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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10의문(八段十義門) 또는 줄여서 8단10의(八段十義)는 법상종의 소의논서인 《성유식론》에서 사용된 아뢰야식에 대한 해석체계와 그에 따른 해석을 말한다. 특히, 아뢰야식(엄밀히는 제8식)의 여러 다른 명칭들 가운데 하나인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의미 또는 본질을 자세히 밝히는 것으로,[1][2][3][4][5] 능변(能變)은 '자신을 포함한, 세력권 내의 갖가지 들을 능동적으로[能] 변화시키고[變] 현행시키는[現] 것'을 뜻하는 능변현(能變現)의 줄임말이다. 따라서, 8단10의문아뢰야식이 왜 그리고 어떻게 우주만법의 변화, 즉 유전연기환멸연기, 즉 생사윤회깨달음, 즉 염정(染淨)의 근본[初]이 되는가를 밝히는 것으로, 유식학과 나아가 대승불교유심론의 근본 교의를 해명하고 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불교의 유식학의 총 3기 가운제 제2기의 논사인 세친[6]의 《유식삼십송》에는 초능변식으로서의 아뢰야식(相), 즉 초능변식으로서의 아뢰야식본질 또는 성질을 밝히는 게송들인, 아래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제2 ·· 4송이 있다.

성유식론》은 인도 불교의 유식학의 제3기를 이루는 논사들인 유식 10대 논사들의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들을 현장(玄奘: 602~664)이 호법(護法: 530~600)의 학설을 위주로 하여 번역 · 편찬한 것인데,[6]성유식론》에서는 이 게송들을 제2 ·· 4권에 걸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된 해석체계를 전통적으로 8단10의문(八段十義門)이라고 한다.[3][4][5] 따라서 8단10의문에 의한 해석은 인도 불교 유식학의 제3기의 유식 10대 논사들이 아뢰야식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였는가를 보여주는데, 특히 호법 계통의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의 견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7][8]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제1단: 3상문편집

3상문(三相門)은 아뢰야식이 가지는 3가지 모습 또는 측면자상(自相) · 과상(果相) · 인상(因相)의 3상(三相)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 3상아뢰야식의 3상(阿賴耶識의 三相) · 뢰야3상(賴耶三相) 또는 뇌야3상(賴耶三相)이라고 한다.[9][10]

3상문은 《유식삼십송》의 제2게송의 일부인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를 해석한 것이다.

제8식에는 여러 가지 명칭이 있는데, 그 가운대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는 명칭은 제8식자상(自相) 즉 본질적 작용 또는 성질측면을 가리키는 명칭이고, 이숙식(異熟識)이라는 명칭은 제8식과상(果相) 즉 결과적 측면을 가리키는 명칭이고, 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또는 일체종식(一切種識)은 제8식인상(因相) 즉 원인적 측면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유식학에서 종자(種子)는 결과[果]를 낳게 하는 원인[因]을 의미한다.[11][12][13]

또한, 제8식자상 · 과상 · 인상, 즉 아뢰야식 · 이숙식 · 일체종자식이라는 명칭은 순서대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 ·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의 뢰야3위(賴耶三位)와 상응한다.[14][15][16] 여기서, 제8식의 3가지 명칭인 아뢰야식 · 이숙식 · 일체종자식 가운데 일체종자식제8식의 또 다른 명칭인 아타나식(阿陀那識) 즉 집지식(執持識)과 그 의미가 사실상 동일하다.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① 자상문편집

자상문(自相門)은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 vijñāna) 즉 장식(藏識)이라는 명칭으로 불릴 때의 제8식초능변식을 말하는 것으로, 섭론종 등의 구역가아뢰야식(ālaya vijñāna)을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한 것과는 달리 법상종 등의 신역가에서는 아뢰야식(ālaya vijñāna)을 장식(藏識)이라 번역한다.[17][18]

그리고 장식(藏識)에는 능장(能藏) · 소장(所藏) · 집장(執藏)의 3가지 뜻[義]이 있는데, 이들 3가지 뜻은 초능변식자상(自相) 즉 제8식본질적 성질 또는 작용을 이룬다.[19][20] 이들을 통칭하여 뢰야3장(賴耶三藏) 또는 장3의(藏三義)라고 한다.[21][22]

장식(藏識) 즉 장3의(藏三義)만이 제8식의 유일한 자상(自相)들인 것은 아니다. 이숙식(異熟識) · 아타나식(阿陀那識) · (心) · 소지의(所知依) · 종자식(種子識) · 무구식(無垢識) 등과 8식10명(八識十名)과 같은 제8식여러 가지 명칭들은 모두 제8식의 총체적 자상(自相) 즉 총체적인 본질적 성질 또는 작용의 한 측면[分位]을 보여준다. 하지만, 장식(藏識)이 첫 번째 지위 즉 뢰야3위 가운데 제1위인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에 해당하여 그 과실[過: 불선, 악, 허물, 잘못]이 무겁기[重] 때문에, 즉 유정으로 하여금 욕계의 번뇌를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3계 가운데 가장 저층인 욕계에 계속 윤회하게 만들기 때문에, 장식(藏識)을 특히 제8식의 자상(自相) 즉 본질적 작용 또는 성질로 삼는다고 《성유식론》에서는 아래 인용문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말하고 있다.[19][20]

성유식론》 제2권에서는 다음과 같이 위에 기술된 바와 같은 뜻으로 제8식초능변식자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설명에서 《성유식론》의 논자는 제8식자상본질이란 총체적으로 말하면 섭지인과(攝持因果) 즉  · 불선 · 무기의 모든 인과(因果)를 거두고[攝] 유지[持]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8식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이라고 부를 때는 이 모든 인과(因果) 중에서도 특히 과실[過] 즉 불선으로서의 인과(因果)를 섭지(攝持)하는 측면이 강한[重] 경우를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다.[23]

論曰。初能變識大小乘教名阿賴耶。此識具有能藏所藏執藏義故。謂與雜染互為緣故。有情執為自內我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自相。攝持因果為自相故。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

논하여 말한다. 첫 번째 능변식[初能變識]은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에서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식에 구체적으로 능장(能藏) · 소장(所藏) · 집장(執藏)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능장 · 소장의 뜻은) 잡염법과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이며, (집장의 뜻은) 유정(제7식)이 집착해서 자기 내면의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자체의 양상[自相]을 나타낸다. 원인 · 결과를 거두어 지녀서 자상을 삼기 때문이다.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로서의, 즉 아애집장현행위로서의]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② 과상문편집

③ 인상문편집

제2단: 소연행상문편집

④ 소연문편집

⑤ 행상문편집

제3단: ⑥ 상응문편집

상응문(相應門)은 아뢰야식이 마음작용들 가운데 어떤 마음작용들과 상응하는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상응문은 《유식삼십송》의 제3게송의 일부인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를 해석한 것이다.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성유식론》을 비롯한 대승불교 일반에서는 마음작용에 속한 들로 (觸) · 작의(作意)에서 (尋) · (伺)에 이르기까지 총 51가지 법을 들고 있으며, 이들 51가지 법들을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 별경심소(別境心所: 5가지) · 선심소(善心所: 11가지) · 번뇌심소(煩惱心所: 6가지) ·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20가지) · 부정심소(不定心所: 4가지)의 6위(六位) 즉 여섯 그룹으로 나누고 있다.[24][25][26][27]

변행심소와 상응하는 이유편집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무시이래(無始以來)로부터 전의(轉依)를 증득하기 이전까지의 모든 지위[位]에서 항상 변행심소에 속한 (觸) · 작의(作意) · (受) · (想) · (思)의 5가지 마음작용상응(相應)하는데, 이들은 '두루 작용하는 마음작용[遍行心所]'이기 때문이다.[28][29]

이 5가지 마음작용이숙식 즉 아뢰야식과는 그 행상(行相) 즉 인식작용견분이 다르다. 하지만 작용하는 때[時]가 동일하고[同], 의지처 즉 소의근[依]도 동일하며[同], 소연(所緣) 즉 인식대상상분은 비슷하고[等], 자체[事] 즉 자체분자증분도 비슷하다[等]. 이것을 전통적인 용어로 각각 시동(時同) · 의동(依同) · 소연등(所緣等) · 사등(事等)이라고 하며, 이들 4가지를 통칭하여 4의평등(四義平等)이라 한다. 그리고 어떤 2가지 법이 4의평등을 만족할 때 그 두 법을 상응(相應)한다고 말한다. 한편, 유식학에서는 마음마음작용행상인식작용견분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부파불교에서는 그것이 비슷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로 4의평등행상등(行相等)을 추가한 5의평등(五義平等)을 말하며, 따라서 부파불교의 교학에서는 어떤 2가지 법이 5의평등을 만족할 때 그 두 법을 상응(相應)한다고 말한다.[30][31][32][33][34]

아뢰야식은 변행심소에 속한 (觸) · 작의(作意) · (受) · (想) · (思)의 5가지 마음작용들과 상응할 뿐, 나머지 다른 마음작용들과는 상응하지 않는다. 즉, 별경심소 · 선심소 · 번뇌심소 · 수번뇌심소 · 부정심소의 그 어느 마음작용과도 상응하지 않는다. 즉, 이들 마음작용과는 4의평등이 성립되지 않는다.[35][36]

별경심소와 상응하지 않는 이유편집

아뢰야식이 별경심소의 5가지 마음작용상응하지 않는 것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이유에서이다.[35][36]

  • (欲)의 마음작용소락사(所樂事: 좋아하는 일)를 희망하는 작용을 하는 데 비해, 아뢰야식은 온갖 에 따라 흘러가는데로 작용할 뿐 특별히 희망을 가지거나 하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 승해(勝解)의 마음작용결정사(決定事: 결정할 일)를 인지(印持: 인가하고 유지함)하는 작용을 하는 데 비해, 아뢰야식은 몽매(瞢昧)하여서 특별히 인지(印持)하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 (念)의 마음작용증습사(曾習事: 예전에 익힌 일)를 분명히 기억하는 작용을 하는 데 비해, 아뢰야식은 어둡고 미약하여서[昧劣] 특별히 분명히 기억하거나 하는 작용을 할 수 없다.
  • (定)의 마음작용전주일경(專注一境) 즉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전일(專一)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데, 아뢰야식은 온갖 에 따라 흘러가는데로 작용하므로 어떤 상황에서는 찰나마다 다른 대상반연한다.
  • (慧)의 마음작용덕등사(德等事: 공덕 등의 일)를 간택하는 작용을 하는 데 비해, 아뢰야식은 미세하고 어두워서[微昧] 간택하는 작용을 할 수 없다.

선·번뇌·수번뇌심소와 상응하지 않는 이유편집

아뢰야식은 오직 이숙성(異熟性), 즉 이숙성질, 즉 다르게 익음성질, 즉 이나 불선무기로 성숙(成熟)되는 성질이다. 반면 (善)이나 염오(染污)에는 이러한 다르게 익음성질없다. 따라서 아뢰야식은 선심소(善心所) · 번뇌심소(煩惱心所) ·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와 상응하지 않는다.[35][36]

부정심소와 상응하지 않는 이유편집

부정심소(不定心所)에 속한 마음작용들, 즉 (悔) · (眠) · (尋) · (伺)는 그 성질이 무기성이기는 하지만 간단(間斷) 즉 일시적으로 단절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결코 단절됨이 없는 이숙(異熟)의 성질이 아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은 부정심소상응하지 않는다.[35][36]

제4단: ⑦ 수구문편집

수구문(受俱門)은 아뢰야식이 고수(苦受) · 낙수(樂受) · 사수(捨受)의 3수 또는 이것의 보다 세분화된 형태인 낙수(樂受) · 고수(苦受) · 희수(喜受) · 우수(憂受) · 사수(捨受)의 5수 가운데 어느 (受)와 상응하는가를 밝히는 부분이다.

수구문은 《유식삼십송》의 제3게송의 일부인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唯捨受)'를 해석한 것이다.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3수5수 가운데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다음의 3가지이다.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첫째 이유편집

아뢰야식은 첫째로 그 행상(行相: 인식작용, 견분)이 극히 불명료하고, 둘째로 위순경상(違順境相) 즉 대상의 거슬림과 수순의 양상을 분별할 수 없으며, 셋째로 그 행상은 미세(微細)하고, 넷째로 한 종류 즉 이숙무기성(異熟無記性)의 부류로서 상속하면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섯째로 3수5수 가운데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37][38]

한편, 여기에 나열된 5가지는 과위(果位)인 불위(佛位)가 아닌 인위(因位)에서의 아뢰야식의 모습이다. 완전한 깨달음증득한 상태인 불위(佛位)에서는 제8식은 그 행상(行相: 인식작용, 견분)이 명료하고, 대상의 거슬림과 수순의 양상[違順境相]을 분별할 수 있으며, 나머지 3가지는 인위(因位)에서와 동일하다. 즉 나머지 3가지는 인과위(因果位)에 공통된다.[39]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둘째 이유편집

또한 아뢰야식과 상응하는 (受)는 그 성질이숙(異熟)이어야 한다. 즉 이숙성(異熟性)을 지녀야 한다. 즉 선행하는 인업(引業)에 따라 작용하고, 현연(現緣) 즉 수순[順] · 거스름[違] 등의 현행(現行)의 (緣)을 기다리지 않으며, 선업 · 악업의 세력에 맡겨진 상태에서 작용하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3수5수 가운데 사수(捨受)뿐이다.[40][41]

고수(苦受) · 낙수(樂受)는 그 자체로는 도 아닌 무기의 성질이지만 이것은 진이숙(眞異熟) 즉 참다운 이숙이라고 할 수 없으며 단지 이숙생(異熟生)일 뿐이다. 고수(苦受) · 낙수(樂受)는 현연(現緣) 즉 수순[順] · 거스름[違] 등의 현행(現行)의 (緣)을 기다려서 이들이 갖추어질 때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므로 아뢰야식과 상응하지 않는다.[40][41]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셋째 이유편집

아뢰야식은 항상[常]하고 전변함이 없다[無轉變]. 그렇기 때문에 유정 특히 유정제7말나식이 아뢰야식에 대해 잘못 생각하여 상일(常一)하는 자내아(自內我) 즉 '내면에 존재하는 영원한 자아'라고 집착한다.[42][43] 즉, 제7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소연으로 하여 항상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4번뇌를 일으킨다.[44][45][46][47][48]

만약 아뢰야식이 고수 · 낙수상응한다면 전변함이 있게 된다. 전변함이 있다는 것은 상일(常一)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제7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자내아(自內我)라고 집착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4번뇌도 없고 따라서 번뇌의 결과인 (有) 즉 3계를 전전하는 생사윤회의 삶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으므로, 따라서 아뢰야식은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42][43][47][48]

선·악·무기업과 사수편집

한편, 사수(捨受)는 괴로움의 품류[苦品]와 즐거움의 품류[樂品]에 거스르지 않는다. 즉 (苦) · (樂)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수(捨受)와 상응하는 아뢰야식은 능히 악업이숙인 괴로운 과보 즉 (苦)의 과, 선업이숙인 즐거운 과보 즉 (樂)의 과, 무기업의 이숙인 괴롭지고 즐겁지 않는 과보 즉 무기(無記)의 초감(招感)한다.[49][50] 즉, 아뢰야식은 능히 3수 또는 5수를 통해 과거에 지은 온갖 성질의 이숙과를 받는다. 달리 말하면, (受)의 마음작용은 아뢰야식이 과거의 과보를 영납하는 것이다.[51][52][53][54]

제5단: ⑧ 3성문편집

3성문(三性門)은 아뢰야식이 (善) · 불선(不善) · 유부무기(有覆無記) · 무부무기(無覆無記)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 지를 밝히는 부분이다. 3성(三性)은  · 불선 · 무기를 말하는데, 무기는 다시 유부무기무부무기로 나뉜다.

3성문은 《유식삼십송》의 제4게송의 일부인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是無覆無記)'를 해석한 것이다.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 제8식)의 체상[相]은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2 · 3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br>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

《성유식론》 제2권, 한문본 & 한글본

성유식론》에 따르면, '유부무기(有覆無記) · 무부무기(無覆無記)'에서의 부(覆)는 '덮다, 은폐하다'를 뜻하는데 염법(染法) 즉 잡염(雜染)을 말한다. 염법성도(聖道)를 장애하고 또한 능히 마음(법성심 · 의타기심)을 덮고 은폐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淨]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覆)라고 한다.[55][56]

'유부무기(有覆無記) · 무부무기(無覆無記)'에서 기(記)는 '기별(記別)할 수 있다' 또는 '기표(記票)할 수 있다'를 뜻하는데 (善) 혹은 (惡) 혹은 이들 둘 다를 말한다. 은 각각 애과(愛果)와 비애과(非愛果) 즉 애락할 만한 과보와 애락할 만하지 않은 과보를 낳으며 승자체(勝自體) 즉 뛰어난 자체(自體) 즉 뛰어난 성질이므로 기별(記別)할 수 있기 때문에 (記)라고 한다. 무기(無記)는 도 아니고 도 아닌 것, 즉 혹은 으로 기별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57][58]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그 성질이 무부무기(無覆無記)인데, 다음의 3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하다.[59][60]

이숙성편집

첫째, 아뢰야식의 성질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인 것은 아뢰야식의 성질이 이숙성(異熟性)이고 이숙성3성의 관점에서 볼 때 무부무기이기 때문이다.[61][62]

다시, 이숙성무부무기인 이유는 이숙성이 만약 (善)이나 염오(染污: 즉 불선 또는 유부무기)라면 법이도리(法爾道理)인 유전(流轉)과 환멸(還滅) 즉 유전연기환멸연기득성(得成: 획득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61][62]

즉, 이숙성이 오직 (善)의 성질이라면 유전연기고제(苦諦) · 집제(集諦)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이숙성이 오직 염오(染污: 즉 불선 또는 유부무기)의 성질이라면 환멸연기멸제(滅諦) · 도제(道諦)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유전연기환멸연기, 달리 말하면, 4성제가 모두 법이도리(法爾道理)로서 우주에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이숙성(善)도 염오(染污: 즉 불선 또는 유부무기)도 아니며, 따라서 무부무기이다.[61][62]

소의성편집

둘째, 아뢰야식의 성질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인 것은 아뢰야식의 성질이 소의성(所依性)이고 소의성3성의 관점에서 볼 때 무부무기이기 때문이다. 즉, 아뢰야식이 (善)과 염오[染: 불선 또는 유부무기]의 소의(所依) 즉 의지처발동근거가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63][64]

만약 아뢰야식이 (善)이나 염오(染污: 불선 또는 유부무기)라면 (善)과 염오(染污)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의가 되거나 염오소의가 되거나 해야 하며 둘 모두의 소의가 되지는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아뢰야식은 (善)과 염오(染污: 불선 또는 유부무기) 모두의 소의가 되고 있으며, 따라서 아뢰야식은 무부무기이다.[63][64]

소훈성편집

셋째, 아뢰야식의 성질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인 것은 아뢰야식의 성질이 소훈성(所熏性)이고 소훈성훈습을 받아들이는 성질3성의 관점에서 볼 때 무부무기이기 때문이다.[65][66]

다시, 소훈성무부무기인 이유는 소훈성이 만약 (善)이나 염오(染污: 불선 또는 유부무기)라면 극향(極香)과 극취(極臭) 즉 매우 향기로운 것과 매우 악취나는 것이 훈습을 받지 않는 것처럼 훈습을 받지 않아야 하며, 또는 염오 어느 한 쪽의 훈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염정인과(染淨因果) 즉 잡염 · 청정원인 · 결과가 모두 성립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  ·  · 4성제가 모두 성립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염정인과(染淨因果), 달리 말하면, 4성제가 모두 엄연히 법이도리(法爾道理)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소훈성(善)이나 염오(染污: 불선 또는 유부무기)가 아니며, 따라서 소훈성무부무기이다.[65][66]

제6단: 심소동예문(心所同例門)편집

또는 心所例同門이라고도 한다.

제7단: ⑨ 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편집

八段十義중 제9의에 해당한다. 항상 유전(상속)하는 것이 폭포수(瀑流)와 같다.

제8단: ⑩ 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편집

아라한위를 말한다.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2권. p. T31n1585_p0007c12 - T31n1585_p0007c14. 초능변식(初能變識)
    "雖已略說能變三名。而未廣辯能變三相。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2권. p. 78 / 583. 초능변식(初能變識)
    "앞에서 능변의 세 가지 명칭을 간략하게 말했는데, 능변의 세 가지 체상을 자세하게 판별하지 않았다.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체상은 어떠한가?82)
    게송(『삼십송」의 제2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82) 이하 초능변식(初能變識)에 관한 게송을 총체적으로 열거한다."
  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2권. p. T31n1585_p0007c13 - T31n1585_p0007c19. 8단 10의문(八段 十義門)
    "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2권. pp. 78-79 / 583. 8단 10의문(八段 十義門)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체상은 어떠한가?82)
    게송(『삼십송」의 제2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83)
    82) 이하 초능변식(初能變識)에 관한 게송을 총체적으로 열거한다.
    83) 이 게송들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유식론 2 ·· 4 권에 걸쳐 8단(段) 10의문(義門)으로 설명한다. 우선 10의문은, ①자상문(自相門:아뢰야식), ②과상문(果相門:이숙식), ③인상문(因相門:일체종자식), ④소연문(所緣門:執受와 處), ⑤행상문(行相門:요별), ⑥상응문(相應門:촉 · 작의 · 수 · 상 · 사), ⑦수구문(受俱門:捨受), ⑧3성문(性門:무부무기성 · 촉 등도 그러함), ⑨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항상 폭류의 흐름처럼 유전함), ⑩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아라한위이다)이고, 다음에 8단문(段門)은, ①②③을 합하여 3상문(相門)으로 하고, ④⑤를 합하여 소연행상문(所緣行相門)으로 한다. 그리고 제6에 심소동례문(心所同例門)을 첨가하여 총 여덟 가지로 분단(分段)한다."
  5. 于凌波, "八段十義".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論文一:雖已略說能變三名;而未廣辨能變三相。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初阿賴耶識,異熟一切種,不可知執受,處了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唯捨受,是無覆無記,觸等亦如是,恆轉如瀑流,阿羅漢位捨。
    講解:在前面第一篇中,詮釋了《唯識三十頌》的六句頌文,即:「由假說我法,有種種相轉;彼依識所變。此能變唯三,謂異熟思量,及了別境識。」以上的一頌半頌文,僅是略標論宗,尚未講到正論。在略標論宗中,僅詮釋了三能變的名稱,還沒有把三種能變識的相狀作詳細的分析。現在先講初能變識。論主假設外人問難之辭,曰:「且初能變,其相云何」。論主以頌文來回答。頌文共十句,即:「初阿賴耶識,異熟一切種,不可知執受,處了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唯捨受,是無覆無記,觸等亦如是,恆轉如瀑流,阿羅漢位捨。」古人解釋初能變的阿賴耶識,是以「八段十義」科分。十義又稱十門,這十門是:
    1.自相門:初阿賴耶識。
    2.果相門:異熟。
    3.因相門:一切種。
    4.所緣門:不可知;執受、處。
    5.行相門:了。
    6.心所相應門: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
    7.五受相應門:(相應)唯捨受。
    8.三性分別門:是無覆無記。
    9.因果譬喻門:恆轉如瀑流。
    10.伏斷位次門:阿羅漢位捨。
    在十門中,如果把自相門、果相門、因相門合併為一,就稱為三相門;再把所緣門和行相合併為一,稱為所緣行相門,這樣就成為八段。八段是就頌文而分,十義是依識體而解。所以十義中除掉「心所例同門」,因為它不是識體,不過是例同而已。"
  6. 황욱 1999, 16-17쪽
    "유식학에서는 그 학설의 내용에 따라 인도의 유식학을 3기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제1기는 미륵과 무착의 유식학을 말하고, 제2기는 세친의 유식학을 말하며, 제3기는 護法[Dharmapāla]과 安慧[Sthitamati] 등 十大論師들의 유식학을 의미한다. 한편 제1기와 제2기를 합쳐서 初期唯識學이라고도 부른다.45)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처음으로 유식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운 무착이 유식학에 끼친 공헌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미륵이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무착 자신인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가 유식학의 주창자로 자리매김 되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사상은 신앙적인 면에서 볼 때에는 미륵이 始祖이지만,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무착이 시조라 해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45) 吳亨根, 「初期唯識의 心意識思想과 八識思想 硏究」, 《唯識과 心識思想 硏究》(서울: 佛敎思想社, 1989), pp.14~15 참조. 이에 의하면 “제1기의 유식학은 초창기의 유식학으로서 후세의 발달된 유식학에 비하여 원시적인 학설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유식학을 原始唯識期라고도 하며 이때의 주요 논서는 《유가사지론》과 《섭대승론》·《현양성교론》과 《대승아비달마집론》 등을 들 수가 있다. 다음 제2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가 무착과 미륵의 유식학을 잘 정리하고 조직화한 것을 말하는데 이때의 유식학을 組織唯識學이라고도 한다. 이 組織唯識學의 대표적인 논서는 《대승백법명문론》과 《유식삼십론송》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다음 제3기의 유식학은 세친논사 이후에 호법과 안혜 등 십대논사들이 세친의 《唯識三十論》을 훌륭한 이론으로 주석하여 유식학을 크게 발달시킨 시기로 이때의 유식학을 發達唯識期라고 한다. 이때의 대표적인 저술로 《유식삼십론송》을 주석한 《成唯識論》을 들 수 있으며, 《성유식론》은 중국에서 번역되어 法相宗의 宗學에 크게 이바지한 논서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7.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유식파의 계보,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유식파의 계보: 唯識派-系譜 유식설(唯識說)은 비스반두 이후 인도의 사상계에 있어서 대단히 우세하게 되어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여러 가지 이상한 학파(異流)를 성립시켰다. 아상가. 바스반두에서 유래한 경식구공(境識俱空)을 주장하는 진실유식설(眞實唯識說)은 인도에서는 무상유식파(無相唯識派)라고 호칭된다. 이는 진제삼장(眞諦三藏, 499∼590)에 의해 중국에 전파되어 섭론종(攝論宗)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하여 일단 식(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 즉 경공심유(境空心有)의 방편유식설(方便唯識說)은 유상유식파(有相唯識派)가 주장한 것으로서, 디그나가(Dignaga 陳那·域龍)에서 시작하여 무성(無性)을 거쳐 호법(護法 530∼561)에 이르러 대성하였다. 이는 현장 삼장(玄裝三藏)에 의해 중국·한국에 전해져 법상종(法相宗)이 되었다. 디그나가는 <인명정리문론(因明正理門論)> 등을 저작하였다. 그는 지식근거로서 직접지각(直接知覺)과 추론(推論)과의 두 종류만은 승인하면서, 직접지각은 분별(分別)을 떠난 것이어서 내용이 없는 것이지만, 추론의 작용이 가(加)해짐으로써 구체적인 지식으로서 성립한다고 한다. 또 보편(普遍)의 존재를 부인하여, 그것은 타자(他者)의 배제(排除)에 의하여 부정적으로 구상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참뜻으로 말하는 개별자란 작용의 어느 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신인명(新因明)'을 확립하였다. 샨카라스바민(Sankarasvamin)의 <인명입정이론(因明入正理論)>(玄裝譯)은 그 입문서(入門書)인데, 중국·한국에서는 인명(因明)의 근본 전적(根本典籍)으로서 많이 연구되었다. 디그나가의 논리사상은 다르마키르티(Dharmakirti, 法稱, 650?)에 의해서 더 한층 세밀한 것으로 되었다. 그에 의하면 각 순간이 승의(勝義)에 있어서 어떤 것이다. 우리는 각 순간의 연속으로서 의식의 흐름을 상정(想定)하여 개인의 사유에 의하여 구상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또 논거 그 자체로부터 인도되어 나오는 추론과 결과를 논거로 하는 추론과를 구별하였다."
  8.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분파 > 중국불교의 종파 > 법상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법상종: 法相宗 법상종이란 제법(諸法)의 성상(性相)을 분별하는 종(宗)이란 뜻으로 오위백법(五位百法)을 세워 아뢰야식(阿賴耶識)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유식종(唯識宗)이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미륵(彌勒)·무착(無着)·세친의 유가유식파(瑜伽唯識派)에 기원하며 당나라 태종 시대에 인도로 경전을 구하러 간 현장(玄裝, 600∼664)이 호법(護法)의 제자 계현(戒贅)으로부터 호법 계통의 유식설을 전해받고 많은 경론(經論)을 전역(傳譯)함과 동시에 유식의 교리를 선양했다. 진체삼장(眞諦三藏)에 의해서 전해진 유식설을 '구역(舊譯)'이라고 함에 대해 이 현장이 전한 것을 '신역(新譯)'이라 한다. 현장은 호법의 설을 중시하여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 그의 제자 자은대사 규기(慈恩大師 窺基, 632∼682)가 <성유식론 술기(成唯識論述記)>·<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등을 저술하여 법상종을 조직화했다. 규기와 동학(同學)으로는 원측(圓測)이 있으며 또한 문하생인 혜소(惠沼), 법손(法孫)인 지주(智周)는 규기와 함께 중국 법상의 삼조(三祖)라고 불린다. 극히 이론적이며 종교성이 빈약하기 때문에 종파로서는 얼마 후에 쇠퇴하나 법상종에 의해 개척된 유식법상의 교학(敎學)은 <구사론(俱舍論)>과 함께 훗날 불교 연구의 기초학으로서 중시되었다."
  9. 운허, "賴耶三相(뢰야삼상)". 2013년 1월 18일에 확인
    "賴耶三相(뢰야삼상): 제8 아뢰야식이 가진 3종의 상(相), 곧 자상(自相)ㆍ과상(果相)ㆍ인상(因相). 제8식 자체에 모든 법의 인(因)이 되고 과(果)가 되는 뜻을 갖추었으므로, 이 체(體)와 의(義)의 차별을 나타내기 위하여 3상(相)의 이름을 세운다. 이 3상은 설명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므로 자상(自相) 밖에 인상(因相)ㆍ과상(果相)이 없고, 이 2상을 떠나서 따로 자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상의 상(相)은 체상(體相)이고 나머지 2상은 의상(義相)이다. 자상(自相)은 제8식 자체의 상, 곧 모든 종자를 간직하고 7전식(轉識)에 의하여 모든 종자를 훈장(熏藏)하여 제7식에 집장(執藏)되는 것을 말한다. 과상(果相)은 제8식이 선악의 업으로 생겨난 이숙(異熟)의 과체(果體). 이 식은 이숙의 인업(引業)으로 받는 3계(界)ㆍ5취(趣)ㆍ4생(生)의 과체이므로 인업소감(引業所感)의 이숙이라고 하는 점으로써 이 식의 과상을 삼는다. 이는 중생 총보(總報)의 과체(果體). 이 총보의 과체로는 업과(業果)와 부단(不斷)과 변삼계(遍三界)와의 세 가지 뜻을 갖는다. 업과(業果)는 선악의 업인(業因)으로 생긴 이숙(異熟) 무기(無記)의 과(果)를 말하고, 부단(不斷)은 인위(因位)나 과상(果上)에 본래부터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하고, 변삼계(遍三界)는 욕계ㆍ색계ㆍ무색계 중에서 어디나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 뜻을 가진 것은 제8식뿐이므로 총보의 과체라 한다. 인상(因相)은 제8식이 모든 법의 인(因)이 되는 상(相), 곧 모든 색(色)ㆍ심(心) 제법의 종자를 가져 잃지 않고, 만법이 현행하는 과(果)를 낳는 원인이 되는 것을 말함."
  10. 星雲, "賴耶三相". 2013년 1월 18일에 확인
    "賴耶三相: 即第八阿賴耶識所具之三種相。唯識宗以阿賴耶識之自體本具諸法之因與果,為顯其體、義之差別,而立三相。即自相(初阿賴耶)、果相(異熟)、因相(一切種),而以自相為體相,其餘之二相為義相。
     (一)自相,為第八識自體之相。此阿賴耶識具有能藏、所藏、執藏三義(稱為賴耶三藏),與雜染(諸有漏法)互相為緣,故有情執之為自內我,此即顯示初能變識之所有自相能攝持因與果。蓋因第八識能攝持雜染法之種子,猶如庫藏含藏諸物,故稱能藏;因第八識為雜染法所薰、所依之場所,猶如庫藏為諸物之所依,故稱所藏;因第八識恆為第七末那識執為自內我,猶如庫藏之堅固執守,故稱執藏。故知能藏為因相,所藏為果相,因果二相為末那識所執藏而為賴耶之自相。若離自相,則無因相、果相;若離因相、果相,亦別無自相可言。  (二)果相,為有情總報之果體。即第八阿賴耶識係由過去之善惡業所引生之異熟果;在賴耶三藏中為所藏,在賴耶三位中為「善惡業果位」。  (三)因相,即萬法原因之相。謂第八阿賴耶識能執持一切諸法種子而不失,為萬法生起之原因;於賴耶三藏中為能藏,在賴耶三位中為「相續執持位」。〔成唯識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二末〕(參閱「阿賴耶識」3676)"
  11. 김사업 1989, 30. 뢰야3상(賴耶三相)쪽
    "阿賴耶識을 설명하는 데는 '阿賴耶識의 三相'에 관한 언급이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阿賴耶識의 三相이란 識의 體用관계를 구분한 말로서 〈唯識三十頌(Trimśikā)〉의 第二頌에 나오는 "初阿賴耶識 異熟 一切種"에서 阿賴耶識은 自相, 異熟은 果相, 一切種은 因相으로 배대한 것을 말한다. 이 自相, 因相, 果相의 三相은 서로 體가 되고 用이 되어 不可分離한 관계에 있다."
  1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2권. pp. T31n1585_p0007c12 - T31n1585_p0008a04. 아뢰야식의 3상(阿賴耶識의 三相)
    "雖已略說能變三名。而未廣辯能變三相。且初能變其相云何。頌曰。
       初阿賴耶識  異熟一切種
      3不可知執受  處了常與觸
       作意受想思  相應唯捨受
      4是無覆無記  觸等亦如是
       恒轉如瀑流  阿羅漢位捨
    論曰。初能變識大小乘教名阿賴耶。此識具有能藏所藏執藏義故。謂與雜染互為緣故。有情執為自內我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自相。攝持因果為自相故。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此是能引諸界趣生善不善業。異熟果故說名異熟。離此命根眾同分等恒時相續勝異熟果不可得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果相。此識果相雖多位多種。異熟寬不共故偏說之。此能執持諸法種子令不失故名一切種。離此餘法能遍執持諸法種子不可得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因相。此識因相雖有多種持種不共是故偏說。初能變識體相雖多略說唯有如是三相。"
  1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2권. pp. 76-82 / 583. 아뢰야식의 3상(阿賴耶識의 三相)
    "앞에서 능변의 세 가지 명칭을 간략하게 말했는데, 능변의 세 가지 체상을 자세하게 판별하지 않았다. 우선 초능변식(初能變識)의 체상은 어떠한가?82)
    게송(『삼십송」의 제2 ·· 4 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 번째는 아뢰야식이고,
       이숙식이며, 일체종자식이니라.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處]의
       요별을 갖네.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심소와 상응한다.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하네.
       이것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니,
       촉 등도 역시 그러하다.
       항상 폭류(暴流)의 흐름처럼 유전(流轉)한다.
       아라한위에서 버리네.83)
    논하여 말한다.84) 첫 번째 능변식[初能變識]은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에서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85) 이 식에 구체적으로 능장(能藏) · 소장(所藏) · 집장(執藏)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능장 · 소장의 뜻은) 잡염법과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이며, (집장의 뜻은) 유정(제7식)이 집착해서 자기 내면의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자체의 양상[自相]을 나타낸다.86) 원인 · 결과를 거두어 지녀서 자상을 삼기 때문이다.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이면서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87)
    이것은 능히 모든 계(界) · 취(趣) · 생(生)을 이끄는 선업 · 불선업의 이숙과이므로88) 이숙식(異熟識)이라고 이름한다.
    이것 이외에는 명근(命根)과 중동분(衆同分) 등 항상 상속하여 뛰어난 이숙과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과보로서의 체상[果相]을 나타내 보인다.89) 이 식의 과상(果相)은 지위도 많고 종류도 많지만,90) 널리 통하고[寬] 함께하지 않으므로[不共],91) 이에 비중을 두어 이숙식이라고 말한다.92)
    이것이 능히 일체법의 종자를 유지해서[執持] 잃지 않게 하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라고 이름한다. 이것 이외에 다른 법이 능히 두루 일체법의 종자를 지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93)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원인으로서의 체상[因相]을 나타내 보인다.94) 이것의 인상(因相)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종자를 지니는 것이 공통되지 않으므로, 이에 비중을 두어 일체종자식이라고 말한다.95) 초능변식의 체상이 많긴 하지만, 간략히 말해서 오직 이와 같은 세 가지 체상96)이 있다고 말한다.
    82) 이하 초능변식(初能變識)에 관한 게송을 총체적으로 열거한다.
    83) 이 게송들의 뜻을 해석함에 있어서 성유식론 2 ·· 4 권에 걸쳐 8단(段) 10의문(義門)으로 설명한다. 우선 10의문은, ①자상문(自相門:아뢰야식), ②과상문(果相門:이숙식), ③인상문(因相門:일체종자식), ④소연문(所緣門:執受와 處), ⑤행상문(行相門:요별), ⑥상응문(相應門:촉 · 작의 · 수 · 상 · 사), ⑦수구문(受俱門:捨受), ⑧3성문(性門:무부무기성 · 촉 등도 그러함), ⑨인과비유문(因果譬喩門:항상 폭류의 흐름처럼 유전함), ⑩복단위차문(伏斷位次門:아라한위이다)이고, 다음에 8단문(段門)은, ①②③을 합하여 3상문(相門)으로 하고, ④⑤를 합하여 소연행상문(所緣行相門)으로 한다. 그리고 제6에 심소동례문(心所同例門)을 첨가하여 총 여덟 가지로 분단(分段)한다.
    84) 이하 제8식의 세 가지 체상[三相]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85) 능변의 식[能變識]은 전변의 주체[能變]가 되는 식(識)이라는 뜻이다. 초능변식(初能變識:제8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ㆍ일체종자심식ㆍ이숙식(異熟識)ㆍ아타나식(阿陀那識)ㆍ심(心) 등으로 이름한다. 이들 명칭 중에서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ālaya는 a-√lī(집착하다, 저장하다, 저장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용어는 『숫따니빠따』 · 『증일아함경』 등 초기경전에서 ālaya는 ‘집착’, ‘애(愛) · 낙(樂) · 흔(欣) · 희(喜) 하는 집착의 대상’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비달마구사론』 제16권에는 탐욕 · 욕망 등과 나란히 열거되며,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6권에는 애욕의 의미로 사용된다. 유가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근원적인 대상으로서 이 식을 들고―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자아[我, ātman]로 착각해서 집착하므로―아뢰야식으로 명명하였다. 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뜻 이외에 ‘저장’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접두어 a를 첨가한 것은 ‘무몰(無沒)’의 의미, 즉 이 식이 아득한 옛적부터 끊임없이 항상 작용하기[恒轉如暴流] 때문이다.
    86) 자상(自相)은 자체의 양상이라는 의미로서, 제8식이 뇌야삼장(賴耶三藏), 즉 능장(能藏:持種義) · 소장(所藏:受薰義) · 집장(執藏:我愛所執義)의 세 가지 뜻을 갖추므로 아뢰야식[藏識]이라고 이름하는 것을 말한다. 유정의 정신적 · 신체적 행위는 모두 종자(種子, bīja)의 형태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능장(能藏)은 제8식이 능히 모든 잡염법(선 · 악 · 무기)의 종자를 저장 ·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잡염품은 아뢰야식에 결과[異性]로서 저장된다. 소장(所藏)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8식이 7전식에 의해 모든 잡염법의 훈습을 받아들이는 소훈처(所熏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잡염품의 법, 즉 구체적인 경험세계 속에 그것을 발생한 아뢰야식이 원인[因性]으로서 내재하는 것을 말한다. 집장(執藏)은 말나식이 아득한 옛적부터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여 아애(我愛)를 일으켜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87)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의 제8식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말한다. 뇌야삼위는 수행기간[因位]에서 불과(佛果)의 지위[果位]에 이르는 사이에 제8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이외에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가 있다. 아애집장현행위는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을 인식대상[所緣]으로 하여,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실제적 주체[我, ātman]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기간이다. 범부로부터 보살은 제7지[遠行地]까지, 2승(乘)은 유학의 성자까지의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물론 선악업과위[異熟識]와 상속집지위[阿陀那識]도 병행하지만, 아애집장현행의 뜻이 가장 강하고 그 과실이 크므로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제8지[不動地] 이상의 보살과 2승의 무학위(아라한)에서는 순(純)무루종자가 상속해서 아집을 영원히 일으키지 않으므로, 제8식에 대해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88) 총보업(總報業)을 가리킨다.
    89) 과상(果相)은 과보로서의 체상을 밝힌 것으로서, 제8식은 유정이 전생에 지은 선악의 업의 과보[異熟果]를 받은 총보(總報)의 주체임을 말한다. 이 식은 3계(界) · 5취(趣) · 4생(生) 중 어디라도 전생할 종자를 모두 지니고 있는데, 선이나 악의 강성한 업종자의 조력이 있어야 한다. 이숙식(異熟識)이라고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성유식론술기』 제1권본에서 ‘성류(性類)를 달리해서 성숙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즉 현재의 제8식을 초래한 전생의 원인[因]은 반드시 강성한 선업이나 악업이고, 초감(招感)된 제8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성(無記性)이기 때문이다.
    90) 지위가 많다는 것은 뇌야삼위(賴耶三位) 중 앞의 2위에 통하고, 또한 5위(位:범부 · 二乘有學 · 無學 · 十地 · 여래지) 중 앞의 4위에 통하는 것을 말한다. 종류가 많다는 것은 5과(果) 중에서 이숙과 · 증상과(增上果) · 등류과의 세 가지 결과[果]를, 또는 여기에 사용과(士用果)를 더하여 네 가지 결과에 통하는 것을 가리킨다.
    91) 이 식의 과상(果相)은 지위도 많고 종류도 많지만, 이숙식이라는 명칭이 널리 두 가지 지위(뇌야삼위 중 앞의 2위)와 증과의 5위(位) 중 네 가지 지위에 통한다[寬]. 또한 제8식뿐으로서 다른 법과 함께하지 않는다[不共]. 따라서 이숙식으로서 과상을 삼는다.
    92) 3위(位) 중에서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즉 아득한 옛적부터 선악의 이숙업에 의해 초감된 총보(總報) · 무기(無記)의 과체(果體)의 명칭을 이숙식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밝힌다. 범부로부터 보살은 금강심보살까지, 2승은 무학과의 성자(아라한)까지의 지위에서는 제8식을 이숙식(vipāka-vijñāna)이라고 부른다.
    93) 경량부의 비유사(譬喩師) 등의 주장을 논파한다. 그들은 색심호지설(色心互持說)을 집착해서 말하기를, 유색계에 태어나면 색근(色根) 속에 심왕 · 심소의 종자가 있고, 무색계에 태어나면 심왕 · 심소의 종자 등이 있게 되며, 이와 같이 색법 · 심법이 서로 집지(執持)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기서 그것을 논파하여, 제8식을 떠나서 다른 법이 널리 일체법의 종자를 집지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94) 인상(因相)은 원인으로서의 체상을 밝힌 것이다. 제8식에 유위(有爲) · 무위(無爲) · 유루(有漏) · 무루(無漏) · 색법 · 심법 등 모든 법을 현행시키는 원인으로서의 종자를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잃지 않고 보존하다가 그 종자가 현행할 조건을 만나면 결과[果]로서 현행한다.
    95)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의 제8식을 일체종자식(sarvabījaka-vijñāna), 즉 집지식(執持識, ādāna-vijñāna)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밝힌다. 제8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불과(佛果)에 이르기까지 상속하면서 종자를 저장 · 보존하고 신체[有根身]를 유지한다. 수행기간[因位]에서는 유루 · 무루의 종자를 지니고, 깨달음의 지위[佛果位]에서는 무루의 종자를 지닌다.
    96) 자상(自相) · 과상(果相) · 인상(因相)의 3상(相)을 가리킨다."
  14. 정준기 1993, 57-59쪽.
  15. 星雲, "賴耶三位". 2013년 4월 6일에 확인
    "賴耶三位:  由「因位」到「果位」,將第八阿賴耶識之變化分為三段以說明之,稱為賴耶三位。此係唯識宗之說。即:(一)我愛執藏現行位,為七地以前之菩薩、二乘之有學位,與一切凡夫等,自無始以來的第八識之位;於此位時,第八識係由第七末那識執有實我實法而成。(二)善惡業果位,乃第八阿賴耶識善惡業之果報相繼生起之位;此為八地以上至十地之菩薩、二乘之有餘依位,乃至全部我愛執藏現行位的第八識之位。於此位中,第八識稱為毘播迦(梵 vipāka),亦即異熟識。(三)相續執持位,即相續執持種子之位;於此位中,第八識稱為阿陀那(梵 ādāna),亦即執持識。謂自無始以來至佛果之盡未來際,在因位時執持善、惡、無記,與漏、無漏之種子,在果位時執持無漏最善之種子,能生起現行諸法。七地以前之菩薩及凡夫等之第八識兼具此三位,八地以上菩薩之第八識具有後二位,達於佛果後,其第八識僅具最後一位。通常將第八識稱為阿賴耶識時,主要係凸顯我愛執藏之過失及眾生第八識之自相。〔成唯識論述記卷二末〕(參閱「阿賴耶識」3676) p6313"
  16. 운허, "賴耶三位(뢰야삼위)". 2013년 4월 6일에 확인
    "賴耶三位(뢰야삼위): 제8 아뢰야식의 인위(因位)에서 과위(果位)에 이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변화를 셋으로 나눈 것.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ㆍ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ㆍ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의 3위를 말함."
  17. 운허, "藏識(장식)".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藏識(장식): 【범】 ālaya-vijñāna 8식의 하나. 제8아뢰야식(阿賴耶識). 진제삼장(眞諦三藏)은 이 식이 중생의 근본 심식(心識)으로 결코 없어지거나 잃어버릴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고, 현장(玄奘)은 능장(能藏)ㆍ소장(所藏)ㆍ집장(執藏)의 세 뜻이 있으므로 장식이라 번역하였음. ⇒장삼의(藏三義)ㆍ아뢰야식(阿賴耶識)"
  18. 星雲, "阿賴耶識".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무몰식(無沒識)과 장식(藏識)
    "阿賴耶識:  阿賴耶,梵語 ālaya 之音譯。為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等識)之一,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又作阿羅耶識、阿黎耶識、阿剌耶識、阿梨耶識。略稱賴耶、梨耶。舊譯作無沒識,新譯作藏識。或作第八識、本識、宅識。無沒識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以其為諸法之根本,故亦稱本識;以其為諸識作用之最強者,故亦稱識主。此識為宇宙萬有之本,含藏萬有,使之存而不失,故稱藏識。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故亦稱種子識。"
  1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2권. p. T31n1585_p0007c20 - T31n1585_p0007c24. 자상문(自相門)
    "論曰。初能變識大小乘教名阿賴耶。此識具有能藏所藏執藏義故。謂與雜染互為緣故。有情執為自內我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自相。攝持因果為自相故。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
  2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2권. pp. 79-80 / 583. 자상문(自相門)
    "논하여 말한다.84) 첫 번째 능변식[初能變識]은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에서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85) 이 식에 구체적으로 능장(能藏) · 소장(所藏) · 집장(執藏)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능장 · 소장의 뜻은) 잡염법과 서로 연(緣)이 되기 때문이며, (집장의 뜻은) 유정(제7식)이 집착해서 자기 내면의 자아로 삼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초능변식에 있는 자체의 양상[自相]을 나타낸다.86) 원인 · 결과를 거두어 지녀서 자상을 삼기 때문이다. 이 식의 자상은 분위(分位)가 많지만 장식(藏識)이라 이름하는 것은, 첫 번째 지위이면서 과실이 크기 때문에 이에 비중을 두어 이름한 것이다.87)
    84) 이하 제8식의 세 가지 체상[三相]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85) 능변의 식[能變識]은 전변의 주체[能變]가 되는 식(識)이라는 뜻이다. 초능변식(初能變識:제8식)을 아뢰야식(阿賴耶識)ㆍ일체종자심식ㆍ이숙식(異熟識)ㆍ아타나식(阿陀那識)ㆍ심(心) 등으로 이름한다. 이들 명칭 중에서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ālaya는 a-√lī(집착하다, 저장하다, 저장되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용어는 『숫따니빠따』 · 『증일아함경』 등 초기경전에서 ālaya는 ‘집착’, ‘애(愛) · 낙(樂) · 흔(欣) · 희(喜) 하는 집착의 대상’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비달마구사론』 제16권에는 탐욕 · 욕망 등과 나란히 열거되며,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16권에는 애욕의 의미로 사용된다. 유가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근원적인 대상으로서 이 식을 들고―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상일주재(常一主宰)의 자아[我, ātman]로 착각해서 집착하므로―아뢰야식으로 명명하였다. 유식학파에서는 ‘집착’의 뜻 이외에 ‘저장’의 의미가 강조되었다. 접두어 a를 첨가한 것은 ‘무몰(無沒)’의 의미, 즉 이 식이 아득한 옛적부터 끊임없이 항상 작용하기[恒轉如暴流] 때문이다.
    86) 자상(自相)은 자체의 양상이라는 의미로서, 제8식이 뇌야삼장(賴耶三藏), 즉 능장(能藏:持種義) · 소장(所藏:受薰義) · 집장(執藏:我愛所執義)의 세 가지 뜻을 갖추므로 아뢰야식[藏識]이라고 이름하는 것을 말한다. 유정의 정신적 · 신체적 행위는 모두 종자(種子, bīja)의 형태로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능장(能藏)은 제8식이 능히 모든 잡염법(선 · 악 · 무기)의 종자를 저장 ·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잡염품은 아뢰야식에 결과[異性]로서 저장된다. 소장(所藏)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8식이 7전식에 의해 모든 잡염법의 훈습을 받아들이는 소훈처(所熏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잡염품의 법, 즉 구체적인 경험세계 속에 그것을 발생한 아뢰야식이 원인[因性]으로서 내재하는 것을 말한다. 집장(執藏)은 말나식이 아득한 옛적부터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여 아애(我愛)를 일으켜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87) 뇌야삼위(賴耶三位) 중에서 아애집장현행위(我愛執藏現行位)의 제8식을 장식(藏識), 즉 아뢰야식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말한다. 뇌야삼위는 수행기간[因位]에서 불과(佛果)의 지위[果位]에 이르는 사이에 제8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서, 이외에 선악업과위(善惡業果位), 상속집지위(相續執持位)가 있다. 아애집장현행위는 제7식이 제8식의 견분을 인식대상[所緣]으로 하여, 상일주재(常一主宰)하는 실제적 주체[我, ātman]로 착각하여 집착하는 기간이다. 범부로부터 보살은 제7지[遠行地]까지, 2승(乘)은 유학의 성자까지의 제8식을 아뢰야식이라고 이름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물론 선악업과위[異熟識]와 상속집지위[阿陀那識]도 병행하지만, 아애집장현행의 뜻이 가장 강하고 그 과실이 크므로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제8지[不動地] 이상의 보살과 2승의 무학위(아라한)에서는 순(純)무루종자가 상속해서 아집을 영원히 일으키지 않으므로, 제8식에 대해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
  21. 星雲, "賴耶三藏".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賴耶三藏:  第八阿賴耶識具能藏、所藏、執藏三義。(一)能藏,就阿賴耶與種子之關係而言,阿賴耶識乃微細任運相續,無始終亦無間斷,能攝藏諸法種子而不失,故謂能藏,而種子為所藏。(二)所藏,就能薰之七轉識與所薰之阿賴耶識之關係而言,能薰是能藏,所薰是所藏。現行之勝用有七轉識,於現行之剎那必薰附其種子於第八阿賴耶識,而稱新薰種子。(三)執藏,謂染污之第七末那識執其為「內我」之義。「我」,為常一主宰之義。第八識生滅相續而非常一主宰,然其相續之相微細,恰似常一主宰,故第七末那識誤以為實我而妄加執著,此乃我見之根源。如是執著,稱為執藏。〔成唯識論述記卷二末〕(參閱「阿賴耶識」3676) p6314"
  22. 운허, "藏三義(장삼의)".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藏三義(장삼의): 제8 아뢰야식을 장식(藏識)이라 부르는데 세 가지 뜻이 있다. (1) 능장(能藏). 제8식이 능히 물ㆍ심 만법의 종자를 자식(自識) 안에 지니고 있음을 말함. 종자가 소장(所藏)인 것에 비해서 제8식은 종자를 거두어 지니고 있으므로 능장(能藏)이라 불림. (2) 소장(所藏). 제8식이 전7식을 위해서 각각의 종자를 훈(熏)하여 장치하는 바 됨을 말함. 곧 전7식이 능장인 것에 비해 제8식은 소장이 됨. (3) 집장(執藏). 제8식은 끊임없이 항상 상속(相續)하여 상일 주재한 실아(實我)와 비슷하므로 제7 말나식(末那識)에 의하여 항상 아(我)라고 집착하게 된다. 즉 제7식의 능집장(能執藏)에 대하여 제8식은 소집장(所執藏)의 뜻을 지니게 된다. ⇒장식(藏識)"
  23. 于凌波, "섭지인과(攝持因果)". 2013년 4월 18일에 확인
    "論文二:論曰,初能變識,大小乘教,名阿賴耶。此識具有能藏、所藏、執藏義故,謂與雜染互為緣故;有情執為自內我故。此即顯示初能變識所有自相,攝持因果為自相故。此識自相分位雖多,藏識過重是故偏說。
    講解:這一段論文,是十門中的自相門,即「初阿賴耶識」。初能變的第八阿賴耶識,大小乘聖教名阿賴耶。阿賴耶是梵語音譯,意譯為「藏識」,藏識之藏有三種義,即能藏、所藏、執藏。能藏、所藏,是指出阿賴與前七識的現行雜染等法,互相為緣而得名。如以阿賴耶識含藏雜染種子而論,則阿賴耶是能藏;如以雜染等法覆藏阿賴耶識而論,則阿賴耶識是所藏。執藏,是由第七識執著八識的見分以為自內之我而得名。以愛著我故,又名「我愛執藏」。以上所說,就是顯示初能變識所有的自體相狀,自體相狀是由於攝持因果而成的。能藏是因;所藏是果。自相為總,因果為別。以自相之總,含攝因果之別;以因果之別,依持自相之總。所以說是「攝持因果」。這第八識的自相,分位的名稱雖多,然而以阿賴耶執藏的過失最重,重於異熟等,所以偏說阿賴耶名。"
  2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5권. p. T31n1585_p0026c27 - T31n1585_p0027a05. 마음작용의 6위(六位)
    "雖諸心所名義無異而有六位種類差別。謂遍行有五。別境亦五。善有十一。煩惱有六。隨煩惱有二十。不定有四。如是六位合五十一。一切心中定可得故。緣別別境而得生故。唯善心中可得生故。性是根本煩惱攝故。唯是煩惱等流性故。於善染等皆不定故。然瑜伽論合六為五。煩惱隨煩惱俱是染故。"
  2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5권. p. 259 / 583. 마음작용의 6위(六位)
    "모든 심소는 명칭이나 개념[義]에 다른 것이 없지만, 여섯 가지 지위의 종류로 차별이 있다.168) 변행심소에 다섯 가지가 있고, 별경심소에 역시 다섯 가지가 있으며, 선심소에 열한 가지가 있고, 번뇌심소에 여섯 가지가 있으며, 수번뇌심소에 스무 가지가 있고, 부정심소에 네 가지가 있다. 이와 같은 여섯 가지 지위를 합하면 쉰한 가지가 된다.
    (변행심소는) 모든 심왕 중에 반드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고,(별경심소는) 갖가지 대상을 반연하여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며, (선심소는) 오직 선(善)으로서 심왕 중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번뇌심소는) 본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이고, (수번뇌심소는) 오직 번뇌의 등류성(等流性)이기 때문이며, (부정심소는) 선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가사지론』에서 여섯 종류를 합해서 다섯 종류로 한 것은,169) 번뇌심소와 수번뇌심소가 모두 잡염이기 때문이다.
    169) 『유가사지론』 제3권(『고려대장경』 15, p.483上:『대정장』 30, p.291上)."
  26. 星雲, "心所". 2013년 4월 5일에 확인
    "心所:  梵語 caitta, caitasika,巴利語 cetasika。又作心數、心所有法、心所法、心數法。從屬於心王。乃五位之一。與心相應而同時存在,為種種複雜之精神作用。以從屬於心,故對心所而言,心謂「心王」。心王與心所之間,有所謂五義平等(所依平等、所緣平等、行相平等、時平等、事平等)之相應關係,故心所又稱相應法、心相應法。離此心王,是否別有心所之體,對此,有部主張別體說,其他諸派另有多種異說。
     有關心所之數及其分類之方法,有種種說法。小乘俱舍論立受、想、思、觸、欲、慧、念、作意、勝解、三摩地等十大地法(相應於一切心之心所);信、不放逸、輕安、捨、慚、愧、無貪、無瞋、不害、勤等十大善地法(相應於一切善心之心所);癡、放逸、懈怠、不信、惛沈、掉舉等六大煩惱地法(指一切污染心而言,即與不善心、有覆無記心共通而相應之心所);無慚、無愧等二大不善地法(僅相應於一切不善心之心所);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等十小煩惱地法(與無明相應,而不能同時起兩種以上之心所);惡作、睡眠、尋、伺、貪、瞋、慢、疑等不定地法(上五類以外之心所);總共六位,計立四十六心所。此外,如正法念處經卷三十三,就上述大善地法中,以無癡取代無瞋;大毘婆沙論卷四十二則列舉七類心所,即大地法、大善地法、大煩惱地法、大不善地法、小煩惱地法、大有覆無記地法、大無覆無記地法等,而列舉四十九心所。
     大乘成唯識論中,則將心所分為遍行、別境、善、煩惱、隨煩惱、不定等六位。對此而立四種一切義;即一切性(共通於善、惡、無記三性而起)、一切地(共通於有尋有伺、無尋唯伺、無尋無伺三地而起)、一切時(無始以來,恆常相續)、一切俱(一切心所同時而生)等四種。大體而言,遍行之心所具足四種一切義;別境之心所具足性、地二種一切義;善僅有地之一切義;不定僅有性之一切義;煩惱、隨煩惱則不具足任何之一切義。
     遍行乃作意、觸、受、想、思;別境乃欲、勝解、念、定、慧;分別稱為五遍行與五別境,合之則相當於十大地法。善有信、慚、愧、無貪、無瞋、無癡、勤、輕安、不放逸、行捨、不害等十一;煩惱有貪、瞋、癡、慢、疑、惡見等六;隨煩惱有忿、恨、覆、惱、嫉、慳、誑、諂、害、憍、無慚、無愧、掉舉、惛沈、不信、懈怠、放逸、失念、散亂、不正知等二十;不定僅有悔(惡作)、睡眠、尋、伺等四不定。以上所立五十一心所之中,隨煩惱復分三種:最初之十者(忿至憍者)乃個別而起,故稱小隨煩惱(小隨惑)。其次之二者(無慚、無愧),乃普遍於一切不善心而起,故稱中隨煩惱(中隨惑)。最後之八者(掉舉至不正知者),普遍於一切不善心與有覆無記心而起,故稱大隨煩惱(大隨惑)。又瑜伽師地論卷一於上列二十隨煩惱外,別說邪欲、邪勝解,總成五十三法;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則將根本煩惱中之惡見,開立為身見等五種,故共立五十五法。〔品類足論卷一、俱舍論卷四、順正理論卷十、界身足論卷上、成實論卷五、成唯識論卷五、卷七、成唯識論述記卷五末、大乘法相宗名目卷三下〕(參閱「心心所」1397、「心王」1398) p1403"
  27. 佛門網, "心所". 2013년 4월 5일에 확인
    "心所: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心所有法的簡稱,也就是為心所有的各種思想現象,共有五十一法,即遍行五,別境五,善心所十一,煩惱六,隨煩惱二十,不定四。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成唯識論五卷十三頁云:恆依心起,與心相應,繫屬於心;故名心所。如屬我物,立我所名。 二解 辯中邊論上卷四頁云:此諸識中,受能受用,想能分別,思作意等,諸相應行,能推諸識,此三助心,故名心所。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術語)心所有法之略。為心王之所有,而有貪瞋等別作用之心法也。小乘俱舍有四十四法。大乘唯識有五十一法。【參見: 五位】"
  2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b16.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此識與幾心所相應。常與觸作意受想思相應。阿賴耶識無始時來乃至未轉。於一切位恒與此五心所相應。以是遍行心所攝故。"
  2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18 / 583. 변행심소(遍行心所: 5가지)
    "이 식(識)은 몇몇 심소(心所와 상응하는가?1) 항상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와 상응한다.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전의(轉依)2)를 이루기 이전3)까지 모든 지위에서 항상 이 다섯 가지 심소와 상응한다. 이것은 두루 작용하는 심소[遍行心所]4)이기 때문이다.
    1) 이하 아뢰야식과 상응하는 5변행심소(遍行心所) 각각에 관하여 설명한다. 이것을 심소상응문(心所相應門)이라고 한다.
    2) 전의(轉依, āśraya-parāvṛtti) 수행에 의해 ‘소의(所依:依他起)를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의타기성, 8식 혹은 持種依인 아뢰야식)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로부터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8식이 네 가지 지혜로 전환된다[轉識得智]. 곧 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로, 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5식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전환된다.
    3) 금강무간도(金剛無間道)를 가리킨다.
    4) 변행심소(遍行心所)는 8식 모두에 언제나 상응해서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3성(性) 모두에 두루 일어나며[遍起], 3계(界) · 9지(地) 어디에서나 작용한다[一切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一切時], 변행의 5심소는 언제나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一切俱]. 이에 촉(觸) · 작의(作意) · 수(受) · 상(想) · 사(思)의 다섯 가지 심소가 있다."
  3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c26. 상응(相應)
    "此五既是遍行所攝。故與藏識決定相應。其遍行相後當廣釋。此觸等五與異熟識行相雖異。而時依同所緣事等。故名相應。"
  3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5 / 583. 상응(相應)
    "이 다섯 가지는 변행심소에 포함되기 때문에 장식(藏識)과 반드시 상응한다. 그 변행심소의 양상은 나중에33) 마땅히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이 촉 등 다섯 가지 심소는 이숙식과 인식작용[行相:見分]이 다르지만,34) 작용하는 때[時] · 의지처[依]가 동일하고[同], 인식대상[所緣:상분] · 자체[事:자체분]는 비슷하다[等].
    따라서 ‘상응(相應)’이라고 이름한다.35)
    33) 이 논서의 제5권에서이다.
    34) 유식학에서 심왕과 심소는 자체가 다르다고[王所體別說] 보기 때문에 인식작용[行相:견분]을 달리한다. 심왕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總相]을 취하고, 심소는 총체적인 모습과 함께 구체적인 모습[別相]까지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35) 『삼십송』의 제3게송에서의 상응(相應)이라는 말을 해설한다. 상응(相應, saṁy- ukta)의 개념에는 네 가지 뜻[四義]이 있다. 즉 첫째 심왕과 심소가 현기(現起)함에는 시간이 동일하고[時同], 둘째 심왕과 심소는 감각기관[所依根]이 동일하고[依同], 셋째 심왕과 심소는 그 인식대상[所緣:相分]이 비슷하고[所緣等], 넷째 심왕과 심소는 그 자체분[事]이 비슷하다[事等]. 여기서 사등(事等)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즉 유식학에서는 왕소체별설(王所體別說)의 입장이므로, 심왕과 심소가 동일찰나에 비슷한 대상에 각기 하나씩 현기(現起)한다. 그 수(數)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씩 일어나므로, 자체분이 비슷하다고 말한 것이다. 이것을 사의평등(四義平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유식학에서는 심왕과 심소의 인식작용[行相:견분]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데 반하여, 소승에서는 그것이 비슷하다고 보고 사의평등에 행상등(行相等)을 첨가해서 오의평등(五義平等)을 말한다."
  32. 星雲, "四義平等". 2013년 4월 4일에 확인
    "四義平等:  謂心王與心所相應關係有四種平等。此乃唯識宗之主張。即:(一)時平等,謂心王心所同一剎那生起作用。(二)所依平等,謂心王心所二者之所依相等。(三) 所緣平等,謂心王心所所緣之相分非同一,但卻相似。(四)事平等,謂心王心所之自體分非同一而卻類似。成唯識論卷三(大三一‧一一下):「行相雖異,而時依同所緣事等,故名相應。」
     俱舍宗於上述四義平等之外,認為心王與心所對於所緣之外境,其行解之相亦皆平等,即行相平等。故俱舍宗主張五義平等。〔俱舍論卷四〕(參閱「五義平等」1169) p1784"
  33. 星雲, "五義平等". 2013년 4월 4일에 확인
    "五義平等:  心王與心所互相對應作用(相應法),共有五義,即:(一)所依平等,如心王依眼根,心所亦依眼根;此乃兩者依於相等之事物。(二)所緣平等,指心王與心所所取之對象平等。(三)行相平等,指心王、心所中顯現之對象的形態平等。(四)時平等,心王與心所同時作用,故稱時平等。(五)事平等,心王與心所作用時,乃一個心王與同一種類之心所起作用,並非同時有兩個以上的心王或心所。亦有主張除去行相平等,而說四義平等者。〔俱舍論卷四〕 p1169"
  34. 운허, "五義平等(오의평등)". 2013년 4월 4일에 확인
    "五義平等(오의평등): 불교에 대한 심리(心理)의 설명에서 마음의 작용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의 둘로 나눔. 이 심왕과 심소가 서로 응하여 여의지 않는 데 5의가 있으므로, 5의평등이라 함. (1) 소의평등(所依平等). 눈ㆍ귀 등의 6식. 심왕이 눈ㆍ귀 등의 6근(根)에서 어느 것을 소의(所依)로 할때 심소도 심왕과 같은 소의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 (2) 소연평등(所緣平等). 심소는 심왕과 동일한 대상(所然)을 취하는 것. (3) 행상평등(行相平等). 심왕과 심소가 동일한 행상을 생각하여 떠오르게 하는 것. (4) 시평등(時平等). 심왕ㆍ심소의 작용이 동시인 것. (5) 사평등(事平等). 사(事)는 체(體)란 뜻. 심왕과 심소가 각각 체가 하나인 것."
  3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10. 아뢰야식의 비상응
    "如何此識非別境等心所相應互相違故。謂欲希望所樂事轉。此識任運無所希望。勝解印持決定事轉。此識瞢昧無所印持。念唯明記曾習事轉。此識昧劣不能明記。定能令心專注一境。此識任運剎那別緣。慧唯簡擇德等事轉。此識微昧不能簡擇。故此不與別境相應。此識唯是異熟性故。善染污等亦不相應。惡作等四無記性者。有間斷故定非異熟。"
  3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7 / 583. 아뢰야식의 비상응
    "[문] 어째서 이 식은 별경심소(別境心所) 등과 상응하지 않는가?40)
    [답]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욕(欲)심소는 좋아하는 것을 희망하여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업에 따르며 희망하는 것이 없다. 승해(勝解)심소는 결정된 사물을 분명히 지녀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몽매하여 분명히 지니는 바가 없다. 염(念)심소는 오직 예전에 익힌 일을 분명하게 기억해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어둡고 미약해서 분명히 기억하지 못한다. 정(定)심소는 능히 심왕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기울이게 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자연히 찰나마다 따로 반연한다. 혜(慧)심소는 오직 덕(德) 등의 일을 간택해서 전전하는 데 반하여, 이 식은 미세하고 어두워서 간택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것은 별경심소와는 상응하지 않는다.
    이 식은 오직 이숙성이기 때문에 선 · 염오 등의 심소와도 역시 상응하지 않는다.41)
    오작(惡作) 등 네 가지42)에 대해서는, 무기성이긴 하지만 잠시 단절됨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숙이 아니다.
    법에 네 가지가 있으니 선(善)과 불선(不善), 유부무기(有覆無記)
    40) 다음에 제8식이 5변행심소 이외에 다른 심소와 함께하지 않는 까닭을 밝힌다. 이것은 외인(外人)의 질문이다.
    41) 제8식이 선심소(善心所) · 번뇌심소(煩惱心所) · 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와 상응하지 않음을 밝힌다.
    42) 네 가지 부정심소(不定心所), 즉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를 가리킨다."
  3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1c29.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첫째 이유
    "此識行相極不明了。不能分別違順境相。微細一類相續而轉。是故唯與捨受相應。"
  3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p. 125-126 / 583.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첫째 이유
    "이 식은 인식작용[行相]이 매우 명료하지 않고, 거슬림과 수순의 대상의 모습을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 행상은 미세하고 한 종류(이숙무기성)로서 상속하면서 전전한다. 따라서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36)
    36) 다음에 제8아뢰야식이 5수(受) 가운데 오직 사수(捨受)와 함께함을 밝힌다. 이것을 수구문(受俱門)이라고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는 인위(因位)에서이고, 만약 불위(佛位)라면 제8식은 인식작용이 명료하며, 대상의 위순(違順)의 모습을 분별하고, 나머지 세 가지는 인과위(因果位)에 공통된다."
  3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p. 125-126 / 583. 사수와 상응하는 첫째 이유.
  4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02.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둘째 이유
    "又此相應受唯是異熟。隨先引業轉不待現緣。住善惡業勢力轉故。唯是捨受。苦樂二受是異熟生。非真異熟待現緣故。非此相應。"
  4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6 / 583.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둘째 이유
    "또한 이것과 상응하는 수(受)는 오직 이숙(異熟)이다. 이전의 인업(引業)에 따라서 전전하고, 현행의 연(緣)37)을 기다리지 않으며, 선 · 악업의 세력에 맡겨서 전전하기 때문에 오직 사수뿐이다. 고수(苦受) · 낙수(樂受)는 이숙생(異熟生)이지 참다운 이숙은 아니다. 현행의 연을 기다리기 때문에 이것과 상응하지 않는다.
    37) 수순[順] · 거스름[違] 등의 현행(現行)의 연(緣)을 말한다."
  4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06.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셋째 이유
    "又由此識常無轉變。有情恒執為自內我。若與苦樂二受相應。便有轉變。寧執為我。故此但與捨受相應。"
  4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6 / 583. 오직 사수와 상응하는 셋째 이유
    "또한 이 식은 항상하고 전변함이 없어서[一類], 유정(제7식)이 항상 집착하여 자신의 내면의 자아로 삼는다. 만약 고수 · 낙수와 상응한다면 곧 전변함이 있게 되는데,38) 어떻게 집착해서 자아로 삼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38) 고(苦) · 낙(樂)이 전변하므로 상일(常一)이 아니다."
  44. 곽철환 2003, "말나식(末那識)". 2013년 1월 20일에 확인
    "말나식(末那識):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남.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45. 운허, "四煩惱(사번뇌". 2013년 1월 20일에 확인
    "四煩惱(사번뇌): 법상종에서 제7 말나식과 항상 상응하는 네 가지 번뇌를 말함. (1) 아치(我癡)는 아(我)의 진상을 알지 못하여, 무아(無我)의 이치를 미(迷)한 것. (2) 아견(我見)은 실아(實我)가 있다고 집착하는 그릇된 소견. (3) 아만(我慢)은 저를 믿는 마음이 너무 높은 것. (4) 아애(我愛)는 나라는 데 애착하는 것."
  46. 星雲, "四煩惱". 2013년 1월 20일에 확인
    "四煩惱: 又作四惑、四根本煩惱。即我癡、我見、我慢、我愛。於唯識宗,此乃與第七末那識相應而起之四種根本煩惱。我癡,即無明,謂愚於我之相而迷於無我之理。我見,即我執,謂對於非我之法妄計為我。我慢,即倨傲,謂恃所執之我,令心高舉。我愛,即我貪,謂對於所執之我深生耽著。〔成唯識論卷四、成唯識論述記卷五本、唯識論了義燈卷四末、唯識論演祕卷四末〕(參閱「煩惱」5515)"
  4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4권. p. T31n1585_p0022a24 - T31n1585_p0022b06. 4근본번뇌(四根本煩惱)
    "此意相應有幾心所。且與四種煩惱常俱。此中俱言顯相應義。謂從無始至未轉依此意任運恒緣藏識與四根本煩惱相應。其四者何。謂我癡我見并我慢我愛。是名四種。我癡者謂無明。愚於我相迷無我理故名我癡。我見者謂我執。於非我法妄計為我。故名我見。我慢者謂倨傲。恃所執我令心高舉。故名我慢。我愛者謂我貪。於所執我深生耽著。故名我愛。并表慢愛有見慢俱。遮餘部執無相應義。此四常起擾濁內心令外轉識恒成雜染。有情由此生死輪迴不能出離。故名煩惱。"
  4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4권. pp. 216-217 / 583. 4근본번뇌(四根本煩惱)
    "이 말나식과 상응하는 심소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202) 우선 네 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한다. 여기서 ‘함께한다’는 말은 상응의 의미를 나타낸다. 아득한 옛적부터 아직 전의를 이루지 못한 지위에 이르기까지, 이 말나식은 자연적으로 항상 장식을 반연하고, 네 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한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아치(我痴)와 아견(我見) 및 아울러 아만(我慢)과 아애(我愛)’를 말한다. 이것을 네 가지 근본번뇌라고 이름한다. ‘아치(我痴)’는 무명을 말한다. 자아의 양상에 어리석어서 무아의 이치에 미혹한다. 따라서 아치라고 이름한다.203) ‘아견’은 아집을 말한다. 자아가 아닌 법에 대해서 망령되게 계탁하여 자아로 삼는다. 따라서 아견이라고 이름한다.204) ‘아만’은 거만함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를 믿어서 심왕으로 하여금 높이 올린다. 따라서 아만이라고 이름한다.205) ‘아애’는 아탐(我貪)을 말한다. 집착된 자아에 대해서 깊이 탐착(耽着)을 일으킨다. 따라서 아애라고 이름한다.206) (제5게송에서) ‘아울러[幷]’라고 말한 것은, 아만 · 아애가 아견 · 아만과 함께하는 일이 있음을 나타냄으로써, 다른 부파가207) 상응하는 뜻이 없다고 집착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 네 가지가 항상 일어나서208) 안으로 심왕209)을 어지럽히고 혼탁하게 하며, 밖으로 전식(6식)을 항상 잡염되게 한다. 유정이 이것(번뇌)으로 인해 생사에 윤회하여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번뇌라고 이름한다.
    203) 아치(我痴, ātmamoha)는 자기 본질의 이치[無我]를 모르는 근본적인 무지(無知) 곧 무명(無明)을 말한다. 무명은 초기불교 이래 4성제, 연기의 도리에 무지한 것으로 설명되었다. 유가유식학파도 근본적으로 이런 입장에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아의 이치에 미혹한 아치(我痴)야말로 근본적인 무명이며, 그것이 항상 말나식과 함께 작용한다고 하였다.
    204) 아견(我見, ātmadṛṣṭi)은 자아(ātman)가 실재한다고 집착하는 것으로서, 살가야견(薩迦耶見, satkāya-dṛṣṭi:有身見)이라고도 한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의식이 5취온을 대상으로 해서 자아로 착각하여 나[我] · 나의 소유[我所]로 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205) 아만(我慢, ātmamāna)은 아견에 의해 설정된 자아를 의지처[所依]로 삼아서 자기는 존재한다고 교만하게 뽐내는 것이다. 부파불교시대에 아만은 5취온을 나 · 나의 소유로 집착하여 교만한 것을 뜻하였다. 유가유식학파에서는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자아로 인식함으로써 자아를 더욱 대상화하고, 대상화된 자기를 근거로 교만하게 뽐내는 것을 근본적인 아만으로 생각하였다.
    206) 아애(我愛, ātmasneha)는 일상생활에서 갖가지 고통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또한 죽음의 공포를 부추기는 근본원인이 된다.
    207) 설일체유부를 가리킨다.
    208) 아치(我痴)가 근본원인이 되어서 아견→아만→아애(我愛)의 순서로 생겨난다.
    209) 제7식과 제8식을 가리킨다."
  4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08. 선·악·무기업과 사수
    "若爾如何此識亦是惡業異熟。既許善業能招捨受此亦應然。捨受不違苦樂品故。如無記法善惡俱招。"
  5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p. 126-127 / 583. 선·악·무기업과 사수
    "[문]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이 식이 또한 악업의 이숙이라고 말하는가?39)
    [답] 이미 선업이 능히 사수(捨受)를 부를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이것도 역시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사수는 괴로움의 품류[苦品]와 즐거움의 품류[樂品]에 거슬리지 않기 때문에, 무기법이 선 · 악에 함께 초감(招感)되는 것과 같다.
    39) 설일체유부 등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사수(捨受)는 적정(寂靜)한 것이므로 선악에 의해 그것을 초감(招感)해야 한다. 그런데 제8식이 이숙(異熟)이라고 말하면, 또한 선 · 악업에 의해서도 초감하듯이 악업으로써 적정의 사수(捨受)의 과(果)를 초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51. 무착 조, 현장 한역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3b04 - T31n1605_p0663b05. 수(受)
    "受蘊何相。領納相是受相。謂由受故。領納種種淨不淨業諸果異熟。"
  52.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2, T.1605, 제1권. p. 3 / 159. 수(受)
    "수온(受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받아들이는 모양이 수온의 모양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갖가지 업(業)을 받아들여 여러 과보(果報)를 이숙(異熟)시킨다고 말한다."
  53. 안혜 조, 현장 한역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5c01 - T31n1606_p0695c06. 수(受)
    "問受蘊何相。答領納相是受相。謂由受故領納種種淨不淨業所得異熟。若清淨業受樂異熟。不清淨業受苦異熟淨不淨業受不苦不樂異熟。所以者何。由淨不淨業感得異熟阿賴耶識。恒與捨受相應。唯此捨受是實異熟體。苦樂兩受從異熟生故。假說名異熟。"
  54.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K.576, T.1605, 제1권. p. 7 / 388. 수(受)
    "‘수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근접하여 받아들이는 모양이 ‘수온의 모양’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갖가지 업(業)을 받아들여 여러 과보(果報)를 이숙(異熟)시키게 되는 것이다.
    [釋] 여기서 ‘청정한 업’은 ‘낙’의 이숙을 받는 것이고, ‘불청정한 업’은 ‘고’의 이숙을 받는 것이고, 정(淨)ㆍ부정업(不淨業)은 ‘불고불락’의 이숙을 받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하면, 정ㆍ부정업에 연유해서 이숙을 감득하는 아뢰아식은 언제나 사수(捨受)와 상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수’야말로 이숙의 실체이니, ‘고’와 ‘낙’의 두 가지 수(受)는 이숙에 따라 생겨나는 때문에, 이를 가설하여 ‘이숙’이라 이름한다."
  5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26. 부(覆)
    "覆謂染法。障聖道故。又能蔽心令不淨故。"
  5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p. 128-129 / 583. 부(覆)
    "은폐하는 것[覆]은 잡염법을 말한다. 성스러운 도(道)를 장애하기 때문이고, 또한 능히 마음(법성심 · 의타기심)을 은폐하여 청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57.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28. 기(記)
    "記謂善惡。有愛非愛果及殊勝自體可記別故。"
  58.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9 / 583. 기(記)
    "기(記)라는 것은 선과 악을 말한다. 애착함과 애착하지 않음의 결과를 갖고, 뛰어난 자체이므로 기별(記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이나 악이 아니므로 무기(無記)라고 이름한다."
  59.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19. 아뢰야식의 3성 분별
    "法有四種。謂善不善有覆無記無覆無記。阿賴耶識何法攝耶。此識唯是無覆無記異熟性故。異熟若是善染污者。流轉還滅應不得成。又此識是善染依故。若善染者互相違故。應不與二俱作所依。又此識是所熏性故。若善染者如極香臭應不受熏。無熏習故染淨因果俱不成立。故此唯是無覆無記。"
  60.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p. 127-128 / 583. 아뢰야식의 3성 분별
    "법에 네 가지가 있으니 선(善)과 불선(不善), 유부무기(有覆無記)와 무부무기(無覆無記)43)를 말한다. 이 가운데에서 아뢰야식은 어느 법에 들어가는가?44) 이 식은 오직 무부무기이다. 이숙성이기 때문이다.
    이숙식이 만약 선이나 염오라면, 유전(流轉)과 환멸(還滅)은 이루어질 수 없어야 한다.45) 또한 이 식은 선과 염오의 의지처이기 때문에 선과 염오라면 서로 달라서 둘에 모두 의지처가 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이 식은 훈습을 받아들이는 체성[所熏性]이기 때문에, 선과 염오라면 매우 향기로운 것과 악취 나는 것처럼 서로 훈습을 받지 않아야 한다. 훈습이 없기 때문에 잡염 · 청정의 원인 · 결과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46)
    따라서 이것은 오직 무부무기이다.
    43) 무기(無記)는 사물의 체성이 중용(中容)으로서, 선이라고도 악이라고도 기별(記別)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부(覆)는 은복(隱覆) · 은폐(隱蔽)의 뜻으로서 염오의 성품이다. 따라서 유부무기(有覆無記)는 망혹(妄惑)의 체성의 세력이 매우 미약하다. 구생기(俱生起)의 아집과 법집, 즉 제7식이 유부무기성이다. 성스러운 도(道)를 장애하여 청정심을 은폐한다. 무부무기(無覆無記)는 체성이 망혹(妄惑)이 아니면서 세력이 미약하여 선악이 아닌 것이다. 아뢰야식의 자체[體]와 5근(根) 및 외부세계의 산하초목 등이 무부무기성이다.
    44) 다음에 아뢰야식이 3성(性) 중에서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임을 밝힌다[三性門].
    45) 유전(流轉)은 고제(苦諦) · 집제(集諦)이고, 환멸(還滅)은 멸제(滅諦) · 도제(道諦)이다. 만약 제8식이 오직 선성(善性)이라면 유전이 없어야 하고, 오직 염오성이라면 환멸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46) 설일체유부 등의 비판에 대하여 답변한다. 그들이 훈습의 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과실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논주가 답하기를, 만약 훈습이 없다면, 잡염 · 청정법의 인과(因果)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훈습이 없기 때문에 곧 종자도 없어야 하고, 만약 종자가 없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된다. 만약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역시 없어야 한다고 논파한다."
  61.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20. 이숙성(異熟性)
    "此識唯是無覆無記異熟性故。異熟若是善染污者。流轉還滅應不得成。"
  62.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8 / 583. 이숙성(異熟性)
    "이 식은 오직 무부무기이다. 이숙성이기 때문이다.
    이숙식이 만약 선이나 염오라면, 유전(流轉)과 환멸(還滅)은 이루어질 수 없어야 한다.45)
    45) 유전(流轉)은 고제(苦諦) · 집제(集諦)이고, 환멸(還滅)은 멸제(滅諦) · 도제(道諦)이다. 만약 제8식이 오직 선성(善性)이라면 유전이 없어야 하고, 오직 염오성이라면 환멸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63.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22. 소의성(所依性)
    "又此識是善染依故。若善染者互相違故。應不與二俱作所依。"
  64.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8 / 583. 소의성(所依性)
    "또한 이 식은 선과 염오의 의지처이기 때문에 선과 염오라면 서로 달라서 둘에 모두 의지처가 되지 않아야 한다."
  65.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T.1585, 제3권. p. T31n1585_p0012a24. 소훈성(所熏性)
    "又此識是所熏性故。若善染者如極香臭應不受熏。無熏習故染淨因果俱不成立。"
  66.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K.614, T.1585, 제3권. p. 128 / 583. 소훈성(所熏性)
    "또한 이 식은 훈습을 받아들이는 체성[所熏性]이기 때문에, 선과 염오라면 매우 향기로운 것과 악취 나는 것처럼 서로 훈습을 받지 않아야 한다. 훈습이 없기 때문에 잡염 · 청정의 원인 · 결과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46)
    46) 설일체유부 등의 비판에 대하여 답변한다. 그들이 훈습의 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과실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논주가 답하기를, 만약 훈습이 없다면, 잡염 · 청정법의 인과(因果)가 모두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훈습이 없기 때문에 곧 종자도 없어야 하고, 만약 종자가 없다면, 원인이 없는 것이 된다. 만약 원인이 없다면, 결과도 역시 없어야 한다고 논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