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동 (서울)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하위 행정구역
(통의동에서 넘어옴)

사직동(社稷洞)은 서울특별시 종로구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 정부서울청사 등 주요행정기관, 금융기관 및 상가 빌딩이 밀집해 있는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도, 과거 조선 왕조 시대에 가장 중요한 국가시설의 하나인 사직단과 서궐로 불렸던 경희궁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재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인왕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현대와 전통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1]

사직동
社稷洞
사직동주민센터
사직동주민센터

로마자 표기Sajik-dong
행정
국가대한민국
지역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정 구역17개 , 115개
법정동통의동, 적선동, 체부동, 필운동, 내자동, 사직동, 도렴동, 당주동, 내수동, 세종로, 신문로1가, 신문로2가
관청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9길 1
지리
면적1.23km2
인문
인구9,278명(2022년 8월)
세대4,681세대
인구 밀도7,540명/km2
지역 부호
웹사이트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역사 편집

지명 유래 편집

내자동(內資洞) : 내자동(內資洞)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이곳에 내자시(內資寺)가 있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내자시는 궁궐에 쌀과 술, 기름, 과일 등 생필품을 공급하고 연희를 관장하던 관청이다.

연혁 편집

  • 1914년 4월 1일 : 행정구역을 아래와 같이 개편함[2]
    • 통의동(通義洞) ← 매동(梅洞) · 서문동(西門洞) · 대동일부(帶洞一部) · 장동일부(壯洞一部)
    • 적선동(積善洞) ← 사온동일부(司醞洞一部) · 어교(魚橋) · 월궁동(月宮洞) · 십자교(十字橋) · 장흥고동일부(長興庫洞一部) · 종교일부(宗橋一部)
    • 체부동(體府洞) ← 구곡동(九曲洞) · 체부동(體府洞) · 누각동일부(樓閣洞一部)
    • 필운동(弼雲洞) ← 필운대(弼雲臺) · 귀동(龜洞) · 전정동(塡井洞) · 대구도가동(大口都家洞) · 도가동(都家洞) · 송목동(松木洞) · 남정동일부(南征洞一部) · 사직동일부(社稷洞一部)
    • 내자동(內資洞) ← 남정동일부(南征洞一部) · 사직동일부(社稷洞一部) · 전립동(戰笠洞) · 고간동(古澗洞) · 장흥고동일부(長興庫洞一部) · 창염동(昌染洞) · 종교일부(宗橋一部) · 은행동(銀杏洞)
    • 사직동(社稷洞) ← 창평동(昌平洞) · 사직동일부(社稷洞一部) · 무덕문(武德門) · 박정동일부(朴井洞一部)
    • 도렴동(都染洞) ← 의영고동(義盈庫洞) · 도염동일부(都染洞一部) · 사온동일부(司**洞一部) · 공후동일부(工後洞一部)
    • 당주동(唐珠洞) ← 북문동일부(北門洞一部) · 봉상사전(奉常司前) · 대창동일부(大昌洞一部) · 내담동(內膽洞) · 남문동(南門洞) · 창례동(昌禮洞) · 훈조동일부(燻造洞一部) · 야주현일부(夜珠峴一部) · 당피동일부(唐皮洞一部)
    • 광화문통(光化門通) ← 수문동일부(水門洞一部) · 예빈동(禮賓洞) · 두석동일부(豆錫洞一部) · 황토현일부(黃土峴一部) · 사온동일부(司醞洞一部) · 도염동일부(都染洞一部) · 공후동일부(工後洞一部) · 보민동(保民洞) · 삼간동(三澗洞) · 송교일부(松橋一部) · 구서부동일부(舊西部洞一部) · 서학현일부(西學峴一部) · 광제교(廣濟橋) · 동령동(東嶺洞) · 황토현(黃土峴) · 하방교일부(下芳橋一部) · 당피동일부(唐皮洞一部) · 송교일부(松橋一部)
    • 서대문정일정목(西大門町一丁目) ← 송교일부(松橋一部) · 하방교일부(下芳橋一部) · 상방교(上芳橋) · 중방교(中芳橋) · 선공동(繕工洞) · 원동(園洞) · 야주현일부(夜珠峴一部) · 염정동(廉井洞) · 비변사(備邊司) · 정자동(亭子洞) · 당피동일부(唐皮洞一部) · 훈조동일부(燻造洞一部) · 오궁동일부(五宮洞一部)
    • 서대문정이정목(西大門町二丁目) ← 자문동(紫門洞) · 신문내(新門內) · 함춘원(含春園) · 방추동(芳楸洞) · 장생동(長生洞) · 농포동(農圃洞) · 왕궁동일부(王宮洞一部)
  • 1936년 4월 1일 : 동(洞)을 정(町)으로 변경[3]
  • 1943년 6월 10일 : 경기도 경성부 종로구에 배속[4]
  • 1946년 10월 1일 : 정(町)을 동(洞)으로 변경[5]
  • 1955년 4월 18일 : 아래와 같이 행정동 설치[6]
    • 백송동(白松洞) : 통의동 · 적선동
    • 매동(梅洞) : 체부동 · 필운동
    • 종교동(宗橋銅) : 내자동 · 내수동
    • 사직동 : 사직동
    • 중앙동(中央洞) : 도렴동 · 당주동 · 세종로(1번지 제외)
    • 신문동(新門洞) : 신문로1가 · 신문로2가
  • 1970년 5월 18일 : 아래와 같이 행정동 개편[7]
    • 효자동(孝子洞) : 효자동 · 창성동 · 통의동 · 적선동
    • 체부동(體府洞) : 체부동 · 필운동 · 내자동
    • 사직동 : 사직동
    • 세종로동(世宗路洞) : 내수동 · 도렴동 · 당주동 · 세종로(1번지 제외)
    • 신문로동(新門路洞) : 신문로1가 · 신문로2가
  • 1975년 10월 1일 : 행정동 체부동을 사직동에, 신문로동을 세종로동에 합동[8]
  • 1977년 9월 1일 : 법정동 통의동과 적선동을 사직동에 이관[9]
  • 1998년 12월 1일 : 행정동 세종로동을 사직동에 합동[10]

법정동 편집

유적 편집

통의동
  • 보안여관 : 1930년대에 개업하여 2006년 폐업한 여관으로, 서정주·김동리·오장환·김달진 등이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기도 하였던 장소이다.[11] 통의동 2-1에 소재한 그 건물은 효자로에 접하는 일본식 건축물인데, 독특하게도 건물 정면은 벽돌로 벽을 세워 전면의 삼면을 둘러 일반적인 벽돌집처럼 보이게 건축되었다.[12]
적선동
  • 장흥고(長興庫) 터 : 돗자리, 유둔(油芚), 종이 등을 맡던 기관으로, 적선동에 있었다.
  • 사온서(司醞署) 터 : 술과 감주를 맡던 기관으로, 적선동에 있었다.
  • 박은 집터 : 조선 중기의 문신 박은의 집터로, 적선동에 위치하였다.
체부동
필운동
내자동
  • 어의궁 : 효종의 잠저(潛邸)였던 곳으로, 효제동 22번지에 있던 것을 내자동 201번지로 이전하였다.
사직동
도렴동
  • 도렴서 터 : 각종 염료(染料)의 제조와 염색작업을 맡던 관청으로, 도렴동 12번지에 위치하였다.
  • 사역원 터 : 외국어 교육 기관이자 통·번역 사무와 실무를 맡던 관청으로, 도렴동 88번지에 위치하였다.
  • 의영고 터 : 기름, 꿀, 황랍(黃蠟), 소물(素物), 후추 등을 맡던 관청으로, 도렴동 40번지에 위치하였다.
당주동
  • 내섬시 터 : 여러 궁전(宮殿)에 대한 공상(供上), 2품 이상에게 주는 술과 안주, 왜인(倭人)과 여진인에게 주는 음식물과 직포 등을 맡던 관청으로, 당주동에 위치하였다.
  • 봉상사 터 : 국가의 제사와 시호를 맡던 관청으로, 당주동 128번지에 위치하였다.
세종로
신문로1가
신문로2가

주요 기관 편집

교육 편집

교통 편집

각주 편집

  1. 동장 인사말, 2012년 8월 26일 확인
  2. 경기도고시 제7호
  3. 경기도고시 제32호
  4. 조선총독부령 제163호 (1943년 6월 9일)
  5. 서울시헌장 제1조
  6. 서울특별시 조례 제66호
  7. 서울특별시조례 제613호
  8. 서울특별시 조례 제981호
  9. 서울특별시 조례 제1181호
  10. 종로구 조례 제383호
  11. 통의동 보안여관, 《서울신문》, 2009.12.04.
  12. 서울역사박물관 외 (2010). 《서촌. 1, 역사·경관·도시조직의 변화》.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241쪽. ISBN 9788991553132. 
  13. 처음 밝혀진 체부동 염상섭 생가터… 그의 자취는 어디에도 없었다 Archived 2015년 5월 18일 - 웨이백 머신, 《경향신문》, 2013.10.20.
  14. 서울역사박물관 외 (2010). 《서촌. 1, 역사·경관·도시조직의 변화》.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325쪽. ISBN 9788991553132.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