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택 (1919년)

김우택(1919년 ~ 2010년 9월 13일)은 대한민국비전향 장기수이다.

생애편집

경상북도 예천군 출신이다. 농업 기술자가 되어 일제 강점기 동안 예천군 호명면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일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된 뒤 좌익 운동에 뛰어들었고, 지역에서 농회를 조직해 회장을 맡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조선인민군이 경북 지역을 점령하자, 인민군을 지지하여 1950년 7월에 예천군 호명면에서 인민위원회 서기장에 선출되었다. 인민군이 후퇴할 때 합류하였다가 1952년 1월에 강원도 설악산 자락에서 미국 해병대에게 체포되었다.

당시 김우택은 인민군에 입대했던 상태였으나 비정규군으로 분류되어 포로 교환에서 제외되었고,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간첩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54년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어 약 39년 1개월 동안 복역하고 1991년에 석방되었다.

이때 부인은 이미 사망하고 아들 가족만이 남아 있어, 혼자 부산에 정착하여 생활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의해 비전향 장기수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다. 김우택은 송환 대상자 가운데서도 최장기간 수감자에 속했다.

송환 후 조선민주주의인공화국에서 새로 결혼하고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다. 〈행복의 열쇠〉라는 제목으로 큰 집에서 편안히 살고 있다는 내용의 일기가 일부 공개되기도 하였다.[1]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비전향장기수들의 어제와 오늘 (일기의 일부 소개)”. 조선중앙통신. 2003년 2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