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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군

독일 연방군 ( Bundeswehr ) 은 2차세계대전이후 연합국의 분할통치이후 1955년에 설립된 독일의 군사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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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군(獨逸聯邦軍, 독일어: Bundeswehr 분데스베어[*];듣기 , 영어: Federal Defence Forces of Germany)은 독일연방공화국육군, 해군, 공군전력기반군, 구호업무군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독일 연방군
Bundeswehr Kreuz Black.svg
문장
창립일 1955년
국적 독일 독일
편제 Bundeswehr Logo Heer with lettering.svg 육군
Bundeswehr Logo Marine with lettering.svg 해군
Bundeswehr Logo Luftwaffe with lettering.svg 공군
Bundeswehr Logo Streitkraeftebasis with lettering.svg 전력기반군
Bundeswehr Logo Sanitaetsdienst with lettering.svg 구호업무군
충원방식 모병제 (전시 징병제)
상비군 18만 4000명
예비군 43만 3000명
지휘체계
본부 베를린, 포츠담
통수권자 앙겔라 메르켈
국방장관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군사비
예산 446억 9000만 달러
정부재정 대비 1.2%
방위산업
함께 읽기
웹사이트 [3]

2010년 12월 15일부터 세르비아[1] 마찬가지로 징병제시행을 "유예"(사실상폐지)하였다. 그뒤, 2011년 7월 1일부터 법적으로 완전 폐지되었다.[2][3]

독일연방군이 징병제이던 시절에도 현역병사로 입대하기 위해서는 체력측정과 필기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이들에 한해서만 현역사병이 되었으며 독일연방군에 지원하지않거나, 지원했다가 불합격하면 사회복무요원으로 편입되었다.

목차

조직편집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에 따르면, 최고통수권은 평시에는 국방부장관이, 전시에는 총리가 연방군 지휘권을 담당한다.

오늘날, 연방군장군총감(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과 똑같은 보직)은 폴커 비커 육군포병대장이다. 독일연방군에서는 이사람만 대장이며, 각군참모총장중장보직이다.

독일은 주요서방선진국가가운데에서는 거의하나뿐인 징병제국가였으나, 2010년에 기존정책을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다. 148,996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차408대, 전술기783대, 군함90척을 보유하고 있다. 예산감축으로 독일연방군은 전력이 절반이하로 크게 줄어버렸으며, GFP의 순위에서도 10위밖으로 밀려났다. 네덜란드의 드 제벤 프로빈센급과 에이파 시스팀 그리고 스마트L감지기를 단 배인 독일의 작센급, 독일과 네덜란드의 군함공동개발은 같은 체계를 쓰는것이지, 선체디자인까지는 같이 하자는건 아니었기에, 양국은 선체디자인에 대해선 따로 독자적인 설계로 건조한다. 브란덴부르크급을 바탕으로 설계, 건조했으며 독일해군을 대표하는 함가운데하나가 작센급이다.

독일연방군은 다음과 같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조직은 전원중장보직의 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전력기반군사령관, 구호업무군사령관)을 지휘관으로 하고 있다.

2010년12월15일이전에는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어 만18세이상의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지고있었다.[4]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제12a조2항에 따라, 자신의 신념따위에 따라 전투를 거부하는 자는 대체복무제도 신청할수있다. 이경우에, 민사복무제도(대체복무제)[5](Zivildienst)로서 병원, 노인간호시설따위의 사회복지시설에서 병역의무와 같은 기간동안 복무한다.

2010년 12월 15일부터 세르비아[6] 마찬가지로 징병제시행을 "유예"(사실상폐지)하였다. 그뒤, 2011년7월1일부터 법적으로 완전폐지되었다.[7][8]

오늘날, 독일연방군의 병력은 25만명이다. 25만명가운데, 5만명은 9달동안 병역의 의무를 지는 18세위, 25세아래의 이다. 병사밖의 군무원은 7만 5천명까지 삭감할 예정이다.

1975년뒤로 독일연방군안에 여군이 배속되어있지만, 당초에는 의료부대에의 배속에만 머무르고있었다. 한 여군은 이러한 배치에 불복해 유럽사법재판소2000년에 제소한다. 결국, 유럽 사법재판소는 여군이 더 폭넓은 역할을 군대안에서 할수있도록 인정하라고 판결을 내린다. 그 결과, 2001년부터 여군은 연방군안에서 모든 임무에 제한없이 근무할수있게 되었다. 연방군안에는 1만3천명의 여군이 평화유지활동이나 다른 작전행동배치따위의 모든 군생활에 배치되고 있다.

한편, 한 남성이 '남성에 대해서만 병역을 강제하는 것은 양성평등에 어긋나며 기본법위반이다.'를 이유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헌법재판을 신청했다. 하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남성만의 징병제는 합헌이라고 판결내렸다.

독일군의 편제는 좀 독특한데, 과거부터 독일인들은 소대장=부사관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하지만, 중대장의 결원을 대비해서 소대장 가운데 1명만 장교로 보직시키며, 나머지 소대장은 부사관이 담당한다. 또한 장교도 두가지신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소대장이나 중대장위주로 군복무하는 초급지휘장교와 장관급장교를 목표로 군복무하는 참모장교로 나뉜다. 초급지휘장교는 어지간하면 중대장까지는 다 올라가지만 그 가운데특출나게 뛰어난 몇 안되는 인원만 대대장에 올라가며, 참모장교는 소대장과 중대장을 담당하지않으며, 위관급장교시절동안 참모만 하다가 대대장으로서 첫 지휘관을 담당한다. 때문에 초급지휘장교는 정년이 보장되어 있는 반면, 참모장교는 진급에서 누락하면 제대해야한다. 또한 각군참모총장은 중장이 보직하며, 힙동참모의장격인 연방군장군총감만 대장이 보직된다. 따라서 독일연방군은 대장1명과 중장5명[9]으로 중장 이상의 계급은 모두 6명만 보직된다.

역사편집

냉전기편집

  • 여기에선 1955년에서 1990년까지의 독일연방군에 대해서 설명한다.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은 1955년 재무장을 시작한다.

제2차 세계 대전에 패전한 나치독일은 연합군의 명령으로 어떠한 종류의 재무장계획도 금지되고있었다. 그래서 서독은 완전히 무장해제상태에 있었다. 다만, 소규모의 국경수비대나 작은 함대만 보유하고있었다. 국군의 설립은 인정되지않았고, 결국 독일의 국방은 연합국4개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책임지고있었다.

 
통합 의료 부대의 차량

그러나 한국전쟁자본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사이의 긴장이 높아짐에 따라, 독일의 비(非)무장화 정책에 변화가 생긴다. 소련영향력아래의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은 은밀하게 재무장을 실시했으며 미국영국, 프랑스도 이에 자극받아 서독의 재무장정책을 허가한다. 1950년에 새로운 연방군창설을 위한 기본 구상이 실시되어, 콘라트 아데나워(Konrad Adenauer) 초대연방수상은 구(舊)독일국방군 장군15명을 모아서 재무장의 기술적가능성을 검토하도록 명령한다.

전문위원회의 검토뒤, 연방군의 새로운 기본구상이 만들어진다. 이것에 근거해 국회의원 테오도어 블랑크(Theodor Blank)는 새로운 연방군설치를 진행한다. 이것을 이유로 연방 국방부의 전신을 '블랑크국'(Amt Blank)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옛나치독일국방군 출신의 15명의 전문위원의 연방군창설준비참가는 인정되지않았다. 이것은 나치에 의해 더럽혀진 국방군전통과의 결별을 명확히 위함이었다. 독일연방군은 군복이나 계급에 대해서도 프로이센군색깔을 빼버렸다.

국방군 육군 대장 출신인 자유 민주당(Free Democratic Party)의 정치가 하소 폰 만토이펠(Hasso-Eccard Freiherr von Manteuffel)은 새로운 국군의 명칭에 Bundeswehr(분데스베어, 연방군)를 제안해 독일연방의회의 승인을 얻는다. 나치독일시대는 Wehrmacht(베어마흐트, 국방군)라고 하였다.

미국영국, 프랑스 3개국은 독일의 재무장에 대해 달리봄도 있었다. 특히 프랑스20세기독일프랑스 관계를 따지면서 서독의 재무장에 대해 난색을 나타냈다. 프랑스미국이 진행하고 있던 독일 재무장과 NATO 가맹안에 대해 초국가적인 범유럽군구성을 위한 '유럽방위공동체' 구상을 밝혀 1952년 서독을 포함한 서방각국에서 조인한다. 그러나 주권의 침해를 좋아하지 않던 드골주의자들의 반대로 1954년에 프랑스의회에서 부결되었으며, 결국 비준되지못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결국 서독의 재무장과 NATO 가맹을 인정했다.

연방군은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Gerhard Johann David von Scharnhorst)의 200돐생일인 1955년 11월 12일에 정식창설되었다. 독일연방공화국기본법의 수정뒤, 서독1955년북대서양조약기구참가국이 되었으며, 1956년에는 18세부터 45세까지의 모든 남성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했다.

냉전동안, 독일연방군은 NATO서유럽방위의 주력군이 되었으며, 전군을 통틀어 49만5000명의 병력과 17만명의 군무원을 거느리고있었다. 육군은 12개의 사단과 3개의 군단으로 구성되어있었으며, 전차장갑차, 수송차들로 구성되었다. 공군은 전술전투기 여럿보유하고 있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통합방공군(NATINAD)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해군발트해방위를 맡고있으면서, 북해증원군이나 보급선호위를 실시하고 있었으며, 소련발트함대봉쇄를 실시했다.

재통일 후편집

  • 여기에선 1990년 이후의 독일연방군에 대해서 설명한다.

1990년독일의 재통일 후, 동독정부 및 서독정부(재통일의 당사자), 미국영국, 프랑스, 소련정부(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독일에 대해 승전한 연합국)은 '독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2+4조약[10])을 체결해 독일연방군을 37만명까지 감축시켰다. 동독정부의 국군이었던 국가인민군은 해체되었으며, 군과 무장의 극히 일부가 연방군으로 흡수, 통합되었다.

약 2만명의 동독 연방군은 공식적으로 1990년 10월 2일에 연방군으로 흡수되었다. 증가한 2만명 중, 징집병, 단기 부사관이나 장교들은 병역 기간 만료를 이유로 신속히 감축시켰다. 국가인민군에 있던 많은 장교는 2년 내(內)로 한정한 고용계약을 체결해 일상업무를 계속하게하였으나, 장군제독은 전역처리되었다. 연방군으로 옮긴 국가인민군은 개인의 적성이나 경험을 재평가해 새로운 고용계약이나 계급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많은 군인은 국가인민군 시대보다 낮은 계급을 받게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군대통합'(Armee der Einheit)의 격언아래에서 진행되고 있던 국가인민군의 통합과정은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며,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다.

 
보스니아에서 작전중인 독일 연방군

불필요해진 서독연방군과 동독국가인민군의 기자재가 대부분 폐기되었다. 기갑차량의 수나 전투기는 국제적감시아래에서 감축되었다. 함선은 해체되거나 제3국으로 매각되었다. 그가운데, 전투기등은 1993년에 분리독립한 체코슬로바키아, 이외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의 후신인 슬로베니아에 1달러에 매각되기도 했으며, 인도네시아국가인민군의 다양한 함선39척을 사들였다. 또국가인민군의 장갑수송차가 터키의 군대로 팔려 터키동남부(오늘날, 분리를 목표로 하는 쿠르드족과 마찰을 빚고있는 분쟁지대)에서 운용되고있다.

국제연합국제연합평화유지군 활동(PKO) 및 인도적원조활동이나 NATO의 군사행동에의 독일연방군의 참여, 독일의 다국적군참가 및 원조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2000년에 대규모군개혁을 실시했다. 병참, 통신, 헌병 등 각군의 후방지원임무 및 의료임무를 3군통합으로 두었으며 후방지원군과 통합의료부대가 탄생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 많은 국가에서 의료부대는 각 군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의료의 통합은 전례가 없었다.

독일연방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안쪽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우수한 선진기술력이나 보급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국방예산은 해마다줄어들고있다. 결국 국내총생산가운데, 국방비비율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가장낮은수를 기록하고 있다.

임무편집

독일연방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으로서 유럽방위의무를 지고있다. 연방군의 임무는 기본법87조에 '방위'로 규정되어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국제정세가 단순한 동서대립에서 전체적인 불안정상태로 변화하고있어, 연방군의 대응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1991년의 걸프전쟁은 다국적군에 자금지원으로만 참가하고, 인적자원적으로 참가하지않았던 것은 국외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994년,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법의 방위는 독일국경을 지킬뿐만 아니라 위기에의 대응이나 분쟁방지 및 전세계에서 독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요한 행동을 가리킨다.'라고 판결했다. 결국 이는 독일연방의회의 사전승인에 의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역외에의 파병이 인정되는 계기가 된다. 연방국방장관 페터 슈트럭(Peter Struck)은 방위의 정의를 '독일을 지키기 위해선 아프가니스탄산맥에 군을 내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부의 '방위' 개념의 확대에 따라 1990년대 이후 독일연방군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나 유럽연합, 국제연합의 일원으로 독일밖에서 PKO작전을 실시하는게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UNTAC,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유럽연합부대 'EUFOR', 코소보의 'KFOR', 아프가니스탄의 국제치안지원부대,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소말리아,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레바논 등의 군사작전이나 평화유지활동이 그것이다. 한편, 전사자의 수도 50명을 넘고있어, 부상이나 정신불안정에 괴로워하는 들도 있다.

전통편집

일찍이 독일에는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의 독일국가방위군이나 나치독일 시대의 독일국방군(Wehrmacht) 등의 군대가 있었다. 그러나, 1955년, 창설된 독일연방군은 스스로 이러한 조직과는 별개의 조직이라고 여겨보고 있으며, 프로이센군따위의 이전의 모든 독일군대의 전통계승을 거부했다.[11] 현재의 독일연방군의 공식적인 '전통'은 다음 3가지다.

독일연방군의 문장으로는 구 독일국방군이 채용하고 있던 발켄크로이츠(검정십자)가 아니고, 검정십자의 끄트머리가 벌어지는 철십자를 채용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구 독일국방군이 '인도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거부할 수 없었던 이유로 들었던 '상관의 명령에 대한 절대복종'이라고 하는 전통은 부정되어, 기본법에서는 '항명권'의 행사가 명문화되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편집

인용편집

  1. “보관된 사본”. 2012년 1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5일에 확인함. 
  2. [1]
  3. 서독 학생들이 동독 대학을 선호하는 까닭. 시사INLive.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4. 독일 연방군 창설 당시에는 모병제를 도입했다. 1956년 1월, 동독바르샤바 조약 기구(WTO) 가맹에 따라 7월, 일반 병역 의무법이 제정되어 만 18세 이상의 남성에게 12개월의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다. 1962년에는 18개월로 연장되었다. 岩間陽子, 'ドイツ再軍備'(中央公論社)P.311, 'カラー世界史百科 増補版'(平凡社)P.535
  5. 대한민국사회복무제도독일의 '민사복무제도'(대체복무제)를 벤치마킹한 것이나, 그 대상과 방식, 징병기간 등에 있어서 다소 차이가 있다.
  6. “보관된 사본”. 2012년 1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2월 25일에 확인함. 
  7. [2]
  8. 서독 학생들이 동독 대학을 선호하는 까닭. 시사INLive.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9. 독일 연방군에서 중장 보직은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군수지원사령관, 의무지원사령관 이렇게 5개 보직이다.
  10. 여기서 '2'는 재통일의 당사자인 동독서독을 가리키며, '4'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을 점령한 연합국을 가리킨다. '4'는 독일을 점령한 당사국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2'의 통일을 위해서 '4'의 참여가 필수적이여야 했다.
  11.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이 치열해지면서 소련동구권 국가의 서부 유럽 침투를 두려워하고 있던 미국, 영국, 프랑스서방은 동서로 분할 통치되고 있던 독일의 통일을 단념했다. 따라서 중앙유럽 측에 대항하는 강력한 방어선으로 서독을 독립, 재무장 시킬 것을 결의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전통적인 독일군의 부활은 다시 유럽의 위협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며 서독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군대의 창설이 필수적으로 여겨졌다(이것은 영국, 미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의 요구였으며 또한 서독 여론의 요구이기도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병제를 기본으로 하는 방위 관련법을 정비해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 개정을 단행한다. 결국 군 통수권을 정부 및 의회가 장악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또 독일 연방군은 1955년 발족과 동시에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잇따라 1956년에는 서유럽 연합(WEU)에 가맹해 집단안전보장을 꾀하게 되나 그 행동이 규제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구 독일 국방군과는 다르게 되었다. 岩間陽子 'ドイツ再軍備'(中央公論社)P.271-280

자료편집

  • 松隈徳仁 (1969). 《西ドイツの再軍備とデモクラシー : 平和と戦争の研究 II》 (일본어). 有斐閣. 
  • 岩間陽子 (1993). 《ドイツ再軍備》 (일본어). 中央公論社. ISBN 4-12-002227-7.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