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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선(尹昇善, 1904년 8월 7일 - 1966년 7월 20일)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군인이며, 대한민국해군, 해병대 창설에 참여하였다. 교육자 윤치오의 넷째 아들이며 윤영렬의 손자이다. 4대 대통령 윤보선의 사촌 동생이며, 군의관 윤치왕의 5촌 조카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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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선
尹昇善
생애 1904년 8월 7일 ~ 1966년 7월 20일 (63세)
출생지 조선 한성부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해평(海平)
별명 호(號)는 산남(山南)
종교 유교(성리학) → 개신교(침례회)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해병대
복무 기간 1939년 ~ 1960년
최종 계급 일본 제국 육군 대위
대한민국 해병대 대령
근무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지휘 관동군사령부 시설장교
대한민국 해군본부 공병참모부 공병과장
대한민국 해군본부 시설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 공병감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한국 전쟁
기타 이력 경기도 도청 토목공업행정특보위원(1962년)
민주당 특임촉탁위원(1963년)

일제 강점기에 황해도청 내무부 서기로 임용되었다가 1939년 입대하여 일본 관동군에서 복무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손원일의 해사대에 참여했고, 이후 대한민국 해군대한민국 해병대의 창군주역으로 참여하였다.

생애편집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황해도 내무부 토목과 토목기수로 부임하였다. 1929년 황해도 내무부 토목과 건축기수, 1931년 7월 14일 황해도청 회계과 계원이 되어 1939년까지 재직했다. 그 뒤 일본군에 입대, 관동군사령부 대위[1], 일본군 관동군사령부 시설장교를 역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귀국, 8월 21일 손원일해사협회(海事協會, Marine Affairs Association) 조직에 참여하였고, 11월 21일 역시 손원일해방병단 창립에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9월 15일 미군정청 건축서 공사과장이 되었다. 1948년 4월 국군 해군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백두산함 인수에 관여하였고[[6.25 전쟁] 발발때에는 해군 소령으로 참전 51년 8월 3대 해군 시설감으로 임명되었다. 휴전 후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해군본부 시설감, 해병대본부 공병감 등을 지냈다. 해병대 공병감으로 재직 중, 인천 서구 금곡동에 해병대 교육단 부지를 마련하고 해병교육단의 설계와 시공을 감독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한국사회과학연구소, 《미군정과 교육정책》 (민영사, 1992) 157페이지
  2. “이경찬의 국사교실”. 2016년 4월 1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3월 3일에 확인함. 
  3. 다른 이름으로 윤고라 라는 이름도 있다.
  4. 《뉴스플러스》 (1999.4.1) 20세기 한국의 풍물 풍속사⑫ 옷 - '미니스커트 단속' 그 때를 아시나요
  5. 국민보 제41호, 1914년 01월 07일자 기사

관련 서적편집

  • 한국사회과학연구소, 《미군정과 교육정책》 (민영사, 1992) 157페이지</ref>, 관동군사령부 시설장교를 역임하였다.
  • 임종국, 《실록 친일파》 (반민족문제연구소,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