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1922년)

김명수(1922년 5월 1일[1] ~ 2009년 10월 12일)는 대한민국비전향 장기수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만수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했다.

생애편집

함경남도 함흥부에 있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홀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서 삼팔선 이북 지역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실시하는 토지분배, 복지 정책으로 생활 수준 향상을 겪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다.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남파되었다가, 1962년 8월에 강원도에서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서울 용산구에서 1년 이상 미군 첩보 부대에서 취조받고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64년대전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시작하였고 목포교도소와 대전교도소를 위시한 여러 교도소를 오가면서 복역하였다. 수감 중 전향을 권유받았으나 전향하지 않았다. 김명수는 교도소에서 실시하는 사회 참관이나 성경 연구도 혁명가로서 순결을 잃는다 하여 거부할 만큼 각종 전향 시도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1998년 3월에 출소할 때까지 약 36년간 수감되었다. 출감하고서도 대한민국에 지인이 없어 갱생보호소에 들어갔다가, 대전광역시에서 다른 출소 장기수들과 함께 공동 생활[2] 을 하며 폐품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고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참고자료편집

  • 김만수 외 12인 (2003). 〈떳떳한 삶의 길 (김만수)〉.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 - 비전향 장기수들의 수기 4》. 평양: 평양출판사. 

각주편집

  1. “비전향장기수 김명수에게 생일 여든돐상”. 조선중앙통신. 2002년 5월 2일. 
  2. “`장기수들과의 통일기행' 관심높아”. 한겨레 (연합뉴스 인용). 2000년 7월 13일. 2008년 9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