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지긴 카말라

원나라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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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지긴 카말라(Kammala, ᠭᠠᠮᠠᠯᠠ, 한국 한자孛兒只斤 甘麻剌 패아지근 감마랄, 키릴 문자:Гамала, 1263년 ~ 1302년 2월 8일)는 원나라의 황족, 장군이었다. 묘호는 현종(顯宗)이다. 1290년 양왕에 임명되어 운남 성으로 파견되었고, 1292년 진왕으로 개봉되어 몽골 막북 고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원 태정제가 추숭하였는데, 시호는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이다. 그는 세조 쿠빌라이 칸의 손자이며, 쿠빌라이 칸의 아들 친킴 태자와 코코진 사이의 장남이었다. 충선왕의 정비인 계국대장공주원 태정제의 아버지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태어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차브이 카툰 손에 양육되었고 할아버지 쿠빌라이 칸의 옆에서 성장했다. 그는 삼가하고 근신하며 망언을 하지 않고, 항상 말을 조심하였다. 그러나 언변이 약하고 말재주가 부족했으며, 총명한 성격은 아니었다. 말 주변이 없고 말을 잘 하지 못했다, 말을 더듬었다는 평이 있고, 원사에는 그의 성품에 대해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부드러웠다고 한다.

1285년 1월에는 친킴 태자가 알콜중독으로 쿠빌라이보다 먼저 죽고, 원나라에 의해 최고의 권력과 재산이 있는 세력이 있는 황태자부의 관리 권한을 코코진이 받았다. 그러나 친킴의 장남이었던 카말라 대신 동생 다르마발라나 테무르가 후계자로 점쳐졌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어머니 코코친 카툰, 할아버지 쿠빌라이 카안이 지지했음에도 그는 동생 다르마발라에게 패하였다. 1289년 쿠빌라이 칸의 명으로 군사를 딸려보내 곽주(漷州)로 파견되었다.

1289년 오고타이 칸국카이두가 침략하자, 카말라는 할아버지 쿠빌라이 칸의 지시로 몽골 고원으로 갔으나, 카이두에게 참패당했다.

1290년 겨울 카말라는 양왕(梁王)에 임명되어 금인(金印)을 하사받고 윈난 성으로 파견되었으며 중산(中山)지역도 하사받았다가, 후계자가 없는 삼촌 노무간을 대신하여 1292년 진왕(晉王)으로 임명되고 다시 몽골 고원으로 보내졌다. 쿠빌라이는 몽골 고원이 태조 칭기즈칸의 땅임을 들어 각별히 신경쓸 것을 그에게 주문하였다. 진왕은 고비사막 북쪽의 몽골을 소유하였고, 칭기스 칸의 무덤이 오르도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생 다루마바라테무르, 그리고 그들의 아들 손자들과의 계승 경쟁에서 패하였다.

1292년 다르마발라가 병으로 갑자기 죽자, 역시 다음 후계자를 결정할 때 카말라는 다른 형제들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테무르가 황태자로 정해졌다.

칸위 계승 탈락편집

1294년 쿠빌라이 칸이 사망했을 때 다시 테무르와 카말라 중 누가 후계자로 적합한지 논의되었다. 그러나 장군 바얀테무르의 지지를 선언했고, 다른 친족들과 어머니 코코진 카툰 역시 테무르를 택하면서 그는 스스로 양보하였다.

원사에 의하면 그는 황조께서 내게 북방 진무를 맡기셨으니, 사직을 지키라는 뜻이다. 오래도록 변방 일을 보았으니 원컨데갑옷을 입게 해달라. 동생 테무르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니 마땅히 대통을 이어야 한다(昔皇祖命我鎮撫北方,以衛社稷,久歷邊事,願服厥職。母弟鐵穆耳仁孝,宜嗣大統)며 자발적으로 양보하였다.

라시드 웃딘의 집사(集史)에 따르면, 섭정으로 쿠릴 타이를 주최한 코코진은 "누구든지(몽골 중요한 계명이다.) 칭기스칸이 가르친 말씀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이 칸에 즉위해야한다"는 쿠빌라이 칸의 유언을 꺼내 형제에게 칭기즈칸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지를 묻자, 테무르는 총명하고 언변과 기억력이 뛰어나, 칭기즈칸의 가르침을 웅변으로 답했지만, 언변과 말발이 서투른 카마라는 입이 가득차 잘 대답할 수 없었다. 장군들은 테무르가 칸에 적합하다고 만장일치로 인정, 테무르를 추대했다고 한다.

1297년, 아리크 부케의 아들인 요부쿠르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 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하여 원나라로 귀환하였고, 이로 인해 카이두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을 공격하였고, 1298년에는 성종의 사위인 쾨르기즈를 생포하여 처형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생애 후반편집

하지만 자신의 세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카이두1301년 아리크 부케의 차남 멜릭 테무르, 차가타이 칸국의 칸 두아와 함께 최대 규모의 원정에 나섰다. 전쟁 초기엔 카이두의 군대가 우세하여 카말라와 그의 아들 예순 테무르 군대를 압도했지만, 카이산의 군대가 전장으로 지원되면서 전황은 급속도로 변했다. 차가타이 칸국의 칸인 두아는 전투 중 부상을 당해 본국으로 퇴각했고, 카이두는 그와의 전투 중 입은 부상 때문에 사망하고 말았다. 카말라 역시 전장에서 부상을 얻어 이듬해 사망하게 된다. 1301년 원 성종이 변사를 보내 금 1천만관을 주었다.

1302년 2월 8일 카말라는 죽고, 예순 테무르가 진왕으로 계승하였다. 1312년 원 인종이 헌무(獻武)의 시호를 추서하여 진헌무왕이 되었다가, 1324년 1월 7일 아들 진종 예순테무르가 아버지 카말라를 황제로 추존, 묘호는 현종(顯宗), 시호는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라 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 조부 : 초대 황제세조(世祖) 쿠빌라이(忽必烈)
  • 조모 : 소예순성황후(昭睿順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 부친 : 추존황제 유종(裕宗) 친킴(眞金)
  • 모친 : 추존황후 휘인유성황후(徽仁裕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후비편집

  • 추존황후 선의숙성황후(宣懿淑聖皇后) 옹기라트씨(弘吉剌氏)
  • 배배해 비자(拜拜海 妃子)
  • 홀상해 비자(忽上海 妃子)

황자편집

  1. 양왕(梁王) 송산(松山, ? ~ 1309년)
  2. 진왕(晉王) 예순테무르(也孫鐵木兒) - 선의숙성황후 소생. 원나라 6대 황제 진종(晉宗).
  3. 상녕왕(湘寧王) 질리가아불화(迭里哥兒不花, ? ~ 1323년)

황녀편집

  1.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 보탑실련(寶塔實憐) - 고려의 제26대 국왕 충선왕의 왕비.
  2. 수녕대장공주(壽寧大長公主)
  3. 조국공주(趙國公主) 아납적납팔랄(兒納的納八剌)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