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항해가
(크리스토발 콜론에서 넘어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영어: Christopher Columbus, 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영어: 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터퍼 컬럼버스[*], 라틴어: Christophorus Columbus 크리스토포루스 콜룸부스[*], 스페인어: Cristóbal Colón 크리스토발 콜론[*], 포르투갈어: Cristóvão Colombo 크리스토방 콜롬부[*], 1450년 10월 31일 제노바 ~ 1506년 5월 20일 바야돌리드)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사후에 그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화
출생1450년 10월 31일(1450-10-31)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사망1506년 5월 20일(1506-05-20)(55세)
카스티야 연합왕국 바야돌리드
성별남성
경력서회 항로 개척
직업탐험가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서명
Columbus Signature.svg

항해 이전 삶편집

콜럼버스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제노바 공화국 출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에는 카탈루냐 출신이라거나 유대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젊은 시절 교육을 잘 받지 못하였고 지중해에서 선원으로 활동하였다.

어떻게 포루투갈까지 갔는지는 불확실하다.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콜럼버스가 쓴 전기에 따르면 해상 전투에서 배가 난파되었는데 포루투갈에서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후 포루투갈에서 활동하며 그곳에서 결혼까지 했다. 이 시기에 신항로 개척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콜럼버스의 탐험편집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중세 유럽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는 대서양을 건너서 서쪽으로 섹스 가면 아시아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발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였으나,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지나 아시아까지 가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엄청난 계산 실수로 이 루트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지구의 둘레 값인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결과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천문학자 알프라가누스의 값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 마일로 적혀있던 알프라가누스의 계산결과를 로마 마일로 잘못 이해한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의 3/4 정도로 생각했다. 거기다 당시 유럽에는 아시아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위치를 실제보다 14,000km 이상 가깝다고 보았다.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서회항로 탐험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아프리카 서해안 탐사와 동방무역항로 개척을 준비 중이던 주앙 2세가 거절하자, 스페인 궁정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공동 통치하고 있었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1. 기사와 제독 작위
  2.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자위
  3.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

이라는 실현 가능성없는 조건을 제시하자 포르투갈에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 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콜럼버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결국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을 내주었다. 하지만 워낙에 무모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참여하겠다는 선원이 많지 않았다. 결국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범죄자와 부랑자들까지 승무원으로 모집하였다.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 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계약 후에도 이사벨 여왕이 계속 지원을 미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항해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되었다.(당시 콜럼버스의 나이는 39세였다)

서회 항로 탐험편집

 
콜럼버스의 항해경로

콜럼버스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각종 향신료의 수입을 위한 인도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를 보면 금과 보물에 대한 언급이 10일 분량에 수백 차례나 등장한다. 또한 이사벨 여왕과의 계약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의 축적이었다. 콜럼버스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다.

제1차 항해의 출범은 1492년 8월 3일이었으며,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에서 과나하니 섬(추정)에 도달했고,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칭하였다. 이어서 그는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 Haiti)에 도달하여,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이후 항해 도중, 산타마리아호가 파손되어 한 섬에 약 40명의 선원을 남긴 후에 에스파뇰라(Española, 후 스페인)라고 이름지었다.

제1차 항해 후 1493년 3월[1]에 귀국하여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제1차 항해 후 아메리카에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2]

제2차 항해(1493년 9월 24일)는 그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1,200명이 참가하였으며 17척에 대선단이 꾸려졌다.

히스파니올라에 남겨 두었던 식민지 개척자는 인디오의 저항으로 전멸해 버렸으나, 콜럼버스는 여기다 식민지 행정관으로서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스페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주고 인디언에게는 공납(貢納)과 부역(경작과 금 채굴)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금의 산출량이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원주민들을 학대·살육·성폭행 하였으며 노예화하였다. 이 항해에서 스페인으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1496년에 귀국한후 문책당했다.

제3차 항해(1498년 ~ 1500년)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오리노코 강 하구(河口)를 발견하였다. 콜럼버스는 제3차 항해에서 칼데아 신아람어히브리어에 능통한 선원 두 명을 데리고 갔다. 목적지인 남아시아에 다다르게 될 경우, 에덴 동산의 거주자들이 이 두 언어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리노코 강 하구를 에덴 동산의 관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신의 명으로 불꽃의 검을 들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케루빔이 자신의 배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3] 제3차 항해 도중,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시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차 항해(1502년 ~ 1504년)에서 그는 온두라스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 3차 항해의 허가는 바스쿠 다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 때문으로 보이나, 그 사정은 명백하지 않다.

통풍관절염으로 수년간 고생하던 그는, 1506년 5월 20일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하였다. 사망할 때까지 그는 자신이 도착했던 땅이 인도라고 확신했다.

콜럼버스 항해록편집

1차 항해를 마치고 귀국한 콜럼버스는 항해일지를 정리하여 국왕에게 바쳤으며 자신도 필사본을 한 부 소장하였다. 그러나 현재 원본과 필사본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현존하는 《콜럼버스 항해록》은 라스카사스 신부가 1530년 경에 원본을 보고 발췌, 요약한 축약본이다.[4][5] 이 축약본은 1790년경에 스페인의 역사가 나바레테에 의해 인판타도 공작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발견직후 진위여부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다른 기록들(서한, 왕실문서), 문법, 철자등을 중복, 교차 검증하며 연구한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원본을 보고 요약한 것이 분명하고 필적 또한 라스카사스 신부의 것과 일치함으로 진본이라는 것이다.[6]

라스카사스 신부는 원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일부에 대하여 수정을 가했고 자신의 생각과 평가를 첨가하였다. 원본의 내용이 훼손되었으나 콜럼버스가 작성한 원본이 전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콜럼버스의 1차 항해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1차 항해에 참가한 총 승선인원은 90명이라는 것이 정설이며, 그중에 외국인은 3명으로 이탈리아인 2명, 포루투갈인 1명이다.

평가편집

긍정적 평가편집

탐험과 발견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서양인의 관점에서 볼때 역사의 무대를 전 지구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다. 또한 지중해 중심이던 서양역사가 대서양 중심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가 더 큰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7]

콜럼버스의 사후에도 개척열기가 이어지며 아메리카 대륙에 서양문명을 이룩하게 되었다. 거대한 신대륙의 발견과 대서양보다 훨씬 더 넓은 태평양의 존재를 알게되는 등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놀라운 지적 자극이 되어 전통적으로 '주어진 것'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고전적 권위에 대한 존경이 사라지고 지식인들의 사고의 문을 넓혀주었다.[8]

부정적 평가편집

원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큰 비난을 받고 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통치하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고문 등 잔혹 행위를 일삼은 사실이 역사적 고증으로 밝혀지면서, 콜럼버스 데이에 반대하는 운동이 미 전역에서 벌어졌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의 주요 도시와 주(州)에서는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바꾸기까지 했다.[9]

신화와 논란편집

콜럼버스 신화편집

 
워싱턴 어빙 (1783-1895)

콜럼버스가 지구 구형설의 선구자라는 신화가 있다.[10] 이는 1828년에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1783~1859)이 콜럼버스 전기를 쓰며 콜럼버스를 영웅시하는 거짓 신화를 만들어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워싱턴 어빙이 스페인 주재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시절에 스페인이 자국의 신대륙 탐험과 정복역사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였는데, 워싱턴 어빙은 스페인 기록 보관소에 있는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한후 이를 기초로 하여 전기를 썼다.[11] 그러나, 워싱턴 어빙은 콜럼버스의 전기인 《콜럼버스의 생애와 항해》에서, 중세인들은 지구 평면설을 믿었기 때문에 너무 멀리 항해하면 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식의 미신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나,[12][13] 콜럼버스만은 예외적으로 과학적인 사고를 하며 깨어 있는 선구자이기에 지구 구형설을 주장하였다는 식의 신화를 만들어냈다.[10]

그리고 콜럼버스는 탐험과 항해를 통해서 지구구형설을 증명했다고 추겨세웠다.[14][15]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유럽인들은 지구가 구형임을 알고 있었다.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증명해야할 필요가 없었으며 콜럼버스는 지구 구형설의 선구자가 아니었다. 중세인들 중에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은 소수였으며, 지식인 계층과 해운업 종사자나 선원들 사이에서는 지구구형설이 상식에 속했다.[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어빙이 쓴 콜럼버스의 전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미국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17] 그 때문에 콜럼버스가 지구 구형설의 선구자라는 신화와 중세인들은 지구 평면설을 믿었다는 잘못된 역사상식이 널리 퍼지고 말았다.[18]

콜럼버스의 달걀편집

 
콜럼버스의 달걀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기존의 갇혀 있는 사고를 뛰어 넘는 발상의 전환의 중요성을 일커를 때 자주 쓰는 서양의 고사성어이다. 막상 방법을 알고보면 단순하고 쉬워 보이지만 쉽게 떠올릴 수 없는 뛰어난 아이디어나 발견을 의미하며,[19] 사소해 보이는 발상의 전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임을 말하고자 할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이 고사성어는 콜럼버스와 관련된 일화에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탐험을 마치고 귀국한 콜럼버스를 위한 축하파티가 성대히 열렸는데, 몇몇 사람들은 그의 업적에 대해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항해하다 보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는 일’이라며 깍아내렸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파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걀을 탁자위에 세워 볼 것을 요구했다.[20]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달걀을 살짝 깨뜨려 탁자 위에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이에 대해서 콜럼버스는 따라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달걀을 깨뜨려서 세운 콜럼버스의 일화는 이탈리아 역사학자 벤조니가 1565년 그의 저서인 《신세계의 역사(History of the New World)》에 소개한뒤[21][19][22]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화는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닌것으로 보인다. 조르조 바사리가 1550년에 출판한 《미술가 열전》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의 에피소드라고 이미 소개한적이 있기 때문이다.[23]

신대륙 발견편집

사실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 선사 시대에 아시아인들이 이미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였고, 9세기바이킹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초상화편집

콜럼버스는 살아 생전에 초상화를 그린 적이 단 한번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수십가지가 넘는 콜럼버스의 초상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모두 콜럼버스 사후에 후세인들에 의해 그려진 것들 뿐이다.

유산편집

콜럼버스의 교환편집

신대륙 발견이후 신구대륙 사이에서 교류가 활발해지며 동식물, 사람, 문화, 질병, 기술, 종교, 사상 등 광범위한 상호 이동과 이에 따른 생태학적 변화가 발생하였다.[24] '콜럼버스의 교환' 이란 용어는 1960년대 후반 앨프레드 W 크로스비가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사용했으며,[25] 환경사적으로 '콜럼버스의 교환'은 비등가 교환이다. 구대륙의 생물은 신대륙에서 생태계를 지배하며 크게 번창한 것에 반해, 신대륙의 생물은 구대륙에서 극소수만이 자리 잡았다. 예외적으로 토마토, 감자, 옥수수 등 유럽인들이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가져간 작물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식량원이 되었다. 구대륙에서는 밀, 쌀, 커피, 사탕수수가 중요한 작물이 되었고, 아메리카인들은 말 등을 운송과 교통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여온 것들의 예로는 칠면조, 호박, 파인애플, 카카오, , 바닐라, 옥수수, 토마토, 감자, 땅콩, 카사바, 피망, 고구마, 담배, 고추 등이 있고,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들여온 것은 소, 양, 돼지, 말, 쌀, 밀, 사탕수수, 포도, 커피, 양파, 올리브, 복숭아, , 꿀벌, 바나나 등이 있다. 농작물, 가축 등은 의도적 교환으로 이루어졌으나 의도하지 않게 미생물과 감염병도 옮겨지며 홍역과 천연두로 인해 신대륙에 급격한 인구 감소를 초래하여 인디언(원주민)들의 숫자는 80%가 줄어들었다.

신대륙은 구대륙인들에 의해 식민지화가 진행되었고 흑인노예무역삼각무역으로 유럽인들은 큰 부를 축적하였다. 신대륙에서 생산되고 약탈된 은은 전세계로 유통되어 기축통화로 사용될 정도로 많았으나, 이로인해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상공업의 발전을 저해했다. 또한 은을 실어나르는 선박을 대상으로 약탈을 하는 해적들이 카리브해를 거점으로 활동하였다.

콜럼버스의 날편집

 
산살바드로에 상륙한 콜럼버스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신대륙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이 10월 12일을 기념일로서 지키고 있으며, 미국은 1937년 이래 매년 10월의 두 번째 월요일을 국경일이자 연방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행사를 해오고 있었다.[26][27] 하지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식민지를 통치하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고문과 학살 등 잔혹 행위를 일삼은 사실이 역사적 고증으로 밝혀지면서, '콜럼버스 데이'에 반대하는 운동이 20세기 후반부터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졌다.

최근 몇년 사이 미국의 캘리포니아, 하와이, 시카고, 신시내티, 뉴욕 등 여러 주(州)와 도시가 콜럼버스 데이를 '원주민의 날'로 바꿨다.[9] 2021년 10월 11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은 '원주민의 날'로 선포하였다.[28] 또한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중앙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콜럼버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학살을 촉발한 침략자이지 존경할 만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29]

서인도 제도편집

 
서인도 제도 (West Indies)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 있는 카리브 해에는 약 1,200여 개의 섬들이 있는데, 이곳은 서인도 제도(West Indies)라고 불린다. 이름의 유래는 1492년 콜럼버스가 산살바도르섬에 상륙했을 때 이 곳을 인도로 오인한 데서 비롯되었다.[30] 대앤틸리스 제도, 소앤틸리스 제도, 바하마 제도 등 3개의 섬무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플로리다 반도의 남단에서 시작되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동단을 거쳐서 베네수엘라 북서부 연안까지 뻗어 있고, 180개의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31]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에 식민지를 건설한 이래 16세기 중반까지 스페인이 중요한 섬들을 차지했으나, 그 뒤로 유럽의 여러국가들이 영토차지를 위해 충돌하였고 17세기부터는 버커니어라고 불리우던 해적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다. 현재는 쿠바, 아이티, 도미니카,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바베이도스, 바하마 등 7개의 독립국이 있고, 나머지는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4개국의 식민지로 되어 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사탕수수와 담배 재배가 성행했으며[32] 그 밖에 카카오 ·커피 ·목화 ·향료 등이 재배되고 있다.

서인도 회사편집

인디언편집

아메리카편집

탐험과 개척의 시대편집

엔코미엔다편집

스페인은 자국 출신의 식민통치자에게 원주민 보호를 조건으로 하여 식민지의 토지와 원주민에 대한 통치권 일체를 위탁하는 엔코미엔다(스페인어: Encomienda)제도를 실시했다.[33] 1503년에 제정된[34] 이 제도의 목적은 아메리칸 인디언의 지위를 규정하여 신대륙 발견직후에 행해진 강제 노역의 악습을 줄이려는 것에 있었다.[35] 그러나 실제로는 인디언을 노예화하는 제도로 악용되었다. 원주민들을 해적이나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으로 보호하는 대신에 그들에게 조공과 노동을 요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이 제도로 인해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보호하고 개종시킨후 종교적으로 교육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종교적 교화를 통한 영혼의 구제와 보호라는 명분을 제공했을뿐이었고, 실질적으로 이 제도는 노동력 착취를 위한 노예제의 또 다른 형태였다.[33] 스페인 군주나 교회는 이 제도를 크게 반기지는 않았는데, 봉건적 구조로 발전하여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을 꺼렸으며, 가혹한 노동착취가 가톨릭 윤리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민 통치 기간 내내 이 제도는 지속되었으며, 18세기 이후에 대토지 소유 제도인 아시엔다가 나타나면서 점차 소멸되었다.[35]

매독편집

각주편집

  1. 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 2019.4.25 p200
  2.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3. 칼데아 신아람어와 ~ : 스튜어트 리 앨런,《악마의 정원에서》(생각의 나무, 2005) 30쪽.
  4. 라스카사스 <콜럼버스 항해록> 범우사 2000년 p50
  5. 주경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3년 p22
  6. 주경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3년 p143
  7. 이정임 <인류사를 바꾼 100대 사건> 학민사 2000.5.12 p64
  8. 이정임 <인류사를 바꾼 100대 사건> 학민사 2000.5.12 p69
  9. [EBS 뉴스] 뉴욕 콜럼버스데이 퇴출에 이탈리아계 '뿔났다' 2021.05.21
  10. [세계일보] 콜럼버스는 정말 지구 구형설 선구자인가? 2020-01-18....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도 매한가지다. 그는 일반인에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시대에 홀로 지구가 둥글다고 믿고 이를 증명하려 한 사람’이라고 인식된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지구 구형설을 믿는 사람이 그밖에 없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중세까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극소수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에라토스테네스, 프톨레마이오스 등 고대 사상가는 지구가 둥글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지리학과 천문학 연구를 발전시켰다. 심지어 14세기 작가 존 맨더빌은 저작 ‘세상 저 편에 있는 성지와 지상낙원을 찾아서’에서 지구는 둥글고, 그래서 배가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콜럼버스에 대한 이런 신화는 그의 전기를 쓴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 탓이다. 어빙은 1828년에 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생애와 항해’에서 콜럼버스와 그와 대립하는 성직자들, 학자들 사이에 지구가 둥근지 평평한지에 대해 논쟁이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콜럼버스를 지구 구형설의 선구자로 기억하고 있다.
  11. Bowers, Claude G. The Spanish Adventures of Washington Irving. (Riverside Press, 1940) p22-48.....While in Paris, Irving received a letter from Alexander Hill Everett on January 30, 1826. Everett, recently the American Minister to Spain, urged Irving to join him in Madrid, noting that a number of manuscripts dealing with the Spanish conquest of the Americas had recently been made public. Irving left for Madrid and enthusiastically began scouring the Spanish archives for colorful material
  12. Russell, Jeffrey Burton. Inventing the Flat Earth: Columbus and Modern Historians. Praeger Paperback, 1997. ISBN 0-275-95904-X....Irving based them on extensive research in the Spanish archives, but also added imaginative elements aimed at sharpening the story. The first of these works is the source of the durable myth that medieval Europeans believed the Earth was flat
  13. 주경철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휴머니스트 2017년 p173
  14. Loewen, James W. Lies Across America: What Our Historic Sites Get Wrong. New York: The New Press, 1999: 59.....According to the popular book, Columbus proved the Earth was round.
  15. 지구 구형설을 실제 항해를 통해 입증한 것은 마젤란 탐험대다. 마젤란 탐험대는 1519년에 스페인을 출발하여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을 경유하여 1522년에 귀국함으로 세계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였다.
  16. 로널드 넘버스 <통념과 상식을 거스르는 과학사> 글항아리사이언스 2019년 p29.....중세 시대를 통틀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이 문제에 관한 양쪽의 사상가들은 모두 기독교도(로마가톨릭 혹은 동방정교회)였고, 그들에게 지구의 모양은 진보적 혹은 전통적 관점과는 무관한 문제였다. 성직자들은 대부분 지구의 모양보다는 구원에 더 관심이 많았다(그게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신의 자연 섭리는 그들에게도 중요했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었는데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반항적이고 새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신의 과업을 수행한다는 믿음을 갖고 항해를 한 성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17. Burstein, Andrew. The Original Knickerbocker: The Life of Washington Irving. (Basic Books, 2007). ISBN 978-0-465-00853-7.....The first offspring of this hard work, A History of the Life and Voyages of Christopher Columbus, was published in January 1828. The book was popular in the United States and in Europe and would have 175 editions published before the end of the century.
  18. Russell, Jeffrey Burton. Inventing the Flat Earth: Columbus and Modern Historians. Praeger Paperback, 1997. ISBN 0-275-95904-X.....역사적 사실과 허구에 해당하는 소설적 요소를 혼합한 어빙의 전기 서술방식은 낭만주의 역사라고 불리는 장르로 분류되고 있다.
  19. [네이버 지식백과] 콜럼버스의 달걀 [Egg of Columbus] (상식으로 보는 세상의 법칙 : 경제편, 이한영)
  20. [한국대학신문] “포스트 코로나와 콜럼버스의 달걀” 2020.05.30
  21. Girolamo Benzoni (1572[1565]), Historia del Mondo Nuovo, Venice, pp. 12–3; English translation: History of the New World by Girolamo Benzoni, Hakluyt Society, London, 1857, p. 17.
  22. The similarity of Vasari's story to the egg of Columbus story was first pointed out in Our Paper, vo. 10, Massachusetts Reformatory, 1894, p. 285.
  23. Giorgio Vasari (1550), Lives of the Most Excell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Filippo Brunelleschi." Florence
  24. Nunn, Nathan; Qian, Nancy (2010). “The Columbian Exchange: A History of Disease, Food, and Idea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24 (2): 163–188. CiteSeerX 10.1.1.232.9242. doi:10.1257/jep.24.2.163. JSTOR 25703506. 
  25. [네이버 지식백과] 콜럼버스의 교환 [The Columbian Exchange] (한경 경제용어사전)
  26. [네이버 지식백과] 콜럼버스 데이 (미국의 공휴일, 2004., 미국 국무부 |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
  27. [VOA Korea] 바이든, 콜럼버스 데이에 '원주민의 날' 선포 2012.10.11
  28. [VOA Korea] 바이든, 콜럼버스 데이에 '원주민의 날' 선포 2021.10.11....바이든 대통령이 콜럼버스 데이를 앞두고 ‘원주민의 날’을 선포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중략)...바이든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는 많은 유럽 탐험가가 토착민과 원주민 공동체에 가한 옳지 못하고 잔혹한 역사를 인정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한 국가로서 과거의 부끄러운 사건들을 묻어버리려고 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면하고, 사건들에 빛을 비추며, 우리가 그 문제들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위대함의 척도”라고 강조했습니다.
  29. [한겨레] "대학살 부른 콜럼버스의 날 기념말라” 2003.10.13
  30. [네이버 지식백과] 서인도제도 [西印度諸島, West Indies] (실크로드 사전, 2013. 10. 31., 정수일)
  31. [네이버 지식백과] 서인도제도 [West Indies]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32. [네이버 지식백과] 서인도 제도 [West Indies Is.] (세계지명 유래 사전, 2006. 2. 1., 송호열)
  33. 이강혁 <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100> 가람기획 2008 p143
  34. [네이버 지식백과] 엔코미엔다 [encomiend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35. [네이버 국어사전] 엔코미엔타 [에스파냐어]encomie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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