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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종

조선의 2대 임금

정종(定宗, 1357년 7월 18일 (음력 7월 1일) ~ 1419년 10월 15일 (음력 9월 26일), 재위: 1398년 ~ 1400년)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제2대 임금이다. 이(李), 초명은 방과(芳果), 는 경(曔), 본관전주(全州), 는 광원(光遠)이다. 1398년부터 140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아우인 정안군(훗날 태종)이 왕세자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 선양한 뒤에는 아우 태종인문공예 상왕(仁文恭睿 上王)으로 존호(尊號)를 올렸고, 사후 조선 중후기까지 시호인 공정대왕(恭靖大王)으로 불리다가 숙종 때 정식으로 묘호와 시호를 올려 정종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定宗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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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定宗
지위
조선 국왕
재위 1398년 10월 14일 (음력 9월 5일) ~
1400년 11월 28일 (음력 11월 13일)
전임자 태조
후임자 태종
재상 문하좌정승
권지고려국사
재위 1398년-1400년
전임자 태조
후임자 태종
이름
이방과(李芳果) → 이경(李曔)
별호 자(字)는 광원(光遠)
영안군(永安君)
묘호 정종(定宗)
시호 공정의문장무온인순효대왕(恭靖懿文莊武溫仁順孝大王)
능호 후릉
신상정보
출생일 1357년 7월 18일(1357-07-18)
출생지 고려 동북면 화령군 함흥(咸興) 귀주동(歸州洞) 사저
사망일 1419년 10월 15일 (62세)
사망지 조선 한성(漢城) 인덕궁(仁德宮)
매장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북도 개풍군 흥교면
왕조 조선 왕조
가문 전주 이씨
부친 태조
모친 신의왕후
배우자 정안왕후
자녀 총 23명 중
왕자 15명, 옹주 8명
아래의 "가족 관계" 참조
군사 경력
복무 조선 의흥삼군부
고려 도평의사사
복무기간 1376년 ~ 1398년
최종계급 중군 절제사(中軍 節制使)
지휘 조선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태조 친위부대),
조선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
중군(中軍, 친위부대, 경기좌우도 및 동북면 관할)
참전 전기 왜구토벌
- 전라도 지리산(1377, 21세),
- 황해도 해주(1389년),
- 양광도 영주 도고산(1390년),
- 황해도 문화현(1393년),
- 평안도 영녕현(1393년)

목차

생애편집

정종은 공민왕 6년(1357) 7월 18일(음력 7월 1일)에 태조 이성계와 안천부원군(安川府院君) 한경(韓卿)의 딸, 신의왕후 한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품이 온화하며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 태조 이성계를 도와 여러 전쟁터에 참여하여 왜구(倭寇, 왜나라 출신 도둑떼 무리)를 토벌하는 등 왜구 격퇴 공적을 세웠다.

생애초기 왜구토벌편집

왜구의 침입이 고려 제30대 왕 충정왕 2년(1350, 공민왕의 조카)부터 본격화 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고려 우왕 때에 이르면 14년간[1] 378회(기간평균, 14년간 14일 간격)를 침입할 정도로 절정에 달하였다. 무엇보다도 해안가에서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여 심지어 강화도가 약탈당하고 도읍지 개경까지 위협을 받을 정도였으며 이때 정종의 조부 환조대왕이 개경에 이주하게 되었는데 때마침 양광도(楊廣道)에 왜구가 침입하여 개경을 위협하여 판군기감사서강병마사로 임명되어 나아가 왜적을 물리쳤다. 왜구는 단순한 해적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배후에 유력한 영주가 있어 그들에 의해 움직였다. 그 대표적인 영주가 대마도의 영주였다. 일본정부(무로마치 막부 정권)에게 왜구 통제를 요구하였으나 진전이 없어 강경하게 대처하여 홍산대첩(1376년, 최영), 진포대첩(1380년, 최무선), 황산대첩(1380년, 이성계), 관음포대첩(1383년, 정지), 대마도 1차정벌(1389년, 박위) 등의 전쟁을 거치고 비로소 소멸되어갔다.[2][3]

이 시기에 정종은 우왕 3년(1377, 21세) 음력 5월이성계를 수행하여 지리산까지 노략질하기 위해 진출한 왜구를 치는데 일조를 했으며, 기록상으로 이때부터 국왕 즉위(태조 6년, 1398)까지 약 21년 동안을 왜구토벌 등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왜구를 토벌한 공로로 그는 추충여절익위공신(推忠礪節翊衛功臣)에 책록되고, 봉익대부 지밀직사사 겸 군부판서(奉翊大夫 知密直司事兼軍簿判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을 역임하였다.

정치국면 전환과 친원파 축출편집

원나라가 정치 불안 등으로 쇠퇴해 가자 고려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은 몽골식 복장과 머리모양을 폐지하고 친원파(親元派)를 숙청하는 등 일련의 반원 정책을 추진하였다. 홍건군의 침입(紅巾之亂)과 내부 반란을 잘 넘긴 공민왕은 무명의 승려 신돈(辛旽)을 파격적으로 등용하였다. 이는 고려말 권문세가(權門勢家) 등의 저항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원 간섭기 내내 문제가 되었던 불법적인 토지, 노비 소유 문제, 인재등용의 과거시험, 조세문제 등을 과감히 개혁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친원파가 대부분인 권문세족 등의 반발 속에 신돈 정권이 축출(공민왕 20년, 1371)되고 친정(親政)을 시작하였으나 개혁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다.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시기에 친정을 시작한 개혁군주 고려 공민왕(당시 45세)이 자제위(子弟衛)[4] 홍륜, 최만생 등에 의해 처참하게 피살된 사건, 즉 공민왕 시역사건(1374년) 이후부터 우왕 9년(1383)까지 친원파 이인임(李仁任) 일당에 의해 고려의 조정은 농단, 전횡되고, 친명파(親明派)들은 숙청되고 있었다.

이렇듯이 고려말기에는 국내적으로는 권문세족들에 의해 고려 조정이 농단, 전횡되어 피폐되었으며, 국외적으로는 장기간 왜구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였다.

정종은 우왕 12년(1386, 30세), 고려 우왕최영의 계획아래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의 부만호(副萬戶)가 되어, 도만호(都萬戶) 왕안덕[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王安德)과 함께 고려 조정을 농단하고, 전횡하던 친원파 이인임(李仁任) 등을 축출시키는데 일조하여 정치국면의 전환을 이루어냈으며, 결국 그의 일당은 분격한 고려 우왕최영이 주도하고 신진세력이 협력하여 축출되었다.[5]

조선 개국편집

조선 태조 1년 (1392, 36세), 아버지 이성계조선을 건국하자 정종은 영안군(永安君)으로 책봉되었으며, 태조의 친위부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 절제사(節制使)에 임명되었다.

조선개국 초기의 혼란한 상황은 계속되어 아래로는 왜구(倭寇)가 계속해서 침탈하고 있었고, 위로는 명(明)나라로부터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영안군 이방과는 1393년문화현(文化縣, 황해남도 신천군), 영녕현(永寧縣, 평안남도 녕원군)의 두 현에 출군하여 왜구(倭寇)를 물리쳐 공훈을 세웠다.

태조 3년 (1395, 39세), 태조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를 개편하고 여기에 10위를 중, 좌, 우의 3군으로 나누고 각 군마다 종친, 대신들을 절제사로 임명하였는데 영안군 이방과는 중군절제사(中軍節制使, 경기좌우도 및 동북면 관할)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영안군 이방과는 병권에 관여케 되었고 요동 공격을 위한 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는 정도전, 남은, 성석용(成石瑢) 등이 국내의 정세를 안정시키고 명나라로부터의 압력을 물리치기 위해 요동을 정벌할 것을 청한 데에서 나온 조치였다.

즉위편집

태조 6년 (1398, 42세), 음력 8월에 동생 정안군(당시 32세)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래 왕위에 뜻이 없었던 영안군은 왕세자가 되기를 극구 사양하였으나, 태조의 장자 진안대군(鎭安大君)은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에 왕세자에 올랐다가 1개월 뒤인 1398년 음력 9월에 태조의 양위로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 제2대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정종은 우왕 3년 (1377년) 때부터 21년 동안 전쟁터를 누빈 군인 출신이며, 일찍이 정안군(태종)이 창업 대의[6] 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것을 인정하였다. 또한 직접적으로 동생 정안군(태종)이 왕위에 오를 것을 추천하는 등 왕위에 관한 관심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치세편집

  • 정종 원년 (1399)
    • 3월에는 한양에서 개성으로 천도하였고,
      • 집현전을 설치하여 경적(經籍)[7] 의 강론을 담당케 하였다.
    • 5월에는 태조 때 완성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을 간행하였고,
    • 8월에는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을 제정하여 관인들이 권세가에 청탁하는 것을 방지하였고, (정·경 분리)
    • 11월에는 법전을 정비하기 위하여 ‘조례상정도감(條例詳定都監)’을 설치하였다.
      (태조 때 펴낸 《경제육전》을 준수하여 치정할 것을 교시, 즉위교지(卽位敎旨)의 내용)
  • 정종 2년 (1400)
    • 2월에는 이른바 제2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안공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 4월에는 사병(私兵)을 혁파하여 군사권을 의흥삼군부로 집중시켰다. (1차 군·정 분리)
    • 6월에는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을 설치하여 고려 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환원시켰다.


양위와 여생편집

정종은 왕자의 난을 이유로 수도를 한성에서 개경으로 옮겼으나 다음 해인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자 동생 정안공왕세자로 책봉하고[8] 9개월 뒤인 음력 11월 13일에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으로 물러났다. 맏형으로서 남아있는 형제들간의 반목을 일소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으며, 재위중에는 형제간의 친목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재위중에, 삼성(三省)이 회안대군을 탄핵하기위해 논의하려 할때, 동모제(同母弟, 친동생)의 형친(兄親)의 정으로서 논의를 미연에 차단 금지시켰다.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인덕궁(仁德宮)에서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세종 1년(1419) 음력 9월 26일에 63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사후편집

사망한 뒤[9] 국상을 치를 때에도 왕의 국상은 후대왕이 상주가 되어야하는 원칙[10] 에서 벗어나 왕위계승자인 정안군(→태종)이 아닌 장자(長子)인 의평군 이원생(義平君 李元生)이 섭상주(攝喪主:대리상주)가 되었다.[11][12]

조선 조정에서는 바로 온인 공용 순효 대왕(溫仁恭勇順孝大王)이라는 시호를 올렸고 순효대왕이라고 불렀다가 명나라에서 공정이라는 시호를 올려 가져오자 공(恭)자가 두번 들어간다고 시호에서 공용(恭勇) 두 글자를 빼버렸다.[13] 이때부터는 묘효 없이 공정 온인 순효 대왕(恭靖溫仁順孝大王), 짧게 공정대왕(恭靖大王)이라 불렀다.

정종(定宗)이라는 묘호는 사후 250여년 만인 1681년, 제 6대 단종과 함께 제 19대 숙종 7년에 정해졌다. 정종(定宗)의 의미는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는 뜻이다.

능묘편집

[14](陵)은 황해도 개풍군 흥교리(興敎里)에 있는 후릉(厚陵)이다. 강화도 북쪽의 예성강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후대 왕릉과는 달리 후릉(厚陵, 정종과 정안왕후), 제릉(齊陵, 친모 신의왕후), 후궁 성빈 지씨의 능은 북한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에서 제외되었다.

2009년 조선시대를 통치한 왕과 왕비의 능(陵) 44기 가운데 40기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는데 빠진 4기는 제릉 (태조의 왕비 신의왕후) · 후릉(제2대 정종과 정안왕후)과 폐위된 연산군 (제10대) · 광해군 (제15대)의 능이다. (→조선왕릉(유네스코한국위원회), →조선왕조의 왕릉(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UNESCO))

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 및 형제편집

  • 조부 : 추존 환조대왕
  • 조모 : 의혜왕후
  • 부왕 : 조선 제 1대왕 태조(太祖)
  • 모후 :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 형 : 진안대군 이방우(鎭安大君 李芳雨)
    • 제 : 익안대군 이방의(益安大君 李芳毅)
    • 제 : 회안대군 이방간(懷安大君 李芳幹)
    • 제 : 정안대군 이방원(靖安君 李芳遠) - 제3대 태종
    • 제 : 덕안대군 이방연(德安大君 李芳衍)
    • 매 : 경신공주(慶愼公主)
    • 매 : 경선공주(慶善公主)
    • 정종대왕의 가족 불로; 해남윤씨 루벤스; 가의궁주 유씨2.의평군---성빈지씨 3.순평군(성주이씨)--- 숙의 기씨 4, 금평군; 행주기씨 5. 금평군; 성주이씨 양녕대군의 아들--- 숙의 기씨 6. 선성군----`성빈지씨의 아들 7, 선성군— 원경왕후민씨와 공민왕의 아들 8.종의군— 덕안대군(신의왕후의 아들, --숙의 문씨(영선옹주) 9. 진남군; 성주이씨세종대왕의 아들, 10. 진남군: 일본인 한명회의 아들 11.지운--- 양녕대군과 동시에 나온 기매의 아들로 기매는 홍륜과 반야의 딸로 공민왕에게 들키자 홍륜이 살해했다. 12. 수도군; 성주이씨 숙의 윤씨 13. 임언군; 루벤스 해남윤씨;;숙의 윤씨 14. 덕천군 이후생; 루벤스 숙의윤씨/정종대왕의 아들이고, 임언군은 정종대왕의 아버지의 아들이다. 15. 석보군---숙의 윤씨--- 성주이씨로 보인다. 영선옹주의 아들로 보임, 16. 덕천군(도평군: 예종: 덕천씨)-- 성빈지씨의 아들(파독, 이지의 아내 김씨, 벽도,덕중, 소헌왕후, 문화지씨드으로 불림) --세종대왕으로 등극하여 덕원군이라는 군호. 덕종이라는 군호는 덕천군의 호를 계승한 한 것이다. 함양공주와 동시에 태어난다. 17. 임성군: 덕천 세종의 아들, 성빈지씨의 아들 덕泉군 이후생: 숙의 윤씨의 아들로 루벤스인 영안대군의 아버지의 아들. 18. 장천군; 숙의윤씨와 덕안대군의 아들로 홍륜의 딸인 순천옹주(장천옹주. 화순옹주)와 동시에 나온 덕안대군 왕씨의 아들 19. 정석군; 숙의 기씨의 아들로 덕천씨의 아들로 태종으로 등극한 인덕전 덕천씨의 아들 20. 무림군--- 숙의기씨의 아들로 행주기씨로 보임, 21. 유복자 도평군: 인수대비한씨의 남편으로 세종대왕으로 등극했고, 도원군이라는 군호는 도평군의 군호를 이른 것이다. 창원군이 아들. 22. 유복자 도평군; 성빈지씨의 아들. ---안순왕후가 아내로 제안대군을 낳는다.
      옹주 1. 함양옹주—성빈지씨의 딸. 충헌공파인 밀양박씨 박갱에게 시집감/도평군(덕川군 이후생)과 동시에 나온인물 2. 숙신옹주: 성주이씨 효령대군과 남매쌍둥이로 정안왕후 봉가이, 신의왕후 칠점선, 화의옹주로 불린 조영길과 정안옹주의 딸이 낳은 딸 전주이씨 효령대군과 남매쌍둥이도 숙신옹주이고, 어머니가 원경왕후로 태조의 아들과 딸이다. 경신공주도 원경왕후의 딸이며, 정순공주와 자매이다. 성주이씨 태종의 아들 3. 덕천옹주: 소신옹주의 딸로 덕천씨이며, 아버지와 낳은 딸, 소신옹주는 성주이씨 세종대왕과 태종의 딸로 해둔 옹주를 낳는다. 정효전에게 시집간 딸로 보인다. 4. 고성옹주; 회안대군 박씨의 아들인 인천옹주의 아버지인 순천박씨로 간 회안대군의 쌍둥이 아들의 딸로 보인다. 5. 상원옹주: 성주이씨 세종대왕의 딸로 숙의평창이씨(우왕과 영선옹주의 딸)로 보인다. 신소궁주 권씨의 어머니이다. 단종의 외할머니임, 6. 상원옹주; 일본인 한명회의 딸—조효산에게 시집감. 7. 전산옹주; 전주이씨로 보임. 8. 인천옹주“ 박강생의 딸로 회안대군의 쌍둥이 아들의 딸로 보임, 9. 함안옹주: 영안대군 나씨의 딸로 보임, 10. 안성옹주; 세종 박강생의 딸 11. 홍륜과 덕안대군이 동시에 낳은 장천군과 남매쌍둥이인 순천옹주(장천옹주). 숙의 윤씨의 딸
      벽도는 파독인 신혜공주의 딸이 영안대군 방과의 아버지와 낳은 딸이다. 이녹생의 아버지인 루벤스

후비들편집

왕비(王妃)
구분 시호 성씨/이름 별칭 생몰년도 비고
정비

(正妃)

정안왕후

(定安王后)

경주 김씨

(慶州 金氏)

덕비

(德妃)

1355년 ~ 1412년
후궁(後宮)

(嬪)

성빈

(誠嬪)

충주 지씨

(忠州 池氏)

숙의

(淑儀)

? ~ ? 충주 지씨 족보에 숙의 지씨와 동일인으로 등재되어 있음
숙의

(淑儀)

숙의

(淑儀)

행주 기씨

(幸州 奇氏)

기자재

(奇自在)

? ~ 1457년 여종 출신
남평 문씨

(南平 文氏)

? ~ ?
해평 윤씨

(海平 尹氏)

1368년 ~ 1417년
평창 이씨

(平昌 李氏)

? ~ 1443년
궁주

(宮主)

가의궁주

(嘉懿宮主)​

유씨

(柳氏)

가의옹주

(嘉懿翁主)

? ~ ?
시비

(侍婢)

기매

(其每)

1417년 환관과 간통하였으나 자식이 있다 하여 참수당하지는 않음
기생

(妓生)

초궁장

(楚宮粧)

정종이 상왕일 때 가까이 하던 기생으로, 1415년 세자였던 양녕대군과 사통하여 태종에 의해 궁에서 쫓겨남​

아들들편집

시호 별칭 이름 부인 생몰년도 생모 비고
1 민간공 의평군

(敏簡公 義平君)

원윤

(元尹)

이원생

(李元生)

의혜택주 최씨

(義惠宅主 崔氏)

? ~ 1461년 성빈 지씨
2 충간공 순평군

(忠簡公 順平君)

이군생

(李羣生)

옥천군부인 설씨

(玉川郡夫人 薛氏)

1392년 ~ 1456년 숙의 기씨
3 효희공 금평군

(孝僖公 錦平君)

이의생

(李義生)

남양 홍씨

(南陽 洪氏)

? ~ 1435년
4 양정공 선성군

(良靖公 宣城君)

원윤

(元尹)

이무생

(李茂生)

오천군부인 정씨

(烏川郡夫人 鄭氏)

1392년 ~ 1460년 성빈 지씨
안강군부인 김씨

(安康郡夫人 金氏)

평산군부인 한씨

(平山郡夫人 韓氏)

5 공안공 종의군

(恭安公 從義君)

종의정

(從義正)

이귀생

(李貴生)

양구 유씨

(柳氏)

1393년 ~ 1451년
해풍 장씨

(海豊 張氏)

6 이간공 진남군

(夷簡公 鎭南君)

진남정

(鎭南正)

이종생

(李終生)

의춘군부인 남씨

(宜春郡夫人 南氏)​

1393년 ~ 1470년 숙의 이씨
7 희정공 수도군

(僖靖公 守道君)

수도정

(守道正)

이덕생

(李德生)

여성군부인 송씨

(礪城郡夫人 宋氏)

? ~ 1449년 숙의 윤씨
8 혜안공 임언군

(惠安公 林堰君)

임언정

(林堰正)

이녹생

(李祿生)

군부인 박씨

(郡夫人 朴氏)

1399년 ~ 1432년
9 정혜공 석보군

(靖惠公 石保君)

석보정

(石保正)

이복생

(李福生)

학성군부인 김씨

(鶴城郡夫人 金氏)

1399년 ~ 1477년
10 적덕공 덕천군

(積德公 德泉君)

덕천정

(德泉正君)

이후생

(李厚生)

고택군부인 이씨

(高澤郡夫人 李氏)

? ~ 1456년 성빈 지씨
11 정혜공 임성군

(靖惠公 任城君)

임성정

(任城正)

이호생

(李好生)

평창 이씨

(平昌 李氏)

? ~ ?
12 효헌공 도평군

(孝獻公 桃平君)

도평도정

(桃平都正)

이말생

(李末生)

용인 이씨

(龍仁 李氏)

1402년 ~ 1439년
전주 최씨

(全州 崔氏)

13 공소공 장천군

(恭昭公 長川君)

장천도정

(長川都正)

이보생

(李普生)

산양군부인 최씨

(山陽郡夫人 崔氏)

? ~ ? 숙의 윤씨
14 정희공 정석군

(靖僖公 貞石君)

정석도정

(貞石都正)

이융생

(李隆生)

충원군부인 권씨

(忠原郡夫人 權氏)

1409년 ~ 1464년 숙의 기씨
15 소이공 무림군

(昭夷公 茂林軍)

무림정

(茂林正)

이선생

(李善生)

양덕군부인 홍씨

(陽德郡夫人 洪氏)

1410년 ~ 1474년
16 지운

(志云)

? ~ 1424년 시비 기매 다른 남자와 간통한 이유로 정종은 지운을 아들로 인정하지 않음
17 원자

(元子)

불노

(佛奴)

? ~ ? 가의궁주 유씨 정종이 불노를 보호하기 위해 아들로 인정하지 않음

딸들편집

시호 별칭 부마 생몰년도 생모
1 함양옹주

(咸陽翁主)

함양군주

(咸陽郡主)

지돈녕 밀양위 박갱

(知敦寧 密寧尉 朴賡)

? ~ ? 성빈 지씨 또는 숙의 윤씨
2 숙신옹주

(淑愼翁主)

양평공 김세민

(良平公 金世敏)

1401년 ~ 1486년 숙의 기씨
3 덕천옹주

(德川翁主)

덕천군주

(德川郡主)

행부사 변상복

(行府使 邊尙服)

? ~ ? 생모 미상
4 고성옹주

(高城翁主)

고성군주

(高城郡主)

지중추 호평공 김한

(知中樞 胡平公 金澣)

5 상원옹주

(祥原翁主)

상원군주

(祥原郡主)

행사직 조효산

(行司直 趙孝山)

숙의 기씨
6 전산옹주

(全山翁主)

안성군주

(安城郡主)

행사직 이희종

(行司直 李希宗)

생모 미상
7 인천옹주

(仁川翁主)

인천군주

(仁川郡主)

행부사 이관식

(行府使 李寬植)

숙의 윤씨
8 함안옹주

(咸安翁主)

함안군주

(咸安郡主)

부지돈녕 월림군 소정공 이항신

(副知敦寧 月林君 昭靖公 李恒信)

생모 미상

정종이 등장한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연도 방송사 제목 배우
1978년 MBC 연지 박광남[15]
1983년 KBS 개국 남성식
1983년 MBC 추동궁 마마 이영후
1996년~1998년 KBS 용의 눈물 태민영
2008년 KBS 대왕 세종 노영국
2012년 SBS 대풍수 오희준
2014년 KBS 정도전 이태림
2015년 SBS 육룡이 나르샤 서동원

같이 보기편집

정종대왕의 가족

1.불로; 해남윤씨 루벤스; 가의궁주 유씨

2.의평군---숙의지씨

3.순평군(성주이씨)--- 숙의 기씨

4, 금평군; 행주기씨

5. 금평군; 성주이씨 양녕대군의 아들--- 숙의 기씨

6. 선성군----`숙의지씨의 아들로 박자춘의 부인인 지윤의 딸/강사덕의 장인이고, 강사덕은 박강생의 장인이다.

진안대군의 이버지이다.

7, 선성군— 원경왕후민씨와 공민왕의 아들

8.종의군— 덕안대군(신의왕후의 아들, --숙의 문씨(영선옹주)

9. 진남군; 성주이씨세종대왕의 아들,

10. 진남군: 일본인 한명회의 아들

11.지운--- 양녕대군과 동시에 나온 기매의 아들로 기매는 홍륜과 반야의 딸로 공민왕에게 들키자 홍륜이 살해했다.

12. 수도군; 성주이씨 숙의 윤씨

13. 임언군; 루벤스 해남윤씨;;숙의 윤씨

14. 덕泉군 이후생; 해남윤씨-- 영안대군 정종의 아들- 성빈충주지씨의 아들

덕泉군 이후생: 함양옹주와 남매쌍둥이로 함양옹주는 아버지가 박강생이다.

루벤스 정종대왕의 아들로  성빈충주지씨의 아들이다.

15. 덕川군(도평군: 예종: 덕천씨)--숙의 윤씨의 아들; 세종으로 들어온다.

16. 임성군: 덕천 태종의 아들, 숙의지씨

17. 도평군 말생; 덕천씨로 인덕전인 성비원씨의 아들인 인덕전의 아들로 태종으로 다시온다. 태종의 아들인 덕천씨가 덕천군이다. 성빈충주지씨의 아들---강옥이 도평군이다.

18. 석보군---숙의 윤씨--- 성주이씨로 보인다. 영선옹주의 아들로 보임,

19. 장천군; 숙의윤씨와 덕안대군의 아들로 홍륜의 딸인 순천옹주(장천옹주. 화순옹주)와 동시에 나온 덕안대군 왕씨의 아들

20. 정석군; 숙의 기씨의 아들로 덕천씨 인덕전의 아들, 덕천씨가 성비 원씨의 아들이었다.

21. 무림군--- 숙의기씨의 아들로 행주기씨로 보임,

22.. 유복자 도평군(덕천군)인수대비한씨의 남편으로 세종대왕으로 등극했고, 도원군이라는 군호는 도평군의 군호를 이른 것이다. 창원군이 아들.

23. 유복자 도평군; 성빈지씨(신혜공주와 박강생이 낳은 딸로 심온의 아내가 되어 딸을 낳는다. 지효생의 딸은 박절문의 아내가 된다.

. ---안순왕후가 아내로 제안대군을 낳는다.

    성빈지씨의 아들(파독, 이지의 아내 김씨, 벽도,덕중, 소헌왕후, 문화지씨드으로 불림) --세종대왕으로 등극하여 덕원군이라는 군호. 덕종이라는 군호는 덕천군의 호를 계승한 한 것이다. 함양공주와 동시에 태어난다.

옹주

1. 함양공주—숙의 윤씨의 딸. 충헌공파인 밀양박씨 박갱에게 시집감/함양옹주가 함양공주를 낳는다. 밀양박씨 박강생의 딸이다.

2. 숙신옹주: 성주이씨 효령대군과 남매쌍둥이로 정안왕후 봉가이, 신의왕후 칠점선, 화의옹주로 불린 조영길과 정안옹주의 딸이 낳은 딸

전주이씨 효령대군과 남매쌍둥이도 숙신옹주이고, 어머니가 원경왕후로 태조의 아들과 딸이다.

경신공주도 원경왕후의 딸이며, 정순공주와 자매이다. 성주이씨 태종의 아들

3. 덕천옹주: 소신옹주의 딸로 덕천씨이며, 아버지와 낳은 딸, 소신옹주는 성주이씨 세종대왕과 태종의 딸로 해둔 옹주를 낳는다. 정효전에게 시집간 딸로 보인다.

4. 고성옹주; 회안대군 박씨의 아들인 인천옹주의 아버지인 순천박씨로 간 회안대군의 쌍둥이 아들의 딸로 보인다.

5. 상원옹주: 성주이씨 세종대왕의 딸로 숙의평창이씨(우왕과 영선옹주의 딸)로 보인다.

신소궁주 권씨의 어머니이다. 단종의 외할머니임,

6. 상원옹주; 일본인 한명회의 딸—조효산에게 시집감.

7. 전산옹주; 전주이씨로 보임.

8. 인천옹주“ 박강생의 딸로 회안대군의 쌍둥이 아들의 딸로 보임,

9. 함안옹주: 영안대군 나씨의 딸로 보임,

10. 안성옹주; 세종 박강생의 딸

11. 홍륜과 덕안대군이 동시에 낳은 장천군과 남매쌍둥이인 순천옹주(장천옹주). 숙의 윤씨의 딸


벽도는 파독인 신혜공주의 딸이 영안대군 방과의 아버지와 낳은 딸이다. 이녹생의 아버지인 루벤스

참고편집

  1. * 비교, 임진왜란선조 25년(1592) 음력 4월 13일 ~ 선조 31년(1598) 음력 11월 19일까지 6년 7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2. * 출처, 《한민족 전쟁사 총론 (韓民族戰爭史總論)》(저자:이재 외 5인, (주)교학연구사 1988년 초판 출판), 144∼149쪽
  3. * 출처, 《한민족 전쟁사 총론 (韓民族戰爭史總論)》(저자:이재 외 5인, 편저:육사 사학과, (주)교학연구사 1995년 재판본 출판)
  4. * 자제위, 공민왕 21년(1372)에 궁중에 둔 관청. 중국 원(元)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인재 양성을 통해 국권과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설치하였다. 권문세족 및 관료층의 자녀들로 구성되었다.
  5. * 이인임(李仁任), 공민왕이 시해된 후, 명덕태후(공민왕의 친모)와 대립하였으나 끝내 고려 우왕을 옹립하였다. 명덕태후와 함께 모사하여 고려 우왕의 생모인 반야를 익사, 살해하였다.(우왕 2년, 1376)
  6. * 태조의 조선건국
  7. * 경적(經籍), 옛 성현들이 유교의 사상과 가르침을 적어 놓은 책.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말한다.
  8. * 조선왕조실록 정종 3권, 2년(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2월 4일(기해) 1번째기사
  9. 세종 5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9월 26일(무진) 1번째기사 노상왕이 인덕궁에서 훙하다
  10.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의 원칙으로 조선왕실의궤(朝鮮王室儀軌)는 조선시대 600여 년에 걸친(1392∼1910) 왕실의 주요 행사(결혼식, 장례식, 궁중연회, 사신영접 등)가 시기별ㆍ주제별로 정리되어 있어 조선왕조의 의식변화 등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국가의식의 핵심을 이루는 길례(吉禮, 제사), 가례(嘉禮, 혼인 등), 빈례(賓禮, 사신 접대 등), 흉례(凶禮, 장례 등), 군례(軍禮, 군사 훈련 등)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의식의 흐름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11. 세종 5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9월 26일(무진) 4번째기사 백관과 함께 인덕궁에 나아가 곡하다
  12. 세종 5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9월 27일(기사) 2번째기사 의평군 이원생을 대리상주로 하여 돌아간 왕의 소렴전을 올리다
  13. “조선왕조실록”. 2017년 6월 25일에 확인함. 
  14. * 조선시대 왕족의 무덤은 능, 원, 묘로 구분할 수 있다.
    • 능(陵)은 추존왕, 추존왕비를 포함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의 사친(私親: 종실로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임금의 생가 어버이)의 무덤을 일컫는 말이다.
    • 묘(墓)는 왕의 아들, 딸인 대군과 공주, 왕의 서자, 서녀인 군과 옹주, 왕의 첩인 후궁, 귀인 등의 무덤을 말한다.
  15. “왕위 독점한 수사본부 팀”. 1978년 11월 21일. 
전임
이성계
권지고려국사
1398년 ~ 1400년
후임
이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