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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 ~ )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남평(南平)이다.[2]

문재인
Moon Jae-in May 2017.jpg
文在寅 簽名.svg
대한민국제19대 대통령
임기 2017년 5월 10일 ~
국무총리 이낙연 (2017년 ~ )
전임: 박근혜(제18대)

신상정보
국적 대한민국
출생일 1953년 1월 24일(1953-01-24) (64세)
출생지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거주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청와대
정당 더불어민주당
학력 경희대학교 법학 학사
별명 이니, 달님, 명왕
종교 천주교 (세례명: 디모테오)[1]
배우자 김정숙
자녀 1남 1녀
부모 아버지 문용형, 어머니 강한옥
웹사이트 http://www.president.go.kr/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국군
복무기간 1975년 8월 - 1978년
소속 대한민국 육군
최종계급 Roka4.png 병장(兵長)
근무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참전 한반도 분쟁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되었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징집 되었다. 특전사 제대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되었고,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극적으로 풀려나왔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최우수 성적[3]으로 수료했으나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되자 부산으로 내려가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3년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하였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4]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이후 정계입문 제의를 받았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하였다.[5]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6] 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7],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당선인 신분없이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8]

목차

생애

유년 시절

문재인은 1953년 1월 24일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9] 문용형은 함경남도 흥남남평 문씨 집성촌인 솔안마을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흥남시청에서 농업과장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12월 23일흥남 철수 작전 무렵에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가족과 함께 몸을 싣고 남쪽으로 겨우 피난해 내려왔다.[10][11] 아버지는 거제에 정착한 후 공무원 경력을 제시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노무자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계란 행상을 해야만 했다. 문재인의 가족은 거제도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거처가 없었기 때문에 문재인이 태어날 때에도 셋방을 살던 주인집에 임산부가 있다는 이유로, 산모가 진통 중에 이웃 집에 옮겨가 출산을 해야할 정도로 곤궁한 생활을 했으며, 이에 문재인의 생가는 실제 그가 살던 집이 아니었다. 결국 문재인의 부모는 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부산으로 이사했으며, 문재인의 서류상의 본적은 부산 영선동으로 되어 있다. 문재인은 남항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난 때문에 학교 바로 위의 '신선성당'에서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정기적으로 배급을 타먹어야 했다. 배급을 받으러 온 문재인에게 수녀들이 귀엽다며 자주 사탕과 과일을 쥐어주었기 때문에 문재인에게는 수녀들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로 감화가 되어 그는 천주교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았다.

학창 시절

1965년남항국민학교를 졸업한 문재인은 당시 명문이던 경남중학교에 입학했고,[12] 1968년에 졸업한 후에는 당시 명문고라 불리던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했다.[13] 고교 시절 초기에는 학내에서 '문과에 문재인, 이과에 승효상'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말기에는 극도로 가난한 자신의 처지에 낙망, 술·담배에도 손을 대며 방황을 하다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였다.[14] 문재인은 졸업 후 1971년 종로학원 진입 시험에서도 일등을 하며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다.[15] 이후 경희대학교 설립자이자 당시 경희대 총장이었던 조영식이 문재인에게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였고, 문재인은 그 권유를 받아들여 재수 후, 1972년 경희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하였다,[16]

문재인은 경희대학교 법대 시절 운동권으로서 총학생회장이던 강삼재를 대신하여 당시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되어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었고, 그 해 6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 강제로 군에 징집되어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하였고 대한민국 39향토보병사단 신병훈련소를 거쳐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 제3특전대대 대대본부 작전과에서 복무했다. 군대 복무 중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했다.[17] 전역 후 1980년에 경희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후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다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청량리구치소에 수감 중,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될 수 있었다.

사회 생활

1980년 5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내려지면서 실시된 예비 검속으로 체포되어,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는 청량리구치소에서 받았다.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동기였던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 걸출한 인재들 사이에서도 일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사법연수원 시험성적이 수석[3]이었고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도 수상했지만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리고[3]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이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이후 문재인은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18]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갔다.[18] 그곳에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법무법인 부산에서 노무현과 인연을 맺은 것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이자 최측근으로 활동했다.[19]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으며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1996년 8월 발생한 페스카마호 사건에서 조선족 선원들의 변호를 맡았다.[20] 한겨레신문 설립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문재인은 무료로 변론하게 되면 자칫 사건 당사자와 가족들이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무료 변론은 하지 않았는데, 경상대학교 교수들이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저서를 강의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자 5년 간 변론을 맡아 항소심에서 승소했을 때 고작 1백만∼2백만원대의 수임료를 받기도 했다.[출처 필요]1988년에는 김영삼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했으며[21], 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참여정부 시절

변호사 활동을 하며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특히 2002년 대한민국 제3회 지방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몇 차례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권유했음에도 '나는 참모용'이라며 '더 나은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고 고사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문재인은 '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22]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을 꾸렸으며[23],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18]

청와대 안에서 이정호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이호철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PK인맥을 대표했는데, '왕수석'으로 불리며 한나라당으로 부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난을 받으며 2인자로 주목받기도 했다.[24] 비서실장 시절 이해찬 국무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 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하기도 했으며[25],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였다.[26]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재인과 이호철 비서관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두 사람은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또한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 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27]

2006년 11월 6일 국정자문회의 의원 138명을 보궐할 때 국정자문위원으로 추가 보선되었으며[28],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문재인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평가했다.[29]

정치 활동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 봉하마을 봉화산에서
 
경희대학교에서 연설하는 문재인(201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18]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 특전사 출신,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 등 이력으로 인하여 대선에서 야권 후보들 중 지지율이 높은데, 2011년 8월 언론사 여론 조사에서 '당신이 원하는 국회의원'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30], 2012년 4월 11일 대한민국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의 대선 예비주자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다가 6월 초, 출마를 결정하게 된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 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31]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 캠프명은 "담쟁이 캠프"로 정해졌다. 이후, 8월 25일부터 9월 16일까지 열린 국민참여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의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12년 11월 18일 2기 지도부 총사퇴에 의해 민주통합당의 대표권한대행이 되었다.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안철수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32] 단일화 과정을 둘러싼 문제로 11월 23일 안철수가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33][34] 진보정의당심상정 대선 후보도 후보 등록을 앞두고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또, 상도동계김현철, 김덕룡, 문정수의 지지를 받았으며, 대선후보급인 문국현, 박찬종의 지지를 받았다. 또, 보수인사로 알려졌던 윤여준의 찬조연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35] 그밖에 김영삼의 측근으로 김대중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것으로 유명한 강삼재 또한 그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36]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공동선언에 기초해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TV토론회 등에서 "대북정책을 남북 간 화해를 열어 새 비전과 성장동력을 찾는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기존 남북합의서, 6·15 공동선언 등을 이행하고, 개성공단과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 등을 재개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 평화체제 구축, 북핵 문제를 함께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동시 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 진전과 함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였다. '선북핵문제 해결, 남북교류 재개'를 주장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와는 차이를 보였다.[37] 그는 "새누리당과 박 후보처럼 전제조건을 달면 안 된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전제조건을 다는 동안 북핵 문제가 더욱 악화한 만큼 남북 관계의 발전과 북핵 해결을 병행해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전면에 내세워 남북문제 해결에 속도는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봉쇄 정책인 5`24 조치를 조건 없이 해제하고 남북경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인프라개발기구'(KIDO)를 세워 북한 내 산업기반 시설을 대폭 확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37] 금강산 관광 재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신변 안전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약속한 내용을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속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다소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놨다. 그는 "미국이나 중국 정상과도 충분히 조율해야겠지만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곧바로 북쪽에 특사를 보내 제 취임식부터 초청하고 가능하다면 임기 첫해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37] 그는 외교정책과 관련,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관련국가들과 한반도 문제를 함께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중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고 일본과 관련해선 과거사 문제를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한`미 FTA와 관련해 독소조항은 반드시 재협상한다는 입장이었다. 'FTA 무역이득공유제'를 검토해 농민들을 보호하겠다고 나섰다.[37]

이후 12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와 함께 토론에 참석했다. 문재인 측은 국가정보원에서 자신을 비방하는 여론조작을 벌인다고 12월 11일 공개하였다. 문재인 측은 그런 활동을 벌인 직원중 한명을 지목했다. 3차 TV 토론이 끝난 12월 16일 오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이러한 경찰의 발표는 뒤에 허위로 밝혀졌다. 이후 2012년 12월 19일 선거에서 탈락 후보 사상 최다이자,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 중 두 번째로 많은 14,692,632표(48.0%)를 득표했지만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약 100만 표 차이로 패배하였다.[18] 다음날 문재인은 패배를 승복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38]

대선 패배 이후

 
2015년 7월 정의당 대표 심상정과 악수를 나누는 문재인
 
2015년 석가탄신일 기념행사에 참석한 문재인(왼쪽), 김무성(가운데), 천호선(오른쪽)

2013년 4월 9일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대선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패배의 주원인은 캐릭터 정립 실패로 국민들에게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문조사 결과 당내에서 4번째로[39] 패배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되었다.[40]

그러나, 오랫동안 칩거하던 기존의 대선 패배 후보들과는 달리 빠르게 정계에 복귀하며 패배책임을 지고 물러나 있어야하지 않냐는 논란이 일었다.[41]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현안에 대한 입장도 자주 밝히며 대선 재도전의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42][43]

2014년 3월 새로 창당된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과 손학규를 공동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44][45] 29일 경남도지사 후보 김경수구동태 목사를 방문한 뒤 "신당이 영남지역에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가 통합의 고리"라는 입장을 보였다.[46] 4월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에 대하여 "왜이렇게도 무기력하냐"며 "우리의 수준이 부끄럽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47]

6월 15일 새 총리 후보로 문창극이 지명되자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48] 이튿날 본인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강행은 통합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반쪽 정부를 고집하고 오히려 폭을 더 좁히는, 거꾸로 가는 길입니다. 국민도 불행하고 박근혜 정부에도 불행한 길입니다. … 세월호 이후 이제는 제발 국민통합의 길로 가달라는 민심을 외면하면 안됩니다.

— 문재인[49]

17일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발의했다.[50] 이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이윤과 효율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상생 협력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50] 또한 대통령 직속의 "사회적 가치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또한 포함하고 있다.[50] 10월 27일에는 신해철의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51]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이 헌재 판결로 해산되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으며,[52][53]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었다"고 비판했다.[52][53] 그러면서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름을 포용하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54] 한편 이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15.8%가 "다음에는 문재인을 찍겠다"는 반응을 보였다.[55]

당대표 재임 시절

 
김무성과 함께한 문재인 (2015년)

2014년 12월 29일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56] 그는 당 대표가 되면 2016년에 치러질 차기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출마 선언 이후 약 5개월 만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제치고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탈환하였다.[57] 이후 2015년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제1차 전당대회에서 41.8%를 얻은 박지원 후보를 앞선 45.3%를 얻으며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당선되었으며,[58]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개편된 후에도 계속 대표를 지냈다.

4월 6일 "국회의원 정수가 부족하다"며, "국민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않고 있지만,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주요 국가와 비교하면 (인구수 대비 의원 비율이) 낮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59] 새정치민주연합 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제기되었으나,[59] 안철수는 이러한 문재인의 주장을 비판했으며,[60] 새누리당은 그를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60] 같은날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의 증인으로 서겠다고 밝혔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합류를 요구했으나,[61] 새누리당은 이를 "정치 공세"라고 비난했다.[62]

5월 말부터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6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의 메르스 대처에 대해 "정부의 대응을 보면 세월호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무능하고 부실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63]

연말이 다가오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분열조짐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이 무렵 안철수를 필두로 한 "신당 창당설"이 제기되었다.[64] 하지만 문재인은 이에 대해 그런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당의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64] 그러나 이후 분열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12월 13일 안철수의 탈당을 필두로 당은 분열되고 만다.[65] 문재인은 이를 두고 "정말 정치가 싫은 날"이라고 한탄했으나, "아무리 파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총선승리에 이르는 새정치연합의 항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포기하지는 않을것임을 선언했다.[65] 하지만 당내의 비판이 계속되는 가운데,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의원 67명이 문재인에게 "총선에서 공천 권한 일체를 선거대책위원회에 위임할 것"을 요구했다.[66] 다음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개명했는데,[67] 이는 안철수계의 흔적을 지우는 행보라는 평을 받는다.[68]

2016년 1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사퇴한다고 밝혔으며,[69][70] 이에 김종인은 "그러리라 믿어요",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69]

당 상임고문 시절

 
문재인과 김종인 외 당내 최고위원

3월 19일 차기 정권교체를 위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71] 그는 "불출마선언을 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것은 배재정이라는 훌륭한 사람을 사상의 차기 국회의원으로 예약해놓고 떠난다는 것"이라며 "배재정을 국회로 보내주시면 제가 함께 사상을 책임지고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71]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행사에 참여했다.[72] 27일 안동을 방문했고,[73] 7월 25일 울릉도에 이어 독도를 방문했다.[74][75] 이를 두고 "오래전부터 한·일 역사 문제의 상징인 독도 방문을 추진해 왔다"며, "이번 방문은 8·15 광복절을 앞두고 영토 주권을 확고히 하자는 목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75] 이번 독도 방문에는 최낙정 전 해양수상부 장관이 동행했다.[75] 안동 방문에 대해서는 TK 민심을 잡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76] 8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7주기 추모행사에 참여했다.[77]

2016년 10월 말부터 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박근혜 정권을 향한 민심이 폭발했고, 이때 문재인은 박근혜 정부에 거국중립내각을 요청했다.[78] 안철수 등 일부 야권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나왔으나,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 무렵 문재인은 사실상의 실권자로 떠올랐다.[79]

 
집회에서 표창원과 연설하는 문재인 (2016년)

11월 26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하여 "200만 촛불이 세상을 바꾸는 횃불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내려오든 탄핵으로 끌려 내려오든 박 대통령 퇴진은 시간 문제",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한시라도 빨리 스스로 내려오는 것이 국민들을 덜 고생시키고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했다.[80] 이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최순실 일가의 대통령이었다. 돌이켜보면 2012년 12월부터 오늘까지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었다"라며 박근혜 정부를 규탄했다.[81] 3일 후에는 "국회는 흔들림 없이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 우리당과 저는 퇴진운동과 탄핵추진을 흔들림 없이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82] 이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의 탄핵안이 가결되자 "국민이 이겼다"고 주장했으나, 그러면서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덧붙였다.[83] 이 무렵부터 문재인은 지지율 1위로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성장했다.[84]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는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최종 파면되었고,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굳어지는 등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로 굳어졌다.[85] 그러나 이에 기타 야당들의 반문연대 논의가 진행되면서 다소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86]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19대 대선 포스터

2017년 3월 24일 동영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바라는 온 국민의 뜻을 모아 이제 정권교체의 첫발을 내딛는다"라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87] 상도동계김현철, 김덕룡의 지지를 받았으며,[88][89][90] 그의 캠프 자문그룹 출범식에는 장·차관급 인사 49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네이버 미디어서비스 실장(미디어 담당 이사),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한 윤영찬 네이버 부사장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담당본부장으로 영입했고, 주요 여성계 인사인 남인순 의원을 여성본부장으로 영입했다.

당내 경선은 안희정·문재인·이재명·최성의 4자 구도 대결이 확정되었다. 3월 22일에는 전국 동시투표소 투표를 진행하였고, 3월 25일 호남 지역을 시작으로 각 지역별 자동응답시스템(ARS) 투표와 순회투표를 차례로 진행하였다.[91] 4월 3일 수도권 지역 경선에서 문재인은 60.4%를 득표하며 1위에 오르는 동시에, 전 지역에서 1위 압승을 거두면서 과반 이상 득표로 인해 최종결선 투표 없이 곧바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다.[92] 경선 승리 후 "오늘 우리에게 승자와 패자는 없다. 승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촛불을 밝힌 국민들"이라며 "국민의 명령을 받들어 국민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하는 동시에 "세 동지가 저의 영원한 정치적 동지로 남기를 소망한다"며 "그 동안 어느 캠프에 있었든, 누구를 지지했든,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다"라고 강조하며 세 후보 지지세력 결집에 나섰다.[93]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며 "남녀 동수 내각"을 공약했으며, "준조세 금지법을 만들어 기업을 중앙 정부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94] 또한 "개성공단 확장"을 추가적으로 공약했고,[95] 아울러 댓글공작, 정치개입 등으로 논란이 된 국가정보원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다.[96] 이 외에도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97] "광화문 대통령 시대"[98] 등을 공약했다. 안보에 있어서는 "6자 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양자·다지회담을 적극 활용해 한반도 비핵화·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약속했으며,[99] 이 외에도 북핵에 관해서는 이에 대응할 우리 군의 핵심전력을 조기에 전력화하겠다고 약속했다.[100]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함께 4월 23일, 4월 28일, 5월 2일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토론에 참석했다. 유례없는 5인 구도로 이루어진 토론을 거치면서 여러 분야에서 서로 간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이후 5월 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41.1%를 득표해 24%를 득표한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101] 이미 이어져온 1강 구도를 통해 개표 초반부터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었으며,[102] "함께 경쟁한 후보들에도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그 분들과도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103] 궐위선거인 관계로 별다른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취임했다.

대통령 재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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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문재인
 
국민의당을 방문한 문재인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국회에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식은 취임 선서로만 진행되었는데 이는 19대 대선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보궐선거여서 공식 취임식을 치를 여유가 없었기에 취임 행사를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이유이다. 취임선서식은 입장부터 퇴장까지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었다.

취임 선서가 끝난 후엔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민들을 만났고, 청와대로 떠나면서도 거리에 나온 시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청와대 경호실도 시민들의 접근을 과하게 제지하지 않으며, 새 대통령과 시민들의 첫 만남을 배려했다.[104]

국정 방향

문재인은 "국민 통합"을 강조했다. 취임 첫날 야4당을 방문하여 협조를 부탁하였다.[105]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은 '탕평'과 '협치', '개혁'과 '변화', '대화'와 '소통', '능력'과 '전문성'으로 대표된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전라남도지사이낙연을 지명했으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임종석을 지명했다. 둘은 친문 색채가 옅은 사람으로 문재인이 이들을 지명한 것과 관련하여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국정원장으로는 서훈이, 청와대 경호실장으로는 주영훈이 내정되었다.[106]

외교 정책

미국

2017년 6월 1일, 미국 상원에서 국방 예산을 담당하는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 의원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이) 사드 배치를 원치 않으면 (미국정부가) 사드 배치 관련 예산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고 말했다.[107][108]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20일 청와대에서 CBS,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를 가졌고 “사드 배치 결정은 우리 한국주한미군의 안전을 위해서 한·미동맹에 근거해 한국과 미국이 합의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109][110]

중국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의 당선에 축전을 보내며 "한국이 그러하듯 중국도 아주 어렵게 이뤄낸 양국관계 성과를 유지하고 보호하길 희망한다",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정치적 신뢰를 견고히 하며 차이점을 적절하게 처리하고, 양국관계의 개선 및 안정적인 발전을 추진해 가겠다"라고 밝혔다.[111] 한중관계에 있어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관영언론 환추 시보는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정권의 가장 큰 실수"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가 사드 배치 문제로 발생된 충격과 긴장된 한·중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112]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 양국은 전략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라며 "앞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손을 맞잡고 미래 지행의 한일관계를 폭넓은 분야에서 발전시켜가고 싶다"고 밝혔다.[113]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안부 관련 합의는 재교섭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114]

북한

북한사드 배치를 비난하며 "미국사드를 제 땅으로 끌어가라"고 주장했고 "남조선 당국이 '사드배치가 북핵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과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며 전임정부의 결정이지만 정권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 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고 떠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115][116]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시사했으며, 여건이 된다면 평양도 갈 것이라고 밝혔다.[117] 북한은 "남조선 당국이 정녕 촛불 민심을 대변하는 정권이라면 미국 상전의 강요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남조선 각계의 민심을 따르는 것이 마땅한 처사일 것"이라고 밝혔다.[118]

경제 정책

집권하자마자 증세론, 일자리 창출 공약, 복지 공약, 탈원전 정책 등이 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119]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부"이며, 저출산·고령화, 빈곤, 보육, 교육, 의료 분야에서 복지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19] 한편으로는 취임하자마자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119]

부동산 정책으로는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와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초점을 두고 있다.[120] "매년 17만 가구씩 5년간 총 85만 가구의 공적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다.[120]

취임 1년차 (2017년 5월 10일 ~ 2018년 5월 9일)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궐위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 갑작스럽게 취임하는 바람에 내각은 박근혜 정부의 그것으로 유지되었으나[121] 다들 사임 의사를 밝혔고, 바로 다음날 황교안 국무총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사표가 수리되었다.[122] 또한 박근혜 정권 시기 논란이 되었던 국정교과서에 대한 폐지를 지시하였고, 아울러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중단되어왔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제창 또한 지시하였다.[123]

평가

긍정적 평가

비지니스포스트는 ‘합리적이고 중심이 잘 잡혀있어 안정된 성품을 지녔다 ’고 평가하였다.[18]

부정적 평가

대통령 당선 전 문재인의 재산신고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에 대한 반박이 있는 등 정치적으로 공방이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아들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채용 과정에서 여러 가지 특혜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북관에 있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과 그를 옹호하는 대한민국 내 세력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잦은 논란을 빚었다. 그러한 대북 정책을 관철하거나 주장하는 과정에서 간혹 국제적 외교 문제나 법적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학력

경력

저서

단독 저서
  • 《문재인의 운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한 30년 동지 문재인, 두사람의 운명 같은 동행)》. 가교. 2011년 6월 15일. ISBN 978-89-7777-188-8. 
  • 《문재인의 운명 (2017년 제19대 대통령 당선 기념 특별판)》. 북팔. 2017년 5월 16일. ISBN 979-11-6156-587-3. 
  •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의 힘)》. 퍼플카우. 2012년 8월 6일. ISBN 978-89-97838-02-8. 
  • 《문재인이 드립니다 (꿈을 놓아버린 이 땅의 청춘들을 위한 포토에세이)》. 리더스북. 2012년 8월 8일. ISBN 978-89-01-14936-3. 
  • 《1219 끝이 시작이다》. 바다출판사. 2013년 12월 10일. ISBN 978-89-5561-690-3. 
  • 《대한민국이 묻는다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 21세기북스. 2017년 1월 20일. ISBN 978-89-509-6884-7. 
공저
  • 《10명의 사람이 노무현을 말하다》. 오마이북. 2010년 5월 13일. ISBN 978-89-964305-0-6. 
  • 《그 남자 문재인 (함께 만드는 세상)》. 리얼텍스트. 2012년 9월 17일. ISBN 978-89-964898-2-5.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 오월의봄. 2011년 11월 23일. ISBN 978-89-966875-2-8. 
  • 《만화 문재인》. 마이디팟. 2012년 10월 3일. ISBN 978-89-6733-174-0. 
  • 《운명에서 희망으로 (문재인이 말하고, 심리학자 이나미가 분석하다)》. 다산북스. 2017년 3월 23일. ISBN 979-11-306-1171-6. 

관련 서적

  • 《문재인 스타일 (안철수와 박원순의 아름다운 합의를 이끌어 낸 문재인식 리더십)》. 미르북스. 2011년 10월 17일. ISBN 978-89-97213-03-0. 
  • 《정치심리극장》. 리더스북. 2012년 9월 24일. ISBN 978-89-01-15081-9. 
  • 《문재인이 이긴다》. 리얼텍스트. 2012년 11월 20일. ISBN 978-89-964896-3-4. 
  • 《문재인 스토리 (그 남자, 문재인에 대해 알고 싶은 56가지 이야기)》. 모악. 2017년 2월 15일. ISBN 979-11-88071-00-5. 
  • 《그래요 문재인(위기와 희망의 길목에서 문재인을 말하다)》. 은행나무. 2017년 4월 20일. ISBN 978-89-5660-141-0. 

역대 선거 결과

선거명 직책명 대수 정당 득표율 득표수 결과 당락
제19대 총선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19대 민주통합당    55.05% 65,336표 1위  
제18대 대선 대통령 18대 민주통합당      48.02% 14,692,632표 2위 낙선
제19대 대선 대통령 19대 더불어민주당     41.08% 13,423,800표 1위  

가족 관계

  • 아버지 : 문용형 (1920년 ~ 1978년)
  • 어머니 : 강한옥 (1928년 ~ )
    • 누나 : 문재월 (1949년 ~ )
    • 배우자 : 김정숙 (1954년 ~ )
      • 아들 : 문준용 (1982년 ~ )
      • 딸 : 문다혜 (1983년 ~ )
    • 여동생 : 문재성 (1955년 ~ )
    • 여동생 : 문재실 (1957년 ~ )
    • 남동생 : 문재익 (1959년 ~ )

출연

다큐멘터리

문재인을 연기한 배우들

같이 보기

각주

  1. “천주교 신자 文 대통령 관저서 축복식…세례명은?”. 《매일경제》. 2017년 5월 15일. 2017년 6월 15일에 확인함. 문 대통령의 세례명은 디모테오, 김 여사의 세례명은 골롬바이다. 디모테오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자', 골롬바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뜻한다. 
  2. '문재인과 남평문씨'…나주 곳곳에 남평문씨 흔적”. 《연합뉴스》. 2017년 5월 10일. 
  3. 최영해 기자 (2003년 1월 23일). “민정수석 내정 문재인씨,82년 盧와 변호사동업 20년 친구”. 동아일보. 2003년 1월 23일에 확인함. 
  4. 이태명 기자 (2004년 3월 22일). “康법무 '탄핵 변론' 논의 파문 ‥ 문재인 前수석 만나”. 한국경제. 2015년 1월 24일에 확인함. 
  5. 김정남 (2016년 11월 28일). “문재인 "탄핵 반드시 될 것이라 확신". 《노컷뉴스》. 2017년 5월 18일에 확인함. 
  6. 이상헌 기자 (2017년 4월 3일).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로 대권 재도전…경선 득표율 57%(종합)”. 연합뉴스. 2017년 4월 3일에 확인함. 
  7. 류정민 (2017년 5월 10일). “19대 대선 개표완료, 文 41.1%…역대 최다표차 승리(속보)”. 《뉴스1》. 2017년 5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8. 염혜원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첫 행보...약식 취임식으로 5년 임기 시작”. 《YTN》.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9. “문재인, 대통령 당선자 주요 약력”. 《매일신문》. 2017년 5월 9일.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10. 김진우 (2012년 12월 4일). “대선 후보 인물탐구 가족 이야기 문재인”. 경향신문. 2012년 12월 4일에 확인함. 
  11. 이상우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누구인가]인권변호사에서 '새로운 대한민국 리더'로”. 《인천일보》.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12. “‘1년 선후배’ 김무성-문재인, 경남중 동창회서 나란히”. 《한겨레》. 
  13. “[뉴 파워엘리트 50인]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 문재인·김무성과 경남고 동문… 심상정과도 ‘친분’”. 《이투데이》. 
  14. 서상현 기자 (2012년 9월 16일). “문재인, 1등 하면서도 별명이 문제아 두 번째 경남고 대통령 동기들 들썩”. 중앙SUNDAY. 2012년 9월 16일에 확인함. 
  15. 손병호 기자 (2012년 9월 20일). “문재인과 감나무”. 국민일보. 2012년 9월 20일에 확인함. 
  16. 김명일 기자 (2012년 8월 3일). “대선주자 7인 현미경 검증 학력 학창시절”. 일요시사. 2012년 8월 3일에 확인함. 
  17. 특전사 및 표창장 기사문
  18. 김디모데; 나병현 (2017년 5월 9일). “[Who Is ?] 문재인 19대 대통령”. 《비즈니스포스트》. 2017년 5월 20일에 확인함. 
  19. 박형남 기자 (2009년 5월 25일).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항상 盧곁에서 이제는 홀로”. 스포츠서울닷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0. 배성재 기자 (2011년 10월 15일). "선상폭력이 빚은 조선족의 우발적 범행… '운명' 처럼 변호 맡았다". 한국일보. 2012년 12월 1일에 확인함. 
  21. 김대영 기자 (2012년 9월 26일). “문재인, 노무현과 동시에 국회입성할 뻔”. 매일경제. 2012년 9월 26일에 확인함. 
  22. 김범현 기자 (2004년 2월 28일). “문재인 전 민정수석, 네팔로 여행 떠나”. 오마이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3. 윤경민 기자 (2004년 3월 15일). “盧 대통령 변호인단 오늘 선임”. 연합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4. 염영남 기자 (2003년 6월 11일).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실체적 권능의 2인자 행보로 구설수”. 주간한국.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5. 서양원 기자 (2007년 3월 9일). “문재인 비서실장, 직언 서슴지않는 대통령 복심”. 연합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6. 남도영 기자 (2009년 5월 25일). “(노 前대통령 국민장) 위기마다 늘 곁에…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 국민일보 쿠키뉴스.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7. 박종렬 가천의과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2011년 6월 23일). “(박종렬 교수의 제왕학) 문재인, 박근혜의 운명적 대항마인가?”. 스포츠서울닷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8. 강봉석 기자 (2006년 11월 6일). “與, 국정자문위원회 대폭 확대”. 기호일보.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29. 이종탁 기자 (2010년 5월 17일). “(이종탁이 만난 사람)노무현 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 경향신문.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0. 류정민 기자 (2011년 8월 22일). “신동아 80주년 여론 조사, 문재인 1위 차지했다”. 미디어오늘. 2012년 6월 8일에 확인함. 
  31. 문재인 고문 대선 출마 선언...경선 열기 고조 YTN 2012년 6월 17일
  32. 야권 단일화 협상 개시 "국민 참여 단일화" vs. "박근혜 이기는 단일화" YTN 2012년 11월 13일
  33. 안철수 후보 전격 사퇴한 이유는? 조선일보 2012년 11월 23일
  34. 안철수 후보 사퇴 배경은?‥단일화 의견차 좁히지 못해 MBC 2012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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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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