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맹

조선 초기 문신

강희맹(姜希孟, 1424년 ~ 1483년)은 조선 초기 문신이다. 조선 좌찬성 직책을 지낸 그는 뛰어난 문장으로 유명하며 화가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운송거사(雲松居士),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강희맹
姜希孟
조선국 좌찬성
(朝鮮國 左贊成)
임기 1478년 2월 1일 ~ 1481년 9월 30일
군주 조선 성종 이혈

이름
별명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私淑齋), 국오(菊塢), 운송거사(雲松居士), 시호는 문량(文良)
신상정보
출생일 1424년
출생지 조선 한성부
사망일 1483년 (60세)
사망지 조선 한성부
국적 조선
학력 1447년 문과 친시 1등 급제
경력 문인, 화가,
정당 무소속
본관 진주
부모 강석덕(부)
형제자매 강희안(형)
배우자 본부인 안씨
그 외 첩실 1명
자녀 슬하 4남 3녀
(그 중 장남 강귀손, 차남 강학손)
친인척 문종 이향(이종형)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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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녕부 지사 강석덕(姜碩德)의 차남이자 소헌왕후의 조카이며, 문종, 세조와 이종간이다.(강석덕은 세종의 아랫 동서)[1]

세종 29년(1447년) 문과 친시에 을과1등으로 급제하였으며, 세조예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내고 예종남이를 죽인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다. 성종 때에는 병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우찬성, 좌찬성 등을 지냈다. 그는 서화와 문장이 뛰어났으며, 그가 죽은 뒤 서거정에 의하여 유고가 편찬되었다. 저서로 <사숙재집> <촌담해이> 등이 있다.연산군이 돌 일 때 폐비윤씨를 폐비시켜버리자라는 이야기가 돌아 궁궐이 흉흉했을 때 강희맹에 집에서 지냈다.

1424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기도 시흥에서(현재 서울시 시흥4동에 강희맹의 집 터가 있다.)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44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라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과 서화에 모두 뛰어나 도화서의 제조를 맡기도 하였다.[1]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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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선생묘및신도비》는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에 있다. 부인 안씨와의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좌우에 독특한 모습의 문인석이 있다. 묘역 왼쪽 아래에는 성종 19년(1488)에 세운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우던 비)가 있는데, 서거정이 비문을 짓고 박증영이 글씨를 쓴 것이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2]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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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부 : 강회백(姜淮伯)
    • 부친 : 강석덕(姜碩德, 1395 ~ 1459)
  • 외조부 : 심온(靑川府院君 沈溫, 1375 ~ 1418) - 청천부원군
  • 외조모 : 삼한국대부인 순흥 안씨(三韓國大夫人 順興 安氏, ? ~ 1444) - 안천보(安天保)의 딸
    • 모친 : 청송 심씨(1397 ~ ?)
    • 장인 : 안숭효(安崇孝, ? ~ 1460)
    • 장모 : 한산 이씨 - 지돈녕(知敦寧) 이숙묘(李叔畒)의 차녀
      • 정부인 : 순흥 안씨
        • 장남 : 강귀손(姜龜孫) - 우의정
        • 며느리 : 은진 송씨 - 송요년(宋遙年)의 딸
          • 손자 : 강태수(姜台壽) - 계자 친부 강학손, 부사(府使) ,
          • 손녀 : 이돈(李墩, 1481 ~ ?)[3]에게 출가, 지산부령(砥山副令)
        • 차남 : 강학손(姜鶴孫, 1455 ~ 1523) - 한성부서윤, 무오사화 때 영광으로 유배
        • 며느리 : 고령 신씨 - 감사(監司) 신면(申㴐)의 딸
          • 손자 : 강영수(姜永壽) - 충좌위 사과
          • 손자 : 강형수(姜享壽) - 별좌(別坐)
          • 손자 : 강태수(姜台壽) - 강귀손(姜龜孫)에게 출계, 부사(府使)
          • 손자 : 강기수(姜期壽)
          • 손자 : 강구수(姜耉壽) - 주부(主簿)
          • 손자 : 강흔수(姜欣壽) - 감역(監役)
          • 손자 : 강곤수(姜坤壽)
          • 손자 : 강종수(姜終壽)
          • 손녀 : 덕림정(德林正) 이자(李孜)에게 출가
          • 손녀 : 경주 김씨 호군(護軍) 김우정(金禹鼎)에게 출가
        • 장녀 : 창녕 성씨 - 지중추(知中樞) 성세명(成世明)에게 출가
        • 차녀 : 김성동(金成童)에게 출가[4]의 처
          • 외손자 : 김도(金淘) - 별좌(別坐)
          • 외손자 : 김여(金濾) - 충의위(忠義衛)
          • 외손자 : 김언(金漹, 1495 ~ ?) - 판결사(判決事)
          • 외손녀 : 연안 김씨 현감(縣監) 김석린(金碩麟)에게 출가
          • 외손녀 : 문화 류씨 류수천(柳壽千)에게 출가
          • 외손녀 : 경주 최씨 군수 최수준(崔秀俊)에게 출가
          • 외손녀 : 류여회(柳如晦)에게 출가
          • 외손녀 : 청주 한씨 충의위(忠義衛) 한계상(韓繼常)에게 출가
        • 3녀 : 고령 신씨 부사(府使) 신렴(申濂)에게 출가
          • 외손녀 : 동래 정씨 전한(典翰) 정응(鄭譍)에게 출가
        • 4녀 : 안동 권씨 감찰(監察) 권만형(權曼衡)에게 출가
          • 외손자 : 권현(權鉉) - 별좌(別坐)
          • 외손자 : 권상(權鏛)
          • 외손자 : 권용(權鎔) - 부사(府使)
      • 측실 : 이름 미상
        • 서자 : 강오손(姜鰲孫)
        • 서자 : 강종손(姜螽孫)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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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으로 스스로 엮은 《금양잡록》, 《촌담해이》그리고 사후에 서거정성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사숙재집》이 전한다. 《동국여지승람》, 《국조오례의》 등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5]

  • 촌담해이: 촌담해이는 금양 지방의 민담과 관직생활 중 들었던 여러 설화를 모은 것이다. 신기하거나 이상한 이야기, 음담 패설 등을 수록하였다.[5]
  • 사숙재집: 서거정이 강희맹 사후에 그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으로 한시와 교육, 삶의 지혜 등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강희맹은 《금양잡록》에서 "경기에서는 동풍이 불 때 가뭄이 심해 어떤 해에는 논 밭의 물이 모두 마른다."고 푄 현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6]

관련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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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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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특별시, 서울 육백년사 Archived 2004년 8월 19일 - 웨이백 머신
  2. “강희맹의 묘”. 2015년 7월 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8월 1일에 확인함. 
  3. 후령군의 서손자
  4. 의정부좌의정 김질의 아들
  5. 구인환 편, 촌담해이(우리고전 다시읽기 32), 신원문화사, 2006
  6. 정인경, 청소년을 위한 한국과학사, 두리미디어, 2007, 117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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