저의 민족과 생활 풍습은 그 이후로도 존속했다고 볼 수 있지만 이 틀은 민족의 존속기간을 나타내는 목적이 아니므로 옥저의 멸망 시기를 56년에 맞게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76837 (토론) 2013년 3월 10일 (일) 11:33 (KST)답변

진국이 고조선에 왜 포함되어 있지요?

 

그림에서 마치 진국이 고조선에 포함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18호 (토론) 2013년 5월 27일 (월) 00:27 (KST)답변

문제가 있다면 직접 고치십시오. 그리고 이미 고쳐진 사안입니다. --가람 (논의) 2013년 5월 27일 (월) 01:56 (KST)답변
완료되었네요. --18호 (토론) 2013년 5월 27일 (월) 02:00 (KST)답변

진(辰)은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무렵 청동기 및 초기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존재한 초기 집단으로, 고조선과 공존하였고, 이후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제정일치 사회로서 세형 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한 농경사회로 추정된다. 다만, 기록이 매우 적어서 이것이 특정한 한 국가를 가리키는지 혹은 인접한 여러 소국이나 정치 집단을 통틀어 말하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 진국
 
진국

앞서 가람님과 약간(?) 개인 토론으로 끝나 버려서 확실히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해서 다시 총의를 구해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18호 (토론) 2013년 6월 5일 (수) 20:35 (KST)답변

진국은 고조선과는 별개의 나라입니다. 어느 정도 고조선과 선은 닿았겠지만 고조선이 삼국을 통일했던게 아닌 만큼 진국은 고조선에 포함되면 안되죠. -- 윤성현 · 기여 · F.A.

탐라국은 한국사가 아닌가요?

탐라국은 어느 나라 역사입니까? 탐라국이 한국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 하는지 아시는분?--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18 (KST)답변

비중이 작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주변국에 조공을 바쳤다는게 거의 전부의 기록이고 삼국시대나 남북국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적이 없는 만큼 탐라국이 저기에 포함되기엔 솔직히 무리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4일 (금) 17:25 (KST)답변
그렇군요. --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26 (KST)답변
솔직히 동예나 옥저 같이 고구려에 흡수되었고 그 문화가 고구려에까지 전래되어 영향을 미친 경우면 모르지만 탐라는 기록도 적거니와 당시만 해도 한반도 주변 세력권에서 너무 동떨어져있는 변방이니깐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4일 (금) 17:29 (KST)답변
탐라도 고려에 귀속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조선에 완전병합당하는데 큰 비중이 아니군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31 (KST)답변
뭐 조공, 복속의 연속이었고 뚜렷한 독립 항쟁도 없었던 만큼요. 그렇다고 딱히 문화적 유산을 남겨서 당시 탐라의 시대적 중요성을 알 만한 근거도 희박하구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4일 (금) 17:33 (KST)답변
저는 탐라국#대외 관계에서 보면 한국사의 어느 정도의 비중이 되는지 궁금해서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아쉽지만..--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36 (KST)답변
넣는다고 가정한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요? --가람 (논의) 2013년 6월 14일 (금) 17:37 (KST)답변
신라에 입조한 부분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41 (KST)답변
솔직히 기원전 2338년은 너무 뻥튀기가 심한 것 같고 보더라도 삼국의 시작점에서 넣는게 맞다고 봐요. 삼국부터 고려시대까지 이어진거죠. 근데 뭐 복속되었다 말았다 이어졌다 끊어졌다 만 나라라 그걸 틀로 표현하기도 좀...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4일 (금) 17:40 (KST)답변
네 그렇습니다. 너무 뻥튀기라서 저도 믿을 수가 없어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4일 (금) 17:42 (KST)답변

탐라는 신라의 황룡사에서도 4층인가? 에서 나타나는데 탐라는 한국의 역사가 맞을까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5일 (토) 01:27 (KST)답변

황룡사9층목탑에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징하는 층도 있습니다. 당시 신라 기준으로는 모두 외국이었죠. 여기 포함되었다고 한국사가 아니라고 하기는 곤란합니다.--Bluemersen (+) 2013년 6월 15일 (토) 01:35 (KST)답변
영화 황산벌에서도 신라와 백제 고구려와는 뿌리가 다르다고 나오던데 그런 거인가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5일 (토) 01:39 (KST)답변

정안국 문제

그동안 한국사 틀에 '정안국'이 발해 밑에 작은 글자로 포함되어 있었으나, 사용자:윤성현 님이 삭제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삭제 행위에 대해 어떤 사전 의견 수렴도 없이 이루어진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합니다. 이미 이 문제로 예전에 토론이 된 바가 있었으나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약 1년간 정안국이 한국사 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전 토론에 이은 아무런 추가적인 논의도 없이, 해당 링크를 한국사 틀에서 삭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삭제하기로 결론이 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링크를 삭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03:27 (KST)답변

이미 기존 토론을 보더라도 정안국 등의 국가를 삭제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당시 두막루 문제 때문에 흐지부지된 것 뿐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정안국을 발해 이후의 국가로 표기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비중이 크다고 볼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사라는건 민족보다도 지리에 맞추어져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발해의 정통을 이은 국가는 전혀 아니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03:39 (KST)답변
그리고 발해의 정통을 이었다 주장하시는데 정안국을 세운 열만화는 발해의 일개 호족이었고 정작 발해 부흥운동의 중심이 되어야할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의 아들 대광현은 고려에 귀순을 했습니다. 또 정안국 이외의 몇개의 나라로 찢어졌는데 결국은 임정이 통합돼 상해에 세워진 임정과 비교하는건 무리입니다. 그리고 거란과 전쟁을 했다 하시는데 거란과 전쟁을 하고 외교전을 폈다 해서 그게 과연 비중이 있는 것일까요. 한반도의 지리적 정세에 영향력을 딱히 준 사례가 있습니까?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06:38 (KST)답변
제 생각인데, 정안국, 두막루, 탐라국 같은 나라를 포함시킨다면 이를 제외한 수 십개의 다른 소국들은 왜 반영하자고 하지 않는거죠? 그런 논리라면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 소국에 대해 계속적으로 틀 반영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될 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번엔 이 소국 다음엔 저 소국, 이런 식으로 소국들을 나열하다보면 내용이 너무 조잡해보이지 않을까요? 이런 소국이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가 정통왕조 (근대엔 임시정부 정도?)에 비해 빈약한데다 구조상으로도 이 조그마한 틀에 어울리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Ph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0:18 (KST)답변
저분은 이미 반영하자고 하셨어요. 두막루, 대발해, 후발해, 동단국, 정안국, 심지어는 신라시대의 김헌창의 장안국과 묘청의 대위국까지도 포함하자고 하였죠. 그런데 어차피 이 틀이 모든 한국사도 아니고 한국사에 대략적 흐름만 이해할수 있도록 돕는 틀에 무턱대고 이런걸 집어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건 뭐 따로 틀:발해의 역사에서 따로 다뤄도 충분하겠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0:31 (KST)답변
윤성현 님, 제가 김헌창장안국묘청대위국까지도 한국사 틀에 국가로 포함하자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국가라기보다 일개 정치적 사건에 불과하며, 국가를 나열하는 한국사 목록에 포함될 대상은 아닙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6:28 (KST)답변

 질문 윤성현 님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한국사라는건 민족보다도 지리에 맞추어져야 한다는게 제 생각입니다."라고 쓰셨는데요.

  1. 그렇다면 정안국뿐 아니라,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주로 만주에 위치했던 한국의 옛 나라들은 모두 한국사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2. 지리라는 개념이 현재의 대한민국(남한) 지역만을 의미하나요,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지역도 포함하나요?
  3. 제주도는 현재 대한민국 영토에 속하는데, 제주도에 존재했던 탐라국은 한국사 연표에 표시되어야 하나요?
  4. 만약 대한민국의 지리적 영토가 다시 넓어진다면(단순한 가정이기는 하지만), 다른 지역도 한국사에 포함되게 되나요?
  5. 만약 중국이 북한 땅을 병합한다면(이것도 단순한 가정이지만), 북한 지역의 역사는 한국사에서 제외하고 중국사에 포함시켜야 하나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6:36 (KST)답변

한국사라는건 한국인의 역사이기 이전에 일단 한국인이 사는 지리적 정세를 더욱 중점을 둬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태까지 고대사의 한국사 국가 가운데 제가 대놓고 중국사라고 했던적이 있나요? 절 무슨 동북공정 추종자로 아시는데 저 틀에 쓰여진 모든 국가는 만주도 차지했고 한반도도 차지했습니다. 일단 만주보다도 한반도를 차지해서 한반도 안의 다른 나라들과 대립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쓸모없는 가정에는 대답을 피하겠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일에 제가 굳이 설명을 해야 합니까? 탐라국은 오래 있었지만 말했듯이 복속과 독립을 반복해왔고 뚜렷한 문화적 증거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본 틀은 한국사의 대략적인 흐름만 설명하고 있으므로 비중상 들어갈수 없습니다. 정안국 등등 스스로 발해의 후계 국가를 자처한 소국들도 마찬가지이고 결론적으로 이 나라들 중 어떤 나라도 발해의 정통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나라는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6:45 (KST)답변
한국사가 뭘까요? 현행 위키백과에는 이렇게 서술되어 있군요. "한국의 역사(韓國-歷史)는 구석기 시대 이후 주로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 넓게는 동아시아 지역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온 한민족의 역사이다." 즉 한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며, 지리적으로는 현재의 대한민국(또는 한반도)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만주, 연해주, 동아시아 지역까지 모두 포함하는 한민족의 역사라고 되어 있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02 (KST)답변
동아시아까지 범위를 넓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위험한 발언입니다. 물론 해외에 진출한 한민족의 역사도 포함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한민족의 지리적 뿌리인 한반도 내에서의 역사를 더욱 중시해야 하는게 제 입장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13 (KST)답변
정안국의 수도는 서경 압록부였으며, 현재의 압록강 유역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압록강은 한반도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데, 정안국도 한반도 내의 역사가 아닐까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8:19 (KST)답변

그런데 예전의 토론에서 나라가 어느 위치에 있었으냐(한반도, 만주 지역 등)에 따라 한국사 틀에 포함시키는지 여부를 생각하자가 아니라 한국사에서 얼마나 비중있느냐/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포함시키는지 여부로 생각하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 Min's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6:43 (KST)답변

물론 비중이 제일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지리적 위치로도 당시 한반도에 위치해있던 나라들과 이해 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나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분이 말한 정안국은 거란을 치기위해 송나라랑 외교를 했지 정작 발해의 정통 세력이 귀부를 한 고려에 대한 기록은 없는것 같네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6:47 (KST)답변
이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위치해 있던 나라들과 이해관계가 있어야 한국사의 일부로 인정한다는 논리인가요? 고조선은 주로 만주와 요동 지역에 존재했는데,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위치해 있었던 진국(또는 삼한)과 무슨 이해관계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여도 만주 지역에 존재했는데, 부여와 한반도 지역의 다른 나라들이 무슨 이해관계가 있었나요? 발해 역시 당나라 및 일본과는 교류가 많았으나, 신라와는 거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안국의 수도는 서경 압록부로서 그 위치는 오늘날 압록강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압록강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북쪽 경계선으로서 한반도에 포함이 됩니다. 또한 정안국이 고려와 여러 차례 외교적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08 (KST)답변
정안국 문서에 가면 고려와의 외교 관계를 맺으려 시도한게 딱 한번입니다. 말했듯이 정안국은 정통성이 결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발해는 신라와 아예 교류를 했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13 (KST)답변
정안국과 고려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고려에 대한 정안국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거란의 침공 위협에 시달리던 정안국은 주변 여러 나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고, 다행히 중국 송나라는 정안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해 주고, 서로 힘을 합쳐 거란을 토벌하자는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의 경우 정안국의 계속되는 구애 작전(?)에도 불구하고, 당시 국제 정세를 고려하여 정안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거란 때문일 겁니다. 고려 입장에서는 사멸해가는 송나라와 정안국의 손을 잡을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거란국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정안국을 무너뜨린 거란이 100만 대군을 앞세우고 고려로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이 때 고려의 서희 장군이 그 유명한 외교적 담판을 통해, 거란을 물러가게 했을 뿐 아니라 영토까지 얻어냈는데, 그 때 고려에서 양보한 것이 바로 정안국과 송나라였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27 (KST)답변
서희는 장군이 아니구요. 그리고 서희가 망한 정안국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소손녕과 담판을 벌였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그리고 "같습니다"같은 추정으로 사실을 뒷받침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짝사랑이건 아니건 정안국은 고려와의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는데 실패한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송나라가 인정했다고 정식 국가인양 말씀하지 마십시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32 (KST)답변
서희는 문관 출신이지만 병관어사(兵官御事), 즉 현재의 국방부 대변인급에 해당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보통 장군이라고 호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안국이 정식 국가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처음 듣습니다. 정안국은 송나라가 인정한 정식 국가였을 뿐 아니라, 류득공의 발해고 등에서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고, 현재 대한민국 역사학계에서도 (그 비중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안국이 정식 국가가 아니면, 그냥 일종의 '반란 집단'이라는 뜻인가요? 2대 왕 48년간 자체 영토와 백성을 가지고 압록강 유역에 존재했던 반란 집단인가요? 그런 논리라면 태봉과 후백제도 정식 국가가 아니라 '반란 집단'인가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8:08 (KST)답변
송나라에게 인정받아야만 정식 국가입니까? 패턴이 두막루 때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그리고 문관 츨신으로서 군의 통수권자가 되는건 고려 조선시대에는 당연했던 이야기입니다. 무관도 아니었고 칼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말 그대로 장관에게 장군이라고 부릅니까?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2:00 (KST)답변

아사달씨게 묻습니다. 지금 논의하는것은 정안국입니다. 고구려, 부여 이런 문제는 왜 새삼스럽게 꺼내시고 별 상관없는 이야기로 토론을 흐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6:53 (KST)답변

지리적인 부분과 별개로 비중이 크지 않다는 윤성현 님과 Ph 님의 의견에 동의하는데, 정안국이 한국사에서 비중이 크다고 생각하시는지와 그 근거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Min's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6:59 (KST)답변

결정적으로 정안국은 한국사에서 비중이 전혀 크지 않습니다. 일단 정안국은 발해가 멸망하고 그 옛땅에 난립한 수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표성이 딱히 없습니다. 발해의 일개 호족이 세웠고 그것도 후발해라는 역시 발해 멸망후의 소국의 후신이구요. 그리고 정안국의 왕 열만화는 당시 발해에서 가장 정통성 있던 발해의 마지막 태자를 쫓아내는데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이미 여기서 발해의 후신이라는 정통성은 떨어져 나간거죠. 지리적으로도 만주에 위치해 있었고 또한 외교적 기록이라면 중국 송나라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발해는 옛 고구려의 땅이라도 차지했지 정안국은 그보다 훨씬 못한 작은 땅을 다스렸었고 고려와의 외교 관계도 거의 찾아볼수 없습니다. 만약 정안국이 발해의 후신이었다면 발해의 태자가 왜 고려로 귀순을 했고 고려는 "형제국"이라던 발해의 후신인 정안국과 외교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요. 뭐 정안국을 한국사가 아니라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06 (KST)답변
정안국은 발해 멸망 후 계속된 발해 부흥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발해의 후계를 자처하는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했으나, 대개 1년을 못 넘기고 거란에 진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정안국만 예외적으로 무려 2대 왕(열만화, 오현명), 48년간 자체 영토와 백성을 가지고 외교 및 군사 행위를 했습니다. 정안국은 발해 후계 국가 중 가장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정안국은 중국 송나라로부터 하나의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았으며 거란에 공동 대응하여 군사 행동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안국은 다른 발해 부흥 운동과는 차원이 다른 큰 비중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독자 연구가 아니라, 발해고를 저술하여 발해를 한국사의 일부로 포함시킨 류득공의 연구입니다. 류득공의 발해고를 보시면, '속국고'라고 하여 발해를 계승한 국가로 오직 정안국에 대해서 하나의 별도 장을 두어 서술하고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19 (KST)답변
비중에서 왕의 재위기간과 수명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송나라로부터 정식 국가였지 정작 당시 한반도를 정식으로 다스린 정통 왕조인 고려와는 변변한 외교 관계도 없었습니다. 비중이라면 송나라와의 일종의 사대식 외교 관계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발해의 후신으로서의 정통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정통성과 고려와의 지리적 정세등은 별로 나와있지도 않습니다. 말했듯이 발해부흥운동이 들어가려면 고안승의 고구려나 부여풍의 백제 등도 다 들어가야 합니다. 형평성에도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24 (KST)답변
정안국은 발해 부흥 운동 중 가장 대표적인 운동이고, 2대 왕 48년간 자체 영토와 백성 및 군사를 거느린 독립 국가였습니다. 정안국이 발해를 계승한 국가는 맞지만 '정통' 국가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통과 비정통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기준도 모호하고, 한국사 틀에 오직 정통 국가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한국사 틀에 포함되어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을 계승한 정통 국가인가요?) 게다가 정안국을 하나의 독자적인 국가로 한국사 틀에 그려 넣은 것도 아니고, 단지 발해라는 국가에 설명 문구 한 줄로 (즉, 역사적 사건으로) 링크되어 있을 뿐인데, 그것까지도 삭제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삭제 행위인 것 같습니다. Ph 님이 염려하신대로, 지금 한국사 틀을 그대로 두더라도, 전혀 '칸'이 좁아지지도 않구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38 (KST)답변
발해부흥운동을 넣으시려면 고구려 부흥운동, 백제 부흥운동도 형평성으로 넣으시기 바랍니다. 발해만 띄워주려는게 오히려 과도해보입니다. 그리고 정통성에 대해 잘 모르신다면서 발해의 후신이라고 하는 연유는 무엇입니까. 북한이 조선을 계승할린 없지 않나요? 북한은 그냥 일제강점기 때 한국의 명칭 조선을 가져다 쓴것입니다. 고려 이후의 조선시대면 몰라도 어느 나라의 후신을 자처했다면 그만한 이유와 당위성이 설명되어야 하지만 귀하는 자신도 모호하다면서 넣자는 억지를 주장하십니다. 말했듯이 정 정안국을 쓰고 싶다면 틀: 발해의 역사를 새로 만드십시오. 고려와의 연관도 없고 정통성도 없는 정안국이 있어야될 이유는 전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주장을 반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6일 (일) 17:44 (KST)답변
정안국이 발해를 계승한 '정통'국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후계' 국가가 아니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정안국은 발해를 계승한 대표적인 후계 국가입니다. 정안국과 고려의 관계를 보자면, 발해고를 보면, "고려 현종 9년(서기 1018년)에 정안국 사람 골수(骨須)가 고려로 망명하였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안국이 고려와 정식 외교 관계는 없었으나 서로 영토를 맞대고 있었으니 수많은 망명자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발해도 신라와 정식 외교 관계가 없었으나 한국사 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안국이 고려와 정식 외교 관계가 없었더라도 그게 한국사 틀에 포함시킬 수 없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후계 국가 중 오직 정통성이 있는 국가 하나만 한국사 틀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조선 및 대한제국을 계승한 정통성이 있는 대한민국만 한국사 틀에 남기고, 정통성이 없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한국사 틀에서 삭제할 것이 아니라면, 단지 정통성이 없는 후계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한국사 틀에서 삭제하자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6일 (일) 17:58 (KST)답변
후계 국가는 이미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듯이 신라가 오히려 발해에게 손을 먼저 내밀었었습니다. 정안국의 비중이나 대중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이나 해보시죠. 비중으로도 이 나라는 여기 올라올 만한 감이 못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1:54 (KST)답변
그리고 왜 고안승과 부여풍의 부흥운동이랑 정안국과의 차이점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유독 이 나라만 들어가야 되나요. 어차피 발해는 멸망했고 태자는 고려에 귀순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말 반복하지 마십시오. 2대 48년, 자체 백성과 군사? 그게 비중이랑 상관 있나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2:03 (KST)답변

그리고 북한이랑 비교합니까? 물론 정안국이 고려에게 인정받지 못했듯 북한도 남한에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어쨌거나 국제연합에서는 인정 받고 있으며 또 지리적으로는 한국 전쟁 등으로 남한과 땔레야 뗄수 없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인정한 나라랑 당시 통일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송나라랑만 군사적인 외교 관계만 맺은 나라랑 비교가 됩니까?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2:29 (KST)답변

오늘날이야 국제연합이 있고 국제 사회라는 것이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예전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위주로 한 국가간 질서가 중요했으며, 비록 형식적이기는 할지라도 중국에서 책봉을 받아야 정식 국가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정안국은 중국 송나라의 황제로부터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았으니, 일개 반란 집단이 아니라 정식 국가가 맞습니다. 물론 정안국이 고려와 외교 관계가 없었으나, 아시다시피 고려는 당시 동아시아 정세에서 다른 나라에 대해 정식 국가라고 인정을 해 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중화를 떠받드는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 수천년간 동아시아 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중국 송나라에서 인정한 국가라면 정식 국가라고 봐야 합니다. (참고로 정안국이 정식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은 윤성현 님에게서 처음 들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04:12 (KST)답변
덧붙이자면, 백제 부흥 운동이 있었으나 정식 국가를 수립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백제 부흥 운동도 중요한 역사적 사건임에는 틀림 없으나, 자체 영토와 백성 및 군사를 가지고 2대 왕 48년간 지속되었던 정식 국가인 정안국과 비교할 것이 못 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04:17 (KST)답변
사대주의적 발상이네요. 중국에만 인정을 받았으니 정식 국가라는건 귀하로부터 처음 들은 겁니다. 그리고 고려 폄하하지 마십시오. 당시 정세로는 송나라도 우위에 있지 않았고 북방에는 요나라가 이미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백제 부흥운동은 안된다면서 송나라에게 인정받았다고 정식국가라는 정안국은 된다고요? 말이 되나요? 중국에만 인정 받았다면 다입니까? 사대주의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그리고 2대 48년 그런말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 6번은 듣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5:18 (KST)답변
그리고 틀:만주의 역사에 이미 정안국이 있습니다. 그리고 귀하의 논리라면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도 당연히 들어가야겠네요. 역시 한민족인데 중국 땅에 나라를 세웠으니까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5:24 (KST)답변
아사달(Asadal)님 당시에 송나라의 동북아시아의 위치는 고려보다 낮았습니다. 근거는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18호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22:32 (KST)답변
송나라의 위치가 고려보다 낮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중국을 차지한 왕조는 송나라였긴 했고 고려는 송나라를 존중해줬죠. 덕분에 송나라도 고려의 사절단을 조공하러 온 사신보다 더 격이 있는 격으로 대우해줬습니다. 다만 송나라는 중국 전체를 완전히 통일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북방의 여러 민족들에게 압력을 받았습니다. 거란도 그렇고 서하도 그렇구요. 덕분에 다른 중국사의 통일 왕조들과는 달리 송나라가 국제 관계에서 우의를 선점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다만 송나라'만' 인정했다고 이 나라는 정식 국가다라고 하는건 큰 어폐입니다. 중국사도 아닌걸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8일 (화) 05:52 (KST)답변
고려와 거란 전쟁에서 발췌 942년 요 태종이 낙타 50필을 보내자 고려 태조는 사신은 섬으로 유배보내고 낙타는 만부교(萬夫橋)에서 굶겨 죽여버렸다. 이 같은 행동은 그 만큼 자신감이 있으니까 하는 행동이 아닌가요? 혹시 송나라 빽 믿고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요? --18호 (토론) 2013년 6월 18일 (화) 06:00 (KST)답변
그거 아주 대표적인 문구입니다. 자신감보다도 속뜻은 거란이 "형제국"이라던 발해를 멸망시킨 나라였기 때문에 사신이고 낙타고 다 용서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시 고려는 발해의 정통 세력이던 태자 대광현이 이미 귀순해 온 상태였으니 그들의 민심을 잡으려면 이러한 행동은 필요악이었죠. 그 이후로도 딱히 고려가 발해나 그리고 자칭 발해의 후신이라던 정안국에 대한 얘기도 없습니다. 정안국이 건국되었을 때 형제국이었다면 고려가 축하 사절을 보내길 했나요 아니면 외교 관계를 제대로 맺기나 했나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8일 (화) 06:04 (KST)답변
고려도경은 송나라가 고려를 견제할 목적으로 만들어 졌을까요? --18호 (토론) 2013년 6월 18일 (화) 06:23 (KST)답변

비중 있는 나라는 무엇일까?

비중이란 다른 것과 비교할 때 차지하는 중요도 라고 네이버사전에 나와 있네요. 틀 한국사에 등록 되어야 할 대표적 중요 나라는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은 신라 위주로 통일되었으니 신라가 삼한통일을 할 때에 병합된 나라도 중요하다 생각됩니다. 관련 나라들은 이러합니다. 신라가 우산국과 가락국과 대가야를 병합했으니 틀 한국사에 등록되어야 하고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병합했고, 신라 말기에는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일어났지만, 최종적으로 왕건의 고려가 후백제를 병합했으니 포함되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 초에 탐라국의 성주가 조선에 완전병합되었으니 한국사에 등록되어야 된다고 봅니다. --18호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09:06 (KST)답변

정통성 역시 중요합니다. 다만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 초에 탐라가 복속되었다고 더 인센티브가 있는게 아니고 다만 통일 왕조였던 고려의 근간을 고스란히 가져온 점이 중요하죠.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9:22 (KST)답변
속된 말로 거져 얻어 먹는 이성계인가요?--18호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09:23 (KST)답변
거져 얻어먹은 건 아닙니다. 신진 사대부들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유교국가를 만드는데 그를 이끌 추진력있는 사람이 이성계였고 이성계도 나름 권력욕이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이들의 이해타산이 맞은거지 이성계가 거저먹었다고 낮출 이유는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7일 (월) 09:28 (KST)답변
아~ !~ --18호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09:36 (KST)답변
고려라는 나라도 유교국가가 아닌가요? --18호 (토론) 2013년 6월 17일 (월) 22:45 (KST)답변

정안국 문제(2)

정안국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정통성 문제

발해의 멸망 후 그 유민들이 여러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발해 태자 대광현은 수 만 명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발해 유민들이 열만화를 따라 정안국을 건국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열만화는 발해의 귀족 출신으로서 발해 마지막 왕인 대인선의 친동생을 도와 후발해를 세운 인물이기도 합니다. 열만화는 태자 대광현의 정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 누가 '정통'일까요? 태자 대광현이 정통인가요, 아니면 마지막 왕의 친동생이 정통인가요? 저는 누가 정통인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며, 그 유민들이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발해는 대부분 부자승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열만화는 일개 호족입니다. 아무리 발해의 왕제(王弟)를 도왔다 한들 부자승계로 이루어진 이상 태자에게 정통성이 가는건 당연합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9일 (수) 09:25 (KST)답변

독립 국가 여부

정안국은 하나의 독립 국가입니다. 고려가 정안국을 인정했는지 여부, 혹은 거란의 요나라가 정안국을 인정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실제로 정안국은 2대 왕 48년간 자체 영토와 백성 및 군사를 거느린 독립 국가였습니다. 궁예가 세운 태봉이나 견훤이 세운 후백제보다 더 오래 지속된 독립 국가였습니다. 중국 송나라는 정안국을 국가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거란을 토벌하고자 했습니다. 거란 입장에서 볼 때 정안국은 48년간이나 지속된 끈질긴 반란 집단이었겠죠. 고려 입장에서는 계륵이었겠죠. 손을 잡자니 거란이 두렵고 그냥 두자니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될테고... 어쨌든 실질적으로 정안국은 하나의 독립 국가였음이 분명합니다.

사대주의적 발상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국이 인정했다고 다 국가가 되는게 아닙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9일 (수) 04:24 (KST)답변

정안국의 영토

정안국의 수도는 '서경 압록부'였으며, 오늘날 압록강 유역(그 북쪽 유역)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안국의 2대왕 오현명이 송나라 황제에게 보낸 표문을 보면, 얼마 전 "부여부"가 정안국에 귀순해 왔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부여부"는 사실상 발해의 중심지로서 당시 만주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미국의 뉴욕에 해당하는 도시(수도는 아니지만 매우 큰 도시)입니다. 그 부여부가 정안국에 귀순을 해 왔다는 뜻입니다. 발해의 마지막 멸망 시 거란에게 대규모로 저항했던 도시도 부여부였습니다.(발해-요 전쟁 참고) 부여부가 거란에게 무너지면서 사실상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이처럼 발해의 중심지였던 부여부까지 정안국의 영토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안국을 정벌한 거란이 그 영토에 4개 주를 설치했다고 하니, 영토가 상당히 넓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문이나 서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독자연구입니다. Ø᚛ᚄᚙᚂᚖᚋᚙᚅᚇᚖ᚜ (토론 / 기여) 2013년 6월 21일 (금) 08:53 (KST)답변
학자도 아니신 분이 추측이라는 억측으로 모든 걸 해석하려 하지 마셨으면 좋겠네요. 추측은 역사학을 배울때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입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1일 (금) 10:47 (KST)답변

정안국의 백성

정안국의 백성은 거의 전부 발해 유민들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백성이 한국인의 조상이듯이, 정안국의 백성들 역시 한국인의 조상입니다. 정안국의 '골수'라는 사람이 고려로 귀순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정안국 멸망 시 10만 명 이상이 거란의 포로로 끌려 갔다고 나오는데, 도망친 나머지 사람들은 고려로 대거 귀순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정안국의 백성은 발해 유민이었고, 그 유민들이 고려로 귀순하여 오늘날 한국인에 섞이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수도 있습니다", "것으로 생각됩니다"라는 것은 이것이 Asadal 님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지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독자연구입니다. Ø᚛ᚄᚙᚂᚖᚋᚙᚅᚇᚖ᚜ (토론 / 기여) 2013년 6월 21일 (금) 08:52 (KST)답변

정안국의 군사력

정안국 2대왕 오현명이 송나라 황제에게 올린 표문을 보면, 두 나라가 힘을 합쳐 거란을 공격하자고 되어 있습니다. 자체 군사력이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거란이 세운 요나라가 정안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서기 983년부터 984년까지 제1차 침공을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정안국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 세력이었고, 나중에 고려에 8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거란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정안국을 침공했으나 실패한 것입니다. 그 다음 해인 서기 985~986년에 거란이 2차 침공을 했습니다. 결국 이 2차 침공에서 버티지 못하고 정안국이 멸망했습니다. 당시 포로가 10만명, 노획한 말이 20만 필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안국은 하나의 독립 국가로서 상당한 자체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힘을 합쳐 거란을 치자고 한게 무슨 군사력이 상당했다는 증거가 됩니까?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게 힘을 합쳐서 백제와 왜를 물리치자고 한 신라의 군사력은 그럼 상당했나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0일 (목) 10:32 (KST)답변

의견

저는 정안국이 한국사 틀에 적어도 발해 칸에 하나의 링크로는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안국이 하나의 독립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 틀에서 별도의 국가로 표시하자는 것도 아니고, 단지 발해 칸에 하나의 작은 링크로 남겨두자고 하는데, 그 링크마저 삭제하는 것은 과도한 삭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6월 19일 (수) 03:04 (KST)답변

토론:정안국에나 가서 의견을 푸시죠. 아무리 정안국에 대한 사실을 전부 열거해도 여긴 한국사 틀 토론이지 정안국 문서 토론이 아닙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9일 (수) 04:23 (KST)답변
그리고 아무리 작은 거라 하더라도 고구려부흥운동, 백제부흥운동은 안되고 이것만 된다는것도 이해가 안되고 또 정안국의 대표성이 없다고 누누히 말했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19일 (수) 04:27 (KST)답변

분쟁이 일어났다라고 듣고 왔는데, 선토론 없는 일방적인 삭제와 누누히 말했습니다 와 같은 소통이 아닌 통보형 표현은 바람직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정안국의 경우, 제가 아는게 틀리지 않다면, 발해부흥운동에 뭉그러져 인식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치만 발해가 고구려부흥운동의 하위 분류로만 묶이지 않듯, 정안국의 존속기간과 행적은 비록 발해에 미치진 못하지만, 역시 부흥운동으로만 두리뭉실하게 설명되기는 어렵다라는 아사달님의 의견도 타당하다 생각합니다. 또 일전에 논란이 되었던 두막루와는 달리 정안국은 국정교과서에도 언급이 되는 점으로 미뤄봤을때 기존의 형태로 표시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3년 6월 21일 (금) 04:48 (KST)답변

정안국이 무슨 정식 국가인양 2대 48년이랍시고 그러나요? 그리고 교과서의 연표에 정안국이 언급이 되어있던가요? 고려랑 연관이 되어있던가요? 정안국 존속기간 동안 한반도에 어떠한 지리적인 또는 정치적인 영향을 끼친 적이나 있던가요?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1일 (금) 04:54 (KST)답변
발해는 최소한 남북국 시대이고 신라랑 교류를 하였으나 정안국은 그 후속국가인 고려랑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 유민이 넘어온 것 말고요. 정안국은 그저 부흥운동이고 정안국이 발해부흥운동의 대표 국가라는 명확성도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1일 (금) 04:56 (KST)답변
역사에 끼친 영향력의 급으로 비유하자는건 아닙니다만, 2대 42년으로 단명한 후한의 연장선이자 중국 삼국시대의 촉한이 3대 100년도 안되는 역사때문에 정식국가로 인정 못받고 있는게 아닌만큼, 아니면 찬탈 양상이 있었다는게 유사한 3대 29년의 북연도 있고, 정안국이 단순한 부흥운동으로만 치부되기엔 48년의 존속기간과 당시 패권국이었던 요나라의 침공을 한번 격퇴한것과 발해계승의식을 가지고 외교활동을 벌인 행적들이 너무 괄시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주목해야만하는 요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산발적인 반란 수준에 불과했던 흥요국과 대원국과는 달리, 발해 멸망 직후 연속성을 가지고 발해의 영토 일부를 수복해 한민족사의 영역이 만주에서 48년간 더 간당간당하게나마 지속,유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상실되었다는 의미가 있지 않나싶고, 정안국의 멸망이란 결과가 한반도 정세인 여요전쟁 발발 조건의 성립으로 이어질수 있는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뭐, 저는 일반적인 지명도도 그렇고, 윤성현님 주장에도 일정부분 동의하는만큼 정안국이 특별히 표시되지 않은 틀:한국사 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정안국이 작게 표시된 틀:한국사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해서, 제 의견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후자에 손을 보태고 싶다는 것과 정안국을 부흥운동 수준이 아닌 정식 국가로 취급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겁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3년 6월 21일 (금) 05:39 (KST)답변
발해계승의식이라면 고안승의 고구려도 충분하고 복신과 도침의 백제부흥운동도 있습니다. 하다 못해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와 신라에 맞서서 백촌강 전투도 했지만 결국은 이 연표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안국이 멸망한게 여요 전쟁의 원인의 하나지 주요한 원인은 아닌 걸로 압니다만. 그래서 한국사로 인정하지 않는게 아니잖습니까? 다만 형평성 차원에서 이 나라는 들어갈수가 없습니다. 왜 대표성도 없고 수많은 나라가 난립했던 발해부흥운동 중 유독 이나라만 이 틀에 올려져야 한다는 겁니까. 그리고 정식 국가로서 송나라에게 인정을 받았다지만 정작 한국사에서 정통 왕조인 고려에서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인정도 못받았습니다. 형제국인 발해의 후신이었다면 이에 대한 외교적 관계는 수립이 되었어야 하는게 정상입니다. 형평성이건 정통성이건 그리고 비중이건 정안국은 세 분야 다 미달이며 그렇기에 개략적인 한국사를 다루는 한국사 연표에 올라올 이유가 없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1일 (금) 08:21 (KST)답변
뜬금없지만 한가지 딴죽을 걸자면, 전근대 한국에 "민족"개념은 존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민족"이란 nation을 일본인들이 번역한 것으로, 정안국이 존재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 영역이 지속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더하여, "정안국의 멸망이란 결과가 한반도 정세인 여요전쟁 발발 조건의 성립으로 이어질수 있는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라는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문이나 서적 자료가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독자연구입니다. Ø᚛ᚄᚙᚂᚖᚋᚙᚅᚇᚖ᚜ (토론 / 기여) 2013년 6월 21일 (금) 08:48 (KST)답변
최소한 중세인 고려시대에나 들어서야 "민족"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혔습니다. 물론 지금 뜻하는 민족과는 달라고 그나마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이지 결코 우리는 피를 나눈 한민족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요 전쟁은 거란이 고려-송나라의 수교 단절이 주요한 이유지 정안국이 멸망했다고 거란이 쳐들어 왔던가요? 말했듯이 고려는 정안국과 수교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 윤성현 · 기여 · F.A. 2013년 6월 21일 (금) 10:46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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