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Asadal/2012년 하반기

마지막 댓글: Asadal님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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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하반기 사용자 토론 내용을 보관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21일 (월) 21:21 (KST)답변

인용문은 서명 부분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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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토론에서 아사달(Asadal) 님이 인용문을 포함한 의견을 다실 때 서명 뒤에 인용문을 넣는 것을 몇 번 보았습니다. 서명은 자신의 의견을 구분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자신의 의견 뒤에 인용문을 넣게 되면 그 의견 뒤에 작성하는 사용자가 그 인용문을 인용하여 의견을 쓰는 것처럼 오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례적으로도 인용문을 포함한 자신의 의견을 쓸 때도 인용문과 의견을 모두 작성한 후 그 뒤에 서명을 하니, 이 점을 참고하셔서 인용문을 넣으실 때 토론을 보는 다른 사용자가 누구의 의견인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서명의 위치를 잘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Min's (토론) 2012년 9월 21일 (금) 20:56 (KST)답변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인용문 뒤에 서명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9월 22일 (토) 11:27 (KST)답변

중재위원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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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위원은 임기가 1년으로, 중임을 원할 경우 재신임선거를 치루어야 합니다. 관리자 선거가 종신직인 것과는.. 다소 다른 측면이지요. 가람님 토론란에서 질의응답을 하기가 조금 이상(?)해서(토론란이 변경되었다고 메세지가 뜨므로...) 이곳에 직접 남기었습니다 :) --Sotiale (토론) 2012년 10월 2일 (화) 20:15 (KST)답변

예, 잘 알겠습니다.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3일 (수) 10:41 (KST)답변

보존 토론에 올라온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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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넘어갈 만한 지나간 이야기 입니다만, 그래도 알아는 두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 알려드립니다. http://xakyntos.egloos.com/2886535 78.53.15.94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06:08 (KST)답변

예,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저와 여러 차례 토론을 벌였던 Xakyntos 님이 두막루에 대해서 글을 썼군요. 여전히 자기만의 주관적 해석이 강하더군요. 정작 학계의 논문 2편(김정배, 유태용)은 읽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추측을 남발하더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2:14 (KST)답변
블로그에 남겨주신 말씀은 잘 보았습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아사달 님께서는 역사학에서 사료 비판을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 잘 알지 못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제가 굳이 《위서》〈두막루전〉과 《위지》〈동이전〉을 글자 단위로 비교해가면서 따져본 것도 다 그런 사료 비판의 한 방법이죠.
귀하께서는 두막루가 나온다고 몇몇 사료를 들고 계시지만, 실제 그 사료들을 역사학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는 방법으로 살펴보면 극히 소수만이 원전 사료로서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2차 사료나 인용 사료로 말 그대로 삭제됩니다. 박경철의 논고를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실제 두막루 관련 기록 가운데 역사학에서 취급 받는 사료는 《위서》〈두막루전〉과 〈실위전〉, 《신당서》〈유귀전〉 등일 뿐, 《북사》나 《만주원류고》는 아무도 들쳐보지 않습니다. 저런 사료들은 말 그대로 원본인 《위서》〈두막루전〉 등을 복사한 것이거나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죠.
《북사》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한데, 원래 《북사》와 《남사》의 편찬 의도 자체가 남북조의 여러 사료들을 말 그대로 짜집기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료가 소실되어 《북사》에만 남아 있는 기록이 아닌 이상, 아무도 《북사》를 굳이 들쳐보지 않습니다. 그보다 원본 사료인 《후위서》나 기타 남북조 당시의 기록을 보면 되니까요. 제가 블로그에서도 언급한 예사 문제나 소실되어 복원된 문제 역시 《위서》에서 소실된 부분을 《북사》에서 보충하였던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죠. 아직 자료 조사 중이긴 합니다만, 《위서》가 복원된 부분은 〈두막루전〉이 포함된 100권 다음인 101권부터 103권인가까지가 소실되어 《북사》에서 다시 복원한 부분입니다.
이런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귀하처럼 얼마 있지도 않은 사료를 어떻게든 많아보이려고 기를 쓰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북사》나 《만주원류고》를 사료의 하나로 언급하는 멍청한 짓을 하는 학자는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료를 어떻게 판별하는지도 모르면서 역사학 전공자에게 이런 사료도 있다 까불지 말라는 투로 말하지 마십쇼. 스스로의 수준을 낮추는 행동이니까.
역사학에서 사료를 판별하고 비판하는 방법론에 따라, 저는 《위서》〈두막루전〉을 비판한 것이고, 귀하께서 주관적이라 폄하하는 것은 자유이겠으나 본인은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하는 합리적 회의주의에 입각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잘 보고 있으니 쓸데 없는 충고는 필요 없습니다. 귀하야말로 귀하의 주장만 초지일관 옳다고 우기는 몹쓸 버릇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낳고 위키백과에서 대규모의 키배를 벌이게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시기 거듭 당부드립니다. 적어도 저는 저의 주관이나 저의 추측을 가지고 위키백과에서 쓸데 없는 토론을 벌여 트래픽을 낭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저의 블로그에서 하는 추리에까지 주제넘는 간섭 마시고 귀하나 자중하시기 바랍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4:35 (KST)답변
뭔가 좀 착각하신 듯 한데, 사료 비판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 사료를 제시한 것은 오직 한 개의 잘못된 사료만 있다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쓴 글일 뿐입니다. 여러 사료가 있다는 것은 후대의 사람들이 해당 자료를 인정할만한(적어도 재인용 또는 Copy & Paste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황당한 주장, 잘못된 주장이라면 후대의 여러 정사 기록에서 그대로 인용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유사의 고조선 기록을 허황되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 역사에서 고조선을 삭제하고, 삼국시대부터 서술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료 왜곡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혹시 님도 그와 비슷한 오류를 시도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역사학계 운운하시는데, 이 분야(두막루)의 대표적 논문인 김정배, 유태용의 논문도 제대로 안 읽어보고서, 학부 졸업생 수준의 주관적 추측을 남발하는 것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의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이라고는 하지만, 수준 이하의 추측을 남발하지 마시고, 우선 학계의 논문부터 읽어보시를 권해 드립니다. 두막루에 관한 토론은 아래 논문을 읽은 후에 다시 진지하게 토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 김정배 저, 《한국고대사와 고고학》, 신서원, 2000년 8월 29일.
2. 유태용, 〈두막루국 흥망사 연구 시론〉, 《백산학보》 제70호, 2004년 12월, 141~159쪽.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4:54 (KST)답변
귀하야말로 착각하지 마십쇼. 이미 상나라 논쟁 때 말한 적이 있는데 또 그러시군요. 전근대 사료에서 제아무리 copy & paste한 것을 가져와봤자 현대 역사학의 사료 비판으로 끝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까? 귀하의 말대로라면 기자동래설을 기록한 사료는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럼 기자동래설이 사실입니까? 현대 역사학에서 똑같은 내용, 앞의 것을 복사 붙여넣기 한 사료들은 아무리 많아봤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전근대인들이 사실이라 믿고 제아무리 사료를 산더미같이 남겼던들 사료비판을 통해 원본이 되는 최고(最古) 사료가 허구임이 드러나면 모조리 다 휴지조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위서》〈두막루전〉의 사료가치를 의심했던 것이고 말이죠.
귀하가 수준 이하라 판단하건 말건 그것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남의 블로그에 와서 감놔라 배놔라 하지 마십쇼. 아직 입론 수준에 불과해서 굳이 위백에 가져오지도 않은 이야기를 애써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라구요? 위키백과에서 아는 것도 조금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제일 처음 본 주장만 오로지 옳다고 우기는 귀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게다가 나는 역사학의 방법론을 말했지 역사학계는 언급조차 한 적도 없으니 얼척없는 말씀은 더더욱 하지 마십쇼. 귀하의 난독 증세나 증명할 뿐이니까요.--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5:26 (KST)답변
두막루에 관한 사료 비판은 이미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권위 있는 학자들에 의해 학술 논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귀하께서 그 논문의 내용과 전혀 다른 180도 상반되는 주장을 제시했는데, 그런 무모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두 논문에서 제시한 사료 해석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도리에 맞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그리고 귀하의 특징인 인신 공격성 발언은 오늘도 여전하신데, 좀 자제해 주시죠. "위키백과에서 아는 것도 조금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제일 처음 본 주장만 오로지 옳다고 우기는..." ---> 이런 말은 안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6:49 (KST)답변
덧붙이자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한국사> 책에 두막루의 부여 계승설 한 가지만 서술하고 있습니다. 즉, 두막루는 부여를 계승한 한국계 국가라는 말입니다. Xakyntos 님이 이 학설과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려면, 먼저 기존 연구 논문부터 살펴본 후에 다시 논의에 참가해 주세요. 토론할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인격 모독적인 언사까지 들어가며 토론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두막루에 관한 내용은 역사 분야에서도 매우 전문적인 내용이므로 그냥 일반인의 상식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학계의 관련 논문부터 읽은 후에 반론을 제시하든, 아니면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든 해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7:02 (KST)답변
1. 귀하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인신공격성 발언은 자동 필터링되나 봅니다. ‘마음대로 추측을 남발하는 것’, ‘이게 모두 "더러운 예사"인가요?’, ‘얼마나 많은 잘못된 역사 인식을 퍼뜨리는지’ 등등은 참 잘도 인신공격이 아니겠습니다. 모욕적인 언사를 하면서 시비를 건 것은 귀하가 먼저입니다. 귀하께서 먼저 시작하신 비꼬기니 저도 귀하가 그만둘 때까지 비꽈드리겠습니다.
2. 저 혼자 블로그에서 끄적거린 것까지 귀하의 허락을 받고 귀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겁니까? 제가 언제 위키백과에다가 저 내용 가지고 한 글자라도 쓴 적이 있습니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귀하입니다. 제가 뇌내망상을 벌이던 지지고 볶던 그게 귀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하다못해 귀하에 대해서 뭔가 뒷담화를 까면서 욕하고 그랬으면 모르겠는데, 귀하에 대한 언급은 고작해야 서론 격에서 살짝 넘어가고 만 일입니다. 귀하에게 제 블로그의 해당 글을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딴 식으로 시비를 걸고 어처구니 없는 태클이나 걸라고 가르쳐준 것은 아닐 겁니다. 귀하야말로 자중하십쇼. 애초에 논의도 하지 않고 있던 일에 먼저 찾아와 시비를 건 것은 귀하입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7:27 (KST)답변
알겠습니다. 더 이상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으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토론을 종료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표현에 대해 불쾌한 점이 있었다면 사과를 드리며, 제 본 뜻이 아니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Xakyntos 님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비록 저와는 너무나도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역사에 대한 귀하의 지식만큼은 매우 훌륭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진작부터 해 드렸어야 하는데, 이제서야 하게 되는군요. 앞으로 서로 얼굴 붉히지 말고,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7:43 (KST)답변

사례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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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토론: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축하 모임#프로그램 구성에서 의견 나누시면 될거 같아요. --거북이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18:35 (KST)답변

예, 링크를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위키백과:사랑방에서 논의하기보다는 별도로 마련된 행사 준비 공간에서 논의하는게 맞겠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6일 (토) 23:52 (KST)답변
발표 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매우 흥미로운 발표가 될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축하 모임의 프로그램에 아사달 님 필명을 기재하였습니다. (실명과 소속의 기재를 원하시면 문서를 직접 수정해 주시면 됩니다.) 발표 전에 위키백과:오프라인 모임/위키백과 10주년 기념행사와 같이 발표 내용을 프로그램 테이블 내에 링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네랄삽빠 (토론) 2012년 10월 8일 (월) 12:21 (KST)답변

개인적 부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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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 위키의 주요 활용 모습을 스크린샷을 짹어 저의 이메일로 보내주실수 없으실까요? 10주년때 못가니까 아쉽고 이후 토론토에서 오프를 여는데, 10주년때 관련 이야기를 할때 활용도 하구요 . 심한 부탹 해서 죄송합니다. 10,000+ 분당선M (T · C.) 2012년 10월 9일 (화) 09:44 (KST)답변

예, 10주년 행사 때 분당선M 님도 함께 참여하면 좋을텐데, 아쉽군요. 멀리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응원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곧 발표자료를 완성해서 그 안에 스크린샷을 포함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메일 주소 좀 알려주세요. 참고로 제 이메일은 mail@asadal.com 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9일 (화) 09:55 (KST)답변
예 저의 메일은 charlie43@naver.com 입니다. 10,000+ 분당선M (T · C.) 2012년 10월 9일 (화) 09:57 (KST)답변
분당선M 님께 이메일로 제 발표자료 원본 파일(pptx 및 pdf)을 보내드렸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2:18 (KST)답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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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반스타
제가 꼽은 오늘의 MVP이십니다. -- 거북이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00:30 (KST)답변

감사합니다. 이렇게 스페셜 반스타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한국어 위키백과 10주년 기념 행사에서 많은 분들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이번 행사가 1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잘 끝났습니다. 위키미디어 대한민국(준)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시며, 이번 기념 행사 제1부 사회를 보신 거북이 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1:08 (KST)답변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멋진 발표를 하시어 행사를 빛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일 동시간대에 일이 있어 코엑스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올려주신 pdf파일로, 또한 다른 참여자분들의 후기로 멀리서나마 하신 발표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사달님을 직접 못 뵙고, 또한 해주셨던 소중한 발표를 듣지 못함에 아쉬움을 감출 수 없으나, 지나간 것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다음 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 다시금, 10주년 기념행사를 빛내주신 점에 대해 위키백과의 한 참여자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말도 이제 반나절 지나왔는데, 남은 시간 좋은 하루를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Sotiale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1:42 (KST)답변

안녕하세요. 흥미가 계실수도 있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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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연히 북한 교과서에 실려있는 고구려 영토 지도를 보던중 두막루를 발견하여[1] 북한에서는 두막루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싶어 북한자료센터 홈페이지에서 간단히 검색해본 바, 북한학자가 쓴 두막루 논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링크의 지도는 중학교1 조선력사 혹은 고등중학교3 조선력사에 실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론문)두막루국에 대하여, 권승안[2]

서초동의 국립중앙도서관 북한자료센터에서 열람이 가능하다니 호기심에 독일에서 서초동까지 달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중요한것은 특수자료 취급인지라 열람하기가 쉽지 않아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점으로 북한 사학계의 그 유명한 특수성과 특수자료로 취급될 정도면 정치적인 문구 또한 들어가 있을수 있으니 별 의미없는 글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쨋든 두막루 관련해서 힘쓰셨던 아사달님이시기에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6:47 (KST)답변

그리고 예전에 제가 한번 (연합뉴스 기사에 근거해서) 낙사계가 거란의 수장이라고 말씀드렸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 해당 논문, 渤海人 諾思計 墓誌銘에 대한 고찰 - 제주대 김영관 , 을 읽어보니 기사의 내용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3] 낙사계 묘지명 첫문장에 나오는 당 황제가 하사했다는 이름 노정빈이, 거란과의 전투에 참여해서 공을 세웠고 그 공적을 당 황제에게 알리는 문서에 이름이 포함된것으로 낙사계 묘지명에는 없는 이 사건을 통해 당나라 때의 명문장을 모아둔 문원영화에 등장합니다. 다시말해 거란의 수장이 아닌 당 장군으로서 대 거란 군공을 세웠다는 내용인 것이죠. 블루베리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6:50 (KST)답변
끝으로 두막루의 최후를 구성할만한 소재와 하나의 새로운 흥미로운 부분을 논문에서 인용하여 소개해드립니다. 아래 낙개몽이 흑수말갈 소속이었다가 발해인으로서 등장하는 728년 그리고 발해 무왕이 일본에 국서를 보내 '부여의 습속을 이어받았다'는 것도 역시 728년. 게다가 토욕혼의 모용낙갈발=Murong Nuohebo=诺曷钵이라.... 모용선비라면 (악연으로) 부여와 연관이 많았고, 고운(모용운)의 경우도 있으니.

낙사계와 같은 諾(낙)씨는 문헌에서 발해인 諾箇蒙(낙개몽)이 찾아진다. 낙개몽은 당 현종 13년인 725년(발해 武王(무왕) 7년) 4월 발해의 사신 謁德(갈덕)과 함께 黑水靺鞨(흑수말갈)의 사신으로 당에 내조하여 果毅(과의)를 제수 받은 후 귀국한 적이 있다.[1] 그리고 728년 당에 조공한 발해 黑水部(흑수부) 수령의 이름을 열거하는 가운데에도 낙개몽이 포함되어 있다. [2] 이로 보아 낙개몽은 발해에 예속된 흑수부 출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낙개몽은 발해의 사신으로 당에 내조하였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諾箇蒙(낙개몽)과 같은 성을 가진 諾思計(낙사계) 역시 발해 출신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낙사계 역시 흑수부 출신 발해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낙개몽과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당이 내조한 발해 수령들에게 官爵(관작)을 내려주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성과 이름을 내려주는 일도 있었다. 728년 흑수군 도독에게 李(이)씨 성과 獻誠(헌성)이라는 이름을 내려준 적이 있다.[3].諾(낙)씨 성을 가진 인물로 吐藩(토번)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도 찾아진다. 당 고종 함형 3년(672) 鄯州刺史(선주자사)로 임명된 諾曷鉢(낙갈발)이 바로 그 사람이다. [4] 諾曷鉢(낙갈발)이 당의 선주자사로 활동하던 시기는 발해가 건국되기 전이므로, 발해 출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이때는 고구려가 멸망한 직후이므로 혹 諾曷鉢(낙갈발)이 고구려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諾氏(낙씨)를 흑수말갈 출신으로 보더라도 고구려 멸망 이전에 이들은 고구려에 예속되어 있었으므로 고구려인이라고 보는데 무리가 없다[5] 발해가 고구려의 유민들이 중심이 되어 건국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므로, 고구려 유민 중 諾曷鉢(낙갈발)과 같은 諾(낙)씨 성을 가진 인물이 발해 건국 전에 당에 들어가 지방관으로 임명되어 활약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6] 결국 諾曷鉢(낙갈발)과 같은 諾氏(낙씨)는 발해의 성씨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낙사계는 원래 발해의 부여부를 다스리던 대수령이었으나 당에 투항해 당대의 명망귀족인 범양의 노씨와 같은 盧氏(노씨) 성과 庭賓(정빈)이라는 이름을 황제로부터 하사받음으로써 당의 지배 귀족으로 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이 묘지문의 첫 부분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연유로 당에 투항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같은 諾氏(낙씨)이기는 하지만, 낙사계가 672년에 선주자사로 활동했던 諾曷鉢(낙갈발)의 직접적인 후예라고 보기는 어렵다. 낙사계가 부여부의 대수령을 역임했고 당 현종 때인 744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묘지명의 기록으로 보아 두 사람이 혈연적으로 직접 연결된다고 상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725년 당에 사신으로 왔던 諾箇蒙(낙개몽)과의 관계도 설정하기 어렵다. 만일 두 사람이 부자 관계였다면 낙사계의 묘지명에 당에서 이미 관작을 수여받았던 낙개몽에 대해서 기록을 남길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형제 또는 그 이외의 관계였다면 묘지명에 적극적으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다. 결국 낙사계와 낙개몽, 낙갈발 등 발해의 諾氏(낙씨) 성을 가진 문헌 기록 속의 인물들과 낙사계와의 적극적인 관련성은 찾기 어렵다. 단지 발해의 성씨 중에 諾氏(낙씨)가 있었고, 고구려로부터 이어진 성씨였다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 『渤海國志長篇』卷1 「渤海國志 前編」 1 總略 上 (『발해국지장편』 권1 「발해국지 전편」 1 총략 상).
  2. 『渤海國志長篇』 卷12 「渤海國志」 10 屬部列傳 第4 黑水部(『발해국지장편』 권12 「발해국지」 10 속부열전 제4 흑수부) .
  3. 『渤海國志長篇』 卷12 「渤海國志」 10 屬部列傳 第4 黑水部(『발해국지장편』 권12 「발해국지」 10 속부열전 제4 흑수부).
  4. 『資治通鑑』唐紀 18 高宗 咸亨 3年 壬申 2月 庚午(『자치통감』당기 18 고종 함형 3년 임신 2월 경오 ).
  5. 『新唐書』 卷219 列傳 第144 北狄 黑水靺鞨(『신당서』 권219 열전 제144 북적 흑수말갈).
  6. 唐(당) 憲宗(헌종) 元和(원화) 7년(812)에 唐代(당대)의 氏族(씨족)에 대해 집대성한 『元和姓纂』(『원화성찬』)에도 唐(당)의 姓氏(성씨)로 諾氏(낙씨)가 보이지 않는다.

- 金榮官(김영관), <渤海人(발해인) 諾思計(낙사계) 墓誌銘(묘지명)에 대한 고찰> (《목간과 문자연구》6, 2011), 해당논문 10~11쪽.)

블루베리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6:57 (KST)답변

블루베리 님, 오랫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정보를 찾아서 알려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다들 흥미로운 자료들입니다. 이 내용을 검토한 후, 위키백과에 '낙씨' 관련 문서를 편집할 수도 있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정보 많이 부탁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4일 (일) 17:32 (KST)답변
낙사계 묘지명에 대해서 학계에서 잘 해석해 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마추어이나마 역사학도의 시선에서 묘지명의 내용을 너무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묘지명은 사망한 고인을 기리기 위해서 쓴 글이며, 그렇기에 고인을 찬양하기 위해 과장과 미화가 많습니다. 아사달 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문무왕릉비나 대당고김씨부인묘지명 등에서도 묘주의 선조를 높이기 위해 전설 속의 제왕에게까지 연줄을 억지로 이어 놓은 경우도 있죠. 낙사계 묘지명 자체에 관심이 없어서 자세한 내용과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묘지명을 볼 때 조심스럽게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봅니다. 낙사계가 발해 출신 또는 부여의 대두령이라 새겨져 있다고 해서 그것이 진짜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신분 세탁을 한 것일지도 모르죠. 지나친 의심이라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원래부터 역사학이란 학문이 사료에 써 있는게 진짜인지를 악귀 같이 파헤치는 학문인지라... 일종의 직업병이라 생각하셔도 좋고, 역사학의 숙명이라 여기셔도 좋습니다. 어쨌든 생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00:26 (KST)답변
학자라면 당연히 묘비명의 내용을 그대로 신뢰하면 안 되고 엄밀히 분석하여 인정할 것과 인정하지 않을 것을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Xakyntos 님의 지적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아마추어 역덕(!)인지라, 묘비명 자체가 아니라 그 묘비명을 해석한 역사학계의 논문이나 그걸 받아적은 언론보도 등을 읽어보고 정리하여 위키백과에 올리는 편집자에 불과합니다. 학자들이 그 묘비명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한다는 내용을 정리하여 위키백과에 올리고 출처를 달아서 확인 가능하게 한 것뿐입니다. 물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제 개인의 주관이 일부 개입될 수는 있으나, 최대한 객관적 사실 위주로 중립적 시각에서 정리하여 올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너무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약 묘비명에 대해서 학계의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 반대 의견도 역시 정리하여 해당 문서에 올릴 생각입니다. 아직은 낙씨와 관련하여 학계에서 별 관심도 없고, 제가 인용한 학자들의 해석 이외에는 다른 해석도 없군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00:35 (KST)답변

참고로 낙사계 묘비명을 해석한 김영관 논문의 초록에 나오는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낙사계(諾思計)는 비록 당에 투항해 무장으로 활동하면서 고위관직에 오르고 노정빈(盧庭賓)이라는 성(姓)과 이름을 당 황제로부터 하사받았지만 발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는 묘지명(墓誌銘)의 수제(首題)에 당에서 받은 관직과 당 황제로부터 받은 성과 이름이 아닌 “고 투항 수령 낙사계(故投降首領諾思計)”라고 씀으로써 발해의 수령인 낙사계임을 밝히고 있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묘지명(墓誌銘)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734년 4월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문원영화(文苑英華)』에 기록된 노정빈(盧庭賓)이 발해인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김영관, 〈발해인 낙사계(諾思計) 묘지명에 대한 고찰〉, 《목간과문자》 제7호, 2011년 6월, 149~167쪽.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00:49 (KST)답변

어쩌다보니 낙 (성씨) 문서를 보고 편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말씀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저와 자주 충돌하시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이번 낙씨 문서에서도 예의 단정적으로 쓰기를 하셨더군요. 이 토론문에 인용된 김영관의 논문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당 논문은 대부분의 경우‘가능성이 있다.’“무리가 없다”는 식으로 추정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논문에서 추정한 내용을 단정적으로 적는 이번 편집은 참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다못해 논문의 주제로서 결론적으로 이러이러할 것이다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분명 논문의 주제는 낙사계에 대한 것이죠. 낙사몽, 낙갈발 등에 대한 내용은 그냥 곁다리로 논문 저자 혼자서 추정해본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추정을 단정적으로 적는 것은 좀 지양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덧붙여 본문과 무관한 내용을 길게 쓰지 말아주세요. 예를 들어 낙개제에 두막루에 대한 설명이 주석까지 상세하게 붙어 가며 길게 써질 이유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무관한 내용이니까요. 두막루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직접 그 항목으로 들어가서 보면 됩니다. 그런 식으로 쓸 가치가 있는 것은 해당 항목이 없을 때 뿐입니다. 이런 부분도 예전부터 계속 말씀드렸던 것인데 이번에도 또 그러시네요. 위에서 쓰셨듯이, 중립적 시각에서 정리하시려면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참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 편집도 대단히 주관적이셨습니다.
ps. 회의주의자 역사학도로서 이 토론에 인용된 김영관의 논문을 평가하자면, 대단히 주관적이고 본인의 희망을 특별한 증명 과정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추정으로 넘겨 버리는 좀 문제가 많은 논문입니다. 전문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여기 인용된 것만 보자면 역사학 논문으로는 실격감이에요. 한 번만 짐작증명을 구분해서 읽어 보시면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Xakyntos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02:41 (KST)답변

낙 (성씨) 문서를 보고 제 나름대로 일단 편집을 해보았습니다. 모용낙갈발의 경우 낙씨(낙갈발)로 보고 고구려계라고 하기엔 엄청난 주장인지라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주석으로 달려있는 구당서,신당서,자치통감 링크를 클릭하여 诺曷钵을 검색해보았습니다만 모용낙갈발이든, 낙갈발이든 제 어설픈 검색실력으로는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외 중국어 위키피디아의 원칙은 잘 모르겠지만 토욕혼 왕조 인물들이 시조인 모용토욕혼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용씨 없이 이름만 기록되어 있더군요. 제가 토욕혼 역사를 잘 몰라 어찌 말하기가 그렇긴해도, 모용낙갈발(낙갈발)이 본래 낙씨로서 양자로 모용씨 가문에 들어갔다거나 하는 기록도 없고, 한국어 위키피디아 토욕혼 페이지에는 모용낙갈발의 아들이 모용씨로 기록이 되어있기에 모용낙갈발이 본래 낙씨이거나 낙씨로서 지냈을 확률은 개인적으로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어쨋든 낙갈발이 낙씨라는 확증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항목을 일단 삭제했습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22:01 (KST)답변

예, 블루베리 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제가 '낙갈발'을 추가했던것은 김영관 논문에 근거한 것이었으나, 위에 Xakyntos 님도 지적했듯이, 김영관 논문이 추정이 워낙 많은 글인지라,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블루베리 님이 '낙갈발'에 대해 기타 항목으로 돌리고 일각의 의견으로 간략히 처리한 것에 대해서 저도 동의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22:08 (KST)답변
또 뒤의 문장의 경우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묘지명이나 해당 논문에 내용과 달라 수정하였습니다. '낙사계의 후손들은 당나라에서 범양 노(盧)씨 가문을 형성하여 명망 높은 귀족 집안으로 번성했다고 한다.'[4] 한가지 더, 이거는 그냥 그렇더라 라고 할만한 이야기 입니다만, 한참 전에 낙씨로 검색했을때 찾았던 것인데 환단고기에는 연나부의 수장이 낙씨(絡氏)라고 기록이 되어있나보더군요.[5] 환단고기에 고두막이란 인물이 적혀있기도 하고 당최 저자가 무슨 냄새를 맡고 그렇게 적어놨는지 궁금할 따름일 뿐입니다. 블루베리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22:45 (KST)답변
제가 환단고기의 기록은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군요. 다만, 낙씨(絡氏)에 대한 기록은 환단고기가 아니라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즉, 동부여의 대소왕이 고구려 괴유 장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대소왕의 막내동생은 압록곡으로 이동하여 갈사수 근처에서 갈사부여를 건국했고, 대소왕의 종제(=사촌동생, 성명 미상)은 부여 유민들을 이끌고 고구려에 투항하였는데, 이 대소왕의 종제에게 낙씨(絡氏) 성을 하사하고 고구려 연나부에 거주하게 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옵니다. 다만 이 낙씨(絡氏)의 한자 표기가 서로 다른 문제점이 있습니다. 낙개제의 낙씨(諾氏)와 대소왕의 종제가 하사받은 낙씨(絡氏)는 한자 표기가 다릅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성씨였을 수도 있겠고, 아니면 한자를 음차하여 사용했다면 실제로 같은 '낙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낙씨의 뿌리는 결국 부여의 금와왕-대소왕-대소왕의 종제(絡氏)로까지 소급되어진다고 추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학계의 연구 결과를 찾지 못한 개인적 추정일 뿐이므로, 위키백과의 본문에 적기에는 부담스러운 내용이고, 개인 사용자 토론란에서 이것저것 추측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23:06 (KST)답변
추가로 블루베리 님이 링크해 준 내용(즉, 고구려 연나부 낙씨 부여(夫餘) 연대기) 중에서 대부분은 제가 아는 역사 지식과 일치하고, 삼국사기의 기록과도 일치하며, 위키백과에 서술한 부여의 역대 국왕 부분과도 대부분 일치합니다. 그런데 유독 의려왕 부분이 이상합니다. 부여의 의려왕은 285년 모용외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여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링크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도대체 어느 출처를 보고 저렇게 썼는지 모르겠으나, "선비족(前燕)의 모용외(慕容廆)가 부여를 치자, 의려왕이 은밀하게 아들 의라(依羅)에게 나라를 맡기고, 백랑산(白狼山)을 넘어 밤에 해구(海口)를 건너니 따르는 자가 수천이었으며 이에 바다를 건너 왜를 평정하고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부분이 아주 충격적입니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의려왕이 사실은 바다를 건너 왜왕이 되었다는 주장인데, 사실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또 하나는 부여 대소왕의 종제가 낙씨(絡氏) 성을 하사받고 연나부에 거주한 것은 사실이나, 그 후손들이 이어져 결국 위구태왕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좀 창의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객관적 근거가 없습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는데, 어짜피 대소왕 이후 위구태왕 이전까지 부여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맞는지 틀리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부여의 역사 중 단절된 부분인데, 만약 조홍근 씨의 추정이 사실이라면 대단한 발견이 되겠으나, 자신의 추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록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근거없는 추정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낙씨(絡氏)와 낙씨(諾氏)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현재로서는 뭐라고 결론내리기 어려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0월 15일 (월) 23:28 (KST)답변

선거 질문란에 남기신 질문에 대한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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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박지민 등 K-Pop 스타 삭제 토론에서 유지하기로 총의가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토론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K-Pop 스타 중 수펄스만 따로 떼어내어 다시 삭제 토론에 회부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토론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등의 표현을 사용하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섭섭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네요. 전부 유지로 총의가 모아졌다기 보다는 박지민 문서에 대한 유지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고, 전부 유지하자는 취지는 몇 가지 문서들을 한 토론란에 뭉뚱그려 토론하는 것이 부적절하므로 개별 토론에서 이어나가는 것이 옳다는 쪽이 더 강합니다.

전부 유지합니다. 현재 활동으로 보나 사용자들 의견으로보나 삭제할 근거는 없습니다. 병합하고 싶으시다면 여기가 아니라 개별 문서에서 해주세요. 하나 덧붙여, 한 토론에 다수의 문서를 올려 흐름이 흐뜨러지는 폐단을 막기 이참에 인물 관련 저명성 정책을 손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Reiro
  • 수펄스 삭제 토론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결국 이 문서도 유지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 여수 공연 출처를 추가해야만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찬가지로, ‘끝까지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라는 표현에서 마음이 상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시의 토론에서 제가 다소 격하게 토론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전 삭제 토론을 제 개인적인 고집으로 치부하신 아사달님의 표현에 상당히 기분이 상했었습니다. 전 분명히 문서에 문제가 있다고 제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달님께서는 제게 ‘과도한 삭제 행위와 잘못된 행위’라고 지적하시면서 ‘그만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으며, 삭제 의견을 내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제가 토론에 격하게 반응한 잘못은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아사달님께서도 제게 적절하지 못한 답변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수 공연 출처를 추가해야만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답변을 드립니다. 당시에 독립 문서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이 부분은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 참여하셨던 분들이 K팝 스타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를 무의식중에 고려하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그것도 노래를 부른다는 가수 집단은 필연적으로 활동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수펄스는 데뷔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음반이 K팝스타에서 파생된 것 뿐이었습니다. 공연도 K팝스타에서의 내용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정도는 독립 문서로서 존재하지 않아도 K팝스타에 병합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들이 시중에 많이 활동하고 있는 인디밴드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회적 인지도이며, 주목성입니다. 레이로님이 제시하셨듯, ‘기사에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당시 수펄스는 말 그대로 언론매체에서 회자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K팝 스타에서의 활동 내용이 무한하게 생산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출처가 많을 수 밖에 없지요. 분명히 인디밴드도 앨범을 내고, 데뷔하며, 공연을 합니다. 단순히 K팝 스타라는 특수성, 특히 그러한 프로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회의 몇 퍼센트 차지하지 않는 저같은 이에게 당시 문서 상황은 시중의 흔한 인디밴드와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K팝 스타만이 특정 짓는 것이 아닌, 그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시한 것이 ‘K팝 스타의 활동이 아닌 수펄스만의 활동’을 찾게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여수엑스포 공연입니다. 아시다시피 전국 노래자랑에서도 팀 이름을 붙여서 나오기도 하며, 그들도 입상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위키백과에 실리지는 않습니다. 노래자랑과 K팝스타가 다르다는 주장을 하는 이가 있겠지만, 그건 단순히 호불호에 따른 편향일 뿐 전혀 관심이 없는 제3자 입장에서는 같은 주제입니다. 문서의 표제어는 분명히 '수펄스'였고, 그들이 독자적으로 한 활동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서 내용은 K팝 스타의 산물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설명할 뿐, 데뷔할 것이라는 말 외에는 그들의 활동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정도면 K팝 스타 관련 문서에 병합해버리면 될 일이지, 독립 문서로 존재할 필요까지는 없게 됩니다. 그런 식이면 문서를 삭제 신청해버림이 옳았겠지요. 그런데 제가 출처를 끝까지 제시하라고 한 이유는, 문서 하나를 올바르게 유지해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단순히 그냥 넘어가면, 그 문서를 누가 다시 볼까요? 한국어 위키백과가 ‘삭제’라는 것으로도 말이 많지만, 동시에 ‘내용 없는 위키백과’로도 회자된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위키백과는 영어판을 쓴다고 하지, 한국어판을 쓴다고 말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위키백과 관련 기사 댓글만 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하여 생각한 것인데, 제 모든 주장을 단순히 제 고집으로 치부하시고 단순한 자기주장이라고 비하하시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랍고 슬픕니다. 분명히 제가 토론에서 충분히 설명을 하였던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이것이 충분한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Sotiale (토론) 2012년 10월 18일 (목) 00:42 (KST)답변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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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답변을 바로 드려야 했는데, 오늘의 모든 기여는 모바일인데,일정 줄 이히로 스크롤이 불가해 아랫 문단 부분 편집을 이용해 답변을 드리고 있기에 맨 아래 있는 한질문을 먼저 답변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조만간 컴을 하게 되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감시합니다 .-- 분당선M (T · C) 2012년 10월 18일 (목) 09:34 (KST)답변

Article requ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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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Do you do article requests? I notice some North Korea-related topics don't yet have Wikipedia articles Thanks WhisperToMe (토론) 2012년 10월 27일 (토) 12:37 (KST)답변

반스타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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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반스타
위키백과 중재위원회 선거에 참여하신 사용자:Asadal께 이 반스타를 드립니다. —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2년 11월 5일 (월) 12:00 (KST)답변

중재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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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하게 누비에크님이 낙선됬네요. 중재위원회에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아사달님이라면, 한편으로 가끔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위키백과를 평화적으로 만드시는데 앞서실수 있을듯 합니다.-- 분당선M (T · C) 2012년 11월 5일 (월) 04:35 (KST)답변

먼저 저를 한국어 위키백과의 중재위원 후보로 추천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얼마 전 선거에서 제가 분당선M 님께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오히려 반대로 저를 추천해 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서 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후보 출마 여부와 무관하게, 저를 추천해 주셔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5일 (월) 22:04 (KST)답변
입후보 마감이 얼마 안남았습니다. 귀하께서 추천을 받아들이실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분당선M (T · C) 2012년 11월 13일 (화) 01:15 (KST)답변
분당선M 님이 저를 추천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제가 아직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활동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고, 여전히 잘 모르는 것이 많으며, 저명성 지침이나 한국사(두막루) 토론 및 삭제 토론 등 몇 차례 논쟁을 겪으면서 제 입장을 지나치게 강하게 주장했던 점, 실제 분쟁에 개입하여 원만히 중재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 등 제가 중재위원으로 활동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미 추가 선거에 출마하신 분이 몇 분 계시기 때문에 굳이 제가 또 출마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저에게도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를 추천해 주신 점에 대해서는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13일 (화) 01:30 (KST)답변
여담이지만, 1년 가까이 된 시기라면 충분히 자신에 대한 입증이 가능합니다 :) 저는 1기 중재위 추가 선거 출마 당시에 실질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는 4달도 채 되지 않았었습니다. 기여수도 본 선거 때 1000회를 못 채워서 못 나갔다가 추가 선거 시작하기 전에 채워서, 이전에 추천을 받은 것을 토대로 출마를 한 거고요. 사실 중재위 후보자 수가 너무 적어 벌써 2차 재선거까지 들어갔으니, 지금이라도 혹시 출마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도약 (대화하기) '하늘 높이 도약하라' 2012년 12월 8일 (토) 14:29 (KST)답변
도약 님께서 저를 중재위원으로 추천해 주시겠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한 저를 추천해 주신다니,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8일 (토) 18:32 (KST)답변

이해 관계 관련 영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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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위키백과에서 en:WP:PSCOI 문서를 발견했습니다. 지금의 백:이해관계 문서의 설명을 다룬 문서인데요. 직접 "경험한" 입장에서 이 내용에 대한 평을 듣고 싶습니다. 문제 없다면 번역해서 소개하려고요. -- ChongDae (토론) 2012년 11월 6일 (화) 17:44 (KST)답변

예, 문서를 소개해줘서 감사드립니다. 문서 내용을 읽어보니까 제가 위키백과 초기 시절에 범했던 많은 부족한 점이 생각이 나서 정말 반성이 됩니다. 그 때는 제가 많이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좀 더 지혜롭게 대처했어야 하는데, 아주 후회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낯 뜨거워지는 문장도 있군요. 앞으로 위키백과에서 예전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늘 겸손한 자세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겠습니다. 내용이 좋은 듯 하여 번역하여 소개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으나, 문서 분량이 많아서 걱정이군요. ChongDae 님께서 시간 나실 때 조금씩이라도 번역하여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6일 (화) 20:02 (KST)답변

틀토론: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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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님이 훼손한(제 생각에는 훼손이 명백합니다) 한국사 틀을 보면, 고구려가 두 번에 걸쳐서 멸망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게 맞는 내용입니까? 고구려는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의해 1번에 멸망했습니다.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한 여러 나라들이 새로 건국되기는 하였으나, 고구려 자체는 서기 668년에 한 번에 멸망했습니다. 아시지 않나요? 이걸 두 번에 나뉘어 멸망한 것으로 틀을 수정하면 곤란합니다.

모니터 너머로는 상대방이 정말로 악의로 훼손하는 건지 아니면 따로 생각이 있어서 편집을 하는 건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후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정책은 맘에 들진 않습니다만 항상 백:선의를 생각해주세요.--Leedors (토론) 2012년 11월 7일 (수) 20:44 (KST)답변

예, 좋은 지적에 감사 드립니다. 당시 윤성현 님이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선의'로 그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윤성현 님이 위키 테이블 코딩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국사 틀을 약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정하면서 남겼던 글인데요. 앞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항상 선의로 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7일 (수) 22:36 (KST)답변

토론:초소형국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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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의가 모였는데 부족하다며 이동을 안해줍니다. 다시 이동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게이큐읭 (토론) 2012년 11월 11일 (일) 18:13 (KST)답변

아직까지 '이동'하겠다는 총의가 모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만... 참고로 저는 개인적으로 마이크로네이션이 좋을지 아니면 초소형국민체가 좋을지에 대해서 아직까지 아무런 의견이 없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11일 (일) 23:57 (KST)답변

위키 호스팅 서비스에 대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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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재 호스팅 사이트가 대략적으로 얼마나 있는지 궁금합니다.
  2. 제가 위키 사이트를 열면 2년 후 즈음에나 열 것 같은데 혹시 그 때 까지 서비스할 의향이 있으신가요?--Leedors (토론) 2012년 11월 23일 (금) 22:29 (KST)답변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홍보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고 이런 질문을 주시는지... 대단하십니다. 위키 호스팅 서비스는 무료이기 때문에 신청자는 많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아직까지 거의 없습니다. 아시겠지만 위키를 이용한 서비스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하나씩 콘텐츠가 누적되어야 하는 서비스입니다. 1~2년 단기간에 뭔가를 하기는 어려운 서비스입니다. 당연히 2년 후에도 서비스를 지속할 예정입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1월 24일 (토) 14:16 (KST)답변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위키'하고 검색했다가 소식을 봤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Leedors (토론) 2012년 11월 25일 (일) 00:17 (KST)답변

번역 도움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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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Reiro/창고2에서백:아님을 번역하던 중에, 까다로운 것이 몇 개 있어서 님께 부탁드립니다. 혹시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Reiro (토론) 2012년 11월 28일 (수) 19:59 (KST)답변

제가 꼭 도와드리고 싶은데,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군요. 조만간 살펴보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3일 (월) 23:32 (KST)답변
사용자:Reiro/창고2 페이지에 있는 영어 미번역 부분 뒤에 제가 한글로 번역하여 올려두었습니다.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0일 (월) 03:22 (KST)답변

가람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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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습니다만, 사용자:Idh0854님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라신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빨리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사용자:Idh0854님과 다른 사용자간에 합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 제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사용자:Idh0854님께서 조금만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다면 적극 변호해 드렸을 것이나,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처분을 논의했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간이 되돌아가서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해진다 하더라도 똑같은 행동을 하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만큼, 후회는 없습니다.——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2년 12월 3일 (월) 23:52 (KST)답변

예, 저도 가람 님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람 님을 잃어버린 것은 위키백과 입장에서 볼 때 아주 큰 손실이었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6일 (목) 22:48 (KST)답변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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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중재위원회/선거/2012년 12월/Asadal에 선거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분당선M (T · C) 2012년 12월 10일 (월) 04:50 (KST)답변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저를 중재위원으로 추천해 주셔서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1일 (화) 02:43 (KST)답변

중재위 추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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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을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위키백과에 전념을 할 상황이 아닐 뿐더러 저는 아직 위키백과에 기여한지 반년을 조금 넘겼을 뿐 아직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 관습에 대해서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도 있고 저 역시 중립을 지키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종교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도 저는 우파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좌파가 많다고 여겨지는 위키백과에서 반대쪽에 중심추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저도 어느 정도 위키백과에 익숙해 지고, 또 관리자나 중재위원이 아니더라도 어떤 중요한 역할이 생기면 그 때 가서 그러한 역할을 맡는 것을 고려해 보겠습니다.——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2년 12월 10일 (월) 10:20 (KST)답변

예, 앞으로 위키백과에서 큰 역할을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직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제가 출마하게 되었네요. ^_^ 2012년 12월 10일 (월) 10:24 (KST)
아 , 이런 제가 아사달님께만은 악담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군요 ㅠ.ㅠ;; 안타깝습니다.——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2년 12월 10일 (월) 10:30 (KST)답변

Merry Christmas~ Asa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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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까지 4일 남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Asadal님 ^^
※참고: 이 메세지는 이 전달한 크리스마스 편지(?)입니다.
토론에 방해가 된다면, 편집을 취소하여 메세지를 삭제하여 주세요.
크리스마스까지의 D-day는 자동으로 계산되어 날짜가 떨어집니다.
단, 12월이 지나면.. 정확도에 대해서 면책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 이름이 "SotialeBot"이라고 되어 있네요. Sotiale 님이 봇 만들었다고 하더니, 이런 기분 좋은 봇을 만드셨군요. 아주 좋아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2일 (수) 17:46 (KST)답변

토론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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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토론:사랑방에서 사랑방의 게시물 갱신 방법을 바꾸려고 합니다. 혹시 참여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Reiro (토론) 2012년 12월 13일 (목) 21:50 (KST)답변

예, 토론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토론이 상당히 길더군요. 시간 내서 읽어보고 제 의견을 올리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3일 (목) 22:01 (KST)답변

저작권 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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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반스타를 저만 빼고 토론에 참여했었던 모두에게 주셨네요. 혹시 전 반스타를 주지 않으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2년 12월 13일 (목) 22:57 (KST)답변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반스타를 준 것이 아니라, 공공누리 제1유형 라이선스를 위키백과에 도입하는데 수고하신 분들께 드린 것입니다. Sotiale 님이나 거북이, 미네랄삽빠 님 등은 오프라인에서 직접 해당 정부 기관과 미팅까지 할 정도로 수고를 많이 하셨고, ChongDae 님은 '틀'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반스타를 드렸습니다. 토론에 적극 참가했었던 다른 분들(예:Leedors 님 등)에게 반스타를 드리지 않은 이유는 '토론 참가'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인생략 님은 토론에 적극 참가하시기는 하였으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어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NuvieK 님이나 ChongDae 님 등이 드린 질문에 대해 1주일 이상이나 기다렸으나 아무런 답변을 달지 않으셨더군요.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제가 두 번씩이나 글을 남겼으나, 여전히 답변이 없으시더군요. 그 분들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솔직히 지금도 궁금합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 주시면 어떨까요? 반스타는 그 이후의 일이구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4일 (금) 01:55 (KST)답변
NuvieK님의 질문에 대해서는 사용자토론:관인생략#두 가지에 답변을 남겼으며, ChongDae님의 답변에 대해서는 위키백과토론:파일의 저작권 표시#내용 보충의 토론으로 갈음하겠습니다. CCL도 보강되면 좋지만 다른 틀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나저나 저도 아직 마지막에 NuvieK님과 아사달님께 동시에 드린 네 가지 질문 사항에 대해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NuvieK님께서는 현재 제 토론페이지를 통해 답변을 거부하신 상태이시구요. --관인생략 토론·기여 2012년 12월 15일 (토) 11:20 (KST)답변
다른 곳에 답변을 달았군요. 링크를 알려줘서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인생략 님에게도 저작권 반스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만, 다른 분들과는 사유가 좀 다릅니다. 다른 분들은 공공누리 제1유형 라이선스를 위키백과에 도입하는데 수고하셔서 드린 것이고, 관인생략 님은 이번 기회에 공공누리가 아닌 다른 저작권 틀에도 자세한 설명을 붙이도록 만들어서(틀의 '통일성') 전체적으로 위키백과의 저작권 개념을 한 단계 높이는데 공헌한 점을 높이 평가하여 반스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ChongDae 님은 양쪽(공공누리 + 다른 저작권 틀) 모두에 공이 있었군요. ^_^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5일 (토) 16:02 (KST)답변

위키호스팅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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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보고 싶지만 도메인이 부담스럽다는 얘길 많이 하네요. zepelin.asadalwiki.com 이런 식으로 제공해주시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북이 (토론) 2012년 12월 14일 (금) 15:44 (KST)답변

위키호스팅은 무료이지만, 도메인이 무료가 아니라서 부담이 되실 수도 있겠군요. 무료 도메인을 생성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좋은 제안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5일 (토) 16:12 (KST)답변

질문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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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en:Template:Infobox currency를 똑같이 한국어판에 넣었는데도 (사용자:이형주/틀:통화 정보) 영어판에는 회색으로 안칠한 곳이 회색처리 되어있습니다. 틀:정보상자 문제인것 같아서 수정해도 안되네요. 한국어판만 그렇게 처리가 되네요--A. W. ROLAND ː <RECENT> 2012년 12월 17일 (월) 03:25 (KST)답변

제가 좀 살펴보기는 하였으나, 틀이 상당히 복잡하여 쉽게 알기가 어렵군요. 사용자:ChongDae 님이 '틀'에 대해서 잘 아니까, 한 번 직접 질문해 보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17일 (월) 04:00 (KST)답변
그래야 겠군요. --A. W. ROLAND ː <RECENT> 2012년 12월 17일 (월) 04:10 (KST)답변

Happy New Year, 아사달 (Asa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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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이 얼마 안남았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새해에는 좋은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휴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주의사항!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보낸 메세지입니다.
만약, 토론에 방해가 된다면 쿨하게 되돌려주세요!
분당선M 님, 감사합니다. 멀리 캐나다에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22일 (토) 23:19 (KST)답변
악 들켰다!-- 분당선M (T · C) 2012년 12월 22일 (토) 23:28 (KST)답변

중재위원회 메일링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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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사달님! 이번 중재위원회 2기 임기의 시작과 함께,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해주십사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토트(dmthoth) 2012년 12월 27일 (목) 05:58 (KST)답변

예, 가입 신청을 하였습니다. 토트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27일 (목) 09:46 (KST)답변
아직 가입신청이 안들어 왔네요.. 다시 가입신청해주세요 :) --토트(dmthoth) 2013년 1월 2일 (수) 16:43 (KST)답변
가입 신청을 다시 했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시고 결과를 알려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2일 (수) 20:27 (KST)답변

음 여전히 가입 신청 메일이 오질 않네요; 가입하기에 내용을 모두 기입하시고 가입하기 버튼을 누르신 것이 맞나요? ^_^ --토트(dmthoth) 2013년 1월 9일 (수) 23:49 (KST)답변

예,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다시 가입 신청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잘 되기를 바랍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11일 (금) 01:21 (KST)답변

이상하게.. 여전히 요청이 들어오질 않네요.. 제가 직접 수동으로 가입 시킨한 다음 아사달님 개인 이메일로 임시비번을 알려드릴께요. 메일링 리스트에 어떤 이메일 주소를 사용하실 껀지 알려주시겠어요? --토트(dmthoth) 2013년 1월 13일 (일) 18:08 (KST)답변

예, 그 방법이 좋겠습니다. mail@asadal.com 을 사용해 주세요. 이름은 "아사달(Asadal)" 또는 그냥 "Asadal"로 해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13일 (일) 18:11 (KST)답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중재 요청 기록 통계에 일관적인 부피를 위해 두글자로 맞추고 있습니다. (영문의 경우 5글자).. 혹시 아사달님이 제안하시는 축약명이 계신가요? --토트(dmthoth) 2013년 1월 13일 (일) 18:13 (KST)답변
"아사"로 해 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13일 (일) 18:15 (KST)답변

일단 수동으로 가입시켰습니다. 이메일 확인해보세요. --토트(dmthoth) 2013년 1월 13일 (일) 18:19 (KST)답변

예, 제 이메일로 가입 완료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패스워드가 왔습니다. 수고해 주신 토트 님께 감사드립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3년 1월 13일 (일) 18:24 (KST)답변

당선증 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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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반스타
이 사용자는 제 2기 중재위원회 2차 추가 선거에서 당선되셧기에 당선증을 드립니다. 부디 좋은 활동 해주시기 바랍니다.-- 분당선M (T · C) 2012년 12월 27일 (목) 12:08 (KST)답변
예, 감사합니다. 좋은 활동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27일 (목) 18:32 (KST)답변

복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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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쉬다가 복귀됐습니다. 앞으로 중재위원이 되셨기때문에 앞으로 저와 많이 부딪힐것 같습니다. 향후 활동을 기대합니다. 우선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대선이 끝났고.... 그에 따라 향후 활동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결정되지 않았았기 때문에 활동이 뜸할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한 해 끝나가는데 건강하시고 내년에도 좋은 활동 기대합니다.——라노워엘프 푸르게 (토론) 2012년 12월 28일 (금) 13:07 (KST)답변

예, 반갑습니다. 라노워엘프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28일 (금) 13:16 (KST)답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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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주식회사 아사달에서 위키 호스팅 써비쓰를 제공한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식회사 아사달의 회사적 내부에서도 미디어위키를 사용을 많이 잘 한다고 들었습니다. 미디어위키의 좋은 활용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됩니다. 조금더 미디어위키와 위키시스템의 확산을 위해 초보 사용자들을 위해 미디어위키 설치법이나 미디어위키를 이용한 위키 시스템 구축에 대해 시간이 나는대로 작성하여 그것을 배포하는 것도 어떨까합니다. 아사달사용자이 잘 아실 것이니 초보자를 위한 미디어위키 설치법 및 미디어위키를 이용한 위키 시스템 구축에 대해 위키 정신에 따라 조금이라도 아는 지식을 나눠주신다면 미디어위키의 확산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영 67.23.255.58 (토론) 2012년 12월 30일 (일) 11:56 (KST)답변

예, 좋은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안하신대로 시간을 내어 미디어위키와 관련된 지식을 하나씩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 전에 저희가 처음 미디어위키를 설치하면서 큰 도움을 받았던 아래 사이트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위키백과에서 열심히 활동하셨고 지금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사용자:김정정민' 님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미디어위키 사이트입니다. 여기에 미디어위키 관련 설치법 등이 자세히 나와 있어서, 저희가 큰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아사달(Asadal) (토론) 2012년 12월 30일 (일) 12:59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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