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급행열차 ‘아시즈리’
런던발 콘스탄티노플행 ‘오리엔트 급행’의 포스터
빨간 열차는 일반열차, 파란 열차는 급행 열차이다.

급행열차(急行列車)는 완행(보통) 열차와 달리 일부 역을 통과하여 주요 역에만 정차하고 특급 수송을 행하는 열차를 말한다.

대한민국편집

수도권 전철 1호선, 수도권 전철 4호선, 분당선, 서울 지하철 9호선,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수인선등의 노선에 수도권 전철 급행열차가 있고, 무궁화호, 새마을호와 같이 한국철도공사 내부적으로도 간선 급행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2016년 7월에 6호선 급행열차가 운행할 예정이였으나, 기술적인 문제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일본편집

국철 • JR편집

일반적으로 정차역은 특별급행 열차(특급 열차)보다는 많고, 보통 열차(또는 준급 열차)보다는 적다. 영어 명칭으로는 주로 Express 익스프레스[*]가 사용된다.

JR의 경우 승차하려면 급행권을 필요로 한다. 급행권 이외에도 보통 승차권이나 회수 승차권을 필요로 한다. 일반적으로 정기 승차권은 인정되지 않지만, 일부 열차•구간에 한하여 인정되기도 한다.

덧붙여, JR에서 급행 열차는 보통급행 열차와 특별급행 열차의 총칭이지만, 일반적으로 급행 열차라 함은 전자를 의미하며, 후자는 ‘특급’ 또는 ‘특급 열차’라고 불린다. 그러나 현재, 전자의 급행은 정기 운행되지 않으며, 임시 열차로만 남아있다. 이외에도 예전에는 준급행 열차(준급)도 운행되었으나, 현재는 보통 열차에 합쳐지며 사라졌다.

역사편집

“급행 열차”의 등장편집

일본 최초의 급행 열차는 1894년 10월에 개통한, 산요 철도(현재의 산요 본선)가 고베 ~ 히로시마 간에 운행하던 열차이다. 3왕복 중 1왕복을 주요 역만 정차하게 하여, 두 역을 약 9시간만에 연결하였다. 이전에도 1882년 3월 1일부터 신바시 ~ 요코하마 간에서 운행을 개시한 열차 등, 관보에 게재된 시각표에 “급행”이라고 표기된 열차는 존재하였으나, 그것들은 지금의 쾌속 열차에 가까우며, 장거리 여객의 편리성과 서비스 향상을 본격적으로 의식한 것은 이것이 최초이다. 그 다음 해인 1895년 10월 20일에는 간세쓰 철도의 노선에서도 운행하여, 교토 발착으로 변경되었다. 간세쓰 철도에서는 1896년 9월 1일에 신바시 ~ 고베 간에도 급행 열차를 등장시켰다. 본래는 약 20시간이 소요되던 두 역이 약 17시간만에 이어지게 되었다. 그 후 1899년에는 식당차가, 1900년에는 침대차가 각각 산요 철도의 급행열차에서 일본 최초로 운행을 개시하였다.

그 후, 급행 열차의 편수는 증가하여 ‘최급행’, ‘최대급행’ 등 급행보다 상위의 열차도 등장하였으나, 러일 전쟁을 거치며 삭감 또는 폐지되었다.

러일 전쟁 종결 후에는 “급행열차권규정”이 공포되어, 1906년 4월 16일부터 신바시 ~ 고베 간에서 운행하던 최급행 열차의 이용에, 처음으로 별도의 급행 요금이 필요하게 되었다. 급행 요금을 필요로 하는 열차는 점차 증가하였다. 한편, 최초로 급행 요금을 받게 된 최급행 열차는 이후 격상되어 일본 최초의 특별급행 열차(특급 열차)가 되었다.

급행열차의 황금기편집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 시대에 걸쳐 일본의 많은 간선에서 급행 열차가 설정되었다. 한편, 당시 특급 열차는 도카이도 본선산요 본선의 ‘후지’, ‘사쿠라’, ‘쓰바메’, ‘카모메’의 네 종류 뿐이었으며, 따라서 도호쿠 본선 등 다른 간선에서는 급행열차가 최우등 열차였고, 특급 열차 수준의 급행 열차도 존재하였다. 이후 1934년 12월, 단나 터널의 개통으로 이루어진 다이어그램 개정으로, 아래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7 • 8 열차
(도카이도 본선, 산요 본선, 구레 선) 도쿄 ~ 시모노세키 간에 운행하였다. 종점인 시모노세키 역에서는 부관연락선(시모노세키 ~ 부산)과 연결되어, 조선, 만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경유하여 모스크바, 베를린, 런던 등으로 이어져 국제 연락 운송을 담당하였다. 이후 구레 선 개통 이후에는 구레 선도 경유하여 구레 진수부 및 구레 재적의 함선에 부임 • 출장하는 해군 사관의 발이 되었다. 또한, 일등, 이등, 삼등 각 등의 좌석차와 침대차를 모두 연결하였다. 식당차는 당시 특급 ‘사쿠라’를 포함한 많은 열차가 일식을 취급하던 것과 대비되게 양식을 취급하였다. 또한 낮 시간대에 달리는 구간(교토 ~ 시모노세키)에는 일등 전망차도 연결하였다.
17 • 18 열차
(도카이도 본선) 도쿄 ~ 고베 간에 운행하였다. 고베에서는 만주의 다롄 등으로 가는 항로와도 연계되었다. 일•이등 침대차와 양식 식당차만을 연결하였다. 삼등차는 연결되지 않았으며, 좌석차는 이등차의 좌석차가 1량만 연결되었다. 정부의 요인이나 저명한 사람이 많이 승차하여, 명사 열차(名士列車)라고도 불렸다.
201 • 202 열차
(조반 선, 도호쿠 본선) 우에노 ~ 아오모리 간에 운행하였다. 당시 도호쿠 본선의 열차는 홋카이도, 사할린 연결이라는 사명을 맡았는데, 이 열차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 삼등차 뿐으로 일등차는 없으며, 식당차도 일식 식당차였으나(1934년 이후 일등차 및 양식 식당차의 연결은 도카이도 • 산요 본선 한정으로 변경되었다), 이등 침대차의 일부에는 “특별실”이라고 불리는 일등 침대차와 비슷한 수준의 설비를 갖춘 차량이 연결되었다. 또한 이 개정으로 주행 속도가 대폭 향상되어, 우에노 ~ 아오모리를 12시간 45분, 상행의 경우 12시간 25분만에 주파하였고, 상행 열차의 평균 속도는 60.46 km/h에 달하였다. 1940년 10월, 상행 열차는 소요 시간을 5분 더 단축하였으며, 이 기록은 1958년 10월, 도호쿠 최초의 특급 열차 ‘하쓰카리’(우에노 ~ 아오모리 간 12시간 소요)가 등장하기까지 약 18년동안 깨지지 않았다.
1 • 2 열차
(하코다테 본선, 무로란 본선, 소야 본선) 하코다테 ~ 삿포로왓카나이 간에 운행하였다. 위 201 • 202 열차와 세이칸 연락선으로 연계되었으며, 하행의 경우 오샤만베 역에서 하코다테 본선 경유 삿포로 행과 무로란 본선 경유 왓카나이 행으로 나누어졌다(상행은 오샤만베 역에서 두 열차가 병결하였다). 이 열차에도 특별실이 있었으며, 왓카나이 역에서는 사할린의 오도마리정(지금의 코르사코프)으로의 항로와 연계되었다.

급행 열차는 중일 전쟁에 돌입한 이후에도, 만주나 사할린으로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각지에서 증편이 이루어졌으며, 태평양 전쟁의 전황이 악화한 1943년 2월 경부터 폐지가 이루어졌다.

1944년 4월에 특급 열차가 모두 폐지(동시에 일등차, 침대차, 식당차의 연결은 모두 중지되었다)되었고, 1945년 3월에 일본 전국에서 급행 열차는 도쿄 ~ 시모노세키 간(6월부터 도쿄 ~ 모지 간)의 1왕복만 남게 되었다.

부흥과 특급 열차로의 전환편집

전쟁 후에는 석탄, 차량, 정비 사정이 전쟁 중 이상으로 악화되어, 1947년 1월 ~ 4월에 급행 열차는 계속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같은 해 6월부터 일본 전국에 준급 열차와 함께 증편 • 신설되는 추세로 전환되었다. 전쟁 후에는 소위 “로컬선” 등도 많이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준급 열차는 급행 열차에 병합되기 시작하였고, 1966년 3월에 100 km 이상을 주행하는 본래의 의미로서의 “준급 열차”는 없어졌고, 남은 편들도 1968년 10월에 모두 폐지되었다.

한 때는, 수도권의 주오 선이나 간사이 지구의 도카이도 본선, 산요 본선, 한와 선 등에서 급행 요금이 필요하지 않은 열차로, “급행 열차”가 아니라, 급행 “전차”(일본어: 急行電車、きゅうこうでんしゃ 큐코덴샤[*], 줄여서 급전(일본어: 急電、きゅうでん 큐덴[*])이라고도 하였다)라는 열차가 운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같은 종별의 열차임에도 요금이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혼재하고 있는 것은 여객 안내 등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차나 기동차를 사용한 유료 준급의 신설을 계기로, 1958년 10월에 급행 전차는 쾌속 전차(일본어: 快速電車、かいそくでんしゃ 카이소쿠덴샤[*])로 개칭되었다.

한편, 전쟁 때 매수된 사철인 한와 선에서는 특급 전차, 준급 전차도 존재했지만, 이 때에 특급 전차는 쾌속 전차로, 급행 전차와 준급 전차는 직행 전차(이후의 “구간 쾌속”)로 개칭되었다.

급행 열차의 최전성기인 1960년대에는 많은 급행 열차가 설정되었고, 그 중에는 초장거리인 것, 운행 구간이 특이한 것, 분할과 병결을 반복하는 것 등 여러 열차가 존재하였다.

다카치호(高千穂、たかちほ)
(도카이도 본선, 산요 본선, 닛포 본선) 도쿄 ~ 니시카고시마(지금의 가고시마추오) 간을 운행하였다. 닛포 본선을 경유하여 도쿄에서 니시카고시마까지 1574.2 km를 28시간 15분에 주파하던 초장거리 열차였다. 1965년 10월부터 1980년 10월까지 침대특급 열차(일명 “블루 트레인”)였던 ‘후지’가 같은 구간을 운행하였지만, 급행 열차 중에서는 이 열차가 가장 긴 구간을 운행하였다. 또한, 1968년 10월의 일명 “욘산토” 개정으로 도쿄 역에서 모지 역까지는 가고시마 본선 경유의 기리시마(霧島、きりしま)(후의 ‘사쿠라지마’)와 병결하여 운행하게 되었다. 또한, 이 열차는 당시 도카이도 본선의 유일한 주간 객차 열차였다.
산베(さんべ)
(산인 본선, 미네 선, 야마구치 선, 산요 본선, 가고시마 본선) 요나고 ~ 오고리(지금의 신야마구치)•고쿠라하카타구마모토 간을 운행하였다. 당시에는 주간 2왕복, 야간 1왕복으로 총 3왕복이 설정되어 있었으며, 하행인 산베 2호와 상행인 산베 1호는 운행 경로가 복잡하였다. 하행인 산베 2호의 경우, 요나고 역을 출발하여 마스다 역에서 야마구치 선 경유 오고리 행 열차를 분할하고, 나가토시 역에서 산인 본선 경유와 미네 선 • 산요 본선 경유 열차를 분할하고, 시모노세키 역에서 그 분할한 편성과 다시 병결하는 형태로 운행하였다. 이 열차는 1970년대 말까지 운행하였으며,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의 영향으로 한 때 “재혼 열차”라 불리기도 하였다.
리쿠추(陸中、りくちゅう)
(도호쿠 본선, 가마이시 선, 야마다 선, 하나와 선, 오우 본선) 센다이 ~ 아키타 간을 운행하였다. 당시 센다이 역에서 아키타 역까지 최단 경로인 기타카미 선을 경유하던 급행 ‘기타카미’는 이 구간을 4시간 반에 주파하였는데, 이 열차는 가마이시 선, 야마다 선, 하나와 선을 경유하여 13시간 반에 주파하였다. 또한 분할 • 병결도 복잡하였다.

당시에는 특별급행 열차는 최상위 등급으로 상대적으로 드물고, 급행 열차가 많았지만, 1964년 10월에 신칸센이, 1972년 10월에 엘(L) 특급이 등장하며 특급 열차가 많아졌고, 경제도 성장하며 철도 수송은 포화되고, 열차 운행 속도가 다른 급행형 차량(최고 운전 속도 95 ~ 110 km/h)이 늘어났다. 중장거리 급행 열차는 특급 열차로 격상되고, 근거리나 일부 중거리 열차는 쾌속으로 격하되어갔으며, 열차 속도의 단순화와 우등 열차의 차종 통일에 의한 차량 운용의 합리화, 나아가 급행 열차의 서비스 향상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시책은 항공기, 자가용, 고속버스 등이 보급되던 당시에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특급으로 격상된 열차들은 차내 설비가 개선되고, 소요 시간은 단축되었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국철의 수입 증가를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국철의 운임은 일본 물가 대비 다소 낮게 책정되어 있었으며, 국철 운임의 인상은 일본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아 주로 운임보다는 요금의 인상이 많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이른바 “신성능 전차”(카르단 구동방식이나 전자직통제동, 전기 지령식 제동을 채택한 재래선 전동차)로의 교체로, 임시 열차(‘하리마’ 등)나 대도시권(수도권가이지 등)의 경우 소정의 차량이 갖추어지지 않아 일반형 차량으로 운행되는 우등 열차도 있었다. 이러한 열차는 일부 철도 동호인에게 “손색 급행”(遜色急行、そんしょくきゅうこう)이라고 야유당하기도 하였다. 한편, 서일본 지역을 중심으로 급행형 차량에 냉방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진행되어, 일등차는 1968년까지, 간토 지방 이서의 보통칸(구 이등차)도 1970년대 후반까지는 완료하였으나, 도호쿠 지방 이북에서는 설치가 늦게 진행되었다.[주 1]

급행 전성기 때와 열차 편성이 유사한 차량으로, 특별 이등차와 이등차(후의 일등차 • 그린차), 식당차(내지는 뷔페), 화물차가 갖추어진 열차도 있었으며, 다이어그램 작성 시에 속도를 포함하여 우등 차량을 갖춘 열차를 “우등 열차”라고 부르게 되었다.

여전히 존치된 급행 열차는 계속해서 특급 열차와 쾌속 • 보통 열차 사이의 어중간한 존재로 전락하여 이용객이 감소해 갔다.

쇠퇴와 소멸편집

1980년대 이후에는 신칸센 노선은 확대되고, 재래선 특급 열차에서 사용되던 잉여 특급형 차량이 생겨났으며, 급행 열차에서 사용되던 차량은 노후화가 진행되었다. 그로 인해 급행 열차는 특급 열차로 격상되거나, 쾌속 • 보통 열차로 격하되거나, 폐지되거나 크게 감편되었다.

1982년 11월 15일의 국철 다이어그램 개정을 시작으로, JR 발족 후에도 그 흐름은 멈추지 않았고, 거의 매년마다 급행 열차가 폐지되어 갔다. 시코쿠여객철도(JR 시코쿠)는 1999년 3월, 큐슈여객철도(JR큐슈)는 2004년 3월, 도카이여객철도(JR 도카이)는 2008년 3월, 서일본여객철도(JR 서일본)는 2012년 3월의 개정을 끝으로 각각의 관내에서 정기 급행 열차가 소멸되었다.

주간 급행 열차는 2009년 3월 개정으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쓰야마’가 폐지되며 모두 폐지되었다. 그 결과, 정기 급행 열차는 야간의 ‘기타구니’와 ‘하마나스’만 남게 되었고, 이 중 ‘기타구니’는 2012년 3월에 임시 열차로 격하된 후, 이듬해 1월에 폐지되었다. ‘하마나스’도 2016년 3월 26일의 홋카이도 신칸센 개업에 따라 폐지되었다.[1] 이것으로 JR의 정기 급행 열차는 소멸되었다.

그린차의 연결은 주간 정기 급행 열차의 경우, 절반이 그린차인 키로하 28형을 연결한 ‘쓰야마’가 2003년 9월 30일에 차량이 변경되며 키로하 28형이 편성에서 제외되면서 사라졌다. 그린차를 연결하는 정기 급행 열차는 2012년 3월의 개정으로 ‘기타구니’가 임시 열차로 격하되면서 사라졌다. 또한, 임시 열차화 이후의 ‘기타구니’가 폐지된 2013년 1월 이후에는 그린차를 연결한 열차는 사용 차량의 일부에만 설치되거나, 이른바 ‘조이풀 트레인’에 한하게 되었다.

한편, 1998년에 폐지된 주유권 중, 균일 주유 승차권(와이드 승차권 • 미니 승차권)이 있으면 출발 역부터 목적 주유 구간까지의 경로를 포함한 급행 열차의 자유석 이용이 가능했었다.

차량편집

 
급행형 차량(475계)

급행 열차는 153계 • 165계 직류 전동차나 455계 • 475계 교직류 전동차, 키하 28계 • 58계 기동차, 12계 객차 등의 급행형 차량이나 구형 객차로 운행되었다.

열차에 따라서는 485계 • 583계 등의 전동차나 20계 • 14계 객차, 키하 181계 기동차 등의 특급형 차량이나 113계401 • 403 / 421 • 423계 전동차나 키하 40계 기동차 등의 일반형 차량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후자의 경우 일반적인 급행형 차량보다 서비스 시설이 좋지 않아 “손색 급행”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JR 민영화 이후, 급행 전용 차량은 개발되지 않았다. 키하 100계 0번대는 급행 수준의 설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현재 정기 열차 중에서는 쾌속 열차에만 운용되고 있다. 민영화 이후의 정기 급행 열차는 ‘가스가’(2006년 3월 폐지)가 키하 75형을 사용했던 것 이외에는, 모두 국철 시절의 차량을 개수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술한 급행 ‘하마나스’는 특급형 차량을 사용하였다.

사철편집

사철의 경우 현재도 급행 열차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도쿄 지하철에서 급행이라는 계통명을 사용하는 노선으로는 도에이 신주쿠 선이 있다. 난카이 전기철도의 공항급행, 라피트가 있다.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키하 58계를 중심으로 냉방 준비 공사차가 많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도호쿠 이북의 경우 더운 기간이 짧아 필요성이 적었다.

출처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