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인

대한민국의 배우

유지인(兪知仁, 본명이윤희(李允熙), 1956년 1월 27일 ~ )은 대한민국배우이다.

유지인
兪知仁
본명이윤희
李允熙
출생1956년 1월 27일(1956-01-27)(68세)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
국적대한민국
직업배우, 방송인, 대학 교수
활동 기간1973년 ~ 현재
소속사아이티이엠
학력중앙대학교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졸업)
배우자조태봉 (1986년 ~ 2002년 이혼)
자녀조희수 (딸), 조연수 (딸)

그녀는 대한민국 여자 석사 배우 1호라 일컬어지는 선배 영화 배우 윤정희에 이어 대한민국 여자 석사 배우 2호라 불리고 있다.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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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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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사천시에서 출생한 유지인은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영화배우 데뷔할 당시(1974년) 그녀의 아버지는 육군 대령 예편 7년차의 시기였다.

그녀의 부친육사 10기보병학교 출신으로 1967년 대한민국 육군 대령 예편하였으며 한국 전쟁(3년간 참전)과 베트남 전쟁(1년간 참전)에 참전한 공적이 있다.

그녀는 여고 3학년이던 1973년 연극배우 첫 데뷔하였고 이어 같은 해 1973년 TBC 동양방송 공채 탤런트 14기로 입사하였으며 1974년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유지인은 대학생 대상 잡지에 표지모델로 실린 사진이 눈에 띄어 연방영화사와 주간한국이 공동으로 모집한 신인배우 모집에서 무려 2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974년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그대의 찬 손》이라는 영화 작품은 인기 작가였던 강신재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는데, 유지인이라는 예명도 유치원 보모였던 주인공 '지인'의 이름에서 비롯됐고 흥행에도 비교적 성공한다.

1975년 TBC 드라마 님이 성공하고 《쥬단학화장품》(現 《한국화장품》)의 전속 모델이 되면서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1977년까지 매년1~3편의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하였고 1977년 TBC 드라마 《서울야곡》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1977년 같은 해 TBC 드라마 《청실홍실》의 주연인 장미희·정윤희와 함께 1970~80년대 트로이카를 구축하며 브라운관과 영화계를 이끄는 대스타로 성장하며 최고의 인기를 얻는 스타가 된다.

1978년 영화 《마지막 겨울》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1979년 흥행 1위를 기록한 《내가 버린 남자》를 비롯해 《26×365=0》, 《청춘의 덫》, 《불행한 여자의 행복》,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의 영화들을 히트시켰으며 그 해 《심봤다》로 여자 트로이카 배우들 중 처음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1979년을 완전히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1980년에 제작된 이두용 감독의 《피막》으로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3대 국제 영화제 중 베니스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한국영화 세계화의 초석이 된다.

당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에 재학 중이었던 그녀는 예비역 육군 대령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당시 닮고 싶은 여성상 1위기도 했고 몇 년 동안 연예인 소득 1위를 고수했다. 1950년대 생 여자 배우 최초로 석사 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TBC 전속 탤런트인 장미희, 정윤희와 함께 여자 배우 트로이카를 이루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1970~80년대를 풍미했다. 1986년에는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군의관 대위 출신의 치과 의사와 결혼하면서 동시에 연예 분야 은퇴, 이후 16년만인 2002년 이혼과 동시에 전격 복귀하며 현재 KAC 한국예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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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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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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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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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5년 《상록수》 ... 채영신 역(여자 주인공)

TV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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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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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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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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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7년 TBC 연기대상 인기상
  • 1978년 TBC 연기대상 인기상
  • 1979년 TBC 연기대상 최우수여자연기상
  • 1979년 제18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심봤다》
  • 1980년 제16회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 《심봤다》
  • 1980년 제26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특별 연기상 《가시를 삼킨 장미》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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