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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즉시 중외(中外)의 신료와 군사와 백성에게 교서를 내려 즉위한 사실을 알리는 가운데서, 국호를 종전대로 ‘고려’라 칭하고, 의복과 장식, 그리고 법률제도도 고려의 전통을 따를 것을 선언하였다. 정종·태종 때에 대대적인 관제 개혁이 행하여지고 또 점차 경국대전이 갖추어짐에 따라 조선의 정치제도 안정되게 되었다.

경국대전은 그 뒤 고종의 갑오경장까지 4백여 년 동안 줄곧 조선제도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관제 자체나 그 기능면에 다소의 개혁이 행하여졌으며 갑오경장 이후에는 종전과 그 형태를 완전히 달리하게 되었다.

목차

개관편집

v  d  e  h 조선 행정기구 조직
의정부육조이조
승정원호조
경직의금부예조
사헌부병조
국왕사간원삼사형조
홍문관공조
한성부
외직팔도

조선의 중앙 정치 체제는 경국대전으로 법제화하였다. 중앙 정치는 문반무반양반으로 구성하여 운영되었다. 기본 9품정품종품이 있어 모두 18품계를 이루었다. 또한 주요 직급자인 당상관과 실무진인 당하관으로 나기도 한다.

조선 시대의 관직은 중앙 관직인 경관직과 지방 관직인 외관직으로 나뉜다. 경관직은 의정부와 육조를 중심으로 그밖에 여러 관직이 있으며, 외관직은 지방 행정 구역에 따라 정해졌다. 육조는 서로 업무를 나누어 맡았으며, 정책 회의 등에서 관서 사이의 업무를 조정하고 통일적인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운영하는 방법에 따라 육조 직계제와 의정부(議政府) 서사제로 나뉜다.

왕권을 견제하는 언관이자 청요직이었던 삼사(三司)인 사헌부, 사간원(司諫院), 홍문관이 있으며, 이 밖에 왕권 강화를 위한 국왕의 직속 수사기구인 의금부, 왕명을 출납을 담당하는 승정원(承政院)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는 한성부, 역사서 편찬과 보관을 담당하는 춘추관,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 등이 있었다.

조선 초기편집

태조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공포한 관제는 고려시대와 동일하여, 중앙의 최고 정무(政務)는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문하부(門下附)·삼사·중추원(中樞院) 등이 담당하였으며, 육조(六曹)는 실무를 집행하는 기관에 불과하여 뒤에 비하면 그 권한이 훨씬 미약하였다. 그러다가 1400년(정종 2)에는 조선건국 이후 처음으로 관제개혁이 단행되어서, 도평의사사는 의정부로 고쳤으며, 중추원의 군사권은 삼군부(三軍府)에 합하고, 왕명출납의 권한은 승정원을 새로 두어 맡게 하였다. 또 삼군부의 직을 가진 사람은 의정부의 직위를 겸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치와 군사의 분리를 꾀하기도 하였다.

그 이듬해인 1401년(태종 1)에는 문하부를 폐하여 의정부에 합치고, 문하부의 낭사(郎舍)가 맡고 있던 간쟁(諫諍)의 권한은 따로 사간원을 신설, 담당케 하니 사헌부과 아울러 대간(臺諫)의 임무를 맡게 되었으며, 삼사를 사평부(司評府), 삼군부승추부(承樞府)로 개칭하였고,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을 예문관춘추관으로 나누었다.

1405년(태종 5)에는 다시 관제의 대개혁을 행하여, 사평부를 폐하고 그 사무는 호조(戶曹)에 합치며 중추원의 후신(後身)으로 다시 군기(軍機)와 왕명출납을 아울러 담당하던 중추부를 없애고 군기에 관한 사무는 병조(兵曹)에 넘기고, 왕명출납에 대한 것은 대언(代言)을 더 설치하여 이를 맡아보게 하였다.

이와 같이 고려 이래의 최고행정기관은 도평의사사와 문하부의 권력을 합쳐 계승한 의정부만을 남기고 모두 없어지게 됨으로써 의정부는 백관(百官)과 서정(庶政)을 총리하고 유일한 최고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

한편 이때까지 인사행정권과 보새부신(寶璽符信)을 아울러 맡아오던 상서사(尙瑞司)에서 이조(吏曹)와 병조에 인사행정권을 넘기는 등, 육조의 권한을 확대시키는 동시에 종래에는 단순히 집행기관에 불과했던 육조를 강화하여 육조의 전서(典書)[1]·의랑(議郞)[2]을 각각 판서(判書)[3]·참의(參議)[1]로 개칭 승격시켜 국정에 직접 참여케 하는 한편 육조의 사무분장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여 각 아문(衙門)을 이에 분속(分屬), 행정사무는 모두 육조에서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중앙의 각 아문(衙門)은 태조 초에 이미 약 80개나 되었으며, 뒤에 더욱 그 수가 증가하였던 것을 이때에 그 아문의 대부분을 직능(職能)에 따라 육조에 각각 소속시켰지만, 이 아문들에도 대개는 당상관(堂上官)으로서 제조(提調)를 임명하여 형식적으로는 임금에 직결되는 형태를 취하였다.

1409년(태종 9)에는 왕족이나 외척으로서 정치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돈령부(敦寧府)를 설치, 별도로 대우하였으며, 뒤에는 부마부(駙馬府)[4] 등의 관청도 두게 되었다. 그리고 1414년(태종 14)에는 행정사무를 일단 의정부에서 논의하던 제도를 없애고 국가의 중대한 사건이 아니면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육조에서 직계(直啓)하도록 정하였다. 이리하여 육조의 권한이 커지자, 1418년(태종 18)에는 좌의정(左議政)이 이(伊)·예(禮)·병(兵) 조(曹)를, 우의정은 호(戶)·형(刑)·공(工) 조(曹)의 나머지 3조를 관할하게 하였으나 육조의 권한은 여전히 커서 국사를 의정부의 회의 없이 육조에서 독자적으로 처리하는 수가 많았다.

그러다가 1436년(세종 18)에는 육조의 사무를 의정부에 보고하여, 회의한 뒤에 상주(上奏)하도록 하였다. 한편 1466년(세조 12)의 대대적인 관제개혁 이후 《경국대전》이 이루어지면서 관제도 대략 고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국가의 최고행정기관인 의정부와 국무를 분담하는 육조 이외에 의금부·승정원(承政院)·홍문관(弘文館)·사헌부·사간원(司諫院) 등의 특수기관과 수도(首都)를 맡아 행정·사법 양권(兩權)을 아울러 행사하던 한성부, 고려 이래 건국 초기의 서울이던 개성부(開城府) 등도 중앙관제에 속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여러 기관은 어느 것이나 임금에게 직접 연결되어 있어 왕권중심의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왕족이나 공신 등에 대해서는 따로 종친부(宗親府)·돈령부·의빈부(儀賓府)·충훈부(忠勳府) 등의 기관을 두어 우대하였다.

조선 중기편집

명종 대에 왜구와 여진족의 침입이 잦아지자 비변사(備邊司)가 설치되었다. 비변사는 본디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을 중심으로 군사 업무를 협의하던 임시기구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통치 구조가 변질되어 비변사가 상설 기구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의정부는 유명무실하게 되고 그 실권은 비변사에서 장악하는 폐단이 생기게 되었다. 비변사는 고위 관료들의 합의 기관이 되어 원래의 업무였던 군사 업무외 나라의 국정을 모두 총괄하게 되었다.

비변사에는 3정승과 공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 5군영의 각 부대대장, 유수(留守), 성균관 대제학, 그리고 군무에 능한 전직·현직 고관 등 고위관리가 대거 참여했는데, 이는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혁파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조선 말기편집

1864년(고종 1)에 대원군은 의정부와 비변사의 사무 한계를 규정하여 비변사는 주로 국방·치안 관계만을 맡고, 다른 사무는 일체 의정부에 넘겼다가 곧 비변사를 의정부에 통합시켰다. 그러나 점차 국내의 문제가 복잡해지자 이를 총괄하는 최고기관이 필요하게 되어 1881년(고종 18) 3월에는 청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궁중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5]을 설치, 그 밑에 십이사(十二司)를 두어 사무를 분담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1894년(고종 31)의 갑오경장(甲午更張) 때에는 근본적인 개혁이 있게 되었다. 즉 이때에는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을 분리하여 궁내부(宮內府)의 둘로 나누어 의정부 밑에 다시 내무(內務)·외무(外務)·탁지(度支)·군무(軍務)·법무(法務)·학무(學務)·공무(公務)·농상무(農商務)의 8아문과 따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도찰원(都察院)·중추원(中樞院)·의금사(義禁司)·회계심사원(會計審査員)·경무청(警務廳) 등의 부속기관을 두었으며, 궁내부 밑에는 다시 왕실의 여러 가지 사무를 분장하는 관청을 두었는데, 의정부 장관을 총리대신, 궁내부와 8아문의 장관을 대신(大臣)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 뒤에도 1910년의 한일합방 때까지 자주 관제의 변동이 있었다.

대한제국 시대편집

함께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정3품
  2. 정4품
  3. 정2품
  4. 후의 의빈부
  5. 내아문(內衙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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