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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 문화

선정 과정편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현존하는 문헌 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친일반민족행위가 입증된 문화 부문 인사 106명(학술 분야 인사 23명, 문예 분야 인사 83명(문학 분야 인사 32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23명(연극 분야 인사 14명, 영화 분야 인사 9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20명(음악 분야 인사 17명, 무용 분야 인사 2명, 야담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8명))에 대한 조사 대상자 선정 심의를 진행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 심의 결과 100명(학술 분야 인사 22명, 문예 분야 인사 78명(문학 분야 인사 31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22명(연극 분야 인사 13명, 영화 분야 인사 9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18명(음악 분야 인사 15명, 무용 분야 인사 2명, 야담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7명))이 문화 부문 조사 대상자로 선정되었으며 6명(학술 분야 인사 1명, 문예 분야 인사 5명(문학 분야 인사 1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1명(연극 분야 인사 1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2명(음악 분야 인사 2명), 미술 분야 인사 1명))이 기각 결정을 받았다.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 선정에 대한 이의 신청 과정에서는 14건(학술 분야 3건, 문예 분야 11건(문학 분야 2건, 연극·영화 분야 1건(영화 분야 1건), 음악·무용·야담 분야 4건(음악 분야 3건, 무용 분야 1건), 미술 분야 4건))의 이의 신청이 접수되었다. 심의 결과 2건(학술 분야 1건, 문예 분야 1건(음악 분야 1건))이 인용(선정 취소)되었고 12건(학술 분야 2건, 문예 분야 10건(문학 분야 2건, 연극·영화 분야 1건(영화 분야 1건), 음악·무용·야담 분야 3건(음악 분야 2건, 무용 분야 1건), 미술 분야 4건))이 기각(선정 유지)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로 지정된 문화 부문 인사 98명(학술 분야 인사 21명, 문예 분야 인사 77명(문학 분야 인사 31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22명(연극 분야 인사 13명, 영화 분야 인사 9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17명(음악 분야 인사 14명, 무용 분야 인사 2명, 야담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7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결정을 심의했다. 심의 결과 85명(학술 분야 인사 20명, 문예 분야 인사 65명(문학 분야 인사 31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17명(연극 분야 인사 10명, 영화 분야 인사 7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12명(음악 분야 인사 10명, 무용 분야 인사 1명, 야담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5명))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었으며 13명(학술 분야 1명, 문예 분야 12명(연극·영화 분야 인사 5명(연극 분야 인사 3명, 영화 분야 인사 2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5명(음악 분야 인사 4명, 무용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2명)이 기각 결정을 받았다.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 과정에서는 7건(학술 분야 2건, 문예 분야 5건(문학 분야 2건, 음악·무용·야담 분야 2건(음악 분야 2건), 미술 분야 1건))의 이의 신청이 접수되었다. 심의 결과 1건(문예 분야 1건(미술 분야 1건))이 인용(선정 취소)되었고 6건(학술 분야 2건, 문예 분야 4건(문학 분야 2건, 음악·무용·야담 분야 2건(음악 분야 2건))이 기각(선정 유지)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최종 심의 결과 84명(학술 분야 인사 20명, 문예 분야 인사 65명(문학 분야 인사 31명, 연극·영화 분야 인사 17명(연극 분야 인사 10명, 영화 분야 인사 7명), 음악·무용·야담 분야 인사 12명(음악 분야 인사 10명, 무용 분야 인사 1명, 야담 분야 인사 1명), 미술 분야 인사 4명))이 문화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었다.

문화 분야 목록 (84명)편집

학술 (20명)편집

문예 (64명)편집

문학 (31명)편집

연극·영화 (17명)편집

연극 (10명)편집
영화 (7명)편집

음악·무용·야담 (12명)편집

음악 (10명)편집
무용 (1명)편집
야담 (1명)편집

미술 (4명)편집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대상자 선정 심의 과정에서 기각된 인물 (8명)편집

학술 (2명)편집

  • 고승제 (高承濟): 일본에서 도요 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동안에 징병제를 선전하는 논설문을 기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가 인정되었지만 이의 신청이 인용되면서 기각됨.
  • 현채 (玄采): 조선사 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지만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로 보기에 어려움.

문예 (6명)편집

문학 (1명)편집

  • 최찬식 (崔瓚植): 문학 작품 집필 활동을 통해 내선융화, 황민화를 주도했지만 친일반민족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미약함.

연극·영화 (1명)편집

  • 함세덕 (咸世德): 지속적인 연극 창작 활동을 통해 친일 협력 사실이 분명하지만 학계에서는 그의 친일 행위와 관련된 논란이 많다는 사실, 연극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 인정됨.

음악·무용·야담 (3명)편집

음악 (3명)편집
  • 김생려 (金生麗): 경성후생실내악단 대표를 역임하면서 일본의 침략 전쟁, 징병·징용을 선전하는 음악회를 주최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그 행위가 두드러지지 않는 편임.
  • 김성태 (金聖泰): 일본의 식민 통치, 침략 전쟁에 협력하는 내용이 담긴 노래 다수를 작곡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그 행위가 두드러지지 않는 편임.
  • 이흥렬 (李興烈): 군국가요 다수를 작곡, 연주하면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선전했지만 음악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그 행위가 두드러지지 않는 편임.

미술 (1명)편집

  • 현재덕 (玄在德): 잡지 《신시대》에 일본의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한 후방의 근로보국, 물자 절약 등을 주제로 한 표지화, 삽화, 만화를 제작했지만 활동 범위가 잡지 《신시대》에 한정되어 있고 활동 기한이 짧은 편임. 그림의 내용이 침략 전쟁 선전보다는 후방의 물자 절약 등에 한정되어 있어서 강렬함이 약하다고 판단함.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심의 과정에서 기각된 인물 (14명)편집

학술 (1명)편집

  • 심형진 (沈衡鎭): 일본의 식민 통치를 찬양하는 한시 다수를 집필했지만 친일반민족행위가 미약하다는 사실이 인정됨.

문예 (13명)편집

연극·영화 (5명)편집

  • 김태진 (金兌鎭): 조선연극문화협회 이사로 활동했지만 활동 범위가 미약하고 연극 작품 활동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임.
  • 문정원 (文丁元, 문예봉(文藝峰)): 다수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내선일체, 황민화를 선전한 배우였지만 친일반민족행위를 주도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임.
  • 박기채 (朴基采): 영화 연출 활동 이외의 활동이 그리 많지 않고 협력의 정도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됨.
  • 심재설 (沈載卨, 심영(沈影)): 다수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여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내선일체, 황민화를 선전한 배우였지만 친일반민족행위를 주도하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임.
  • 오철영 (吳鐵榮, 오정민(吳禎民)):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연극 경연 대회를 지지하는 평론 활동을 통해 일본의 식민 통치 이념을 선전하고 연극인들의 전쟁 협력을 촉구한 행적이 있지만 그러한 행위가 1943년에 집중되어 있고 연극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은 편임.

음악·무용·야담 (5명)편집

음악 (4명)편집
  • 강문수 (姜文秀, 남인수(南仁樹)):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를 비롯한 군국가요 다수를 노래하는 등 친일 행위가 명백하지만 대중 가수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됨.
  • 김송규 (金松奎, 김해송(金海松)): 《이천오백만 감격》, 《참사랑》, 〈봄날의 화신》, 《그대와 나》, 《총후의 기원》을 비롯한 군국가요 다수를 작곡했지만 작곡가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됨.
  • 손득렬 (孫得烈, 손목인(孫牧人)): 《이천오백만 감격》, 《참사랑》, 〈봄날의 화신》, 《그대와 나》, 《총후의 기원》을 비롯한 군국가요 다수를 작곡했지만 작곡가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됨.
  • 이창민 (李昌民, 백년설(白年雪)):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그대와 나》를 비롯한 군국가요 다수를 노래하는 등 친일 행위가 명백하지만 대중 가수가 갖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사실이 인정됨.
무용 (1명)편집
  • 최승희 (崔承喜): 75,000원이 넘는 거액의 국방헌금 기부, 중국에서 열린 황군 위문 공연 참여, 국민총력문화표창을 받은 일본풍 창작 무용 《무혼》(武魂) 제작에 참여하는 등 친일 행위가 명백하지만 그의 친일 행위와 관련된 논란이 많다는 사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드물게 조선 문화를 세계에 알린 사실이 인정됨.

미술 (3명)편집

  • 김경승 (金景承):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으로 활동했지만 현존하는 그림 작품 수가 적어서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로 보기에 어려움.
  • 이상범 (李象範):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과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위원으로 활동했지만 현존하는 그림 도판이 적어서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로 보기에 어려움.
  • 정현웅 (鄭玄雄): 《신시대》(新時代), 《반도의 빛》(半島の光,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소국민》(小國民), 《방송지우》(放送之友, 조선방송협회 기관지) 등의 각종 잡지에 일본의 침략 전쟁, 근로보국, 식량 증산, 전쟁 참여 독려를 비롯한 일본의 식민 통치 정책을 선전하는 표지화와 삽화를 그린 행적이 있지만 생계를 위한 친일 행적이라는 사실이 인정됨.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Ⅱ》. 서울. 

각주편집

  1. 홍영후(홍난파)는 2009년 11월 26일에 서울행정법원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에 대한 효력 정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일시적으로 제외되었으나 2010년 11월 8일에 홍영후(홍난파)의 유족이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결과 통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취하함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다시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