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용어 목록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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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아뇩다라
편집아뇩다라(阿耨多羅, 산스크리트어: anuttara, 팔리어: anuttara, 영어: unsurpassed[1])는 산스크리트어 아누타라(anuttara)의 음역어로, 의역하여 무상(無上) 또는 무답(無答)이라고 한다.[2][3][4] 무상사(無上士)라고도 번역하며, 여래10호 가운데 하나이다.[5]
아사
편집아사(我事)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의 일' 또는 '나에 관련된 일'로,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나[我]' 또는 '내 것[我所]'이라고 계집(計執: 계탁하여서, 생각하여서 집착함, 헤아려서 집착함)하는 것, 즉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나[我]' 또는 '내 것[我所]'이라고 계탁하여서 5온의 개별 또는 다수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6][7][8][9]
《대승아비달마집론》과 《잡집론》에 따르면, 아사(我事)에는 신구아사(身具我事) · 수용아사(受用我事) · 언설아사(言說我事) · 조작일체법비법아사(造作一切法非法我事) · 피소의지아자체사(彼所依止我自體事)의 5가지가 있으며, 이들 5가지는 크게 아상사(我相事)와 아소사(我所事)로 분류된다.[6][7][8][9]
아상사(我相事)는 '나[我]라는 계집(計執)', 즉,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나[我]'라고 계탁하여서 5온의 개별 또는 다수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피소의지아자체사가 아상사에 속한다.[8][9]
아소사(我所事)는 '내 것[我所]이라는 계집(計執)', 즉, 5온의 개별 또는 다수를 '내 것[我所]'이라고 계탁하여서 5온의 개별 또는 다수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며, 신구아사 · 수용아사 · 언설아사 · 조작일체법비법아사의 4가지가 아소사에 속한다.[8][9]
《잡집론》에 따르면, 세간의 유정들 즉 성인의 가르침(특히, 불교)을 받지 못한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5온 가운데 식온에 대해 '나[我]'라고 계집(計執)하는 일, 즉 아상사를 가지며, 그 밖은 다른 온, 즉 색온 · 수온 · 상온 · 행온에 대해서는 '내 것[我所]이라고 계집(計執)하는 일, 즉 아소사를 가진다.[8][9]
아집
편집아집(我執)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견해 또는 집착이다.[10] 아집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한다.[11]
악견
편집악견(惡見)은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라는 뜻으로 부정견(不正見)과 같은 말이다. '잘못된 견해' 또는 '삿된 견해'라는 뜻의 사견(邪見)과도 같은 말이며, '망녕된 견해'라는 뜻의 망견(妄見)과도 같은 말이며, '번뇌에 오염된 견해'라는 뜻의 염오견(染汚見)과도 같은 말이다. '바른 견해'라는 뜻의 정견(正見)의 반대말이다.[12][13][14][15][16][17] 자세한 내용은 부정견을 참조하십시오.
악구
편집악구(惡口)는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또는 남을 성내게 할 만한 나쁜 말을 말한다. 추악어(麤惡語) 또는 조악어(粗惡語)라고도 한다.[18][19][20]
악구는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악법
편집악작
편집악작(惡作, 산스크리트어: kaukṛitya, kaukritya, 팔리어: kukkucca, 영어: regret, worry) 또는 회(悔)는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 고타마 붓다가 설한 5개(五蓋) 중의 도회개(掉悔蓋)에 해당한다.[25][26][27][28][29]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가운데 하나이다.[30][31][32]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의 부정심소(不定心所: 4가지) 가운데 하나이다.[33][34][35][36][37][38]
악작(惡作)은 후회(後悔)를 뜻하며, 후회를 전통적인 불교용어로는 추회(追悔)라고 한다. 간단히, 회(悔)라고도 한다. 또한, 이전의 잘못된 행위를 후회한다는 뜻의 악작(惡作: 즉, 잘못된 행위 → 후회)은 이전의 잘못된 행위를 염오(厭惡) 또는 혐오(嫌惡)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 입장에서는 오작(惡作: 잘못된 행위를 미워함)이라고도 한다.[38][39][40][41][42][43][44]
악행
편집1. 악행(惡行)의 일반 사전적인 뜻은 '악독(惡毒)한 행위'[45] 또는 '마음이 흉악하고 독한 행위'[46]를 말하는데, 불교에서는 말과 행동과 뜻으로 지은 일체의 불선(不善)의 행위를 말한다. 즉, 일체의 불선(不善)의 3업(三業), 즉 일체의 불선(不善)의 신업(身業) · 구업(口業) · 의업(意業)을 말한다.[47][48] 불선(不善)은 악(惡)이라고도 하며, 현세나 내세에 자기나 남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성질을 가진 것을 말한다.[49]
《장아함경》 제8권에는 불선(不善)의 신업(身業)을 신악행(身惡行)이라 하고, 불선(不善)의 구업(口業)을 구악행(口惡行), 불선(不善)의 의업(意業)을 의악행(意惡行)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악행(惡行)은 신악행 · 구악행 · 의악행의 3악행(三惡行)을 말한다.[47]
불교에서는 모든 악행 중에서 승가(僧迦)의 화합을 파괴하는 파승(破僧), 즉 파화합승(破和合僧)의 악행을 가장 악한 행위로 본다.[48] 즉, 불교에서는 진리를 전수하고 그리고 그것을 전수받을 사람들이 함께 모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진리를 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박탈시키는 것을 최악의 악행으로 본다.
악혜
편집안
편집1. 안[內]은 외적인 것[外]에 대해 내적인 것[內]을 뜻한다. 참고: 내외(內外)
2. 안(安)은 경안(輕安)의 다른 말이다.
안근
편집안근(眼根, 산스크리트어: caksur-indriya, 팔리어: cakkhundriya)은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 5근(五根) 또는 6근(六根) 가운데 하나이다.[51]
- 초기불교의 5온(五蘊)의 법체계에서 색온(色蘊)에 속한다.[52]
- 초기불교의 12처(十二處)의 법체계에서 안처(眼處)에 해당한다.[51][53]
- 초기불교의 18계(十八界)의 법체계에서 안계(眼界)에 해당한다.[51][54]
-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22근(二十二根) 가운데 하나이다.[55][56]
-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의 법체계에서 색법(色法: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57][58]
-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서 색법(色法: 11가지) 가운데 하나이다.[59][60]
- 4대종으로 만들어진 이차적인 물질(색)인 소조색(所造色) 가운데 하나이다.[57][58][61][62]
- 5근(五根)과 5경(五境)을 통칭하는 10색입(十色入) 또는 10색처(十色處) 가운데 하나이다.[52]
- 색(色: 물질)을 미진적취색(微塵積聚色)과 비미진적취색(非微塵積聚色)의 2그룹으로 나눌 때 미진적취색에 속한다.[52]
- 색(色: 물질)을 유견유대(有見有對) · 무견유대(無見有對) · 무견무대(無見無對)의 3그룹으로 나눌 때 무견유대에 속한다.[52]
안근(眼根)은 시각기관을 말하며,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안근은 안식(眼識)의 소의(所依: 발동근거, 의지처, 도구)가 되는 정색(淨色: 맑고 투명한 물질)이다.[63][64]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 따르면 안근은 안식(眼識)의 소의(所依: 발동근거, 의지처, 도구)가 되는 정색(淨色: 맑고 투명한 물질)인데, 다만 이 정색은 아뢰야식에 존재하는 종자일 뿐이라고 하는 난타(難陀) 등의 견해와 종자와는 별도의 현행하는 정색이라는 호법(護法) 등의 견해가 있다.[65]
마치 거울이 대상을 비추는 것처럼 안근이 색경(色境)을 비추어 받아들이는데[取境], 이와 같이 안근이 색경을 연(緣)하여 안식(眼識)이 생겨난다[發識]. 이 때의 안근과 색경과 안식의 화합을 안촉(眼觸)이라고 한다.[65][66][67][68][69]
안식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 안식(眼識)은 식(識), 즉 마음, 즉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신(六識身) 가운데 하나로,[70][71] 안근[眼]과 색경[色]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는 안근의 인식[眼識]을 말한다. 이 때 안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색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안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색경에 대한[於眼所識色] 모든 이정당요별(已正當了別) 즉 과거의 요별[已了別] · 현재의 요별[正了別] · 미래의 요별[當了別]을 통칭하여 안식(眼識)이라 이름한다.[72][73]
안온주
편집안온주(安穩住) 또는 안온한 머무름은 안은주(安隱住)라고도 한다.[74] 안온(安穩)과 안은(安隱)은 같은 말이다.[75][76][77] 《유가사지론》 제75권에 따르면, 안은주(安隱住)는 번뇌(煩惱)와 고(苦)의 단멸(斷滅)이 증득된 상태를 말한다.[74]
안촉
편집안촉(眼觸)은 안촉(眼觸) · 이촉(耳觸) · 비촉(鼻觸) · 설촉(舌觸) · 신촉(身觸) · 의촉(意觸)의 6촉(六觸) 가운데 하나이다.[80][81][82][83] 안촉신(眼觸身)이라고도 한다.[84][85][86]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
- 안촉(眼觸)은 안근[眼]과 색경[色]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안식(眼識)이 생겨날 때의 안근 · 색경 · 안식의 3화합(三和合)으로 인한 촉[三和合故觸]이다. 이 때 안근이 증상(增上) 즉 소의(所依)가 되고 색경이 소연(所緣)이 된다. 안근에 의해 인식[識]되는 색경에 대한[於眼所識色] 모든 촉(觸: 3화합) · 등촉(等觸: 평등한 3화합) · 촉성(觸性: 3화합의 성질) · 등촉성(等觸性: 평등한 3화합의 성질) · 이촉(已觸: 과거의 3화합) · 촉류(觸類: 3화합의 등류)를 통칭하여 안촉(眼觸)이라 이름한다.[87][88]
안촉소생사
편집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품류족론》 제3권에 따르면,[89][90]
- 안촉소생사(眼觸所生思)는 안근[眼]과 색경[色]을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안식(眼識)이 생겨날 때, 안근 · 색경 · 안식의 3화합(三和合)으로 인해 촉[三和合故觸]이 생겨남과 동시에 또한 이 촉(觸)이 연(緣: 원인 또는 간접적 원인)이 되어서 생겨나는 사(思)이다.
안촉소생애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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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촉소생애(眼觸所生愛)는 안촉소생애 · 이촉소생애 · 비촉소생애 · 설촉소생애 · 신촉소생애 · 의촉소생애의 6애신(六愛身) 가운데 하나이다.
안팎
편집안팎[內外]은 내적인 것[內]과 외적인 것[外]을 말한다. 내외(內外)의 다른 말이다.
애
편집애(愛)는 탐(貪)의 다른 말이다.
탐(貪)은 갈애(渴愛, 산스크리트어: trsnā) · 욕(欲) · 애(愛) · 애탐(愛貪) · 탐독(貪毒) · 탐애(貪愛) · 탐욕(貪欲) 또는 탐착(貪著, 貪着)이라고도 한다.[93][94][95]
애결
편집애결(愛結)은 애결(愛結) · 에결(恚結) · 만결(慢結) · 무명결(無明結) · 견결(見結) · 취결(取結) · 의결(疑結) · 질결(嫉結) · 간결(慳結)의 9결(九結) 가운데 하나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에 따르면,
애락
편집애락(愛樂)은 좋아하고 즐김 또는 즐기고 좋아함의 뜻으로, 긍정적인 뜻으로도 쓰이고 부정적인 뜻으로도 쓰인다.[103][104][105]
긍적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 선심소에 속하는 신(信) 즉 믿음의 마음작용이 지닌 신실유(信實有) · 신유덕(信有德) · 신유능(信有能)의 3가지 측면으로 인해 세간과 출세간의 선(善)을 닦고 증득함을 좋아하고 즐기는[愛樂] 것을 말한다.[106][107][108][109]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 '자신 즉 소의신'과 '색(色) 등의 외적 사물'에 대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구하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105][110][111][112] 또는 숙세(宿世)의 이미 익힌 습관[串習] 즉 염오한 습기에 의해 애욕 또는 갈애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104][113] 즉,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 경우, 애락은 애욕 · 갈애 · 탐욕 · 미착 · 집착 · 탐착을 뜻한다.
애탐
편집애탐(愛貪)은 탐(貪)의 다른 말이다.
탐(貪)은 갈애(渴愛, 산스크리트어: trsnā) · 욕(欲) · 애(愛) · 애탐(愛貪) · 탐독(貪毒) · 탐애(貪愛) · 탐욕(貪欲) 또는 탐착(貪著, 貪着)이라고도 한다.[93][94][95]
액
편집액(軛, 산스크리트어: yoga, yuga, dhura, 티베트어: sbyor ba, 영어: yoke)은 문자 그대로는 소나 말 등의 가축에게 씌우는 멍에를 말하며, 속박(束縛) · 기반(羈絆) 또는 굴레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말이다.[114][115][116][117] 액(扼)이라고도 한다.[118]
이들 낱말의 사전적인 뜻은 다음과 같다.
- 액(扼): 잡다, 누르다. 움켜쥐다, 가지다, 멍에[119]
- 멍에: ①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말이나 소 등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 ②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120]
- 기반(羈絆): ① 굴레 ② 굴레를 씌우듯 자유를 얽매는 일[121]
- 굴레: 말이나 소 등을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122]
- 속박(束縛): ① 몸을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맴 ② 어떤 행위를 자유로이 못하도록 얽어매거나 제한을 더함. 얽어맴. 묶음[123]
액(軛)은 번뇌가 이계(離繫) 즉 '3계에 속박된 상태를 떠나는 것'을 장애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번뇌가 유정으로 하여금 5취 · 4생 · 9지에서 가볍거나 무거운 괴로움[苦]을 받게 하고 그 괴로움과 화합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번뇌가 괴로움을 겪게 한다는 것, 즉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면 반드시 그것에 따른 괴로움과 만나게[和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116][124][125][126][127]
액(軛)은 보통 욕액(欲軛) · 유액(有軛) · 견액(見軛) · 무명액(無明軛)의 4액(四軛)을 말한다.[118][128][129]
양설
편집양설(兩舌, 산스크리트어: paiśunya, 팔리어: pisunā-vācā)은 이간질(離間-)하는 말, 즉 양쪽 사람에게 서로 다른 말을 하여 서로 불화[離間]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간어(離間語) 또는 양설어(兩舌語)라고도 한다.[134][135][136]
양설은 다음의 분류, 그룹 또는 체계의 한 요소이다.
양설어
편집양설어(兩舌語)는 양설(兩舌)의 다른 말이다.
양자
편집양자(養者, 산스크리트어: posa, 팔리어: posa, 영어: man, nourishing, to be fed or nourished, thriving, prosperity, development, increase)는 인간을 뜻하는데, 특히 능식자(能食者), 즉 생명의 주체인 것을 말한다.[137][138][139]
어구
편집어언행
편집어언행(語言行)은 어언(語言)의 행(行, 산스크리트어: saṃskāra), 즉 언어[語言] 즉 말을 성립시키는 근거를 뜻한다. 즉, 말의 원인이 되어 그것을 능히 일으키게 하는 근거를 말한다.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마음의 거친 성질과 세밀한 성질에 해당하는 심(尋)과 사(伺)의 두 마음작용이 어언행이다. 즉 언어를 성립시키는 근거이다.[142][143][144][145][146]
어업
편집어업(語業)은 문자 그대로는 '말(언어)로 짓는 업'이라는 뜻으로 구업(口業)의 다른 말이다.
언구원만
편집언구원만(言具圓滿)은 《유가사지론》 제15권에 따르면, 논의 장엄[論莊嚴]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인 선자타종(善自他宗) · 언구원만(言具圓滿) · 무외(無畏) · 돈숙(敦肅) · 응공(應供) 가운데 하나이다.[147][148]
언구원만(言具圓滿)은 문자 그대로는 '말[言]이 원만(圓滿)하게 갖추어진 것'으로, 논서의 저자의 언어적 표현 모두가 '제대로 되지 못한 소리[非聲]'가 아닌 '제대로 된 소리[聲]'인 것을 말한다. 다시 '제대로 된 소리[聲]'란 불비루(不鄙陋) · 경이(輕易) · 웅랑(雄朗) · 상응(相應) · 의선(義善)의 5덕(五德: 5가지 특질)을 갖춘 것을 말한다. 《유가사지론》에 따르면, 이 5덕은 다음을 말한다.[147][148]
첫 번째 특질인 불비루(不鄙陋)는 문자 그대로는 '비루(鄙陋)하지 않은 것'으로, 변두리 지방과 변두리 나라의 낮고 속된 낱말과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특질인 경이(輕易)는 문자 그대로는 '경쾌하고 쉬운 것'으로, 세상에서 널리 쓰이는 표준적인 낱말과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째 특질인 웅랑(雄朗)은 문자 그대로는 '뛰어나고 밝은 것'으로, 낱말과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 재치 있고[巧] 지혜로우며[妙] 뛰어나고[雄] 훌륭한[壯] 것을 말한다.
네 번째 특질인 상응(相應)은 문자 그대로는 '서로 부합 또는 일치하는 것'으로, 앞에서 말한 법의(法義: 법의 이치)와 뒤에서 말한 법의(法義)가 서로 부합하여 흩어짐이 없는 것을 말한다.
다섯 번째 특질인 의선(義善)은 문자 그대로는 '뜻이 선한 것'으로, 설명과 표현이 능히 승생(勝生)과 정승(定勝)을 이끌어 일으키고 전도(顚倒)가 없는 것을 말한다
언설
편집언의
편집1. 《구사론》에 따르면 언의(言依, 산스크리트어: kathavastu)는 유위법의 다른 말이다. 언의(言依)는 말[語言]의 근거[所依]라는 뜻으로, 책상 혹은 하늘과 같은 명사적 단어[名, 산스크리트어: nāma, 영어: name]에 의해 드러나는 의미를 말한다. 즉 책상 혹은 하늘 등의 온갖 명사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온갖 명사가 가리키는 존재(법)를 말한다. 따라서 언의(言依: 말의 근거)는 일체의 유위제법(有爲諸法)을 모두 포섭한다.[150][151]
한편, 전통적인 용어로는, 명사 그 자체를 능전의 명(能詮의 名)이라 하며, 명사가 가리키는 존재(법)을 소전의 법(所詮의 法)이라 한다.[151][152] 능전의 명(能詮의 名)을 수설(隨說)이라고도 하며, 수설을 번역하여 따르는 말이라고도 한다.
《해심밀경》 제5권에서는 관대도리(觀待道理)를 정의하면서 수설(隨說)을 언급하는데, 인(因)이나 혹은 연(緣)이 능히 모든 행(行: 유위법)을 생겨나게 하며 또한 해당 행(行: 유위법)에 따르는 말[隨說] 즉 관련된 개념도 일으키는 것을 관대도리라 정의하고 있다.[153][154]
2. 언의(言議)는 말의 다른 말이며, 일반 사전적인 뜻은 '사람들 사이에서 전(傳)하여 들리는 말'이다.[155] 언의와 관련된 내용으로, 《현양성교론》에 따르면 상(想)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體]은 취상(取相) 즉 표상작용이고, 본질적 작용[業]은 언의(言議) 즉 말을 일으키는 것이다.[156][157]
얽어맴
편집얽어맴은 전(纏)의 다른 말이다.
업유
편집업을 짓는 자
편집업을 짓는 자는 행위자(行爲者)의 다른 말이다.
업이숙
편집업이숙(業異熟)은 업(業)의 이숙(異熟), 즉 전생(前生)에서 쌓은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이 이 생에서 태어날 때 각각 낙(樂)과 고(苦)로 성숙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숙(異熟)의 다른 말이다.
에결
편집에결(恚結)은 애결(愛結) · 에결(恚結) · 만결(慢結) · 무명결(無明結) · 견결(見結) · 취결(取結) · 의결(疑結) · 질결(嫉結) · 간결(慳結)의 9결(九結) 가운데 하나이다.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에 따르면,
에해의
편집에해의(恚害意)는 미워하거나 해치려는 마음 또는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을 말하는데, 《아미달마장현종론》에 따르면 근본번뇌이자 불선근 가운데 하나인 진(瞋)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이며, 무애헤의(無恚害意)의 애민종자(哀愍種子) 즉 미워하거나 성내거나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애민(哀愍)의 종자는 선근 가운데 하나인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이다.[167][168]
여근
편집여근(女根, 산스크리트어: strīndriya, 팔리어: itth-indriya)은 22근(二十二根) 가운데 하나이며, 남녀2근(男女二根) 또는 그 줄임말인 2근(二根) 가운데 하나로, 여자의 생식기를 말한다.[169][170]
'근(根)'은 증상력(增上力) 즉 뛰어난 힘 또는 작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남근과 여근의 2근은 모두 유정이(有情異) · 분별이(分別異)의 2가지 증상력을 가진다. 이 2가지 증상력을 전통적인 용어로 여남근2증상(女男根二增上) 즉 여근과 남근의 두 가지 증상이라 한다.[171][172]
여래
편집여래(如來)는 부처의 10가지 명호(名號:佛十號) 중의 하나이다. ‘진리를 완전히 깨달은[如, '等'正覺] 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來]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이러한 의미의 여래의 전형적인 경우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
편집여래장(如來藏, 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은 모든 중생의 번뇌의 몸 가운데에 감추어져 있는 본래의 청정하고 영원불변한 본성을 말한다.[173]
여리해
편집여리해(如理解)는 진리[理]에 계합[如]하는 이해[解] 즉 참다운 이해를 말한다.[174][175] 《품류족론》과 《구사론》에 따르면 이해(理解) 즉 해(解)는 혜의 8가지 다른 이름인 지(智) · 견(見) · 명(明) · 각(覺) · 해(解) · 혜(慧) · 광(光) · 관(觀) 가운데 하나이다.[176][177] 보광(普光)의 《구사론기(俱舍論記)》 제26권에 따르면, 해(解)는 달해(達解: 통달, 막힘없는 앎, 막힘없는 풀이)를 뜻한다.[178]
《현종론》에 따르면, 치(癡) 즉 무명(無明) 또는 어리석음은 소지경(所知境: 알아야 할 대상)에 대한 여리해가 장애되어 있는 무변료상(無辯了相: 분별과 앎이 없는 상태)이다. 즉, 대상에 대한 참다운 이해 또는 앎이 없는 상태이다.[174][175]
여소유성
편집여소유성(如所有性)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여여히 있는 성질 → 영원한 성질' 또는 '존재하는 바 그대로의 성질 → 진실한 성질'로, 줄여서 여소유(如所有)라고도 한다. 진제(眞締)의 이체(理體)를 뜻한다.[179][180] 반대말: 진소유성(盡所有性), 진소유(盡所有)
여
편집1. 여(如, 산스크리트어: nyāya)는 '바른 이치에 계합하는 것[契正理]'을 뜻한다. 4성제의 도제 즉 성도(聖道)를 가리키는 말이다.[181][182]
2. 여(如, 산스크리트어: nyāya)는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4제 16행상(四諦 十六行相: 4성제를 관찰하는 16종의 관법 또는 관행[183]) 가운데 하나로, 4성제 중 도제에 대한 4가지 관찰[觀法 또는 觀行]인 도(道) · 여(如) · 행(行) · 출(出) 가운데 여(如)를 말한다. 이것은 '도제 즉 성도(聖道)에 대하여, 성도는 바른 이치에 계합하는 것[契正理]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러한 수행[行相]을 여(如)라고 한다.[181][182][184]
3. 여(餘)는 여의(餘依)의 줄임말이다. 여의(餘依)는 '아직 남아 있는 의신(依身) 즉 소의신(所依身) 즉 육체'를 말하는데, 육체가 존재함에 따라 그에 따라 아직 남아 있는 마음[情]과 형상(形象: 즉 육체)을 뜻한다. 이런 문맥에서, 유여열반(有餘涅槃) 또는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은 육체를 지니면서도 번뇌를 끊었을 경우를 의미하며, 무여열반(無餘涅槃) 또는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은 육체도 소멸했을 경우를 의미한다.[185]
여근과 남근의 두 가지 증상
편집여근과 남근의 2가지 증상[女男根二增上] 또는 여남근2증상(女男根二增上)은 22근 가운데 남근(男根) · 여근(女根)의 남녀2근(男女二根)이 가진 두 가지 뛰어난 작용력인 유정이(有情異)와 분별이(分別異)를 말하는 것으로, 남녀2근의 증상[男女二根增上]의 전통적인 표현이다.
여리소인
편집여리소인(如理所引)은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서 혜(慧)의 3가지 종류로 설하는 여리소인(如理所引) · 불여리소인(不如理所引) · 구비소인(俱非所引) 가운데 하나이다.[186][187][188][189]
여리소인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이치[理]에 맞게[如] 이끌어냄[所引]'으로, 이치[理]에 맞게 택법(擇法)하는 것을 뜻하며,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이것은 불제자(佛弟子: 부처의 제자)들의 택법(擇法) 즉 지혜[慧]를 뜻한다. 한편, 불여리소인은 외도(外道)들의 택법 즉 지혜를 뜻하고, 구비소인은 나머지 중생들의 택법 즉 지혜를 뜻한다.[188][189]
여실
편집1. 여실(如實)은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것 · 진실에 계합하는 것 · 사실에 계합하는 것 · 실제에 계합하는 것 · 사실 그대로 · 있는 그대로 또는 진실하게를 뜻한다. 즉, 여실(如實)에서 여(如)는 계합(契合) 또는 상응(相應)을 의미하고, 실(實)은 진실한 이치 · 진실 · 실제 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의미한다.[190][191]
예를 들어, 여실(如實)한 사유(思惟)는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사유, 즉 참다운 사유를 말하고, 여실(如實)하지 못한 사유(思惟)는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지 못하는 사유, 즉 진실한 이치와는 어긋나는 사유, 참답지 못한 사유, 올바르지 못한 생각을 말한다. 다른 예로, 여실수행(如實修行)은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수행을 말한다.
다른 예로, 여실(如實)히 지은 과악(過惡)을 드러내는 것은 '있는 그대로' 즉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 과악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바른 가르침을 스승 등이 줄 수 있게 된다.[192][193]
《대승광오온론》의 해설에 따르면, 여실(如實) 즉 진실한 이치에 계합하는 것은 좁은 뜻으로는 4성제와 계합하는 것을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12연기와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194][195]
2. 여실(如實)은 진여(眞如)의 다른 말이다. 이 경우에서, 여(如)는 평등(平等)을 뜻한다. 따라서, 여실(如實)은 '평등[如]한 진실[實]'을 뜻하는데, 일체의 만법(萬法)의 진실한 모습 즉 실상(實相)은 진여 또는 불성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平等無二], 또는 일체의 만법(萬法)의 진실한 모습 즉 실상(實相)은 평등하여 모든 법 서로 간에 다름이 없다는 것[平等無異]을 가리키는 말이다.[190][191]
여실수행
편집여실수행(如實修行)은 여실(如實)한 수행, 즉 '진실한 이치[實]'에 계합[如]하는 수행을 말한다.[190][191]
여실정행
편집여실정행(如實正行)은 줄여서 정행(正行) 즉 바른 실천이라고도 하는데, 여실(如實)한 정행(正行) 즉 '진실한 이치[實]'에 계합[如]하는 바른[正] 실천[行]'을 뜻한다.
정행(正行) 즉 바른 실천은 8정도나 6바라밀 등을 말한다.[196]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여실정행 또는 정행은 좁은 뜻으로는 4성제에 계합하는 바른 실천을 말하며, 넓은 뜻으로는 12연기에 계합하는 바른 실천을 말한다.[194][195]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여실정행 또는 정행은 무치(無癡: 어리석음이 없음, 어리석지 않음) 또는 정지(正知: 바른 앎)와 동의어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치 또는 정지의 본질[性]이다.[197][198][194][195]
연
편집1. 연(緣, 산스크리트어: pratyaya, 팔리어: paccaya)은 결과가 생겨나게 하는데 있어 거기에 참여하는 모든 직접적 · 간접적 원인을 뜻한다.[199][200]
2. 연(緣, 산스크리트어: pratyaya, 팔리어: paccaya)은 결과가 생겨나게 하는데 있어 간접적인 원인을 뜻한다. 이에 대해 인(因, 산스크리트어: hetu)은 결과가 생겨나게 하는데 있어 직접적인 원인을 뜻한다.[199][200]
이 경우, 인연(因緣) ·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 · 등무간연(等無間緣)의 4연(四緣) 가운데, 인연(因緣)은 인(因) 즉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하고 소연연(所緣緣) · 증상연(增上緣) · 등무간연(等無間緣)은 연(緣) 즉 간접적인 원인에 해당한다.[199][200]
3. 연(緣, 산스크리트어: pratyaya, 팔리어: paccaya)은 괴로움이라는 결과[苦果]를 이루게 하는 간접적인 원인을 뜻하는데, 유루(有漏)를 가리키는 말이다.[201][202]
4. 연(緣, 산스크리트어: pratyaya, 팔리어: paccaya)은 불교의 수행법 중 하나인 4제 16행상(四諦 十六行相: 4성제를 관찰하는 16종의 관법 또는 관행[183]) 가운데 하나로, 4성제 중 집제에 대한 4가지 관찰[觀法 또는 觀行]인 인(因) · 집(集) · 생(生) · 연(緣) 가운데 연(緣)을 말한다. 이것은 '유루(有漏)라는 원인에 대하여, 마치 햇빛 · 공기 · 수분 · 온도 등의 간접적 원인[緣]이 나무의 직접적 원인[因]인 씨앗 즉 종자(種子)를 도와 나무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처럼[能令成辦], 유루는 괴로움이라는 결과[苦果]를 이루게 하는 간접적인 원인[緣]이라고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러한 수행[行相]을 연(緣)이라고 한다.[201][202][184]
연품
편집연품(軟品)은 어떤 일 또는 법을 난이도의 측면에서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의 순서로 하품(下品) · 중품(中品) · 상품(上品)으로 구분할 때, 하품(下品)을 말한다.[203][204]
열
편집1. 열(悅)은 《아비달마구사론》 제3권에 따르면, 신열(身悅) 즉 육체적 즐거움 또는 기쁨이건 혹은 심열(心悅) 즉 정신적 즐거움 또는 기쁨이건 즐거움 또는 기쁨을 통칭하며, 섭익(攝益) 즉 섭수(攝受: 받아들임, 충족됨)와 장익(長益: 이익을 증대시킴)의 뜻을 가진다. 이의 반대로, 불열(不悅)은 육체적 손상시킴[損]과 괴롭힘[惱]의 느낌이건 정신적 손상시킴과 괴롭힘의 느낌이건 손상시킴과 괴롭힘의 느낌, 즉 손뇌(損惱: 손상시키고 괴롬힘)의 느낌을 통칭한다. 즉, 불열은 손뇌의 뜻을 가진다.[205][206]
2. 열(劣)은 저열한 것 · 저열한 법 · 열등한 것 · 열등한 법 · 못한 것 또는 못한 법이라는 뜻으로, 5온 각각이 가지는 과거(過去) · 미래(未來) · 현재(現在) · 내(內) · 외(外) · 추(麤) · 세(細) · 열(劣) · 승(勝) · 원(遠) · 근(近)의 총 11가지의 품류차별 또는 품류, 즉 11품류 가운데 '열'을 말한다.[207][208]
번뇌에 오염된 색 · 수 · 상 · 행 또는 식을 뜻하며,[209][210] 혹은 뜻에 맞지 않은 즉 마음에 들지 않는[非可意] 색 · 수 · 상 · 행 또는 식을 뜻한다.[211][212]
《아비달마구사론》 제19권에 따르면, 열(劣)은 유루, 즉 무루성혜[聖] 또는 성도[聖]에 의해 끊어지는 것을 뜻하며, 5견 가운데 견취(見取)는 열(劣)을 승(勝)이라고 여기는 견해 즉 유루를 무루라고 여기는 견해이다.[213][214]
열뇌
편집1. 열뇌(熱惱)의 일반 사전적인 의미는 '극심한 괴로움'인데, 불교 용어로서는 '흥분[熱]하여서 또는 극심[熱]하게 다른 유정을 괴롭히[惱]는 것'을 말한다.[215] 《성유식론》 제6권 등에 나오는 불교의 심소론 또는 번뇌론에 따르면, 열뇌는 곧 수번뇌심소 가운데 하나인 뇌(惱) 즉 괴롭힘의 마음작용을 말한다.[216][217]
2. 열뇌(熱惱)는 음욕(婬欲) 즉 성욕(性慾)을 뜻한다. 이 경우 뜨거운 번뇌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6욕천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열뇌 즉 음욕을 가진다.[218][219]
염
편집1. 염(念,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inspection, recollection, retention)은 설일체유부의 5위 75법에서 심소법(心所法: 46가지) 중 대지법(大地法: 10가지) 가운데 하나이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5위 100법에서 심소법(心所法: 51가지) 중 별경심소(別境心所: 5가지) 가운데 하나이다.[220][221] 염(念)은 기억작용이다. 즉, 대상을 명백히 기억[明記]하여 잊어버리지 않는 마음작용이다.[220][222]
2. 염(厭: 싫어함)은 염환(厭患: 싫어하고 근심으로 여김)을 뜻한다.
3. 염(厭: 싫어함)은 유전연기와 그 결과물인 생사윤회를 염오(厭惡: 싫어하고 미워함)하게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 한편, 흔(欣)은 환멸연기와 그것에 의해 증득되는 열반을 흔락(欣樂)하게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223][224]
염심
편집2. 염심(念心)은 보살의 수행계위인 10신 · 10주 · 10행 · 10회향 · 10지 · 등각 · 묘각의 52위 가운데 첫 번째 그룹인 10신(十信)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계위이다.
《보살영락본업경》 상권 〈2. 현성명자품(賢聖名字品)〉에 따르면 10신은 신심(信心) · 염심(念心) · 정진심(精進心) · 혜심(慧心) · 정심(定心) · 불퇴심(不退心) · 호심(護心) · 회향심(廻向心) · 계심(戒心) · 원심(願心)이다.[225][226]
한편 이 경전의 하권 〈4. 석의품(釋義品)〉에 따르면 10신은 신심(信心) · 진심(進心) · 염심(念心) · 혜심(慧心) · 정심(定心) · 계심(戒心) · 회향심(廻向心) · 호법심(護法心) · 사심(捨心) · 원심(願心)이다.[227][228]
염오
편집염오(染污)는 번뇌에 물들어 혼탁해진 것을 말하는데,[229][230] 부정(不淨: 맑고 명료하지 못함)과 동의어이다.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번뇌에 물든 것을 염오심(染污心), 즉 염오(染污)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 또는 오염(污染)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라 하는데, 염오한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사물[事]과 이치[理]를 명료하게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의 상태에 있게 된다.[220][231]
염오견
편집염오견(染汚見)은 '번뇌에 오염된 견해'라는 뜻으로, '(모든) 삿된 견해'라는 뜻의 사견(邪見)과 같은 말이며, '망녕된 견해'라는 뜻의 망견(妄見)과도 같은 말이며, '진리에 어긋나는 잘못된 견해'라는 뜻의 악견(惡見) 또는 부정견(不正見)과도 같은 말이다. '바른 견해'라는 뜻의 정견(正見)의 반대말이다.[12][13][14][15][16][17][232][233]
염작의
편집염작의(厭作意)는 선한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인 염(厭)의 마음작용과 상응하는 것 또는 염(厭)의 마음작용과 상응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234][235]
염환
편집염환(厭患)은 문자 그대로의 뜻에 따르면 싫어하고 근심함 또는 싫어하고 근심으로 여기는 것이다.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염환은 생사(生死)의 모든 과실(過失)에 대한 변지(遍知, 산스크리트어: parijñā: 두루 아는 것,[236] 철저하게 완전히 아는 것[237])를 말한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러한 변지(遍知)가 있을 때 유(有: 3계 또는 3계의 삶)와 유자구(有資具: 3계에 태어나게 하는 원인)에 대해 일으켜지는 바로 그 염환(厭患), 즉 바로 그 싫어함과 근심으로 여김을 말한다.[238][239]
달리 말하면, 싫어하고 근심으로 여기는 것 즉 염환(厭患)은 윤회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악행과 그 악행에 의해 결과되는 윤회에 대해 그 인과관계를 '완전하게 아는 것[遍知]'이고 또한 이러한 앎의 상태에서 발견되는 '윤회와 그 원인에 대한 싫어함과 근심으로 여김'이다.
염환(厭患)은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등의 선심소와 관련되어 주로 언급된다.[238][239][240][241]
염훼
편집염훼(厭毀)는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는 것으로, 무참(無慚)과 무괴(無愧)의 마음작용에 대한 여러 정의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무참은 온갖 번뇌(煩惱)에 대해 능히 염훼하지 않는 즉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고, 무괴는 온갖 악행(惡行)에 대해 능히 염훼하지 않는 즉 능히 싫어하거나 허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작용이다.[242][243]
영납
편집영납(領納) · 영납상(領納相) · 영납성(領納性) 또는 영납작용(領納作用)은 수(受)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로, 문자 그대로는 '받아들임(領: 받을 령, 納 들일 납)', '받아들이는 성질' 또는 '받아들이는 작용'을 뜻하며 느낌 또는 감수작용(感受作用) 즉 지각(知覺)을 말한다.[244][245][246][247][248] 받아들임으로 번역하기도 한다.[244][245][249][250][251][252]
영진
편집영진(永盡, 산스크리트어: paryādāna, vyucchinna, samudghāta)은 번뇌가 영원히 끊어진 것 또는 완전히 끊어진 것을 말한다. 영단(永斷)과 동의어이다.[253] 번역하여 영원히 다하다 또는 아주 끊어 없애다라고도 한다.[254][255][256]
모니어 윌리엄스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영진의 원어 파리야다나(paryādāna) · 브유친나(vyucchinna) · 사무드가타(samudghāta)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 파리야다나(paryādāna): end (끝, 종말, 종료, 최후), exhaustion (탈진, 기진맥진, 고갈, 소진)[257]
- 브유친나(vyucchinna): cut off (잘라 낸, 차단한, 가로막은), extirpated (제거한, 없앤, 근절시킨), destroyed (파괴된, 말살된, 죽임을 당한, 살처분된), interrupted (가로막힌, 중단된, 중절된, 단속적인, 비연속적인), ceased (중단된, 그친, 끝난)[258]
- 사무드가타(samudghāta): taking away (없앰, 제거, 치움, 줄임, 죽임, 떠나감), removal (없애기, 제거, 철폐, 이사), destruction (파괴, 파멸, 말살), extermination (근절, 전멸, 절멸, 몰살, 멸종, 구제(驅除))[259]
《잡아함경》 제18권 제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에서,
- 사리불은 외도의 수행자인 염부차의 물음에 대한 답에서 열반이란 탐 · 진 · 치를 비롯한 일체(一切)의 번뇌가 영원히 다한[永盡] 상태이며, 8정도가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254][255]
《유가사지론》 제83권에 따르면,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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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편집- ↑ DDB, "阿耨多羅". 2013년 4월 23일에 확인
"阿耨多羅:
Pronunciations: [py] ānòuduōluó [wg] anou-tuo [hg] 아누다라 [mc] anudara [mr] anudara [kk] アノクタラ [hb] anokutara [qn] a nậu đa la
Basic Meaning: unsurpassed
Senses:
# Transliteration of the Sanksrit/Pāli anuttara, which means; translated into Chinese as 無上. 〔瑜伽論 T 1579.30.347a13, 阿彌陀經 T 366.12.348a11〕 [Charles Muller]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go daijiten (Nakamura) 7b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1208
Bukkyō daijiten (Mochizuki) (v.1-6)2243a" - ↑ 용수 조, 구마라습 한역 & T.1509, 제2권. p. T25n1509_p0072a29 - T25n1509_p0072b08. 아뇩다라(阿耨多羅)
"復名「阿耨多羅」,秦言「無上」。 云何無上? 涅槃法無上。佛自知是涅槃不從他聞,亦將導眾生令至涅槃。如諸法中涅槃無上,眾生中佛亦無上。 復次,持戒、禪定、智慧,教化眾生,一切無有與等者,何況能過?故言無上。 復次,「阿」名「無」,「耨多羅」名「答」。一切外道法,可答可破,非實非清淨故;佛法不可答、不可破,出一切語言道,亦實清淨故,以是故名無答。" - ↑ 용수 지음, 구마라습 한역, 김성구 번역 & K.549, T.1509, 제2권. pp. 87-88 / 2698. 아뇩다라(阿耨多羅)
"또한 아뇩다라(阿耨多羅)[진나라 말로는 ‘위없다(無上)’이다.]157)라고도 한다.
[문] 무엇이 위가 없는가?
[답] 열반의 법이 위가 없다. 부처님은 스스로가 이 열반을 아셔서 남에게 들은 적이 없으시며, 또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열반에 이르게 하시는데, 모든 법 가운데서 열반이 위가 없듯이 중생 가운데서 부처님도 위가 없으시다.
또한 지계 · 선정 · 지혜로 중생을 교화하시는데, 아무도 같을 이가 없거늘 하물며 그를 지날 이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위없는 분’이라 한다.
또한 아(阿)를 ‘없음[無]’이라 하고 욕다라(耨多羅)158)를 ‘대답하다[答]’라고 하니, ‘대답할 자 없는 분[無答]’이 된다. 온갖 외도의 법은 대답할 수 있고 부술 수가 있으니, 진실이 아니요 청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법은 대답할 수 없고 부술 수도 없다. 온갖 언어의 길을 뛰어넘었으니, 진실하고도 청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답할 자 없는 분’이라 하는 것이다.
157) 범어로는 anuttara.
158) 범어로는 uttara." - ↑ 佛門網, "阿耨多羅". 2013년 4월 23일에 확인
"阿耨多羅: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為音譯,意譯為「無上」。" - ↑ 운허, "無上士(무상사)". 2013년 4월 23일에 확인
"無上士(무상사): 부처님 10호(號)의 하나. 범어 아뇩다라(阿耨多羅, anuttara)의 번역. 부처님은 유정 가운데 가장 높아서 위가 없는 대사(大士)라는 뜻."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1권. p. T31n1605_p0663a18 - T31n1605_p0663a20. 아사(我事)
"何因蘊唯有五。為顯五種我事故。謂身具我事。受用我事。言說我事。造作一切法非法我事。彼所依止我自體事。"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1권. p. 2 / 159. 아사(我事)
"어떤 이유에서 온에는 다섯 종류만 있습니까?
다섯 종류의 아사(我事)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구아사(身具我事)ㆍ수용아사(受用我事)ㆍ언설아사(言說我事)ㆍ조작일체법비법아사(造作一切法非法我事)ㆍ피소의지아자체사(彼所依止我自體事)를 가리킨다." - ↑ 가 나 다 라 마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2권. p. T31n1606_p0695a23 - T31n1606_p0695b01. 아사(我事)
"問何因蘊唯有五答為顯五種我事故謂為顯身具我事。受用我事。言說我事。造作一切法非法我事。彼所依止我自體事。於此五中前四是我所事。第五即我相事。言身具者。謂內外色蘊所攝。受等諸蘊受用等義。相中當說。彼所依止我自體事者。謂識蘊是身具等所依我相事義。所以者何。世間有情多於識蘊計執為我。於餘蘊計執我所。" - ↑ 가 나 다 라 마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2권. p. 5 / 388. 아사(我事)
"어떤 이유에서 ‘온’에는 다섯 종류만이 있습니까?
다섯 가지 아사(我事)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신구아사(身具我事)ㆍ수용아사(受用我事)ㆍ언설아사(言說我事)ㆍ조작일체법비법아사(造作一切法非法我事)ㆍ피소의지아자체사(彼所依止我自體事)를 가리킨다.
[釋] 이 다섯 가지 가운데에서 앞의 네 가지는 아소사(我所事)에 해당하고 다섯 번째는 아상사(我相事)에 해당한다.
[釋] ‘신구’라고 지칭하는 것은 내부와 외부의 색온에 수렴되는 것이니, 수온 따위의 여러 온의 수용이 평등하다는 이치이다. ‘아상사’도 마땅히 해설해야 하리니, ‘피소의지아자체사’란 식온이 신구 따위에 소의하는 ‘아상사의 이치’이다.
어째서입니까?
세간의 유정은 대부분 식온을 헤아려 ‘나[我]’라고 집착하고, 그 밖의 다른 온을 헤아려 ‘내 것[我所]’이라고 집착하는 까닭이다." - ↑ 종교 · 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 > 일체개공,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호법 등. 현장 한역, T31n1585_p0001a09(12) - T31n1585_p0001a12(10), 2011년 4월 3일에 확인.
- 원문
- 今造此論為於二空有迷謬者生正解故。生解為斷二重障故。由我法執二障具生。若證二空彼障隨斷。斷障為得二勝果故。由斷續生煩惱障故證真解脫。由斷礙解所知障故得大菩提。
- 편집자 번역
- 지금 이 논서를 저술하는 이유는 이공(二空: 두 가지 공)에 대해서 미혹하고 오류가 있는 사람들이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공(二空)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무거운 장애(二重障: 번뇌장과 소지장)를 끊기 위한 때문이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의 (두 가지) 집착으로 인해 이 두 가지 장애가 함께 일어난다. 이공(二空)을 증득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이들 (두 가지) 장애도 끊어진다. (이들 두 가지) 장애를 끊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 뛰어난 과보(二勝果: 열반과 보리, 또는 해탈과 보리)를 얻기 위한 때문이다. (이것을 더 자세히 말하자면) 윤회하는 삶(生)을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인 번뇌장(煩惱障)을 끊음으로써 참다운 해탈(眞解脫: 유식학에서 해탈은 열반과 같은 것이다)을 증득하게 되기 때문이며, 지혜(解: 앎 · 이해 · 지식)를 장애하는 소지장(所知障)을 끊음으로써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 · 완전한 깨달음 · 출세간의 무분별지혜 · 무상정등보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가 나 운허, "邪見(사견)".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 ↑ 가 나 운허, "惡見(악견)".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 ↑ 가 나 운허, "八不正見(팔부정견)".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 ↑ 가 나 운허, "染汚(염오)".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染污".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正見". 2012년 10월 27일에 확인
"正見: 梵語 samyag-drsti,巴利語 sammā-ditthi。如實了知世間與出世間之因果,審慮諸法性相等之有漏、無漏慧,稱為正見。係八正道之一,十善之一。為「邪見」之對稱。即遠離或有或無之邪見,而採取持平正中之見解,如遠離身見、邊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等「五不正見」之見解皆屬正見。故廣泛言之,凡為佛教所認可之道理,皆屬正見。" - ↑ 운허, "惡口(악구)". 2012년 11월 7일에 확인
"惡口(악구): 10악의 하나. 신역에서는 추악어(麤惡語). 남을 성내게 할 만한 나쁜 말." - ↑ 星雲, "惡口". 2012년 11월 8일에 확인
"惡口: 為十惡之一。新譯粗惡語。即口出粗惡語毀訾他人。據大乘義章卷七載,言辭粗鄙,故視為惡;其惡從口而生,故稱之為惡口。法界次第初門卷上(大四六‧六六九下):「惡言加彼,令他受惱,名為惡口。」另據法華經卷六常不輕菩薩品載,若惡口罵詈誹謗,其人將獲大罪報。〔無量壽經卷下、俱舍論卷十六〕" - ↑ 가 나 운허, "十惡(십악)". 2012년 11월 8일에 확인
"十惡(십악): 열 가지 죄악. 신(身)3·구(口)4·의(意)3. ⇒신삼구사의삼(身三口四意三)" - ↑ 가 나 운허, "身三口四意三(신삼구사의삼)". 2012년 11월 8일에 확인
"身三口四意三(신삼구사의삼): 10악(惡)을 신(身)·구(口)·의(意)의 셋에 배당. 살생(殺生)·투도(偸盜)·사음(邪婬)을 신삼(身三), 망어(妄語)·기어(綺語)·악구(惡口)·양설(兩舌)을 구사(口四), 탐욕(貪欲)·진에(瞋恚)·사견(邪見)을 의삼(意三)이라 함. ⇒십불선업(十不善業)·십악(十惡)" - ↑ 가 나 운허, "十善(십선)". 2012년 11월 8일에 확인
"十善(십선): ↔ 십악(十惡). 십선도(十善道) 또는 십선계(十善戒)라고도 함. 몸[動作]·입[言語]·뜻[意念]으로 10악을 범치 않는 제계(制戒)·불살생(不殺生)·불투도(不偸盜)·불사음(不邪婬)·불망어(不妄語)·불양설(不兩舌)·불악구(不惡口)·불기어(不綺語)·불탐욕(不貪欲)·불진에(不瞋恚)·불사견(不邪見)."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26권 제707경 〈장개경(障蓋經)〉. p. T02n0099_p0189c15 - T02n0099_p0189c25. 5개(五蓋)와 7각지(七覺支)
"爾時。世尊告諸比丘。有五障.五蓋。煩惱於心。能羸智慧。障閡之分。非明.非正覺。不轉趣涅槃。何等為五。謂貪欲蓋.瞋恚蓋.睡眠蓋.掉悔蓋.疑蓋。如此五蓋。為覆為蓋。煩惱於心。令智慧羸。為障閡分。非明.非等覺。不轉趣涅槃。 若七覺支。非覆非蓋。不惱於心。增長智慧。為明.為正覺。轉趣涅槃。何等為七。謂念覺支等。如上說。乃至捨覺支。如此七覺支。非翳非蓋。不惱於心。增長智慧。為明.為正覺。轉趣涅槃。"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26권 제707경 〈장개경(障蓋經)〉. p. 1059-1059 / 2145. 5개(五蓋)와 7각지(七覺支)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장애[障]와 덮개[蓋]가 있어서,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게 하고 지혜를 약하게 한다. 그것은 막고 걸리는 물건으로, 밝음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 아니어서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탐욕개(貪欲蓋)·진에개(瞋恚蓋)·수면개(睡眠蓋)·도회개(掉悔蓋)·의개(疑蓋)를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다섯 가지 개(蓋)는 은폐하고 덮어서 마음에 번뇌를 일으키게 하고 지혜를 약하게 한다. 그것은 막고 걸리는 물건으로, 밝음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이 아니어서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7각지(覺支)는 은폐하는 것도 아니요, 덮어 가리는 것도 아니라서 마음에 번뇌가 일어나게 하지 않고 지혜를 더욱 자라게 하며, 밝음이 되고 바른 깨달음이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한다.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염각지(念覺支) 등……(내지)……사각지(捨覺支)까지의 내용은 앞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7각지는 가리는 것이 아니요 덮는 것도 아니어서 마음에 번뇌가 일어나게 하지도 않고 지혜를 더욱 자라나게 하며, 밝음이 되고 바른 깨달음이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느니라." - ↑ 운허, "五蓋(오개)". 2012년 10월 31일에 확인
"五蓋(오개): 【범】 pañca āvaranāni 5장(障)이라고도 함. 개(蓋)는 개부(蓋覆)한다는 뜻. 5법(法)이 있어 능히 심성(心性)을 가리워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함. (1) 탐욕개(貪欲蓋). 5욕에 집착함으로 심성을 가리움. (2) 진에개(瞋恚蓋). 성내는 것으로써 심성을 가리움. (3) 수면개(睡眠蓋). 마음이 흐리고 몸이 무거워짐으로 심성을 가리움. (4) 도회개(掉悔蓋). 마음이 흔들리고 근심함으로 심성을 가리움. (5) 의법(疑法). 법에 대하여 결단이 없이 미룸으로써 심성을 가리움." - ↑ 星雲, "五蓋".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五蓋: 梵語 pañca āvaranāni。蓋,覆蓋之意。謂覆蓋心性,令善法不生之五種煩惱。即:(一)貪欲蓋(梵 rāga-āvarana),執著貪愛五欲之境,無有厭足,而蓋覆心性。(二)瞋恚蓋(梵 pratigha-āvarana),於違情之境上懷忿怒,亦能蓋覆心性。(三)惛眠蓋(梵 styāna-middha-āvarana),又作睡眠蓋。惛沈與睡眠,皆使心性無法積極活動。(四)掉舉惡作蓋(梵 auddhatya-kaukrtya-āvarana),又作掉戲蓋、調戲蓋、掉悔蓋。心之躁動(掉),或憂惱已作之事(悔),皆能蓋覆心性。(五)疑蓋(梵 vicikitsā-āvarana),於法猶豫而無決斷,因而蓋覆心性。" - ↑ 星雲, "掉悔蓋". 2012년 11월 3일에 확인. 도회개(掉悔蓋)
"掉悔蓋: 梵語 auddhatya-kaukrtya-āvarana。五蓋之一。掉,指心躁動不安;悔,於所作之事心懷憂惱;此二者皆為使心不安靜之煩惱,能障聖道,故稱蓋。合掉舉、追悔(惡作)二煩惱為一蓋,以能障礙定蘊,故稱掉悔蓋。又作掉舉惡作蓋、掉戲蓋、調戲蓋。五蓋中僅此蓋與惛眠蓋(惛沈、睡眠)合二為一蓋,依大毘婆沙論卷四十八所說,係因二者之所食、能治、事用相同,即掉舉、惡作(悔)皆以四法(親里尋、國土尋、不死尋、念昔種種戲笑歡娛承奉等)為所食,均以奢摩他(止惡)為對治之法,故皆有令心不能寂靜之事用。〔雜阿含經卷二十四、長阿含卷十二清淨經、大智度論卷十七〕"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20 - T29n1558_p0020a22. 부정심소(不定心所)
"如是已說五品心所。復有此餘不定心所。惡作睡眠尋伺等法。"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3 / 1397. 부정심소(不定心所)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품류의 심소[← 한글본 원문에 "심과 심소"로 되어 있으나 심소가 되어야 함]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이 밖에도 부정(不定)의 심소로서 악작(惡作)·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법이 존재한다.51)
51) 심소법에는 이상의 대지법·대선지법·대번뇌지법·[대불선지법← 한글본 원문에 빠져 있으나 추가되어야 함]·소번뇌지법의 5품[← 한글본 원문에 "4품"이라고 되어 있으나 5품이 되어야 함] 이외 선·염오·무기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구생관계가 결정적이지 않은 악작·수면(睡眠)·심(尋)·사(伺) 등의 존재가 있는데, 이를 부정지법(不定地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등'이라고 함은, 보광(普光)의 『구사론기』에 의하면 탐(貪)·진(瞋)·만(慢)·의(疑)인데, 이에 따라 심소법이 마흔여섯 가지가 되어 일반에서 유부의 법수(法數)를 75 법으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이 중 악작과 심·사는 본권에서 후술되며, 수면은 본론 권제21에서 설명되고 있다 " - ↑ 星雲, "五位七十五法". 2012년 10월 30일에 확인. 부정심소(不定心所)
"(6)不定地法(不定相應,即上述各心所之外者),有尋、伺、睡眠、惡作、貪、瞋、慢、疑等八種。"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7권. p. T31n1585_p0035c06 - T31n1585_p0035c11. 부정심소(不定心所)
"不定有四。其相云何。頌曰。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論曰。悔眠尋伺於善染等皆不定故。非如觸等定遍心故。非如欲等定遍地故。立不定名。"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7권. p. 347 / 583. 부정심소(不定心所)
"부정심소(不定心所)에 네 가지가 있는데, 그 양상이 어떠한가? 게송(『삼십송』의 제1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정의 심소는 회(悔)·면(眠)·
심(尋)·사(伺)이니, 둘에 각각 둘이 있네.
논하여 말한다. 회(悔) · 면(眠) · 심(尋) · 사(伺) 심소는 선(善)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촉(觸)심소 등이 반드시 심왕에 두루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며, 욕(欲)심소 등이 반드시 모든 지위[地]에 두루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부정(不定)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2)
2) 부정심소라는 명칭을 건립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에 해당되는 심소들은 3성(性:선 · 악 · 무기) 중에서 그 성품이 일정하지 않고, 3계(界) 중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든 식과 상응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심소(不定心所)라고 이름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4, p. T31n1614_p0855b23 - T31n1614_p0855c06. 심소유법(心所有法)
"第二心所有法。略有五十一種。
分為六位。一遍行有五。二別境有五。三善有十一。四煩惱有六。五隨煩惱有二十。六不定有四。
一遍行五者。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
二別境五者。一欲二勝解三念四定五慧。
三善十一者。一信二精進。三慚四愧。五無貪六無嗔七無癡。八輕安九不放逸十行捨十一不害。
四煩惱六者。一貪二嗔。三慢四無明。五疑六不正見。
五隨煩惱二十者。一忿二恨。三惱四覆。五誑六諂。七憍八害。九嫉十慳。十一無慚十二無愧。十三不信十四懈怠。十五放逸十六惛沈。十七掉舉十八失念。十九不正知二十散亂。
六不定四者。一睡眠二惡作。三尋四伺。" - ↑ 星雲, "五位百法". 2012년 11월 2일에 확인. 부정심소(不定心所)
"(3)不定(由共同所起之心以分善惡,然其自體則無一定之性格),有悔、睡眠、尋、伺等四種。" - ↑ 황욱 1999, 72-75. 부정심소(不定心所)쪽
"6) 不定心所[Aniyata-caitasa]: ‘不定心所’에서, ‘不定’이라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心所는 그 性을 善이라고도 할 수 없고 染汚라고도 할 수 없으며 또한 三性의 어떤 心心所와 相應俱起할 때에 그 性이 역시 三性으로 변하기 때문에 ‘不定’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惡作[Kaukṛtya] ... ② 睡眠[Anuśaya] ... ③ 尋[Vitarka] ... ④ 伺[Vicāra]" - ↑ 가 나 星雲, "惡作". 2012년 11월 2일에 확인. 악작(惡作) 또는 오작(惡作)
"惡作: (一)梵語 kaukrtya。心所(心之附屬作用)之一。與「悔」同義。為說一切有部所立七十五法之一,屬不定地法,又為法相宗四不定之一。惡,即厭惡;作,即所作。即厭惡所作,於作惡事後追悔之心。俱舍論卷四對惡作一名提出三種解釋,其一謂緣惡所作之事而追悔,稱為惡作,即於能緣之追悔上立所緣境之名;其二謂追悔係以惡作為所依而生,故在能依之追悔上立所依之名;其三謂追悔為惡作之果,故在果之追悔上立因之名。此三解中,惡作之「惡」皆讀入聲,其義皆為追悔所作之惡。但惡作之性並非必為不善,不論善或不善,凡屬不合情理之所作,皆稱為惡作。又大毘婆沙論卷三十七舉出四句惡作,即:(一)追悔已作之惡業,(二)追悔已作之善業, (三)追悔已作善業之未滿,(四)追悔已作惡業之未滿。此四句係由已作之業而說。俱舍論卷四則對於追悔未作之事,亦稱為惡作,如追悔「我何故不作如是事」亦為惡作。
說一切有部認為追悔善之不作業為善之惡作,追悔不善之不作業為不善之惡作,主張惡作僅限於善與不善,而不通於無記。但據俱舍論卷四載,外方諸師中有說惡作通於無記者。成唯識論述記卷七本亦以惡作通於善、不善、無記三性。又唯識家稱惡作為「悔」,其解釋亦與俱舍等不同。成唯識論卷七說明「悔」即嫌惡所作之業,以追悔為性,障奢摩他為業,且「惡作」是於果上假立因之名,「悔」則係就當體而立其名者。另據成唯識論述記卷七之意,惡作之「惡」讀去聲,為嫌惡之意。〔阿毘達磨順正理論卷十一、瑜伽師地論卷十一、顯揚聖教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七、俱舍論光記卷四、俱舍論寶疏卷四、百法問答鈔卷一〕
(二)即戒律中之突吉羅(梵 duskrta)。指身體之微細惡行,有時亦包括口舌之微細惡行。〔善見律毘婆沙卷九〕(參閱「突吉羅」3924)" - ↑ 운허, "悔(회)". 2012년 11월 3일에 확인. 회(悔)심소
"悔(회): 【범】 kaukṛtya 부정지법(不定地法)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가 한 짓을 뉘우치는 정신 작용. 악작(惡作)과 같음."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b06 - T29n1558_p0020b18. 악작(惡作)
"非諸善心皆有惡作。有時增數至二十三。惡作者何。惡所作體名為惡作。應知此中緣惡作法說名惡作。謂緣惡作心追悔性。如緣空解脫門說名為空。緣不淨無貪說為不淨。又見世間約所依處說能依事。如言一切村邑國土皆來集會。惡作即是追悔所依。故約所依說為惡作。又於果體假立因名。如說此六觸處應知名宿作業。若緣未作事云何名惡作。於未作事亦立作名。如追悔言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何等惡作說名為善。謂於善惡不作作中心追悔性。與此相違名為不善。此二各依二處而起。"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75 / 1397. 악작(惡作)
"온갖 선심에 모두 악작(惡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53) 그것이 존재할 때에는 그 수가 증가하여 스물세 가지에 이른다.
악작(惡作)이란 무엇인가? 그릇되게 지어진 것[惡所作] 자체를 일컬어 악작(惡作)이라고 한다. 즉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緣 → 원인의 뜻임, 대상의 뜻이 아님]으로 하여 [생겨난] 법을 설하여 악작이라고 이름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그릇되게 지어진 것을 소연으로 하여 [생겨난] 마음의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는 마치 공(空)[→ 공관(空觀)을 말함]을 소연[緣 → 원인의 뜻임, 대상의 뜻이 아님]으로 하는 해탈문(解脫門)을 설하여 '공(空)'[→ 空觀으로 증득한 解脫을 말함]이라 이름하고, 부정(不淨)[→ 부정관(不淨觀)을 말함]을 소연[緣 → 원인]으로 하는 무탐(無貪)을 설하여 '부정(不淨)'[→ 不淨觀으로 증득한 無貪을 말함]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54) 또한 세간일반에서 보더라도 소의처(所依處 → 즉 所依, 의지처, 근원, 기반, 근거)에 근거하여 그것에 능히 의지하는 것[能依事]을 설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일체의 시골이나 나라[國土]가 모두 와 모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55) 즉 악작은 바로 추회의 소의(所依 → 의지처, 근원, 기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소의에 근거하여 악작이라고 설하게 된 것이다. 또한 결과 자체[果體]에 대해 일시 원인[因]의 명칭을 설정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러한 6촉처(六觸處)를 설하여 숙작업(宿作業)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56)
만약 아직 지어지지 않은 일을 소연[緣 → 대상, 인연]으로 할 때는 어떻게 악작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인가?57) 아직 짓지 않은 일에 대해서[於]도 역시 '작(作)'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할 수 있으니, 이를테면 '내[我]가 일찍이[先] 이와 같은 일[如是事業]은 짓지 않았던 것[不作]은 바로 나의 악작(惡作, 즉 잘못된 일)이다[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고 후회[追悔]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악작을 일컬어 '선의 악작[善 → 善之惡作 선한 악작, 선한 후회]'이라 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선을 짓지 않았거나 악을 지은 것에 대해 마음으로 추회(追悔)하는 성질을 '선의 악작[善]'이라 하며, 이와 반대되는 것을 일컬어 '불선의 악작[不善 → 不善之惡作 불선한 악작, 불선한 후회]'이라 하니, 이러한 두 가지의 악작은 각기 두 가지 처소(선·불선)에 근거[依 → 所依 → 의지처, 근원, 기반, 근거]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53) 악작이란 이를테면 후회로서, 이전에 착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이 선한 악작이지만, 모든 선심에는 반드시 이러한 작용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심과의 상응 유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54) 공을 소연으로 하는 해탈문은 그 자체 무루정으로서 공을 소연의 경계로 삼기 때문에 소연에 따라 '공 '이라 하였으며, 부정(不淨)의 자체는 무탐이지만 이 또한 소연에 따라 '부정'이라 이름하였다는 뜻.
55) 일체의 시골[村邑]이 모두 와 모였다고 함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와 모였다는 뜻으로, 머무는 처소[所依處]에 근거하여 거기에 머무는 이[能依事]를 나타낼 수 있다는 예증.
56) 숙작업(숙세의 선악업)을 원인으로 삼아 6촉처(6촉의 소의처가 되는 6근)의 결과가 생겨날 때, 결과인 6근에 원인의 명칭을 부여하여 숙작업이라고 할 수 있듯이, 악작으로 인해 추회(追悔)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인 추회하는 마음에 대해 그 원인이 되는 악작이라는 명칭을 부가할 수 있다는 뜻.
57) 이미 지어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은 악작이라 할 수 있어도, 아직 짓지 않은 업에 대해 설사 그것을 하였더라면 하고 후회하였을지라도, 거기에는 소연의 경계가 될만한 지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난문."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7권. p. T31n1585_p0035c11 - T31n1585_p0035c14. 회(悔)심소
"悔謂惡作。惡所作業追悔為性。障止為業。此即於果假立因名。先惡所作業後方追悔故。悔先不作亦惡所攝。如追悔言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7권. p. 348 / 583. 회(悔)심소
"‘회(悔)심소’3)는 지은 것을 미워하는 것[惡作]을 말한다. 지은 업을 미워하여 후회함을 체성으로 하고, 사마타[止]를 애[障]함을 업으로 한다[障止為業]. 이것은 곧 결과에 대해서 원인의 가립한 것이다. 먼저 지은 업을 미워하고, 나중에 비로소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는 것도 역시 오작(惡作)에 포함된다. 후회해서 말하는 것과 같이, '내가 이전에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오작(惡作)이라[我先不作如是事業 是我惡作]'고 말한다.
3) 회(悔, kaukṛtya)심소는 ‘뉘우침’, ‘후회’, 즉 이전에 지은 업을 후회하고 싫어하는 심리작용이다. 오작(惡作)이라고도 한다. 뉘우쳐서 행동을 선(善), 수행으로 가게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선행(善行)을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 - ↑ 황욱 1999, 72. 회(悔)심소쪽
"‘惡作’은 ‘悔[Kaukṛtya]’라고도262), 이미 지었거나 아직 짓지 않은 선과 악의 일에 대하여 染汚이건 染汚가 아니건 섭섭하게 여기어 후회하고 변화를 좇는 것을 體로 삼고, 奢摩他[Śamatha, 止]를 장애하는 것으로써 業을 삼는다.263) 즉, 이전에 지은 바 업[所作業]을 기억하여 그것을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의미로서, 그러한 작용을 嫌惡함으로 말미암아 후회하는 것으로써 그 性用을 삼고, 그것에 의하여 奢摩他[Śamatha, 止]를 장애하는 것으로써 業用을 삼는다.264) 그런데 이 ‘惡作’의 뜻에 대하여 大小乘 사이에 견해차이가 있다. 즉 俱舍宗에서는 ‘所作의 惡事를 나중에 추억하여 後悔한다’라는 의미로 보았고, 唯識宗에서는 ‘所作의 惡事를 嫌惡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惡’에 대한 발음을 俱舍宗에서는 ‘악’이라고 하여 ‘악작’으로 발음하였고, 唯識宗에서는 ‘오’라고 하여 ‘오작’이라고 발음하였던 것이다.265}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樂作·不樂作·應作·不應作에 의지하는 것으로 愚癡의 부분으로서 마음이 추억하여 후회하는 것을 體로 하고, 善이거나 不善이거나 無記이거나 時이거나 非時이거나 應爾이거나 不應爾이거나 능히 마음이 머무는 것을 장애하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266)
262) 《唯識三十論頌》(《大正藏》 31, p.60下).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263) 다시 말하면, 지은 業을 미워하여 후회하는 것을 體로 삼고, 奢摩他[定]를 장애하는 것을 業으로 삼는다.
264) ‘惡作’의 性用은 뉘우침을 따르는[追悔] 작용을 말하고, 그 業用은 奢摩他[定]을 장애하는 작용을 말한다. 즉, 悔는 후회하는 것으로써 마음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265) 鄭駿基(唯眞), 「心王心所說의 變遷上에서 본 二障 연구」, 박사학위논문(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1997), pp. 160~161 참조.
266)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665中). “何等惡作。謂依樂作不樂作應作不應作。是愚癡分心追悔為體。或善或不善或無記。或時或非時。或應爾或不應爾。能障心住為業。”" - ↑ "악행(惡行)",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악독(惡毒)", 《네이버 국어사전》.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가 나 운허, "三惡行(삼악행)".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가 나 다 星雲, "惡行".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운허, "惡(악)". 2012년 9월 2일에 확인.
- ↑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55권. p. T30n1579_p0604a13 - T30n1579_p0604b06. 부정지(不正知)
"復次隨煩惱自性云何。謂忿恨覆惱。嫉慳誑諂。憍害無慚。無愧惛沈。掉舉不信。懈怠放逸。忘念散亂。不正知惡作。睡眠尋伺。如本地分已廣詮說。如是等類名隨煩惱自性。此中初二依初依處而生。第三第四依第二。第五第六依第三。第七第八依第四。第九依第五。第十依第六。十一十二依第七。所餘十二依後二依處而生。當知此中毀增上心毀增上慧由三門轉。一由毀止相門。二由毀舉相門。三由毀捨相門。惛沈睡眠由初依處生。掉舉惡作由第二依處生。不信乃至尋伺由第三依處生。復次隨煩惱云何展轉相應。當知無慚無愧與一切不善相應。不信懈怠放逸忘念散亂惡慧與一切染污心相應。睡眠惡作與一切善不善無記相應所餘當知互不相應。復次隨煩惱幾世俗有幾實物有。謂忿恨惱嫉害是瞋分故皆世俗有。慳憍掉舉是貪分故皆世俗有。覆誑諂惛沈睡眠惡作是癡分故皆世俗有。無慚無愧不信懈怠是實物有。放逸是假有。如前說。忘念散亂惡慧是癡分故一切皆是世俗有。尋伺二種是發語言心加行分故及慧分故俱是假有。" - ↑ 가 나 다 星雲, "眼根".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眼根: 梵語 caksur-indriya,巴利語 cakkhundriya。音譯斫蒭。單稱眼。為眼識之所依,能看取色境,即為不可見有對(有礙)之淨色。五根或六根之一,為十二處中之眼處(梵 caksur-āyatana),十八界中之眼界(梵 caksur-dhātu)。普通所稱之「眼」指眼球;然於大毘婆沙等經論分為二種,謂可見而由筋肉所組成者,為扶根(扶塵根);對此,不可見而有能見之作用者為眼,稱為勝義根。其中,扶根以四塵為體,為可見有對;勝義根以清淨之大種所造之色為體,為不可見有對。 關於眼取境時,是眼識能見色,或眼根能見色等問題,歷來有四種說法,而以其中之「根見」為大毘婆沙論所認可,故於論中一一評破其他三說,即: (一)根見,為世友所主張,稱為「根見家」,謂眼根觀照色境之力用,稱為見,眼識則僅能了別眼根所觀照之境。若謂眼識能見色,則識為無障之法,故應可見被障蔽於壁外之境,然其識見既不能成立,此即為「根見」之證明,即根為有障、有對之法,故不能見被障之色。(二)識見,為法救所主張,若謂眼識可見色,識應有見相,然識無見相,故識見之理為非。(三)根識相應之慧見,若謂根、識相應之慧能見色,則與耳識相應之慧,亦應聞聲,然慧無聞相,故慧見之理非。(四) 根識和合見,若謂根識和合而見色,應於一切時皆能見色,以無時不和合,故理為非。
對此根見或識見之問題,大乘唯識主張根識和合見。蓋唯識宗認為一切諸法皆為第八識所變現,而無小乘所說的由極微所成之根境,故認為「根」僅具有「識」所藉以攀緣而變現「境」之功能以外即無其他功能。又諸經論關於眼之種別,亦有多種說法,或謂異熟生、長養二種,或說三眼、四眼、五眼、十眼等。瑜伽師地論卷三對於眼之種類,記載最詳,論中由一種「能見之眼」增數至過去眼、現在眼、未來眼、內眼等之十一種眼。〔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二、大智度論卷三十三、大乘法苑義林章卷三本〕(參閱「眼」、「眼識」)" - ↑ 가 나 다 라 星雲, "色蘊".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色蘊: 梵語 rūpa-skandha,巴利語 rūpa-kkhandha。又作色陰、色受陰。為五蘊之一。色,為變礙義;佔有一定空間,且會變壞者,稱之為色。而色之聚集,稱為色蘊;亦即有質礙、變礙諸法之類聚。 依據俱舍論卷一所載,色係指五根(眼耳鼻舌身)、五境(色聲香味觸)及無表色。五根為眼、耳等五識之所依,為五種淨色。五境為眼、耳等五根所取之五種境界。
五境中之色,有青黃赤白、長短方圓等二十種。青黃赤白等十二種,稱顯色;長短方圓等八種,稱形色。聲,分為有執受大種因、無執受大種因等八種聲。香,有好香、惡香、等香、不等香四種之別。味,有甘、醋、鹹、辛、苦、淡等六種。觸,有地、水、火、風四大種,及滑性、澀性、重性、輕性,並冷、餓、渴等十一種。無表色,謂意識緣於過去所見之境,雖分別明了,而無表對,故稱無表;雖無所表,而於所緣之境執著不忘,故稱為色。
於上述諸色法中,又可依其一一法之性質而歸納成下列之數種分類。據雜阿含經卷三載,色受陰即所有之色;乃一切四大及四大所造之色。其中,地水火風四大種,是為能造,而色聲等,是為所造。阿毘曇心論經卷一載,色有二種:(一)微塵積聚之色,指眼、耳乃至味、觸等十色入,又稱十色處。(二)非微塵積聚之色,指無教色(無表色),為法入之所攝。又雜阿含經卷十三、集異門足論卷三、俱舍論卷十三等,將色分為有見有對、無見有對、無見無對三種。有見有對,又作可見有對。因其可示現彼此之差別,故為有見;以其有障礙,故為有對;即指極微所成,眼根所取之色境。無見有對,又作不可見有對。雖有障礙而不可見,即指五根及聲香味觸之四境。無見無對,乃不可見無障礙之法,即指無表色。
依據顯揚聖教論卷五所載,色蘊略有五種相,即:(一)自相,即色身諸法各有不同之自相,如堅是地相,溼是水相,煖是火相,動是風相。(二)共相,即色身諸法和合之相,謂一切色身皆從地水火風和合為相。(三)所依能依相屬相,即色身四大種是所依相,四大造色是能依相。(四)受用相,謂眼等諸根有增上力,故諸色塵境界得以產生,遂有苦樂逆順受用之相。(五)業相,謂色身能作種種業行之相,故一切業行,皆依色身攝受增長。〔雜阿含經卷二、增一阿含經卷二十六、大毘婆沙論卷七十五、卷七十六、卷一二八、雜阿毘曇心論卷一、卷二、順正理論卷一、大乘阿毘達磨集論卷一、大乘百法明門論、成唯識論卷一、卷二、俱舍論光記卷一、大乘法苑義林章卷五本、止觀輔行傳弘決卷五之一〕(參閱「五蘊」)" - ↑ 星雲, "十二處".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十二處: 指六根加六境。又作十二入、十二入處。處為梵語 āyatana 之譯,乃養育、生長之意。即長養心、心所之法,計分為十二種,乃眼、耳、鼻、舌、身、意、色、聲、香、味、觸、法等處。前六處為六根,係屬主觀之感覺器官,為心、心所之所依,有六內處之稱;後六處為六境,屬客觀之覺知對象,為心、心所之所緣,稱六外處。此十二處攝盡一切法,若配於五蘊,眼、耳、鼻、舌、身、色、聲、香、味、觸等十色處,相當於色蘊;意處即為識蘊,賅攝六識及意界之七心界;法處為受、想、行三蘊,即賅攝四十六心所、十四不相應行、無表色及三無為等六十四法。〔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七十一〕" - ↑ 星雲, "十八界".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十八界: 梵語 astādaśa dhātavah。乃指在我人一身中,能依之識、所依之根與所緣之境等十八種類之法。界為種類、種族之義。謂十八種類自性各別不同,故稱十八界,又作十八持。即眼、耳、鼻、舌、身、意等六根(能發生認識之功能),及其所對之色、聲、香、味、觸、法等六境(為認識之對象),以及感官(六根)緣對境(六境)所生之眼、耳、鼻、舌、身、意等六識,合為十八種,稱為十八界。十八界中,除去六識,則為十二處,而六識實際亦由十二處之意處所展開,依此,十八界或十二處攝盡一切法。〔大毘婆沙論卷七十一、俱舍論卷一〕(參閱「十二處」)" - ↑ 운허, "二十二根(이십이근)".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二十二根(이십이근): 일체 법 중에서 작용(作用)이 가장 수승(殊勝)한 22법을 선택한 것. 근(根)은 최승(最勝)ㆍ자재(自在)ㆍ증상(增上)의 뜻으로 작용이 우수한 것. 6근(根)ㆍ남근(男根)ㆍ여근(女根)ㆍ명근(命根)ㆍ5수근(受根)ㆍ5선근(善根)ㆍ3무루근(無漏根)." - ↑ 星雲, "二十二根". 2012년 12월 23일에 확인
"二十二根: 梵語 dvāvijśatīndriyāni。指於事特有增上義之二十二種法。即:眼、耳、鼻、舌、身、意等六根,男根、女根、命根,苦、樂、喜、憂、捨等五受根,信、勤、念、定、慧之五善根,未知當知、已知、具知之三無漏根。根為增上之義。眼、耳、鼻、舌、身之五根各於莊嚴身、導養身、生識等,及不共之事等四事能增上,故立為根;男女二根,於諸有情分別男女,及別異形相、言音等有增上之義;命根於眾同分能續、能持,有增上之義;意根能續後有及自在隨行,於此二事有增上之義;五受隨增貪等之隨眠,於染有增上之義;五善根及三無漏根增長諸清淨法,即於淨有增上之義,故立為根。若就二十二根之體而言,男根、女根為身根之一部分,並無別體;三無漏根以意根、三受根(喜、樂、捨)、五善根等九根為體,而無別體,故其體之數實為十七。〔俱舍論卷三、大毘婆沙論卷一四二〕" - ↑ 가 나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b23 - T26n1542_p0692b27. 색법(色法)
"有五法。一色。二心。三心所法。四心不相應行。五無為。色云何。謂諸所有色。一切四大種。及四大種所造色。四大種者。謂地界水界火界風界。所造色者。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所觸一分。及無表色。" - ↑ 가 나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1 / 448. 색법(色法)
"5법(法)이 있으니, 첫째는 색(色)이요 둘째는 심(心)이며, 셋째는 심소법(心所法)이요, 넷째는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며, 다섯째는 무위(無爲)이다. 색(色)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색깔[色]로서 모든 4대종(大種)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을 말한다. 4대종이라 함은 지계(地界)·수계(水界)·화계(火界)·풍계(風界)이며 4대종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라 함은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과 색(色)·성(聲)·향(香)·미(味)와 접촉되는 것[所觸]의 한 부분[一分]과 무표색(無表色)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4, p. T31n1614_p0855b15 - T31n1614_p0855b20.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如世尊言。一切法無我。何等一切法。云何為無我。一切法者。略有五種。一者心法。二者心所有法。三者色法。四者心不相應行法。五者無為法。一切最勝故。與此相應故。二所現影故。三分位差別故。四所顯示故。如是次第。"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44, T.1614, p. 1 / 3. 5위(五位) 또는 5법(五法)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 법은 [나[我]]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일체 법이고 어떤 것을 [나]가 없음이라 하는가 하면, 일체 법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의 법이고, 둘째는 마음이 지닌[心所法]이고, 셋째는 물질의 법이고, 넷째는 마음과 상응(相應)하지 않는 법이고, 다섯째는 함이 없는 법이다. 첫째는 일체에서 가장 수승하므로 이 법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타나는바 그림자 때문이고, 셋째는 분위(分位)의 차별이기 때문이고, 넷째는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차례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4, p. T31n1614_p0855c07 - T31n1614_p0855c09. 색법(色法)
"第三色法。略有十一種。一眼二耳三鼻四舌五身。六色七聲八香九味十觸。十一法處所攝色。"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44, T.1614, p. 2 / 3. 색법(色法)
"셋째의 물질의 법이 대략 열한 가지가 있으니, 눈이 그 하나이고, 귀가 그 둘이고, 코가 그 셋이고, 혀가 그 넷이고, 몸이 그 다섯이고, 빛이 그 여섯이고, 소리가 그 일곱이고, 냄새가 그 여덟이고, 맛이 그 아홉이고, 닿임이 그 열이고, 법의 곳에 섭수되는 물질이 그 열하나이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2c12 - T26n1542_p0692c13. 안근(眼根)
"眼根云何。謂眼識所依淨色。"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2 / 448. 안근(眼根)
"안근(眼根)이란 무엇인가? 안식이 의지하는 깨끗한 물질[淨色]이다." - ↑ 가 나 星雲, "五根". 2012년 12월 22일에 확인
"五根: 梵語 pañcendriyāni。五種根之義。(一)指眼、耳等五識所依之五種色根。又作五色根。即:眼根(梵 caksurindriya)、耳根(梵 śrotrendriya)、鼻根(梵 ghrānendriya)、舌根(梵 jihvendriya)、身根(梵 kāyendriya)五根。亦即司視覺、聽覺、嗅覺、味覺、觸覺之五官及其機能。以此五者加上意根(心),則稱為六根。五根除能攝取外界之對象外,並能引起心內五識之認識作用,因具有此等殊勝之作用,故稱為「根」。又五根係由物質而成立者,故又稱五色根。數論派有五知根之說,其中身根又作皮根。
就五根之體而論,薩婆多部(說一切有部)將五根分為扶塵根與勝義根二種。扶塵根,又作扶根。係由眼球、耳穴、鼻樑等血肉(肉團)所形成之根,本身無超勝對象之力,但可由勝義根從旁協助起識,即一般所謂之五官。勝義根則在肉體之內部,非肉眼所能見,但具有發識取境之作用。又勝義根與扶塵根雖共為「極微」所成,然勝義根以殊勝之四大種所造之淨色為體,為「不可見有對」之實有法,由是薩婆多部主張五根係指勝義根,亦即現今吾人所謂之神經。然大眾部等則以色、香、味、觸四塵為五根之體,以肉團為性,別無淨色,不能取境,此即是以扶塵根為五根之說。又依唯識大乘之說,護法等諸師別立現行之淨色為五根;難陀等諸師則認為五根唯是種子,而非現行之淨色。"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3권 제306경 〈인경(人經)〉. p. T02n0099_p0087c18 - T02n0099_p0088a20. 근·경·식의 관계
"(三○六)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時。有異比丘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比丘云何知.云何見而得見法。作是思惟已。從禪起。往詣佛所。稽首禮足。退坐一面。白佛言。世尊。我獨一靜處。專精思惟。作是念。比丘云何知.云何見而得見法。 爾時。世尊告彼比丘。諦聽。善思。當為汝說。有二法。何等為二。眼.色為二。如是廣說。乃至非其境界故。所以者何。眼.色緣生眼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無色陰.眼.色。此等法名為人。於斯等法作人想.眾生.那羅.摩[少/兔]闍.摩那婆.士夫.福伽羅.耆婆.禪頭。 又如是說。我眼見色。我耳聞聲。我鼻嗅香。我舌嘗味。我身覺觸。我意識法。彼施設又如是言說。是尊者如是名。如是生。如是姓。如是食。如是受苦樂。如是長壽。如是久住。如是壽分齊。比丘。是則為想。是則為誌。是則言說。此諸法皆悉無常.有為.思願緣生。若無常.有為.思願緣生者。彼則是苦。又復彼苦生。亦苦住。亦苦滅。亦苦數數出生。一切皆苦。若復彼苦無餘斷。吐盡.離欲.滅.息沒。餘苦更不相續。不出生。是則寂滅。是則勝妙。所謂捨一切有餘.一切愛盡.無欲.滅盡.涅槃。耳.鼻.舌.身觸緣生身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是無色陰。身根是色陰。此名為人。如上說。乃至滅盡。涅槃。緣意。法生意識.三事和合觸。觸俱生受。想.思。此四無色陰.四大。士夫所依。此等法名為人。如上廣說。乃至滅盡.涅槃。若有於此諸法。心隨入。住解脫不退轉。於彼所起繫著。無有我。比丘。如是知.如是見。則為見法。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3권 제306경 〈인경(人經)〉. pp. 474-477 / 2145. 근·경·식의 관계
"306. 인경(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思惟)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이렇게 사유한 뒤에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어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정밀하게 사유하다가 '비구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눈[眼]과 빛깔[色], 이것이 그 두 가지이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그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눈과 빛깔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하여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무색음(無色陰)과 눈과 빛깔 등,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하며, 이러한 법에 대해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어 중생(衆生)·나라(那羅)·마누사(摩闍)·마나바(摩那婆)·사기(士其)1)·복가라(福伽羅)·기바(耆婆)·선두(禪頭)2)라고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나는 귀로 소리를 들으며, 나는 코로 냄새를 맡고, 나는 혀로 맛을 보며, 나는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나는 뜻으로 법을 분별한다.' 그는 시설(施設)하고 나서 또 이와 같이 말한다. '이 존자는 이름은 이러하고 이렇게 태어났으며, 성(姓)은 이러하고 이렇게 먹으며,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겪고 이렇게 오래 살며, 이렇게 오래 머무르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
비구들아, 이것을 곧 생각이라고 하고, 이것을 곧 마음의 기록이라고 하며, 이것을 곧 말이라고 한다. 이 모든 법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願)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고 한다. 만일 무상한 것이고 함이 있으며 생각과 원을 인연하여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움이다. 또 그 괴로움은 생겨나고 또 괴로움은 머무르며, 또 괴로움은 소멸하고 또 괴로움은 자꾸 생겨서 일체가 다 괴로움뿐이다. 만일 다시 그 괴로움을 남김 없이 끊고 토해 버리며, 탐욕을 여의고 쉬며 사라지게 한다면, 다른 괴로움이 다시는 서로 잇따르지 않고 생겨나지 않나니, 이것이 곧 적멸(寂滅)이요 이것이 곧 승묘(勝妙)이니라. 이를 일러 남아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일체의 애욕이 다하며 탐욕이 없고 완전히 소멸한 열반(涅槃)이라고 하느니라.
귀·코·혀도 마찬가지이며, 몸[身]과 감촉[觸]을 인연하여 신식(身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觸]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受]·생각[想]·의도[思]가 생긴다. 이 네 가지는 곧 무색음(無色陰)이요, 몸은 곧 색음(色陰)이니, 이것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뜻[意]과 법(法)을 인연하여 의식(意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접촉이며, 접촉과 함께 어울려 느낌·생각·의도가 생긴다. 이 네 가지 무색음과 4대(大)는 사부(士夫)가 의지하는 바로써 이러한 법을 사람[人]이라고 한다. ……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에서 설한 것과 같다) ……(내지)…… 완전히 소멸한 열반이니라. 만일 이 모든 법에 대해서 마음이 따라 들어갔어도 해탈에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일으키는 얽매임과 집착에 있어서 나라고 하는 것이 없게 되느니라. 비구들아,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면 곧 법을 보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 본 경의 뒤 문장을 고려할 때 사기는 사부(士夫)라야 옳다.
2) 나라(那羅)는 팔리어로 ara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마누사(摩闍)는 팔리어로 manussaloka이고 인간 혹은 인간세계라는 뜻이다. 마나바(摩那婆)는 팔리어로 ma avaka이고 소년 또는 어린아이라는 뜻이다. 사부(士夫)는 팔리어 puggala의 번역어이고 사람이라는 뜻이다. 복가라(福伽羅)는 팔리어로 puggala이고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도 한다. 기바(耆婆)는 팔리어로 j vaka-komarabhacca이고 수명(壽命)으로도 한역하며 유정(有情)의 대명사로 쓰인다. 선두(禪頭)는 팔리어로 jantu이고 사람 혹은 유정을 가리킨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3권 제304경 〈육륙경(六六經) 〉. p. T02n0099_p0087a03 - T02n0099_p0087a04. 6촉신(觸身)
"云何六觸身。謂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3권 제304경 〈육륙경(六六經) 〉. p. 471 / 2145. 6촉신(觸身)
"어떤 것을 6촉신(觸身)이라고 하는가? 안촉(眼觸)·이촉(耳觸)·비촉(鼻觸)·설촉(舌觸)·신촉(身觸)·의촉(意觸)을 이르는 말이다."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49 / 448. 식(識)
"식(識)은 무엇인가? 6식신(識身)이니, 안식(眼識)에서 의식(意識)에 이르기까지이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0c23 - T26n1542_p0700c24. 식(識)
"識云何。謂六識身。即眼識乃至意識。"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03 - T26n1542_p0701a05. 안식(眼識)
"眼識云何。謂眼及色為緣生眼識。如是眼為增上。色為所緣。於眼所識色。諸已正當了別。是名眼識。耳鼻舌身意識亦爾。"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안식(眼識)
"안식(眼識)은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는데 이와 같은 눈을 증상(增上)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의 대상[所緣]으로 삼아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하여 이미·지금·막·앞으로 요별(了別)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식’이라 한다.
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도 또한 그러하다." - ↑ 가 나 佛門網, "安隱住". 2013년 5월 30일에 확인
"安隱住: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安隱住===瑜伽七十卷五頁云:安隱住者:煩惱苦斷,能作證故。" - ↑ 佛門網, "安隱". 2013년 5월 30일에 확인
"安隱: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安隱===瑜伽五十七卷十五頁云:無有病惱,故名安隱。
二解 瑜伽八十三卷二十一頁云:安隱者:謂超過一切人與非人,災橫怖畏故。
三解 雜集論八卷十六頁云:何故此滅復名安隱?離怖畏住所依處故。無老病死等一切怖畏,聖住所依,故名安隱。
0625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同「安穩」。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術語)與安穩同。宗鏡錄曰:「安隱快樂者,則寂靜妙常。世事永息者,則攀援心斷。」" - ↑ 佛門網, "安穩(安隱)". 2013년 5월 30일에 확인
"安穩(安隱):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Body and mind at rest.
出處: 佛光電子大辭典
解釋: 又作安隱。即安樂而平穩無事之意。若達到不為任何煩惱所惑之境地,而身安心穩,猶如涅槃般之寂靜無為,五濁不障者,亦稱為安穩。此外,善業又稱安穩業,自利利他之道又稱安穩道。有部毘奈耶雜事卷三十六(大二四‧三八七上):「作是念已,即入勝定;所受諸苦如念皆除,安隱而住。」〔無量壽經卷上、法華經卷一、卷二、俱舍論卷十五、法華文句卷十四〕
頁數: p2410" - ↑ 佛門網, "安穩". 2013년 5월 30일에 확인
"安穩:
ānwěn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術語)身安心穩也。法華經譬喻品曰:「身意泰然,快得安穩。」文句十四曰:「不為五濁八苦所危,故名安。日倒暴風所不能動,故名穩。」穩通作隱。" - ↑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56권. p. T30n1579_p0662a08 - T30n1579_p0662a29. 유쟁법(有諍法)·무쟁법(無諍法)의 차별
"復次由五相故建立有諍諸法差別。何等為五。謂由事故。因緣故。自性故。助伴故。等起故。此中五取蘊名有諍法事。若愛味染著愛味耽嗜。名諍因緣。若無常性苦性變壞法性。名有諍自性。即於此諍無智愚癡。名諍助伴。由此因緣五黑品轉。名為等起謂鬥訟違諍。耽著諸欲諸見所生。或餘種類。是初黑品。若隨所有諸煩惱纏無有羞恥。多安住性。是第二黑品。若有沙門或婆羅門。違逆正道。所欲苦行及餘信解。自餓投火墜高巖等。是第三黑品。若有現行身語及意一切惡行。是第四黑品。欣樂後有。是第五黑品。此中最初由生怨恨發憤心故。不安隱住。第二由諸煩惱內燒然故。不安隱住。第三由自誓願虛受劬勞無義苦故。不安隱住。第四生惡趣故。不安隱住。第五生老死等眾苦合故。不安隱住。此中五取蘊有諍事與諍自性及彼因緣助伴等起。共相依故名有諍法。又由五相建立無諍諸法差別。與上相違應知其相。此中五無取蘊無諍事。由諍自性及彼因緣助伴等起於彼法中不可得故。名無諍法。" - ↑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56권. pp. 444-445 / 692. 유쟁법(有諍法)·무쟁법(無諍法)의 차별
"다시 다음에, 다섯 가지 모양으로 말미암아서 다툼이 있는[有諍] 모든 법의 차별을 세운다. 무엇이 다섯 가지냐 하면, ⑴일[事] 때문이며, ⑵인연(因緣) 때문이며, ⑶제 성품[自性] 때문이며, ⑷돕는 벗[助伴] 때문이며, ⑸함께 일어남[等起] 때문이다.
이 안에서, 다섯 가지 쌓임[五取蘊]을 다툼이 있는 법의 일이라 하며, 맛 사랑함[愛味]에 물들어 집착함과 맛을 사랑함에 즐겨 좋아하는 것은 다툼의 인연이라 하며, 무상함의 성품과 괴로움의 성품과 변하여 무너지는 법의 성품은 다툼이 있는 제 성품이라 하며, 바로 이 다툼에 대하여 지혜로움이 없고 어리석은 것을 다툼의 돕는 벗이라 하며,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서 다섯 가지 검은 품류[五黑品]를 굴리는 것을 같이 함께 일어남이라 한다.
다투고 어기면서 모든 욕심과 모든 소견에 즐겨 집착하여 내는 바거나 혹은 그 밖의 종류는 바로 첫째의 검은 품류이며, 온갖 번뇌의 얽음[纏]에 따르면서 부끄러워함이 없이 많이 편안하게 머무는 성품은 바로 둘째의 검은 품류이며, 사문이거나 바라문으로서 바른 도를 어기고서 하고자 하는 바의 고행(苦行)과 그 밖의 믿고 알음[信解]으로 스스로가 굶주리거나 불에 던지거나 높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것 따위는 바로 셋째의 검은 품류이며, 몸과 말과 뜻의 온갖 나쁜 행을 현행함이 있는 것은 바로 넷째의 검은 품류이며, 뒤의 존재[後有]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다섯째의 검은 품류이다.
이 안에서, 맨 처음 것은 원한을 내고 분한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에 안온(安穩)한 머무름이 아니며, 둘째 것은 모든 번뇌가 안에서 불에 타듯 하기 때문에 안온한 머무름이 아니며, 셋째 것은 스스로의 서원으로 헛되이 수고로움을 받으며 옳음이 없는 괴로움이기 때문에 안온한 머무름이 아니며, 넷째 것은 나쁜 갈래[惡趣]에 나기 때문에 안온한 머무름이 아니며, 다섯째 것은 나고 늙고 죽는 따위의 뭇 괴로움이 합하기 때문에 안온한 머무름이 아니다. 이 안에서, 다섯 가지 쌓임은, 다툼이 있는 일과 다툼의 제 성품과 그의 인연 · 돕는 벗 · 함께 일어남과 함께 서로가 의지하기 때문에 다툼이 있는 법이라고 한다.
또, 다섯 가지 모양으로 말미암아서 다툼이 없는[無諍] 모든 법의 차별을 세우나니, 위와 서로 반대의 것이므로 그의 모양을 알아야 되다. 이 안에서 다섯 가지 취[取煩惱]가 없는 쌓임[五無取蘊]은, 다툼이 없는 일과 다툼의 제 성품과 그의 인연 · 돕는 벗 · 함께 일어남의 것이 그의 법 안에서는 얻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다툼이 없는 법이라 한다."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4 - T02n0124_p0547c17. 촉(觸)
"六處緣觸者。云何為觸。謂六觸身。一者眼觸。二者耳觸。三者鼻觸。四者舌觸。五者身觸。六者意觸。是名為觸。"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촉(觸)
"6처는 촉(觸)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촉인가.
촉이란 6촉(觸)을 말하니, 첫째는 안촉(眼觸), 둘째는 이촉(耳觸), 셋째는 비촉(鼻觸), 넷째는 설촉(舌觸), 다섯째는 신촉(身觸)여섯째는 의촉(意觸)이다.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 ↑ 星雲, "六觸". 2013년 5월 19일에 확인
"六觸: 指眼觸、耳觸、鼻觸、舌觸、身觸、意觸等六種作用。觸,乃與一切心、心所法相應,而能使其觸對於境之精神作用;即為根、境、識三者和合而產生之心所。故六觸即為六根、六境、六識和合產生者;於凡夫位,則生愛染,稱為「六觸生愛」。六觸即:(一)眼觸生愛,謂眼能觸對一切世間所有青黃赤白、方圓長短等種種顏色、形相而貪愛不捨。(二)耳觸生愛,謂耳能觸對一切世間所有絲竹歌詠等種種之聲,而貪愛不捨。(三)鼻觸生愛,謂鼻能觸對一切世間所有栴檀沈水等種種之香,而貪愛不捨。(四)舌觸生愛,謂舌能觸對一切世間所有珍饈美饌等種種之味,而貪愛不捨。(五)身觸生愛,謂身能觸對男女身分柔軟細滑及世間所有種種上妙衣服等,而貪愛不捨。(六)意觸生愛,謂意能觸對一切世間所有色聲香味觸等種種之法,而貪愛不捨。〔雜阿含經卷十三、俱舍論卷十、順正理論卷二十九、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 p1313"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099_p0085b04 - T02n0099_p0085b06. 촉(觸)
"緣六入處觸者。云何為觸。謂六觸身。眼觸身.耳觸身.鼻觸身.舌觸身.身觸身.意觸身。"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촉(觸)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니라."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05 - T26n1542_p0701a08. 안촉(眼觸)
"眼觸云何。謂眼及色為緣生眼識。三和合故觸。如是眼為增上。色為所緣。於眼所識色。諸觸等觸觸性等觸性已觸觸類。是名眼觸。"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0 / 448. 안촉(眼觸)
"안촉(眼觸)은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觸]이 생긴다.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하여 모든 접촉이요 평등한 접촉[等觸]이며, 접촉의 성품[觸性]이요 평등하게 접촉하는 성품[等觸性]이며 이미 접촉하였고 접촉하는 종류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안촉’이라 한다.
이촉(耳觸)·비촉(鼻觸)·설촉(舌觸)·신촉(身觸)·의촉(意觸)도 또한 그러하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19 - T26n1542_p0701a25. 안촉소생사(眼觸所生思)
"眼觸所生思云何。謂眼及色為緣生眼識。三和合故觸。觸為緣故思。如是眼為增上。色為所緣。眼觸為因為集為類為生。眼觸所生作意相應。於眼所識色諸思等思增上等思。已思思類心作意業。是名眼觸所生思。耳鼻舌身意觸所生思亦爾。"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 51 / 448. 안촉소생사(眼觸所生思)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眼觸所生思]는 무엇인가? 눈이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반연되기 때문에 마음의 사(思)가 있는데,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의 접촉은 인이 되고, 쌓임이 되고, 종류가 되고, 나는 것이 되며,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작의와 상응하는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해서 모든 마음의 조작[造作:思]이요, 평등한 사[等思]요, 더욱 뛰어나게 평등한 사[增上等思]이며, 이미 지나간 사[已思]요 종류이며 마음으로 짓는 뜻의 업[心作意業]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이라 한다.
귀·코·혀·몸·뜻의 조작으로 생기는 사(思)도 또한 그러하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3권. p. T26n1542_p0701a25 - T26n1542_p0701a29. 안촉소생애(眼觸所生愛)
"眼觸所生愛云何。謂眼及色為緣生眼識。三和合故觸。觸為緣故愛。如是眼為增上。色為所緣。於眼所識色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樂。是名眼觸所生愛。耳鼻舌身意觸所生愛亦爾。"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3권. pp. 51-52 / 448. 안촉소생애(眼觸所生愛)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眼觸所生愛]는 무엇인가? 눈과 빛깔을 반연으로 하여 안식이 생기나니,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까닭에 접촉이 생기며 접촉을 반연하기 때문에 사랑[愛]이 있나니, 이와 같이 눈을 증상으로 삼고 빛깔을 반연하는 대상으로 삼을 적에 눈이 인식하는 빛깔에 대해서 모든 탐(貪)이요 평등한 탐[等貪]이며, 가져 간직하고[執藏] 막아 수호하며[防護] 즐겨 집착하고[取著] 사랑하며 좋아하는 것[愛樂]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눈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이라 한다.
귀·코·혀·몸·뜻의 접촉으로 생기는 사랑[愛]도 또한 그러하다." - ↑ 가 나 운허, "貪欲(탐욕)".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貪".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가 나 星雲, "貪欲". 2012년 10월 24일에 확인.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28. 애결(愛結)
"愛結云何。謂三界貪。"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5 / 448. 애결(愛結)
"애결(愛結)이란 무엇인가? 3계(界)를 탐하는 것이다." - ↑ 佛門網, "厭". 2013년 5월 10일에 확인
"厭: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Satiated; weary of; disgusted with.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介於「清醒不迷戀」與「厭惡排斥」間的心境,是向解脫修學的第一步。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dveṣin, nirveda.
頁數: P.2255-P.2266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十一卷十二頁云:何等為厭?謂由於彼,深見過患,棄背為性。此復三種。謂無常故,苦故,變壞法故。
二解瑜伽八十四卷六頁云:厭者:謂於見道。又言厭者:由見諦故;於一切行,皆悉厭逆。
三解瑜伽八十五卷十頁云:又於斷界,未得為得,勤修習故;名為諸行修厭。
四解瑜伽八十五卷十一頁云:云何厭?謂有對治現前故;起厭逆想,令諸煩惱、不復現行。又云:謂於厭位斷界極成滿故名厭。
五解大毗婆沙論二十八卷十四頁云:云何厭?答:若於諸行,無學厭惡違逆;是謂厭。問:厭亦通學,及非學非無學;此中何故唯說無學耶?答:亦應說學及非學非無學,而不說者;當知此義有餘。復次此中就勝說故。謂若說勝法;則無學法勝。若說勝有情;則無學有情勝。故說無學。復次若說究竟;應知亦說初中。故不說二。復次無學法、是諸善根本;是故偏說。謂諸善法、皆依無學,得生長故。復次若有厭,無欣;有離染,無染著;有解脫,無繫縛;有智慧,無無知者;此中說之。復次若有厭,不復厭;有離染,不復離染;有解脫,不復解脫者;此中說之。復次若有厭等修圓滿者;此中說之。尊者妙音、作如是說:以無學法、多勝無過,是故偏說。大德說曰:若界趣生及老病死一切盡者;此中說之。學等不爾。是故不說。問:厭、以何為自性?為是慧?為是無貪耶?設爾;何失。若是慧者;次後所說、當云何通?如說:云何依厭離染?答:若厭相應無貪、無等貪,無瞋、無等瞋,無癡、無等癡善根;是謂依厭離染。此中無貪、無瞋、可爾;無癡云何?無癡即慧。豈慧與慧、有相應義,而說厭相應無癡善根耶?若是無貪;次後所說、當云何通?如說:云何依厭離染?答:若厭相應無貪、無等貪、乃至廣說。此中無瞋無癡可爾。無貪云何?若厭、是無貪;云何說無貪與厭相應。自性與自性、無相應義故。見蘊所說、復云何通?如說:有事能厭非能離。謂苦集忍智,不斷諸煩惱。有事能厭亦能離。謂苦集忍智、斷諸煩惱。忍智是慧、非無貪性。云何說厭、無貪為體?有作是說:厭以慧為自性。問:若爾;次後所說,當云何通?如說:云何依厭離染?答:若厭相應無貪無等貪;乃至廣說。答:此文但應說無貪無瞋;不應說無癡。誦者言便,乘作此說。有餘師說:厭以無貪為自性?問:若爾;次後所說、當云何通?如說:云何依厭離染?乃至廣說。答:此文但應說無瞋無癡;不應說無貪。而說無貪者,顯示依處。謂或有依無貪故,心解脫貪。或有依無瞋故,心解脫瞋。或有依無癡故,心解脫癡。或有依無貪故,心解脫二。乃至或有依無癡故,心解脫三。此中顯示依無貪故,心解脫三;故說若厭相應無貪無等貪乃至廣說。非謂別有無貪善根、與厭相應。問:見蘊所說、復云何通?答:厭非忍智。與忍智相應故,立忍智名。彼依相雜,說能厭性。評曰:有別法名厭。非慧、非無貪。是心所法,與心相應。此說在後。復有所餘如是類諸心所法、與心相應。然見蘊說苦集忍智、名能厭者。由彼智忍、與厭相應,說名能厭。非厭自性。此中所說是無漏厭者:謂不淨觀、持息念、念住、三義觀、七處善、暖、頂、忍、世第一法、相應,隨其所應,及現觀邊世俗智相應,隨其所應;並餘有漏靜慮無色無量解脫勝處遍處如病如癰如箭等,隨其所應,無量行相相應。
六解大毗婆沙論一百九十六卷十二頁云:問:如所說厭、體性是何?為是無貪?為是慧耶?設爾;何失?若是無貪;此文所說、當云何通?如說:有事能厭、亦能離。謂苦集忍智、斷諸煩惱。雜蘊所說、復云何通?如說:云何習厭離貪?謂無學厭相應無貪無瞋無癡。非無貪與無貪,可說相應。自性與自性,不相應故。若是慧者;即上所說、復云何通?如說:云何習厭離貪?謂無學厭相應無貪無瞋無癡。無癡即慧。非慧與慧、可說相應。所以如前。此中有說:厭體性是無貪。問:若爾者;此文所說、當云何通?如說:有事能厭亦能離。乃至廣說。答:彼中說厭相雜法名厭。謂無貪與忍智相應,說為忍智。問:雜蘊所說、復云何通?如說:云何習厭離貪、乃至廣說。答:彼文應作是說:厭相應無瞋無癡善根。不應說無貪、而說者;當知是誦者隨言勢增益。有作是說:厭體是慧。問:若爾者;則雜蘊所說、復云何通?如說:云何習厭離貪,乃至廣說。答:彼文應作是說:厭相應無貪無瞋。不應說無癡、而說者;當知是誦者、隨言勢增益。評曰:應說厭體性異。非無貪,非慧。別有心所法,名厭。與心相應。此則攝在復有所餘心所法中。此中說無漏厭。然亦有有漏厭。謂與不淨觀、持息念、念住、三義觀、七處善、暖、頂、忍、世第一法、見道中現觀邊世俗智、修道等中如病如癰如箭行相、靜慮、無量、無色、解脫、勝處、遍處等、廣說過四大海;今略說爾所。
七解入阿毗達磨論上八頁云:厭、謂厭患。於流轉品,見過失已;令心厭離,隨順離染。心有此故;厭惡生死。與此相應,名厭作意。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ud-√vij, udvega, nirveda, khinna; √tṛp; arati, alam, asakta, udvigna, udvejana, kheda, jugupsanīya, tṛpta, tṛpti, dūṣaṇa, dveṣitva, nirviṇṇa, nirvit-saṃjñin, nirvid, nirvidyate, parikhinna, parikheda, praty-ā-√khyā, √ruṣ, vijugupsate, vijugupsanatā, vidveṣa, vimukha, vi-rāgaya(den.), viveka, vairāgya, saṃvega, saṃtuṣṭi, samudvega.
頁數: p.393 - p.402"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4권. p. T31n1605_p0676c01 - T31n1605_p0676c03. 애결(愛結)
"愛結者。謂三界貪愛結所繫故不厭三界。由不厭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4권. p. 75 / 159. 애결(愛結)
"애결이란 3계의 탐결에 계류받기 때문에 삼계를 싫어하여 떠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싫어하여 떠나지 못하는 까닭에 불선법을 널리 행해서 갖가지 선법을 행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미래세의 고를 초래해서 고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6권. p. T31n1606_p0723b09 - T31n1606_p0723b15. 애결(愛結)
"愛結者。謂三界貪愛。結所繫故不厭三界由不厭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當知此中宣說諸結若相若用若位辯結差別。且如愛結何等是結。謂三界貪是結自性。云何為結。謂有此者不厭三界。由此展轉不善現行善不現行。於何位結。謂於後世苦果生位。如是恚結等並如理應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6권. pp. 149-150 / 388. 애결(愛結)
"‘애결’이란 삼계의 탐을 말하는 것이니, 그 결에 얽매이기 때문에 삼계를 싫어하여 여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 싫어하여 여의지 못하는 까닭에 불선법을 널리 행하여 갖가지 선법을 행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미래세의 고를 초래해서 고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한 여러 가지 ‘결’은 그 모양이나 쓰임새나 위치에서나 그 ‘결’을 논하는 차별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애결(愛結)과 같은 것이라면 도대체 어떠한 것이 ‘결’입니까?
삼계의 결이 바로 자체적인 성품이다.
‘결’이란 무엇입니까?
이러한 것이 있기에 삼계를 싫어하여 여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같이 전전하는 것에 연유해서 불선법이 현행하게 되고 선법이 현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지위에서 매이게 됩니까?
후세에서 고의 과보가 행해지는 지위이다. 이처럼 에결 따위도 역시 그 이치에 따라 숙지해야 한다." - ↑ 星雲, "愛樂".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 謂信愛欲樂。即信樂世間、出世間善法之意,屬無染污之愛。俱舍論卷四謂,愛乃愛樂,其體即是信。成唯識論卷六謂,信以愛樂為相。淨土論謂愛樂佛法味者,即愛樂淨土之法味。 p5462" - ↑ 가 나 佛門網, "愛樂".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The joy of right love, i.e. the love of the good.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八十四卷十六頁云:宿世串習所發生愛,名為愛樂。" - ↑ 가 나 佛門網, "愛樂住".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住: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即「保持著愛樂」,相當的南傳經文作「樂於色,喜樂於色,歡喜著色」。"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29b22 - T31n1585_p0029b28. 신(信)
"云何為信。於實德能深忍樂欲心淨為性。對治不信樂善為業。然信差別略有三種。一信實有。謂於諸法實事理中深信忍故。二信有德。謂於三寶真淨德中深信樂故。三信有能。謂於一切世出世善深信有力能得能成起希望故。由斯對治彼不信心。愛樂證修世出世善。"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284 / 583. 신(信)
"무엇을 ‘신(信)심소’3)라고 하는가? 참으로 존재함[實]과 덕(德) 및 능력[能]을 깊이 인정하고 좋아하며 원하여 심왕을 청정하게 함을 체성으로 삼고, 불신(不信)을 다스리고 선(善)을 좋아함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데 신(信)심소를 구별하면 대략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참으로 존재함을 믿는 것이니, 일체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해서 깊이 믿어 인정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삼보의 진실되고 청정한 덕을 깊이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선에 대하여 힘이 있어서 능히 얻고 능히 성취한다4)고 깊이 믿어서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닦고 증득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3) 신(信, śraddhā)심소는 ‘믿음’의 능력이다. 제법의 참다운 도리와 삼보의 덕과 선근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기꺼이 원한다. 염오의 심왕 · 심소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한다. 마치 탁수(濁水)에 맥반석을 넣으면 정화되듯이 이 믿음심소는 염오심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4) 무위선(無爲善)을 얻고 유위선(有爲善)을 성취하는 것, 또는 세간의 선(善)을 얻고 출세간의 선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 ↑ 佛門網, "愛樂正法".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正法:
出處: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 謂諸比丘,於上座所,聞說妙法,深生愛樂,歡喜奉行,是故能令正法不滅。" - ↑ 佛門網, "愛樂順解脫分".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順解脫分: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如四種順解脫分中說。" - ↑ 佛門網, "彼彼愛樂".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彼彼愛樂: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參看「彼彼樂著」。" - ↑ 佛門網, "愛樂彼彼有起".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樂彼彼有起: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參看「彼彼樂著」。" - ↑ 佛門網, "彼彼樂著".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彼彼樂著: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另譯作「愛樂彼彼有起、願彼彼有、求彼彼有、彼彼愛樂」,意思是「到處歡喜;到處尋求喜歡者」。(經文「愛樂彼彼有起不隨者」或斷句為「愛樂彼彼有起,不隨者」,即「不隨渴愛而到處尋求喜歡者」)" - ↑ 佛門網, "愛欲". 2013년 5월 23일에 확인
"愛欲: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Love and desire; love of family.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貪愛五欲。
出處: 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解釋:
愛欲 (ài yù) ( “love and lust” )
{《漢語大詞典》7.635a(佛典)} ; {《大漢和辞典》4.1130a(佛典)} ;
Dharmarakṣa: {64c11} (bodhisattvas)捐棄愛欲 永使無餘(v)
{K.12.3} kāma~
Kumārajīva: {L.3a21} 欲
Dharmarakṣa: {66c5} 尊者諸子…… 棄捐愛欲 一切所有(v)
{K.23.8} do.
Kumārajīva: {not found at L.4b26}
Dharmarakṣa: {70c12}
{K.48.2} kāma-guṇa~
Kumārajīva: {L.8b11} 五欲
Dharmarakṣa: {72a25}
{K.54.9} tṛṣṇā-
Kumārajīva: {L.9b28} 五欲
Dharmarakṣa: {74c12}
{K.68.8} kāma~
Kumārajīva: {L.11c25} 世榮
Dharmarakṣa: {76a8}
{K.79.7-}
Kumārajīva: {not found at L.13b10}
Dharmarakṣa: {78a3} 一切黎元 愚不受教 坐著愛欲 而自縶紲(v)
{K.90.4} kāma~
Kumārajīva: {L.14c29} 諸欲
Dharmarakṣa: {78b10} 瑕穢愛欲 亦可惡厭(v)
{K.92.3} do.
Kumārajīva: {L.15a23} 愛欲
Dharmarakṣa: {78b16} 愛欲已斷 常無所著(v)
{K.92.7} tṛṣṇā~
Kumārajīva: {L.15a28} 貪欲
Dharmarakṣa: {78c14} 闇冥輩類 常懷愛欲(v)
{K.93.12} kāma~
Kumārajīva: {L.15b21} 五欲
Dharmarakṣa: {83c1} 或習愛欲便爲説經(p)
{K.123.10} do.
Kumārajīva: {L.19b20} 樂
Dharmarakṣa: {84a27} 燒盡愛欲 獲至滅度(v)
{K.128.2} do.
Kumārajīva: {L.20a7} 世間之樂
Dharmarakṣa: {84b7} 吾爲如來…… 無有所憎 愛欲永除(v)
{K.128.8} rāga~
Kumārajīva: {L.20a14} 愛
Dharmarakṣa: {91a4} 諸佛現世…… 僥倖來至 蠲除愛欲 具足充滿 於三千刹(v)
{K.173.1} (bhava-)rāga-
Kumārajīva: {L.24a23} 諸煩惱
Dharmarakṣa: {96a25}
{K.204.3} sa-rāgatā~
Kumārajīva: {not found at L.28a19}
Dharmarakṣa: {131c6}
{K.463.8-}
Kumārajīva: {not found at L.60b2}" - ↑ 운허, "軛(액)".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軛(액): 번뇌의 다른 이름. 액은 수레의 멍에. 소를 수레에 메우는 기구. 번뇌는 중생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고뇌에 얽매이게 하는 것이므로 액이라 함." - ↑ 가 나 佛門網, ""軛".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軛: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讀作「餓」,指套住牛頸的曲形木,引申為「束縛」;「羈絆」的意思。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解釋:
yuga, yoga, dhura.
頁數: P.3688-P.3694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八十四卷十四頁云:又依前際,能為現法生死流轉勝方便故;說名為軛。
二解瑜伽八十九卷十頁云: 復次若諸煩惱等分行者,非增非減,即上所說一切煩惱,說名為軛。
三解集論四卷十三頁云:障礙離繫是軛義。
四解俱舍論二十卷十六頁云:和合有情,故名為軛。又云:於現行時,非極增上;說名為軛。但令有情,與種種類苦和合故。或數現行,故名為軛。
五解入阿毗達磨論上十六頁云:和合有情,令於諸趣諸生諸地受苦,故名為軛。即是和合令受種種輕重苦義。" - ↑ DDB, ""軛".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軛:
Pronunciations: [py] è [wg] o [hg] 액 [mc] aek [mr] aek [kk] ヤク [hb] yaku [qn] ách
Basic Meaning: yoke
Senses:
# Something that binds like a yoke—afflictions. (Skt. dhura; Tib. brtson pa, yuga)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Hirakawa]
# (Skt. yoga; Tib. sbyor b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 Also in: CJKV-E
[Dictionary References]
Bukkyō jiten (Ui) 1065
Bulgyo sajeon 566a
Bukkyōgo daijiten (Nakamura) 1375d
Ding Fubao {Digital Version}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Hirakawa) 1133
Bukkyō daijiten (Oda) 1750-2
Sanskrit-Tibetan Index for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Yokoyama and Hirosawa) {Digital Version}" - ↑ 가 나 星雲, "四軛".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四軛: 梵語 catvāro yogāh,巴利語 cattāro yogā。又作四扼。軛,為扼制牛馬頸之物,令之拖車而不得逃離;故以四軛比喻四種繫縛有情眾生令不得出離生死之煩惱。亦即和合眾苦之煩惱有四種類別。據大毘婆沙論卷四十八、雜阿毘曇心論卷四等所說,即:(一)欲軛(梵 kāma-yoga,巴同),有情和合欲界之苦所生之煩惱,同於欲暴流,有二十九種,即見道之四諦與修道各有貪、瞋、慢,合為十五,四諦之下又各有「疑」,再加十纏而成。(二)有軛(梵 bhava-yoga,巴同),和合色界、無色界之苦所生之煩惱,同於有暴流,有二十八種,即二界之四諦與修道各有貪與慢,合為二十,再加四諦下之八疑而成。(三)見軛(梵 drsti-yoga,巴 ditthi-yoga),和合三界苦之見煩惱,同於見暴流,有三十六種,即三界四諦下各有身見等十二見而成。(四)無明軛(梵 avidyā-yoga,巴 avijjā-yoga),和合三界苦之癡煩惱,同於無明暴流,有十五種,即三界之四諦與修道各有一癡而合為十五。故四軛與四暴流相同,其體總為一○八種。
此外,據瑜伽師地論卷十九所說,於三界九地之中,繫縛於下劣地之定障有四種類別。即:染污尋思軛、不染污尋思軛、喜樂繫縛軛、一切色想軛。此蓋欲界染污之尋思,乃至一切所有色想,繫縛受種種別異果報之凡夫,令彼等往復生於下地,故立四軛說。〔長阿含經卷九、品類足論卷三、集異門足論卷八、入阿毘達磨論卷上、俱舍論卷二十、法華經玄贊攝釋卷二、大乘義章卷五本、大乘法相宗名目卷二上〕 p1765" - ↑ "扼",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扼 잡을 액:
1. 잡다 2. 누르다 3. 움켜쥐다 4. 가지다 5. 멍에
扼腕 액완: 분격(憤激)하여 팔짓을 함. 성나고 분하여 주먹을 쥠
扼守 액수: 중요(重要)한 곳을 굳게 지킴
要扼 요액: 적을 기다려 막음
扼險 액험: 지세가 험한 요해처(要害處)를 누름
切齒扼腕 절치액완: 이를 갈고, 팔을 걷어올리며 주먹을 꽉 진다는 뜻으로, 매우 분하여 벼르는 모습을 이르는 말" - ↑ "멍에", 《네이버 국어사전》.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멍에:
1.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 [비슷한 말] 거형.
소에 멍에를 메우다
밭을 갈던 사람들은 황소의 멍에를 풀었다.
2.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의 출생의 멍에는 무겁고도 가혹한 것이었다. 출처: 박경리, 토지" - ↑ "羈絆",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羈絆 기반: ①굴레 ②굴레를 씌우듯 자유(自由)를 얽매는 일
羈 굴레 기,나그네 기
1. 굴레 2. 말고삐 3. 나그네 4. 객지살이(客地--) 5. 북상투(아무렇게나 막 끌어 올려 짠 상투) 6. 구금하다(拘禁--), 억류하다(抑留--) 7. 얽매이다 8. 매다 9. 단속하다(團束--) 10. 구속받다(拘束--),...
絆 얽어맬 반
1. 얽어매다 2. 묶다 3. 묶어 놓다 4. 견제하다(牽制--) 5. 줄 6. 올가미" - ↑ "굴레", 《네이버 국어사전》.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굴레:
1.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하여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 [비슷한 말] 기반(羈絆).
말에 굴레를 씌우다.
2. 베틀에서, 바디집비녀 옆에 바디집을 걸쳐 매는 끈.
3. 부자연스럽게 얽매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삶의 굴레
인습의 굴레
영희는 아직도 어려 저를 속박하고 있는 굴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출처: 조세희,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 ↑ "속박",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束縛 속박: ①몸을 자유(自由)롭지 못하게 얽어맴 ②어떤 행위(行爲)를 자유(自由)로이 못하도록 얽어매거나 제한(制限)을 더함. 얽어맴. 묶음" - ↑ 星雲, "離繫".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離繫: 梵語 vi-sajyoga,巴利語同。又作離滅。指擇滅無為,與解脫之義同。謂由斷除煩惱而遠離有漏法之繫縛。擇滅無為者,乃斷煩惱所顯之寂滅無為涅槃之理,依此故稱離繫。俱舍論卷一(大二九‧一下):「擇滅即以離繫為性,諸有漏法遠離繫縛,證得解脫,名為擇滅。」〔大毘婆沙論卷三十一、順正理論卷六〕(參閱「擇滅」6225) p6718"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0권. p. T29n1558_p0108a17 - T29n1558_p0108b11. 수면(隨眠)의 뜻
"如是已辯隨眠并纏。經說為漏瀑流軛取。此隨眠等名有何義。頌曰。
微細二隨增 隨逐與隨縛
住流漂合執 是隨眠等義
論曰。根本煩惱現在前時行相難知故名微細。二隨增者。能於所緣及所相應增惛滯故。言隨逐者。謂能起得恒隨有情常為過患。不作加行為令彼生。或設劬勞為遮彼起而數現起故名隨縛。由如是義故名隨眠。稽留有情久住生死。或令流轉於生死中。從有頂天至無間獄。由彼相續於六瘡門泄過無窮故名為漏。極漂善品故名瀑流。和合有情故名為軛。能為依執故名為取。若善釋者應作是言。諸境界中流注相續泄過不絕故名為漏。如契經說。具壽當知。譬如挽船逆流而上。設大功用行尚為難。若放此船順流而去。雖捨功用行不為難。起善染心應知亦爾。准此經意。於境界中煩惱不絕說名為漏。若勢增上說名瀑流。謂諸有情若墜於彼。唯可隨順無能違逆。涌泛漂激難違拒故。於現行時非極增上說名為軛。但令有情與種種類苦和合故。或數現行故名為軛。執欲等故說名為取。"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0권. pp. 940-942 / 1397. 수면(隨眠)의 뜻
"이와 같이 수면과 아울러 전(纏)을 경에서 누·폭류·액·취라고 설한 것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면 등의 명칭에는 어떠한 뜻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미세, 두 가지에서의 수증
수축(隨逐)과 수박(隨縛)
머묾과 유전·표류·화합·집취
이것이 바로 수면 등의 뜻이다.
微細二隨增 隨逐與隨縛
住流漂合執 是隨眠等義
논하여 말하겠다. 근본번뇌(즉 10수면)가 현재전할 때 그 행상(行相)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미세(微細)'라고 이름한다.76)
'두 가지에서의 수증'이란, 말하자면 [수면은] 능히 그것의 소연 및 그것에 상응하는 법과 뒤엉켜[惛滯] 증장하기 때문이다.
'수축'이라고 하는 말은, 이를테면 [수면의] 득(得)을 일으켜 항상 유정을 쫓아다니면서 과환(過患)이 되는 것을 말한다.
가행을 지어 그것(수면)을 생겨나지 않게 하더라도, 혹은 애써 노력하여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지라도 자꾸자꾸 일어나기 때문에 '수박(隨縛)'이라고 한다. 곧 이와 같은 뜻으로 말미암아 수면이라 이름하게 된 것이다.
나아가 [수면은] 유정을 생사(生死)에 체류시켜 오래 머물게[住] 하며, 혹은 유정천으로부터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생사 중에 유전(流轉)시키는 것으로,77) 그들의 상속은 육창문(六瘡門, 즉 6근을 말함)에서 끊임없이 번뇌를 누설하기 때문에 수면을 일컬어 '누(asrava)'라고 하였다. 또한 선품을 극심히 표탈(漂奪)시켜 버리기 때문에 '폭류(ogha)'라고 이름하였고, 유정을 [3계·5취·4생과] 화합시키기 때문에 '액(yoga)'이라고 이름하였으며, 능히 의지하여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취(upadana)'라고 이름하였다.
그러나 만약 좋은 해석이 되려면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78) 온갖 경계 중으로 상속(相續)을 흘러들게 하여 끊임없이 허물을 누설(漏泄)하기 때문에 '누'라고 이름한 것이니, 계경에서 설하고 있는 바와 같다. 즉 "구수(具壽)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비유하자면 배를 당기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으니, 설혹 크나큰 힘을 들이더라도 [거슬러 올라] 가는 것은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약 이 배를 그대로 놓아두어 강물의 흐름에 따라 가게 하면 비록 힘을 들이지 않을지라도 [내려]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선심이나 염심을 일으키는 것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79) 즉 이 경의 뜻에 준하여 본다면, 경계 중에서 번뇌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일컬어 '누'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수면의] 세력이 강력하게 될 때를 설하여 '폭류'라고 이름한다. 즉 모든 유정이 거기에 떨어질 경우 오로지 거기에 따라야 할 뿐 능히 어기거나 거역할 수 없으니, 솟구치거나 떠오르거나 떠내려가거나 물결치면 그것을 어기거나 거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할 때 지극히 두드러지지 않은 수면을 설하여 '액'이라 이름하니, 다만 유정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종류의 괴로움과 화합하게 하기 때문에, 혹은 자주자주 현행하기 때문에 '액'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또한 [수면은] 욕경(欲境) 따위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을 설하여 '취'라고 이름한 것이다.80)
76) 수면의 원어 anu-saya의 anu를 미세[微, a u]의 뜻으로 이해하여 해석한 것이다.
77) '누'의 원어 a-srava는 a-sru(유출·유동하다)라는 동사의 파생어이지만, 여기서는 이와 유사한 as(앉다)의 사역어 asayati(머물게 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또한 '유전시키는 것'이라는 말은 a-sru의 사역어 asravayati(=asravayati)에 근거한 해석이다.
78) 이하 논주 자신의 해석이다.
79) 『잡아함경』 권제18 제493경(대정장2, p. 128중하) 참조. 즉 선법을 행하는 것은 크나큰 가행이 필요하다는 비유로서, 수면은 경계라는 강물을 따라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허물을 누설하기 때문에 '누'라는 것이다
80) 5욕경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욕취이며, '견'에 집착하는 것은 견취, 계에 집착하는 것은 계금취, 아어에 집착하는 것은 아어취이다." - ↑ 운허, "四軛(사액)".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四軛(사액): 네 가지 번뇌. 욕액(欲軛)ㆍ유액(有軛)ㆍ견액(見軛)ㆍ무명액(無明軛). 사폭류(四爆流)와 같음. 액(軛)은 멍에. 수레 끄는 소의 목에 메워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번뇌도 중생을 생사에 얽매어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뜻." - ↑ 佛門網, "四軛". 2013년 5월 17일에 확인
"四軛: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The four yokes, or fetters, i. e. 欲 desire, 有 possessions and existence, 見 (unenlightened or non-Buddhist) views, 無明 ignorance.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大毗婆沙論四十八卷三頁云:有四軛,謂欲軛、有軛、見軛、無明軛。此軛自性如瀑流說而義有異,謂漂溺義是瀑流義;和合義是軛義,謂諸有情為四瀑流所漂溺已,復為四軛和命系礙,便能荷擔生死重苦,如牽捶牛,置之轅軛,勒以鞦鞅,能挽重載。故一切處說瀑流已,即便說軛義相鄰故。
二解 集異地門論八卷三頁云:四軛者,一、欲軛,二、有軛,三、見軛,四、無明軛。云何欲軛?答:如世尊說:苾芻當知,有諸愚夫、無聞異生,於欲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彼於欲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故,於諸欲中所有欲,貪慾、欲欲、親欲、愛慾、樂欲、悶欲、耽欲、嗜欲、喜欲、藏欲、隨欲,著纏壓於心,是名欲軛。云何有軛?答:如世尊說:苾芻當知,有諸愚夫、無聞異生,於有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彼於有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故,於諸有中所有有、貪有、欲有、親有、愛有、樂有、悶有、耽有、嗜有、喜有、藏有、隨有,著纏壓於心,是名有軛。云何見軛?答:如世尊說:苾芻當知,有諸愚夫、無聞異生,於見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彼於見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故,於諸見中所有見,貪見、欲見、親見、愛見、樂見、悶見、耽見、嗜見、喜見、藏見、隨見,著纏壓於心,是名見軛。云何無明軛?答:如世尊說:苾芻當知,有諸愚夫、無聞異生,於六觸處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彼於六觸處集沒味患出離不如實知故,於六觸處所有執著,無明、無智、隨眠、隨增,是名無明軛。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四軛===(名數)與四暴流同,一欲軛,二有軛,三見軛,四無明軛也。和合有情而使受種種之苦,故云軛。俱舍論二十曰:「應知四軛與四暴流同。」又曰:「和合有情,故名為軛。」" - ↑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8권. p. T30n1579_p0314b20 - T30n1579_p0314b23. 번뇌(煩惱)의 차별(差別)
"煩惱差別者。多種差別應知。謂結。縛。隨眠。隨煩惱。纏。暴流。軛。取。繫。蓋。株杌。垢。常害。箭。所有。根。惡行。漏。匱。燒。惱。有諍。火。熾然。稠林。拘礙。如是等類煩惱差別當知。" - ↑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8권. pp. 220-221 / 829. 번뇌(煩惱)의 차별(差別)
"번뇌(煩惱)의 차별(差別)31)이란 여러 가지 차별(差別)이 있는 줄 알아야만 한다. 말하자면 결(結) 박(縛) 수면(隨眠) 수번뇌(隨煩惱) 전(纏) 폭류(暴流) 액(軛) 취(取) 계(繫) 개(蓋) 주올(株杌) 구(垢) 상해(常害) 전(箭) 소유(所有) 근(根) 악행(惡行) 루(漏) 궤(匱) 소(燒) 뇌(惱) 유쟁(有諍) 화(火) 치연(熾然) 조림(稠林) 구애(拘礙)이다.
위와 같은 등의 종류가 번뇌의 차별(差別)인 줄 알아야 한다.
31) 번뇌잡염(煩惱雜染)의 아홉 가지 부분의 여덟 번째로 번뇌(煩惱)의 차별(差別)에 대해서 기술한다." - ↑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8권. p. T30n1579_p0314b28. 액(軛)
"邪行方便故名為軛。" - ↑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8권. p. 221 / 829. 액(軛)
"사행(邪行)의 방편(方便)이 되기 때문에 액(軛)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 ↑ 운허, "兩舌(양설)". 2012년 11월 7일에 확인
"兩舌(양설): 10악(惡)의 하나. 두 말 하는 것. 양쪽 사람에 대하여 번갈아 서로 틀리는 말을 함. 그리하여 양쪽 사람의 사이를 이간하여 불화케 함. 신역(新譯)에서는 이간어(離間語)라 함." - ↑ 星雲, "兩舌". 2012년 11월 8일에 확인
"兩舌: 梵語 paiśunya,巴利語 pisunā-vācā。即於兩者間搬弄是非、挑撥離間,破壞彼此之和合。又作離間語、兩舌語。為十惡業之一。四分律卷十一,以兩舌語為「波逸提」之第三;智顗之菩薩戒義疏卷下,將兩舌戒配於梵網四十八輕戒中之第十九戒。然成實論卷八之五戒品中則不以兩舌為五戒之一,謂兩舌屬微細過,守護不易;且兩舌係由妄語分出,若說妄語,則已含攝於內,故不以兩舌為戒。兩舌之罪,能令眾生墮三惡道;若生人中,亦得弊惡眷屬與不和眷屬之果報。〔雜阿含經卷三十七、大方等大集經卷五十、六十華嚴經卷二十四十地品、十誦律卷九、瑜伽師地論卷八、俱舍論卷十六〕(參閱「十善十惡」)"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1353-1354 / 1397쪽.
- ↑ Macdonell 1929, "posa". 2012년 9월 23일에 확인.
- ↑ Rhys Davids, T.W. & William Stede (eds.) & 1921-5, "posa". 2012년 9월 23일에 확인.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3권. p. T29n1558_p0014a25 - T29n1558_p0014b01. 어구(語具)
"受解脫喜樂故。若增上故立為根者。無明等性應立為根。無明等因於行等果。各各別有增上用故。又語具等應立為根。語具手足大小便處。於語執行棄樂事中。如其次第有增上故。如是等事不應立根。由所許根有如是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3권. p. 118 / 1397. 어구(語具)
"만약 증상력의 뜻이 있기 때문에 '근'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한다면, 무명(無明) 등의 존재도 마땅히 근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니, 무명 등의 원인은 행(行) 등의 결과에 대해 각각 개별적인 증상의 작용을 갖기 때문이다.17) 또한 말하는 입[語具] 등도 마땅히 근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니, 입과 손과 발과 대(大)·소변처(小便處)는 그 순서대로 말하고 잡고 가고 배설하고 즐기는 일에 대해 증상의 작용 있기 때문이다.18)
이와 같은 따위의 사실에 대해서는 마땅히 근으로 설정해서는 안 될 것이니, 근으로 인정하려면 다음과 같은 특상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17) 이하 근의 폐립(廢立)을 논하고 있다. 먼저 무명·행·식·명색·6처·촉·수·애·취·유·생·노사의 12연기 지(支,본론 권제9참조) 각각은 후지(後支)를 낳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전자는 후자에 대해 증상의 작용이 있어야 하고, 그럴 경우 그것 역시 '근'이 되어야 한다는 뜻
18) 이는 가비라(迦比羅, Kapila)를 개조로 하는 샹캬(S khya, 數論)학파의 학설이다. 이 학파에서는 사고기관[意]과 다섯 가지 감각기관[知根]과 다섯 가지 행동기관[作根] 등 열한 가지의 근(根)을 설정하였는데, 여기서 입 즉 발성기관 등은 생식기관[小便處]과 함께 다섯 가지 행동기관에 속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파는 뒤에 다시 설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1b27 - T29n1558_p0021c02. 심(尋)과 사(伺)
"復有釋言。尋伺二法是語言行。故契經言。要有尋伺方有語言。非無尋伺此語言行。麤者名尋。細者名伺。於一心內別法是麤別法是細。於理何違。若有別體類理實無違。然無別體類故成違理。"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86 / 1397. 심(尋)과 사(伺)
"다시 어떤 이는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심과 사의 두 가지 법은 바로 어언(語言)의 행(行)이니,83) 그래서 계경에서 말하기를, '요컨대 심·사가 있어 비로소 어언이 있게 된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곧 심과 사가 없다면 이러한 어언의 행도 있지 않을 것이니, 그러한 것 중에서 거친 것을 '심'이라 이름하고, 세밀한 것을 '사'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니 1찰나의 마음 안에 개별적인 법[別法]으로서의 거친 것(심)과 개별적인 법으로서의 세밀한 것(사)이 있을지라도 이치상 무슨 모순이 있을 것인가?(비바사사의 제2설)
83) 여기서 어언(語言)의 '행(saṃskāra)'이란 말의 원인이 되어 그것을 능히 일으키게 하는 근거를 말한다. 이 설은 보광은 비바사사의 학설로, 법보는 유부 이사(異師)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으나 칭우는 경량부의 학설로 평석하고 있다."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T31n1585_p0035c28 - T31n1585_p0036a02쪽
"尋謂尋求。令心匆遽於意言境麤轉為性。伺謂伺察。令心匆遽於意言境細轉為性。此二俱以安不安住身心分位所依為業。並用思慧一分為體。於意言境不深推度及深推度義類別故。若離思慧尋伺二種體類差別不可得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350-351 / 583 심(尋)과 사(伺)쪽
"‘심(尋)심소’는 찾아 구하는 것[尋求]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의 대상에 대해 두드러지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사(伺)심소’는 보면서 살피는 것[伺察]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의 대상에 대해 미세하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이 둘은 모두 평안과 불안에 머무는 몸과 마음의 분위(分位)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 둘 다 사(思)·혜(慧) 심소의 일부분을 사용해서 자체로 삼는다. 의식의 대상에 대해서 깊이 헤아리지 않고 깊이 헤아리는 뜻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혜 심소에서 떠나서는 심(尋)·사(伺)두 가지가 체의 종류의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350-351 / 583쪽.
- ↑ 가 나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15권. p. T30n1579_p0359a22 - T30n1579_p0359b21. 논(論)의 장엄(莊嚴).
- ↑ 가 나 미륵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 & K.614, T.1579, 제15권. pp. 493-495 / 829. 논(論)의 장엄(莊嚴).
- ↑ "언설(言說)",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1월 10일에 확인.
"언설(言說): 설명(說明)하는 말."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2a13 - T29n1558_p0002a17. 언의(言依)
"此有為法亦名世路。已行正行當行性故。或為無常所吞食故。或名言依。言謂語言。此所依者即名俱義。如是言依具攝一切有為諸法。若不爾者應違品類足論所說。彼說言依十八界攝。"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11 / 1397. 언의(言依)
"이러한 유위법은 역시 또한 '세로(世路, adhvan)'라고도 하니, 이미 작용[已行 : 과거]하였고, 지금 바로 작용[正行 : 현재] 하며, 응당 작용[當行 : 미래] 할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며, 혹은 무상(無常)에 의해 탄식(呑食)되는 것이기 때문이다.21) 혹은 '언의(言依, kathavastu)'라고도 한다. 여기서 '언'이란 말하자면 말[語言]로서, 이러한 말의 소의는 바로 명사적 단어[名]와 함께하는 의미[義]이다.22) 즉 이와 같은 언의는 일체의 유위제법을 모두 포섭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품류족론』에서 설한 바에 위배될 것이니, 거기에서 "언의는 18계에 포섭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23)
21) 여기서 세로(adhvan)는 과정(過程)의 뜻이다. 즉 제 유위법은 삼세의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컬은 것이다. 유부교학상에 있어 시간(kāla)이란 객관적으로 독립된 실체, 이른바 '법'이 아니라 다만 생멸변천하는 유위제법을 근거로 설정된 개념일 뿐이다. 이를테면 세간에서의 시간[世]은 유위제법을 근거(路)로 하기 때문에 세로(世路)라고 하는 것이다. (보광, 『구사론기』권제1) 따라서 시간은 바로 유위의 이명(異名)일 뿐이다.
22) 명(名, nāma)은 책상·하늘과 같은 명사적 단어를 말하는 것으로, 말의 근거는 이 같은 단어 그 자체[전통술어로 能詮의 名]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의미[所詮의 法]이다. 이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5, p.257) 참조.
23) 『품류족론(品類足論)』 권제9(대정장26, p. 728상), "言義事十八界·十二處·五蘊攝.""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 257 / 1397. 명신(名身)·구신(句身)·문신(文身)
"[불상응행법 총론에서 언급한] 명신(名身) 등의 종류는 그 뜻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명신(名身) 등이란, 이른바
상(想)·장(章)·자(字)의 총설(總說)이다.134)
名身等所謂 想章字總說
논하여 말하겠다. 여기서 '등'이란 구신(句身)과 문신(文身)을 두루 취한다는 말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명(名)이란 이를테면 색·성·향·미 등의 상(想)을 설하는 것과 같은 작상(作想)을 말하며,135) 구(句)란 뜻을 드러내는 구경(究竟)인 문장[章]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제행은 무상하다'는 따위의 문장을 설하는 것과 같다. 혹은 [이것에 의해] 동작[業用] 성질[德] 시제[時]의 상응과 차별을 능히 이해하게 되니, 이러한 문장을 '구'라고 칭한 것이다. 그리고 문(文)이란 문자[字] 즉 음소를 말하니, 이를테면 아(, )·아(阿, a)·일(壹, i)·이(伊, ) 등의 문자를 설하는 것과 같다.
134) 본 게송에서는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는 명신(名身)·구신(句身)·문신(文身) 세 가지가 있다. '명(nāma)'이란 물질·소리·향기 등과 같은 명사적 개념적 단어[想, sa j~ ]를, '구(pada)'란 '제행은 무상하다'와 같은 문장[章, v kya]을, '문(vya~jana)'이란 a· i·ka·kha와 같은 문자[字, ak ara] 즉 음소를 말하며, 이러한 세 가지 존재의 집합[總說, samukta]을 명신 등이라고 한다. 즉 유부에서는 이러한 존재가 개별적으로 실재함으로 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하 였는데, 경부에서는 예외 없이 이를 가설로서만 인정하고 있다.
135) 작상의 '상(sa j~ )'은 10대지법의 하나. 이를테면 책상이라는 명칭은 그것을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갖는데, 이같이 상(想)을 떠올리게 하는 명사적 단어를 '명(名)'이라 하는 것이다." - ↑ 현장 한역 & T.676, 제5권. p. T16n0676_p0709b11 - T16n0676_p0709b21. 4종도리(四種道理)
"道理者。當知四種。一者觀待道理。二者作用道理。三者證成道理。四者法爾道理。觀待道理者。謂若因若緣能生諸行及起隨說。如是名為觀待道理。作用道理者。謂若因若緣能得諸法。或能成辦。或復生已作諸業用。如是名為作用道理。證成道理者。謂若因若緣能令所立所說所標義得成立令正覺悟。如是名為證成道理。又此道理略有二種。一者清淨。二者不清淨。由五種相名為清淨。由七種相名不清淨。" - ↑ 현장 한역, 김달진 번역 & K.154, T.676, 제5권. p. 79 / 86. 4종도리(四種道理)
"도리란 마땅히 알라.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觀對道理]요, 둘째는 작용하는 도리[作用道理]요, 셋째는 깨침을 이루는 도리[證成道理]요, 넷째는 법이 그러한 도리[法爾道理]이다.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란, 이른바 인(因)이나 혹은 연(緣)이 능히 모든 행을 내며 또 따르는 말[隨說]을 일으키니, 이것이 관하여 상대하는 도리이다. 작용의 도리란 이른바 인이나 혹은 연이 능히 모든 법을 얻거나 혹은 능히 이루거나 혹은 다시 내고, 모든 업의 작용을 지으니 이것이 작용의 도리이다. 깨달음을 이루는 도리란 이른바 인이나 혹은 연이 능히 세우고 말하고 표시한 뜻을 성립시키며 바르게 깨닫게 하니, 이것이 깨침을 이루는 도리이다. 또 이 도리에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청정함이요, 둘째는 청정치 못함이다. 다섯 가지 모양을 말미암아 청정이라 부르고, 일곱 가지 모양을 말미암아 청정치 못함을 말한다." - ↑ "言議",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2월 21일에 확인.
"言議(언의): 言 말씀 언, 화기애애할 은. 議 의논할 의. 사람들 사이에서 전(傳)하여 들리는 말"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a26 - T31n1602_p0481a29. 상(想)
"想者。謂名句文身熏習為緣。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取相為體。發言議為業。如經說有六想身。又說如其所想而起言議。"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4 / 293. 상(想)
"상(想)75) 심소는 명칭 · 문구 · 문자의 훈습을 연으로 삼아서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한다. 모습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말과 논의를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상신(想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그 표상지은 바와 같이 말과 언의(言議)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75) 상(想, saṃjñā) 심소는 ‘표상(表象) 작용’ ‘개념화 작용’을 말한다. 대상에 대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갖가지 명칭을 붙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즉 ‘취상(取像)’ 즉 대경(對境)의 모습이나 언어로 표현되는 것 등을 마음에 잡아서 사취(寫取) · 구화(構畵)하고 명칭을 붙이는(언어와 일치할 수 있는) 개념화 작업을 한다. 수(受) 다음에 일어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098b18 - T29n1558_p0098c03. 6수면(六隨眠)
"前言世別皆由業生。業由隨眠方得生長。離隨眠業無感有能。所以者何。隨眠有幾。頌曰。
隨眠諸有本 此差別有六
謂貪瞋亦慢 無明見及疑
論曰。由此隨眠是諸有本故業離此無感有能。何故隨眠能為有本。以諸煩惱現起能為十種事故。一堅根本。二立相續。三治自田。四引等流。五發業有。六攝自具。七迷所緣。八導識流。九越善品。十廣縛義。令不能越自界地故。由此隨眠能為有本。故業因此有感有能。此略應知差別有六。謂貪瞋慢無明見疑。頌說亦言。意顯慢等亦由貪力於境隨增。由貪隨增義如後辯。及聲顯六體各不同。"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p. 853-854 / 1397. 6수면(六隨眠)
"앞(권제13 초)에서 세간의 차별은 모두 업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업은 수면(隨眠, anusaya)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생장할 수 있으며, 수면을 떠난 업은 유(有, 욕계·색계·무색의 3유)를 초래할 만한 공능을 갖지 않는다. 그 까닭은 무엇이며, 수면에는 몇 가지가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면은 모든 '유(有)'의 근본으로,
이것의 차별에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를테면 탐(貪)·진(瞋)과, 역시 만(慢)·
무명(無明)·견(見), 그리고 의(疑)이다.
隨眠諸有本 此差別有六
謂貪瞋亦慢 無明見及疑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수면은 바로 모든 '유'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떠난 업은 유를 초래할 만한 어떠한 공능(功能)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수면이 능히 '유'의 근본이 된다고 하는 것인가? 모든 번뇌는 현기(現起)하면 능히 열 가지 사업[事]을 행하기 때문으로, 첫 번째는 근본(根本)을 견고하게 하며,1) 두 번째는 [번뇌의] 상속을 일으키며, 세 번째는 자신의 소의신[自田]이 번뇌를 일으키기에 적합하게 하며, 네 번째는 등류(等流)[인 수번뇌(隨煩惱)]를 인기하며, 다섯 번째 업유(業有) 즉 후유를 초래하는 업을 일으키며, 여섯 번째는 자구(自具)를 포섭하며,2) 일곱 번째 [정혜(正慧)를 손상시켜] 소연에 대해 미혹하게 하며, 여덟 번째 식(識)의 흐름을 인도하며,3) 아홉 번째는 선품(善品)을 어기게 하며, 열번째는 널리 속박하는 것이니, [유정을 속박하여] 자계·자지를 초월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즉 수면은 이러한 열 가지 사업으로 말미암아 능히 '유'의 근본이 되기 때문에, 업은 이것에 의해 비로소 '유'를 초래할 공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수면의 차별에는 간략히 여섯 가지가 있음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이를테면 탐(貪, raga)과 진(瞋, pratigha)과 만(慢, mana)과 무명(無明, avidya)과 견(見, dṛṣṭi)과 의(疑, vicikitsa)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본송에서 '역시'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은, '만' 등도 역시 탐의 힘으로 말미암아 경계에 수증(隨增)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탐으로 말미암아 수증한다'는 뜻에 대해서는 뒤에서 분별하는 바와 같다. 또한 [본송에서] '그리고'라고 하는 말은 여섯 가지 수면의 본질[體]이 각기 동일하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1) 여기서 '근본'은 번뇌의 득(得)을 말한다. 즉 번뇌가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번뇌의 득이 더욱더 견고해져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 여기서 '자구'는 번뇌 자신의 자량이 되는 비리작의(非理作意) 즉 참답지 못한 사유를 말한다.
3) 식의 흐름에는 다음 생을 받을 때 부모에 대한 애념(愛念)을 일으키는 속생(續生)의 식과, 소연의 경계에 대해 촉(觸)을 일으키는 촉연(觸緣)의 식이 있다. 곧 번뇌는 후유의 소연에 대해 능히 속생의 식을 일으키며 소연에 대해 능히 염오식을 낳기 때문에 '식의 흐름을 인도한다'고 말한 것이다." - ↑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3a28 - T26n1542_p0693a29. 에결(恚結)
"恚結云何。謂於有情能為損害。"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5 / 448. 에결(恚結)
"에결(恚結)이란 무엇인가? 유정에 대하여 손해를 끼치는 것이다." - ↑ 佛門網, "棄捨". 2013년 5월 10일에 확인
"棄捨: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分別緣起初勝法門經二十頁云:復言:世尊!云何棄捨?世尊告曰:諸見所斷煩惱斷故。
二解 顯揚十九卷十一頁云:問:云何棄捨?答:謂於善品,已得平等增上捨相。"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5, 제4권. p. T31n1606_p0723b16 - T31n1606_p0723b19. 에결(恚結)
"恚結者。謂於有情苦及順苦法心有損害。恚結所繫故。於恚境相心不棄捨。不棄捨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2, T.1605, 제4권. p. 75 / 159. 에결(恚結)
"에결이란 유정에게 있는 고 및 순고법(順苦法)이 심법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 에결에 계류되는 까닭에 에경(恚境)의 모양에 처해서 심법이 이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에 불선법을 널리 행해서 갖가지 선법을 행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미리세의 고를 초래해서 마침내 고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6권. p. T31n1606_p0723b16 - T31n1606_p0723b19. 에결(恚結)
"恚結者。謂於有情苦及順苦法心有損害。恚結所繫故。於恚境相心不棄捨。不棄捨故廣行不善不行諸善。由此能招未來世苦與苦相應。"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6권. p. 150 / 388. 에결(恚結)
"‘에결’이란 유정에게 있는 고(苦) 및 순고법(順苦法)이 마음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가리킨다.
[釋] 에결에 얽매이는 까닭에, 에경(恚境)의 모양에 처해서 마음이 이를 버리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에 불선법을 널리 행해서 갖가지 선법을 행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서 미래세의 고를 초래해서 마침내 고와 상응하게 되는 것이다." - ↑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5권. p. T29n1563_p0800a06 - T29n1563_p0800a09. 무탐(無貪)과 무진(無瞋)
"二根者謂無貪無瞋。已得未得境界耽著。希求相違無愛染性。名為無貪。於情非情無恚害意哀愍種子。說名無瞋。" - ↑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5권. pp. 203=204 / 1762. 무탐(無貪)과 무진(無瞋)
"‘두 가지의 근’이란 무탐(無貪)과 무진(無瞋)을 말하는데, 이미 획득하였거나 아직 획득하지 않은 경계대상에 대한 탐착 희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마음에 애염이 없는 성질[無愛染性]을 일컬어 무탐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정이나 유정 아닌 것에 대해 미워하거나 해코지하려는 마음[恚害意]이 없는 애민(哀愍)의 종자를 일컬어 무진이라고 한다.110)
110) 무탐과 무진은 선근(善根)의 하나로, 대상에 대해 애착하지 않고, 유정에 대해 미워하지 않는 의식작용이다. 참고로 여기서 선근의 나머지 하나인 무치(無癡)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것은 ‘혜’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대지법 즉 일체의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의식작용에 포섭되기 때문이다." - ↑ 星雲, "女根". 2013년 3월 3일에 확인
"女根: 梵語 strīndriyah。指女性生殖器及其生殖機能。二十二根之一、五作根之一。與男根合稱二根;因其有使女、男成為女、男之殊勝力量(增上之義),故稱「根」。據俱舍論卷二載,由二根之故,一切有情乃有男女形相、言音、乳房等之差別。瑜伽師地論亦謂,安立家族,使之相續不斷,而具有增上之勢用者,即為男女之二根。然三界之中,唯欲界之人具有此根,色界,無色界均無。(參閱「二十二根」171) p918" - ↑ 운허, "如根(여근)". 2013년 3월 3일에 확인
"如根(여근): 【범】 strīndriya ↔ 남근(男根). 여자의 음부. 근(根)이란 것은 증상(增上)하고 능생(能生)하는 작용이 있다는 뜻. 이 근이 있으므로 남성ㆍ여성을 감별함. 또 이것으로 말미암아 남녀의 모양ㆍ음성ㆍ유방(乳房) 등의 구별이 있게 됨. 또 종족을 보존하는데 증상(增上)하는 세력이 있으므로 한 근(根)이라 하여 따로 듦."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3권. p. T29n1558_p0013b23 - T29n1558_p0013c01. 여근과 남근의 2가지 증상[女男根二增上]
"女男命意。各於二事能為增上。且女男根二增上者。一有情異。二分別異。有情異者。由此二根令諸有情女男類別。分別異者。由此二根形相言音乳房等別。有說。此於染淨增上故言於二。所以者何。本性損壞扇搋半擇及二形人無不律儀無間斷善諸雜染法。亦無律儀得果離染諸清淨法。"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3권. p. 112 / 1397. 여근과 남근의 2가지 증상[女男根二增上]
"여근·남근·명근·의근은 각기 두 가지 일에 대해 증상의 작용이 있다. 바야흐로 여근과 남근의 두 가지 증상이란, 첫째는 유정의 다름[有情異 : 구역어는 衆生差別]이고, 둘째는 분별의 다름[分別異 : 구역어는 相貌差別]이다. 유정의 다름이란, [태초의 유정은 그 유형이 모두 같았지만] 이 두 근이 생겨남에 따라 제 유정으로 하여금 여자와 남자의 유형에 차별이 있게 되었던 것을 말한다. 분별의 다름이란, 이러한 두 근이 생겨남에 따라 형상과 말소리 유방 등의 차별이 있게 되었던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이것(여근·남근)은 염오함과 청정함 두 가지에 대해 증상력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하든지[本性] 후천적으로 손괴(損壞)되었든지 간에 선체(扇搋) 와 반택(半擇)과 이형인(二形人)에게는 불율의(不律儀 : 즉 惡戒를 말함)나 무간업(無間業)이나 선근을 끊는 온갖 잡염법(雜染法)이 없으며, 역시 또한 율의(律儀)도 득과(得果)도 이염(離染)의 온갖 청정법(淸淨法)도 없기 때문이다.3)
3) 여기서 선체(ṣaṇḍha, 구역은 黃門)는 무세근(無勢根) 즉 남근이나 여근을 갖지 않은 자를 말하고, 반택(paṇḍaka, 구역은 故作黃門, 혹은 半擇迦)은 남근·여근을 갖지만 그 작용이 불완전한 성불구자를, 이형인은 양성, 즉 남근·여근을 동시에 갖은 자를 말한다. 즉 범인은 여근·남근으로 말미암아 불율의 즉 악계(惡戒)를 받아 지니기도 하고, 무간업을 짓기도 하며, 선근을 끊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떠나 율의를 받아 지니기도 하고, 성도(聖道)에 들어 그 과보를 획득하여 성자가 되기도 하며 이욕(離欲)하기도 하지만 선체 등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여근·남근은 염오법과 청정법에 대해 증상력이 있다는 뜻." - ↑ 제바설마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7, T.1539, 2 / 446쪽.
- ↑ 가 나 중현 조, 현장 한역 & T.1563, 제6권. p. T29n1563_p0800b14 - T29n1563_p0800b16. 치(癡)
"癡謂愚癡於所知境障如理解。無辯了相說名愚癡。即是無明無智無顯。" - ↑ 가 나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7, T.1563, 제6권. p. 206 / 1762. 치(癡)
"치(癡)란 우치(愚癡)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질 대상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장애하여 분별 인식[辯了]이 없는 것을 일컬어 우치라고 한다. 즉 이는 바로 무명(無明)이고, 무지(無智)이며, 무현(無顯)인 것이다.2)
2) 무지는 밝게 결택(決擇)할 수 없는 상태이고, 무현이란 일체 사리(事理)의 경계가 은폐되어 드러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6권. p. T29n1558_p0135a20 - T29n1558_p0135a28.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盡無生智二相何別。頌曰。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論曰。如本論說。云何盡智。謂無學位若正自知我已知苦。我已斷集。我已證滅。我已修道。由此所有智見明覺解慧光觀是名盡智。云何無生智。謂正自知我已知苦不應更知。廣說乃至。我已修道不應更修。由此所有廣說乃至。是名無生智。"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1178 / 1397.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진지와 무생지의 두 지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성제에 대한 지(智)로서
'나는 이미 알았다'는 등으로 아는 것과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등으로 아는 것이
차례대로 진지와 무생지이다.
智於四聖諦 知我已知等
不應更知等 如次盡無生
논하여 말하겠다. 본론(本論)에서 설한 바와 같다.19) "무엇을 일컬어 진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무학위에서 '나는 이미 고(苦)를 알았다', '나는 이미 집(集)을 끊었다', '나는 이미 멸(滅)을 작증하였다', '나는 이미 도(道)를 닦았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 지(智)와 견(見)과 명(明)과 각(覺)과 해(解)와 혜(慧)와 광(光)과 관(觀)을 바로 진지라고 이름한다.20) 무엇을 일컬어 무생지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나는 이미 고를 알았으므로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없다'……(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나는 이미 도를 닦았으므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바로 알며, 이에 따라 소유하게 된……(이하 자세한 내용은 생략함)……따위를 바로 무생지라고 이름한다."
19) 『품류족론』 권제1(한글대장경117, p.24).
20) 여기서 '지'는 결단(決斷) 혹은 거듭하여 아는 것을 말하며, '견'은 추구(推求) 혹은 현조(現照)를, '명'은 명랑(明朗)을, '각'은 각오(覺悟)를, '해'는 달해(達解)를, '혜'는 간택(簡擇)을, '광'은 혜광(慧光)을, '관'은 관찰을 말하는 것으로,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혜의 다른 이름이다." - ↑ 보광 술 & T.1821, 제26권. p. T41n1821_p0386a11 - T41n1821_p0386a14. 혜의 8가지 다른 이름
"智謂決斷。或謂重知。見謂推求。或謂現照。明謂照明。覺謂覺悟。解謂達解。慧謂簡擇。光謂慧光。觀謂觀察。智等八種並慧異名。"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97, 제1권. p. T31n1597_p0321a18 - T31n1597_p0321a21. 진소유성(盡所有性)과 여소유성(如所有性)
諸破所知障翳暗 盡其所有如所有
諸法真俗理影中 妄執競興於異見
斯由永離諸分別 無垢清淨智光明
獲得最勝三菩提 惑障并習斷常住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594, T.1597, 제1권. p. 1 / 297. 진소유성(盡所有性)과 여소유성(如所有性)
소지장(所知障)1)의 어둠을 모두 깨뜨리니2)
그 있는 바를 다함이며3) 있는 바 그대로이네.4)
제법의 진속이체(眞俗理體)의 그림자 중에
망령되이 집착하여 다투어 다른 견해들을 일으키네.5)
이에 영원히 모든 분별을 떠나고
번뇌 없는 청정한 지혜 광명으로써
가장 뛰어난 삼먁삼보리를 증득하시고
미혹의 장애와 습기를 끊어 상주하시네.6)
1) 소지장은 지장(智障)이라고도 하며,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 등의 번뇌가 객관의 진상(眞相)을 바로 알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됨을 말한다. 여기서 소지장만을 들고 번뇌장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견해들을 논파하기 위해 이 논서를 저술하기 때문이다.
2) 이하 여덟 게송은 삼보에 귀의함을 나타내는 귀경서(歸敬序)이다. 세친(世親)이 삼보에 귀의 예배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서 이 석론(釋論)을 짓는 인연을 밝힌다. 먼저 네 게송은 부처님[佛寶]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덕을 찬탄한다.
3) 진소유성(盡所有性), 즉 속제(俗諦)인 현상계의 차별상[事相]을 말한다.
4) 여소유성(如所有性), 즉 진제(眞締)의 이체(理體)를 가리킨다.
5) 붓다가 세상에 출현하는 연유를 밝힌다.
6) 붓다가 미혹을 끊고 불과를 증득함을 서술한다. - ↑ 가 나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4a07 - T26n1542_p0694a08. 도지(道智)
"道智云何。謂於聖道思惟道如行出。所起無漏智。" - ↑ 가 나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10 / 448. 도지(道智)
"도지(道智)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도[聖道]에 대하여 ‘그것은 진리에 들어가는 길(道)이며 올바른 이치에 계합[如]하는 것이며 열반의 적정한 경지에 가게[行]하는 것이며 생사계를 벗어나게[出] 하는 것이다’라고 사유하여 일으킨 무루의 지혜이다." - ↑ 가 나 운허, "十六行相(십륙행상)". 2013년 1월 6일에 확인
"十六行相(십륙행상): 4제(諦)를 관찰하는 16종의 관법(觀法). (1) 고제(苦諦)의 4행상. 만유의 현상은 생멸 변화하는 것이며, 고(苦)ㆍ공(空)ㆍ무상(無常)ㆍ무아(無我)라 관함. (2) 집제(集諦)의 4행상. 온갖 번뇌와 업(業)은 고과(苦果)를 내는 인(因)이며, 고과를 모아(集) 나타나게 하며, 상속하여 나게(生) 하며, 고과를 이루게 하는 연(緣)이라 관함. (3) 멸제(滅諦)의 4행상. 멸제는 물(物)ㆍ심(心)의 속박이 없는 진리며(滅), 번뇌의 시끄러움이 없으며(靜), 3계를 벗어나 온갖 근심이 없으며(妙), 온갖 재액(災厄)을 여의었다고(離) 관함. (4) 도제(道諦)의 4행상, 도제는 진리에 들어가는 길이며(道), 올바른 이치에 계합하며(如), 열반 적정한 경지에 가게 하며(行), 생사계를 뛰어나게 하는(出) 것이라고 관함." - ↑ 가 나 星雲, "十六行相". 2013년 2월 2일에 확인
"十六行相: 梵語 sodaśākārāh。又作十六行、十六行觀、十六行相觀、十六聖行、十六諦、四諦十六行相。行相,相狀之意。觀四諦時,各有四種差別,於其時所產生之行相共有十六種。據俱舍論卷二十六所載,苦聖諦有四相(苦諦四相):(一)非常(梵 anitya),待緣而成故。(二)苦(梵 duhkha),逼迫性故。(三)空(梵 śūnya),違我所見故。(四)非我(梵 anātman),違我見故。集聖諦亦有四相(集諦四相):(一)因(梵 hetu),其理如種子。(二)集(梵 samudaya),同於顯現之理。(三)生(梵 prabhava),能令續起。(四)緣(梵 pratyaya),能令成辦;譬如泥團、輪、繩與水等眾緣,和合而成一瓶。滅聖諦亦有四相(滅諦四相):(一)滅(梵 nirodha),諸蘊盡故。(二)靜(梵 śānta),三火息故。(三)妙(梵 pranīta),眾患無故。(四)離(梵 nihsarana),脫眾災故。道聖諦亦有四相(道諦四相):(一)道(梵 mārga),通行義故。(二)如(梵 nyāya),契正理故。(三)行(梵 pratipad),正趣向故。(四)出(梵 nairyānika),能永超故。十六行相名雖十六,實事唯七。謂緣苦諦者,名實俱四;緣餘三諦者,名四實一。說十六行相之目的,為治常、樂、我所、我見等見,故修非常、苦、空、非我等行相;為治無因、一因、變因、知先因等見,故修因、集、生、緣等行相;為治解脫是無之見,故修滅行相;為治解脫是苦之見,故修靜行相;為治靜慮及等至之樂為妙之見,故修妙行相;為治解脫是數數退墮而非永恆之見,故修離行相;為治無道、邪道、餘道、退道之見,故修道、如、行、出等行相。〔坐禪三昧經卷下、正法念處經卷三十四、大毘婆沙論卷七十九〕" - ↑ 星雲, "涅槃". 2013년 3월 24일에 확인
"涅槃: 梵語 nirvāna,巴利語 nibbāna。又作泥洹、泥曰、涅槃那、涅隸槃那、抳縛南、[目*匿]縛[口*男]。意譯作滅、寂滅、滅度、寂、無生。與擇滅、離繫、解脫等詞同義。或作般涅槃(般,為梵語 pari 之音譯,完全之義,意譯作圓寂)、大般涅槃(大,即殊勝之意。又作大圓寂)。原來指吹滅,或表吹滅之狀態;其後轉指燃燒煩惱之火滅盡,完成悟智(即菩提)之境地。此乃超越生死(迷界)之悟界,亦為佛教終極之實踐目的,故表佛教之特徵而列為法印之一,稱「涅槃寂靜」。佛教以外之教派雖亦有涅槃之說,然與佛教者迥異。佛教大乘、小乘對涅槃之解釋,異說紛紜。總約之,可大別如下:
(一)據部派佛教,涅槃即滅卻煩惱之狀態。其中復有有餘(依)涅槃與無餘(依)涅槃之分,前者是雖斷煩惱,然肉體(意即殘餘之依身,略稱「餘依」或「餘」)殘存之情形;後者是灰身滅智之狀態,即指一切歸於滅無之狀況。有部等主張涅槃乃一存在之實體,經量部等視涅槃為煩惱滅盡的狀態之假名,而其本身並無實體。
(二)中論等以實相為涅槃,實相又即為因緣所生法上之空性,故與生死世間無有區別。同時,南本涅槃經卷三指出涅槃具足如下八味,即常、恆、安、清淨、不老、不死、無垢、快樂,稱為涅槃八味。若以此配以涅槃四德,常、恆為常,安、快樂為樂,不老、不死為我,清淨、無垢為淨。唯識宗稱涅槃有四種,即本來自性清淨涅槃、有餘依涅槃、無餘依涅槃與無住處涅槃四種。其中之本來自性清淨涅槃,略稱本來清淨涅槃、性淨涅槃,謂一切事物之本來相即是真如寂滅之理體,乃指真如。無住處涅槃,即依於智慧,遠離煩惱、所知二障,不滯生死之迷界,且因大悲救濟眾生,故在迷界中活動,又不滯於涅槃之境地。大乘佛教之涅槃教說即以此為特色。
此外,地論宗、攝論宗謂涅槃分為性淨涅槃與方便淨涅槃(藉修道去除煩惱而得之涅槃)二種。天台宗則分為性淨涅槃、圓淨涅槃(相當於地論宗等之方便淨涅槃)與方便淨涅槃(佛以救渡眾生故,示現假身,緣盡而入涅槃。又作應化涅槃)等三涅槃。
(三)小乘之聲聞、緣覺入無餘涅槃,再迴心轉向大乘之教,稱為無餘還生。同時,涅槃乃超離一切差別相狀者(有為之相),故又稱離相。淨土宗稱彌陀淨土為涅槃之城,亦稱無為涅槃界。
(四)出現此世為人的佛(特指釋尊),其肉體之死,稱涅槃、般涅槃、大般涅槃。入涅槃又稱入滅、薪盡火滅(薪喻佛身或機緣,火喻智慧或佛身)。涅槃原意指釋尊之成道,但今大抵皆作無餘依涅槃之意。刻繪釋尊入滅姿態之畫像或雕像,稱為涅槃像。舉行追慕釋尊之法會,稱涅槃會、涅槃忌、常樂會等。後世稱僧侶之死為圓寂、歸寂、示寂、入寂等。〔雜阿含經卷十八、北本涅槃經卷三十三、金光明最勝王經第一如來壽量品、大毘婆沙論卷二十八、卷三十三、卷三十四、俱舍論卷六〕 p4149"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18 - T31n1612_p0848c20. 혜(慧)
"云何為慧。謂即於彼擇法為性。或如理所引。或不如理所引。或俱非所引。"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3 / 12. 혜(慧)
"어떤 것이 혜(慧)인가. 저것에 대해 (자상과 공상 등의) 법을 간택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혹 이치에 맞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이치에 맞지 않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두 가지가 아니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a03 - T31n1613_p0852a09. 혜(慧)
"云何慧。謂即於彼擇法為性。或如理所引。或不如理所引。或俱非所引。即於彼者。謂所觀事。擇法者。謂於諸法自相共相由慧簡擇。得決定故。如理所引者。謂佛弟子。不如理所引者。謂諸外道。俱非所引者。謂餘眾生。斷疑為業。慧能簡擇。於諸法中。得決定故。"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p. 6-7 / 24. 혜(慧)
"무엇을 지혜[慧]라고 하는가?
그것에 대하여 법을 선택[擇法]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혹은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 온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관하는 것을 말한다. 법을 선택함이란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서 지혜로 골라내어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란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란 모든 외도들을 말한다.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온 것이란 나머지 중생이다. 의혹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지혜는 능히 모든 법들 가운데서 능히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 ↑ 가 나 다 운허, "如實(여실)". 2012년 10월 31일에 확인.
- ↑ 가 나 다 星雲, "如實". 2012년 10월 31일에 확인.
- ↑ 안혜 조, 현장 한역 & T.1606, 제1권. p. T31n1606_p0699a12 - T31n1606_p0699a15. 첨(諂)
"諂者。耽著利養貪癡一分。矯設方便隱實過惡為體。障正教授為業。矯設方便隱實過惡者。謂託餘事以避餘事。障正教授者。由不如實發露所犯。不任教授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 & K.576, T.1605, 제1권. p. 27 / 388. 첨(諂)
"어떠한 것이 첨(諂)심소법입니까?
이익에 집착하는 치심소법와 탐심소법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그릇된 방편을 꾸며 진실을 감추고 악을 행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다른 이의 교수(敎授)를 방해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그릇된 방편을 꾸며 진실을 감추고 악을 행한다는 것’이란 다른 일을 핑계대어 나머지 일을 회피하는 것이다. ‘올바른 교수를 방해하는 것’이란 지은 죄를 사실대로 자백하지 않는 것에 연유하여 교수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 ↑ 가 나 다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b01 - T31n1613_p0852b03.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如實正行為性。如實者略。謂四聖諦廣。謂十二緣起。於彼加行。是正知義。業亦如無貪說。" - ↑ 가 나 다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8 / 24. 무치선근(無癡善根)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癡]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諦)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知]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貪]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星雲, "正行". 2013년 2월 17일에 확인
"正行: 梵語 samyak-pratipatti,巴利語 sammā-patipatti。指不邪曲之行。即以佛之教化為基準之正當行為,與「邪行」相對;或對雜行、助行而言正行。又由直接原因而成之行稱為正行,由間接原因而成之行稱為助行。
據八正道經載,不諦見、不諦念、不諦語、不諦治、不諦求、不諦行、不諦意、不諦定等,稱為道八邪行;反之,諦見、諦念,乃至諦意、諦定等,則稱為道八正行。據中阿含卷三十八鸚鵡經及大智度論卷四十八等載,與外道凡夫之邪行相對的八正道等即屬正行。
諸家列有數種正行說。如瑜伽師地論卷六十四舉出三種正行即:於佛寶應修供養承事正行、於法寶所應修瑜伽方便正行、於僧寶所應修共受財法正行。大乘莊嚴經論卷十二以六波羅蜜為正行,即: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般若正行。辯中邊論卷下就十波羅蜜行之「相」分別為六種正行,即:最勝、作意、隨法、離二邊、差別、無差別正行。中邊分別論卷下則就上述之作意正行分出十種正行,即:書寫、供養、施與他、若他讀誦一心聽聞、自讀、自如理取名句味及義、如道理及名句味顯說、正心聞誦、空處如理思量、已入意為不退失故修習。法華經玄贊卷八以法華經卷四法師品所謂之受持、讀、誦、解說、書寫、供養等,稱為正行六種法師。
淨土宗大德善導之觀經疏散善義中,謂修習五種往生阿彌陀佛淨土之行業為五正行。即:(一)讀誦,讀誦淨土之聖典。(二)觀察,觀想阿彌陀佛之相好。(三)禮拜,禮拜阿彌陀佛。(四)稱名,稱念阿彌陀佛之名號。(五)讚歎供養,讚歎阿彌陀佛之功德。反之,若以阿彌陀佛以外諸佛菩薩為禮拜、觀想等之對象者,則稱雜行。五正行中「稱名」一項特別符合彌陀之本願,故稱正定業,其餘四項則稱助業、助行,二者因相對而作此稱。若在專修念佛(稱名)之外,兼修其他四行者,則稱助正兼行。又就往生淨土之「正因」,而言正行。此外,密教中,則於加行之後所修之行業稱正行。〔轉法輪經、般泥洹經卷下、大方等大集經卷三十、解深密經卷三、大智度論卷五十六、卷八十七、辯中邊論述記卷中、法苑珠林卷十七〕(參閱「正因正行」1985)p1986"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7.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以其如實正行為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무치선근(無癡善根)
"어떤 것이 무치(無癡)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다 星雲, "緣". 2013년 2월 7일에 확인
"緣: 梵語 pratyaya,巴利語 paccaya。(一)狹義而言,乃指引起結果之直接原因(內因)外之間接原因(外緣)。廣義而言,係合因、緣兩者之稱。可分為四類:(一)因緣,「因」亦為「緣」之意,指產生果報之直接內在原因,即狹義之因,亦相當於能作因(六因之一)外之其他五因。(二)等無間緣,指心、心所之相續中,由前一剎那引導後一剎那生起之原因。(三)所緣緣(緣緣),所緣指外境,心緣外境時,必藉外境以為助緣。依唯識宗之說,又可分為疏、親二種。(四)增上緣。泛指不對某一法產生障礙之一切法。與六因中之「能作因」相同。依淨土宗說,阿彌陀佛四十八願即為凡夫往生淨土之增上緣。〔大乘入楞伽經卷二、俱舍論卷七、大乘義章卷三、成唯識論述記卷二末〕(參閱「四緣」1832)
(二)作動詞用,攀緣、緣慮之義。謂人之心識攀緣於一切境界而膠著不捨。如眼識攀緣色境而見,乃至身識攀緣觸境而覺,故心識稱為「能緣」,其境界稱為「所緣」。〔大毘婆沙論卷十六、成唯識論卷一〕" - ↑ 가 나 다 운허, "緣(연)". 2013년 2월 7일에 확인
"緣(연): [1] 【범】 pratyaya 순익자생(順益資生)의 뜻. 물건이 생길 때에 친한 원인이 되는 것과, 힘을 주어 인으로 하여금 과를 낳게 하는 것. 결과를 내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 힘. 만일 인과 연을 나누어 말하면 친한 원인인 것을 인, 멀리 도와주는 것을 연이라 함. 4연(緣)으로 말하면 인연은 인즉연(因卽緣)으로 전 것에 속하고 소연연(所緣緣)ㆍ증상연(增上緣)ㆍ등무간연(等無間緣)을 연이라 함. [2] 연려(緣慮)의 뜻. 심식(心識)이 객관대상(客觀對象)을 생각해 아는 것. [3] 연유(緣由)의 뜻. 유연중생(有緣衆生)ㆍ소연연(所緣緣) 등의 뜻." - ↑ 가 나 세우 조, 현장 한역 & T.1542, 제1권. p. T26n1542_p0694a04 - T26n1542_p0694a06. 집지(集智)
"集智云何。謂於有漏因思惟因集生緣。所起無漏智。" - ↑ 가 나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949, T.1542, 제1권. p. 10 / 448. 집지(集智)
"집지(集智)란 무엇인가? ‘유루(有漏)의 원인에 대하여 괴로움의 결과를 내는 원인[因]이며 발생하여 나타나게[集] 하며 상속하여 나게[生] 하며 이루게 하는 연(緣)이다’라고 사유하여 일으킨 무루의 지혜이다."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9권. p. T31n1585_p0050a11 - T31n1585_p0050a15. 연품(軟品)
"二相見道。此復有二。一觀非安立諦有三品心。一內遣有情假緣智能除軟品分別隨眠。二內遣諸法假緣智能除中品分別隨眠。三遍遣一切有情諸法假緣智能除一切分別隨眠。"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9권. pp. 499-500 / 583. 연품(軟品)
"둘째는 상견도(相見道)150)인데, 이것에 다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안립제를 관찰하는 것이니, 세 가지 품류의 마음이 있다. 첫째는 내면적으로 유정의 허망함을 버려서 반연하는 지혜이니,151) 능히 하품(下品)의 분별의 수면152)을 없앤다. 둘째는 내면적으로 일체법의 허망함을 버려서 반연하는 지혜이니,153) 중품의 분별의 수면154)을 없앤다. 셋째는 두루 모든 유정과 일체법의 허망함을 버려서 반연하는 지혜이니,155) 모든 분별의 수면을 끊을 수 있다.
150) 진견도(眞見道) 이후에 분별지혜[分別智]로써 유식의 양상[唯識相]을 반연한다. 여기서는 상분과 견분이 있으므로, 진견도의 무분별지혜가 직접 유식의 성품[唯識性]을 반연하는 것과 같지 않다. 상견도(相見道)에는 이공진여(二空眞如)를 반연하는 비안립제(非安立諦)의 관(觀)과, 4성제를 반연하는 안립제(安立諦)의 관(觀) 두 가지가 있다.
151) 내부 마음[內心]을 반연하여 유정(有情)이 임시적 존재[假]라고 버리는[遣去] 것으로서, 즉 생공진여(生空眞如)를 반연하는 지혜이다.
152) 번뇌장의 종자를 말한다.
153) 내부 마음[內心]을 반연하여 일체법은 임시적 존재라고 버리는 것으로서, 즉 법공진여(法空眞如)를 반연하는 지혜이다.
154) 소지장(所知障)의 종자이다.
155) 아공(我空) · 법공(法空)의 이공진여(二空眞如)를 반연하는 지혜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3권. p. T29n1558_p0014c06 - T29n1558_p0014c22. 2수(二受)와 5수(五受)
"頌曰。
身不悅名苦 即此悅名樂
及三定心悅 餘處此名喜
心不悅名憂 中捨二無別
見修無學道 依九立三根
論曰。身謂身受。依身起故。即五識相應受。言不悅是損惱義。於身受內能損惱者名為苦根。所言悅者是攝益義。即身受內能攝益者名為樂根。及第三定心相應受能攝益者亦名樂根。第三定中無有身受。五識無故心悅名樂。即此心悅除第三定。於下三地名為喜根。第三靜慮心悅安靜離喜貪故唯名樂根。下三地中心悅麤動有喜貪故唯名喜根。意識相應能損惱受。是心不悅名曰憂根。中謂非悅非不悅即是不苦不樂受。此處中受名為捨根。如是捨根為是身受為是心受。應言通二。"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3권. p. 122-124 / 1397. 2수(二受)와 5수(五受)
"게송으로 말하겠다.
몸이 즐겁지 않은 것을 고근(苦根)이라 이름하고
이것의 즐거움을 낙근(樂根)이라 이름하며
아울러 제3정려의 마음의 즐거움도 낙근이라 하는데
다른 처(處)에서는 이것을 희근(喜根)이라 이름한다.
身不悅名苦 卽此悅名樂
及三定心悅 餘處此名喜
마음이 즐겁지 않은 것을 우근(憂根)이라 이름하고
그 중간을 사근(捨根)이라 하니, 두 가지는 무분별이다.
견도와 수도와 무학도에서는
아홉 가지의 근으로써 세 가지 근을 설정한다.
心不悅名憂 中捨二無別
見修無學道 依九立三根
논하여 말하겠다. [본송에서] '몸'이란 신수(身受)를 말한다. 즉 신수는 소의신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같이 말한 것]으로, 바로 5식상응의 수(受)인 것이다. 그리고 '즐겁지 않은 것[不悅]'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손상되거나 고뇌스러운 것[損惱]의 뜻이다. 즉 신수 안에서 능히 손상되거나 고뇌스러운 것을 일컬어 고근(苦根)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본송에서 말한 '즐거움'이란 바로 섭수 장익[攝益]의 뜻이다. 즉 신수 안에서 능히 섭수 장익하는 것을 일컬어 낙근(樂根)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울러 제3정려의 마음과 상응하는 수(受)로서, 능히 섭수 장익하는 것도 역시 낙근이라고 이름한다. 즉 제3정려 중에는 신수가 존재하지 않으며 5식신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心悅]'을 바로 낙근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3정려를 제외한 그 아래 세 가지 지(地)에서는 이 같은 마음의 즐거움을 일컬어 희근(喜根)이라 한다. 왜냐하면 제3정려에서의 마음의 즐거움이야말로 안정(安靜)된 것으로 희탐(喜貪)을 떠났기 때문에 오로지 낙근이라고 이름하지만, 그 아래 세 가지 지 중에서의 마음의 즐거움은 추동(麤動)으로 희탐을 갖기 때문에 오로지 희근이라고만 이름하는 것이다.26)
그리고 의식과 상응하여 능히 손상 고뇌하는 수로서, 바로 마음이 즐겁지 않는 것을 일컬어 우근(憂根)이라고 한다.
나아가 [본송에서 말한] '중간'이란 바로 즐거운 것도 아니고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닌 것[非悅非不悅]으로, 바로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말하는데, 이러한 수를 일컬어 사근(捨根)이라고 이름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사근은 바로 신수(身受)라고 해야 할 것인가, 심수(心受)라고 해야 할 것인가?
마땅히 두 가지 모두와 통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6) 의식과 상응하는 마음의 즐거움[心悅, 즉 悅受]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제3정려지 중의 그것을 이름하여 낙근이라 하는데, 거기에서는 희탐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정려를 제외한 그 아래 세 가지 지, 즉 욕계, 제1·제2 정려지에서는 희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여기서의 즐거움의 수는 희근이라고 이름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12-113) 여기서 마음의 희탐(喜貪, prit -r ga)이란 '희'에 미착(味著)하는 것. 즉 이러한 미착에 의하기 때문에 마음의 즐거움에 추동(麤動 : 마음이 거칠게 기뻐 날뛰는 것)함이 있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p. T29n1558_p0004c14 - T29n1558_p0005a02. 11품류(十一品類)
"論曰。諸有為法和合聚義是蘊義。如契經言。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麤若細。若劣若勝。若遠若近。如是一切略為一聚。說名色蘊。由此聚義蘊義得成。於此經中。無常已滅名過去。若未已生名未來。已生未謝名現在。自身名內。所餘名外。或約處辯。有對名麤。無對名細。或相待立。若言相待。麤細不成。此難不然。所待異故。待彼為麤未嘗為細。待彼為細未嘗為麤。猶如父子苦集諦等染污名劣。不染名勝。去來名遠。現在名近。乃至識蘊應知亦然。而有差別。謂依五根名麤。唯依意根名細。或約地辯。毘婆沙師所說如是。大德法救復作是言。五根所取名麤色。所餘名細色。非可意者名劣色。所餘名勝色。不可見處名遠色。在可見處名近色。過去等色如自名顯受等亦然。隨所依力應知遠近麤細同前。"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p. 35-37 / 1397. 11품류(十一品類)
"논하여 말하겠다. 온갖 유위법의 화합·적취(積聚, rāśi)의 뜻, 이것이 바로 '온(skandha)'의 뜻이니, 계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다. 즉 "존재하는 모든 색으로서 혹은 과거의 것이거나, 혹은 현재의 것이거나, 혹은 미래의 것이거나, 혹은 내적인 것이거나, 혹은 외적인 것이거나, 혹은 거친 것이거나, 혹은 미세한 것이거나, 혹은 저열한 것이거나, 혹은 수승한 것이거나, 혹은 멀리 있는 것이거나, 혹은 가까이 있는 것, 이와 같은 일체의 것을 간추려 하나의 무더기[一聚]로 삼은 것을 설하여 '온'이라고 이름한다"고 하였으니,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적취의 뜻은 온의 뜻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의 내용 중에서 무상하여 이미 멸한 색을 일컬어 '과거의 것'이라고 하였고, 아직 이미 생겨나지 않은 색을 일컬어 '미래의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미 생겨났지만 아직 낙사(落謝)하지 않은 색을 일컬어 '현재의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자기의 소의신을 '내적인 것'이라고 이름하였으며, 그 밖의 색을 '외적인 것'이라고 이름하였는데, 혹 어떤 경우 처(處)에 근거하여 분별하기도 한다.69) 또한 유대색(有對色)을 일컬어 '거친 것'이라고 하였으며, 무대색(無對色)를 일컬어 '미세한 것'이라고 하였는데,70) 혹 어떤 경우 상대적(相待的)인 관점에 따라 설정하기도 한다.71)
만약 '상대적인 관점에 따라'라고 말한다면,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72)
이러한 힐난은 옳지 않으니, 상대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은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이 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 미세한 것은 [그것에 대해] 거친 것이 되지 않으니, 이는 비유하자면 아버지와 아들, 고제와 집제의 경우 등과도 같다.73)
또한 염오(染汚)의 색을 '저열한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불염오의 색을 '수승한 것'이라고 이름하였으며, 과거·미래의 색을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현재의 색을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이름하였다.
내 지는 식온(識蘊)의 경우에도 역시 그러함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나 여기에는 약간의 차별이 있다. 즉 5근을 소의로 하는 식을 '거친 것'이라고 이름하며, 오로지 의근을 소의로 하는 식을 '미세한 것'이라고 한다. 혹은 지(地, 즉 3계 9지)에 근거하여 분별하는 경우도 있으니, 비바사사(毘婆沙師)가 설하는 바가 그러하다.
그런데 존자 법구(法救, Dharmatr ta)는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5근에 의해 파악된 것을 '거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즉 5근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것)을 '미세한 색'이라 이름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것[不可意]을 '저열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을 '수승한 색'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볼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멀리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고, 볼 수 있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가까이 있는 색'이라고 이름하며, 과거 따위의 색은 그 명칭이 드러내는 바와 같다. 그리고 수(受) 등도 역시 그러하지만 다만 소의(所依)의 힘에 따라 '멀리 있는 것'이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함을 마땅히 알아야 하며,74)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의 경우는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69) 5근은 내적인 색, 6경(법경에 해당하는 것은 무표색)은 외적인 색이다.
70) 유대색이란 질애(對礙, pratigha) 즉 공간적 점유성을 지닌 색을 말하는 것으로, 5근·5경을 가리키며, 무대색이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무표색을 가리킨다.
71) 유견유대(有見有對)·유견무대(有見無對)·무견무대(無見無對)의 3색, 혹은 욕계계(繫)·색계계·불계(不繫)의 3색을 상대적으로 볼 때, 전자는 후자에 비해 거친 색이고 후자는 전자에 비해 미세한 색이다.
72) 예컨대 욕계·색계·불계(不繫)의 색, 혹은 유견유대·무견유대·무견무대의 색에 있어 전자는 후자에 대해 거친 것이고, 후자는 전자에 대해 미세한 것이라고 할 경우, 색계의 색과 무견유대색은 미세한 것이면서 거친 것이라고 하는 두 가지 존재 양태를 지니게 되는 모순을 갖게 된다.
73) 어떤 이는 그 아버지에 대해서만 아들이고 아들에 대해서만 아버지일 뿐이며, 또한 어떤 법은 집인(集因)에 대해서만 고과(苦果)이고 고과에 대해서만 집인이 될 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
74) 수(受) 등의 법은 처소가 없기 때문에 바로 원근을 분별할 수 없으며, 다만 그것들의 소의가 미치는 힘에 따라 원근을 분별할 수 있을 뿐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4c23. 열(劣: 저열한 것)
"染污名劣。"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36 / 1397. 열(劣: 저열한 것)
"또한 염오(染汚)의 색을 '저열한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4c26 - T29n1558_p0004c28. 법구(法救)의 해석: 열(劣: 저열한 것)
"大德法救復作是言。...非可意者名劣色。所餘名勝色。"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37 / 1397. 법구(法救)의 해석: 열(劣: 저열한 것)
"그런데 존자 법구(法救, Dharmatrāta)는 다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不可意]을 '저열한 색'이라 이름하고, 그 밖의 것을 '수승한 색'이라고 이름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9권. p. T29n1558_p0100a18 - T29n1558_p0100a20. 견취(見取)
"於劣謂勝名為見取。有漏名劣。聖所斷故。執劣為勝總名見取。理實應立見等取名。略去等言。但名見取。"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9권. p. 869 / 1397. 견취(見取)
"또한 저열한 것에 대해 수승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견취(見取, dṛṣṭi-paramarsa)라고 한다. 여기서 '저열한 것'이란 유루를 일컫는 말로서, 성도에 의해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열한 것에 집착하여 수승하다고 하는 것을 모두 일컬어 '견취'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이치상으로 볼 때 '견등취(見等取)' 즉 '견해 따위를 [수승하다고] 취하는 것'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해야 하겠지만, '따위'라고 하는 말을 생략하고 단지 '견취'라고만 이름하였다." - ↑ "熱惱",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5월 1일에 확인.
"熱惱(열뇌): 극심(極甚)한 괴로움
熱 더울 열
1. 덥다, 따뜻하다 2. 더워지다, 타다 3. 태우다 4. 바쁘다,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5. 몸이 달다, 흥분하다(興奮--) 6. 친밀해지다(親密---) 7. 열(熱) 8. 더위, 더운 기운 9....
惱 번뇌할 뇌
1. 번뇌하다(煩惱--) 2. 괴로워하다 3. 괴롭히다 4. 화내다(火--) 5. 성내다 6. 원망하다(怨望--) 7. 괴로움"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3b22 - T31n1585_p0033b26. 뇌(惱)
"云何為惱。忿恨為先追觸暴熱佷戾為性。能障不惱蛆螫為業。謂追往惡觸現違緣心便佷戾。多發囂暴凶鄙麤言蛆螫他故。此亦瞋恚一分為體。離瞋無別惱相用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 327 / 583. 뇌(惱)
"무엇을 ‘뇌(惱)심소’250)라고 하는가? 먼저 분(忿) · 한(恨) 심소가 있었고 좇아서 사납고 맹렬하게 다투고 어그러지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고뇌하지 않음[不惱]을 능히 장애하여, 타인에게 지네가 쏘는 것처럼 함을 업으로 삼는다. 이전의 악을 좇고 현재의 거슬리는 연[違緣]에 접촉하여, 마음이 문득 다투고 어그러져서 대부분 사납고 흉하고 비루한 구체적인 말을 하여, 타인을 마치 지네가 쏘듯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뇌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0) 뇌(惱, pradāsa)심소는 ‘열뇌(熱惱)’, 즉 과거에 분하게 여긴 일을 돌이켜 생각하거나, 현재 일이 마음에 맞지 않아 괴로워하는 심리작용이다. 불편한 심기로 조악(粗惡)한 말로 타인을 씹게 된다.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1권. p. T29n1558_p0060b02 - T29n1558_p0060b11. 6욕천음상(六欲天婬相)
"如是所說諸天眾中。頌曰。
六受欲交抱 執手笑視婬
論曰。唯六欲天受妙欲境。於中初二依地居天。形交成婬與人無別。然風氣泄熱惱便除。非如人間有餘不淨。夜摩天眾纔抱成婬。睹史多天但由執手。樂變化天唯相向笑。他化自在相視成婬。毘婆沙師作如是釋六天皆以形交成婬。世施設中說相抱等。但為顯彼時量差別。以上諸天欲境轉妙貪心轉捷故使之然。"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1권. pp. 532-533 / 1397. 6욕천음상(六欲天婬相)
"이상에서와 같이 설한 온갖 천중들에 대해 게송으로 말하겠다.
6욕천은 교합하고, 포옹하고, 손을 잡고
웃음짓고, 바라보며 음욕(婬欲)을 향수한다.
六受欲交抱 執手笑視婬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6욕천54)만이 묘욕(妙欲)의 경계를 향수한다. 그 중에서 땅(즉 소미로산)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앞의 두 가지 천은 신체적인 형태상으로 교합하여 음애(婬愛)를 성취하니, 인간과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풍기(風氣)만을 배설함으로써 뜨거운 번뇌[熱惱]를 바로 제거하니, 인간처럼 다른 어떤 부정(不淨)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야마천의 무리는 잠시 동안 포옹함으로써 음애를 성취하며, 도사다천은 단지 손을 잡는 것에 의해 음애를 성취하며, 낙변화천은 오로지 서로를 향해 웃기만 하면 바로 음애를 성취하며, 타화자재천은 서로 마주 봄으로써 음애를 성취한다.
그러나 비바사사(毘婆沙師)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6욕천은 모두 신체적인 형태상으로 교합하여야 비로소 음애를 성취하니, 『세시설론(世施設論)』 중에서 서로 포옹하는 것 따위를 설한 것은 다만 그같이 [뜨거운 번뇌가 종식되는] 시간의 차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55)
즉 이상의 온갖 천들은 욕계의 경계로 전전(轉展)함이 미묘하고, 탐심(貪心)이 민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짧은 시간에 다수의 음애를 성취하는 것이다.]
54) 6욕천: (1) 사대왕중천(四大王衆天)은 4대천왕(즉 增上·廣目·持國·毘沙門)과 그 권속을 말한다. (2) 삼십삼천은 묘고산 꼭대기 네 면의 8부(部)의 천중과 중앙의 천제석(天帝釋)을 말한다. (3) 야마천(夜摩天 : Yama-deva,구역에서는 唱樂天. 혹은 時分天)에서는 시시때때로 충분히 쾌락을 향수한다. (4) 도사다천(都史多天 : Tu ita- deva, 구역에서는 知足天)에서는 대개 자신이 향수한 것에 대해 기쁘게 만족하는 마음[喜足心]을 낳는다. (5) 낙변화천(樂變化天 : 구역에서는 化樂天)에서는 자주 욕계의 경계를 변화시키는 것을 즐기며, 그러는 중에 즐거움을 향수한다. (6)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서는 다른 이가 변화시킨 욕계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자신의 즐거움으로 향수한다. 즉 범중천 등의 색계 16천은 대치력으로 말미암아 온갖 음욕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지만 이 같은 욕계 6욕천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욕천(欲天)이다.
55) 『대비바사론』 권제113(한글대장경122, p. 293) 참조. 즉 앞서 언급한 여러 다른 형태의 섹스는 다만 그것이 성취되는 시간을 나타내는 것일 뿐, 욕계천은 인간과 다름없이 교합함으로써 음애를 성취한다는 뜻." - ↑ 가 나 다 권오민 2003, 69–81쪽.
- ↑ 星雲, "念". 2012년 9월 22일에 확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163 / 1397쪽.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19b27 - T29n1558_p0019b28. 근(勤)
"勤謂令心勇悍為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 168 / 1397. 근(勤)
"근(勤)이란 이를테면 마음으로 하여금 모질게 노력하게 하는 것[勇悍]을 본질로 한다.34)
34) 이미 생겨난 온갖 공덕은 수호하고 과실은 내버리며, 아직 생겨나지 않은 온갖 공덕 생겨나게 하고 과실은 생겨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서, 마음의 타락됨이 없는 성질[無墮性]을 일컬어 근(勤)이라고 한다. 즉 이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은 참다운 이치에 따라 지어지는 일로 견고히 나아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 p. 134) 참고로 『순정리론』 권제11(대정장29, p. 391,중)과 『현종론』 권제5( 상동)에서는 열 가지 대선지법에 흔(欣)과 염(厭)을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대선지법에는 '흔'과 '염'도 사실상 포함되어야 할 것이지만, 이 두 가지는 상위되는 것이어서 한 찰나 마음에 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한다고 논의하고 있다. 여기서 '염'이란 유전의 생사를 염오(厭惡)하게 하는 의식 작용이며, '흔'은 환멸의 열반을 흔락(欣樂)하는 의식작용이다." - ↑ 축불념 한역 & T.1485, 상권 〈2. 현성명자품(賢聖名字品)〉. p. T24n1485_p1011c02 - T24n1485_p1011c09. 10신(十信)
"佛告敬首菩薩。佛子。吾今略說名門中一賢名門。所謂初發心住。未上住前有十順名字。菩薩常行十心。所謂信心念心精進心慧心定心不退心迴向心護心戒心願心。佛子。修行是心。若經一劫二劫三劫。乃得入初住位中。住是位中增修百法明門。所謂十信心。心心有十。故修行百法明門。常發無量有行無行大願。得人習種性中廣行一切願。" - ↑ 축불념 한역, 노혜능 번역 & K.530, T.1485, 상권 〈2. 현성명자품(賢聖名字品)〉. p. 8 / 62. 10신(十信)
"부처님께서 경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불자여, 내가 지금 요약하여 명문 가운데에서 일현명문(一賢名門)을 말하리니, 이른바 초발심주(初發心住) 이니라. 아직 초발심주에 오르기 전에 십순명자(十順名字)보살이 있는데 항상 십심(十心)을 행하느니라. 이른바, 신심(信心)ㆍ염심(念心)ㆍ정진심(精進心)ㆍ혜심(慧心)ㆍ정심(定心)ㆍ불퇴심(不退心)ㆍ회향심(廻向心)ㆍ호심(護心)ㆍ계심(戒心)ㆍ원심(願心)이니라.
불자야, 이 마음을 수행하는 데 혹은 일 겁(一劫)ㆍ이 겁(二劫)ㆍ삼 겁(三劫)을 거쳐야 곧 초발심주의 지위[初住位] 안에 들 수가 있느니라. 이 지위 가운데 머물러 백법명문(百法明門)을 더 수행해야 하는데, 이른바 십신심(十信心)의 마음이니라. 이 마음에도 각각 열이 있기 때문에 백법명문을 수행하는 것이니라. 그러니 마땅히 헤아릴 수 없는 유행(有行)과 무행(無行)의 큰 서원을 일으켜, 습종성(習種性)10) 안에 들어감을 증득해 널리 모든 서원을 행해야 하느니라.
10) 대승의 일곱 현인 중 다섯 번째:1. 초발심인(初發心人), 2. 유상행인(有相行人), 3. 무상행인(無相行人), 4.방편행인(方便行人), 5. 습종성인(習種性人), 6. 성종성인(性種性人), 7. 도종성인(道種性人)." - ↑ 축불념 한역 & T.1485, 하권 〈4. 석의품(釋義品)〉. p. T24n1485_p1017a11 - T24n1485_p1017b03. 10신(十信)
"佛子。發心住者。是人從始具縛凡夫。未識三寶聖人。未識好惡因之以果。一切不識不解不知。佛子。從不識始凡夫地。值佛菩薩教法中起一念信便發菩提心。是人爾時住前。名信想菩薩。亦名假名菩薩。亦名名字菩薩。其人略行十心。所謂信心進心念心慧心定心戒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