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브이 카툰

소예순성황후 차브이(昭睿順聖皇后察必, 1227년? ~ 1281년 3월 20일)는 원나라 쿠빌라이의 황후(재위: 1260년 ~ 1281년 3월 20일)였다. 그녀는 원 성종(테무르)의 친조모이자 원 무종의 증조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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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중앙아시아 출신의 상인 아흐마드 파나카티[1]를 재무장관에 발탁하여 증세를 꾀해 남송 공략의 준비를 진행시키는 한편, 이어서 복속한 고려를 통해 남송과 통상관계를 맺고 있었던 일본에도 몽골에 대한 복속을 요구했다.

생애편집

곤기라트 부족 출신으로 칭기즈칸의 정비 보르테의 조카였다. 아버지 안진 노얀(按陳那顔)은 칭기즈칸의 첫번째 정비 보르테의 남동생이었다. 손녀뻘 되는 첩고륜 대황후의 뒤를 이어 쿠빌라이 카안의 정비가 되었는데, 쿠빌라이 칸은 고모 보르테의 손자로서 5촌간이 된다. 쿠빌라이 칸에게서, 요절한 도르지와 황태자 친킴, 망갈라, 노무간의 네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일설에는 친킴은 차브이 카툰이 아닌 첩고륜 대황후 소생이라는 설도 있다.

차브이는 칭기스칸 가문의 인척으로, 몽골 제국 중에서도 특히 유력한 지파 출신이었으며, 몽케 칸쿠빌라이 칸에게 중국 남부 지방 공략을 맡길 때 곤기라트 족 및 5대 부족의 쿠빌라이 칸 지지를 이끌어냈다.

쿠빌라이 칸이 중국식 제도를 모방하여 중서성, 추밀원, 상서성을 설치하고 친킴이 행정기관인 중서성과 군사 기관의 추밀원 를 총괄하고, 차브이의 남동생 바아토루 부부의 아들 안톤(安童)이 중서성의 장관이되었다. 또한, 나중에 쿠빌라이에 의해 신설된 재무부의 장관으로 차브이의 용인(用人)인 아흐메드가 발탁되어 원 제국 개국 초기의 중앙조정은 그녀의 주변인들에 의해 장악되었다.

조정에서 실권을 쥐고 친킴의 영향력이 높아져 1273년 황태자가 된다. 이 무렵, 제국의 재무부문을 잡고 중서성 내에서 안톤과 아흐메드의 권세도 높아지고, 그 당파가 친킴, 안톤 휘하에 모인 몽골 귀족과 한인 관료과 반목이 깊어갔지만 차브이의 중재로 갈등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친킴파벌과 아흐메드 파벌 간에 갈등이 발생한다.

사후편집

1281년에 차브이가 사망하며 군주 후,비의 궁과 소속영지, 재산은 동일 부족 출신의 후, 비가 상속하는 몽골의 전통을 따라 생전의 차브이가 모은 막대한 재산을 같은 곤기라트 부족 출신인 친김 태자의 태자비 코코진이 상속하였다.

1307년 테무르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죽자, 몽골 제국에서 되풀이 되던 후계자 쟁탈전이 다시 재연되어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모후, 외척, 권신등 몽골 귀족끼리의 격렬한 권력다툼이 되풀이 되었다.

또 권력 다툼의 중심이 된 이들은 칭기즈칸의 황후 보르테, 쿠빌라이의 황후 차브이, 테무르의 모친 코코진 등의 출신부족에서 쿠빌라이, 테무르의 2대에 걸쳐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던 곤기라트부를 중심으로 결속된 원나라의 궁정 귀족들이었다. 테무르의 황후 브르간곤기라트부의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족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테무르의 종제였던 안서왕 아난다를 황제로 맞이했으나, 방계 즉위에 의해 기득권을 위협받는 것을 두려워한 중신들은 쿠데타를 일으켜 브르간과 아난다를 살해하고, 몽골 고원의 방위를 담당하던 테무르의 조카 카이산을 황제로 맞이했다.

1294년 6월 3일 소예순성황후(昭睿順聖皇后)의 시호가 추서되었다.

가계편집

  • 남편: 쿠빌라이(忽必烈)
    • 장남: 도르지(朶兒只)
    • 차남: 친킴(眞金)
    • 며느리: 코코진(闊闊眞)
    • 삼남: 만가라(忙哥剌)
      • 손자: 아난다(阿難答)
      • 손자: 안탄부카(安檀不花)
    • 사남: 노무간(那木罕)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1. 황후 차브이를 섬기는 인물
전임
이수르 카툰
몽골 제국 황후
1260년 ~ 1271년
후임
남부이 카툰
전임
-
(남송 황조)
함순황후
원나라의 황후
1271년 ~ 1281년
후임
남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