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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검사 출신의 대한민국의 정치인

홍준표(洪準杓, 1954년 12월 5일 ~ )는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4년 검사로 부임하여 재직 동안 각종 권력형 비리 사건과 강력 범죄 사건을 맡았다. 1995년 검사를 사직한 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여 미국에서 지내다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제16·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8대 국회 의정 활동 중 한나라당 제12대 당대표를 역임하였다.

홍준표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 1954년 12월 5일(1954-12-05) (63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
거주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학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학사
종교 개신교 [1]
본관 남양
배우자 이순삼
자녀 슬하 2남
경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제15·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정책본부 본부장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한태권도협회 회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제19대 대선 후보
자유한국당 당대표
군복무 육군일병 소집해제 (방위)

의원 선수 4선 의원
의원 대수 15·16·17·18
정당 자유한국당
지역구 서울 동대문구 을
당내 직책 당대표
웹사이트 홍준표 공식 홈페이지
홍준표
대한민국경상남도지사
임기 2012년 12월 20일 ~ 2017년 4월 9일
대통령 (공석)
총리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전임 김두관
후임 류순현 (권한대행)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54년 12월 5일(1954-12-05) (63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
정당 자유한국당
배우자 이순삼
자녀 슬하 2남
학력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학사
종교 개신교
웹사이트 홍준표 공식 홈페이지

이후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민선 5·6기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를 지냈다. 2017년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으나, 문재인이 당선되었으며, 안철수 등과 경쟁하였으나 2위로 낙선하였다. 19대 대선 후 같은 해 자유한국당 당대표가 되었다.

목차

학력편집

생애 초기편집

1954년 12월 5일홍판표(洪判杓)라는 이름으로[2]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합천군으로 이사를 가서 합천국민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다시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이사하여 영남중학교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영남고등학교 1학년 때 잠시 태권도를 하여 2학년 때 태권도 1단에 합격하기도 했다. 2012년 12월에 경남지사 보궐선거 유세에서 홍준표는 합천 군가를 부르면서, 자신이 창녕에서 태어나고 합천에서 자라서 2곳 모두 고향이지만 창녕 군가는 잘 모른다고 전했다. 합천 군가는 초등학교 다닐 때 4km를 걸어서 다녔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그 긴 길을 군가를 부르면서 다녔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3]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진학하였다.[4] 대학 시절부터 사법시험에 몇 차례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한때 학생운동에 전념하던 그는 사법시험에서 떨어진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있던 울산에 내려갔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에 앉아 있는 일당 800원짜리 현대조선소의 경비원이었던 아버지를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불공평한 세상을 바꿀 결심을 했다고 한다.[4] 197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에도 몇 차례 사법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홍준표는 군에 입대했지만 체중 미달로 인해 14개월간 단기사병으로 복무하였다.[5]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시보로 임관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검사 시절편집

1984년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시보로 부임하였다. 이후 검사로 임관되고 부산지방검찰청, 광주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재직하였다.부임 직후 선배 검사였던 이주영의 권고로 '판표(判杓)'에서 '세인의 표상'이라는 뜻을 지닌 '준표(準杓)'로 이름을 개명하였다.[6][7] 검사 부임 초기 그는 1년간 2000건의 사건을 해결하였다.

5공 비리 수사편집

이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87년 6월 10일 부산지검 울산지청 검사를 거쳐 1988년 8월 26일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에 재직 중이던 1988년 11월 23일에는 전두환의 사돈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가 나자 청와대민정비서실 대통령친인척관리담당관으로 재직 중 그 회사 소유 부동산을 처분하면서 토지매매대금의 일부를 횡령한 서정희(徐政熙, 당시 치안본부 정보2과 분실장)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횡령)등 혐의로 구속기소하였다. 이어 전두환의 외조카인 기업인 김영도가 다른 기업인들과 짜고 구속된 모 기업인에게 석방시킨다는 조건으로 뇌물수수를 받은 사실도 적발하여 구속 기소했다.

폭력 조직 수사편집

1989년 5월 10일까지 전두환의 외조카와 사돈, 측근 관련 사건을 해결하고,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1부로 발령받았다. 1991년 2월 28일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검사로 부임하였다. 이때 각지의 술집과 유흥가에 조폭들이 연관된 것을 수사하여 적발한 홍준표는 이후 술집에 가지도 않고, 술도 끊게 되었다. 2013년 2월초 언론들과의 인텨뷰에서 그는 “술을 안 하는 게 아니고, 91년 3월부터 여자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 그 때 강력부 검사로 광주에 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광주엔 룸살롱을 거의 건달들이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검사가 그런 데 가서 술 마시고 무절제한 행동을 하면 건달들에게 약점을 잡히기 때문에 그 때부터 소위 호스테스가 나오는 술집은 안 갑니다.”라고 술을 줄이게 된 사정을 밝히기도 했다.

1991년 5월에는 경찰관도 손대지 못하던 광주의 깡패가 경찰관을 구타하자 이들을 적발하여 처리했고, 7월에는 건설 입찰 대가로 뇌물을 준 건설업체와 연고지역 업체끼리 담합하던 것을 적발했다. 1991년 12월에는 광주지역의 국제 PJ파와 일본 야쿠자가 연대하는 것을 포착, 12월 4일 현장을 덮쳐 이들을 일망타진하였다. 1992년 8월 4일에는 검찰관이 되어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부임하였다.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로 부임한 뒤에는 파키스탄인 폭력조직 주비파 두목 임란 사자드 외 13명을 적발, 체포하여 그해 9월 22일 임란 사자드 외 3명에게 사형과 나머지 10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내에서 추방되었지만 다시 부산항을 거쳐 잠입, 대한민국으로 이주한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등을 상대로 폭력, 갈취를 하거나 다른 파키스탄인 조직 폭력배들과 도심 난투극을 벌였던 파키스탄인들이다.

피고인들은 2년 전 일본에서 범죄를 저질러 추방된 뒤 대한민국 국내로 들어와 자국 출신 취업자들을 상대로 강도 행각을 일삼는가 하면 경쟁하는 상대방 깡패 조직원들을 잔인하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는 시종일관 거짓 진술로 일관하는 등 개전의 뜻이 조금도 없어보이므로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 —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검사 홍준표의 1992년 9월 22일자 논고문

당시 대한민국에 들어와 활동하던 또 다른 파키스탄인 조직폭력배인 비키파의 사자르 아크바르 알리(당시 19세) 등 10여명에게는 징역 15년형을 구형하였다. 10월 21일에는 보험금 7억원을 노리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지하 나이트클럽에 방화를 한 폭력조직 목포파 부두목 유희호(兪熺昊)와 행동대장 홍동표(洪動杓) 외 6명을 방화 혐의로 추적하여 체포, 구속하였다. 1993년 5월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주임검사로 보직되었다.

1992년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강력계 재직 당시 그는 국제 PJ파 수사를 총지휘하였다. 이때 그는 지역구 국회의원들 고위 공직자, 검찰 인사, 경찰 등으로부터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국제 PJ파 일당 28명을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했다. 그러자 광주 지역 국회의원 3~4명을 비롯, 당시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왜 죄없는 청년을 건드리느냐 등 갖가지 수사중단 압력을 받았다.[8]

또, 홍준표가 수사하던 국제 PJ파 두목 여운환의 삐삐가 울려서 그 번호로 전화하자 경찰청 고위 간부가 연결되었다. 경찰 고위간부는 그 사람이 뭘 잘못했느냐며 그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다.[8] 수사 과정에서 홍준표는 또 모함에 시달림당하기도 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력인사와 지역 언론인 등이 다각적으로 로비를 해오는 한편 각종 음해성 제보를 상부에 보내 수사에 몹시 애를 먹었다.[8]"한다. 이러한 로비활동에 별 진전이 없지 일각에서는 홍준표에게 매일 밤 전화를 걸어 "석궁으로 소리소문없이 쏴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8] 협박전화는 그의 집과 사무실을 가리지 않고 걸려왔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국제 PJ파 집단을 전원 처리하였다.

슬롯머신 사건 수사편집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중이던 1993년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여 "6공의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등 권력 실세들을 구속 기소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6] 그가 수사한 슬롯머신 사건이 회자되어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작품의 소재가 되어 모래시계 검사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9] 당시 성역 없이 검찰법무부의 수뇌부와 선배 검사 등을 줄줄이 수사하는 몇 안되는 소신 검사의 한 사람이었다. 홍준표와 함께 은진수 검사 등을 가리켜 '모래시계 검사[10]'로 유명하였다.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는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 천기호(千基鎬) 경찰청 치안감, 그리고 대전지방검찰청의 모 검사 등의 비리, 뇌물수수혐의를 입증하고, 이들을 모두 구속 기소하여 화제가 되었다. 당시 그에게 협박과 압력이 가해졌으나 그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처리하였다.

1993년 검사였던 그는,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로 상사인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 기소했다. 이 전 의원은 뇌물수수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 후 1995년 출간한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에 이 내용을 그대로 적었고, 2003년 홈페이지 ‘저서 모음’ 게시판에 옮겨 실었다. 이에 이건개 전 의원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홍 원내대표를 상대로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홍준표 측이 승소했다.[11]

그러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13부(조용구 부장판사)는 양측의 조정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2008년 10월 23일 밝혔다. 홍준표 측이 이건개가 슬롯머신 업계의 비호세력이었다는 취지의 내용 등 게시글의 일부를 삭제하고, 향후 같은 내용을 게시할 때 이건개의 이름은 이니셜로 처리하기로 하는 조건이었다.[11]

1993년 5월에는 슬롯머신 사건과 동시에 정덕진빠칭코 사건의 수사를 전담하기도 했다. 5월 5일부터는 빠칭코의 대부인 정덕진을 구속수사하고 전담을 맡았다.

독버섯 조직폭력배가 자라나는 토양(자본주의) 위에서는 비닐하우스(비호세력)가 항상 보호막을 치고 있습니다.[12]

홍준표는 이들을 뒷골목 깡패가 아닌 '초보적 마피아[12]'로 규정하고 치밀하게 수사하였다. 그는 1988년부터 5년간 정덕진을 추적해왔다.[12] 그러나 1993년 수사를 중단했다가 그해 5월 다시 수사를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사건을 다시 맡으면서 고위층과 과거의 상관인 변호사들로부터 "다칠 수 있다"는 질책과 함께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전화에 시달렸다.[12] 한편 그는 정덕진을 구속 수사하여 빠칭코 관련자들을 색출, 적발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사정검사의 대부 피에르토 검사의 사정활동 기사를 자신의 사무실에 항상 펼쳐두었다.[12] 그는 성역없는 수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과 법무부에서는 한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그는 문민정부 초반, 안기부장 법률특보로 재직하며 군사정권 인사인 박철언의 슬롯머신, 빠찡꼬 보고서인 LP보고서의 작성자이기도 했다.

연쇄 살인범 수사편집

1994년 9월 심야에 여성들을 택시에 태운 후 납치해 강간 및 살해를 자행한 온보현 부녀자 연쇄납치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서 현장검증 등 수사를 진두 지휘하였다.[13]

안기부 활동편집

1994년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로 부임하였다. 1994년 9월 안기부 국제범죄수사지도관이 되었다. 이후 홍준표는 1994년 11월부터 1995년 9월까지 안기부로 파견을 나간다.[14] 당시 안기부의 운영차장 겸 기조실장 김기섭이 그의 영남고등학교의 선배라 하여 세간에서는 김기섭이 그를 데려간 것이라는 오해가 나돌기도 했다. 11월 안기부장 특별보좌관이 되었다.

사직 이후편집

1995년 9월 21일 법무부 특수법령과로 다시 복귀하였고, 10월 2일 사직서를 제출, 10월 4일 수리되었다. 바로 변호사를 개업하고 방송 출연 등에 섭외되었다.

박철언이나 이건개 등을 성역없이 수사한 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SBS에서 1995년 1월부터 2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의 '강우석 검사'의 '모델 검사'로 알려지고 이 드라마가 '귀가시계'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끌자 홍준표도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1995년 10월 정계 진출을 시사하며 검사직을 그만둔 후에 변호사가 되었고, 대통령이자 신한국당 총재였던 제14대 대통령 김영삼의 권유를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15][16][17] 1996년 신한국당에 입당하여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서울 송파구갑)에 당선됐다.[17]

이후 김영삼에 의해 새로 발탁된 인사들과 함께 신한국당 소장파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한때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으나, 2001년 서울 동대문구 을 선거구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정치권에 복귀했으며, 2004년 같은 선거구에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됐다.

정치 활동편집

정계 입문 초기편집

홍준표는 1996년 15대 총선에서 송파 갑 선거구에서 당선돼 대한민국 국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총선 당시 동협의회 총무 오 아무개 씨에게 2천 4백만 원의 선거운동비를 주고 허위 지출보고서를 제출한 혐의로 기소되어 당선 무효되어 의원직을 상실했다.[17][18] 한때 선거비용 초과 의혹을 받았으나 곧 무마되었다. 1996년 9월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노동 가능 최저 연령을 만 15세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켰다. 1997년에는 한보 특위 담당 의원의 한 사람에 선임되었지만 일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타 의원들이 수사에 의욕이 없자 그해 3월 11일 한보특위 담당 의원직을 사퇴해버렸다.

그는 15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15대 국회 후반기에는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 국회 윤리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국회 제도개선특별위원회 위원 등을 겸했다. 그러나 1999년 8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만다.

1999년 1월부터 그해 10월까지 미국 워싱턴인터내셔널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2000년 한나라당이 출범한 뒤 한나라당 서울 동대문을지구당을 맡아보았다. 2001년 김영구 의원의 사퇴로 치러진 10.25 재선거 때 동대문 을구 선거구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어 16대 의원으로 대한민국 국회에 복귀했다. 이어 한나라당 원내 부총무로 선출되었다. 16대 국회에서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을 맡아보았다. 당무로는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과 한나라당 정책본부 본부장, 한나라당 동대문을지구당 당협위원회 위원장과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 당 공천심사위원회 심사위원 등을 맡아보았다.

17대 국회편집

2006년 한나라당서울특별시장 예비 경선에 나갔으나 오세훈에게 밀려 석패하였다.[4] 2006년 17대 국회 초반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또한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서울시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보기도 했고, 제17대 한, 말레이시아 의원친선협회 회장에도 위촉되었다. 2006년 6월부터는 2008년 5월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아보았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고 2006년 17대 대한민국 국회 후반기 상임위 위원장을 교체할 때 홍준표는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에 임명됐다.[19] 2007년 7월 전대에서 당대표에 출마했지만 친이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안상수에게 462표 차로 패했다.[4]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도 하여, ‘반값아파트 정책’을 내놓았으나 4위로 탈락했다.

당시 기자들이 "이명박 대선 후보가 김경준씨를 만난 지 어떻게 한달 만에 회사 설립을 하였느냐"고 추궁하자, "식사 했어요?"라는 말로 수차례 답변을 회피하여 네티즌의 반발을 산 바 있다.[20] 2007년 한나라당 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7대 국회 당시 '반값 아파트'(토지임대부 주택정책) 법안을 발의했고, 이중국적 보유자의 병역 회피를 금지한 '국적법'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이끌었다.[4]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완화를 추진할 때 홀로 반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등록금 차등제를 주장[4]'하기도 하여 화제가 되었다.

2008년 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민병두를 누르고 37618표, 전체의 56.8% 득표로 당선됐으며[21][22] 5월 20일 개회한 18대 국회의 한나라당 원내대표에 피선됐다. 18대 국회 초반에는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이 되고, 곧 운영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2월 18일 대한민국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공동정책토론회에서 ‘카지노 산업이 한국 사회에서 음성적인 도박과 결부돼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안고 악영향이 강조됐지만 최근 카지노 산업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에 하나이며, 많은 선진국들이 카지노 산업을 체계적이고 건전하게 육성해 자국의 국익증진과 관광산업 발전의 첨병으로 활용하는 추세’라고 카지노산업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23]

18대 국회 후반기에는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국회 기후변화, 에너지대책 연구회 대표의원을 맡아보았다. 또, 2008년에는 제18대 국회 한, 호주 의원친선협회 회장에도 선출되었다. 2008년 6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이 되었다. 그는 태권도협회 회장 중 국회의원으로 임명된 인물 중 최초의 유단자였다.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당선편집

2010년 7월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한 사람에 선발되고, 동시에 한나라당 서민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겸하였다. 2010년 18대 국회 하반기 때는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홍준표는 2011년 7월 4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4만 1666표의 지지를 얻어 제14대 한나라당 대표에 당선됐다. 그는 당선 후 소감으로 아래와 같이 밝혔다.

"계파없이 홀로 뛴 선거에서 저 홍준표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대의원 동지들에게 감사드린다", "현대조선소에서 일당 800원을 받던 경비원의 아들, 고리채 사채로 머리채를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그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이 보여주셨다"며 "그 뜻을 받아 한나라당을 이끌고 가겠다", "이제 저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와서, 그러나 변방의 그 치열했던 정신을 잊지 않고 총선과 대선에서 압승하도록 하겠다"[24]

그는 자신의 캠프에 있던 김정권의 한나라당 사무총장 임명을 주장하여, 한나라당 최고위원회는 유승민, 원희룡 최고위원이 퇴장한 채 의결하여 그의 뜻을 관철시켰다.[25] 한편 2011년 당시 유행하던 시사 프로그램 나꼼수에서 그에게 섭외를 하였다. 그는 나꼼수의 섭외에 응하더니 '아마 이것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일과성일 것이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4월 11일 19대 총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통합당 민병두 후보에게 크게 뒤지는 것으로 발표되자마자 트위터를 통하여 정계 은퇴를 선언한것으로 알려졌으나 보도자료를 통하여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한다는것은 검사시절과 15,16,17,18대 국회의원으로서 보낸 공직생활을 마감한다는 의미로 해명하여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한 이후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12년 11월 27일 대선 후보 출마로 사퇴한 김두관 경상남도지사의 후임 보궐선거에 새누리당으로 출마, 12월 19일 선거에서 119만 1904표(62.91%)를 얻어 70만 2689표(37.08%)를 얻은 범야권 단일후보 권영길을 48만 9,215표의 표차로 누르고 경상남도지사로 당선되었다.[26] 바로 12월 20일 취임하였다.

존경하는 경남도민 여러분! 저의 진심을 받아주시고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거리에서, 광장에서 저를 격려해 주시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던 마음,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당당한 경남시대에 대한 열망이자 또한 피폐해진 도정을 바로 세워 달라는 엄중한 명령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노력과 결과로써 보여 드리겠습니다.

서민 도지사, 깨끗한 도지사, 힘 있는 도지사, 그리고 정의로운 도지사가 되겠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누구를 지지했던지 간에 경남의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는 한 치의 차이도 없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모두 담아 앞으로의 길에 이정표로 삼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피폐한 도정을 바로 세우고 당당한 경남시대를 열겠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좋은 도지사가 되겠습니다.[27]
 
— 경남도지사 취임사

2013년 5월 29일 오전, 경남도는 “적자 누적과 기득권만 유지하는 노조원들의 모습에서 진주의료원 회생 가능성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이유로 진주의료원 폐업을 공식 선언하였다. 진주의료원 폐업은 공공의료(복지)냐 재정확충(이윤)이냐하는 문제와도 연관되고 있으며 이에 관해 민주당은 29일 최고위원회 회의를 통해 “공공의료 확대를 공약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국민에게 준 선물이 진주의료원 폐업인가"하고 비판했다. 이로인해 경남도 전역에서는 홍준표 지사를 소환(퇴진)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주민소환운동이 시작되었으며, 국회 국정조사도 결정되면서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불씨로 남아있다.

이는 공공의료 지원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자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불리고 있는 정당의 통합주체의 하나였던 열린우리당 소속의원들의 발의로 이루어진 법조항에 대한 중도보수세력이 가지는 잠재적 불안요소인 국가재정의 파탄을 막기위해 정치적인 쇼맨쉽을 발휘했다고 보는 의견도 존재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편집

홍준표는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승리하여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였다. 초반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인해 여당이 큰 타격을 입은 상태라 지지율이 한 자리수 정도로 낮았으나, 토론회 등을 거치며 대선 기간 종반에 이르러 지지율이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24.03%의 득표를 얻어 더불어민주당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주요 공약편집

 
구조되어 홍준표의 신촌 대선 유세에 동참한 사법고시 폐지 반대 시위자 (2017년 5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무기 위협으로부터 강력한 대비 태세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의 전술핵 도입, 주한 미군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 킬 체인 보강, 원자력 추진 잠수함 전력화를 주요 안보 공약으로 내세웠다.[28] 또한 일부 정규직 노조를 노동 기득권을 가진 강성 귀족 노조로 규정하여, 이들에 대한 제재를 통해 비정규직 처우와 임금을 개선하겠다고 공약하였다.

사법고시 부활을 공약하였다. 2017년 5월 5일 한 사법고시생이 사법고시 폐지에 반대하면서 양화대교 아치 꼭대기에서 농성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홍준표가 집권 시 사법고시 부활을 약속하며 시위자를 설득하여 구조되도록 하였다.[29] 이 시위자는 이후 홍준표의 대선 유세에 동참하기도 하였다.[29]

의정 활동편집

  • 1996년 5월 30일 ~ 1999년 3월 : 제15대 국회의원 (서울 송파구 갑) (당선 무효)
  • 2001년 10월 26일 ~ 2004년 5월 29일 : 제16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재선거)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동대문구 을)

논란편집

학교급식 예산지원 중단편집

경상남도교육청의 초, 중, 고등학생의 학교 무상 급식 사업에 대한 경상남도의 예산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하여 논란이 발생했다. 3월 19일 미국으로 출장을 가기 직전 홍준표 지사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회동을 가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는 도덕적 잣대만 내놓을 뿐 무상 급식 폐단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아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3월 19일 목요일 홍준표가 출국한 직후에 새누리당이 압도적 다수당인 경상남도의회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 지원 사업으로 전용하는 조례가 통과되었다.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단체에서는 홍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 운동에 들어갔다.[30] 이 운동 또한 국고의 무분별한 지출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발언편집

2009년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처벌 수위를 놓고 자유선진당 대표 이회창이 "실정법에 위반되면 처벌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의 유물이며, 사회적 정의에 부합여부를 가려서 처벌을 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 두 가지 허위 사실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처벌하는 건 실질적 법치주의에 반한다"며 이명박정부의 미네르바 처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했다.[9] 이 총재의 발언 이후, 홍준표는 1월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느 야당 총재를 지칭하며 박 씨 사건은 형식적 또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민의 기본권엔 내재적인 한계가 있으며, 정부 비판이 잘못이 아니라 거짓말로 우리가 불가피하게 쓰지 않아도 될 20억 달러를 환율 안정을 위해 썼다는 데 있다”며 반박했다. 이어, “내재적인 한계를 넘어선 행동을 했기 때문에 책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9]

촛불집회 비판편집

홍준표는 2008년 미국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정부 시책에 저항하는 좌파 세력의 촛불은 5년 내내 계속될 수도 있다”, “국가정보원은 월급 받고 뭐하는 집단인지 모르겠다”며 정부 조직의 촛불시위에 대한 조사에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다.[31]

도덕성 논란편집

홍준표는 검사시절인 1994년 11월 부터 1995년 9월까지 안기부로 파견되어 근무할 때 월정직책금 385만원이 서울지검과 안기부로부터 이중지급되었으나 자진신고하여 반납하지 않고 착복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국가로부터 반환할 것을 요구받고도 버티다가 끝내 부당이익금반환청구소송을 당했고 1심 항소심 모두 홍준표가 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의 경제 발언편집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3년 5월 당시 홍준표는 "야당은 경제 잘 되게 하는데 신경 쓸 필요 없다. 경제가 나빠야 여당 표가 떨어지고 야당이 잘 된다"라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은 "과연 그가 대한민국 국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비판했다.[32]

BBK 김경준 기획 입국설 조작 논란편집

2008년 대선 당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었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2007년 12월 13일 `BBK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수감된 김경준씨를 둘러싼 범여권의 '기획입국설'과 관련, "(기획입국을 입증할 수 있는) 편지와 각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33] 그러나 2011년 9월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신경화씨의 동생인 재미교포 신명씨는 "형이 김경준씨한테 보낸 것으로 세상에 알려진 편지는 형이 쓴 게 아니라 내가 작성했다"고 밝혔다. 신씨는 "당시 형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쓰도록 강요한 세력이 있지만 지금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명씨는 이어 '편지를 쓰도록 강요한 세력'은 이명박 대통령의 가족이라고 추가 폭로했다. 10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신명씨는 "(편지 조작을 제안한 것은) MB(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 가족이다, 직접 내가 본 적은 없지만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중간에 두 사람이 더 개입했다"고 밝혔다.그러나 2011년 이귀남 법무부장관및 검찰관계자는 이와 관련하여 추가 수사할 생각은 없다고 하였다.[34] 또한 홍준표 의원은 “오래전 일이라 편지 입수경위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당시 대선판을 뒤흔들던 ‘BBK 의혹이 허위’라며, 각종 문건을 제시하며 총공세를 퍼부어놓고 지금와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맹비난했다.[35]

식사 하셨어요의 "식사준표"편집

2008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귀국시점'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클린정치위원회 소속 고승덕 변호사는 "이명박 후보의 귀국시기를 증명할 중대한 자료가 있다"면서 김경준 씨와 이 후보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와 자필 메모 등을 공개했다.고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이 후보와 김경준은 (BBK 설립 이후에는) 2000년에 만났다"고 주장하다가 "그럼 만난 지 불과 한두 달 만에 회사(LKe뱅크)를 설립했다는 말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사실 이건 오늘 '양념'으로 가져 온 것이고…"라며 피해 갔다. 홍준표 의원도 당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식사했어요?"라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이 일로 고승덕 변호사와 홍준표 의원은 각각 '양념승덕', '식사준표'라는 별명으로 회자되었다.[36]

18대 국회 개원 미루기 논란편집

2008년 6월 19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으로부터, 6월 20일에는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시민단체로부터 대한민국 18대 국회의 개원을 미루는 여야 국회의원 중 고위당직자와 5선 이상 등 17명 등을 대상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당 세비 수령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때 홍준표도 함께 피소됐다.[37][38] 이 소송에 대해 2009년 8월에 대한민국 국회 늑장 개원에 대한 배상책임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39]

한편, 같은 해 8월에 홍준표는 “원구성 때까지 의원 세비 지급 금지”를 주장했다.[40]

한편, 뉴라이트 전국연합은 신자유주의의 추구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보수편향의 전국단체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상적인 관점이다. 이사건의 시초는 그들 자신과 노선을 달리하는 홍준표 의원을 비롯한 중도 우파세력을 기망하려는 모략극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김해 노 전 대통령 사저에 대한 아방궁 발언편집

국회 국정감사 점검회의(2008년 10월 14일)에서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사저 뒷산을) 웰빙숲 조성은 쌀 직불금 파동에 버금가는 혈세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 앞에는 주차할 데도 없다. 노 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서 사는 사람은 없다"(매일경제, 08년 10월 14일)라고 발언 하였다.이후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이 해당 사저를 일반에게 공개하겠다고 하자 과거의 그의 발언이 문제되어 이에 대한 해명을 트위터에 "아방궁이라고 한 이유는 그 집 주변에 환경정비 비용으로 천 억 이상 국비가 투입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방궁이라고 했습니다. 확인해 보시지요. 그 보고가 잘못되었다면 사과하겠습니다."라고 올렸으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청와대 전 비서관)은 "전혀 사실 무근입니다. 사저 부지는 총 1000여 평으로, 부지 내에서 발생한 모든 비용은 사저 공사비에 전부 포함돼 있습니다."라며 발언의 사과를 촉구 하였다.[41] 하지만 그는 자신의 '봉하마을 아방궁' 발언에 대해 "아직까지는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며 봉하재단 측의 사과 요구에 대해서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42]

눈썹 문신 논란편집

2005년 4월 19일자 《뉴스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홍준표는 “하긴 뭐 노무현 대통령도 내가 보기엔 ‘깜’이 아니라고 생각했어도 대통령이 됩디다만…그런데 노대통령은 쌍꺼풀 수술도 하고, 참…”이라고 노 전 대통령의 상안검 수술을 비판했으나, 2011년 9월 19일 최고위원회의 사진에서 진하게 눈썹을 문신한 그의 모습이 확인되어 논란이 되었다.[43]

LH공사 4급 친인척 특혜 채용 논란편집

토지주택공사(LH)는 110조 원의 부채로 4년간 직원 783명을 자르고 신규 채용을 전면 중단한 상황에서, 홍준표 처조카만 정규직 채용해 특혜 채용됐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처조카는 2008년 2월 주택공사의 촉탁직으로 채용된 후에 2009년 4월 부서를 옮겨 20여 일 만에 5급 정규직으로 채용됐다가 다시 1년 7개월 만인 지난해 12월에 4급 대리로 승진되었다. 이에 대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모르는 일, 다음에 얘기하겠다”고 했으며, LH 쪽은 “특혜가 아니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44][45]

25.7%에 대한 '사실상' 발언편집

2011년 8월 24일, ‘25.7%’의 투표율을 보인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종료 직후 홍준표 대표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투표율과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 안에 대한 여론조사치를 종합해 보면 이 주민투표는 사실상 오 시장이 승리했다고 본다”라고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트위터에 “한나라당, 자기들이 ‘사실상 승리’했다고 자위하는 중. 홍준표 대표께 휴지 좀 갖다 드리세요. 이거야 말로 정치적 공연음란죄…진중권도 싱크로율로 보면 ‘사실상’ 장동건”이라고 비판했다. 시골의사 박경철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25% 투표율이 ‘사실상’ 승리라면 파리도 ‘사실상’ 새라고 봐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46]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병역 의혹 제기편집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가 법률상 무효인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갔다고 주장한 1969년은 박 후보가 만 13세, 그의 형이 만 17세 때로, 형이 병역에 편입되기 한 해 전”이라며 “형이 만 18세가 넘으면 병역에 편입돼 한 사람을 양손자로 보내도 병역혜택을 못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형제는 6개월 방위처분을 받았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병역면탈을 위해 호적 공무원과 법률상 무효인 입양을 공모한 의혹이 있다”면서 “법률상 허용되지 않은 작은할아버지와의 양손자 관계를 만들기 위해 호적공무원과 공모했다면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47]

이에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본부의 우상호 대변인은 “1941년 박 후보의 할아버지에 대한 일제 징용 영장이 집으로 날아왔다. 당시 박 후보의 할아버지는 장남이어서 동생인 작은할아버지가 사할린에 대신 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박 후보의 작은할아버지 생사가 확인되지 않자 박 후보가 만 13세이던 1969년 6월 박 후보의 아버지와 의논해 차남인 박 후보를 작은할아버지의 양손으로 입적시켰다. 이후 박 후보는 당시 부선망 독자(아버지를 일찍 여읜 외아들) 규정에 따라 6개월 보충역 판정을 받았고, 1977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보충역으로 병역을 마쳤다. 행정착오로 2개월 더 복무했다”고 답변하였다.(그러나, 행불자의 동의 없이 상식적으로, 법리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양손자로 입적된건 사실이다).[48]

"이대 계집애" 발언 논란편집

2011년 10월 31일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한 타운미팅에서 홍준표는 자신의 과거‘소개팅’사연을 소개하면서 “이대(이화여대) 계집애들 싫어한다”,“꼴같잖은 게(같은 당 소장파 의원) 대들어 패버리고 싶다” 등의 말을 해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49]

주민투표 거부 논란편집

홍준표 지사 체제의 경상남도청에서 홍준표 지사의 복지축소정책 (진주의료원 폐쇄, 경남 무상급식 폐지)에 대한 주민투표를 거부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50]

2016년 6월 25일, 홍준표는 경남도청 출입 언론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주민소환 청구에 대해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딨나. 지금 급식예산이 지원 안 되나. 원인이 사라진 일”이라며 독설을 내뱉었다.

이어 “지난 3년 6개월 도지사 하면서 재정개혁 행정개혁으로 경남도 빚 다 갚았다. 국가산단 3개를 동시에 유치해 경남 미래 50년 먹거리를 해결했다”며, “그런데 소환이라니, 배은망덕 아닌가”라는 발언을 하였다.

경남 FC 해체 논란편집

2014년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경남 FC에 대해 자신의 SNS 등을 통해 "1주일에 6번 하는 야구를 어찌 1주일에 한 번만 경기하는 K리그가 더 인기가 있기를 바라느냐?", "홈팀의 이점은 팬들의 응원이 아니라 심판판정이 있다.", "2부 리그로 떨어지면 구단 운영을 할 수 없다."라는 글을 게시하며 논란이 일었고, 경남이 끝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자 경남 구단의 해체까지 거론하며 구단 특별감사를 실시하게 되었고, 감사 결과 구단 직원들이 법인 하이패스나 유류대를 570만원 가량 부정하게 집행한 정황을 적발하여 이를 회수조치했으나, 가지급금 5억 6,100만원 중 4억 1,400만원만 정산된, 즉 1억 4,700만원의 행방이 묘연한 것에 대해서는 그냥 주의만 주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논란이 일었으며, 이후에 부산지검에 의해 홍준표가 임명했던 경남 안종복 단장이 외국인 몸값을 속이거나 가지급금을 몰래 챙겨 거의 10억에 달하는 구단예산을 횡령했다는 것이 밝혀지고, 여기에 심판매수까지 시도했다는 것까지 드러나며 논란이 일었다. 결국 경남 구단은 해체 대신 구단 축소 운영으로 존속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51][52]

황제 골프 논란편집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오후(업무시간 중)에 미국의 고급 퍼블릭 골프장에서 출장 도중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더욱이 이는 경상남도 무상급식을 중단하는 결정을 하고 난다음에 미국으로 떠난 출장에서 부인과 함께,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접대 골프여서 더욱 문제가 된다. 해당 골프장은 1인당 180불에 해당하는 미국에서는 최고급 골프장에 속하는 곳이며, 홍준표 당사자는 본인이 400불 현금을 줘서 이번 출장과 연관이있는 이해관계자로 하여금 결제하게하였다고 변명하였다.[53]

성완종 리스트 논란편집

2015년 이명박 정부의 자원비리사태에 겨냥하는 검찰 공식 수사 도중에 자살하였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에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의 메모가 적혀있어 검찰 수사 대상이 되었다. 한나라당 대표 경선 자금으로 용처가 한정된 이번 사건에 대해 당시 당선된 홍준표 現 경남도지사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54]

돼지 발정제 논란편집

2005년에 발행된 자신의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돼지 발정제에 관한 얘기가 언급된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는데,[55] 이 때문에 "강간모의" 비판을 받으면서[56] 1차 TV토론회에서 다른 3명의 주요후보들에게 사퇴요구를 받았다. 이에 홍준표는 사과했으나, 각계의 비판은 시그러들지 않고있다. 전여옥은 "이건 너무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범죄행위다. 이런 글을 책에 쓴 것도 기가 막히지만, 인생에서 가장 큰 악재가 터진 것 아닌가 싶다"라고 비난했다.[57] 국민의당은 이러한 홍준표에게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논평을 내놨다.[58][59] 바른정당 역시 홍준표의 돼지 발정제 논란을 두고 "국제적 망신거리"라고 비판했으며,[60] 새누리당조차 "홍준표는 대국민사과와 함께 즉각 후보직을 사퇴할것"이라고 규탄했다.[61] 정의당 또한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홍 후보는 후보 자격을 상실했다. 범죄모의를 하던 성 인식 수준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홍 후보는 더 이상 국민들을 우롱하지 말고 자신의 거취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바란다"라며 홍준표를 비난했다.[62]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홍준표를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으나[63] 정작 대통령후보인 문재인은 이에 침묵했는데, 국민의당은 이에대해 문재인까지 비판했다.[64]

홍준표와 단일화를 할것으로 유력하던 유승민 후보는 홍준표가 "정상적 사고를 갖고있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단일화 불가" 입장을 다시 한번 고수했다.[65]

고해성사 발언 논란편집

돼지 발정제 논란이 불거지자 2017년 4월 23일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하면 살인범도 용서를 한다"는 발언을 하였다.[66][67] 이어 "친구가 성범죄 하는 것을 조금 내가 묵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형편없이 몰았다"면서, "2년 전 국민들에게 다 고백한 사건을 이제 와서 시비를 거는 것을 보니 내가 뜨기는 뜨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68][69] 그러면서 "조그만한 저급한 문제를 가지고 서로 물어뜯고 서로 욕설하는 거 그거는 옳지 않다"고 항변했다.[70]

이에 각계층들의 비판이 이어졌으며,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입대표 백미순은 홍준표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고해성사가 아니라 무용담처럼 다루고 있다"고 비난했다.[71][72] 여성단체들의 추가적인 비난이 이어졌으며,[73] "성폭력에 대한 저열한 인식 수준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자질과 자격이 없는 홍준표 후보는 당장 사퇴하라"는 공동성명까지 발표되었다.[74]

막말 논란편집

2017년 4월 29일 홍준표는 자신을 비판하는 진보 단체들에게 "도둑놈의 새끼들"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는데, 이에 안철수 측은 홍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75] 위의 돼지 발정제와 관해, 국민의당은 홍준표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논평을 내놨다.[76]

지역주의 발언 논란편집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2017년 4월 28일 "어제 이곳 충남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너무 노골적인 유치한 지역주의를 선동하고 갔다"며 "국민들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77] 이어 "나라를 이 지경 이 꼴로 만들어 놓은 정당의 후보가, 후보 될 자격도 없는데 이곳 애국애족의 본향에서 망국적 지역주의를 들고 나왔다"며 "홍준표 후보에게는 기본적으로 대선 후보의 자질과 자격이 있는지 온 국민은 묻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78] 그러면서 "홍준표 후보는 지역주의 망언을 즉각 취소하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비난했다.[79]

세월호 발언 논란편집

2017년 4월 29일 홍준표는 자신의 트위터에 "부모님 상도 3년이 지나면 탈상을 하는데 아직도 세월호 뺏지(배지)를 달고 억울한 죽음을 대선에 이용하고 있다"라는 내용을 게시했다.[80] 이어 "억울한 죽음을 대선에 이용하는 사람들의 작태를 보고 이들은 이 나라를 참으로 우습게 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주장했다.[81] 그러면서 "툭하면 촛불민심 운운하며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지만, 촛불민심이라는 것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때처럼 전교조, 민주노총, 좌파단체 등이 주동이 되어 선동한 민중혁명이 아니었냐"라고 이었는데, 이는 허핑턴포스트의 비판을 받았다.[82]

똥통학교 논란편집

자신의 모교인 대구 영남중학교를 '똥통학교'라고 일컬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기타편집

  •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크게 기뻐했다. 비록 문재인의 압도적인 득표로 인해 낙선했으나 안철수를 제치고 2위를 기록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당이 쓰러질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홍준표가 대선에서 안철수를 이김으로서 당을 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홍준표는 아예 대놓고 싱글벙글하며 "만세! 우리 당 살려냈다!"라고 외쳤다.[83]

저서 및 논문편집

저서편집

논문편집

  • 《조직폭력 수사상의 문제점》 (1993)

수상 경력편집

  • 2008년 제10회 백봉신사상 신사의원상
  • 2009년 제1회 매니페스토 약속 대상
  • 2011년 한국반부패정책학회 반부패 청렴대상
  • 2014년 제49회 전국여성대회 우수 지방자치단체장상

평가편집

  •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구에 회자된 '모래시계'에서 박상원이 연기한 극중 인물의 모티브를 '독불장군 평검사 홍준표'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5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송파구 갑) 15대 신한국당     43.28% 41,257표 1위  
10·25 재보궐선거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 16대 한나라당   50.6% 32,095표 1위  
제17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 17대 한나라당      42.69% 37,058표 1위  
제18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 18대 한나라당     56.83% 37,618표 1위  
제19대 총선 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 19대 새누리당      44.52% 36,182표 2위 낙선
12·19 재보궐선거 경상남도지사 35대 (민선 5기) 새누리당      62.91% 1,191,904표 1위  
제6회 지방 선거 경상남도지사 36대 (민선 6기) 새누리당     58.85% 913,162표 1위  
제19대 대선 대통령 19대 자유한국당      24.03% 7,852,849표 2위 낙선

각주편집

  1. 대선주자 릴레이인터뷰7 홍준표 경남도지사 "저는 1997년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 서울 광성교회에서 김창인 목사를 만나 교류하면서 개신교 신자가 됐습니다."
  2. 1973년 ‘종암동 하숙 동문’ 홍판표·박재완·장충기, 중앙일보
  3.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 24시 밀착취재 경남도민신문 2012년 12월 16일
  4. '순정마초' 홍준표, '공주'를 보호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2011.07.05
  5. "한나라당 후보들, 모두 합쳐도 병역 14개월" 노컷뉴스 2007.08.14
  6. (신동준의 인물 비평) 홍준표의 ‘중망(衆望)’과 ‘중원(衆怨)’ 위클리경향 808호
  7. 이주영의 권고도 있었고 당시 윤영오 청주지방법원장이 특별히 개명해주었다 한다.
  8. "두목 呂(여)씨, 議員(의원) 등이 비호 洪準杓(홍준표) 검사 石弓(석궁)으로 쏴죽이겠다 협박도", 경향신문 1993년 05월 17일자 23면, 사회면
  9. 대법관 출신 이회창 vs 검사 출신 홍준표 ‘미네르바 논쟁’ 중앙일보 2009-01-14일자
  10. 이동형, 《와주테이의 박쥐들》 (왕의서재, 2012) 258페이지
  11. 경향닷컴 | Kyunghyang.com
  12. "鄭德珍(정덕진) 수사 洪準杓(홍준표) 검사 "檢事(검사) 생명 걸고 「배후」와 대결", 경향신문 1993년 05월 05일자 23면, 사회면
  13. “경찰, 부녀자 연쇄납치 살인사건 온보현 현장검증 실시”. 《MBC 뉴스》. 1994년 9월 29일. 
  14. 이동형, 《와주테이의 박쥐들》 (왕의서재, 2012) 274페이지
  15. 이명희.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뇌물 ‘배달사고’ 일축하더니 이번엔 “물증 없다” 무죄?. 경향신문. 2015년 5월 7일.
  16. 홍준표씨 '김한길과 사람들' 출연. 한겨레. 1995년 10월 30일.
  17. 홍준표 의원,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대표 선출. 티브이데일리. 2011년 7월 4일자
  18. 돌발영상 (1999년 8월 4일). “15대총선 선거사범 97명 기소”. 연합뉴스. 2012년 2월 21일에 확인함. 
  19. 후반기 국회 상임위 위원장 대폭 물갈이 매일경제 2006-06-21일자
  20. 돌발영상 (2007년 11월). “김경준과 만난 시점의 반증”. YTN. 2007년 11월 24일에 확인함. 
  21. 세상을 보는 다른 눈 "뷰스앤뉴스"
  22. 업코리아
  23. ::: 제주의소리 :::
  24. “홍준표, 한나라당 새 대표에…2위는 유승민”. 프레시안 정치. 2011년 7월 4일. 
  25. 윤경원, 유승민-원희룡 반대속 김정권 사무총장 강행, 데일리안
  26. 홍준표 62.91%, 권영길에 압도적 승리 뉴시스 2012.12.19
  27. 홍준표, 경남도지사 보궐선거 당선 소감
  28. “제19대대통령 선거 후보자 공약: 기호 2번 홍준표” (PDF).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17년 5월 8일에 확인함. 
  29. “洪, "내가 집권하면 사시·행시 존치"…양화대교서 '사시 존치' 농성 40대 고시생 설득”. 《조선일보》. 2017년 5월 5일. 2017년 5월 6일에 확인함. 
  30. “홍준표 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공식 출범”. 《뉴스1》. 2015년 7월 23일. 2015년 8월 5일에 확인함. 
  31. [쿠키뉴스]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32. 채경옥 (2003년 5월 16일). “홍준표 논란 일자 '오리발'. 매일경제. 2017년 4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4월 15일에 확인함. 
  33. 홍준표 "기획입국 관련 편지·각서 확보" 오마이뉴스 2007.12.13 11:15
  34. 김경준 기획입국설은 조작? 되살아나는 BBK의혹 오마이뉴스 2007.12.13
  35. ‘김경준 편지’ 폭로했던 홍준표 “오래돼 기억안나” 뉴페이스 2011.03.11
  36. 한나라, 입 닫는 것이 능사인가? 프레시안 2007-11-26
  37. 바른사회시민회의, 개원 못하는 여야 국회의원에 손해배상소송 뉴시스 2008년 6월 19일자
  38. ‘국민이 봉이냐!’ 18대 국회 줄줄이 소송·고발 데일리안 2008-06-19일자.
  39. 법원 "국회 늑장 개원, 배상책임 없다" - 뉴시스, 2009년 8월 14일
  40. 홍준표 "원구성때까지 의원 세비지급 금지" - 머니투데이, 2008년 8월 19일
  41. ", '노무현 사저=아방궁' 홍준표 의원, 큰일 났습니다 - 오마이뉴스, 2011년 5월 24일
  42. ", 홍준표 "아방궁 발언, 사과할 생각 없다" - 뷰스앤뉴스, 2011-05-26
  43. “여기자 "홍준표 눈썹문신 ‘화제’…“노대통령 조롱하더니..””. 뉴페이스. 2011.09.20. 
  44. “LH, 4년간 783명 줄이면서 홍준표 처조카만 정규직 채용”. 데일리중앙. 2011년 8월 22일. 
  45. “LH공사 4년간 딱 1명 뽑은 정규직 알고보니 ‘홍준표 처조카’였다”. 한겨레. 2011년 8월 22일. 
  46. “홍준표 ‘사실상’ 패러디 인기몰이 “이대로 대선까지 쭉”. 폴리뉴스. 2011년 8월 26일 17:15:58. 
  47. “`박원순 병역의혹' 쟁점부상..판세영향 주목(종합)”. 연합뉴스. 2011/10/09. 
  48. “박원순측 "가정사를 병역기피로 호도말라(종합)”. 연합뉴스. 2011/10/09. 
  49. "꼴같잖은게" 홍준표 막말 파문 미디어오늘 2011-11-02
  50. '경남 무상급식주민투표 대표증명 거부' 취소소송 제기
  51. 김대진 (2014년 12월 9일). “경남 구단주 “강등 구단 해체 검토”…반발”. KBS. 
  52. 조재영 (2014년 12월 24일). “경남 FC 해체 면했다…조직 축소 후 운영”. 경남도민일보. 
  53. "홍준표 '美 평일 골프', 현지 사업가가 접대", the300
  54. 김태은, 오세중, 이하늘,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 어떤 배경을 가진 인물들인가? 재경일보 2015년 4월 10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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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29/story_n_16320292.html
  82. http://www.huffingtonpost.kr/2017/04/29/story_n_16320292.html
  83. 홍준표 '무너진 당 복원에 만족'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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