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위백법
오위백법(五位百法)은 유식 계통의 불교 종파인 법상종에서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 근거하여 일체의 만유제법(萬有諸法)을 크게 다섯 종류의 총 100개의 법으로 나눈 것을 말한다.[1][2][3]
대분류인 오위(五位: 다섯 종류)는 심법(心法) · 심소유법(心所有法) · 색법(色法)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 무위법(無爲法)이다.
소분류인 백법(百法: 100가지 법)은 심법에 8개의 법, 심소유법에 51개의 법, 색법에 11개의 법, 심불상응행법에 24개의 법, 무위법에 6개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위백법을 세운 법상종에서는, 비록 일체의 법을 다섯 종류의 총 100개의 법으로 나누지만, 이들 100개의 법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並無實體]'으로 단지 '가상으로 또는 임시로 세운 것[假立]'이라고 말한다.[3] 즉, 이 모두가 하나의 마음(아뢰야식)에서 생긴 것이지만, 시각적 인식인 안식과 청각적 인식인 이식이 인식 즉 앎이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 즉 차별상 또는 자상(自相)이 있으므로 구분하며 다루는 것이 크게 유용하고 실제적인 것처럼, 이런 이유로 100가지 법을 특히 구분하여 실법(實法)으로 다루는 것이다(실제로는 100가지 법 중에 이러한 실법이라고도 할 수 없는 법, 즉, 가법이지만 그 중요도가 크기 때문에 포함시킨 것들도 있다). 이러한 관점은 마음은 하나이지만 그 상태 또는 모습에 따라 89가지 마음 또는 121가지 마음으로 구분한다는 상좌부 아비담마의 교학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4][5]
구성
편집T31n1614_p0855b15║如世尊言。一切法無我。何等一切法。云何為
T31n1614_p0855b16║無我。一切法者。略有五種。一者心法。二者心
T31n1614_p0855b17║所有法。三者色法。四者心不相應行法。五者
T31n1614_p0855b18║無為法。一切最勝故。與此相應故。二所現
T31n1614_p0855b19║影故。三分位差別故。四所顯示故。如是次
T31n1614_p0855b20║第。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법은 무아이다. 일체법이란 무엇이고 무아란 무엇인가? 일체법이란 간략히 말해 5개의 법이다.
① 심법 ② 심소유법 ③ 색법 ④ 심불상응행법 ⑤ 무위법.첫 번째 심법은 가장 뛰어난 것이고, 두 번째 심소유법은 심법의 상응하는 것이고, 세 번째 색법은 심법의 나타난 영상이고, 네 번째 심불상응행법은 심법의 분위차별이고, 다섯 번째 무위법은 심법이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5개의 법은 이 순서에 따른 것이다.
— 《대승백법명문론》 한문본 & 한글본은 편집자가 번역. 2022년 8월 5일에 확인.
아래의 "백법" 문단의 표에 나오는 다섯 대분류와 100개의 법(오위백법 · 五位百法)의 이름들 중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모두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과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에 나오는 이름이다. 다섯 대분류들과 그 아래의 세부 분류들 그리고 법들이 나열되는 순서도 이 두 논서에 나오는 순서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6][7][8] 이 문서에서도 이 이름들과 순서를 사용한다.
오위
편집100개의 법의 5위(五位), 즉 다섯 대분류는 다음과 같다.
- 심법(心法): 8개의 법이 있다. 누적 개수는 총 8개이다.
- 심소유법(心所有法): 51개의 법이 있다. 누적 개수는 총 59개이다.
- 색법(色法): 11개의 법이 있다. 누적 개수는 총 70개이다.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24개의 법이 있다. 누적 개수는 총 94개이다.
- 무위법(無爲法): 6개의 법이 있다. 누적 개수는 총 100개이다.
백법
편집백법(百法), 즉 100개의 법의 세부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심법 (8 一 8)
편집심법(心法)에는 4종류의 총 8개의 법이 있다.
- 전5식(前五識) 또는 5식(五識): 5개의 법이 있다.
- 제6식(第六識) 또는 제6의식(第六意識): 1개의 법이 있다.
- 제7식(第七識): 1개의 법이 있다.
- 제8식(第八識): 1개의 법이 있다.
심법의 8개의 법을 통칭하여 심의식(心意識)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제8식이 심(心)이며 제7식이 의(意)이며 제6식과 전5식을 합한 것이 식(識)이다. 또는 전5식을 제외한 나머지 제8식 · 제7식 · 제6식을 심의식(心意識)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제8식이 심(心)이며 제7식이 의(意)이며 제6식이 식(識)이다. 한편, 대체로 심의식(心意識)을 마음[心]이라 부른다. 하지만, 제8식만을 마음[心]이라 할 때도 있다. 또한, 심법(心法)과 동의어로, 심법의 8개의 법 전체를 심왕(心王) 또는 마음[心]이라 하기도 하는데,[9] '왕(王)'이라는 낱말이 붙은 것은 심법의 8개의 법이 객관에 대한 주관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며 또한 심법의 8개의 법이 모든 마음작용의 원천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제6식 이하의 여섯 가지 식이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일 때 제7식과 제8식을 합한 것을 심왕이라 하는 경우도 있다.[10] 그리고 '유식(唯識: 모든 것은 식(識)이라는 뜻)'이라는 낱말처럼, 식(識)이 심법의 8개의 법을 포함한 100법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마음[心]이나 식(識)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가 하는 것은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
(1) 안식(眼識)
편집심법 1/8 안식 眼識 색깔 · 모양을 인식함, 색경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cakṣur-vijñāna
팔리어: cakkhu-viññāṇa
영어: visual consciousness[11]
안식(眼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안근(眼根, 눈)에 의지하면서 안근과 함께 작용하여 색경(色境) 즉 사물의 색깔과 모양을 인식[了別]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12][13][14]
안식(眼識)은 현대적인 용어로는 시각(視覺)을 뜻한다.[15][16]
(2) 이식(耳識)
편집심법 2/8 이식 耳識 소리를 인식함, 성경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śrota-vijñāna
팔리어: sota-viññāṇa
영어: auditory consciousness[17]
이식(耳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이근(耳根, 귀)에 의지하면서 이근과 함께 작용하여 성경(聲境) 즉 사물의 소리를 인식[了別]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12][13][18]
이식(耳識)은 현대적인 용어로는 청각(聽覺)을 뜻한다.[19][20]
(3) 비식(鼻識)
편집심법 3/8 비식 鼻識 냄새를 인식함, 향경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ghrāṇa-vijñāna, ghrāṇavijñāna
팔리어: ghāna-viññāna
영어: olfactory consciousness, sensation or perception of smell[21]
비식(鼻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비근(鼻根, 코)에 의지하면서 비근과 함께 작용하여 향경(香境) 즉 사물의 냄새를 인식[了別]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12][13][22]
비식(鼻識)은 현대적인 용어로는 후각(嗅覺)을 뜻한다.[23][24]
(4) 설식(舌識)
편집심법 4/8 설식 舌識 맛을 인식함, 미경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jihvā-vijñāna
팔리어: jivhā-viññāna
영어: gustatory consciousness, taste perception[25]
설식(舌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설근(舌根, 혀)에 의지하면서 설근과 함께 작용하여 미경(味境) 즉 사물의 맛을 인식[了別]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12][13][26]
설식(舌識)은 현대적인 용어로는 미각(味覺)을 뜻한다.[27][28]
(5) 신식(身識)
편집심법 5/8 신식 身識 촉감을 인식함, 촉경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kāya-vijñāna, kāyavijñāna
팔리어: kāya-viññāna
영어: bodily consciousness, tactile consciousness[29]
신식(身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신근(身根, 몸)에 의지하면서 신근과 함께 작용하여 촉경(觸境) 즉 사물의 촉감을 인식[了別]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12][13][30]
신식(身識)은 현대적인 용어로는 촉각(觸覺)을 뜻한다.[31][32]
(6) 의식(意識)
편집심법 6/8 의식 意識 온갖 대상을 전체적으로 인식함, 온갖 대상의 총상을 요별함
산스크리트어: mano-vijñāna
영어: thinking consciousness, mental consciousness, discriminating consciousness[33]
의식(意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의근(意根)에 의지하면서 의근과 함께 작용하여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같은 일체의 공법(共法)과 자신의 신체 · 정신과 같은 불공법(不共法)을 인식[了別]하는데 그 총상(總相)을 인식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 즉, 외부의 감각대상뿐만 아니라 감관을 초월한 대상이나 내면의 정신세계를 포함한 유위(有爲) · 무위(無爲)의 온갖 존재[法]를 대상으로 전체적으로 인식한다.[34][35][36][37]
그리고 의근(意根)은 무간멸의(無間滅意: 직전에 소멸한 마음), 즉, 찰나 생멸하는 식의 흐름에서 전찰나의 6식 즉 전찰나의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을 뜻하는데, 유식유가행파의 교학에 따르면 제7식인 말나식이 있기 때문에 무간멸의가 존재한다. 따라서 의근은 사실상 제7 말나식이라고 할 수 있다.[33][34][35][38][39][40][41][42]
(7) 말나식(末那識)
편집말나식(末那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식(識)으로 그 성질과 작용이 의식(意識)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지만, 의식이 무상천 · 무상정 · 멸진정 · 극수면 · 극민절의 5위무심(五位無心)에서 상속이 그 시간 동안 끊어지는 반면 이들 상태에서도 상속이 결코 끊임이 없다는 차이점을 가진 식(識) 즉 마음이다. 이러한 상속 항상성을 가진 말나식은 아뢰야식과 6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6식이 5위무심을 제외한 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게 한다.[43][44][45][46][47]
말나식은 항심사량(恆審思量)의 식(識)이다. 항상 살펴서 생각하는 식이다. 살펴서 생각하는 인식대상이 의식만큼 그 폭이 넓고 다양하지만, 말나식은, 특히, 돌이켜 자신의 연원인 아뢰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식으로, 아뢰야식을 아트만 즉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을 가진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여 아치(我痴)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4근본번뇌와 상응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 즉 극히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즉, 끈질기고 집요한 자아의식, 자기 집착심, '나라는 가짜 정체성의 단멸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애쓰는 의지'를 본질적 성질로 하는 염오식이다.[44][45][48]
말나식의 이러한 자기 집착심은 비록 불선 즉 악은 아니지만 성도(聖道)를 장애하는 유부무기로서 잡염 즉 번뇌에 속한다.[49]
(8) 아뢰야식(阿賴耶識)
편집심법 8/8 아뢰야식 阿賴耶識 일체종자식, 이숙식, 무의식
산스크리트어: ālayavijñāna
영어: ālayavijñāna, store consciousness, mind with all the seeds,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50]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전생의 업과 번뇌를 간접적 원인[緣]으로 하고 아득한 옛적부터 일어난 희론(戲論) 즉 망상(妄想)의 훈습을 직접적 원인[因]으로 하여 생겨난 모든 종자의 총체적인 이숙식(異熟識) 즉 선 · 악업 종자의 세력에 의해 초감(招感)된 총보(總報)로서의 식(識) 즉 마음이다. 즉, 일체종자식이자 이숙식으로서의 식이 아뢰야식의 본질적 성질이자 아뢰야식 그 자체이다.[51][52][53][54][55][56][57][58][59][60][61][62]
《현양성교론》제1권에 따르면 아뢰야식은 다음과 같은 성질, 특징 또는 작용을 가진다.
- 아뢰야식은 신체[有根身] 즉 모든 승의근(勝義根)과 부진근(扶塵根)을 유지 보존한다. 그리고 이들 근을 의지처로 하여 6식과 말나식이 이루는 희론 즉 망상의 훈습을 받아들여 종자의 형태로 유지 보존한다.[63][64]
- 아뢰야식은 그 성질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의 한 부류로 생멸하며 그 안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에 의해 그 상속이 단절되지 않는다.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은 종자 · 신체 · 기세간인데, 아뢰야식의 구체적인 상속과 대상[所緣]과 작용[行相]은 그 양태가 너무 미세하여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상태가 아니면 명석하게 알기 어렵다.[65][66][67][68]
- 능히 외부의 기세간(器世間) 즉 객관적 세계 또는 자연계를 유지하고, 기세간을 인식대상으로 하여 요별한다.[69][70]
-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3수(三受) 중 오직 불고불락수와 상응한다. 그리고 마음작용(심소유법)들 중에서는 오직 작의 · 촉 · 수 · 상 · 사의 5변행심소와 상응한다.[71][72]
- 아뢰야식은 근본식으로서 전식(轉識: 전변되어 생겨난 식)인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 · 말나식의 7식(七識)의 의지처가 된다. 전식과 그 상응하는 수 · 상 · 사 등의 마음작용들의 청정한 상태와 염오한 상태와 더불어 함께 전전(展轉)한다.[73][74] 즉, 아뢰야식은 오로지 무부무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청정도 염오도 아니다. 7전식(七轉識)이 염오이면 아뢰야식도 염오이고 7전식이 청정이면 아뢰야식도 청정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들이 염오이면 7전식과 그 상응하는 마음작용들이 염오이고 종자들이 청정이면 7전식과 마음작용들도 청정이다.
- 염오한 7전식을 강화시키고 청정한 7전식을 약화시키는 작용을 한다.[75][76] 실제로는, 아뢰야식에는 선업 · 악업의 갖가지 종자가 저장되어 있으므로 아뢰야식이 종자를 통해 7전식의 염오도 강화시킬 수 있고 청정도 강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뢰야식은 이미 아득한 옛적부터의 희론의 훈습에 의해 이미, 전체적으로 보아, '염오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상태 즉 현재 상태로 그대로 두면 점점 염오가 강화되고 청정이 약해진다. 오직, 수행 즉 4성제의 도제를 통한 노력이 가해져야만 청정으로 되돌릴 수 있다. 즉, 비록 모두가 불성 즉 진여의 무분별지를 지니고 있지만, 환멸연기 또는 전의(轉依)는 정진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양성교론》에서는 아뢰야식의 마지막 작용 또는 특징으로 염오가 강화되고 청정이 약화되는 것만을 말하고 있다.
2. 심소유법 (51 一 59)
편집심소유법(心所有法) 또는 심소법(心所法)에는 6종류의 총 51개의 법이 있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59개이다.
- 변행심소 5개
- 별경심소 5개
- 선심소 11개
- 번뇌심소 6개
- 수번뇌심소 20개
- 부정심소 4개
심소유법(心所有法)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마음 속에 존재하는 법' 또는 '마음 속에 존재할 수 있는 법'으로, 마음작용 또는 정신작용의 주체인 심법(心法: 여덟의 식) 또는 심왕(心王: 심법과 동의어)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킨다. 대체로, 심법 또는 심왕을 주관이라 할 수 있으며 심소법 또는 심소유법을 주관의 운동(동작, 행위, 기능, 작용)이라 할 수 있다.
2.1. 변행심소 (5 一 5 一 13)
편집변행심소(遍行心所)에는 5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5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13개이다.
- 작의(作意)
- 촉(觸)
- 수(受)
- 상(想)
- 사(思)
'변행'(遍行: 편행이라고 읽지 않고 변행이라고 읽는다)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두루 일어난다' 또는 '보편적으로 언제나 일어난다'는 뜻이다. 변행심소는 마음이 일어날 때면, 즉, 심왕(心王: 여덟의 식)이 존재할 때면, 항상 심왕과 더불어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으로, 선악의 성격이 없다.[3][77]
(9) 작의(作意)
편집변행심소 1/5 작의 作意 마음을 일으킴[心發悟], 마음을 발동시키고 이끔[動心引心], 마음을 경각시키고 이끔[警心引心], 주의, 유의
산스크리트어: manasikara, manasi-kāra, manaskāra, manaḥ-kāra
팔리어: manasikara
영어: attention, focusing attention, paying attention, mental orientation, gathering of the attention[78][79]
작의(作意)는 마음과 수(受) · 상(想) · 사(思) 등의 다른 마음작용들을 발동시켜 대상을 향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80][81][82][83][84][85][86][87]
작의(作意)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서[生] 마음을 의지처로 하여 일어나는[起] 마음작용으로, 마음과 다른 마음작용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마음과 다른 마음작용들을 인식대상을 향해 이끄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88][89][90][91][92][93] 현재의 인과에 적합한 마땅히 일어나야 할 마음 종자[心種]와 마음작용 종자[心所種]를 경각(警覺)시켜 인식대상으로 향하게 만드는 마음작용이다.[94][95][96][97][98]
(10) 촉(觸)
편집촉(觸)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접촉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101] 달리 말해, 감각 기관 즉 인식도구인 근(根)과 객관 즉 인식대상인 경(境)과 주관 즉 인식주체인 식(識: 마음)을 연결 또는 화합시키는 마음작용이다. 즉, 근 · 경 · 식의 3사(三事)의 화합, 3사화합(三事和合) 또는 3화합(三和合)의 마음작용이다.[102][103]
엄밀히 말하자면, 촉이 곧 '3사화합'(三事和合)인 것은 아니다. 3사가 화합할 때, 즉, 3사가 만날 때, 즉, 근과 경이 만나서 식이 생겨날 때, 바로 이 때, 근과 경과 식은 '전체적으로 말해' 온갖 마음작용이 생겨나게 하는 힘도 발휘하는데 그 생겨나는 마음작용들 중의 하나가 촉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겨난 촉이 다른 온갖 마음작용이 생겨나는 구체적인 즉 실제적인 소의처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촉 이후에 생겨나는 마음작용들은 모두 촉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그 마음작용들은 모두 촉에 의해 대상과 만나게 된다. 이런 의미를 담아, 편의를 위해 간단히 말해, '촉은 3사화합이다'라고 마치 '촉'과 '3사화합'이 서로 등가인 것처럼 표현한다. 그리고 《현양성교론》 제1권,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대승오온론》, 《성유식론》 제3권, 《성유식론술기》 제3권 등에서는 근과 경과 식이 화합할 때 이들이, 전체적으로 말해, 온갖 마음작용이 생겨나게 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변이'(變異)라고 하고 촉이 다른 온갖 마음작용이 생겨나는 구체적인 즉 실제적인 소의처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분별'(分別)이라 한다.[104][105][106][107][108][109][110][111][112][113][114][115]
이 용어들을 사용하여 정의하자면, 촉은 3사화합에 따른 변이가 분별된 마음작용, 또는, 3사화합에 의거하여 분별된 마음작용으로, 마음과 다른 마음작용으로 하여금 대상을 접촉[觸, 和合]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수(受) · 상(想) · 사(思) 등의 마음작용이 생겨나는 소의처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116][117][118][119][120][121][122][123][124][125][126][127][128]
(11) 수(受)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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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행심소 3/5 수 受 감수작용, 느낌, 지각, 감각, 과보의 영납, 결과를 받아들여 느낌
산스크리트어: vedanā
팔리어: vedanā
영어: feeling, sensation; to experience; to receive, or undergo, the results of good and evil actions; to experience karma[129]
수(受)는 형성된 촉(觸)을 통해 마음에 들지 않는 · 마음에 드는 · 마음에 들지도 들지 않지도 않는 대상 즉 이숙과 즉 인과법칙의 결과를 받아들여 고 · 낙 · 불고불락의 느낌을 느끼는 마음작용이다.[130][131][132][133][134][135][136]
수(受)는 마음에 들지 않는 · 마음에 드는 · 마음에 들지도 들지 않지도 않는 대상을 받아들여 고 · 낙 · 불고불락의 느낌을 느끼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욕(欲)과 애(愛)의 마음작용이 일어나게 하는 조건[緣]이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137][138][139][140][141][142][143]
수(受)에는 고수(苦受: 괴로운 느낌) · 낙수(樂受: 즐거운 느낌) · 사수(捨受: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느낌)의 3수(三受) 또는 3수를 세분한 고수 · 낙수 · 우수 · 희수 · 사수의 5수(五受)가 있다.[144] 수(受: 느낌 · 지각 · 감각)를 분류하는 방법에는 3수 또는 5수로 나누는 방법 외에도, 예를 들어, 통각 · 미각 · 촉각 등으로 나누거나 또는 일반 감각 · 초감각 등으로 나누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을 수 있지만, 3수 또는 5수로 나누는 이유는 십이연기나 아뢰야연기와 같은 연기 관계(유전 연기와 환멸 연기)를 밝히는데는 수(受)를 3수 또는 5수로 분류하는 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다.[145]
(12) 상(想)
편집변행심소 4/5 상 想 개념, 관념, 표상작용, 취상(取像), 취상(取相), 구료상(搆了相)
산스크리트어: saṃjñā
팔리어: saññā
영어: ideation, perception, cognition, conceptualization, distinguishing, idea, conceptual thought, associative thought[146]
상(想)은, 수(受)의 마음작용 다음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해 개념을 형성하고 이름을 붙이는 마음작용이다.[147][148] 예를 들어, 어떤 남자 · 여자 · 풀 · 나무 등을 보았을 때 그 사람 또는 사물을 남자 · 여자 · 풀 · 나무 등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149][150][151]
대상에 대해 개념을 형성하는 것을 나타내는 전통적 표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취상(取像): 본뜬 형상(形狀)을 취함, 본떠 그린 모양을 취함, 대상의 이미지를 취함[152][153][154][155]
- 취상모(取像貌) 본뜬 모습과 모양을 취함, 본떠 그린 모습과 모양을 취함, 대상의 이미지를 취함[156][157][158][159][160]
- 취상(取相): 모습 · 모양 · 특징을 취함[161][162][163][164][165][166][167]
- 취상모(取相貌): 특징과 모습을 취함, 모습 · 모양 · 특징을 취함[168][169]
- 취차별상(取差別相):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그 사물만의 모습 · 모양 · 특징을 취함[170][171]
- 구료상(搆了相): 모습 · 모양 · 특징을 얽어서 앎, 모습 · 모양 · 특징을 그려서 인식함[172][173]
대상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을 전통적 표현으로 시설명언(施設名言)이라 한다.[174][175]
상(想)은 대상에 대해 본뜬 형상(形狀)을 취하는 것[取像]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대상에 대해 갖가지 이름을 붙이는 것[施設名言]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대상을 구분하는 한계[分齊相] 즉 대상의 공상(共相: 구체적인 대상이 속한 종의 사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다른 종과 구별되는, 특징)을 인식하여 갖가지 명칭[名言]을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176][177][178][179][180]
(13) 사(思)
편집변행심소 5/5 사 思 의사, 의지, 추진, 조작(造作), 만들고 지음, 짓고 만듦
산스크리트어: cetanā
팔리어: cetanā
영어: volition,
directionality of mind,
attraction,
urge[181][182]
사(思)는 수(受)에 의해 형성된 고수(苦受) · 낙수(樂受) · 사수(捨受)의 느낌과 상(想)에 의해 형성된 개념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해 선 · 악 또는 무기(無記: 선도 악도 아닌 것)의 업(業: 카르마 · 세력 · 흐름 · 경향성 · 습관을 쌓는 것) 즉 행위를 짓는 마음작용이다.[183][184][185][186][187][188][189]
사(思)는 5온 중 행온(行蘊)을 대표한다.[190][191][192][193][194][195][196][197]
사(思)는 마음으로 하여금 선 · 불선 · 무기의 의업(意業) 즉 온갖 종류의 마음으로 짓는 업을 짓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선법 · 불선법 · 무기법 즉 온갖 종류의 법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작용하게 하는 것 즉 선 · 불선 · 무기의 행위를 행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198][199][200][201][202][203][204][205][206][207][208][209]
2.2. 별경심소 (5 一 10 一 18)
편집별경심소(別境心所)에는 5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10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18개이다.
- 욕(欲)
- 승해(勝解)
- 염(念)
- 정(定) = 삼마지(三摩地) = 삼매(三昧)
- 혜(慧) = 반야(般若)
변행심소가 마음이 일어날 때 대상[境: 객관]의 종류에 관계 없이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인 반면, 별경심소는 특정 종류의 대상, 즉 특정 유형의 객관에 대해서만 일어나는 마음작용이다. 예를 들어, 즐거운 대상을 만나면 욕(欲)의 마음작용이 일어나고, 결정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만나면 승해(勝解)의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211][212]
(14) 욕(欲)
편집별경심소 1/5 욕 欲 희망(希望), 희구(希求), 욕구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da
영어: to hope desire, to long for, intention, interest, desire to act, desire for action, aspiration[213]
욕(欲)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그것을 희망(希望: 바라고 기대함)하는 마음작용이다.[214][215][216]
좋아하는 대상은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소락경(所樂境), 자락경(自樂境), 가애사(可愛事) 또는 애락사(愛樂事)라고 한다.[217][218][219][220][221]
선욕(善欲)은 선심소 중의 하나인 정진(精進)의 마음작용의 발동근거가 된다. 악욕(惡欲) 중 타인의 재물 등을 바라고 구하는 것이 근본번뇌 즉 번뇌심소 중의 하나인 탐(貪)의 마음작용이다.[222]
욕(欲)은 좋아하는 대상을 희망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정진의 마음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223][224][225][226][227][228][229][230][231][232][233][234][235][236]
(15) 승해(勝解)
편집별경심소 2/5 승해 勝解 확실한 이해, 뛰어난 이해, 인가와 유지[印持]
산스크리트어: adhimokṣa, adhimoksha, adhimukti
팔리어: adhimokkha
영어: interest, intensified interest, decision, firm conviction, resolution, approval[237]
승해(勝解)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수승하게(殊勝: 아주 뛰어나게) 요해하다(了解: 형편이나 사정 등을 알아서 자세하게 이해하다)'이다.
승해(勝解)는 결정할 대상에 대하여 아주 뛰어난 이해를 내는 것으로 시비(是非: 맞음과 틀림) · 정사(正邪: 바름과 삿됨) · 선악(善惡: 선함과 악함)을 아주 잘 살펴 이해하여 결정하는 마음작용이다.[238][239][240][241]
결정할 대상은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결정경(決定境) 또는 결정사(決定事)라고 한다. 결정하는 것 또는 확정하는 것을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결정(決定), 인(印) 또는 인가(印可)라고 한다. 결정하고 또한 그 결정을 지니는 것을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인지(印持)라고 한다.[242][243][244][245][246]
승해(勝解)는 결정할 대상에 대하여 아주 잘 살펴 이해하여 결정하고 또한 그 결정을 지니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달리 이끌려 그 결정이 바뀌는 일이 없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247][248][249][250][251][252][253][254][255]
아주 잘 살펴 이해하여 결정하는 것이란 달리 말하면 이해하여 결정함에 있어 장애가 없다는 말이다.[247][248][256] 즉,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행함에 있어서 어려움이 없이 그 이해나 행위가 이루어진다면 그 무엇에 대하여 승해가 있는 것이다. 승해 즉 확실한 이해 즉 확실한 지식이 있다는 것은 그 일을 능히 잘 이룰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이다. 승해는 단순히 지적 이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노하우 즉 전문가적 식견과 역량을 뜻한다.[257][258][259][260]
(16) 염(念)
편집별경심소 3/5 염 念 관, 정념, 4념처, 알아차림, 주의집중, 끊임없는 수동적 관찰, 지속적인 알아차림, 명기(明記)와 불망(不忘), 불산란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영어: mindfulness, awareness, concentration, inspection, recollection, retention, memory[261][262]
염(念)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을 분명히 기록하여[明記] 잊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특히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다시금 분명히 기록하여 잊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이다.[263][264][265][266][267][268]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은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증습경(曾習境), 증소수경(曾所受境), 관습경(串習境) 또는 관습사(串習事)라고 한다.[263][264][269][270][271][272][273]
염(念)은 '기억하다'라는 의미의 작억(作憶)이라고도 한다.[274] 무언가를 기억하여 회상하는 것은 분명히 기록하는 것의 2차적인 작용이다. 염(念)은 과거의 대상을 기억으로부터 끄집어 낼 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의 대상을 기억에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마음이 대상을 의식적으로 분별(分別) 또는 식별(識別)하는 현재 순간에는 염(念)의 마음작용, 즉 기억 작용이 반드시 동반한다.[275]
또한 마음이 무언가를 분명히 기록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집중과 주시 또는 알아차림을 동반하므로 염(念)은 집중, 주시, 주의집중 또는 알아차림이라고도 한다.[276]
염(念)은 마음으로 하여금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다시 분명히 기록하여[明記] 잊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정(定) 즉 삼마지(三摩地)의 마음작용, 즉, 선정(禪定) 즉 등지(等持)에 들어가는 것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반복적으로 생각하여 지녀서 잊어버리지 않게 해서 능히 삼마지의 마음작용 즉 선정을 이끌어 낸다.[263][264][269][270][271][272][273][277][278][279][280][281][282][283][284][285]
(17) 정(定)
편집별경심소 4/5 정 定 심일경성(心一境性), 대상과 하나됨, 전일(專一), 전주(專注), 선정, 집중, 몰입
산스크리트어: samādhi, ekāgratā
팔리어: samādhi, ekaggatā
영어: concentration, one-pointedness, unification, unification of mind[286][287]
삼마지(三摩地) 또는 삼매(三昧)라고도 한다.[288][289] 둘 다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를 음에 따라 번역한 낱말이다. 한자어 '정'(定)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자리를 정하다, 머무르다, 안정시키다'인데,[290] 산스크리트어 '사마디'(samādhi)를 뜻에 따라 번역한 낱말이다.[289]
정(定)은 마음으로 하여금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고 머물게 하는 마음작용,[288][289][291][292][293] 즉, 심일경성(心一境性: 마음이 대상과 하나가 되게 하는 성질)의 마음작용이다.[294][295][296][297] 특히 관찰할 대상에 대해 집중하여 산란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이다.[298][299][300]
관찰할 대상은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소관경(所觀境), 소관사(所觀事) 또는 관찰경(觀察境)이라고 한다.[301][302][303][304]
정(定)을 등지(等持)라고도 하는데,[305] '등지'(等持)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평등하게 유지한다'로서, 심일경성(心一境性) 즉 '대상과 평등하게 유지한다, 대상과 하나가 된 상태를 유지한다'를 뜻한다.[306][307][308][309][310]
정(定)은 마음으로 하여금 관찰할 대상에 집중하여 그 대상과 하나가 되어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번뇌를 단멸하는 지(智)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298][299][311][312][313][314][315][316][317][318]
(18) 혜(慧)
편집별경심소 5/5 혜 慧, 반야, 지혜, 택법, 간택, 식별, 판단, 선택, 의심을 끊음
산스크리트어: prajñā, mati
팔리어: paññā
영어: wisdom, discrimination, discernment[319][320]
반야(般若) 또는 말저(末底)라고도 한다.[319] 혜는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ñā)를 뜻에 따라 번역한 것이고, 반야는 음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319] 말저(산스크리트어: mati)는 반야의 다른 이름이다.[321][322]
혜(慧) 또는 반야(般若)는 사물 또는 이치로서의 대상[境], 즉, 온갖 법(法)을 추리 · 판단 · 선택하는 마음작용이다.[319][321][323] 특히 관찰할 대상에 대해 추리 · 판단 · 선택하는 마음작용이다.[324][325]
관찰할 대상은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소관경(所觀境), 소관사(所觀事) 또는 관찰경(觀察境)이라고 한다. 추리 · 판단 · 선택하는 것을 전통적인 표현으로는 간택(簡擇) 또는 택법(擇法)이라고 한다.[326][327][328][329][330][331]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마음이 혜(慧)의 마음작용을 통해 모든 대상 즉 마음이 만나는 모든 법이 아니라 그 모든 법들 중의 일부인 관찰하고 있는 대상에 대하여 정사(正邪: 바름과 삿됨) · 득실(得失: 얻음과 잃음)을 판단하여 좋은 것(특히, 열반에 나아가게 하는 것)은 취하고 나쁜 것(특히, 열반에 나아가게 하지 않거나 열반에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는 것)은 버리는 일을 한다고 본다.[321][332][333][334] 또한,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어리석고 우매한 상태에 처해 있는 마음에는 혜(慧)의 마음작용이 없다고 보며, 따라서 혜는 변행심소에 속하지 않고 별경심소에 속한다.[321][324][325][335][336][337][338]
혜(慧) 또는 반야(般若)는 관찰할 대상을 간택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관찰할 대상에 대해 의심[疑]을 끊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관찰 대상이 선법인지 불선법인지 선법도 불선법도 아닌지 추리하고 판단하여 결정적 선택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더 이상 유예함이 없는 상태가 되게 한다.[324][325][335][339][340][330][331][341][342][343][344][345][346][347]
혜(慧)는 크게 유루혜와 무루혜로 나뉘는데, '완전한 결정적 선택' 즉 '번뇌의 단멸' 즉 '택멸'은 오직 무루혜, 즉, 출세간의 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348][349] 유루혜는 번뇌를 단멸하지 못하고 다만 조복시킬 수 있는데, 번뇌를 충분히 조복시킴으로써 현행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350][351]
2.3. 선심소 (11 一 21 一 29)
편집선심소(善心所)에는 11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21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29개이다.
- 신(信)
- 정진(精進) = 근(勤)
-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사(捨)
- 불해(不害)
선심소(善心所) 또는 선(善, kuśala, kusala, good)은 그 성질이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작용들로, 편안하고 즐거운 과보를 낳는 마음작용들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번뇌(불선과 유부무기)는 그 성질이 고요하지 않은[不寂靜] 마음작용들이다. 선(善)은 지금의 생과 미래의 생에 걸쳐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는 정법(淨法), 즉 장애가 없거나 장애를 제거하는 성질을 가진 마음작용들을 가리킨다.[352][353][354][355]
선(善)은 청정(清淨: 맑고 깨끗함, 장애가 없거나 장애를 제거함)의 의의를 가진다.[354] 선(善)은 일반적인 의미 또는 광의의 의미로는 좋은 것 · 뛰어난 것 · 훌륭한 것을 뜻하나,[356]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위에 열거한 11가지의 법(法) 만을 선(善)이라고 본다.[354] 즉,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는 이들 11가지 마음작용이 열반으로 나아감에 있어 장애를 제거하는 역할을 하여 환멸 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현양성교론》제1권에 따르면, 선심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작용력을 가진다.[357][358][359][360]
- 반대되는 장애를 끊는다. 예를 들어, 신(信)은 불신(不信)의 장애를, 무진(無瞋)은 진(瞋)의 장애를 끊는다.
-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획득 · 성취하여 원만해지게 한다.
- 자신과 남 둘 다를 이롭게 한다.
- 선도(善道) 즉 인간도와 천상도에 태어나게 한다.
- 그 자체를 증장시킨다. 예를 들어, 무치(無癡) 즉 지혜는 지혜를, 사(捨) 즉 균형력은 균형력을 증장시킨다.
(19) 신(信)
편집선심소 1/11 신 信 믿음, 인가, 청정, 맑음, 희망
산스크리트어: śraddhā
팔리어: saddhā
영어: faith, conviction, trust, to believe in[361]
사라태(捨攞馱)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산스크리트어 '스라다'(śraddhā)를 음에 따라 번역한 것이다.[362]
일반적인 의미로는, 신(信) 즉 믿음은 어떤 사물 · 현상 · 명제 · 진술 · 주장 · 설명 등을 적절한 것 또는 진실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심적 태도 또는 마음작용이다.[363] 이런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신(信)은 4성제라는 진리와 불법승 3보에 대해 비방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364]
그런데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 말하는 신(信)에는 이러한 일반적인 뜻도 들어있지만 이보다는 그 의미가 더욱 구체적이고 한정적이다. 《현양성교론》과 《성유식론》등에 따르면, 신(信)은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된 것[實]을 깊이 인정하고 덕(德)을 깊이 좋아하고 능력[能]을 깊이 원하게 함으로써, 제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하여, 불법승 3보의 덕(德)에 대하여, 세간의 선(善)과 출세간의 선(도제)이 가진 힘에 대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만드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불신(不信)을 대치하고 선(善)을 즐겨 행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하는 마음작용이다.[365][366][367][368][369][370][371][372][373][374]
간략히 가장 본질적인 성질만을 들어 상태 측면에서 말하자면, 신(信) 즉 믿음이란 청정한 마음 즉 맑은 마음이다.[375][376][377] 불신이나 의심을 비롯한 여러 번뇌로 혼탁해지거나 얼룩지지 않은 상태의 마음이다. 4성제라는 진리와 불법승 3보에 대해 마음이 청정한 것, 맑은 것이다.[378][379] 작용 측면에서 말하자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정화시키는, 맑게 하는 마음작용이다.[362][380][381][382][383][384][385][386][387][388] 깨달음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나 자신에게 깨달음을 능히 성취할 힘이 있다는 것에 의혹이 없는 것이다.[389][390]
자세히 말하자면, 신(信)은 다음과 같은 6가지 성질을 가진 마음작용이다. 신(信)의 이들 6가지 성질 때문에, '유신능입'(唯信能入: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이라 하여 신(信)의 마음작용이 불도(佛道: 불교, 즉, 깨달음의 길)에 들어가는 첫 걸음이라고 흔히 말한다.[362][391]
- 실심인(實深忍): 진실된 것[實]을 깊이 인(忍)한다. 여기서 '진실된 것'[實]이란 일체법의 진실된 모습과 이치[諸法實事理]를 가리킨다. '인'(忍)은 일반적인 사전적인 의미의 '참는다'의 뜻이 아니며 별경심소(別境心所)에 속한 5개의 법(法: 마음작용) 중의 하나인 승해(勝解)의 뜻이다.[367][368] 승해는 대상에 대하여 아주 뛰어난 이해를 내는 것으로 시비(是非: 맞음과 틀림) · 정사(正邪: 바름과 삿됨) · 선악(善惡: 선함과 악함)을 살펴서 결정하는 마음작용이다.[392]
- 덕심락(德深樂): 덕(德)을 깊이 즐겨 좋아한다[深樂]. 여기서 덕(德)은 불법승 3보의 진실되고 청정함[三寶眞淨]을 가리킨다.[367][368] 낙(樂)은 욕(欲)으로 이어지는데, 욕(欲)은 별경심소에 속한 5개의 마음작용 중의 하나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하여 그것을 얻기를 희망하는 마음작용이다.[393]
- 능심욕(能深欲): 능력[能]을 깊이 원한다[深欲]. 욕(欲)은 별경심소에 속한 5개의 마음작용 중의 하나로, 좋아하는 대상에 대하여 그것을 얻기를 희망하는 마음작용이다.[393]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능력을 원한다'는 말은 '어떤 능력을 가지기를 원한다'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다. 여기서 능력[能]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善)에는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信)이라는 마음작용은 이러한 능력에 대해 깊이 믿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신(信)이라는 마음작용에 의해 발현되는 이 믿음으로부터, 열반을 성취하게 되리라는 희망이 마음에서 저절로 그리고 반드시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367][368] 따라서 '능력을 깊이 원한다'[能深欲]는 말은, 신(信)이라는 마음작용은 선(善)이 장애를 제거하고 열반을 성취하게 하는 힘이 있음을 믿는 성질이 있는데, 열반을 성취하게 되리라는 욕구 또는 희망이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저절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을 축약해서 말한 표현이다.
- 심정(心淨): 마음을 청정하게 만든다[淨: 정화시키다], 즉, 마음을 맑게 하다.
- 대치불신(對治不信):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을 장애하는 불신(不信)이라는 마음작용을 다스려 마음으로부터 제거한다[對治].
- 낙선(樂善): 마음으로 하여금 선(善), 즉 선심소(善心所)의 11가지의 법(法: 마음작용)을 더욱더 좋아하고 원하며 즐겨 행하게 한다.
(20) 정진(精進)
편집선심소 2/11 정진 精進 마음의 용맹함, 결단과 인내, 용맹하게 전진함
산스크리트어: vīrya
팔리어: viriya
영어: diligence,
energy,
perseverance,
enthusiasm,
sustained effort
근(勤)이라고도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용맹하게 나아가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394]
선(유익한 것)을 수행하고 악(해로운 것)을 끊는 것에 대해 용맹하고 굳세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게으름을 다스려 선을 원만히 이루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395][396]
(21) 참(慚)
편집선심소 3/11 참 慚 부끄러워함, 자신에게 부끄럽게 여김, 숭중현선(崇重賢善)
산스크리트어: hrī
팔리어: hiri
영어: self-respect,
conscientiousness,
sense of shame,
dignity,
respect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여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397]
자신의 힘과 법(즉 인과법, 연기법)의 힘을 의지하여 현명한 덕이 있는 이들[賢聖]과 선법(善法)을 받들고 존중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무참(無慚)을 대치(對治)하고 악행을 멈추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398][399]
(22) 괴(愧)
편집선심소 4/11 괴 愧, 뉘우침, 부끄러워함, 남에게 부끄럽게 여김
산스크리트어: apatrāpya
팔리어: ottappa
영어: decorum,
shame,
consideration,
propriety,
fear
마음으로 하여금 허물에 대해 남부끄러워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00]
세간의 힘을 의지하여, 즉, 사나움이나 악행이 타인의 비방이나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가치 없는 것임을 깨달아, 사나움과 악행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거부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무괴(無愧)를 대치하고 악행을 멈추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01][402]
(23) 무탐(無貪)
편집선심소 5/11 무탐 無貪 염착이 없음, 집착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lobha
팔리어: alobha
영어: purity,
non-attachment,
without attachment,
absence of desire
마음으로 하여금 어떠한 경계(境界)에도 탐착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03]
윤회하는 삶[有]과 그 원인[有具]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탐착을 다스려서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04][405]
무진(無瞋) · 무치(無癡)와 함께 3선근(三善根, 3가지 선의 뿌리)을 이루는데, 이들을 뿌리[根]라고 칭한 이유는 선(유익함)을 일으키는 힘이 뛰어나고 또한 탐 · 진 · 치의 3불선근(三不善根)을 직접적으로 대치하기 때문이다.[406][407]
3선근 중 무탐과 무진은 모든 착한 마음과 함께한다. 무치는 착한 마음과 함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408][409]
(24) 무진(無瞋)
편집선심소 6/11 무진 無瞋 자애로움, 자(慈), 사랑, 성내지 않음, 노여워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apratigha,
adveṣa
팔리어: adosa
영어: good will,
non-aggression,
non-hatred,
imperturbability,
non-anger,
absence of hatred
마음으로 하여금 어떠한 경계(境界)에도 성내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10]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苦具]에 대해서 성내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성냄을 대치하여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08][409]
(25) 무치(無癡)
편집선심소 7/11 무치 無癡 어리석지 않음, 바른 앎, 결택, 명료하게 이해함
산스크리트어: amoha
팔리어: amoha
영어: wisdom,
non-delusion,
non-bewilderment,
lack of naivety,
lack of stupidity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법의 사리(事理)를 밝게 알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11]
모든 본체[理]와 현상[事]에 대해서 밝게 아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우치를 대치하여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12][413]
(26) 경안(輕安)
편집선심소 8/11 경안 輕安 조화롭고 가뿐함, 고르고 상쾌함, 평안
산스크리트어: praśrabdhi
팔리어: passaddhi
영어: pliancy,
alertness,
flexibility,
aptitude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경쾌하고 편안하게 하여, 몸과 마음이 그 하려는 일을 잘 감당하여 잘해낼 수 있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14][415]
달리 말해,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추중(麤重: 무거움과 혼침을 일으키는 번뇌)을 멀리 떠나게 하여 고르고 화창하게 해서 그 하려는 일(주로 선정을 뜻함, 즉, 4선과 4무색정)을 잘 감당하여 잘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혼침을 대치하여 몸과 마음을 전환시키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16][417]
(27) 불방일(不放逸)
편집선심소 9/11 불방일 不放逸 성실, 선법을 닦음, 마음을 방호함
산스크리트어: apramāda
팔리어: appamada
영어: carefulness,
concern,
conscientiousness,
conscious awareness,
diligence
마음으로 하여금 나쁜 일(불선법)을 막게 하고 모든 착한 일(선법)에 집중하여 닦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18][419]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과 정진의 4가지 마음작용으로 하여금 단멸해야 할 것 즉 불선법을 방지하게 하고 닦아야 할 것 즉 선법을 닦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방일을 대치하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법을 원만히 성취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20][421]
달리 말하자면, 불방일은 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이다. 선법 그 자체가 닦는 것인데, 온갖 선법을 떠나 다시 무엇을 일컬어 닦는단 말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진의는 선에 대해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증일아함경》에서는 “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을 일컬어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고 하였다.
한편, 불방일은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과 정진의 4가지 마음작용을 떠나서는 별도의 작용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별도의 본질이 있는 실법이 아닌 가법이다. 다만,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의 마음작용이 모든 선심의 의지처가 되어 능히 악을 방지하고 정진의 마음작용이 마음을 두루 책려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이들 4가지가 악을 그치고 선을 증진시키는 모습 또는 작용이 특기할 만하기 때문에 가법이지만 선심소에 포함시킨 것이다.[422][423]
선심소 중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의 3가지는 실법이 아닌 가법이다.[424][425]
(28) 행사(行捨)
편집선심소 10/11 행사 行捨 내려놓음, 버림, 평등 · 정직 · 무공용, 고요, 평정, 평정심, 평온, 균형, 평형
산스크리트어: upeksā
팔리어: upekkhā,
upekhā
영어: serenity,
equilibrium,
equanimity,
stability,
composure,
indifference
사(捨)라고도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혼침의 침몰과 도거의 요동을 떠나 균형과 평정의 상태인 고요함[寂靜]에 머물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26][427][428]
무탐 · 무진 · 무치의 3선근과 정진의 4가지 마음작용으로 하여금 마음이 평등(平等: 고르고 가지런함)하고 정직(正直: 바르고 기울지 아니함)하고 무공용(無功用: 의식적인 노력이 없음)한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혼침과 도거(들뜸)를 대치하여 적정(寂靜, 고요함, 균형, 평정, 중도)에 머물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29][430][431][432]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심평등성(心平等性) · 심정직성(心正直性) · 심무공용성(心無功用性)은 순서대로 획득되는데, 무탐 · 무진 · 무치 · 정진에 의지하여 수행해 가는 중에 첫 번째 단계인 혼침과 도거의 허물을 멀리 떠난 상태[遠離昏沈掉舉諸過失]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평등(平等)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 후, 다시 수행에 정진하여, 두 번째 단계인 마음대로 움직여지고 억지로 애씀이 없는 상태[任運無勉勵]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정직(正直)을 획득한 것이다. 그런 후, 다시 수행에 정진하여, 세 번째 단계인 모든 잡염을 멀리 떠났기에 의식적인 노력이 전혀 없어도 되는 상태[無功用]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것이 무공용(無功用)을 획득한 것이다.[433][434]
사(捨)의 마음작용을 변행심소에 속한 수(受)의 마음작용, 즉, 3수 또는 5수 중 사수(捨受)와 구분하기 위해 행사라고 한다. 변행심소의 수가 5온 중 수온에 속한 법임에 비해 선심소의 사는 행온에 속한 법이므로 행사(行捨)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마음이 일어날 때는 변행심소가 함께하므로, 행사와 상응하는 마음이 있을 때 5수 중 사수가 함께한다. 따라서 이 때의 사수를 단순히 무덤덤함 또는 평온의 느낌이 아니라 수준 높은 균형 또는 평정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선심소 중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의 3가지는 실법이 아닌 가법이다.[424][425][435][436]
(29) 불해(不害)
편집선심소 11/11 불해 不害 아힘사, 해치지 않음, 비(悲), 불손뇌(不損惱), 연민, 비폭력
산스크리트어: ahiṃsā
팔리어: avihiṃsā
영어: no harm,
non-violence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유정에게 이롭지 않은 일이나 손상시키는 일이나 괴롭히는 일을 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437][438]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상시키거나 괴롭히지 않게 하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을 본질적 성질로 하며, 해(害)를 대치하고 비민(悲愍: 마음 아파하고 가엾게 여김)하여 고통을 없애 주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39][440]
선심소 중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의 3가지는 실법이 아닌 가법이다.[424][425][441][442]
2.4. 번뇌심소 (6 一 27 一 35)
편집번뇌심소(煩惱心所)는 단순히 번뇌(煩惱)라고도 하며, 근본번뇌(根本煩惱) · 본번뇌(本煩惱) · 근본혹(根本惑) · 본혹(本惑)이라고도 한다. 6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27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35개이다.
- 탐(貪)
- 진(瞋)
- 만(慢)
- 치(痴) = 무명(無明)
- 의(疑)
- 부정견(不正見) = 악견(惡見)
(30) 탐(貪)
편집마음으로 하여금 마음에 드는 사물에 대해 염오한 애착을 일으키게 하여 5취온이 생기게 함으로써 온갖 괴로움[苦]을 낳는 마음작용이다.[443][444]
마음으로 하여금 유(有: 윤회하는 삶)와 유구(有具: 윤회하는 삶의 원인)에 대해 탐착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무탐(無貪)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애착의 힘으로 5취온이 생겨나게 해서 괴로움[苦]을 낳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45][446]
(31) 진(瞋)
편집번뇌심소 2/6 진 瞋 미워함, 성냄, 노여워함, 상처입히고 해치는 것을 좋아함
산스크리트어: pratigha, dvesa
팔리어: paṭigha
영어: ill will, anger, repugnance, hatred
진에(瞋恚)라고도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물에 대해 미워하고 분하게 여기게 하여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47][448]
마음으로 하여금 고(苦: 마음에 들지 않는 것)와 고의 원인[苦俱: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일으키는 사람, 사물 또는 자신의 결핍 상태]에 대해 미워하고 성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악행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대해 발끈하게 하여[熱惱, 열받게 하여] 몸과 마음이 온갖 악행(불선) 즉 현세와 미래에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일으키게 촉발하는 마음작용이다.[449][450]
기본적인 지혜를 지닌 사람도, 즉, 인과의 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에 대해 알고 있는, 대체로 관대한 착한 마음의 사람도 자신이 특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과 만날 때 진(瞋)의 마음작용과 상응하여 그 결과 발끈하여 인과의 법칙도 잊어버린채 악업(현세와 미래에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저지를 수 있다. 진(瞋)은 이러한 작용을 한다.
《대지도론》 제14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451][452]
성냄[瞋恚]은 그 허물이 가장 깊어서 3독 가운데서 이보다 깊은 것이 없다. 98사(九十八使)가운데서 이것이 가장 견고하고, 모든 마음의 법 가운데 가장 고치기 어렵다. 성내는 사람은 착한 것도 모르고, 착하지 않은 것도 모르며, 죄와 복도 관찰하지 못하고, 이익과 손해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억념하지도 못하다가 스스로 악도에 떨어진다. 착한 말을 망실하고 명예를 아끼지 않으며, 남의 괴로움을 모르고 자기의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지치는 줄도 모른 채 성냄에 지혜의 눈을 가려 오로지 남을 괴롭히는 짓만을 한다.’ 어떤 5통선인(五通仙人)이 화를 냈기 때문에 비록 청정한 행을 닦았으나 한 나라 사람을 다 죽이기를 마치 전다라와 같이 했다. ... 예컨대 구섬미국(拘睒彌國)의 비구들은 사소한 일로 성내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두 패로 나뉘게 되었다. ... 부처님께서 오셔서 상륜(相輪)의 손을 들어 막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싸우지 말라. ... 그대들은 열반을 구해 세간의 이익을 버리고 착한 법 가운데 들어왔거늘 어찌 성내고 싸우는가?’ ...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법왕이시니, 잠시 잠자코 계십시오. 이 무리들이 나를 침해하니 어찌 대꾸하지 않으리이까.’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는 승중 가운데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숲으로 들어가셔서 조용히 삼매에 드셨다.
성내는 죄는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듣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반드시 성냄을 제거하고 인욕을 닦아야 한다. 또한 능히 인욕을 닦는다면 자비를 얻기 쉽고, 자비를 얻으면 곧 불도에 이르게 된다.(32) 만(慢)
편집자만심을 말한다. 즉, 마음으로 하여금 남과 비교하게 하여 '내가 그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내가 그보다 열등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스스로 자부하고 자신을 높이게 하는[恃舉]' 마음작용이다.[453][454]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부하여 남에 대해서 자신을 높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불만(不慢)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괴로움[苦]을 낳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55][456]
한편, 만의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시작점인 비교에서 동등하다 또는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간의 기술이나 능력에서 동등하다 또는 뛰어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출세간 즉 열반을 향하게 하는 덕에서 동등하다 또는 뛰어나다는 것을 뜻한다.
세분하여 3만(三慢) · 7만(七慢) · 9만(九慢)이 있는데, 이들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만(慢) · 과만(過慢) · 만과만(慢過慢) · 아만(我慢) · 증상만(增上慢) · 비만(卑慢) · 사만(邪慢)의 7만 중에서 만 · 과만 · 비만을 3만이라고 한다. 3만을 주로 3종만류(三種慢類) 즉 세 가지 종류의 만이라고 칭한다.[453][454] 즉, 만 · 과만 · 비만을 각각 아등만류(我等慢類: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 · 아승만류(我勝慢類: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 · 아열만류(我劣慢類: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열등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라고 이름한다. 이렇지만, 7만과 3만은 차이점이 있는데, 7만은 자기보다 열등한 이, 자기와 동등한 이, 자기보다 뛰어난 이의 3가지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자만하는 것이며, 3만은 자기와 동등한 이와 자기보다 뛰어난 이의 2가지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자만하는 것이다. 그리고 3만의 각각을 3가지로 세분한 것을 9만이라고 한다. 9만을 9만류(九慢類) 즉 아홉 가지 종류의 만이라고도 한다.[457]
(32.1) 7만(七慢)
편집(32.1.1) 만(慢)
편집만(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기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혹은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60][461]
3만의 아등만류(我等慢類: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에 해당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만을 취하여 3만의 아등만류로 삼는다.[457]
(32.1.2) 과만(過慢)
편집과만(過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혹은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62][463]
3만의 아승만류(我勝慢類: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에 해당한다. 보다 정확히 말해,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만을 취하여 3만의 아승만류로 삼는다.[457]
(32.1.3) 만과만(慢過慢)
편집만과만(慢過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64][465]
(32.1.4) 아만(我慢)
편집아만(我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5취온에 대해 나[我]라고 생각하거나 내 것[我所]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66][467]
(32.1.5) 증상만(增上慢)
편집번뇌심소 3/6 7만 5/7 증상만 增上慢
산스크리트어: adhi-māna
영어: false arrogance, anticipatory arrogance, arrogance of showing off
증상만(增上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아직 증득하지 못한 뛰어난 법, 예를 들어, 4선이나 4무색정과 같은 선정 또는 4과 · 10지 · 열반과 같은 출세간을 자신이 이미 증득했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68][469]
(32.1.6) 비만(卑慢)
편집비만(卑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이에 대해 자신이 열등하기는 하나 조금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70][471]
3만의 아열만류(我劣慢類: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열등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에 해당한다. 비만의 마음작용을 취하여 3만의 아열만류로 삼는다.[457]
(32.1.7) 사만(邪慢)
편집사만(邪慢)은 마음으로 하여금, '본질적으로 또는 실제로는 덕(德)이 없는 법(존재 · 현상 · 사물)인데도 덕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는 그릇된 생각' 즉 견취(見取) 또는 계금취(戒禁取)에 바탕하여, 자신이 그러한 법을 가진 상태를 두고 자신이 덕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72][473] 즉, 실제로는 덕이 없음에도 덕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심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신통한 점술이나 세간의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 등과 같은 능력은 그 자체로는 3선근과 정진과 같은 선심소가 아닌 무기(無記)의 마음작용이므로 열반을 향하게 하는 덕이 없는 것인데 그것을 덕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능력을 가졌을 때 자신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자만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다른 예로는, 10악에 속하는 도둑질을 크게 잘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자신을 대도(大盜)라고 부르는 것을 말한다.
사만(邪慢)은 '본질적으로 덕이 없는 것, 즉, 무기이거나 불선인 것'을 획득 또는 성취한 상태에서 자신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 자만하는 것이고 증상만(增上慢)은 '본질적으로 덕이 있는 것 즉 3선근을 갖춘 것'을 성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만하는 것이다.
(32.2) 9만(九慢)
편집3만을 세분하여 얻어지는 9만은 다음의 아홉 가지 종류의 만을 말한다.[457]
① 아승만류(我勝慢類) ② 아등만류(我等慢類) ③ 아열만류(我劣慢類)
④ 유승아만류(有勝我慢類) ⑤ 유등아만류(有等我慢類) ⑥ 유열아만류(有劣我慢類)
⑦ 무승아만류(無勝我慢類) ⑧ 무등아만류(無等我慢類) ⑨ 무열아만류(無劣我慢類)
3만을 세분하는 형태로 9만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457]
(32.2.1~3) 아등만류(我等慢類)
편집아등만류(我等慢類)는 7만의 만(慢)에 해당한다.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를 말한다.
- ② 아등만류(我等慢類): 자기와 수준이 동등한 이[同等之人]에 대해 '나와 그는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⑤ 유등아만류(有等我慢類): 자기와 수준이 비슷한 이[相等之人]에 대해 '나와 그는 동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⑦ 무승아만류(無勝我慢類): 자기와 수준이 동등한 이[同等之人]에 대해 '그가 나보다 반드시 뛰어난 것은 아니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32.2.4~6) 아승만류(我勝慢類)
편집아승만류(我勝慢類)는 7만의 과만(過慢)에 해당한다. 자기와 동등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를 말한다.
- ① 아승만류(我勝慢類): 자기와 수준이 동등한 이[同等之人]에 대해 '내가 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⑥ 유열아만류(有劣我慢類): 자기와 수준이 비슷한 이[相等之人]에 대해 '그가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⑧ 무등아만류(無等我慢類): 자기와 수준이 동등한 이[同等之人]에 대해 '그가 나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32.2.7~9) 아열만류(我劣慢類)
편집아열만류(我劣慢類)는 7만의 비만(卑慢)에 해당한다. 자기보다 뛰어난 이에 대해 '내가 그보다 열등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만하게 하는 종류를 말한다.
- ③ 아열만류(我劣慢類): 자기보다 수준이 뛰어난 이[勝過自己之人]에 대해 '내가 그보다 열등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④ 유승아만류(有勝我慢類): 자기보다 수준이 뛰어난 이[勝過自己之人]에 대해 '그가 나보다 뛰어나긴 하다. 그렇지만...'이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 ⑨ 무열아만류(無劣我慢類): 자기보다 훨씬 수준이 뛰어난 이[多分勝於我者]에 대해 '내가 그보다 아주 조금 열등하긴 하다.'라고 생각하게 하여 자신을 높이는 마음[高舉心]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작용
(33) 치(痴)
편집번뇌심소 4/6 치 痴 어리석음, 우치, 무명(無明), 무지(無知), 무지(無智), 무현(無顯)
산스크리트어: moha, mūdha, avidyā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 delusion, error
무명(無明)이라고도 한다.
치(痴)는 마음으로 하여금 업(業)과 과(果)와 진리[諦]와 보배[寶], 즉, 인과의 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과, 인과의 법칙에 따라 증득하는 수다원과 · 사다함과 · 아나함과 · 아라한과의 4과(四果)와, 성스러운 진리인 4성제와, 불 · 법 · 승 3보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75][476][477][478]
치(痴)는 마음으로 하여금 갖가지 법의 사리(事理, 현상과 이치, 현상과 본질, 구체적 모습과 본질적 모습)에 대해 미혹하고 어두워지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무치(無癡)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온갖 잡염(雜染)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79][480][481][482][483][484]
(34) 의(疑)
편집번뇌심소 5/6 의 疑 의심, 망설임, 주저함, 미룸, 진리에 대한 유예
산스크리트어: vicikitsa, vicikitsā
팔리어: vicikicchā
영어: doubt, indecision, skepticism, indecisive wavering
의(疑)는 마음으로 하여금 진리 즉 연기법과 4성제를 의심하게 하여 참으로 그러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85][486] 달리 말해, 미(迷)의 인과 법칙이나 오(悟)의 인과 법칙, 즉, 유전연기와 환멸연기, 즉, 고집멸도의 4성제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87][488]
의(疑)는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진리[諦]와 논리[理]에 대해서 결정을 미루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결정 내림[不疑, 의심하지 않음, 결정을 미루지 않음]과 선(善, 유익함)이 일어나는 것을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결정을 미루게 함으로써 결국 선이 생겨나지 않게 한다.[489][490]
(35) 부정견(不正見)
편집악견(惡見)이라고도 한다. 간단히 견(見)이라고도 한다.
부정견(不正見)은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진리[諦]와 논리[理]에 대해 전도(顛倒)된 추론을 일으키게 하는 염혜(染慧: 번뇌와 상응한 지혜, 악혜)를 본질적 성질로 하고,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491][492] 부연하자면, 부정견에 따른 행위의 과보로는 괴로운 것이 많으므로, 괴로움울 불러들이는 것을 부정견의 본질적, 특징적 작용이라 할 수 있다.[493][494]
부정견은 세분하여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 · 계금취의 5견으로 나뉜다.
(35.1) 유신견(有身見)
편집번뇌심소 6/6 · 부정견 1/5 유신견 有身見 나라는 견해, 내 것이라는 견해
산스크리트어: satkāya-drsti
팔리어: sakkāya-ditth
영어: view of individuality, self view, identity view
살가야견(薩迦耶見)이라고도 한다.
유신견(有身見)은 마음으로 하여금 5취온에 대해 나[我]와 내 것[我所]으로 집착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하고, 모든 부정견의 의지처(발생 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세분하여 20살가야견 · 65살가야견 등이 있다.[495][496]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8권에 따르면, 20살가야견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5온에 대해 다음의 5가지 아견과 15가지 아소견을 가진 것을 말한다. 아견이건 아소견이건 '나'를 실체로 여기는 견해를 말한다.
5가지 아견
- 나는 몸(색)이다 = 몸(색)이 나다
- 나는 느낌(수)이다 = 느낌(수)이 나다
- 나는 생각(상)이다 = 생각(상)이 나다
- 나는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이다 =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이 나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다 = 의식(식, 마음)이 나다
15가지 아소견
- 나에게는 몸(색)이 있다
- 몸(색)은 내 것이다
- 나는 몸(색) 안에 있다
- 나에게는 느낌(수)이 있다
- 느낌(수)은 내 것이다
- 나는 느낌(수) 안에 있다
- 나에게는 생각(상)이 있다
- 생각(상)은 내 것이다
- 나는 생각(상) 안에 있다
- 나에게는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이 있다
-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은 내 것이다
- 나는 정신활동(행, 마음작용) 안에 있다
- 나에게는 의식(식, 마음)이 있다
- 의식(식, 마음)은 내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 안에 있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제8권에 따르면, 65살가야견은 색 · 수 · 상 · 행 · 식의 5온 각각에 대해 다음과 같은 13가지 견해가 있어 총 65가지 견해가 있는 것을 말한다.
의식(식, 마음)을 나로 여기는 13가지 견해
- 나는 의식(식, 마음)이다 = 의식(식, 마음)이 나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몸(색)은 나의 보배[瓔珞]이다. 즉, 나의 소중한 내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몸(색)은 나의 종[童僕]이다. 즉, 내가 버리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몸(색)은 나의 그릇[器]이다. 즉, 나를 담는 그릇, 즉, 나를 표현하는 소중한 수단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느낌(수)은 나의 보배[瓔珞]이다. 즉, 나의 소중한 일부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느낌(수)은 나의 종[童僕]이다. 즉, 내가 버리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느낌(수)은 나의 그릇[器]이다. 즉, 나를 담는 그릇, 즉, 나를 표현하는 소중한 수단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생각(상)은 나의 보배[瓔珞]이다. 즉, 나의 소중한 일부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생각(상)은 나의 종[童僕]이다. 즉, 내가 버리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생각(상)은 나의 그릇[器]이다. 즉, 나를 담는 그릇, 즉, 나를 표현하는 소중한 수단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은 나의 보배[瓔珞]이다. 즉, 나의 소중한 내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은 나의 종[童僕]이다. 즉, 내가 버리기도 하고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 나는 의식(식, 마음)이고, 정신활동(행, 마음작용)은 나의 그릇[器]이다. 즉, 나를 담는 그릇, 즉, 나를 표현하는 소중한 수단이다.
(35.2) 변집견(邊執見)
편집번뇌심소 6/6 · 부정견 2/5 변집견 邊執見 치우친 견해, 극단적인 견해, 단견과 상견
산스크리트어: anta-grāha-drsti
팔리어: anta-ggāhikā
영어: extreme view
변견(邊見)이라고도 한다.
변집견(邊執見)은 견해의 대상에 대해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가지게 하는 마음작용이다.[497][498][499]
변집견(邊執見)은 유신견이 더욱 강성하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그 견해의 대상을 단멸하는 것 또는 상주하는 것으로 집착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처중행출리(處中行出離), 즉, 처중행에 의한 출리, 즉, 단견과 상견의 양극단을 벗어난 중도 연기의 반야에 의한 출리, 즉 도제에 의해 증득되는 멸제를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00][501][502]
초기 불교의 외도의 견해인 62견(六十二見) 가운데 단견은 7가지, 상견은 40가지로 총 47가지가 변집견에 해당하고 나머지 15가지는 상견이라고도 단견이라고도 할 수 없다.[503][504]
구분 | 대분류 | 소분류 | 상견 | 단견 |
---|---|---|---|---|
본겁본견(本劫本見) - 18견
|
상론(常論) - 4견
| (1) 상론 초견 | ● | |
(2) 상론 제2견 | ● | |||
(3) 상론 제3견 | ● | |||
(4) 상론 제4견 | ● | |||
역상역무상론(亦常亦無常論) - 4견
| (5) 역상역무상론 초견 | ● | ||
(6) 역상역무상론 제2견 | ● | |||
(7) 역상역무상론 제3견 | ● | |||
(8) 역상역무상론 제4견 | ● | |||
변무변론(邊無邊論) - 4견
| (9) 변무변론 초견 | |||
(10) 변무변론 제2견 | ||||
(11) 변무변론 제3견 | ||||
(12) 변무변론 제4견 | ||||
종종론(種種論) - 4견
| (13) 종종론 초견 | |||
(14) 종종론 제2견 | ||||
(15) 종종론 제3견 | ||||
(16) 종종론 제4견 | ||||
무인이유론(無因而有論) - 2견
| (17) 무인이유론 초견 | |||
(18) 무인이유론 제2견 | ||||
말겁말견(末劫末見) - 44견
|
유상론(有想論) - 16견
| (19) 유상론 초견 (제1그룹 1) | ● | |
(20) 유상론 제2견 (제1그룹 2) | ● | |||
(21) 유상론 제3견 (제1그룹 3) | ● | |||
(22) 유상론 제4견 (제1그룹 4) | ● | |||
(23) 유상론 제5견 (제2그룹 1) | ● | |||
(24) 유상론 제6견 (제2그룹 2) | ● | |||
(25) 유상론 제7견 (제2그룹 3) | ● | |||
(26) 유상론 제8견 (제2그룹 4) | ● | |||
(27) 유상론 초견 (제3그룹 1) | ● | |||
(28) 유상론 제2견 (제3그룹 2) | ● | |||
(29) 유상론 제3견 (제3그룹 3) | ● | |||
(30) 유상론 제4견 (제3그룹 4) | ● | |||
(31) 유상론 제5견 (제4그룹 1) | ● | |||
(32) 유상론 제6견 (제4그룹 2) | ● | |||
(33) 유상론 제7견 (제4그룹 3) | ● | |||
(34) 유상론 제8견 (제4그룹 4) | ● | |||
무상론(無想論) - 8견
| (35) 무상론 초견 (제1그룹 1) | ● | ||
(36) 무상론 제2견 (제1그룹 2) | ● | |||
(37) 무상론 제3견 (제1그룹 3) | ● | |||
(38) 무상론 제4견 (제1그룹 4) | ● | |||
(39) 무상론 제5견 (제2그룹 1) | ● | |||
(40) 무상론 제6견 (제2그룹 2) | ● | |||
(41) 무상론 제7견 (제2그룹 3) | ● | |||
(42) 무상론 제8견 (제2그룹 4) | ● | |||
비유상비무상론(非有想非無想論) - 8견
| (43) 비유상비무상론 초견 (제1그룹 1) | ● | ||
(44) 비유상비무상론 제2견 (제1그룹 2) | ● | |||
(45) 비유상비무상론 제3견 (제1그룹 3) | ● | |||
(46) 비유상비무상론 제4견 (제1그룹 4) | ● | |||
(47) 비유상비무상론 제5견 (제2그룹 1) | ● | |||
(48) 비유상비무상론 제6견 (제2그룹 2) | ● | |||
(49) 비유상비무상론 제7견 (제2그룹 3) | ● | |||
(50) 비유상비무상론 제8견 (제2그룹 4) | ● | |||
단멸론(斷滅論) - 7견
| (51) 단멸론 초견 | ● | ||
(52) 단멸론 제2견 | ● | |||
(53) 단멸론 제3견 | ● | |||
(54) 단멸론 제4견 | ● | |||
(55) 단멸론 제5견 | ● | |||
(56) 단멸론 제6견 | ● | |||
(57) 단멸론 제7견 | ● | |||
현재니원론(現在泥洹論) - 5견
| (58) 현재니원론 초견 | |||
(59) 현재니원론 제2견 | ||||
(60) 현재니원론 제3견 | ||||
(61) 현재니원론 제4견 | ||||
(62) 현재니원론 제5견 | ||||
합계 2 | 10 | 62 | 40 | 7 |
(35.3) 사견(邪見)
편집번뇌심소 6/6 · 부정견 3/5 사견 邪見 그릇된 견해, 진리에 어긋난 견해, 인과를 부정하는 견해
산스크리트어: mithyā-drsti
팔리어: sassata-ditthi
영어: false view,
evil view
|
사견(邪見)은 마음으로 하여금 특히 인과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을 무시하거나 부정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505][506][507][508]
보다 자세히는 대체로 다음을 통칭하여 사견이라 한다.[509][510]
- 원인[因]을 부정하는 마음작용: 보시 등의 선이나 탐착 등의 악에 선악업을 쌓는 원인[因]으로서의 힘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
- 결과[果]를 부정하는 마음작용: 선악업에 의해 초감되는 이숙과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
- 작용(作用)을 부정하는 마음작용: 세간 · 부모 등 모든 사회 · 국가를 부정하는 것
- 실사(實事, 실제의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를 부정하는 마음작용: 아라한이나 붓다 또는 여래란 없다고 부정하는 것
- 기타, 유신견 · 변집견 · 견취 · 계금취를 제외한 다른 모든 그릇된 견해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원인[因]이란 12연기의 12가지 지분 가운데 번뇌와 업의 성질의 지분들인 총 5가지를 말한다. 즉, 번뇌에 해당하는 무명 · 애 · 취의 3가지와 업에 해당하는 행과 유의 2가지를 말한다. 행은 업의 다른 말이고, 유는 아뢰야식의 업종자를 말한다. 따라서, 원인을 부정하는 것이란 12연기 즉 인과법칙에서 이들의 작용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511][512]
결과를 부정하는 것이란, 무명이라는 번뇌에 의해 쌓인 행이라는 업에 의해 식 · 명색 · 6입 · 촉 · 수의 5가지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애 · 취라는 번뇌에 의해 쌓인 유라는 업에 의해 생 · 노사의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511][512]
작용을 부정하는 것이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화생(化生)의 중생 즉 천인(天人)도 없다고 여기는 생각을 말한다. 즉 선업과 악업의 작용을 부정하는 견해를 말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태어나는 상속 즉 윤회의 작용이 없다거나, 종자 즉 원인을 지니고 지속시키는 작용이 없다거나, 결생(結生: 수태 시에 중유 즉 바르도에서 모태로 의탁하는 것)의 작용이 없다는 견해를 말한다.[511][512] 자신이 이 세상으로 다시 윤회하여 태어난 것은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에 따른 것이라고 보지 않아 이 세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거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가족 가운데 태어난 것은 자신이 스스로 지은 업에 따른 것이라고 보지 않고 단지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낳음으로 인해 자신이 태어난 것이라고 보아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자신의 부모를 탓하거나 사회나 국가를 탓하거나, 또는 자신이 욕계에 윤회하게 된 이유가 색계 · 무색계에 태어날 수 있을 만큼의 선업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실사(實事, 실제의 사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를 부정하는 것이란,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세간이 없다거나, 출세간이 없다거나, 세간으로부터 출세간으로 넘어가는 유정이 없다고 하는 견해 등을 말한다.[511][512] 즉, 비록 전생들의 업과 그 작용에 의해 욕계에 태어났지만 이번 생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과법칙에 의해, 욕계에서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색계 · 무색계로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출세간으로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초기 불교의 외도의 견해인 62견 가운데 다음의 14가지가 사견에 해당한다.[513][514]
- 무인이유론(無因而有論) = 무인론(無因論) 2가지
- 변무변론(邊無邊論) = 유변무변상론(有邊無邊想論) = 유변등론(有邊等論) 4가지
- 종종론(種種論) = 불사교란론(不死矯亂論) 4가지
- 현재니원론(現在泥洹論) = 현법열반론(現法涅槃論) 4가지
또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사견에 속한다.[515][516]
- 자재천 즉 욕계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천신을 최고신으로 보고, 변화 없는 영원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
- 세주(世主) 즉 대자재천 즉 색계의 18천 가운데 최고천인 색구경천(色究竟天)의 천신을 최고신으로 보고, 변화 없는 영원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
- 제석천 즉 욕계 제4천인 33천 즉 도리천의 천신을 최고신으로 보고, 변화 없는 영원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
- 자성(自性) 즉 프라크리티(prakriti) 등의 사물[物類]을 변화 없는 영원한 존재 즉 영원한 법(다르마)이라고 여기는 것
- 자재천 · 대자재천 · 제석천 · 자성(自性) 등이 모든 사물의 원인이라고 여기는 것, 즉, 집제(集諦)에 대한 그릇된 견해
- 여러 그릇된 해탈을 진실한 해탈이라고 여기는 것, 즉, 멸제(滅諦)에 대한 그릇된 견해
예를 들어, 무상정의 성취 또는 무상천에 태어나는 것을 열반이라 여기는 것 - 도(道) 즉 길이 아닌 것을 도로 여기는 것, 즉, 도제(道諦)에 대한 그릇된 견해
(35.4) 견취(見取)
편집번뇌심소 6/6 · 부정견 4/5 견취 見取 염오견에 대한 집착
산스크리트어: drstiparāmarśa
영어: adherence to views,
view of attachment to views
견취견(見取見)이라고도 한다. 견취(見取)는 견등취(見等取)의 뜻으로, 사견[見] 등을 (뛰어난 것으로) 취한다는 의미이다.[517][518]
견취(見取)는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으로 일으킨 견해를 마음으로 하여금 고집하게 하여 진실하고 뛰어난 견해라고 집착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519][520][521]
견취(見取)는 마음으로 하여금 여러 그릇된 견해와 그것의 발동근거가 된 온(蘊)에 대해 집착하게 하여 그것들을 청정(열반)을 획득 ·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뛰어난 법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모든 투쟁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22][523]
(35.5) 계금취(戒禁取)
편집번뇌심소 6/6 · 부정견 5/5 계금취 戒禁取 그릇된 계금에 대한 집착
산스크리트어: śīla-vrata-parāmarśa
영어: adherence to observances and rituals,
view of rigid attachment to the precepts
계금취견(戒禁取見), 계취견(戒取見) 또는 계도견(戒盜見)이라고도 한다.
계금취(戒禁取)는 마음으로 하여금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여겨 집착하게 함으로써, 그 결과 원인이 아닌 것을 원인이라 집착하게 하고 참된 해탈도(解脫道)가 아닌 것을 참된 해탈도라고 집착하게 하는 마음작용이다.[524][525]
예를 들어, 개나 소 따위가 죽은 뒤엔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개나 소처럼 풀을 먹고 똥을 먹으며 개와 소의 행동을 하면서 이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바른 길이라고 집착하는 것, 또는,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갠지즈강에 목욕하거나 불속에 뛰어드는 것 등이 계금취에 해당한다.[524][525] 또는 계율이나 금지 조항의 진정한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기 보다는 계율이나 금지 조항의 형식 그 자체에 취착하는 것이 계금취에 해당한다.[526]
계금취(戒禁取)는 마음으로 하여금 여러 그릇된 견해와 상응하는 계율이나 금지 조항과 그것의 발동근거가 된 온(蘊)에 대해 집착하게 하여 그것들을 청정(열반)을 획득 · 성취할 수 있게 하는 가장 뛰어난 법이라고 여기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유익함 없이 헛되이 수고롭게 애쓰는 고통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26][527]
2.5. 수번뇌심소 (20 一 47 一 55)
편집수번뇌심소(隨煩惱心所) 또는 수번뇌(隨煩惱)에는 3종류의 총 20개의 법이 있다.[528][529][530][531]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47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55개이다.
- 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 10개: 각기 따로따로 일어나는 번뇌[532]
분(忿) · 한(恨) · 뇌(惱) · 부(覆) · 광(誑) · 첨(諂) · 교(憍) · 해(害) · 질(嫉) · 간(慳) - 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2개: 불선심에 두루하는 번뇌[533]
무참(無慚) · 무괴(無愧) - 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 8개: 잡염심에 두루하는 번뇌[534]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혼침(昏沈) · 도거(掉擧) · 실념(失念) · 부정지(不正知) · 산란(散亂)
예를 들어, 질투[嫉]하는 마음, 즉, 질(嫉)의 마음작용과 상응하고 있는 마음이 있을 때, 이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번뇌들을 헤아리면 다음과 같다.
-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질투하는 마음은 탐 · 진 · 만 · 치 · 의 · 부정견의 6가지 번뇌심소 중 만(慢) · 치(痴)의 2가지와 함께한다.[535][536]
- 질투는 진(瞋)에서 파생된 수번뇌이므로 질투는 이미 진(瞋)의 일부분이다.[537][538] 따라서, 질투하는 마음은 6가지 번뇌심소 중 다시 진(瞋)과 함께 일어나지는 않는다.
- 진(瞋)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대해 일어나고 탐(貪)은 마음에 드는 대상에 대해 일어나므로, 진(瞋)과 탐(貪)은 같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진(瞋)의 일부인 질투는 탐(貪)과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
- 10가지 소수번뇌심소는, 반드시, 의(疑)와 부정견과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 소수번뇌심소는 그 작용이 두드러진 것이고 부정견과 의(疑)는 미세하게 살피는 것이어서 서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 결국, 6가지 번뇌심소 중 질투는 만(慢) · 치(痴)와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된다.
- 질투는 잡염 즉 번뇌이므로, 질투하는 마음은 대수번뇌심소 8가지 모두와 함께한다.[539][540]
- 다음과 같은 이유로 질투는 불선에 속하므로, 질투하는 마음은 중수번뇌심소 2가지 모두와 함께한다.[541][542]
- 질투는 소수번뇌심소이고, 소수번뇌심소는 각기 따로따로 일어나므로,[530][531] 질투하는 마음은 소수번뇌심소에서는 질투 1가지만이 함께한다.
따라서, 총 2 + 8 + 2 + 1의 13가지 번뇌가 질투하는 마음과 함께 일어난다.
2.5.1. 소수번뇌심소 (10 一 37 一 45)
편집소수번뇌심소(小隨煩惱心所) 또는 소수번뇌(小隨煩惱)에는 10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37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45개이다.
소수번뇌심소 | 실유 · 가유 | 근본번뇌 | 잡염 | |||
---|---|---|---|---|---|---|
탐 | 진 | 치(무명) | 불선 | 유부무기 | ||
1. 분(忿) | 가유 | ● | ● | |||
2. 한(恨) | 가유 | ● | ● | |||
3. 뇌(惱) | 가유 | ● | ● | |||
4. 부(覆) | 가유 | ● | ● | ● | ||
5. 광(誑) | 가유 | ● | ● | ● | ● | |
6. 첨(諂) | 가유 | ● | ● | ● | ● | |
7. 교(憍) | 가유 | ● | ● | ● | ||
8. 해(害) | 가유 | ● | ● | |||
9. 질(嫉) | 가유 | ● | ● | |||
10. 간(慳) | 가유 | ● | ● |
(36) 분(忿)
편집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만났을 때, 마음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47][548][549]
이롭지 않은 대상 또는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고 생각되는 대상이 눈앞에 나타날 때 마음으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분노하지 않음[不忿]의 마음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장애하고 욕과 악담을 하거나 몽둥이를 잡아 때리는 등의 언어적 · 신체적 악한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50][551]
분(忿)은 진(瞋)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50][551]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37) 한(恨)
편집소수번뇌심소 2/10 한 恨 원한, 원망
산스크리트어: upanāha
영어: resentment,
enmity,
vindictiveness
마음으로 하여금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대해 원망하거나 원한을 가지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54][555][556]
이전에 있은 분노[忿] 이후에, 마음으로 하여금 그 분노의 여력을 품고 버리지 않게 하여 원망하게 하거나 원한을 맺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참을 수 없을 만큼 몹시 괴롭게 하는 것[熱惱: 열받아 괴로움, 심화가 쌓여 괴로움]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57][558]
한(恨)은 진(瞋)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57][558]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아비달마순정리론》제54권에 따르면, 한(恨)과 분(忿)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559][560]
- 분은 나무 껍질에 붙은 불처럼 그 드러난 모습은 맹렬하지만 그것이 가라앉은 후 지속하는 여력이 약하다.
- 한은 겨울 방의 열기처럼 그 드러난 모습은 경미하지만 지속하는 여력이 강하다.
- 한은 분이 끝나고 나서 이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혼탁하게 한다.
(38) 뇌(惱)
편집소수번뇌심소 3/10 뇌 惱 괴롭힘, 사나움, 포악함, 죄사에 대한 견고한 집착[561][562][563][564]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영어: spite,
spitefulness,
malice,
stubbornness
마음으로 하여금 포악한 말로써 상대를 탓하고 힐책하며 괴롭히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65][566][567][568][569] 포악한 말이란 칼로 저미듯이 아프게 하고[切], 해롭고[害], 거칠고[麁], 사나운[獷] 말을 뜻한다.[567][568]
이전에 있은 분노[忿]와 원망[恨] 이후에, 마음으로 하여금 사나워지게 하고 마음과 말이 매우 거칠고 비꼬이게 하고 포악해지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괴롭히지 않음[不惱]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마치 지네가 쏘듯이 사납고 흉한 추하고 거친 말을 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70][571]
뇌(惱)는 진(瞋)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70][571]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39) 부(覆)
편집소수번뇌심소 4/10 부 覆 숨기고 감춤
산스크리트어: mrakśa
팔리어: makkha
영어: concealment,
slyness-concealment,
hypocrisy
마음으로 하여금 명예가 떨어질까 두려워 지은 죄를 덮어 숨기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72][573][574]
마음으로 하여금 지은 죄에 대해서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감추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숨기지 않음[不覆]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후회하고 괴로워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죄를 숨기는 사람은 후에 반드시 후회가 되고 괴로움이 있어 편안하지 않다.[575][576]
부(覆)는 탐(貪)과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77][578] 즉, 가유이다.[552][553] 부가 탐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학자나 관리와 같이 지식이 있는 자가 명리의 탐욕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을 말하고, 부가 치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무지한 자가 참회할 줄 몰라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을 말한다.[579][580]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40) 광(誑)
편집소수번뇌심소 5/10 광 誑 속임, 미혹시킴
산스크리트어: śāthya
영어: hypocrisy,
dishonesty,
deception,
spirit of deception
마음으로 하여금 이익과 명예를 위해 다른 이를 속이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81][582][583]
마음으로 하여금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덕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속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속이지 않음[不誑]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그릇된 생계 즉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584][585]
광(誑)은 탐(貪)과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84][585]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41) 첨(諂)
편집다른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또는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왜곡[心曲]시키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86][587] 즉, 다른 사람에 대해 본심을 숨기고 그의 뜻에 따르는 것처럼 아첨하게 하거나 자신의 허물과 죄과를 은폐하기 위해 교묘한 수단을 부리게 하는 마음작용이다.[588][589][590]
다른 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마음으로 하여금 본심과는 다른 행동을 보여서 진실하지 못하게 굽히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아첨하지 않음[不諂]의 마음작용과 덕이 있는 사람의 가르침[敎誨]을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아첨해서 본심을 왜곡시키는 사람은 시기를 보아 교묘한 방편을 사용해 다른 이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혹은 자신의 과실을 감추기 위해 스승의 바른 가르침이나 친구의 바른 권고를 따르지 않는다.[591][592]
첨(諂)은 탐(貪)과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591][592]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장현종론》 제27권에 따르면, 첨(諂)은 심곡(心曲) 즉 마음의 왜곡이고 광(誑)은 심험(心險) 즉 마음의 험악함인데, 심곡과 심험은 다른 이를 속인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593][594]
- 심곡은 구불구불한 지팡이[杖]와 같고, 심험은 험악한 길[道]과 같다.
- 심곡은 자신에 대한 것이고, 심험은 타인에 대한 것이다.
- 심곡은 부정견[見]에 인한 것이고 심험은 탐(貪)에 인한 것이다. 즉 심곡은 부정견이라는 근본번뇌로부터 생겨나는 수번뇌로 부정견의 등류이며, 심험은 탐(貪)이라는 근본번뇌로부터 생겨나는 수번뇌로 탐의 등류이다.
한편, 위의 《현종론》의 견해에서 심곡 즉 첨이 부정견에서 파생된다는 견해는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견해, 즉, 첨이 탐과 치에서 파생된다는 견해와는 다르다. 심험 즉 광이 탐에서 파생된다는 견해는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견해, 즉, 광이 탐과 치에서 파생된다는 견해와 대체로 같다고 볼 수 있다.
(42) 교(憍)
편집소수번뇌심소 7/10 교 憍 교만, 오염된 기쁨
산스크리트어: mada
팔리어: mada
영어: self-satisfaction,
self-infatuation,
mental inflation,
smugness,
conceit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번성한 일에 집착하여 그것에 도취되게 함으로써 오만방자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595][596] 오만방자의 사전적인 뜻은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보거나 업신여기다'이다.[597][598][599][600] 오만방자에는 스스로에게 잘난 체하는 것과 남에게 잘난체 하는 것의 두 가지 뜻이 함께 있는데 교(憍)는 스스로에게 잘난체 하는 것, 즉, 스스로 잘났다고 도취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남에게 잘난체 하는 것, 즉, 남에 대해 자신을 높이는 것은 만(慢)이다.[601]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번성한 일, 즉, 혈통[種姓] · 신분 · 미모 · 건강 · 체력 · 재력 · 지위 · 지혜 · 학문적 성취 · 기술적 성취 등에 대해 깊이 탐착하게 하여 그것에 도취되어 방자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방자하지 않음[不憍]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번뇌를 생기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를 강화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02][603]
교(憍)는 탐(貪)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602][603]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논서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에 따르면 교(憍)와 만(慢)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 교(憍)는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게 하는 성질을 말한다.[604][605]
- 만(慢)은 타인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 치켜세우는 성질[自擧性]을 말하는데, 자신과 다른 이의 덕(德)의 차별을 재고 헤아려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擧恃] 다른 이를 능멸하는 것이다.[606][607]
말하자면, 교는 비교가 없는 자기도취이고 만은 비교가 있는 자기도취이다.
(43) 해(害)
편집소수번뇌심소 8/10 해 害 핍박, 해침, 손뇌
산스크리트어: vihiṃsā
영어: hostility,
cruelty,
intention to harm,
spirit of violence
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이를 손뇌(損惱)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즉, 다른 이를 좋지 않은 상태가 되게 하거나[損] 괴롭히려는[惱] 의도를 가진 마음작용을 말한다.[608][609][610][611][612]
온갖 유정에 대해 마음에 비민(悲愍: 마음 아파하고 가엾게 여김)이 없게 하고 좋지 않은 상태가 되게 하고 괴롭히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해롭게 하지 않음[不害]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다른 유정을 핍박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13][614]
해(害)는 진(瞋)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613][614]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44) 질(嫉)
편집마음으로 하여금 다른 이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15][616][617]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나치게 구하여 다른 이의 영화 즉 다른 이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시기하여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질투하지 않음[不嫉]의 마음작용을 장애하고 불만족[憂]하고 근심[慼]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18][619][620][621]
질(嫉)은 진(瞋)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618][619]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45) 간(慳)
편집소수번뇌심소 10/10 간 慳 아까워함, 인색, 희사하지 못함, 베풀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ātsarya
팔리어: macchariya
영어: stinginess,
avarice,
miserliness,
greed
보시(布施)와 반대되는 마음작용으로, 마음으로 하여금 재물과 참된 교법에 대해 인색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22][623][624][625][626]
마음으로 하여금 재물과 교법에 탐착하여 베풀지 못하고 감추고 아끼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인색하지 않음[不慳]의 마음작용 즉 보시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비루하게 비축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27][628] 비루하게 비축한다는 것은 싫증이나 불만족이 없이 아끼고 인색하여 쓰이지 않는 물건을 미리 항상 쌓아두는 것을 말한다.[622][623]
간(慳)은 탐(貪)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627][628] 즉, 가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2.5.2. 중수번뇌심소 (2 一 39 一 47)
편집중수번뇌심소(中隨煩惱心所) 또는 중수번뇌(中隨煩惱)에는 2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39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47개이다.
- 무참(無慚)
- 무괴(無愧)
(46) 무참(無慚)
편집중수번뇌심소 1/2 무참 無慚 스스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공경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hrīkya,
ahrī
팔리어: ahirika
영어: lack of shame,
lack of consciousness,
consciencelessness,
shamelessness,
disrespect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에게 수치스럽게 여기치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29][630][631][632]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과 법을 돌아보지 않지 않게 함으로써 현성(賢聖)과 선법(善法)을 가볍게 여기거나 거부하게 하고 또한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참(慚)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악행이 생겨나게 하고 강화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33][634][635]
무참(無慚)은 별도의 체(體)가 있는 실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47) 무괴(無愧)
편집중수번뇌심소 2/2 무괴 無愧 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 뉘우치지 않음, 숭중포악(崇重暴惡)
산스크리트어: anapatrāpya,
atrapā
팔리어: anottappa
영어: lack of propriety,
disregard,
shamelessness
마음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남에게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36][637][638][639]
마음으로 하여금 세간을 돌아보지 않지 않게 함으로써 포악함을 받들어 중히 여기게 하고[崇重暴惡] 또한 죄과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괴(慚)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악행이 생겨나게 하고 강화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40][641][642]
무괴(無愧)는 별도의 체(體)가 있는 실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항상 불선에 속한다.[545][546]
2.5.3. 대수번뇌심소 (8 一 47 一 55)
편집대수번뇌심소(大隨煩惱心所) 또는 대수번뇌(大隨煩惱)에는 8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47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55개이다.
- 불신(不信)
- 해태(懈怠)
- 방일(放逸)
- 혼침(昏沈)
- 도거(掉擧)
- 실념(失念)
- 부정지(不正知)
- 산란(散亂)
(48) 불신(不信)
편집대수번뇌심소 1/8 불신 不信 믿지 않음, 인가하지 않음, 청정하지 않음, 희망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āśraddhya
영어: lack of faith,
lack of trust,
disbelieving a fact,
disbelief
인과법,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즉, 연기법을 믿고 따르지 않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43][644][645][646]
마음으로 하여금 진실된 것을 깊이 인정하지[實深忍] 않게 하고 덕을 깊이 좋아하지[德深樂] 않게 하고 능력을 깊이 원하지[能深欲] 않게 함으로써 마음을 더럽히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청정한 믿음[信]을 장애하여 게으름[懈怠]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47][648][649]
불신(不信)은 별도의 체(體)가 있는 실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49) 해태(懈怠)
편집대수번뇌심소 2/8 해태 懈怠 게으름, 책려하지 않음, 노력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kausīdya
팔리어: kusīta
영어: laziness,
slothfulness,
spiritual sloth,
idleness
마음으로 하여금 선법(善法)에 대해 용맹스럽게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50][651][652][653][654]
마음으로 하여금 선법(善法)을 닦고 불선법(不善法)을 끊는 일에 대해 게으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정진(精進)을 장애하여 번뇌(잡염)가 늘어나고 강화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55][656]
또한 해태는 모든 잡염법의 일, 즉, 번뇌와 함께하는 일, 즉, 불선법이나 유부무기의 법, 즉, 번뇌심소나 수번뇌 심소와 상응하고 있는 마음에 대해서 부지런히 책려하는 것도 포함한다.[655][656][657] 한편, 무기 즉 무부무기의 일에 대해서 부지런히 책려하는 것은 모든 선법에 대해서 나아가게도 물러나게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해태에 포함되지 않는다. 무부무기의 책려는 무부무기의 마음작용인 욕(欲)이나 승해(勝解)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은 무부무기의 일에 대해 인정하고[忍] 좋아하고[樂] 욕구하는[欲] 것은 신(信)의 마음작용도 불신(不信)의 마음작용도 아닌 것과 같다.[655][656] 예를 들어, 세간의 기술이나 학문을 연마하거나 그것을 촉진하는 것은 불교의 관점에서는 선도 악도 아니다. 즉, 열반에 가까이 가게 하는 것도 열반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세상의 (아마도 필요한) 일일 뿐이다.
해태(懈怠)는 별도의 체(體)가 있는 실유이다.[552][55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0) 방일(放逸)
편집대수번뇌심소 3/8 방일 放逸 노는 것, 불성실, 포기,
선법을 닦지 않음, 마음을 방호하지 않음
산스크리트어: pramāda
영어: heedlessness,
carelessness,
unconcern,
non-diligence
마음으로 하여금 온갖 번뇌(잡염법)에 대하여 막지 않게 하고 온갖 착한 일(선법)에 대하여 닦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58][659][660][661][662][663][664]
탐 · 진 · 치의 3불선근과 해태의 4가지 마음작용으로써 '단멸해야 할 것 즉 번뇌'를 방지하지 않도록 그리고 '닦아야 할 것 즉 선법'을 닦지 않도록 마음으로 하여금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불방일(不放逸)을 장애하여 번뇌(잡염, 불선과 유부무기)가 늘어나고 강화되게 하고 선은 줄어들고 약화되게 하는 일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65][666]
방일(放逸)는 탐(貪) · 진(瞋) · 치(癡) · 해태(懈怠)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 즉, 가유이다.[552][553][665][666]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1) 혼침(昏沈)
편집대수번뇌심소 4/8 혼침 惛沈 몽매함, 침울함, 어두움, 무거움,
감당할 능력이 없음, 민활하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styāna
팔리어: thīna
영어: lethargy,
gloominess,
foggymindedness,
torpor
마음으로 하여금 적합하고 순조롭지[調暢, 고르고 막힘이 없음] 못하게 하여 (4념처와 같은 선법을) 잘 감당하여 해내지 못하게[無堪任] 하고 흐릿하고 어둡게[蒙昧]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67][668][669][670][671][672]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잘 감당하여 해내지 못하게[無堪任]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경안(輕安)과 비발사나(毘缽舍那)를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73][674]
혼침(昏沈)은 가유라는 견해도 있고 실유라는 견해도 있다.[552][553]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669][670][675][676]
- 모든 번뇌심소에 의거하여 가립된, 별도의 체가 없는 가유이다.[677][678]
- 매중(瞢重, 답답하고 무거움, 흐릿하고 무거움)을 체로 하는, 별도의 체가 있는 실유이다.[679][680][681]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2) 도거(掉擧)
편집대수번뇌심소 5/8 도거 掉擧 고요하지 않음, 들뜸
산스크리트어: auddhatya
팔리어: uddhacca
영어: excitement,
restlessness,
ebullience,
flightiness of mind,
dissipation
마음으로 하여금 과거의 기쁘고 즐거웠던 일들을 회상하고 기억하게 하여 고요하지 못한 상태[不寂靜]에 있게 하는 마음작용이다.[682][683][684][685][686][687][688]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고요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행사(行捨)와 사마타(奢擧他)를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689][690]
도거(掉擧)는 가유라는 견해도 있고 실유라는 견해도 있다.[552][553]
- 탐(貪)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684][685][691][692]
- 모든 잡염심에 두루하는 것으로, 별도의 체가 없는 가유이다. 즉, 도거는 모든 번뇌의 공통된 특징[共相]이다.[693][694]
- 효동(囂動, 시끄럽게 움직임)을 체로 하는, 별도의 체가 있는 실유이다.[695][696]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3) 실념(失念)
편집대수번뇌심소 6/8 실념 失念 망념, 염오념, 그릇된 염, 오염된 염,
관을 놓침, 정념을 놓침, 4념처를 놓침
산스크리트어: muṣitasmṛtitā
영어: forgetfulness
망념(妄念) 또는 염오념(染污念)이라고도 한다. 즉, 그릇된 염(念), 그릇된 주의집중과 알아차림을 뜻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4념처 등과 같은 온갖 선법에서 분명하게 기록하지[明記] 못하게 하는 것, 즉, 주의집중하여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인식대상을 분명하게 기록하지[明記] 못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정념(正念)을 장애하고 산란(散亂)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실념(失念)은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인데,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 염(念)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 염(念)과 치(癡) 둘 다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법상종의 정통 견해이다.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4) 부정지(不正知)
편집대수번뇌심소 7/8 부정지 不正知 염오혜, 악혜, 그릇된 이해, 그릇된 앎, 오염된 이해, 오염된 앎, 바르게 알지 못함, 바르지 않은 앎 산스크리트어: asaṃprajanya 영어: non-alertness, inattentiveness
염오혜(染污慧) 즉 오염된 지혜라고도 한다.[697][698][699][700]
마음으로 하여금 몸 · 말 · 뜻으로 짓는 행위[身語意行]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697][698][701][702][703][704][705]
마음으로 하여금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그릇되게 이해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정지(正知, 바르게 앎)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계율 등을 어기게 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706][707]
부정지(不正知)는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인데,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552][553]
- 혜(慧)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즉, 번뇌와 상응하고 있는 혜, 염오혜(染污慧)이다.[697][698][699][700][708][709]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10][711]
- 혜(慧)과 치(癡) 둘 다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법상종의 정통 견해이다.[712][713]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55) 산란(散亂)
편집대수번뇌심소 8/8 산란 散亂 마음의 분산, 마음의 흐트러짐, 염오등지, 염오삼마지, 그릇된 등지, 그릇된 삼마지, 오염된 등지, 오염된 삼마지 산스크리트어: vikṣepa 영어: distraction, desultoriness
마음으로 하여금 떠돌고[流] 흩어지게[散] 하는,[717][718] 또는, (인식대상을) 바꾸고[馳] 흩어지게[散] 하는,[714][715] 또는, 떠돌고[流] 갈피가 없게[流蕩] 하는[719][720] 마음작용을 말한다.[721]
마음으로 하여금 떠돌고[流] 갈피가 없게[蕩]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바른 선정[正定]의 마음작용을 장애하여 악혜(惡慧)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722][723][724]
산란(散亂)은 가유라는 견해도 있고 실유라는 견해도 있다.[552][553]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25][726]
- 탐(貪) · 진(瞋)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17][718][725][726]
- 조요(躁擾, 조급하고 어지러움)를 체로 하는, 별도의 체가 있는 실유이다.[727][728]
불선과 유부무기 중 둘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불선이 될 수도 있고 유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545][546]
2.6. 부정심소 (4 一 51 一 59)
편집부정심소(不定心所)에는 4개의 법이 있다. 심소법의 누적 개수는 총 51개이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59개이다.
부정심소는 6가지 유형의 심소법 중 처음 5가지, 즉, 변행심소 · 별경심소 · 선심소 · 번뇌심소 · 수번뇌심소에 포함되지 않는 성질의 것으로 선 · 잡염(불선과 유부무기) · 무부무기 중의 무엇과도 상응할 수 있어 그 선악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731][732][733][734]
보다 자세히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부정(不定)' 즉 '정해져 있지 않다,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735][736]
- 선인지 잡염(불선과 유부무기)인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선심소라고도, 번뇌심소라고도, 수번뇌심소라고도 할 수 없다.
- 작의 등의 변행심소가 마음이 일어날 때면 항상 함께 일어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변행심소라고도 할 수 없다.
- 욕 등의 별경심소가 3계9지 모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즉, 계계(界繫)의 제한이 있다. 따라서, 별경심소라고도 할 수 없다.
(56) 수면(睡眠)
편집부정심소 1/4 수면 睡眠 잠, 흐릿함, 약화됨, 자유로이 움직이지 못함
산스크리트어: middha
팔리어: middha
영어: torpor,
sleep,
drowsiness,
apathy
면(眠)이라고도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게 하고 약하게 하고 몸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737][738][739][740][741][742][743][744][745]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게 하고 약하게 하고 몸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비발사나[觀]를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흐리게 한다[昧]는 것은 잠의 고요함의 상태가 선정에 든 때의 고요함의 상태와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약하게 한다[略]는 것은 잠의 상태가 깨어 있을 때의 마음 상태와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게 한다[不自在]는 것은 문자 그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746][747]
수면(睡眠)이 실유인가 가유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가 있다.[748][749]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39][740][750][751] 보다 정확히는, 수번뇌와 치의 일부분이다.[752][753]
- 잡염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치(癡)의 일부분으로, 청정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무치(無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54][755]
- 사(思)와 상(想)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그리고 잡염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치(癡)의 등류이고 청정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무치(無癡)의 등류이다.[756][757]
- 심매략(心昧略: 마음으로 하여금 흐리고 약하게 함)과 신부자재(身不自在: 몸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움직이지 않게 함)를 체(體)로 하는, 별도의 체가 있는 실유이다. 법상종의 정통 견해이다.[758][759]
수면(睡眠)은 선 · 불선 · 무기의 3성, 달리 말해, 선 · 잡염(불선과 유부무기) · 무부무기 셋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불선이 될 수도 유부무기가 될 수도 무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750][751][760][761]
(57) 오작(惡作)
편집악작(惡作) 또는 회(悔)라고도 한다.[762][763][764][765]
문자 그대로의 뜻을 보면, 오작(惡作)은 과거에 지은 것[作]을 미워한다 또는 혐오한다[惡]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후회한다'는 뜻이 되었다. 악작(惡作)은 나쁘게[惡] 지은 것[作]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나중에 그 지은 것을 후회한다'는 뜻이 되었다. 대승불교 문헌에서는 한자어 惡作을 오작이라고 발음하고 부파불교 문헌에서는 악작이라고 발음한다.[766] 그렇지만 불교사전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구분 없이 악작이라고 발음하고 있다.[767][768]
마음으로 하여금 변하여 후회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769][770][771][772]
마음으로 하여금 과거에 지은 업을 후회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사마타[止]를 장애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773][774][775][776]
오작(惡作)이 실유인가 가유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가 있다.[748][749]
- 치(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77][778] 보다 정확히는, 수번뇌와 치의 일부분이다.[752][753]
- 잡염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치(癡)의 일부분으로, 청정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무치(無癡)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754][755]
- 사(思)와 혜(慧)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는 가유이다. 그리고 잡염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치(癡)의 등류이고 청정법으로 나타나는 경우라면 무치(無癡)의 등류이다.[756][757]
- 심추회(心追悔: 마음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함)를 체(體)로 하는, 별도의 체가 있는 실유이다. 법상종의 정통 견해이다.[758][759]
오작(惡作)은 선 · 불선 · 무기의 3성, 달리 말해, 선 · 잡염(불선과 유부무기) · 무부무기 셋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불선이 될 수도 유부무기가 될 수도 무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760][761]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오작의 4가지 유형이 있다.[771][772]
- 먼저 선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 경우: 후회의 원인도 선이고 결과인 후회도 선이다.
- 먼저 악을 짓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 경우: 후회의 원인은 불선이지만 결과인 후회는 선이다.
- 먼저 악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 경우: 후회의 원인도 불선이고 결과인 후회도 불선이다.
- 먼저 선을 짓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 경우: 후회의 원인은 선이지만 결과인 후회는 불선이다.
(58) 심(尋)
편집부정심소 3/4 심 尋 대강의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거친 성질, 거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tarka,
vitarkah
팔리어: vitakka
영어: conception,
selectiveness,
gross detection,
examination,
application of thought,
applied thinking,
initial application,
grossness of the mind
제6의식으로 하여금 대상을 대략적으로 분별[麁相分別]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779][780][781][782][783][784]
제6의식으로 하여금 재빨리 대상에 대해 대강 전전하게[麁轉]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사(伺)의 마음작용과 함께 몸과 마음이 평안한 상태와 불안한 상태를 일으키는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제6의식이 심(尋)과 사(伺)를 통해 사물을 대략 그리고 세밀히 파악[推度, 헤아림]한 후에, 그 사물의 위험도에 따라 평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일어난다.[785][786][787]
심(尋)은 사(思)와 혜(慧)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 즉, 가유이다.[779][780][781][782][785][786][787]
심(尋)은 선 · 불선 · 무기의 3성, 달리 말해, 선 · 잡염(불선과 유부무기) · 무부무기 셋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불선이 될 수도 유부무기가 될 수도 무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760][761]
(59) 사(伺)
편집부정심소 4/4 사 伺 자세한 상(相: 성질, 모습, 자성)을 분별함,
세밀한 성질, 세밀한 움직임
산스크리트어: vicara,
vitarkah
팔리어: vicāra
영어: discernment,
discursiveness,
analysis,
sustained application,
sustained thinking,
selectiveness,
subtle discernment,
subtlety of the mind
제6의식으로 하여금 대상을 자세하게 분별[細相分別]하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788][789][790][791][792][793]
제6의식으로 하여금 재빨리 그러면서도 또한 대상에 대해 자세하게 전전하게[細轉]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하고, 심(尋)의 마음작용과 함께 몸과 마음이 평안한 상태와 불안한 상태를 일으키는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즉, 제6의식이 심(尋)과 사(伺)를 통해 사물을 대략 그리고 세밀히 파악[推度, 헤아림]한 후에, 그 사물의 위험도에 따라 평안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일어난다.[786][787]
사(伺)는 사(思)와 혜(慧)의 일부분으로 따로 별도의 체(體)가 없다. 즉, 가유이다.[786][787]
사(伺)는 선 · 불선 · 무기의 3성, 달리 말해, 선 · 잡염(불선과 유부무기) · 무부무기 셋 다에 속한다. 즉, 그 성격과 정도에 따라 선이 될 수도 불선이 될 수도 유부무기가 될 수도 무부무기가 될 수도 있다.[760][761]
3. 색법 (11 一 70)
편집색법(色法)에는 3종류의 총 11개의 법이 있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70개이다.
(60) 안(眼)
편집색법 1/11 안 眼 눈, 안근, 시각기관, 시각의 승의근
산스크리트어: cakṣur-indriya
팔리어: cakkhu-indriya, cakkhundriya
영어: faculty of sight, organ of sight[794]
안근(眼根)이라고 하며, 줄여서 안(眼)이라고 한다.
사물의 색깔이나 모양을 보는 시각기관으로서의 눈을 뜻한다.[795][796][797] 달리 말해, 안식(眼識)의 소의가 되는, 색경(色境: 색깔 · 모양)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청정한 물질[淨色]로 이루어진 승의근으로서의 인식기관을 말한다.[798][799][800][801][802]
안근(眼根)은 18계 중 안계(眼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안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안계 또는 안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3][804]
- 안계의 본질[眼界相]이란 안증현견색(眼曾現見色: 과거에 색깔과 모양을 본 안근과 현재에 색깔과 모양을 보는 안근 모두)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안근)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을 말한다. 안증견색(眼曾見色: 과거에 색깔과 모양을 본 안근)이란 과거식(過去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안현견색(眼現見色: 현재에 색깔과 모양을 보는 안근)이란 현재식(現在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이란 안근 종자[眼種子]가 축적[積集]되는 것과 안근 종자가 이숙(異熟)된 것을 뜻한다. 즉, 안계(즉, 안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와 미래의 안근을 견인하여 그 종자를 축적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안근 종자가 이미 성숙되어 안계(즉, 안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의 안근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2가지 뜻으로 인해 안계(즉, 안계로서의 아뢰야식)는 안근의 생인(生因: 생겨나게 하는 원인,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안계의 본질처럼 이계 · 비계 · 설계 · 신계 · 의계의 본질도 이와 같다.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안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5][806]
- 안근은 아뢰야식이 집수(執受: 잡아 받아들임)한 모든 (안근) 종자를 말한다. 4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작용대상[境界]으로 하며, 그 사물의 색경(色境: 색깔과 모양)에 대하여 안식(眼識)의 의지처가 되는 청정한 물질[淨色], 즉, 승의근(勝義根)을 본질[體]로 한다. 5온 중 색온에 속한다.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물질)에 속한다. 안근과 같이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도 역시 이러한데, 차이점은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境]만을 반연(攀緣: 얽혀 들어감, 반응)하고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만을 인식하는 식(識)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즉, 안근은 '사물 즉 작용대상[境界]'의 색깔과 모양만을 반연하고 안식은 안근에 의지하여 '인식대상[境]' 즉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인식한다. 이근은 사물의 소리만을 반연하고 이식은 이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소리만을 인식한다. 비근은 사물의 냄새만을 반연하고 비식은 비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냄새만을 인식한다. 설근은 사물의 맛만을 반연하고 설식은 설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맛만을 인식한다. 신근은 사물의 촉감만을 반연하고 신식은 신근에 의지하며 사물의 촉감만을 인식한다.
(61) 이(耳)
편집색법 2/11 이 耳 귀, 이근, 청각기관, 청각의 승의근
산스크리트어: śrotrendriya, śrotra-indriya
팔리어: sotindriya, sotêndriya
영어: auditory faculty, organ of hearing[807]
이근(耳根)이라고 하며, 줄여서 이(耳)라고 한다.
사물의 소리를 듣는 청각기관으로서의 귀를 뜻한다.[808][809] 달리 말해, 이식(耳識)의 소의가 되는, 성경(聲境: 소리)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청정한 물질[淨色]로 이루어진 승의근으로서의 인식기관을 말한다.[810][811][812][813][814]
이근(耳根)은 18계 중 이계(耳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이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이계 또는 이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3][804]
- 이계의 본질[耳界相]이란 이증현청성(耳曾現聽聲: 과거에 소리를 들은 이근과 현재에 소리를 듣는 이근 모두)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이근)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을 말한다. 이증청성(耳曾聽聲: 과거에 소리를 들은 이근)이란 과거식(過去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현청성(耳現聽聲: 현재에 소리를 듣는 이근)이란 현재식(現在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이란 이근 종자[耳種子]가 축적[積集]되는 것과 이근 종자가 이숙(異熟)된 것을 뜻한다. 즉, 이계(즉, 이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와 미래의 이근을 견인하여 그 종자를 축적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이근 종자가 이미 성숙되어 이계(즉, 이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의 이근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2가지 뜻으로 인해 이계(즉, 이계로서의 아뢰야식)는 이근의 생인(生因: 생겨나게 하는 원인,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이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5][806]
- 이근은 아뢰야식이 집수(執受: 잡아 받아들임)한 모든 (이근) 종자를 말한다. 4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작용대상[境界]으로 하며, 그 사물의 성경(聲境: 소리)에 대하여 이식(耳識)의 의지처가 되는 청정한 물질[淨色], 즉, 승의근(勝義根)을 본질[體]로 한다. 5온 중 색온에 속한다.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물질)에 속한다. 이근과 같이 안근(眼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도 역시 이러한데, 차이점은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境]만을 반연(攀緣: 얽혀 들어감, 반응)하고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만을 인식하는 식(識)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즉, 이근은 '사물 즉 작용대상[境界]'의 소리만을 반연하고 이식은 이근에 의지하여 '인식대상[境]' 즉 '사물의 소리'만을 인식한다. 안근은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반연하고 안식은 안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인식한다. 비근은 사물의 냄새만을 반연하고 비식은 비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냄새만을 인식한다. 설근은 사물의 맛만을 반연하고 설식은 설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맛만을 인식한다. 신근은 사물의 촉감만을 반연하고 신식은 신근에 의지하며 사물의 촉감만을 인식한다.
(62) 비(鼻)
편집색법 3/11 비 鼻 코, 비근, 후각기관, 후각의 승의근
산스크리트어: ghrāṇendriya
팔리어: ghān'indriya, ghān
영어: olfactory faculty[815]
비근(鼻根)이라고 하며, 줄여서 비(鼻)라고 한다.
사물의 냄새을 맡는 후각기관으로서의 코를 뜻한다.[816][817][818] 달리 말해, 비식(鼻識)의 소의가 되는, 향경(香境: 맛)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청정한 물질[淨色]로 이루어진 승의근으로서의 인식기관을 말한다.[819][820][821][822]
비근(鼻根)은 18계 중 비계(鼻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비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비계 또는 비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3][804]
- 비계의 본질[鼻界相]이란 비증현후향(鼻曾現嗅香: 과거에 냄새를 맡은 비근과 현재에 냄새를 맡는 비근 모두)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안근)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을 말한다. 비증후향(鼻曾嗅香: 과거에 냄새를 맡은 비근)이란 과거식(過去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비현후향(鼻現嗅香: 현재에 냄새를 맡는 비근)이란 현재식(現在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이란 비근 종자[鼻種子]가 축적[積集]되는 것과 비근 종자가 이숙(異熟)된 것을 뜻한다. 즉, 비계(즉, 비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와 미래의 비근을 견인하여 그 종자를 축적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비근 종자가 이미 성숙되어 비계(즉, 비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의 비근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2가지 뜻으로 인해 비계(즉, 비계로서의 아뢰야식)는 비근의 생인(生因: 생겨나게 하는 원인,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비계의 본질처럼 안계 · 이계 · 설계 · 신계 · 의계의 본질도 이와 같다.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비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5][806]
- 비근은 아뢰야식이 집수(執受: 잡아 받아들임)한 모든 (비근) 종자를 말한다. 4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작용대상[境界]으로 하며, 그 사물의 향경(香境: 냄새)에 대하여 비식(鼻識)의 의지처가 되는 청정한 물질[淨色], 즉, 승의근(勝義根)을 본질[體]로 한다. 5온 중 색온에 속한다.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물질)에 속한다. 비근과 같이 안근(眼根) · 이근(耳根) · 설근(舌根) · 신근(身根)도 역시 이러한데, 차이점은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境]만을 반연(攀緣: 얽혀 들어감, 반응)하고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만을 인식하는 식(識)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즉, 비근은 '사물 즉 작용대상[境界]'의 냄새만을 반연하고 비식은 비근에 의지하여 '인식대상[境]' 즉 '사물의 냄새'만을 인식한다. 안근은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반연하고 안식은 안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인식한다. 이근은 사물의 소리만을 반연하고 이식은 이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소리만을 인식한다. 설근은 사물의 맛만을 반연하고 설식은 설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맛만을 인식한다. 신근은 사물의 촉감만을 반연하고 신식은 신근에 의지하며 사물의 촉감만을 인식한다.
(63) 설(舌)
편집설근(舌根)이라고 하며, 줄여서 설(舌)이라고 한다.
사물의 맛을 느끼는 미각기관으로서의 혀를 뜻한다.[824][825] 달리 말해, 설식(舌識)의 소의가 되는, 미경(味境: 맛)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청정한 물질[淨色]로 이루어진 승의근으로서의 인식기관을 말한다.[826][827][828][829][830]
설근(舌根)은 18계 중 설계(舌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설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설계 또는 설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3][804]
- 설계의 본질[舌界相]이란 설증현상미(舌曾現嘗味: 과거에 맛을 본 설근과 현재에 맛을 보는 설근 모두)를 말한다. 또한 이러한 (설근)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을 말한다. 설증상미(舌曾嘗味: 과거에 맛을 본 설근)이란 과거식(過去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설현상미(舌現嘗味: 현재에 맛을 보는 설근)이란 현재식(現在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이란 설근 종자[舌種子]가 축적[積集]되는 것과 설근 종자가 이숙(異熟)된 것을 뜻한다. 즉, 설계(즉, 설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와 미래의 설근을 견인하여 그 종자를 축적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설근 종자가 이미 성숙되어 설계(즉, 설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의 설근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2가지 뜻으로 인해 설계(즉, 설계로서의 아뢰야식)는 설근의 생인(生因: 생겨나게 하는 원인,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설계의 본질처럼 안계 · 이계 · 비계 · 신계 · 의계의 본질도 이와 같다.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설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5][806]
- 설근은 아뢰야식이 집수(執受: 잡아 받아들임)한 모든 (설근) 종자를 말한다. 4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작용대상[境界]으로 하며, 그 사물의 미경(味境: 맛)에 대하여 설식(舌識)의 의지처가 되는 청정한 물질[淨色], 즉, 승의근(勝義根)을 본질[體]로 한다. 5온 중 색온에 속한다.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물질)에 속한다. 설근과 같이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신근(身根)도 역시 이러한데, 차이점은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境]만을 반연(攀緣: 얽혀 들어감, 반응)하고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만을 인식하는 식(識)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즉, 설근은 '사물 즉 작용대상[境界]'의 맛만을 반연하고 설식은 설근에 의지하여 '인식대상[境]' 즉 '사물의 맛'만을 인식한다. 안근은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반연하고 안식은 안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인식한다. 이근은 사물의 소리만을 반연하고 이식은 이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소리만을 인식한다. 비근은 사물의 냄새만을 반연하고 비식은 비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냄새만을 인식한다. 신근은 사물의 촉감만을 반연하고 신식은 신근에 의지하며 사물의 촉감만을 인식한다.
(64) 신(身)
편집색법 5/11 신 身 몸, 신근, 촉각기관, 촉각의 승의근
산스크리트어: kāyendriya, kāya-indriya
팔리어: kāyêndriyam
영어: bodily faculty[831]
사물의 촉감을 느끼는 촉각기관으로서의 몸을 뜻한다.[832][833] 달리 말해, 신식(身識)의 소의가 되는, 촉경(觸境: 촉감)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청정한 물질[淨色]로 이루어진 승의근으로서의 인식기관을 말한다.
한편, 몸[身]이라고 하면 이러한 촉각적 인식기관으로서의 작용 뿐만 아니라 다른 중요한 작용인 운동 즉 몸의 움직임이라는 작용과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이 놓이는 장소로서의 작용이 있는데, 이 작용들은 부진근(扶塵根)으로서의 몸[身]에 속한다.[834] 달리 말해, 불교 문헌에서 신근이라고 하면 촉각적 인식기관으로서의 몸[身], 즉, 승의근(勝義根)으로서의 몸을 뜻한다. 불교 문헌에서 그냥 '몸[身]'이라고 하면 승의근을 뜻하는지 부진근을 뜻하는지 둘 다를 통칭하는지 문맥에 따라 구별해야 한다.[835][836] 또한 불교 용어로서 뿐만 아니라 중국의 유가 사상 등의 철학 전통에 따라 신(身)에는 다른 여러 뜻도 있으므로 그 문맥적 의미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불교 용어 유신견(有身見)에서의 신(身)은 영원한 자아 즉 아트만을 뜻한다. 유가 사상에서 신(身)은 자신을 뜻하는데 몸으로서의 자신과 자아로서의 자신을 통칭한다.[837]
신근(身根)은 18계 중 신계(身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신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신계 또는 신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3][804]
- 신계의 본질[身界相]이란 신증현촉경(身曾現觸境: 과거에 촉감을 감촉한 촉근과 현재에 촉감을 감촉하는 촉근 모두)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이근)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을 말한다. 신증촉경(身曾觸境: 과거에 촉감을 감촉한 촉근)이란 과거식(過去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신현촉경(身現觸境: 현재에 촉감을 감촉하는 촉근)이란 현재식(現在識)을 지속시켜 수용한다는 뜻으로서의 계(界)의 성질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종자(種子)가 축적 및 이숙된 아뢰야식'이란 신근 종자[身種子]가 축적[積集]되는 것과 신근 종자가 이숙(異熟)된 것을 뜻한다. 즉, 신계(즉, 신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와 미래의 신근을 견인하여 그 종자를 축적한다는 것을 뜻하고 또한 신근 종자가 이미 성숙되어 신계(즉, 신계로서의 아뢰야식)가 현재의 신근을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2가지 뜻으로 인해 신계(즉, 신계로서의 아뢰야식)는 신근의 생인(生因: 생겨나게 하는 원인, 직접적 원인)이라 할 수 있다.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신근은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805][806]
- 신근은 아뢰야식이 집수(執受: 잡아 받아들임)한 모든 (신근) 종자를 말한다. 4대로 이루어진 물질을 작용대상[境界]으로 하며, 그 사물의 촉경(觸境: 촉감)에 대하여 신식(身識)의 의지처가 되는 청정한 물질[淨色], 즉, 승의근(勝義根)을 본질[體]로 한다. 5온 중 색온에 속한다.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물질)에 속한다. 신근과 같이 안근(眼根) · 이근(耳根) · 비근(鼻根) · 설근(舌根)도 역시 이러한데, 차이점은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境]만을 반연(攀緣: 얽혀 들어감, 반응)하고 각각 사물에서 자기의 인식대상만을 인식하는 식(識)의 의지처가 된다는 것이다. 즉, 신근은 '사물 즉 작용대상[境界]'의 촉감만을 반연하고 신식은 신근에 의지하여 인식대상[境]' 즉 '사물의 촉감'만을 인식한다. 안근은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반연하고 안식은 안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색깔과 모양만을 인식한다. 이근은 사물의 소리만을 반연하고 이식은 이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소리만을 인식한다. 비근은 사물의 냄새만을 반연하고 비식은 비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냄새만을 인식한다. 설근은 사물의 맛만을 반연하고 설식은 설근에 의지하여 사물의 맛만을 인식한다.
(65) 색(色)
편집색경(色境)이라고 하며, 줄여서 색(色)이라고 한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색깔이나 모양을 말한다.[839][840] 달리 말해, 안근(眼根)을 소의로 하여 안식(眼識)이 인식하는 인식대상[所緣]으로서의, 사물의 색깔이나 모양을 말한다.[841][842][843][844]
색경(色境)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유견유대색(有見有對色)에 속하며, 현색(顯色, 색깔)과 형색(形色, 모양)과 표색(表色, 동작)으로 나뉜다.[845][846][847][848][849]
한편, 색경(色境)은 18계 중 색계(色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색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색경과 색계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
- 색경(色境)이란 4대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안근의 작용대상[所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색깔과 모양을 말한다. 청(青) · 황(黃) · 적(赤) · 백(白) · 장(長) · 단(短) · 방(方) · 원(圓) 등을 말한다.[850][851][852][853]
- 색계의 본질[色界相]이란 모든 색안증현견(色眼曾現見)을 말한다. 즉, 안근이 과거에 본 그리고 현재에 보는 색깔과 모양 모두를 말한다. 또한 안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색계의 본질[色界相]이다. 안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이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색깔과 모양'과 '안근'의 증상력을 발동근거로 하여 외부 대상[外境], 즉, 색경(色境), 즉, 외부 대상으로서의 색깔과 모양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854][855]
(65.1) 현색(顯色, 색깔)
편집《유가사지론》 제1권과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현색(顯色)이란 ① 청(靑, 파란색) ② 황(黃, 노란색) ③ 적(赤, 빨간색) ④ 백(白, 흰색) ⑤ 광(光, 빛의 색깔) ⑥ 영(影, 그림자의 색깔) ⑦ 명(明, 밝음의 색깔) ⑧ 암(闇, 어두움의 색깔) ⑨ 운(雲, 구름의 색깔) ⑩ 연(煙, 연기의 색깔) ⑪ 진(塵, 티끌의 색깔) ⑫ 무(霧, 안개의 색깔) ⑬ 공일현색(空一顯色, 맑은 하늘의 색깔)을 말한다.[857][858][848][849]
이들 중 청(靑) · 황(黃) · 적(赤) · 백(白)을 4현색 또는 4본색(四本色)이라고도 한다. 나머지 9가지 색, 즉, 광(光) · 영(影) · 명(明) · 암(闇) · 운(雲) · 연(煙) · 진(塵) · 공일현색(空一顯色)은 모두 4본색으로부터 파생된 것으로, 4본색에 귀속시킬 수 있다.[848][849][859]
공일현색(空一顯色)은 맑은 하늘이 드러날 때에 하늘의 허공에 나타나는 색깔로, 유리색(瑠璃色), 즉, 보석 유리(瑠璃) 즉 청금석(lapis lazuli)의 짙은 푸른 빛이 하늘에 비추였을 때의 색깔을 말한다.[860][861]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교의 우주론에 따르면, 4대주(四大洲)의 하늘색을 말한다. 수미산은 4면이 있는데, 4면의 각각은 보석으로 되어 있다. 북주(北洲)를 향한 면은 황금(黃金)으로, 동주(東洲)을 향한 면은 백은(白銀)으로, 남주(南洲)를 향한 면은 유리(琉璃, 청금석)로, 서주(西洲)를 향한 면은 파리(頗梨, 적수정)로 되어 있다. 이 보석들의 색깔인 북주의 금색, 동주의 은색, 남주의 벽색(碧色), 서주의 적색이 하늘에 비추여서 수미산의 4면 공중에서 각각 한 가지의 빛깔[顯色]이 되므로 공일현색(空一顯色)이라 부른다.[862][848][849] 남주(南洲) 즉 남섬부주(南贍部洲) 또는 남염부제(南閻浮提)는 지구(정확히는 고대 인도)가 속한 곳인데, 보석 유리(瑠璃) 즉 청금석의 색깔인 벽색(碧色) 즉 곱고 짙푸른 빛깔이 하늘에 비추여서 지구의 하늘이 맑을 때의 색깔이 되고, 이것을 (지구의 즉 남염부제의) 공일현색이라 한다.[863][864]
(65.2) 형색(形色, 모양)
편집형색(形色) 즉 모양이란 현색 즉 색깔이 모였을 때[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867][868][869][870] 말하자면, 같은 색깔의 극미(원자)가 충분히 모였을 때 전체적으로 그 색깔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모양도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흰 종이 위에 빨간색 점을 많이 찍어 삼각형이나 사각형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흰 점을 찍어 빨간색 점을 없애면 삼각형이나 사각형도 사라질 뿐 아니라 빨간색도 사라진다. 이런 이유로, 대승불교에서는 형색은 현색에 의거하여 가립된 것이라고 본다.[859][871]
《유가사지론》 제1권과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형색(形色) 즉 모양이란 ① 장(長, 긴 모양) ② 단(短, 짧은 모양) ③ 방(方, 모난 모양) ④ 원(圓, 둥근 모양) ⑤ 추(麁, 굵은 모양, 거친 모양) ⑥ 세(細, 가는 모양, 미세한 모양) ⑦ 정(正, 곧은 모양, 반듯한 모양) ⑧ 부정(不正, 곧지 않은 모양, 반듯하지 않은 모양) ⑨ 고(高, 높은 모양) ⑩ 하(下, 낮은 모양)를 말한다.[872][873][848][849]
(65.3) 표색(表色, 동작)
편집색법 6/11 · 색경 3/3 표색 表色 동작, 행동, 자태, 몸으로 나타내는 형상
산스크리트어: vijñapti-rūpa, vijñapti, prativijñapti
영어: expressive form, disclosive form[874]
작색(作色)이라고도 한다.
표색(表色)이란 다른 사람이 뚜렷이 볼 수 있는, 몸으로 나타내는 모든 동작과 형상을 말한다.[875][876][877]
《유가사지론》 제1권에 따르면, 표색(表色)이란 ① 취(取, 취하는 동작) ② 사(捨, 버리는 동작) ③ 굴(屈, 굽히는 동작) ④ 신(伸, 펴는 동작) ⑤ 행(行, 가는 동작) ⑥ 주(住, 머무르는 동작) ⑦ 좌(坐, 앉는 동작) ⑧ 와(臥, 눕는 동작) 등을 말한다.[878][879][848][849]
다시, 《유가사지론》 제1권에 따르면, 표색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 표색(表色)이란 의사 또는 의지[思]를 발동근거로 하여 일어나는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880][881] 즉, 모아진 색[積集色] 즉 형색(形色)이 생멸상속하면서 변이인(變異因: 달라지게 하는 원인)에 의해 먼저 생긴 곳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에서 생기는 것을 말한다. 그 생기는 모습에, 시간적인 차별이 있어 무간(無間)으로 즉 다음에 이어서 바로 생기는 것도 있고 유간(有間)으로 즉 시간 간격을 두고 생기는 것도 있다. 또는 그 생기는 모습에, 가까움과 멈의 차별, 즉, 공간적인 차별도 있다. 또는 그 생기는 모습에, '바로 이 곳'에서 달라져서 생기는 것도 있다, 즉, 시간적으로 (사실상) 같은 시간이고 공간적으로 같은 공간인 경우도 있다.[882][883]
(66) 성(聲)
편집성경(聲境)이라고 하며, 줄여서 성(聲)이라고 한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말한다.[885][886][887] 달리 말해, 이근(耳根)을 소의로 하여 이식(耳識)이 인식하는 인식대상[所緣]으로서의, 사물의 소리를 말한다.[888]
성경(聲境)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에 속한다.[889][890]
소리는 지각[情, 느낌, 감각]을 가진 존재, 즉, 유정(有情)에 의한 것인지 비유정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다음 3가지로 구분한다.[891][892]
- 인집수대종성(因執受大種聲): 집수대종에 의한 소리. 유정의 육체로부터 생겨나는 언어 · 박수 등의 소리를 말한다.
- 인부집수대종성(因不執受大種聲): 부집수대종에 의한 소리. 지각을 가지지 않는 비유정에 의한 소리, 예를 들어, 시냇물의 졸졸거리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여러 소리를 말한다.
- 인집수부집수대종성(因執受不執受大種聲): 집수대종과 부집수대종 둘의 화합에 의한 소리. 예를 들어, 입으로 피리를 불거나 손으로 북을 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즉, 유정물인 입과 무정물인 피리, 유정물인 손과 무정물인 북이 만나서 나는 소리이다.
위 목록에서, 집수(執受)란 대상을 접촉할 때 그 대상에 대해 어떤 수(受) 즉 지각, 감각, 또는 느낌을 느끼고[執] 유지하는[持]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다.[893] 즉, 입이나 손이나 발과 같은 유정의 신체 일부를 말한다. 대종(大種)은 4대종 즉 4대를 말하는데, 따라서, 집수대종(執受大種)이란 4대로 구성된 물질이면서 감각 능력이 있는 것을 뜻한다. 즉, 바위나 강이나 땅과 같은 물질이 아니라 입이나 손이나 발과 같은 물질을 말한다. 한편, 머리카락이나 손톱, 발톱 등은 인체에 속한 것이지만 부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해당한다.[894]
또는 안팎[內外]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891][892]
- 내연성(內緣聲): 안[內]의 것을 연(緣)하여 나는 소리. 즉, 6내입처 즉 6근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인집수대종성에 해당한다.
- 외연성(外緣聲): 밖[外]의 것을 연(緣)하여 나는 소리. 즉, 6외입처 즉 6경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인부집수대종성에 해당한다.
- 내외연성(內外緣聲): 안[內]의 것과 밖[外]의 것 둘 다를 연(緣)하여 나는 소리. 즉, 인집수부집수대종성에 해당한다.
또는 마음에 드는 소리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895][896]
- 가의성(可意聲): 듣기 좋은 소리
- 불가의성(不可意聲): 듣기 나쁜 소리
- 구상위성(俱相違聲): 듣기 좋은 것도 듣기 나쁜 것도 아닌 소리
또는 모두가 소리[聲]이지만 그 특징이 다르다고 보아 다음을 포함한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897][898]
- 명(鳴): 울음
- 음(音): 소리, 사운드
- 사(詞): 말
- 규(吼): 울부짖음
- 표창어(表彰語): 드러내는 말
한편, 성경(聲境)은 18계 중 성계(聲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성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성경과 성계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
- 성경(聲境)이란 4대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이근의 작용대상[所取]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소리를 말한다. 가의성(可意聲) · 불가의성(不可意聲) · 구상위성(俱相違聲) 등을 말한다.[899][900][901][902]
- 성계의 본질[聲界相]이란 모든 성이증현청(聲耳曾現聽)을 말한다. 즉, 이근이 과거에 들은 그리고 현재에 듣는 소리 모두를 말한다. 또한 성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성계의 본질[聲界相]이다. 성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이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소리'와 '이근'의 증상력을 발동근거로 하여 외부 대상[外境], 즉, 성경(聲境), 즉, 외부 대상으로서의 소리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903][904]
(67) 향(香)
편집향경(香境)이라고 하며, 줄여서 향(香)이라고 한다.
코로 맡을 수 있는 냄새를 말한다.[907][908][909] 달리 말해, 비근(鼻根)을 소의로 하여 비식(鼻識)이 인식하는 인식대상[所緣]으로서의, 사물의 냄새를 말한다.[910][911]
성경(聲境)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에 속한다.[912][913]
냄새는 좋은 냄새인지 아닌지에 따라 다음 3가지로 구분한다.[914][915][916]
- 호향(好香): 좋은 냄새
- 악향(惡香): 나쁜 냄새
- 평등향(平等香):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냄새
또는 후각 대상에 따라,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구분하기도 한다.[914][915]
- 뿌리의 향기
- 줄기의 향기
- 잎사귀의 향기
- 과일의 향기 등
한편, 향경(香境)은 18계 중 향계(香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향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향경과 향계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
- 향경(香境)이란 4대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비근의 작용대상[所取]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냄새를 말한다. 호향(好香) · 악향(惡香) · 평등향(平等香) 등을 말한다.[917][918][919][920]
- 향계의 본질[香界相]이란 모든 향비증현후(香鼻曾現嗅)를 말한다. 즉, 비근이 과거에 맡은 그리고 현재에 맡는 냄새 모두를 말한다. 또한 향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향계의 본질[香界相]이다. 향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이란 '과거와 현재의 모든 냄새'와 '비근'의 증상력을 발동근거로 하여 외부 대상[外境], 즉, 향경(香境), 즉, 외부 대상으로서의 냄새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921][922]
(68) 미(味)
편집미경(味境)이라고 하며, 줄여서 미(味)라고 한다.
혀로 맛볼 수 있는 맛을 말한다.[924][925][926] 달리 말해, 설근(舌根)을 소의로 하여 설식(舌識)이 인식하는 인식대상[所緣]으로서의, 사물의 맛을 말한다.[927][928][929]
미경(味境)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에 속한다.[930][931]
맛에는 ① 쓴맛[苦 고] ② 신맛[酢 초] ③ 매운맛[辛 신] ④ 단맛[甘 감] ⑤ 짠맛[鹹 함] ⑥ 담백한 맛[淡 담]이 있다.[932][933][934][935][936][937]
또는 마음에 드는 맛인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한다.[932][933][938][939]
- 가의미(可意味): 맛있는 맛
- 불가의미(不可意味): 맛없는 맛
- 사처소미(捨處所味) = 구상위미(俱相違味):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맛
맛[味]을 감지하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로는 다음과 같은 여러 표현들이 있다.[940][941]
- 맛보다[甞 상]
- 삼키다[吞 탄]
- 씹다[噉 담]
- 마시다[飲 음]
- 핥다[舐 지]
- 빨다[吮 전]
한편, 미경(味境)은 18계 중 미계(味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미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미경과 미계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
- 미경(味境)이란 4대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설근의 작용대상[所取]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맛을 말한다. 쓴맛[苦] · 신맛[酢] · 매운맛[辛] · 단맛[甘] · 짠맛[鹹] · 담백한 맛[淡] 등을 말한다.[938][939][942][943]
- 미계의 본질[味界相]이란 모든 미설증현상(味舌曾現嘗)을 말한다. 즉, 설근이 과거에 맛본 그리고 현재에 맛보는 맛 모두를 말한다. 또한 미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미계의 본질[味界相]이다. 미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이란 '과거와 현재의 모든 맛'과 '비근'의 증상력을 발동근거로 하여 외부 대상[外境], 즉, 미경(味境), 즉, 외부 대상으로서의 맛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944][945]
(69) 촉(觸)
편집촉경(觸境)이라고 하며, 줄여서 촉(觸)이라고 한다.
몸으로 감촉할 수 있는 촉감을 말한다.[948][949][950] 달리 말해, 신근(身根)을 소의로 하여 신식(身識)이 인식하는 인식대상[所緣]으로서의, 사물의 촉감을 말한다.[951][952][953]
촉경(觸境)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무견유대색(無見有對色)에 속한다.[954][955][951][952]
촉경(觸境)에는 지 · 수 · 화 · 풍의 4대가 포함되는데 이들을 능조촉(能造觸)이라고 하고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를 소조촉(所造觸)이라고 한다. 신근의 작용대상이자 신식의 인식대상인 촉감은 촉경에서 능조촉인 4대를 제외한 나머지, 즉, 소조촉을 말한다. 소조촉을 불교 논서들에서는 흔히 '촉일분(觸一分)' 즉 '촉경의 일부분'이라 표현한다.[954][955][956][957][958][959] 불교의 물질론에 따르면, 소조촉을 비롯한 모든 사물에는 4대가 모두 들어있는데 그들 중 무엇이 더 강하고 약한가 혹은 더 두드러지고 잠재적인가[隱顯]에 따라 사물의 차별과 변화가 생기게 된다.[960]
대승불교의 논서들에서 나열하고 있는 촉감은 다음 표와 같다. 한글 번역어는 참고문헌의 번역을 수정 없이 표기하였다.
번호 | 유가사지론 [961][962] | 현양성교론 [954][955] | 대승아비달마집론 [956][957] | 대승오온론 [958][959] |
---|---|---|---|---|
1 | 가벼운 성질[輕性 경성] | 깔깔함[澁 삽] | 매끄러움[滑性 활성] | 미끄러운 성질[滑性 활성] |
2 | 무거운 성질[重性 중성] | 미끄러움[滑 활] | 까칠까칠함[澁性 삽성] | 깔깔한 성질[澁性 삽성] |
3 | 미끄러운 성질[滑性 활성] | 가벼움[輕 경] | 가벼움[輕性 경성] | 무거운 성질[重性 중성] |
4 | 껄그러운 성질[澁性 삽성] | 무거움[重 중] | 무거움[重性 중성] | 가벼운 성질[輕性 경성] |
5 | 차가움[冷 냉] | 느슨함[緩 완] | 부드러움[軟性 연성] | 차가움[冷 냉] |
6 | 배고픔[飢 기] | 빠름[急 급] | 헐거움[緩 완] | 굶주림[飢 기] |
7 | 목마름[渴 갈] | 유연함[軟 연] | 뻑뻑함[急 급] | 목마름[渴 갈] |
8 | 배부름[飽 포] | 차가움[冷 냉] | 추움[冷 냉] | |
9 | 힘 있음[力 역] | 굶주림[飢 기] | 배고픔[飢 기] | |
10 | 힘 없음[劣 열] | 목마름[渴 갈] | 목마름[渴 갈] | |
11 | 느슨함[緩 완] | 배부름[飽 포] | 배부름[飽 표] | |
12 | 급함[急 급] | 답답함[悶 민] | 기력[力 역] | |
13 | 병듦[病 병] | 강함[強 강] | 무기력[劣 열] | |
14 | 늙음[老 노] | 약함[弱 약] | 답답함[悶 민] | |
15 | 죽음[死 사] | 가려움[癢 양] | 가려움[癢 양] | |
16 | 간지러움[蛘 양] | 병듦[病 병] | 끈끈함[黏 점] | |
17 | 답답함[悶 민] | 늙음[老 노] | 병[病 병] | |
18 | 끈끈함[粘 점] | 죽음[死 사] | 늙음[老 노] | |
19 | 고달픔[疲 피] | 피곤함[疲 피] | 죽음[死 사] | |
20 | 쉼[息 식] | 쉼[息 식] | 피곤함[疲 피] | |
21 | 연약[軟怯 연성] | 끈끈함[粘 점] | 편안함[息 식] | |
22 | 기운[勇 용] | 날램[勇 용] | 활력[勇 용] | |
23 | 광택을 반연함[緣光澤] | |||
24 | 광택이 나지 않음[不光澤] | |||
25 | 견실을 반연함[緣堅實] | |||
26 | 견실하지 않음[不堅實] | |||
27 | 잡아서 묶는 것을 반연함[緣執縛] | |||
28 | 더욱 모임을 반연함[緣增聚] | |||
29 | 어김을 반연함[緣乖違] | |||
30 | 순조로움을 반연함[緣和順] | |||
31 | 본래적인 것[若俱生] | |||
32 | 화합에 의한 것[若和合] | |||
33 | 변하여 달라짐에 의한 것[若變異] |
촉감은 좋은 촉감인지 아닌지에 따라 다음 3가지로 구분한다.[963][964]
- 호촉(好觸): 좋은 촉감
- 악촉(惡觸): 나쁜 촉감
- 사처소촉(捨處所觸):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촉감
한편, 촉경(觸境)은 18계 중 촉계(觸界)에 해당하는데, 아뢰야 연기를 인정하는 대승불교권에서는 촉계를 아뢰야식의 일부로 해석하므로, 엄밀히는 차이가 있다.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촉경과 촉계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법(존재, 현상)이다.
- 촉경(觸境)이란 4대로 만들어진 물질[所造色]이면서 신근의 작용대상[所取]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촉감을 말한다. 매끄러움[滑性 활성] · 까칠까칠함[澁性 삽성] · 가벼움[輕性 경성] · 무거움[重性 중성] · 부드러움[軟性 연성] · 헐거움[緩 완] · 뻑뻑함[急 급] · 추움[冷 냉] · 배고픔[飢 기] · 목마름[渴 갈] · 배부름[飽 표] · 기력[力 역] · 무기력[劣 열] · 답답함[悶 민] · 가려움[癢 양] · 끈끈함[黏 점] · 병[病 병] · 늙음[老 노] · 죽음[死 사] · 피곤함[疲 피] · 편안함[息 식] · 활력[勇 용] 등을 말한다.[956][957][965][966]
- 촉계의 본질[觸界相]이란 모든 촉신증현촉(觸身曾現觸)을 말한다. 즉, 신근이 과거에 감촉한 그리고 현재에 감촉하는 촉감 모두를 말한다. 또한 촉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촉계의 본질[觸界相]이다. 촉계가 여기에서 증상(增上)하는 것이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촉감'과 '신근'의 증상력을 발동근거로 하여 외부 대상[外境], 즉, 촉경(觸觸), 즉, 외부 대상으로서의 촉감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967][968]
(70)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편집색법 11/11 법처소섭색 法處所攝色 법처소섭색, 법처색, 법처에 속한 물질
산스크리트어: dharmâyatana-paryāpannam...rūpam, dharmâyatana-paryāpanna
영어: form that is included as a conceptual basis[969]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은 물질[色法 = 色]이지만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의 5식의 인식대상이 아니고 의식(意識)의 인식대상인 물질들을 말한다. 달리 말해, 12처 중 의식의 인식대상들의 그룹인 법처(法處)에 속하는[所攝] 물질[色]을 뜻한다.[970][971]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법처소섭색에는 극략색(極略色) · 극형색(極逈色) · 수소인색(受所引色) ·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 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의 5가지가 있다.[972][973][974][975] 대체로 말해, 이들은 5감 즉 5근을 통해서는 인식할 수 없는 물질이다. 이런 점에서, 물질이지만 물질적 실재성이 없으므로 가유이다. 다만 이들 중 정자재소생색은 예외이다. 정자재소생색은 선정력에 의해 생겨난 물질 즉 신통력으로 만든 물질을 뜻하는데, 선정력의 수준에 따라 그 물질이 아직 주관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에는 법처에 속한 가유이고, 객관적 영역으로까지 현현한 경우에는 안처 · 이처 · 비처 · 설처 · 신처의 5처에 속한 실유이다. 즉, 물질적 실재성을 가지는 실법이다.[976]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은 5온 중 색온에 속하고 3종색 중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에 속한다.[977][978]
(70.1) 극략색(極略色)
편집색법 11/11 · 법처소섭색 1/5 극략색 極略色 극한으로 줄여진 물질, 극미, 원자
산스크리트어: abhisaṃkṣepika
영어: compact form, atomic particle, smallest perceivable matter, smallest perceptible particle[969][979]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극략색(極略色)은 극미(極微)를 뜻한다.[980][981]
실색(實色)인 지 · 수 · 화 · 풍의 4대와 색 · 성 · 향 · 미 · 촉의 5경과 안 · 이 · 비 · 설 · 신의 5근을 쪼개어 들어가 얻어지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극미(極微) 말한다. 즉 원자(atom)를 말한다.[979] 극미를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5경과 5근과 마찬가지로 실색이라고 보는데, 안근(眼根)의 작용대상이자 안식(眼識)의 인식대상인 색경 즉 색처에 속한다고 본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극미는 너무나 작아 감각적 인식기관인 안근으로는 볼 수 없으며 따라서 감각적 인식인 안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며, 정신적 인식기관인 의근(意根)과 정신적 인식인 의식(意識)에 의해 그 존재가 추론된다고 본다. 따라서 의근의 작용대상이자 의식의 인식대상인 법경 즉 법처에 속한 물질이라고 본다.[969][976][982][983][984]
달리 말해, 설일체유부에서는 유견유대색(有見有對色) 즉 가시성과 질애성을 가진 물질을 쪼개어 들어간 물질의 최소단위가 여전히 가시성과 질애성을 가진 유견유대색이라고 본 것이고,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유견유대색을 쪼개어 들어간 물질의 최소단위는 가시성도 없고 질애성도 없는 무견무대색(無見無對色)이 된다고 본 것이다.[977][978] 설일체유부는, 대체적으로 말해, 눈(물론, 정색淨色으로 이루어진 안근, 5안)으로 원자를 볼 수 있다는 입장으로, 물질의 근원이 여전히 물질이라는 물질의 객관성을 지지하는 관점이고, 유식유가행파는 원자는 정신(법처)에 속한 것이라는 입장으로, 물질의 근원이 정신(종자)이라는 물질의 주관성(아뢰야식)을 지지하는 관점이다. 이것은 아뢰야식과 종자설을 주요 교의로 하는 유식유가행파의 근본입장과 부합하는 관점이다. 설일체유부의 입장은 현대 과학의 객관적 유물론과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는데, 설일체유부는 원자(극미, 보다 정확히는 미진微塵)를 보는 눈은 육안이 아닌 천안(天眼) 등의 눈이라고 본다.[985] 천안은 선정 즉 4선에 의해 획득되는 눈, 즉, 색계에서 획득되는 눈이다.[986][987] 즉,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는 정신 또는 상상에 속한 것의 실재성을 지극히 인정하는 입장이다.
(70.2) 극형색(極逈色)
편집색법 11/11 · 법처소섭색 2/5 극형색 極逈色 극한으로 멀어진 물질, 극한으로 미묘해진 물질
산스크리트어: abhyavakāśika
영어: open form, extremely subtle colors[969][988]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극형색(極逈色)은 물질의 특성인 질애성이 없는[離餘礙觸] 물질을 뜻한다.[989][990]
극형색(極逈色)은 즉 맑은 하늘이 드러날 때에 하늘의 허공에 나타나는 색깔인 공일현색(空一顯色)을 포함한, 빈 방, 안와(眼窩, 눈구멍), 외이도(外耳道, 귓구멍) 등과 같은 비어 있는 공간에 나타난 색깔, 즉, 공계색(空界色)을 극한으로 쪼개어 들어가 얻어지는 극미를 말한다.[991][992][993] 즉, 광(光, 빛의 색깔), 영(影, 그림자의 색깔), 명(明, 밝음의 색깔), 암(闇, 어두움의 색깔)의 질애성이 아주 희박한 색경, 즉, 질애성이 아주 희박한 현색의 극미를 말한다.[994][995] 유의할 점으로는, 극형색은 공간 그 자체의 색깔의 극한이 아니라 공간에 나타난 색깔의 극한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공간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절대 공간' 혹은 '공의 경지, 즉, 법성'인 허공무위는 무위법이다.[996][997][998] 둘째, 일상의 공간은 방(方)이라는 심불상응행법이다.[999][1000] 둘 다 색법이 아니므로 아무런 색깔도 없다.
극형색은 극미이므로, 극략색과 마찬가지로 무견무대색이고 의근의 작용대상이자 의식의 인식대상인 법경 즉 법처에 속한 물질이다.
극략색과 극형색의 관계에 대해서는 불교 논서들에서 언급이 없다. 즉, 극략색과 극형색이 별도인지 극형색이 극략색에 포함되는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극략색과 극형색이 별도라면 극략색은 질애성이 두드러진 산천초목과 같은 물질을 극한으로 분석했을 때의 극미를 뜻하고 극형색은 질애성이 희박한 물질을 극한으로 분석했을 때의 극미를 뜻하므로, 극미에 두 종류가 있다는 의미이다. 극형색이 극략색에 포함되는 것이라면, 극략색이 곧 극미이고 그것을 일부인 극형색을 특별히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라면 특별히 따로 언급하게 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불교 논서에서는 이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다.
(70.3) 수소인색(受所引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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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법 11/11 · 법처소섭색 3/5 수소인색 受所引色 수계(受戒)로 이끌어진 색, 무표색
산스크리트어: samādānika
영어: undertaken form, form arising from reception (of precepts, etc.)[969][1001]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수소인색(受所引色)은 무표색(無表色)을 뜻한다.[1002][1003] 무표색은 무표업(無表業)이라도 한다.[1004][1005]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수소인색(受所引色)은 율의(律儀)와 불율의(不律儀)를 말한다.[1006][1007]
율의 또는 선율의(善律儀)는 5계 등의 계율을 받아 자신의 신조로 삼아 몸과 말로 행하는 것에 의해 마음 속에 생겨나는 잠재력 또는 원동력으로서의 물질로서, 지수화풍의 4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조색이지만,[1008] 드러나는 물질이 아니라는 뜻에서 무표색(無表色)이라고 한다.[1009][1010][1011][1012][1013] 율의, 즉, 선한 무표업은 신업과 구업을 악으로부터 방어하거나 보호하는 물질을 말하며, 선 즉 환멸연기 즉 열반을 향해 선한 의업을 더욱더 짓게 하는 작용을 한다.[1014][1015]
불율의 또는 악율의(惡律儀)는 자신의 뜻의 의해 혹은 나쁜 친구나 나쁜 스승 등 다른 이의 교시를 받아들임에 의해 살생 · 도둑질 등의 악업을 자기의 신조로 삼아 몸과 말로 행하는 것에 의해 마음 속에 생겨나는 잠재력 또는 원동력으로서의 물질로서, 지수화풍의 4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소조색이지만,[1008] 드러나는 물질이 아니라는 뜻에서 무표색(無表色)이라고 한다.[1016][1017][1018][1019] 불율의, 즉, 악한 무표업은 신업과 구업을 악으로부터 방어하거나 보호하지 않는 물질을 말하며, 악 즉 유전연기 즉 생사윤회를 향해 불선한 의업을 더욱더 짓게 하는 작용을 한다.[1020][1021]
간략히 요약하자면, 수소인색(受所引色)은 업 즉 카르마 즉 12연기의 행과 유를 뜻한다. 업이 상상이나 추론과 같은 주관적 정신적 산물이나 이론이 아니며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정신적 물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70.4)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편집색법 11/11 · 법처소섭색 4/5 변계소기색 遍計所起色 상상으로 만든 물질, 영상
산스크리트어: parikalpita-rūpa
영어: schematized or imagined form, form produced by pervasive discrimination[969][1022]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변계소기색은 영상(影像)을 뜻한다.[1023][1024]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은 망상(妄想), 즉, 제6의식의 그릇된 분별, 그릇된 상상에 의해 생겨난 영상으로, 거북의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 물 속의 달과 같이 그것에 집착하는 이에게만 실재의 물질로서 존재하는 물질을 말한다.[1025][1026][1027] 예를 들어, 물 속의 달이 실재한다고 보는 이가 그 달을 가지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드는 경우가 변계소기색에 해당한다.
(70.5) 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
편집색법 11/11 · 법처소섭색 5/5 정자재소생색 定自在所生色 선정으로 만든 물질
산스크리트어: vaibhūtvika
영어: supernatural form, form produced effortlessly in samādhi, form induced by one's will[969][1028][1029]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또는 정과색(定果色)이라고도 한다.[1030]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에 따르면, 정자재소생색은 해탈정려소행경(解脫靜慮所行境) 즉 무루[解脫]의 선정[靜慮]의 작용대상[所行境]으로서의 물질을 뜻한다.[1031][1032]
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은 선정력으로 4대를 조합하여 만든 물질을 말한다.[1033][1034][1035][1036] 보살 10지 중 제8지인 부동지(不動地)를 다른 이름으로는 '물질에 걸림이 없어 자유롭다'는 뜻에서 색자재지(色自在地)라고도 하는데,[1037][1038][1039] 제8지 이상의 보살이 선정력으로 만든 물질은 실제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어서 실색이고, 제7지 이하의 보살이 만든 물질은 아직 주관적인 상태에 있어 객관적으로 현현한 상태는 아니므로 가색이다.[969][976]
말하자면, 물을 포도주로 바꾸거나 납을 금으로 바꾸거나 많은 이가 계속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음식과 같은 연금술적 힘으로 창조된 물질을 말한다.[969] 즉, 제8지 이상은 물질을 창조하는 힘을 가진다.
4. 심불상응행법 (24 一 94)
편집T31n1614_p0855c10║第四心不相應行法。略有二十四種。一得二
T31n1614_p0855c11║命根。三眾同分。四異生性。五無想定。六滅盡
T31n1614_p0855c12║定。七無想報。八名身九句身十文身。十一生
T31n1614_p0855c13║十二老。十三住十四無常。十五流轉。十六定
T31n1614_p0855c14║異。十七相應。十八勢速。十九次第。二十方。
T31n1614_p0855c15║二十一時。二十二數。二十三和合性。二十
T31n1614_p0855c16║四不和合性。네 번째 그룹은 심불상응행법이다. 간략히 말해 24개가 있다.
① 득 ② 명근 ③ 중동분 ④ 이생성 ⑤ 무상정 ⑥ 멸진정 ⑦ 무상보 ⑧ 명신 ⑨ 구신 ⑩ 문신 ⑪ 생 ⑫ 주 ⑬ 노 ⑭ 무상 ⑮ 유전 ⑯ 정이 ⑰ 상응 ⑱ 세속 ⑲ 차제 ⑳ 시 ㉑ 방 ㉒ 수 ㉓ 화합성 ㉔ 불화합성.
— 《대승백법명문론》 한문본 & 한글본은 편집자가 번역.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에는 총 24개의 법이 있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94개이다.
심불상응행법의 전체 명칭은 비색비심불상응행법(非色非心不相應行法)으로, 물질(색법)도 아니고[非色] 마음(심법)도 아니며[非心] 또한 마음과 상응하는 심소법도 아닌[心不相應] 법으로 유위법인 5온 중 행온[行]에 속한 법(法)을 말한다.[1040][1041] 즉, 물질적 감각(5근)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현상들 또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 작용, 성질, 세력 등과 언어를 총칭한다.[1042]
《현양성교론》제1권 등에 따르면, 유식유가행파에서는 심불상응행법은 비록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실법이 아닌 가법이라고 본다. 즉, 심법 · 심소법 · 색법의 분위(分位)를, 즉, 이들 세 가지가 가진 여러 특징이나 성질 또는 이들 세 가지에서 발견되는 특정 현상이나 상태를 법으로 삼은 것이라고 본다.[1043][1044][1045][1046][1047]
예를 들어, 명신(名身) · 구신(句身) · 문신(文身)은 각각 단어(개념) · 문장 · 음소를 뜻하는데 이들의 총체는 말 즉 언어이다.[1048][1049] 언어를 별도의 실재로 보기보다는 심법(마음)에 속한 제6의식이 가진 특기할 만한 즉 별도의 법으로 설정할 만한 성질 또는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식(특히 인간의 자아의식)과 언어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언어가 항상 마음과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마음이 있는 존재들 즉 유정들 중 동물 즉 축생을 보면 그렇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그러므로 언어를 마음과 상응하는 법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심소법에 포함시킬 수 없다. 참고로, 인도의 6파철학 중 미맘사 학파는 언어를 별도의 실재로 보며, 그만큼 언어와 경전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비단 미맘사 학파 뿐 아니라, 유대교의 히브리어, 이슬람교의 아랍어, 힌두교의 산스크리트어, 기독교의 성경의 언어 등 많은 종교에서 자신들의 경전에 쓰인 언어에 신성(神性)을 부여한다. 혹은, 최소한,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신적 영감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본다.
심불상응행법에는 다음의 24가지가 있다.
- 득(得)
- 명근(命根)
- 중동분(衆同分)
- 이생성(異生性)
- 무상정(無想定)
- 멸진정(滅盡定)
- 무상보(無想報)
- 명신(名身)
- 구신(句身)
- 문신(文身)
- 생(生)
- 노(老)
- 주(住)
- 무상(無常)
- 유전(流轉)
- 정이(定異)
- 상응(相應)
- 세속(勢速)
- 차제(次第)
- 방(方)
- 시(時)
- 수(數)
- 화합성(和合性)
- 불화합성(不和合性)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에 따르면, 심불상응행법은 의처(依處) · 자체(自體) · 가립(假立) · 작의(作意) · 지(地)의 5문(五門)에 의거해 설정된 가법이다. 5문의 5가지 요소가 다 사용된 경우는 무상정과 멸진정이고, 작의를 제외한 4가지가 사용된 경우는 무상보이고, 나머지 심불상응행법은 처음의 3요소 즉 의처 · 자체 · 가립만이 사용된 경우이다.[1050][1051]
예를 들어, 득(得)은 선법 · 불선법 · 무기법의 획득 또는 성취를 뜻하는데, 선법 · 불선법 · 무기법이 5문 중 의처(依處) 즉 득(得)이라는 법의 설정 토대에 해당한다. 이들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5문 중 자체(自體) 즉 본질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체를 득(得)이라는 별도의 법으로 설정한 것이 5문 중 가립(假立)에 해당한다.[1052][1053] 5문 중 작의(作意)는 마음을 먹고 즉 특정한 '생각 또는 의도[想]'를 가진 후 지금 의지적으로 행한다 즉 수행한다는 것으로, 무상정(無想定)은 출리상(出離想)을 가진 후 그 원하는 바를 획득하기 위해 해당하는 선정을 지금 행하여 획득한다는 것을,[1054][1055] 멸진정(滅盡定)은 잠식상(暫息想)을 가진 후 그 원하는 바를 획득하기 위해 해당하는 선정을 지금 행하여 획득한다는 것을 뜻한다.[1056][1057] 그리고 5문 중 지(地)는 이러한 수행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그 원하는 상태가 획득되는 것인가를 말하는데, 무상정은 3계9지 중 색계의 제3선이 완료된 상태에서 시작하여 제4선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뜻하고,[1054][1055] 멸진정은 무색계의 제3천인 무소유처의 선정이 완료된 상태에서 시작하여 유정천 즉 무색계의 제4천인 비상비비상천의 선정을 초월하는 것을 뜻한다.[1056][1057] 무상보의 경우에서 지(地)는 무상보가 색계 18천 중 무상천(無想天)에서 일어나는 과보로서의 현상임을 뜻한다. 무상천에 태어나는 일이 선정이라는 현재의 수행, 즉, 작의가 있은 후 그 원하는 바를 획득하기에 합당한 현재의 수행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생의 총체적 과보로서 획득되는 것임을 뜻한다.[1058][1059]
각각의 심불상응행법에 5문 중 무엇이 사용된 것인가는 다음 표와 같다.
순서 | 심불상응행법 | 5문(五門) | ||||
---|---|---|---|---|---|---|
의처(依處) | 자체(自體) | 가립(假立) | 작의(作意) | 지(地) | ||
1 | 득(得) | ● | ● | ● | ||
2 | 명근(命根) | ● | ● | ● | ||
3 | 중동분(衆同分) | ● | ● | ● | ||
4 | 이생성(異生性) | ● | ● | ● | ||
5 | 무상정(無想定) | ● | ● | ● | ● | ● |
6 | 멸진정(滅盡定) | ● | ● | ● | ● | ● |
7 | 무상보(無想報) | ● | ● | ● | ● | |
8 | 명신(名身) | ● | ● | ● | ||
9 | 구신(句身) | ● | ● | ● | ||
10 | 문신(文身) | ● | ● | ● | ||
11 | 생(生) | ● | ● | ● | ||
12 | 노(老) | ● | ● | ● | ||
13 | 주(住) | ● | ● | ● | ||
14 | 무상(無常) | ● | ● | ● | ||
15 | 유전(流轉) | ● | ● | ● | ||
16 | 정이(定異) | ● | ● | ● | ||
17 | 상응(相應) | ● | ● | ● | ||
18 | 세속(勢速) | ● | ● | ● | ||
19 | 차제(次第) | ● | ● | ● | ||
20 | 방(方) | ● | ● | ● | ||
21 | 시(時) | ● | ● | ● | ||
22 | 수(數) | ● | ● | ● | ||
23 | 화합성(和合性) | ● | ● | ● | ||
24 | 불화합성(不和合性) | ● | ● | ● |
(71) 득(得)
편집심불상응행법 1/24 득 得 획득, 성취, 증감
산스크리트어: prāpti
영어: to obtain, get, acquire, gain; acquisition, possession[1060]
득(得)은 어떤 법(현상, 존재) 또는 상태를 획득(獲得)하거나 성취(成就)하는 것을 말한다.[1061][1062][1063][1064][1065][1066]
달리 말해, 선법 · 불선법 · 무기법의 증감(增減)을 말한다. 이러한 증감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067][1068][1069][1070]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득은 종자성취(種子成就) · 자재성취(自在成就) · 현기성취(現起成就)로 나뉜다.[1061][1062][1063][1064] 현기성취는 현행성취(現行成就)라고도 한다.[1071]
(72) 명근(命根)
편집심불상응행법 2/24 명근 命根 수명, 생명력, 생명의 뿌리[1072]
산스크리트어: jīvitendriya, jīvitêndriya
영어: life force, life potential, life-faculty[1073]
유정의 수명(壽命) 또는 생명력을 말한다.[1074][1075]
명근(命根)은 지금까지의 지은 바 업에 따라 정해지는, 즉 현재까지의 원인에 의해 그 과보로서 받는, 현생에서 머무는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076][1077][1078][1079][1080][1081] 달리 말해, 인과법칙에 따라 5온의 상속이 현생에서 지속되는 기간을 가립하여 명근 또는 수명이라고 한다.[1082][1083]
(73) 중동분(衆同分)
편집심불상응행법 3/24 중동분 衆同分, 眾同分 유정의 유사성, 종의 유사성, 유개념(類槪念)[1084][1085]
산스크리트어: nikāya-sabhāga, sabhāga
영어: commonality of sentient beings[1086]
중동분(衆同分)은 유정들이 종류에 따라 서로 비슷한 것을 말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립하여 중동분이라 한다.[1088][1089][1090][1091][1092] 종류에 따라 비슷하다는 것은 크게 보아 지옥도 · 아귀도 · 축생도 · 인간도 · 아수라도 · 천상도의 6도의 유정들이 각기 서로 비슷한 것을 말한다.[1093][1094]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중동분을 유정들이 종류에 따라 서로 비슷하게 만드는 원인 또는 작용이라고도 보는데, 이 힘이 있기 때문에 사람 등의 특정 유형의 유정이 일생 동안 갑자기 개나 고양이 등의 다른 유형의 유정으로 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1086][1095]
(74) 이생성(異生性)
편집심불상응행법 4/24 이생성 異生性 범부의 특성[1096]
산스크리트어: pṛthag-janatva
영어: worldling nature, nature of ordinary people[1097]
범부성(凡夫性)이라고도 한다. 이생(異生)은 성자와 다른[異] 생류(生類)라는 뜻, 또는, 쌓은 업에 따라 3계 6도의 여기저기 다른[異] 곳에서 다른 모습의 유정으로 태어난다[生]는 뜻으로, 범부(凡夫)와 동의어이다.[1098][1099][1100][1101]
이생성(異生性)은 범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상태인, 성법(聖法) 즉 무루혜를 획득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1102][1103][1104][1105] 이러한 상태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106][1107][1108][1109]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이생성을 범부들로 하여금 성자가 되지 못하고 계속하여 범부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110][1111]
(75) 무상정(無想定)
편집심불상응행법 5/24 무상정 無想定 생각이 없는 선정, 마음작용이 없는 선정
산스크리트어: asaṃjñā-samāpatti, asaṃjñi-samāpanna, āsaṃjñika
영어: concentration without thought, concentration without conceptualization, concentration of no thought, meditative attainment without ideation[1112]
무상정(無想定)은 생각[想]이 없는 경지, 즉, 마음작용(심소법)이 모두 소멸된 경지가 해탈의 경지라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 수행하는 선정을 말한다. 또는 그 선정을 통해 획득한 상태 또는 지위를 말한다. 특히, 불교도가 아닌 외도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수행하는 선정을 가리킨다.[1113]
이미 높은 경지에 도달한 외도 수행자가 외도의 관점에서 볼 때 최후의 경지 즉 해탈의 경지인 마음작용이 모두 소멸된 경지, 예를 들어, 요가학파와 샹캬학파에서 말하는 프라크리티가 고요해져 푸루샤가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경지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수행하는 선정을 말한다. 그리고 이 수행을 통해 획득 또는 증득된 경지를 말한다. 무상정의 상태가 최후의 경지 즉 해탈의 경지 즉 출리의 경지라는 관점을 가지고 이 경지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내는 것을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 '출리상(出離想)을 작의(作意)한다'고 표현한다.[1114][1115][1116][1117]
불교 우주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외도 수행자의 이 무상정은 색계 제3천에 속한 변정천(遍淨天)의 탐(貪)을 벗어난 상태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 색계 제4천의 탐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것이다.[1118][1119][1120][1121] 즉, 색계 4선 중 제3선에는 도달했지만 제4선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하는 수행이다. 그리고 이 수행의 결과, 불교의 해탈의 경지 즉 열반 즉 출리가 아닌 색계 제4천에 속한 무상천(無想天)에 도달하게 된다.[1122][1123]
무상정은 8식 중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제외한 6식의 심법과 심소법이 소멸되는 선정이다.[1114][1115][1120][1121]
불교에 따르면, 무상정을 수행하여 무상천에 도달한 이는 다음 생에 무상천에 태어나게 된다. 달리 말해, 외도의 관점에서는 해탈의 상태 즉 열반의 상태를 영원히 향유하는 것이다. 불교의 관점에서는, 무상정과 무상천은 참된 열반이 아니므로, 오랜 시간(정확히는 5백대겁)이 지나 인연이 다하면 생각[想] 즉 마음작용이 다시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면 무상천에서 나오게 되고 3계를 다시 윤회하게 된다.[1123]
참고로, 《천태사교의》에 따른 색계 18천은 다음과 같다.
천태사교의 |
---|
색계(色界) - 색계18천(色界十八天) |
(76) 멸진정(滅盡定)
편집심불상응행법 6/24 멸진정 滅盡定
산스크리트어: nirodha-samāpatti
영어: concentration of cessation, meditative attainment of cessation[1124]
멸수상정(滅受想定), 멸진삼매(滅盡三昧) 또는 멸진등지(滅盡等至)라고도 한다.
멸진정(滅盡定)은 붓다나 아라한이 마음과 마음작용의 소란스러움을 없애고 고요한[寂靜] 상태에 있고자 하여 행하는 선정이다.[1125][1126] 멸진정은 8식 중 아뢰야식을 제외한, 말나식의 염오 부분과 6식의 심법과 심소법이 소멸되는 선정이다.[1127] 마음과 마음작용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고요한 상태 있고자 하는 의지, 즉, 멸진정에 들고자 하는 의지를 내는 것을 전통적인 불교 용어로 '잠식상(暫息想) 또는 지식상(止息想)을 작의(作意)한다'고 표현한다.[1128][1129][1130][1131][1132][1133][1134][1135]
불교 우주론과 수행론에 따르면, 멸진정은 무색계 제3천의 선정인 무소유처정에 든 상태에서 행하는 것으로, 유정천(有頂天) 즉 무색계 제4천의 선정인 비상비비상처정을 초월하여 멸진의 상태 즉 적정의 상태에 드는 선정이다.[1130][1131]
참고로, 《천태사교의》와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른 무색계 4천은 다음과 같다.
천태사교의 | 아비달마구사론 |
---|---|
무색계(無色界) - 무색계4천(無色界四天) |
무색계(無色界) - 4가지 처소 |
(77) 무상보(無想報)
편집심불상응행법 7/24 무상보 無想報 무상과, 무상사, 무상이숙
산스크리트어: āsaṃjñika
영어: results of nonconceptualization, realization gained by no-thought meditation[1136][1137]
무상과(無想果), 무상사(無想事), 무상소유(無想所有) 또는 무상이숙(無想異熟)이라고도 한다.[1138][1139][1140][1141][1142]
무상보(無想報)는 현생에서 무상정(無想定)을 수행하여 성취한 결과로 다음 생에서 색계 제4천에 속한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는 것을 말한다.[1143][1144][1145][1146]
무상천 또는 무상보는 8식 중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제외한 6식의 심법과 심소법이 소멸된 경지이다.[1147][1148][1149][1150]
(78) 명신(名身)
편집심불상응행법 8/24 명신 名身 이름들, 명칭들, 단어들, 개념들
산스크리트어: nāmakāya, nāma-kāya
영어: collection of words, gathering of names[1151]
명신(名身)은 불교에서 언어[言說]를 구성하는 3요소라고 보는 단어[名] · 문장[句] · 음소[文][1048][1049] 중 단어[名]의 집합[身]을 말한다. 즉, '단어들' 즉 '개념들'을 말한다.[1152][1153][1154]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명신은 온갖 법의 자체(自體) 즉 자성(自性) 즉 본질 즉 본질적 성질과 작용을 나타내는 상호(想號)들 즉 '개념[想]一이름[號]'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설정한 것이다.[1155][1156]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에 따르면 명신은 온갖 법의 자성증언(自性增言)들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157][1158] 자성증언이란 자성(自性)에 대한 뛰어난[增] 말[言] 즉 어떤 법의 본질을 잘 설명하는 잘 만들어진 '개념一이름'을 뜻한다.[1159][1160]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서는 자성증언을 자성증어(自性增語)라고 표현하고 있다.[1161][1162][1163][1164]
예를 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모든 행(行, 유위법)은 무상하다'는 진술에서 '모든 행[諸行]'과 '무상'이 명신에 해당한다.[1155][1156][1165][1166][1167][1168]
(79) 구신(句身)
편집심불상응행법 9/24 구신 句身 문장들, 구절들
산스크리트어: padakāya, pada-kāya
영어: collection of phrases or sentences, gathering of two or more phrases[1169]
구신(句身)은 불교에서 언어[言說]를 구성하는 3요소라고 보는 단어[名] · 문장[句] · 음소[文][1048][1049] 중 문장[句]의 집합[身]을 말한다. 즉, '문장들' 또는 '구절들'을 말한다.[1170][1171]
《현양성교론》 제1권에 따르면, 구신은 여러 개념[名] 즉 명신을 모아서 잡염의 이치이나 청정의 이치를 나타내는 논설의 요소적 근거를 말한다. 즉, 문장 또는 구절을 말한다.[1172][1173]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에 따르면 구신은 온갖 법의 차별증언(差別增言)들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174][1175] 차별증언이란 법의 차별에 대한 뛰어난[增] 말[言] 즉 '법이 가진 별도의 뜻 즉 법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잘 만들어진 문장을 뜻한다.[1176][1177]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서는 차별증언을 차별증어(差別增語)라고 표현하고 있다.[1178][1179][1180][1181]
예를 들어,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행은 무상하다)'이나 '제행무상이므로 모든 유정은 반드시 죽는다'와 같은 진술에서 이들 진술들 즉 문장들 자체가 구신에 해당한다.[1176][1177][1180][1181][1182] 이 문장들은 각각 '모든 행[諸行]'과 '유정'의 여러 특성들 즉 차별들 중의 하나를 드러내는 말이므로 차별증언 또는 차별증어이다.
(80) 문신(文身)
편집문신(句身)은 불교에서 언어[言說]를 구성하는 3요소라고 보는 단어[名] · 문장[句] · 음소[文][1048][1049] 중 음소[文]의 집합[身]을 말한다. 즉, '음소들', '글자들' 또는 '문자들'을 말한다.[1184][1185][1186]
《현양성교론》제1권,[1187][1188] 《대승아비달마집론》제1권,[1189][1190][1191][1192] 《대승오온론》[1193][1194][1195][1196] 등에 따르면, 문신은 명신(이름, 개념)과 구신(문장)의 소의처 즉 요소적 근거인 자(字), 즉, 음소, 글자 또는 문자를 말한다.
(81) 생(生)
편집심불상응행법 11/24 생 生 생상(生相), 생겨남, 태어남, 일어남
산스크리트어: jāti
팔리어: jāti
영어: arising; to produce, bring forth, beget; to be born; conception; production; coming into existence[1197]
생상(生相)이라고도 한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4상(四相) 중 생에 해당한다.[1198][1199][1200][1201]
생(生)은 모든 행(行) 즉 유위법의 자상(自相)이 일어나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02][1203][1204]
즉, 생(生)은 여러 인연이 모여서 법(존재, 현상) 즉 유위법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1205][1206] 그리고 모든 유위의 존재 중에서도 특히 유정에 대해서 무게를 둔 표현으로, 유정의 5온 상속 중에 일어나는 태어남이라는 현상을 들어 모든 유위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 《대승오온론》등에서는 생을 중동분(衆同分, 유정의 동류상사성, 유형별 유정, 종)의 온갖 유위법이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本無今有]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07][1208][1209][1210][1211][1212][1213][1214]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생(生)을 유위법으로 하여금 미래에서 현재로 이전하게 하는 법,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15][1216]
(82) 노(老)
편집심불상응행법 12/24 노 老 이상(異相), 늙음, 늙어감, 변해감, 달라짐
산스크리트어: jarā
영어: changing; old age, decay; to change, differ; to be different, unlike; to become otherwise; difference, differentiation, changing[1217][1218][1219]
이상(異相)이라고도 한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4상(四相) 중 이에 해당한다.[1220][1198][1199][1200][1201]
노(老) 즉 이(異)는 모든 행(行) 즉 유위법의 전후(前後)를 비교해보면 변화가 있어 전후의 모습이 다른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21][1222][1223][1224]
즉, 노(老) 즉 이(異)는 여러 인연으로 인해 유위법이 변해 가는 것을 말한다.[1225] 그리고 모든 유위의 존재 중에서도 특히 유정에 대해서 무게를 둔 표현으로, 유정의 5온 상속 중에 일어나는 늙어감 즉 변천 또는 변이라는 현상을 들어 모든 유위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1226][1227] 《대승오온론》[1228][1229] 등에서는 생을 중동분(衆同分, 유정의 동류상사성, 유형별 유정, 종)의 온갖 유위법의 상속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相續變異]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30][1231][1232][1233]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노(老) 즉 이(異)를 유위법으로 하여금 변하여 달라지게 하는 법,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34]
(83) 주(住)
편집심불상응행법 13/24 주 住 주상(住相), 머무름, 일시적 안주, 유지
산스크리트어: sthiti
영어: abiding; to abide, stay, stop, settle[1235]
주상(住相)이라고도 한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4상(四相) 중 주에 해당한다.[1198][1199][1200][1201]
주(住)는 모든 행(行) 즉 유위법이 상속하면서 잠시 동안 소멸되지 않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36][1237]
즉, 주(住)는 여러 인연이 모여서 법(존재, 현상) 즉 유위법이 그 본질의 모습대로 머무르고 있는 상태,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1238][1239][1240] 법의 본질적 성질과 본질적 작용이 현재 나타나 있는 상태, 법을 이루는 여러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모든 유위의 존재 중에서도 특히 유정에 대해서 무게를 둔 표현으로, 유정의 5온 상속 중에 일어나는 머무름이라는 현상을 들어 모든 유위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1241][1242] 《대승오온론》[1243][1244] 등에서는 생을 중동분(衆同分, 유정의 동류상사성, 유형별 유정, 종)의 온갖 유위법의 상속이 변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相續不變壞] 또는 상속이 (이전의 모습을) 따라가는 것[相續隨轉]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45][1246][1247][1248]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주(住)을 유위법으로 하여금 현재에서 잠시 안주하게 하여 그것의 본질적 성질과 작용이 나타나게 하는 법,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49]
(84) 무상(無常)
편집심불상응행법 14/24 무상 無常 멸상(滅相), 소멸, 없어짐, 사라짐, 덧없음
산스크리트어: anitya, anityatā, nivṛtti, nirodha
팔리어: anicca
영어: ceasing; impermanent; impermanence; to annihilate, finish, end, cease, wipe out, negate, extinguish, exterminate, destroy; cessation, disappearance[1250][1251][1252]
멸(滅) 또는 멸상(滅相)이라고도 한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4상(四相) 중 멸에 해당한다.[1253][1198][1199][1200][1201]
무상(無常) 또는 멸(滅)은 모든 행(行) 즉 유위법의 자상(自相)이 일어나고 머무르고 달라진 후 소멸하고 파괴되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54][1255]
즉, 무상(無常) 또는 멸(滅)은 여러 인연이 흩어져 법(존재, 현상) 즉 유위법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1256][1257][1258] 그리고 모든 유위의 존재 중에서도 특히 유정에 대해서 무게를 둔 표현으로, 유정의 5온 상속 중에 일어나는 태어남이라는 현상을 들어 모든 유위법이 가진 특징 중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뜻에서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과[1259][1260] 《대승오온론》[1261][1262] 등에서는 생을 중동분(衆同分, 유정의 동류상사성, 유형별 유정, 종)의 온갖 유위법의 상속이 무너지는 것[相續變壞] 또는 상속이 소멸하는 것[相續謝滅]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1263][1264][1265][1266]
또한,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무상(無常) 또는 멸(滅)을 유위법으로 하여금 현재에서 과거로 이전하게 하는 법,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67][1268][1269]
(85) 유전(流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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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불상응행법 15/24 유전 流轉 인과상속
산스크리트어: pravṛtti, pravṛtta
영어: continuity; continuous arising (of the store consciousness)[1270]
유전(流轉)은 인과상속(因果相續)이 끊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1271][1272] 즉, 원인과 결과의 연쇄고리가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유전연기 즉 혹 · 업 · 고 3도와 이것의 반대인 환멸연기를 말한다. 즉, 염오청정유전(染污清淨流轉)을 말한다.[1273][1274][1275]
유전(流轉)은 인과(因果)가 상속하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76][1277][1278][1279]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유전(流轉)을 인과의 상속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70]
(86) 정이(定異)
편집심불상응행법 16/24 정이 定異 인과차별, 인과가 뚜렷함
산스크리트어: pratiniyama, niyama
영어: distinction of good and evil (causes)[1280]
정이(定異)는 인과차별(因果差別) 즉 원인에 따른 결과가 혼란되지 않고 뚜렷한 것을 말한다.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를 말한다.[1281]
정이(定異)는 선인낙과 악인고과의 인과차별이 뚜렷한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82][1283][1284][1285]
선법을 행함에 의해 선업이 쌓이고 축적된 선업에 의해 마음에 드는 기쁜 과보[樂果]를 맞게 되며, 불선법을 행함에 의해 악업이 쌓이고 축적된 악업에 의해 고통스러운 과보[苦果]를 맞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역으로 선법에 의해 고통스러운 과보가 일어나거나 불선법에 의해 기쁜 과보가 일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뜻한다.[1286] 다만, 선법과 불선법의 총체의 결과가 삶이고 또한 세속(勢速)의 작용에 때문에, 현생에서 선법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현생의 삶에서 기쁜 과보가 당장 오지는 않는 일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불선법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운 과보가 당장 오지는 않는 일이 일어난다.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정이(定異)를 인과의 차별이 생기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280] 즉, 정이(定異)는 상응(相應)과 함께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의 법칙을 이룬다.
(87) 상응(相應)
편집심불상응행법 17/24 상응 相應 인과상칭, 인과상순, 인과가 호응함
산스크리트어: samprayukta
팔리어: sampayutta
영어: association; to be associated with; to be concomitant with; combination; to be bound together, existent together[1287][1288][1289]
상응(相應)은 인과상칭(因果相稱) 또는 인과상순(因果相順)을 말한다.[1290][1291][1292][1293] 예를 들어, 선법인 보시라는 원인과 그 자체로는 선법도 불선법도 아닌 무기법인 부유함이라는 결과가 서로 부르는[稱] 것, 서로 따르는[順] 것을 말한다. 즉, 종류가 서로 다른 원인과 결과가 호응하는 것을 말한다.[1294][1295][1296]
상응(相應)은 인과상칭 또는 인과상순의 현상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294][1295]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상응(相應)을 인과상칭 또는 인과상순의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상응(相應)은 정이(定異)와 함께 선인낙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의 법칙을 이룬다.
(88) 세속(勢速)
편집세속(勢速)은 인과(因果)의 유전(流轉)이 빠른 것을 말한다.[1298][1299][1300][1301]
세속(勢速)은 인과가 신속하게 유전하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02][1303][1304][1305]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세속(勢速)을 인과가 신속하게 유전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89) 차제(次第)
편집심불상응행법 19/24 차제 次第 인과에 순서가 있음, 인과가 단계적으로 진행됨
산스크리트어: anukrama, anupūrvam, krama
영어: order, precedence, sequence; sequential; in sequence, in turn, one after another[1306][1307]
차제(次第)는 인과(因果) 즉 모든 유위법이 전후의 순서에 따라 유전하는 것을 말한다.[1308][1309]
차제(次第)는 인과의 유전에 순서가 있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10][1311][1312][1313][1314]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차제(次第)를 인과가 하나하나 순서대로, 단계적으로 진행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90) 방(方)
편집방(方)은 물질적 공간, 즉, 색법에 속한 유위법이 차지하는 공간을 말한다.[1316][1317][1318]
방(方)은 색법에 속한 인과(因果) 즉 색법에 속한 유위법 즉 물질적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 즉, 물질적 존재의 동서남북 및 상하의 한계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19][1320][1321] 5온의 화합을 사람 또는 유정이라고 하는 것처럼 모든 물질적 존재의 화합 즉 총체를 물질 우주라고 할 때, 즉, 물질 우주를 어떤 한 존재(법)로 가립할 때, 물질 우주의 동서남북 및 상하의 한계가 곧 물질 우주의 공간[方]이다. 즉, 물질 우주의 체적 그 자체가 곧 물질 우주 공간이다.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방(方)을 색법에 속한 인과 즉 색법에 속한 유위법 즉 물질적 존재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장소 즉 공간이라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322][1323]
(91) 시(時)
편집시(時)는 시간을 말한다. 즉, 인과(因果) 즉 온갖 유위법의 상속과 유전을 말한다.[1325][1326][1327][1328]
시(時)는 유위법의 상속과 유전, 즉, 존재 또는 현상의 운동에 대해 '시간이라는 측정값'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29][1330][1331] 현재는 인과 즉 유위법이 이미 생겨났으나 아직 소멸하지 않는 것[已生未滅]이고, 과거는 이미 생겨난 후 이미 소멸한 것[已生已滅]이고, 미래는 아직 생겨나지 않는 것[未生]이다.[1332][1333]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시(時) 즉 시간을 인과의 상속과 유전이 있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달리 말해, 존재로 하여금 과거 · 현재 · 미래의 3세의 시간적 차별을 갖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326] 시간이 가법이라는 전제 하에 이러한 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실법이라고 보는 경우 이러한 견해의 극단에서, 그리스 신화의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같은 견해나 고대 인도의 아지비카(ājīvaka, 사명외도 邪命外道)의 운명론처럼, 인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간으로부터 만물이 나오고 시간이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지배한다는 견해가 생기게 된다.
(92) 수(數)
편집심불상응행법 22/24 수 數 개수, 숫자, 단위
산스크리트어: saṃkhyā, gaṇana, gaṇanā, saṃkhyeya
영어: number; to count; countable[1334]
수(數)는 개수 또는 숫자를 말한다.[1335][1336] 개수를 세거나 숫자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단위가 있어야 하므로, 수(數)는 단위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1337][1338]
수(數)는 온갖 유위법에 대해 단위를 세운 후 개수를 세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 단위를 세운 후 개수를 셀 수 있는 것을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1339][1340]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1337][1338]에서는 일일차별(一一差別) 즉 하나씩 하나씩 구별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예를 들어 '두 개의 유위법이 있다'고 할 때처럼 '두 개'라고 셀 때 이것은 이 두 유위법 각각이 개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두 유위법 각각이 '각기 달리 상속하는 실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현양성교론》 제1권에서는 유위법이 '각기 달리 상속하는 체상을 가지고서 유전하는 성질[各別相續體相流轉性]'이라고 표현하고 있다.[1341][1342]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수(數)을 유위법의 개수를 셀 수 있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93) 화합성(和合性)
편집심불상응행법 23/24 화합성 和合性 인연 화합, 인연이 모임
산스크리트어: sāmagrī
영어: harmonization, combination, joining, assembly[1343][1344]
화합(和合)이라고도 한다.
화합성(和合性)은 여러 필수적인 인연들이 모여서 유위법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한다.[1345][1346][1347][1348]
화합성(和合性)은 여러 필수적인 인연들의 화합에 의해 유위법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49][1350][1351][1352]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화합성(和合性)을 유위법이 이루지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또는 여러 인연들로 하여금 화합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353]
(94) 불화합성(不和合性)
편집심불상응행법 24/24 불화합성 不和合性 인연 불화합, 인연이 흩어짐
산스크리트어: asāmagrī, visāmagrī
영어: non-harmonization, non-combination, non-joining, non-assembly[1343][1344]
불화합(不和合)이라고도 한다.
불화합성(不和合性)은 여러 필수적인 인연들이 모이지 않아 유위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1354] 달리 말해, 필수적인 인연들이 흩어짐에 따라 유위법이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불화합성(不和合性)은 어떤 필수적인 인연의 결여에 의해 유위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55][1356]
또한, 이치, 원인 또는 작용의 관점에서 보아서, 불화합성(不和合性)을 필수적인 인연의 결여에 의해 유위법이 이루지지 못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 즉, 어떤 필수적인 인연으로 하여금 다른 필수적인 인연들과 화합하지 못하게 하는 법칙, 원인, 성질 또는 힘이라고도 한다.[1357][1358]
5. 무위법 (6 一 100)
편집무위법(無爲法)에는 총 6개의 법이 있다. 법의 누적 개수는 총 100개이다.
위의 여섯 개의 무위법을 6무위(六無爲)라고 한다.[1359][1360]
무위 또는 무위법은 본래 열반을 의미했다. 이후 교학이 발전하면서 3무위 · 6무위 · 8무위 · 9무위 등의 교의가 전개되었다.[1361][1362]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에서는 허공무위 · 택멸무위 · 비택멸무위의 3무위(三無爲)를 세운다.[1363][1364][1365][1366]
부파불교의 대중부(大衆部) · 일설부(一說部) · 설출세부(說出世部) · 계윤부(雞胤部)에서는 ① 택멸무위(擇滅無爲) ②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③ 허공무위(虛空無爲) ④ 공무변처무위(空無邊處無爲) ⑤ 식무변처무위(識無邊處無爲) ⑥ 무소유처무위(無所有處無爲) ⑦ 비상비비상처무위(非想非非想處無爲) ⑧ 연기지성무위(緣起支性無爲) ⑨ 성도지성무위(聖道支性無爲)의 9무위(九無爲)를 세운다.[1367][1368]
그리고 부파불교의 화지부(化地部)에서는 ① 택멸무위(擇滅無爲) ②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③ 허공무위(虛空無爲) ④ 부동무위(不動無爲) ⑤ 선법진여무위(善法眞如無爲) ⑥ 불선법진여무위(不善法眞如無爲) ⑦ 무기법진여무위(無記法眞如無爲) ⑧ 도지진여무위(道支眞如無爲) ⑨ 연기진여무위(緣起眞如無爲)의 9무위(九無爲)를 세운다.[1367]
부파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무위법은 유위법이 아닌 법, 즉, 인연의 화합과 불화합에 의한 생 · 주 · 이 · 멸의 4상(四相)의 변천이 없는 법을 말한다.[1369] 특히, 무루혜 즉 반야에 의해 번뇌가 단멸됨에 따라 증득되는 무위인 열반을 택멸무위라 한다.[1370][1362][1371] 설일체유부는 3무위 각각이 모두 실법이라고 본다.[1361][1362]
대승불교에서 무위법은 실법이 아닌 가법이다. 여러 무위법은 인무아와 법무아의 2무아를 완전히 깨쳤을 때, 즉, 아공과 법공의 2공을 완전히 깨쳤을 때, 즉, 아집과 법집의 2집을 완전히 단멸했을 때, 즉, 번뇌장과 소지장의 2장을 완전히 단멸했을 때 전면적으로 나타나는 법성(法性)의 일부 혹은 전체이다. 달리 말해, 여러 무위 또는 무위법은 법성(法性)을 그것의 일부 혹은 전체가 드러나게 하는 인연에 기대어 붙인 명칭이다.[1361] 즉, 일체법의 진실한 본질, 제법실상을 무위라고 한다. 그리고 무위는 오직 모든 번뇌를 단멸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에서만 전면적으로 드러난다.
《현양성교론》 제1권,[1372][1373]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1374][1375]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1376][1377]에 나타난 대승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6무위 중 진여무위(眞如無爲)는 선법진여무위(善法眞如無爲) · 불선법진여무위(不善法眞如無爲) · 무기법진여무위(無記法眞如無爲)의 3가지로 세분되어 8무위(八無爲)가 된다.
- 허공무위(虛空無爲)
- 택멸무위(擇滅無爲)
-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
-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 선법진여무위(善法眞如無爲)
- 불선법진여무위(不善法眞如無爲)
- 무기법진여무위(無記法眞如無爲)
(95) 허공무위(虛空無爲)
편집무위법 1/6 허공무위 虛空無爲 허공
산스크리트어: akāśâsaṃskṛta, ākāśa
영어: passive void, space or ether; noumenal space; space (being without obstruction) as unconditioned; absence of hindrance[1378]
《현양성교론》제1권에 따르면, 허공무위(虛空無爲)는 법성 즉 진여가 가진 경계의 성질[境界性], 즉, 공간적 성질 중 하나로서, 심법과 심소법 즉 마음과 마음작용이 외부의 색법 즉 물질을 만나서 대치(對治)하는 일이 일어나는 공간으로서의 성질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79][1380] 또는 《현양성교론》제2권과 《대승법원의림장》제4권에 따르면, 허공무위는 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을 뜻한다. 즉, 색계 제4선에서 물질[色]을 대치함으로써 무색계의 제1정인 공무변처정에 들어 깨닫게 되는 법성 즉 진여의 공적하고 한계 없음[空無邊]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81][1382][1383]
《대승아비달마집론》제1권, 《대승아비달마잡집론》제2권, 《대승백법명문론소》제2권에 따르면, 허공무위(虛空無爲)는 법성 즉 진여가 가진 무색의 성질[無色性], 즉, 비물질적인 성질 중 하나로서, 모든 업을 수용하는 성질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84][1385][1386][1387][1388]
《대승오온론》과 《대승광오온론》에 따르면, 허공무위(虛空無爲)는 법성 즉 진여가 모든 물질[色]을 수용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89][1390][1391][1392]
《성유식론》제2권, 《대승백법명문론해》제2권,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 《백법명문론직해》에 따르면, 허공무위(虛空無爲)는 법성 즉 진여가 모든 장애(障礙)를 떠난 성질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93][1394][1395][1396][1397][1398] 장애를 떠났다는 것은 《성유식론술기》제2권, 《삼장법수》제10권, 《백법명문론논의》와 현대 학자들에 따르면, 대체로, 장애 즉 번뇌가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인무아와 법무아의 2무아, 즉, 아공과 법공의 2공을 깨쳐서 증득하는 법성 즉 진여가 번뇌장과 소지장의 2장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을 비유로서 허공이라 이름함으로써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394][1399][1400][1401][1402][1403]
이상의 견해들을 요약하자면, 세친까지의 논서들에서는 허공이란 사물이 존재하는 절대 공간이라는 견해를 가졌고 세친 이후의 논서들에서는 허공이란 모든 번뇌를 벗어난 상태를 비유적으로 가리킨 것이라는 견해를 가졌다. 두 견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96) 택멸무위(擇滅無爲)
편집무위법 2/6 택멸무위 擇滅無爲 택멸, 반야로써 단멸시킴
산스크리트어: pratisaṃkhyā-nirodha
팔리어: patisaṅkhā-nirodha, paṭisaṃkhā-nirodha
영어: annihilation of defilements through the power of analysis; eliminating afflictions by the practice of analytical meditation; destruction of afflictions through analytical meditation as unconditioned[1404][1405]
택멸무위(擇滅無爲)는 지혜 즉 반야로써 번뇌를 단멸시켜 증득하는 열반을 말한다.[1406][1407][1408][1409][1410]
택멸무위(擇滅無爲)는 번뇌를 단멸시킴으로써 증득하게 되는 이계(離繫), 즉, '번뇌의 속박을 떠나게 된 상태', 즉, 열반, 즉, '법성 즉 진여의 번뇌 없음의 상태, 속박 없음의 상태, 장애 없음의 상태, 대자유의 상태'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11][1412][1413][1414][1415][1416][1417][1418][1419][1420][1421][1422][1423]
(97)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편집무위법 3/6 비택멸무위 非擇滅無爲 비택멸, 인연의 결여, 자성청정
산스크리트어: apratisaṃkhyā-nirodhāsaṃskṛta, apratisaṃkhyā-nirodha, apratisaṃkhyā
영어: cessation without analytical meditation; non-analytical cessation[1424][1425]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는 지혜 즉 반야로써 번뇌를 단멸시켜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 아니라 번뇌가 일어날 인연들 중 결여된 것이 있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26][1427][1428][1429][1430][1431][1432][1433][1434][1435][1436][1437][1438][1439]
또는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는 법성 즉 진여의 자성청정(自性清淨)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28][1429][1440][1441]
(98)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
편집무위법 4/6 부동멸무위 不動滅無爲 부동, 부동멸, 사(捨)의 상태
산스크리트어: āniñjya-asaṃskṛtā-dharma
영어: undisturbed; state of being unmoved by pleasure or pain; uncompounded phenomena of unfluctuating cessation[1442][1443]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는 괴로움에도 즐거움에도 치우치지 않는 사(捨)의 상태 즉 균형과 평정의 상태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44][1445]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는 색계 제3선의 선정에서 색계 제4선의 선정에 들어 증득하는 법성 즉 진여의 '균형과 평정'[捨]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46][1447][1448][1449][1450][1451][1452][1453]
(99)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편집무위법 5/6 상수멸무위 想受滅無爲 상수멸, 적정, 고요함
산스크리트어: aṃjñā-vedayita-nirodha-asaṃskṛta, nirodha-samāpatti-asaṃskṛta
영어: concentration of cessation of sensation of perception; mental functions of feeling and perception are extinguished[1454][1455]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는 멸진정(滅盡定)의 적정(寂靜) 즉 고요함을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57][1458][1459][1460]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는 무색계 제3천의 선정인 무소유처정에서 멸진정에 들어 증득하는 법성 즉 진여의 적정 즉 고요함, 즉, 6식과 그 마음작용이 소멸하고 말나식의 염오가 소멸된 고요한 선정 상태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61][1462][1463][1464][1465][1466][1467]
(100) 진여무위(眞如無爲)
편집무위법 6/6 진여무위 眞如無爲 진여
산스크리트어: tathatâsaṃskṛta
영어: thusness as unconditioned; real nature of all existences[1468]
진여무위(眞如無爲)는 선법 · 불선법 · 무기법 그 모두에서, 변하여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 허망한 것이거나 전도된 것이 아닌, 청정한 경계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69][1470][1471][1472][1473][1474][1475][1476]
진여무위(眞如無爲)는 인무아와 법무아의 2무아, 즉, 아공과 법공의 2공을 깨쳤을 때 증득되는 법성 그 자체를 가립하여 별도의 법으로 삼은 것이다.[1477][1478][1479][1480][1481]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五位百法(오위백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五位百法(오위백법)
법상종에서 일체 만유를 분류하여 심(心)ㆍ심소(心所)ㆍ색(色)ㆍ불상응행(不相應行)ㆍ무위(無爲)의 5종으로 하고, 심에 8법, 심소에 51법, 색에 11법, 불상응행에 24법, 무위에 6법을 세워 백법으로 함. ⇒심소(心所) - ↑ "백법[百法]",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백법[百法]
유식학(唯識學)에서, 모든 현상을 백 가지로 분류한 것.
동의어: 오위백법(五位百法) - ↑ 가 나 다 "五位百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5일에 확인:
五位百法
諸法的分類之一。俱舍宗立五位七十五法之說,而唯識(法相宗)則將一切法分類為五位百法。此百種事象並無實體,僅為分位而假立者。在百法中,心最殊勝,雖無物質對象,然由心而有變化對象之情形。心王中,除六識外,另有末那識與阿賴耶識。唯識之特色,即就百法彼此間之組合與關係,說明心之活動與現象,具體把握精神現象之多樣性與複雜性,且以分析之方法說明而加以理解,此即佛教對於心理之研究。
所謂百法,即:(1)心王,眼、耳、鼻、舌、身、意等六識,加上末那識、阿賴耶識,共計八種。(2)心所有法(心所),凡五十一種,概分為:①遍行(無善惡之性格而普遍現起於各場合之心),有作意、觸、受、想、思等五種。②別境(有特定對象所引起之心),有欲、勝解、念、定、慧等五種。③不定(由共同所起之心以分善惡,然其自體則無一定之性格),有悔、睡眠、尋、伺等四種。④善(即善心所),有信、慚、愧、無貪、無瞋、無癡、勤、輕安、不放逸、行捨、不害等十一種。⑤根本煩惱,有貪、瞋、癡、慢、疑、惡見等六種。⑥隨煩惱(上述煩惱與事相違時所應現而較輕之煩惱),有忿、恨、覆、惱、嫉、慳、誑、諂、害、憍、無慚、無愧、掉舉、惛沉、不信、懈怠、放逸、失念、散亂、不正知等二十種。(3)色(可變化,且有一定之空間,而與其他之物不能相容者),有眼、耳、鼻、舌、身等五根,與色、聲、香、味、觸等五對境,及意識對象之法處所攝色者,凡十一種。(4)心不相應法(不存於以上所述各法之中),有得、命根、眾同分、異生性、無想定、滅盡定、無想報、名身、句身、文身、生、老、住、無常、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方、時、數、和合性、不和合性等二十四種。(5)無為法(不假造作之法),有虛空、擇滅、非擇滅、不動滅、想受滅、真如等六種。上記五類百法中除無為法外,其餘四類均屬有為法。其分類係根據大乘百法明門論、成唯識論等所立者,而與諸論之說略異。例如瑜伽師地論卷一,於五十一種心所有法之外,另加邪欲、邪勝解二者。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於六種煩惱外,別立薩迦耶見、邊執見、見取見、戒禁取見、邪見等五種惡見。顯揚聖教論卷一,於十一種色法外,另加地、水、火、風等四大種。大乘五蘊論,於二十四種心不相應行中,僅列前十四項,流轉、定異等後十項則不舉。〔成唯識論卷七、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疏、大乘百法明門論解〕 p1440 - ↑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225.
Consciousness (citta), though divided into eighty-nine types, is regarded as one entity because all cittas have the same intrinsic nature — the cognizing of an object. - ↑ Bhikkhu Bodhi & Allan R. Bomhard (2007).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Charleston Buddhist Fellowship. p.63.
The last jhāna (that is, the fifth) totals twenty-three: The fifth jhāna considered as embracing both the last rūpajjhāna and the four arūpajjhānas thus comprises five each as wholesome, resultant, and functional (= 15) and eight as supramundane, for a total of twenty-three.
The thirty-seven wholesome and fifty-two resultants are obtained by replacing the four supramundane wholesome and resultant cittas with twenty each. Thus, the total number of cittas in the Compendium of Consciousness increases from 89 to 121.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4).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4, CBETA:
T31n1614_p0855b10║大乘百法明門論本事分中略錄
T31n1614_p0855b11║名數
T31n1614_p0855b13║ 天親菩薩造
T31n1614_p0855b14║ 大唐三藏法師玄奘譯
T31n1614_p0855b15║如世尊言。一切法無我。何等一切法。云何為
T31n1614_p0855b16║無我。一切法者。略有五種。一者心法。二者心
T31n1614_p0855b17║所有法。三者色法。四者心不相應行法。五者
T31n1614_p0855b18║無為法。一切最勝故。與此相應故。二所現
T31n1614_p0855b19║影故。三分位差別故。四所顯示故。如是次
T31n1614_p0855b20║第。第一心法略有八種。一眼識。二耳識。三鼻
T31n1614_p0855b21║識。四舌識。五身識。六意識。七末那識。八阿
T31n1614_p0855b22║賴耶識。
T31n1614_p0855b23║第二心所有法。略有五十一種。分為六位。一
T31n1614_p0855b24║遍行有五。二別境有五。三善有十一。四煩惱
T31n1614_p0855b25║有六。五隨煩惱有二十。六不定有四。一遍行
T31n1614_p0855b26║五者。一作意二觸三受四想五思。二別境五
T31n1614_p0855b27║者。一欲二勝解三念四定五慧。三善十一者。
T31n1614_p0855b28║一信二精進。三慚四愧。五無貪六無嗔七無
T31n1614_p0855b29║癡。八輕安九不放逸十行捨十一不害。四煩
T31n1614_p0855c01║惱六者。一貪二嗔。三慢四無明。五疑六不正
T31n1614_p0855c02║見。五隨煩惱二十者。一忿二恨。三惱四覆。
T31n1614_p0855c03║五誑六諂。七憍八害。九嫉十慳。十一無慚十
T31n1614_p0855c04║二無愧。十三不信十四懈怠。十五放逸十六
T31n1614_p0855c05║惛沈。十七掉舉十八失念。十九不正知二十
T31n1614_p0855c06║散亂。六不定四者。一睡眠二惡作。三尋四伺。
T31n1614_p0855c07║第三色法。略有十一種。一眼二耳三鼻四舌
T31n1614_p0855c08║五身。六色七聲八香九味十觸。十一法處所
T31n1614_p0855c09║攝色。
T31n1614_p0855c10║第四心不相應行法。略有二十四種。一得二
T31n1614_p0855c11║命根。三眾同分。四異生性。五無想定。六滅盡
T31n1614_p0855c12║定。七無想報。八名身九句身十文身。十一生
T31n1614_p0855c13║十二老。十三住十四無常。十五流轉。十六定
T31n1614_p0855c14║異。十七相應。十八勢速。十九次第。二十方。
T31n1614_p0855c15║二十一時。二十二數。二十三和合性。二十
T31n1614_p0855c16║四不和合性。
T31n1614_p0855c17║第五無為法者。略有六種。一虛空無為。二擇
T31n1614_p0855c18║滅無為。三非擇滅無為。四不動滅無為。五想
T31n1614_p0855c19║受滅無為。六真如無為。
T31n1614_p0855c20║言無我者。略有二種。一補特伽羅無我。二法
T31n1614_p0855c21║無我。 - ↑ 세친 조, 현장 한역(K.644, T.1614). 《대승백법명문론》:
대승백법명문론본사분중약록명수(大乘百法明門論本事分中略錄名數)
천친보살(天親菩薩) 지음
현장(玄奘) 한역
송성수 번역
세존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일체 법은 ≺나[我]≻가 없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일체 법이고 어떤 것을 ≺나≻가 없음이라 하는가 하면, 일체 법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의 법이고, 둘째는 마음이 지닌[心所法]이고, 셋째는 물질의 법이고, 넷째는 마음과 상응(相應)하지 않는 법이고, 다섯째는 함이 없는 법이다. 첫째는 일체에서 가장 수승하므로 이 법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타나는바 그림자 때문이고, 셋째는 분위(分位)의 차별이기 때문이고, 넷째는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차례이다.
첫째의 마음의 법에는 대략 여덟 가지가 있다. 안식(眼識)이 그 하나이고, 이식(耳識)이 그 둘이고, 비식(鼻識)이 그 셋이고, 설식(舌識)이 그 넷이고, 신식(身識)이 그 다섯이고, 의식(意識)이 그 여섯이고, 말나식(末那識)이 그 일곱이고, 아뢰야식(阿賴耶識)이 그 여덟이다.
둘째의 마음이 지닌 법이 대략 쉰 한 가지가 있어서 이것을 여섯 계위로 나누었다. 첫째는 두루 작용하는 것이 다섯 가지 있고, 둘째는 각각 다른 경계가 다섯 가지 있고, 셋째는 선한 것이 열한 가지 있고, 넷째는 번뇌가 여섯 가지 있고, 다섯째는 딸린 번뇌[隨煩惱]가 스무 가지 있고, 여섯째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 네 가지이다.
맨 처음 두루 작용하는 것의 다섯 가지란, 뜻을 지음이 그 하나이고, 닿임이 그 둘이고, 느낌이 그 셋이고, 상상이 그 넷이고, 지혜가 그 다섯이다.
다음 각각 다른 경계의 다섯 가지란, 욕심이 그 하나이고, 수승한 견해[勝解]가 그 둘이고, 기억하는 것이 그 셋이고, 선정이 그 넷이고, 지혜가 그 다섯이다.
다음 선한 것의 열한 가지란, 믿음이 그 하나이고, 정진이 그 둘이고, 제부끄러움이 그 셋이고, 남부끄러움이 그 넷이고, 탐욕이 없음이 그 다섯이고, 진실이 엇음이 그 여섯이고, 우치가 없음이 그 일곱이고, 경쾌하고도 편안함이 그 여덟이고, 방일(放逸)하지 않음이 그 아홉이고, 버림을 행함이 그 열이고, 해치지 않음이 그 열하나이다.
넷째 번뇌의 여섯 가지란, 탐욕이 그 하나이고, 진심이 그 둘이고, 교만이 그 셋이고, 무명(無明)이 그 넷이고, 의혹이 다섯이고, 바르지 못한 소견이 그 여섯이다.
다섯째 딸린 번뇌의 스무 가지란, 분노[忿]가 그 하나이고, 원한[恨]이 그 둘이고, 고뇌가 그 셋이고, 덮음이 그 넷이고, 속임이 그 다섯이고, 아첨이 그 여섯이고, 난체함이 그 일곱이고, 해침이 그 여덟이고, 질투가 그 아홉이고, 간탐이 그 열이고, 제부끄러움 없음이 그 열하나이고, 남부끄러움 없음이 그 열둘이고, 믿지 않음이 그 열 셋이고, 게으름이 그 열 넷이고, 방일함이 그 열다섯이고, 혼침함이 그 열여섯이고, 들뜸이 그 열일곱이고, 기억을 잃어버림이 그 열여덟이고, 바르게 알지 못함이 그 열아홉이고, 산란함이 그 스물이다.
여섯째 결정되지 않은 것의 네 가지란, 수면(隨眠)이 그 하나이고, 뉘위침이 그 둘이고, 머트러운 생각이 그 셋이고, 세밀한 생각이 그 넷이다.
셋째의 물질의 법이 대략 열한 가지가 있으니, 눈이 그 하나이고, 귀가 그 둘이고, 코가 그 셋이고, 혀가 그 넷이고, 몸이 그 다섯이고, 빛이 그 여섯이고, 소리가 그 일곱이고, 냄새가 그 여덟이고, 맛이 그 아홉이고, 닿임이 그 열이고, 법의 곳에 섭수되는 물질이 그 열하나이다.
넷째의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이 대략 스물네 가지가 있다. 얻음이 그 하나이고, 생명의 뿌리[命根]가 그 둘이고, 중동분(衆同分)이 그 셋이고, 범부의 성품[異生性]이 그 넷이고, 생각 없는 선정[無想定]이 그 다섯이고, 아무것도 없는 선정[滅盡定]이 그 여섯이고, 생각 없는 과보[無想報]가 그 일곱이고, 명신(名身)이 그 여덟이고, 구신(句身)이 그 아홉이고, 문신(文身)이 그 열이고, 나는 것이 그 열 하나이고, 늙는 것이 그 열둘이고, 머무는 것이 그 열셋이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 열넷이고, 유전하는 것이 그 열다섯이고, 결정코 다른 것이 그 열여섯이고, 상응하는 것이 그 열일곱이고, 형세의 빠른 것이 그 열여덟이고, 차례가 그 열아홉이고, 방위가 그 스물이고, 때[時]가 그 스물 하나이고, 수(數)가 그 스물 둘이고, 화합하는 성품이 그 스물 셋이고, 화합하지 않는 성품이 그 스물넷이다.
다섯째의 함이 없는 법이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허공의 함이 없음이 그 하나이고, 택멸(擇滅)의 함이 없음이 그 둘이고, 간택하거나 판정하는 것이 비택멸(非擇滅(의 함이 없음이 그 셋이고, 부동멸(不動滅)의 함이 없음이 그 다섯이고, 진여의 함이었음이 그 여섯이다. 말하자면 ≺나≻없음이란 것이 대략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중생의 ≺나≻없음이고, 둘째는 법의 ≺나≻ 없음이 그것이다. - ↑ 세친 조, 당 현장 역, 규기 주해.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7월 11일에 확인.
- ↑ "五位百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5일에 확인: 所謂百法,即:(1)心王,眼、耳、鼻、舌、身、意等六識,加上末那識、阿賴耶識,共計八種。
- ↑ "五位百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5일에 확인:
心王中,除六識外,另有末那識與阿賴耶識。 - ↑ "眼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眼識
Basic Meaning: visual consciousness
Senses:
Faculty of vision; the consciousness that arises depending on the physical organ of the eye 眼根 and the presence of visual objects 色境. It is one of the five sense consciousness 五識, one of the six object-concomitant consciousnesses 六識, as well as one of the eight overall consciousnesses 八識 (Skt. vijñāna-cakṣus, cakṣur-vijñāna-dhātu, cakṣus, cakṣur-vijñāna; Pāli cakkhu-viññāṇa; Tib. mig gi rnam shes, mig gi rnam par shes pa). 〔瑜伽論 T 1579.30.279a24〕 [Charles Muller; source(s): Ui, Hirakawa, Nakamura, YBh-Ind, JEBD - ↑ 가 나 다 라 마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T31n1602_p0480c16║眼識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於眼
T31n1602_p0480c17║根與彼俱轉。緣色境界了別為性。如薄伽梵
T31n1602_p0480c18║說。內眼處不壞外色處。現前及彼所生作意
T31n1602_p0480c19║正起如是所生眼識得生。又說緣眼及色眼
T31n1602_p0480c20║識得生。如是應知。乃至身識。此中差別者。謂
T31n1602_p0480c21║各依自根各緣自境。各別了別一切應引。如
T31n1602_p0480c22║前二經。 - ↑ 가 나 다 라 마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안식(眼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41) 안근에 의지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展轉)한다. 빛깔ㆍ형태[色]42)의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了別]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박가범께서 “내부의 안처(眼處)43)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색처(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作意)44)가 바로 생기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안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또한 “눈과 빛깔ㆍ형태를 연(緣)으로 하여 안식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나아가 신식까지도 그렇게 알아야 한다.45) 이 중에서 차이는 각각 자신의 감관에 의지하고 각각 자신의 경계를 반연하여 각각 다르게 분별한다는 점이다. 모두 인용한다면 앞에서 말한 두 경전과 같다.46)
41) 아뢰야식의 등류종자(等流種子)로부터 전변생기(轉變生起)함을 말한다. 안식~말나식의 칠식을 전식(轉識)이라 이름한다. 그 이유는 중유(中有:죽는 순간의 존재인 死有로부터 태어나는 순간의 존재인 生有까지의 존재)의 상태에서는 칠식이 아뢰야식에 등류습기(等流習氣)의 상태로 저장되어 있으며, 새로운 생을 받았을 때 이 습기로부터 전변 생기하기 때문이다.
42) 여기서의 ‘색(色)’은 ‘물질’이란 뜻이 아니고, 안식의 대상으로서의 색경(色境)이다. 색(色, rūpa)에는 색법으로서의 ‘물질’이란 뜻도 있고, 안식의 대상인 색경(色境)으로서의 ‘빛깔ㆍ형태’의 의미도 있다. 그런데 색경을 ‘빛깔’로만 번역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색경에는 빛깔[顯色]과 형태[形色]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런 구분이 필요한 경우 번거롭더라도 ‘빛깔ㆍ형태’로 번역하기로 한다.
43) 12(處) 가운데 안근처(眼根處)를 가리킨다. 십이처설의 안근에는 감관으로서의 안근(眼根)뿐만 아니라 안식(眼識)도 포함하는 용어이다.
44) 5변행심소(遍行心所) 중의 작의(作意) 심소를 가리킨다.
45) 이식(耳識)부터 신식(身識)까지는 안식에 대한 설명과 같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식의 경우 “이식(耳識)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이근에 의지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한다. 소리의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함을 체성으로 삼는다”가 생략된 것이다
46) 이식부터 신식까지 감관과 경계를 모두 말한다면 앞의 안식의 경우와 같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식의 경우는 “박가범께서 ‘내부의 이처(耳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성처(聲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가 바로 생기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이식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또한 ‘귀와 소리를 연(緣)으로 하여 이식이 생겨난다’고 말한다”는 내용이 생략된 것이다. - ↑ "眼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眼識
梵語 cakṣur-vijñāna,巴利語 cakkhu-viññāṇa。即以眼根為所依,了別色境之識,隨根而立名。五識之一,六識之一,十八界之一。眼根雖有二處,眼識則唯一。大毘婆沙論之正義,以眼根能見色,而立「眼根見」之說;法救主張眼識能見色,而立「眼識見」之說;唯識家則立「根識和合見」之說。其中,有部宗之本義,世稱眼見家;對此,大眾部法救等論師則稱為識見家。唯識家以萬法為唯識所變現,眼識與色之相分相合,產生分別,故其識顯現似色之識。〔大毘婆沙論卷十三、卷七十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成唯識二十論述記卷上〕(參閱「眼根」5988)p5989 - ↑ "眼識(안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眼識(안식)
【범】 cakṣur-vijñāna 5식의 하나. 모양ㆍ빛깔 등을 분별하고 아는 작용. 시각(視覺). - ↑ "안식[眼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안식[眼識]
육식(六識)의 하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참조어
육식 - ↑ "耳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耳識
Basic Meaning: auditory consciousness
Senses:
This, based on the faculty of hearing, cognizes the objects of sound (Skt. śrota-vijñāna; Pāli sota-viññāṇa; Tib. rna ba'i rnam shes). One of the six consciousnesses 六識.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YBh-Ind, JEBD] - ↑ "耳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耳識
梵語 śrotra-vijñāna,巴利語 sota-viññāṇa。音譯戍縷多毘若南。乃六識之一,十八界之一。指以耳根為所依,了別聲境之識。耳識與眼識,皆唯住於欲界、初靜慮等二地,耳根及所依之身同在聲境,而通於欲界及四靜慮等五地。故耳識生於欲界,即以自地之耳聽聞自地之聲,以初靜慮乃至二、三、四靜慮地之耳,聽聞欲界地等之聲;若生於色界初靜慮乃至二、三、四靜慮地,則以自地乃至二、三、四靜慮地之耳,聽聞各自地乃至二、三、四靜慮及欲界地等之聲。於十八界中,稱為耳識界。〔品類足論卷一、識身足論卷六、雜阿毘曇心論卷一、順正理論卷八〕(參閱「耳根」3149)p3151 - ↑ "耳識(이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耳識(이식)
【범】 śrotravijñāna 6식(識)ㆍ8식의 하나. 이근(耳根)에 의하여 생겨서 소리를 듣고, 비(悲)ㆍ희(喜)ㆍ고(苦)ㆍ낙(樂) 등을 분별하는 정신작용. 청각(聽覺). - ↑ "이식[耳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이식[耳識]
육식(六識)의 하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참조어
육식 - ↑ "鼻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鼻識
Basic Meaning: olfactory consciousness
Senses:
The sensation, or perception of smell. One of the five and six consciousnesses 五識/六識. Its bases and objects are basically the same as the other sense consciousnesses, but it differs from them in the fact of its function being limited to the desire realm 欲界. 〔觀心覺夢鈔 T 2312.71.66b4〕 (Skt. ghrāṇa-vijñāna, ghrāṇavijñāna; Pāli ghāna-viññāna; Tib. sna'i rnam shes; Tib. sna'i rnam par shes pa) 〔瑜伽師地論 T 1579.30.279a25〕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YBh-Ind, JEBD, Hirakawa] - ↑ "鼻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鼻識
梵語 ghrāṇa-vijñāna,巴利語 ghāna-viññāna。五識之一,六識之一,十八界之一。即以鼻根為所依,了別香境之心識。鼻識通於欲界,不通於色界,以色界無段食之性,故無香境,不能成就鼻識。阿毘達磨大毘婆沙論卷七十二(大二七‧三七三上):「問:『鼻、香、鼻識界,為必同繫?為亦有異繫耶?』答:『如是三種唯有同繫,謂欲界鼻、欲界香生欲界鼻識。』」〔雜阿毘曇心論卷一、俱舍論卷二、順正理論卷四、瑜伽師地論卷一、品類足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五識」1580)p7471 - ↑ "鼻識(비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鼻識(비식)
6식(識)의 하나. 코[鼻根]에 의지하여 일어나서 냄새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심식(心識). 냄새를 맡는 기관(器官)이니 곧 후각(嗅覺). - ↑ "비식[鼻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비식[鼻識]
육식(六識)의 하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참조어
육식 - ↑ "舌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舌識
Basic Meaning: gustatory consciousness
Senses:
Taste perception. The fourth of the six object-bound forms of consciousness 六識 taught in Abhidharma and one of the eight forms of consciousness 八識 in Yogâcāra. It depends upon the organ of the tongue and its function is to discern various tastes (Skt. jihvā-vijñāna; Pāli jivhā-viññāna; Tib. lce'i rnam par shes pa). 〔瑜伽論 T 1579.30.279a25〕 [Charles Muller; source(s): Ui,Nakamura, Soothill, JEBD, YBh-Ind] - ↑ "舌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舌識
梵語 jihvā-vijñāna,巴利語 jivhā-viññāna。五識之一,六識之一,八識之一。以舌根為所依,以味境為所緣,而產生「味」之了別作用,稱為舌識。(參閱「八識」467、「五識」1580、「六識」1706)p3186 - ↑ "舌識(설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舌識(설식)
6식의 하나. 혀에 의하여 온갖 맛을 분별하는 심식(心識). 곧 미각(味覺). - ↑ "설식[舌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설식[舌識]
육식(六識)의 하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참조어
육식 - ↑ "身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身識
Basic Meaning: bodily consciousness
Senses:
Tactile consciousness. Cognition of the objects of touch, one of the five forms of cognition 五識. Its function is to discern all varieties of physical contact (Skt. kāya-vijñāna; Tib. lus kyi rnam par shes pa). 〔瑜伽論 T 1579.30.279a25〕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YBh-Ind, JEBD, Hirakawa] - ↑ "身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身識
梵語 kāya-vijñāna,巴利語 kāya-viññāna。五識之一,六識之一,十八界之一。以身根為所依而了別觸境之心識。觸境有地、水、火、風、滑性、澀性、重性、輕性、冷、饑、渴等十一種。復次,關於眼、耳、鼻、舌、身等五色根(即勝義根)所依之大種是否為身識所緣,大毘婆沙論卷一二七舉出兩種說法,一說五色根不可觸,故不發身識,因而所依之大種於現在亦無發身識之義;一說身根所依之大種極為鄰近,故不能發身識,其他色根之大種則皆得為身識之所識。又身根所依之大種,為其他身識所緣之境,故亦得名為身識之所識。此外,繫屬於欲界之身識,通善、不善、無記等三性;在色界初禪,身識與修所斷之煩惱相應,攝於有覆無記;在無色界,以無所依之根成就,故不生身識。〔識身足論卷三、卷六、品類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七十一、卷七十三、雜阿毘曇心論卷一、俱舍論卷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大種」1174、「五識」1580)p3807 - ↑ "身識(신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身識(신식)
【범】 kāyavijñāna 5식(識)ㆍ6식ㆍ8식의 하나. 객관 대상을 촉경(觸境)으로 하고 이를 분별하여 아는 작용. 곧 몸으로써 바깥 경계와 접촉하여 분별 인식하는 감각. - ↑ "신식[身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신식[身識]
육식(六識)의 하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참조어
육식 - ↑ 가 나 "意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意識
Basic Meaning: thinking consciousness
Senses:
Mental consciousness; discriminating consciousness.
In Yogâcāra, the sixth (mano) consciousness 第六識 among the eight consciousnesses 八識 (Skt. mano-vijñāna; Tib. yid kyi rnam par shes pa, yid kyi rnam shes, yid kyi rnam śes). It is understood to arise based on the organ of thought—the manas consciousness 末那識. It is a form of conscious awareness like the five sense organs, whereas the eighth, ālaya and seventh, manas constitute the subconscious regions of the mind. In Abhidharma Buddhism, theories regarding the structure of consciousness were only worked out to the level of this mano consciousness. But the Yogâcāra masters, realized that this consciousness—which is subject to interruptions in such mental states as deep sleep, deep meditation, fainting, and death—cannot serve as a basis for the human mind. Hence they posited the existence of deeper regions of the mind, including as the ālaya 阿賴耶識 and manas.
Among the eight forms of consciousness, the mano shows the widest range of functionality. First, it functions to gather and discriminate the sense data derived from the five sense consciousnesses 五識, thus discriminating all the aspects of the environment 境. It also works with past and future objects, recalling the past and planning for the future. Apart from its direct interaction with the senses, the mano is understood to be the locus of perception 知覺, emotional feelings 感情, thinking/deliberation 思考, and intention 意志. Since the mano includes within it these operations of consciousness, it is also the case that it also hosts the majority of afflictions and cognitive errors. Also, since it arises depending on the manas, it shares many of the afflictions of the manas.
In soteriological terms, the mano plays a vitally important role. Although it shares with the manas in being a locus for the operation of mental disturbances, since the manas is a subconscious region, it is almost impossible for a practitioner to deal with these afflictions at the level of the manas. Therefore, one has no recourse but to deal with affliction at the level of conscious thought—the mano consciousness.
[Charles Muller; source(s): Ui,Nakamura,YBh-Ind, JEBD,Yokoi,Iwanami]
In the Awakening of Faith, this term refers to attachment which arises based on consciousness. Even though the mano consciousness is not different from the continuing consciousness 相續識 (that textʼs equivalent to the manas), the continuing consciousness is subtle, while the mano consciousness is coarse, and so the mano consciousness can be interpreted as the more manifest function of the continuing consciousness. 〔起信論 T 1666.32.577c〕 [Charles Muller]
In the Vajrasamādhi-sūtra, the present aspect of the mano consciousness; see 心意意識. [Charles Muller]
(Skt. mano-indriya; manaś-citta, manas, mano-vijñāna-dhātu, mānasa, vijñapti, vijñāna, samanask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27║意
T31n1602_p0480c28║識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於意根與
T31n1602_p0480c29║彼俱轉。緣一切共不共法為境了別為性。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의식’은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의근(意根)52)에 의지하며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한다. 일체의 공법(共法)과 불공법(不共法)을 반연하여 대상으로 삼아서53) 분별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52) 6식은 식별작용을 하므로 모두 의지처로서의 감관[所依根]을 갖는다. 안식에 있어서 안근이 있음과 마찬가지로 의식에 있어서도 의근을 거론한다. 그런데 이 의근(意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비달마불교 시대에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것이 후대에 말나식 이론 성립의 한 계기가 되었다. 설일체유부 등에서는 의근이란 ‘찰나 생멸하는 식의 흐름 속에서 전찰나의 6식(無間滅意)’을 의미했다. 유식학파에서는 제7 말나식이 있음으로 해서 의근이 있게 되고, 이 의근을 의지하여 의식이 생기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53) 의식의 대상은 법경(法境)으로서 유위(有爲)ㆍ무위(無爲)의 온갖 존재[法]를 대상으로 한다. 외부의 감각대상뿐만 아니라 감관을 초월한 대상이나 내면의 정신세계도 인식대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다른 것과 공통되는 것을 공법(共法)이라 하고, 다른 것과 공통되지 않은 것을 불공법(不共法)이라 부른다. 예를 들면 산하대지(山河大地) 같은 것은 공법이고, 자기의 신체ㆍ정신과 같은 것은 불공법이다. 좀 더 구분하면 산하대지 같은 것은 공중(共中)의 공(共)이고, 자기의 가옥ㆍ정원과 같은 것은 공통되면서 실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에 한해서 수용하므로 공중불공(共中不共)이다. 또한 개인의 신체와 같은 것은 불공이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수용하는 것이므로 불공중공(不共中共)이며, 개인의 정신 같은 것은 불공중불공(不共中不共)이다. - ↑ "意識(의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意識(의식)
6식(識)의 하나. 8식의 하나. 의근(意根)에 의한 식이란 뜻. 곧 제6식, 제7말나식에 의속(依屬)한 식, 물심(物心)의 모든 현상의 총상(總相)을 요별(了別)함이 그 성능(性能). 의식은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날 적, 무상정(無想定)을 얻을 적, 멸진정(滅盡定)에 들 적, 숙수시(熟睡時), 민절시(悶絶時)를 제하고는 다른 때에는 언제든지 기존(起存). - ↑ "意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意識
(一)梵語 mano-vijñāna。六識(或八識、九識)中之第六識。在西洋哲學中視之為「能把握客觀對象之心機能」。廣義言之,即吾人所有諸種經驗,從原始之感覺至高度之思考均包括在內。凡能統攝多種經驗內容之作用,皆稱為意識。至於意識與物質之關係,乃哲學上之核心問題,觀念論(唯心論)否定物質之獨立性,視意識(思考、精神)為一切之根源;反之,唯物論視意識為物質(存在、自然)之產物。佛教則將精神分為三:(1)心(梵 citta,集起),即精神之主體。(2)意(梵 manas,思量)。(3)識(梵 vijñāna,了別),即精神之作用。意識所附帶微細之精神作用(心所),雖有各種類別,但與心、意、識能完全把握對象之綜合性精神作用(心王)仍有其區別。狹義而言,意識即指六識或八識中之第六識。意識與物質界、現象界之關係,在大乘佛教,以唯識宗為典型代表,特別強調物質界為意識所現,此即佛教所謂之唯心論,而非存在論立場所謂之唯心論,乃係自實踐論立場來強調心之整體性,不主張心和意識為唯一之存在。故知佛教所謂之心,並無實體可得(無自性),此為佛教教義之根本原理。
蓋依唯識宗之說,眼、耳、鼻、舌、身等前五識各緣色、聲、香、味、觸等五種對境,然此五識僅由單純的感覺作用來攀緣外境,而不具有認識、分別對境之作用;第六意識始具有認識、分別現象界所有事物之作用,故又稱分別事識;乃前五識共同所依據者,故又稱意地。五識即須與此第六識共同俱起,方能了別對境。又以五識僅能各緣自境,故又稱各別境識;意識則能遍緣一切境,舉凡對內對外之境,不論有形無形,皆可廣緣,或過去、現在、未來三世,皆可亙及,具有比知、推測之作用,故又稱一切境識、廣緣識。
唯識宗又將意識分為五俱意識與不俱意識兩種。(1)五俱意識,與前五識並生,明了所緣之境,故又稱明了意識。復可分為:①五同緣意識,係與前五識俱起,且緣同一對境之意識。②不同緣意識,雖與前五識俱起,然緣其他之異境。(2)不俱意識,不與前五識俱起,而係單獨發生作用之意識。亦分二種:① 五後意識,雖不與前五識俱起並生,然亦不相離而續起。②獨頭意識,有定中、獨散、夢中等三種之別。1.定中意識,又稱定中獨頭意識。係與色界、無色界等一切定心俱起之意識,乃禪定中發生之意識活動。2.獨散意識,又稱散位獨頭意識。係指脫離前五識而單獨現起,追憶過去、預卜未來,或加以種種想像、思慮等計度分別之意識。3.夢中意識,又稱夢中獨頭意識。乃於睡夢中朦朧現起之意識作用。又上記之外,亦有將意識概分為明了意識、定中意識、獨散意識、夢中意識等四種,並稱為四種意識。
要言之,第六意識乃八識中最猛利、最敏捷者,具有自由自在之能力,三界九地,一切迷悟昇沉之業,無一不由此意識所作。
又第七識為末那識,末那之梵語為 manas,意譯為「意」,思量之義,若採取意譯,則易與第六意識混同。然此二識於梵語原文中皆有「意識」之意,此因第六識乃以末那識為所依,故知第六識之所以稱為「意」者,即由「依意之識」而來;第七之末那識,其原文 manas,則表示「意即是識」,其識之本身即名為「意」。此乃兩者名義接近、所依與作用迥別,而一用音譯、一用意譯之緣故。〔大毘婆沙論卷七十一、俱舍論卷二、卷三、成唯識論卷七、大乘起信論、俱舍論光記卷二、卷三、百法問答鈔卷一〕(參閱「四種意識」2331)
(二)眼、耳、鼻、舌、身、意等六識之全部,亦統稱為意識。p6858 - ↑ "意根(의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意根(의근)
[1] 6근(根)의 하나. 전념(前念)의 6식이 멸하고, 후념(後念)의 6식이 일어날 의거가 되는 점으로 전념의 6식을 말함. 5식에는 5근이 있는 것같이, 의근은 특히 제6 의식의 근거할 데를 말함. 이를 의계(意界) 또는 의근계(意根界)라 하는 것은 『구사론(俱舍論)』의 말. 우리의 마음을 전념ㆍ후념에 나누고, 전념의 8식 심왕(心王)을 말함. 이것이 후념에 일어날 온갖 심적(心的) 현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 또 제7 말나식(末那識)을 제6 의식의 가장 가까운 근거라는 의미로 하는 말은 『유식론(唯識論)』의 말.
[2] 22근의 하나. 6식과 의근과의 7심계(心界)를 말함. - ↑ "意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意根
(一)梵語 mana-indriya。六根之一,二十二根之一。「根」為能生之義。六根中之前五根所對之境為四大(地、水、火、風)所形成之色法;意根所對之境則為心法,對法境即產生意識。(參閱「六根」1674)
(二)又作意地。即指第六識。(參閱「意識」6858)p6855 - ↑ "六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六根
梵語 ṣaḍ indriyāṇi。又作六情。指六種感覺器官,或認識能力。為十二處之內六處,十八界之六根界。根,為認識器官之意。即眼根(視覺器官與視覺能力)、耳根(聽覺器官及其能力)、鼻根(嗅覺器官及其能力)、舌根(味覺器官及其能力)、身根(觸覺器官及其能力)、意根(思惟器官及其能力)。前五種又稱五根。五根乃物質上存在之色法,即色根。有二種之別,生理器官稱為扶塵根,以四大為體,對取境生識僅起扶助作用;實際起取境生識作用者稱為勝義根,以四大所生淨色為性。對此,意根則為心之所依生起心理作用之心法,即無色根。據有部之說,前剎那之六識落謝於過去,意根即是引起次剎那六識之等無間緣。故六識之作用,須常以意根為所依(通依)。然前五識除依意根之外,另有特定之根為其所依(別依);意識則僅依意根,並無其他特定之根。瑜伽行派等則由唯識義上說六根,主張六根、六境均為內識所變。又六根可視為我人之身心全體,如法華經說讀誦、書寫經典,六根即可清淨。〔俱舍論卷一至卷三、成唯識論卷一、順正理論卷六、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參閱「五根」1493、「六境」1691、「六識」1706、「根」5204)p1674 - ↑ "意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意根
Basic Meaning: faculty of thought
Senses:
Mental faculty; also written 意界 and 意根界. At the time of the cessation of the sixth, thinking consciousness 六識, the locus for the production of the next instance of this consciousness. The basis of the sixth consciousness; one of the six faculties 六根 (Skt. manêndriya; Tib. yid kyi dbang po). One of the twenty-two faculties 二十二根 (Skt. mano-dhātu, manas, mana-indriya; Tib. yid kyi dbang po).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Hirakawa, YBh-Ind, Yokoi, Iwanami]
In the Suvarṇa-prabhāsa-sūtra, the mental faculty in Mahāyāna doctrine is identified with the manas: 「大乘意根, 卽是末那.」 〔金光明經 T 663.16.340a18〕 [Charles Muller] - ↑ "意根",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意根
辭典解釋 :
解釋[1]
:
六根之一。見六根條。
出處
: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2]
:
The mind-sense, or indriya, the sixth of the senses; v. 六處.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3]
:
謂意於五塵境界,若好若惡,悉能分別也。(五塵者,色塵、聲塵、香塵、味塵、觸塵也。)
出處
: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4]
:
瑜伽五十二卷一頁云:若此六識為彼六識等無間緣;即施設此名為意根。亦名意處。亦名意界。
二解法蘊足論九卷四頁云:何意根?謂意於法,已正當知,及彼同分;是名意根。又意增上,發意識;於法已正當了別、及彼同分;是名意根。又意於法,已正當礙,及彼同分;是名意根。又意於法,已正當行,及彼同分;是名意根。如是過去未來現在諸所有意、名為意根;亦名所知,乃至等所證。此復云何?謂心意識,或地獄,乃至或中有,或修所成,所有名號異語增語想等想施設言說,謂名意,名意處,名意界,名意根,名知,名道路,乃至名此岸。如是意根,是內處攝。
出處
: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5]
:
意根 (yì gēn) ( “mental faculty” )
{《漢語大詞典》7.642a(清代)} ; {《大漢和辞典》4.1115a(佛典)} ;
Dharmarakṣa: {122a18} 菩薩、大士如來滅度後,若持斯經,諷讀、解説,得千二百意根清淨徳(p)
{K.372.1} mana-indriya~
Kumārajīva: {L.50a20} 意
Dharmarakṣa: {122a19} 其人則以清淨意根,靡不貫暢。聞一頌者,所究彌廣,多所達了(p)
{K.372.1} do.
Kumārajīva: {L.50a20} 意根
Dharmarakṣa: {122a29}
{K.373.1} do.
Kumārajīva: {L.50b1} 意
Dharmarakṣa: {122b18}
{K.374.5} do.
Kumārajīva: {L.50b17} 意根
出處
:
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相近字
:
意根千二百功德 [w] , 意根壞 [w] , 意根律儀 [w] , 意根於二處增上 [w] , 意業 [w] , 意有二種 [w] , 意有三種差別 [w] , 意有三種壞 [w] , 意有三種 [w] , 意於未轉依位與十八心所相應 [w] - ↑ 가 나 "末那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末那識
Basic Meaning: (Skt. manas)
Senses:
Consciousness; mentation. The seventh of the eight consciousnesses 八識 taught in Yogâcāra; translated into Chinese as 意 and as 思量識. As the consciousness that localizes experience through thinking, its primary function is to perceive the subjective position of the eighth consciousness 阿賴耶識 (ālayavijñāna) and construe it as oneʼs own self, thereby creating self-attachment. It is characterized in the Cheng weishi lun as 'continually examining and assessing' 恆審思量 (T 1585.31.7b28). Much of its function is similar to the sixth consciousness 意識 (mano-vijñāna), but whereas the latter has interruptions 間斷, the manas functions 24/7 without lapse. The ālayavijñāna, on the other hand, while being continuous, does not discriminate. Not consciously controllable, the manas is said to give rise to conscious decisions in regard to individual survival, and to incessant self-love. Since it can also be called the movement of the human mind that sees the limits of human variation from within, it is necessary that for their basis of existence, humans have some fundamental thing that unceasingly continues and changes, serving as the ground for the sixth consciousness. As the Yogâcārabhūmi-śāstra says: 「末那任持意識令分別轉 是故說爲意識所依」 〔瑜伽論 T 1579.30.651c4〕 .
This consciousness is also theorized as the connecting realm between the mano-consciousness 意識 and the ālayavijñāna. The so-called origin of delusion, it is also called the 'stained mind,' (Skt. kliṣṭa-manas), being associated with the four fundamental, subconscious afflictions of self-delusion 我癡, self-view 我見, self-conceit 我慢, and self-love 我愛. See also 七識十名.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Yokoi, JEBD, Iwanami]
Monier-Williams says: "mind (in its widest sense as applied to all the mental powers), intellect, intelligence, understanding, perception, sense, conscience, will. (in phil. the internal organ or [ antaḥ-karaṇa ] of perception and cognition, the faculty or instrument through which thoughts enter or by which objects of sense affect the soul." [Charles Muller]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23║意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還緣彼識。我
T31n1602_p0480c24║癡我愛我我所執我慢相應。或翻彼相應。於
T31n1602_p0480c25║一切時恃舉為行。或平等行與彼俱轉。了別
T31n1602_p0480c26║為性。如薄伽梵說。內意處不壞外法處。現前
T31n1602_p0480c27║及彼所生作意正起。如是所生意識得生。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의(意)’47)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며, 돌이켜 그 식을 반연한다.48) 아치(我癡), 아애, 나ㆍ나의 것이라는 집착, 아만과 상응한다.49) 혹은 반대로 그것이 상응한다.50) 어느 때나 자신만만하고 뽐내는 것을 행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평등히 행하여 그것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분별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박가범께서 “내부의 의처(意處)가 무너지지 않고 외부의 법처(法處)가 현전하며, 그리고 그것에서 생겨나는 작의가 바로 일어난다.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 의(意)라는 식51)이 생겨나게 된다”고 말씀한 바와 같다.
47) 제7 말나식을 가리킨다. 말나식(末那識)은 의식의 저변에서 작용하며, 나ㆍ내것이라는 작용을 일으키는 심층적 자아의식이다. 말나(末那)는 범어 manas의 음역으로서 사량(思量)이란 뜻이다. 사량작용이 강한 것이 이 식의 특성이므로 말나식이라 이름한다.
48) 의(意) 즉 제7 말나식의 의지처[所依]와 인식대상[所緣]을 밝히는 내용이다. 전식(轉識)인 말나식은 근본식인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며, 동시에 아뢰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는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는 ‘나ㆍ내것’이라는, 본능과도 같은 집요한 자아의식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의식이 없을 때도 의식의 저변에서는 이런 자아의식이 작동된다. 이렇게 강하고 집요한 자기 집착심을 갖게 되는 근본원인은, 바로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고 또한 인식대상으로 함으로써 자아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아(自我, ātman)란 ‘상일주재성(常一主宰性)’을 띠는 인격적 실체를 말한다. 그런데 아뢰야식은 아득한 옛적부터 끊임없이 그 흐름이 상속된다. 그 안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 때문이다. 그러한 아뢰야식을 인식대상으로 하는 말나식의 측면에서 볼 때, 아뢰야식은 ‘항상되고[常] 유일한 것[一]’으로 착각된다. 또한 아뢰야식은 근본식으로서 칠식을 비롯해서 모든 현상적 존재가 그것을 의지처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에 ‘주재’한 것으로 오인된다. 말나식의 측면에서는 아뢰야식이 그런 속성을 띠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하여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자아로 착각하여 ‘나’ ‘내것’이라는 자아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이긴 하지만, 악업의 종자도 저장되어 있으므로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가아(假我)의 속성이지 진아(眞我)가 아니다.
49) 말나식은 아치(我痴)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네 가지 근본번뇌와 상응한다. 말나식은 대상을 자기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왜곡되게 인식하는 ‘이기성(利己性)의 제2 능변식(能變識)’이다.
50) 심왕과 심소는 서로 상응관계에 있다.
51) 원래 인도 유식논서에서 이 식의 명칭은 ‘의(意)라 이름하는 식’(manonāma-vijñāna)인데, 중국에서 불전을 번역할 때 의역(意譯)하면 ‘의식(意識)’이 되어 제6 의식과 명칭이 혼동되므로 음역어를 사용해서 ‘말나식’으로 부른 것이다. 또는 본문과 같이 ‘의(意)’라 하기도 한다. - ↑ "말나식[末那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말나식[末那識]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남.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동의어: 제칠식 - ↑ "五位無心",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五位無心
無分別識心生起,稱為無心位,亦即諸轉識不現起之時。此係法相宗針對第六意識暫時間斷之時所立之五種無心之位。此五種無心位即:無想天(梵 āsaṃjñika)、無想定(梵 asaṃjñi-samāpatti)、滅盡定(梵 nirodha-samāpatti)、極重睡眠(梵 acittaka)、極重悶絕(梵 mūrcchā)。即:(1)無想天,於色界之第四禪天共有八天,其中第三天(廣果天)之別處即為無想天。若於生前修無想定者,可藉厭離「粗想」之力而生於此天。一旦生於此天中,則除初生之時與命終之時暫時有想之外,其餘中間之五百大劫,其不恆行之六識及心所皆斷絕不起,無心無想,受無心之果報。(2)無想定,為生於無想天之因,乃異生凡夫(外道或凡夫)為生於無想天而修習之無心三昧。於色界之第三禪天共有三天,其中最後一天為遍淨天。若已伏滅遍淨天之貪,而未伏滅第四禪天以上之染污時,生起出離想之作意(即厭離低下之土而欣想彼天之果)而入此定,其時,不恆行之心及心所悉皆斷滅,即第六識心王、五遍行、五別境、十一善等,共二十二法全部斷滅。(3)滅盡定,唯有聖者能得,係一種無漏之無心定。聖者修定時,生起以止息想作意而入此定。其時,不僅斷滅不恆行之六識,且恆行染污之七識及與之相應之五遍行、別境之慧、我癡、我見、我慢、我愛等四煩惱與八隨煩惱等,共十九法全部斷滅。以七日為極限。(4)極重睡眠,是因極度疲乏之緣所引起。眾生睡眠之時,眼耳鼻舌等六識昏昧,不能見聞覺知,故亦屬無心之位。(5)極重悶絕,係因風熱等之緣所引起。眾生驚倒悶絕之時,六識昏昧,見聞覺知一時頓息。又於此極重睡眠、極重悶絕二位中,六識皆不現行。氣絕時亦無意識,屬悶絕之最極,故應攝入極重悶絕。要言之,處此五位,六識及其相應之心所皆不現行,故稱無心。此外,五位之中,異生凡夫有四,即除滅盡定以外之四者。聖者僅有三,即滅盡定、睡眠及悶絕;其中,如來及自在菩薩無睡眠及悶絕,故僅有滅盡定一者。另於瑜伽師地論卷十三亦舉出六位無心說,即於此五位加上「無餘依涅槃界」。〔瑜伽師地論卷六十三、瑜伽師地論釋、成唯識論述記卷七本、成唯識論掌中樞要卷下末〕 p1441 - ↑ "末那識(말나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末那識(말나식)
【범】 manas 8식의 하나. 제7식이라고도 한다. 말나가 곧 식으로서 제6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하여 범어대로 말나식이라 한다. 8식이 모두 사량(思量)하는 작용이 있으나, 이 식은 특별히 항(恒)과 심(審)의 두 가지 뜻을 함께 가지고 있어, 다른 7식보다 나은 것이므로 말나(意)라 한다. 제8식을 소의(所衣)로 하고, 제8식의 견분(見分)을 반연하여 그것으로써 자내아(自內我)라고 사량ㆍ집착하며, 모든 미망(迷妄)의 근본이 되는 식(識). 제7식과 상응(相應)하는 것은 아치(我癡)ㆍ아견(我見)ㆍ아만(我慢)ㆍ아애(我愛)의 4번뇌, 5변행(遍行)ㆍ별경(別境)의 혜(慧)ㆍ대수혹(大隨惑)의 8이다. - ↑ "末那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末那識
末那,為梵語 manas 之音譯,意譯為意,思量之義。唯識宗將有情之心識立為八種,末那識即為八識中之第七識。為恆執第八阿賴耶識為「我」之染污識。為與第六意識(梵 mano-vijñāna,意之識,乃依末那之識)區別,而特用梵語音譯稱為「末那識」。此識恆與我癡、我見、我慢、我愛等四煩惱相應,恆審第八阿賴耶識之見分為「我、我所」而執著,故其特質為恆審思量。又此識為我執之根本,若執著迷妄則造諸惡業,反之,則斷滅煩惱惡業,徹悟人法二空之真理,故稱染淨識,又稱思量識、思量能變識。且其自無始以來,微細相續,不用外力,自然而起,故其性質為「有覆無記」;乃不引生異熟果,卻能覆聖道、蔽心性。
法相宗依修行階段之淺深,而在末那識中立三位,稱為末那三位,即:(1)補特伽羅(梵 pudgala,即人)我見相應位,為末那識緣第八阿賴耶識而起人我見之位。如凡夫、二乘之有學、七地以前之菩薩等有漏心位。(2)法我見相應位,為末那識緣第八異熟識起法我見之位。此乃指凡夫、二乘及未得法空智果之菩薩位而言。(3)平等性智相應位,乃起無漏平等性智之位,即菩薩以法空觀入見道,又於修道位起法空智果及佛果。以上三位之中,前二位屬有漏之位,第三位則屬無漏之位。
又依成唯識論卷五載,末那識之存在,可引用入楞伽經、解脫經二種教說,及六種道理證明之,此謂「二教六理」。二教,即:(1)入楞伽經卷九謂,思量之性,名意。(2)解脫經謂,染污意恆時與諸惑俱生滅。六理,即:(1)不共無明證,謂第六識之作用雖有間斷,凡夫不共無明,則恆無間斷而相續,故須有末那識。(2)六二緣證,前五識以前五根為所依,以前五境為所緣,第六意識亦須有末那識作為其所依之意根。(3)意名證,末那名意,因係恆審思量,故末那識必須恆存。(4)二定差別證,聖者所入之滅盡定與外道所入之無想定有所區別,因滅盡定無末那識,而無想定有末那識之存在。(5)無想有染證,修無想定而得生之無想天,雖無第六意識,但仍有我執,故須有末那識。(6)有情我不成證,凡夫行布施等善,不會成為無漏,無法脫離我執,乃因有末那識之故。〔入楞伽經卷八、瑜伽師地論卷六十三、顯揚聖教論卷一、成唯識論卷四、成唯識論述記卷四末、卷五本、卷五末、成唯識論樞要卷下、大乘義章卷三末〕 p2512 - ↑ "阿賴耶識",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阿賴耶識
Basic Meaning: ālayavijñāna
Senses:
Transliteration of the Sanskrit, meaning store consciousness. (Tib. kun gzhi rnam shes pa). The 'store-house' consciousness, a distinctive concept of the Yogâcāra school 瑜伽行派 of Buddhism, originated in 3–5th century CE India and closely associated with the treatises of the ācāryas Asaṅga 無著 and Vasubandhu 世親.1
The notion of the store consciousness arose out of early problems surrounding the continuity of both karmic potential and the afflictions (kleśa; nyon mongs; 煩惱) in a latent state (anuśaya; bag la nyal ba; 隨眠) that had been generated by the Abhidharma emphasis upon momentary processes of mind. How, after all, could these two essential components of saṃsāric existence, which are eliminated only toward the end of the path, continuously persist if oneʼs mental stream (saṃtāna; rgyud; 相續) were comprised solely of whatever dharmas (chos; 法) were momentarily present and manifest in mind?2 The ālayavijñāna thus came to denote the mental processes that underlie each and every moment of the traditional six forms of manifest cognitive awareness (pravṛtti-vijñāna; 'jug pa'i rnam par shes pa; 轉識, 六識)—a term coined to distinguish it from the continuous yet subliminal 'ālaya' (阿賴耶) or 'home' awareness. Consonant with traditional definitions of cognitive awareness (vijñāna; rnam par shes pa; 轉識), the ālaya awareness is said to dependently arise based, on the one hand, on both the material sense faculties and the cognitive and affective formations (saṃskāra; 'du byed; 行), which comprise oneʼs sentient existence, as well as, on the other hand, its own specific object, an indistinct (asaṃdvidita; aparicchinna) apprehension of an external world (bhājana-loka; snod kyi 'jig rten; 器世間). Moreover, the ālaya awareness is said to 'grow, develop and increase' —also like traditional forms of vijñāna (S II 65, 67, 101; III 54)—by the seeds of karma (bīja; sa bon; 種子) and the impressions (vāsanā; bag chags; 熏習) of the afflictions which have accumulated 'since beginningless time' through the various experiences of conscious awareness (pravṛtti-vijñāna).
Although this subliminal ālaya awareness thus enjoys a continuously evolving and reciprocal relationship with active aspects of consciousness, it still reflects—in Indian Buddhist scholasticism at least—its original function as the central locus of accumulated karmic potential and latent afflictions, effectively constituting oneʼs saṃsāric existence and serving as the virtual 'subject' of saṃsāra (also not unlike earlier notions of vijñāna). It is for this reason that ignorant beings typically mistake the ālaya awareness as their self (ātman; bdag; 我), a form of ignorance and self-grasping that was thought to so continuously and subliminally arise that it too came to be considered a distinctive mental process, called 'afflictive mentation' (kliṣṭa-manas; nyon mongs pa can gyi yid; 染汚意) and considered in the Chinese tradition as the seventh consciousness, with the ālayavijñāna as the eighth 第八識.
Commensurate with these multiple functions, the ālayavijñāna is denoted by a variety of synonyms, most importantly: the root consciousness (mūla-vijñāna; rtsa ba'i rnam par shes pa) 本識), the 'mind with all the seeds' (sarvabījaka-citta; sa bon thams cad pa'i sems; 一切種子識), and the appropriating consciousness (ādāna-vijñāna; len pa'i rnam par shes pa; 阿陀那識).
Although in its systematic descriptions in early Yogâcāra treatises such as the Yogâcārabhūmi 瑜伽論 and the Mahāyāna-saṃgraha 攝大乘論, the ālaya-vijñāna is largely commensurate with other Indian Buddhist notions of consciousness (vijñāna) (indeed it was specifically couched in Abhidharmic terms), the very metaphors used to describe it—as a repository consciousness that receives and stores the karmic seeds which thereafter serve as the cause (hetu; rgyu; 因緣) of conscious experience—seem to have invited its interpretation as a reified entity, as an unchanging mind which serves as the sole basis, the primordial ground, from which the entire phenomenal world arises. And this in spite of the fact that Indian Yogâcāra doctrine itself explicitly and repeatedly states that taking the ālayavijñāna as a self (ātmadṛṣṭi; bdag tu lta ba; 我見) is one of the main causes of accumulating karma and perpetuating saṃsāric existence!
This tendency seems to be particularly pronounced in certain later Chinese and Tibetan traditions, but was no doubt exacerbated by the identification—in a different set of texts such as the Laṅkâvatāra-sūtra 楞伽經 and, later and more importantly,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of the ālayavijñāna with the tathāgata-garbha (de bzhin gshegs pa'i snying po 如來藏), the womb or matrix of the Tathāgata. Although this identification was unquestioned in most later forms of Chinese Buddhism (aided, no doubt, by an early translation of the ālayavijñāna as the 'store' consciousness 藏識, the first character of which, 藏, was also the standard translation of garbha), it is not found in the standard treatises of Indian Yogâcāra Buddhism. The sixth-century Indian translator Paramârthaʼs response to this discrepancy was to preserve the ālayavijñāna as a defiled, eighth consciousness, which must be eliminated upon awakening, while interpolating into his texts an additional, undefiled, ninth consciousness, an amala-vijñāna (阿摩羅識), which persists after the ālayavijñāna is eliminated. One of Xuanzangʼs 玄奘 aims in retranslating such Yogâcāra texts as the Yogâcārabhūmi and the Mahāyāna-saṃgraha was to recover the earlier, and to his mind more orthodox, sense of the ālayavijñāna as the locus of defiled existence unrelated to the notion of the tathāgata-garbha. Similar developments occurred in Tibetan schools associated with the doctrine of 'extrinsic emptiness' (gzhan stong), who self-consciously departed from Indian Yogâcāra models and posited a primordial ālaya wisdom (kun gzhi ye shes) apart from defiled and discursive forms of vijñāna (rnam shes).
These varying notions of post-nirvanic forms of consciousness, typically expressed in Mahāyāna traditions as a transformation from vijñāna into jñāna, reflect similar ambiguities found in the earliest collections of Buddhist teachings, in which the consciousness of a Buddha or Arhat, for example, is no longer bound by grasping or appropriation (anupādāna), but is said to be 'nonabiding' or 'unsupported' (appatiṭṭhita-viññāṇa; D III 105; S I 122; S II 66, 103; S III 54; 無住, 無依).
In sum, this core Yogâcāra concept touches upon some of central-most concerns of Buddhist soteriology and analysis of mind, but its interpretations vary radically depending upon which school, which text, and which time period one is investigating.
[William Waldron]
The ālayavijñāna has a variety of connotative synonyms that describe its various aspects, including: 有情根本之心識 the fundamental mind-consciousness of sentient beings; 無沒識 inexhaustible mind, because none of its seeds are lost; 現識 manifesting mind, because all things are revealed in or by it; 種子識 seeds mind, as it is made up of nothing but karmic seeds; 所知依識 the basis of all knowledge; 異熟識 differential maturing consciousness, because it is the locus for the differentiated maturation of karma; 執持識 or 阿陀那 appropriating consciousness, as that which holds together, or is the reification for another rebirth; 第一識 the prime or supreme mind or consciousness; 宅識 abode (of) consciousness. In the interpretations derived from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and so forth, it is known as the 無垢識 unsullied consciousness, i.e. the Tathāgata. 〔成唯識論 T 1585.31.7c15〕 [Charles Muller]
The Cheng weishi lun also describes the ālayavijñāna as 'store' as having three connotations: 'storer,' 'that which is stored,' and 'that which is appropriated.' See 藏三義. [Charles Muller]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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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uwallner, Erich. 1951. “ Amalavijñānam und ālayavijñānam .” In Festschrift Walther Schübring: Beiträge zur indischen. Philologie und Alterkumskunde. Hamburg: 148–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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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iwa, Gishin. 1974. “The ālayavijñāna of the śraddhôtpāda.”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Tokyo: 23.1 18–23.
Waldron, William S. 1994. “How Innovative is the Ālayavijñāna? The Ālayavijñāna in the Context of Canonical and Abhidharma Vijñāna Theory, Part I.” Journal of Indian Philosophy 22 199–258.
----. 2003. The Buddhist Unconscious: The ālaya-vijñāna in the Context of Indian Buddhist Thought. London: RoutledgeCur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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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Muller]
Notes
1. The apparent synonym 阿梨耶識 usually has special connotations, so that entry needs to be consulted when that form of Chinese is used.[back]
2. See the entry 間斷[back]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3║阿賴耶識者。謂先世所作增長業煩惱為緣。
T31n1602_p0480c04║無始時來戲論熏習為因。所生一切種子異
T31n1602_p0480c05║熟識為體。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아뢰야식(阿賴耶識)’21)이란 전생에 지어서 증장된 업과 번뇌를 조건[緣]으로 하고 아득한 옛적부터의 희론의 훈습을 원인으로 하여 생기(生起)된 일체종자의 이숙식(異熟識)22)을 자체로 삼는다.
21) 정신세계의 가장 심층에서 작용하는 식으로서, 현대 서구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無意識)의 영역에 해당된다. 이 식을 또한 아타나식ㆍ이숙식ㆍ종자식ㆍ근본식ㆍ장식(藏識)ㆍ제8식 등으로 부르는데, 아뢰야식이란 명칭이 일반적이다. 아뢰야(阿賴耶)는 범어 ālaya의 음역어로서 저장ㆍ집착ㆍ무몰(無沒)이란 뜻이다.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제7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해탈에 이를 때까지는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기’ 때문에 아뢰야식이라 부른다. 참고로 말하면 아타나식(阿陀那識)이라 부르는 이유는, 아다나(ādāna)가 ‘유지, 보존’의 뜻이고, 이 식이 종자와 신체를 유지 보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종자식(種子識)이라 함은 능히 모든 종자를 저장 유지하여 잃지 않게 하기 때문이며 일체종자식이라고도 한다. 근본식(根本識)이라 함은 칠식이 윤회과정에서 이 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로부터 전변 생기되며, 이후 종자를 매개로 상호인과의 관계에서 마치 파도와 바닷물의 관계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장식(藏識)이라 함은 능히 모든 종자를 저장하고, 훈습을 받아들이며, 경험세계 속에서 그것을 발생한 아뢰야식이 원인으로서 내재되고, 말나식이 자아로 착각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22) 제8식을 이숙식(異熟識, vipāka-vijñāna)이라고도 부른다. 그 이유는 이 식이 선ㆍ악업 종자의 세력에 의해 초감(招感)된 총보(總報)의 양상으로서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을 띠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기성을 띠므로 아뢰야식은 선업이나 악업의 갖가지 종자를 모두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이숙(異熟, vipāka)이란 ‘과보[報]’라는 뜻인데, 선(善)이나 악의 업인(業因)에 의해 초래된 결과는 선ㆍ악이 아닌 무기(無記)이므로 이숙(異熟)이라 이름한다. 선업에 의해 낙과(樂果)가 초래되고, 악업에 의해 고과(苦果)가 오지만, 일단 결과가 초래된 뒤에는 그것은 무기성을 띠기 때문이다. 즉 결과는 새로운 출발이 된다. - ↑ "희론[戱論]",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희론[戱論]
산스크리트어 prapañca
① 대상을 분별하여 언어로 표현함. 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② 허구적인 관념을 실재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마음 작용. 마음 속으로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지어냄.
③ 허망한 언어. 무의미한 말. 헛소리. 관념. - ↑ "戲論",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戲論
梵語 prapañca。謂錯誤無意義之言論。即違背真理,不能增進善法而無意義之言論。佛遺教經(大一二‧一一一二上):「汝等比丘!若種種戲論,其心則亂,雖復出家,猶未得脫。是故比丘!常急捨離亂心戲論,若汝欲得寂滅樂者,唯當善滅戲論之患,是名不戲論。」瑜伽師地論卷九十一(大三O‧八一五上):「此中能引無義思惟分別所發語言,名為戲論。何以故?於如是事勤加行時,不能少分增益善法,損不善法,是故說彼名為戲論。」
中論卷三觀法品分戲論為愛論與見論兩種。愛論謂於一切法取著之心,見論為於一切法作決定解。鈍根者起愛論,利根者起見論;在家者起愛論,出家者起見論;天魔起愛論,外道起見論;凡夫起愛論,二乘起見論。
佛性論卷三述及三種、九種戲論。三種為:(1)貪愛,(2)我慢,(3)諸見。九種為:(1)通計我,(2)約計是我,(3) 計我應生,(4)計我不更生,(5)計我有色應生,(6)計我無色應生,(7)計我有想應生,(8)計我無想應生,(9)計我非想非非想應生。
佛遺教經論疏節要說二種戲論:(1)於真實之理生戲論,(2)於世間之事生戲論。此外,中觀論疏卷一亦列舉五種戲論。〔中論卷一觀因緣品、大日經疏卷五〕(參閱「愛論見論」6869) p8064 - ↑ "戲論",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戲論
Basic Meaning: conceptual elaboration
Senses:
(Idle) discourse; ideational proliferation; metaphysical speculation; intellectual frivolity; intellectual play. According to Nāgârjuna 龍樹, words that conceal and cover reality, which are nothing but subjective counterfeits, and lead sentient beings further into ignorance and affliction (ant.→ deśanā). Many of the better-known Mahāyāna canonical texts from various philosophical streams—including Madhyamaka and Yogâcāra texts, the Lotus Sutra and others, offer their own definitions and categorizations of this important concept (Skt. prapañca; abhilāpya, ākhyāyaka, ākhyāyakêtihāsa, prapañcanā, prapañcita, pralāpa, vyāhāra kathā; Tib. smra ba, spros pa).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JEBD, Yokoi]
Discrimination 分別. [Charles Muller] - ↑ "妄想(망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妄想(망상)
5법의 하나. 심식(心識)의 분별. 이 분별은 헛된 것이고 참되지 못하므로 이같이 말한다. - ↑ "妄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妄想
梵語 vikalpa。又作分別、妄想分別、虛妄分別、妄想顛倒。與「妄念」、「妄執」等語同義。即以虛妄顛倒之心,分別諸法之相。亦即由於心之執著,而無法如實知見事物,遂產生謬誤之分別。
據宋譯楞伽經卷二舉出十二種妄想:(1)言說妄想,謂計著種種妙音歌詠之聲,而認為其有自性。(2)所說事妄想,謂凡所說之事,窮其自性,唯聖者所知,凡愚不了,僅依彼事而生言說。(3)相妄想,謂隨事而起見,於一切法相,虛妄計著。(4) 利妄想,謂樂著世間種種財利,不知其物本為虛幻而起貪著。(5) 自性妄想,謂執持諸法,起自性之見,以自為是,餘皆為非。(6) 因妄想,謂於因緣所生之法,起有、無等見,妄想分別而形成生死之因。(7) 見妄想,謂於五陰等法,妄計有無、一異,起諸邪見,執著分別。(8) 成妄想,謂於假名實法上,計度我、我所而起言說,成決定論。(9) 生妄想,謂妄計一切法,若有若無,皆從緣起而生分別。(10) 不生妄想,謂妄計一切法皆先有自體,不假因緣而生。(11)相續妄想,謂於一切諸法,執著此與彼遞相繫屬,無有斷絕。(12)縛不縛妄想,謂於一切法,以情生著之故,則成繫縛,若離妄想,則無繫縛,凡夫不了,而於此無縛解中產生計著。
此外,菩薩地持經卷二真實義品則舉出自性、差別、攝受積聚、我、我所、念、不念、俱相違等八種妄想。大佛頂首楞嚴經卷十,舉出堅固、虛明、融通、幽隱、罔象虛無等五種妄想。〔舊華嚴經卷五、大佛頂首楞嚴經卷一、觀普賢菩薩行法經、宋譯楞伽經卷四、瑜伽師地論卷三十六、佛性論卷二、注維摩詰經卷三、大乘義章卷三、卷五〕p2942 - ↑ "妄想",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妄想
Basic Meaning: delusive conceptualization
Senses:
Conceptualization, or discrimination, esp. of that which is not real. Illusory thought (Skt. kalpita, vikalpa, dalpanā, abhūta-vikalpa; vikalpita, parikalpita; Tib. 'du shes ngan pa). 〔大智度論 T 1509.25.64a9〕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YBh-Ind, JEBD,Yokoi]
To plan, scheme or project; to worry or brood about. [Charles Muller]
(Skt. kalpa, parikalpa, parikalpanā, prativikalpa, prativikalpana, prativikalpanā, prapañca, mithyā, *mṛṣā-vikalpa, rāga-doṣa, vikalpana, viṭhapana, vitatha-saṃjñin, vibhāvanā)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妄想",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妄想
辭典解釋 :
解釋[1]
:
妄想 Mistaken thought or conceptualization. Incorrect thought. Discrimination; that which is discriminated (kalpita, parikalpita).
解釋[3]
:
虛妄的思想。
出處
: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4]
:
妄想者,分別虛妄之念也。謂由前名、相二法,起分別心;認假名為自己,執幻相為本身,則有心、心數法,種種攀緣,是為妄想也。(心即心王,心數法即受想行等法也。)
出處
: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5]
:
妄想 (wàng xiǎng) ( “an illusory thought, illusion” )
{《漢語大詞典》4.279a(楞嚴經)} ; {《大漢和辞典》3.641c(楞嚴經)} ;
Dharmarakṣa: {72c15} (the sentient beings)志懷愚癡 起於 妄 (v.l. 望) 想 設吾説法 少有信者 憍慢自大 不肯啓受(v)
{K.57.7} nimitta-saṃjñin~
Kumārajīva: {L.10a17} 著相
出處
:
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解釋[6]
:
===(術語)不當於實曰妄,妄為分別而取種種之相曰妄想。註維摩三:「生曰:妄想妄分別之想也。」大乘義章三本曰:「凡夫迷實之心,起諸法相。執相施名,依名取相。所取不實,故曰妄想。」同五末曰:「謬執不真,名之為妄。妄心取相,目之為想。」楞嚴經一曰:「一切眾生,從無始來,生死相續,皆由不知常住真心性淨明體。用諸妄想,此想不真,故有輪轉。」楞伽經四曰:「妄想自纏,如蠶作繭。」觀無量壽經曰:「行者所聞,出定之時,憶持不捨,令與修多羅合。若不合者,名為妄想。」菩提心論曰:「夫迷途之法從妄想生,乃至展轉成無量無邊煩惱。」止觀七曰:「諸法皆妄想和合故有。」
出處
:
丁福保《佛學大辭典》
相近字
:
妄染 [w] , 妄染熏習 [w] , 妄法 [w] , 妄盡還源觀 [w] , 妄稱沙門梵行 [w] , 妄情 [w] , 妄念 [w] , 妄心觀 [w] , 妄心薰習 [w] , 妄心 [w] - ↑ "阿賴耶識(아뢰야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阿賴耶識(아뢰야식)
【범】 ālaya vijñāna 8식(識)의 하나. 9식의 하나. 불교 유심론의 하나인 뢰야연기(賴耶緣起)의 근본 되는 식. 진제 등은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고, 현장은 장식(藏識)이라 번역. 앞의 것은 아(阿)를 짧은 음으로 읽어 아는 무(無), 뢰야는 멸진(滅盡)ㆍ몰실(沒失)이라 번역하여 멸진ㆍ몰실하지 않는 식이라 한 것이고, 뒤의 것은 아를 긴 음으로 읽어 가(家)ㆍ주소(住所)ㆍ저장소(貯藏所)의 뜻이 있으므로 장식이라 한 것임. 『성유식론』 제2에 의하면, ‘장’에 세 가지 뜻을 들었으니, (1) 능장(能藏). 만유를 내는 친인(親因)은 종자를 갊아 두는 식이란 뜻. (2) 소장(所藏). 8식 중 다른 7식에 의하여 염법(染法)의 종자를 훈습하여 갊은 식이란 뜻. (3) 집장(執藏). 제8식은 오랜 때부터 없어지지 않고 상주하므로 자아(自我)인 듯이 제7식에게 집착되는 식이란 뜻. 그러나 이 가운데서 주로 집장의 의미로 장식이라 하므로 아애집(我愛執)이 일어나지 않을 때에 이르면 아뢰야란 이름이 없어짐. 또 다른 이름으로 법상종에서는 불도 수행의 도정을 3분하여, 아뢰야(阿賴耶)ㆍ비파가(毘播迦)ㆍ아타나(阿陀那)의 이름을 붙임. 아뢰야는 제7 말나(末那)가 제8식을 자아의 존재처럼 집착하는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 비파가는 이숙(異熟)이라 번역하니 선악의 업으로 인하여 받은 자리에서의 제8식의 이름. 아타나는 부처님 지위에서의 제8식의 이름. 이미 자아의 집착이 없어지고 또 업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물질과 마음의 여러 법을 발현케 하는 종자와 5근(根)을 집지상속(執持相續)하는 자리의 제8식이므로 아타나(執持)라 함. 이식은 종자(이 식 속에 갊은 깨끗하거나 더러운 세계를 발현할 수 있는 세력) 5근ㆍ기세간(器世間)을 소연(所緣)으로 하기 때문에 각자의 아뢰야로써 우주 만유를 전개하는 근본이라 하고, 현상인 실재를 말하는 진여연기론에 대하여, 진여를 본체로 하고 진여에 즉하지 아니한 가유(假有)의 현상을 인정하여 뢰야연기론을 이루게 된 것임. ⇒장식(藏識)ㆍ제이능변(第二能變) - ↑ "아뢰야식[阿賴耶識]",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아뢰야식[阿賴耶識]
약어 뇌야(賴耶), 뇌야식(賴耶識)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 의식.
동의어: 아려야식(阿黎耶識), 아리야식(阿梨耶識), 연식, 소장, 소지의, 장식(藏識), 제팔식, 중생심, 화합식, 진이숙, 집기심, 비파가
참조어
여야식(黎耶識), 무몰식(無沒識) - ↑ "阿賴耶識",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3일에 확인:
阿賴耶識
阿賴耶,梵語 ālaya 之音譯。為八識(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等識)之一,九識(八識及阿摩羅識)之一。又作阿羅耶識、阿黎耶識、阿剌耶識、阿梨耶識。略稱賴耶、梨耶。舊譯作無沒識,新譯作藏識。或作第八識、本識、宅識。無沒識意謂執持諸法而不迷失心性;以其為諸法之根本,故亦稱本識;以其為諸識作用之最強者,故亦稱識主。此識為宇宙萬有之本,含藏萬有,使之存而不失,故稱藏識。又因其能含藏生長萬有之種子,故亦稱種子識。
此外,阿賴耶識亦稱初剎那識、初能變、第一識。因宇宙萬物生成之最初一剎那,唯有此第八識而已,故稱初剎那識。而此識亦為能變現諸境之心識,故亦稱初能變。由本向末數為第一,故稱第一識。由於有阿賴耶識才能變現萬有,故唯識學主張一切萬有皆緣起於阿賴耶識,此亦為唯心論之一種。至於阿賴耶識為清淨之真識,或染污之妄識,乃佛學界所爭論之一大問題。
據攝大乘論本卷上所引增一阿含經之說,及俱舍論卷十六所引契經(或即指雜阿含經)之說,可知阿賴耶思想之萌芽,源於原始佛教時代。據轉識論、攝大乘論本卷上、佛本行集經卷三十三、俱舍論卷十六、大毘婆沙論卷一四五等所舉,部派佛教時代之諸師皆依愛欲緣起說,將阿賴耶解釋為愛著、貪愛,或為愛、樂、欣、喜等。然至大乘佛教時代,則先後有馬鳴造大乘起信論以論釋阿賴耶識之義,彌勒、無著、世親等亦分別造論闡述唯識緣起說,以一切萬有皆緣起於阿賴耶識,遂成立唯識哲學之思想系統。其中,無著依阿毘達磨大乘經、解深密經等,解說第八根本識(阿賴耶識)為有情總報之果體,並於所著顯揚聖教論卷十七中,舉出八種理由以論證阿賴耶識之存在。
無著於其另一著作攝大乘論本卷上,將阿賴耶識分為自相、因相、果相三種,並提出迷、悟二種境界,皆由熏習於阿賴耶識中之種子所生起,此即「種子熏習說」,亦即主張阿賴耶識為真妄和合之說。又世親著之唯識三十頌,至唯識分流時代,有二十八家之注釋,而較聞名者則為護法、安慧等十大論師之注釋;玄奘即以護法之注釋為主,糅合其餘諸師之說,編譯出成唯識論十卷,對我國、日本、韓國之唯識思想影響甚深。
據成唯識論卷二所舉,阿賴耶識具有能藏、所藏、執藏三義。即︰(1)能藏,謂第八識善於自體中含藏一切萬法之種子。(2)所藏,指現行熏種子義而說,亦即此識為七轉識熏習諸法種子之場所。(3)執藏,謂第八識恆被第七末那識妄執為實我、實法,故又稱我愛執藏。
此外,窺基根據成唯識論所述,於所著成唯識論述記卷二末,就自相、因相、果相三相,舉出阿賴耶識體之三位,即︰(1)我愛執藏現行位,指第八識之自相而言。因第八識自無始以來,恆被第七識愛執為我,故稱我愛執藏現行位。下自凡夫,上至七地以前之菩薩,或二乘中之有學聖者皆屬此位。(2)善惡業果位,指第八識之果相而言。因第八識係由無始以來之善惡業所招感之異熟果,故稱善惡業果位。此位通至十地菩薩之金剛心,或二乘之無學聖者。(3)相續執持位,指第八識之因相而言。此位通至佛果以及盡未來際。因第八識持色心之萬法種子,令五根不斷失,故稱相續執持位。依此,從凡夫以至佛之轉迷開悟,第八識為眾生所依止,故阿賴耶識又稱所知依。護法之唯識思想,由其弟子戒賢論師傳予玄奘,而盛行於我國。
我國各宗派對阿賴耶識亦有多種說法,如︰(1)地論宗,以世親之十地經論為主要根據。主張阿賴耶識為真常淨識,視同於佛性如來藏。(2)攝論宗,以無著之攝大乘論為主要根據,乃由真諦所譯。主張如來藏緣起,阿賴耶識則為無常有漏法,乃一切煩惱之根本,並於前八識外加上阿摩羅識成為第九識,而以前八識為虛妄,九識為真實。然真諦亦參酌大乘起信論,而以阿賴耶識為無記無明隨眠之識,乃真妄和合之識,以第八識具有解性義為真,具有果報義為妄,故真諦之思想,乃融合真、妄二說而成。(3)法相唯識宗,以成唯識論為主要根據。玄奘為新譯唯識之代表,排斥如來藏緣起,主張阿賴耶緣起,並立五種種姓,說人、法二空。此種新論說,不僅使我國之唯識思想發生新的大轉變, 亦影響日本之唯識思想。〔入楞伽經卷二、卷七、決定藏論卷上、法華經玄義卷五下、中觀論疏卷七本、大乘義章卷三末、華嚴孔目章卷一、唯識了義燈卷四本〕(參閱「賴耶三相」7918、「賴耶四分」7919)p4640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5║此識能執受了別色根根所依處
T31n1602_p0480c06║及戲論熏習。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이 식은 능히 색근(色根)23)과 근소의처(根所依處)24) 및 희론의 훈습을 집수(執受)25)하고 요별한다.26)
23) 승의근(勝義根)을 가리킨다. 5근(根: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을 색근(色根)과 소의근(所依根)으로 나누고, 전자를 승의근이라 하고, 후자를 부진근(扶塵根)이라 부른다. 승의근은 ‘뛰어난 의미의 감각기관’이란 뜻이다. 미세청정한 물질(rūpa-prasāda)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신경(神經)과 신경전달물질을 가리킨다. 감각기관(根, indriya)은 식을 일으키고 대상을 파지하는[發識取境] 기능을 하는데, 승의근은 ‘발식(發識’의 역할을 한다.
24) 부진근(扶塵根)을 말한다. 감관 중에서 안구ㆍ귀 등 눈에 보이는 기관이다. 부진근이라 이름한 것은, 그 체(體)가 구체적으로 드러난[麤顯] 4진(塵)으로 이루어진 신체적인 감관으로서 승의근을 부호조성(扶護助成)하는 작용을 가졌기 때문이다.
25) 여기서 집수(執受, upātta)는 ‘감수(感受)ㆍ유지작용’이란 뜻이다. ‘집(執)’은 섭(攝)ㆍ지(持)의 뜻이 있고, ‘수(受)’는 영(領)ㆍ각(覺)의 뜻이 있어서, 대상을 접촉하여 그것을 섭지(攝持)해서 잃어버리지 않으며,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지각하는 작용이다. 원래 집수의 범어인 upātta는 ‘받아들이다ㆍ얻다ㆍ잡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 upā-√dā의 과거분사로서 ‘받아들여진 것ㆍ감수(感受)된 것ㆍ유지되는 것’이란 뜻인데, 바뀌어서 감각기관[五根] 또는 신체[有根身]를 가리키기도 한다. 감각기관ㆍ신체ㆍ종자가 아뢰야식에 의해서 그 기능이 ‘보존ㆍ유지된다’는 점에서 ‘집수’는 곧 신체와 종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유식삼십송』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와 기세간의 요별을 갖네[不可知執受處了]”의 경우이다.
26) 아뢰야식이 능히 신체[有根身]와 종자를 유지 보존[執受]하고, 또한 그것들을 대상으로 해서 인식작용을 함을 말한다. 아뢰야식의 인식대상은 종자ㆍ신체ㆍ기세간(器世間)이며, 이 식이 심층식(深層識)이지만 어디까지나 식(識)이므로 요별작용을 한다. 다만 그 작용이 매우 미세하여 범부는 감지(感知)하기 어렵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6║於一切時一類生滅不可了知。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언제나 한 부류로 생멸하며,27) 잘 알 수 없다.28)
27) 아뢰야식은 체성이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으로서 한 부류로 이어지고, 그 안에 저장된 업종자의 세력에 의해서 그 흐름이 상속하여 단절되지 않는다. 이것을 견주성(堅住性)이라 하며, 이 식이 능훈식(能熏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네 가지 속성(堅住性ㆍ無記性ㆍ可熏性ㆍ和合性) 중의 하나이다.
28) 여기서 ‘잘 알 수 없다[不可了知]’는 것은 구체적으로 아뢰야식의 작용[行相]과 대상[所緣]을 명석하게 지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후 세친(世親) 논사의 『유식삼십송』에서는 이 부분을 “감지하기 어려운 집수(執受)와 기세간의 요별을 갖네[不可知執受處了]”로 설명한다. 아뢰야식은 심층심리로서, 그 인식작용이 일반인들이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미세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웬만큼 총명한 사람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미세(微細)하다’고 표현된다. 그리고 아뢰야식의 대상은 종자ㆍ신체ㆍ자연계[器世間, 處]인데, 종자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功能差別]’이므로 말할 것도 없고, 신체[有根身]의 경우도 알기 어렵다. 여기서 근(根)은 미세하고 투명한 물질인 승의근(勝義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계는 너무나 광대하고 측량하기 어려우므로, 심층식인 아뢰야식이 자연계를 대상으로 하여 끊임없이 미세한 인식작용을 하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감지되기 어렵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8║一向無覆無記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한결같이 무부무기(無覆無記)31)이다.
31) 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無覆無記)이다. 선(善)도 아니고 불선도 아닌 것을 무기라고 한다. 선 등으로 기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무기에는 무부무기와 유부무기가 있다. 무부무기는 정무기(淨無記)라고도 하듯이 순수한 무기를 뜻한다. 성도(聖道)를 덮어 가리거나 방해하거나 마음을 부정(不淨)하게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이 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성이므로 선(善)ㆍ불선 등 갖가지 종자를 저장할 수 있게 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7║又能執持了別外器世界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또한 능히 외부의 기세계(器世界)29)를 간직하고[執持] 분별한다.
29) 범어 bhājana-loka의 번역으로서 기세간(器世間)ㆍ기계(器界)ㆍ기(器)라고도 하며 처(處, pratiṣṭhā)라고도 한다. 자연계 안에서 유정(有情)들이 살아가는 것을 하나의 그릇에 비유해서 기세간이라고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7║與不苦不樂受等相
T31n1602_p0480c08║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등과 상응한다.30)
30) 아뢰야식의 체성은 무부무기성(無覆無記性)이므로 오직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 즉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본문에서 ‘등(等)’이라 한 것은, 삼성 외에 심소 중에서 5변행심소(遍行心所:觸ㆍ作意ㆍ受ㆍ想ㆍ思)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8║與轉識等作所依因與染淨
T31n1602_p0480c09║轉識受等俱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전식(轉識) 등에게 의지처의 원인이 되고,32) 염오ㆍ청정의 전식과 수(受) 심소 등과 더불어 함께 전전(展轉)한다.
32) 아뢰야식이 근본식으로서 7식의 의지처가 됨을 가리킨다. 8식을 존재구조면에서 전식(轉識)과 근본식(根本識)으로 나눈다. 안식 등 7식을 전식이라 하고, 아뢰야식을 근본식이라 한다. 전식은 ‘전변생기(轉變生起)된 식’ 즉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로부터 전변 생기된 식이란 뜻이다. 또한 근본식이란 칠식의 근본이 되는 식이란 뜻이다. 전식(7식)과 근본식(아뢰야식)의 관계는 파도와 바닷물로 비유된다. 마치 파도가 바닷물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전식은 그 생기의 원인인 근본식에 의지한다. 전식과 근본식은 다음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①식의 구기성(俱起性)이다. 오식이 작용할 때는 항상 의식ㆍ말나식ㆍ아뢰야식이 함께 생기한다. ②8식은 종자를 매개로 해서 상호인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7식의 인식 결과가 근본식에 종자로 저장되고, 7식의 작용은 근본식에 저장된 종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T31n1602_p0480c09║能增長有染轉識等為業及能
T31n1602_p0480c10║損減清淨轉識等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4일에 확인:
염오가 있는 전식 등을 능히 증장함을 업(業)으로 삼고, 청정한 전식 등을 능히 손감(損減)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33)
33) 아뢰야식에는 선업ㆍ악업의 갖가지 종자가 저장되어 있으며, 근본식이므로 7전식(轉識)의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악업 종자의 세력에 의해서 7전식의 염오성을 증장하기도 하고 청정성을 손감하기도 한다. - ↑ "遍行心所(변행심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遍行心所(변행심소)
51심소 가운데 촉(觸)ㆍ작의(作意)ㆍ수(受)ㆍ상(想)ㆍ사(思)의 5는 우리의 마음이 일어날 때에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것이므로 변행심소라 함. ⇒오변행(五遍行) - ↑ "作意",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4일에 확인:
作意
梵語 manaskāra, manasi-kāra 或 manaḥ-kāra。心所之名。即突然警覺而將心投注某處以引起活動之精神作用。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為有部大地法之一,亦為法相宗五遍行之一。
俱舍論卷七將作意分為三種:(1)自相作意,謂觀某物有獨自之相(自相)時之作意;如觀色有變礙之相。(2)共相作意,謂觀四諦之十六行相是共通於諸法之相時之作意。(3)勝解作意,即作不淨觀等種種觀想時之作意。又欲界有聞所成、思所成、生所得等三種作意,色界有聞所成、修所成、生所得等三種作意,無色界僅有修所成、生所得等兩種作意。
瑜伽師地論卷三十三載,諸瑜伽師若欲離於欲界之欲而勤修觀行者,須經由下列七種作意方能離欲,即:了相、勝解、遠離、攝樂、觀察、加行究竟、加行究竟果等。
此外,大乘莊嚴經論卷七謂,於根本等六心生起之後,繼之則生起有覺有觀、無覺有觀、無覺無觀等十一種之作意。六門教授習定論則舉出勵力荷負作意、有間荷負作意等四種作意。顯揚聖教論卷三則謂,修無量之三摩地門,會生起有情無量作意、世界無量作意等五種作意,又緣七種徧滿真如,則會生起流轉真如作意、實相真如作意等七種作意。〔成唯識論卷三、大毘婆沙論卷十一、卷十六、瑜伽師地論卷三、顯揚聖教論卷一〕(參閱「三種作意」873)p3503 - ↑ "作意",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4일에 확인:
作意
Basic Meaning: focus(ing) attention
Senses:
Pay(ing) attention; mental orientation; One of the five omnipresent 五遍行 mental functions 心所 in Yogâcāra (Skt. manasikāra, manaskāra; Tib. yid la byed pa).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Ui,Nakamura]
To be attentive, aware, mindful (Skt. manasi-karoti)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Ui,Nakamura]
To pay special intention to; contrived intention. [Charles Muller; source(s): T1666]
Application (Skt. ābhoga; Tib. 'jug pa, rtsol ba). 〔成唯識論 T 1585.31.11c6 〕 One of the ten universally operating mental factors 十大地法 in the Abhidharmakośa, equivalent to Skt. cetanā.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In the Laukikamārga section of the Yogâcārabhūmi, the term refers more distinctly to forms of meditation, or contemplation, of which seven 七作意 are discussed. The gathering of the attention, preventing it from scattering, focusing on a single object. [Charles Muller]
(Skt. abhipraya, abhisaṃskāra, abhisaṃdhi, cetana, premaṇīya, manaḥ-saṃcetanā, manasi-karaṇa, manasi-kāratva, saṃcintya, saṃcetanā, samanvāhāra, samudācāra, sābhisaṃskāra; Tib. yid la byed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作意(작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2일에 확인:
作意(작의)
【범】 Manaskāra 『구사론』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론』 5변행(遍行)의 하나.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의 일체 심왕(心王)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 마음을 일깨워 바깥 대상을 향하여 발동케 하는 정신 작용. - ↑ "작의[作意]",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작의[作意]
산스크리트어 manaskāra 마음을 일깨워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마음 작용.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2║云何作意?謂
T31n1612_p0848c13║能令心發悟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어떤 것이 작의(作意)인가. 마음이 잘 발오(發悟)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613_p0851c11║云何作意。謂令心發悟為性。令心心法現前
T31n1613_p0851c12║警動。是憶念義任持攀緣心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4일에 확인:
무엇을 작의(作意)라고 하는가?
마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마음과 심법으로 하여금 앞에 드러나 놀라 움직이게 한다. 이는 기억[憶念]의 뜻이다. 임지(任持)하여 마음을 반연하는 행동양식이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44n1837_p0055c09║ 一作意等者,作
T44n1837_p0055c10║ 動於心,令心數數外緣諸境,名為作意。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X48n0802_p0309b04║ 八識
X48n0802_p0309b05║ 田中。含藏無量劫來善惡業習種子。內熏鼓發。不
X48n0802_p0309b06║ 覺動念。譬如潛淵魚。鼓波而自踊。是為作意。警心
X48n0802_p0309b07║ 令起。不論善惡。但只熏動起念處。便是作意。此生
X48n0802_p0309b08║ 心動念之始也。由眾生無始以來。未甞離念。故今
X48n0802_p0309b09║ 參禪看話頭。堵截意識不行。便是不容作意耳。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602_p0481a13║作意者。謂從阿賴耶識種子所生。依心所起
T31n1602_p0481a14║與心俱轉相應。動心為體引心為業。由此與
T31n1602_p0481a15║心同緣一境。故說和合非不和合。如經中說。
T31n1602_p0481a16║若於此作意即於此了別若於此了別即於此
T31n1602_p0481a17║作意。是故此二恒和合非不和合。此二法不
T31n1602_p0481a18║可施設離別殊異。復如是說。心心法行不可
T31n1602_p0481a19║思議。又說由彼所生作意正起如是所生眼
T31n1602_p0481a20║等識生。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작의(作意)65) 심소는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난 바이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함께 전전하여 상응한다. 심왕을 움직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심왕을 이끄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66) 이것이 심왕과 더불어 하나의 대상을 같이 반연하기 때문에 화합이라 말한다.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경전에서 “만약 이것에 대해서 작의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분별하며, 만약 이것에 대해서 분별하면 곧 이것에 대해서 작의한다. 그러므로 이 둘67)은 항상 화합하며, 화합하지 않음이 아니다. 이 두 법은 서로 떨어져 다른 것이라고 시설할 수는 없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이와 같이 말하기를 “심왕과 심소의 작용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라고 한다. 또한 “그것이 생겨남으로써 의식의 일깨움[作意]이 바로 일어나고, 이와 같이 생기하는 것으로서의 안식 등이 생겨난다”고 말한다.
65) 작의(作意, manasikāra) 심소는 심왕ㆍ심소를 일깨워서 대상에 인도하고 주의하게 하는 작용(힘ㆍ능력)이다. 이른바 식의 ‘지향성(指向性)’은 이것에 근거한다. 참고로 말하면 작의(作意)란 ‘경각(警覺)’이란 뜻이다. 이 경각에는 종자경각과 현행경각이 있다. 종자경각(種子警覺)은 작의의 종자가 다른 심왕ㆍ심소의 종자를 경각하여 현행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행경각(現行警覺)은 작의가 현행하여 다른 심왕ㆍ심소의 현행을 경각시켜서 인식대상에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66) 작의 심소는 능히 심왕을 경각(警覺)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하고, 인식대상[所緣境] 쪽으로 심왕을 이끄는 것을 업으로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체성[體]은 직접적인 작용을, 업용[業]은 간접적인 작용을 가리킨다. 이하 심소의 해설에 있어서 모두 이 체성과 업의 두 작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67) 심왕과 작의 심소를 가리킨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605_p0664a25║何等作意。謂發動心為
T31n1605_p0664a26║體。於所緣境持心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작의(作意)심소법입니까?
마음을 발휘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그 소연경(所緣境)에 처해서 마음을 유지시키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606_p0697a28║作意者。發動心為體。於所緣境持心為業。於
T31n1606_p0697a29║所緣境持心者。謂即於此境數數引心。是故
T31n1606_p0697b01║心得定者名得作意。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작의(作意)심소법입니까?
마음을 발휘시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그 인연하는 바의 경계에 처해서 마음을 지속시키는 것으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인연하는 바의 경계에 처해서 마음을 지속시킨다는 것’이란 이 같은 경계에 처해서 누차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정을 얻는 것을 ‘작의를 얻는다’고 이름하게 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31n1585_p0011c06║作意謂能警心為性。於所緣境引心為業。
T31n1585_p0011c07║謂此警覺應起心種引令趣境故名作意。
T31n1585_p0011c08║雖此亦能引起心所。心是主故但說引心。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4일에 확인:
‘작의(作意)심소’22)는 능히 심왕을 경각(警覺)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하고, 인식대상[所緣境] 쪽으로 심왕을 이끄는 것을 업으로 한다. 이것이 일으켜야 하는 심왕의 종자[果俱有]를 경각시키고 이끌어서 대상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에 작의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역시 심소도 능히 이끌어 일으키지만, 심왕이 주체이기 때문에 다만 심왕을 이끈다고 말한다.
22) 작의(作意, manasikāra)는 경각(警覺)의 뜻이다. 이 경각에는 종자경각(種子警覺)과 현행경각(現行警覺)의 두 가지가 있다. 종자경각은 작의(作意)의 종자가 다른 심왕ㆍ심소의 종자를 경각하여 현행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행경각은 작의가 현행하여 다른 심왕ㆍ심소의 현행을 경각시켜서 인식대상[所緣境]에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44n1836_p0048a02║ 言作意者,謂
T44n1836_p0048a03║ 警覺應起心種為性,引心令趣自境為業。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T85n2810_p1055b29║作意謂能警心為性。
T85n2810_p1055c01║於所緣境引心為業。謂此警覺應起心種引
T85n2810_p1055c02║令趣境。故名作意。雖此亦能引起心所。心
T85n2810_p1055c03║是主故但說引心。作謂擊發。意即心王。意之
T85n2810_p1055c04║作故依主釋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4일에 확인:
X48n0805_p0342c06║ 一作意者。警覺心種。令起現行。以為體
X48n0805_p0342c07║ 性。引現起心。趣所緣境。以為業用。 - ↑ "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5일에 확인:
觸
Basic Meaning: contact
Senses:
Or touch (Skt. sparśa, saṃsparśa; Tib. reg pa). The mental function that brings consciousness into contact with external objects. In Yogâcāra theory, in one interpretation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five omnipresent mental factors 五遍行. One of the twelve links of conditioned arising 十二因緣. But also see next.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Ui, Nakamura]
Tangible; a tactile object, one of the five/six objects of perception and sensation 五境/五塵(六境) (Skt. spraṣṭavya; Tib. reg bya). In this sense, it is counted as one of the form dharmas 色法 and one of the four sensory objects 四塵; as a derivative of the four main elements 四大, it does not have its own distinctive seeds.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To attain (Skt. spṛśati; Tib. reg par byed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Also used as a variant form of meaning of 濁 'unclean.' [Charles Muller; source(s): Ui, Soothill]
Held onto (Pāli parāmaṭṭha). 〔解脫道論 T 1648.32.401c22〕 [Nyanatusita]
(Skt. āmṛśa, āmoṣa, upahanyamāna, parāmṛṣṭa, mṛdu, saṃyoga, saṃsarga, saṃsṛṣṭa, saṃsparśa-ja, saṃsparśana, samudīraṇatva, spariśa, sparśana, sparśa-bhāva, sparśa-bhūta, sparśitavya, sparṣṭavya, spṛśya, spṛṣṭa, spṛṣṭi, spraṣṭavyatva, spraṣṭavyâyatana; Pāli phoṭṭhabba, phassa; Tib. reg bya rlung gi yon tan, reg by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觸",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觸
辭典解釋 :
解釋[1]
:
To butt, strike against; contact. sparśa, touch, contact, collision, the quality of tangibility, feeling, sensation. M.W. Eleven kinds of sensation are given— hot, cold, hard, soft, etc. sparśa is one of the twelve nidānas, cf. 十二因緣, and of the sadāyatana, cf. 六入. It is also used with the meaning of 濁 unclean.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 ↑ "觸(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觸(촉)
(1)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대상에 접촉하는 것. 근(根)과 경(境)과 식(識)을 화합시키는 작용. (2) 5경(境)의 하나. 몸에 닿는 대상. 굳은 것(堅)ㆍ축축한 것(濕)ㆍ더운 것(煖)ㆍ흔들리는 것(動)ㆍ매끄러운 것(滑)ㆍ껄끄러운 것(灄)ㆍ무거운 것(重)ㆍ가벼운 것(輕)ㆍ찬 것(冷)ㆍ배고픈 것(飢)ㆍ목마른 것(渴) 등의 11로 나눔. (1)은 인식 주체에게 일어나는 작용인데 비해 (2)는 몸으로 대하는 물질적인 색법(色法)을 말함. - ↑ "촉[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5일에 확인:
촉[觸]
①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접촉. 부딪침.
② 산스크리트어 sparśa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의 화합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③ 산스크리트어 spraṣṭavya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동의어: 세활, 재, 경락
참조어
경(更) - ↑ "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5일에 확인:
觸
(一)梵語 sparśa,巴利語 phassa。為心所(心之作用)之一。俱舍宗以其為十大地法、七十五法之一,唯識宗視為五遍行、百法之一。指境(對象)、根(感官及其機能)、識(認識)三者和合時所產生之精神作用;亦即指主觀與客觀接觸之感覺而言。
此時之根、境、識各分為六種,則觸亦有六觸(六觸身,身為複數之意)。例如由眼根、色境、眼識三者和合而產生之觸為眼觸,如由耳、鼻、舌、身、意產生耳觸乃至意觸。此為說一切有部所立三和合生觸之義,即根、境、識和合時,能生其他心所。經量部則唯以根、境、識三者和合名為觸,無有別體,名三和成觸。
於六觸中,前五觸所依之根為有對(二物有相互為障之性質),故稱有對觸。第六觸之意觸,以名(增語)為對象,故稱增語觸;此增語觸對第(二)項中所說之以身根為對象之所觸而言,此為能觸。
又隨染淨等相應法之別而有八種觸,即與無漏相應之明觸、與染污相應之無明觸、與有漏善及無覆無記相應之非明非無明觸,及無明觸中與愛相應之愛觸、與恚相應之恚觸,以及隨受之不同而產生樂受之順樂受觸、生苦受之順苦受觸、生不苦不樂受之順不苦不樂受觸。
此外,十二緣起之第六支為觸,又稱觸支,有部依分位緣起釋為嬰兒期之「觸」。即於嬰兒期根、境、識三者和合而未了知苦樂差別之位。〔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二十三、俱舍論卷四、卷九、卷十、大乘義章卷四〕
(二)梵語 spraṣṭavya,巴利語 phoṭṭhabba。五境之一,十二觸之一,十八界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被觸之對象,故亦譯為「所觸」。指身根感覺之對象,即所觸之對境,稱為觸境,乃五境、六境之一。共有十一觸:即地、水、火、風四大種,與滑、澀、重、輕、冷、饑、渴等十一種。其中四大種為能造之觸,後七種為所造之觸。〔大毘婆沙論卷一二七、俱舍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品類足論卷一〕p8510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2_p0481a21║觸者。謂三事和合分別為體受依為業如經
T31n1602_p0481a22║說。有六觸身。又說眼色為緣能起眼識。如是
T31n1602_p0481a23║三法聚集合故能有所觸。又說觸為受緣。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촉(觸)68) 심소는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을 말한다.69) 분별70)을 체성으로 삼고, 수(受) 심소의 의지처인71)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촉신(觸身)72)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눈과 빛깔ㆍ형태를 연(緣)으로 삼아서 능히 안식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세 가지 법이 모여서 화합함으로써 능히 촉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촉은 수(受)의 연(緣)이 된다”고 말한다.
68) 촉(觸, sparśa) 심소는 “근경식삼사화합촉(根境識三事和合觸)”, 즉 감관ㆍ대상ㆍ식의 세 요소가 화합하는 곳에서 생기(生起)하는 심리작용이다. 하나의 인식이 성립됨에 있어서 최초의 순간이다.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대상에 접촉하게 하며, 수(受)ㆍ상(想)ㆍ사(思) 등의 의지처[所依]가 된다. 그런데 ‘촉’의 정확한 의미는 ‘부딪침’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3능변식(能變識)의 틀 안에서 인식하므로 일종의 ‘부딪침’의 현상이 있게 된다.
69) 세 가지는 감각기관[根]ㆍ대상[境]ㆍ식(識)을 가리킨다. 이 셋이 각각 별도로 있어서는 어떤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셋이 화합하여 비로소 각자의 작용을 현현할 수 있고, 뛰어난 작용을 일으켜서 촉 심소를 생겨나게 한다. 촉은 셋의 화합을 강화해서 대상에 접촉하게 한다. 촉 심소가 없으면 심왕ㆍ심소가 화합해서 하나의 대상에 접촉하지 못한다. 즉 촉 심소는 셋의 화합을 원인으로 하면서, 셋의 화합을 결과로 한다. 이처럼 원인ㆍ결과의 양 측면에서 촉을 세 가지의 화합이라고 말한다.
70) 여기서 ‘분별’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량분별에서의 분별이 아니라 ‘상사(相似)’라는 의미이다. 분별 즉 상사라 함은, 세 가지(根ㆍ境ㆍ識)의 화함된 상태와 비슷하게 되고, 셋의 화합으로써 촉을 생겨나게 한 것과 비슷하게 수(受) 등을 일으키는 의지처가 되는 작용을 가리킨다.
71) 촉(觸)이 수(受)를 이끌어내는 것이 다른 심소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가사지론』 제3권ㆍ제55권, 『성유식론』 제3권 등에서는 촉이 수(受)ㆍ상(想)ㆍ사(思)의 의지처[所依]가 된다고 말한다.
72) 육근ㆍ육경ㆍ육식의 세 요소의 화합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안촉ㆍ이촉ㆍ비촉ㆍ설촉ㆍ신촉을 가리킨다. 이하 수(受)ㆍ상(想)ㆍ사(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본문에서의 신(身, kāya)은 ‘모임’이란 뜻으로서 말의 어미에 붙여서 복수(複數)를 나타낸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5_p0664a26║何等為觸。謂依三和
T31n1605_p0664a27║合諸根變異分別為體。受所依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촉(觸)심소법입니까?
세 가지 화합에 의해 모든 근(根)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그 바탕이다. 수온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6_p0697b01║觸者。依三和合諸根變
T31n1606_p0697b02║異分別為體。受所依為業。謂識生時所依諸
T31n1606_p0697b03║根隨順生起苦樂等受變異行相。隨此行相
T31n1606_p0697b04║分別觸生。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촉(觸)심소법입니까?
세 가지 화합에 의해 모든 근(根)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그 바탕이다. 수온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식이 생겨나는 때에 여러 근에 의지해서 순차적으로 고락 따위의 수가 생겨나서 변이하는 그 행상(行相)이다. 이 같은 행상의 분별에 순응해서 촉이 생겨나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2║云何為觸?謂三和合分別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어떤 것이 촉(觸)인가.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13_p0851c08║云何觸。謂三和合。分別為性。
T31n1613_p0851c09║三和。謂眼色識。如是等。此諸和合心心法生
T31n1613_p0851c10║故名為觸。與受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6일에 확인:
무엇을 접촉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가 화합하여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세 가지가 화합한다는 것은 안근ㆍ색ㆍ식의 이러한 것 등을 말한다. 이 모든 화합으로 마음과 심법(心法)이 생기기 때문에 접촉이라고 한다. 느낌이 접촉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3n1830_p0328c16║論。三和合位至說名變異。 述曰。初解變異。
T43n1830_p0328c17║後釋分別 謂根.境.識三和合位。除未合
T43n1830_p0328c18║時故言和位。此三之上。皆有順生一切心
T43n1830_p0328c19║所功能作用名為變異。謂此三法居種子
T43n1830_p0328c20║時。及未合前。皆無順生心所作用。於三
T43n1830_p0328c21║合位功能乃生。既與前。珠說名變異。變異
T43n1830_p0328c22║即是三體上用。
T43n1830_p0328c23║正解變異體即三法。次解分別。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3n1830_p0328c24║論。觸似彼起故名分別。 述曰。分別之用是
T43n1830_p0328c25║觸功能。謂觸之上。有似前三順生心所變
T43n1830_p0328c26║異用功能說名分別 分別即是領似異名。
T43n1830_p0328c27║如子似父名分別父 此意總顯根等三
T43n1830_p0328c28║法。有能順起心所功能名為變異。此觸亦
T43n1830_p0328c29║有順生心所功能作用領似彼三。是故名
T43n1830_p0329a01║為分別變異 問三和之上有功能順生
T43n1830_p0329a02║於觸名變異。觸既似彼有功能。亦自順生
T43n1830_p0329a03║名分別 設爾何失 若自順生名分別。應
T43n1830_p0329a04║說觸觸以為緣。如順生受有功能。說觸
T43n1830_p0329a05║用名分別故。若自不順名為分別。何故似
T43n1830_p0329a06║生受等。非似生於觸耶 答觸不似彼生
T43n1830_p0329a07║觸功能。不自生故。如受等法不能生餘。
T43n1830_p0329a08║即無領似。例觸應爾。又分限故。謂根.及境
T43n1830_p0329a09║能生於識。亦能生餘。二種功能。識但生餘
T43n1830_p0329a10║無自生用。例觸應爾。觸不似彼生識.及
T43n1830_p0329a11║觸二種功能。無勢分故。若約見.自證分相
T43n1830_p0329a12║生。亦有似義。又如受領觸不領作意等
T43n1830_p0329a13║ 問若似三功能。名分別變異。何故集論第
T43n1830_p0329a14║一等。云於根變異分別為體。為答此問
T43n1830_p0329a15║故次說云。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585_p0011b19║觸謂三和。分別變異。令心心所觸境為
T31n1585_p0011b20║性。受想思等所依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촉(觸)심소’5)는 세 가지가 화합하여,6) 달라지는 데서[變異]7) 분별(分別)하는 것을8) 말한다. 심왕과 심소로 하여금 대상에 접촉하게 하는 것을 체성(體性)으로 삼고, 수(受)ㆍ상(想)ㆍ사(思) 등의 의지처[所依]가 되는 것을 업(業)으로 삼는다.9)
5) 촉(觸, sparśa) 심소는 ‘근경식(根境識) 삼사화합(三事和合)’, 즉 감각기관ㆍ대상ㆍ식의 최초의 접촉에 해당되며, 이로써 인식의 장(場)이 열리게 된다. 안근(眼根)과 색경(色境)이 연(緣)이 되어 안식을 일으키고, 세 가지(根ㆍ境ㆍ識)의 화합이 있고, 그것은 결정적으로 촉심소를 일어나게 하며, 반드시 촉심소에 의해 심왕ㆍ심소가 화합하여 하나의 대상에 접촉하게 된다.
6) 세 가지의 화합[三和]이란 감각기관[所依根]ㆍ식[能緣識] 인식대상[所緣境]의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촉(觸, sparśa)심소가 생기한다. 따라서 여기서 촉은 결과[果]이고, 세 가지의 화합은 원인[因]이다. 세 가지가 화합하는 곳에서 촉이 생겨난다고 하는 삼화생촉설(三和生觸說)은 설일체유부에서도 주장된다. 경량부는 삼화성촉설(三和成觸說)을 주장하여, 세 가지가 화합하는 곳이 바로 촉이며 별도로 새롭게 촉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7) 여기서 변이(變異)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감각기관[根]ㆍ대상[境]ㆍ식[識]이 각각 별도로 있어서는 어떤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셋이 화합하여[三和] 비로소 각자의 작용을 현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화합될 때는 뛰어난 작용을 일으켜서 이전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을 변이(變異)라고 말한다.
8) 여기서 분별(分別)은 상사(相似)의 의미로서, 일반적인 사유분별에서의 분별이 아니다. 본문에서 변이(變異)한 데서 분별한다는 뜻은 다음과 같다. 즉 세 가지(根ㆍ境ㆍ識)가 화합하여 촉이 생겨나고, 이때의 셋은 화합 이전과 크게 다르다[變異]. 생겨난 촉은 다시 셋의 화합을 강화시켜서 모두 대상에 접촉하게 한다. 이때는 촉이 원인이고 셋의 화합은 결과가 된다. 본문에서 분별, 즉 상사(相似)란 첫째, 세 가지의 화합된 상태와 비슷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 세 가지의 화합으로써 촉을 생겨나게 한 것과 비슷하게 수(受) 등을 일으키는 의지처[所依]가 되는 작용을 가리킨다.
9) 체성[性]은 직접적인 작용을, 업용[業]은 간접적인 작용을 말한다. 이하 심소의 해설에 있어서 모두 이 체성과 업의 두 작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585_p0011b20║謂根境識更相隨
T31n1585_p0011b21║順故名三和。觸依彼生令彼和合。故說為
T31n1585_p0011b22║彼。三和合位皆有順生心所功能說名變
T31n1585_p0011b23║異。觸似彼起故名分別。根變異力引觸起
T31n1585_p0011b24║時。勝彼識境。故集論等但說分別根之變
T31n1585_p0011b25║異。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감각기관ㆍ대상ㆍ식이 다시 서로 수순하기 때문에 세 가지의 화합[三和]이라고 이름한다. 촉(觸)심소가 그것(根ㆍ境ㆍ識)에 의해서 생기(生起)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화합하게 한다.10) 그러므로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그것(삼사화합)으로 말씀한다.11)세 가지가 화합하는 단계[位]에서 모두 수순하여 심소를 일으키는 작용[功能]이 있는 것을 변이(變異)라고 이름한다. 촉이 그것(삼사화합)에 비슷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분별이라고 이름한다. 감각기관의 변이(變異)의 힘이 촉을 이끌어 일어나게 할 때에, (根의 작용이) 그 식ㆍ대상보다 뛰어나다. 그러므로 『집론(集論)』 등에서 다만 감각기관의 변이(變異)에서 분별할 뿐이라고 말한다.12)
10) 촉(觸)을 세 가지의 화합[三事和合]이라고 말하는 뜻을 다시 부연 설명한다. 첫째, 촉이 그것(根ㆍ境ㆍ識)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는 셋의 화합을 원인[因]으로 한다. 둘째, 그것으로 하여금 화합하게 하는 경우는 셋의 화합을 결과[果]로 한다. 이와 같이 인과(因果)에 따라서 촉을 세 가지의 화합[三和]이라고 말한다.
11) 『아함경』에서 “감각기관ㆍ대상ㆍ식의 셋이 화합된 것이 촉이다[根境識 三事和合 觸]”라고 말씀하는 것을 가리킨다.
12) 다른 논서와의 차이점을 회통한다. 세 가지의 화합 작용에 비슷하게 됨으로써 변이(變異)하여 분별하게 한다고 말하면, 어째서 『집론(集論)』 등에서 감각기관[根]의 변이에 있어서 분별하는 것으로써 체(體)로 삼는다고 말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금 여기서 답변한다. 즉 사실은 감각기관ㆍ대상ㆍ식의 셋이 모두 촉을 이끌어 내지만, 그 중에서 감각기관의 변이의 힘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집론』 등에서는 다만 그 뛰어난 측면에서 말한 것뿐으로서, 본 논서와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회통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585_p0011b25║和合一切心及心所。令同觸境是觸自
T31n1585_p0011b26║性。既似順起心所功能。故以受等所依為
T31n1585_p0011b27║業。起盡經說受想行蘊一切皆以觸為緣
T31n1585_p0011b28║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모든 심왕과 심소를 화합하여 다 같이 대상에 접촉하게 하는 것이 촉의 자성이다. 이미 수순해서 심소를 일으키는 작용13)에 비슷하게 됨으로써 수(受) 등의 의지처[所依]가 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14) 『기진경(起盡經)』에서 수온(受蘊)ㆍ상온(想蘊)ㆍ행온(行蘊)의 모두15)가 한결같이 촉을 연(緣)으로 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13) 감각기관 대상ㆍ식의 화합의 작용[三和功能]을 가리킨다.
14)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한다. 촉의 자성[體性], 즉 직접적인 작용은 감각기관ㆍ대상ㆍ식의 화합을 강화해서 대상에 접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촉의 업용(業用), 즉 간접적인 작용은, 세 가지의 화합이 촉의 심소를 생겨나게 했듯이, 촉이 이미 수순해서 그 작용에 비슷하게 됨으로써[相似, 즉 분별], 수(受) 등의 의지처[所依]가 되는 것을 말한다.
15) 수(受)ㆍ상(想)ㆍ행(行)의 3온(蘊)에 포함되는 모든 심소를 가리킨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3n1830_p0329b12║論。和合一切至是觸自性。 述曰。更有餘能
T43n1830_p0329b13║非觸爾所。謂觸亦能和合一切心。心所法。
T43n1830_p0329b14║不令離散各別行相。同趣一境。是觸自性。
T43n1830_p0329b15║設無觸者。其心.心所各各離散不能同緣。
T43n1830_p0329b16║今不散時皆觸功力。
T43n1830_p0329b17║說自性已。觸業如何。前解功能雖即是業。
T43n1830_p0329b18║舉業顯體故非業門。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3n1830_p0329b19║論。既似順起至所依為業。 述曰。即此觸數。
T43n1830_p0329b20║既似三和有能順生心所作用。即能生起
T43n1830_p0329b21║餘心所法。故以受等所依為業。受等心所
T43n1830_p0329b22║皆依此生。若無生能非所依故。
T43n1830_p0329b23║何以知者。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4n1836_p0048a03║ 觸
T44n1836_p0048a04║ 者,令心心所觸境為性,想、受、思等所依為業。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4n1837_p0055c10║ 既作
T44n1837_p0055c11║ 意已,令其心王觸於前境,名之為觸。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85n2810_p1055c04║觸謂三和分別變異。令心心
T85n2810_p1055c05║所觸境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X48n0802_p0309b09║ 觸
X48n0802_p0309b10║ 則引心趣境。葢境有二。其習氣內熏者。乃無明因
X48n0802_p0309b11║ 緣所變為境。發出現行。則以比似量所緣前塵影
X48n0802_p0309b12║ 子為境。二境返觸自心。故名為觸。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X48n0805_p0342c07║ 二觸者。于根境
X48n0805_p0342c08║ 識三和之時。令心心所觸境。以為體性。 - ↑ "受",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6일에 확인:
受
Basic Meaning: sensation
Senses:
Also commonly rendered as 'feeling' (Skt. vedanā; Tib. tshor ba). A primary biological response to external stimuli that is prior to perception, conceptualization, or volition. As sensation, the second of the five skandhas 五蘊. Also the seventh of the twelve links of dependent arising 十二因緣, in that context called 受支. One of the ten pervasive mental factors 大地法 presented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and one of the five omnipresent mental factors 五遍行 presented in the Cheng weishi lun. It is understood to come about based on the confluence of the faculty of contact.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Florin Deleanu; source(s): Ui, Nakamura, Yokoi, Iwanami]
To experience (Skt. *√vid, *prati-saṃ-vid, anubhava; Tib. myong ba, myong bar 'gyur ba). To receive, or undergo, the results of good and evil actions. To experience karma (Skt. paribhoga; Tib. so sor myoṅ ba). 〔二障義 HBJ 1.812a 〕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YBh-Ind]
To accept; acceptance (Skt. samādāna; *praty-anu-bhū; *prati-grah; bzung ba; Tib. nyams su myong bar 'gyur ba, yang dag par len pa; *ud-grah; Tib. len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To restrain; restriction, fetters, yoke. [Charles Muller]
Clinging. In the Ekôttarikâgama 增壹阿含經, 受, rather than the usual 取, sometimes renders upādāna. E.g. 「然此四受由愛而生,由愛而長。成就此受」 (T 125.2.644b8–9) [Mike Running]
(Skt. bhoga, udgrahaṇa, adhivāsanā, adhivāsaya, adhivāsayati, anubhavana, anubhavanatā, anubhūta, anubhūyate, anuyoga, abhinirvartayati, abhipatti, abhiṣvaṅga, abhyāgama, abhyupagata, abhyupagama, abhyupapanna, avinodaka, avinodana, āgraha, ādāna, utpādayati, utpādita, utsoḍhavya, udgahaṇatā, udgṛhīta, udgṛhītavat, udgraha, udvahana, upagata, upabhoga, upasaṃhāra, upasthita, upâtta, upâdāya, kriyamāṇa, gṛddha, gṛhīta, gṛhṇat, graha, grahaṇa, grāhin, grāhya, dhara, dhārayati, parigṛhīta, parigraha, parigrāhaka, paribhukta, paribhoktavya, poṣin, pragṛhya, pratigṛhīta, pratigṛhītṛ, pratigṛhya, pratigrahītṛ, pratigrāhaka, pratipanna, pratilambha, prativedayate, pratiśrutya, *praitsṃvedana, pratisaṃvedayati, pratisṃvedin, pratīcchana, *pratyanubhavana, pratyanubhūtavat, pratyeṣaka, pratyeṣemahi, pravid, prāpta, prāpti, prekṣin, bhuj, bhoktṛ, bhogin, marṣaṇa, lābhin, vitti, vid, veda, vedanīya, vedanīyatā, vedayati, vedayita, vedita, vedin, vedya, saṃvṛtta, saṃvedayati, saṃgraha, samarpita, samātta, samādatta, samādānatā, samāpatti, samāpadya, samāpadyati, samāsanna, saṃpratīcchana, saṃpratīcchanatā, saṃpratyeṣaṇa, saṃbhoga, sahiṣṇutā, sevitavya, spṛṣta,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5_p0663b04║受蘊何相。領納相是受相。謂由受故。
T31n1605_p0663b05║領納種種淨不淨業諸果異熟。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수온(受蘊)은 그 특징이 어떠합니까?
영납상(領納相: 받아들여 느끼는 특징)이 수온의 특징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갖가지 청정한 업과 청정하지 못한 업의 모든 이숙과[果異熟: 과보]를 받아들여, 마음으로 하여금 이숙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면 고를, 마음에 드는 것이면 낙을, 둘 다가 아니면 불고불락을 느끼게 한다. 즉, 과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3수를 느끼게 하는 마음작용이다.
{수온(受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받아들이는 모양이 수온의 모양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갖가지 업(業)을 받아들여 여러 과보(果報)를 이숙(異熟)시킨다고 말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6_p0695c01║問受蘊何相。答領納相是受相。謂由受故領
T31n1606_p0695c02║納種種淨不淨業所得異熟。若清淨業受樂
T31n1606_p0695c03║異熟。不清淨業受苦異熟淨不淨業受不苦
T31n1606_p0695c04║不樂異熟。所以者何。由淨不淨業感得異熟
T31n1606_p0695c05║阿賴耶識。恒與捨受相應。唯此捨受是實異
T31n1606_p0695c06║熟體。苦樂兩受從異熟生故。假說名異熟。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수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근접하여 받아들이는 모양이 ‘수온의 모양’이다. 수온으로 인해서 청정하거나 청정하지 못한 갖가지 업(業)을 받아들여 여러 과보(果報)를 이숙(異熟)시키게 되는 것이다.
【釋】 여기서 ‘청정한 업’은 ‘낙’의 이숙을 받는 것이고, ‘불청정한 업’은 ‘고’의 이숙을 받는 것이고, 정(淨)ㆍ부정업(不淨業)은 ‘불고불락’의 이숙을 받는 것이다. 어째서인가 하면, 정ㆍ부정업에 연유해서 이숙을 감득하는 아뢰아식은 언제나 사수(捨受)와 상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수’야말로 이숙의 실체이니, ‘고’와 ‘낙’의 두 가지 수(受)는 이숙에 따라 생겨나는 때문에, 이를 가설하여 ‘이숙’이라 이름한다. - ↑ "수[受]",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수[受]
① 산스크리트어 vedanā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을 느끼는 감수 작용.
② 산스크리트어 upādāna 취(取)의 구역(舊譯). 집착. 번뇌.
동의어: 통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4n1837_p0055c11║ 領納外
T44n1837_p0055c12║ 塵覺苦知樂,如是取境,名之為受。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X48n0802_p0309b12║ 此妄境一現。則
X48n0802_p0309b13║ 違順俱非境相。含受不捨。是名為受。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602_p0481a23║受
T31n1602_p0481a24║者謂領納為體。愛緣為業。如經說有六受身。
T31n1602_p0481a25║又說受為愛緣。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수(受)73) 심소는 받아들임을 체성으로 삼고, 애착[愛]의 조건[緣]이 되는 것을74)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수신(受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수는 애착의 조건이 된다”고 말한다.
73) 수(受, vedanā) 심소는 느낌ㆍ감수(感受) 작용(힘ㆍ능력)이다. 받아들이는 것[領納]을 체성으로 하고, 애착을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심왕으로 하여금 대상에 따라 수순(隨順)ㆍ거슬림[違逆]ㆍ수순도 아니고 거슬림도 아님[非順非違] 중 어느 하나를 취하도록 한다. 여기에 괴로움ㆍ즐거움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님[捨]의 3수(受)가 있다. 또는 5수(受)라 하여 고수(苦受), 낙수(樂受), 사수(捨受), 우수(憂受), 희수(喜受)를 들기도 한다.
74) 12연기(緣起)에서 수(受)를 연(緣)으로 하여 애(愛)가 일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31n1585_p0011c11║受謂領納順違俱非境相為性。起愛
T31n1585_p0011c12║為業。能起合離非二欲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6일에 확인:
‘수(受)심소’25)는 수순함과 거슬림, 수순도 거슬림도 아닌[俱非] 대상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애착을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능히 화합과 떠남 및 화합도 떠남도 아닌 것의 욕구를 일으키기 때문이다.26)
25) 수(受, vedāna)심소는 ‘감수작용’ ‘느낌’의 심소이다. 여기에 고(苦)ㆍ낙(樂)ㆍ사(捨)의 3수(受)가 있다. 또는 3수에 우수(憂受)ㆍ희수(喜受)를 더하여 5수(受)를 든다. 능히 수순ㆍ거슬림ㆍ중용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심왕으로 하여금 기쁨이나 괴로움 등의 느낌을 일으키게 한다.
26) 낙수(樂受)에 있어서는 미득(未得)의 낙(樂)에는 합하기를 바라고[欲], 이득(已得)의 낙(樂)에는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고수(苦受)에 있어서는 미득(未得)의 고(苦)에는 합하지 않기를 좋아하고[樂], 이득(已得)의 고(苦)에는 떠나기를 좋아한다. 둘 다 아닌 것[非二]은 앞의 두 가지가 아닌 것을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44n1836_p0048a05║ 受者,領納順、違、俱非境相為性,起欲為業,
T44n1836_p0048a06║ 能起合離,非二欲故;亦云令心等起歡、慼、捨
T44n1836_p0048a07║ 相(此解詞異意同),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T85n2810_p1055c10║受謂領納順違俱非
T85n2810_p1055c11║境相為性。起愛為業。能起合離非二欲故。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6일에 확인:
X48n0805_p0342c09║ 三受者。領納順違非順非違境相。
X48n0805_p0342c10║ 以為體性。起於欲合欲離欲不合不離之愛。以為
X48n0805_p0342c11║ 業用。 - ↑ "受(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6일에 확인:
受(수)
[1] 【범】 Vedanā 정신 작용의 하나. 구사(俱舍)에서는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5변행(遍行)의 한. 곧 감각을 말함. 바깥 경계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정신 작용. 이에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가 있다. ⇒삼수(三受)
[2] 12연기의 하나. 수지(受支)를 말함. - ↑ "受",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6일에 확인:
受
(一)梵語 vedanā,巴利語同。又譯為痛、覺。可分為二:(1)心所之名,為五蘊之一。俱舍宗以受為一切心遍起的心所之一,乃十大地法之一;唯識宗則認為是五遍行之一。「受」係根(感官)、境(對象)、識(認識之主體)三者和合之觸(即接觸感覺)而生。換言之,受,即領納之意,亦即領納違、順、俱非等之觸,及外界之對象,以此而感受苦、樂等感覺之精神作用。故「受」為外界影響於生理、情緒、思想等,所產生之痛癢、苦樂、憂喜、好惡等感受,由此有利(順)、不利(違)、無利害關係(俱非)等境界,產生相應之苦、樂等主觀感受,而引起遠離違境、追求順境等一連串愛欲活動。
對受之解釋,諸論有異,如:①據俱舍論卷一載,領納所隨之觸,稱為受。②據順正理論卷二載,領納所緣之境,稱為執取受;領納所隨之觸,稱為自性受。③據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載,就領納所緣而論受之義,謂一切之心、心所皆稱為受,特別是指領納隨觸。④據五事毘婆沙論卷下等載,領納所緣之境,稱為受。⑤據成唯識論卷三、成唯識論述記卷三末等載,受不能緣俱生之觸,故領納順、違等境界之相,為其本義;此說有駁斥前列四說之意。
關於受之分類,有諸種說法。據雜阿含經卷十七記載,受有:一受、二受、三受、四受、五受、六受、十八受、三十六受、百八受、無量受等。①一受,受之自相雖有苦、樂、捨等三種,然苦受屬於苦苦,樂受屬於壞苦,捨受屬於行苦;一切皆苦,故稱一受。②二受,心受、身受合稱二受。眼識乃至身識等前五識之感受屬肉體之受,故稱身受。第六意識之感受屬精神之受,故稱心受。大毘婆沙論卷一一五列有諸家對心受、身受之解釋,如:1.無分別為身受,有分別為心受。2.緣自相之境為身受,緣自相、共相之境為心受。3.緣現在之境為身受,緣三世之境、無為之境為心受。4.緣實有之境為身受,緣實有與假有之境為心受。5.於境一往取為身受,於境數數取為心受。6.於境暫緣即了為身受,於境推尋乃了為心受。7.依色而緣色為身受,依非色而緣色、非色為心受。8.世友論師謂一切之受皆為心受,而無身受。③三受,依受之自相而有所分別。即領納愛、非愛及非上記二種之觸,而生起苦、樂、捨等三種感覺。1.樂受,對可愛境之感受。2.苦受,對不可愛境之感受。3.捨受,又作不苦不樂受、非苦樂受。乃對非可愛、非不可愛境之感受。④四受,依界繫不同而有所分別。1.欲界繫受,又稱有味著受,屬於自體愛相應之受。2.色界繫受。3.無色界繫受。4.不繫受。後三項,又稱無味著受,屬於不相應之受。⑤五受,又稱五受根。依身、心受之自相而有別。1.樂受,又稱樂根。指五識相應之身悅,及第三靜慮的意識相應之心悅。2.喜受,又稱喜根。指初二靜慮及欲界的意識相應之心悅。3.苦受,又稱苦根。指五識相應之身不悅。4.憂受,又稱憂根。指意識相應之心不悅。5.捨受,又稱捨根。指身、心之非悅、非不悅。⑥六受,又稱六身受、六受法。指經由六根,六識得以覺知六境,復由根、境、識等和合之六觸,產生眼觸所生之受乃至意觸所生之受。⑦十八受,又稱十八意近行受。計有六喜意近行、六憂意近行、六捨意近行等。謂喜、憂、捨等三受以意識為近緣,各活動於色、聲等六境,乃有十八受。⑧三十六受,又稱三十六師句。謂前項十八意近行各有染品、善品之別,如六喜意近行之中,有順染受之耽嗜依及順善受之出離依。⑨百八受,謂前項三十六受各有過去、現在、未來三世之別。⑩無量受,由上述各家所說之此受、彼受等,可知受之相復有無量之別。〔雜阿含經卷十三、法蘊足論卷九、卷十、發智論卷十四、成實論卷六、卷八、俱舍論卷十、瑜伽師地論卷五十三、大乘義章卷七、雜集論述記卷三、卷五〕
(2)為十二緣起之一支,稱為受支。為幼年少年時期對苦、樂等相之了知。說一切有部基於分位緣起說認為幼年少年時期雖覺知苦、樂等相,然尚未生起淫愛,此期之位即稱為受;此係以五蘊為體,而非以受為體。於唯識大乘之看法,則以無明及行為「能引支」,識乃至受之五支為「所引支」;又以無明及行為「能熏」,識等五支為「所熏」之種子。亦即識、名色、六處、觸等,由於無明、行而影響阿賴耶識之種子,稱為受。〔中阿含卷二十四大因經、長阿含卷十大緣方便經、瑜伽師地論卷五十六、卷九十三、成唯識論述記卷八本〕
(二)為取(梵 upādāna)之舊譯。乃煩惱之異名。(參閱「取」3893)p3897 - ↑ "想",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7일에 확인:
想
Basic Meaning: ideation
Senses:
Perception; to conceive; conceptual thought. Conceptualization, associative thought. A concept, an idea. The symbolification of sensory data. The process by which the images of things are copied into the mind and are assigned names. The function of arising thoughts in the mind regarding shape, color, length, pleasure/pain, etc. (Pāli saññā; Skt. saṃjñā; Tib. 'du shes, shes pa, ming).
Ideation is one of the five aggregates 五蘊. In Abhidharma theory, one of the ten omnipresent factors 大地法. In Yogâcāra, one of the five omnipresent mental factors 五遍行. In this context, the Cheng weishi lun says: "The nature of ideation (saṃjñā) is to grasp the images of objects, and its function is to impute various names and words. When distinct characteristics of the object are established, then various names and words are produced accordingly." 「想謂於境取像爲性。施設種種名言爲業。謂要安立境分齊相方能隨起種種名言。」 〔成唯識論 T 1585.31.11c23–24〕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JEBD, Yokoi, Iwanami]
(Skt. kalpanā; adhimucyamāna, abhipraya, abhipreta, ākāra, upalabdhi, kalpa, kalpana, kalpayati, citta, citta-saṃkalpa, jñapti, nimitta, parikalpa, parikalpyate, prakalpayati, prakalpita, buddhi, bhāvayati, bhūyo'bhiprayaḥ, manasi-kāra, vikalpa, vibhāvayati, visaṃjñin, saṃjñaka, saṃjñāna, saṃjñita, saṃjñitva,saṃmata, saṃmati)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상[想]",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想]
산스크리트어 saṃjñā 팔리어 saññā
①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의식 작용.
② 생각. 관념. 의식 작용. 마음 작용. - ↑ "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7일에 확인:
想
梵語 saṃjñā,巴利語 saññā。音譯為僧若。乃心所(心之作用)之名。五蘊之一。係動詞 jñā(知)與接頭語 saṃ(一切)連結而成,相當於現代語中「概念」一詞。俱舍宗以其為十大地法之一,唯識宗則視其為五遍行之一。指對境之像,於心中浮現之精神作用而言。即相當於表象之知覺,乃次於「受」(印象感覺)而起之心所作用。其所依之根為眼、耳、鼻、舌、身、意六種;而由眼觸所生之想,乃至由意觸所生之想,計有六想(亦作六想身,身表複數)。其次,依所緣境之大、小、無量之別,而有大想、小想、無量想等三想。又欲想(貪欲想)、瞋想(瞋恚想)、害想(殺害想)等三想,謂三不善想或三惡想,乃與貪、瞋(發怒)、害(加害於人)等三種煩惱相應而產生之「想」。出離想、不恚想、不害想等三想,稱三善想,乃三不善想之相反。
此外,想為觀想之意。大品般若經卷一有無常想等十想之說;往生要集卷中亦謂,修念佛時,即是住於歸命想(一心歸佛)、引攝想(為佛所引導)、往生想(往生淨土)等三想之中。〔大毘婆沙論卷七十四、俱舍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入阿毘達磨論卷上〕p6861 - ↑ "想(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7일에 확인:
想(상)
【범】 Saṃjña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5변행(遍行)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상상(像想)ㆍ감상(感想)ㆍ사상(思想) 등의 말과 같은 뜻. 곧 객관적 부산한 만상(萬像)의 모양을 남자ㆍ여자ㆍ풀ㆍ나무 등이라고 생각하는 정신 작용. ⇒승야(僧若)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606_p0695c07║問想蘊何相。答搆了相是想相。由此想故搆
T31n1606_p0695c08║畫種種諸法像類。隨所見聞覺知之義起諸
T31n1606_p0695c09║言說。見聞覺知義者。眼所受是見義。耳所受
T31n1606_p0695c10║是聞義。自然思搆應如是。如是是覺義。自內
T31n1606_p0695c11║所受是知義。諸言說者。謂詮辯義。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인식하는 모양이 ‘상온의 모양’이다. 상온으로 인해서 온갖 모든 법(法)의 모양을 인식하는 것이니, 그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이해하는 이치에 수반해서 갖가지 언설(言說)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釋】 여기서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이해하는 이치’란 눈으로 느껴 받아들이는 것이 보는 이치이고 귀로 느껴 받아들이는 것이 듣는 이치이니, 저절로 생각으로 그려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지각하는 것의 이치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느껴 받아들이는 바가 ‘이해한다는 것의 이치’이다. ‘갖가지 언설’이란 말로써 풀어내는 이치이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43n1830_p0332a23║論。想謂於境至名言為業。 述曰。體性可知。
T43n1830_p0332a24║業言施設者安立之異名。建立發起者亦名
T43n1830_p0332a25║施設。
T43n1830_p0332a26║論。謂要安立至種種名言。 述曰。此中安立。
T43n1830_p0332a27║取像異名。謂此是青。非非青等。作此分齊
T43n1830_p0332a28║而取共相名為安立。由取此像便起名
T43n1830_p0332a29║言此是青等。性類眾多故名種種。諸論說
T43n1830_p0332b01║名為其想者。從因而說。說想為名。從果
T43n1830_p0332b02║而說。如世人言汝想是何名是何等。此業但
T43n1830_p0332b03║是意俱之想。餘識俱想不起名故。設疎起
T43n1830_p0332b04║名亦無失者。第八識想如何어떻게起名。由此故
T43n1830_p0332b05║知此業不遍。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85n2810_p1055c12║想謂於境取像為性。施設種種名言為業。謂
T85n2810_p1055c13║要安立境分齊相方能隨起種種名言。 - ↑ 세우 조, 현장 한역(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阿毘達磨品類足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26, No. 1542,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26n1542_p0693a11║想云何?謂取像性。此有三種,謂
T26n1542_p0693a12║小想、大想、無量想。 - ↑ 세우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949, T.1542). 《아비달마품류족론》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想)이란 무엇인가? 형상을 취하는 성품[取像性]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작은 생각[小想]ㆍ큰 생각[大想]ㆍ한량없는 생각[無量想]이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44n1837_p0055c12║ 謂於境界
T44n1837_p0055c13║ 取其像貌,方圓等相故名為想。 - ↑ 법승 조, 승가제바ㆍ혜원 공역(T.1550).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28, No. 1550,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28n1550_p0810c04║想者事立時隨其像貌受。 - ↑ 법승 지음, 승가제바ㆍ혜원 공역, 김재천 번역(K.959, T.1550). 《아비담심론》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이란 일이 일어날 때에 그 모습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요, - ↑ 법구 조, 승가발마 등 한역(T.1552).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28, No. 1552,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28n1552_p0881a06║想者。於境界取像貌。 - ↑ 법구 지음, 승가발마 등 한역, 김형준 번역(K.960, T.1552). 《잡아비담심론》 제2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생각’4)이란 경계에 대해서 그 형상(形像)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4) 범어로는 saṁjñā. 이른바 표상작용.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602_p0481a26║想者。謂名句文身熏習為緣。從阿賴耶識種
T31n1602_p0481a27║子所生。依心所起與心俱轉。相應取相為體。
T31n1602_p0481a28║發言議為業。如經說有六想身。又說如其所
T31n1602_p0481a29║想而起言議。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想)75) 심소는 명칭ㆍ문구ㆍ문자의 훈습을 연으로 삼아서 아뢰야식의 종자로부터 생겨나고, 심왕에 의지하여 일어난 것으로서 심왕과 더불어 함께 전전하여 상응한다. 모습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말과 논의를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상신(想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그 표상지은 바와 같이 말과 언의(言議)를 일으킨다”고 말한다.
75) 상(想, saṃjñā) 심소는 ‘표상(表象) 작용’ ‘개념화 작용’을 말한다. 대상에 대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갖가지 명칭을 붙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즉 ‘취상(取像)’ 즉 대경(對境)의 모습이나 언어로 표현되는 것 등을 마음에 잡아서 사취(寫取)ㆍ구화(構畵)하고 명칭을 붙이는(언어와 일치할 수 있는) 개념화 작업을 한다. 수(受) 다음에 일어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612_p0848b29║云何想蘊?謂於境界,取種種相。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어떤 것이 상온인가. 경계에 대해 갖가지 상(相)을 취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613_p0851b20║云何想蘊。謂能增勝。取諸境相。增勝取者。謂
T31n1613_p0851b21║勝力能取。如大力者。說名勝力。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7일에 확인:
무엇을 상온(想薀)이라고 하는가?
모든 대상의 모습을 더욱 뛰어나게 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더욱 뛰어나게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뛰어난 힘으로 취할 수 있음을 말한다. 마치 힘이 센 것을 힘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44n1836_p0048a07║ 想則於境取相為性,施設種種名
T44n1836_p0048a08║ 言為業,謂安立自境分齊故,方能隨起種種
T44n1836_p0048a09║ 名言。 - ↑ 법승 조, 우바선다 석, 나련제야사 한역(T.1551). 《아비담심론경》(阿毘曇心論經)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28, No. 1551,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28n1551_p0836c20║想者。於緣能取相貌。謂取男女麁細木杌長
T28n1551_p0836c21║短等相。 - ↑ 법승 지음, 우바선다 해석, 나련제야사 한역, 번역자 미상(K.958, T.1551). 《아비담심론경》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여기서 ‘상(想)’이라 하는 것은 인연에서 능동적으로 취하는 모습을 말한다. 즉 남자와 여자에서 살결이 거칠고 미세하다거나 나무 말뚝이 길고 짧다는 등의 모습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29n1558_p0019a18║想謂於境取差別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想)이란 이를테면 대상[境]에 대한 차별의 상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605_p0663b05║想蘊何相。搆
T31n1605_p0663b06║了相是想相。謂由想故。搆畫種種諸法像類。
T31n1605_p0663b07║隨所見聞覺知之義起諸言說。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온(想蘊)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인식하는 모양이 상온의 모양이다. 상온으로 인해서 온갖 제법(諸法)의 모양을 인식하는 것이니, 그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이해하는 이치에 수반해서 갖가지 언설(言說)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X48n0802_p0309b13║ 境風飄나부낄 표鼓。安
X48n0802_p0309b14║ 立自境。施設名言。故名為想。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X48n0805_p0342c11║ 四想者。於境取像。以為體性。施設種種名言。
X48n0805_p0342c12║ 以為業用。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31n1585_p0011c22║想
T31n1585_p0011c23║謂於境取像為性。施設種種名言為業。謂
T31n1585_p0011c24║要安立境分齊相方能隨起種種名言。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상(想)심소’30)는 대상에 대해 형상을 취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갖가지 명칭을 시설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반드시 대상의 자상ㆍ공상[分齊相]을 안립하여 바야흐로 능히 따라서 갖가지 명칭[名言]을 일으킨다.
30) 상(想, saṃjñā)심소는 ‘표상(表象) 작용’ ‘개념화 작용’의 심소이다. 능히 자기 대상의 구체적인 양상을 안립한다. 대상의 형상을 취하여 명칭을 붙이는(언어와 일치할 수 있는) 개념화 작업을 한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43n1830_p0332a23║論。想謂於境至名言為業。 述曰。體性可知。
T43n1830_p0332a24║業言施設者安立之異名。建立發起者亦名
T43n1830_p0332a25║施設。
T43n1830_p0332a26║論。謂要安立至種種名言。 述曰。此中安立。
T43n1830_p0332a27║取像異名。謂此是青。非非青等。作此分齊
T43n1830_p0332a28║而取共相名為安立。由取此像便起名
T43n1830_p0332a29║言此是青等。性類眾多故名種種。諸論說
T43n1830_p0332b01║名為其想者。從因而說。說想為名。從果
T43n1830_p0332b02║而說。如世人言汝想是何名是何等。此業但
T43n1830_p0332b03║是意俱之想。餘識俱想不起名故。設疎起
T43n1830_p0332b04║名亦無失者。第八識想如何어떻게起名。由此故
T43n1830_p0332b05║知此業不遍。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7일에 확인:
T48n2016_p0746b24║四想。謂名句文身熏習為緣。取相為體。
T48n2016_p0746b25║發言議為業。又想能安立自境分劑。若心起
T48n2016_p0746b26║時無此想者。應不能取境分劑相。於境取像
T48n2016_p0746b27║為性。施設種種名言為業。種種名言。皆由於
T48n2016_p0746b28║想。是想功能。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7일에 확인:
4는 상(想)이다. 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의 훈습을 반연 삼아 모양을 취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말과 의론을 내는 것이 업이 된다.
또 상(想)은 제 경계의 분제(分劑)를 세우나니, 만일 마음이 일어났을 때에 이 상이 없다면 경계의 분제 모양을 취할 수 없다.
경계에 대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갖가지 명언(名言)을 시설하는 것이 업용이 된다. 갖가지의 명언은 모두가 상에서 말미암으며 이것이 상의 공능이다. - ↑ "思",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9일에 확인:
思
Basic Meaning: to think
Senses:
To contemplate, consider, imagine; thinking, pondering (Skt. cintā; Tib. bsam pa). [Charles Muller; source(s): Ui,Nakamura, JEBD, Stephen Hodge]
Volitional impulse; the function of the mind with a motive; intention, aim; volitional activity (Skt. cetana, cetanā-dharma, cetanā, detayitva; Tib. sems pa).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one of the ten omnipresent mental factors 大地法. In the Cheng weishi lun, one of the five omnipresent mental factors 五遍行; the essence of karma. In this technical sense, thought is described as occurring in three stages 三思. 〔觀心覺夢鈔 T 2312.71.66c9〕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JEBD]
Comprehension; inference, reasoning, deduction (Skt. nidhyāna; Tib. nges par sems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Skt. manas-kāra, vicārayati; adhimukti, abhipraya, abhyūhita, āśaya, utkaṇṭhita, ūhana, citta, cintana, cintanā, cintāmaya, cintin, cetayati, caitanya, *praṇin, buddhi, manasi-karaṇa, manasi-kāra, manaḥ-saṃcetanā, vikalpa, vicāraṇā, vicāryate, vicikitsat, vicintita; saṃcetanā, saṃjñā, saṃtīrita, smṛti Tib. sems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思",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思
辭典解釋 :
解釋[1]
:
思 (1) To think, contemplate, esteem, consider, judge, realize, imagine. Thought(s), idea, mind, sense. (2) the function of the mind with a motive; intention, aim; volitional activity. In Abhidharmakośa theory, one of the Ten Great Ground Mental Function Elements (cetanā, detayitva)。
解釋[2]
:
cint- 指底. Think, thought; turn the attention to; intp. by 心所法 mental action or contents, mentality, intellection.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 ↑ "思(사)",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思(사)
【범】 cetanā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俱舍)의 75법(法)중에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의 100법 중에 5변행(遍行)의 하나. 조작(造作)의 뜻. 자석에 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경계에 대하여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선ㆍ악ㆍ무기(無記)의 업(業)을 짓게 하는 정신 작용. - ↑ "사[思]",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사[思]
① 산스크리트어 cetanā 마음을 움직여 행위를 일으키게 하는 의지의 작용.
② 사고. 분별. 생각. 추론. - ↑ "思",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9일에 확인:
思
梵語 cetanā,或 cint。心所之名。為造作之義。為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即對境審慮而引起心、心所造作之精神作用。近於現代語所謂之「思想」、「意志」等。思,在俱舍宗為十大地法之一,恆與一切之心相應。在唯識宗為五遍行之一,當心起時,必有思之作用。蓋思乃令心、心所造作之法,為身語意三業之原動力。
依俱舍論卷十三載,思有思惟思、作事思二種:(1)豫先思惟所應作之事,稱為思惟思。(2)欲作其事之思,稱為作事思。此二者共稱為思業;若已發動身、語二業,則稱思已業。於此,思業同於意業,以心所之思為其體;思已業同於身、語二業,以色聲為其體。然經部與大乘唯識宗則皆以思為三業之體。
據成唯識論卷一載,思有三種:(1)審慮思,先對境取正因、邪因、俱相違等之相,加以審察考慮。(2)決定思,審慮之後,決定其意。(3)動發勝思,決定其意後,發動身、語二業,令發生作用。三者同於瑜伽師地論卷五十四所說之加行思、決定思、等起思。前二者相當於俱舍論之思惟思,後一者相當於作事思。然俱舍等主張思惟、作事二思以心所之思為體,別於以色聲為體之身語二業,而大乘則主張三業皆以思為體,是為二者相異之處。又大乘依「思乃造作之義」,而以眼觸所生乃至意觸之六思身為行蘊;然於俱舍等則謂,行蘊並不限於思,而廣攝其他之心所及不相應法。〔中阿含卷三十三釋問經、大乘法苑義林章卷三末〕p4803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02_p0481a29║思者謂令心造作得失俱非。意
T31n1602_p0481b01║業為體。或為和合。或為別離。或為隨與。或為
T31n1602_p0481b02║貪愛。或為瞋恚。或為棄捨。或起尋伺。或復為
T31n1602_p0481b03║起身語二業。或為染污。或為清淨行。善不
T31n1602_p0481b04║善非二為業。如經說有六思身。又說當知我
T31n1602_p0481b05║說。今六觸處即前世思所造故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사(思)76) 심소는 심왕으로 하여금 이득, 손해, 이득도 손해도 아닌 것을 조작하게 함을 말한다. 의업(意業)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화합하기도 하고, 혹은 따로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따라서 주기도 하고, 혹은 탐애하기도 하며, 혹은 성내기도 하고, 혹은 놓아버리기도 하며, 혹은 심구[尋]와 사찰[伺] 심소를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다시 신업과 어업(語業)을 일으키기도 하며, 혹은 염오(染汚)가 되기도 하고, 혹은 청정행이 되기도 하여 선, 불선, 선도 불선도 아닌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섯 가지 사신(思身)이 있다”고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마땅히 알라. 나는 말하노니, 지금의 여섯 가지 촉처(觸處)는 곧 전생의 사(思)가 지은 것이기 때문에 업(業)이다”라고 말한다.
76) 사(思, cetanā) 심소는 ‘조작(造作)’의 의미로서 ‘의지(意志) 작용’을 말한다.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선품(善品) 등에 대해서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대상에 대하여 선ㆍ악ㆍ무기 등의 마음 작업을 일으키게 하여 업도(業道)의 근원이 된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44n1837_p0055c13║ 令心造作善、
T44n1837_p0055c14║ 惡、無記如是等業,稱之為思。。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X48n0802_p0309b14║ 微細不斷。驅役自心。
X48n0802_p0309b15║ 令造善惡。故名為思。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05_p0663b07║行蘊何相。造
T31n1605_p0663b08║作相是行相。謂由行故。令心造作於善不善
T31n1605_p0663b09║無記品。中驅役心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행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조작하는 모양이 행온의 모양이다. 행온으로 인해서 마음을 선품(善品)ㆍ불선품(不善品)ㆍ무기품(無記品) 가운데에서 조작하여 그 마음을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05_p0664a24║何等為思。謂於心造作意業為體。於善不善
T31n1605_p0664a25║無記品中役心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사(思)심소법입니까?
마음을 조작하는 의업(意業)이 그 바탕이다. 선품ㆍ불선품ㆍ무기품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業)을 이루게 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06_p0695c12║問行蘊何相。答造作相是行相。由此行故令
T31n1606_p0695c13║心造作。謂於善惡無記品中驅役心故。又
T31n1606_p0695c14║於種種苦樂等位驅役心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행온은 그 모양이 어떠합니까?
조작하는 모양이 ‘행온의 모양’이다. 행온으로 인해서 마음을 선품(善品)ㆍ불선품(不善品)ㆍ무기품(無記品) 가운데에서 조작하여 그 마음을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釋】 또 갖가지 ‘고’와 ‘낙’ 따위의 지위에서 마음을 부리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06_p0697a24║思者。於心造作意業為體。於善不善無記品
T31n1606_p0697a25║中役心為業。於心造作意業為體者。此辯其
T31n1606_p0697a26║相。於善等品中役心為業者。此辯其業。以
T31n1606_p0697a27║於所作善等法中發起心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사(思)심소법입니까?
마음을 조작하는 의업(意業)이 그 바탕이다. 선품(善品)ㆍ불선품(不善品)ㆍ무기품(無記品) 가운데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業)을 이루게 된다.
【釋】 ‘마음에서 조작되는 의업이 그 바탕’이란 것은 그 모양을 따져본 것이다. ‘선품 따위에서 그 마음을 부리는 것으로 업을 이룬다는 것’이란 그 업을 따져본 것이니, 선품 따위의 업을 짓도록 마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585_p0011c24║思謂
T31n1585_p0011c25║令心造作為性。於善品等役心為業。謂
T31n1585_p0011c26║能取境正因等相。驅役自心令造善等。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3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사(思)심소’31)는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선품(善品) 등에 대해서 심왕을 작용하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대상의 바른 원인[正因]32) 등의 양상을 취하여 자기 심왕을 작용시켜서 선 등을 짓도록 만든다.
31) 사(思, cetanā)심소는 ‘의지 작용’으로서, 심왕ㆍ심소로 하여금 선ㆍ악의 대상에 대해 선ㆍ악의 심작업(心作業)을 일으키게 하여 업도(業道)의 근원이 된다.
32) 정인(正因)ㆍ사인(邪因)ㆍ구상위인(俱相違因)을 말한다. 정인은 선(善)의, 사인(邪因)은 악(惡)의, 구상위인(俱相違因)은 무기의 업을 일으키는 원인[因]이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3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43n1830_p0332b06║論。思謂令心至役心為業。 述曰。其義可知。
T43n1830_p0332b07║論。謂能取境至令造善等。 述曰。謂瑜伽論
T43n1830_p0332b08║第三卷。說即此邪正俱相違行因相。由思了
T43n1830_p0332b09║別 謂邪.正等行即身.語業。此行之因即善.
T43n1830_p0332b10║惡境。由了此境相故思作諸業。起善.惡等
T43n1830_p0332b11║事故。言取境正因等相是思之業 問思
T43n1830_p0332b12║令心作。為亦令彼心所法作不。若亦令心
T43n1830_p0332b13║所法作。何故不說。若唯令心作。何故不同
T43n1830_p0332b14║作意亦令心所作 行相實同作意。亦令
T43n1830_p0332b15║心所造作。以心勝故但說作心。
T43n1830_p0332b16║此別解已次下總釋俱。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44n1836_p0048a09║ 思則令心造作為性,於善品等役心為
T44n1836_p0048a10║ 業,為能取境正因等相,驅役自心能造善
T44n1836_p0048a11║ 等。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48n2016_p0746b28║五思。謂念心。造作一切善惡總
T48n2016_p0746b29║別報為思體。於善品等。役心為業。觸等五法。
T48n2016_p0746c01║心起必有。故是遍行。餘非遍行。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9일에 확인:
5는 사(思)이니, 생각하는 마음을 말한다. 온갖 선악의 총체적인 업보와 개별적인 업보를 조작하는 것이 사의 체성이 되고, 착한 품류 등에 대해 마음을 부리는 것이 업용이 된다.
촉 등의 다섯 가지 법은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있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변행이지만, 그 밖의 것은 변행이 아니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3║云何為思?謂於功德過失
T31n1612_p0848c14║及俱相違,令心造作,意業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9일에 확인:
어떤 것이 사(思)인가.
공덕과 과실과 두 가지가 아닌 것에 대해 마음을 조작하게 하는 의업(意業)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31n1613_p0851c13║云何思。謂於功德過失。及以俱非。令心造作
T31n1613_p0851c14║意業為性。
T31n1613_p0851c15║此性若有。識攀緣用。即現在前。猶如磁石引
T31n1613_p0851c16║鐵令動。能推善不善無記心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9일에 확인:
무엇을 사유[思]라고 하는가?
공덕과 과실 및 둘 다 아닌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작의의 업을 짓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 성질이 만약 있다면 식이 용을 반연하여 지금 바로 앞에 드러나게 한다. 마치 자석이 쇠를 끌어서 움직이게 하는 것과 같다. 능히 선ㆍ불선ㆍ무기심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 행동양식이다.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T85n2810_p1055c13║思謂
T85n2810_p1055c14║令心造作為性。於善惡等役心為業。謂能取
T85n2810_p1055c15║境正因等相。驅役自心令造善等。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9일에 확인:
X48n0805_p0342c12║ 五思者。令心造作。以為體性。於善惡無
X48n0805_p0342c13║ 記之事役心。以為業用。 - ↑ "五別境(오별경)",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五別境(오별경)
각기 대상에 따라 따로따로 일어나는 5종의 심리 작용. 곧 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 ⇒별경심소(別境心所) - ↑ "別境(별경)",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別境(별경)
(1) 각각 다른 경계. (2) 별경심소(別境心所). - ↑ "別境心所(별경심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9일에 확인:
別境心所(별경심소)
↔ 변행심소. 온갖 마음에 두루 통하여 일어나지 않고, 각각 다른 경계에 대하여 일어나는 심소. 예를 들면 즐거운 경계를 만나면 욕(欲)의 심소가 일어나고, 결정을 필요로 하는 대경을 만나면 승해(勝解)의 심소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 이 별경심소에는 욕(欲)ㆍ승해(勝解)ㆍ염(念)ㆍ정(定)ㆍ혜(慧)의 5종이 있음 . ⇒오별경(五別境) - ↑ "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欲
Basic Meaning: desire
Senses:
Craving (Skt. tṛṣṇā, raga, kāma). Lust, passion. Covetous.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Iwanami]
Intention, longing, wish. To long for, to wish; seek, desire, want, aspire to. Modal auxiliary verb: volitional verb, it expresses an intention, or the desire to accomplish an action, or a wish (Peyraube 2001) 'wish, need, want' . In this function already frequent in Classical Chinese and still in later texts. In Buddhist Chinese: Occasionally as a marker of the future 'will' . Only with predicates which express non-desirable events and with [-human] subjects. Sometimes combined with the aspecto-temporal adverb jiāng 將, marking future: jiāng yù 將欲 (Skt. abhipraya; *ā-kāṅkṣ; *iṣ; Tib. 'dun pa, bsam pa; Tib. 'dod pa, 'tshal ba). [Barbara Meisterernst; source(s): Stephen Hodge]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one the mental functions: to hope desire, long for; the desire for those objects one takes pleasure in (Skt. āśaya). [Charles Muller]
According to the Yogâcāra school, the function of the mind that hopes to receive the objects that it likes. One of the five 'object-dependent' mental factors 五別境 (Skt. chanda) . [Charles Muller]
The desire realm. [Charles Muller]
The sexual lust between man and woman. [Charles Muller]
In specialized Vinaya discourse, it is chanda, meaning 'consent,' or 'agreement.' (T 1425.22.475a20). In particular it is used in the context of the legal transaction meetings of the saṃgha, where it refers to the consent of bhikṣus or bhikṣuṇīs who cannot come to the meeting due to illness or other pressing reasons although staying within the same monastic boundary (sīmā). The bhikṣu or bhikṣuṇī who can't come has to declare his consent to the legal transaction to another bhikṣu or bhikṣuṇī who then announces the absenteeʼs consent at the actual meeting. It is often used together with purity 淸淨 (pariśuddhi) as 'consent and purity' 欲淸淨 (chanda pariśuddhi). [Nyanatusita; source(s): T1425]
The Chinese word means to breathe after, aspire to, desire, and is also used as 慾 for lust, passion; it is inter alia interpreted as 染愛塵 tainted with the dust (or dirt) of love, or lust. The three desires are for beauty, demeanor, and softness; the five are those of the five physical senses.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kt. kāma, rāga, icchā, adhimukti, adhimuktika, anunaya, abhipreta, abhilāṣa, abhilāṣa-kṛt, abhilāṣin, abhisaṃdhi, abhīpsita, abhyudyata, abhyupeta, artha, artham, arthāya, arthika, arthe, ākāṅkṣam, ātura, āsthā, icchatā, icchu, iṣṭa, īpsita, eṣin, autsukya, kalpa, kāṅkṣa, kāma-guṇa, kāma-cchanda, kāmatā, kāma-dhātu, kāma-dhātu-ja, kāma-yoga, kāma-rāga, kāma-viṣaya, kāmâpta, kāmâvacara, kāmin, kāminī, kāmyā, cintita, niścikīrṣā, parīṣ, pratipannaka, pratyupasthita, pravṛtta, prarthanā, prekṣā, prekṣin, bhūyas-kāmatā, manaḥ-spṛhā, mano-ratha, maithuna, yiyāsā, rati, rāga-vaśa, rāgin, riraṃsā, ruci, rocayati, lubdha, śraddhā, saṅga, spṛhā; Tib. 'dun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Also see 欲法.
Reference:
Peyraube, Alain. 2001. “On the Modal Auxiliaries of Volition in Classical Chinese.” In Chappell, Hilary, ed. Sinitic grammar: Synchronic and Diachronic perspectiv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Charles Muller] - ↑ "欲(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欲(욕)
[1] 구사(俱舍)에서는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5별경(別境)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가 좋아하는 대경(對境)에 대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희망하는 정신 작용.
[2] ⇒욕법(欲法) - ↑ "욕[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욕[欲]
① 산스크리트어 chanda 좋은 대상을 바라는 마음 작용.
② 산스크리트어 kāma 쾌락. 음욕. 성욕.
③ ⇒ 여욕(與欲)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X48n0802_p0309c01║ 欲者。樂欲。謂於所樂境。希望欲作。此正必
X48n0802_p0309c02║ 作之心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4║云何為欲?謂
T31n1612_p0848c15║於可愛事,希望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떤 것이 욕(欲)인가. 애락 할 만한 일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13_p0851c17║云何欲。謂於可愛樂事。希望為性。愛樂事者。
T31n1613_p0851c18║所謂可愛見聞等事。是願樂希求之義能與
T31n1613_p0851c19║精進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무엇을 바람[欲]이라고 하는가?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에 있어서 희망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좋아하고 즐길 만한 일이란 좋아할 만한 것을 보고 듣는 일 등을 말한다. 이것은 원하여 즐기고 희구한다는 뜻이다. 정진(精進)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4n1837_p0055c23║ 欲者,於自樂境,希望願求,或善或惡,名之
T44n1837_p0055c24║ 為欲。 - ↑ "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欲
梵語 chanda 或 rajas。又作樂欲。心所名。意謂希求、欲望。希望所作事業之精神作用。說一切有部指從一切心起之作用,為大地法所攝。唯識宗則謂,心捕잡을 포捉잡을 착對象係由作意之作用,非由欲之作用,故欲非從一切心起,僅係對願求對象所起之別境。欲有善、惡、無記等三性,善欲為引起精勤心之根據;惡欲中之希欲他人財物者,稱為貪,為根本煩惱之一。
欲有五欲、六欲、三欲等多種:(1)五欲,愛著色、聲、香、味、觸等五境者,稱為五欲;被愛著之五境,亦稱為五欲、五欲德或五妙欲。對財、色、飲食、名、睡眠之欲,亦稱作五欲。(2)六欲,對色、形貌、威儀姿態、言語音聲、細滑、人相之欲,即為六欲。(3)三欲,於六欲中對形貌、姿態、細觸之欲,稱為三欲。此外,以貪欲深而難越、易落,比喻為塹,稱為欲塹;或以貪欲之煩惱能令人沉沒如河,稱為欲河;比喻諸欲惱人如針刺身,稱為欲刺;此等皆為強調欲之害人。又以欲之污身、擾人,而比喻為欲塵、欲魔、欲縛等。〔俱舍論卷四、品類足論卷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成唯識論卷五〕(參閱「五欲」1508、「六欲」1682)p5856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2_p0481b06║欲者。謂於所樂境希望為體。勤依為業。如經
T31n1602_p0481b07║說欲為一切諸法根本。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욕(欲)77) 심소는 좋아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희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근(勤) 심소의 의지처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욕은 온갖 법의 근본이 된다”고 말한 바와 같다.
77) 이하 여섯 가지 별경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욕(欲, chanda) 심소는 ‘욕구’ 즉 어느 사물, 특히 좋아하는 대상을 희구하는 욕구의 심리작용이다. 특히 선욕(善欲)은 바른 정진[正勤]의 작용을 일으키는 소의(所依)가 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585_p0028a20║云何為欲。於
T31n1585_p0028a21║所樂境希望為性。勤依為業。有義所樂謂
T31n1585_p0028a22║可欣境。於可欣事欲見聞等有希望故。
T31n1585_p0028a23║於可厭事希彼不合。望彼別離豈非有
T31n1585_p0028a24║欲。此但求彼不合離時可欣自體非可厭
T31n1585_p0028a25║事。故於可厭及中容境一向無欲。緣可欣
T31n1585_p0028a26║事若不希望亦無欲起。有義所樂謂所求
T31n1585_p0028a27║境。於可欣厭求合離等有希望故。於中
T31n1585_p0028a28║容境一向無欲。緣欣厭事若不希求亦無
T31n1585_p0028a29║欲起。有義所樂謂欲觀境。於一切事欲觀
T31n1585_p0028b01║察者有希望故。若不欲觀隨因境勢任運
T31n1585_p0028b02║緣者即全無欲。由斯理趣欲非遍行。有說
T31n1585_p0028b03║要由希望境力諸心心所方取所緣。故經
T31n1585_p0028b04║說欲為諸法本。彼說不然。心等取境由作
T31n1585_p0028b05║意故。諸聖教說作意現前能生識故。曾無
T31n1585_p0028b06║處說由欲能生心心所故。如說諸法愛為
T31n1585_p0028b07║根本。豈心心所皆由愛生。故說欲為諸法
T31n1585_p0028b08║本者。說欲所起一切事業。或說善欲能發
T31n1585_p0028b09║正勤。由彼助成一切善事。故論說此勤依
T31n1585_p0028b10║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5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무엇을 ‘욕심소’231)라고 하는가? 좋아하게 된 대상에 대해서 희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근(勤)심소의 의지처[依]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32) 좋아하게 된 것[所樂]이란, 기뻐할 만한 대상을 말한다. 기뻐할 만한 대상에 대해서 보고 듣는 것 등을 하고자 할 때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문】 싫어할 만한 대상에 대해서 거기에 합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거기서 떠나기를 바라는 것은 어째서 욕심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답】 이것이 다만 그것233)에는 합하지 않고 떠나고자 구할 때에는 기뻐할 만한 자체이고, 싫어할 만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싫어할 만한 것과 중용(中容)의 대상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욕(欲)심소가 없다. 기뻐할 만한 대상을 반연하더라도, 만약 희망하지 않을 때에는 역시 욕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34) 좋아하게 된 것이란, 구하게 된 대상[所求境]을 말한다. 기뻐하거나 싫어할 만한 것에 대해서 화합[合]이나 떠남[離] 등을 구할 때에 희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중용의 대상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욕심소가 없다. 기뻐하거나 싫어할 만한 대상을 반연하더라도 만약 희구하지 않을 때에는 역시 욕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35) 좋아하게 된 것이란,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을 말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관찰하고자 하는 것에는 희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관찰하고자 하지 않고, 원인ㆍ대상의 세력에 따라서 자연적으로 반연하는 것에는 전혀 욕심소가 없다. 이러한 논리의 취지에 근거하여 욕심소는 변행심소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36) 모름지기 대상을 희망하는 세력에 의해 모든 심왕과 심소가 비로소 인식대상을 취한다. 따라서 경전에서 욕구를 모든 법의 근본이라고 설한다.237)
그가 말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심왕 등이 대상을 취하는 것은 작의(作意)심소에 의하기 때문이다. 여러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말하기를, 작의심소가 현전해서 능히 식을 일으킨다고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어떤 경론에서도 욕심소에 의해 능히 심왕과 심소를 일으킨다고 말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법은 애착[愛]을 근본으로 한다고 말씀하는 것238)과 같다.
그렇다고 어찌 심왕과 심소가 모두 애착[愛]에 의해 생겨나겠는가? 따라서 욕구를 일체법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은, 욕구에서 일으켜지는 모든 사업239)을 말한다. 혹은 착한 욕구는 능히 바른 노력을 일으키고, 그것에 의해 모든 착한 일을 조성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논서에서 이것이 근(勤)심소의 의지처인 것으로써 업을 삼는다고 말한다.
231) 욕(欲, chanda)심소는 ‘욕구’, 즉 좋아하게 된 대상을 희망하는 심리작용이다. 특히 선욕(善欲)은 정진[勤] 작용을 일으키는 소의(所依)가 된다.
232)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33) 싫어할 만한[可厭] 일을 가리킨다.
234)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35) 호법의 정의이다.
236)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그들은 욕(欲)심소를 대지법(大地法)에 포함시켜서 변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37) 『중아함경』 제28권(『고려대장경』 18, p.19上:『대정장』 1, p.602下).
238) 『잡아함경』 제35권(『고려대장경』 18, p.1065上:『대정장』 2, p.256上).
239) 선ㆍ악ㆍ무기 심성의 사업(事業)을 가리킨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3n1830_p0428b25║論。云何為欲。 述曰。自下各有二。初問。次
T43n1830_p0428b26║答。此問也。答中有三。初解體.業。次廣前
T43n1830_p0428b27║文。後破異執。此即問也。
T43n1830_p0428b28║論。於所樂境至勤依為業。 述曰。然勤依者
T43n1830_p0428b29║如此下說。及對法第十等皆云。信為欲依。
T43n1830_p0428c01║欲為精進依。即入佛法次第依也。然欲既
T43n1830_p0428c02║通三性。即唯善欲為依。今又解。勤者勤劬。
T43n1830_p0428c03║染法懈怠勤作諸惡亦是勤故。無記事勤即
T43n1830_p0428c04║欲.勝解。若言精進。精進唯善。勤通三性。皆
T43n1830_p0428c05║欲為依。非唯善勤。下文說欲能起正勤。前
T43n1830_p0428c06║解為勝。下三師解。此中所說第一總意。
T43n1830_p0428c07║論。有義所樂至有希望故。 述曰。其可欣境。
T43n1830_p0428c08║謂漏.無漏可欣之事方生於欲。此據情可
T43n1830_p0428c09║欣故通三性。非唯無漏實可欣法。於可欣
T43n1830_p0428c10║事欲見.欲聞.欲覺.欲知故有希望。即是
T43n1830_p0428c11║四境之中所樂境也。
T43n1830_p0428c12║論。於可厭事至豈非有欲。 述曰。此外人問。
T43n1830_p0428c13║謂苦穢事等。未得之者希彼不合。已得之
T43n1830_p0428c14║者望彼別離。豈非有欲。緣可厭事欲既得
T43n1830_p0428c15║生。如何唯言可欣生欲。
T43n1830_p0428c16║論。此但緣彼至非可厭事。 述曰。論主答
T43n1830_p0428c17║云。此不緣可厭事。謂此欲但求彼可厭之
T43n1830_p0428c18║事未合不合。已合得離之位。可欣自體。若
T43n1830_p0428c19║自內身可欣不合。及後離位。若欲外境此
T43n1830_p0428c20║位。即是緣可欣事生。非可厭事。
T43n1830_p0428c21║論。故於可厭至亦無欲起。 述曰。可厭之處
T43n1830_p0428c22║即通六識。或唯第六。其中容境八識俱通。全
T43n1830_p0428c23║不起欲。不欣彼故。非可欣故。境雖可欣。
T43n1830_p0428c24║若不希望亦無欲起。唯前六識。如邪見撥
T43n1830_p0428c25║滅.道等時亦無有欲。
T43n1830_p0428c26║論。有義所樂至亦無欲起。 述曰。第二師。所
T43n1830_p0428c27║樂者。謂所求之境。隨境體性可欣可厭。但
T43n1830_p0428c28║求於彼可欣事上。未得望合。已得願不
T43n1830_p0428c29║離。可厭之事。未得願不得合。已得願別
T43n1830_p0429a01║離中。皆得起欲。故論但言求合離等。等取
T43n1830_p0429a02║彼也。即緣此二皆得生欲。餘文可解。故
T43n1830_p0429a03║體寬於第一。唯前七識。或唯第六。有此欲
T43n1830_p0429a04║故。於中容境全不起欲。即通八識。或唯前
T43n1830_p0429a05║六.及八。以第七識常希求故。
T43n1830_p0429a06║論。有義所樂至即全無欲。 述曰。第三師。所
T43n1830_p0429a07║樂者謂欲觀境。不但求彼若合若離。但欲作
T43n1830_p0429a08║意隨何識欲觀等者。皆有欲生。唯前六識。
T43n1830_p0429a09║或唯第六.七.八因中無作意欲觀。任運起
T43n1830_p0429a10║故。七.八二識全。及六識異熟心等一分。但
T43n1830_p0429a11║隨因.境勢力任運緣者全無欲起。餘皆欲
T43n1830_p0429a12║生。
T43n1830_p0429a13║論。由此理趣欲非遍行。 述曰。結也。於此三
T43n1830_p0429a14║中。第三最勝。境稍寬故。即七.八識無欲理
T43n1830_p0429a15║生。正合前七識中第四師義。
T43n1830_p0429a16║論。有說要由至為諸法本。 述曰。自下破執。
T43n1830_p0429a17║薩婆多說。要由有欲希望境力。諸心.心所
T43n1830_p0429a18║方取所緣。若不希望如何取境。即欲遍諸
T43n1830_p0429a19║心欲為諸法本。證欲遍義。
T43n1830_p0429a20║論。彼說不然至心心所故。 述曰。今破不然。
T43n1830_p0429a21║心等取境作意功力。警心.心所令取所緣。
T43n1830_p0429a22║如前已說。聖教但言作意能生識。不言欲
T43n1830_p0429a23║能生心。故知作意令心等取境。何待於欲。
T43n1830_p0429a24║論。如說諸法至皆由愛生。 述曰。此即難言。
T43n1830_p0429a25║經亦說愛為諸法本。豈一切心皆由愛有。
T43n1830_p0429a26║若言如愛非遍生心。如何說欲為諸法本
T43n1830_p0429a27║順正理第十廣引此經。乃至未云解脫堅固
T43n1830_p0429a28║究竟涅槃。
T43n1830_p0429a29║論。故說欲為至勤依為業。 述曰。經中所說。
T43n1830_p0429b01║說欲所起一切事業。由欲為彼本。通三性
T43n1830_p0429b02║法皆有勤故。由此文知。入法初首。由善
T43n1830_p0429b03║法欲能發精進。由精進故。助成於欲一切
T43n1830_p0429b04║善事。此即說欲為諸善法本。如說信為法
T43n1830_p0429b05║本但是善因。欲為法本理應如是。對法十
T43n1830_p0429b06║五。謂一切法欲為根本。乃至出離為後邊
T43n1830_p0429b07║等。故對法.顯揚皆說勤依為業。欲通緣三
T43n1830_p0429b08║世。欲作意觀故非唯未來。以前三師一一
T43n1830_p0429b09║三世辨對可知。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5_p0664a27║何等為
T31n1605_p0664a28║欲。謂於所樂事彼彼引發所作希望為體。正
T31n1605_p0664a29║勤所依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욕(欲)심소법입니까?
그러한 것들의 인발(引發)에서 지어진 희망이 그 바탕이다. 정근(正勤)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6_p0697b05║欲者於所樂事彼彼引發所作希望為體。正
T31n1606_p0697b06║勤所依為業。彼彼引發所作希望者。謂欲引
T31n1606_p0697b07║攝見聞等一切作用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욕(欲)심소법입니까?
저러한 것들의 인발(引發)에서 지어진 희망이 그 바탕이다. 정근(精勤)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저러한 것들의 인발에서 지어진 희망’이란 욕심소법이 보고 듣는 따위의 일체의 작용을 거두어 수렴하는 것이다.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8n2016_p0746c02║一欲。謂
T48n2016_p0746c03║於所樂境。希望為體。勤依為業。又於一切事
T48n2016_p0746c04║欲觀察者。有希望故。若不欲觀。隨因境勢。任
T48n2016_p0746c05║運緣者。即全無欲。由斯理趣。欲非遍行。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1은 욕이니, 즐길 바의 경계에 대해 희망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애써 함[動]의 의지가 업용이 된다.
또 온갖 일에 대해 관찰하려고 하는 이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만일 관찰하려 하지 않고 경계로 인한 세력에 따라 저절로 반연한다면 전혀 욕이 없는 것이니, 이런 이치로 말미암아 욕은 변행심소가 아니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4n1836_p0048a13║言欲者,於
T44n1836_p0048a14║ 所樂境希望為性,勤依為業。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85n2810_p1055c20║所言欲者。於所樂境希
T85n2810_p1055c21║望為性。勤依為業。所樂境者謂欲觀境。於一
T85n2810_p1055c22║切事欲觀察者。有希望故方有欲生。若不欲
T85n2810_p1055c23║觀隨因勢力任運緣者。全無欲故。由斯故
T85n2810_p1055c24║說欲非遍行。若善法欲能發正勤。由彼助成
T85n2810_p1055c25║一切善事。故論說此勤依為業。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X48n0805_p0342c16║ 一欲者。於所樂境希求冀望。以為體性。精勤依
X48n0805_p0342c17║ 此而生。以為業用。 - ↑ "勝解",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勝解
Basic Meaning: determination
Senses:
Resolve; devoted interest; to be interested in, inclined to. The Chinese translation, which reads more like 'excellent understanding' can be interpreted to mean that one who has devoted interest in something will gain excellent understanding of it (Skt. adhimukti, adhimokṣa; Tib. mos pa, mospa; Pāli adhimutti). The Cheng weishi lun says: "The nature of resolve is that of correct ascertainment in regard to an object that is definite. Its function is that of not allowing the object to be doubted. That is, through the power of false or correct teachings, reasoning, or experience, one is certain, and correctly ascertains the object in question. As a consequence, other conditions are unable to change one's mind." 〔成唯識論 T 1585.31.22a15〕 (English rendering from Frances Cook's translation of Three Texts on Consciousness-Only, p. 167) (Skt. adhimukta, adhimuktatva, adhimuktika, adhimuktikatā, adhimuktitā, adhimucyamāna, adhivimokṣa, ādhimokṣika, *vimucyate; Pāli adhimokkha) [Stephen Hodge, Charles Muller]
'Verification.' In Yogâcāra 瑜伽行派, the mental function of making clear exactly what the object is. One of the five object dependent 五別境 mental functions. 〔成唯識論 T 1585.31.27b1〕 [Charles Muller]
Also see 信解.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勝解(승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勝解(승해)
【범】 adhimokṣa 75법(法) 중,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100법 중, 5변행(遍行)의 하나. 대경에 향하여 수승한 해(解)로써 시(是)ㆍ비(非), 사(邪)ㆍ정(正)을 살펴 결정하는 정신 작용. - ↑ "승해[勝解]",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승해[勝解]
산스크리트어 adhimokṣa 대상을 명료하게 이해하여 확신하는 마음 작용. 대상을 확실하게 이해하여 굳게 믿는 마음 작용. - ↑ "勝解",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勝解
梵語 adhimokṣa,巴利語 adhimutti。又作信解。心所之名。為俱舍七十五法中十大地法之一,唯識百法中五別境之一。殊勝之了解之義。即於所緣之境起印可之精神作用(即作出確定之判斷)。然有關勝解一語,各家之解釋互異,說一切有部與俱舍宗謂勝解為十大地法之一,能與一切心所相應,即於一切心品遍起。俱舍論卷四(大二九‧一九上):「勝解,謂能於境印可。」即不論是與非、邪與正,皆能審決,為此心所之作用。如心對境時,其為花、為月,心即印可其為花、月,故一切心品必定有此心所。然唯識宗則以其為五別境之一,不能遍於一切心所。成唯識論卷五(大三一‧二八中):「云何勝解?於決定境印持為性,不可引轉為業,謂邪正等教理證力於所取境審決印持,由此異緣,不能引轉,故猶豫境勝解全無,非審決心亦無勝解,由斯勝解非遍行攝。有說心等取自境時無拘礙,故皆有勝解,彼說非理。」此謂勝解於決定之境審決時,始能稱其為勝解。若於猶豫之境,心存疑問,無法審決,則無勝解,故非遍行。
又上座部主張勝解即「決定」,而與「智相」無別。說一切有部則以「印可」為勝解之別作用,謂「印可」乃經由勝解以衍生之另一作用,故異於勝解或智相等;而「智相」之外別有其體。大毘婆沙論卷一O一謂擇滅乃無為解脫之自性,勝解為有為解脫之自性。〔品類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十六、卷二十八〕p6137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4n1837_p0055c24║ 於所緣境,心生決定,是事必爾,名為勝
T44n1837_p0055c25║ 解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X48n0802_p0309c02║ 勝解。謂於境決定。知其可作。不能
X48n0802_p0309c03║ 已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4n1836_p0048a14║勝解者,於決定
T44n1836_p0048a15║ 境印持為性,不可引轉為業。謂邪正等教理
T44n1836_p0048a16║ 證力,於所取境,審決印持,由此異緣不能引
T44n1836_p0048a17║ 轉故,若猶豫境,勝解全無,勝即是解。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X48n0805_p0342c17║ 二勝解者。於決定非猶豫境。印
X48n0805_p0342c18║ 可任持。而為體性。不可以他緣引誘改轉。而為業
X48n0805_p0342c19║ 用。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5║云何勝解?謂於決定事,
T31n1612_p0848c16║即如所了印可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떤 것이 승해(勝解)인가. 결정할 일에 대해 분명히 아는 바대로 인가(印可)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585_p0028b10║云何勝解。於決定境印持為性。不可
T31n1585_p0028b11║引轉為業。謂邪正等教理證力於所取境
T31n1585_p0028b12║審決印持。由此異緣不能引轉。故猶豫境
T31n1585_p0028b13║勝解全無。非審決心亦無勝解。由斯勝解
T31n1585_p0028b14║非遍行攝。有說心等取自境時無拘礙故
T31n1585_p0028b15║皆有勝解。彼說非理。所以者何。能不礙者
T31n1585_p0028b16║即諸法故。所不礙者即心等故。勝發起者根
T31n1585_p0028b17║作意故。若由此故彼勝發起。此應復待餘
T31n1585_p0028b18║便有無窮失。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5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무엇을 ‘승해(勝解)심소’240)라고 하는가? 결정된 대상을 분명히 지니는 것을 체성으로 하고, 이끌어 전전하는[引轉] 것을 업으로 한다. 삿되고 바른 것 등의 가르침과 도리 및 증과(證果)의 힘으로써, 인식대상에 대해서 살펴서 결정하고 분명히 지닌다. 이에 의거해서 다른 연(緣)까지 이끌어 전전할 수 없다. 따라서 대상을 유예(猶豫)하는 데는 승해심소가 전혀 없다. 살펴서 결정하지 않는 심왕에도 역시 승해심소가 없다. 그러므로 승해는 변행심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1) 심왕 등이 자기 대상을 취할 때에는, 구애됨이 없기 때문에 모두 승해심소가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다. 무슨 까닭인가? 능히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곧 일체법이기 때문이고, 장애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심왕 등이기 때문이다.
뛰어나게 일어나는 것은 감각기관과 작의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242)에 의해서 그것243)이 뛰어나게 일어난다고 말하면, 이것(승해)도 다시 다른 것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문득 끊임없이 소급하는 과실이 있게 된다.
240) 승해(勝解, adhimokṣa)심소는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선택하는 심리작용이다. 결정경(決定境)이 아닌 대상, 즉 대상을 유예하거나, 살펴서 결정하지 않은 심왕에도 승해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교시(敎示)ㆍ도리ㆍ선정수증(禪定修證) 등을 선택 결정하고, 반대 입장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241) 『설일체유부』의 일부의 견해를 논파한다.
242) 승해(勝解)심소를 말한다.
243) 감각기관ㆍ작의(作意)심소를 가리킨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2_p0481b08║勝解者。謂於決定境如其所應印解為體。不
T31n1602_p0481b09║可引轉為業。如經說我等今者心生勝解。是
T31n1602_p0481b10║內六處必定無我。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승해(勝解)78) 심소는 결정된 대상에 대해서 그 상응하는 바대로 결정적으로 이해함을 체성으로 삼고, 이끌어 전전할 수 없음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우리들은 지금 마음에 ‘이 내부의 6처(處)는 반드시 결정코 무아이다’라고 승해를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78) 승해(勝解, adhimokṣa) 심소는 대경(對境) 특히 좋아하는 것을 확실하게 선택하는 심리작용이다. 인가(認可) 결정하는 지적인 작용이다. 이렇게 결정되지 않은 대상에는 승해 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교시(敎示)ㆍ도리ㆍ선정수증(禪定修證) 등을 선택 결정하고, 반대 입장에 의해 쉽게 바뀌지 않는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5_p0664a29║何等勝解。謂於決定事隨所決
T31n1605_p0664b01║定印持為體。不可引轉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승해(勝解)심소법입니까?
일을 결정하는 때에 그 결정된 바를 변동 없이 지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전향하지 못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8n2016_p0746c05║二勝
T48n2016_p0746c06║解。謂於決定境。如其所應。印解為體。不可引
T48n2016_p0746c07║轉為業。又謂邪正等教理證力。於所取境。審
T48n2016_p0746c08║決印持。由此異緣。不能引轉故。猶預境。勝解
T48n2016_p0746c09║全無。非審決心。亦無勝解。非遍行攝。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2는 승해(勝解)이니, 결정할 경계에 대해 그에 알맞는 대로 똑똑히 아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이끌어 옮아갈 수 없는 것이 업용이 된다.
또 삿됨과 바름 따위의 교리로 증명하는 힘을 말하는 것으로, 취할 바의 경계에 대해 살피고 결정하여 똑똑히 지니는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다른 인연으로 끌어 옮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계에 망설이는 것은 승해가 전혀 없으며, 살피어 결심한 것이 아니면 역시 승해는 없으므로 변행에는 속한 것이 아니다.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85n2810_p1055c25║言勝解者。於
T85n2810_p1055c26║決定境印持為性。不可引轉以為其業。為
T85n2810_p1055c27║邪正等教理證力於所取境審決印持。由此
T85n2810_p1055c28║異緣不可引轉故。猶預境勝解全無。非審決
T85n2810_p1055c29║心亦無勝解。由斯勝解亦非遍行。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43n1830_p0429b10║論。云何勝解至引轉為業。 述曰。此判文等
T43n1830_p0429b11║一如於欲。
T43n1830_p0429b12║論。謂邪正等至不能引轉。 述曰。謂此勝解。
T43n1830_p0429b13║由邪教.邪理.邪證等力。或正教等力。或非
T43n1830_p0429b14║邪正教.理.證力。即汎所緣。於所取境審決
T43n1830_p0429b15║印持此事如是非不如是。以生勝解。或教
T43n1830_p0429b16║者教示。或是言說。但由轉習。理者有此道
T43n1830_p0429b17║理。非謂四諦真實理也。即攝一切事及真
T43n1830_p0429b18║理。謂此木是木之理等。乃至一切法亦然。證
T43n1830_p0429b19║者即修禪定。或諸識現量等心能審決者皆
T43n1830_p0429b20║有勝解。由此道理生印可故。更有異緣
T43n1830_p0429b21║不能引轉令此心中更生疑惑。
T43n1830_p0429b22║論。故猶預境至非遍行攝。 述曰。即疑心中
T43n1830_p0429b23║全無解起。即染心中少分無也。非審決心
T43n1830_p0429b24║亦無勝解。便通三性。
T43n1830_p0429b25║論。有說心等至皆有勝解。 述曰。順正理云。
T43n1830_p0429b26║有餘師言。今此中解。即薩婆多異師。諸對法
T43n1830_p0429b27║異計說。心取境時無拘礙故皆有勝解。謂
T43n1830_p0429b28║不同大乘印境決定名為勝解。即疑心中
T43n1830_p0429b29║全無彼故。我宗但言無物拘礙心。令心於
T43n1830_p0429c01║境能緣者即是勝解。故遍行攝。
T43n1830_p0429c02║論。彼說非理至即心等故。 述曰。汝言不拘
T43n1830_p0429c03║礙者。若是能不礙名勝解。除心.心所以外
T43n1830_p0429c04║法。皆是能不礙。與心.心所為增上緣皆不
T43n1830_p0429c05║礙故。若是所不礙。即心.心所皆是所不礙。
T43n1830_p0429c06║故言心等等取心所。何但一法。
T43n1830_p0429c07║若彼救言但由勝解增勝力故。發起心等。
T43n1830_p0429c08║不為所礙。
T43n1830_p0429c09║論。勝發起者根作意故。 述曰。勝發起因根
T43n1830_p0429c10║及作意二法之力。何關勝解。
T43n1830_p0429c11║若彼救言。根.作意二自力。不能為勝發起
T43n1830_p0429c12║諸心.心所。亦由此勝解力故。彼根作意方
T43n1830_p0429c13║能發起。
T43n1830_p0429c14║論。若由此故至便有無窮失。 述曰。亦應勝
T43n1830_p0429c15║解應自無力為勝發起。應復待餘法方能
T43n1830_p0429c16║勝發。是心所故。如汝作意。若許勝解復待
T43n1830_p0429c17║餘者。便有無窮失。若勝解不待餘。作意等
T43n1830_p0429c18║亦應爾故。但以印可為勝解相。故疑心中
T43n1830_p0429c19║不得起也。若言心起決定有之。但相微隱
T43n1830_p0429c20║何以知也。若以餘位有比此亦有。即餘位
T43n1830_p0429c21║有尋.伺。上地亦應有。但相隱故不可知者。
T43n1830_p0429c22║如是大失。即唯決定境起勝解也。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06_p0697b07║勝解者。於決定事隨
T31n1606_p0697b08║所決定印持為體。不可引轉為業。隨所決定
T31n1606_p0697b09║印持者。謂是事必爾非餘決了勝解。由勝解
T31n1606_p0697b10║故所有勝緣不能引轉。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승해(勝解)심소법입니까?
일을 결정하는 때에 그 결정된 바를 변동 없이 지키는 것이 그 바탕이다. 전향하지 못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그 결정된 바에 따라 변동 없이 지킨다는 것’이란 이 같은 일이 반드시 이와 같아서 다른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아는 ‘승해’이다. 승해에 연유해서 모든 수승한 연이 인전(引轉)하지 못하게 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T31n1613_p0851c20║云何勝解。謂於決定境。如所了知。印可為性。
T31n1613_p0851c21║決定境者。謂於五蘊等。如日親說。色如聚
T31n1613_p0851c22║沫。受如水泡。想如陽炎。行如芭蕉。識如幻
T31n1613_p0851c23║境。如是決定。或如諸法所住自相。謂即如是
T31n1613_p0851c24║而生決定。言決定者即印持義。餘無引轉
T31n1613_p0851c25║為業。此增勝故。餘所不能引。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무엇을 뛰어난 이해[勝解]라고 하는가?
결정된 대상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인가(印可)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결정된 대상이란 5온 등을 말한다. 세친(世親)3)이, “색온은 마치 물방울과 같고, 수온은 물거품과 같고, 상온은 아지랑이와 같고, 행온은 파초(芭蕉)와 같고, 식온은 마치 환영으로 나타나는 대상과 같다”고 한 것을 이와 같이 결정한다고 한다. 또는 모든 법이 머무는 바의 자상(自相)은 이와 같이 결정하는 것을 생기게 함을 말한다. 결정이란 말은 곧 마음에 새기고 지닌다는 뜻이다. 나머지 끌어서 전변함이 없는 것이 행동양식이다. 이것이 더욱 뛰어나기 때문에 나머지의 다른 것은 마음의 대상으로 끌어올 수가 없다.
3) Vasbandhu, 인도의 유식논사. - ↑ "念",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念
Basic Meaning: mindfulness, memory
Senses:
Recollection (Skt. smṛti; Tib. dran pa). To recall, remember. That which is remembered. The function of remembering. The operation of the mind of not forgetting an object. Awareness, concentration. Mindfulness of the Buddha, as in Pure Land practice. In Abhidharma-kośa theory, one of the ten omnipresent factors 大地法. In Yogâcāra, one of the five 'object-dependent' mental factors 五別境.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ettled recollection; (Skt. sthāpana; Tib. gnas pa). To ascertain oneʼs thoughts.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To think within oneʼs mind (without expressing in speech). To contemplate; meditative wisdom. [Charles Muller]
Mind, consciousness. [Charles Muller]
A thought; a thought-moment; an instant of thought (Skt. kṣaṇa). [Charles Muller]
Patience, forbearance. [Charles Muller]
(Skt. smaraṇa, anusmṛti, manasi-kāra; kṣaṇa; adhyavasāna, anusmaraṇa, abhipraya, abhilāṣya, ayoniśo-manaskāra, avismṛti, *upasthita-smṛti, evaṃbhavati, kṣaṇika, gatiṃ-gata, citta, cittôtpāda, cetaḥ-parivitarka, cetas, jāti-smara, jñāna, tarka, parivitarka, pratyavekṣaṇa, priya, buddhi, bhāvanatā, mata, manas-kāra, mano-jalpa, medhā, vikalpa, vicāra, saṃkalpa, samanvāhartavya, samanvāhāra, savicāra, sumedhatā, smara, smaratā, smara-saṃkalpa, smārita, smṛta; Pāli sati; Tib. dran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念",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念
辭典解釋 :
解釋[1]
:
(1) To recollect, recall, remember. That which is remembered. The function of remembering. The operation of the mind of not forgetting an object. (smṛti) (2) Awareness, mindfulness; concentration. (smṛti) (3) To think within one's mind (without expressing in speech. (4) To think, to contemplate. (5) Meditational wisdom. (6) To ascertain one's thoughts. (7) In Abhidharma-kośa theory, one of the Ten Great Ground dharmas. (8) In the doctrine of the Faxiang school 法相宗, one of the five "object-dependent" mental action elements (9) Mind, consciousness. (10) A thought; a thought-moment; an instant of thought. (kṣana) (11) Mindfulness of the Buddha, as in Pure Land practice. (12) Patience, forbearance.
解釋[2]
:
smrti. Recollection, memory; to think on, reflect; repeat, intone; a thought; a moment.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 ↑ 가 나 다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585_p0028b18║云何為念。於曾習境令心明
T31n1585_p0028b19║記不忘為性。定依為業。謂數憶持曾所受
T31n1585_p0028b20║境令不忘失能引定故。於曾未受體類境
T31n1585_p0028b21║中全不起念。設曾所受不能明記念亦不
T31n1585_p0028b22║生。故念必非遍行所攝。有說心起必有念
T31n1585_p0028b23║俱。能為後時憶念因故。彼說非理。勿於後
T31n1585_p0028b24║時有癡信等前亦有故。前心心所或想勢
T31n1585_p0028b25║力足為後時憶念因故。 - ↑ 가 나 다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5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무엇을 ‘염(念)심소’244)라고 하는가? 예전에 익히 대상을 심왕에 분명히 새겨서 잊지 않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정(定)심소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반복적으로 예전에 받아들인 대상을 생각하여 지녀서 잊어버리지 않게 해서 능히 정(定)심소를 이끌기 때문이다. 예전에 받아들이지 않은 자체[體]와 부류[類]의 대상에 대해서는 전혀 염심소를 일으키지 않는다. 설사 예전에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기억할 수 없는 것에는 역시 염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염심소는 반드시 변행심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5) 심왕이 일어날 때에는 반드시 염심소와 함께한다. 능히 이후의 시기에 기억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다. 이후의 시기에 치(癡)ㆍ신(信) 등의 심소가 있으므로, 이전에도 역시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전의 심왕과 심소 혹은 상(想)심소 등의 세력으로써, 이후 시기의 기억의 원인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246)
244) 염(念, smṛti)심소는 ‘지속적인 알아차림’, ‘기억 작용’을 한다. 산스끄리뜨로 슴리띠(smṛti)라고 하고, 빨리어로 사띠(sati)라고 한다.
245) 설일체유부의 견해를 논파한다.
246) 심왕 등이 대상을 취하고 나서 공능(功能)을 훈습하여 아뢰야식 중에 있기 때문에, 이후의 기억의 원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재의 염(念)심소를 기다려서 이후의 염심소가 생겨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논파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6║云何為念?謂於串習事,
T31n1612_p0848c17║令心不忘明記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떤 것이 염(念)인가. 관습적인 일에 대해 마음이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4n1837_p0055c25║ 過去曾緣所習境界,明記不忘,名之為
T44n1837_p0055c26║ 念。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X48n0802_p0309c03║ 念者。明記。謂於可作境。令心分明記取不忘
X48n0802_p0309c04║ 也。 - ↑ 가 나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3n1830_p0429c23║論。云何為念至定依為業。 述曰。故四法迹
T43n1830_p0429c24║念是定因。
T43n1830_p0429c25║論。謂數憶持至能引定故。 述曰。重釋業用。
T43n1830_p0429c26║曾所受境。念中或有已受彼體。或未得體
T43n1830_p0429c27║但受彼類。如無漏緣染污心等。即近親取名
T43n1830_p0429c28║緣彼體。若遠取不著總名彼類。他界緣使
T43n1830_p0429c29║等並彼中攝。後得智緣有為無漏等。名念
T43n1830_p0430a01║彼體。緣真如等。名緣彼類名等。無分別智
T43n1830_p0430a02║緣真如時。名緣彼體。初起一念名緣彼
T43n1830_p0430a03║類。雖非曾受曾受名故。加行道中作彼觀
T43n1830_p0430a04║故。名為曾體。亦名彼類。令心明記此生定
T43n1830_p0430a05║者。由多增故。定專注故。即唯善念生正定
T43n1830_p0430a06║故。若散心念非必生定。
T43n1830_p0430a07║論。於曾未受至全不起念。 述曰。釋曾未受
T43n1830_p0430a08║若體若類。如涅槃等全不起念。即通三世
T43n1830_p0430a09║緣之起念。多於過去亦念未來。與前所
T43n1830_p0430a10║受諸境合故。若曾聞說涅槃等名而起念
T43n1830_p0430a11║者。亦名曾受彼境之類而起於念。若總不
T43n1830_p0430a12║聞心散慢緣。便無念起。
T43n1830_p0430a13║論。設曾所受至遍行所攝。 述曰。此類非一。
T43n1830_p0430a14║雖聞涅槃等。及七.八識境。不明記故亦不
T43n1830_p0430a15║生念。
T43n1830_p0430a16║論。有說心起至憶念因故。 述曰。然經部師
T43n1830_p0430a17║不說遍有。但薩婆多師。正理論第十文。謂
T43n1830_p0430a18║有說言失念亂心。即無念故非遍行者。彼
T43n1830_p0430a19║復說言。以於後時有憶念故。明今有念
T43n1830_p0430a20║為後念因。
T43n1830_p0430a21║論。彼說非理至前亦有故。 述曰。今破彼
T43n1830_p0430a22║計。勿於後時有染癡等.善信等故。今恒
T43n1830_p0430a23║有彼類亦為後因故。若言後生癡等。亦前
T43n1830_p0430a24║癡等為因。即念非遍心有。如癡等故。若爾
T43n1830_p0430a25║如自證分為後憶念因知前亦有。念亦應
T43n1830_p0430a26║爾者不然。心許前有體之上更立用。今已
T43n1830_p0430a27║不許前有念體後念等生。何得以念例
T43n1830_p0430a28║於心也。
T43n1830_p0430a29║論。前心心所至憶念因故。 述曰。心等取境
T43n1830_p0430b01║已熏功能在本識中。足為後時有憶念
T43n1830_p0430b02║因。何須今念順生後念。或想取像勝故。為
T43n1830_p0430b03║因生後時念足得。何待今念後念方生。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2_p0481b11║念者。謂於串習境令心明記不忘為體。等持
T31n1602_p0481b12║所依為業。如經說諸念與隨念別念及憶不
T31n1602_p0481b13║忘不失法心明記為性。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염(念)79) 심소는 자주 익힌 대상에 대해서 심왕으로 하여금 분명하게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등지(等持)의 의지처인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모든 염(念)이 수념(隨念)ㆍ별념(別念) 및 억념(憶念)과 더불어 잊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는 법이며 마음에 분명히 기억하는 것을 성품으로 삼는다”고 말한 바와 같다.
79) 염(念, smṛti) 심소는 ‘기억’ 즉 이전에 반복적으로 받아들인 대상을 심왕에 명기(明記)하여 잊지 않도록 하는 심리작용이다. 능히 정(定, 等持, samādhi) 심소를 이끈다. 비록 예전에 받아들인 것이라 하더라도 분명히 기억할 수 없는 것에는 염(念) 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5_p0664b01║何等為念。謂於
T31n1605_p0664b02║串習事令心明記不忘為體。不散亂為業。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염(念)심소법입니까?
습관적인 일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산란하지 않은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念",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念
(一)梵語 smṛti 或 smriti,巴利語 sati。心所(心之作用)之名,即對所緣之事明白記憶而不令忘失之精神作用。又作憶。於俱舍宗,以之為十大地法之一,唯識宗列為五別境之一。以其具有殊勝力,而為五根、五力之一,稱為念根、念力。「失念」即相反義。〔品類足論卷一、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五、大毘婆沙論卷四十二、瑜伽師地論卷五十五〕
(二)指觀念、口念、心念。觀念,即觀想佛體、佛法等;口念,即以口稱佛之名號,又作稱名念佛;心念,為口念之對稱,即以心想念佛菩薩等,或謂與觀念同義。此類觀念、口念、心念等之攝念法門,散見於諸經論中,如增一阿含經卷一之十念品、卷二廣演品、諸經要集卷三所詳說之「十念」,即為十種觀想、思念,以思想十個對象,止息妄想,令心不動亂。詳稱十隨念,即(1)念佛(梵 buddhānusmṛti),專精繫想如來之相好功德。(2)念法(梵 dharmānusmṛti),專精繫想修行軌則及諸佛教法。(3)念眾(梵 saṅghānusmṛti),又作念僧。專精繫想四雙八輩之聖眾。(4)念戒(梵 śīlānusmṛti),專精繫想持戒能止諸惡、成就道品。(5)念施(梵 tyāgānusmṛti),又作念捨。專精繫想布施能破慳貪,生長福果,利益一切,而無後悔心及求報心。(6)念天(梵 devānusmṛti),專精繫想諸天成就善業,感得勝身,眾福具足;我亦如是修善業,感得如是身。(7)念休息(梵 upasamānusmṛti),專精繫想於寂靜之處閑居,屏息一切緣務,修習聖道。(8)念安般(梵 ānāpānasmṛti),又作念入出息。安般,為安那般那之略稱,指入出息。念安般,即專精繫想,攝心靜慮,數出入息,覺知其長短,除諸妄想。(9)念身非常(梵 kāyagatasmṛti),又作念身。專精繫想此身為因緣假和合,髮毛、爪齒等無一為真實常住者。(10)念死(梵 maraṇasmṛti),專精繫想人生如夢幻,不久即將散壞。其中,初三者稱為三念,初六者稱為六念、六隨念、六念處,初八者稱為八念。
於上記所舉之十隨念,大乘義章卷十二另有開合,即於念佛、念法、念僧、念戒、念施、念天六念,加念出入息、念死、念滅、念身,而成十念。光讚般若經卷七就菩薩之行法,列舉念佛、念法、念聖眾、念戒、念布施、念天、念恬泊、念無所起、念觀身、念當終亡等十念。菩薩受齋經亦謂菩薩受齋戒有十念,當護之、思惟之,惟經文中僅列舉九項,即:念過去佛、念未來佛、念一切十方之現在佛、念尸波羅蜜持戒、念禪波羅蜜、念漚和拘舍羅、念般若波羅蜜、念禪三昧六萬菩薩在阿彌陀佛所、念過去當來今現和上阿闍黎等。此外,彌勒所問經亦有「慈等十念」之說,謂根機較殊勝之菩薩,可藉憶念慈、悲等十法即能往生淨土。另如淨土宗之重要稱念法門中,有「稱名十念」之說,乃指念佛相好或稱名念佛時,心無他想,凝思繫念,相續十憶念;或指十聲之稱名念佛。〔俱舍論卷四、大乘廣五蘊論〕(參閱「十念」619)
(三)行五法之一。即念世間為欺誑不實者,毋須眷戀;而知珍視禪定、智慧等之修行。(參閱「行五法」3200)
(四)菩薩位次之名,即十信位中之第二位。(參閱「十信」629)
(五)指極短之時間。諸經論中,以一剎那、六十剎那,或九十剎那等,稱為一念。〔大智度論卷十五、卷六十、摩訶止觀卷三之三〕(參閱「一念」71、「剎那」4708)p4030 - ↑ "念(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念(염)
[1] 【범】 smṛti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종(俱舍宗)으로는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종(唯識宗)으로는 5별경(別境)의 하나. 주관(主觀)인 마음이 객관인 대경(對境)을 마음에 분명히 기억하여 두고 있지 않는 정신. 지나간 일을 기억할 뿐 아니라, 현재의 순간에도 행하여져서 마음으로 객관대상을 분별할 때 반드시 존재하는 것.
[2] 관념(觀念). 관찰하는 것. 불체(佛體)와 제법(諸法)의 이치 등을 마음에 생각하여 보는 작용.
[3] 칭념(稱念). 부처님의 명호(名號) 등을 일컫는 것.
[4] 보살의 계급 중 10신(信)의 제2위. ⇒십신(十信)
[5] 1념(念). 극히 짧은 시간. - ↑ "염[念]",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염[念]
산스크리트어 smṛti 팔리어 sati
① 집중. 주시.
② 어떠한 것을 잊지 않고 마음 속으로 재현함.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어떠한 것을 떠올림.
③ 생각.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6_p0697b10║念者。於串習事令心
T31n1606_p0697b11║明記不忘為體。不散亂為業。串習事者。謂先
T31n1606_p0697b12║所受。不散亂業者。由念於境明記憶故令
T31n1606_p0697b13║心不散。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염(念)심소법입니까?
습관적인 일을 마음속에 분명히 기억해서 잊지 않는 것이 그 바탕이다. 산란하지 않은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습관적인 일’이란 예전에 이미 받아 지닌 것이다. ‘산란하지 않은 것에서 업을 이룬다는 것’이란, 생각[念]에 연유해서 경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까닭에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13_p0851c26║云何念。謂於慣習事。心不忘失。明記為性。慣
T31n1613_p0851c27║習事者。謂曾所習行。與不散亂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무엇을 정신집중[念]이라고 하는가?
버릇 들고 교육된 일을 마음에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버릇 들고 교육된 일이란 이미 익힌 행동을 말한다. 산란하지 않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8n2016_p0746c09║三念。謂
T48n2016_p0746c10║於慣習境。令心明記不忘為體。等持所依為
T48n2016_p0746c11║業。又於曾未受體類境中。令不起念。設曾所
T48n2016_p0746c12║受。不能明記。念亦不生故。念必非遍行所攝。
T48n2016_p0746c13║念與定為所依。為業用。能生正定。故言定依
T48n2016_p0746c14║為業。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3은 염(念)이니, 익혔던 경계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분명히 기억하여 잊지 않게 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등지(等持)의 의지할 바가 업이 된다.
또 일찍이 체험하지 못한 종류의 경계 중에서는 기억을 일으키지 않게 되고, 설령 예전에 체험한 것이라도 분명하게 기억할 수 없으면, 염은 역시 생기지 않기 때문에 염은 반드시 변행심소의 소속이 아니다.
염과 정(定다)은 의지할 바가 되므로 업용이 되고, 바른 선정[正定]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선정의 의지가 업용이 된다”고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4n1836_p0048a17║念者,
T44n1836_p0048a18║ 於曾習境令心明記不忘為性,定依為業。謂
T44n1836_p0048a19║ 數憶持曾所受境而不忘失,能引定故。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85n2810_p1055c29║所言念者。
T85n2810_p1056a01║於曾習境令心明記不忘為性。定依為業。謂
T85n2810_p1056a02║數憶持曾所受境。令不忘失能引定故。於曾
T85n2810_p1056a03║未受體類境中全不起念。設曾所受不能明
T85n2810_p1056a04║記。念亦不生。故念必非遍行所攝。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X48n0805_p0342c19║ 三念者。於過去曾習之境。令心明審記憶不忘。
X48n0805_p0342c20║ 而為體性。定之所依。而為業用。 - ↑ "定",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定
Basic Meaning: to establish
Senses:
To decide; to determine, fix, settle, arrange. To be decided, be settled, be certain. Definitely, certainly. [Charles Muller]
The unification of the mind in concentration; stopping the floating of the mind and concentrating on one point. A high level of meditative concentration; mental training through meditation; the skillful unification of mind and object; the mental equanimity conducive to and derived from attention perfectly focused on its object. Meditative absorption; meditative concentration; meditative equipoise; meditatively equipoised. 禪定 meditation (in the realms of form and beyond form). It is also one of the five attributes of the dharmakāya 法身 (Skt. dhyāna, samādhi, samāhita, samāpanna; Tib. bsam gtan, Tib. ting nge 'dzin, mnyam par gzhag pa, Tib. snyoms par zhugs pa). An internal state of imperturbability or tranquility, exempt from all external sensations 超受陰.
In Yogâcāra doctrine, it is one of the 'object contingent' (別境) mental factors. This logograph is often used interchangeably with 止 (Skt. śamatha). Most commonly transliterated as 三昧 and 三摩提, like dhyāna, a term for meditation, but especially indicative of a deep level of concentration. the Cheng weishi lun says: "Its nature is that of causing mind to be absorbed in attention on a contemplated object and not become distracted, and its function is that of supporting knowledge." 〔成唯識論 T 1585.31.28b〕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Law, rule, regulation. [Charles Muller]
(Skt. samāpatti; avaśyam, niyata, niścaya; atyanta, atyantam, avadhāraṇa, avaśya, avasthāna, ātyantika, upanyāsa, ekânta, eva, aikāntika, kevala, tu, dhyānântara, dhyānôpapatti, dhyāyin, dhruva, dhruvam, nitya, niyatam, niyati, niyati-patita, niyatī-bhūta, niyama, niyamatas, niyāma, niḥsaṃśayam, nūnam, naiyamika, naiyamyena, prajñapti, pratiniyata, pratiniyama, yujyate, yoga, viraja-samādhi, vyavasthita, śama, śānta-samādhi, sad-bhūta, samādhi-saṃbhūta, samādhīyate, samāpatti-dravya, samāpatty-antara, samāhitatva, sarvathā, suvyaktam, sthiti, sphuṭam, svastha-citta, hi)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定",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定
辭典解釋 :
解釋[1]
:
To fix, settle. samādhi. 'Composing the mind'; 'intent contemplation'; 'perfect absorption of thought into the one object of meditation.' M. W. Abstract meditation, the mind fixed in one direction, or field. (1) 散定 scattered or general meditation (in the world of desire). (2) 禪定 abstract meditation (in the realms of form and beyond form). It is also one of the five attributes of the dharmakāya 法身, i. e. an internal state of imperturbability or tranquility, exempt from all external sensations, 超受陰; cf. 三摩提.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 ↑ 가 나 "三摩地(삼마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三摩地(삼마지)
【범】 samādhi 정(定)이라 번역.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산란치 않게 하는 정신 작용. - ↑ 가 나 다 "定",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定
令心專注於一對象,而達於不散亂之精神作用,或即指其凝然寂靜之狀態。反之,心散亂不止之狀態,則稱為散,二者合稱定散。定原為梵語 samādhi(三摩地、三昧)之意譯,俱舍宗及唯識宗以之為心所之一;俱舍宗以之為十大地法之一,唯識宗則以之為五別境之一。
令心不散亂之修行,及由此而有之特殊精神狀態,通稱為定,其進境有層次等差。又因止、觀,均行、不均行,有心、無心等之不同,而生四禪、四無色、二無心定等之差別,或為禪定之總稱,或以心一境性之義而稱三摩地,或稱三昧。定與戒、慧同為三學之一,乃佛教實踐方法之大綱。又八聖道中之正定,為五根、五力之一,故亦稱定根、定力;六波羅蜜(六度)之一,即禪定(梵 dhyāna,禪那、靜慮)。
定之意義有種種異說。據大智度論卷二十八載,禪定、四禪二者皆稱定、三昧。據十住毘婆沙論卷十一載,禪指四禪,定指四無色定、四無量心等。成唯識論了義燈卷五本列舉定之異名,共有七種:(1)三摩呬多,梵語 samāhita,譯為等引。等,即遠離心之浮(掉舉)、沉(惛沉)而保持平衡,乃身心俱安之狀態;引,乃由自力引起(發生功德)之意,能修此定,則離諸煩惱,而引發勝妙功德。等引通於有心、無心二定,但不通於散位。(2)三摩地、三昧,梵語 samādhi,譯為等持,又作正心行處。能修此定,心則端直,安住一境而不動,即心平等攝持之意。通於定、散,但僅限於有心位,而不通於無心,為定之本體。(3)三摩鉢底,梵語 samāpatti,譯為等至。謂能修此定,正受現前,大發光明,慶快殊勝,處染不染,無有退轉,即已至身心平等之意。僅通於有心、無心二定,不通於散位,為定之自相。(4)馱那演那,梵語 dhyāna,譯為靜慮,或以音略譯作禪。謂澄神審慮,專思寂想,即鎮靜念慮(分別)之意,通於有心、無心、有漏、無漏,但限於色界之定,不通於無色定。(5)質多翳迦阿羯羅多,梵語 cittaikāgratā,譯為心一境性。謂攝心一境,策勵正勤而修習,即將心集中於一對象之意,為定之自性。(6)奢摩他,梵語 śamatha,譯為止、正受。謂止息諸根惡不善法,能滅一切散亂煩惱,即離邪亂之想念,止心寂靜之意,僅限於有心之淨定。(7)現法樂住,梵語 dṛṣṭa-dharma-sukha-vihāra。謂修習禪定,離一切妄想,身心寂滅,現受法喜之樂而安住不動,即於現在世經由淨定、無漏定等享受定之法樂,限於色界之四根本定。
定有生得定、修得定二種:(1)生得定,謂生於色界、無色界(俱為定地),為依前世善業之力,自然所得之定地。(2)修得定,謂生於欲界(散地),以後天努力修行所獲得者。上記二定,於色界定中,即稱為生靜慮、定靜慮;於無色定中,則稱為生無色、定無色。
依定之內容及其修行之階段,可將定分為多種。俱舍宗將其大別為有心定與無心定等二定。有心定包括四靜慮(四禪、四色界定)與四無色定,合為八定(八等至)。四靜慮,即:(1)初靜慮,(2)第二靜慮,(3)第三靜慮,(4)第四靜慮。於初靜慮得滅除語言,第二靜慮以上滅除尋、伺,而四靜慮順次滅除憂、苦、喜、樂等諸受。又初靜慮無鼻、舌二識,第二靜慮以上五識皆無。四無色定,即:(1)空無邊處定,得滅除與眼識和合之可見有對之色想、與耳鼻舌身四識和合之不可見有對之色想、與意識和合之不可見無對(無表色)之色想,而入無邊之虛空想。(2)識無邊處定,捨外空緣,唯緣內心識,入於無邊之識行。(3)無所有處定,厭離識處廣緣之苦,滅除識想,作無所有之行相。(4)非想非非想處定,又稱非有想非無想處定,捨離無所有之行相,知見一向非想(無粗想),進而捨非想之行相,達於非非想(有微細想)。
八定有已入定之階段,及近定之準備階段;前者稱為根本定,或根本等至,後者稱為近分定,然初靜慮之前階段非稱近分定,而稱未至定,故僅有七近分定。又初靜慮與第二靜慮之近分定中間之階段,稱中間定,或中間靜慮,如修習此定,即可生於大梵天。第四靜慮中,自下下品至上上品,計有九品,上上品乃色界定中最高之定,稱為邊際定。
上記之未至、中間、七近分、八根本等諸定,視「尋」、「伺」等之有無,再分為三種三摩地。尋,指尋求推度,為粗雜之精神作用;伺,指伺察思惟,為深細之精神作用。三種三摩地為:(1)未至定與初靜慮之有尋有伺三摩地,即有覺有觀定。(2)中間定之無尋唯伺三摩地,即無覺有觀定。(3)第二靜慮近分以上之無尋無伺三摩地,即無覺無觀定。此稱三定,或稱三三摩地、三三昧。
定之性質,分為味定、淨定、無漏定等三定,又稱三等至。(1)味定,又稱味等至。與貪愛相應而起,乃愛樂味著於前念(前剎那)淨定之定,位於八根本定與中間定。(2)淨定,又稱淨等至。相應於有漏善心所起之定。又分為:①順退分定,謂順自地之煩惱而生起味定。②順住分定,謂順自地之淨定。③順勝進分定,謂順上地之淨定。④順決擇分定,謂順無漏智而起無漏定。於未至定、中間定、七近分定、八根本定中俱生。(3)無漏定,又稱無漏等至。為聖者所依,乃得無漏智之定,係於未至定、中間定、四根本定(靜慮)、下三無色定(不包括有頂)所俱有,其斷除煩惱之作用甚強。
一般以有心定分為止與觀等二品,而有均與不均之分。未至定與中間定,觀之作用較為殊勝,即觀品增,止品減;四無色定,止之作用較為殊勝,即觀品減,止品增;唯有色界之四根本定,止與觀均等,和合俱轉,故稱靜慮;其餘四無色定等,止、觀不均行,故總稱為唯定。據瑜伽師地論卷三十載,以奢摩他品為止,意為攝心凝住一處;以毘鉢舍那品為觀,意為以「慧」思擇觀察種種諸境,係依奢摩他品所起者。
奢摩他品分九種心住:(1)內住,又稱令住、最初住。謂攝外攀緣,遠離內散亂,而令心堅執於境。(2)等住,又稱正念住。謂攝心之粗動而令心遍住微細。(3)安住,又稱覆審住。遠離散亂及失念,將心安置於內境。(4)近住,又稱後別住。謂親近念住而數數作意。(5)調順,又稱調柔住。謂將心調伏不使流散。(6)寂靜,又稱寂靜住。謂能深見惡尋思及隨煩惱之過患,乃將心攝伏。(7)最極寂靜,又稱降伏住。謂制伏由失念而現起之惡尋思及隨煩惱。(8)專注一趣,又稱功用住。謂由功力而定力得以相續。(9)等持,又稱平等攝持、任運住。謂自數數修習之因緣,令定心之無功用相續轉。
毘鉢舍那品分四種慧行:(1)正思擇,又稱簡擇諸法。謂以思擇分別淨行所緣之不淨、慈悲、緣起、界、持息念等五種境,善巧所緣之蘊、界、處、緣起、處非處等五種境,淨惑所緣之世道、出世道等之差別諸法。(2)最極思擇,謂於差別諸法中思擇平等之實性。(3)周遍尋思,又稱普遍尋思。謂依分別作意以取諸法之相,而遍尋思。(4)周遍伺察,又稱周審觀察。謂詳盡推求所緣之境。
無心定分為無想定與滅盡定,均為滅除心、心所之定;無想定係凡夫及外道誤認無想狀態為真涅槃而修習之定,滅盡定則是聖者將定之境地作為無餘涅槃界之靜,而修習之定。又除無想定外,四禪、四無色、滅盡等九定,不得間雜異念,而係順次修行所得者,故又稱九次第定、無間禪。然於定得自在力之不時解脫之阿羅漢,依修行四禪、四無色等八定,能超越一地,修得高一層之定,稱為超定,或超等至、超越三昧。據俱舍論卷二十八載,八定之修相分為有漏、無漏二類。
據瑜伽師地論卷三十一載,入定之加行有九種:(1)相應加行,謂貪行者勤修不淨觀,瞋行者勤修慈悲觀,癡行者勤修緣起觀,憍慢行者勤修界差別觀,尋思行者勤修「持息念」。(2)串習加行,謂數習止、觀。(3)不緩加行,謂常樂遠離,修習「勤行」,而未敢緩慢。(4)無倒加行,謂依法與義而不執著自己之見取。(5)應時加行,謂了知止、觀、舉、捨等之相及修時。(6)解了加行,謂於了知止觀舉捨之相後,證得定之入、住、捨等自在。(7)無厭足加行,謂於小定不退屈,更進求上勝之法。(8)不捨軛加行,謂不令心馳流於外境,而極力調柔之。(9)正加行,謂於所緣之境數數發起勝解。
由修習九種加行,能令心速疾得定;若次第修習了相作意、勝解作意、加行究竟果作意等七種作意,得證入初靜慮地。又修定者應遠離四種障:(1)怯弱障,謂不希望出離。(2)蓋覆障,謂欲貪、瞋恚、惛眠、掉悔、疑等五蓋。(3)尋思障,謂尋思「欲」等之染污。(4)自舉障,謂高舉下劣之智見。此外,說一切有部之正義,以欲界為散地,而非修地、離欲地;定地唯於色界、無色界中。異師及大眾部則以欲界中亦有定。
大乘中,對於定之種類,更有多種說法。唯識宗及密宗之瑜伽觀行,天台宗之四種三昧,及禪宗之坐禪等,均是為使自己臻至佛果之實踐方法,此即修定。傳說佛陀說法之前,即曾入定,此為導他而入之定。又唯識宗於煖位、頂位、忍位、世第一法位等四善根位中之每一善根位,觀主觀與客觀之假有實無,而入於四定,即:明得定、明增定、印順定、無間定。
大乘義章卷十一載有諸家對四善根所依之界地的異說,如尊者達摩多羅以為,欲界一向不定,故四善根唯色界所攝。尊者瞿沙以為,欲界有六禪定,故依六禪定修起四善根。摩訶僧祇部亦主張欲界有禪定,故四善根攝於欲界。
據梁譯攝大乘論釋卷十一載,小乘清淨道論立有六十七種定,大乘立有五百定,而以大乘光定、集福德定、賢護定、首楞伽定等四定總攝之,以此四定為諸定之通業,依此修習十波羅蜜,能令眾生成熟、佛土清淨。
另據觀無量壽經載,往生西方極樂淨土之行,有定、散二善。唐代淨土宗善導以為,定善乃是於定心所行之善,亦即平息雜念;散善乃散心所作之善,亦即棄惡修善,二者合稱定散二善。而修此法門之修行者,各分為定機與散機。
此外,大品般若經卷三相行品、卷五問乘品、卷二十七常啼品、舊華嚴經卷二十五、卷二十七、卷三十四、卷三十八、卷四十五、卷四十九、卷五十、伅真陀羅所問如來三昧經卷上、大方等無想經卷二等,皆列有多種三昧定之名。〔雜阿含經卷二十八、中阿含卷五十八法樂比丘尼經、六門教授習定論、大智度論卷十七、成唯識論卷五、俱舍論卷五、摩訶止觀卷九、解脫道論卷四、顯揚聖教論卷二、順正理論卷二十七、翻譯名義集卷四〕p3985 - ↑ "定". 네이버 한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定 정할 정/이마 정 1. 정하다(定--) 2. 약속하다(約束--) 3. 바로잡다 4. 다스리다, 안정시키다(安定---) 5. 평정하다(平定--) 6. 편안하다(便安--) 7. 정해지다(定---), 고정되다(固定--) 8. 머무르다 9. 준비하다(準備--) 10. 잠자리를 펴 드리다 11. 그치다, 그만두다 12. 이마(앞머리) 13. 규정(規定), 규칙(規則) 14. 익은 고기 15. 별의 이름 16. 대관절, 도대체 - ↑ "定(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定(정)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 2종이 있다. (1) 생득선정(生得禪定). 나면서부터 마음을 한곳에 머물러 두는 심작용(心作用)이 있음을 말함. (2) 수득선정(修得禪定). 색계ㆍ무색계의 심지(心地)의 작용. 수행하여 얻어지는 것. 3학(學)의 정학(定學)과 6도(度)의 선정바라밀을 말함. ⇒사마타(奢摩他) - ↑ "정[定]",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정[定]
①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mādhi 삼매(三昧)라고 음사.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상태. 마음이 들뜨거나 침울하지 않고 한결같이 평온한 상태. 마음을 집중·통일시키는 수행, 또는 그 수행으로 이르게 된 평온한 마음 상태.
② 산스크리트어 dhyāna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생각함. - ↑ "삼마지[三摩地]",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삼마지[三摩地]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mādhi의 음사.
① 정(定)·등지(等持)라고 번역.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상태. 마음이 들뜨거나 침울하지 않고 한결같이 평온한 상태. 삼매(三昧)와 같음.
②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뜻함. 몸〔身〕과 말〔口〕과 뜻〔意〕이 대일여래(大日如來)와 하나가 된 경지.
동의어: 삼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7║云何三摩地?謂於所觀
T31n1612_p0848c18║事,令心一境不散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떤 것이 삼마지인가. 관찰해야 할 일에 대해 마음을 경계에 전일하게 만들어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13_p0851c28║云何三摩地。謂於所觀事。心一境性。所觀事
T31n1613_p0851c29║者。謂五蘊等。及無常苦空無我等。心一境
T31n1613_p0852a01║者。是專注義。與智所依為業。由心定故。如實
T31n1613_p0852a02║了知。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무엇을 삼마지(三摩地)라고 하는가?
관(觀)하는 일에서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무는 것[心一境性]을 말한다. 관하는 일이란 5온 등과 무상함ㆍ괴로움ㆍ공ㆍ무아 등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하는 것이다. 마음이 한 대상에 머문다는 것은 여기에 오로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지혜가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마음이 정(定)에 있기 때문에 여실하게 요별하여 안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585_p0028b25║云何為定。於所
T31n1585_p0028b26║觀境令心專注不散為性。智依為業。謂觀
T31n1585_p0028b27║德失俱非境中。由定令心專注不散。依
T31n1585_p0028b28║斯便有決擇智生。心專注言顯所欲住即
T31n1585_p0028b29║便能住。非唯一境。不爾見道歷觀諸諦前
T31n1585_p0028c01║後境別應無等持。若不繫心專注境位便
T31n1585_p0028c02║無定起。故非遍行。有說爾時亦有定起。但
T31n1585_p0028c03║相微隱。應說誠言。若定能令心等和合同
T31n1585_p0028c04║趣一境故是遍行。理亦不然。是觸用故。若
T31n1585_p0028c05║謂此定令剎那頃心不易緣故遍行攝。亦不
T31n1585_p0028c06║應理。一剎那心自於所緣無易義故。若
T31n1585_p0028c07║言由定心取所緣故遍行攝。彼亦非理。作
T31n1585_p0028c08║意令心取所緣故。有說此定體即是心。經
T31n1585_p0028c09║說為心學心一境性故。彼非誠證。依定攝
T31n1585_p0028c10║心令心一境說彼言故。根力覺支道支等
T31n1585_p0028c11║攝。如念慧等非即心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5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무엇을 ‘정(定)심소’247)라고 하는가?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마음을 기울여 집중해서 산란되지 않게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지혜[智]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덕(德)과 과실 그리고 덕도 과실도 아닌 대상을 관찰하는 중에서, 정(定)심소에 의해 심왕을 기울여 집중케 해서 산란되지 않게 한다. 이것에 의해서 문득 결택(決擇)의 지혜가 생겨난다.
심왕을 기울여 집중케 한다는 말은, 머물고자 하는 것에 능히 머문다는 것을 나타낸다.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견도에서 여러 진리를 관찰해 나갈 때에 앞뒤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등지(等持)가 없어야 한다. 만약 산란이 심왕을 계박해서 대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지위에서는 정(定)심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변행심소가 아니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8) 그때에도 역시 정심소가 일어나며, 다만 양상이 미약하고 은밀할 뿐이라고 말한다. 마땅히 진실한 말을 해야 한다. 만약 정심소가 능히 심왕 등을 화합해서 다 같이 하나의 대상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변행심소라고 말하면, 이치가 역시 그렇지 않다. 이것은 촉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정심소가 찰나에 심왕으로 하여금 대상[緣]을 바꾸지 않게 하기 때문에 변행심소에 포함된다고 말하면, 그것도 역시 바른 논리가 아니다. 한 찰나의 심왕은 스스로 인식대상에 대해서 바꾸는 뜻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심소에 의해서 심왕에 인식대상을 취하게 하기 때문에 변행심소에 포함된다고 말하면, 그것도 역시 바른 논리가 아니다. 작의(作意)가 심왕에 인식대상을 취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9) 이 정(定)심소는 자체가 곧 심왕이다. 경전에서 심학(心學) 또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한 증명이 아니다. 정심소가 심왕을 거두어, 심왕을 하나의 상태로 만드는 것에 의거해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 등에 포함되므로,250) 염(念)ㆍ혜(慧) 심소 등처럼 곧 심왕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247) 정(定, samādhi)심소는 ‘집중’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으로서, 대상에 심왕을 집중 시켜서 하나에 머물고 산란케 하지 않는다. 이로써 결택지(決擇智)가 생겨날 수 있다.
248)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을 신봉하는 사람[正理師]의 견해를 논파한다.
249) 경량부의 주장을 논파한다.
250) 5근(根) 중에 정근(定根)이 있고, 5력(力) 중에 정력(定力)이 있으며, 7각지(覺支) 중에 정각지(定覺支)가 있고, 8정도 중에 정정(正定)이 있다. 그것들 중에서 어느 것도 체(體)가 있으므로, 정(定)심소를 심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논파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X48n0802_p0309c04║ 定。專一。謂於所觀境。專注一心也。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2_p0481b14║等持者。謂於所觀境專住一緣為體。令心不
T31n1602_p0481b15║散智依為業。如經說諸令心住與等住安住
T31n1602_p0481b16║近住及定住不亂不散攝寂止等持心住一緣
T31n1602_p0481b17║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등지(等持)80) 심소는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오로지 하나의 반연에만 머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심왕으로 하여금 산란되지 않게 하여 지혜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모두 심왕으로 하여금 머물게 하여 등주(等住)ㆍ안주(安住)ㆍ근주(近住) 및 정주(定住)와 더불어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으며 거두어 고요히 그쳐서 등지의 마음이 하나의 반연에 머무는 성품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80) 등지(等持, samādhi) 심소는 정(定)이라고도 하며, ‘집중’ 즉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켜서 하나에 머물고 산란하게 하지 않는다. 이것에 의해 결택지(決擇智)가 생겨날 수 있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5_p0664b02║何
T31n1605_p0664b03║等三摩地。謂於所觀事令心一境為體。智所
T31n1605_p0664b04║依止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삼마지(三摩地)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지혜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三昧(삼매)",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三昧(삼매)
【범】 samādhi 삼마제(三摩提ㆍ三摩帝)ㆍ삼마지(三摩地)라 음력. 정(定)ㆍ등지(等持)ㆍ정수(正受)ㆍ조직정(調直定)ㆍ정심행처(正心行處)라 번역. 산란한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망념에서 벗어나는 것. - ↑ "等持(등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等持(등지)
【범】 samādhi 삼마지(三摩地)ㆍ삼마제(三摩提)ㆍ삼매(三昧)라 음역. 정(定)의 다른 이름. 정을 닦으면 마음을 한 경계에 머물러 산란치 않게 함을 말함. 평등하게 유지하므로 등지라 한다. - ↑ "等持",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等持
「三摩地」的意譯。持續不斷,心念專住一境的精神作用。(參閱「三摩地」894)p6506 - ↑ "等持",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等持
Basic Meaning: concentration
Senses:
Absorption, trance; meditative concentration; maintaining the mind in one-pointed focus on its object. A translation of the Sanskrit samādhi, which is transliterated as 三昧, 三摩地, and 三摩提. (Skt. cittaikâgratā, samāpatti-dravya, samādhāna, sam-ā-√dhā; Tib. ting nge 'dzin, mnyam par 'jog pa). 〔成唯識論 T 1585.31.28c1〕 [Charles Muller, Roujia Zeng; source(s): Ui, Hirakawa, Nakamura, JEBD, Soothill, YBh-Ind] - ↑ "等持", 불문망. 《불학사전》.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等持
辭典解釋 :
解釋[1] :
定的別名。梵語三摩地,華譯為等持,即心安住於一境而平等維持之義。
出處 :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2] :
Holding oneself in equanimity, a tr. of samādhi, as also is 三等持, i.e. samādhi-equilibrium; also of samāpatti, v. 三摩鉢底 and 等至.
出處 :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3] :
samādhi, sam-ā-√dhā, samāpatti-dravya,cittaikāgratā
出處 : 佛教漢梵大辭典
頁數 : p.2726
解釋[4] :
如九種心住中說。
二解 顯揚一卷四頁云:等持者:謂於所觀境,專住一緣為體;令心不散,智依為業。如經說:諸令心住、與等住、安住、近住、及定住、不亂不散、攝寂止、等持、心住一緣性。
三解 俱舍論二十八卷六頁云:此中等持,頌說為定。等持與定,名異體同。故契經說心定等定、名正等持。此亦名為心一境性。義如前釋。
出處 : 朱芾煌《法相辭典》字庫
相近字 :
等持…名異體同 [w] , 等持三昧耶勝印 [w] , 等持善巧與等至善巧四句分別 [w] , 等持尋伺 [w] , 等持無用 [w] , 等慢 [w] , 等慈 [w] , 等愛亦不等愛 [w] , 等愛 [w] , 等愚 [w]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4n1837_p0055c26║ 於一境界令心不散,專住不離,名三摩地。
T44n1837_p0055c27║ 三摩地名翻為等持,此即定之異名,持其心
T44n1837_p0055c28║ 王及與數法等至於境,名為等持。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3n1830_p0430b04║論。云何為定至智依為業。 述曰。能生智者
T43n1830_p0430b05║此多分言。或淨分說。非謂一切。即如定後
T43n1830_p0430b06║起癡心故。
T43n1830_p0430b07║論。謂觀德失至決擇智生。 述曰。心專一境
T43n1830_p0430b08║依教而緣。證解所緣心便明淨。由斯遂有
T43n1830_p0430b09║無漏智生。能知所緣德失等相。約四法迹
T43n1830_p0430b10║定能生智。非定須然。
T43n1830_p0430b11║論。心專注言至非唯一境。 述曰。此專注言。
T43n1830_p0430b12║非是定心唯緣一物。即隨所注心多少境。
T43n1830_p0430b13║或一剎那別欲注心處。深取所緣定即得
T43n1830_p0430b14║生。非要前後唯緣一境。
T43n1830_p0430b15║論。不爾見道至應無等持。 述曰。其相見道
T43n1830_p0430b16║為十六心。觀境應無等持。以要前後唯緣
T43n1830_p0430b17║一境故。彼一一念皆住其心。於一境轉深
T43n1830_p0430b18║取所緣故有定也。
T43n1830_p0430b19║論。若不繫心至故非遍行。 述曰。即散亂心
T43n1830_p0430b20║不專注者便無定起。其第七識雖亦別緣。
T43n1830_p0430b21║不專注心於境轉故。不深取故。故非定
T43n1830_p0430b22║俱。如前第五卷說。故彼與此非是相違。此
T43n1830_p0430b23║許易境亦名定故。能深取故。
T43n1830_p0430b24║論。有說爾時至應說誠言。 述曰。正理師等。
T43n1830_p0430b25║亂心等時亦有定起。但相微隱相難知者。今
T43n1830_p0430b26║詰彼曰應說誠言。誠謂誠諦。虛言說有理
T43n1830_p0430b27║未可通。應緣實言令我知有。
T43n1830_p0430b28║論。若定能令至是觸用故。 述曰。若彼救言
T43n1830_p0430b29║定能令心等和合同趣一境。心起皆有故是
T43n1830_p0430c01║遍者。理亦不然。此觸用故。觸能和合心.心
T43n1830_p0430c02║所法不令離別。同一緣故。
T43n1830_p0430c03║論。若謂此定至無易義故。 述曰。又汝若言
T43n1830_p0430c04║令剎那頃能住一境。心不易緣故遍行攝
T43n1830_p0430c05║者。理亦不然。一剎那心等。自然於一境無
T43n1830_p0430c06║改易義。何須定爾。非一念心緣此復可更
T43n1830_p0430c07║緣彼故。彼謂不然。心等性不定。非唯一念
T43n1830_p0430c08║能住一境。由此經言心如猨猴難禁制
T43n1830_p0430c09║故。故若一念住一境者。此由定數故有爾
T43n1830_p0430c10║也。問彼設無定者。一念之心亦易緣不。彼
T43n1830_p0430c11║言若無於定心住一境。則貪等無心自成
T43n1830_p0430c12║染。此例不然。專注所緣必由定有。心住
T43n1830_p0430c13║於境豈假定爾。不可以貪等無而不成
T43n1830_p0430c14║染。便言定等無時心不緣慮。緣慮之事心
T43n1830_p0430c15║先自成。豈假餘法。其心剎那住境亦爾。若
T43n1830_p0430c16║緣慮時必住境故。但深取境假定方能。由
T43n1830_p0430c17║此心等不假於定。一念之中能住於境。
T43n1830_p0430c18║論。若言由定至取所緣故。 述曰。彼復救言
T43n1830_p0430c19║令心取境名之為定。復難彼言。令心取
T43n1830_p0430c20║境作意之功。非由定力。如前已說。如須正
T43n1830_p0430c21║理第十一救言大廣。
T43n1830_p0430c22║論。有說此定至心一境性。 述曰。此經部師。
T43n1830_p0430c23║以經三學中說為心學。靜慮支中說為心一
T43n1830_p0430c24║境性。故離心無。
T43n1830_p0430c25║論。彼非誠證至說彼言故。 述曰。今破不然。
T43n1830_p0430c26║心學者依攝心故。心一境者。令心住一境
T43n1830_p0430c27║故說為心。非體即心。
T43n1830_p0430c28║論。根力學支至非即心故。 述曰。五根.五力.
T43n1830_p0430c29║七覺.八道支中別說故。定非即心。如念.惠
T43n1830_p0431a01║等。念.惠等法彼體是思。然非即心故以為
T43n1830_p0431a02║喻。此中比量如文可解。亦如正理論第十
T43n1830_p0431a03║一廣闡。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31n1606_p0697b14║三摩地者。於所觀事令心專一為體。智所依
T31n1606_p0697b15║止為業。令心專一者。於一境界令心不散故。
T31n1606_p0697b16║智所依者。心處靜定知如實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삼마지(三摩地)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있어서 마음을 하나의 경계에 전일하게 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지혜에 의지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마음을 전일하게 하는 것’이란 하나의 경계에 대해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것이다. ‘지혜에 의지한다는 것’이란 마음이 고요한 선정에 처해서 실답게 깨닫는 것이다.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8n2016_p0746c14║四定。亦云等持。謂於所觀境。專注一緣
T48n2016_p0746c15║為體。令心不散。智依為業。又由定令心專注
T48n2016_p0746c16║不散。依斯便有決擇智生。若不繫心專注境
T48n2016_p0746c17║位。便無定起。故非遍行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4는 정(定)이다. 등지(等持)라고도 하나니, 관(觀)할 바 경계에 대해 오로지 한 가지 반연에만 마음을 쓰는 것이 체성이 되고, 마음을 산란하지 않게 하며 지혜의 의지가 업이 된다.
또 정으로 말미암아 오로지 마음을 써서 산란하지 않게 하면 이에 의하여 결택(決擇)하는 지혜의 생김이 있지만, 만일 마음을 매어 경계 자리에 오로지 쏟지 아니하면 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변행심소가 아니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44n1836_p0048a19║ 三麼
T44n1836_p0048a20║ 地者,此云等持,於所觀境令心專注不散為
T44n1836_p0048a21║ 性,智依為業。謂得、失、俱非境中,由定令心專
T44n1836_p0048a22║ 注不散,依斯便有決定智,生心專注言顯,所
T44n1836_p0048a23║ 欲住即便能住,非唯一境;不爾,見道歷觀諸
T44n1836_p0048a24║ 諦,前後境別,應無等持也。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T85n2810_p1056a04║三摩地
T85n2810_p1056a05║者。此名等持。謂即是定於所觀境平等持
T85n2810_p1056a06║心。令心專注不散為性。智依為業。謂觀德
T85n2810_p1056a07║失俱非境中由定令心專注不散。依斯便有
T85n2810_p1056a08║決擇智生。若不繫心專注境位。便無定起故
T85n2810_p1056a09║非遍行。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1일에 확인:
X48n0805_p0342c20║ 四三麼地者。此翻
X48n0805_p0342c21║ 為定。於所觀境。令心專注不散。而為體性。智依此
X48n0805_p0342c22║ 生。而為業用。 - ↑ 가 나 다 라 "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慧
(一)梵語 prajñā,巴利語 paññā。音譯般若。指推理、判斷事理之精神作用。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慧,通於善、不善、無記三性。惡慧中,作用強者,稱惡見,為五見之一。善慧又作正見、正慧。依俱舍論之說,慧係與任何種心皆有相連屬之作用,為大地法之一;然唯識宗謂慧為別境五心所之一。此外,慧與智為相對之通名,達於有為之智相稱「智」,達於無為之空理則稱「慧」。俱舍論卷二十六亦言,慧有「有漏慧」與「無漏慧」兩種。前者與煩惱法有密切不可脫離且相互影響之關係,屬於「智」之性質;後者又稱聖慧。由聞法而來之慧,稱作聞慧;由思考而來之慧,稱作思慧;由修行而來之慧,稱作修慧;以上三者合稱聞思修三慧。三慧加上與生俱來之「生得慧」,合稱四慧。依菩薩瓔珞本業經卷上說,菩薩之階段可分六種智慧,即聞、思、修三慧與「無相慧」(已證悟空無自性)、「照寂慧」(以中道之慧觀照見中道之理)、「寂照慧」(寂照不二,定慧平等)。以上六者依次與十住、十行、十迴向、十地、等覺、妙覺等六位配合。此外,天台宗亦有劣慧之說。〔大毘婆沙論卷四十二、卷一四二、俱舍論卷一、卷四、俱舍論光記卷一、卷四、成唯識論述記卷五〕
(二)梵語 adhiprajñā,巴利語 adhipaññā。慧與戒、定二者係佛教之重要德目,合稱「三學」。又就五根、五力之中,而有慧根、慧力之稱。以上之慧屬狹義之解釋;廣義之慧,則指梵語之 prajñā,一般音譯作般若。(參閱「三學」909、「般若」5424)p7559 - ↑ "慧",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慧
Basic Meaning: wisdom
Senses:
Insight, discernment, understanding; cognitive acuity; the power to discern things and their underlying principles and to decide the doubtful. Esp. superior cognitive function as distinguished from mundane cognition. The mental function of discriminating the relative and the absolute, cutting off doubt (Skt. prajña; Tib. shes rab).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tephen Hodge, JEBD, Yokoi]
Intelligence; the function of the mind which makes decisions and eliminates doubts; it also enables the mind to gain an understanding of phenomena. One of the omnipresent factors 大地法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倶舍論. One of the five 'specialized function' 別境 mental factors in Yogâcāra (Skt. mati; Tib. blo gros). Clever, intellectual, quick-witted.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Knowledge (Skt. jñāna; Tib. shes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Also commonly written with the variant form 惠, in which case it is often part of the name of a monk, e.g. 慧可 Huike; 慧思 Huisi. [Charles Muller]
(Skt. adhiprajñā, dhī; agra-prajñā, ājñā, jina-jñāna, jñāna-skandha, darśana, prajñāvat, prajñêndriya, buddhi, medhā, vidarśanā, vidyā, vipaśyanā, saṃprajanya, saṃprajñāna, saṃpradhī, sūri; Pāli paññā, adhipaññā; Tib. shes rab)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가 나 다 라 "慧(혜)",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慧(혜)
[1] 【범】 prajñā 반야(般若)라 음역. 사물의 이치를 추리하는 정신작용. 심소(心所)의 이름. 우주간의 일체만법을 『구사론』에서는 75, 『유식론』에서는 100으로 분류하며, 『구사론』에서는 혜(慧)라는 심소를 대지법(大地法)의 하나로 하여 모든 심식(心識)에 따라서 일어난다 하고, 『유식종』에서는 어리석고 우매한 마음에는 이 심소가 없다 하며, 바깥 경계에 대하여 사(邪)ㆍ정(正)과 득ㆍ실을 판단하여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2] 【범】 Mati 말저(末底)ㆍ마제(摩提)라 음역.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에 의하면 말저(末底)는 혜(慧)의 다른 이름이고, 반야(般若)의 별명이라 함. - ↑ "末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末底
梵語 mati。又作摩提。即慧之意。係般若之別名。成唯識論述記卷六末(大四三‧四四五上):「末底是慧異名,與般若無別體。」又表意見、見解之意。(參閱「般若」5424)p2513 - ↑ "혜[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혜[慧]
산스크리트어 prajñā, 팔리어 paññā
① 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 ↑ 가 나 다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5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585_p0028c11║云何為慧。於所
T31n1585_p0028c12║觀境簡擇為性。斷疑為業。謂觀德失俱
T31n1585_p0028c13║非境中。由慧推求得決定故。於非觀境
T31n1585_p0028c14║愚昧心中無簡擇故非遍行攝。有說爾時亦
T31n1585_p0028c15║有慧起。但相微隱。天愛寧知。對法說為大
T31n1585_p0028c16║地法故。諸部對法展轉相違。汝等如何執為
T31n1585_p0028c17║定量。唯觸等五經說遍行。說十非經。不應
T31n1585_p0028c18║固執。 - ↑ 가 나 다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5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무엇을 ‘혜(慧)심소’251)라고 하는가? 관찰되는 대상을 간택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의심을 끊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덕ㆍ과실, 덕도 아니고 과실도 아닌 대상을 관찰하는 가운데 혜(慧)심소가 추구함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우매한 마음속에서는 간택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변행심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52) 그때에도 역시 혜(慧심)소가 일어나며, 다만 양상이 미약하고 은밀할 뿐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天愛]은 어떻게 아는가?253) 『대법론』254)에서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법[大地法]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255) 여러 부파의 대법론은 전전해서 서로 다른 점이 많다. 그대들은 어째서 그것을 집착하여 정량(定量)으로 삼는가?256) 오직 촉 등의 다섯 가지만을 경전에서 변행심소라고 한다. 열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경전에서는 아니다. 고집해서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251) 혜(慧, mati)심소는 ‘이해 분별하는 작용’이다.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是非)를 판단하며, 이로써 의(疑) 번뇌가 단절된다.
252) 정리사(正理師)의 견해를 논파한다.
253) 논주의 질문이다.
254) 여기서는 소승의 『아비달마육족론(阿毘達磨六足論)』ㆍ『아비달마발지신론(阿毘達磨發智身論)』 등을 가리킨다.
255) 정리사의 답변이다.
256) 논주의 비판이다. - ↑ "簡擇",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簡擇
即選擇。指依智慧力作正確之判斷,以捨偽取真。「簡」與「擇」,均為選擇、分別之意。以智慧來簡擇一切諸法之力,即稱為擇力。又由簡擇力而得滅諦涅槃,即稱為擇滅。此外,為師者從眾弟子中選擇、分別何人堪受教法、何人不堪受教法,則稱為簡器。器,即根器、根機之意。〔雜阿含經卷二十八、俱舍論卷一〕 p8241 - ↑ "簡擇",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簡擇
Basic Meaning: to select
Senses:
To choose, distinguish. Especially to distinguish between the real and the counterfeit, or between the correct and the mistaken. To draw conclusions; to make a determination. 〔瑜伽論 T 1579.30.291c06〕 (Skt. pravicaya, pratisaṃkhyā, parîkṣ (√īkṣ); upanidhyāna, nidhyāna, parîkṣaṇa, parīkṣā, parīkṣita, pra-√jñā, manasi-√kṛ, vicaya, vicārayati, vi-√ci, vi-√cint, vitakṣita, viniścaya, vibhāga, vibhāvita, vedha, saṃ-√hṛ; Tib. rnam par 'byed pa)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Stephen Hodge, Hirakawa, Iwanami]
Careful consideration, detailed reflection upon; to research, study, investigate, check into (Skt. pratisaṃkhyāna, vicinoti, Tib. brtag pa; Tib. so sor rtog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 ↑ "擇法覺支",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擇法覺支
梵語 dharma-pravicaya-saṃbodhyaṅga,巴利語 dhamma-vicaya-sambojjhaṅga。七覺支之一。又稱擇法覺分、法覺意、法解覺意。指以智慧選擇分別諸法之真偽,取真捨偽,而趣入菩提。〔雜阿含經卷二十六〕(參閱「七覺支」203)p7812 - ↑ "擇法",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擇法
Basic Meaning: investigation of the teaching
Senses:
Analysis of the teachings using [correct] discriminating function. The ability to discriminate phenomena accurately. To analyze a matter (Skt. dharma-pravicaya, dharma-vicaya, dharmānāṃ pravicayaḥ; Tib. chos rnam par 'byed pa; Pāli dhamma-vicaya). 〔瑜伽論 T 1579.30.552a10〕 . Also seen as 擇法覺, 擇法覺支, etc.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The method of extinguishing affliction through accurate discrimination. 擇滅 〔倶舍論〕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5_p0664b04║何等為慧。謂於所觀事擇法為體。
T31n1605_p0664b05║斷疑為業。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혜(慧)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처해서 그 택법(擇法)하는 것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의심을 끊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12_p0848c18║云何為慧?謂即於彼
T31n1612_p0848c19║擇法為性;或如理所引,或不如理所引,或俱
T31n1612_p0848c20║非所引。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떤 것이 혜(慧)인가. 저것에 대해 (자상과 공상 등의) 법을 간택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니, 혹 이치에 맞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이치에 맞지 않게 이끌어내기도 하고, 혹 두 가지가 아니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4n1837_p0055c28║ 簡擇是非,
T44n1837_p0055c29║ 分別善惡,得決定義,名之為慧。 - ↑ 가 나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3n1830_p0431a04║論。云何為惠至斷疑為業。 述曰。此說勝惠
T43n1830_p0431a05║故言斷疑。疑心俱時亦有惠故。至下當知。
T43n1830_p0431a06║論。觀謂德失至非遍行攝。 述曰。釋業義。
T43n1830_p0431a07║顯非遍行。然於愚昧心中無者。非一切愚
T43n1830_p0431a08║皆無。以邪見者癡增上故。今但愚而亦昧心
T43n1830_p0431a09║即無也。愚不昧者或可有故。第八識昧而
T43n1830_p0431a10║不愚亦無惠也。
T43n1830_p0431a11║正理師云。
T43n1830_p0431a12║論。有說爾時至天愛寧知。 述曰。但相微隱。
T43n1830_p0431a13║彼時亦有。今應問彼。天愛寧知。
T43n1830_p0431a14║論。對法說為大地法故。 述曰。天愛救言。發
T43n1830_p0431a15║智.六足俱我所宗。總名對法。對法說為大
T43n1830_p0431a16║地法故。
T43n1830_p0431a17║論。諸部對法至執為定量。 述曰。今應難曰。
T43n1830_p0431a18║諸部對法展轉相違。非是根本佛所說故。汝
T43n1830_p0431a19║等如何執彼對法以為定量。總非諸部。
T43n1830_p0431a20║大段第二遮是遍行。
T43n1830_p0431a21║論。唯觸等五至不應固執。 述曰。唯五是遍
T43n1830_p0431a22║行。如前引經。說十非經。不應固執。須依
T43n1830_p0431a23║本經。非末論故。
T43n1830_p0431a24║既別說已。次總結之。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8n2016_p0746c17║五慧。謂於所觀境。簡
T48n2016_p0746c18║擇為體。斷疑為業。又於非觀境。愚昧心中。無
T48n2016_p0746c19║簡擇故。非遍行攝。此別境五隨位有無。所緣
T48n2016_p0746c20║能緣。非定俱故。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5는 혜(慧)이니, 관할 바 경계에 대해 간택하는 것이 체성이 되고, 의심을 끊는 것이 업이 된다.
또 경계를 관하는 것이 아니고 우매한 마음속에서는 간택이 없기 때문에 변행심소에 속한 것이 아니니, 이 별경심소의 다섯 가지는 자리에 따라 있거나 없는 것이며 소연과 능연이 반드시 함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85n2810_p1056a09║所言慧者。於所觀境簡擇為性。斷疑
T85n2810_p1056a10║為業。謂觀德失俱非境中由慧推求得決定
T85n2810_p1056a11║故。於非觀境愚昧心中無簡擇故非遍行攝。
T85n2810_p1056a12║而小乘論同前遍行名通大地。遍諸心者未
T85n2810_p1056a13║達理故。如唯識破。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2_p0481b18║慧者。謂即於所觀境簡擇為體。如理不如理
T31n1602_p0481b19║非如理非不如理悟入所知為業。如經說簡
T31n1602_p0481b20║擇諸法最極簡擇極簡擇法遍了近了黠了通
T31n1602_p0481b21║達審察聰叡覺明慧行毘鉢舍那。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혜(慧)81) 심소는 곧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간택(簡擇)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진리에 계합함, 진리에 계합하지 않음, 진리에 계합함도 아니고 계합하지 않음도 아닌 것으로써 소지(所知)82)에 깨달아 들어감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온갖 법을 간택(簡擇)하되, 아주 잘 간택하고, 법을 지극히 간택하며, 두루 알고, 가까이 알며, 지혜롭게 알고, 통달하고 자세히 살피며, 총명하고 슬기롭게 깨달아 밝은 지혜로써 비발사나(毗鉢舍那)83)를 행한다”고 말한 바와 같다.
81) 혜(慧, mati) 심소는 ‘이해ㆍ분별 작용’ 즉 대상에 대하여 득실시비(得失是非)를 판단하는 심리작용이다. 이로써 의(疑) 번뇌가 단절된다.
82) 소지(所知, jñeya)는 ‘알아야 할 대상’이란 뜻으로서 응지(應知)ㆍ경계ㆍ이염(爾焰)ㆍ지모(智母)ㆍ지경(智境) 등으로도 번역된다. 일체의 경계, 즉 지혜로 관조할 대상[所照之境]을 가리킨다. 5명(明) 등의 법이 능히 지혜를 내는 경계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다.
83) 범어 vipaśyana의 번역으로서 관(觀)이라 한역 함. 보는 것. 관찰. 조용한 마음에 대상의 영상을 뚜렷이 비추어 나타내는 것.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6_p0697b17║慧者。於所觀事擇法為體。斷疑為業。斷疑
T31n1606_p0697b18║者。謂由慧擇法得決定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혜(慧)심소법입니까?
사물을 관찰함에 처해서 그 택법(擇法)하는 것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 의심을 끊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지혜로 택법하는 것에 연유해서 결정된 성품을 얻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13_p0852a03║云何慧。謂即於彼擇法為性。或如理所引。或
T31n1613_p0852a04║不如理所引。或俱非所引。
T31n1613_p0852a05║即於彼者。謂所觀事。擇法者。謂於諸法自相
T31n1613_p0852a06║共相由慧簡擇。得決定故。如理所引者。謂佛
T31n1613_p0852a07║弟子。不如理所引者。謂諸外道。俱非所引者。
T31n1613_p0852a08║謂餘眾生。斷疑為業。慧能簡擇。於諸法中。得
T31n1613_p0852a09║決定故。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무엇을 지혜[慧]라고 하는가?
그것에 대하여 법을 선택[擇法]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혹은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고, 또는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 온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관하는 것을 말한다. 법을 선택함이란 모든 법의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에서 지혜로 골라내어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이치에 맞게 끌어온 것이란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이치에 맞지 않게 끌어온 것이란 모든 외도들을 말한다. 둘 다 아닌 경우로 끌어온 것이란 나머지 중생이다. 의혹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지혜는 능히 모든 법들 가운데서 능히 결정을 얻기 때문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4n1836_p0048a24║ 言慧者,於所觀境
T44n1836_p0048a25║ 揀擇為性,斷疑為業。謂觀得、失、俱非境中,由
T44n1836_p0048a26║ 慧推求得決定故。上言解現下文者,義在此
T44n1836_p0048a27║ 爾。(欲益得其詳,請閱成唯識第五卷)。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X48n0802_p0309c04║ 慧。黠慧。謂於
X48n0802_p0309c05║ 所作境。了然不疑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X48n0805_p0342c22║ 五慧者。于所觀境。簡別決擇。而為體
X48n0805_p0342c23║ 性。斷疑而為業用。 - ↑ "擇滅(택멸)",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擇滅(택멸)
열반의 다른 이름. 열반은 간택하고 판정하는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끊은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택멸이라 함. - ↑ "無漏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無漏慧
梵語 anāsrava-prajñā。即遠離一切煩惱過非,純真無垢之智慧;指三乘之聖智。俱舍論卷二十六(大二九‧一三四中):「慧有二種,有漏、無漏。唯無漏慧立以聖名。」〔阿毘曇八犍度論卷九〕p6460 - ↑ "無漏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無漏智
梵語 anāsrava-jñāna。指證見真理,遠離一切煩惱過非之智慧。為「有漏智」之對稱。於小乘,證見四諦理之智,稱為無漏智。有法智、類智之分別。證得欲界四諦法理之智,稱為法智。證得色、無色等二界四諦法之智,稱為類智;蓋其境智與法智相似,故稱類智。若由境之差別則分為苦、集、滅、道等四智。於無學位又分盡智、無生智,此二智皆證見四諦之法理。小乘謂無漏智於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
於大乘唯識宗則分無漏智為根本、後得二智,根本智為唯識之性,即證得真如理性之無分別智;後得智由根本智所出,為唯識之相,即了知因緣現起之萬象。大乘謂無漏智於初地見道始生起,而漸次修習,遂證佛果。〔法華經方便品、大毘婆沙論卷九十七、俱舍論卷二十六、順正理論卷七十三〕(參閱「十智」650)p6459 - ↑ "有漏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有漏智
梵語 sāsrava-jñāna。為「無漏智」之對稱。指煩惱未斷盡的世間智慧。又作俗智、世間智、世智、世俗智。此智慧雖觀緣一切有為、無為之法,然多以世俗之法為主,故又稱世俗智。又此智帶有有漏煩惱之過非,而無斷除一切迷理煩惱之力,一般多指凡夫外道之生得慧(與生俱來之慧),及聞、思、修三慧而言。〔俱舍論卷二十六、順正理論卷七十三、瑜伽師地論卷七十三〕 p3077 - ↑ "善(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善(선)
↔악(惡). 3성(性)의 하나. 소승에서는 결과로 보아서 편안하고 즐거운 낙보(樂報)를 받을만한 것. 대승에서는 현재ㆍ미래에 걸쳐 자기와 남을 순익(順益)하는 것을 말함. - ↑ "선[善]",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선[善]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 ↑ 가 나 다 "善",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善
梵語 kuśala,巴利語 kusala。指其性安穩,能於現在世、未來世中,給與自他利益之白淨法。與不善、無記(非善亦非不善)合稱三性。其中,善為白法(清淨之意),不善為黑法(汙濁之意)。廣義言之,「善」指與善心相應之一切思想行為,凡契合佛教教理者均屬之;狹義則指法相宗心所法之一,包括信、慚、愧、無貪、無瞋、無癡、精進、輕安、不放逸、行捨、不害。
據經論之記載,善有多種,以下臚舉數說。(一)二善:(1)指有漏善與無漏善。前者為白法,後者為淨法。依俱舍論卷四、成唯識論述記卷十、大乘玄論卷二等載,有漏善為未斷煩惱之世間善,包括五戒、十善等,依此能招未來樂之果報。有漏善與法性無相之理相異,為取自他之差別相所修之有相善,故亦稱相善。無漏善則為斷除煩惱之出世間善,依此並不招感未來之果報。此無漏善亦為得涅槃菩提之善。(2)指止善、行善。據智顗法界次第初門卷上之意,止息惡行,稱為止善,屬消極之善;反之,積極修行勝德,稱為行善。前者如不殺生、不偷盜,後者如放生、布施等。(3)指定善、散善。據觀無量壽經疏卷本、善導之觀經疏玄義分等載,心志集中而止住妄念,依此定心所修之善根,稱為定善;反之,以散亂之平常心,廢惡所修之善根,稱為散善。善導以日觀等十三觀為定善,而以三福、九品之行為散善。
(二)三善:(1)指世福、戒福、行福等三福。又作世善(世俗善)、戒善、行善。依善導觀經疏序分義載,世福指忠信孝悌之道,戒福指戒法,行福指大乘自行化他之行。(2)指初善、中善、後善。有各種解釋,大方廣寶篋經卷中列舉聲聞之三善,以身、口、意三善行為初善,戒、定、慧等三學行為中善,空、無相、無願等三三昧解脫法門為後善。另如法華經之序分、正宗分、流通分等三分(三段)亦為三善。
(三)四種善。據俱舍論卷十三載,四種善即:(1)勝義善,指涅槃。(2)自性善,謂本質之自體善,即指無貪、無瞋、無癡之三善根及慚、愧。(3)相應善,指與自性善相應之善心、心所。(4)等起善,指與自性善相應所引起而成為身、語二業之善,及四相、得、二無心定。與四種善相反者,則為四種不善,即勝義不善、自性不善,相應不善、等起不善。
(四)七種善。(1)據俱舍論光記卷二載,七種善即:①生得善,指先天之善。②聞善,指由聞法所得之善。③思善,指由思惟所得之善。④修善,指由禪定所得之善。以上之善均屬加行得善。⑤學善,指有學位所起之善。⑥無學善,指無學位所起之善。⑦勝義善,即指涅槃。此中,前四者乃見道(初生無漏智之位)前凡夫所起之善,即有漏善;後三者為見道以後之聖者所起之善,即無漏善。(2)法華文句(會本)卷七舉出頓教之七種善,即:①時善,又作時節善。指頓教之序分、正宗分、流通分之善。②義善,指頓教了義之理,具有意義深遠之善。③語善,指頓教之說法,具有言語巧妙之善。④獨一善,指頓教為純一無雜而不共二乘之教。⑤圓滿善,指頓教總含界內、界外之法,為完全圓滿之教。⑥調柔善,指頓教不極端而偏頗於一方之善。⑦無緣慈善,指頓教具有清淨、無緣之慈悲相。
(五)十一善。為大乘唯識宗所立十一種善之心所。即信、慚、愧、無貪、無瞋、無癡、勤、輕安、不放逸、行捨、不害。
(六)十三善。據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三所舉,十三善即:(1)自性善,指前述信、慚、愧等十一善。(2)相屬善,指與自性善相應之其他心所法。(3)隨逐善,指善法之習氣。(4)發起善,指身語二業之善。(5)第一義善,指真如。(6)生得善,指由思惟加行而起之善。(7)方便善,指聞正法而生如理作意之善。(8)現前供養善,指供養如來之善。(9)饒益善,指以四攝法饒益有情之善。(10)引攝善,指以施戒等福業來引攝生天之異熟,或得涅槃之因之善。(11)對治善,指厭壞對治、斷對治、持對治、遠分對治等各種對治。(12)寂靜善,指斷盡一切煩惱,得涅槃寂靜之無漏善。(13)等流善,指由寂靜之增上力,而發起神通等之功德法。
此外,凡夫所修得之善根,雜有貪、瞋、癡等煩惱之毒,故稱為雜毒善。又淨土宗對於他力念佛以外,凡自力之善根,均稱之為雜善。〔雜阿含經卷二十九、法華經卷一序品、大毘婆沙論卷五十一、卷一四四、成唯識論卷五、卷十、品類足論卷六、大智度論卷三十七、阿毘曇甘露味論卷上、雜阿毘曇心論卷三、俱舍論卷十五、順正理論卷三十六、梁譯攝大乘論釋卷十三、菩薩戒義疏卷上、大乘義章卷七〕p6145 - ↑ "淨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淨法
(一)如法而離罪障之意。即有關比丘衣食住行等之一定限制禁止之法,依其規定如法修行者,則不致犯罪。遵行其法稱為作淨或淨。四分律卷四十三載五種食果物之淨法:(1)如以火燒,則稱火淨。(2)如以刀削,則稱刀淨。(3)果實有腐壞處,稱為瘡淨。(4)鳥所啄傷,稱為鳥啄破淨。(5)不堪為種子,稱為不中種淨。又說有五種淨,即皮剝、㓟皮、腐、破、瘀燥。五分律卷二十六載食果五淨、食根五淨、食莖三淨。關於食果物之淨法,諸律所載稍異。
有關衣之淨法,十誦律卷十五載,比丘若得青、泥、茜等色之衣,作二種淨;得黃、赤、白等色之衣,作三種淨。摩訶僧祇律卷二十八載,迦絺那衣有截淨、染淨、點淨、刀淨等四種淨法;另外卷十八則依衣之類別而說不同之淨法。
摩訶僧祇律卷三十二載有關比丘之住所及戒行之淨法有五種,即制限淨、方法淨、戒行淨、長老淨、風俗淨。又十誦律卷五十六列舉僧坊淨法、林淨法、房舍淨法、時淨法、方淨法、國土淨法及衣淨法等。〔有部毘奈耶卷三十六、五分律卷九〕
(二)指佛陀所說之正法。以其法能令眾生超三界,得解脫,身心清淨,故稱淨法。(參閱「正法」2526)p5926 - ↑ 세계사상 > 사 상 용 어 > 윤리학 관계 > 가치·이상 등 > 선·악,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선·악 善·惡
선이란 일반적으로 좋은 것(일), 뛰어난 것(일), 훌륭한 것(일). 따라서 사물, 인간, 상황에 관해서 말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가치로서의 선. 그러나 무엇이 가장 중요한 도덕적 선인가는 때·곳·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은 용기였거나 지(知)였거나, 행복이었거나 쾌락이었거나, 절제였거나 노동이 되기도 한다. 모든 선 가운데에서 최고의 것을 최고선(最高善)이라 한다. 예를 들면 칸트는 도덕법칙(이성의 소리)에 따르는 의지를 선의지(善意志)라 하고, 선의지(덕)를 최상의 선이라 했다. 최상의 선이 그것에 적합한 행복을 누린다는 것, 즉 덕과 덕에 적합한 행복과의 일치를 최고선이라고 불렀다. 선의 반대가 악이다. 중세 말기, 돈을 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나, 다시 말해서 악이지만, 그러나 하는 수 없는 일이라 하여 용납되었었다. 이처럼 하는 수 없는 악을 필요악이라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2_p0481b22║信者。謂於有體有德有能心淨忍可為體。斷
T31n1602_p0481b23║不信障為業。能得菩提資糧圓滿為業。利益
T31n1602_p0481b24║自他為業。能趣善道為業。增長淨信為業。如
T31n1602_p0481b25║經說於如來所起堅固信。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신(信)84) 심소는 실체 있고 덕 있으며 능력 있는 것에 대해서 심왕으로 청정하게 인가(忍可)함을 체성으로 삼는다.85) 불신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능히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얻어 원만해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함을 업으로 삼고, 능히 선도(善道)에 나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청정한 믿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래에 대해서 견고한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84) 이하 11가지 신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신(信, śraddhā) 심소는 ‘믿음’ 즉 모든 법의 참다운 도리와 삼보의 덕과 선근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기꺼이 원하는 심리작용이다. 염오의 심왕ㆍ심소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한다.
85) 참으로 존재함[實]과 덕(德) 및 공능(功能)을 깊이 인정하고 좋아하며 원하여 심왕을 청정히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참으로 존재함을 믿는다는 것은, 일체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해서 깊이 믿어 인정하기 때문이다. 덕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삼보의 진실되고 청정한 덕을 깊이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능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善)에 대하여 힘이 있어서 능히 얻고 능히 성취한다고 깊이 믿어서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닦고 증득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2_p0481b26║慚者謂依自增上及法增上羞恥過惡為體。
T31n1602_p0481b27║斷無慚障為業。如前乃至增長慚為業。如經
T31n1602_p0481b28║說慚於所慚。乃至廣說。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참(慙)86) 심소는 자기 증상(增上)과 법 증상에87) 의지해서 허물과 악을 부끄러워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무참(無慙)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88) 참(慙)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스스로 부끄러워 할 바에 대해서는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86) 참(慙, hrī) 심소는 자신과 법에 의지하여 현선(賢善)을 존경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
87) 자신과 법을 존귀하게 여기는 더욱 향상된 힘[增上力]을 의미한다.
88) 앞에서 신(信)의 업(業)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 중에서 “능히 보리의 자량을 얻어 원만해짐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함을 업으로 삼고, 능히 착한 도에 나아감을 업으로 삼으며”를 가리킨다. 이하 심소의 설명에서 “여전내지(如前乃至)”는 이와 같다. - ↑ "信",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信
Basic Meaning: faith
Senses:
Conviction; trust; to believe in. One of the ten wholesome mental factors 大善地法 enumerated in Abhidharma; one of the eleven wholesome mental factors十一善 in Yogâcāra. Facing the environment with clarity and calmness, thereby calming and quieting the other mental functions. Accepting the world as it is. In the Yogâcāra system, it is a 'real dharma' that functions throughout the three realms. Yogâcāra further distinguishes faith into the three types of 信忍, 信樂, and 善法欲, which respectively connote the cognitive 知, emotive 情, and motivational 志 aspects of faith. 〔成唯識論 T 1585.31.29b22〕 (Skt. śraddhā, abhiprasanna, saṃpratyaya; Tib. yid chespa, mngon par dadpa)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Ui,Nakamura]
While we see faith described in Abhidharma and Yogâcāra works as an important component of religious practice in terms of calm acceptance of reality, its meaning is transformed and its relevance is elevated within the system of practice of Mahāyāna works that take a 'buddha-nature' 佛性 or tathāgatagarbha 如來藏 approach to the explication of the process of salvation. In these systems, faith tends to become the most critical factor in the attainment of deep religious insight, or liberation, as a conviction that the basic composition of oneʼs own mind is not different from the Buddha is the mainspring of practice. The importance of the realization of a deep, radical form of faith is the main focus of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大乘起信論, which becam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texts in all of East Asian Buddhism. Faith also plays an important part in the Pure Land tradition (where faith is placed in Amitâbha Buddha) and in Chan/Seon/Zen, where faith is often described as a critical component in the success of Chan meditative practice. [Charles Muller]
Lucid faith (Skt. prasāda; Tib. dad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Skt. adhimukti, adhyāśaya; dūta; adhimukta, adhimuktika, adhimukti-bhāvanā, adhimucyanā, adhimoktavya, adhimokṣa, abhiprasāda, abhyupagama, avê, ākāṇkṣin, ādeya, upagata, gaurava, dharmâdhimukti, pattīyanatā, prativibhāvayamāna, pratyaya, pratyayanatā, bhakti, rucira, viśvāsa, vaiśvāsika, śubha, śraddadhāna, śraddhāgamana, śraddhā-gamanīya, śrāddha, saṃbhāvanā, saśraddha; Pāli saddhā).
Reference:
Park, Sung Bae. 1983. Buddhist Faith and Sudden Enlightenment. Albany: SUNY Press.
Thien-Tam, Thich. 1991. Buddhism of Wisdom and Faith: Pure Land Principles and Practice. Sepulveda, Calif.: International Buddhist Monastic Institute.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가 나 다 "信",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信
梵語 śraddhā。音譯捨攞馱。心所(心之作用)之名。為七十五法之一,亦為百法之一。為「不信」之對稱。即對一對象,能令其心與心之作用產生清淨之精神作用,故「唯信能入」為進入佛道之初步。俱舍宗立為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則立為善心所之一。反之,則稱為「不信」,為俱舍宗十大煩惱地法之一、唯識宗則為八大隨煩惱之一。成唯識論卷六(大三一‧二九中):「云何為信?於實、德、能,深忍、樂、欲,心淨為性,對治不信,樂善為業。」
又同書謂信有三種:(1)信實有,謂於諸法之實事理中深信忍故。(2)信有德,謂於三寶真淨之德中深信樂故。(3)信有能,謂於一切世、出世之善中,深信有力能得能成,起希望故。
信步入道之第一部,故菩薩五十二階位中即以十信位為首,五根或五力中亦分別以信根、信力為最初。六十華嚴經卷六賢首菩薩品(大九‧四三三上):「信為道元功德母。」大智度論卷一(大二五‧六三上):「佛法大海,信為能入,智為能度。」皆是此義,故諸經論中,有關勸發起信之處特多。此外,關於所信之法,諸經論所說亦有別,俱舍論舉出四諦、三寶、善惡業果等事理之法,雜阿含經卷三十則謂佛法僧及聖戒等四證淨信。梁譯攝大乘論卷七主張信有如下三處:(1)信自性住佛性之實有,(2)信其之可得,(3)信其有無窮之功德。大乘起信論則強調對真如及佛法僧之信心。〔舊華嚴經卷六賢首菩薩品、大毘婆沙論卷二十九、入阿毘達磨論卷上、俱舍論卷四、品類足論卷三〕p4691 - ↑ "신념(信念)",《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신념 [ belief, 信念 ]
요약: 심리적 의미로, 어떤 사상(事象)이나 명제(命題) ·언설(言說) 등을 적절한 것 또는 진실한 것으로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심적(心的) 태도를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개인이 접촉하는 세계의 어떤 측면에 대한 감정 ·지각 ·인식 ·평가 ·동기 ·행동경향 등의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자세를 ‘태도’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는데, 신념은 그 인지적인 요소 및 측면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대상에 대한 신념은 다소간에 서로 관련을 가지고 전체로서의 체계를 이루나, 그 구조에서는 개인차가 있어 고도로 조직화되어 안정성 있는 신념체계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개개의 신념이 그다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다.
또한 신념은 객관적 사실 및 진실과의 일치에 있어 그 정도가 다양하여 때로는 객관적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 또는 일탈(逸脫)하는 수가 있다. 그 극단적인 예로서 속신(俗信) ·미신 ·편견 ·고정관념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신앙은 종교적 경험이나 그 밖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신념 및 태도에 불과하다. 개인에게 있어 모든 신념이 똑같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심적인 것에서부터 말초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이다. 중심적인 것일수록 잘 변화하지 않으나 한번 변화하면 다른 신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종류
미국의 심리학자 로키치는 그 중요성 및 모든 신념체계의 결합도를 기준으로 신념을 5종류로 분류하였다.
① 100%의 사회적 일치로 지지하는 근원적 신념.
② 개인적 경험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신념.
③ 저마다의 권위에 대한 신념.
④ 동일시되는 권위에서 나오는 신념.
⑤ 다소간 개인적 취미에 바탕을 두어 다른 신념과의 관련이 희박한 개별적 신념.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4n1837_p0056a05║ 信有三寶、四諦,心不生謗,名
T44n1837_p0056a06║ 之為信。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2_p0481b22║信者。謂於有體有德有能心淨忍可為體。斷
T31n1602_p0481b23║不信障為業。能得菩提資糧圓滿為業。利益
T31n1602_p0481b24║自他為業。能趣善道為業。增長淨信為業。如
T31n1602_p0481b25║經說於如來所起堅固信。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신(信)84) 심소는 실체 있고 덕 있으며 능력 있는 것에 대해서 심왕으로 청정하게 인가(忍可)함을 체성으로 삼는다.85) 불신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능히 보리(菩提)의 자량(資糧)을 얻어 원만해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자신과 남들을 이롭게 함을 업으로 삼고, 능히 선도(善道)에 나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청정한 믿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여래에 대해서 견고한 믿음을 일으킨다”고 말한 바와 같다.
84) 이하 11가지 신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신(信, śraddhā) 심소는 ‘믿음’ 즉 모든 법의 참다운 도리와 삼보의 덕과 선근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기꺼이 원하는 심리작용이다. 염오의 심왕ㆍ심소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한다.
85) 참으로 존재함[實]과 덕(德) 및 공능(功能)을 깊이 인정하고 좋아하며 원하여 심왕을 청정히 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참으로 존재함을 믿는다는 것은, 일체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해서 깊이 믿어 인정하기 때문이다. 덕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삼보의 진실되고 청정한 덕을 깊이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공능이 있음을 믿는다는 것은,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善)에 대하여 힘이 있어서 능히 얻고 능히 성취한다고 깊이 믿어서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닦고 증득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585_p0029b22║云何為信。於實德能深忍樂欲心淨為
T31n1585_p0029b23║性。對治不信樂善為業。然信差別略有三
T31n1585_p0029b24║種。一信實有。謂於諸法實事理中深信忍
T31n1585_p0029b25║故。二信有德。謂於三寶真淨德中深信樂
T31n1585_p0029b26║故。三信有能。謂於一切世出世善深信有
T31n1585_p0029b27║力能得能成起希望故。由斯對治彼不
T31n1585_p0029b28║信心。愛樂證修世出世善。忍謂勝解。此即
T31n1585_p0029b29║信因。樂欲謂欲即是信果。礭陳此信自相
T31n1585_p0029c01║是何。豈不適言。心淨為性。此猶未了彼心
T31n1585_p0029c02║淨言。若淨即心應非心所。若令心淨慚等
T31n1585_p0029c03║何別。心俱淨法為難亦然。此性澄清能淨心
T31n1585_p0029c04║等。以心勝故立心淨名。如水清珠能清濁
T31n1585_p0029c05║水。慚等雖善非淨為相。此淨為相無濫彼
T31n1585_p0029c06║失。又諸染法各別有相。唯有不信自相渾
T31n1585_p0029c07║濁。復能渾濁餘心心所。如極穢物自穢穢
T31n1585_p0029c08║他。信正翻彼故淨為相。有說信者愛樂為
T31n1585_p0029c09║相。應通三性體應即欲。又應苦集非信
T31n1585_p0029c10║所緣。有執信者隨順為相。應通三性。即勝
T31n1585_p0029c11║解欲。若印順者即勝解故。若樂順者即是欲
T31n1585_p0029c12║故。離彼二體無順相故。由此應知心淨
T31n1585_p0029c13║是信。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무엇을 ‘신(信)심소’3)라고 하는가? 참으로 존재함[實]과 덕(德) 및 능력[能]을 깊이 인정하고 좋아하며 원하여 심왕을 청정하게 함을 체성으로 삼고, 불신(不信)을 다스리고 선(善)을 좋아함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데 신(信)심소를 구별하면 대략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참으로 존재함을 믿는 것이니, 일체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에 대해서 깊이 믿어 인정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덕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삼보의 진실되고 청정한 덕을 깊이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 것이니,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선에 대하여 힘이 있어서 능히 얻고 능히 성취한다4)고 깊이 믿어서 희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간과 출세간의 선을 닦고 증득함을 즐기고 좋아한다.
【문】 인정하는 것은 승해(勝解)이니, 이것은 믿음의 원인이다. 좋아하여 원한다는 것은 욕구[欲]이니, 곧 믿음의 결과이다. 이 신심소를 확실히 말하면 자상이 어떠한가? 5)
【문】 이것은 아직 그 심왕이 청정함을 알지 못한다. 만약 청정한 것이 곧 심왕이라고 말하면, 마땅히 심소가 아니어야 한다.6) 만약 심왕을 청정하게 한다고 말하면, 참(慚)심소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심왕과 함께하는 청정법이라고 말하면 역시 비판을 받는다.
【답】 이것은 자성이 매우 맑아서, 능히 심왕 등을 청정하게 한다. 심왕이 뛰어나기 때문에 심정(心淨)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물을 맑히는 구슬[水淸珠]이 능히 탁한 물을 청정하게 하는 것과 같다. 참(慚)심소 등은 선(善)이지만, 청정을 자상으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청정하게 함을 자상으로 한다.7) 그것에 혼동되는 과실이 없다.
또한 모든 잡염법은 각기 따로 자상이 있다. 오직 불신만이 있어서, 자상이 혼탁하고 또한 능히 다른 심왕과 심소도 혼탁하게 한다. 매우 더러운 물건은 스스로도 더럽고 다른 것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신(信) 심소는 바로 그것에 뒤집어 배대한 것이기 때문에 청정함을 자상으로 한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8) 신심소는 즐기고 좋아함을 자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마땅히 세 가지 성품에 통해야 하고, 자체[體]가 곧 욕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고제와 집제는 신심소의 인식대상이 아니어야 한다.9)
다음과 같은 국집된 견해가 있다.10) 신심소는 수순함을 자상으로 한다고 말한다. 마땅히 세 가지 성품에 통해야 하고, 곧 승해ㆍ욕(欲) 심소가 되어야 한다.11) 만약 분명히 지녀서 수순하다면 승해심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즐겨서 수순하다면, 욕심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둘의 자체에서 떠나서는 수순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의거해서 마땅히 알라. 심왕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신(信)심소이다.
3) 신(信, śraddhā)심소는 ‘믿음’의 능력이다. 제법의 참다운 도리와 삼보의 덕과 선근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기꺼이 원한다. 염오의 심왕ㆍ심소를 다스려서 청정하게 한다. 마치 탁수(濁水)에 맥반석을 넣으면 정화되듯이 이 믿음심소는 염오심을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4) 무위선(無爲善)을 얻고 유위선(有爲善)을 성취하는 것, 또는 세간의 선(善)을 얻고 출세간의 선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5) 외인(外人)의 질문이다. 신(信)심소의 인과는 분명히 하고, 아직 그것의 자상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 자상은 어떠한가라고 묻는다.
6) 이것은 심왕이지 심소가 아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7) 논주가 신(信)심소와 참(慚) 등의 심소의 차이점을 회통하여 답변한다.
8) 상좌부 또는 대승의 다른 학파[異師]의 견해를 논파한다.
9) 논주의 논파이다. 즉 그대들의 주장대로라면 마땅히 신심소는 3성(性)에 통해야 한다. 그것은 세 가지 대상을 즐기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심소의 자체는 곧 욕(欲)심소이어야 하고, 신심소에도 악(惡)과 무기가 있을 수 없지 않겠는가? 또한 4성제를 믿을 때에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 신심소라고 하면, 고제(苦諦)ㆍ집제(集諦)는 신심소의 인식대상이 아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
10) 대승의 이사(異師) 또는 대중부의 견해이다.
11) 이하 논주의 논파이다.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3n1830_p0433c27║論。云何為信至心淨為性。 述曰。次下第二
T43n1830_p0433c28║出諸善體分為八段。合慚.愧為一。三善
T43n1830_p0433c29║根為一故。別解信中初申正義。下破外執
T43n1830_p0434a01║ 申正義中。初略。後廣。略中體.業。此即性
T43n1830_p0434a02║也。顯揚.對法.五蘊論等雖文同此。然有實
T43n1830_p0434a03║等不別分別。唯此說之 實.德.能三是信
T43n1830_p0434a04║依處。是境第七 深忍.樂欲是信因果 心
T43n1830_p0434a05║淨為性。正顯自體。
T43n1830_p0434a06║論。對治不信樂善為業。 述曰。此明業用。顯
T43n1830_p0434a07║揚說有五業。然治不信。初與此同。此言樂
T43n1830_p0434a08║善。即彼四種。能得菩提資糧滿故。利益自
T43n1830_p0434a09║他故。趣善道。增長信。即是論中堅固信也。
T43n1830_p0434a10║對法論說。樂欲所依為業。即是彼第九云。
T43n1830_p0434a11║信為欲依。約入佛法初首為論。若言通
T43n1830_p0434a12║論一切信業。顯揚五業中。除第二菩提因。
T43n1830_p0434a13║論。然信差別略有三種。 述曰。下廣前難有
T43n1830_p0434a14║三。初解依處。次解業用。後解自性。初中又
T43n1830_p0434a15║二。先標。後釋。此初也。
T43n1830_p0434a16║論。一信實有至深信忍故。 述曰。謂於一切
T43n1830_p0434a17║法若事若理信忍皆是。對法云。於實有體
T43n1830_p0434a18║起忍可信。古師依此謂此四諦體實有也。
T43n1830_p0434a19║今此中言。若信虛空此是何等。體非實故。
T43n1830_p0434a20║亦非諦故。為信虛空即此攝故。但可總言
T43n1830_p0434a21║若理若事。空雖體無。有空理故。
T43n1830_p0434a22║論。二信有德至深信樂故。 述曰。同體別體.
T43n1830_p0434a23║有漏無漏.住持真行所有三寶。皆是彼攝。
T43n1830_p0434a24║如真淨故。所餘是此真淨方便亦名真淨。
T43n1830_p0434a25║論。三信有能至起希望故。 述曰。謂於有漏
T43n1830_p0434a26║無漏善法。信己及他。今能得後能成。無為得
T43n1830_p0434a27║有為成。世善得出世成。起希望故。希望欲
T43n1830_p0434a28║也。忍.樂.欲三如次配上。對法但言謂我有
T43n1830_p0434a29║力能得能成。且據自成。此亦通他總致能
T43n1830_p0434b01║得等言。
T43n1830_p0434b02║上來已解信所依訖。隨文便故未解心淨。
T43n1830_p0434b03║次釋彼業。
T43n1830_p0434b04║論。由斯對治至世出世善。 述曰。正治不
T43n1830_p0434b05║信彼實事等。能起愛樂於無為證。有為善
T43n1830_p0434b06║修。故是信業。
T43n1830_p0434b07║自下欲顯忍.樂.欲三是信因果。及欲顯彼
T43n1830_p0434b08║心淨之言是信自相寄問徵起。於中有四。
T43n1830_p0434b09║一問。二答。三難。四通。
T43n1830_p0434b10║論。忍謂勝解至自相是何。 述曰。此外問也。
T43n1830_p0434b11║前言忍者即謂勝解。忍可境故。即是此信
T43n1830_p0434b12║同時之因。下言樂.欲並是欲數。樂希境故。
T43n1830_p0434b13║即是同時信所生果。此中何者是信自相。確
T43n1830_p0434b14║實論其自相是何。確者實也。或忍.樂.欲。異
T43n1830_p0434b15║時因果。理無遮也。
T43n1830_p0434b16║下論主答彼。因解心淨。
T43n1830_p0434b17║論。豈不適言心淨為性。 述曰。適者向也.纔
T43n1830_p0434b18║也。
T43n1830_p0434b19║論。此猶未了至為難亦然。 述曰。三外難言。
T43n1830_p0434b20║此由未了彼心淨言。若淨體即是心持業釋
T43n1830_p0434b21║者。信應非心所。淨即心故 若淨體非即
T43n1830_p0434b22║心令心淨者。心之淨故依依士釋第三轉
T43n1830_p0434b23║聲。慚等何別。亦令心淨故。若心俱淨法。隣
T43n1830_p0434b24║近釋者。淨與心俱故。為難同令淨。亦慚等
T43n1830_p0434b25║無別。
T43n1830_p0434b26║論。此性澄清至立心淨名。 述曰。論主通曰。
T43n1830_p0434b27║此信體澄清能淨心等。餘心.心所法但相應
T43n1830_p0434b28║善。此等十一是自性善。彼相應故。體非善。
T43n1830_p0434b29║非不善。由此信等俱故心等方善。故此淨
T43n1830_p0434c01║信能淨心等。依依士釋。又慚等十法體性雖
T43n1830_p0434c02║善。體非淨相。此淨為相。故名為信。唯信是
T43n1830_p0434c03║能淨。餘皆所淨故。以心王是主。但言心淨。
T43n1830_p0434c04║不言淨心所。文言略也。
T43n1830_p0434c05║論。如水精珠能清濁水。 述曰。喻如水精珠
T43n1830_p0434c06║能清濁水。濁水喻心等。清珠喻信體。以投
T43n1830_p0434c07║珠故濁水便清。以有信故其心遂淨。
T43n1830_p0434c08║若爾慚等例亦應然。體性淨故。斯有何別。
T43n1830_p0434c09║論。慚等雖善至無濫彼失。 述曰。其餘慚等
T43n1830_p0434c10║體性。雖善令心等善。不以淨為相。但以
T43n1830_p0434c11║修善.羞恥等為相。此信以淨為相。無濫
T43n1830_p0434c12║慚等之失。非慚慚故。信是無慚。非信信故。
T43n1830_p0434c13║慚是不信。今此淨者。信體之能。
T43n1830_p0434c14║論。又諸染法至故淨為相。 述曰。此第二義。
T43n1830_p0434c15║所餘一切染法等中。各別有相。如貪.愛等。
T43n1830_p0434c16║染心所內唯有不信。自相渾濁。渾濁餘心
T43n1830_p0434c17║等令成染污。如極穢物自穢穢他。亦如泥
T43n1830_p0434c18║鰌動泥濁水。不信亦爾。唯一別相渾穢染
T43n1830_p0434c19║污。得總染也。信正翻彼不信渾濁。故以淨
T43n1830_p0434c20║為信之相也。下破有二。如文可知也。
T43n1830_p0434c21║論。有說信者愛樂為相。 述曰。上座部義。或
T43n1830_p0434c22║大乘異師。謂愛樂彼法故。
T43n1830_p0434c23║論。應通三性至非信所緣。 述曰。論主難云。
T43n1830_p0434c24║應通三性。愛三境故。若許三性體應即
T43n1830_p0434c25║欲。欲緣所樂故。若汝之信有其善.惡。惡不
T43n1830_p0434c26║信可是有。於無記中其信是無。復非是欲。
T43n1830_p0434c27║又信於三。信非三性。何妨愛三而唯性善。
T43n1830_p0434c28║及為遮此妨作是言。又於四諦皆有信
T43n1830_p0434c29║生。若愛樂是信。應於苦.集二諦信不緣
T43n1830_p0435a01║之。誰有聖者愛樂苦.集故。苦.集諦應非
T43n1830_p0435a02║信所緣。
T43n1830_p0435a03║論。有執信者隨順為相。 述曰。或大乘異師。
T43n1830_p0435a04║或是大眾部。以隨順彼法是信相故。
T43n1830_p0435a05║論。應通三性即勝解欲。 述曰。境有三性故
T43n1830_p0435a06║隨通三。若許爾者應勝解.欲。
T43n1830_p0435a07║彼若救言雖言隨順體非解欲者。
T43n1830_p0435a08║論。若印順者至即是欲故。 述曰。論主難云。
T43n1830_p0435a09║隨順有二種。一者印順即是勝解。印而順彼
T43n1830_p0435a10║故。二者樂順即是欲數。樂於彼法即是欲
T43n1830_p0435a11║故。
T43n1830_p0435a12║若彼救言二俱之順體是信。非即欲.解。
T43n1830_p0435a13║論。離彼二體至心淨是信。 述曰。論主難云。
T43n1830_p0435a14║若離欲.解決非順相。非彼二故。如受.想
T43n1830_p0435a15║等。故論但言離彼二體無順相故。由此應
T43n1830_p0435a16║知心淨為信。忍可及欲是信之具。正理論師
T43n1830_p0435a17║以忍可為信。即當此勝解也。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5_p0664b06║何等為信。謂於有體有德有能忍可清淨希
T31n1605_p0664b07║望為體。樂欲所依為業。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신(信)심소법입니까?
바탕을 갖추는 것이나 덕망을 갖추는 것이나 공능을 갖추는 것에 대한 인가(忍可)와 청정에 대한 바람이 그 바탕이다. 기꺼이 구하는 바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4n1836_p0048b01║ 言信者,
T44n1836_p0048b02║ 於實德能深忍樂欲,心淨為性,對治不信,樂
T44n1836_p0048b03║ 善為業。謂於諸法實事理中,深信忍故;於三
T44n1836_p0048b04║ 寶真淨德中,深信樂故;於一切世出世善深
T44n1836_p0048b05║ 信有力,能得能成,起希望故。此三種信也。言
T44n1836_p0048b06║ 心淨為性者,謂此性澄清能淨心等,如水清
T44n1836_p0048b07║ 珠能清濁水,故云心淨為性也。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85n2810_p1056a24║所言信者。於
T85n2810_p1056a25║實德能深忍樂欲心淨為性。對治不信樂善
T85n2810_p1056a26║為業。然信差別略有三種。一信有實。謂於諸
T85n2810_p1056a27║法實事理中深信忍故。二信有德。謂於三寶
T85n2810_p1056a28║真淨德中深信樂故。三信有能。謂於一切世
T85n2810_p1056a29║出世善深信有力能得能成起希望故。由斯
T85n2810_p1056b01║對治不信。彼心愛樂證修世出世善。忍謂勝
T85n2810_p1056b02║解即是信因。樂欲謂欲即是信果。此性澄清
T85n2810_p1056b03║能淨心等。以心勝故立心淨名。如水清珠能
T85n2810_p1056b04║清濁水。慚等雖善非淨為相。此淨為相無濫
T85n2810_p1056b05║彼失。又諸染法各別有相。唯有不信自相渾
T85n2810_p1056b06║濁。復能渾濁餘心心所。如極穢物自穢穢他。
T85n2810_p1056b07║信正翻彼故淨為相。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X48n0805_p0343a02║ 一信者。於實德能
X48n0805_p0343a03║ 深忍樂欲。心淨而為體性。對治不信。樂求善法而
X48n0805_p0343a04║ 為業用。謂于諸法實事理中。深信其為實有而隨
X48n0805_p0343a05║ 順忍可。復於三寶真淨德中。深信而生喜樂。又於
X48n0805_p0343a06║ 一切世出世善。深信其有力。能得樂果。能成聖道。
X48n0805_p0343a07║ 而起希望之欲。由斯對治不信實德能之惡心。愛
X48n0805_p0343a08║ 樂證修世出世善。 - ↑ "신[信]",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신[信]
① 산스크리트어 śraddhā 믿는 마음. 청정한 마음.
② 진리 또는 근본에 대한 확신.
③ 인식의 근거.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12_p0848c21║云何為信?謂於業果諸諦寶中,極正符順,心
T31n1612_p0848c22║淨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떤 것이 신(信)인가. 업(業)과 과(果), 모든 진리[諦]와 보배[寶] 등에 대해 지극히 바르게 부합하여 마음이 청정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법구 조, 승가발마 등 한역(T.1552). 《잡아비담심론》(雜阿毘曇心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28, No. 155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28n1552_p0881b02║於三寶四諦淨心名為信。 - ↑ 법구 지음, 승가발마 등 한역, 김형준 번역(K.960, T.1552). 《잡아비담심론》 제2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3보(寶)와 4제(諦)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지니는 것을 ‘신(信)’25)이라 하고,
25) 범어로는 ṡraddhā. - ↑ "信(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信(신)
【범】 śraddhā (1) 구사(俱舍)의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우리의 심왕(心王)ㆍ심소(心所)로 하여금 대경을 올바르게 인식케 하며, 마음에 의혹이 없게 하는 정신 작용. (2) 신심(信心). (3) 4법(法)의 하나. (4) 5근(根)의 하나. (5) 수행하는 계제(階梯)인 52위(位)의 초(初). 10신(信)을 말함.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13_p0852a10║云何信。謂於業果諸諦寶等。深正符順。心淨
T31n1613_p0852a11║為性。
T31n1613_p0852a12║於業者。謂福。非福。不動業。於果者。謂須陀
T31n1613_p0852a13║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果。於諦者。謂苦
T31n1613_p0852a14║集滅道諦。於寶者。謂佛法僧寶。於如是業果
T31n1613_p0852a15║等。極相符順。亦名清淨。及希求義。與欲所
T31n1613_p0852a16║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무엇을 믿음[信]이라고 하는가?
업ㆍ과보ㆍ모든 진리[諦]ㆍ보배 등에 대하여 깊고 바르게 따르는 마음의 청정함을 성질로 삼는다. 업에 대하여 복(福)ㆍ복이 아님(非福)ㆍ부동업(不動業)을 말한다. 과보에 대하여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의 과보를 말한다. 진리에 대하여 괴로움의 진리[苦諦]ㆍ집착의 진리[集諦]ㆍ집착을 없애는 진리[滅諦]ㆍ깨달음에 이르는 진리[道諦]이다. 보배에 대하여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의 삼보이다. 이와 같은 업ㆍ과보 등에 대하여 지극히 맞게 따르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한다. 간절히 바라는 뜻에 이르러서는 바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연수 집(T.2016). 《종경록》(宗鏡錄) 제57권. 대정신수대장경. T48, No. 201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48n2016_p0746c20║一信。謂於有體。有
T48n2016_p0746c21║德。有能。心淨為體。斷不信障。能得菩提資糧
T48n2016_p0746c22║圓滿為業。又識論云。信以心淨為性。此性澄
T48n2016_p0746c23║清。能淨心等。以心勝故。立心淨名。如水清珠。
T48n2016_p0746c24║能清濁水。釋云。唯信是能淨。餘善等皆所淨。
T48n2016_p0746c25║故。以心王為主。但言心淨。不言心所。水喻心
T48n2016_p0746c26║等。清珠喻信體。以投珠故。濁水便清。以有信
T48n2016_p0746c27║故。其心遂淨。 - ↑ 연수 지음, 송성수 번역(K.1499, T.2016). 《종경록》 제57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1은 신(信)이니, 본받을 것이 있고 덕이 있고 능함이 있는 것에 대해 마음의 청정한 것이 체성이 되고, 믿지 않음[不信]의 장애를 끊고 보리(菩提)의 양식을 얻어 웬만해지는 것이 업용이 된다.
또 식론(識論)에서 이르되, “믿음은 마음의 청정함을 성품으로 삼나니, 이 성품은 맑고 깨끗하여 마음 등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마음은 뛰어난 것이기 때문에 마음의 청정함이란 이름을 붙였다. 마치 수청주(水淸珠)가 흐린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해석에서 이르되, “믿음 이것만이 청정하게 할 수 있고 그 밖의 선 등은 모두가 청정할 바이기 때문이다.
심왕을 주인으로 삼는지라 마음의 청정함만을 말하고 심소는 말하지 않았으며, 물은 마음 등에 비유하고 수청주는 믿음의 체성에다 비유했다.
수청주를 넣었기 때문에 흐린 물은 이내 깨끗해지고,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드디어 청정해진다”고 했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29n1558_p0019b02║此中信者。令
T29n1558_p0019b03║心澄淨。有說。於諦實業果中現前忍許故
T29n1558_p0019b04║名為信。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이 중에서 신(信)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징정(澄淨)하게 하는 것이다.20)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4제(諦)나 3보(寶), 업과 그 과보에 대해 현전에서 인가하고 허락[忍許,즉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신’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20) 신(śraddhā)이란 마치 청수주(淸水珠)를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마음을 맑게 하는 의식작용을 말한다.(『입아비달마론』 권상, 대정장28, p.982,중). 혹은 마음의 맑은 상태로서, 전도됨이 없는 인과는 각기 개별적으로 상속(相屬)됨을 즉각적으로 인가하며, 욕(欲)의 소의가 되어 능히 승해를 낳게 하는 것을 일컬어 신(信)이라고 한다.(『현종론』 권제5, 한글대장경200,p.134) - ↑ 색건타라 조, 현장 한역(T.1554). 《입아비달마론》(入阿毘達磨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28, No. 1554,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28n1554_p0982a28║信謂令心於境澄淨。謂於三寶因果相屬有
T28n1554_p0982a29║性等中。現前忍許故名為信。是能除遣心濁
T28n1554_p0982b01║穢法。如清水珠置於池內。令濁穢水皆即澄
T28n1554_p0982b02║清。如是信珠在心池內。心諸濁穢皆即除遣。
T28n1554_p0982b03║信佛證菩提信法是善說信僧具妙行。亦信
T28n1554_p0982b04║一切外道所迷。緣起法性是信事業。 - ↑ 색건타라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964, T.1554). 《입아비달마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신(信:śraddhā)이란 마음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 징정(澄淨)하게 하는 작용으로, 이를테면 삼보(三寶)라든가 인과상속, 유성(有性) 등을 즉각 인가하는 것이므로 신이라 한다. 이것은 능히 마음의 더러운 때를 제거하는 것으로, 마치 물을 청정하게 하는 구슬을 연못에 놓아두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이 같은 신이라고 하는 구슬이 마음의 연못 안에 있으면 마음의 여러 더러움이 모두 제거되어, ‘부처는 보리(菩提)를 증득하였고, 법(法)은 바로 그 같은 깨달음의 선설(善說)이며, 승(僧)은 그것에 이르는 묘행(妙行)을 갖추었다’고 믿게 되며, 또한 모든 외도가 미혹한 연기법성(緣起法性)에 대해 믿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의 본질과 작용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T31n1606_p0697b19║信者。於有體有德有能忍可清淨希望為體。
T31n1606_p0697b20║樂欲所依為業。謂於實有體起忍可行信。於
T31n1606_p0697b21║實有德起清淨行信。於實有能起希望行信。
T31n1606_p0697b22║謂我有力能得能成。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신(信)심소법입니까?
바탕을 갖춘 것, 덕망을 갖춘 것, 공능을 갖춘 것에 대한 인가(忍可)와 청정에 대한 바람이 그 바탕이다. 기꺼이 구하는 바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 ‘기꺼이 구하는 바에 의지하는 것’이란 실다운 바탕을 갖춘 것에 대한 인가를 일으켜야 믿음이 행해지는 것이다. 실다운 공덕을 갖춘 것에 대한 청정함을 일으켜야 믿음이 행해지게 되고, 실다운 공능을 갖춘 것에 대한 희망을 일으켜야 믿음이 행해지게 되기에, 스스로 능력이 갖춰져야 성취하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X48n0802_p0309c11║善十一者。善謂信.慚.愧.無貪等三根.勤.安.不放逸.行
X48n0802_p0309c12║ 捨.及不害。此十一法。收盡一切善業。世出世業以
X48n0802_p0309c13║ 信為本。故首列之。 - ↑ "勝解(승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2일에 확인:
勝解(승해)
【범】 adhimokṣa 75법(法) 중,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100법 중, 5변행(遍行)의 하나. 대경에 향하여 수승한 해(解)로써 시(是)ㆍ비(非), 사(邪)ㆍ정(正)을 살펴 결정하는 정신 작용. - ↑ 가 나 "欲(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0일에 확인:
欲(욕)
[1] 구사(俱舍)에서는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5별경(別境)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가 좋아하는 대경(對境)에 대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희망하는 정신 작용.
[2] ⇒욕법(欲法) - ↑ "精進(정진)", 운허. 《불교사전》:
精進(정진)
[1] 6도(度)의 하나. 비리야(毘梨耶)라 음역.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용맹하게 나아가는 것.
[2] 세속의 인연을 끊고 재계하고 음식을 절제하면서 불도에 몸을 바치는 것.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23║唯善慧。別即三根。由此無癡必應別有。勤
T31n1585_p0030a24║謂精進。於善惡品修斷事中勇悍為性。對
T31n1585_p0030a25║治懈怠滿善為業。勇表勝進簡諸染法。
T31n1585_p0030a26║悍表精純簡淨無記。即顯精進唯善性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심소’49)는 정진을 말한다. 선품을 닦고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서 용맹스럽고 굳세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게으름을 다스려서 착한 일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용맹스럽다는 것은 정진하는 것을 나타내어 모든 잡염법을 가려낸다. 굳세다는 것은 지극히 순수한 것을 나타내어 청정 무구성을 가려낸다. 곧 정진은 오직 착한 성품에만 포함됨을 나타낸다. - ↑ "懺(참)", 운허. 《불교사전》:
懺(참)
심왕(心王)에 따라 일어나는 정신작용의 하나. 『유식론』에서는 11선심소(善心所)의 하나. 『구사론』에서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스스로 반성한 결과 자신이 범한 죄를 부끄러워하는 마음.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29c13║云何為慚。依自法力崇重賢善為
T31n1585_p0029c14║性。對治無慚止息惡行為業。謂依自法
T31n1585_p0029c15║尊貴增上。崇重賢善羞恥過惡。對治無慚
T31n1585_p0029c16║息諸惡行。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참(慚)심소’12)라고 하는가? 자신과 법의 힘에 의지해서 현인(賢人)13)과 선법(善法)14)을 받들고 존중함을 체성으로 삼고, 무참(無慚)을 다스리고 악행을 멈추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자신과 법을 존귀하게 여기는 증상력에 의지해서, 현인과 선법을 받들고 존중하며 잘못을 부끄럽게 여겨서, 무참을 다스리고 여러 악행을 멈추게 한다.
12) 참(慚, hrī)심소는 ‘제 부끄러움’의 작용을 하는 심소이다. 자신과 법에 의지해서 현선(賢善)을 존경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
13) 범부와 성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현덕(賢德)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14) 모든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선법을 가리킨다. - ↑ "愧(괴)", 운허. 《불교사전》:
愧(괴)
【범】 apatrāpaya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11선심소(善心所)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허물을 부끄럽게 여기는 심리작용.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29c16║云何為愧。依世間力輕拒暴惡
T31n1585_p0029c17║為性。對治無愧止息惡行為業。謂依世
T31n1585_p0029c18║間訶厭增上。輕拒暴惡羞恥過罪。對治無
T31n1585_p0029c19║愧息諸惡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괴(愧)심소’15)라고 하는가? 세간의 힘에 의지해서 포악함과 악법을 가볍게 여기고 거부함을 체성으로 삼고, 무괴(無愧)를 다스리고 악행을 멈추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세간에서 꾸짖고 싫어하는 증상력에 의지해서 포악함과 악법을 가볍게 여기고 거부하고,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며 무괴를 다스리고 여러 악업을 멈추게 한다.
15) 괴(愧, apatrapā)심소는 ‘남부끄러움’, 즉 타인의 비방을 두려워하고 왕법(王法)의 형벌을 두려워해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심리작용이다. - ↑ "無貪(무탐)", 운허. 《불교사전》:
無貪(무탐)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俱舍)에서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11선(善)의 하나. 어떠한 경계에서도 탐착하지 않는 정신작용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04║云何無貪。於有有具無
T31n1585_p0030a05║著為性。對治貪著作善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무탐(無貪)심소’25)인가? 윤회의 삶[有]26)과 그 원인[有具]27)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고, 탐착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는다.
25) 무탐(無貪, alobha)심소는 애착심을 없애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에는 5취온(取)뿐만 아니라 열반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열반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원인이 되어 3계 윤회의 과보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26) 유(有)는 3유(有:三界)의 과보[果], 즉 윤회의 삶을 말한다.
27) 유구(有具)는 3유(有), 즉 윤회의 삶의 원인[因]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03║無貪等者等無瞋癡。此三名根生善勝故。
T31n1585_p0030a04║三不善根近對治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삼십송』의 제11게송에서) ‘무탐(無貪) 등’이라고 한 데서 ‘등(等)’은 무진(無瞋)과 무치(無癡)를 가리킨다. 이 셋을 근(根)이라고 이름한 것은 선을 일으키는 것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세 가지 불선근을 가까이 다스리기 때문이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05║云何無瞋。
T31n1585_p0030a06║於苦苦具無恚為性。對治瞋恚作善為
T31n1585_p0030a07║業。善心起時隨緣何境。皆於有等無著無
T31n1585_p0030a08║恚。觀有等立非要緣彼。如前慚愧觀善
T31n1585_p0030a09║惡立。故此二種俱遍善心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무진(無瞋)심소’28)인가? 고통과 고통의 원인[苦具]에 대해서 성내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고, 성냄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는다. 착한 심왕이 일어날 때에는, 따라서 어떤 대상을 반연해도 모두 윤회의 삶[有] 등29)에 대해서 탐착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다. 윤회의 삶 등에 상대해서[觀]30) 건립한다. 반드시 그것만을 반연하는 것은 아니다.31) 앞에서 참(慚)ㆍ괴(愧) 심소를 선ㆍ악에 상대해서 건립한 것과 같다. 따라서 이 두 가지(무탐ㆍ무진)는 모두 착한 마음에 두루한다.
28) 무진(無瞋, adveṣa)심소는 성냄을 없애는 심리작용이다. 3고(苦:苦苦ㆍ壞苦ㆍ行苦)뿐만 아니라 또한 열반[苦具]에 대해서도 성내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열반을 추구하다가 뜻대로 증득하지 못하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29) 윤회하는 삶의 원인[有具]ㆍ고통[苦]ㆍ고통의 원인[苦俱]을 가리킨다.
30) 여기서 관(觀)은 관대(觀待)로서, 상대하는 것을 말한다.
31) 탐(貪)심소를 윤회의 삶[有]과 그 원인[有俱]에 관대(觀待)하고, 진(瞋)심소를 고통[苦]과 그 원인[苦俱]에 관대하여 둘의 별상(別相)을 건립한다. 그러나 반드시 무탐(無貪)심소가 유(有)와 유구(有俱)를 반연하고, 무진(無瞋)심소가 고(苦)와 고구(苦俱)를 반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 ↑ "無瞋(무진)", 운허. 《불교사전》:
無瞋(무진)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俱舍)에서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선(善)의 하나. 어떠한 경계에 대해서도 성내지 않는 정신작용. - ↑ "無癡(무치)", 운허. 《불교사전》:
無癡(무치)
↔우치(愚癡). 심소(心所)의 이름. 유식(唯識)에서 11선심소(善心所)의 하나. 모든 법의 사리 밝게 아는 것.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09║云何無癡。於諸
T31n1585_p0030a10║理事明解為性。對治愚癡作善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무치(無癡)심소’32)인가? 모든 본체[理]와 현상[事]에 대해서 명료하게 이해함을 체성으로 삼고, 우치함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는다.
32) 무치(無癡, amoha)심소는 모든 사리(事理)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 ↑ "輕安(경안)", 운허. 《불교사전》:
輕安(경안)
심소(心所)의 이름. 착한 마음과 상응하여 일어나서 일을 잘 감당하여 몸이 편안하고 경쾌하여지는 작용. - ↑ "輕安",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輕安
梵語 prasrabdhi,巴利語 passaddhi。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身心輕利安適,對所緣之境優游自適之精神作用。為「惛沉」之對稱。俱舍宗列為大善地法之一,唯識宗列為善心所之一。此精神作用,主要在禪定中升起,使修習能持續進行。
據說一切有部之說,輕安有身輕安、心輕安二種,心堪忍之性與五識相應者,稱為身輕安;與意識相應者,稱為心輕安。說一切有部並認為身輕安僅在有漏散位之中,心輕安則通於有漏與無漏、定位與散位。然依經部之說,身輕安乃輕安之風觸,而輕安之心所與前五識不相應;心輕安則為思心所之差別,僅限於定位中。據成唯識論述記卷六末所載,輕安分為有漏輕安、無漏輕安二種,有漏輕安遠離煩惱之粗重,無漏輕安遠離有漏之粗重,共使身心通暢溫和,隨所緣之境安適以轉,共在定位。〔大毘婆沙論卷四十二、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六、品類足論卷三、俱舍論光記卷四〕p7452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05║安謂輕安。遠離麁重調暢身心堪任為性。
T31n1585_p0030b06║對治惛沈轉依為業。謂此伏除能障定法
T31n1585_p0030b07║令所依止轉安適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안(安)심소’60)는 경안(輕安)을 말한다. 추중(麤重)을 멀리 여의고 몸과 마음을 고르고 화창하게 해서 자재함[堪任]을 체성으로 삼는다. 혼침을 다스려서 신체[所依身]를 전환함을 업으로 한다. 이것이 선정을 장애하는 법을 조복시키고 없애서, 의지처(신체)로 하여금 바뀌어 평안하고 적절하게 하기 때문이다.
60) 안(安, prasrabdhi)심소는 ‘경안(輕安)’, 즉 번뇌를 멀리하고[輕] 몸과 마음을 편안히 조절하는[安]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욕계의 산심위(散心位)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색계ㆍ무색계의 정위(定位)에서만 생기(生起)한다. - ↑ "不放逸(불방일)", 운허. 《불교사전》:
不放逸(불방일)
【범】Apramāda 심소(心所)의 이름.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11선심소(善心所)의 하나. 나쁜 짓을 막고 마음을 한 경계에 집중하여 모든 착한 일을 닦는 정신 작용. - ↑ "不放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不放逸
梵語 apramāda。心所之名。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即防範於惡事,專注於善法之精神作用。可用於對治放逸,成就一切善法,故「說一切有部」將其歸納於十大善地法之一。〔俱舍論卷四、品類足論卷三〕(參閱「放逸」4118)p1294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07║不放逸者精進三根。
T31n1585_p0030b08║於所斷修防修為性。對治放逸成滿一切
T31n1585_p0030b09║世出世間善事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불방일심소’61)는 근(勤)과 세 가지 선근으로 하여금, 단멸하고 닦아야 할 것에 대해서 방지하고 닦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방일을 다스리고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착한 일을 원만히 이루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61) 불방일(不放逸, apramāda)심소는 방일함을 없애는 심리작용, 즉 정진ㆍ무탐ㆍ 무진ㆍ무치의 심소력으로 번뇌를 끊고 선행을 닦음에 있어서 선법을 획득하고 보존하게 하는 능력의 심소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09║謂即四法於斷修事
T31n1585_p0030b10║皆能防修名不放逸。非別有體。無異相故。
T31n1585_p0030b11║於防惡事修善事中。離四功能無別用
T31n1585_p0030b12║故。雖信慚等亦有此能。而方彼四勢用微
T31n1585_p0030b13║劣。非根遍策故非此依。豈不防修是此相
T31n1585_p0030b14║用。防修何異精進三根。彼要待此方有作
T31n1585_p0030b15║用。此應復待餘便有無窮失。勤唯遍策。根
T31n1585_p0030b16║但為依。如何說彼有防修用。汝防修用其相
T31n1585_p0030b17║云何。若普依持即無貪等。若遍策錄不異精
T31n1585_p0030b18║進。止惡進善即總四法。令不散亂應是等
T31n1585_p0030b19║持。令同取境與觸何別。令不忘失即應
T31n1585_p0030b20║是念。如是推尋不放逸用。離無貪等竟不
T31n1585_p0030b21║可得。故不放逸定無別體。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곧 네 가지 법62)이 단멸하고 닦아야 할 것에 대해서 능히 방지하고 닦는 것을 불방일이라고 이름하고, 별도로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체상이 없기 때문이고, 악한 일을 방지하고 착한 일을 닦는 중에서 네 가지 능력에서 떠나서는 별도의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신(信)ㆍ참(慚) 심소 등도 역시 이러한 능력이 있지만, 그 네 가지에 비해서 세력이 미약하고, 선근에 두루 책려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불방일)의 의지처가 아니다.
62) 근(動)심소와 세 가지 선근[三善根]의 심소를 말한다.
【문】 어째서 방지하고 닦는 것이 이것의 체상과 작용이 아닌가?63)
63) 외인의 질문이다.
【문】 방지하고 닦는 것이라고 말하면, 정진 및 세 가지 선근과 무엇이 다른가?64)【답】 그것은 모름지기 이것(불방일)을 기다려서 비로소 작용이 있게 된다고 말한다.65) 이것(불방일)도 다시 다른 것을 기다려야 하고 그러면 문득 끝없이 소급하는 과실이 있게 된다.66) 근(勤)심소는 오직 착한 심왕을 두루 책려하고 근(根)67)은 다만 선법의 의지처이다. 어째서 그것68)이 방지하고 닦는 작용이 있다고 말하는가?69)
64) 논주가 반대로 질문한다.
65) 외인의 답변이다.
66) 논주의 논파이다.
67)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의 3근(根)이다.
68) 정진과 세 가지 선근의 심소를 가리킨다.
69) 외인이 비판하여 묻는다.
【문】 그대가 주장하는 방지하고 닦는 작용의 그 체상은 어떠한 것인가?70) 만약 널리 (모든 선심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무탐심소 등이다. 만약 두루 책려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근(勤)심소와 다르지 않다. 악을 그치고 선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전체적으로 네 가지 법이다. 산란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등지(等持)심소이어야 한다. 다 같이 대상을 취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촉(觸)심소와 무엇이 다른가?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곧 염(念)심소이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불방일 심소의 작용을 분석해보면, 무탐심소 등에서 떠나서는 마침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불방일심소는 반드시 별도의 자체가 없다.
70) 논주의 반대질문이다. - ↑ 가 나 다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a17║又若無癡無別自
T31n1585_p0030a18║性。如不害等應非實物。便違論說十一善
T31n1585_p0030a19║中三世俗有餘皆是實。 - ↑ 가 나 다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또한 만약 무치심소는 별도의 체성이 없다고 말하면, 불해(不害)심소 등과 같이 자체가 있는 것[實物]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면 문득 논서에서 “열한 가지 선의 심소 중에서 셋41)은 세속유(世俗有)이고, 나머지는 모두 참으로 존재하는 것[實]이다”42)라고 말한 것에 위배된다.43)
41) 불방일(不放逸)ㆍ행사(行捨)ㆍ불해(不害) 심소를 가리킨다.
42)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1002上:『대정장』 30, p.602中).
43) 나머지 여덟 가지 중에 무치(無癡)심소가 있고, 논서에서 이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 ↑ "捨(사)", 운허. 《불교사전》:
捨(사)
【범】 upekṣā (1) 3수(受)의 하나. 고(苦)ㆍ낙(樂)ㆍ우(憂)ㆍ희(喜)와 같이 치우친 감각이 아니고, 그 중간인 괴롭지도 않고(不苦), 즐겁지도 않은(不樂) 감각. (2) 선(善)의 심왕(心王)에 수반(隨伴)하여 일어나는 정신 작용의 이름. 구사(俱舍)에서는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선(善)의 하나라 하여, 마음이 침울하지도 않고, 부동(浮動)하지도 않는 중용(中庸)을 얻은 정신 작용을 말함. 사수(捨受)와 구별하기 위하여 행사(行捨)라 함. - ↑ "行捨",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行捨
為心所之名。為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十一善心所之一。略稱捨。指遠離惛沉、掉舉之躁動,住於寂靜,而不浮不沉,保持平等正直之精神作用或狀態。又此捨於五蘊門中,乃行蘊所攝,故稱行捨,以別於受蘊所攝之受捨。依據成唯識論卷六記載,此心所具有平等、正直、無功用等三種作用。然此三作用實為一念中之三用,僅就其顯著而立其先後之別而已。(參閱「十一善」479、「捨」5778)p3211 - ↑ "捨",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捨
梵語 upekṣā,巴利語 upekkhā 或 upekhā。音譯憂畢叉。意即平靜、無關心。(一)全稱行捨。俱舍宗以捨為遍一切善心共起的心所之一(十大善地法),唯識宗則列為善心所之一。即遠離惛沉之沉沒與掉舉之躁動,為不浮不沉,保持平靜、平等之精神作用或狀態。
關於捨之說法,俱舍論卷四、品類足論卷四皆謂,「捨」即平等正直、無警覺之性,而住於寂靜之心;於唯識大乘則認為依於精進、無貪、無瞋、無癡等四法,令心遠離掉舉等障而住於寂靜、無有雜染之心境。大毘婆沙論卷九十五、瑜伽師地論卷二十九以「捨」為七覺支中之捨覺支,為「奢摩他品」所攝。摩訶止觀卷三上,轉用此義而以捨為中道觀之異名。〔北本大般涅槃經卷三十、大毘婆沙論卷四十二、成唯識論卷六〕
(二)三受之一,五受之一。又稱捨受、不苦不樂受(梵 aduḥkhāsukha-vedanā)、不苦不樂覺。即非苦非樂的下意識之印象感覺。伴有捨受之禪定,稱捨俱定(巴 upekkhā-sahagata-samādhi),指色界第四禪定、四無色定及依捨俱欲界善淨心之欲界定。大毘婆沙論卷一一五以三受業配三界九地,廣果繫之善業及無色界繫之善業為順不苦不樂受業。又於八識中,前六識皆與三受相應,第七、第八兩識僅與捨受相應。成實論卷六辯三受品依雜阿含經卷十七之意,謂樂受中有貪使,苦受中有瞋使,不苦不樂受中有無明使。又不苦不樂受,其相寂滅,如無色定,以寂滅之故,煩惱細行,凡夫以為解脫,故以之為無明使。又巴利佛教中以捨為十波羅蜜之一。〔大毘婆沙論卷一四三、俱舍論卷三、成唯識論卷五、清淨道論卷三〕(參閱「三受」764)
(三)捨失之義。為「得」之對稱。即已得而今捨失之。與「不成就」同義。〔大毘婆沙論卷六十三、卷一一七、雜阿毘曇心論卷四、俱舍論卷二十一〕
(四)悉曇字 砃(śa)。為悉曇五十字門之一、四十二字門之一。又作舍、賒、奢、𠾏、赦、柘、設、爍、鑠。捨字門,一般多舉寂靜、寂靜不可得之義。蓋由梵語 śānta(賒多)、śānti(扇底)轉釋而來,意譯寂靜、寂滅;乃取自二字之字頭 śa(捨)。大日經疏卷二謂(大三九‧六五五中):「奢字門,一切諸法本性寂故。」方廣大莊嚴經卷四、大方等大集經卷十、海意菩薩所問經卷十二、文殊師利問經卷上字母品等,皆以唱捨字時,出一切奢摩他毘鉢舍那之聲,此即由梵語 śamatha(止)vipaśyana(觀)轉釋而來。文殊問經字母品第十四載捨為信進念定慧(梵 śraddha-virya-smṛti-samādhi-prajñā)之義。北本大般涅槃經卷八解釋此字為遠離三箭之義。新華嚴經卷七十八載唱奢字時,入般若波羅蜜門。〔瑜伽金剛頂經釋字母品、大品般若經卷六、大智度論卷四十八、大日經疏卷七〕p5778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21║云何行捨。精進
T31n1585_p0030b22║三根令心平等正直無功用住為性。對治
T31n1585_p0030b23║掉舉靜住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행사(行捨)심소’71)인가? 근(勤)ㆍ세 가지 선근이 심왕으로 하여금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功用]이 없이 머물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도거(掉擧)를 다스려서 고요히 머물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71) 행사(行捨, upekṣā)심소는 마음의 ‘평정’을 이루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사(捨)’는 혼침이나 들뜸[掉擧]이 아닌 평정상태를 말한다. ‘행사(行捨)’란 5온(蘊) 중에 수온(受蘊)이 아닌 행온(行蘊)에 포함되는 사(捨)라는 뜻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23║謂即四法令心遠離掉舉
T31n1585_p0030b24║等障靜住名捨。平等正直無功用住。初中
T31n1585_p0030b25║後位辯捨差別。由不放逸先除雜染。捨復
T31n1585_p0030b26║令心寂靜而住。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네 가지 법이 심왕에서 도거 등의 장애를 멀리 여의어서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을 행사(行捨)라고 이름한다.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이 없이 머물게 한다는 것은, 처음ㆍ중간ㆍ나중의 지위에서 행사심소의 차이를 판별한 것이다. 불방일이 먼저 잡염을 제거함에 의해서, 행사 심소가 다시 심왕을 적정히 머물게 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31n1613_p0852b15║云何捨。謂依如是無貪。無瞋。乃至精進。獲得
T31n1613_p0852b16║心平等性。心正直性。心無功用性。又復由此。
T31n1613_p0852b17║離諸雜染法。安住清淨法。謂依無貪。無瞋無
T31n1613_p0852b18║癡。精進性故。或時遠離昏沈掉舉諸過失故。
T31n1613_p0852b19║初得心平等。或時任運無勉勵故。次得心正
T31n1613_p0852b20║直。或時遠離諸雜染故。最後獲得心無功用。
T31n1613_p0852b21║業如不放逸說。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무엇을 사(捨)라고 하는가?
이와 같은 탐욕 없음, 성내지 않음에서 정진까지의 법에 의지하여 마음의 평등성ㆍ마음의 정직성ㆍ마음의 애씀이 없음을 얻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로 말미암아 모든 조잡하게 오염된 법을 떠나 청정한 법에 안주함을 말한다. 탐욕 없음ㆍ성내지 않음ㆍ어리석지 않음ㆍ정진하는 성품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혼침(昏沈)과 도거(掉擧)의 모든 잘못을 떠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마음의 평등성을 얻는다. 어떤 때는 마음대로 움직여서 억지로 애씀이 없기 때문에 다음으로 마음의 정직성을 얻는다. 어떤 때는 모든 조잡하게 오염된 것을 떠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마음의 애씀이 없음을 얻는다. 행동양식은 불방일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23║謂即四法令心遠離掉舉
T31n1585_p0030b24║等障靜住名捨。平等正直無功用住。初中
T31n1585_p0030b25║後位辯捨差別。由不放逸先除雜染。捨復
T31n1585_p0030b26║令心寂靜而住。此無別體如不放逸。離彼
T31n1585_p0030b27║四法無相用故。能令寂靜即四法故。所
T31n1585_p0030b28║令寂靜即心等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네 가지 법이 심왕에서 도거 등의 장애를 멀리 여의어서 고요히 머물게 하는 것을 행사(行捨)라고 이름한다. 평등하고 적정하며 작용이 없이 머물게 한다는 것은, 처음ㆍ중간ㆍ나중의 지위에서 행사심소의 차이를 판별한 것이다. 불방일이 먼저 잡염을 제거함에 의해서, 행사 심소가 다시 심왕을 적정히 머물게 한다.
이것은 별도의 자체가 없다. 불방일처럼 그 네 가지 법72)에서 떠나서 별도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능히 적정하게 하는 것은 네 가지 법이기 때문이다. 적정하게 된 것은 심왕 등이기 때문이다.
72) 근(勤)심소와 세 가지 선근의 심소를 가리킨다. - ↑ "不害(불해)", 운허. 《불교사전》:
不害(불해)
【범】 ahiṃsā 심소(心所)의 이름. 대선지법(大善地法)의 하나. 11선심소(善心所)의 하나. 남에게 이롭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며, 또 손해 시키거나 번거롭게 하지 않는 정신 작용. - ↑ "不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不害
梵語 ahiṃsā。(一)指不殺、傷一切生物。乃印度宗教、倫理道德之基本思想。此一思想,始自古奧義書(羌多貴奧義書 Ⅲ,17 等)之時代,而為印度各教所共有之特色。佛教在原始佛教之根本教義八聖道之第四「正業」即作說明,五戒中之第一戒即是不殺生戒。八齋戒,沙彌、沙彌尼戒之十戒,比丘、比丘尼之波羅提木叉(梵 prātimokṣa,巴 pāṭimokkha)皆有嚴格之規定。阿育王之法敕中亦曾揭舉此義,在大乘佛教經典中,如梵網經、大智度論等所載者亦不勝枚舉。
我國及日本之佛教受其影響至深,諸如放生會等儀式即為其代表。倡言萬物皆有靈魂之耆那教。曾極端堅守不殺生戒,大誓戒中第一條即戒殺生。印度教亦有輪迴轉生、靈魂不滅之教理,故提倡「萬物生命皆為一體」之觀念,並揭櫫不傷害一切生物之理想。〔雜阿含經卷二十八〕
(二)心所名。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為「害」之對稱。即不損惱他之精神作用。說一切有部主張不害有別體,屬十大善地法之一。大乘唯識家則謂不害乃於無瞋之作用上所假立者,不立別體,為十一種善心所之一。成唯識論卷六載無瞋與不害二者之差別,謂無瞋與樂,屬慈性;不害拔苦,屬悲性。〔入阿毘達磨論卷上、俱舍論卷二十九、品類足論卷三、大毘婆沙論卷四十二、順正理論卷十一〕p1304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28║云何不害。於諸有情不
T31n1585_p0030b29║為損惱無瞋為性。能對治害悲愍為業。
T31n1585_p0030c01║謂即無瞋於有情所不為損惱假名不害。
T31n1585_p0030c02║無瞋翻對斷物命瞋。不害正違損惱物害。
T31n1585_p0030c03║無瞋與樂不害拔苦。是謂此二麁相差別。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불해(不害)심소’73)인가?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심소를 체성으로 삼는다. 해롭게 하는 것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곧 무진(無瞋)심소가 유정에 대해서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을, 가정적으로 불해(不害)심소라고 이름한다.
73) 불해(不害, ahiṃsā)심소는 타자(他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며, 이것은 무진(無瞋)심소에 의해 생기한다.
무진심소는 생물의 목숨을 끊는 진(瞋)심소에 정반대이고, 불해심소는 생물을 괴롭히고 손해 입히는 해(害)심소에 정반대이다.74) 무진심소는 약을 주는 것이고, 불해심소는 고통을 없애준다. 이것을 이 두 가지의 두드러진 양상의 차이라고 한다.
74) 무진(無瞋)ㆍ불해(不害) 심소를 별도로 건립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0b28║云何不害。於諸有情不
T31n1585_p0030b29║為損惱無瞋為性。能對治害悲愍為業。
T31n1585_p0030c01║謂即無瞋於有情所不為損惱假名不害。
T31n1585_p0030c02║無瞋翻對斷物命瞋。不害正違損惱物害。
T31n1585_p0030c03║無瞋與樂不害拔苦。是謂此二麁相差別。
T31n1585_p0030c04║理實無瞋實有自體。不害依彼一分假立。
T31n1585_p0030c05║為顯慈悲二相別故。利樂有情彼二勝故。
T31n1585_p0030c06║有說不害非即無瞋別有自體。謂賢善性。
T31n1585_p0030c07║此相云何。謂不損惱。無瞋亦爾。寧別有性。
T31n1585_p0030c08║謂於有情不為損惱慈悲賢善是無瞋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불해(不害)심소’73)인가?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심소를 체성으로 삼는다. 해롭게 하는 것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곧 무진(無瞋)심소가 유정에 대해서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을, 가정적으로 불해(不害)심소라고 이름한다.
73) 불해(不害, ahiṃsā)심소는 타자(他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며, 이것은 무진(無瞋)심소에 의해 생기한다.
무진심소는 생물의 목숨을 끊는 진(瞋)심소에 정반대이고, 불해심소는 생물을 괴롭히고 손해 입히는 해(害)심소에 정반대이다.74) 무진심소는 약을 주는 것이고, 불해심소는 고통을 없애준다. 이것을 이 두 가지의 두드러진 양상의 차이라고 한다.
74) 무진(無瞋)ㆍ불해(不害) 심소를 별도로 건립해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
참다운 이치로써 말하면, 무진심소는 참으로 자체가 있고, 불해심소는 그것의 일부에 의지해서 가립한다. 자(慈)와 비(悲)의 두 양상의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유정을 이롭고 즐겁게 하는 데, 그 두 가지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75) 불해심소가 곧 무진심소는 아니다. 별도로 자체가 있으니, 어질고 착함의 체성이라고 한다.
75)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논주 문】 이것의 체상은 어떠한가?
【외인 답】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무진심소도 역시 그러해야 한다.76) 어째서 별도로 자성이 있다고 말하는가? 유정에게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는 자비와 어질고 착한 것이 무진심소이기 때문이다.
76) 논주의 논파이다. - ↑ "貪(탐)", 운허. 《불교사전》:
貪(탐)
6번뇌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대하여 마음으로 애착케 하는 정신 작용. 탐욕. - ↑ "貪",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貪
梵語 lobha, rāga ,巴利語同;或梵語 abhidhyā,巴利語 abhijjhā。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欲求五欲、名聲、財物等而無厭足之精神作用。即於己所好之物,生起染污之愛著心,引生五取蘊而產生諸苦。又作貪欲、貪愛、貪著。略稱欲、愛。俱舍論卷二十廣引諸經,謂緣五欲之境而起貪欲,纏縛其心,故稱欲軛。書中又舉出欲貪、欲欲、欲親、欲愛、欲樂、欲悶、欲耽、欲嗜、欲喜、欲藏、欲隨、欲著等十二項冠有「欲」字之異稱。據瑜伽師地論卷五十五載,貪係由取蘊、諸見、未得境界、已得境界、已受用之過去境界、惡行、男女、親友、資具、後有及無有等十事而生,經由以上十事所生起之貪,依序稱為事貪、見貪、貪貪、慳貪、蓋貪、惡行貪、子息貪、親友貪、資具貪、有無有貪。俱舍論卷二十二將貪分為四種;顯色貪、形色貪、妙觸貪、供奉貪,可修各種不淨觀以對治之。
貪通於三界,其中,欲界之貪,稱為欲貪,其性不善,為十惡、五蓋、三不善根之一;色界、無色界之貪,稱為有貪,其性有覆無記(能障覆聖道之染污性,然因其過甚輕,作用極弱,故不會招感果報),與欲貪共為六根本煩惱、十隨眠、九結之一,又其性非猛利,故為五鈍使之一。說一切有部以貪為「不定地法」之一,又非緣無漏法而生者,僅與喜、樂二種感受相應,故與隨煩惱及八纏中之無慚、慳、掉舉,六垢中之誑、憍二者為等流。然唯識家則以貪為「煩惱法」之一,於喜、樂二種感受外,若於逆境中亦會與憂、苦兩種感受相應,並與「見」皆同緣無漏法而生。又依俱舍論卷二十二之說,經部以中阿含經卷七分別聖諦品為根據,謂四諦中僅有集諦以「愛」為體,愛乃貪之同體異名。〔俱舍論卷十六、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品類足論卷三、顯揚聖教論卷一〕(參閱「愛」6863)p6034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b19║云何為貪。於有有具染著為性。能障
T31n1585_p0031b20║無貪生苦為業。謂由愛力取蘊生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탐(貪)심소’125)라고 하는가? 윤회하는 삶[有]과 그 원인[有具]에 대해서 탐착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탐(無貪)심소를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애착의 세력에 의해 5취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125) 탐(貪, rāga)심소는 ‘탐욕’, 즉 애착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 특히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인 5온 나아가 열반에 대해서까지 애착심을 일으킴으로써 고통을 자초한다. - ↑ "瞋(진)", 운허. 《불교사전》:
瞋(진)
【범】 dveṣa 근본 번뇌의 하나. 진에(瞋恚). 성냄. 자기의 마음에 맞지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고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을 편안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 작용. 또 5개(蓋)ㆍ10악(惡)의 하나. - ↑ "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瞋
梵語 pratigha 或 dveṣa,巴利語 paṭigha 或 dosa 。又作瞋恚、瞋怒、恚、怒。音譯作醍鞞沙。心所(心的作用)之名。為三毒之一。係指對有情(生存之物)怨恨之精神作用。於俱舍宗屬不定地法之一,於唯識宗屬煩惱法之一。據俱舍論卷十六、成唯識論卷六所載,對違背己情之有情生起憎恚,使身心熱惱,不得平安之精神作用,名為瞋。又忿、恨、惱、嫉、害等隨煩惱,皆以瞋之部分為體,是為六根本煩惱(或十隨眠)之一。以其不屬推察尋求之性質(見),作用遲鈍,故為五鈍使之一。與貪、癡兩者,共稱為三毒(三不善根)。亦屬五蓋、十惡之一。
瞋唯屬欲界所繫之煩惱,於色界、無色界則無。貪乃從喜愛之對境所起,反之,瞋則從違逆(不順心)之對境所起。瞋,為修學佛道上最大之障害,經論中常誡之,如大智度論卷十四(大二五‧一六七中):「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中,第一難治。」「無瞋」即對境不起害心,為對治瞋之精神作用,屬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善心所之一,與無貪、無癡共稱三善根,又為四無量心中之慈無量心之體。〔雜阿含經卷二十七、卷二十八、悲華經卷六、大毘婆沙論卷二十七、卷三十四、卷四十四、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一、順正理論卷四十、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五、俱舍論光記卷十六、成唯識論述記卷六末〕p7678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b20║云何
T31n1585_p0031b21║為瞋於苦苦具憎恚為性。能障無瞋不安
T31n1585_p0031b22║隱性惡行所依為業。謂瞋必令身心熱惱
T31n1585_p0031b23║起諸惡業。不善性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진(瞋)심소’126)라고 하는가? 고통[苦]과 그 원인[苦俱]에 대해서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진(無瞋)심소를 장애하여 불안과 악행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진(瞋)심소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매우 괴롭혀서 모든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불선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126) 진(瞋, dveṣa)심소는 ‘성냄’, 즉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쾌감의 심리이다. 고통과 그 원인에 대해 증오심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몸과 마음을 열뇌하게 해서 갖가지 악업을 짓게 만든다. - ↑ 용수 조, 구마라집 한역(T.1509).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4권. 대정신수대장경. T25, No. 1509, CBETA:
T25n1509_p0167b13║ 復次,當觀瞋恚,其咎最深。三毒之
T25n1509_p0167b14║ 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
T25n1509_p0167b15║ 中,第一難治。瞋恚之人,不知善,不知非善;
T25n1509_p0167b16║ 不觀罪福,不知利害;不自憶念,當墮惡
T25n1509_p0167b17║ 道!善言忘失,不惜名稱;不知他惱,亦不
T25n1509_p0167b18║ 自計身心疲惱;瞋覆慧眼,專行惱他。如一
T25n1509_p0167b19║ 五通仙人,以瞋恚故,雖修淨行,殺害一國,
T25n1509_p0167b20║ 如旃陀羅。 復次,瞋恚之人,譬如虎狼,難可
T25n1509_p0167b21║ 共止;又如惡瘡,易發、易壞。瞋恚之人,譬如
T25n1509_p0167b22║ 毒蛇,人不憙見。積瞋之人,惡心漸大,至不
T25n1509_p0167b23║ 可至,殺父、殺君,惡意向佛。 如拘睒彌國比
T25n1509_p0167b24║ 丘,以小因緣,瞋心轉大,分為二部。若欲斷
T25n1509_p0167b25║ 當,終竟三月,猶不可了。佛來在眾,舉相
T25n1509_p0167b26║ 輪手,遮而告言:
T25n1509_p0167b27║ 「汝諸比丘, 勿起鬪諍! 惡心相續,
T25n1509_p0167b28║ 苦報甚重!
T25n1509_p0167b29║ 汝求涅槃, 棄捨世利, 在善法中,
T25n1509_p0167c01║ 云何瞋諍? 世人忿諍, 是猶可恕,
T25n1509_p0167c02║ 出家之人, 何可諍鬪? 出家心中,
T25n1509_p0167c03║ 懷毒自害; 如冷雲中, 火出燒身!」
T25n1509_p0167c04║ 諸比丘白佛言:「佛為法王,願小默然!是輩
T25n1509_p0167c05║ 侵我,不可不答!」佛念是人不可度也,於
T25n1509_p0167c06║ 眾僧中凌虛而去,入林樹間寂然三昧。 瞋
T25n1509_p0167c07║ 罪如是,乃至不受佛語。以是之故,應當除
T25n1509_p0167c08║ 瞋,修行忍辱。 復次,能修忍辱,慈悲易得;
T25n1509_p0167c09║ 得慈悲者,則至佛道。 - ↑ 용수 지음,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K.549, T.1558). 《대지도론》 제14권:
또한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
‘성냄은 그 허물이 가장 깊어서 삼독 가운데서 이보다 깊은 것이 없다. 98사(使)가운데서 이것이 가장 견고하고, 모든 마음의 법 가운데 가장 고치기 어렵다. 성내는 사람은 착한 것도 모르고, 착하지 않은 것도 모르며, 죄와 복도 관찰하지 못하고, 이익과 손해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억념하지도 못하다가 스스로 악도에 떨어진다. 착한 말을 망실하고 명예를 아끼지 않으며, 남의 괴로움을 모르고 자기의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지치는 줄도 모른 채 성냄에 지혜의 눈을 가려 오로지 남을 괴롭히는 짓만을 한다.’
어떤 5통선인(通仙人)이 화를 냈기 때문에 비록 청정한 행을 닦았으나 한 나라 사람을 다 죽이기를 마치 전다라와 같이 했다. 람은 마치 삵과 같아서 함께 머물기 어려우며, 마치 악성 종기와도 같아서 쉽게 화를 내고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는 사람은 마치 독사와도 같아서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며, 화를 쌓은 사람은 악심이 점점 커져서 이르지 못할 데에 이르러 아비도 죽이고 임금도 죽이며 악의를 품은 채 부처님께 향한다.
예컨대 구섬미국(拘睒彌國)23)의 비구들은 사소한 일로 성내는 마음이 점점 커져서 두 패로 나뉘게 되었다.
만일 판정을 하고자 한다면 석 달이 걸려도 풀리지 않았을 것이나, 부처님께서 오셔서 상륜(相輪)의 손을 들어 막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싸우지 말라.
거친 마음이 상속되면
괴로움의 과보도 무거워진다.
그대들은 열반을 구해
세간의 이익을 버리고
착한 법 가운데 들어왔거늘
어찌 성내고 싸우는가?
세상 사람들의 분쟁(忿爭)은
용서할 수야 있겠지만
출가한 사람이야
어찌 싸울 수 있으랴.
출가한 이가 마음에 독기를 품어
스스로 해치는 것은
마치 찬 구름에서 불이 나와
몸을 태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법왕이시니, 잠시 잠자코 계십시오. 이 무리들이 나를 침해하니 어찌 대꾸하지 않으리이까.”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은 제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는 승중 가운데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숲으로 들어가셔서 조용히 삼매에 드셨다.
성내는 죄는 이와 같아서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듣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반드시 성냄을 제거하고 인욕을 닦아야 한다.
또한 능히 인욕을 닦는다면 자비를 얻기 쉽고, 자비를 얻으면 곧 불도에 이르게 된다.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T31n1602_p0482a06║慢者。謂以他方己計我為勝我等我劣令心
T31n1602_p0482a07║恃舉為體。或是俱生或分別起能障無慢為
T31n1602_p0482a08║業。如前乃至增長慢為業。如經說三種慢類
T31n1602_p0482a09║我勝慢類我等慢類我劣慢類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만(慢) 심소는 남과 비교하여 자기가 뛰어나다거나 자기가 동등하다거나 자기가 열등하다고 여겨서 마음으로 하여금 믿거나 뽐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혹은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거만하지 않음을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거만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세 가지의 거만의 종류가 있다. 내가 뛰어나다는 거만의 종류, 내가 동등하다는 거만의 종류, 내가 열등하다는 거만의 종류이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b26║云何為慢。恃己於他
T31n1585_p0031b27║高舉為性。能障不慢生苦為業。謂若有慢
T31n1585_p0031b28║於德有德心不謙下。由此生死輪轉無窮
T31n1585_p0031b29║受諸苦故。此慢差別有七九種。謂於三品
T31n1585_p0031c01║我德處生。一切皆通見修所斷。聖位我慢既
T31n1585_p0031c02║得現行。慢類由斯起亦無失。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만(慢)심소’128)라고 하는가? 자기를 믿어 남에 대해서 높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불만(不慢)을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킴을 업으로 삼는다. 만심소가 있는 사람은 덕ㆍ덕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마음이 겸손하지 않다. 그리하여 생사에 윤회하는 일이 끝이 없고 모든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만(慢)을 구분하면 일곱 가지129) 또는 아홉 가지130)가 있다. 세 가지 품류와 자아ㆍ덕의 다섯 곳에서 생겨난다.131) 일체가 모두 견도ㆍ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에 통한다. 성스러운 지위에서도 아만이 현행할 수 있다. 만(慢)의 종류도 이에 근거해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역시 과실이 없다.
128) 만(慢, māna)심소는 ‘거만’, 즉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얕보며 나아가 덕 높은 성자에게도 자신을 낮추려 들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129) 일곱 가지 거만[七慢]은,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열만(卑劣慢)ㆍ사만(邪慢)이다. 만(慢)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고 잘난 척하는 것이다. 과만은 자신과 동등한 자격의 사람에 대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만과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아만은 5취온을 나ㆍ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교만하며, 여기서 자기 능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는 것이다. 증상만은 자기를 가치 이상으로 보는 것이다. 비열만은 겸손하면서도 자만심을 갖는 것이다. 사만은 덕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을 덕 높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삼보를 경시하는 것이다.
130) 아홉 가지 거만[九慢]은, ①아만(我慢), ②아등(我等), ③아열(我劣), ④유승아(有勝我), ⑤유등아(有等我), ⑥유열아(有劣我), ⑦무승아(無勝我), ⑧무등아(無等我), ⑨무열아(無劣我)이다. 이 9만의 자체[體]에서 7만의 만(慢)ㆍ과만(過慢)ㆍ비만(卑慢)을 낸다. 즉 ③⑤⑦이 만(慢)을, ①⑥⑧이 과만을, ②④⑨가 비만을 낸다.
131) 하품(下品)과 중품(中品)의 일분(一分)에서 만(慢)이, 중품과 상품의 일분에서 과만(過慢)이, 상품의 일분에서 만과만(慢過慢)이, 상품의 일분에서 비만(卑慢)이, 아처(我處)에서 아만(我慢)이, 덕처(德處)에서 증상만(增上慢)과 사만(邪慢)이 생겨난다. - ↑ 가 나 다 라 마 바 "慢",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慢
梵語 māna,巴利語同。心所(心之作用)之名。俱舍宗以之為四十六心所中的八不定地法之一,唯識宗則以之為五十一心所中的六根本煩惱之一。即比較自己與他人之高低、勝劣、好惡等,而生起輕蔑他人之自恃之心,稱為慢;亦即輕蔑、自負之意。
慢有種種分類,大毘婆沙論卷四十三、俱舍論卷十九列舉七慢:(1)慢,對劣於自己之人,認為自己較殊勝;而對與自己同等之人,謂與自己同等而令心起高慢。(2)過慢(梵 ati-māna),對與自己同等之人,硬說自己勝過對方;對勝過自己之人,亦偏說對方與自己同等。(3)慢過慢(梵 mānāti-māna),對勝過自己之人,起相反之看法,認為自己勝過對方。(4)我慢(梵 ātma-māna),乃七慢之根本慢。於五蘊假和合之身,執著我、我所,恃我而起慢。內執有我,則一切人皆不如我;外執有我所,則凡我所有的皆比他人所有的高上。(5)增上慢(梵 adhi-māna),於尚未證得之果位或殊勝之德,自認為已經證得。(6)卑慢(梵 ūna-māna),對於極優越之人,卻認為自己僅稍劣於其人;或雖已完全承認他人之高勝,而己實卑劣,然絕不肯虛心向其人學習。(7)邪慢(梵 mithyā-māna),無德而自認為有德。
八慢,即指慢、大慢、慢慢、我慢、增上慢、不如慢、邪慢、傲慢等。
九慢,又作九慢類。即:(1)我勝慢類,即對與自己同等之人,認為自己勝過對方之過慢心。(2)我等慢類,乃對與自己同等之人生起「我與彼同等」之慢心。(3)我劣慢類,對勝過自己之人,生起「我為劣」之卑慢心。(4)有勝我慢類,對勝過自己之人,生起「彼勝我」之卑慢心。(5)有等我慢類,對與自己相等之人,生起「彼與我同等」之慢心。(6)有劣我慢類,係對與自己相等之人,生起「彼劣於我」之過慢心。(7)無勝我慢類,對與自己同等之人,認為其人未必勝過我之慢心。(8)無等我慢類,對與自己同等之人,認為其人比我差劣之過慢心。(9)無劣我慢類,對多分勝於我者,生起我比其人為少分劣之卑慢心。此係俱舍論卷十九根據發智論卷二十所舉出者。
上記之九慢攝於前述七慢中之慢、過慢、卑慢三種。即我等慢類、有等我慢類、無勝我慢類等三項攝屬於慢,我勝慢類、有劣我慢類、無等我慢類等三項攝屬於過慢,我劣慢類、有勝我慢類、無劣我慢類等三項則攝屬於卑慢。於品類足論卷一載有關於九慢之闡釋,書中舉出「我勝慢」之例子,謂我勝慢係由慢、過慢、慢過慢三者而出,此係依觀「境」之劣、等、勝而分別之:(1)若觀「劣境」而謂己為勝,此為慢。(2)若觀「等境」而謂己勝,此為過慢。(3)若觀「勝境」而謂己勝,此為慢過慢。其餘之八慢亦可準此而別。
法藏之梵網經菩薩戒本疏卷五列舉聰明、世智、高貴、耆年、大姓、高門、解、福、富、寶等十慢;法華經論卷下更以法華七喻配七種增上慢。此外,憍慢之妄惑,稱為慢惑,為十大惑之一;自慢而心舉,稱為慢舉。〔大毘婆沙論卷四十九、卷五十、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四、俱舍論光記卷四、卷十九、摩訶止觀卷五上、成唯識論述記卷六末〕p7299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08║云何為慢?所謂七慢:一、慢,二、過慢,三、慢過
T31n1612_p0849a09║慢,四、我慢,五、增上慢,六、卑慢,七、邪慢。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만(慢)인가. 이른바 일곱 가지 만이 있다. 첫째는 만(慢)이고, 둘째는 과만(過慢)이고, 셋째는 만과만(慢過慢)이고, 넷째는 아만(我慢)이고, 다섯째는 증상만(增上慢)이고, 여섯째는 비만(卑慢)이고, 일곱째는 사만(邪慢)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09║云何
T31n1612_p0849a10║慢?謂於劣計己勝、或於等計己等,心高舉為
T31n1612_p0849a11║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만인가. 열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수승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1║云何過慢?謂於等計己勝、或於勝計己等,
T31n1612_p0849a12║心高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과만인가. 동등한 이에 대해 자기가 수승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와 동등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2║云何慢過慢?謂於勝計己勝,心
T31n1612_p0849a13║高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만과만인가.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가 보다 더 수승하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3║云何我慢?謂於五取蘊隨觀為我
T31n1612_p0849a14║或為我所,心高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아만인가. 오취온에 대해 따라서 관찰하여 나라고 여기거나, 혹은 내 것이라고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4║云何增上慢?謂於未
T31n1612_p0849a15║得增上殊勝所證法中謂我已得,心高舉為
T31n1612_p0849a16║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증상만인가. 증득해야 할 훌륭하고 수승한 법을 아직 얻지 못했으면서도 내가 이미 얻었다고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6║云何卑慢?謂於多分殊勝計己少分,下劣
T31n1612_p0849a17║心高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비만인가. 월등히 수승한 이에 대해 자기가 그보다 조금 못하다고 계교하여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7║心高舉為性。云何邪慢?謂實無德計己有
T31n1612_p0849a18║德,心高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사만인가. 실지 공덕이 없으면서 자기가 공덕이 있는 것으로 여겨 마음을 높이 추켜세우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다 "九慢",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2일에 확인:
九慢
Basic Meaning: nine forms of pride
Senses:
They are:
that I surpass others 我勝慢類
I am equal to others 我等慢類
I am not so bad as others 我劣慢類
that others surpass me 有勝我慢類
others are as bad as me 有等我慢類
others are inferior to me 有劣我慢類
that none surpass me 無勝我慢類
none are equal to me 無等我慢類
none are worse than me 無劣我慢類
〔倶舍論 T 1559.29.255a12〕 See also 慢.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a19║云何無明?謂於業果及諦寶中無智為性。此
T31n1612_p0849a20║復二種,所謂俱生、分別所起。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업과 과보와 진리와 보배에 대해 지혜가 없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에 다시 두 종류가 있으니, 구생(俱生)으로 일어난 것과 분별(分別)로 일어난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31n1613_p0852a10║云何信。謂於業果諸諦寶等。深正符順。心淨
T31n1613_p0852a11║為性。
T31n1613_p0852a12║於業者。謂福。非福。不動業。於果者。謂須陀
T31n1613_p0852a13║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果。於諦者。謂苦
T31n1613_p0852a14║集滅道諦。於寶者。謂佛法僧寶。於如是業果
T31n1613_p0852a15║等。極相符順。亦名清淨。及希求義。與欲所
T31n1613_p0852a16║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무엇을 믿음[信]이라고 하는가?
업ㆍ과보ㆍ모든 진리[諦]ㆍ보배 등에 대하여 깊고 바르게 따르는 마음의 청정함을 성질로 삼는다. 업에 대하여 복(福)ㆍ복이 아님(非福)ㆍ부동업(不動業)을 말한다. 과보에 대하여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의 과보를 말한다. 진리에 대하여 괴로움의 진리[苦諦]ㆍ집착의 진리[集諦]ㆍ집착을 없애는 진리[滅諦]ㆍ깨달음에 이르는 진리[道諦]이다. 보배에 대하여 불보(佛寶)ㆍ법보(法寶)ㆍ승보(僧寶)의 삼보이다. 이와 같은 업ㆍ과보 등에 대하여 지극히 맞게 따르는 것을 청정(淸淨)이라고 한다. 간절히 바라는 뜻에 이르러서는 바람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b23║云何為癡。於諸理事
T31n1585_p0031b24║迷闇為性。能障無癡一切雜染所依為業。
T31n1585_p0031b25║謂由無明起疑邪見貪等煩惱隨煩惱業。
T31n1585_p0031b26║能招後生雜染法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치(癡)심소’127)라고 하는가? 모든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미혹하고 어두운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치(無癡)심소를 장애하고 모든 잡염법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무명에 의해서 의(疑)ㆍ삿된 정(定)ㆍ탐(貪) 등의 번뇌와 수번뇌 업을 일으켜서 능히 다음 생의 잡염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127) 치(癡, moha, avidhya)심소는 ‘어리석음’, 즉 특히 현상계[事]와 그 본질[理]의 진리(연기ㆍ무아ㆍ중도 등)를 모르는 무명의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의(疑)ㆍ사견ㆍ탐(貪) 등 여러 번뇌들이 일어난다. - ↑ "癡(치)", 운허. 《불교사전》:
癡(치)
【범】 Moha 모하(慕何). 어리석음. 3독(毒)의 하나. 6근본번뇌(根本煩惱)의 하나. 현상과 이치에 대하여 마음이 어두운 것. 불교에서는 인생의 고통 받는 근원과 모든 번뇌의 근본을 치라 하며, 사물의 진상을 밝히 알지 못하므로 미(迷)가 있다고 함. - ↑ "無明(무명)", 운허. 《불교사전》:
無明(무명)
【범】 avidyā (1) 불교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당체 또는 진여(眞如)에 대하여 그와 모순되는 비진여를 말한다. (2) 심소(心所)의 이름. 치번뇌(癡煩惱)를 말한다. 구사종(俱舍宗)에서는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의 하나, 유식종(唯識宗)에서는 근본번뇌의 하나. 모든 사(事, 현상)와 이(理, 본체)에 어두워서 명료치 못한 것. (3) 12인연의 하나. 구사종에서는 지난 세상의 번뇌를 말하고, 유식종에서는 제6식과 서로 응하는 우치(愚癡)와 무치(無癡)의 치번뇌를 말한다. (4) 『기신론』에서는 불각(不覺)과 같다고 한다. 진여에 대하여 무자각한 것. 진여가 한결같이 평등한 것을 알지 못하고 현상의 차별적인 여러 모양에 집착하여 현실세계의 온갖 번뇌와 망상의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 무명이 진여에 훈부(熏付)하여 아뢰야식을 내고, 아뢰야식에 의하여 모든 만법이 생긴다. (5) 천태종에서는 3혹(惑)의 하나. 모든 생사의 근본인 미세한 번뇌로서 일법계의 뜻을 알지 못하고 법성의 장애가 되는 혹(惑). 이 무명의 혹은 보살만이 끊는 것이므로 별혹(別惑)이라 하고, 또는 계외(界外)의 생사를 받는 번뇌이므로 계외혹(界外惑)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화법(化法)의 4교 중 별교(別敎)ㆍ원교(圓敎)의 보살만이 끊을 수 있다. 무명을 나누어 42품으로 하고 별교에서는 단무명위(斷無明位)를 초지 이상으로 하므로, 지(地) 이후 묘각까지에 앞 12품을 끊고, 원교에서는 단무명위를 초주(初住) 이상으로 하므로, 10주(住) 이후 묘각까지 42품 전부를 끊는다. - ↑ "癡",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癡
梵語 moha, mūḍha。又作痴。愚癡之意。為心所(心之作用)之名。謂愚昧無知,不明事理之精神作用。俱舍宗視為大煩惱地法之一,唯識宗則視為煩惱位心所之一。與「無明」、「無智」同。為三不善根(三種根本惡德,亦即三毒、三火)之一,六根本煩惱之一,十隨眠之一;為一切煩惱之所依,三界繫中,於四諦及修道中斷之。據瑜伽師地論卷八十六載,癡有無智、無見、非現觀、惛昧、愚癡、無明、黑闇等異名。又同論卷五十五謂隨煩惱中,覆、誑、諂、惛沉、妄念、散亂、不正知等,皆以癡之一分為體;成唯識論卷六謂諸煩惱之生起必由癡,故癡必定與其餘九根本煩惱相應。
反之,若心處於非癡之狀態,或與癡相反之精神作用,稱為無癡,乃三善根之一。俱舍宗不以其為獨立之心所,唯識宗則以為善心所之一。成唯識論卷九謂菩薩之十地以及佛地,各有其應斷之二種愚癡,合為二十二種愚癡,又稱二十二愚。〔長阿含卷一大本經、北本大般涅槃經卷五、順正理論卷十一、俱舍論卷二十一、瑜伽師地論卷五十八、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六、俱舍論光記卷四〕(參閱「無明」6415)p8340 - ↑ "無明",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無明
梵語 avidyā,巴利語 avijjā。為煩惱之別稱。不如實知見之意;即闇昧事物,不通達真理與不能明白理解事相或道理之精神狀態。亦即不達、不解、不了,而以愚癡為其自相。泛指無智、愚昧,特指不解佛教道理之世俗認識。為十二因緣之一。又作無明支。俱舍宗、唯識宗立無明為心所(心之作用)之一,即稱作癡(梵 moha)。
就十二緣起中無明支解之,無明為一切煩惱之根本。阿含經謂,無明乃對於佛教真理(四諦)之錯誤認知,即無智;且其與渴愛具有表裏之關係。說一切有部以「三世兩重」之因果來解說十二緣起,謂其中之無明係指過去煩惱位之五蘊,由於該位諸煩惱中,以無明之作用最強,故總稱宿世煩惱為無明。唯識宗則以「二世一重」之因果加以解釋,謂無明與行能牽引識等五果之種子,故為「能引支」;其中,與第六意識相應之「癡」,能起善惡之業,稱為無明。
有部與唯識宗又將無明分為相應無明與不共無明二種。相應無明,係與貪等根本煩惱相應共起;不共無明,則無與之相應而起者,以其獨自生起,故又作獨頭無明。且成唯識論卷五將不共無明更分為恆行不共無明與獨行不共無明。恆行不共無明,係與第七末那識相應之無明,即與貪等根本煩惱相應而起,此無明無始以來恆行,障礙真義智,故稱恆行;又自一切凡夫心常無間之觀點言,乃與相應於第六意識之無明有異,故稱為不共。獨行不共無明,係與第六意識相應之無明,以其與其他根本煩惱不相應,單獨而起,故亦稱不共。此獨行不共無明復依其與隨煩惱俱起與否,更細分主獨行無明與非主獨行無明。
唯識宗又區分無明為種子與現行,其中,常隨眾生,隱眠在第八阿賴耶識中之無明種子,稱為隨眠無明;對此,無明之現行,纏縛眾生,繫著生死(迷之世界),稱為纏無明。又纏無明有相應與不共,即為隨眠、纏、相應與不共等四種,稱為四種無明、四無明。此外,無明復可分為根本與枝末、共與不共、相應與不相應、迷理與迷事、獨頭與俱行、覆業與發業、種子子時、行業果、惑等十五種無明。
據勝鬘經之說,與見惑及三界之修惑(貪等)相應之相應無明,稱為四住地之惑。所謂四住地即:見一處住地、欲愛住地、色愛住地、有愛住地,其中,見一處住地指見惑,後三住地則指三界之修惑。又獨行不共之無明為無始無明住地之惑(若合以上四住地之惑,則稱五住地之惑),此無明住地為一切煩惱之根本,唯如來之菩提智得以斷之。
據大乘起信論之說,無明為不覺,此不覺分為根本無明與枝末無明二種。根本無明,又作根本不覺、無始無明、元品無明,忽然念起無明或元初之一念。即不了達真如平等之理,故忽然起動差別對立之念的元初,即為諸煩惱之元始、迷妄之最初,皆非由其他煩惱所生者,故謂「忽然」。以其極微細,故難以區別心王與心所之狀態。故根本無明即最細微之動心,而諸種惑、業、苦等皆以此一念起動之心為根本,故稱根本無明。此即無始無明住地之惑。枝末無明,又作枝末不覺,即依根本無明而起之枝末的染污心,有三細六粗之惑業。
據天台宗之說,依空、假、中三觀可斷除見思、塵沙、無明三惑。此中,無明即迷於非有非空之理,而為障礙中道之惑。亦即中觀所斷之對象。關於斷除無明者,在天台所判「化法四教」之別教,於十迴向伏無明,在初地以上至妙覺等十二階位,斷盡十二品無明。此際,十迴向中,最後之第十迴向斷除最初之無明,進入初地;此最初之無明復分三品來斷,故稱三品之無明。在圓教,則於初住以上至妙覺等四十二階位斷盡四十二品無明,此際,第五十一階位(等覺)之最後心即顯妙覺智,由此能斷除最後之無明(稱為元品無明、無始無明、最後品無明)。然以上為過去之說,實則圓教不立三觀之次第,而主張持一心作觀,三惑同體,同時可斷。〔長阿含卷一大本經、大毘婆沙論卷二十三、卷二十五、卷三十八、大智度論卷四十三、成實論卷九、成唯識論卷八、瑜伽師地論卷四十八、卷五十六、卷五十八、卷六十四、十地經論卷八、俱舍論卷九、卷十九、摩訶止觀卷六上、勝鬘經寶窟卷中末〕p6415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T31n1612_p0849b03║云何為疑?謂於諦
T31n1612_p0849b04║等猶豫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어떤 것이 의(疑)인가. 진리에 대해 주저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疑(의)", 운허. 《불교사전》:
疑(의)
[1] 75법의 하나. 100법의 하나. 미(迷)의 인과나 오(悟)의 인과의 도리에 대하여, 유예(猶豫)하고 결정치 못하는 정신 작용.
[2] 대상에 대하여 마음이 주저하고 결정치 못하는 정신, 밤에 말뚝을 보고 사람인 줄 의심하는 것과 같은 것.
[3] ↔ 신(信). 정토교(淨土敎)에서는 믿음을 능입(能入)이라 하고, 유예하는 의(疑)는 결정이 없으므로 이런 줄을 알고 부처님의 원력을 믿는 곳에 비로소 부처님의 구제를 얻는다 함. - ↑ "疑",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疑
梵語 vicikitsā,巴利語 vicikicchā。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謂對迷悟因果之理,猶豫而無法決定之精神作用。即對於佛教真理猶豫不決之心。小乘預流果以上、菩薩初地以上乃能斷除之。依俱舍宗,屬不定地法,六隨眠之一,十隨眠之一;依唯識宗,則屬六根本煩惱之一。淨土門以「疑」與「信」為相對詞,而謂去疑心起信心。異部宗輪論述記載,疑有二種:(1)迷於理之隨眠性的疑結,即對於諸諦理猶懷疑惑,阿羅漢已斷除之。(2)於事猶豫不決之處非處之疑,即對事疑惑,如於夜觀樹,疑為是人或為非人等,阿羅漢未斷除之,然獨覺於此則已有成就。一般廣泛地包含非煩惱性之疑。故凡懷疑、猶豫不定之心理,皆以網譬喻,而稱疑網。此外,疑自、疑師、疑法,總稱三疑。〔十住毘婆沙論卷五易行品、大毘婆沙論卷五十、俱舍論卷四、瑜伽師地論卷五十八、成唯識論卷六、大乘義章卷六〕p7336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02║云何為疑於
T31n1585_p0031c03║諸諦理猶豫為性。能障不疑善品為業。謂
T31n1585_p0031c04║猶豫者善不生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의(疑)심소’132)라고 하는가? 모든 진리[諦]와 논리[理]에 대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불의(不疑)의 선품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는다. 결정을 미루는 곳에서는 선(善)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132) 의(疑, vicikitsā)심소는 ‘의심’하는 작용, 특히 4성제 등의 진리를 의심하여 참으로 그러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심리이다. 불신(不信)이 아니라, 불설(佛說)을 신봉하지만 그 교설의 내용ㆍ중요성을 애써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얼버무려 둔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ㆍ선(善)심소가 생기될 수 없다. - ↑ "惡見(악견)", 운허. 《불교사전》:
惡見(악견)
백법(百法)의 하나. 6번뇌의 하나. 모든 법의 진리에 대하여 가지는 잘못된 견해. - ↑ "惡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惡見
(一)梵語 mithyā-dṛṣṭi。又作不正見。略稱見。為法相宗所立百法之一,屬六煩惱之一。指邪惡之見解,亦即違背佛教真理之見解。據成唯識論卷六載,惡見以染慧為性,能障善見,惡見者多受諸苦。於俱舍論所說六隨眠中之見隨眠(梵 dṛṣṭy-anuśaya)、五濁中之見濁,均與惡見相同。依行相之差別,惡見分為薩迦耶見、邊執見、邪見、見取見、戒禁取見等五見,又稱五惡見;於九結中,前三見為見結(梵 dṛṣṭisaṃyojana),則後二見為取結(梵 parāmarśa-saṃyojana)。〔俱舍論卷十九、顯揚聖教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參閱「五見」1450)
(二)在淨土宗,特指自力疑心。善導觀經疏散善義中舉出貪瞋二河之譬喻,謂別解、別行、惡見之人,以虛妄之見解惑亂願往生西方者之信心。日僧親鸞之愚禿鈔卷下謂,惡見人即指憍慢、懈怠、邪見、疑心之人。(參閱「發遣招喚」6497)p6230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11║云何惡見。於諸諦理顛倒推求度染慧為
T31n1585_p0031c12║性。能障善見招苦為業。謂惡見者多受苦
T31n1585_p0031c13║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이 ‘악견(惡見)심소’138)인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뒤바뀌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잡염의 혜를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악견은 고통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138) 악견(惡見)심소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특히 인습에 사로잡혀서, 4성제 등의 진리를 오해하고 인과법을 무시한다. 이것은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일부분인 염오성이 작용된 것이다. 악견은 작용의 차이에 따라 유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의 다섯 종류로 나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13║此見行相差別有五。一薩迦耶見。謂於
T31n1585_p0031c14║五取蘊執我我所。一切見趣所依為業。此
T31n1585_p0031c15║見差別有二十句六十五等。分別起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이 악견의 행상(行相)은 구별하면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살가야견(薩迦耶見)139)이니, 5취온에 대해서 나ㆍ나의 소유로 집착함을 말한다. 모든 견해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 이 견해를 구분하면 스무 가지 문구[句]140)와 예순다섯 가지 문구 등이 있다. 후천적으로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에 포함된다.
139) 살가야견(薩迦耶見)은 산스끄리뜨 satkāya-dṛṣṭi의 번역어이다. 유신견(有身見)ㆍ신견(身見) 등으로 의역(意譯)된다. 5온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임시적 육신을 실아(實我)라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또한 육신에 달려 있는 일체의 소유도 고정된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닌데, 그것을 나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을 말한다.
140) 5온(蘊)의 각각에 네 가지 문구가 있어서 합하면 스무 가지가 된다. 즉 색온(色蘊)에 대해서 말하면, “물질[色]은 나이다”, “나는 물질을 갖는다”, “물질은 나에게 속한다”, “나는 물질 중에 있다”라고 계탁하듯이, 하나의 온(蘊)에 네 가지가 있다. 5온(蘊)에서 말하면 스무 가지 문구[句]가 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다섯 가지 아견(我見:5온 각각에 대한 나라는 견해)과 열다섯 가지 나의 소유라는 견해[我所見:5온 각각에 我瓔珞ㆍ我童僕ㆍ我器라는 세 가지씩의 我所見]가 되므로 합하면 스무 가지 문구가 된다. - ↑ "邊執見(변집견)", 운허. 《불교사전》:
邊執見(변집견)
⇒변견(邊見) - ↑ "邊見(변견)", 운허. 《불교사전》:
邊見(변견)
5견(見)의 하나. 내 몸이 있다고 아견(我見)을 일으킨 위에, 내가 죽은 뒤에도 항상 있다든가(常), 아주 없어진다든가(斷), 어느 한 편에 치우친 견해. - ↑ "邊執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邊執見
梵語 anta-grāha-dṛṣṭi,巴利語 anta-ggāhikā。執著片面極端之見解。略稱邊見。為十隨眠之一,五見之一。有二種:(1)常見,認為「我」死後常住不變。(2)斷見,認為「我」死後斷絕。亦即於五取蘊執取斷、常一邊之謬見。此邊執見緣於薩迦耶見(有身見)所執之我、我所之事法,而起斷、常二見,障礙處中之道諦與出離之滅諦。又此見隨有身見而轉。成唯識論卷六總言此見有四十七見,其中七斷滅論屬於斷見,餘四十見屬於常見。又此見攝於遍行之惑,與有身見同為自界緣,皆以大地法中之慧為體,為見苦所斷之煩惱。〔大毘婆沙論卷四十六、卷四十九、俱舍論卷十九、雜阿毘曇心論卷四〕p8389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15║二邊
T31n1585_p0031c16║執見。謂即於彼隨執斷常。障處中行出離
T31n1585_p0031c17║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둘째는 변견(邊見)141)이니, 그것142)에 대하여 따라서 단멸과 상주함으로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의처(意處)143) 중의 실천[行:道諦]과 벗어남[出離:滅諦]을 장애함을 업으로 한다.
141) 극단에 집착하는 견해이며, 변집견(邊執見)이라고도 한다.
142) 아견(我見)의 대상을 가리킨다.
143) 단멸[斷]과 상주[常]의 극단을 떠난 중용(中庸)의 의처(意處)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T31n1606_p0698a15║邊執見者。於五取蘊等隨觀執。若常若斷。諸
T31n1606_p0698a16║忍欲覺觀見為體。障處中行出離為業。處中
T31n1606_p0698a17║行者。謂離斷常緣起正智。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17║此見差別諸見趣中有執前際四遍
T31n1585_p0031c18║常論一分常論。及計後際有想十六無想俱
T31n1585_p0031c19║非各有八論。七斷滅論等。分別趣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이 견해의 종류를 말하면, 여러 견해 중에서 과거의 것[前際]144)을 집착하는 네 가지 두루 상주한다는 견해[遍常論], 일부만 상주한다는 견해[一分常論], 미래의 것[後際]145)을 계탁하는 열여섯 가지의 표상작용이 존재한다는 견해[有想論], 표상작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無常論]와 표상작용[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俱非]에 각각 8론(論)이 있으며, 그리고 일곱 가지 단멸론[七斷論] 등이 있다.146) 이것은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에 포함된다.
144) 여기서 전제(前際)는 과거에 의해 분별의 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45) 여기서 후제(後際)는 미래에 의해 분별의 견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146) 극단적인 견해[邊見]는 62견(見) 중에서 47견(見)을 포함한다. 마흔일곱 가지 중에서 마흔 가지(四遍常論ㆍ四一分常論ㆍ有想十六論ㆍ無想八論ㆍ俱非八論)는 상견(常見)이고, 일곱 가지는 단견(斷見)이다. - ↑ "사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국고전용어사전》:
사견[邪見]
십악(十惡)의 하나. 사곡(邪曲)한 견해. 비뚫어지고 곱은 견해.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옳지 못한 견해. - ↑ "邪見(사견)", 운허. 《불교사전》:
邪見(사견)
5견(見)의 하나. 10악(5리사ㆍ5둔사)의 하나. 주로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옳지 못한 견해. 온갖 망견(妄見)은 다 정리(正理)에 어기는 것이므로 사견이라 하거니와, 특히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는 것은 그 허물이 중대하므로 사견이라 함. - ↑ "사견",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견해. - ↑ "邪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邪見
梵語 mithyā-dṛṣṭi,巴利語 micchā-diṭṭhi。指不正之執見,主要指撥無四諦因果之道理者。係八邪行之一,十惡之一,十隨眠之一,五見之一。以為世間無可招結果之原因,亦無由原因而生之結果,而謂惡不足畏,善亦不足喜等之謬見,即是邪見。蓋俱舍家謂撥無因果為邪見;唯識家則主張撥無因果及四見以外之所有邪執,均稱為邪見。
另據大毘婆沙論卷四十九載,五見雖同為邪推度,但因邪見之「無行相」過患特重,故特稱之為邪見。又謂邪見壞事,謗因果及三寶,壞法恩、生恩,起法怨、生怨,並破壞現量,為暴惡之見,故別立此名。〔俱舍論卷十九、成唯識論卷六、法蘊足論卷一、卷十、成實論卷十、阿毘達磨順正理論卷四十六、瑜伽師地論卷八〕(參閱「八邪行」424、「十善十惡」655、「五見」1450)p3813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19║三邪
T31n1585_p0031c20║見。謂謗因果作用實事。及非四見諸餘邪
T31n1585_p0031c21║執。如增上緣名義遍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셋째는 사견(邪見)이니, 원인147)ㆍ결과148)ㆍ작용149)ㆍ참다운 존재[實事]150)를 비방하고, 네 가지 견해가 아닌 다른 모든 삿된 집착을 말한다. 증상연과 같이 명칭도 뜻도 두루하기 때문이다.
147) 보시(布施)나 탐착 등 모든 선악의 원인[因]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함을 가리킨다.
148) 선악업에 초감(招感)되는 이숙과(異熟果)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149) 세간ㆍ부모 등 모든 사회ㆍ국가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150) 세간의 참다운 아라한(阿羅漢)도 없다고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 ↑ 가 나 다 라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T31n1613_p0853a06║云何邪見。謂謗因果。或謗作用。或壞善事。染
T31n1613_p0853a07║慧為性。謗因者。因謂業煩惱性。合有五支。煩
T31n1613_p0853a08║惱有三種。謂無明愛取。業有二種謂行及有。
T31n1613_p0853a09║有者。謂依阿賴耶識諸業種子此亦名業。如
T31n1613_p0853a10║世尊說。阿難。若業能與未來果彼亦名有。如
T31n1613_p0853a11║是等。此謗名為謗因。謗果者。果有七支。謂識
T31n1613_p0853a12║名色六處觸受生老死。此謗為謗果。或復謗
T31n1613_p0853a13║無善行惡行。名為謗因。謗無善行惡行果報。
T31n1613_p0853a14║名為謗果。謗無此世他世。無父無母。無化生
T31n1613_p0853a15║眾生。此謗為謗作用。謂從此世往他世作用。
T31n1613_p0853a16║種子任持作用。結生相續作用等。謗無世間
T31n1613_p0853a17║阿羅漢等。為壞善事。斷善根為業。不善根堅
T31n1613_p0853a18║固所依為業。又生不善。不生善為業。
T31n1613_p0853a19║云何見取。謂於三見。及所依蘊。隨計為最為
T31n1613_p0853a20║上為勝為極。染慧為性。三見者。謂薩迦耶。
T31n1613_p0853a21║邊執。邪見。所依蘊者。即彼諸見所依之蘊。業
T31n1613_p0853a22║如邪見說。 - ↑ 가 나 다 라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무엇을 사견이라고 하는가? 인과를 비방하고, 혹은 작용(作用)을 비방하고, 흑은 선한 일을 파괴하는 오염된 지혜를 성질로 한다. 인(因)을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인온 업의 번뇌성을 말한다. 합해서 다섯 가지가 있다. 번뇌에는 무명ㆍ애(愛)ㆍ취(取)의 세 가지가 있다. 업에는 행(行) 및 유(有)의 두 가지가 있다. 유란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의지하는 모든 업의 종자를 말한다. 이는 또한 업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아난아, 만약 업이 능히 미래의 과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또한 유라고도 말한다.……”
이를 비방하는 것을 인을 비방한다고 안다. 과보를 비방한다란 무슨 뜻인가? 과보는 식(識)ㆍ명색(名色)ㆍ6처(處)ㆍ촉(觸)ㆍ수(受)ㆍ생(生)ㆍ노사(老死)의 일곱 가지가 있다. 이를 비방함이 과보를 비방하는 것이다.
또한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인을 비방함이고, 선행과 악행의 과보가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과보를 비방함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화생(化生)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없다고 비방한다. 이러한 비방은 작용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저 세상으로 왕생하는 작용, 종자를 지니고 있는 작용, 생을 맺어 상속하는 작용 등을 말한다. 세간과 아라한 등이 없다고 비방하는 것은 선한 일을 파괴함이다. 선근을 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하고, 불선근(不善根)이 견고해지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불선을 낳고, 선을 낳지 않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21║此見差別諸見趣中
T31n1585_p0031c22║有執前際二無因論四有邊等不死矯亂。及
T31n1585_p0031c23║計後際五現涅槃。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이 견해의 종류를 구분하면, 여러 취착된 견해 중에서 과거[前際]를 집착하는 두 가지 무인론(無因論)과 네 가지 유변론(有邊論) 등과 불사의 교란[不死矯亂], 그리고 미래[後際]를 계탁하는 오현열반(五現涅槃)이 있다.151)
151)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6권 말(末)에 각각의 견해에 관하여 상세하게 발명되어 있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23║或計自在世主釋梵及餘
T31n1585_p0031c24║物類常恒不易。或計自在等是一切物因。或
T31n1585_p0031c25║有橫計諸邪解脫。或有妄執非道為道。諸
T31n1585_p0031c26║如是等皆邪見攝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혹은 자재천152)ㆍ대자재천[世主]153)ㆍ제석천ㆍ범천왕154) 및 다른 사물[物類]155) 등이 상주해서 변화가 없다고 계탁한다. 혹은 자재천 등은 모든 사물의 원인이라고 계탁한다.156) 혹은 어떤 사람들은 제멋대로 여러 삿된 해탈을 계탁한다.157) 혹은 어떤 사람들은 망령되게 도(道)가 아닌 것을 집착해서 도(道)로 삼는다.158) 이와 같은 모든 견해들은 다 삿된 견해이다.
152) 욕계 제6천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153) 여기서 세주(世主)는 대자재천, 즉 색계의 18천 가운데 최고천인 색구경천(色究竟天)을 말한다.
154) 색계 초선천(初禪天)의 주(主)이다.
155) 자성(自性) 등을 가리킨다.
156) 집제(集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다.
157) 멸제(滅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다.
158) 도제(道諦)에 대한 삿된 견해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19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T29n1558_p0100a18║於劣謂勝名為見取。有漏名劣。聖所斷故。
T29n1558_p0100a19║執劣為勝總名見取。理實應立見等取名。
T29n1558_p0100a20║略去等言。但名見取。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19권:
또한 저열한 것에 대해 수승하다고 하는 것을 일컬어 견취(見取, dṛṣṭi-parāmarśa)라고 한다. 여기서 ‘저열한 것’이란 유루를 일컫는 말로서, 성도에 의해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열한 것에 집착하여 수승하다고 하는 것을 모두 일컬어 ‘견취’라 한다고 하였으므로, 이치상으로 볼 때 ‘견등취(見等取)’ 즉 ‘견해 따위를 [수승하다고] 취하는 것’이라고 하는 명칭을 설정해야 하겠지만, ‘따위’라고 하는 말을 생략하고 단지 ‘견취’라고만 이름하였다. - ↑ "見取見(견취견)",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見取見(견취견)
5견의 하나. 소견을 고집하는 견이란 뜻. 신견ㆍ변견ㆍ사견 등을 일으키고 이를 잘못 고집하여 진실하고 뛰어난 견해라고 하는 망견(妄見). - ↑ "견취견",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견취견[見取見]
약어 견취(見取)
그릇된 견해를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 - ↑ "見取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見取見
梵語 dṛṣṭiparāmarśa。乃執著於身見、邊見、邪見等非理之見。全稱見等取見。略稱見取。係四取之一,五見之一,十隨眠之一。有漏劣法為聖者所斷,故執此劣法為勝者,稱為見取。此以染污之慧為體,唯分別起,能障苦及不淨之無顛倒解為業。另據大明三藏法數卷三十之「七見」項載,見取見又作戒盜見,指不知如來之正戒,妄執牛戒、狗戒等外道、不正之戒法,而誤以為可達涅槃之戒行,此種執著即稱見取見。〔大毘婆沙論卷四十九、俱舍論卷十九、顯揚聖教論卷一、阿毘達磨順正理論卷四十七、瑜伽師地論卷八、成唯識論卷六〕(參閱「七見」165、「十隨眠」692、「五見」1450、「四取」2209)p3777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26║四見取。謂於諸見及所依
T31n1585_p0031c27║蘊。執為最勝能得清淨。一切鬪諍所依為
T31n1585_p0031c28║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넷째는 견취견(見取見)159)이니, 여러 잘못된 견해와 의지처인 5온에 대하여 집착해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청정(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투쟁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
159) 잘못된 견해에 취착하는 견해이다. - ↑ 가 나 "戒禁取見(계금취견)", 운허. 《불교사전》:
戒禁取見(계금취견)
5견(見)의 하나. 10수면(隨眠)의 하나. 4취(取)의 하나. 갖추어 말하면 계금등취견(戒禁等取見), 줄여서 계취견(戒取見)ㆍ계금취(戒禁取). 계금에 대하여 생기는 그릇된 소견. 즉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도(道) 아닌 것을 도라 하는 잘못된 소견. 이를테면, 개나 소 따위가 죽은 뒤엔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여 개나 소처럼 풀을 먹고 똥을 먹으며, 개와 소의 행동을 하면서, 이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따위. - ↑ 가 나 "戒禁取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戒禁取見
戒禁取,梵語 śīla-vrata-parāmarśa。全稱戒禁等取見。又稱戒取見、。為五見之一,十隨眠之一,四取之一。指就戒禁(戒律、禁制)等而起之謬見,以非因為因,非道為道。如見牛狗死後生天,乃學牛狗之所為,食草噉糞,修非因非道之行,執迷此即生天解脫之因,此等妄見稱為戒禁取見。〔俱舍論卷十九、成唯識論卷六、大智度論卷二十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大毘婆沙論卷四十九、阿毘達磨順正理論卷四十七〕(參閱「十隨眠」692、「五見」1450、「四取」2209)p3674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다섯째는 계금취견(戒禁取見)160)이니, 여러 견해에 수순하는 계율과 의지처인 5온에 대하여 집착해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삼아서, 능히 청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로움 없이 수고롭게 애쓰는 고통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
160) 계금(戒禁)은 계법(戒法)이라는 뜻이다. 계금취견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외도에서 잘못된 계법에 집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교인 중에서 계법의 진정한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는 계법의 형식 그 자체에 취착하는 경우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1c28║五戒禁取。謂於隨順諸見戒禁及所依
T31n1585_p0031c29║蘊。執為最勝能得清淨。無利勤苦所依
T31n1585_p0032a01║為業。 - ↑ "隨煩惱(수번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隨煩惱(수번뇌)
수혹(隨惑)이라고도 함. (1) 온갖 번뇌. 일체 번뇌는 모두 몸과 마음에 따라 뇌란케 하므로 수번뇌. (2) 근본 번뇌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번뇌. 구사종에서는 이를 방일(放逸)ㆍ해태(懈怠)ㆍ불신(不信)ㆍ혼침(惛沈)ㆍ도거(掉擧)ㆍ무참(無慚)ㆍ무괴(無愧)ㆍ분(忿)ㆍ부(覆)ㆍ간(慳)ㆍ질(嫉)ㆍ뇌(惱)ㆍ해(害)ㆍ한(恨)ㆍ광(誑)ㆍ첨(諂)ㆍ교(憍)ㆍ수면(睡眠)ㆍ회(悔)의 19종이라 하고, 유식종에서는 분ㆍ한ㆍ부ㆍ뇌ㆍ질ㆍ간ㆍ광ㆍ첨ㆍ해ㆍ교(이상은 소수혹)ㆍ무참ㆍ무괴(이상은 중수혹)ㆍ도거ㆍ혼침ㆍ불신ㆍ해태ㆍ방일ㆍ실념(失念)ㆍ산란ㆍ부정지(不正知, 이상 대수혹)의 20종을 말함. - ↑ "隨煩惱",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隨煩惱
梵語 upakleśā,巴利語 upakkilesa。指隨根本煩惱而起之煩惱。與「根本煩惱」相對稱。又作隨惑、枝末惑。據俱舍論卷二十一載,隨煩惱有二義:(1)指隨心生起而惱亂有情之一切煩惱。(2)指依根本煩惱而起之其他煩惱。書中共舉出十九種隨煩惱,並總括為三類,即:(1)大煩惱地法,指放逸、懈怠、不信、惛沉、掉舉。(2)大不善地法,指無慚、無愧。(3)小煩惱地法,指忿、覆、慳、嫉、惱、害、恨、諂、誑、憍等十種,及不定地法中之睡眠、惡作。
據成唯識論卷六載,隨煩惱指根本煩惱之六大惑以外的二十種法,可分為三類,故又稱「三隨煩惱」。即:(1)小隨煩惱,相對於俱舍論之小煩惱地法而立,指忿、恨、覆、惱、嫉、慳、誑、諂、害、憍等十種;此十種煩惱各別而起,故稱小隨煩惱。(2)中隨煩惱,相對於俱舍論之大不善地法而立,指無慚、無愧;此二種煩惱遍於一切之不善心,稱為中隨煩惱。(3)大隨煩惱,相對於俱舍論之大煩惱地法而立,指掉舉、惛沉、不信、懈怠、放逸、失念、散亂、不正知等八種;此八種煩惱遍於一切染污心,而輾轉與小、中隨煩惱俱生,故稱大隨煩惱。〔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三、品類足論卷一、成實論卷十隨煩惱品、瑜伽師地論卷五十五、華嚴經疏鈔卷三十四〕p7963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3b05║論曰。唯是煩惱分位差別。等流性故名隨煩
T31n1585_p0033b06║惱。此二十種類別有三。謂忿等十各別起故
T31n1585_p0033b07║名小隨煩惱。無慚等二遍不善故名中隨
T31n1585_p0033b08║煩惱。掉舉等八遍染心故名大隨煩惱。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논하여 말한다. 이것은 오직 번뇌의 분위의 차이이고, 등류하는 성질이므로 수번뇌라고 이름한다. 이 스무 종류는 구분하면 세 가지가 있다. 분(忿) 등 열 가지239)는 각기 따로 일어나기 때문에 소수번뇌(小隨煩惱)라고 이름한다. 무참(無慚) 등 두 가지240)는 불선(不善)에 두루하기 때문에 중수번뇌(中隨煩惱)라고 이름한다. 도거심소 등 여덟 가지241)는 잡염심에 두루하기 때문에 대수번뇌(大隨煩惱)라고 이름한다.
239) 분(忿)ㆍ한(恨)ㆍ부(覆)ㆍ뇌(惱)ㆍ질(嫉)ㆍ간(慳)ㆍ광(誑)ㆍ첨(諂)ㆍ해(害)ㆍ교(憍) 심소이다.
240) 무참(無慚)ㆍ무괴(無愧) 심소이다.
241) 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불신(不信)ㆍ해태(懈怠)ㆍ방일(放逸)ㆍ실념(失念)ㆍ산란(散亂)ㆍ부정지(不正知)의 심소이다. - ↑ "小隨煩惱",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小隨煩惱
梵語 Parītta-kleśa-bhūmika-dharmāh。又作小煩惱地法。指與小分之染污心相應而各別現起之煩惱。計有十種:(1)忿(梵 krodha),恨之意;對有情、非情等產生憤怒之心。(2)覆(梵 mrakṣa),藏之意;恐名譽之墮,乃隱覆自造之罪。(3)慳(梵 mātsarya),吝之意;耽著財法,無惠捨之心。(4)嫉(梵 īrṣyā),害賢之意;妒忌他人之盛事。(5)惱(梵 pradāśa),恨痛之意;堅執惡事,不能如理悔改而惱亂身心。(6)害(梵 vihiṃsā),傷之意;對他人逼罵損惱。(7)恨(梵 upanāha),怨之意;於「忿」所緣之事,數數尋思,結怨不捨。(8)諂(梵 māyā),傾身自下,希承人意。(9)誑(梵 śāṭhya),欺、惑之意;以種種手段,極其詭作,惑亂他人,顛倒是非。(10)憍(梵 mada),恣之意;恃自己之盛事而心高氣傲。
上記十種之中,忿、覆、慳、嫉等四者,與無慚、惛沉等六者,共攝於十纏;其餘之惱、害等六種,稱為六垢。又覆、慳、誑、憍等四者為貪之等流,忿、嫉、害、恨等四者為瞋之等流,惱為見取之等流,諂為諸見之等流。此外,於三界之中,忿、覆、慳、嫉、惱、害、恨等七者僅為欲界所繫,諂、誑二者為欲界及初禪所繫,憍則通於三界。於順正理論卷十一所列舉之小煩惱地法,除上述十種之外,另舉出「不忍、不樂、憤發」等三種;然俱舍家則將不忍、不樂攝於「嫉」,將憤發攝於「忿」之中。總括而言,此十者僅為「修道」所斷之惑,而起於意識地,且各各與無明相應而起,非如大煩惱地法之「心所」與一切染心俱起者,故稱小煩惱地法。〔成唯識論卷六、俱舍論卷四、顯揚聖教論卷一、雜阿毘曇心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六末〕p1249 - ↑ "中隨煩惱",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中隨煩惱
又稱中隨惑。指無慚、無愧二種隨煩惱。大乘唯識家所立二十種隨煩惱中,無慚、無愧二者乃遍一切不善心而俱起,其行位之寬狹在大隨與小隨之間,故稱為中隨煩惱。〔成唯識論卷六〕(參閱「隨煩惱」7963)p1376 - ↑ "大隨煩惱",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大隨煩惱
梵語 kleśa-mahā-bhūmikā dharmāḥ。又作大煩惱地法。指恆與染污心相應之煩惱。大毘婆沙論卷四十二(大二七‧二二O中):「若法一切染污心中可得,名大煩惱地法。」計有六種,即:(1)癡(梵 moha),為暗昧,於一切所知境障如理之解。(2)放逸(梵 pramāda),為縱蕩,不勤修各種善法。(3)懈怠(梵 kausīdya),為懶惰,心不勇悍。(4)不信(梵 āśraddhya),為不信因果之理。(5)惛沉(梵 styāna),為身心鈍重,不堪任當。(6)掉舉(梵 auddhatya),為躁動,心不靜寂。其中癡為六根本煩惱之一,其餘五法屬枝末之惑。品類足論卷二、大毘婆沙論卷四十二則列舉十種大煩惱地法,即以上述六種,除去惛沉,另加失念、心亂、不正知、非理作意、邪勝解等五種;成唯識論卷六則除去「癡」,另加失念、散亂、不正念,而稱為「八大隨惑」。〔順正理論卷十一、雜阿毘曇心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六末〕p1189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5a22║中二大八十煩惱俱。小
T31n1585_p0035a23║十定非見疑俱起。此相麁動彼審細故。忿等
T31n1585_p0035a24║五法容慢癡俱。非貪恚並是瞋分故。慳癡
T31n1585_p0035a25║慢俱非貪瞋並是貪分故。憍唯癡俱。與慢
T31n1585_p0035a26║解別是貪分故。覆誑與諂貪癡慢俱。行相無
T31n1585_p0035a27║違貪癡分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두 가지 중수번뇌와 여덟 가지 대수번뇌는 열 가지 번뇌심소와 함께한다.337) 열 가지 소수번뇌는 반드시 악견ㆍ의(疑)심소와는 함께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소수번뇌)은 인식활동이 두드러지게 작용하고, 그것은 살피고 미세하기 때문이다. 분(忿) 등의 다섯 가지 심소법은 만ㆍ치 심소와 함께한다고 인정된다. 분 등이 탐ㆍ진 심소와는 함께하지 않는다. 이것(분 등)은 진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간(慳)심소는 치ㆍ만 심소와는 함께하고, 탐ㆍ진 심소와는 함께하지 않으니, 탐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심소는 오직 치심소와 함께하니, 만 심소와는 이해가 다르고, 탐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부ㆍ광ㆍ첨 심소는 탐ㆍ치ㆍ만 심소와 함께한다. 인식활동이 거스르지 않으므로 탐ㆍ치 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337) 다음에 수번뇌심소와 번뇌심소와의 상응관계를 밝힌다[根本相應門].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3b26║云何為嫉。徇自
T31n1585_p0033b27║名利不耐他榮妬忌為性。能障不嫉憂
T31n1585_p0033b28║慼為業。謂嫉妬者聞見他榮深懷憂慼
T31n1585_p0033b29║不安隱故。此亦瞋恚一分為體。離瞋無別
T31n1585_p0033c01║嫉相用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무엇을 ‘질(嫉)심소’251)라고 하는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나치게 구하여, 남의 영화를 참지 못하고 시기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질투하지 않음[不嫉]을 능히 장애하여 근심함을 업으로 삼는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영화를 보고 듣고서 깊이 근심을 품어 안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진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1) 질(嫉, īrṣyā)심소는 ‘질투’, 즉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워 다른 사람의 영화를 질투하는 심리작용이다.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5a05║論說大八遍諸染心。展
T31n1585_p0035a06║轉小中皆容俱起。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논서에서 여덟 가지 대수번뇌심소는 모든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한다.318) 전전하여 소수번뇌나 중수번뇌심소와 모두 함께 일어난다고 인정된다.
318) 『유가사지론』 제58권(『고려대장경』 15, p.965下:『대정장』 30, p.622中).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35a04║中二一切不善心俱。隨
T31n1585_p0035a05║應皆得小大俱起。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두 가지 중수번뇌심소는 모든 불선심과 함께한다. 상응한 바에 따라서 모두 소수번뇌와 대수번뇌심소와 함께 일어날 수 있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2c05║此十煩惱何性所攝。瞋唯
T31n1585_p0032c06║不善損自他故。餘九通二。上二界者唯無記
T31n1585_p0032c07║攝。定所伏故。若欲界繫分別起者。唯不善
T31n1585_p0032c08║攝。發惡行故。若是俱生。發惡行者亦不善
T31n1585_p0032c09║攝。損自他故。餘無記攝。細不障善。非極
T31n1585_p0032c10║損惱自他處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이 열 가지 번뇌심소는 어떤 성품에 포함되는가? 209)
진(瞋)심소는 오직 불선이니,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아홉 가지는 두 가지210)에 공통된다.
아홉 가지 번뇌심소가 두 가지 상계(上界)라면, 오직 무기에만 포함된다. 반드시 조복되기 때문이다. 욕계에 계박된 것이라면, 분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오직 불선에만 포함되니, 악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악업을 일으키는 것은 역시 불선에 포함되니,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무기에 포함되니, 미세하여 선을 장애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매우 괴롭히거나 해롭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209) 다음에 번뇌심소의 3성(性)을 판별한다.
210) 불선(不善)과 무기(無記)를 말한다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러 머 버 서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5a27║小七中二唯不善攝。小三大八
T31n1585_p0035a28║亦通無記。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러 머 버 서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소수번뇌심소 중의 일곱 가지338)와 두 가지 중수번뇌는 오직 불선의 성품에 포함된다.339) 소수번뇌심소 중 세 가지340)와 여덟 가지 대수번뇌심소는 역시 무기에도 통한다.
338) 열 가지 소수번뇌심소 중에서 첨ㆍ광ㆍ교 심소를 제외한 나머지이다.
339) 수번뇌심소의 3성(性) 관계를 판별한다[三性門].
340) 첨ㆍ광ㆍ교 심소이다. - ↑ "忿(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忿(분)
【범】krodha 심소(心所)이름.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몸과 뜻에 맞지 않는 대경(對境)에 대하여, 제 마음을 분노케 하는 정신 작용. - ↑ "분[忿]",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분[忿]
산스크리트어 krodha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해 성내는 마음 작용. - ↑ "忿",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忿
梵語 krodha。心所之名。在俱舍宗為小煩惱地法之一,十纏之一,唯識宗則以之為小隨煩惱之一。為欲界繫之煩惱,乃修道所斷除之惑。即對不順自心之對境,引生氣怒之情,而發為暴惡之行動,稱為忿。忿由瞋而生,剛烈而強猛,然無餘勢,非長久持續者。〔大乘廣五蘊論、品類足論卷三、雜阿毘曇心論卷二、順正理論卷五十四〕(參閱「七十五法」148、「十纏」697、「小隨煩惱」1249)p4049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3b08║云
T31n1585_p0033b09║何為忿。依對現前不饒益境憤發為性。能
T31n1585_p0033b10║障不忿執仗為業。謂懷忿者多發暴惡
T31n1585_p0033b11║身表業故。此即瞋恚一分為體。離瞋無別
T31n1585_p0033b12║忿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무엇을 ‘분(忿)심소’242)라고 하는가? 243) 현전의 이롭지 않은 대상을 대함으로써 분발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분노하지 않음[不忿]을 능히 장애하고 몽둥이를 잡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244) 분노를 품는 사람은 대부분 포악한 신표업(身表業)을 많이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냄의 심소의 일부분으로써 자체[體]를 삼는다. 성냄의 심소에서 떠나서는 별도의 분노의 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42) 분(忿, krodha)심소는 ‘분노’, ‘노여움’, 즉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대상ㆍ경우에 대해 분노하는 심리작용이며, 이로써 포악한 행동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며 따로 체(體)가 없다.
243) 먼저 열 가지 소수번뇌(小隨煩惱){대수번뇌[大隨惑]}의 체성과 업을 해설한다.
244) 분노하기 때문에 몽둥이를 잡아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을 때린다. 이것은 악한 신표업(身表業)이다. 이외에 욕과 악담을 하는 악한 어표업(語表業)이 있다.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러 머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4c27║如是二十隨煩惱中。小十大三定是
T31n1585_p0034c28║假有。無慚無愧不信懈怠定是實有。教理成
T31n1585_p0034c29║故。掉舉惛沈散亂三種。
T31n1585_p0035a01║有義是假。有義是實。所引理教如前應知。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러 머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이상과 같이 스무 가지 수번뇌 중에서 소수번뇌심소 열 가지와 대수번뇌 중의 세 가지314)는 반드시 가유(假有)이다.315) 무참ㆍ무괴ㆍ불신ㆍ해태 심소는 반드시 실유(實有)이다.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로써 성취되기 때문이다. 도거ㆍ혼침ㆍ산란의 세 종류는 가유라는 견해도 있고, 실유라는 견해도 있다. 인용되는 바른 논리와 성스러운 가르침은 앞에서와 같이 알아야 한다.
314) 실념(失念)ㆍ방일ㆍ부정지(不正知) 심소를 가리킨다.
315) 다음에 수번뇌심소를 열두 가지 부문으로 나누어 판별한다. 먼저 스무 가지 수번뇌심소 중에서 실유(實有)와 가유(假有)를 판별한다[假實分別門]. - ↑ "恨(한)",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恨(한)
【범】 Upanāha 75법의 하나. 100법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원수를 맺고 열뇌(熱惱)하는 정신 작용. 또 분노한 일을 언제까지나 마음에 두고 원한을 잊지 못하는 정신 작용. - ↑ "한[恨]",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한[恨]
산스크리트어 upanāha 원망하는 마음 작용. - ↑ "恨",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恨
梵語 upanāha。為心所(心之作用)之名。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俱舍宗特指由污穢心(不善心與有覆無記心)所起之心所(小煩惱地法)之一,唯識宗則認為係隨煩惱之一。恨即指對忿怒之事永遠不忘,乃結怨之精神作用。據順正理論卷五十四所述恨與忿之差別(大二九‧六四六下):「如樺皮火,其相猛利,而餘勢弱,說名為忿。如冬室熱,其相輕微,而餘勢強,說名為恨。」故知恨雖不如忿怒之猛烈,但餘勢極強,歷久不滅。〔入阿毘達磨論卷上、成唯識論卷六、百法問答鈔卷一〕p4811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3b12║云何為恨。由忿為先懷惡不捨
T31n1585_p0033b13║結怨為性。能障不恨熱惱為業。謂結恨者
T31n1585_p0033b14║不能含忍恒熱惱故。此亦瞋恚一分為體。
T31n1585_p0033b15║離瞋無別恨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무엇을 ‘한(恨)심소’245)라고 하는가? 이전에 분노가 있었기 때문에 악을 품고 버리지 않아서 원한을 맺음을 체성으로 삼는다. 원한을 품지 않음[不恨]을 능히 장애하고 매우 괴롭게 함을 업으로 삼는다. 원한을 맺는 사람은 참을 수 없어서 항상 매우 괴롭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한다. 진심소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한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45) 한(恨, upanaha)심소는 ‘원한’, 즉 분노하고 원한을 품어서 마음이 열뇌(熱惱)케 되는 작용이다. 이것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 ↑ 중현 조, 현장 한역(T.1562).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54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62,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29n1562_p0646c07║恨與忿相有差別者。如
T29n1562_p0646c08║樺皮火其相猛利。而餘勢弱說名為忿。如冬
T29n1562_p0646c09║室熱其相輕微。而餘勢強說名為恨。由此故
T29n1562_p0646c10║有說恨相言。忿息已續生令心濁名恨。 - ↑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62). 《아비달마순정리론》 제54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한(恨)과 분(忿)의 차별상은 [이러하다]. 예컨대 벚나무 껍질에 붙은 불처럼 그 상은 맹리(猛利)하지만 [지속하는] 여분의 세력이 약한 것을 일컬어 ‘분’이라고 하였으며, 겨울 방의 열기처럼 그 상은 경미하지만 [지속하는] 여분의 세력이 강한 것을 일컬어 ‘한’이라고 하였다. 이 같은 사실에 따라 어떤 이는 ‘한’에 대해 “‘분’이 종식되고 나서 속생(續生)하는 것으로서, 마음으로 하여금 혼탁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한’이라고 한다”고 설하였다.(이상 恨에 대한 논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1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29n1558_p0109c09║惱謂堅執諸有罪事。由此不取如理
T29n1558_p0109c10║諫悔。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1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뇌’란 이를테면 온갖 나쁜 일[罪事]에 대해 견고히 집착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으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諫]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 ↑ "惱(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惱(뇌)
【범】 pradāśa 심소(心所)의 이름. (1) 구사종(俱舍宗)에서는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죄악을 범하고,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집착하여, 다른 이가 타일러도 고치지 못하고 스스로 번민하는 것. (2) 유식종(唯識宗)에서는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과거에 분하게 여기던 것을 돌이켜 생각하거나, 현재의 사물이 자기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괴로워하는 정신작용 - ↑ "惱",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惱
梵語 pradāśa。音譯作波羅陀舍。心所名。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與愁、悲、苦、憂等,皆表迷界苦之現象。依俱舍宗之解釋,所謂惱,即雖自知其罪過,猶不聽他人勸誨,一味使心神懊惱煩悶;俱舍宗視為小煩惱法之一,六垢之一,為拘繫於欲界之法,於修道位斷之;與五受中之憂根相應,又為見取見之等流,立有別體。唯識宗則解釋為起瞋怒之心,追想過去之行事或現在不悅之事物,而心中懊惱之精神作用;以其為二十隨煩惱之一,因離瞋之外,別無惱之作用,故屬於瞋之一部分;與捨根相應。〔大毘婆沙論卷四十二、俱舍論卷二十一、成唯識論卷六、成實論卷十瞋恚品、雜阿毘曇心論卷四、入阿毘達磨論卷上、瑜伽師地論卷五十五、顯揚聖教論卷一、大乘廣五蘊論、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p6245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612_p0849b08║云何為惱?謂發暴惡言尤蛆
T31n1612_p0849b09║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어떤 것이 뇌(惱)인가. 포악한 말을 내뱉어 (타인을) 능멸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613_p0853b15║云何惱。謂發暴惡言。陵犯為性。忿恨為先。心
T31n1613_p0853b16║起損害。暴惡言者。謂切害麁獷。能與憂苦。不
T31n1613_p0853b17║安隱住。所依為業。又能發生非福為業。起惡
T31n1613_p0853b18║名稱為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무엇을 괴롭힘[惱]이라고 하는가?
{무엇을 괴로워함[惱]이라고 하는가?}
포악한 말을 하여 상대를 어지럽히고 공격하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 즉, 분노와 원한이 이전에 있어, 마음으로 하여금 상대를 손상시키고 해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포악한 말이란 칼로 저미듯이 아프게 하고, 해롭고, 거칠고, 사나운 말을 뜻한다. (뇌의 마음작용은) 마음으로 하여금 근심[憂]과 괴로움[苦]과 편안하게 머물지 못함[不安隱住]과 함께하게 만드는 발동근거로서의 작용을 한다. 또한 마음으로 하여금 복이 아닌 것을 일으키게 하는 작용을 한다. 악한 말을 일으키게 하는 작용을 한다.
{포악한 말을 하고 남을 능멸하고 죄를 저지르는 것을 성질로 한다. 분노와 원한이 이전에 있어 해치는 마음이 일어난다. 포악한 말이란 거칠고 사나워서 끊고 해를 끼침을 말한다. 근심과 괴로움으로 편안하게 머물지 못함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또한 복이 아닌 것을 일으킴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나쁜 이름과 말을 일으킴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 ↑ "뇌[惱]",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뇌[惱]
① 산란함. 어지러움. 답답함.
②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남의 충고를 듣지 않아 미혹함.
③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과거에 저지른 허물을 뉘우치고 한탄하는 마음 작용.
④ 산스크리트어 pradāśa 남을 몹시 욕하고 헐뜯는 마음 작용.
출처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T31n1585_p0033b22║云何為惱。忿恨為先
T31n1585_p0033b23║追觸暴熱佷戾為性。能障不惱蛆螫為
T31n1585_p0033b24║業。謂追往惡觸現違緣心便佷戾。多發
T31n1585_p0033b25║囂暴凶鄙麁言蛆螫他故。此亦瞋恚一分為
T31n1585_p0033b26║體。離瞋無別惱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5일에 확인:
무엇을 ‘뇌(惱)심소’250)라고 하는가? 먼저 분ㆍ한(恨) 심소가 있었고 좇아서 사납고 맹렬하게 다투고 어그러지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고뇌하지 않음[不惱]을 능히 장애하여, 타인에게 지네가 쏘는 것처럼 함을 업으로 삼는다. 이전의 악을 좇고 현재의 거슬리는 연[違緣]에 접촉하여, 마음이 문득 다투고 어그러져서 대부분 사납고 흉하고 비루한 구체적인 말을 하여, 타인을 마치 지네가 쏘듯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뇌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0) 뇌(惱, pradāsa)심소는 ‘열뇌(熱惱)’, 즉 과거에 분하게 여긴 일을 돌이켜 생각하거나, 현재 일이 마음에 맞지 않아 괴로워하는 심리작용이다. 불편한 심기로 조악(粗惡)한 말로 타인을 씹게 된다.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 ↑ "覆(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覆(부)
[1] 심소(心所)의 이름. 【범】mrakṣa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명예가 떨어질까 두려워서 자기가 지은 죄를 덮어 숨기는 정신작용.
[2] ‘복’이라고도 하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일을 고백하는 것. - ↑ "부[覆]",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부[覆]
산스크리트어 mrakṣa 자신의 이익과 명예의 상실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를 감추는 마음 작용. - ↑ "覆",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覆
梵語 mrakṣa,巴利語 makkha。心所(心之作用)之名。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恐名譽將墮而隱藏自己之過惡,不發露悔過之行為或精神作用。俱舍宗以之為小煩惱地法之一,十纏之一;唯識宗則以之為小隨惑之一。依大毘婆沙論卷四十載,覆為貪著名利,或由無知,故覆藏自罪;為貪、癡二者之等流。又因自在起之故,乃為修道所斷除之煩惱,與五受中之憂、喜二受相應。〔俱舍論卷二十一、成唯識論卷六、品類足論卷三、雜阿毘曇心論卷二、順正理論卷五十四〕p8274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b15║云何為覆。於自作罪
T31n1585_p0033b16║恐失利譽隱藏為性。能障不覆悔惱為
T31n1585_p0033b17║業。謂覆罪者後必悔惱不安隱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부(覆)심소’246)라고 하는가? 자신의 지은 죄에 대해서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감추려 드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숨기지 않음[不覆]을 능히 장애하며 후회하면서 괴로워함을 업으로 삼는다. 죄를 숨기는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고 괴로워하여 안온함이 없기 때문이다.
246) 부(覆, mrakṣa)심소는 ‘숨김’ㆍ‘덮음’ㆍ‘허물 감추기’, 즉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재산과 명예의 손실을 볼까 두려워 감추려고 드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후회하며 열뇌하게 된다. 이것은 탐(貪)심소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b17║有義此
T31n1585_p0033b18║覆癡一分攝。論唯說此癡一分故。不懼當
T31n1585_p0033b19║苦覆自罪故。有義此覆貪癡一分攝。亦恐
T31n1585_p0033b20║失利譽覆自罪故。論據麁顯唯說癡分。
T31n1585_p0033b21║如說掉舉是貪分故。然說掉舉遍諸染心。
T31n1585_p0033b22║不可執為唯是貪分。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이 부심소는 치(癡)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논서에서 오직 이것은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247) 때문이다. 장래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자신의 죄를 덮어두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48) 이 부심소는 탐ㆍ치 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역시 이익과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해서 자신의 죄를 덮어두기 때문이다. 논서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에 의거해서 오직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이다. 도거(掉擧)심소를 탐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249) 그런데 도거심소는 모든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하므로, 집착해서 오직 탐심소의 일부분으로만 삼을 수 없다.
247)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고려대장경』 16, p.286下:『대정장』 31, p.698下).
248) 호법의 정의이다.
249) 『유가사지론』 제55권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등에서는, 부(覆)심소가 무지(無智)와 함께함으로써 명예를 잃을까 두려워 죄를 덮어 두는 것에 의거하여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이고, 사실은 탐심소의 일부분에도 있다. 예를 들면 도거(掉擧)심소는 실제는 별도로 자체[體]가 있지만, 탐(貪)의 모습이 증성하므로 탐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1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29n1558_p0109b29║於此所說十種纏
T29n1558_p0109c01║中無慚慳掉舉是貪等流。無愧眠惛沈是無
T29n1558_p0109c02║明等流。嫉忿是瞋等流。悔是疑等流。有說。覆
T29n1558_p0109c03║是貪等流。有說。是無明等流。有說。是俱等
T29n1558_p0109c04║流。有知無知如其次第。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1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이상에서 설한 열 종류의 전 중에서
무참과 ‘간’과 도거는 바로 탐의 등류(等流)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바로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바로 ‘진’의 등류이며,
‘회’는 바로 의(疑)의 등류이다.36)
그런데 [‘부’의 경우] 어떤 이는 ‘부’란 바로 탐의 등류라고 설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바로 무명의 등류라고 설하였다. 혹은 어떤 이는 설하기를, “두 가지 모두의 등류이니, 그 순서대로 앎이 있는 자와 앎이 없는 자가 바로 그러하다”고 하였다.37)
이와 같이 열 가지 종류의 전은 모두 번뇌로부터 생겨나는 번뇌의 등류이다. 그래서 그것을 ‘수번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36) 무참과 간과 도거는 탐을 직접적인 원인[近因]으로 하여야 비로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탐의 등류이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과 지극히 밀접하기 때문에 무명의 등류이며,
‘질’과 ‘분’은 그 상이 ‘진’과 동일하기 때문에 진의 등류이며,
‘회’는 유예(猶豫) 즉 망설임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의’의 등류이다.
37) 지식이 있는 자는 애(愛) 즉 탐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며, 무지한 자는 치(癡) 즉 무명에 의해 그것을 낳기 때문이다. 즉 학자나 관리와 같이 지식이 있는 자는 명리의 탐욕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며, 무지한 자는 참회할 줄 몰라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다. - ↑ "誑(광)",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誑(광)
【범】 śāṭhya 구사(俱舍)에서는 소번뇌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남을 의혹하게 하는 거짓 마음으로 명리를 얻으려는 생각에서 덕 없는 사람이 덕 있는 체하며, 나쁜 사람이 착한 것처럼 보이려는 마음의 작용. - ↑ "광[誑]",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광[誑]
산스크리트어 śāṭhya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남을 속이는 마음 작용. - ↑ "誑",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誑
梵語 śāṭhya。欺詐之意。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以種種手段迷惑他人之精神作用。據成唯識論卷六載,「誑」即為得利養而現矯德,以詭詐為性,能障不誑,以邪命為業。俱舍宗以之屬小煩惱地法之一,為實有之法;唯識宗則以之屬二十隨煩惱之一,謂誑以貪、癡之部分為體,係由貪、癡之一分而假立者,離此二者即別無誑之相用。〔俱舍論卷二十一、俱舍論光記卷二十一〕p7440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04║云何為
T31n1585_p0033c05║誑。為獲利譽矯現有德詭詐為性。能障
T31n1585_p0033c06║不誑邪命為業。謂矯誑者心懷異謀多現
T31n1585_p0033c07║不實邪命事故。此即貪癡一分為體。離二
T31n1585_p0033c08║無別誑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광(誑)심소’253)라고 하는가?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 교묘하게 덕이 있는 것처럼 보여서 속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속이지 않음[不誑]을 능히 장애하여 삿되게 살아가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교묘하게 속이는 사람은 마음에 다른 음모를 품고서, 대부분 진실치 못한 삿된 생계수단의 일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탐ㆍ치 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한다. 그 두 가지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광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3) 광(誑, śaṭya)심소는 ‘속임’, 즉 이익과 명예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덕이 있는 것처럼 꾸미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정직하지 못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탐(貪)심소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613_p0853b28║云何諂。謂矯設方便。隱己過惡。心曲為性。謂
T31n1613_p0853b29║於名利。有所計著。是貪癡分。障正教誨為業。
T31n1613_p0853c01║復由有罪。不自如實發露歸懺。不任教授。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아첨[諂]이라고 하는가?
자신의 과오를 감추고 방편을 교묘하게 세워 마음을 왜곡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명리에 대하여 계교를 부리고 집착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이는 탐욕과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바른 가르침과 꾸짖음을 막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또한 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여실하게 드러내어 참회하지 않고,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 "諂(첨)",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諂(첨)
【범】 Māya 심소(心所)의 이름.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또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 속마음을 숨기고, 겉으로 친애하는 듯이 구는 거짓된 정신 작용. - ↑ "첨[諂]",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첨[諂]
산스크리트어 māyā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남을 속이고 아첨하는 마음 작용. - ↑ "諂",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諂
梵語 māyā 之意譯。心所(心之作用)之名。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為網取他意,而無法如實顯表自己之精神作用。亦即心曲不真,將自己本心隱藏而對他人卻故意裝出順從之心理作用。與「討好」、「阿曲」、「諂曲」同義。即大乘廣五蘊論所謂(大三一‧八五三中):「矯設方便,隱己過惡,心曲為性,謂於名利,有所計著,是貪癡分,障正教誨為業。」又以諂所生之身、口、意業,稱為曲業。
在俱舍宗,此心所與少分染污法相應,隨根本煩惱而起,故為隨煩惱之一,小煩惱地法之一,六垢之一。與「誑」同為欲界及初地所繫,與諸受中之憂喜相應,而自在生起,故僅屬於「修所斷」。在唯識宗,為小隨惑之一,與貪、癡等,同屬於假有。然與苦受不相應。〔大毘婆沙論卷四十七、雜阿毘曇心論卷四、俱舍論卷四、卷二十一、成唯識論卷六、順正理論卷十一、卷五十四、顯揚聖教論卷一〕p7739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08║云何為諂。為網他故矯
T31n1585_p0033c09║設異儀險曲為性。能障不諂教誨為業。謂
T31n1585_p0033c10║諂曲者為網帽他曲順時宜矯設方便
T31n1585_p0033c11║為取他意或藏己失。不任師友正教誨
T31n1585_p0033c12║故。此亦貪癡一分為體。離二無別諂相用
T31n1585_p0033c13║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첨(諂)심소’254)라고 하는가? 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교묘하게 다른 행동을 보여서 진실하지 못하게 굽히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아첨하지 않음[不諂]과 가르침[敎誨]을 능히 장애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아첨해서 굽히는 사람은 남을 끌어들이기 위해 굽혀서 적절한 시기에 따라 교묘하게 방편을 시설해서 남의 마음을 잡거나, 혹은 자기의 과실을 감추기 위해 스승과 친구의 바른 가르침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탐ㆍ치 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그 두 가지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첨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4) 첨(諂, māya)심소는 ‘아첨’, 즉 자기 본심을 숨겨 두고서 남에게 거짓으로 순종하는 것처럼 위장하거나, 남에게 아첨해서 자기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심리작용이다. 탐(貪)심소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 ↑ 중현 조, 현장 한역(T.1563). 아비달마장현종론(阿毘達磨藏顯宗論) 제27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6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29n1563_p0907c17║心險心曲相差別者。如道如杖
T29n1563_p0907c18║於他於自。因貪因見故有差別。 - ↑ 중현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7, T.1563). 《아비달마장현종론》 제27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그리고 마음의 험악함(즉 誑)과 마음의 왜곡(즉 諂)의 차별상은 [이러하다]. [전자는 험악한] 길과 같고, [후자는 구불구불한] 지팡이와 같은 것으로, [전자가] 다른 이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신에 대한 것이고, [전자가] ‘탐’에 의한 것이라면, 후자는 ‘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양자 사이에는] 차별이 있는 것이다.80)
80) “즉 험한 길은 유정이 다른 처소로 나아가려고 할 때 능히 손해가 되고 장애가 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행자가 열반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마음이 ‘광(誑)’과 함께 하는 경우 능히 손해가 되고 장애가 되며, 구불구불한 지팡이는 비록 그 뿌리를 잘랐을지라도 빽빽한 숲에서 끌어내기가 어렵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이 결여되고 아첨의 왜곡[諂曲]을 가진 자는 비록 방편으로써 욕계의 뿌리를 잘랐을지라도 다시금 인접(引接)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다른 이를 홀려 미혹하게 하는 것을 일컬어 ‘광’이라고 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감추는 것을 일컬어 ‘첨’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광’은 ‘탐’의 등류이고, ‘첨’은 온갖 ‘견’의 등류이다.”(『순정리론』 제54권) - ↑ "憍(교)",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憍(교)
【범】 mada 범어 말타(末陀, mada)의 번역. 심소(心所)의 하나. 구사(俱舍) 75법의 하나. 유식(唯識) 백법의 하나. 남을 생각지 않고, 자기의 종성(種姓)ㆍ색력(色力)ㆍ재물ㆍ지위ㆍ지혜 등에만 집착하여 마음을 오만히 가지는 정신 작용. - ↑ "교[憍]",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교[憍]
산스크리트어 mada 자신이나 자신의 행위에 도취되어 일으키는 거만한 마음 작용. - ↑ "오만방자". 네이버 국어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오만방자하다 傲慢放恣하다 [오ː만방자하다] 형용사 어려워하거나 조심스러워하는 태도가 없이 건방지거나 거만하다. - ↑ "건방". 네이버 국어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건방 명사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잘난 체하거나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보듯이 하는 행동이나 태도. - ↑ "거만". 네이버 국어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거만 倨慢 [거ː만] 명사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기는 데가 있음. - ↑ "업신". 네이버 국어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업신여김 [업ː씬녀김] 명사 교만한 마음에서 남을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일. - ↑ "憍",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憍
梵語 mada,巴利語同。音譯末陀。心所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謂不對他人,而僅對自己之種性、色力、財位、智才等有所染著,使心高舉之精神作用。即對自己之長處產生傲慢自大之心理。反之,對他人心起高慢,則稱慢。依俱舍宗,憍乃小煩惱地法之一;於唯識宗,則為小隨煩惱之一,係以貪愛之一分為體,離貪而別無相用。成唯識論卷六(大三一‧三三下):「云何為憍?於自盛事,深生染著,醉傲為性。」又憍有八種:(1)盛壯憍,因元氣盛而具。(2)性憍,因血統尊貴而具。(3)富憍,因財物豐盈而具。(4)自在憍,因行為自由而具。(5)壽命憍,因己命長壽而具。(6)聰明憍,因世智辯聰而具。(7)行善憍,因利人善行而具。(8)色憍,因容貌端莊而具。〔大毘婆沙論卷四十二、卷四十三、俱舍論卷四、卷二十一、法華文句卷六〕p7613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16║云何為憍。於自盛
T31n1585_p0033c17║事深生染著醉傲為性。能障不憍染依為
T31n1585_p0033c18║業。謂憍醉者生長一切雜染法故。此亦貪
T31n1585_p0033c19║愛一分為體。離貪無別憍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교(憍)심소’257)라고 하는가? 자신의 번성한 일에 대해서 깊이 탐착심을 일으켜서 취하여 방자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방자하지 않음[不憍]을 능히 장애하여 잡염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방자하게 취한 사람은 모든 잡염법을 일으키고 증장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탐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탐심소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교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7) 교(憍, mada)심소는 ‘방자함’, ‘교만’, 즉 자신이 지닌 우월한 특성(미모ㆍ혈통ㆍ학식 등)에 도취되어 교만해지는 심리작용으로서, 이에 특별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탐(貪)심소의 일부분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29n1558_p0021c12║憍謂染著自法為先令心傲逸無所顧性。
T29n1558_p0021c13║有餘師說。如因酒生欣舉差別說名為醉。
T29n1558_p0021c14║如是貪生欣舉差別說名為憍。是謂慢憍差
T29n1558_p0021c15║別之相。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교’는 이를테면 먼저 자신의 법에 대해 염착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오만 방일[傲逸]하게 하여 다른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는 성질을 말한다.87)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술에 의해 생겨난 흔거(欣擧, 들떠 거들먹거리는 것)의 차별을 설하여 취한 것이라고 하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탐으로부터 생겨난 흔거의 차별을 설하여 ‘교’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다.88)
이상이 이를테면 ‘만’과 ‘교’의 차별상이다.
87) 즉 자신의 용감함이나 건강, 재산, 지위, 도덕규범[戒], 지혜, 친족 등의 존재[法]에 대해 먼저 염착을 일으킴으로써 마음에 오만 방일함이 생겨 온갖 선본(善本)을 되돌아보는 바가 없기 때문에, ‘교’라고 일컬은 것이다. 온갖 선본에 대해 되돌아보는 바가 없다고 함은, 마음이 오만해짐에 따라 온갖 선업을 즐거이 수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현종론』 권제6, 한글대장경200,p.152)
88) 이는 곧 염오의 희(喜)가 ‘교’라는 뜻으로, 유부 비바사사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는 제2선 이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교는 3계에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29n1558_p0021c09║如是已說尋伺差別。
T29n1558_p0021c10║慢憍別者。慢謂對他心自舉性。稱量自他德
T29n1558_p0021c11║類差別。心自舉恃[夌*欠]蔑於他故名為慢。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이와 같이 심과 사의 차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만(慢)과 교(憍)의 차별은 이러하다.
‘만’은 이를테면 타인에 대해 마음이 스스로 치켜세우는 성질[自擧性]을 말하니, 자신과 다른 이의 덕(德)의 차별을 재고 헤아려 마음이 스스로를 믿고 거들먹거리며[擧恃] 다른 이를 능멸하기 때문에 ‘만’이라고 일컬은 것이다.86)
86) 만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덕을 차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다시 일곱 가지가 있다. 즉 가문ㆍ재산ㆍ지위ㆍ용모ㆍ힘ㆍ지식ㆍ기예ㆍ지계(持戒) 등에 있어 자신보다 열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동등한 이에 대해 동등하다고 하는 만(慢), 자신과 동등한 이에 대해 자신이 더 뛰어나다 하고, 자기보다 더 뛰어난 이에 자기와 동등하다고 하는 과만(過慢),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하는 만과만(慢過慢), 오취온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아만(我慢), 예류과의 뛰어난 덕을 증득하지 못했으면서 증득했다고 여기는 증상만(增上慢), 가문 등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에 대해 자기가 조금 열등하다고 하는 비만(卑慢).,덕이 없으면서 자기에게 덕이 있다고 하는 사만(邪慢)이 그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613_p0853c06║云何害。謂於眾生。損惱為性。是瞋之分。損惱
T31n1613_p0853c07║者。謂加鞭杖等。即此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해침[害]이라고 하는가?
중생에 대하여 괴롭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이는 성냄의 일부분이다. 괴롭게 한다는 것은 채찍과 몽둥이로 때리는 것 등을 말한다. 즉 이러한 것 등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害(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害(해)
【범】 vihiṃsā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남을 해치며, 꾸짖는 정신 작용. - ↑ "해[害]",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해[害]
산스크리트어 vihiṃsā 남을 해치는 마음 작용. 자비롭지 않은 마음. - ↑ "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害
梵語 vihiṃsā。為心所之一。指欲損害他人之心,屬有部小煩惱地法之一,法相宗隨煩惱之一。與此相反之心,稱為不害(梵 ahiṃsā),即不損害他人之心,屬大善地法之一。(參閱「不害」1304)p5148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13║云何為害。於諸有情心無悲愍損惱為
T31n1585_p0033c14║性。能障不害逼惱為業。謂有害者逼惱他
T31n1585_p0033c15║故。此亦瞋恚一分為體。離瞋無別害相用
T31n1585_p0033c16║故。瞋害別相准善應說。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해(害)심소’255)라고 하는가? 모든 유정에 대해서 마음에 불쌍히 여기지 않고 손해를 끼치고 괴롭히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해롭게 하지 않음[不害]을 능히 장애하여 핍박함을 업으로 삼는다. 해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핍박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해(害)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진ㆍ해(害) 심소의 개별적인 모습은 선심소에 견주어서 말해야 한다.256)
255) 해(害, vihiṃsā)심소는 ‘해침’, 즉 모든 유정에게 연민의 정을 갖지 못하고, 손해를 입히며 괴롭히는 심리작용이다.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256) 진(瞋)심소는 열한 가지 선심소 중에서 무진(無瞋)심소를 장애하므로, 바로 자(慈)를 장애한다. 해(害)심소는 선의 심소 중에서 불해(不害)심소를 장애하므로, 바로 비(悲)를 장애한다. 또한 진(瞋)심소는 자주 남의 목숨을 괴롭히고 끊어 놓으며, 해(害)심소는 오직 남을 괴롭히는 작용을 한다. - ↑ "嫉(질)",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嫉(질)
【범】 īrṣyā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심리 작용. - ↑ "질[嫉]",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질[嫉]
산스크리트어 īrṣyā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 작용. - ↑ "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嫉
梵語 īrṣyā。乃心所(心之作用)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依俱舍宗之說,此心所(小煩惱地法之一)能引起某種特定之染污心,而唯識宗則歸之於隨煩惱之一。指對於他人之善、美等生起不悅之精神作用。〔成唯識論卷六、俱舍論卷二十一〕p6846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b26║云何為嫉。徇自
T31n1585_p0033b27║名利不耐他榮妬忌為性。能障不嫉憂
T31n1585_p0033b28║慼為業。謂嫉妬者聞見他榮深懷憂慼
T31n1585_p0033b29║不安隱故。此亦瞋恚一分為體。離瞋無別
T31n1585_p0033c01║嫉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질(嫉)심소’251)라고 하는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지나치게 구하여, 남의 영화를 참지 못하고 시기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질투하지 않음[不嫉]을 능히 장애하여 근심함을 업으로 삼는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영화를 보고 듣고서 깊이 근심을 품어 안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역시 진(瞋)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삼는다. 진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진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1) 질(嫉, īrṣyā)심소는 ‘질투’, 즉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워 다른 사람의 영화를 질투하는 심리작용이다. 진(瞋)심소의 일부분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제21권.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29n1558_p0109b24║嫉謂於他諸興盛事令心不喜。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1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질(嫉)’이란, 이를테면 타인의 온갖 흥하고 성한 일에 대해 마음으로 하여금 기뻐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613_p0853b22║云何慳。謂施相違。心悋為性。謂於財等。生悋
T31n1613_p0853b23║惜故。不能惠施。如是為慳。心遍執著利養眾
T31n1613_p0853b24║具。是貪之分。與無厭足。所依為業。無厭足
T31n1613_p0853b25║者。由慳悋故。非所用物。猶恒積聚。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아낌[慳]이라고 하는가?
베풂과 어긋나는 마음의 인색함을 성질로 한다. 재물 등에 대해서 아까워하고 인색하기 때문에 베풀 수가 없다. 이와 같은 것을 아낌이라고 한다. 마음이 생활에 도움을 주는 갖가지 도구 등에 늘 집착한다. 이는 탐욕의 일부분이다.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싫어하고 만족함이 없는 것이란 아끼고 인색하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물건을 미리 항상 쌓아둠을 말한다. - ↑ "慳(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慳(간)
【범】 mātsarya ; lobha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재간(財慳)ㆍ법간(法慳)이 있음. 집에 있어서는 재물을, 출가하여서는 교법을 아껴서 보시하지 못하는 정신 작용. - ↑ "간[慳]",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간[慳] 산스크리트어 mātsarya 인색함. 남에게 베풀지 않음. - ↑ "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慳
梵語 mātsarya。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對財施、法施慳吝之心理。俱舍宗以之為小煩惱地法、八纏、十纏、九結之一,認為慳乃貪之等流,別有實體;唯識宗則以之為隨煩惱之一,係以貪愛之一分為其體,離於貪則別無慳之相用。據成實論卷十雜煩惱品舉出五慳,即:住處慳、家慳、施慳、稱讚慳、法慳等,意指對住處、家宅、布施、稱讚、法義等心存獨占欲。此外,財慳、法慳即指吝於財物與教法而不願施捨,稱作二慳。又據大明三藏法數卷三十載,法慳之人有七種惡報,即生盲報、愚癡報、生惡家報、胎夭報、物恐報、善人遠離報、無惡不作報。〔大毘婆沙論卷五十、俱舍論卷二十一、成唯識論卷六、瑜伽師地論卷八十九、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p7298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01║云何為慳。耽著財法不能慧
T31n1585_p0033c02║捨祕悋為性。能障不慳鄙畜為業。謂慳悋
T31n1585_p0033c03║者心多鄙澁畜積財法不能捨故。此即貪
T31n1585_p0033c04║愛一分為體。離貪無別慳相用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간(慳)심소’252)라고 하는가? 재물과 법에 탐착해서 베풀지 못하고 감추고 아끼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인색하지 않음[不慳]을 능히 장애하여 비루하게 비축함을 업으로 삼는다.인색한 사람은 마음에 많이 비루하게 머뭇거리고, 재물과 법을 축적해서 능히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탐심소의 일부분을 자체로 한다. 탐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간심소의 체상과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252) 간(慳, mātsarya)심소는 ‘인색’, 즉 자신의 재산ㆍ가정ㆍ사회적 지위 나아가 수증과(修證果)를 지나치게 아까워하여, 남에게 베풀지 않고 몰래 감추어 두려는 심리작용이다. 이것은 탐(貪)심소의 일부분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613_p0853c08║云何為慚。謂所作罪。不自羞恥為性。一切煩
T31n1613_p0853c09║惱。及隨煩惱。助伴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이라고 하는가?
지은 죄에 대하여 스스로 수치스러워하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모든 번뇌와 번뇌를 뒤따르는 것[隨煩惱]의 도움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 ↑ "無慚(무참)",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無慚(무참)
【범】 āhrīkya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俱舍)에서는 대불선법(大不善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20수번뇌(隨煩惱) 중 중수혹(中隨惑)의 하나. 자기가 죄를 범하면서도 자신에 반성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내지 않는 것. - ↑ "무참[無慚]",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참[無慚]
자신의 죄나 허물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19║云何無
T31n1585_p0033c20║慚。不顧自法輕拒賢善為性。能障礙慚
T31n1585_p0033c21║生長惡行為業。謂於自法無所顧者輕
T31n1585_p0033c22║拒賢善不恥過惡。障慚生長諸惡行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무참(無慚)심소’258)라고 하는가? 259) 자신과 법을 돌아보지 않고 현인을 가볍게 여기고 선법(善法)을 거부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참(慚)심소를 장애하여 악행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자신과 법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현인을 가볍게 여기고 선법을 거부하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참심소를 장애하여 모든 악행을 일으키고 증장하기 때문이다.
258) 무참(無慚, āhrīkya)심소는 참(慚)의 반대 심소로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여 부끄러움을 내지 않으며, 현인과 선법을 경시하는 심리작용이다.
259) 다음에 두 가지 중수번뇌[中隨惑]의 체성과 업을 해설한다. - ↑ "無慚",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無慚
梵語 āhrīkya 或 ahrī。指做壞事不感羞恥。與「慚」對稱。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俱舍宗大不善地法之一,唯識宗隨煩惱之一。即對諸功德不崇敬,又對有德之師長忌難不服;或對己過無羞恥心。此法為欲界所繫,其性不善,為見、修所斷。又與一切之不善心相應而現起,故與無愧共攝於大不善地法。〔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六〕(參閱「慚愧」7301)p6456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613_p0853c10║云何無愧。謂所作罪。不羞他為性。業如無慚
T31n1613_p0853c11║說。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뉘우치지 않음[無愧]이라 하는가?
지은 죄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수치스러워하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업은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愧]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無愧(무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無愧(무괴)
【범】 anapatrāpya 심소(心所)의 이름. 구사종(俱舍宗)에서는 대불선법(大不善法)의 하나. 유식종(唯識宗)에서는 20수번뇌(隨煩惱) 가운데 중수혹(中隨惑)의 하나. 남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악한 짓을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이 없는 것. - ↑ "무괴[無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괴[無愧]
죄를 저지르고도 남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 작용.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작용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T31n1585_p0033c22║云
T31n1585_p0033c23║何無愧。不顧世間崇重暴惡為性。能障
T31n1585_p0033c24║礙愧生長惡行為業。謂於世間無所顧
T31n1585_p0033c25║者崇重暴惡不恥過罪。障愧生長諸惡行
T31n1585_p0033c26║故。不恥過惡是二通相。故諸聖教假說為
T31n1585_p0033c27║體。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무엇을 ‘무괴(無愧)심소’260)라고 하는가? 세간을 돌아보지 않고 포악함을 받들어 중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괴(愧)심소를 장애하여 악행을 일으키고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세간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포악함을 받들어 중히 여겨서 죄과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괴심소를 장애하여 여러 악행을 일으키고 증장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은 이 두 가지의 공통된 양상이다. 따라서 모든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가정적으로 말해서 자체로 삼는다.261)
260) 무괴(無愧, anapatrāpya)심소는 괴(愧)의 반대 심소로서, 남을 고려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고, 포악하거나 악덕인(惡德人)을 따르는 심리작용이다.
261) 여러 경론에서 무참(無慚)ㆍ무괴(無愧)심소의 자체를,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不恥]으로 설명하므로 여기서 그것을 회통하여 불치(不恥)는 이 두 가지 심소의 공통된 양상임을 밝힌다. - ↑ "無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6일에 확인:
無愧
梵語 anapatrāpya,或 atrapā。指做別人認為罪惡之事,而不感慚愧,亦不害怕。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與「愧」對稱。為俱舍宗大不善地法之一,唯識宗二十隨煩惱之一。即對現世、未來之惡報不生怖畏;或不顧世法而恣意暴惡,不生畏懼。此法為欲界所繫,其性唯不善,為見、修所斷。又與一切之不善心相應而現起,故與無慚共攝於大不善地法。〔成唯識論卷六、大毘婆沙論卷三十四、俱舍論卷四、卷二十一、品類足論卷一〕(參閱「慚愧」7301)p6454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T31n1613_p0853c18║云何不信。謂信所治。於業果等。不正信順。心
T31n1613_p0853c19║不清淨為性。能與懈怠。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무엇을 불신(不信: 믿지 않음)이라고 하는가?
신(信)의 마음작용에 의해 대치되는 것으로, 업과(業果: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등을 바르게 믿고 따르지 않게 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청정하지 않게 하는 것을 본질적 성질로 한다. 해태(懈怠: 게으름)의 마음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본질적 작용으로 한다.
{무엇을 믿지 않음[不信]이라고 하는가?
믿음에 대피하는 것으로 업과 과보 등에 대해서 바르게 믿거나 따르지 않고 마음이 청정하지 않은 것을 성질로 한다. 게으름[懈怠]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不信(불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不信(불신)
【범】Āśraddhya 심소(心所)의 이름.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마음으로 하여금 맑고 고요하지 못하게 하는 정신 작용. - ↑ "불신[不信]",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불신[不信]
믿지 않는 마음. 청정하지 않은 마음. - ↑ "不信",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不信
梵語 āśraddhya。乃心所之名。為七十五法之一,亦為百法之一。指內心污濁之精神作用。於四諦三寶等,未能忍許愛樂,自相渾濁,內心不澄淨,稱為不信。說一切有部視之與邪見相當,而相應於一切染污心,故為十大煩惱地法所攝。唯識家則以之為八大隨惑之一。〔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六、品類足論卷三、大乘廣五蘊論〕(參閱「信」4691)p1299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T31n1585_p0034b04║云何不信。
T31n1585_p0034b05║於實德能不忍樂欲心穢為性。能障淨信
T31n1585_p0034b06║惰依為業。謂不信者多懈怠故。不信三相
T31n1585_p0034b07║翻信應知。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무엇이 ‘불신(不信)심소’279)인가? 참다운 존재[實]ㆍ덕[德]ㆍ능력[能]에 대해서 인정하거나 즐거워하거나 욕구하지 않고, 심왕을 더럽히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청정한 믿음을 장애하여 게으름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믿지 않는 사람은 게으름이 많기 때문이다. 불신의 세 가지 행상은 신(信)심소를 정반대로 뒤집어서 알아야 한다.
279) 불신(不信, aśraddhā)심소는 신(信)의 반대 심소로서, 믿음을 장애하여 심왕을 오염케 하는 심리작용이다. 그리하여 해태(懈怠)심소가 생겨나게 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19║云何懈怠?
T31n1612_p0849b20║謂精進所治,於諸善品心不勇猛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해태(懈怠)인가. 이는 정진으로 대치되는 것이니, 여러 선품에 대해 마음이 용맹스럽지 않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T31n1613_p0853c20║云何懈怠。謂精進所治。於諸善品。心不勇進
T31n1613_p0853c21║為性。能障勤修眾善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무엇을 해태(懈怠)라고 하는가?
정진에 대치하는 것으로 모든 선한 종류의 것들에 대해서 마음이 용감하게 정진하지 않는 것을 성질로 한다. 갖가지 선을 근면하게 닦는 것을 막아버림을 행동 양식으로 한다. - ↑ "懈怠(해태)",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懈怠(해태)
【범】 kausīdya 줄여서 태(怠)라고도 함. 75법(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게으름. 좋은 일을 앞에 두고도 게을러서 용감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정신 작용. - ↑ 가 나 다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T31n1585_p0034b11║云何懈
T31n1585_p0034b12║怠。於善惡品修斷事中懶惰為性。能障精
T31n1585_p0034b13║進增染為業。謂懈怠者滋長染故。於諸
T31n1585_p0034b14║染事而策勤者亦名懈怠。退善法故。於無
T31n1585_p0034b15║記事而策勤者於諸善品無進退故是欲
T31n1585_p0034b16║勝解。非別有性。如於無記忍可樂欲非淨
T31n1585_p0034b17║非染無信不信。 - ↑ 가 나 다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무엇이 ‘해태(懈怠)심소’284)인가? 선품(善品)을 닦고 악품을 끊는 일에 대해서 게으른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정진을 장애하여 잡염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게으른 사람은 잡염법을 증장하기 때문이다. 모든 잡염법의 일에 대해서 부지런히 책려하는 것도 역시 해태 심소라고 이름한다. 선법을 퇴전시키기 때문이다. 무기의 일에 대해서 부지런히 책려하는 것은 모든 선품에 대해서 나아가게도 물러나게도 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욕(欲)ㆍ승해(勝解) 심소가 되며, 별도로 체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무기에 대해서 인정하고 즐거워하고 욕구하는 것이 청정도 잡염도 아니므로 신(信)심소도 아니고 불신심소도 아닌 것과 같다.
284) 해태(懈怠, kausīdya)심소는 ‘게으름’의 심리로서 근(勤)심소의 반대이다. 선을 닦지 않고 악을 방지하지 않는다. 당장은 안락하지만 결국 자신을 망치게 된다. 성불을 향한 수행을 장애한다. - ↑ "懈怠",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7일에 확인:
懈怠
梵語 kausīdya,巴利語 kusīta。又作怠。心所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為「勤」之對稱。即指懶惰之狀態。除意謂不積極修善行之精神作用外,並有積極行惡之含義。成唯識論卷六(大三一‧三四中):「云何懈怠?於善惡品修斷事中,懶惰為性,能障精進,增染為業。謂懈怠者滋長染,故於諸染事而策勤者,亦名懈怠。」
據菩薩本行經卷上載,懈怠為眾行之累,居家而懈怠者,則衣食匱乏,產業不舉;出家而懈怠者,則不能出離生死。俱舍宗視懈怠為遍通於一切污心(不善心與有覆無記心)所起心所(即大煩惱地法)之一;唯識宗則以此為二十隨煩惱之一。二宗俱以懈怠有其別體,為勤(即精進)所對治。〔俱舍論卷四、阿毘達磨順正理論卷十一、俱舍論光記卷四、成唯識論述記卷六下、釋氏要覽卷中〕p7809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0║云何
T31n1612_p0849b21║放逸?謂即由貪瞋癡懈怠故,於諸煩惱心不
T31n1612_p0849b22║防護,於諸善品不能修習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방일(放逸)인가. 이는 곧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고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모든 번뇌를 방지하지 못하고, 모든 선품을 능히 닦지 못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3_p0853c22║云何放逸。謂依貪瞋癡懈怠故。於諸煩惱。心
T31n1613_p0853c23║不防護。於諸善品。不能修習為性。不善增長。
T31n1613_p0853c24║善法退失。所依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을 방일(放逸)이라고 하는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 의거하여 게으르기 때문에 모든 번뇌에 대해서 마음을 막지 않고, 모든 선한 종류의 다음 씀씀이에 대해서 닦아 익히지 않음을 성질로 한다. 선하지 않은 것이 늘어나고, 선한 법은 잃어버리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放逸(방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放逸(방일)
【범】pramāda 심소(心所)의 이름.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인간으로서 해야 할 착한 일이나, 방지해야 할 악한 일을 뜻에 두지 않고, 방탕하고 함부로 하는 정신 작용을 말함. - ↑ "방일[放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방일[放逸]
선(善)을 닦지 않는 게으른 마음. 수행을 게을리 하는 마음. - ↑ "放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放逸
梵語 pramāda。心所(心的作用)之名。略稱逸。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放縱欲望而不精勤修習諸善之精神狀態。俱舍宗謂放逸係與一切染污心(不善心與有覆無記心)相應而起之心所,係屬大煩惱地法;唯識宗謂此屬八大隨惑之一。反之,防杜諸惡而專注於修善之精神作用,稱為不放逸。俱舍宗以不放逸為一切善心生起的心所,係屬大善地法;唯識宗亦以之為善心所。〔成唯識論卷六、品類足論卷三、入阿毘達磨論卷上、順正理論卷十一〕(參閱「大隨煩惱」1189)p4118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b17║云何放逸。於染淨品不能
T31n1585_p0034b18║防修縱蕩為性。障不放逸增惡損善所依
T31n1585_p0034b19║為業。謂由懈怠及貪瞋癡不能防修染淨
T31n1585_p0034b20║品法。總名放逸。非別有體。雖慢疑等亦有
T31n1585_p0034b21║此能。而方彼四勢用微劣障三善根遍策
T31n1585_p0034b22║法故。推究此相如不放逸。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이 ‘방일(放逸)심소’285)인가? 잡염품을 방지할 수 없거나 청정품을 닦을 수 없고 방탕하게 흐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불방일을 장애하여 악을 증장하고 선법을 훼손하는 것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해태ㆍ탐ㆍ진ㆍ치 심소 때문에 잡염품을 방지하거나 청정품의 법을 닦을 수 없는 것을 총체적으로 방일이라고 이름하고, 별도로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慢)ㆍ의(疑) 심소 등도 역시 이런 작용이 있지만, 그 네 가지286)에 비해서 세력이 미약하고 세 가지 선근287)과 정진[遍策]의 법을 장애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인식활동을 추정하는 것은 불방일 심소와 같다.
285) 방일(放逸, pramāda)심소는 흐트러진 심리로서 선행을 하고 악행을 방지할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방탕하며 함부로 행동하려는 심리이다. 이것은 해태ㆍ탐ㆍ진ㆍ치 심소의 일부분으로서 따로 체(體)가 없다.
286) 해태ㆍ탐ㆍ진ㆍ치 심소를 가리킨다.
287) 무탐(無貪)ㆍ무진(無瞋)ㆍ무치(無癡) 심소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16║云何惛沈?
T31n1612_p0849b17║謂心不調暢無所堪能蒙昧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혼침(惛沈)인가. 마음이 순조롭고 화창하지 못하여 감당할 능력이 없어 무지몽매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3_p0853c12║云何昏沈。謂心不調暢。無所堪任。蒙昧為
T31n1613_p0853c13║性。是癡之分。與一切煩惱。及隨煩惱。所依為
T31n1613_p0853c14║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을 혼침(昏沈)이라고 하는가?
마음을 조절하여 누그러지지 않아 감당할 수 없는 몽매(夢昧)한 것을 성질로 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모든 번뇌와 번뇌를 뒤따르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惛沉(혼침)",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惛沉(혼침)
【범】 styāna 75법의 하나. 또 100법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마음으로 하여금 어둡고 답답하게 하는 정신 작용. - ↑ "혼침[惛沈]",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혼침[惛沈]
산스크리트어 styāna 혼미하고 침울한 마음 상태.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19║云何惛沈。令心於境無堪
T31n1585_p0034a20║任為性。能障輕安毘鉢舍那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이 ‘혼침(惛沈)심소’272)인가? 심왕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서 자재하지 못하게[無堪任]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경안과 위빠사나[毗鉢舍那]273)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는다.
272) 혼침(惛沈, styāna)심소는 인식상황 속에서 심왕을 어둡고 답답하게 하는 심리 작용이다. 그리하여 경안(輕安)과 위빠사나를 장애한다.
273) 위빠사나[毗鉢舍那, vipayan]는 관(觀)으로 번역한다. 미세하고 분명하게 식별하는 것을 말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20║有義惛
T31n1585_p0034a21║沈癡一分攝。論唯說此是癡分故。惛昧沈重
T31n1585_p0034a22║是癡相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74) 혼침은 치(癡)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논서에서 오직 이것은 치심소의 부분이라고 말하기275) 때문이다. 혼미하고 어두워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 치심소의 인식활동이기 때문이다.
274)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75)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22║有義惛沈非但癡攝。謂無堪任是
T31n1585_p0034a23║惛沈相。一切煩惱皆無堪任。離此無別惛沈
T31n1585_p0034a24║相故。雖依一切煩惱假立而癡相增但說
T31n1585_p0034a25║癡分。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76) 혼침은 다만 치심소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자재하지 못한 것이 혼침의 인식활동이고, 모든 번뇌심소는 다 자재하지 못하며, 이것에서 떠나서는 별도로 혼침의 인식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번뇌에 의거해서 가립하지만, 치심소의 인식활동이 증성하므로 다만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만 말한다.
276)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26║有義惛沈別有自性。雖名癡分而是等流。
T31n1585_p0034a27║如不信等非即癡攝。隨他相說名世俗有。
T31n1585_p0034a28║如睡眠等是實有性。惛沈別相。謂即瞢重。
T31n1585_p0034a29║令俱生法無堪任故。若離煩惱無別惛沈
T31n1585_p0034b01║相。不應別說障毘鉢舍那。故無堪任非此
T31n1585_p0034b02║別相。此與癡相有差別者。謂癡於境迷闇
T31n1585_p0034b03║為相。正障無癡而非瞢重。惛沈於境瞢
T31n1585_p0034b04║重為相。正障輕安而非迷闇。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77) 혼침은 별도로 체성이 있다. 치심소의 부분이라고 이름하지만, 이것은 등류이기 때문에 불신 등처럼 곧 치심소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것의 인식활동[行相]에 따라서 세속유라고 이름하니, 수면(睡眠) 등과 같이 이것은 실유의 속성이다. 혼침의 개별적인 인식활동이란, 곧 답답하게 무거운 것을 말한다. 함께 일어나는 법278)으로 하여금 자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번뇌심소에서 떠나서 별도로 혼침심소의 인식활동이 없다고 말하면, 별도로 혼침이 위빠사나[觀]를 장애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자재하지 못한 것은, 이것의 개별적인 행상은 아니다. 이것이 치(癡)심소의 인식활동과 차이가 있다고 말하면, 치심소는 대상에 대해서 미혹하고 어두운 것을 인식활동으로 하고, 바로 무치(無癡)심소를 장애하지만 답답하게 무거운 것은 아니다. 혼침은 대상에 대해서 답답하게 무거운 것을 인식활동으로 하고, 바로 안(安)심소를 장애하지만 미혹하고 어두운 것은 아니다.
277) 제3사(第三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78) 심왕과 심소법을 말한다. - ↑ "惛沉",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惛沉
梵語 styāna,巴利語 thīna。又作昏沉、惛、昏。指使身心沉迷、昏昧、沉鬱、鈍感、頑迷,而喪失進取、積極活動之精神作用。俱舍宗以惛沉為大煩惱地法之一,為引生一切染污心(不善心與有覆無記心)之心所;唯識宗則納為二十種隨煩惱之一,就其體性之假實問題而言,歷來有各種異說,然諸說中,以「惛沉之體性另有別體」之說法為正統說法。此心所以癡為根本而生起,癡以迷闇為性,故此心所以瞢重為性。屬十纏之一。與睡眠合為「惛沉睡眠蓋」,為五蓋之一。禪家以此為禪之障礙,比喻如黑暗塵坑、無明山鬼窟、蝦蟆窟裏,乃五十禪魔之一。〔成唯識論卷六、大毘婆沙論卷三十七、俱舍論卷四〕(參閱「五蓋」1563)p5766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17║云何掉舉?
T31n1612_p0849b18║謂心不寂靜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도거(掉擧)인가. 마음이 고요하지 못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3_p0853c15║云何掉舉。謂隨憶念喜樂等事。心不寂靜為
T31n1613_p0853c16║性。應知憶念先所遊戲歡笑等事。心不寂靜。
T31n1613_p0853c17║是貪之分。障奢摩他為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을 도거(掉擧)라고 하는가?
기억과 생각의 기쁘고 즐거운 등의 일에 따라서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것을 성질로 한다. 과거의 유희와 기쁨, 웃음 등의 일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마음이 고요하지 않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사마타(奢摩他)를 막는 것을 행동양식으로 삼는다. - ↑ "掉擧(도거)",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掉擧(도거)
심소(心所)의 이름. 대번뇌지(大煩惱地)의 하나.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정신을 머트럽고 딴 데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의 작용. 모든 번뇌가 안정되지 않는 것은 이 도거하는 마음 때문이라 함. - ↑ "도거[掉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도거[掉擧]
산스크리트어 auddhatya 들뜨고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
동의어: 도기(掉起) - ↑ "掉舉",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掉舉
梵語 auddhatya,巴利語 uddhacca。心所名。指心浮動不安之精神作用,為「惛沉」之對稱。俱舍宗以此心所屬大煩惱地法之一,十纏之一;唯識宗則以之為隨煩惱之一。此外,惡作與掉舉合稱掉悔蓋,為五蓋之一。就此心所之所障,有部及阿毘達磨雜集論、成唯識論皆以之障定;經部及瑜伽師地論之說,則以之障慧。又於發智論卷二、大毘婆沙論卷三十七論中,心之掉舉、惡作,就相應、不相應之關係分為四種,即心雖掉舉與惡作不相應、心雖有惡作與掉舉不相應、心有掉舉亦與惡作相應、心無掉舉亦與惡作不相應。又大毘婆沙論卷四十二,以掉舉、心亂恆展轉相應,關於其體之異同,有諸種說法。〔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六〕(參閱「惛沉」5766、「隨煩惱」7963)p5771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07║云何掉舉。令心於境不
T31n1585_p0034a08║寂靜為性。能障行捨奢摩他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이 ‘도거(掉擧)심소’266)인가? 심왕으로 하여금 대상에 대해서 고요하지 않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행사(行捨)와 사마타(奢擧他)267)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는다.
266) 도거(掉擧, auddhatya)심소는 ‘들뜸’, 즉 심왕을 들뜨게 하여 어수선하며, 고요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행사(行捨)심소와 사마타를 장애한다.
267) 사마타(奢摩他, amatha)는 지(止)ㆍ적정(寂靜)ㆍ지식(止息) 등으로 번역한다. 심왕을 거두어 연(緣)에 안주하여 산란을 떠난 것을 말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08║有義掉
T31n1585_p0034a09║舉貪一分攝。論唯說此是貪分故。此由憶
T31n1585_p0034a10║昔樂事生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도거심소는 탐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논서에서 오직 이것은 탐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268)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의 즐거웠던 일을 생각함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268)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등.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10║有義掉舉非唯貪攝。論說掉
T31n1585_p0034a11║舉遍染心故。又掉舉相謂不寂靜。說是煩
T31n1585_p0034a12║惱共相攝故。掉舉離此無別相故。雖依一
T31n1585_p0034a13║切煩惱假立。而貪位增說為貪分。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도거심소는 오직 도거심소에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논서에서 도거심소는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하기269) 때문이다. 또한 도거심소의 인식활동[行相]은 적정(寂靜)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것이 번뇌의 공상(共相)에 포함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도거심소는 이것에서 떠나서 별도의 인식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번뇌에 의거해서 가립하지만, 탐욕에서 증장하므로 탐심소의 일부분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269)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6권(『고려대장경』 16, p.324中:『대정장』 31, p.723上), 『유가사지론』 제58권(『고려대장경』 15, p.965下:『대정장』 30, p.622中).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a13║有義掉舉
T31n1585_p0034a14║別有自性。遍諸染心如不信等非說他
T31n1585_p0034a15║分體便非實。勿不信等亦假有故。而論說
T31n1585_p0034a16║為世俗有者。如睡眠等隨他相說。掉舉別
T31n1585_p0034a17║相謂即囂動。令俱生法不寂靜故。若離煩
T31n1585_p0034a18║惱無別此相不應別說障奢摩他。故不
T31n1585_p0034a19║寂靜非此別相。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도거심소는 별도로 체성이 있어야 한다. 모든 잡염심에 두루하기 때문에, 불신 등처럼 다른 것의 일부분이라고 말함으로써 도거심소 자체가 문득 실유가 아닌 것은 아니다. 불신 등도 역시 가유라고 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서에서 세속유라고 말한 것270)은 수면(睡眠) 등처럼 다른 것의 인식활동에 따라 말한 것이다. 도거심소의 개별적인 양상이란, 시끄럽게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함께 일어나는 법271)으로 하여금 적정치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번뇌에서 떠나서 별도의 이 양상이 없다고 말하면, 별도로 사마타[止]를 장애한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적정하지 않은 것은 이것의 개별적인 인식활동은 아니다.
270)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271) 함께 일어나는 심왕ㆍ심소법을 가리킨다. - ↑ 가 나 다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02_p0483a04║不正知者。謂於身語意行不正了住染污慧
T31n1602_p0483a05║為體。能障正知為業。乃至增長不正知為業。
T31n1602_p0483a06║如經說有失念者住不正知。乃至廣說。 - ↑ 가 나 다 세친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부정지(不正知)145) 심소는 몸ㆍ말ㆍ의지의 행동에 대하여 바르게 알지 못함에 머물러서 지혜를 오염시키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바르게 아는 것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바르게 알지 못함[不正知]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실념(失念)이 있는 이는 부정지에 머물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45) 부정지(不正知, asamprajñānya) 심소는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정지(正知)를 장애한다. 이것은 혜(慧)ㆍ치(痴) 심소의 일부분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3_p0854a01║云何不正知。謂煩惱相應慧。能起不正身語
T31n1613_p0854a02║意行為性。違犯律行所依為業。謂於去來等。
T31n1613_p0854a03║不正觀察故。而不能知應作不應作。致犯律
T31n1613_p0854a04║儀。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을 부정지(不正知)라고 하는가?
번뇌와 상응하는 지혜로 바르지 못한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행위를 일으키는 것을 성질로 한다. 계율을 어기는 것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가고 오는 것 등에 대해서 바르게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여 계율을 어기게 된다. - ↑ "不正知(부정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不正知(부정지)
20수번뇌(隨煩惱)의 하나. 대경(對境)에 향하여 잘못된 견해를 일으키는 정신 작용. - ↑ "부정지[不正知]",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부정지[不正知]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마음 작용. - ↑ "不正知",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不正知
梵語 a-saṃprajanya。心所(心之作用)之名。指誤解所觀之境之精神作用。即不符合佛教教義之認識。以此心所遍滿一切染心,故說一切有部將之攝屬十大煩惱地法;於唯識宗,以其為八大隨惑之一,並認為不正知既以障蔽正知之故,易於毀犯為業,故有敗壞戒律之作用;俱舍宗則視其為被煩惱所污之智慧,故不認為是獨立之心所。又瑜伽師地論卷五十五以之為「癡」之一部分。〔大毘婆沙論卷四十二、卷四十三、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六〕p1280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4║云何不正知?謂於
T31n1612_p0849b25║身語意現前行中不正依住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부정지(不正知)인가. 몸과 업과 뜻이 현전에 행해지는 가운데 바르게 의지하여 머물지 못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4║云何不正知。
T31n1585_p0034c15║於所觀境謬解為性。能障正知毀犯為業。
T31n1585_p0034c16║謂不正知者多所毀犯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이 ‘부정지(不正知)심소’306)인가? 관찰되는 대상에 대해서 그릇되게 이해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르게 아는 것[正知]을 장애하여 계율 등을 훼범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은 훼범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306) 부정지(不正知, asamprajñānya)심소는 대상을 잘못 이해하는 심리작용으로서 정지(正知)를 장애한다. 혜(慧)와 치(癡)심소의 일부분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7║有義不正知慧一分攝。說是煩惱相應慧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07) 부정지는 혜(慧)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이것이 번뇌와 상응하는 혜(慧)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307)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8║有義不正知癡一分攝。瑜伽說此是癡分故。
T31n1585_p0034c19║令知不正名不正知。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08) 부정지는 치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유가사지론』에서 이것은 치심소의 부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바르지 않게 하는 것을 부정지(不正知)라고 이름한다.
308)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9║有義不正知俱一分
T31n1585_p0034c20║攝。由前二文影略說故。論復說此遍染心
T31n1585_p0034c21║故。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9║有義不正知俱一分
T31n1585_p0034c20║攝。由前二文影略說故。論復說此遍染心
T31n1585_p0034c21║故。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09) 부정지는 두 가지[俱]310)의 일부분에 포함되다. 앞에서 인용한 두 문장에서 그림자처럼 생략해서 말했기 때문이다. 논서에서 다시 이것이 잡염심에 두루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309) 호법의 정의이다.
310) 혜(慧)와 어리석음[癡]의 심소를 말한다.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02_p0482c29║心亂者。謂於所修善心不喜樂為依止故馳
T31n1602_p0483a01║散外緣為體。能障等持為業乃至增長心亂
T31n1602_p0483a02║為業。如經說若於五欲其心散亂流轉不息。
T31n1602_p0483a03║乃至廣說。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심란(心亂)144) 심소는 닦아야 할 선(善)에 대해서 마음에 기뻐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의지(依止)로 삼음으로써 외부 반연에 치달리고 흩어지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등지(等持)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마음 산란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약 5욕(欲)에 대해서 그 마음이 산란되면 유전(流轉)하여 쉬지 않으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44) 심란(心亂, vikṣepa) 심소는 ‘산란’ 즉 심왕으로 하여금 갖가지 대상을 향해 치달리게 하고 흩뜨리는 심리작용으로서, 바른 선정을 장애하고 악혜(惡慧)를 생겨나게 한다. - ↑ "散亂(산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散亂(산란)
심란(心亂)이라고도 함. 우리의 대경이 변하여, 마음이 고정하기 어려움. 따라서 도거(悼擧)는 대경은 변치 아니하나, 견해에 여러 갈래를 내므로, 마음이 고정하지 못함을 말함.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3_p0853c28║云何散亂。謂貪瞋癡分。令心心法流散為性。
T31n1613_p0853c29║能障離欲為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을 산란(散亂)이라고 하는가?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일부분씩 있고, 심(心)과 심법(心法)으로 하여금 산란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을 성질로 삼는다. 욕심을 떠남[離欲]을 막아 버림을 행동양식으로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3║云何散亂?
T31n1612_p0849b24║謂貪瞋癡分心流蕩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어떤 것이 산란(散亂)인가.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음이 마음을 분리시켜 유전하고 방탕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산란[散亂]",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산란[散亂]
산스크리트어 vikṣepa 흐트러지고 어지러운 마음 상태.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b28║云
T31n1585_p0034b29║何散亂。於諸所緣令心流蕩為性。能障正
T31n1585_p0034c01║定惡慧所依為業。謂散亂者發惡慧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무엇이 ‘산란(散亂)심소’295)인가? 모든 인식대상에 대해서 심왕을 방탕하게 흐르게 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정(定)심소를 장애하여 악혜(惡慧)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산란한 사람은 악혜(惡慧)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295) 산란(散亂, vikṣepa)심소는 심왕을 갖가지 대상으로 치달리게 하고 흩뜨려서, 정정(正定)을 장애하고 악혜(惡慧)를 일으킨다. - ↑ "散亂",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散亂
梵語 vikṣepa。心所之名。又作散動、心亂。即心於所緣之境流蕩散亂之精神作用。亦即心若無一定,則起障礙正定的惡慧之作用。為唯識百法之一,隨煩惱之一。大乘廣五蘊論(大三一‧八五三下):「云何散亂?謂貪、瞋、癡分,令心、心法流散為性,能障離欲為業。」諸論書就其體之假實有異說,其一依瑜伽師地論卷五十五之說,散亂僅攝於癡分;其二依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之說,則攝於貪瞋癡三種,二義皆以散亂無別體。然就護法之主張,認為散亂另有其自體。據梁譯攝大乘論釋卷九載,心之散亂,係由棄捨障、遠離障、安受障、數治障等四障而起。
有關散亂之種類,諸經論記載不同。(1)據大乘莊嚴經論卷八列舉二種散亂:①下意散亂,欣求小乘而昧於大乘之散亂。②分別散亂,即對「三輪」生起分別思慮之散亂。
(2)梁譯攝大乘論卷九列舉五種散亂:①自性散亂,謂眼、耳等五識不守自性,隨逐外境,念念變異之散動。②外散亂,謂意識馳動,隨逐外塵而起種種之分別。③內散亂,謂心生高下,念念變化不定。④麤(粗)重散亂,謂執著我、我所(屬於我所有之色身、財宅、眷屬等)而起。⑤思惟散亂,謂菩薩捨離大乘,思惟小乘而起之心所,不得寂靜。又於六門教授習定論亦舉有外心散亂、內心散亂、邪緣心散亂、麤重心散亂、作意心散亂等五種散亂,其義略同上記所述。
(3)顯揚聖教論卷十八、辯中邊論卷下、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列舉六種散亂:①作意心散亂,又作思惟散動。②外心散亂,又作外緣散動。③內心散亂,又作內散動。④相心散亂,又作相散動,謂行偽善而內心不安。⑤麤重心散亂,又作麤惑散動。⑥自性心散亂,又作自性散動。
(4)攝大乘論本卷中列舉十種散動:①無相散動,又作無有相散動,謂執著無相。②有相散動,謂執著有相。③增益散動,謂執著以有增益無所有。④損減散動,謂執著以無損減實有。⑤一性散動,又作一執散動,謂執著依他分別即是空。⑥異性散動,又作異執散動,謂執著色、空有異。⑦自性散動,又作通散動,謂執著色為「有礙」。⑧差別散動,又作別散動,謂執著色有生、滅、染、淨等差別。⑨如名取義散動,又作如名起義散動,謂執著名如義。⑩如義取名散動,又作如義起名散動,謂如義於名而起舊執。〔梁譯攝大乘論釋卷五、攝大乘論釋卷四(無性)、大乘百法明門論、成唯識論卷四、成唯識論述記卷六末、百法問答鈔卷一〕p6267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02║有義散亂癡一分攝。瑜伽說此是癡分故。有
T31n1585_p0034c03║義散亂貪瞋癡攝。集論等說是三分故。說
T31n1585_p0034c04║癡分者遍染心故。謂貪瞋癡令心流蕩勝
T31n1585_p0034c05║餘法故說為散亂。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96) 산란은 치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 『유가사지론』에서 이것이 치심소의 부분이라고 말하기297)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298) 산란은 탐ㆍ진ㆍ치 심소에 포함된다. 『집론』 등에서 이것이 세 가지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299) 때문이다.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만 말한 것은 잡염심에 두루하기 때문이다.300) 탐ㆍ진ㆍ치 심소가 심왕을 방탕하게 흐르게 하는 것이 다른 법301)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산란이라고 말한다.
296)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97)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298)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299)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고려대장경』 16, p.214中:『대정장』 31, p.665中), 『대승광오온론』(『고려대장경』 17, p.669中:『대정장』 31, p.665中).
300) 『유가사지론』 제55권에서 말한 내용을 회통한다.
301) 만(慢)심소 등을 가리킨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06║有義散亂別有自體。說三分者是彼等流。
T31n1585_p0034c07║如無慚等非即彼攝。隨他相說名世俗有。
T31n1585_p0034c08║散亂別相謂即躁擾。令俱生法皆流蕩故。
T31n1585_p0034c09║若離彼三無別自體。不應別說障三摩
T31n1585_p0034c10║地。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02) 산란은 별도로 자체가 있다. 세 가지의 일부분이라고 말한 것은 이것이 그것의 등류이기 때문이고, 무참(無慚) 등처럼 곧 그것303)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304) 다른 것의 인식활동에 따라서 세속유라고 이름한다. 산란의 개별적인 인식활동은 조급하고 어지러운 것을 말한다. 함께 일어나는 법으로 하여금 모두 방탕하게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세 가지에서 떠나서 별도의 자체가 없다고 말하면, 별도로 삼마지(三摩地)305)를 장애한다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302) 호법의 정의이다.
303) 탐ㆍ진ㆍ치 심소를 가리킨다.
304) 앞에서 인용한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등의 내용을 회통한다.
305) 삼마지(三摩地, samdhi)는 등지(等持)로 번역한다. 선정을 닦아서 마음을 한 대상에 안주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을 말한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6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T31n1585_p0034c10║掉舉散亂二用何別。彼令易解此令易
T31n1585_p0034c11║緣。雖一剎那解緣無易。而於相續有易
T31n1585_p0034c12║義故。染污心時由掉亂力常應念念易解
T31n1585_p0034c13║易緣。或由念等力所制伏如繫猨猴。有
T31n1585_p0034c14║暫時住故。掉與亂俱遍染心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6권. 2022년 7월 18일에 확인:
도거와 산란의 둘의 작용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도거)은 이해[解]를 바뀌게 하고, 이것(산란)은 연(緣)을 바뀌게 한다. 한 찰나에는 이해와 연(緣)을 바뀌게 하는 일이 없지만, 그러나 상속함에 있어서는 바꾸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염오심의 시기에는 도거와 산란의 세력에 의해서 항상 생각마다 이해를 바꾸고 연(緣)을 바꾸어야 한다. 혹은 염(念)심소 등의 세력에 의해서 억제되고 조복되는 것이 마치 원숭이를 묶어 놓은 것과 같아서 잠시 안주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도거와 산란 심소는 함께 잡염심에 두루한다. - ↑ "四不定",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四不定
唯識宗所立六位心所之第六。異於前五位之心所,係隨應於善、染等而不定之悔、眠、尋、伺等四心所。即:(1)悔,即追悔之意。又作惡作( 梵 kaukṛtya)。惡,即嫌惡之意;作,指所作之業。謂嫌惡先前所作之業而後追悔之,或追悔先前之不作,從而其心不定,以致障礙「止」之業,均稱為悔。(2)眠(梵 middha),即睡眠之意。謂能使身不得自在,心神昧略,從而其智不明,以致障礙「觀」之業。就悔、眠之體而言,諸論雖有異說,但此二心所與其他心所之行相有別,故各有其體,乃為正義。(3)尋(梵 vitarka),即尋求之意。謂心忽爾在第六識之境,對諸法之名義等予以粗猛推求。(4)伺(梵 vicāra),即伺察之意。謂心忽爾在第六識之境,對境予以微細伺察。此二者於推求外境之際,若與心相違,則身心不安;若順益,或既不相違亦不順益,則身心安穩。又俱舍論卷四與瑜伽師地論卷五十八則除此四項之外,另加貪、瞋、慢、疑等四項,共為八不定地法。〔成唯識論卷七、成唯識論述記卷七本〕p2162 - ↑ "不定地法(부정지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不定地法(부정지법)
심소(心所) 6품(品)의 하나. 그 성질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어서 널리 선ㆍ악ㆍ무기(無記) 3성에 통하면서도, 또한 대지법(大地法)과 같이 일체 마음에 반드시 수반(隨伴)하여 일어나는 것은 아닌 마음 작용의 총칭. 심(尋)ㆍ사(伺)ㆍ수면(睡眠)ㆍ악작(惡作)ㆍ탐(貪)ㆍ진(瞋)ㆍ만(慢)ㆍ의(疑)가 여기에 속함. - ↑ "부정지법[不定地法]",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부정지법[不定地法]
온갖 마음이 일어날 때 그와 함께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마음 작용. 탐(貪)·진(瞋)·만(慢) 등이 여기에 해당함. - ↑ "不定地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不定地法
梵語 aniyata-bhūmika dharma。為俱舍家所立六位心所之一。共有尋、伺、睡眠、惡作、貪、瞋、慢、疑等八種。此等心所不入其他五地(大地法、大善地法、大煩惱地法、大不善地法、小煩惱地法),為特別之法,即不同於其他五種心所之具有決定性;既不遍於一切心或染心,亦未有或善或惡之決定性,其相應之界地等不定,故稱不定地法。其中,尋、伺等前四心所為隨煩惱,貪等後四心所為根本煩惱所攝。然大乘唯識家則以前四者為不定,後四者為煩惱所攝。〔俱舍論卷四、瑜伽師地論卷五十八、成唯識論卷六〕(參閱「五位七十五法」1439)p1292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09║論曰。悔眠尋伺於善染等皆不定故。非如
T31n1585_p0035c10║觸等定遍心故。非如欲等定遍地故。立不
T31n1585_p0035c11║定名。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논하여 말한다. 회(悔)ㆍ면(眠)ㆍ심(尋)ㆍ사(伺) 심소는 선(善)과 잡염 등에 대해서 모두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촉(觸)심소 등이 반드시 심왕에 두루하는 것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며, 욕(欲)심소 등이 반드시 모든 지위[地]에 두루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부정(不定)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2)
2) 부정심소라는 명칭을 건립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에 해당되는 심소들은 3성(性:선ㆍ악ㆍ무기) 중에서 그 성품이 일정하지 않고, 3계(界) 중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든 식과 상응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부정심소(不定心所)라고 이름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6║云何睡眠?謂不自
T31n1612_p0849b27║在轉心極昧略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떤 것이 수면(隨眠)인가. 마음이 자재하게 움직이지 못하여 지극히 어둡고 단순한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3_p0854a14║云何睡眠。謂不自在轉。昧略為性。不自在者。
T31n1613_p0854a15║謂令心等不自在轉。是癡之分。又此自性不
T31n1613_p0854a16║自在故。令心心法極成昧略。此善不善。及無
T31n1613_p0854a17║記性。能與過失。所依為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무엇을 수면(睡眠)이라고 하는가?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고 몽매하고 흐리멍텅하게 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는 것이란 마음 등으로 하여금 자유자재로 전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어리석음의 일부분이다. 또한 이것의 자성(自性)은 자유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과 심법으로 하여금 극히 몽매하고 흐리멍텅하게 만든다. 이것은 선ㆍ불선ㆍ무기(無記)의 성품을 갖는다. 잘못을 저지름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02_p0483a11║睡眠者。謂略攝於心不自在轉為體。能障毘
T31n1602_p0483a12║鉢舍那為業。乃至增長睡眠為業。如經說貪
T31n1602_p0483a13║著睡眠味如大魚所吞。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수면(睡眠)147) 심소는 마음을 대략적으로 거두어서 자유롭게 전전(展轉)하지 못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비발사나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수면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수면의 맛에 탐착함이 마치 큰 고기에 삼킨 바가 된 것과 같다”고 말한 바와 같다.
147) 수면(睡眠, middhaㆍnidrā) 심소는 수면을 취하게 하는 심소이다. 수면을 취하게 하는 심리작용이다. 신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어둡고 용렬하게 하므로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 - ↑ "睡眠(수면)",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睡眠(수면)
【범】 Middha 심소(心所)의 이름. 부정지법(不定地法)의 하나. 마음을 암매(闇昧)케 하는 정신 작용. 의식이 깊이 잠자는 것을 수(睡), 5식(識)이 캄캄하여 작용하지 않는 것을 면(眠)이라 함. - ↑ "수면[睡眠]",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수면[睡眠]
산스크리트어 middha 어둡고 자유롭지 못한 마음 상태. - ↑ "睡眠",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睡眠
梵語 middha。略稱眠。心所(心之作用)之名。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由於心中本有之闇昧而於憊懶、疏忽之狀態下所具有之本性。客觀觀察一睡眠者,而知其時彼人觀察外界對象之作用已消失,與覺醒時之心相反。其時意識闇昧模糊,但與失神、無意識之狀況有所別。因睡眠可恢復身心精力與消除疲勞,故可視為與「休息」同義。俱舍宗將心所(四十六種)分為六類,睡眠即屬「不定地法」之一。唯識宗亦將心所(五十一種)分為六類,睡眠屬於「不定法」之一。此外,染有煩惱之睡眠可令心中闇昧,障礙善心;其與「大煩惱地法」中之惛沉,合稱「惛眠」,為五蓋之一,稱惛眠蓋、睡眠蓋;亦為十纏之一。廣義而言,與「煩惱」同義。〔大毘婆沙論卷四十八、俱舍論卷二十一、成唯識論卷七、法蘊足論卷六〕p6968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14║眠謂睡眠。
T31n1585_p0035c15║令身不自在昧略為性。障觀為業。謂睡
T31n1585_p0035c16║眠位身不自在心極闇劣。一門轉故。昧簡
T31n1585_p0035c17║在定。略別寤時。令顯睡眠非無體用。有
T31n1585_p0035c18║無心位假立此名。如餘蓋纏心相應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면(眠)심소’5)는 수면(睡眠)을 말한다. 자재하지 못하며 어둡고 빼앗기게 함[令]을 체성으로 하고, 위빠사나[觀]를 장애함을 업으로 한다. 수면 상태에서는 몸으로 하여금 자재하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하여금 매우 어둡고 용렬하게 하며, 하나의 문(門)에서만6) 전전하기 때문이다. 어둡다는 것은 선정에 들어 있는 것을 구분한다. 빼앗는다는 것은 깨어 있을 때를 구별한다. 하게 함[令]은 면(眠)심소가 자체ㆍ작용이 없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무심의 지위에 있어도 이 명칭을 가립한다.7) 다른 것과 같이, 덮고[蓋] 얽음[纏]으로써 심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5) 면(眠, middha, nidra)심소는 ‘수면(睡眠)’, 즉 숙면의 상태로 유도하는 심소이다. 일단 숙면 상태가 되면 면(眠)심소는 더 이상 상응하지 않는다. 수면은 신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암매(闇昧)하게 만들어서, 위빠사나를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된다. 적당한 수면은 체력을 충전하여 활달하게 하지만, 지나친 잠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6) 오직 하나의 의식(意識)에만 상응하는 것을 말한다.
7) 세간과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무심위(無心位)를 수면(睡眠)으로 이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가립(假立)이고 실제의 수면은 별도로 존재한다. 이것은 심왕을 덮고 얽어매기[蓋纏] 때문이다. 덮고 얽어매는 것은 반드시 심소법으로서 자체[體]가 없는 법이 아니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6a16║四中尋伺定是假有。思慧合成聖所說故。悔
T31n1585_p0036a17║眠有義亦是假有。瑜伽說為世俗有故有義
T31n1585_p0036a18║此二是實物有。唯後二種說假有故。世俗有
T31n1585_p0036a19║言隨他相說非顯前二定是假有。又如內
T31n1585_p0036a20║種體雖是實而論亦說世俗有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네 가지 중에서 심(尋)ㆍ사(伺) 심소는 반드시 가유(假有)이다. 사(思)ㆍ혜(慧) 심소와 합해서 이룬다는 것은 성스러운 가르침에서 말한 바이기 때문이다. 회ㆍ면 심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역시 이것도 자체가 없는 존재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세속유라고 말하기30)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31) 이 둘은 실물유(實物有)이다. 오직 나중의 두 가지만32)을 가유(假有)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세속유라는 말은 다른 것33)의 양상에 따라서 말한 것이다. 앞의 두 가지도 반드시 가유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유하면 내부세계의 종자는 실유(實有)이지만, 논서에서 역시 세속유라고 말한34) 바와 같기 때문이다.
30)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31) 호법의 정의이다.
32) 심(尋)ㆍ사(伺) 심소를 말한다.
33) 치(癡)심소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34) 『유가사지론』 제52권(『고려대장경』 15, p.916中:『대정장』 30, p.589上).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06_p0699c06║睡眠者。依睡因緣。是愚癡分心略為體。或善
T31n1606_p0699c07║或不善或無記。或時或非時。或應爾。或不
T31n1606_p0699c08║應爾。越失所作依止為業。睡因緣者。謂羸
T31n1606_p0699c09║瘦疲倦身分沈重。思惟闇相捨諸所作曾數
T31n1606_p0699c10║此時串習睡眠。或他呪術神力所引。或因動
T31n1606_p0699c11║扇涼風吹等。愚癡分言為別於定。又善等言
T31n1606_p0699c12║為顯此睡非定癡分。時者。謂夜中分。非時者。
T31n1606_p0699c13║謂所餘分。應爾者。謂所許時設復非時。或因
T31n1606_p0699c14║病患或為調適。不應爾者。謂所餘分。越失所
T31n1606_p0699c15║作依止為業者。謂依隨煩惱性睡眠說。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수면(睡眠)심소법입니까?
수면의 인연에 의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우치(愚癡)의 일부분이 대략 그 바탕이 된다. 선(善)하기도 하고, 불선(不善)하기도 하고, 무기(無記)이기도 하고, 시(時)이기도 하고, 비시(非時)이기도 하고, 응이(應爾)이기도 하고, 불응이(不應爾)이기도 하기에, 실념(失念:越失)에 의지해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수면의 인연’이란 파리하고 수척해서 몸이 피곤하여 수면에 빠져드는 것이 심해지는 것을 가리킨다. 사유가 어두워지는 모양에 처해서 여러 가지 지어나가는 바를 버리는 것이 되풀이되는 이러한 때에 그 잠자는 것이 습관이 된다. 또는 다른 사람의 주술이나 신통력에 끌리거나 혹은 부채를 부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따위에 기인하기도 한다. ‘우치분(愚癡分)’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고 또 ‘선법 따위’라고 말하는 것도 이 같은 수면이 정이 아닌 ‘우치분’이란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시’란 한밤중의 시분(時分)을 말하고 ‘비시’란 그 밖의 다른 시분을 가리킨다. ‘응이’란 허락받은 시분이니, 설사 ‘비시’이더라도 질병이나 휴양하기 위한 경우이다. ‘불응이’란 그 밖의 다른 시분을 가리킨다. ‘실념에 의지해서 업을 이룬다는 것’이란 수번뇌의 성품에 의거해서 수면을 해설한 것이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18║有
T31n1585_p0035c19║義此二唯癡為體。說隨煩惱及癡分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8) 이 두 가지9)는 오직 치심소를 자체[體]로 한다. 수번뇌와 치심소의 일부분이라고 말하기10) 때문이다.
8) 제1사(第一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9) 회(悔)ㆍ면(眼) 심소이다.
10)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19║義此二唯癡為體。說隨煩惱及癡分故。有
T31n1585_p0035c20║義不然亦通善故。應說此二染癡為體。淨
T31n1585_p0035c21║即無癡。論依染分說隨煩惱及癡分攝。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1) 그렇지 않다. 역시 선품(善品)에도 통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잡염법이라면 치심소를 자체로 하고, 청정법이라면 곧 무치(無癡)라고 말이다. 논서에서는 잡염분에 의지해서 수번뇌와 치심소의 일부분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11) 제2사(第二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21║有
T31n1585_p0035c22║義此說亦不應理。無記非癡無癡性故。應
T31n1585_p0035c23║說惡作思慧為體。明了思擇所作業故。睡
T31n1585_p0035c24║眠合用思想為體。思想種種夢境相故。論
T31n1585_p0035c25║俱說為世俗有故。彼染污者是癡等流。如
T31n1585_p0035c26║不信等說為癡分。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2) 이 견해도 역시 이치가 아니어야 하다. 무기(無記)는 치(癡)ㆍ무치(無癡)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오작(惡作)은 사(思)ㆍ혜(慧) 심소를 자체로 한다. 지은 업을 명료하게 생각해서 간택하기 때문이다. 면(眠)심소는 합하여 사(思)ㆍ상(想) 심소를 사용해서 자체로 삼는다. 갖가지 꿈의 경계에서의 모습들을 유지하고 표상하기 때문이다.
논서에서 둘 다 세속유라고 말하기13) 때문이다. 그것의 염오인 것은 치심소의 등류이다. 불신(不信) 등처럼, 치심소의 일부분이다.
12) 제3사(第三師)의 견해를 서술한다.
13)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938下:『대정장』 30, p.604中).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26║有義彼說理亦不然。非
T31n1585_p0035c27║思慧想纏彼性故。應說此二各別有體。與
T31n1585_p0035c28║餘心所行相別故。隨癡相說名世俗有。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4) 그 견해도 이치가 역시 그렇지 않다. 사(思)ㆍ혜(慧)ㆍ상(想) 심소는 얽어매는[纏] 속성인 그것15)의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16)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각기 별도로 자체가 있다. 나머지 심소와 행상(行相)이 다르기 때문에 어리석음의 양상에 따라서 세속유라고 이름한다.
14) 호법(護法)의 정의(正義)이다.
15) 회ㆍ면 심소를 가리킨다.
16) 이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삼지작법(三支作法)의 인명논리를 세울 수 있다.
(宗) 잡염의 회(悔)ㆍ면(眼) 심소는 사(思)ㆍ혜(慧)ㆍ상(想)이 아니어야 한다.
(因) 이것은 얽어매는 것[纏]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喻) 무참(無慚심)소 등과 같이.
(宗) 청정의 회ㆍ면 심소도 역시 사(思)ㆍ혜(慧)ㆍ상(想)이 아니어야 한다.
(因) 이것은 회ㆍ면 심소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喩) 잡염의 회ㆍ면 심소와 같이.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6b22║此四皆通善等三性。於無記業亦追悔
T31n1585_p0036b23║故。有義初二唯生得善。行相麁鄙及昧略故。
T31n1585_p0036b24║後二亦通加行善攝。聞所成等有尋伺故。有
T31n1585_p0036b25║義初二亦加行善。聞思位中有悔眠故。後三
T31n1585_p0036b26║皆通染淨無記。惡作非染解麁猛故。四無記
T31n1585_p0036b27║中悔唯中二。行相麁猛非定果故。眠除第
T31n1585_p0036b28║四非定引生。異熟生心亦得眠故。尋伺除
T31n1585_p0036b29║初彼解微劣不能尋察名等義故。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이 네 가지 심소는 모두 선 등 세 가지 성품과 통한다.66) 무기의 업에서도 역시 뉘우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처음의 두 가지67)는 오직 선천적으로 착한 성품[生得善]이다. (회심소는)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자신을 낮추며, (면심소는) 어둡고 빼앗기 때문이다. 뒤의 두 가지는 역시 가행선(加行善)에도 포함된다. 보고 들어서 이루는 지혜[聞所成慧] 등에 심ㆍ사 심소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처음의 둘도 역시 가행선이다. 문혜(聞慧)ㆍ사혜(思慧)의 지위 중에 회ㆍ면 심소가 있기 때문이다. 뒷부분의 셋은 모두 잡염과 청정의 무기68)에 통하다. 회심소는 잡염이 아니니, 이해가 두드러지고 맹렬하기 때문이다. 청정의 네 가지 무기 중에서 회심소는 가운데 두 가지이다.69) 인식작용이 두드러지고 맹렬하며, 선정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면심소에서는 네 번째 무기만을 제외한다. 선정에 이끌려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제6식의 이숙생의 심왕에도 역시 수면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ㆍ사 심소는 첫 번째 것(이숙무기)만을 제외한다. 그것(이숙심)은 이해가 미세하고 열등해서 명칭 등과 의미를 심구ㆍ사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66) 부정심소의 3성(性)의 관계를 밝힌다[三性門].
67) 회ㆍ면 심소이다.
68) 유부무기(有覆無記)와 무부무기(無覆無記)를 말한다.
69) 이숙(異熟)ㆍ위의(威儀)ㆍ공교(工巧)ㆍ변화(變化)의 네 가지 무기 중에서 위의무기와 공교무기를 가리킨다. - ↑ "悔(회)",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悔(회)
【범】 kaukṛtya 부정지법(不定地法)의 하나. 심소(心所)의 이름. 자기가 한 짓을 뉘우치는 정신 작용. 악작(惡作)과 같음. - ↑ "회[悔]",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회[悔]
산스크리트어 kaukṛtya 후회하는 마음 작용. - ↑ "悔",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悔
心所之名。即懺悔自己所造之業。與「惡作」一詞同義。〔成唯識論卷七〕p5187 - ↑ "惡作",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惡作
(一)梵語 kaukṛtya。心所(心之附屬作用)之一。與「悔」同義。為說一切有部所立七十五法之一,屬不定地法,又為法相宗四不定之一。惡,即厭惡;作,即所作。即厭惡所作,於作惡事後追悔之心。俱舍論卷四對惡作一名提出三種解釋,其一謂緣惡所作之事而追悔,稱為惡作,即於能緣之追悔上立所緣境之名;其二謂追悔係以惡作為所依而生,故在能依之追悔上立所依之名;其三謂追悔為惡作之果,故在果之追悔上立因之名。此三解中,惡作之「惡」皆讀入聲,其義皆為追悔所作之惡。但惡作之性並非必為不善,不論善或不善,凡屬不合情理之所作,皆稱為惡作。又大毘婆沙論卷三十七舉出四句惡作,即:(1)追悔已作之惡業,(2)追悔已作之善業,(3)追悔已作善業之未滿,(4)追悔已作惡業之未滿。此四句係由已作之業而說。俱舍論卷四則對於追悔未作之事,亦稱為惡作,如追悔「我何故不作如是事」亦為惡作。
說一切有部認為追悔善之不作業為善之惡作,追悔不善之不作業為不善之惡作,主張惡作僅限於善與不善,而不通於無記。但據俱舍論卷四載,外方諸師中有說惡作通於無記者。成唯識論述記卷七本亦以惡作通於善、不善、無記三性。又唯識家稱惡作為「悔」,其解釋亦與俱舍等不同。成唯識論卷七說明「悔」即嫌惡所作之業,以追悔為性,障奢摩他為業,且「惡作」是於果上假立因之名,「悔」則係就當體而立其名者。另據成唯識論述記卷七之意,惡作之「惡」讀去聲,為嫌惡之意。〔阿毘達磨順正理論卷十一、瑜伽師地論卷十一、顯揚聖教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七、俱舍論光記卷四、俱舍論寶疏卷四、百法問答鈔卷一〕
(二)即戒律中之突吉羅(梵 duṣkṛta)。指身體之微細惡行,有時亦包括口舌之微細惡行。〔善見律毘婆沙卷九〕(參閱「突吉羅」4950)p6229 - ↑ 황욱(1999). 《무착[Asaṅga]의 유식학설 연구》. 동국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논문. p.72.
‘惡作’은 ‘悔[Kaukṛtya]’라고도262), 이미 지었거나 아직 짓지 않은 선과 악의 일에 대하여 染汚이건 染汚가 아니건 섭섭하게 여기어 후회하고 변화를 좇는 것을 體로 삼고, 奢摩他[Śamatha, 止]를 장애하는 것으로써 業을 삼는다.263) 즉, 이전에 지은 바 업[所作業]을 기억하여 그것을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의미로서, 그러한 작용을 嫌惡함으로 말미암아 후회하는 것으로써 그 性用을 삼고, 그것에 의하여 奢摩他[Śamatha, 止]를 장애하는 것으로써 業用을 삼는다.264) 그런데 이 ‘惡作’의 뜻에 대하여 大小乘 사이에 견해차이가 있다. 즉 俱舍宗에서는 ‘所作의 惡事를 나중에 추억하여 後悔한다’라는 의미로 보았고, 唯識宗에서는 ‘所作의 惡事를 嫌惡한다’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惡’에 대한 발음을 俱舍宗에서는 ‘악’이라고 하여 ‘악작’으로 발음하였고, 唯識宗에서는 ‘오’라고 하여 ‘오작’이라고 발음하였던 것이다.265)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樂作·不樂作·應作·不應作에 의지하는 것으로 愚癡의 부분으로서 마음이 추억하여 후회하는 것을 體로 하고, 善이거나 不善이거나 無記이거나 時이거나 非時이거나 應爾이거나 不應爾이거나 능히 마음이 머무는 것을 장애하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266)
262) 《唯識三十論頌》(《大正藏》 31, p.60下). “不定謂悔、眠, 尋、伺二各二。”
263) 다시 말하면, 지은 業을 미워하여 후회하는 것을 體로 삼고, 奢摩他[定]를 장애하는 것을 業으로 삼는다.
264) ‘惡作’의 性用은 뉘우침을 따르는[追悔] 작용을 말하고, 그 業用은 奢摩他[定]을 장애하는 작용을 말한다. 즉, 悔는 후회하는 것으로써 마음의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265) 鄭駿基(唯眞), 「心王心所說의 變遷上에서 본 二障 연구」, 박사학위논문(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1997), pp. 160~161 참조.
266)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665中). “何等惡作。謂依樂作不樂作應作不應作。是愚癡分心追悔為體。或善或不善或無記。或時或非時。或應爾或不應爾。能障心住為業。” - ↑ "惡作(악작)",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惡作(악작)
과거에 행한 선과 악, 혹은 하지 않은 선과 악에 대하여 후회하는 정신작용. 『바사론(婆沙論)』 37에 4구(句)를 말함. (1) 이미 지은 나쁜 짓을 후회함. (2) 이미 지은 선한 짓을 후회함. (3) 이미 지은 나쁜 짓이 철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함. (4) 이미 지은 선한 짓이 철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함. 『구사론(俱舍論)』 4에는 다시 선한 짓, 나쁜 짓을 하지 아니한 것을 후회함. 2구를 더함. - ↑ "악작[惡作]",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악작[惡作]
① 산스크리트어 kaukṛtya 후회하는 마음 작용.
② 산스크리트어 duṣkṛta 행위로 저지른 가벼운 죄.
동의어: 돌길라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6║云何惡作?謂心變悔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떤 것이 악작(惡作)인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함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3_p0854a05║云何惡作。謂心變悔為性。謂惡所作故名惡
T31n1613_p0854a06║作。此惡作體非即變悔。由先惡所作。後起追
T31n1613_p0854a07║悔故。此即以果從因為目。故名惡作。譬如六
T31n1613_p0854a08║觸處說為先業。此有二位。謂善不善。於二位
T31n1613_p0854a09║中。復各有二。若善位中。先不作善。後起悔
T31n1613_p0854a10║心。彼因是善。悔亦是善。若先作惡。後起悔
T31n1613_p0854a11║心。彼因不善。悔即是善。若不善位。先不作
T31n1613_p0854a12║惡。後起悔心。彼因不善。悔亦不善。若先作
T31n1613_p0854a13║善。後起悔心。彼因是善。悔是不善。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무엇을 악작(惡作)이라고 하는가?
마음이 변하여 후회하게 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지은 바를 싫어하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한다. 이 악작의 본체는 즉각 변하여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지은 바를 싫어하고 나중에 후회함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는 곧 과보를 원인에 의해 이름짓기 때문에 악작이라고 이름한다. 마치 6촉처(觸處)를 말하여 선업(先業)으로 삼는 것과 같다. 이것에 2위(位)가 있으니 선(善)과 불선(不善)을 말한다. 2위 가운데 다시 각각에 2위가 있다. 만약 선위(善位)의 경우 먼저 선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선이고, 후회도 역시 선이다. 만약 먼저 악을 짓고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은 불선이고, 후회는 선이다. 만약 불선위(不善位)에서 먼저 악을 짓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불선이고, 후회도 역시 불선이다. 만약 먼저 선을 짓고 뒤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면 그 원인도 불선이고, 후회도 역시 불선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02_p0483a07║惡作者。謂於已作未作善不善事若染不染
T31n1602_p0483a08║悵怏追變為體能障奢摩他為業。乃至增長
T31n1602_p0483a09║惡作為業。如經說若懷追悔則不安隱。乃至
T31n1602_p0483a10║廣說。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오작(惡作)146) 심소는 이미 지었거나 아직 짓지 못한 선ㆍ불선의 일에 대해서 염오이거나 염오가 아니거나 섭섭하게 여겨서 후회하고 변하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사마타를 장애함을 업으로 삼고, 나아가 뉘우침[惡作]을 증장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만약 따라 후회하는 마음을 품으면 곧 편안하지 못하며.....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46) 이하 4가지 부정심소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작(惡作, kaukṛtya) 심소는 ‘뉘우침’ 즉 이전에 지은 업이나 또는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고 미워하는 심리작용이다. 회(悔)라고도 이름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11║悔謂惡作。惡所作業追悔為性。障止
T31n1585_p0035c12║為業。此即於果假立因名。先惡所作業後
T31n1585_p0035c13║方追悔故。悔先不作亦惡所攝。如追悔言
T31n1585_p0035c14║我先不作如是事業。是我惡作。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회(悔)심소’3)는 지은 것을 미워하는 것[惡作]을 말한다.4) 지은 업을 미워하여 후회함을 체성으로 하고, 사마타[止]를 장애함을 업으로 한다. 이것은 곧 결과에 대해서 원인의 명칭을 가립한 것이다. 먼저 지은 업을 미워하고, 나중에 비로소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전에 하지 않은 것을 뉘우치는 것도 역시 오작(惡作)에 포함된다. 후회해서 말하는 것과 같이, 내가 이전에 이러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오작(惡作)이라고 말한다.
3) 회(悔, kaukṛtya)심소는 ‘뉘우침’, ‘후회’, 즉 이전에 지은 업을 후회하고 싫어하는 심리작용이다. 오작(惡作)이라고도 한다. 뉘우쳐서 행동을 선(善), 수행으로 가게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선행(善行)을 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을 더욱 괴롭힌다.
4) 다음에 별도로 부정심소의 자체[體]를 설명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06_p0699c16║惡作者。依樂作不樂作應作不應作。是愚癡
T31n1606_p0699c17║分心追悔為體。或善或不善或無記。或時或
T31n1606_p0699c18║非時。或應爾或不應爾。能障心住為業樂作
T31n1606_p0699c19║者。樂欲為先造善惡行。不樂作者。由他勢
T31n1606_p0699c20║力及諸煩惱之所驅逼。令有所作如其所應。
T31n1606_p0699c21║愚癡分者隨煩惱所攝。時者。乃至未出離。非
T31n1606_p0699c22║時者。出離已後。應爾者。於是處。不應爾者。
T31n1606_p0699c23║於非處。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악작(惡作)입니까?
낙작(樂作)ㆍ불락작(不樂作)ㆍ응작(應作)ㆍ불응작(不應作)을 가리킨다. 이 우치(愚癡)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곧 후회하게 되는 것이 그 바탕이다. 선(善)하기도 하고, 불선(不善)하기도 하고, 무기(無記)이기도 하고, 시(時)이기도 하고, 비시(非時)이기도 하고, 응이(應爾)이기도 하고, 불응이(不應爾)이기도 하기에, 능히 심주(心住)를 장애하는 것에서 업을 이루게 된다.
【釋】‘낙작’이란 예전에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을 기꺼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락작’이란 다른 사람의 세력이나 여러 번뇌에 핍박받는 것에 연유하여 짓게 되는 바가 그에 상응하는 것이다. ‘우치분’이란 수번뇌에 수렴되는 것이다. ‘시’란 출리하기까지이고, ‘비시’란 출리한 이후이다. ‘응이’란 합당한 것이고, ‘불응이’란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7║云何為尋?謂能尋求意
T31n1612_p0849b28║言分別思慧差別令心麁為性。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떤 것이 심(尋)인가. 능히 심구(尋求)하는 것이니, 의언(意言)의 분별과 사혜(思慧)의 차별을 통해 마음으로 하여금 거칠게 분별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3_p0854a18║云何尋。謂思慧差別。意言尋求。令心麁相分
T31n1613_p0854a19║別為性。意言者。謂是意識。是中或依思。或依
T31n1613_p0854a20║慧而起。分別麁相者。謂尋求瓶衣車乘等之
T31n1613_p0854a21║麁相。樂觸苦觸等所依為業。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무엇을 심(尋)이라고 하는가?
사유[思]와 지혜[慧]의 차별로서 의언(意言)이 거칠게 관찰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거친 모습[麤相]을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의언이란 의식(意識)을 말한다. 이 가운데 혹은 사유에 의지하고 또는 지혜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거친 모습을 분별함이란 물병ㆍ옷ㆍ수레 등의 거친 모습을 찾아보게 함을 말한다. 즐거운 촉감, 괴로운 촉감 등이 나타나는 행동양식이다. - ↑ "尋(심)",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尋(심)
자기 앞에 나타나는 사상(事象)에 대하여 그 의리(義理)를 탐구하는 정신작용. ⇒심사. - ↑ "심[尋]",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심[尋]
① 산스크리트어 vitarka 개괄적으로 사유하는 마음 작용.
② 길이의 단위. 1심(尋)은 여덟 자.
출처
시공 불교사전, 2003. 7. 30. - ↑ 가 나 "尋",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尋
梵語 vitarka,巴利語 vitakka。心所之名。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舊譯作覺。為尋求推度之意。即對事理之粗略思考作用。俱舍論卷四(大二九‧二一中):「心之麁性名尋。」成唯識論卷七(大三一‧三五下):「尋謂尋求,令心怱遽,於意言境,麁轉為性。」
蓋細之思惟作用稱為伺,反之,粗之思惟作用則稱為尋。此心所於欲界及初禪現起,中間定及二禪以上則無,通於定、散及無漏,攝於不定地法。說一切有部主張尋、伺二者各有別體,而為一心同時相應;經部及大乘則以之為假法。據瑜伽師地論卷五載,尋、伺二者,皆以思、慧之部分為其體,以名句等諸義為所緣,以尋求、伺察為其行相,發起語言,具有有相、無相等七種差別。又瑜伽師地論卷五論尋伺、分別(思惟量度之意,為心心所之自性作用,亦為心心所之異名)二者之差異,謂分別之義廣,尋伺則為其中之部分而已。〔中阿含卷五十八法樂比丘尼經、大毘婆沙論卷四十三、卷五十二、瑜伽師地論卷一、俱舍論卷二、順正理論卷十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成唯識論述記卷七本、瑜伽論記卷二上、俱舍論光記卷二、卷四〕(參閱「伺」3494)p6219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7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585_p0035c28║尋
T31n1585_p0035c29║謂尋求。令心怱遽於意言境麁轉為性。伺
T31n1585_p0036a01║謂伺察。令心怱遽於意言境細轉為性。此
T31n1585_p0036a02║二俱以安不安住身心分位所依為業。並
T31n1585_p0036a03║用思慧一分為體。於意言境不深推度及
T31n1585_p0036a04║深推度義類別故。若離思慧尋伺二種體類
T31n1585_p0036a05║差別不可得故。 - ↑ 가 나 다 라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7권.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심(尋)심소’17)는 찾아 구하는 것[尋求]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18)의 대상에 대해 두드러지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사(伺)심소’19)는 보면서 살피는 것[伺察]을 말한다. 심왕을 바쁘고 급하게 의식[意言]의 대상에 대해 미세하게 전전하게 함을 체성으로 한다. 이 둘은 모두 평안과 불안에 머무는 몸과 마음의 분위(分位)의 의지처가 되는 것을 업으로 한다.20) 둘 다 사(思)ㆍ혜(慧) 심소의 일부분을 사용해서 자체로 삼는다. 의식의 대상에 대해서 깊이 헤아리지 않고21) 깊이 헤아리는22) 뜻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ㆍ혜 심소에서 떠나서는 심(尋)ㆍ사(伺)두 가지가 체의 종류의 차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17) 심(尋, vitarka)심소는 ‘심구(尋求)’, 즉 대상에 대하여 그 뜻과 이치를 대강 심구하는 심리작용이다.
18) 의언(意言, manojalpa)은 의지(意地)의 심사(尋思) 또는 제6의식을 의미한다. 의언(意言)의 대상[境]은 제6의식의 인식대상[所緣境]으로서 일체법을 가리킨다.
19) 사(伺, vicāra)심소는 ‘사찰(伺察)’, 즉 대상의 뜻과 이치를 세밀하게 분별하여 사찰한다. 이로써 몸과 마음의 평안 또는 불안이 있게 된다.
20) 심(尋)ㆍ사(伺) 심소는 몸과 마음이 평안할 때에는 천천히 느린 것을 업으로 하고, 불안할 때에는 바쁘고 급한 것을 업으로 한다.
21) 심(尋)심소를 가리킨다.
22) 사(伺)심소를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8║云何為伺?謂
T31n1612_p0849b29║能伺察意言分別思慧差別令心細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어떤 것이 사(伺)인가. 능히 사찰(伺察)하는 것이니, 의언의 분별과 사혜의 차별을 통해 마음으로 하여금 세밀하게 분별하게 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T31n1613_p0854a22║云何伺。謂思慧差別。意言伺察。令心細相分
T31n1613_p0854a23║別為性。細相者。謂於瓶衣等。分別細相成不
T31n1613_p0854a24║成等差別之義。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무엇을 사(伺)라고 하는가?
사유와 지혜의 차별로서 의언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자세한 모습[細相]을 분별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자세한 모습이란 물병ㆍ옷 등에 대해서 분별하여 자세한 모습이 이루어지는가, 이루어지지 않는가 등을 차별하는 뜻을 말한다. - ↑ "사[伺]",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사[伺]
산스크리트어 vicāra 세밀하게 고찰하는 마음 작용.
동의어: 관 - ↑ "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19일에 확인:
伺
梵語 vicāra,巴利語同。心所之名。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舊譯為觀。即細心伺察思惟諸法名義等之精神作用。伺之心所起於欲界、初禪及中間定,二禪以上無之,以其不起於一切心,又不起於一切時,故大小乘共攝於不定地法。其性雖遲鈍,然深入推度名身等,與「尋」皆有等起語言之用。又小乘有部謂伺有別體,即主張伺為使心深細伺察之法,經部及大乘則以伺與尋皆為假立之法,唯以心之粗、細而名為尋、伺。又據大毘婆沙論卷五十二所載,譬喻者說心之粗性稱為尋,心之細性稱為伺,而其粗細之性由欲界乃至色界有頂天皆可得,故謂三界皆有尋、伺。又因尋求伺察久之,便身疲念失,心亦勞損,是故尋、伺皆為隨煩惱。〔大毘婆沙論卷四十二、卷九十、瑜伽師地論卷五、卷五十五、卷五十八、成實論卷六、法蘊足論卷七、俱舍論卷四、順正理論卷四〕(參閱「尋」6219)p3494 - ↑ "眼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眼根
Basic Meaning: faculty of sight
Senses:
Organ of sight; one of the five 五根 (or six 六根) sense faculties (Skt. cakṣur-indriya); that which the production of the visual consciousness depends upon. It functions based on the four elements 四大. Having a pure essential nature, which is invisible, is called a transcendent faculty. The eyeball, which is visible, is called a 'world supporting faculty' 扶塵根, which in turn relies on the transcendent faculty 勝義根. Blindness is said to be a case where the physical eye is present, but the transcendent faculty is not, so that there is no ability to arise eye consciousness (Skt. cakṣur-dhātu, cakṣur-āyatana, cakṣus; Pāli cakkhu-indriya; Tib. mig gi dbang po). [Charles Muller; source(s): Ui,Nakamura, Hirakawa, YBh-Ind, JEBD] - ↑ "眼根(안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眼根(안근)
5근의 하나. 안식(眼識)의 있는 데가 되어 안식으로 하여금 형태ㆍ색채 등을 감각케 하는 시각 기관. 곧 눈. - ↑ "안계[眼界]",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안계[眼界]
십팔계(十八界)의 하나.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요소의 하나로, 모양이나 빛깔을 보는 시각 기관인 눈. - ↑ "안처[眼處]",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안처[眼處]
십이처(十二處)의 하나. 모양이나 빛깔을 보는 시각 기관인 눈.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T31n1612_p0848b13║云何眼根?謂色為
T31n1612_p0848b14║境清淨色。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어떤 것이 안근인가. 색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T31n1613_p0851a01║云何眼根。謂以色為境。淨色為性。謂於眼中。
T31n1613_p0851a02║一分淨色如淨醍醐。此性有故。眼識得生。無
T31n1613_p0851a03║即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무엇을 안근이라고 하는가? 색으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눈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마치 맑은 제호(醍醐)1)와 같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안식이 생겨나고, 이 성질이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1) 정제된 버터를 말한다. - ↑ "眼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眼根
梵語 cakṣur-indriya,巴利語 cakkhundriya。音譯斫蒭。單稱眼。為眼識之所依,能看取色境,即為不可見有對(有礙)之淨色。五根或六根之一,為十二處中之眼處(梵 cakṣur-āyatana),十八界中之眼界(梵 cakṣur-dhātu)。普通所稱之「眼」指眼球;然於大毘婆沙等經論分為二種,謂可見而由筋肉所組成者,為扶根(扶塵根);對此,不可見而有能見之作用者為眼,稱為勝義根。其中,扶根以四塵為體,為可見有對;勝義根以清淨之大種所造之色為體,為不可見有對。
關於眼取境時,是眼識能見色,或眼根能見色等問題,歷來有四種說法,而以其中之「根見」為大毘婆沙論所認可,故於論中一一評破其他三說,即:(1)根見,為世友所主張,稱為「根見家」,謂眼根觀照色境之力用,稱為見,眼識則僅能了別眼根所觀照之境。若謂眼識能見色,則識為無障之法,故應可見被障蔽於壁外之境,然其識見既不能成立,此即為「根見」之證明,即根為有障、有對之法,故不能見被障之色。(2)識見,為法救所主張,若謂眼識可見色,識應有見相,然識無見相,故識見之理為非。(3)根識相應之慧見,若謂根、識相應之慧能見色,則與耳識相應之慧,亦應聞聲,然慧無聞相,故慧見之理非。(4)根識和合見,若謂根識和合而見色,應於一切時皆能見色,以無時不和合,故理為非。
對此根見或識見之問題,大乘唯識主張根識和合見。蓋唯識宗認為一切諸法皆為第八識所變現,而無小乘所說的由極微所成之根境,故認為「根」僅具有「識」所藉以攀緣而變現「境」之功能以外即無其他功能。又諸經論關於眼之種別,亦有多種說法,或謂異熟生、長養二種,或說三眼、四眼、五眼、十眼等。瑜伽師地論卷三對於眼之種類,記載最詳,論中由一種「能見之眼」增數至過去眼、現在眼、未來眼、內眼等之十一種眼。〔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二、大智度論卷三十三、大乘法苑義林章卷三本〕(參閱「眼」5987、「眼識」5989)p5988 - ↑ 가 나 다 라 마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1║眼界何相。謂眼曾現見色。及此種子積集
T31n1605_p0663b12║異熟阿賴耶識。是眼界相。如眼界相耳鼻舌
T31n1605_p0663b13║身意界相亦爾。 - ↑ 가 나 다 라 마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T31n1606_p0695c17║問眼界何相。答謂眼曾現見色。及此種子積
T31n1606_p0695c18║集異熟阿賴耶識是眼界相。眼曾見色者。謂
T31n1606_p0695c19║能持過去識受用義以顯界性。現見色者。謂
T31n1606_p0695c20║能持現在識受用義以顯界性。及此種子積
T31n1606_p0695c21║集異熟阿賴耶識者。謂眼種子。或唯積集。為
T31n1606_p0695c22║引當來眼根故。或已成熟。為生現在眼根
T31n1606_p0695c23║故。此二種名眼界者眼生因故。如眼界相耳
T31n1606_p0695c24║鼻舌身意。界相亦爾。 - ↑ 가 나 다 라 마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2_p0483c09║眼謂一切種子阿賴耶識之所執受。四大所
T31n1602_p0483c10║造色為境界緣色境。識之所依止。淨色為體。
T31n1602_p0483c11║色蘊所攝。無見有對性。如眼如是耳鼻舌身
T31n1602_p0483c12║亦爾。此中差別者。謂各行自境緣自境識之
T31n1602_p0483c13║所依止。 - ↑ 가 나 다 라 마 세친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안근(眼根)은158) 일체종자식인 아뢰야식이 집수(執受)하는 바이고, 4대(大)로 이루어진 물질을 경계로 삼으며, 빛깔ㆍ형태를 반연하는 식(識)159)의 의지처인 청정한 물질[淨色]160)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色薀)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음[無見有對]의 성질이다.
안근과 같이 이러한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도 역시 그러하다. 이 중에서 차이는 각각 자기 대상에만 작용하고 자기 대상만 반연하는 식의 의지처라는 점이다.
158) 5근(根)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근은 감각기관을 총칭한다. 근(根)의 범어인 indriya에는 승용(勝用)ㆍ증상(增上)ㆍ출생(出生)의 의미가 있다. 오근은 외계의 현상을 능히 취하여 내계의 심식을 발동시키는, 또한 증승(增勝)시키는 작용이 있으며, 이것을 발식취경(發識取境)이라 한다. 안근은 안식의 의지처[所依]가 되어 색경을 견취(見取)하는 등, 오근은 오식의 소의근(所依根) 역할을 한다.
159) 안식(眼識)을 가리킨다.
160) 청정한 물질적 존재라는 뜻으로서, 감각기관을 이루는 승의근(勝義根)ㆍ부진근(扶塵根) 중에서 승의근을 가리킨다. - ↑ "耳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耳根
Basic Meaning: auditory faculty
Senses:
(Skt. śrotra-indriya). The organ of hearing; one of the five (or six) faculties 五根. The basis of the ear-consciousness—that which by connection with sound objects give rise to perception of sound. Also 耳入 (Skt. karṇêndriya, śrotrêndriya, śrotra; Pāli sotêndriya; Tib. rna ba'i dbang po). Also one of the twenty-two faculties 二十二根.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YBh-Ind] - ↑ "耳根(이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耳根(이근)
【범】 śrotrendriya 5근(根)의 하나. 소리를 듣고, 이식(耳識)을 이끌어내는 기관. 귀. - ↑ "이근[耳根]",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이근[耳根]
육근(六根)의 하나.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소리를 듣는 청각 기관인 귀.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2_p0848b14║云何耳根?謂聲為境清淨色。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어떤 것이 이근인가. 소리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3_p0851a04║云何耳根。謂以聲為境。淨色為性。謂於耳中。
T31n1613_p0851a05║一分淨色。此性有故。耳識得生。無即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무엇을 이근이라고 하는가? 소리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귀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이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 ↑ "耳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0일에 확인:
耳根
梵語 śrotrendriya,巴利語 sotindriya。音譯戍縷多因姓唎焰。乃六根之一,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二十二根之一。略稱耳。指耳識之所依,由此取聲境無見有對之淨色。依俱舍論卷二所載,耳根之極微在耳穴內旋環而住,恰如捲成筒狀之樺皮,能聽聞遠處之聲響。然聲響若逼近耳根即不能聞,故與眼根同為離中知,均取非至之境。又耳根於十二處中稱為耳處,於十八界中稱為耳界。此外,梵語 śrotra,意譯作耳、能聞。音譯除戍縷多外,又作述嚕怛羅、羯𡃤拏、羯叻拏(梵 karṇa)。〔大毘婆沙論卷一四二、品類足論卷一、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四、成唯識論卷四、卷八、大乘法苑義林章卷三之五根章、梵語雜名〕(參閱「十二處」502、「十八界」517、「六根」1674、「耳識」3151)p3149 - ↑ "鼻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鼻根
Basic Meaning: olfactory faculty
Senses:
One of the five (or six) faculties. The basis of the olfactory consciousness. That which by connection with objects of smell gives rise to perception of smell. One of the twenty-two faculties 二十二根 (Skt. ghrāna-indriya, ghrāṇêndriya; Pāli ghān; Tib. sna'i dbang po). 〔摩訶止觀 T 1911.46.47a20, 倶舍論 T 1559.29.171c25〕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 ↑ "鼻根(비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鼻根(비근)
5근(根)의 하나. 비식(鼻識)이 의지하여 일어나는 근본이 되고, 또 비식으로 하여금 바깥 경계를 반연케 하는 작용이 있으며, 후각(嗅覺)을 맡은 기관(器官). 코를 말함. - ↑ "비근[鼻根]",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비근[鼻根]
약어 비(鼻)
육근(六根)의 하나.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향기를 맡는 후각 기관인 코. - ↑ "鼻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鼻根
梵語 ghrāṇendriya,巴利語 ghān'indriya。音譯揭邏拏因姪唎焰。為五根之一,六根之一,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二十二根之一。單稱鼻。指鼻識所依之無見有對之感覺器官,即嗅覺器官。色界二禪以上五識皆無,故鼻根於彼並無作用,唯為莊嚴身之故而有之。又鼻根於十二處中稱鼻處(梵 ghrāṇāyatana),十八界中稱鼻界(梵 ghrāṇa-dhātu)。〔大毘婆沙論卷九十、卷一四二、卷一四五、俱舍論卷二、瑜伽師地論卷一、卷三、大乘法苑義林章卷三本〕(參閱「五根」1493)p7471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2_p0848b14║云何
T31n1612_p0848b15║鼻根?謂香為境清淨色。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어떤 것이 비근인가. 냄새를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3_p0851a06║云何鼻根。謂以香為境。淨色為性。謂於鼻中。
T31n1613_p0851a07║一分淨色。此性有故。鼻識得生。無即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무엇을 비근이라고 하는가? 향기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코 가운데 일부분의 청정한 색을 말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비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 ↑ "舌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舌根
Basic Meaning: gustatory faculty
Senses:
The tongue. One of the five (or six) faculties (Skt. jihvā-indriya; jihvêndriya; Tib. lce'i dbang po). The basis of taste consciousness. That which by connection with objects of taste gives rise to perception of taste. One of the twenty-two faculties 二十二根. 〔成唯識論 T 1585.31.20a5〕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JEBD, Soothill,Iwanami] - ↑ "舌根(설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舌根(설근)
5근(根)의 하나. 설식(舌識)으로 하여금 맛을 알게 하는 기관(器官). 곧 혀를 말함. 맛을 알고 말을 하는 근본이므로 근(根)이라 함. - ↑ "설근[舌根]",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설근[舌根]
육근(六根)의 하나.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맛을 느끼는 미각 기관인 혀.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2_p0848b15║云何舌根?謂味為境
T31n1612_p0848b16║清淨色。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어떤 것이 설근인가. 맛을 경계로 삼는 청정한 물질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13_p0851a08║云何舌根。謂以味為境。淨色為性。謂於舌上。
T31n1613_p0851a09║周遍淨色。有說。此於舌上。有少不遍。如一毛
T31n1613_p0851a10║端。此性有故。舌識得生。無即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무엇을 설근이라고 하는가? 맛으로써 대상을 삼고, 청정한 색을 성질로 한다. 혀 위에 두루 퍼져 있는 청정한 색을 말한다. 어떤 설명에는 혀 위에 두루 퍼져있지 않고 마치 하나의 털끝처럼 조금만 있다고 한다. 이 성질이 있으므로 설식이 생겨나고, 없다고 한다면 생기지 않는다. - ↑ "舌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舌根
梵語 jihvendriya,巴利語 jivhendriya。五根之一,六根之一,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二十二根之一。舌識之所依,取味境之無見有對之淨色,稱為舌根。梵語 jihvā,原意火焰,即能嘗之義,謂祭神時投供物於火中,火焰即神之能嘗。於無色界,舌根不能成就,唯欲、色界有之。於十二處,舌根稱為舌處(梵 jihvāyatana);於十八界,則稱舌界(梵 jihvā-dhātu)。〔大毘婆沙論卷九十、卷一四二、卷一四五、俱舍論卷一、卷二、瑜伽師地論卷五十四、顯揚聖教論卷一、品類足論卷一、成唯識論卷八〕(參閱「二十二根」267、「十二處」502、「十八界」517、「五根」1493)p3186 - ↑ "身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身根
Basic Meaning: bodily faculty
Senses:
One of the five (or six) faculties 五根. The basis of tactile consciousness. That which by connection with objects of touch gives rise to perception of touch. Organ of tactile perception (Skt. kāya-indriya, kāyêndriyam; Tib. lus kyi dbang po). See also 身體. 〔瑜伽論 T 1579.30.283a11, 成唯識論 T 1585.31.3a1〕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 ↑ "身根(신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身根(신근)
5근(根)의 하나. 신식(身識)으로 하여금 접촉을 감각하게 하는 기관. 몸과 같음. - ↑ "신근[身根]",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신근[身根]
약어 신(身)
육근(六根)의 하나.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추위나 아픔 등을 느끼는 촉각 기관인 몸. - ↑ "身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身根
梵語 kāyendriya,巴利語同。五根之一,六根之一,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二十二根之一。略作身。即指身識所依,取觸境無見有對之淨色。此指身體內之淨色根,而非謂肉體之扶塵根。
關於身之語義,據大乘法苑義林章卷三載,此蓋取梵語 kāya(音譯迦耶)之積集義、依止義。其他眼根等之大種及造色雖皆亦積集,而身根為諸根多法所依止,多法皆積集於身根,故特稱迦耶。
此身根,在十二處中稱為身處(梵 kāyāyatana),在十八界中稱為身界(梵 kāya-dhātu)。通常所謂之身,皆總指肉團而言,與身根不同。在婆沙等諸論中,筋肉等稱為扶塵根,對於有能觸作用之身根,則稱之為勝義根。又身根唯欲色二界存有,無色界則無。大毘婆沙論卷九十載地獄身根不同於人等身根,謂地獄中解諸肢節,乃至糜爛,亦有身根。〔大毘婆沙論卷一四四、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四、成唯識論卷十、俱舍論卷四、俱舍論光記卷二至卷四、成唯識論述記卷三本、卷十末、佛家名相通釋卷上(熊十力)〕p3804 - ↑ "身",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身
(一)梵語 kāya。音譯迦耶。屬六根之第五,即身根。指觸覺器官之皮膚及其機能。然有部主張,身根乃眼所不能見之精妙物質(淨色),亦即指勝義根而言。然通常所說身與心並稱為身心,身與語(或口)、意並稱身語意(或身口意)之「身」則係指身體、肉體而言。
(二)集合之意。即附加於語尾,表示複數之語,如六識身。
(三)梵語 śarīra。身骨、遺骨之意。(參閱「舍利」4406)p3801 - ↑ "신[身]",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신[身]
① 산스크리트어 kāya 몸. 신체.
② 산스크리트어 ātman 나. 자신.
③ 산스크리트어 janma 생존.
④ 산스크리트어 kāya 신근(身根)의 준말.
⑤ 산스크리트어 kāya 인식 주체.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주체.
⑥ 산스크리트어 kāya 모임·종류의 뜻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참조어
신근 - ↑ "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身
Basic Meaning: body
Senses:
Especially designated in contrast to the mind. Person, life, container. Myself, I, me (Skt. kāya, kāyika, śarīra, gātra, deha, ātman).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1) The early Chinese sense of the character 'shen' 身 is deeply informed by Confucian influence, referring to a body and self that are one and the same. As Roger Ames explains, the physical body participates in Chinese Confucian ritual practice and thereby also in the community in general, thus becoming the social self, which can be refined and cultivated to achieve full humanity, physically, morally, aesthetically, intellectually and spiritually.1 But Buddhism, which uses this same classical Chinese language in East Asia, does not regard body (kāya, rūpa) and self (ātman) as synonymous, nor does it even recognize a self. Buddhist scholars tend not to pay special attention to questions regarding the body, because in the context of Buddhist doctrine, which lays stress on the questions regarding the existence of a distinct individual self. [G. Chin]
(2) Western discussions of the concept of body usually refer to the human being, but in Buddhism the concept is far more complex. For example, to anthropologists, the body is a locus of culture, but in the Buddhist philosophical sense it is a means of knowing and identifying aspects and levels of consciousness or mind that inhabit and create the universe.2 The nomenclature of different bodies signifies the different aspects of being that characterizes the dwellers of the Mahāyāna Buddhist cosmos, such as animal, human, bodhisattva or Buddha. There are ten types in total, which are designated as the 'Ten Worlds of Mahāyāna Buddhism.' In certain contexts, the usage of the term body (esp. as the Sanskrit kāya) is a metaphor for a sense of self — analogous with the Western notion of ego. The sense of identity and difference created by naming these different body types is an upāya, an skillful means of teaching to the unenlightened. Defining as such the bodies of the Buddha or the arhat, or the human, can lead to strenuous religious disputation, as each school and sect views 'bodies' in innumerable different ways to suit its views of the world in which teaching is to be conveyed. What follows are brief general definitions of the bodies of the Buddha and bodhisattvas and of the human body. [G. Chin]
(3) The word 身 or 身體 is used most often to refer to the human body in classical Chinese, but as mentioned above Buddhists make use of the word in quite a different manner than Confucians. Buddhists tend to reject the concrete physical body that is viewed as the source of desire and sexual feelings that engender passion and the continuation of life through procreation. All sentient beings possess the physical aspect of the body, which is subject to birth, decay, and death. While there is no eternal 'self' or soul, Buddhists believe that the sentient being is formed of the five aggregates, or skandhas, having a physical body (Skt. rūpa) and consciousness (nāma), which together are referred to as nāma-rūpa.3 At the simplest level, nāma is considered to be the appearance of rūpa; nāma is feelings, perceptions, intentions, etc. that identify rūpa, hence 'name' and 'consciousness.' 4 All sentient beings, including buddhas, are made of name and consciousness, referred to in Chinese as 名色 . As a single word, this term loosely refers to the unity of body and mind; Buddhists do not regard the mind and body as separate dual functioning parts, but rather the body contains the mind, which is regarded as one of the senses of sight, hearing, taste, touch, smell and consciousness. In cases where Buddhism construed by Western academics as a type of psychology, mind is mistakenly considered to rule the body, but if one understands the body as a thing that is lived in the phenomenological sense of Western philosophers, such as Edmund Husserl, Maurice Merleau-Ponty, and others, then one will see it as a medium of sensation that experiences the world.5 [G. Chin]
(4) To state that one possesses a body or an eternal self is referred to as 身見 /我見, or 'seeing the body,' which is considered to be non-Buddhist. Sometimes the Japanese monks Dōgen (道元 1200–1253) and Shinran (親鸞 1173–1263) are considered to have believed in the existence of a 'spirit,' or tamashii 靈, but most scholars of Buddhism would dispute this. Belief in an eternal self is one of the five (mistaken) views 五見. [G. Chin]
(5) Although the Buddha is not thought of as being a rūpa body, during his lifetime, he suffered the vicissitudes of birth and death. Having achieved enlightenment, he shed his physical aspect and assumed a Tathāgata body that was no longer subject to the forces of karma; he was eternal, though lacking in substance, and a supernal entity that offers itself to the world through two of his three bodies (trikāya 三身), according to Mahāyāna schools of thought. Using these two bodies, he can remain in nirvāṇa, while he sends forth his nirmāṇa-kāya 化身, a transient physical body to help others, and allows others to see his body in visions and dreams that generates pleasure and ease, referred to as the saṃbhoga-kāya 應身, but most of all the eternal body, or dharma-kāya 法身 , is without fear or impairment that is supreme and remains aloof. For further discussion of the three bodies, see 三身. [G. Chin]
(6) The eternal bodies of the Buddha are born of pure mind or consciousness, thus mind-made-bodies 意生身 (manomaya-kāya) not composed from the five skandhas 五蘊.6 In the Mahāyāna tradition, bodhisattvas also possess salvific supernormal qualities to help sentient beings. Though they have the ability to achieve nirvāṇa, they have chosen to remain in the defiled world. The bodies by which they use to conjure miracles and rescue humans and other creatures are also created of pure consciousness at certain levels of consciousness; this is a body that is created at will. [G. Chin]
(7) The sentient being who perceives, also possesses the gross body that is subject to birth, illness, old age and death, and follows the laws of karma. Many modern scholars of Buddhist literature and art view the human body as 'flesh' that is subject to the vicissitudes of social attitudes and consequent gender politics, often under the influence of postmodernism in the thought of Michel Foucault and others.7 According to Buddhists, the body is an impermanent thing, therefore caution should be taken not to become attached to it, as well it is the source of desire of all types, especially sexual desire, and should be denied, although enough care should be taken so that the believer is able to practice the tenets of Buddhism and meditate. The Vimalakīrti-sūtra 維摩經 is an interesting Mahāyāna Buddhist entry into the topic of the body, as it is the skillful means 方便 by which the layman, Vimalakīrti expounds the Dharma to the defiled world. He feigns illness, proof of corporeal vulnerability, to gain an audience in order to teach. The body is considered to be innately sick in the Buddhist mind, according to the layman.
The body, whether female or male, is considered to be the root of desire, which causes suffering. Ending suffering is the ultimate goal of Buddhist practice therefore a thing that engenders continuous suffering is to be despised. This is clearly discussed in the Vimalakīrti-sūtra during the debate between the layman and the bodhisattva, Mañjuśrī. Mañjuśrī asks, "What is root of good and not good?" Vimalakīrti answers, "The body is the root." To which the bodhisattva again asks, "What is the root of the body?" To which, the layman says: "Desire and greed are the root." 8 In this simple parley the central Buddhist teaching about the corporeal reality of sentient beings is set forth. Then he says: "this body is impermanent, without durability...it suffers." 9 If the human form is a terrible thing, then he urges his audience to seek "the Buddha body:..Because the Buddha body is the Dharma body." 10 The corporeal body and the Dharma body are diametrical opposites. This sets the stage for the unfolding of the sermon. For the early Indian background to these thoughts found in the Vimalakīrti, see Liz Wilson, Chapter 2, pp.41-76.
All bodies are considered to be the source of defilement, especially that of the female, which has been much discussed in text and image, see 九想圖, Wilson, Kanda. The goal of Buddhism is extinction of the mortal body, so the female body that procreates new life is viewed as antithetical to its goals. In other ways, the female body also distracts monks away from their practice, inducing sexual desire. These are among the reasons for the Buddhist dislike of women and consequent discrimination between the sexes. Buddhist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is also a cultural accumulation that varies in the different societies that it has entered. [G. Chin]
(8)The Sanskrit word śarīra 舍利 refers to the body, meaning the relics of the Buddha and other holy persons.11 There are three types of relics, of which bodily relics are primary to the sense of remains of the body. As mentioned above, the Buddha had overcome the physical body in order to achieve mahāparinirvāṇa, hence death had been conquered, yet at the same time, his relics were a sign of his former presence and they remain the expression of his bodily presence on earth now. The bodily relics and the other accoutrements of the Buddha were enshrined at stūpas and worshiped, enabling those who made offerings to them to acquire merit. Relics were carried across Asia and prized as they conferred earthly and spiritual power upon the owners, thus the reason for royal patronage in various Buddhist countries, whose rulers claimed to be the protectors of the Buddha's body. [G. Chin]
In the Daoxing jing 道行經, shen 身 is used as a translation of skandha in the literal sense of a 'heap' of things. 「...於有 餘功德自致無餘。諸有般泥洹佛。於其中所作功德。至有淨戒身三昧身智慧身已脫 身脫慧所現身。」 "All those other merits, the merits of self-achieved without-remainder parinirvāṇa of a buddha, from within which are produced merits including the heaps of pure śīla, heaps of samādhi, heaps of wisdom, heaps of liberation, and the heap manifested by liberated wisdom." T 224.8.438a23. [Will Giddings; source(s): Nakamura]
When it translates the Sanskrit kāya, 身 can have the meaning of 'group, collection, kind of' as in the case of the compound pañca-vijñāna-kāyāḥ = 五識身, which Lambert Schmithausen renders as "five kinds of [sense-]perception." See Schmithausen, p. 650 and Edgerton, p.177. [A. Todeschini]
Transliterated as 提訶 . [Charles Muller]
(Skt. ātma-bhāva; aṅga, aṅga-pratyaṅga, adhiṣṭhāna, ātmaka, āśraya, indriya, upādāna, kaḍebara, kaḍevara, *kalevara, kāyêndriya, janman, tad-deha, tanu, *tanū, dehin, dhātu, dhātu-vigraha, nikāya, piṇḍa, pratikṛti, bhāva, *mūrti, vapus, vigraha, viṣpanda, veśa, veṣa, śarīratā, śarīrika, saṃkalā, saṃtati, saṃtāna, samuccaya, samucchraya, samūha*, sāṃtānika, skandha, sparśana, svabhāva-vigraha, sva-śarīr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References:
Edgerton, Franklin. 1977. Buddhist Hybrid Sanskrit Grammar and Dictionary: Volume II Dictionary. Delhi: Motilal Banarsidass.
Heendeniya, Kingsley. 2004. “On Understanding Namarupa.” In Sri Lanka Daily News. http://www.dailynews.lk; Accessed June 15, 2006
Kanda, Fusae. 2005. “Behind the Sensationalism: Images of a Decaying Corpse in Japanese Buddhist Art.” Art Bulletin 87, no. 1
Kasulis, Thomas, Roger Ames and Wimal Dissanayake. 1993. Self as Body in Asian Theory and Practic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Makransky, John. 2004. “Buddhahood and Buddha Bodies.” In Buswell, Robert E., Jr., ed. Encyclopedia of Buddhism. New York: MacMillan. 76–79.
Schmithausen, Lambert. 1987. Ālayavijñāna: On the Origin and the Early Development of a Central Concept of Yogâcāra Philosophy. Tokyo: International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Watson, Burton, trans. 1997. The Vimalakīrti-sūtr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Wilson, Liz. 2004. “Perspectives on the Body.” In Robert Buswell, , ed. Encyclopedia of Buddhism. New York: MacMillan. 63–66.
[G. Chin] - ↑ "色境",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色境
Basic Meaning: material objects
Senses:
Color and shape (Skt. rūpa-viṣaya, rūpa). One of the five classes of objects 五境. The objects of the vision faculty 眼根. In Yogâcāra theory, an aspect of the visual consciousness 眼根. 〔瑜伽論 T 1579.30.308a4〕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Hirakawa, Soothill, Yokoi,Iwanami] - ↑ "色境(색경)",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色境(색경)
5경(境)의 하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객관의 현상을 말함. - ↑ "색경[色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색경[色境]
육경(六境)의 하나.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12_p0848b16║云何
T31n1612_p0848b17║為色?謂眼境界,顯色、形色及表色等。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떤 것이 색인가. 눈의 경계가 되는 현색(顯色)과 형색(形色) 및 표색(表色) 등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13_p0851a13║云何色。謂眼之境。顯色。形色。及表色等。顯
T31n1613_p0851a14║色有四種。謂青黃赤白。形色。謂長短等。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무엇을 색이라고 하는가? 눈의 대상으로, 현색(顯色)ㆍ형색(形色)ㆍ표색(表色) 등이다. 현색이란 네 종류가 있으니, 푸른 색ㆍ누런 색ㆍ붉은 색ㆍ흰 색이다. 형색이란 길고 짧은 것 등을 말한다. - ↑ "色境",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色境
又作色處、色界。或單稱色。為五境之一,六境之一,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眼根所取青黃等質礙之境,稱為色境。分為二類:(1)形色,長、短、方、圓、高、下、正、不正。(2)顯色,青、黃、赤、白、雲、煙、塵、霧、影、光、明、闇。瑜伽師地論卷一則另加表色(行、住、坐、臥、取、捨、屈、伸),而合為三類。〔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一〕(參閱「十二處」502、「十八界」517、「五境」1535、「六境」1691、「表色」4428)p3196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3║彼所緣者。謂色。有見有
T30n1579_p0279b04║對。此復多種。略說有三。謂顯色形色表色。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그것30)의 소연(所緣)이란 색(色)으로서 유견유대(有見有對)31)를 말한다. 여기32)에 다시 여러 가지를 간략히 설명하면 현색(顯色)과 형색(形色)과 표색(表色)의 세 가지가 있다.
30) 안식(眼識)을 가리킨다.
31) 유견유대색(有見有對色)을 말하며, 12처(處)ㆍ18계(界)의 색처(色處)를 말한다. 이 때 유견유대(有見有對)라고 하는 것은 가히 볼 수 있는 것[可見]으로서 침입할 수 없는 성품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32) 유견유대(有見有對)의 색(色)을 말한다. - ↑ 가 나 다 라 마 바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2_p0483c14║色謂眼所行境。眼識所緣四大所造若顯色
T31n1602_p0483c15║若形色若表色為體。色蘊所攝。有見有對。此
T31n1602_p0483c16║復三種。謂妙不妙及俱相違。彼復云何。謂青
T31n1602_p0483c17║黃赤白如是等顯色。長短方圓麁細高下正
T31n1602_p0483c18║及不正。烟雲塵霧光影明闇。若空一顯色。若
T31n1602_p0483c19║彼影像之色。是名為色。 - ↑ 가 나 다 라 마 바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색경(色境)은161) 눈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안식의 인식대상[所緣]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빛깔[顯色]162)ㆍ형태[形色]163)ㆍ표색(表色)164)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있고 장애함이 있는 것[有見有對]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미묘함, 미묘하지 않음, 미묘하지도 않고 미묘하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푸른 것, 누른 것, 붉은 것, 흰 것, 이와 같은 따위의 빛깔, 긴 것, 짧은 것, 모난 것, 둥근 것, 거친 것, 미세한 것, 높은 것, 낮은 것, 반듯한 것, 반듯하지 않은 것, 연기, 구름, 먼지, 안개, 광선, 그림자, 밝음, 어둠, 공일현색(空一顯色)165)이나 그 영상의 빛깔이다. 이것을 색경이라고 이름한다.
161) 이하 5경(境)에 관하여 설명한다. 오경은 객관계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그 명칭은 오근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경(境, viṣaya)이란 경역분계(境域分界)라는 뜻으로서, 오근ㆍ오식이 반연하는 대상의 경역분계를 말한다.
162) 현요(顯了)하게 보이는 색채라는 뜻이다. 이에 12종류를 드는데, 이 중에서 청(靑)ㆍ황(黃)ㆍ적(赤)ㆍ백(白)을 4현색ㆍ4본색(本色)이라고도 하며, 운(雲)ㆍ연(煙)ㆍ진(塵)ㆍ무(霧)ㆍ영(影)ㆍ광(光)ㆍ명(明)ㆍ암(闇)의 8종은 4본색으로부터 변화된 것이다.
163) 일정한 형량(形量)이 있어서 안근에 견취(見取)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의 8종이 있다.
164) 남에게 표시할 수 있는 색법이란 뜻이다.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ㆍ취사(取捨)ㆍ굴신(屈伸) 등의 동작을 말한다.
165) 4주(洲)의 하늘색을 말한다. 즉 북주(北洲)의 금색, 동주(東洲)의 은색, 남주(南洲)의 벽색(碧色), 서주(西洲)의 적색이다. 수미산의 사면 공중에 각각 한 가지씩 빛깔[顯色]이 되므로 공일현색(空一顯色)이라 부른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5_p0663b29║何等
T31n1605_p0663c01║為色。謂四大種所造眼根所行義。謂青黃赤
T31n1605_p0663c02║白長短方圓。麁細高下正不正。光影明闇雲
T31n1605_p0663c03║煙塵霧。逈色表色空一顯色。此復三種。謂妙
T31n1605_p0663c04║不妙俱相違色。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색입니까?
4대종의 소조색으로 안근에 다다른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추색[麤]ㆍ세색[細]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ㆍ빛ㆍ그림자ㆍ구름ㆍ연기ㆍ먼지ㆍ안개ㆍ밝음ㆍ어두움ㆍ형색(色)ㆍ표색(表色)ㆍ공일현색(空一顯色)을 가리킨다. 또 세 종류가 더 있으니, 묘색(妙色)ㆍ불묘색(不妙色)ㆍ구상위색(俱相違色)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6_p0696a22║色者。四大種所造眼根所行義。謂青黃赤
T31n1606_p0696a23║白長短方圓。麁細高下若正不正。光影明
T31n1606_p0696a24║闇雲煙塵霧。逈色表色空一顯色。此復三
T31n1606_p0696a25║種。謂妙不妙俱相違色。此青等二十五色建
T31n1606_p0696a26║立。由六種因。謂相故安立故損益故作所依
T31n1606_p0696a27║故作相故莊嚴故。如其次第四十八一一
T31n1606_p0696a28║一。逈色者。謂離餘礙觸方所可得。空一顯
T31n1606_p0696a29║色者。謂上所見青等顯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색’입니까?
네 가지 대종에서 만들어진 색으로 안근에 다다른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청색ㆍ황색ㆍ적색ㆍ백색ㆍ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추색[麤]ㆍ세색[細]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ㆍ빛ㆍ그림자ㆍ구름ㆍ연기ㆍ먼지ㆍ안개ㆍ밝음ㆍ어두움ㆍ형색(色)ㆍ표색(表色)ㆍ공일현색(空一顯色)을 가리킨다. 또 세 종류가 더 있으니, 묘색(妙色)ㆍ불묘색(不妙色)ㆍ구상위색(俱相違色)이다. 이 같은 청색 따위의 스물다섯 가지 색의 건립은 여섯 가지 원인에 연유하는 것이니, 그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안립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줄거나 늘어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소의에 순응한 성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모양을 이루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장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 차례에 따라 네 가지 대종색ㆍ열 가지 현색ㆍ여덟 가지 형색ㆍ두 가지 묘색ㆍ한 가지 공일현색이 있다.
【釋】 ‘형색’이란 그밖에 다른 장애를 여의고서도 그 방향과 장소의 접촉이 가능한 것이다. ‘공일현색’이란 앞에서 본 청색 따위의 현색(顯色)을 말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3║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
T31n1605_p0663b14║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
T31n1605_p0663b15║觸法界相亦爾。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6_p0695c24║問色界何相。答諸色
T31n1606_p0695c25║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眼界
T31n1606_p0695c26║於此增上者。謂依色根增上力外境生故。如
T31n1606_p0695c27║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 - ↑ "顯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顯色
Basic Meaning: color
Senses:
One of the three aspects of form, in formʼs aspect as the object of the visual consciousness (Skt. varṇa-rūpa, varṇa; Tib. kha dog, kha dog gzugs). This is in contrast to the other aspects of form, such as shape 形色 and position 表色.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Hirakawa, YBh-In, Stephen Hodge, JEBD]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倶舍論 twelve colors are given, four of which (blue 靑, yellow 黃, red 赤, and white 白) are regarded as primary, with the others being combinations of these four. The four primary colors are considered by the Sarvâstivādas to be real dharmas and therefore directly perceivable by the eye. Yogâcāra also regards them as coming from their own seeds, adding to these the color of space 空 to bring the number to thirteen. The other colors are perceived by the thinking consciousness 意識. 〔瑜伽論 T 1579.30.279b4〕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5║顯色者。謂青黃赤白。光影明闇。雲煙塵霧。
T30n1579_p0279b06║及空一顯色。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현색(顯色)이란 푸르고[靑]ㆍ누렇고[黃]ㆍ붉고[赤]ㆍ희고[白]ㆍ빛[光]ㆍ그림자[影]ㆍ밝음[明]ㆍ어두움[闇]ㆍ구름[雲]ㆍ연기[煙]ㆍ티끌[塵]ㆍ안개[霧]ㆍ공일현색(空一顯色)33)을 말한다.
33) 맑은 하늘이 드러날 때에 하늘의 허공에 나타나는 유리색(瑠璃色)을 의미한다. - ↑ 가 나 "顯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顯色
梵語 varṇa-rūpa。指顯然可見之色。為「形色」之對稱。於一切色法中,其相狀顯著,可使眼見而識別者,有十二種,即:(1)青(梵 nīla)。(2)黃(梵 pīta)。(3)赤(梵 lohita)。(4)白(梵 avadāta)。(5)雲(梵 abhra),指龍氣。(6)煙(梵 dhūma),指火氣。(7)塵(梵 rajas),指被風吹起之細土。(8)霧(梵 mahikā),指地面之水蒸氣。(9)影(梵 chāyā),光明被障而不得明見物體或其餘諸色。(10)光(梵 ātapa),指日焰。(11)明(梵 āloka),指月、星、寶珠、電等之光焰。(12)闇(梵 andhakāra),全然無法見物。
其中,青、黃、赤、白等四種為本色,稱為四顯色,尤以白色最為殊勝;其餘八色均由本色之差別所立,故皆攝於此四本色中。
以上十二種顯色為小乘說一切有部所立,而唯識宗之瑜伽師地論卷一則增立「空一顯色」一項,總為十三種顯色;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增加「迥色」,共為十四種顯色。俱舍宗則於上記十二種外,另立長、短、方、圓、高、下、正、不正、空一顯色等九項,而成二十一種顯色。又在青、黃、赤、白外別加「黑」色,則為密宗之特論。又說一切有部認為此十二顯色有各別之「極微」,各有其別體;經部及唯識宗則主張僅有四本色為實色,其餘均為假色。〔識身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七十八、卷八十五、俱舍論卷一、俱舍論光記卷一〕p8656 - ↑ "瑠璃(유리)",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瑠璃(유리)
[1] 【범】 vaiḍūrya 7보(寶)의 하나. 폐유리(吠瑠璃)ㆍ폐유리야(吠瑠璃耶)ㆍ비두리(毘頭梨)ㆍ폐노리야(吠努璃耶)라 음역. 원산보(遠山寶)ㆍ불원산보(不遠山寶)라 번역. 6면체ㆍ능형(菱形)ㆍ12면체 등으로 된 결정체로서 푸른 빛을 띠었음. 중앙아시아 바이칼호(湖)의 남안 지방 등에서 산출.
[2] 연작류(燕雀類)의 새. 주둥이는 작고, 다리와 발가락은 길다. 수컷은 등이 유리 빛이고, 목은 검고 배는 흰 빛. 암컷은 등이 감람(橄欖) 빛, 허리는 흑다색(黑茶色)으로 되었음. - ↑ "유리[琉璃, 瑠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유리[琉璃, 瑠璃]
산스크리트어 vaiḍūrya의 음사. 검푸른 빛이 나는 보석. - ↑ "空一顯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空一顯色
顯色,指顯然可見之色。空一顯色,如蒼蒼天空之青色,現於空中,純一而不雜餘色。蓋於須彌山說中,謂該山之四面由四寶構成,即北面為黃金,東面為白銀,南面為琉璃,西面為頗梨;映照四大洲之天空,呈現北方之黃色,東方之白色,南方之青色,西方之赤色,純一而清淨,此稱空一顯色。唯識家以此色為十三種顯色之一,俱舍家有一說以之為二十一種顯色之一。
俱舍論光記卷一(大四一‧一六下):「妙高山四邊空中,各一顯色,名空一顯色,故正理三十四云:『空一顯色,謂見空中蘇迷廬山所現純色。』」此引文中之妙高山與蘇迷廬山皆係須彌山之異稱。
有關空一顯色之體,諸家所說不一:(1)識身足論卷十一,以青、黃、赤、白等四顯色為其體。(2)阿毘達磨順正理論卷一,以空界色為其體,而空界色以影、光、明、闇為其體。(3)俱舍論光記卷一會通上記二說,謂此空界色雖以影、光、明、闇為體,然影、光、明、闇係隨正顯色而應現者,故亦攝於青、黃、赤、白中。〔大毘婆沙論卷七十五、瑜伽師地論卷一、俱舍論卷一、卷十一、俱舍論寶疏卷一〕(參閱「顯色」8656)p4374 - ↑ "碧色". 네이버 한자사전.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碧色 벽색: 곱고 짙푸른 빛깔. - ↑ "琉璃",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琉璃
梵語 vaiḍūrya,巴利語 veluriya。七寶之一。意譯青色寶、遠山寶、不遠山寶。又作流璃、瑠璃、吠努璃野、吠琉璃耶、鞞稠利夜、吠琉璃、毘琉璃、茷琉璃、毘頭梨、鞞頭梨。為貓眼石之一種。種類有青、白、赤、黑、綠等各種顏色。其最大特色乃是具有「同化」之性質,亦即任何接近琉璃之物,皆被琉璃之色所同化。相傳虛空之顏色(青色)即是由須彌山南方之琉璃寶所映現者。又於三十三觀音中之琉璃觀音,即表琉璃同化之德而應現於世,攝化眾生。慧琳音義卷一(大五四‧三一七中):「其寶青色,瑩徹有光,凡物近之,皆同一色,帝釋髻珠,云是此寶。」〔玄應音義卷二十四、前漢書西域傳第六十六上之注〕p5286 - ↑ "形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形色
Basic Meaning: shape and form
Senses:
(Visual) appearance. Shape is understood as being defined by long 長, short 短, square 方, round 圓, high 高, low 下, straight 正, and crooked 不正 (Skt. saṃsthāna; Tib. dbyibs, dbyibs kyi gzugs). One of the three aspects of form, the other two being color 顯色 and position 表色. In its classification as a mental factor, it does not have its own seeds. Also associated with rūpâvacara as personal appearance, and as a class of gods in the realm of form. 〔瑜伽論 T 1579.30.280b5〕 (Skt. rūpa; saṃsthāna-rūpa; rūpata, varṇa, varṇa-sthāyin, vigraha, śarīra)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Soothill, Hirakawa, YBh-Ind, Yokoi, Iwanami] - ↑ "形色(형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形色(형색)
[1] 【범】 saṃsthānarūpa ↔현색(顯色).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서 인식하는 물질. 이에 장(長)ㆍ단(短)ㆍ방(方)ㆍ원(圓)ㆍ고(高)ㆍ하(下)ㆍ정(正)ㆍ부정(不正)의 8종이 있다.
[2] 【범】 rūpāvacara 형체색상(形體色相)이란 뜻. 곧 사람의 안색과 용모.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8║形
T30n1579_p0279b09║色者。謂若色積集長短等分別相。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형색이란 색이 모아졌을 때에[積集], 길고 짧은 것 등으로 갈라지는[分別] 상(相)을 말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0n1579_p0279b13║形色者。謂長短
T30n1579_p0279b14║等積集差別。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형색(形色)이란 길고 짧은 것 등으로 모아지는 것[積集]의 차별을 말하고, - ↑ "形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形色
(一)梵語 saṃsthāna-rūpa。有形之色。「顯色」之對稱。指色法中,質礙粗著,因觸而覺知其長短大小凹凸等者。計有八種:(1)長(梵 dīrgha),一面多生。(2)短(梵 hrasva),一面少生。(3)方(梵 caturaśra),四面齊等。(4)圓(梵 vṛtta),周遍一切處而生。(5)高(梵 unnata),中間凸出。(6)下(梵 avanata),中間拗凹。(7)正(梵 śāta),表面齊平。(8)不正(梵 viśāta),表面參差。說一切有部以此等諸色極微各別,各有別體;唯識大乘則以為非實色。〔俱舍論卷一、瑜伽師地論卷一、大毘婆沙論卷十三、卷七十五、俱舍論光記卷一、成唯識論述記卷二本〕
(二)形體與色相。即指人畜等之顏色形貌。〔法華經卷二信解品、無量壽經卷上、分別善惡報應經卷下〕p4783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6║形色者。謂長短方圓。麁細正不
T30n1579_p0279b07║正高下色。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형색이란 길고[長]ㆍ짧고[短]ㆍ모나고[方]ㆍ둥글고[圓]ㆍ굵고[麤]ㆍ가늘고[細]ㆍ곧고[正]ㆍ곧지 않고[不正]ㆍ높고[高]ㆍ낮은[下] 색(色)을 말한다. - ↑ "表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表色
Basic Meaning: expressive form
Senses:
Disclosive form — vijñapti-rūpa, in contradistinction to avijñapti-rūpa (unapprehended form). Activity that makes evident or observable by others the intention motivating the action, such as speech acts or physical gestures. A good example might be seen in a dance, or a menacing gesture. The intention remains hidden from others or unobservable in avijñapti-rūpa. Thus, in general, it refers to positional or motive aspects, such as walking, sitting, taking, refusing, bending, stretching, etc. Syn. with 表業. One of the three subcategories of form 色, the other two being color 顯色 and shape 形色 shape, long, short, etc. In its classification as a mental factor, it does not have its own seeds. (Skt. prativijñapti, vijñapti; Tib. rnam par rig byed) 〔瑜伽論 T 1579.30.279b4〕 [Dan Lusthaus,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Nakamura, YBh-Ind, Hirakawa] - ↑ "表色(표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表色(표색)
또는 작색(作色). 3종 색의 하나. 색은 능히 볼 수 있다는 뜻. 남에게 뚜렷이 나타내어 보일 수 있는 우리들의 모든 동작ㆍ행동. - ↑ "표색[表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표색[表色]
몸으로 나타내는 모든 형상과 자태. - ↑ "表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表色
凡吾人行、住、坐、臥、取、捨、屈、伸等種種動作形態顯然可表示於外而令人目見者,稱為表色。為唯識宗所立三種色境之一。舊譯為「作色」。據瑜伽師地論卷一之說,色有三種,即顯色、形色、表色:(1)顯色,如青黃赤白、光影明闇、雲煙塵霧,及空一顯色等皆為顯色。(2)形色,如長短方圓、粗細大小、直曲高下等諸種色法之相狀。(3)表色,如行、住、坐、臥、取、捨、屈、伸等各種動作形態。此表色,生滅相續,由變異之因,於先前生起之處不再重生,遂轉於異處。其前後之動作形態,或無間,或有間,或近,或遠,皆以差別而生,或即於此處變異而生。
小乘之說一切有部與俱舍宗皆僅提出顯、形二色而不立表色。俱舍論卷一(大二九‧二中):「言色二者,一顯二形。顯色有四,(中略)形色有八。」說一切有部並將表色攝於顯、形二色中之「形色」。唯識家則於顯、形二色之外別立表色。〔大毘婆沙論卷七十五、顯揚聖教論卷一、成唯識論卷一、成唯識論了義燈卷二、百法問答鈔卷一〕(參閱「形色」4783、「顯色」8656)p4428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7║表色者。謂取捨屈伸。行住坐臥。如
T30n1579_p0279b08║是等色。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표색(表色)이란 취하고[取]ㆍ버리고[捨]ㆍ굽히고[屈]ㆍ펴고[伸]ㆍ가고[行]ㆍ머무르고[住]ㆍ앉고[坐]ㆍ눕는[臥] 이와 같은 등의 색(色)을 말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b14║表色者。謂業用為依轉動差
T30n1579_p0279b15║別。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표색(表色)이란 업의 작용[業用]38)을 의지로 하여 구르고 움직이는 것[轉動]의 차별을 말한다.
38) 사업(思業)을 의미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b09║表色者。謂
T30n1579_p0279b10║即此積集色生滅相續。由變異因於先生
T30n1579_p0279b11║處不復重生轉於異處。或無間或有間。或
T30n1579_p0279b12║近或遠差別生。或即於此處變異生。是名表
T30n1579_p0279b13║色。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표색(表色)이란 모아진 색[積集色] 즉 형색(形色)이 생멸상속하면서 변이인(變異因: 달라지게 하는 원인)에 의해 먼저 생긴 곳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에서 생기는 것인데, 그 생기는 모습에 무간(無間) 혹은 유간(有間)의 차별, 즉,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 또는 가까움 혹은 멈의 차별, 즉, 공간적인 차별이 있다. 또는 '바로 이 곳'에서 달라져서 생기는 것도 있다, 즉, 시간적으로 같은 시간이고 공간적으로 같은 공간인 경우도 있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표색이란 이 모아진[積集] 색이 생멸상속(生滅相續)하고, 달라진[變異] 인(因)에 의하여 먼저 생긴 곳[先生處]에서 거듭 생기지 않고, 다른 곳[異處]에 전전하며 생기는 것인데, 무간(無間)35) 혹은 유간(有間)36) 혹은 가깝게 또는 멀게 차별이 생기는 것이며, 혹은 이 곳37)에서 달라져서[變異]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를 표색이라고 한다.}
35) 무간(無間)이란 하나의 업(業)이 상속(相續)하여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36) 유간(有間)이란 사이에 끊어짐이 있는 것으로 곧 중도(中途)에 끊어졌다가 다음 번에는 다시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37) 이곳이란 먼저 생긴 곳을 의미한다. - ↑ "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聲
Basic Meaning: voice
Senses:
Words, speech, sound; As sound, the requisite for the auditory consciousness 耳識 (Skt. śabda; Pāli sadda). The field of sound 聲入, 聲根, or 聲塵. One of the mental factors of in the category of form 色法 in the Yogâcāra framework. [Charles Muller]
To listen. [Charles Muller]
Name, fame. [Charles Muller]
Teaching, education, instruction. [Charles Muller]
(Skt. ghoṣa, ruta, svara; abhinadita, krośa, garjita, gir, gira, ghoṣa-mātra, jalpa, dhvani, dhvanita, *nāda, nirghoṣa, praṇāda, *yaśas, rava, vāg-vyāhāra, śabda-ghoṣa, śabda-dhātu, śabda-vijñapti, śrava, śrotavyaka, svana, svaratā; Tib. sgr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성[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성[聲]
산스크리트어 śabda
①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② 말. 언어. - ↑ "성경[聲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성경[聲境]
육경(六境)의 하나.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 ↑ "聲(성)",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聲(성)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 곧 소리. 『구사론』 제1권에 의하면 8종류가 있다. 곧 먼저 유정(有情)과 비정(非情)의 4대종(大種)으로 내는 소리를 나누고, 여기에 유정명(有情名)ㆍ비유정명(非有淨名)을 나누고, 다시 각기 가의(可意)와 불가의(不可意)를 나누어 8종으로 하였다 도표를 그리면 다음과 같다. ⇒성진(聲塵) - ↑ "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聲
梵語 śabda,巴利語 sadda。音譯攝拕。指具有呼召作用之音響。為耳根所聞、耳識所了別(認識)之對象,眼不能見及,具有障礙之性質,是即「無見有對」之色法。為六境(六塵)之一,十二處(十二入)之一,十八界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就處、界等,而稱聲為聲境、聲塵、聲處、聲入、聲界。
聲之分類,有各種異說。據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一等載,由發聲之物體有感覺與否,大別為有執受大種因之聲、無執受大種因之聲。執受,為心、心所之異名;有執受,指有情身;大種,即指地、水、火、風四大種。其聲發自有情之四大種者,稱為有執受大種因之聲,如人之言語、拍手之聲音等;發自非情之四大種者,稱為無執受大種因之聲,如化人之言語,或木、石等所發之聲音。其次,再視聲之具有意義、意志與否,各分為有情名之聲、非有情名之聲。更由各聲能否予人快感,又分為可意聲、不可意聲。以上所說計有八種。如表所示:
雜阿毘曇心論卷一將聲分別為因受四大聲(有執受之四大為因)、因不受四大聲(無執受之四大為因)、因俱聲(有執受、無執受兩種四大為因)等三種,而以擊鼓、吹貝所發出之聲音為因俱聲。然俱舍論並不贊成此種說法。
另據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載,聲有十一種,即:(1)可意聲。(2)不可意聲。(3)俱相違聲,既非可意聲,亦非不可意聲,故特稱為處中之聲。(4)因受大種聲,指有執受大種因之聲。(5)因不受大種聲。(6)因俱大種聲。(7)世所共成聲,指世俗性之聲。(8)成所引聲,指聖者之說。(9)遍計所執聲,指佛教以外之外道之說。(10)聖言所攝聲,即對見、聞、覺、知四者,以見說見,以不見說不見,指如實之音聲。(11)非聖言所攝聲。
瑜伽師地論卷一則舉出十八種,即:螺貝聲、大小鼓聲、舞聲、歌聲、諸音樂聲、俳戲叫聲、女聲、男聲、風林等聲、明了聲、不明了聲、有義聲、無義聲、下中上聲、江河等聲、鬥諍諠雜聲、受持演說聲、論義決擇聲。此外,密教則將各種音聲加以人格化,稱為金剛歌菩薩,謂此菩薩具有六十四種音聲。〔順正理論卷一、顯揚聖教論卷一、入阿毘達磨論卷上、瑜伽師地論卷三、俱舍論光記卷一、大乘義章卷八末〕 p8130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03║謂聲。無見有對。此復多種。如螺貝聲大小鼓
T30n1579_p0279c04║聲。舞聲歌聲諸音樂聲。俳戲叫聲女聲男
T30n1579_p0279c05║聲。風林等聲。明了聲不明了聲。有義聲無義
T30n1579_p0279c06║聲。下中上聲。江河等聲。鬪諍諠떠들다 훤雜聲。受持演
T30n1579_p0279c07║說聲。論義決擇聲。如是等類有眾多聲。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그것[耳識]의 소연(所緣)은 성(聲)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56)를 말한다.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소라고둥 소리ㆍ크고 작은 북 소리ㆍ춤 소리ㆍ노랫소리ㆍ여러 가지 음악 소리ㆍ울부짖는 소리[俳戲叫聲]ㆍ여자 소리ㆍ남자 소리ㆍ바람이 스치는 숲의 소리ㆍ명료한 소리ㆍ명료하지 않은 소리ㆍ뜻이 있는 소리ㆍ뜻이 없는 소리ㆍ상중하(上中下)의 소리ㆍ강하(江河) 등의 소리ㆍ투쟁하면서 떠드는 소리ㆍ수지(受持)하여 연설하는 소리ㆍ논의결택(論議決擇)하는 소리 등 이와 같은 종류의 많은 소리가 있다.
56) 무견유대성(無見有對聲)을 의미한다. - ↑ 가 나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07║此
T30n1579_p0279c08║略三種。謂因執受大種聲。因不執受大種
T30n1579_p0279c09║聲。因執受不執受大種聲。初唯內緣聲。次
T30n1579_p0279c10║唯外緣聲。後內外緣聲。 - ↑ 가 나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이를57) 세 가지로 간략히 하면, 즉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8)ㆍ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59)ㆍ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60)이다. 처음 것61)은 오직 안[內]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다음 것62)은 밖[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며, 마지막 것63)은 안팎[內外]의 것을 연(緣)하는 소리이다.
57)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소리들을 말한다.
58) 집수(執受)는 신근(身根)의 각수(覺受)를 생기게 함을 의미하므로, 유정(有情)의 육체로부터 생겨나는 언어ㆍ박수 등의 소리를 집수대종(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59) 불집수(不執受)는 각수(覺受)가 없는 것을 의미하므로 무감각의 4대종(大種)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자연의 여러 가지 소리를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60) 손으로 북을 쳐서 나는 소리와 같이 유정물(有情物)과 무정물(無情物)이 만나서 소리를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을 인(因)으로 하는 소리라고 한다.
61) 집수대종(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62) 불집수대종(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63) 집수불집수대종(執受不執受大種)에 의한 소리를 말한다. - ↑ "執受(집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執受(집수)
바깥 경계를 접촉할 때에 그것을 받아들여 잃어버리지 않고, 고ㆍ락(苦樂) 등의 감각을 내는 것. - ↑ "無執受(무집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無執受(무집수)
↔유집수(有執受). 감각을 가진 현재의 5근(根)을 유집수라 함에 대해서, 과거ㆍ미래의 5근과 현재에 있으면서도 감각하지 못하는 머리털ㆍ손톱ㆍ땅ㆍ물 따위를 말함.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10║此復三種。謂可意聲。
T30n1579_p0279c11║不可意聲。俱相違聲。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여기에도 가의(可意)의 소리ㆍ불가의(不可意)의 소리ㆍ구상위(俱相違)의 소리64)의 세 가지가 있다.
64) 구상위(俱相違)란 듣기 좋은 가의(可意)의 소리도 아니고, 듣기 나쁜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불고불락(不苦不樂)의 무기(無記)의 소리를 의미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11║又復聲者。謂鳴音詞吼。
T30n1579_p0279c12║表彰語等差別之名。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또한 소리[聲]에는 즉, 울음ㆍ소리ㆍ말ㆍ울부짖음ㆍ드러내는 말 등의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5_p0663c04║何等為聲。謂四大種所造耳
T31n1605_p0663c05║根所取義。或可意或不可意。或俱相違。或
T31n1605_p0663c06║執受大種為因。或不執受大種為因。或俱大
T31n1605_p0663c07║種為因。或世所極成。或成所引。或遍計所起。
T31n1605_p0663c08║或聖言所攝。或非聖言所攝。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소리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이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가의성(可意聲)이거나, 불가의성(不可意聲)이거나, 구상위성(俱相違聲)이거나, 집수대종위인성(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 불집수대종위인성(不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 구대종인성(俱大種因聲)이거나, 세소극성성(世所極成聲)이거나, 성소인성(成所引聲)이거나, 변계소기성(遍計所起聲)이거나, 성언소섭성(聖言所攝聲)이거나, 비성언소섭성(非聖言所攝聲)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6_p0696b01║聲者四大種所造耳根所取義。若可意。若不
T31n1606_p0696b02║可意。若俱相違。若因受大種。若因不受大
T31n1606_p0696b03║種。若因俱大種。若世所共成。若成所引。若
T31n1606_p0696b04║遍計所執。若聖言所攝。若非聖言所攝。如是
T31n1606_p0696b05║十一種聲。由五種因所建立。謂相故。損益
T31n1606_p0696b06║故。因差別故。說差別故。言差別故。相者。謂
T31n1606_p0696b07║耳根所取義。說差別者。謂世所共成等三。
T31n1606_p0696b08║餘如其所應。因受大種者。謂語等聲。因不受
T31n1606_p0696b09║大種者。謂樹等聲。因俱者。謂手鼓等聲。世
T31n1606_p0696b10║所共成者。謂世俗語所攝。成所引者。謂諸聖
T31n1606_p0696b11║所說。遍計所執者。謂外道所說。聖非聖言
T31n1606_p0696b12║所攝者。謂依見等八種言說。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소리’입니까?
네 가지 대종에서 만들어진 이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가의성(可意聲)이거나, 불가의성(不可意聲)이거나, 구상위성(俱相違聲)이거나, 인수대종(因受大種: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인불수대종(因不受大種:不執受大種爲因聲)이거나, 인구대종(因俱大種:俱大種因聲)이거나, 세소공성(世所共成:世所極成聲)이거나, 성소인성(成所引聲)이거나, 변계소집성(遍界所執聲)이거나, 성언소섭성(聖言所攝聲)이거나, 비성언소섭성(非聖言所攝聲)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소리는 다섯 가지 원인에서 건립되는 것이니, 그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줄거나 늘어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인의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그 말하는 것의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언어의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釋】 ‘모양에 기인하는 것’이란 이근에서 얻어지는 이치이고, ‘말하는 것의 차별에 기인하는 것’이란 세소공성 따위의 세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니, 그 밖의 다른 것은 그 상응하는 바와 마찬가지이다. ‘인수대종’이란 말소리 따위의 소리이고, ‘인불수대종’이란 수목 따위에서 생겨나는 소리이고, ‘인구대종성’이란 손바닥으로 북을 치는 따위에서 생겨나는 소리이다. ‘세소공성’이란 세속의 말에 수렴되는 것이고, ‘성소인성’이란 모든 성인의 말씀이고, ‘변계소집성’이란 여러 외도의 말이고, ‘성비성언소섭성’이란 사견 따위에 의지하는 여덟 가지 언설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3║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
T31n1605_p0663b14║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
T31n1605_p0663b15║觸法界相亦爾。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6_p0695c24║問色界何相。答諸色
T31n1606_p0695c25║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眼界
T31n1606_p0695c26║於此增上者。謂依色根增上力外境生故。如
T31n1606_p0695c27║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 - ↑ "香境",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香境
Basic Meaning: odor
Senses:
(Skt. gandha-viṣaya). One of the five classes of sense-objects. The object of the olfactory faculty. 〔成唯識論述記 T 1830.43.328b19〕 [Charles Muller] - ↑ "香",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香
Basic Meaning: scent
Senses:
In Abhidharma and Yogâcāra consciousness theory, odor, as the object of the olfactory consciousness 鼻識. It is categorized into the three types of pleasant, unpleasant, and neutral. Like other form dharmas 色法, it is understood as arising from its own distinctive seeds, rather than being derived from other factors. One of the ṣaḍāyatana, six sense bases 六入. 〔觀心覺夢鈔 T 2312.71.68b7〕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kt. dhūpa; gandha-mādana, gandhin, gāndhika, candana, cānā, cāndana, dhūpa-gandha, dhūpana, niṣpratika, vahuri, sugandha, sugandhi, surabhi; Tib. dri sa'i yon tan, dri)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香(향)",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香(향)
[1] 【범】 gandha 건타(乾陀)ㆍ건두(健杜)ㆍ건태(健駄)라 음역. (1) 5경(境)의 하나. 코[鼻根]가 인식하는 대상. 이것을 크게 나누어 호향(好香)ㆍ오향(惡香)ㆍ등향(等香)의 3종, 또는 부등향(不等香)을 합한 4종으로도 함.
[2] 향기가 많은 나무진ㆍ나뭇조각ㆍ나뭇잎 등으로 만들어, 불에 태워서 향기를 피우는 물건. 이것을 피우면 나쁜 냄새를 없애고 심식을 깨끗하게 하므로 불전에 피워서, 꽃ㆍ등불과 함께 공양하는 물건으로 쓴다. 불에 피우는 향이외에 바르는 향과 향수 등이 있다. 이것은 본존(本尊)이나 수행자의 몸에 바르거나, 땅에 흩어서 더러운 냄새를 없애는 데 씀. - ↑ "향경[香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향경[香境]
육경(六境)의 하나.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 ↑ "향[香]",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향[香]
산스크리트어 gandha
①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② 향나무에서 향료를 채취하여 만든 것으로, 이것을 피워 불전(佛前)에 공양함.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2_p0483c26║香謂鼻所行境。鼻識所緣四大所造可嗅物
T31n1602_p0483c27║為體色蘊所攝。無見有對性。此復三種謂
T31n1602_p0483c28║好香惡香及俱非香。彼復云何。所謂根莖皮
T31n1602_p0483c29║葉花果煙末等香。若俱生若和合若變異是
T31n1602_p0484a01║名為香。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향경(香境)은 코가 작용하는 경계이고, 비식(鼻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냄새 맡을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좋은 냄새, 나쁜 냄새,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냄새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뿌리ㆍ줄기ㆍ껍질ㆍ잎새ㆍ꽃ㆍ열매ㆍ연기ㆍ가루 등의 냄새인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향경이라고 이름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18║彼所
T30n1579_p0279c19║緣者謂香。無見有對。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그것[鼻識]의 소연이란 향(香)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6)를 말한다.
66) 무견유대향(無見有對香)을 의미한다. - ↑ 가 나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19║此復多種。謂好香惡香
T30n1579_p0279c20║平等香。鼻所嗅知根莖華葉果實之香。如
T30n1579_p0279c21║是等類有眾多香。 - ↑ 가 나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여기에도 즉 호향(好香)ㆍ악향(惡香)ㆍ평등향(平等香)67)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냄새맡아서 알게 되는 뿌리ㆍ줄기ㆍ꽃ㆍ잎사귀ㆍ과실의 향, 이런 등등의 많은 종류의 여러 가지 향(香)이 있다.
67) 호향(好香)도 악향(惡香)도 아닌 향기를 말한다. - ↑ "香",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香
梵語 gandha,巴利語同。音譯為乾陀。乃鼻根所嗅之物,鼻識所分別之對象之一。為五境(五塵)、六境、十二處、十八界、七十五法、百法等之一。在品類足論卷一、法蘊足論卷十中,分有好香、惡香、平等香等三香。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一中,則分為好香、惡香、平等香、不平等香等四種香。
關於好、惡、平等之分類,大毘婆沙論卷十三由各種觀點加以論說,例如香給予心所起之快、不快、非快非不快,抑或香能否滋養、損害我人之五官,或非滋養非損害五官,以及產生香之成因是由福業、罪業,或由四大種勢力而來者等。又另對四香之中,等與不等之區別,是否可由香之力量保持平衡而滋養身體,或因不平衡而損害身體,或視香力之強弱而定等,凡此種種問題,亦均加以討論。此外,如瑜伽師地論卷三,對香亦舉出一種到十種之分類。 〔法華經卷六法師功德品、陀羅尼集經卷十二、舊華嚴經卷四十九、新華嚴經卷六十七〕p5049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5_p0663c08║何等為香。謂四
T31n1605_p0663c09║大種所造鼻根所取義。謂好香惡香平等香
T31n1605_p0663c10║俱生香和合香變異香。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향기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비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좋은 향기[好香]ㆍ나쁜 향기[惡香]ㆍ평등향(平等香:몸에 좋은 냄새)ㆍ구생향(俱生香)ㆍ화합향(和合香)ㆍ변이향(變異香)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6_p0696b13║香者四大種所造鼻根所取義。謂好香惡香
T31n1606_p0696b14║平等香俱生香和合香變異香。當知此香三
T31n1606_p0696b15║因建立。謂相故損益故差別故。俱生香者。旃
T31n1606_p0696b16║彈那等。和合香者。謂和香等。變異香者。
T31n1606_p0696b17║謂熟果等。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향기’입니까?
네 가지 대종에서 만들어진 비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좋은 향기[好香]ㆍ나쁜 향기[惡香]ㆍ평등향(平等香:몸에 좋은 냄새)ㆍ구생향(俱生香)ㆍ화합향(和合香)ㆍ변이향(變異香)을 가리킨다. 이 같은 향은 세 가지 인으로 건립되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줄거나 늘어남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차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釋】 ‘구생향’이란 전단향의 향기 따위이고, ‘화합향’이란 여러 가지 향기가 섞인 것이고, ‘변이향’이란 과일이 익으면 생겨나는 향기 따위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3║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
T31n1605_p0663b14║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
T31n1605_p0663b15║觸法界相亦爾。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6_p0695c24║問色界何相。答諸色
T31n1606_p0695c25║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眼界
T31n1606_p0695c26║於此增上者。謂依色根增上力外境生故。如
T31n1606_p0695c27║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 - ↑ "味境",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味境
Basic Meaning: flavor
Senses:
One of the five classes of sense objects (Skt. rasa-viṣaya, rasa). The object of the gustatory faculty that is discriminated by the taste consciousness. 〔瑜伽論記 T 1828.42.648a18〕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미[味]",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미[味]
① 산스크리트어 rasa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② 산스크리트어 āsvāda 애착. 탐닉. 갈애(渴愛). - ↑ "미경[味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미경[味境]
육경(六境)의 하나.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 ↑ "味",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味
梵語 rasa,巴利語同。依感覺器官或感覺機能(即五根),所得知對象(五境)之一。即由舌根所嘗之味,亦即舌根所受用之境。乃十二處之一,十八界之一,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味之種類,諸說有異,如品類足論卷一,將味分為可意、不可意、順捨等三種。法蘊足論卷十,分味為根、莖、枝、葉、花、果、食、飲、諸酒、苦、酢、甘、辛、鹹、淡、可意、不可意、順捨等十八種。大毘婆沙論卷十三、俱舍論卷一等,將味分為甘、醋(又作酢、酸)、鹹、辛、苦、淡等六味。六味之外另加澀、不了,稱為八味;六味中,若除去淡味,則為五味。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以上述之三味、六味,再加俱生、和合、變異等成為十二種味。此外,攢搖牛乳而有乳、酪、生酥、熟酥、醍醐等五味之分別。須彌山之七內海,及淨土之浴地等,其水有甘、冷、軟等八味。具足多種之好味,稱百味之飲食。又愛樂於正法而產生殊妙之味,稱為法味,或禪味。於涅槃悟境所具足之常、樂、我、淨四德,可開演為八味,即常、恆、安、清淨、不老、不死、無垢、快樂等,此稱八功德水,又稱八味水。
另依北本大般涅槃經卷十四載,佛陀說法之順序,由廣說至要略可分為五階段,乃以牛乳之乳、酪等五味比喻層層進階之境界。天台宗則將釋尊一代之教說,分為華嚴時、鹿苑時、方等時、般若時、法華涅槃時等五時,以之配合乳、酪等五味,闡釋佛陀說法之順序與內容。〔順正理論卷一、瑜伽師地論卷一、卷三、大毘婆沙論卷一二七、大乘義章卷八末〕(參閱「五時八教」1488)p3914 - ↑ "味塵(미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味塵(미진)
6진(塵)의 하나. 설근(舌根)ㆍ설식(舌識)의 대경(對境)인 맛. 이 맛은 심식(心識)을 물들여 번뇌를 일으키게 하므로 진(塵)이라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2_p0484a01║味謂舌所行境。舌識所緣四大所造
T31n1602_p0484a02║可嘗物為體。色蘊所攝。無見有對性。此復
T31n1602_p0484a03║三種。謂甘不甘及俱相違。彼復云何。所謂
T31n1602_p0484a04║酥油沙糖石蜜熟果等味。若俱生若和合若
T31n1602_p0484a05║變異。是名為味。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미경(味境)은 혀가 작용하는 경계이고, 설식(舌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맛볼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단 것, 달지 않은 것, 달지도 않고 달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소유(酥油)ㆍ사탕ㆍ석밀(石蜜)167)ㆍ익은 과일 등의 맛인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미경이라고 이름한다.
167) 빙사탕(氷砂糖)을 말한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28║彼所
T30n1579_p0279c29║緣者謂味。無見有對。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그것[舌識]의 소연(所緣)은 미(味)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69)를 말한다.
69) 무견유대미(無見有對味)를 의미한다. - ↑ 가 나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79c29║此復多種。謂苦酢辛甘
T30n1579_p0280a01║鹹淡。可意不可意。若捨處所舌所甞。 - ↑ 가 나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여기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즉 쓰고[苦]ㆍ시고[酢]ㆍ맵고[辛]ㆍ달고[甘]ㆍ짜고[鹹]ㆍ싱거운 것[淡]이 있고, 가의(可意), 불가의(不可意), 혹은 사(捨)70)의 처소(處所)가 있으며, 설근이 맛보는 대상[所嘗]이 있다.
70) 가의(可意)도 아니고 불가의(不可意)도 아닌 맛[味]을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12_p0848b20║云何為味?謂舌境界,甘味、酢味、
T31n1612_p0848b21║醎味、辛味、苦味、淡味。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떤 것이 맛인가. 단맛ㆍ신맛ㆍ짠맛ㆍ매운맛ㆍ쓴맛ㆍ싱거운 맛 등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13_p0851a25║云何味。謂舌之境。甘醋醎辛苦淡等。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무엇을 맛이라고 하는가? 혀의 대상으로, 달고, 시고, 짜고, 맵고, 쓰고, 싱거운 맛 등이다.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5_p0663c10║何等為味。謂四大種
T31n1605_p0663c11║所造舌根所取義。謂苦酢甘辛醎淡。或可意
T31n1605_p0663c12║或不可意。或俱相違或俱生。或和合或變異。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맛입니까?
4대종에 소조된 설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쓴맛, 신맛, 단맛, 매운맛, 짠맛, 담백한 맛이다. 가의미(可意味)이거나, 불가의미(不可意味)이거나, 구상위미(俱相違味)이거나, 구생미(俱生味)이거나, 화합미(和合味)이거나, 변이미(變異味)를 가리킨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80a01║又味
T30n1579_p0280a02║者。謂應甞應吞應噉。
T30n1579_p0280a02║應飲應舐應吮應
T30n1579_p0280a03║受用。如是等差別之名。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또한 미(味)란 이른바 맛보겠다, 삼키겠다, 씹겠다, 마시겠다, 핥겠다, 빨겠다, 수용하겠다는 등의 위와 같은 차별적인 이름이 있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6_p0696b17║味者四大種所造舌根所取義。謂
T31n1606_p0696b18║苦酢甘辛醎淡。若可意若不可意若俱相違。
T31n1606_p0696b19║若俱生若和合若變異。建立此味應如香說。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맛’입니까?
네 가지 대종에서 만들어진 설근에 섭취되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쓴맛ㆍ신맛ㆍ단맛ㆍ매운맛ㆍ짠맛ㆍ담백한 맛이다. 가의미(可意味)이거나, 불가의미(不可意味)이거나, 구상위미(俱相違味)이거나, 구생미(俱生味)이거나, 화합미(和合味)이거나, 변이미(變異味)를 가리킨다. 이 같은 ‘미’의 건립도 ‘향’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3║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
T31n1605_p0663b14║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
T31n1605_p0663b15║觸法界相亦爾。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6_p0695c24║問色界何相。答諸色
T31n1606_p0695c25║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眼界
T31n1606_p0695c26║於此增上者。謂依色根增上力外境生故。如
T31n1606_p0695c27║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 - ↑ "觸境",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觸境
Basic Meaning: tactile objects
Senses:
One of the six classes of objects 六境. The objects of the tactile faculty (Skt. sparśa, *spraṣṭavya). 〔瑜伽論 T 1579.30.377b2, 成唯識論 T 1585.31.11b19〕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Hirakawa]
Impinging objects; a general term for the objects that impinge on the consciousness. 〔梵網經古迹記 HBJ.433c6; T 1815.40.696a22〕 [Charles Muller] - ↑ "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觸
Basic Meaning: contact
Senses:
Or touch (Skt. sparśa, saṃsparśa; Tib. reg pa). The mental function that brings consciousness into contact with external objects. In Yogâcāra theory, in one interpretation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five omnipresent mental factors 五遍行. One of the twelve links of conditioned arising 十二因緣. But also see next.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Ui, Nakamura]
Tangible; a tactile object, one of the five/six objects of perception and sensation 五境/五塵(六境) (Skt. spraṣṭavya; Tib. reg bya). In this sense, it is counted as one of the form dharmas 色法 and one of the four sensory objects 四塵; as a derivative of the four main elements 四大, it does not have its own distinctive seeds.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To attain (Skt. spṛśati; Tib. reg par byed pa). [Charles Muller; source(s): Stephen Hodge]
Also used as a variant form of meaning of 濁 'unclean.' [Charles Muller; source(s): Ui, Soothill]
Held onto (Pāli parāmaṭṭha). 〔解脫道論 T 1648.32.401c22〕 [Nyanatusita]
(Skt. āmṛśa, āmoṣa, upahanyamāna, parāmṛṣṭa, mṛdu, saṃyoga, saṃsarga, saṃsṛṣṭa, saṃsparśa-ja, saṃsparśana, samudīraṇatva, spariśa, sparśana, sparśa-bhāva, sparśa-bhūta, sparśitavya, sparṣṭavya, spṛśya, spṛṣṭa, spṛṣṭi, spraṣṭavyatva, spraṣṭavyâyatana; Pāli phoṭṭhabba, phassa; Tib. reg bya rlung gi yon tan, reg by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촉경[觸境]",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촉경[觸境]
육경(六境)의 하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 ↑ "촉[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촉[觸]
①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접촉. 부딪침.
② 산스크리트어 sparśa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의 화합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③ 산스크리트어 spraṣṭavya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 ↑ "觸(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觸(촉)
(1)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대상에 접촉하는 것. 근(根)과 경(境)과 식(識)을 화합시키는 작용. (2) 5경(境)의 하나. 몸에 닿는 대상. 굳은 것(堅)ㆍ축축한 것(濕)ㆍ더운 것(煖)ㆍ흔들리는 것(動)ㆍ매끄러운 것(滑)ㆍ껄끄러운 것(灄)ㆍ무거운 것(重)ㆍ가벼운 것(輕)ㆍ찬 것(冷)ㆍ배고픈 것(飢)ㆍ목마른 것(渴) 등의 11로 나눔. (1)은 인식 주체에게 일어나는 작용인데 비해 (2)는 몸으로 대하는 물질적인 색법(色法)을 말함. - ↑ 가 나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80a09║彼所
T30n1579_p0280a10║緣者。謂觸。無見有對。 - ↑ 가 나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그것[身識]의 소연이란 촉(觸)으로서 무견유대(無見有對)72)를 말한다.
72) 무견유대촉(無見有對觸)를 의미한다. - ↑ "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觸
(一)梵語 sparśa,巴利語 phassa。為心所(心之作用)之一。俱舍宗以其為十大地法、七十五法之一,唯識宗視為五遍行、百法之一。指境(對象)、根(感官及其機能)、識(認識)三者和合時所產生之精神作用;亦即指主觀與客觀接觸之感覺而言。
此時之根、境、識各分為六種,則觸亦有六觸(六觸身,身為複數之意)。例如由眼根、色境、眼識三者和合而產生之觸為眼觸,如由耳、鼻、舌、身、意產生耳觸乃至意觸。此為說一切有部所立三和合生觸之義,即根、境、識和合時,能生其他心所。經量部則唯以根、境、識三者和合名為觸,無有別體,名三和成觸。
於六觸中,前五觸所依之根為有對(二物有相互為障之性質),故稱有對觸。第六觸之意觸,以名(增語)為對象,故稱增語觸;此增語觸對第(二)項中所說之以身根為對象之所觸而言,此為能觸。
又隨染淨等相應法之別而有八種觸,即與無漏相應之明觸、與染污相應之無明觸、與有漏善及無覆無記相應之非明非無明觸,及無明觸中與愛相應之愛觸、與恚相應之恚觸,以及隨受之不同而產生樂受之順樂受觸、生苦受之順苦受觸、生不苦不樂受之順不苦不樂受觸。
此外,十二緣起之第六支為觸,又稱觸支,有部依分位緣起釋為嬰兒期之「觸」。即於嬰兒期根、境、識三者和合而未了知苦樂差別之位。〔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二十三、俱舍論卷四、卷九、卷十、大乘義章卷四〕
(二)梵語 spraṣṭavya,巴利語 phoṭṭhabba。五境之一,十二觸之一,十八界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被觸之對象,故亦譯為「所觸」。指身根感覺之對象,即所觸之對境,稱為觸境,乃五境、六境之一。共有十一觸:即地、水、火、風四大種,與滑、澀、重、輕、冷、饑、渴等十一種。其中四大種為能造之觸,後七種為所造之觸。〔大毘婆沙論卷一二七、俱舍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品類足論卷一〕p8510 - ↑ 가 나 다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2_p0484a05║觸一分謂身所行境。身識所
T31n1602_p0484a06║緣四大所造可觸物為體。色蘊所攝。無見有
T31n1602_p0484a07║對性。此復三種。謂妙不妙及俱相違。彼復
T31n1602_p0484a08║云何。所謂澁滑輕重緩急軟冷飢渴飽悶強
T31n1602_p0484a09║弱癢病老死疲息粘勇。或緣光澤。或不光
T31n1602_p0484a10║澤。或緣堅實。或不堅實。或緣執縛。或緣增
T31n1602_p0484a11║聚。或緣乖違。或緣和順。若俱生若和合若變
T31n1602_p0484a12║異。是名觸一分。 - ↑ 가 나 다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촉경(觸境)의 일부분은168) 몸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신식(身識)의 인식대상이며, 사대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사물을 체성으로 삼는다. 색온에 포섭되고,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있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미묘함, 미묘하지 않음, 미묘하지도 않고 미묘하지 않음도 아닌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떠한가? 이른바 깔깔함, 미끄러움, 가벼움, 무거움, 따뜻함, 빠름, 유연함, 차가움, 굶주림, 목마름, 배부름, 답답함, 강함, 약함, 가려움, 병듦, 늙음, 죽음, 피곤함, 쉼, 끈끈함, 날램이고, 혹은 광택을 반연함, 혹은 광택이 나지 않음, 혹은 견실(堅實)을 반연함, 혹은 견실하지 않음, 혹은 잡아서 묵는 것을 반연함, 혹은 더욱 모임을 반연함, 혹은 어김을 반연함, 혹은 순조로움을 반연함이며, 본래적인 것이거나 화합에 의해서거나 변하여 달라짐에 의해서거나 이것을 촉감[觸]의 일부분이라고 이름한다.
168) 어째서 ‘일부분’이라고 하는가 하면, 촉(觸)에는 능조(能造)의 촉과 소조(所造)의 촉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에는 지ㆍ수ㆍ화ㆍ풍의 4대(大)가 있고, 후자에는 깔깔함ㆍ매끄러움 등의 촉감이 있다. 소조의 촉경은 능조 4대의 은현(隱顯)에 의하여 차이가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지대ㆍ풍대의 세력이 성하여 추강(麤强)한 것이 깔깔함[澁]이고, 수대ㆍ화대의 세력이 성하여 유연한 것이 매끄러움[滑]이다. - ↑ 가 나 다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5_p0663c13║何等所觸一分。謂四大種所造身根所取義。
T31n1605_p0663c14║謂滑性澁性輕性重性軟性緩急冷飢渴飽力
T31n1605_p0663c15║劣悶癢黏病老死疲息勇。 - ↑ 가 나 다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을 접촉 받는 일부분이라 합니까?
4대종에서 조작되는 신근에 섭취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매끄러움ㆍ까칠까칠함ㆍ가벼움ㆍ무거움ㆍ부드러움ㆍ헐거움ㆍ뻑뻑함ㆍ추움ㆍ배고픔ㆍ목마름ㆍ배부름ㆍ기력ㆍ무기력ㆍ답답함ㆍ가려움ㆍ끈끈함ㆍ병ㆍ늙음ㆍ죽음ㆍ피곤함ㆍ편안함ㆍ활력 따위를 가리킨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12_p0848b22║云何為所觸一分?謂身境界,除四大種餘
T31n1612_p0848b23║所造觸,滑性、澁性、重性、輕性、冷、飢、渴等。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떤 것이 촉의 일부분인가. 몸의 경계로서 네 가지 원소를 제외한 그 밖의 소조촉(所造觸)인 미끄러운 성질과 깔깔한 성질과 무거운 성질과 가벼운 성질과 차가움과 굶주림과 목마름 등이다. - ↑ "四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四大
梵語 catvāri mahā-bhūtāni,巴利語 cattāri mahā-bhūtāni。為四大種之略稱。又稱四界;界,即梵語 dhātu 之意譯。佛教之元素說,謂物質(色法)係由地、水、火、風等四大要素所構成。即:(1)本質為堅性,而有保持作用者,稱為地大(梵 pṛthivī-dhātu,巴 paṭhavī-mahā-bhūta)。(2)本質為濕性,而有攝集作用者,稱為水大(梵 ab-dhātu,巴 āpo-mahā-bhūta)。(3)本質為暖性,而有成熟作用者,稱為火大(梵 tejo-dhātu,巴 tejo-mahā-bhūta)。(4)本質為動性,而有生長作用者,稱為風大(梵 vāyu-dhātu,巴 vāyo-mahā-bhūta)。積聚四大即可生成物質,故四大又稱能造之色、能造之大種;被造作之諸色法,則稱四大所造。又四大種之「大」,意即廣大,具有下列三義:(1)四大種之體性廣大,遍於一切色法,故有「體大」之義。(2)四大種之形相廣大,如大山、大海、大火、大風等,故有「相大」之義。(3)四大種之事用廣大,如水、火、風三災及任持大地之地大等,故有「用大」之義。而四大種之「種」,則以此四大為一切色法所依之性,具有能生、因等義,如父母為子女所依,然父母亦具有能生之因,故稱為種;而由四大所產生(造)之物質(如五根、五境等),與四大之關係,如同親子,而各自獨立存在。元素之四大,因為具有生因、依因、立因、持因、養因,故稱能造之色。
若依俱舍論之說,此四大具有假實之分別:即上述之堅、濕、暖、動之四大,為實四大、性四大;而世間人所謂的地、水、火、風,則為假四大、事四大。前者屬於身根之所觸,為觸處所攝;後者則屬於眼之所見,為顯色、形色所攝。
蓋佛教主張世界萬物及人之身體,均由四大所組成,即四大相倚,乃有極微,而極微相聚則成色法。此能造之四大種與所造之色、香、味、觸四塵(又作四微)必處於一處,此即「八事俱生」。又四大種雖通於一切色法,然於不同色法之中,其中之一較為增長,如山岳等堅物之中,地大較增長;河海等濕物之中,水大較增長。此增長又可從四大之體性及勢力方面分為二種增長。另外未顯之三大,乃潛在其中,靜待「緣會」而顯現,恰如打石而生火,水寒時則結冰等。
又說一切有部主張能造之四大各別,故產生所造之色法有十一種差別。即眼根所依之大種唯造眼根,而耳、鼻、舌、身等根乃至色、聲、香、味、觸、法(無表色)等處,皆各由其所依之大種而造,合為十一種色法。並主張八事俱生,且於八事外加上身根,稱為九事俱生,再加上眼根,稱為十事俱生。
上述對四大種之解釋,乃根據俱舍論卷一、卷四、卷十三、大毘婆沙論卷七十五、卷一二七、卷一三一等所舉。
此外,於其他經典及諸部則另有種種異說,茲列舉如下:(1)據成實論卷三、卷四載,色、香、味、觸四塵為能造,地、水、火、風四大為所造,四大成五根,然此四大為假名法,若離開四塵則不存在,因四塵具有堅、濕、暖、動之相,四大則為假立,而五根由四大所成,故五根亦為假名法。故與上記所舉俱舍論之說(四大具有假實之別)不同。
(2)據瑜伽師地論卷三、卷六十四、大乘法苑義林章卷三本等所舉,觸處、法處皆有大種,以散、定之別,故所造之色法通於十一處。大種與所造之色法隨應俱通依他起性、圓成實性二性所攝,然大種唯實,所造之色法則為假。
(3)另據大乘法苑義林章卷三本,綜合諸部之異說:①大眾部之說,以四大為能造,四塵為所造,而別無五根,俱通有漏及無漏。②薩婆多師(即說一切有部之論師)之說,以四大為能造,唯有漏、有礙,為觸處所攝。五根、五塵及法處之無表色為所造,然五根、五塵皆有漏、有礙,而法處之無表色則為實有,通於無漏,為無礙所攝,故有上述假實之別。③經部師之說,能造與所造均為有礙,皆通於假實,其中極微是實,粗色是假,然二者皆為有漏。無表色為假立,法處無色,色蘊亦無無表色。④說假部之說,能造與所造若粗若細,在蘊門中以「義」積聚而非「體」積聚,故體皆為實,而在界、處門中則因「依」與「緣」皆為體積聚,故體皆為假,通於有漏及無漏。⑤一說部之說,能造與所造唯有一名,二者皆無實體。⑥說出世部之說,能造與所造若為有漏者,則皆為假,以其由顛倒而起故,而諸無漏者則皆為實,以其非顛倒而生起之故。
此外,據圓覺經載,四大,乃指由地、水、火、風四大和合而成之人身。即:(1)地大,地以堅礙為性,如人身中之髮毛、爪齒、皮肉、筋骨等均屬之。(2)水大,水以潤濕為性,如人身中之唾涕、膿血、津液、痰淚、大小便等均屬之。(3)火大,火以燥熱為性,如人身中之暖氣屬之。(4)風大,風以動轉為性,如人身中之出入息及身動轉屬之。若此四大不調,則易致病。〔中阿含卷七象跡喻經、長阿含經卷十六、品類足論卷一、大智度論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五、順正理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二本〕(參閱「五因」1424)p2148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80a10║此復多種。謂地水火
T30n1579_p0280a11║風。輕性重性滑性澁性。冷飢渴飽。力劣緩急
T30n1579_p0280a12║病老死蛘。悶粘疲息軟怯勇。如是等類有
T30n1579_p0280a13║眾多觸。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여기에도 즉 땅[地]ㆍ물[水]ㆍ불[火]ㆍ바람[風]과 가벼운 성질[輕性]ㆍ무거운 성질[重性]ㆍ미끄러운 성질[滑性]ㆍ껄그러운 성질[澁性]ㆍ차가움[冷]ㆍ배고픔[飢]ㆍ목마름[渴]ㆍ배부름[飽]ㆍ힘 있음[力]ㆍ힘 없음[劣]ㆍ느슨함[緩]ㆍ급함[急]ㆍ병듦[病]ㆍ늙음[老]ㆍ죽음[死]ㆍ간지러움[蛘]ㆍ답답함[悶]ㆍ끈끈함[粘]ㆍ고달픔[疲]ㆍ쉼[息]ㆍ연약[軟怯]ㆍ기운[勇]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위와 같은 종류의 여러 가지 촉(觸)이 있다 - ↑ 미륵보살 조, 현장 한역(T.1579).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0, No. 1579,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0n1579_p0280a13║此復三種。謂好觸惡觸。捨處所觸。身
T30n1579_p0280a14║所觸。 - ↑ 미륵보살 지음, 현장 한역, 강명희 번역(K.570, T.1579). 《유가사지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여기에도 즉 호촉(好觸)ㆍ악촉(惡觸)ㆍ사(捨)의 처소의 촉[處所觸]73)의 세 가지가 있으며, 신근[身]이 감촉하는 대상[所觸]이 있다.
73) 호촉(好觸)은 닿아서 낙수(樂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악촉(惡觸)은 닿아서 고수(苦受)를 일으키는 촉(觸)이며, 사처소촉(捨處所觸)은 닿아서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을 일으키는 촉(觸)을 말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T31n1606_p0696b20║所觸一分者四大種所造身根所取義。謂滑
T31n1606_p0696b21║澁輕重軟緩急冷飢渴飽力劣悶癢黏病老死
T31n1606_p0696b22║疲息勇。此所觸一分由八因建立。謂相故摩
T31n1606_p0696b23║故稱故觸故執故雜故界不平等故界平等
T31n1606_p0696b24║故。水風雜故冷。地水雜故黏。界平等故息
T31n1606_p0696b25║力勇。勇者無畏飽。由二種界不平等故有飢
T31n1606_p0696b26║等。餘觸。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2일에 확인:
어떠한 것을 ‘접촉받는 일부분’이라 합니까?
네 가지 대종에서 만들어진 신근에 섭취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으로, 매끄러움ㆍ까칠까칠함ㆍ가벼움ㆍ무거움ㆍ부드러움ㆍ헐거움ㆍ뻑뻑함ㆍ추움ㆍ배고픔ㆍ목마름ㆍ배부름ㆍ기력ㆍ무기력ㆍ답답함ㆍ가려움ㆍ끈끈함ㆍ병ㆍ늙음ㆍ죽음ㆍ피곤함ㆍ편안함ㆍ용력(勇力) 따위를 가리킨다. 이 접촉받는 일부분도 여덟 가지 원인에 의해 건립되는 것이니, 모양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쓰다듬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달아보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접촉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잡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여러 가지가 섞인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계(界)의 불평등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계의 평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수대(水大)와 풍대(風大)가 섞이는 까닭에 차가운 것이고, 지대(地大)와 수대가 섞이는 까닭에 끈끈한 것이고, 계가 평등한 까닭에 편안하고 활력이 있는 것이다.
【釋】 여기서 ‘용력’이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두 가지의 계의 불평등에 기인하는 까닭에 배고픔 따위의 다른 촉이 있게 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5_p0663b13║色界何相。謂色眼曾現見。及
T31n1605_p0663b14║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如色界相聲香味
T31n1605_p0663b15║觸法界相亦爾。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1일에 확인:
T31n1606_p0695c24║問色界何相。答諸色
T31n1606_p0695c25║眼曾現見。及眼界於此增上。是色界相。眼界
T31n1606_p0695c26║於此增上者。謂依色根增上力外境生故。如
T31n1606_p0695c27║色界相聲香味觸法界相亦爾。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法處所攝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法處所攝色
Basic Meaning: form that is included as a conceptual basis
Senses:
Also expressed as 墮法處色 (Skt. dharmâyatana-paryāpannam...rūpam, dharmâyatana-paryāpanna; Tib. chos kyi skye mched pa'i gzugs). In Yogâcāra doctrine, this refers to some objects of the mind that are included as form dharmas 色法, but which are objects of the sixth consciousness 意識, rather than the five sense consciousnesses 五識. Five types are included in this group.
'compact form' —極略色 (極略). Atomic particles constituting the five faculties, the five object realms, the four elements and so forth, posited based on the analysis by wisdom. This is a level of subtlety that can be theorized through analysis, but cannot be perceived by the sense organs. Material objects too small to be seen. The existence of atoms cannot be directly perceived by the five senses, but their existence can be inferred.
'open form' —極迥色 (極迥). The extreme subtlety of the visible colors of the relative category, such as light, shadow, brightness, dullness, and the relative categories of forms, such as length, shortness, squareness and roundness. They are intangible and do not obstruct anything.
'undertaken form' —受所引色 (受所引). Unmanifest matter that is created as a result of receiving the precepts into oneʼs mind. See 無表色 and 戒體.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倶舍論, this is simply considered as 'unmanifest form,' but In Yogâcāra, the seeds of goodness that are gained as a result of the mental action at the time of receiving the precepts are taken as the essence of the precepts. The word means 'gained according to the reception of the precepts.' A nominal element.
'supernatural form' —定所引色 (定所引). Forms of magical production and transformation. This is a form element where the sage in meditation can freely transform and manifest things. By thinking of water or fire, he can manifest water or fire. Or he can transform sand and soil into gold and silver and so forth.
'schematized, or imagined form' —遍計所起色 (遍計所起). The situation of the sixth consciousness, unconnected to the other five consciousnesses, reflecting on the past, or giving rise to illusory objects, such as flowers in the sky. This form (object) is risen through the mistaken discriminatory power of the sixth consciousness.
〔瑜伽論 T 1579.30.293c6〕 [Charles Muller, Dan Lusthaus; source(s): Nakamura, YBh-Ind, Hirakawa] - ↑ "法處所攝色(법처소섭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法處所攝色(법처소섭색)
제6의식으로 대할 바 경계인 법경(法境)에 속하는 색법(色法). 5근(根)ㆍ5경(境)을 제외하고, 다른 일체 색법을 말함.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이 이에 속함. - ↑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약어 법처색(法處色)
십이처(十二處) 가운데 의식의 대상인 법처(法處)에 속하는 현상으로서, 감각되지 않는 작용이나 힘, 또는 내면에 새겨져 있는 잠재력.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5_p0663c15║何等法處所攝色。
T31n1605_p0663c16║有五種應知謂極略色。極逈色。受所引色。遍
T31n1605_p0663c17║計所起。色定自在所生色。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입니까?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다섯 종류의 색이 있으니,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逈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ㆍ정자재소생색(定自在所生色)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6_p0696b27║法處所攝色者。略有五種。謂極略色.極逈色.
T31n1606_p0696b28║受所引色.遍計所起色.自在所生色。極略色
T31n1606_p0696b29║者。謂極微色。極逈色者。謂即此離餘礙觸
T31n1606_p0696c01║色。受所引色者。謂無表色。遍計所起色者。謂
T31n1606_p0696c02║影像色。自在所生色者。謂解脫靜慮所行境
T31n1606_p0696c03║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입니까?
간략하게 다섯 종류의 색이 있으니, 극략색(極略色)ㆍ극형색(極色)ㆍ수소인색(受所引色)ㆍ변계소기색(遍界所起色)ㆍ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을 가리킨다.
【釋】 ‘극략색’이란 극미색(極微色)이고, ‘극형색’이란 그 밖의 다른 장애를 여의고 접촉되는 색이고, ‘수소인색’이란 무표색(無表色)이고, ‘변계소기색’이란 영상(影像)의 색이고, ‘자재소생색’이란 해탈정려(解脫靜慮)에서 행해지는 경계의 색이다. - ↑ 가 나 다 "法處所攝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法處所攝色
又作墮法處色、法處色。乃唯識宗所立十一色法之第十一。指意識所攀緣的法處所攝之色法。唯識宗將一切諸法概分為色法、心法、心所有法、心不相應行法、無為法等五大類,稱為五位,其中之色法,廣義而言,為所有物質存在之總稱,具有變壞、質礙之性質。色法又可分為十一類,即眼、耳、鼻、舌、身等五根,色、聲、香、味、觸等五境,及法處所攝色。法處之「處」,為生長、養育之義,意指能長養吾人之心與心所,且為心與心所依靠、攀緣者,共分為十二種,稱為十二處,亦即上記所說之五根加上第六根意根,五境加上第六境法境。法境即是法處,乃十二處之一,惟「法境」係強調其乃「意根」(主觀作用)之客觀對境,而「法處」則著重說明其與其他之十一處共為長養心與心所,且為心與心所依靠、攀緣者。於一切色法中,凡攝屬於法處者,即稱為法處所攝色。
據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法苑義林章卷五末等所載,法處所攝色又可細分為五種,即:(1)極略色,亦即極微之色法;乃分析色聲香味觸等五境、眼耳鼻舌身等五根或地水火風等四大種,舉凡一切具有質礙性之實色而令至物質的最小單位「極微」。(2)極迥色,又作自礙色;即分析空界色、明、暗等不具質礙性之顯色而令至極微。(3)受所引色,即無表色;乃依身、口發動之善惡二業,而生於身內之無形色法,為一種不能表現於外之現象,例如由持戒所引起的一種防非止惡之精神作用;由於被視為是身內地水火風四大所造,故列入色法。(4)遍計所起色,意識緣五根、五境,產生周遍計度、虛妄分別之作用,而在心內所變現之影像色法,例如空中花、水中月、鏡中像等,皆攝於此色法中;此類色法,僅具有影像而並無所依托之自體本質。(5)定自在所生色,又作定所生色、定所引色、勝定果色、定果色、自在所生色;即指由禪定力所變現之色聲香味等境;此類色法係以勝定力於一切色變現自在,故稱定自在所生色。又此類色法通於凡聖所變,然凡聖所變現者有假實之別,若由凡夫之禪定力所變現者,為假色,不能實用;若由八地以上之聖者,憑威德之勝定力,能變現為可實用之實在色法,例如變土砂而成金銀魚米,可令有情眾生受用之。
又以大乘唯識之看法而言,上記五色中,前四色均屬假色,惟第五色通於假實,而以聖者所變現者為實色,此蓋以聖者之威德勝定乃為一種無漏定,由無漏定所變現之色法即為實色;然若以小乘如說一切有部等之觀點而言,則如極略色、極迥色,乃至受所引色等,皆為具有實體之實色。〔大毘婆沙論卷七十四、卷七十五、瑜伽師地論卷三、卷三十七、順正理論卷三十五、成唯識論卷一、成唯識論述記卷三本〕p4283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2_p0484a13║法處所攝。色謂一切時意所行境。色蘊所攝。
T31n1602_p0484a14║無見無對。此復三種。謂律儀色不律儀色及
T31n1602_p0484a15║三摩地所行境色。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169)은 어느 때든지 의식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색온에 포섭되며,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없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율의(律儀)인 색법, 율의가 아닌 색법, 3마지(摩地)가 행하는 경계의 색법이다.
169) 5근(根)ㆍ5경(境)을 제외한, 제6 의식만의 대상인 법처(法處)에 포섭되는 색법을 말한다. 법처색(法處色)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말하면 유식학에서는 법처소섭색으로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든다. ①극략색(極略色:오근ㆍ오경의 물질을 분석해서 물질의 최소단위인 極微에 이른 것) ②극형색(極逈色:空界ㆍ明ㆍ暗 등 장애의 성질을 갖지 않는 물질의 極微) ③수소인색(受所引色:無表色)④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意識에 나타나는 오근ㆍ오경 등의 影像) ⑤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定所生色ㆍ定果色이라고도 함. 殊勝한 定에 의해 定 중에 나타나는 色ㆍ聲 등의 5境).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율의색(律儀色)ㆍ불율의색(不律儀色)ㆍ3마지소행경색(摩地所行境色)은 네 번째인 수소인색(受所引色)인 무표색에 포함된다. 무표(無表, avijñapti)라는 것은 일종의 세력이 있지만 다른 것에게 표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 세력을 말한다.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우리가 신업ㆍ구업을 일으킬 때, 훗날 그 업의 과보를 초감(招感)할만한 원인을 동시에 자기 몸 안에 훈발(熏發)한다. 그 훈발된 원인은 형상이 없는 색법으로서, 남에게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무표색이라 불렀다. 그러나 유식학파에서는 이것을 맹리(猛利)한 사(思) 심소의 종자의 세력 위에 가립한 것이다. 사(思)의 현행은 찰나에 생ㆍ멸하지만 상속부단(相續不斷)하는 것이니, 이 종자가 계속하는 기간의 세력에 대해 무표색이라 하였다. - ↑ 가 나 "極略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極略色
Basic Meaning: smallest perceivable matter
Senses:
The smallest perceptible particle into which matter can be divided, an atom. See 微塵 (Skt. abhisaṃkṣepika; Tib. bsdu ba las gyur ba). 〔翻譯名義集 T 2131.54.1152c20〕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YBh-Ind]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6_p0696b28║極略色
T31n1606_p0696b29║者。謂極微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극략색’이란 극미색(極微色)이고 - ↑ "極略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極略色
為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五種之一。指分析色聲香味觸等五境、眼耳鼻舌身等五根之實色而令至物質之最小單位「極微」者。小乘有部立之為實物,謂其攝於眼識所緣之色處;然大乘唯識宗則以之為假想上之分析,而謂其攝於意識所緣之法處。〔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大乘義林章卷五末〕(參閱「法處所攝色」4283)p6905 - ↑ "極略色(극략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極略色(극략색)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5종의 하나. 5근(根)ㆍ5경(境) 등의 실색(實色)을 세밀하게 나누어 다시 더 나눌 수 없는 데에 이른 것을 말함. 곧 극미(極微). 소승 유종부(有宗部)에서는 이를 실물(實物)이라 하여 안식(眼識)으로 반연하는 색처(色處)에 소속시키고, 대승 유식종(唯識宗)에서는 이를 가상(假想)의 분석이라 하여 의식으로 반연하는 법처(法處)에 소속시킨다. - ↑ "극략색[極略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극략색[極略色]
더 나눌 수 없는 지극히 작은 대상의 상태. 이를 구사론에서는 시각의 대상으로 간주하지만, 유식설에서는 의식의 대상으로 간주함. - ↑ "極微",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極微
梵語 paramāṇu。又作極微塵、極細塵。舊譯鄰虛。物質(色法)分析至極小不可分之單位,稱極微。依俱舍論卷十二謂,以一極微為中心,集合上、下及四方等六方之極微而成一團,稱作「微」,又稱「微塵」,亦即合七極微為一微塵,始為天眼等之所見。微塵,梵語 aṇu-rajas,音譯作阿拏、阿菟,又作阿耨塵。
集合七微塵,謂一金塵,七金塵謂一水塵,七水塵謂一兔毛塵,七兔毛塵謂一羊毛塵,七羊毛塵謂一牛毛塵,七牛毛塵謂一隙遊塵(又作向遊塵)。金塵、水塵能夠通過金中、水中之空隙,故塵有極微細之意。兔毛塵、羊毛塵、牛毛塵,乃表示塵如兔、羊、牛的毛端之微細。隙遊塵則指如窗隙間,吾人肉眼可視之光中浮遊細塵而言。
極微集合形成具體物質之時,至少須具足地、水、火、風四大,與色、香、味、觸四塵(四微)始能形成。因不能缺少其一,故稱「八事俱生,隨一不減」。〔大毘婆沙論卷十三、卷七十五、卷一三六、大智度論卷十二、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四、成唯識論述記卷二本〕p6906 - ↑ "五眼",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五眼
梵語 pañca cakṣūṃṣi,巴利語 pañca cakkhūni。指五種眼力。即:(1)肉眼(梵 māṃsa-cakṣus),為肉身所具之眼。(2)天眼(梵 divya-cakṣus),為色界天人因修禪定所得之眼,此眼遠近前後,內外晝夜上下皆悉能見。(3)慧眼(梵 prajñā-cakṣus),為二乘人之眼,能識出真空無相;亦即能輕易洞察一切現象皆為空相、定相。(4)法眼(梵 dharma-cakṣus),即菩薩為救度一切眾生,能照見一切法門之眼。(5)佛眼(梵 buddha-cakṣus),即具足前述之四種眼作用之佛眼,此眼無不見知,乃至無事不知、不聞;聞見互用,無所思惟,一切皆見。
天台家說因位有肉眼、天眼、慧眼、法眼四者,果位有佛眼。又藏、通、別、圓四教於五眼之義各不相同。密教則認為五眼無優劣之分,主張前四眼之德皆與佛眼相等。此外,真言家特重佛眼,將其佛格化,稱為佛眼尊。〔大品般若經卷二、無量壽經卷下、文殊師利問經卷下、大智度論卷三十三、卷三十九、華嚴經疏卷五十七、大乘義章卷二十、三觀義卷上〕p1513 - ↑ "오안[五眼]",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오안[五眼]
수행의 정도에 따라 갖추게 되는 다섯 가지 눈.
(1) 육안(肉眼). 가려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범부의 육신에 갖추어져 있는 눈.
(2) 천안(天眼). 겉모습만 보고 그 본성은 보지 못하는, 욕계·색계의 천인(天人)이 갖추고 있는 눈.
(3) 혜안(慧眼). 현상의 이치는 보지만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성문(聲聞)·연각(緣覺)의 눈.
(4) 법안(法眼). 모든 현상의 참모습과 중생을 구제하는 방법을 두루 아는 보살의 눈.
(5) 불안(佛眼).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부처의 눈. - ↑ "極迥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極迥色
Basic Meaning: extremely subtle colors and shapes
Senses:
Or form in suspension 空界色 — molecular form; form in particles. Clouds, smoke, mist, fog, odors, rays of light, etc., which are technically form, but not perceived as solid or significantly obstructive. These are mental objects included in the category of form dharmas 法處所攝色 (Skt. abhyavakāśika; Tib. mngon par skabs yod pa). [Charles Muller; source(s): FGD]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6_p0696b29║極逈色者。謂即此離餘礙觸
T31n1606_p0696c01║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극형색’이란 그 밖의 다른 장애를 여의고 접촉되는 색이고 - ↑ "極逈色(극형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極逈色(극형색)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 5종의 하나. 온갖 형상 있는 물질을 제하고, 그밖에 비고 까마득한 밝은 것ㆍ어두운 것ㆍ빛ㆍ그림자 등을 보는 것을 공계색(空界色)이라 하고, 이 공계색을 분석하여 극미(極微)에 이른 것을 말한다. 이 극형색은 안식(眼識)으로 대할 경계가 아니고, 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12처(處) 중에서 색처(色處)에 속하지 않고 법처(法處)에 속한다. - ↑ "空界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空界色
指虛空界之色。空界,梵語 ākāśa-dhātu。據俱舍論卷一載,虛空之外,別有空界,為眼可見,如諸門窗及口鼻等內外之竅隙;因係眼可見,故附「色」之名,稱為空界色。
另據俱舍論光記卷一所說,空界色以青、黃、赤、白、雲、煙、塵、霧、影、光、明、闇等十二顯色中之影、光、明、闇為體;然因影、光、明、闇亦隨青、黃、赤、白等四顯色而應現,故空界色亦攝於青、黃、赤、白中。又青、黃、赤、白即須彌四大洲各現於空中的純一之淨色,故空界色即空一顯色。
俱舍論卷一又謂(大二九‧六下):「故說空界,明闇為體,應知此體不離晝夜,即此說名鄰阿伽色。」是知,空界色另有鄰阿伽色(梵 agha-sāmantaka)之譯名,意指鄰近阿伽之色。〔俱舍釋論卷一、俱舍論寶疏卷一下、玄應音義卷二十四〕(參閱「空一顯色」4374、「鄰阿伽色」7771)p4384 - ↑ "內空界",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內空界
中阿含經提出的「六界聚」之一,與「外空界」並稱二種「空界」。又作內空法界、內空法相界。指眼空、耳空、鼻空、口空等不為肉、皮、骨、筋束縛的境界,不被咽喉飲食動搖的信念,如父子合集經卷十六(大一一‧九六五中)所載:「眼竅、耳穴、面門、咽喉、嚥噉飲食所引滋味,於腸胃間通徹而出。」擺脫身體隨著皮肉、血、骨髓等牽制的覺受,擺脫眼穴、耳穴、鼻穴、面門、咽喉、心腸、腸肚等穴門的慾念,達到飲食自在、安徐咽住的虛空境界。〔阿毘達磨法蘊足論卷十、舍利弗阿毘曇論卷七、瑜伽師地論卷三十二、大乘集菩薩學論卷十八、成唯識論卷七、成唯識論疏義演卷七〕p1619 - ↑ "極迥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極迥色
為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五種之一。指分析虛空、青、黃等不具質礙性之顯色及明、闇、光、影等空界色而令至物質之最小單位「極微」者。除一切有形之物質外,吾人所見空漠之明、闇等,稱為空界之色;此色至遠,故稱迥色;分析此至遠之空界色至於極遠,稱為極迥色。此極迥色非為眼識之所對,而為意識之所緣,故於十二處中不攝於色處而攝於法處。〔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大乘義林章卷五末〕(參閱「法處所攝色」4283)p6905 - ↑ "극형색[極逈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극형색[極逈色]
허공·밝음·어두움·빛깔 등을 분해하여 가장 작게 된 상태. - ↑ "虛空無爲(허공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虛空無爲(허공무위)
[1] 3무위의 하나. 허공은 온갖 곳에 두루 가득하여 다른 것을 장애하지 않고, 또 다른 것에 장애되지도 않으므로 무위. 이 허공이 무위이므로 만물은 각각 그 처소를 얻어서 질서가 정연하여 어지럽지 않게 존재할 수 있음.
[2] 6무위의 하나. 진여(眞如). 모든 장애를 여읜 곳에 나타나는 것. - ↑ "허공무위[虛空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허공무위[虛空無爲]
삼무위(三無爲)의 하나. 마음의 모든 장애와 차별이 소멸된 상태. - ↑ "虛空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虛空無為
梵語 ākāśāsaṃskṛta。(一)小乘說一切有部所立「三無為」之一。虛空,即無礙;無為,指離因緣造作,不為生、住、異、滅四相所遷之實在法。虛空無為,謂真空之理不為惑染所障礙;即以無礙為性,容受萬物而遍滿一切處。〔俱舍論卷一、俱舍論光記卷一、俱舍論寶疏卷一〕
(二)大乘唯識宗所立「六無為」之一。謂真如離各種障礙,猶如虛空,故稱虛空無為。成唯識論立六種無為,以彼有部所立之虛空無為,非實有之法,於佛證得之法性,為六無為相中之一相。法性之體,離諸障礙,稱為虛空無為,非別有容受萬物之無為虛空。故依有部之說法,則虛空之語直指大虛空。依唯識之說,認為一者喻語,以法性之無為,似大虛空,故稱虛空;一者法性即為虛空,故稱虛空。〔成唯識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疏卷上〕p6624 - ↑ "方(방)",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方(방)
【범】deśa 24불상응행(不相應行)의 하나. 동서남북, 사유(四維), 상하 등의 방위. - ↑ "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方
梵語 diś。乃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即指方位、空間。色法(物質的存在)與色法相對而生存在空間之分位關係,計有東、西、南、北、四維(四隅)、上、下等十方。〔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顯揚聖教論卷一、瑜伽師地論卷三〕 p1869 - ↑ "受所引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受所引色
Basic Meaning: form arising from reception (of precepts, etc.)
Senses:
Material factors produced in the mind as a result of the reception of the five and eight precepts 五戒/八戒 and so forth. Also known as non-disclosive form 無表色. One of the five objects of the mind that are included as material dharmas 法處所攝色 (Skt. samādānika; Tib. yang dag par blangs pa las gyur ba). 〔解深密經疏(圓測) HBJ 1.307b16; 大乘法苑義林章〕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696c01║受所引色者。謂無表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수소인색’이란 무표색(無表色)이고 - ↑ "無表業(무표업)",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無表業(무표업)
↔표업(表業). 무표색(無表色)과 같음. 표업에 따라 훈발(熏發)되고, 다음에 결과를 받을 원인이 되는 업이란 뜻. ⇒무표색(無表色) - ↑ "無表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無表色
梵語 avijñapti-rūpa。又作無表業、無作色、假色。或單稱無表、無作、無教。為「表色」、「表業」之對稱。俱舍七十五法之一。即於身中恆轉相續,具有防非止惡或與之相反的障妨善德之功能,而又為不可見,且無障礙性之色法。此為小乘說一切有部之宗義,即認為無表色係以身業與口業為緣,生於吾人身內的一種無形色法;以其具有防非或妨善之功能,故以之為受戒之體;然因不顯於外,故稱無表;又以其乃身內之地、水、火、風等四大所生,故謂之色;然雖屬色法,卻不如其他色法之具有可見性、物質性、障礙性等。入阿毘達磨論卷上(大二八‧九八一上):「無表色者,謂能自表諸心心所轉變差別,故名為表;與彼同類而不能表,故名無表。」
又說一切有部以無表色皆由四大種所造,故為實色,含攝於十一種色之中。俱舍宗之看法類似,認為無表色係由四大種所造,以色業為性,故名為色;然非由「極微」所成,無見無對,故與五根五境等之色法相異。成實家則以之為非色非心,攝於不相應行蘊。經量部及大乘唯識家不認其為實有,於強勝之思的心所所發善惡表業而薰成之種子上假立。又菩薩瓔珞本業經等以心法為戒體,故不別立無表色。其他古來異說甚多。
據俱舍論卷十三、卷十四載,無表色之類別有三:與善心等起之無表色,稱為律儀,能遮滅惡戒之相續;與不善心等起之無表色,稱為不律儀,能遮滅善戒之相續;又非此二者,稱為非律儀非不律儀。
(1)律儀又可分為三種:①別解脫律儀,為欲界之戒,即由作禮乞戒之身表業、語表業所得之無表業,共有比丘、比丘尼、正學、勤策、勤策女、近事、近事女、近住等八種律儀。各以盡形壽或一日一夜為要期,隨僧伽等受得五戒、八戒、十戒、具足戒等戒。因受戒之初剎那,表色、無表色各別棄捨諸惡,故稱別解脫,又稱根本業道;第二念以後,唯有無表色相似相續,故特稱為別解脫律儀或後起。俱舍論卷十四(大二九‧七三上):「謂受戒時,初表、無表,別別棄捨種種惡,故依初別捨義,立別解脫名,即於爾時所作究竟,依業暢義,立業道名;(中略)從第二念乃至未捨,不名別解脫,名別解律儀;不名業道,名為後起。」②靜慮律儀,為色界之戒,乃由靜慮地之心所得之無表色。③無漏律儀,即所謂之無漏戒,亦即已得「無漏」之聖者所成就之無表色。上記三種律儀中,靜慮律儀與無漏律儀皆與心共生滅,故為隨心轉之戒。
(2)不律儀,又稱惡律儀,即生於不律儀之家,依其家法,行殺生等惡法時所生起之無表色;或生於餘家,為求活命,發殺生業等之誓心所生起之無表色。此種惡律儀具有妨善止善之作用。
(3)非律儀非不律儀,又稱處中,即非如律儀受「五、八、十、具」等戒,亦非如不律儀以活命為要期而生惡戒,但由用或重行等而得之無表色,其體不生善或不善者。〔大毘婆沙論卷一四O、俱舍論卷一、順正理論卷二、成實論卷八「九業品」、品類足論卷一、大乘義章卷七〕p6418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2_p0484a13║法處所攝。色謂一切時意所行境。色蘊所攝。
T31n1602_p0484a14║無見無對。此復三種。謂律儀色不律儀色及
T31n1602_p0484a15║三摩地所行境色。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169)은 어느 때든지 의식이 작용하는 경계이고, 색온에 포섭되며, 볼 수 없고 장애함이 없는 성질이다. 이것은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율의(律儀)인 색법, 율의가 아닌 색법, 3마지(摩地)가 행하는 경계의 색법이다.
169) 5근(根)ㆍ5경(境)을 제외한, 제6 의식만의 대상인 법처(法處)에 포섭되는 색법을 말한다. 법처색(法處色)으로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참고로 말하면 유식학에서는 법처소섭색으로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든다. ①극략색(極略色:오근ㆍ오경의 물질을 분석해서 물질의 최소단위인 極微에 이른 것) ②극형색(極逈色:空界ㆍ明ㆍ暗 등 장애의 성질을 갖지 않는 물질의 極微) ③수소인색(受所引色:無表色)④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意識에 나타나는 오근ㆍ오경 등의 影像) ⑤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定所生色ㆍ定果色이라고도 함. 殊勝한 定에 의해 定 중에 나타나는 色ㆍ聲 등의 5境).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율의색(律儀色)ㆍ불율의색(不律儀色)ㆍ3마지소행경색(摩地所行境色)은 네 번째인 수소인색(受所引色)인 무표색에 포함된다. 무표(無表, avijñapti)라는 것은 일종의 세력이 있지만 다른 것에게 표시할 수 없는 잠재적인 세력을 말한다. 설일체유부에 의하면 우리가 신업ㆍ구업을 일으킬 때, 훗날 그 업의 과보를 초감(招感)할만한 원인을 동시에 자기 몸 안에 훈발(熏發)한다. 그 훈발된 원인은 형상이 없는 색법으로서, 남에게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무표색이라 불렀다. 그러나 유식학파에서는 이것을 맹리(猛利)한 사(思) 심소의 종자의 세력 위에 가립한 것이다. 사(思)의 현행은 찰나에 생ㆍ멸하지만 상속부단(相續不斷)하는 것이니, 이 종자가 계속하는 기간의 세력에 대해 무표색이라 하였다. - ↑ 가 나 "法處所攝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法處所攝色
(3)受所引色,即無表色;乃依身、口發動之善惡二業,而生於身內之無形色法,為一種不能表現於外之現象,例如由持戒所引起的一種防非止惡之精神作用;由於被視為是身內地水火風四大所造,故列入色法。 - ↑ "善律儀",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善律儀
善之律儀。又稱律儀(梵 saṃvara)、善戒。為「惡律儀」之對稱。律儀,指律法儀式、戒律。善律儀,即指受戒者所得之無表色,有防非止惡之功能。比丘戒、比丘尼戒、六法、沙彌戒、沙彌尼戒、優婆塞戒、優婆夷戒、八齋戒等別解脫律儀,能遮止各種不律儀;定共戒及道共戒二者,能斷欲纏之惡戒及能起惡戒之煩惱,此三者總稱為善律儀。據大毘婆沙論卷九十六載,善律儀僅存於欲、色二界,不存於無色界。此因三界之中,僅在欲界、色界具有各種惡戒之法,無色界則因相對於欲界之惡戒而言,具有所依遠、所緣遠、行相遠、對治遠等「四遠」作用,故無惡戒之法;既無惡戒,亦無所謂「對治」之事,隨之亦無善戒可言。〔大毘婆沙論卷一一七、俱舍論卷十四、卷十五、雜阿毘曇心論卷三、順正理論卷三十六、卷三十九、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卷中一、大乘義章卷十二〕p6159 - ↑ "受所引色(수소인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受所引色(수소인색)
법처소섭색(法處所攝色)의 하나. 제6식(識)으로 반연할 경계. 5계(戒)ㆍ8계를 받았기 때문에 인발(引發)되는 무표색(無表色)이란 뜻. - ↑ "수소인색[受所引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수소인색[受所引色]
내면에 새겨져 있는 잠재력·원동력. - ↑ "무표색[無表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무표색[無表色]
약어 무표(無表)
산스크리트어 avijñapti-rūpa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감각되지도 않는 작용이나 힘. 내면에 새겨져 있는 잠재력.
동의어: 무교색, 무작색(無作色) - ↑ "무표업[無表業]",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무표업[無表業]
약어 무표(無表)
모양도 없고 감각되지도 않는 작용이나 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몸에 배어 있는 습관. 말이나 행위에 의해 미래에 받을 과보의 원인으로 내면에 새겨져 있는 잠재력. 고락의 과보를 초래하는 힘.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2_p0484a15║律儀色云何。謂防護身語
T31n1602_p0484a16║業者由彼增上造作心心法故。依彼不現行
T31n1602_p0484a17║法建立色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율의인 색법170)이란 무엇인가? 신업ㆍ어업을 방어하고 보호함을 말한다. 그것이 심왕법ㆍ심소법을 더욱더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현행하지 않는 법에 의해서 물질의 성질을 건립한다.
170) 율의(律儀, saṁvara)는 옹호(擁護)ㆍ금계(禁戒)라는 뜻으로서, 몸으로 짓는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잘못을 막는 입장에서 불살(不殺)ㆍ부도(不盜)ㆍ불음(不婬)의 셋을 신율의(身律儀)라 하고, 불양설(不兩舌)ㆍ불악구(不惡口)ㆍ불망어(不妄語)ㆍ불기어(不綺語)의 넷을 어율의(語律儀)라고 한다. 그런데 율의색에는 별해탈(別解脫)ㆍ정공계(定共戒)ㆍ도공계(道共戒)의 세 가지가 있다. 별해탈율의란 5계ㆍ10계ㆍ250계 등의 계법 율의에 의해 신업ㆍ구업ㆍ의업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정공계란 따로 계조(戒條)를 지키지 않으나 정(定)에 의해 스스로 삼업을 다스리는 것이다. 도공계는 역시 따로 계조는 지키지 않으나 무루지(無漏智)가 현전했을 때 무루지의 힘에 의해 삼업이 스스로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 ↑ "不律儀",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不律儀
又作惡戒、惡律儀。謂立誓行殺生等惡業。不禁身、語之惡,係顛倒之戒律,故稱不律儀。能發惡之無表色。俱舍論卷十五列舉得不律儀之原因有二:(1)由作,即生於不律儀之家,將行殺生等而起加行時,即發惡戒。(2)由誓,即生在餘家,為生活而發一生為殺生業之誓心,此時即發得惡戒。〔北本大般涅槃經卷二十九、俱舍論卷十四〕(參閱「惡律儀」6231、「無表色」6418)p1299 - ↑ "不律儀(불율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不律儀(불율의)
3종 율의(律儀)의 하나. 악률의(惡律儀)ㆍ악계(惡戒)라고도 함. 서원을 세우고 살생 등의 악업을 짓는 것. - ↑ "불율의[不律儀]",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불율의[不律儀]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악한 행위. - ↑ "惡律儀",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惡律儀
惡之律儀。為「善律儀」之對稱。又作不律儀、惡戒。即為自活或得利益而立誓行屠殺等業者所得之無表色。據俱舍論卷十四載,惡律儀為智者所訶厭,故名惡行,能障清淨之戒律,故名惡戒,不禁身語之惡,故名不律儀。北本大般涅槃經卷二十九說惡律儀有十六種,即:(1)為利飼養羔羊,肥已轉賣。(2)為利買羊屠殺。(3)為利飼養豬豚,肥已轉賣。(4)為利買豬屠殺。(5)為利飼養牛犢,肥已轉賣。(6)為利買牛屠殺。(7)為利養雞令肥,並予轉賣。(8)為利買雞屠殺。(9)釣魚。(10)獵師。(11)劫奪。(12)魁膾(魁,為師之意;膾,為切肉之意。即指殺人者)。(13)網捕飛鳥。(14)兩舌。(15)獄卒。(16)咒龍(以咒術繫縛蟒蛇等,供人觀賞戲樂,求物以自活)。又大方便佛報恩經卷六舉出屠兒、魁膾、養豬、養雞、捕魚、獵師、網鳥、捕蟒、咒龍、獄吏、作賊、王家常差捕賊等十二惡律儀。
有關惡律儀之得與捨,依俱舍論卷十四、卷十五之意,若住律儀,由勝煩惱而作殺縛等諸不善業,由此便發不善無表;若住不律儀,由淳淨信而作禮佛等諸勝善業,由此亦發諸善無表。又由作、誓二者,能得惡律儀,「作」即生於不律儀之家,於作殺生等事時即發得惡戒;「誓」即非生於不律儀之家,但為生活之故,立誓殺生以資養活,由此發得惡戒。捨戒則有三緣,即由死亡(所依之身已捨,能依之惡戒隨之亦捨)、由得戒(善惡二戒不能俱起,得別解脫戒或靜慮律儀時,增盛之勢力強大,故能捨惡戒)、由二形生(即男子生為女形,女子生為男形)。另據大方便佛報恩經卷六載,死者欲愛盡時、受律儀戒時、受三歸依時,於此三時捨惡律儀戒。〔瑜伽師地論卷九、順正理論卷三十六、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卷中一、俱舍論光記卷十四〕p6231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2_p0484a17║不律儀色云何。謂不防護身語
T31n1602_p0484a18║業者。由彼增上造作心心法故。依彼現行法
T31n1602_p0484a19║建立色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율의가 아닌 색법171)이란 무엇인가? 신업ㆍ어업을 방어하거나 보호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것이 심왕법ㆍ심소법을 더욱더 짓게 함으로 말미암아, 그 현행하는 법에 의해서 물질의 성질을 건립한다.
171) 불율의를 악율의계(惡律儀戒)라고도 한다. 악사(惡師)ㆍ악우(惡友)의 교시에 의하거나 자신의 뜻에 의해 살생ㆍ도둑질 등의 악업을 자기의 신조(信條) 율의로 하여 어느 기간 또는 일생을 통해 고수하는 것을 말한다. - ↑ "遍計所起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遍計所起色
Basic Meaning: form produced by pervasive discrimination
Senses:
Imaginary form. Form produced from schematizing (imputing, imagining) everywhere. Form (objects) caused by the power of the false discrimination of the sixth consciousness. To imagine things to exist that actually don't, such as the hair of a tortoise or horns of a rabbit. One of the objects of the mind that are included as material dharmas 法處所攝色 in East Asian Yogâcāra. 〔八宗綱要; 解深密經疏(圓測) HBJ 1.307b16〕 (Skt. parikalpita-rūpa; Tib. kun btags pa`i gzugs)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FGD]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6_p0696c01║遍計所起色者。謂
T31n1606_p0696c02║影像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변계소기색’이란 영상(影像)의 색이고 - ↑ "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遍計所起色(변계소기색)
법처소생색(法處所生色)의 하나. 제6의식의 허망한 분별에 의하여 변현한 색. 곧 거북의 털, 토끼의 뿔, 허공의 꽃 등과 같이 변괴로 생긴 것들로 주관에 그려지는 바 실체가 없는 그림자. - ↑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변계소기색[遍計所起色]
그릇된 분별에 의해 일어나는 환영(幻影). - ↑ "遍計所起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遍計所起色
為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五種之一。指依第六意識之妄分別所變現之影像,如空華水月等無實體之諸色相。(參閱「法處所攝色」4283)p7150 - ↑ "定自在所生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定自在所生色
Basic Meaning: form produced effortlessly in samādhi
Senses:
Things produced effortless by one in a deep state of meditation. For example, producing fire or water by just imagining them. One of the five kinds of objects of the mind that are included as form dharmas 法處所攝色. Also referred to as 定果色, 定所引色, 定所引, 自在所生色, etc. They are understood to exist both nominally and substantially, the nominally existent not having their own seeds, but the substantially existent being produced from their own distinctive seeds (Skt. vaibhūtvika; Tib. dbang 'byor ba). 〔觀心覺夢鈔 T 2312.71.68b18〕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DFB, FGD] - ↑ "自在所生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自在所生色
Basic Meaning: form induced by one's will
Senses:
See 定自在所生色. 〔佛地經論 T 1530.26.293c7〕 [Charles Muller] - ↑ "定果色",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定果色
指唯識宗所說「法處所攝色」中之自在所生色。乃「業果色」之對稱。即以前世之異熟因為因,所招感之果報色。亦即凡聖由八解脫、四靜慮等勝定自在力所變現之五塵境。(參閱「法處所攝色」4283)p3994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T31n1606_p0696c02║自在所生色者。謂解脫靜慮所行境
T31n1606_p0696c03║色。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1권. 2022년 7월 23일에 확인:
‘자재소생색’이란 해탈정려(解脫靜慮)에서 행해지는 경계의 색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2_p0484a19║三摩地所行境色云何。謂由下中
T31n1602_p0484a20║上三摩地俱轉。相應心心法故。起彼所緣影
T31n1602_p0484a21║像色性。及彼所作成就色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삼마지가 행하는 경계의 색법172)이란 무엇인가? 하품ㆍ중품ㆍ상품의 삼마지가 함께 전전하여 심왕법ㆍ심소법에 상응함으로 말미암아, 그 반연하는 바 영상인 물질의 성질과 그 짓는 바를 일으켜서 물질의 성질을 성취한다.
172)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ㆍ정소인색(定所引色)ㆍ정과색(定果色)이라고도 한다. 보살이 중생을 교화할 때 자재한 정력(定力)으로써 금(金)ㆍ은(銀)ㆍ쌀 등을 변화로 만들어내어 다른 유정으로 하여금 이것을 수용하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 ↑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자재소생색[自在所生色]
선정(禪定)에서 나타나는 형상. 예를 들면, 물이나 불을 깊이 생각하는 선정에서 나타나는 물이나 불. - ↑ "定所生自在色(정소생자재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定所生自在色(정소생자재색)
법처 소섭색(法處所攝色)의 1. 정력(定力)에 의하여 변해 나타나는 색ㆍ성ㆍ향ㆍ미ㆍ촉 등의 대경(對境). 이것은 정력에 의하여 변현자재(變現自在)하게 생기는 뜻으로 이렇게 이름. - ↑ "色自在地(색자재지)",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色自在地(색자재지)
10지(地) 중 제8지의 다른 이름. 색성(色性)이 자재하여 걸림이 없다는 뜻. - ↑ "색자재지[色自在地]",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색자재지[色自在地]
형상에 걸림이 없는 자유 자재한 단계로, 십지(十地) 가운데 부동지(不動地)에 해당함. - ↑ "四乘十地",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四乘十地
據大乘同性經卷下載,聲聞乘、緣覺乘、菩薩乘、佛乘等四乘各有十地,總稱四乘十地。(1)聲聞乘十地:①受三歸地,指初受三歸戒之位。②信地,指信根成就之位。③信法地,指信四諦理之位。④內凡夫地,指修五停心觀等位。⑤學信戒地,指三學成就之位。⑥八人地,指見道之位。⑦須陀洹地,指預流果之位。⑧斯陀含地,指一來果之位。⑨阿那含地,即不還果。⑩阿羅漢地,即無學果。
(2)緣覺(辟支佛)乘十地:①昔行具足地,指修戒行之位。②自覺甚深十二因緣地,指修十二因緣觀法之位。③覺了四聖諦地,指修四諦觀之位。④甚深利智地,指生甚深無相智之位。⑤八聖道地,指修八聖道之位。⑥覺了法界虛空界眾生界地,指覺了此三法界之位。⑦證寂滅地,指見道之位。⑧六通地,指得六神通之位。⑨徹祕密地,指證無學果之位。⑩習氣漸薄地,指斷除習氣之至漸次微薄之位。
(3)菩薩乘十地:①歡喜地,謂菩薩既修滿初阿僧祇劫之行,初得聖性,破除見惑,證得人、法二空之理,生大歡喜,菩薩於此位成就布施波羅蜜。②離垢地,即成就戒波羅蜜,斷除修惑,滌除毀犯之垢使身清淨。③發光地,即成就忍辱波羅蜜,斷除修惑,得諦察法忍,智慧顯發。④焰慧地,即成就精進波羅蜜,斷除修惑,使慧性熾盛。⑤極難勝地,即成就禪定波羅蜜,斷除修惑,令真俗二智之行相互違者合而相應。⑥現前地,即成就慧波羅蜜,斷除修惑,發最勝智,使現前無染淨之別。⑦遠行地,即成就方便波羅蜜,發大悲心,亦斷除修惑,遠離二乘之自度。此位即修成第二阿僧祇劫之行。⑧不動地,即成就願波羅蜜,斷除修惑,作無相觀,任運無功用相續。⑨善慧地,即成就力波羅蜜,斷除修惑,具足十力,於一切處了知可度不可度而能說法。⑩法雲地,即成就智波羅蜜,亦斷除修惑,具足無邊功德,出生無邊功德水,如大雲覆虛空能出清淨之眾水。
(4)佛乘十地:①甚深難知廣明智慧地,謂斷除細習氣,於諸法得自在。②清淨身分威嚴不思議明德地,謂能自在轉正法輪而開顯深義。③善明月幢寶相海藏地,謂能自在開說三乘差別之法。④精妙金光功德神通智德地,謂能自在說八萬法以降伏四魔。⑤火輪威藏明德地,謂能自在摧伏邪法惡行。⑥虛空內清淨無垢焰光開相地,謂能自在示現六神通以顯示無常事。⑦廣勝法界藏明界地,謂能自在為諸菩薩顯示菩提。⑧最淨普覺智藏能淨無垢遍無礙智通地,謂能自在為諸菩薩授記別。⑨無邊億莊嚴迴向能照明地,謂能自在為諸菩薩示現善方便。⑩毘盧遮那智海藏地,謂能自在為諸菩薩說法。〔證契大乘經卷下、華嚴經探玄記卷三、十住心論卷五、五教章通路記卷六〕(參閱「十地」590) p2250 - ↑ "不相應荇(불상응행)",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不相應荇(불상응행)
5위(位)의 하나. 구족하게는 비색비심불상응행법(非色非心不相應行法). 줄여서는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ㆍ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며, 심왕(心王)과 상응하는 심소(心所)도 아니면서도 오히려 실재(實在)한 것을 말함. 구사종에서는 14종으로, 유식종에서는 24종으로 나눔. - ↑ "心不相應行",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心不相應行
梵語 citta-viprayukta-saṃskāra,巴利語 citta-vippayutta-dhamma。乃俱舍家、唯識家等對於一切諸法所立五位分類中之第四位。又作心不相應行蘊、非色非心不相應行法、非色不相應行蘊、心不相應法、不相應行法、不相應行、不相應。指不屬於色、心二法,與心不相應之有為法之聚集。依小乘說一切有部之義,在色、心及心所之外,另有與心不相應之實法,其體係有為法,又為五蘊中之行蘊所攝,故稱心不相應行。經部、唯識等則主張不相應行乃於色心之分位所假立者,並非實法。
心不相應行之數,大小乘均有異說。小乘俱舍家舉出得、非得、同分、無想果、無想定、滅盡定、命根、生、住、異、滅、名身、句身、文身等十四種不相應行法。順正理論卷十二加上和合性,而立十五不相應行法之說。品類足論卷一則舉出得、無想定、滅定、無想事、命根、眾同分、依得、事得、處得、生、老、住、無常性、名身、句身、文身等十六法。此外,分別部及犢子部等,將隨眠亦計為不相應法。大乘唯識家中,瑜伽師地論卷三舉出得、無想定、滅盡定、無想異熟、命根、眾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時、方、數、和合及不和合等二十四種不相應行法,大乘阿毘達磨集論卷一除去不和合而立二十三不相應行法之說。大乘五蘊論則舉出得、無想等至、滅盡等至、無想所有、命根、眾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等十四法。〔俱舍論卷四、卷十九、入阿毘達磨論卷上、顯揚聖教論卷二、卷十八、成唯識論卷一、卷二、大毘婆沙論卷二十二、卷四十五、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俱舍論光記卷四、成唯識論演祕卷二末〕(參閱「五位七十五法」1439、「五位百法」1440)p1819 -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약어 심불상응법(心不相應法),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 불상응행(不相應行),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
오위(五位)의 하나. 감각되지도 않고 마음과 함께 일어나지도 않는 것. 이를테면, 현상들 사이의 관계, 작용, 성질, 세력, 명칭 등.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2_p0484a22║心不相應行者。謂諸行與心不相應。於心
T31n1602_p0484a23║心法及色法分位。假施設性不可施設。與心
T31n1602_p0484a24║等法若一若異。彼復差別有二十四種。謂得
T31n1602_p0484a25║無想定。滅盡定。無想天。命根。眾同分。生。老。
T31n1602_p0484a26║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流轉。定異。
T31n1602_p0484a27║相應。次第。勢速。時。方。數。和合。不和合。復有
T31n1602_p0484a28║諸餘如是種類差別。應知。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173)은 여러 유위법[行]174)이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심왕법과 심소법 및 색법의 분위(分位)에서 임시로 시설한175) 성품이며, 심왕법 등과 하나라거나 다르다고 시설할 수 없다. 그것을 다시 구별하면 스물 네 가지가 있나니 득(得), 무상정(無想定), 멸진정(滅盡定), 무상천(無想天), 명근(命根), 중동분(衆同分), 생(生), 노(老), 주(住), 무상(無常), 명신(名身), 구신(句身), 문신(文身), 이생성(異生性), 유전(流轉), 정이(定異), 상응(相應), 차제(次第), 세속(勢速), 시(時), 방(方), 수(數), 화합, 불화합(不和合)이다. 또한 그밖에도 이와 같은 종류의 차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173) 색심불상응행법(色心不相應行法, rūpa-citta-viprayukta-saṃskāra-dharma)의 줄인말이며 불상응행법이라고도 한다. 정신도 물질도 아니면서, 정신과 물질에 의거해서 발현되는 일종의 세력적 현상의 존재이다. 심왕법, 심소법, 색법이 아니므로 ‘불상응(不相應)’이라 하고, 불생불멸의 무위법이 아니므로 ‘행(行, saṃskāra)'이라고 한다.
174) 행(行, saṃskāra)은 조작(造作)ㆍ천류(遷流)라는 뜻이며 유위법(有爲法), 변화하는 현상제법(現象諸法)을 가리킨다. 유위법은 연(緣)을 따라 모여 일어나고 만들어지며, 또한 항상 변화하여 생멸하기 때문이다.
175) 불상응행법이 실유(實有)가 아님을 나타낸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12_p0849b29║云
T31n1612_p0849c01║何心不相應行?謂依色、心、心法分位,但假建
T31n1612_p0849c02║立,不可施設決定異性及不異性。彼復云何?
T31n1612_p0849c03║謂得、無想等至、滅盡等至、無想所有、命根、眾
T31n1612_p0849c04║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如
T31n1612_p0849c05║是等類。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이른바 마음이 상응하지 않는 지어감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물질과 마음과 마음 법의 한계와 위치에 의하여 다만 시설할 수 없는 결정적인 다른 성질과 다르지 않는 성질을 가정으로 세움이다. 저것이 또 어떠한 것인가. 이를테면 얼음[得]과 생각 없는 선정[無想等至]과 아무것도 없는 선정[滅盡等至]과 생각 없는 하늘[無想所有]과 또는 생명의 뿌리[命根]와 중동분(衆同分)과 나기와 늙음과 머뭄과 그 덧없음과 명신(名身)과 구신(句身)과 문신(文身)과 범부의 성품[異生性] 이러한 등류들이다. - ↑ "二十四不相應法",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二十四不相應法
唯識宗分不相應行之法為二十四類,以假立色心心所之分位,即:得、命根、眾同分、異生性、無想定、滅盡定、無想事、名身、句身、文身、生、老、住、無常、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方、時、數、和合性、不和合性等。俱舍宗則立不相應法為十四類。(參閱「心不相應行」1819)p276 - ↑ 가 나 다 라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6_p0700c08║又自性差別及此二言總攝一切。
T31n1606_p0700c09║如是一切由此三種之所詮表。是故建立此
T31n1606_p0700c10║三為名句文身。 - ↑ 가 나 다 라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또 자체적인 성품과 차별에 어우러진 이 두 가지의 언설이 일체를 모두 수렴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체가 이 세 가지에 연유해서 그 뜻을 표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세 가지를 건립하여 명신ㆍ구신ㆍ문신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700a16║何等名為心不相應行。謂得無想定滅盡定
T31n1606_p0700a17║無想異熟命根眾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
T31n1606_p0700a18║文身異生性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時方數
T31n1606_p0700a19║和合等。如是心不相應行。應以五門建立差
T31n1606_p0700a20║別。謂依處故自體故假立故作意故地故。二
T31n1606_p0700a21║無心定具足五門。無想天異熟除作意。餘唯
T31n1606_p0700a22║初三。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을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라 이름합니까?
무상정(無想定)ㆍ멸진정(滅盡定)ㆍ무상이숙(無想異熟)ㆍ명근(命根)ㆍ중동분(衆同分)ㆍ생(生)ㆍ노(老)ㆍ주(住)ㆍ무상(無常)ㆍ명신(名身)ㆍ구신(句身)ㆍ문신(文身)ㆍ이생성(異生性)ㆍ유전(流轉)ㆍ정이(定異)ㆍ상응(相應)ㆍ세속(勢速)ㆍ차제(次第)ㆍ시(時)ㆍ방(方)ㆍ수(數)ㆍ화합(和合) 따위를 가리킨다. 이 같은 심불상응행은 마땅히 오문(五門)으로 그 차별을 건립하는 것이니, 의처(依處)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자체적인 바탕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가립(假立)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작의에 기인하기 때문이고, 지(持)에 기인하기 때문이니, 두 가지 무심정(無心定)에서 5문이 구족된다. 무상천(無想天)의 이숙에서는 작의가 제외되나 나머지는 오직 초선과 제3선뿐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700a23║得者。謂於善不善無記法。若增若減假立獲
T31n1606_p0700a24║得成就。善不善無記法者。顯依處。若增若減
T31n1606_p0700a25║者。顯自體。何以故。由有增故說名成就上
T31n1606_p0700a26║品信等。由有減故說名成就下品信等。假立
T31n1606_p0700a27║獲得成就者。顯假立。如是於餘隨其所應建
T31n1606_p0700a28║立當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득(得)’입니까?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이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가립(假立)하여 그 성취를 일으키는 것이다.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에서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가립(假立)하여 획득이라 하는 것이다.
【釋】‘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이란 의처를 드러내는 것이고,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는 것’은 그 자체적인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늘어나는 것에 연유하는 까닭에 상품의 신(信) 따위를 ‘획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획득을 가립한다는 것’이란 가립을 드러내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밖의 다른 것에 있어서도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건립됨을 숙지해야 한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700a29║無想定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欲。出離想
T31n1606_p0700b01║作意為先故。於不恒行心心法滅。假立無想
T31n1606_p0700b02║定。已離遍淨欲者。已離第三靜慮貪。未離上
T31n1606_p0700b03║欲者。未離第四靜慮已上貪。出離想作意為
T31n1606_p0700b04║先者。解脫想作意為前方便。不恒行者。轉識
T31n1606_p0700b05║所攝。滅者。謂定心所引不恒現行。諸心心法
T31n1606_p0700b06║暫時間滅所依位差別。以能滅故名滅。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정(無想定)불상응행법’입니까?
변정천(遍淨天)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그 상계(上界)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기에 그 출리상(出離想)을 작의(作意)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그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가 소멸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정이라 한다.
【釋】‘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읜 것’이란 이미 제3정려의 탐을 여읜 것이다. ‘그상계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다는 것’이란 제4정려 이상의 탐을 미처 여의지 못한 것이다. ‘그 출리상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운다는 것’이란 해탈상(解脫想)의 작의를 작전(作前)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다. ‘불항행’이란 전식(轉識)에 수렴하는 것이다. ‘소멸된다는 것’이란 정심에 끌려진 불항행이 현행해서 모든 심ㆍ심법이 잠시동안 의존하는 지위의 차별을 소멸시키는 것이니, 능히 소멸하는 까닭에 ‘소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700b07║滅盡定者。謂已離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
T31n1606_p0700b08║息想作意為先故。於不恒行諸心心法及恒
T31n1606_p0700b09║行一分心心法滅。假立滅盡定。此中所以不
T31n1606_p0700b10║言未離上欲者。為顯離有頂欲。阿羅漢等亦
T31n1606_p0700b11║得此定故。一分恒行者。謂染污意所攝。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멸진정(滅盡定)불상응행법’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고서 유정천을 초월하되 그 잠식상(暫息想)을 작의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가립하여 멸진정이라 한다. 여기에서 그 상계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한 것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유정천의 욕을 여읜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니, 아라한 따위도 역시 이 같은 정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釋】‘항행의 일부분’이란 염오의(染汚意)에 수렴된 것을 말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T31n1606_p0700b12║無想異熟者。謂已生無想有情天。於不恒行
T31n1606_p0700b13║心心法滅。假立無想異熟。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4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이숙(無想異熟)불상응행법’입니까?
무상(無想)의 유정천(有頂天)에 이미 태어난 것을 가리킨다. 불항행의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이숙이라 한다. - ↑ "得",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得
Basic Meaning: to obtain
Senses:
To get, acquire, gain; to effect, to attain. Able, can, may.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JEBD]
To know, realize, understand, apprehend, grasp.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Acquisition,' 'possession.' A term describing the reception of defilements and karma by the continuing body of sentient beings (Skt. prāpti; Tib. rnyed pa, 'thob pa). In Abhidharma theory a real dharma, one of the fourteen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Considered in Yogâcāra to be nominal,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不相應行. It is said to be related to the ālaya-vijñāna as well as the manifestation of the two hindrances 二障. The condition of receiving defilements despite the fact that they are not actually arisen, but because of their existence in the ālaya-vijñāna 阿賴耶識. Included within this is the acquisition of habits. This dharma is derived from mind and form, and does not have its own distinctive seeds. [Charles Muller; source(s): JEBD]
Frances Cook: "A force possessed by human beings that allows the residue that remains from karmic deeds to adhere to a stream of consciousness even though there is no self or being that could possess the residue." 1 [Charles Muller]
(Skt. lābha, pratilambha, upalabdhi; prap, āpti; śakya; adhigata, adhigantṛ, adhigama, adhigamyate, adhyālambana, anāvaḍḍa, anuprāpta, anubhava, anubhavanatā, anulābha, anvita, abhigama, abhinirhṛta, abhinivartayati, abhiniṣpatti, abhiniṣpanna, abhilabdha, abhisamaya, abhisaṃbuddha, abhisaṃbhava, abhyāgama, arjana, avagama, avatāra, avadhārayati, avâpta, avâpti, ākarṣaṇa, ākramaṇa, āgata, ātta, ādāna, ādhāna, āpya, āyikatā, āvaha, āsada, āsādayati, āsādita, āhara, āharaṇatā, āhārakatā, āhāritraka, ucyate, utpatti, utpadyeya, utpādayati, udaya, upagama, upacaya, upanaya, upanīta, upalabdha, upalabhyate, upalambha, upasthāpayati, upâgata, upâdāya, upârjita, *ṛdhyate, ko-vida, gati, gatiṃ-gata, gamyate, guṇa, graha, grahaṇa, grāhya, jāta, tāyin, dṛṣṭa, nirvartayati, niṣpādayati, nistīraṇa, parâyaṇa, parâhṛta, parigraha, paryāpanna, pracārin, pratikāṅkṣitavya, pratigṛhṇitavya, pratigraha, pratibaddha, pratilabdha, pratilabdhavat, pratilabhyate, pratilambhika, pratilābhita, pratividdha, prabhāvana, pravṛtti, prasajyeran, prasiddha, prapaka, prapaṇa, prapita, prapin, prāptatva, prāptavya, prapnuvat, prapya, prapyate, baddha, bhavitum, bhāj, bhāva, bhāvyate, bhūta, yoga, ridhyate, lapsyate, labdha, labhamāna, labhya, labhyā, lābhika, lābhitā, lābhin, vṛtti, vedayati, vyavasthāna, śaktatva, saṃvedayati, saṃgraha, samanuprapaṇa, samanvāgata, samarpita, samādāna, samāpanna, samāpta, *samārabdha, samārāgita, samālabdha, *samudāgata, samudāgama, samudānīta, samupeta, samṛddhi, saṃpratīcchana, saṃprapaka, saṃprāpti, sulabdha, sparśana, sparśanā, sparśayati, syāt, hasta-gat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2_p0849c06║云何為得?謂若獲若成就。此復三種,謂若種
T31n1612_p0849c07║子、若自在、若現前,如其所應。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떤 것을 얻음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획득한다거나 성취한다는 뜻이라, 이것이 또 세 가지이니, 이른바 종자라든가, 자유라든가, 현전(現前)에 응하는 바 그대로인 얻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3_p0854a29║云何得。謂若獲。若成就。此復三種。謂種子成
T31n1613_p0854b01║就。自在成就。現起成就。如其所應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엇을 득(得)이라고 하는가?
획득하거나 성취함을 말한다. 이는 또한 세 가지가 있으니, 종자의 성취[種子成就]ㆍ자재함의 성취[自在成就]ㆍ현재 발생함의 성취[現起成就]이다. 그 상응하는 바와 같다. - ↑ "得(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得(득)
【범】 prāpta 불상응법(不相應法)의 하나. 발라발다(鉢羅鉢多)라 음역. 사람들에게 유형ㆍ무형의 것을 매달리게 하는 작용. 이를테면, 악한 사람이 선인이 될 때에 내 몸에 악인의 자격을 떼어 버리고, 그 대신 선인의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 이러한 작용을 득(得)이라 한다. - ↑ "득[得]",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득[得]
산스크리트어 prāpti
① 획득. 성취. 완성.
② 갖추고 있는 성질을 계속 보존하여 두는 힘.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5_p0665c02║何等為得謂於善不善無記法。若增
T31n1605_p0665c03║若減假立獲得成就。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득(得)입니까?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이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임시로 세워서[假立] 그 성취를 일으키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6_p0700a23║得者。謂於善不善無記法。若增若減假立獲
T31n1606_p0700a24║得成就。善不善無記法者。顯依處。若增若減
T31n1606_p0700a25║者。顯自體。何以故。由有增故說名成就上
T31n1606_p0700a26║品信等。由有減故說名成就下品信等。假立
T31n1606_p0700a27║獲得成就者。顯假立。如是於餘隨其所應建
T31n1606_p0700a28║立當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득(得)’입니까?
선법(善法)ㆍ불선법(不善法)ㆍ무기법(無記法)이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가립(假立)하여 그 성취를 일으키는 것이다. 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에서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고 가립(假立)하여 획득이라 하는 것이다.
【釋】‘선법ㆍ불선법ㆍ무기법’이란 의처를 드러내는 것이고, ‘늘어나거나 또는 줄어든다는 것’은 그 자체적인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늘어나는 것에 연유하는 까닭에 상품의 신(信) 따위를 ‘획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획득을 가립한다는 것’이란 가립을 드러내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 밖의 다른 것에 있어서도 그 상응하는 바에 따라 건립됨을 숙지해야 한다. - ↑ "得",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得
梵語 prāpti。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一切法造作成就而不失,稱為得;反之,一切法不能成就,稱為非得。得、非得有表裏之關係,得僅與攝於有情自身中之有為法(即「自相續」之有情法),及擇滅、非擇滅兩種無為法有關,與「他相續」、「虛空」無關。就「自相續」而言,若與之呈現積極關係,即令之(法)合、令之持,稱為得;若與之呈現消極關係,即令之離、令之失,則稱為非得。得有「獲」(梵 pratilambha)與「成就」(梵 samanvāgama),非得有「不獲」與「不成就」等之別。獲,即指未得或已失而今得;得,則是「未來生相位」將入「現在位」作用之別名;成就,即指得而至今相續不失;得,則是入現在位之際的別名。以此類推,不獲與不成就亦具同義。
凡有為法之得可分三種,即:(1)法前得,又作前生得,即在法之前而起之得,譬如牛拉車,故又稱牛王引前得。(2)法後得,又作隨後得,即在法之後而起之得,譬如小牛跟隨在母牛後,故又稱犢子隨後得。(3)法俱得,又作俱生得,即得、法兩者俱起之得,譬如形與影相隨不離,故又稱如影隨形得。
又擇滅、非擇滅等無為法,乃非前、後、俱得,即所得之法與時間無關,為非前、非後、非俱,而與上記有為法之三種得合為四種得。此外,使有為法之得能獲得成就,稱為得得,亦即由得中復得之意。得得又稱小得、隨得;與之相對者,得稱為大得。
另據成唯識論卷一載,得係一種假有之存在,可分三種成就,即:(1)種子成就,即一切見惑、修惑之煩惱、任運而起之諸無記法,及生得善等所有之種子,其未被損害者。(2)自在成就,即由加行所生之善法,及工巧處、變化心、威儀路無記等之部分加行力所成者。(3)現行成就,即善、不善、無記等三種法之現行者。〔俱舍論卷四、卷二十一、入阿毘達磨論卷下、大毘婆沙論卷一五七、卷一五八、卷一五九、品類足論卷一辯五事品〕(參閱「成就」3689、「非得」4686)p5729 - ↑ "명근[命根]",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명근[命根]
근(根)은 작용·능력을 뜻함. 개체를 유지시키는 생명력. 생명을 지속시키는 힘. 수명. - ↑ "命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命根
Basic Meaning: life force
Senses:
Life potential; the life-faculty. One of the fourteen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in the Abhidharmakośa-bhāṣya 倶舍論;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The potential energy for a lifetime of certain length, where the ālayavijñāna, as a result of the general effects of karma, has the power to exist for 50, 70 years, etc. This latent energy is contained in the 'verbal expression' seeds of the ālaya-vijñāna (Skt. jīvitêndriya; Tib. srog gi dbang po).
In his commentary on the Brahmāʼs Net Sutra 梵網經菩薩戒本私記, Wonhyo gives three interpretations of the meaning of this term: "According to the Sarvâstivādins, there exists a separate dharma of the life potential that is neither form nor mind, apart from the five aggregates.... According to the Satyasiddhi school, jīvita means the discontinuity of continuing existence of form and mind; indriya refers to the accumulated actions of previous lives....This schoolʼs theory differs from that of Sarvâstivādins in that though they provisionally establish the life potential among the continuing existence of form and mind, they also insist that there is no separate substantial dharma of the life potential, apart from form and mind. According to Mahāyānists, there are three different theories: First, dharma-dhātu is the life potential; second, the store consciousness (ālaya-vijñāna) is the life potential; third, what is provisionally established among the division of stages of the store consciousness is the life potential." (HBJ 1.594c; translation by Eunsu Cho)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Nakamura,YBh-Ind, Soothill, Hirakawa, JEBD,Yokoi]
A root, or basis for life, or reincarnation, the nexus of Hīnayāna between two life-periods, accepted by Mahāyāna as nominally existent but not real (Skt. āyus, jīvita). [Charles Muller] - ↑ "命根(명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命根(명근)
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하나. 구사종(俱舍宗)에서는 수명(壽命)을 말한다. 명(命)은 활(活), 수(壽)는 기한의 뜻. 중생이 일정한 기간에 생존하는 것은 수명이라는 한 물체가 있어서 난(煖; 체온)과 식(識; 정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유식종(唯識宗)에서는 주지(住持)하고 결정하는 뜻이라 한다. 곧 제8식의 명언종자(名言種子) 중에는 생식(生識)ㆍ주식(住識)의 작용이 있는데, 주식의 작용은 제8식으로 하여금 일정한 기간에 상속시키는 작용. 제8 총보(總報)의 과체(果體)를 상속시키는 것을 가정적으로 명근이라 이름한 것. 따로 명(命)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 "命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命根
梵語 jīvitendriya。即有情之壽命。俱舍宗、唯識宗以之為心不相應行法之一,亦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由過去之業所引生,有情之身心在一期(從受生此世以至死亡)相續之間,維持煖(體溫)與識者,其體為壽;換言之,依煖與識而維持一期之間者,即稱為命根。
佛教各派對命根之假實看法不一,部派佛教之「說一切有部」以命根為實有,經部及大乘佛教以命根為假法,而非實有。如成唯識論卷一載,依於第八識之「名言種子」上,由過去世之業所牽引而可賴以執持、維繫此世之身命者,其功能具有決定色、心等住時長短之差別,由是之故,遂假立為命根。〔品類足論卷一、發智論卷十四、大毘婆沙論卷一二六、俱舍論卷五〕(參閱「壽」7250)p3933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0║何等命根。謂於眾同分先業所引。住時決
T31n1605_p0665c11║定假立命根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명근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 있어서 예전의 업에 감득(感得)하는 것이니, 그 머무는 때의 결정을 임시로 세워서 명근이라 하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4║云何命根?
T31n1612_p0849c15║謂於眾同分中,先業所引,住時決定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그리고 생명의 뿌리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중동분 가운데 과거세의 업에 끌리어서 머무를 때가 결정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1║云何命根。謂於眾同分。先業所引住時分限
T31n1613_p0854b12║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엇을 명근(命根)이라고 하는가?
중동분에 대해서 이전의 업이 이끄는 대로 머물 때 기간이 한정되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6_p0700b14║命根者。謂於眾同分先業所感。住時決定假
T31n1606_p0700b15║立壽命。眾同分者。於一生中諸蘊相續。住時
T31n1606_p0700b16║決定者。齊爾所時令眾同分常得安住。或經
T31n1606_p0700b17║百年或千年等。由業所引功能差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명근(命根)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衆同分)에 있어서 예전의 업에 감득(感得)하는 것이니, 그 머무는 때의 결정을 가립하여 수명이라 한다.
【釋】‘중동분’이란 일생 동안 여러 온이 상속하는 것이다. ‘머무는 때가 결정된다는 것’이란 시간적으로 제한받는 바가 평등하게 중동분에 처해서 언제나 안정되게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니, 백 년이나 천 년 동안 그 수명이 이어지는 것도 업에 인도된 공능의 차별에 연유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3║云何眾同分。謂諸群生各各自類相似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엇을 중동분(衆同分)이라고 하는가?
모든 무리의 중생들이 각각 자기 종류끼리16) 비슷한 것을 성질로 한다.
16) 철학의 유개념(類槪念)에 해당한다. - ↑ 가 나 "衆同分",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衆同分
Basic Meaning: commonality of sentient beings
Senses:
One of the 24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同分 (Skt. sabhāga) refers in general to the factors that make things similar to each other. The fact that all human beings possess common characteristics is called human commonality. It is the power of human beings to become human beings, and accordingly, to be distinguished from dogs, cats, etc. In the same way the commonality of dogs, cats, etc. is established. This is also true of vegetable and mineral life. The fact that a human being, in the middle of his life, cannot suddenly change into a dog or cat, is due to this power (Skt. sattva-sāmya, dharma, nikāya-sabhāga, nikāya; Tib. rigs 'thun pa). 〔 成唯識論 T 1585.31.7c26〕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 ↑ "중동분[衆同分]",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중동분[衆同分]
약어 동분(同分)
산스크리트어 nikāya-sabhāga 인간과 인간이 서로 비슷하듯, 모든 생물을 끼리끼리 서로 비슷하게 하는 작용. - ↑ "衆同分(중동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衆同分(중동분)
중생들이 똑 같이 비슷한 과보를 얻게 되는 인(因)을 말함. 구사종에서는 이것을 하나의 작용있는 실법(實法)이라 인정하여, 이것이 있으므로 동등유사(同等類似)하게 된다 함. ⇒동분(同分)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1║何等眾同分。謂如是如是有情。
T31n1605_p0665c12║於種種類自體相似。假立眾同分。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중동분 불상응행법입니까?
이러이러한 모든 유정들이 종류에 따라 그 자체가 서로 비슷한 것을 임시로 세워서 중동분이라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5║云
T31n1612_p0849c16║何眾同分?謂諸有情自類相似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중동분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중생들의 자기 등류와 서로 비슷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6_p0700b18║眾同分者。謂如是如是有情於種種類自體
T31n1606_p0700b19║相似假立眾同分。於種種類者。於人天等種
T31n1606_p0700b20║類差別。於自體相似者。於一種類性。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중동분(衆同分)불상응행법’입니까?
이러이러한 모든 유정들이 종류에 따라 그 자체가 서로 비슷한 것을 가립하여 중동분이라 한다.
【釋】‘종류에 따르는 것’이란 인간이나 천상 따위의 종류를 차별하는 것이다. ‘그 자체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이란 동일한 종류의 성품이다. - ↑ "眾同分",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眾同分
梵語 nikāya-sabhāga。略稱同分(梵 sabhāga)。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唯識、俱舍宗以其為心不相應行法之一。指眾生的共性或共因。即眾多有情具有同類之性,或使有情眾生得同等類似果報之因。分,即因之義。
同分可分為有情同分(梵 sattva-sabhāga)與法同分(梵 dharma-sabhāga)二種。(1)有情同分,又作眾生同分,可分為二:①使一切有情眾生同等類似之同分,稱為無差別(梵 abhinna)同分。②有情眾生隨著三界、九地、男、女、畜生等之分別,而各成一類,然於自類當中,卻具有共同之性質。此種各別之同分,稱為有差別(梵 bhinna)同分。(2)法同分,指有情所依之五蘊、十二處、十八界等法,自類之法相似。如色法相互類似,左右眼相互類似之同分。又於說一切有部,主張同分具有實體;經部及大乘則以為同分乃假法。〔大毘婆沙論卷二十七、順正理論卷十二、俱舍論卷四、卷五、成唯識論卷一、俱舍論光記卷四、卷五〕(參閱「心不相應行」1819)p5980 - ↑ "이생성[異生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이생성[異生性]
범부가 지니고 있는 본성. - ↑ "異生性",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性
Basic Meaning: worldling nature
Senses:
The nature of ordinary people, same as 凡夫性. The situation of regular people being afflicted, and being incapable of attaining liberation. Thus, in Yogâcāra, a term referring to the seeds of affliction. From the Yogâcāra five-natures perspective 五性各別, in the case of those of bodhisattva nature and undetermined nature, these are the seeds of the afflictive hindrances 煩惱障 and cognitive hindrances 所知障, while in the case of those possessing the nature of śrāvaka and pratyekabuddha, it refers only to the seeds of the afflictive hindrances. 〔 成唯識論 T 1585.31.5b6〕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From the first of the ten bodhisattva grounds 十地, the adept practitioner cuts off the seeds of the deluded view of the three worlds, and possesses the undefiled saintly nature. Nonetheless, when a sage gives rise to the worldly mind and it becomes manifest, it is not different from the mind of an ordinary person; yet the worldling differs from the sage in that he possesses the seeds of deluded view. This 'worldling-nature' is something bound to transmigration and provisionally based on the seeds of defilement (Skt. pṛthag-janatva). 異生 means ordinary person, or worldling.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In Sarvâstivāda 有部 more simply a reference to the inability to attain liberation.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In Sautrāntika 經部, the special characteristic of the continuity of an essence that is unable to produce awakening.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異生(이생)",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이생)
【범】 pṛthag-gaṇa 범부의 다른 이름. 성자(聖者)와 다른 생류(生類). - ↑ "이생[異生]",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이생[異生]
산스크리트어 pṛthag-jana 범부를 말함. 범부는 미혹한 여러 가지 행위에 따라 각각 지옥·아귀·축생 등의 다른 세계에 태어난다고 하여 이생(異生)이라 함. - ↑ "異生",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
梵語 pṛthag-jana。音譯必栗託仡那。全稱婆羅必栗託仡那(梵 bālapṛthagjana,意譯愚異生)。舊譯為凡夫,新譯為異生。凡夫輪迴六道,受種種別異之果報;又凡夫起變異而生邪見造惡,故稱異生。有關異生之語義,據大毘婆沙論卷四十五載,異生之意即起異類之見、異類之煩惱,造異類之業,受異類之果、異類之生。又據成唯識論述記卷二本載,異有二義:(1)別異,謂聖者唯生於人天趣,而異生乃通於五趣。(2)變異,謂異生轉變為邪見等。生,係生類之意,以異於聖人之生類,故稱異生。〔大日經疏卷一、玄應音義卷二十四、卷二十五〕(參閱「凡夫」957、「婆羅必栗託仡那」5627)p6482 - ↑ "異生",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
Basic Meaning: worldling
Senses:
An ordinary person; unenlightened by Buddhism; an unbeliever, childish, ignorant, foolish (Skt. pṛthag-jana; Tib. so so'i skye bo). The logograph 異 means to differ, or to vary. Therefore this term, which literally means 'different birth,' or 'different existence,' is explained as (a) the ordinary person 'differing' from the sage, or (b) the fact that an ordinary person, due to his/her good and evil acts, is reborn into various existences, such as heaven, hell, hungry ghost, etc. Syn. 凡夫 and 愚異生.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Worldly, profane. [Charles Muller]
(Skt. pṛthagjana-bhūta, pārthagjanika, bāla, anârya; bālapṛthagjana; Pāli puthujjana; Tib. so so skye bo) 〔成唯識論 T 1585.31.5a16〕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2_p0849c25║云何異生性?謂於諸聖法不得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범부의 성품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성인들의 법을 얻지 못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3_p0854b27║云何異生性。謂於聖法。不得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엇을 이생성(異生性)이라고 하는가?
성스러운 법[聖法]에 대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1║何等異生性。
T31n1605_p0665c22║謂於聖法不得假立異生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이생성 불상응행법입니까?
성법(聖法)을 얻지 못한 것을 임시로 세워서 이생의 성품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6_p0700c16║異生性者。謂於聖法不得假立異生性。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이생성(異生性)불상응행법’입니까?
성법(聖法)을 얻지 못한 것을 가립하여 이생성이라 한다. - ↑ "異生性(이생성)",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性(이생성)
이생(凡生)으로 하여금 이생(異生)이 되게 하는 본성. 체(體)에 대하여서는, 소승 독자부는 욕계(欲界)의 견도에서 끊어지는 번뇌라 하고, 소승 유부종은 무루지(無漏智)의 비득(非得)을 이생성이라 함. 『유식론(唯識論)』에서는 5성(性) 중의 보살 종성과 부정 종성은 분별기(分別起)의 번뇌장, 소지장(所知障)의 종자를 이생성. 또 결정적으로 영구히 성문(聲聞)ㆍ연각(緣覺)이 될 성품을 가진 2승은 분별기의 번뇌장의 종자를 이생성이라 함. - ↑ "異生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異生性
梵語 pṛthag-janatva。舊譯為凡夫性。凡夫者,乃指六道之中未得佛法之有情眾生。異生性,即眾生成為凡夫之依據或原因在於不得佛法。意指凡夫之愚異生性。異生,即凡夫;異,含有別異、變異二義。因凡夫輪迴五趣(或六道),受種種別異之果報;又凡夫由種種變異而生邪見、造諸惡,故稱異生。準此,異生性即指使眾生成為凡夫之本性,亦即通常所謂「見惑」之煩惱種子。
關於其體性,諸部之間有異說:(1)小乘犢子部,認為異生性係以欲界見苦所斷之煩惱(即十隨眠)為其體性;屬於欲界所繫縛,具有染污性,而為「見道位」時所斷除者,攝於「相應行蘊」中。(2)小乘說一切有部之正統主張,認為聖道之非得(亦即不能獲得聖道)之性為異生性之體性;屬於三界所繫縛,不具染污性,而為「修道位」時所斷除者,攝於「不相應行蘊」中,而別有自體。(3)小乘經部,不另立體性,而以聖法未生時相續之分位差別稱為異生性,此係一種「假立」之異生性,亦即不承認有異生性存在,而僅假立名相以說明之。(4)唯識大乘,亦屬假立之異生性,即於分別而起的煩惱、所知二障之種子上假立為異生性;而異生之凡夫若能至見道位時永斷此二障,方可稱為聖者。亦即以分別而起之二障為異生性,若不斷此性則不得為聖者,故初地所斷之惑,又稱為「異生性障」。〔大毘婆沙論卷四十五、俱舍論卷四、成唯識論卷九、成唯識論述記卷三〕p6482 - ↑ "無想定",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無想定
Basic Meaning: concentration without thought
Senses:
Concentration without conceptualization; concentration of no thought; the meditative attainment without ideation (asaṃjñā-samāpatti). One of the six states of inactivity of mind 無心位. The state of concentration that is the cause of being born into no-thought heaven—wherein all mental actions and functions of the first six consciousnesses are stopped. In Abhidharmakośa theory, one of the fourteen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In Yogâcāra theory,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This concentration is also practiced by non-Buddhists, and is called a tainted concentration with the nature of goodness. It is tainted because the mano-consciousness is still producing self-view. In contrast, nirodha-samāpatti 滅盡定 is only attained by Buddhist sages who fully apprehend the empty character of phenomena (Skt. asaṃjñi-samāpatti, asaṃjñi-samāpanna, āsaṃjñika; Tib 'du shes med pa'i snyoms 'jug; 'du shes med pa'i snyoms par 'jug pa). 〔瑜伽論 T 1579.30.293c8〕 . One is able to enter avṛha 無想天; such entry is into 無想果.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Yokoi, Stephen Hodge, Hirakawa, JEBD] - ↑ "無想定(무상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無想定(무상정)
대승 24불상응법(不相應法)의 하나. 소승 14불상응법의 하나. 2무심정(無心定)의 하나. 무상천(無想天)에 태어날 인(因)이 되는 선정, 모든 심상(心想)을 없애므로 이같이 이름. 외도는 이 정을 닦아 무상과(無想果)를 얻으면 참 열반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2_p0849c08║云何無想等至?謂已離遍淨貪、未離上貪,由
T31n1612_p0849c09║出離想作意為先,不恒現行心心法滅為性。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떤 것을 생각 없는 선정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미 변정천(遍淨天)의 탐심은 여의었지만 아직 최상천(最上天)의 탐심을 여의지 못한 것이다. 벗어날 생각에의 뜻 지음을 먼저 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현행(現行)하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법이 없어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13_p0854b02║云何無想定。謂離遍淨染未離上染。以出離
T31n1613_p0854b03║想作意為先所有不恒行心心法滅為性。
무엇을 무상정(無想定)이라고 하는가?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엇을 무상정(無想定)이라고 하는가?
두루 청정함과 오염됨을 떠났으나 아직 그 위의 오염을 떠나지 못함을 말한다. 상(想)과 작의(作意)를 벗어남을 으뜸으로 삼고 지닌 바 불항행(不恒行)11)의 심과 심법이 멸함을 성질로 한다.
11) 다음의 멸진정 항목을 보라.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5_p0665c03║何等無想定。謂已離遍
T31n1605_p0665c04║淨欲未離上欲出離想。作意為先故。於不恒
T31n1605_p0665c05║行心心所滅。假立無想定。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정 불상응행법입니까?
변정천(遍淨天)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그 상계(上界)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기에 그 출리상(出離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그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가 소멸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정이라 한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T31n1606_p0700a29║無想定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欲。出離想
T31n1606_p0700b01║作意為先故。於不恒行心心法滅。假立無想
T31n1606_p0700b02║定。已離遍淨欲者。已離第三靜慮貪。未離上
T31n1606_p0700b03║欲者。未離第四靜慮已上貪。出離想作意為
T31n1606_p0700b04║先者。解脫想作意為前方便。不恒行者。轉識
T31n1606_p0700b05║所攝。滅者。謂定心所引不恒現行。諸心心法
T31n1606_p0700b06║暫時間滅所依位差別。以能滅故名滅。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정(無想定)불상응행법’입니까?
변정천(遍淨天)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그 상계(上界)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기에 그 출리상(出離想)을 작의(作意)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그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가 소멸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정이라 한다.
【釋】‘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읜 것’이란 이미 제3정려의 탐을 여읜 것이다. ‘그상계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했다는 것’이란 제4정려 이상의 탐을 미처 여의지 못한 것이다. ‘그 출리상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운다는 것’이란 해탈상(解脫想)의 작의를 작전(作前)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다. ‘불항행’이란 전식(轉識)에 수렴하는 것이다. ‘소멸된다는 것’이란 정심에 끌려진 불항행이 현행해서 모든 심ㆍ심법이 잠시동안 의존하는 지위의 차별을 소멸시키는 것이니, 능히 소멸하는 까닭에 ‘소멸’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 ↑ "무상정[無想定]",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무상정[無想定]
①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禪定).
②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무상천(無想天)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 ↑ 가 나 "無想定",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5일에 확인:
無想定
梵語 asaṃjñā-samāpatti。指能於定中心想不起,猶如冰魚、蟄蟲,但不能斷惑而證入聖果。心不相應行法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乃心、心所(心之作用)滅盡之定,即使一切心識活動全部停止,以求證得無想果所修之禪定;與滅盡定並稱為二無心定。此定為凡夫及外道所修,即彼等誤信色界第四禪無想天之果報為真悟境。又修此定所得無想天之果報,稱無想果或無想事。蓋無想定屬心不相應行法,依之在五百大劫之間得滅心、心所。諸宗派對此定有各種異說,有部主張無想定、無想果皆有實體,然經部、唯識宗卻稱其為虛假者。〔品類足論卷一、俱舍論卷五、順正理論卷十一、成唯識論卷七〕(參閱「滅盡定」6932)p6453 - ↑ "滅盡定",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滅盡定
Basic Meaning: concentration of cessation
Senses:
The meditative attainment of cessation (Skt. nirodha-samāpatti; Tib. 'gog pa'i snyoms par 'jug pa). An extremely deep state of meditative concentration where sensory and discriminative mental function
is completely extinguished, one of the six states of mental inactivity 無心位. When this concentration is attained, the thinking consciousness 意識 is also extinguished, which enables the practitioner to be reborn into the highest heaven. This concentration has the power to extinguish mental functions in the first six consciousnesses 六識 as well as the afflicted manas 染汚末那, it is said to be the concentration practiced by sages. Since low-level practitioners and non-Buddhists are afraid to extinguish their individuality, they do not enter this concentration of complete extinction, but instead can only attain, at best, thoughtless concentration 無想定 (asaṃjñī-samāpatti), considered in Yogâcāra to be an inferior state of concentration. It is also called the 'concentration of extinguishing feeling and perception;' this concentration can occur based on the seeds of disillusioned mind 厭心種子. It is one of the fourteen dharmas not-concomitant with the mind 心不相應行法. Also translated by Xuanzang as 滅受想定. Also called 滅心定, 滅定, 無緣三昧, and 滅盡三昧. 〔 成唯識論 T 1585.31.23c29〕 (Skt. nirodha-samāpanna, ubhayato-bhāga-vimukta, ubhaya-bhāga-vimukta, nirodha, nirodhâkhya; Tib. 'gog pa'i snyoms 'jug)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Nakamura, JEBD, Hirakawa, YBh-Ind] - ↑ "滅盡定(멸진정)",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滅盡定(멸진정)
대승에서는 24불상응법(不相應法)의 하나. 소승에서는 14불상응법의 하나. 또는 2무심정(無心定)의 하나. 성자(聖者)가 모든 심상(心想)을 다 없애고 적정(寂靜)하기를 바래서 닦는 선정. 소승에서 불환과(不還果)와 아라한과의 성자가 닦는 것은 유루정(有漏定)으로, 6식과 인집(人執)을 일으키는 말나(末那)만을 없애는 것. 대승의 보살이 이를 닦는 것은 무루정(無漏定)으로, 법집(法執)을 일으키는 말나까지 없앤다. - ↑ "멸진정[滅盡定]",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멸진정[滅盡定]
약어 멸정(滅定)
①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선정(禪定).
② 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동의어: 상수멸정(想受滅定), 멸수상정(滅受想定) - ↑ "滅盡定",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滅盡定
梵語 nirodha-samāpatti。又作滅受想定、滅盡三昧。心不相應行法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滅盡心、心所(心之作用)而住於無心位之定。與無想定並稱二無心定,然無想定為異生凡夫所得,此定則為佛及俱解脫之阿羅漢遠離定障所得,即以現法涅槃之勝解力而修入者。聖者遠離無所有處之煩惱,其定之境地可喻為無餘涅槃之寂靜;故為入無心寂靜之樂者,乃依修此定,即可生無色界之第四有頂天。諸宗派對此定有各種異說,如說一切有部主張此定別有實體;但經量部、唯識宗等不認其為實法,唯於心、心所不轉之分位假立此定,唯識宗且以為在此定中未斷滅阿賴耶識;分別論者則謂,入此定之聖者,其想與受已滅,然仍有細心未滅。
另據宗鏡錄卷五十五所舉,滅盡定與無想定有四種不同:(1)證得者之異,即滅盡定為佛、羅漢所證出世間之定;無想定則為凡夫、外道所證世間之定。(2)祈願之異,即滅盡定者唯求出世功德;無想定者則求世間樂果。(3)感果與不感果之異,即滅盡定為無漏業,不感三界生死果報;無想定則為有漏業,能感無想天果報。(4)滅識之異,即滅盡定能滅除第六識,兼能滅第七識之染分;無想定僅滅除第六識分別之見,其他諸邪見尚未能斷盡。〔中阿含經卷五十八、品類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一五二〕(參閱「無想定」6453)p6932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5_p0665c05║何等滅盡定。謂已
T31n1605_p0665c06║離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息想。作意為先
T31n1605_p0665c07║故。於不恒行諸心心所及恒行一分心心所
T31n1605_p0665c08║滅。假立滅盡定。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멸진정 불상응행법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고서 유정천을 초월하되 그 잠식상(暫息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멸진정이라 한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6_p0700b07║滅盡定者。謂已離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
T31n1606_p0700b08║息想作意為先故。於不恒行諸心心法及恒
T31n1606_p0700b09║行一分心心法滅。假立滅盡定。此中所以不
T31n1606_p0700b10║言未離上欲者。為顯離有頂欲。阿羅漢等亦
T31n1606_p0700b11║得此定故。一分恒行者。謂染污意所攝。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멸진정(滅盡定)불상응행법’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고서 유정천을 초월하되 그 잠식상(暫息想)을 작의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이다.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가립하여 멸진정이라 한다. 여기에서 그 상계의 욕을 미처 여의지 못한 것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유정천의 욕을 여읜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니, 아라한 따위도 역시 이 같은 정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釋】‘항행의 일부분’이란 염오의(染汚意)에 수렴된 것을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0║云何滅盡等至?謂已離無所有處貪,從第一
T31n1612_p0849c11║有更求勝進,由止息想作意為先,不恒現行
T31n1612_p0849c12║及恒行一分心心法滅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떤 것을 아무것도 없는 선정이라 하는가. 이를테면 이미 아무것도 없는 곳의 탐심까지를 여의고서 제1의 존재[有]를 따라 다시 수승한 전진을 구하는 것이다. 지식(止息)할 생각에의 뜻 지음을 먼저 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현행하지 않거나 또는 항상 현행하는 조그마한 마음과 마음의 법도 다 없어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3_p0854b04║云何滅盡定。謂已離無所有處染。從第一有
T31n1613_p0854b05║更起勝進。暫止息想作意為先。所有不恒行。
T31n1613_p0854b06║及恒行一分。心心法滅為性不恒行。謂六轉
T31n1613_p0854b07║識。恒行。謂攝藏識。及染污意。是中六轉識
T31n1613_p0854b08║品。及染污意滅。皆滅盡定。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엇을 멸진정(滅盡定)이라고 하는가?
이미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의 오염을 떠난 것을 말한다. 첫 번째12)로부터 다시 더욱 나아가 잠시 상과 작의를 멈춤을 으뜸으로 삼고, 지닌 바 불항행과 항행(恒行) 일부분의 심과 심법이 멸함을 성질로 한다. 불항행이란 6전식(轉識)13)을 말한다. 항행이란 장식(藏識)14)과 염오의(染汚意)15)를 말한다. 이 가운데 6전식의 종류 및 염오의가 멸한다. 모두 멸진정이다.
12) 9차제정(次第定)의 첫 번째를 말한다. 초선을 말한다.
13) 안식에서 의식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식을 말한다.
14) 아뢰야식(ālayavijñāna)을 말한다. - ↑ "無想報",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無想報
Basic Meaning: results of nonconceptualization
Senses:
(Skt āsaṃjñika)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directly associated with a specific mental function 心不相應行法. "He who is reborn in the thoughtless [realm] as a reward [for previous karma], does so based on having previously [engaged in thoughtless] meditation as cause. [Meditation] in the four dhyānas, has, as its fruit/effect, birth in one of the [corresponding] heavens. When [an asaṃjñī-deva] is initially born [into the asaṃjñī-deva-loka], there is mental activity [that lasts only a moment or two]. For the interim [of existence there] there is no mental activity; he passes five hundred kalpas [like that]. During the mental cessation [meditation performed in the previous life] he obtained a non-material conditioned mental dharma. That leads to bestowing on him a mental place [in the subsequent life] called the 'thoughtless reward.' " 「無想報者 依前定因。生四禪中廣果天處。初生有心。中間無心。逕五百劫。是心滅時。得一有爲非色心法。領補心處。名無想報。」 〔大乘義章 T 1851.44.495b10–13〕 [Charles Muller, Dan Lusthaus] - ↑ "無想果",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無想果
Basic Meaning: realization gained by no-thought meditation
Senses:
Yogâcāra regards this to be only a preliminary attainment which is more like a state of blankness in which affliction and nescience are only temporarily suppressed, claiming that non-Buddhist meditation traditions tend to erroneously take it to real enlightenment. For Yogâcāra, real enlightenment must be grounded in complete extinction of discriminating thought, as in 滅盡定 (Skt. āsaṃjñika). 〔成唯識論 T 1585.31.5c10〕 [Charles Muller] - ↑ "無想果",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無想果
梵語 āsaṃjñika。指修無想定,死後升入無想天之一種果報。又作無想報、無想事、無想異熟。心不相應行法之一。謂生無想天者,其心、心所悉滅,而呈無意識之狀態。外道謂此為真涅槃界,故於現世修無想定,死後則生於彼天。蓋以無想定為因,感得一種非色非心之境界,使心、心所不生,此非色非心之境界,乃無想定之異熟果,故稱無想果。阿毘曇毘婆沙論卷四十四(大二八‧三三三中):「凡夫人入無想定,得無想果。」〔俱舍論卷五〕p6453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5_p0665c08║何等無想異熟。謂已生無想
T31n1605_p0665c09║有情天中。於不恒行心心所滅。假立無想異
T31n1605_p0665c10║熟。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이숙 불상응행법입니까?
무상(無想)의 유정천(有情天)에 이미 태어난 것을 가리킨다. 불항행의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이숙이라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3║云何無想所有?謂無想等至果。無想有情天
T31n1612_p0849c14║中生已,不恒現行心心法滅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떤 것을 생각 없는 하늘이라 하는가. 이른바 생각 없는 선정의 결과로서 생각 없는 유정의 하늘 가운데 태어나면 항상 현행하지 않는 마음과 마음의 법이 없어지나니 이것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2_p0484b09║無想天者。謂先於此間得無想定。由此
T31n1602_p0484b10║後生無想有情天處。不恒現行諸心心法滅
T31n1602_p0484b11║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상천(無想天)182)은 먼저 여기에서 무상정을 얻고 이것으로 인하여 다음에 무상유정천처(無想有頂天處)에 나게 되어, 항상 여러 심왕법과 심소법을 현행하지 않고 멸하는 성품이다.
182) 무상천(無想天, asaṁjñā-deva)은 색계의 제4정려에 속한 하늘로서 무상유정천(無想有頂天)ㆍ소광천(少廣天)ㆍ복덕천(福德天)이라고도 한다. 무상정을 닦아서 그 힘에 의해 무상천에 태어나 500대겁(大劫)동안 6식(識)이 현기(現起)하지 않는다. 외도는 이것을 최고의 열반의 경지로 간주한다. 하지만 500대겁 후에 마치 오랜 수면에서 깨어나듯이 원래 욕계의 정신상태로 떨어진다고 한다. 설일체유부ㆍ경량부에서는 색계 제4선(禪)의 광과천(廣果天)의 일부로 본다. - ↑ "무상과[無想果]",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상과[無想果]
무상정(無想定)을 닦은 결과로 이른 무상천(無想天)의 경지.
동의어: 무상사(無想事) - ↑ "無想果(무상과)",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無想果(무상과)
14불상응법(不相應法)의 하나. 색계 4선천(禪天)의 제4선에 8천이 있고, 그 중 제3의 광과천(廣果天)에 무상천(無想天)이 있다. 무상정(定)에 의하여 얻은 과보. 이곳에 태어난 이는 처음 날 적과 이 하늘에서 죽어 다른 데에 태어나려고 할 때는 마음이 있지만, 중간 5백 대겁(大劫)의 오랜 동안에는 심왕(心王)ㆍ심소(心所)가 모두 없어져 몸만 있을 뿐이므로, 오로지 비정(非情)과 같다. 이 무심(無心)의 위(位)를 무상과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6_p0700b12║無想異熟者。謂已生無想有情天。於不恒行
T31n1606_p0700b13║心心法滅。假立無想異熟。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이숙(無想異熟)불상응행법’입니까?
무상(無想)의 유정천(有頂天)에 이미 태어난 것을 가리킨다. 불항행의 심ㆍ심소가 소멸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이숙이라 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3_p0854b09║云何無想天。謂無想定所得之果。生彼天已。
T31n1613_p0854b10║所有不恒行。心心法滅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엇을 무상천(無想天)이라고 하는가?
무상정으로 얻어지는 과보로 그 전상에 태어남을 말한다. 지닌 바 불항행의 심과 심법이 멸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名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名身
Basic Meaning: collection of words
Senses:
Gathering of names; this refers to the existence of more than one name, which is one of the three essentials for the creating of sentences to establish the Dharma.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theory, a provisional element based on the sense field of sound. See 名句文身. (Tib. ming gi tshogs) [Charles Muller, Stephen Hodge; source(s): Nakamura, Hirakawa, JEBD]
Name and form 名色 (Skt. nāma-rūpa; nāma-kāya). [Charles Muller] - ↑ "名身",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名身
梵語 nāmakāya。為心不相應行法之一。名,指表詮自性之名字、名目等;身,有積聚之義。即積集二名以上者,稱為名身。據俱舍論光記卷五所舉,名有名、名身、多名身三種;又名有多位,即一字生、二字生、多字生(指「三字生」以上者)。若就「一字生」而論,則色字或香字等一字,稱為名;色香二字合併之複字,稱為名身;而三字以上者,稱為多名身。若就「二字生」而論,則二字稱名,四字稱名身,六字以上者稱為多名身。若就「多字生」而論,則「三字生」時,三字稱名,六字稱名身,九字以上者稱為多名身。〔大毘婆沙論卷十四、成唯識論卷二、大乘義章卷二〕(參閱「心不相應行」1819、「名」2845)p2849 - ↑ "名身(명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名身(명신)
불상응행(不相應行)의 하나. 명은 능히 자성(自性)을 말하는 것, 곧 명사(名詞). 신(身)은 모였다는 뜻으로 복수(複數)를 말한다. 곧 두 개 이상의 명사. - ↑ "명신[名身]",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명신[名身]
산스크리트어 nāma-kāya 신(身)은 모임·종류의 뜻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두 개의 명칭. 세 개 이상의 명칭은 다명신(多名身)이라 함. 예를 들면, 색성(色聲)은 명신, 색성향(色聲香)은 다명신임. - ↑ 가 나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8║名身者。謂詮諸行
T31n1602_p0484b19║等法自體想號假立性。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명신(名身)190)은 모든 행(行) 등의 법을 설명하는 자체와 표상의 명칭이 가립된 성질이다.
190) 명신(名身, nāma-kāya)은 명칭이란 뜻이다. 여기서 신(身, kāya)은 ‘신체’ ‘신근(身根)’의 뜻이 아니라 ‘모임’이란 뜻으로서 말의 어미에 붙여서 복수(複數)를 나타낸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7║何等名身。謂於諸法自性增言
T31n1605_p0665c18║假立名身。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명신 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자체적인 성품에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명신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6_p0700c02║名身者。謂於諸法自性增言。假立名身。自性
T31n1606_p0700c03║增言者。謂說天人眼耳等事。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명신(名身)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자체적인 성품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가립하여 명신이라 한다.
【釋】‘자체적인 성품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난다는 것’이란 천상과 인간의 눈ㆍ귀 따위의 일을 가리키는 것이다.
구신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2_p0849c20║云何名
T31n1612_p0849c21║身?謂諸法自性增語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명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의 제 성품[自性]에 대해 말을 더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9║云何名身。謂於諸法自性。增語為性。如說眼
T31n1613_p0854b20║等。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엇을 명신(名身)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자성에 대하여 말이 더욱 늘어남을 성질로 한다. 마치 안(眼) 등을 말하는 것과 같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06_p0700c04║句身者。謂於諸法差別增言。假立句身。差別
T31n1606_p0700c05║增言者。謂說諸行無常一切有情當死等義。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구신(句身)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차별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가립하여 구신이라 한다.
【釋】‘차별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난다는 것’이란 제행이 무상하기에 일체의 유정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T31n1613_p0854b21║云何句身。謂於諸法差別增語為性。如說諸
T31n1613_p0854b22║行無常等。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6일에 확인:
무엇을 구신(句身)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차별에 대하여 말이 더욱 늘어남을 성질로 한다. 마치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을 말하는 것과 같다. - ↑ "句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句身
Basic Meaning: gathering of two or more phrases
Senses:
Collection of phrases, sentences. See 名句文身.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A provisional element, based on the sense field of sound (Skt. pada-kāya; Tib. tsig gi tshogs). 〔觀心覺夢鈔 T 2312.71.68c8〕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JEBD, YBh-Ind, Hirakawa] - ↑ "句身(구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句身(구신)
【범】 pada ; padakāya 또는 발타(鉢陀)ㆍ발타가야(鉢陀伽耶ㆍ跋陀迦耶). “제행(諸行)은 무상(無常)하다”, “제법(諸法)은 무아(無我)다”고 하는 것과 같이, 구(句)가 둘 이상 모인 것을 말함. 자성(自性)의 차별인 의리(義理)를 나타내는 것을 구(句)라 하고, 신(身)은 무더기란 뜻. - ↑ "구신[句身]",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구신[句身]
① 산스크리트어 pada-kāya 신(身)은 모임·종류의 뜻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두 개의 문장(文章). 세 개 이상의 문장은 다구신(多句身)이라 함.
② 글귀.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9║句身者。謂聚集諸名
T31n1602_p0484b20║顯染淨義言說所依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구신(句身)191)은 여러 명칭을 모아서 잡염ㆍ청정의 뜻을 나타내는 언설의 의지처의 성질이다.
191) 구신(句身, pada)은 문구(文句)라는 뜻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8║何等句身。謂於諸法差別增言假
T31n1605_p0665c19║立句身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구신 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차별에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구신이라 한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6_p0700c04║句身者。謂於諸法差別增言。假立句身。差別
T31n1606_p0700c05║增言者。謂說諸行無常一切有情當死等義。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구신(句身)불상응행법’입니까?
제법의 차별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을 가립하여 구신이라 한다.
【釋】‘차별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난다는 것’이란 제행이 무상하기에 일체의 유정은 반드시 죽게 된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2_p0849c21║云何句身?謂諸法
T31n1612_p0849c22║差別增語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구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의 차별에 대해 말을 더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가 나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3_p0854b21║云何句身。謂於諸法差別增語為性。如說諸
T31n1613_p0854b22║行無常等。 - ↑ 가 나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무엇을 구신(句身)이라고 하는가?
모든 법의 차별에 대하여 말이 더욱 늘어남을 성질로 한다. 마치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을 말하는 것과 같다. - ↑ "句身",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句身
梵語 padakāya。為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之一,俱舍宗十四不相應行之一。句,乃詮表事物之義理者;身,集合之義。若集合諸句,構成一完整思想,即稱為句身。如「諸行無常,諸法無我,涅槃寂靜」等句,乃表達完整思想,故稱句身。另有一說,謂若僅集合二句以上者,亦稱句身。如單云「諸行」、「諸法」等,稱為句,然若云「諸行無常」、「諸法無我」,則係二句之集合,故稱句身。又一句亦稱句身。如楞伽經卷二載(大一六‧四九四中):「句身者,謂句有義身,自性決定究竟,是名句身。」〔大毘婆沙論卷十四、俱舍論卷五、俱舍論光記卷五〕(參閱「句」2121)p2121 - ↑ "文身",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文身
Basic Meaning: sets of syllables
Senses: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a specific mental function 心不相應行 in the Yogâcāra doctrine. Two or more syllables assembled together. See 名句文身. A provisional element, based on the sense field of sound (Skt. vyañjana-kāya; Tib. yi ge'i tshogs). 〔瑜伽論 T 1579.30.302b26〕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文身(문신)",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文身(문신)
구사(俱舍)에서는 14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24불상응행법의 하나. 글씨로 쓴 문자가 아니고, 소리로 된 문으로서 굴곡ㆍ차별이 있는 문체를 말한다. 가ㆍ나ㆍ다 등과 같은 것이고,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모여 명(名)이 되고 구(句)가 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단 하나뿐이면 문이라 하고, 두 개 이상의 경우에는 문신이라 한다. - ↑ "문신[文身]",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문신[文身]
산스크리트어 vyañjana-kāya 신(身)은 모임·종류의 뜻으로, 어미에 붙어 복수를 나타냄. 두 글자. 세 글자 이상은 다문신(多文身)이라 함. - ↑ "文",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文
梵語 vyañjana。音譯便膳那。為心不相應行法之一,七十五法之一,百法之一。即字,為名與句之所依。據俱舍論卷五、俱舍論光記卷五載,文為字(梵 akṣara,音譯惡剎羅)之同義詞,具有「能彰顯」之義,或顯名、句,或顯義。即𧙃(a)、阿(ā)、壹(i)、伊(ī)等字稱為文,其體無詮表,但為名、句二者所依,攝於不相應行,與我國之書法文字不同。乃為彰顯本有之𧙃、阿等字而製作紙上書分,非為彰顯紙上書分之文字而製作諸字,故諸字非為書分之名。
文有三種,說一字時稱為「文」,說二字時稱為「文身」,說三字或四字則稱「多文身」。小乘說一切有部主張文別有自體,經部及唯識家則認為文僅為名、句之所依,故離聲即別無自體,而視其為分位假立之法。〔大毘婆沙論卷十四、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成唯識論卷二、大乘義章卷二〕(參閱「名」2845) p1852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0║文身者。謂前二所依
T31n1602_p0484b21║字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문신(文身)192)은 앞의 두 가지가 의지할 바인 글자의 성질이다.
192) 문신(文身, vyañjana)은 글자[字母]라는 뜻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9║何等文身。謂於彼二所依諸字。假立
T31n1605_p0665c20║文身。此言文者能彰彼二故。此又名顯。能顯
T31n1605_p0665c21║彼義故。此復名字。無異轉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문신 불상응행법입니까?
두 가지에 의지하는 각종 문자를 임시로 세워서 문신이라 한다. 이 문이란 그 두 가지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현(顯)이라고도 이름하니 능히 그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또 명자(名字)라고도 하니, 그 의미가 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6_p0700c06║文身者。謂於彼二所依諸字。假立文身。彼二
T31n1606_p0700c07║所依諸字者謂。自性差別增言所依諸字如
T31n1606_p0700c08║[褒-保+可]壹鄔等。又自性差別及此二言總攝一切。
T31n1606_p0700c09║如是一切由此三種之所詮表。是故建立此
T31n1606_p0700c10║三為名句文身。此言文者。能彰彼二故。此
T31n1606_p0700c11║又名顯能顯義故。此復名字無異轉故。所以
T31n1606_p0700c12║者何。如眼名眼異。此名外更有照了導等異
T31n1606_p0700c13║名改轉。由彼同顯此想故。非[褒-保+可]壹等字離[褒-保+可]
T31n1606_p0700c14║壹等差別外更有差別能顯此。字故無異轉
T31n1606_p0700c15║說名。為字無異。轉者謂不流變。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문신(文身)불상응행법’입니까?
그 두 가지에 의지하는 각종 문자를 가립하여 문신이라 한다.
【釋】‘그 두 가지에 의지하는 각종 문자’란 자체적인 성품이나 차별에 처해서 그 언설이 늘어나는 것에 의지하는 각종 문자 즉 아(■:a)ㆍ일(壹:i)ㆍ오(鄔:u) 따위이다. 또 자체적인 성품과 차별에 어우러진 이 두 가지의 언설이 일체를 모두 수렴하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체가 이 세 가지에 연유해서 그 뜻을 표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세 가지를 건립하여 명신ㆍ구신ㆍ문신으로 삼는 것이다. 여기서 ‘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능히 그 두 가지를 표출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 ‘나타내 드러낸다’고도 이름하니 능히 이치를 내부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명자라고도 하니 그 의미가 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이란 그 두 가지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 나타내 드러낸다[顯]고도 이름하나니 능히 그 의미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또 명자(名字)라고도 하니, 그 의미가 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의 경우처럼 그 ‘눈’이란 명칭은 달라질 수 있으니, 이 같은 이름 외에 다시 유조(有照)와 요도(了導) 따위의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를 수 있으므로, 저것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상(想)을 동일하게 표출하기 때문이다. 아( )ㆍ일(壹) 따위의 글자가 아ㆍ일 따위의 차별 이외의 것으로 벗어나지 않고 이 차별에 머물러 있어야만 이러한 뜻을 표출할 수가 있다. 따라서 글자로 인해 다른 것으로 이전되지 않는 것을 명자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釋】‘글자 때문에 이전되지 않는 것’이란 변하여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2_p0849c22║云何文身?謂諸字為性,以能
T31n1612_p0849c23║表彰前二種故;亦名為顯,由與名句為所依
T31n1612_p0849c24║止顯了義故;亦名為字,非差別門所變易故。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문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문자로써 그 성품이 되는 것이라. 능히 앞의 두 가지를 표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하나니, 명신ㆍ구신의 의지가 되고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도한 자신(字身)이라고도 하나니, 차별문(差別門)의 변해 바꿔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3_p0854b23║云何文身。謂即諸字。此能表了前二性故。亦
T31n1613_p0854b24║名顯。謂名句所依。顯了義故。亦名字。謂無異
T31n1613_p0854b25║轉故。前二性者。謂詮自性及以差別。顯謂顯
T31n1613_p0854b26║了。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무엇을 문신(文身)이라고 하는가?
즉 모든 문자를 말한다. 이는 능히 앞의 두 가지 성질17)을 나타내 주기 때문에 또한 나타냄[顯]이라고도 한다. 명신과 구신이 의지하는 바를 말한다.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또만 문자[字]라고도 한다. 다르게 바뀜이 없기 때문이다. 앞의 두 가지 성질이란 자성 및 차별을 설명함을 말한다. 나타내 준다는 것은 나타냄을 말한다.
17) 명신과 구신의 성질을 말한다. - ↑ "生",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生
Basic Meaning: arising
Senses:
To produce, to bring forth, to beget. To be born; conception (Skt. jāti, utpāda; Tib. skye ba) Life, living; production; coming into existence. In Yogâcāra and Abhidharmakośa theory, the arising of conditioned dharmas. Also birth, or the life of sentient beings. The first of the four aspects 四相 of existence (arising, abiding, changing, and extinction). Also one of the twelve links of dependent arising 十二因緣, and one of the four basic forms of suffering 四苦. [Charles Muller]
Birth takes place in four forms, catur yoni 四生, in each case causing: a sentient being to enter one of the 六道 six gati, or paths of transmigration. Jāti is transliterated as 惹多 (Skt. utpatti,upapanna, saṃbhava; jīva, praṇa; āma; aṅkuritatva, adhyālambitavya, anupravṛtta, anuvartin, anuvṛtta, apūrvôtpāda, abhijāta, abhinirvartana, abhinirvartayati, abhinirvṛtta, abhinirvṛtti, abhinivartayati, abhinivṛtti, abhiniṣpatti, abhipravṛtta, abhisaṃbhava, abhyudaya, abhyupeta, avakrānta, avaropayitavya, avasthāna, ākara, āgamana, āpattavya, āpanna, āya, ārambha, āvarjaka, āvaha, āvāhaka, utpanna-mātra, utpannavat, utpādaka, utpādana, utpādayati, utpādika, utpādita, utpādin, utpādya, utplava, udaya, udita, udbhava, unmajjana, upaga, upagata, upanipāta, upanna, upapatti, upapatti-bhava, upapattiṃ, upapatsyate, upapadya, upapadyamāna, upapāda, upalabhyate, upaviṣṭa, upasaṃhṛta, upasarpaṇa, upasthāpayati, upāda, aupapatti, kara, kṛta, kṛtavat, kṭtvas, janaka, janana, janayati, janika, janita, janman, janma-saṃbhava, jāta, jātaka, jātima, jātimat, jātī, jātīyā, jātya, jānika, jānmika, jīvantika, dāyaka, dāyin, nirgata, nirgama, nirjanayati, nirjāta, nirdhāvita, niryāta, nirvartaka, nirvartana, nirvṛtti, nirhāra, niṣpanna, niṣyanda, patita, parâyaṇa, paryāpanna, paryutthāna, prajāta-mātra, pratipadyamāna, pratilabdha, pratilambha, pratisaṃdhi, pratyājāta, pratyājāti, pratyupasthāna, pratyupasthita, prabhava, prarūḍha, praroha, prarohaṇa, pravartaka, pravartana, pravartanatā, pravartita, pravṛtta, pravṛtti, pravṛddha, praveśayati, praveṣṭum, prasava, prasūta, prasūti, prasṛta, prasotṛ, praṇin, pradu-bhūta, prāpta, prarambha, prodbhūti, bhava, vhavat, bhavatva, bhāva, bhāva-ja, bhāvayitum, bhāvin, bhūta, yoni, yoni-ja, vārttā, viroha, virohaṇa, vṛtti, vyutpanna, śliṣyate, śleṣatā, saṃvartanīya, saṃvṛtta, saṃkāśa, saṃkrama, saṃjanana, saṃnipāta, samāpanna, samutpatti, samutpāda, samudaya, samudāgata, samudācāra, samudgata, samudbhava, samṛddhi, saṃpravartika, saṃbhūta, saṃbhūtatva, saṃbhūti, saṃmukhī-bhāva, sarga, sthāpayati, sthāpita, Pāli jāti; Tib. skye ba).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 ↑ 가 나 다 라 "四相(사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四相(사상)
(1) 일기사상(一期四相). 또는 과보사상(果報四相).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 ① 생은 출상(出相)이니, 5종이 있다. 초출(初出)ㆍ지종(至終)ㆍ증장(增長)ㆍ출태(出胎)ㆍ종류생(種類生). ② 노는 쇠변상(衰變相)이니, 4종이 있다. 염념로(念念老)ㆍ종신로(終身老)ㆍ증장로(增長老)ㆍ멸괴로(滅壞老). ③ 병은 신병(身病)과 심병(心病)이 있다. 신병이 5종. 인수(因水)ㆍ인풍(因風)ㆍ인열(因熱)ㆍ잡병(雜病)ㆍ객병(客病). 심병이 4종. 용약(踊躍)ㆍ공포(恐怖)ㆍ우수(憂愁)ㆍ우치(愚癡). ④ 사는 명진사(命盡死)ㆍ외연사(外緣死)가 있다. 명진사에 3종, 비명진 시복진(非命盡是福盡)ㆍ비복진 시명진(非福盡是命盡)ㆍ명복구진(命福俱盡). 외연사에 3종, 비분자해사(非分自害死)ㆍ횡위타사(橫爲他死)ㆍ구사(俱死). 횡위타사에 방일사(放逸死)ㆍ파계사(破戒死)ㆍ괴명근사(壞命根死)가 있다. (2) 4유위상(有爲相)이니,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 사물이 변천하는 것을 설명하는 명목으로 온갖 법의 유위(有爲)임을 표시. ① 소승 유부(有部)는 이 4상을 실재한 것이라 하여 모든 법이 생ㆍ주ㆍ이ㆍ멸함은 이 4상에 말미암은 것이라 함. ② 경부(經部)ㆍ대승부(大乘部)에서는 이 4상은 가(假)로 이름한 것이요, 실체가 없다고 하니, 곧 색(色)ㆍ심(心)의 온갖 법은 스스로 생ㆍ주ㆍ이ㆍ멸하는 변화가 있으며, 그 변화의 분위(分位)에 이름한 가법(假法)이니, 현재에 있는 위(位)를 생(生), 생의 위(位)에 잠깐 머무는 위를 주(住), 주하는 것이 앞 뒤가 다른 것을 이(異), 아무 것도 없는 데 돌아간 위(位)를 멸(滅)이라 이름. (3) 아인사상(我人四相)이니, ① 아상(我相). 5온(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我)가 있다고 하고, 또 아(我)의 소유(所有)라고 집착하는 소견. ② 인상(人相). 아(我)는 인간이어서 축생취(畜生趣) 등과 다르다고 집착하는 소견. ③ 중생상(衆生相) 아(我)는 5온법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라고 집착하는 소견. ④ 수자상(壽者相). 아(我)는 일정한 기간의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 (4) 지경사상(智境四相)이니, 아(我)ㆍ인(人)ㆍ중생(衆生)ㆍ수명(壽命). 중생이 깨달은 경계에 대하여 잘못 알아 집착하는 것. ① 아상. 오(悟)를 집착하여 아(我)라 하는 것. ② 인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데 집착하여 아(我)가 오(悟)하였다는 마음이 있는 것. ③ 중생상. 아상ㆍ인상을 여의었으면서도 오(悟)의 상(相)에 집착하는 것. ④ 수명상. 중생상의 위에 한 걸음 나아간 것이나, 아직도 능각(能覺)의 지혜를 갖는 것. ⇒사상(死相) - ↑ 가 나 다 라 "사상[四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사상[四相]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의 네 가지 모습.
(1) 생상(生相). 여러 인연이 모여 생기는 모습.
(2) 주상(住相). 머무는 모습.
(3) 이상(異相). 변해 가는 모습.
(4) 멸상(滅相). 인연이 흩어져 소멸하는 모습. - ↑ 가 나 다 라 "四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四相
(一)指顯示諸法生滅變遷之生、住、異、滅等四相。又作四有為、四有為相、四本相。屬心不相應行法。
(1)小乘說一切有部之說:據發智論卷二、大毘娑沙論卷三十八、卷三十九、俱舍論卷五等載,一切有為法均為無常,雖由於因緣力,從未來位生至現在位,然瞬間即滅,而成為過去位。此種成為過去位之現象,稱為落謝、謝滅。此生滅變遷之有為法,流轉於未來、現在、過去等三世中。
①生(梵 jāti),又作生相,即有為法從未來位生至現在位。②住(梵 sthiti),又作住相,即有為法安住於現在位。③異(梵 anyathātva),又作異相,即有為法於現在位變異、衰損。④滅(梵 anityatā),又作滅相,即有為法從現在位滅轉至過去位。然增一阿含經卷十二、出曜經卷一等,則僅說生、老、死等三有為相。
一切有為法皆具上記之四相,而此四相之自體亦為有為法,故須另有令其生、住、異、滅之法,即生生、住住、異異、滅滅四者,稱為隨相、小相。相對於此,生、住、異、滅則稱本相、大相。蓋有為法之生成,必須具有九法,即法之自體,及四本相、四隨相,此九法同時俱起,缺一不可。其中,四本相之作用,各涉於除本身外之八法;而四隨相之作用,則僅及於各個之本相一法,稱為八一有能、八一功能。此作用交互相續而永無差誤。
有部主張剎那生滅,故四相於一剎那間俱有,亦即六因、四緣之因緣和合時,當生起生相乃至滅相。然大毘婆沙論卷三十八,就上記之四相而稱為剎那有為相、細有為相、勝義諦有為相;反之,就一期相續有為相,稱為分位有為相、粗有為相、世俗諦有為相,即指人初生之生相、少壯之住相、諸根衰損之老相、死時之死相。又北本涅槃經卷十二,以生、老、病、死四苦,稱為一期四相、粗四相。〔法華經卷一序品、順正理論卷十三、阿毘達磨顯宗記卷七〕
(2)小乘經部之說:據大毘婆沙論卷三十八、卷三十九、俱舍論卷五等載,經部就諸法之相續而假立四相,故主張四相假立,否定有部之過未有體、四相實有說,並駁斥於生相之外,藉因緣而生起諸法之說,謂諸法之生起非僅藉因緣力。
(3)小乘其餘諸部之說:據大毘婆沙論卷三十八載,譬喻者謂四相假立;分別論者謂四相無為;法密部以生、住、異等前三相謂有為,以滅相謂無為;相似相續沙門謂色之四相為色,心之四相為心;正量部則以色法為一期相續,聲、香、味、觸等心、心所法為剎那生滅;法上部、賢冑部、犢子部、密林山部等說法與正量部相同,惟其內容不詳。〔異部宗輪論、成唯識論卷七、成實論卷七不相應行品、二十唯識述記卷上、卷下〕
(4)大乘法相宗之說:據瑜伽師地論卷四十六、卷五十一、卷八十八、成唯識論卷二等記載,法相宗亦主張「四相假立,過未無體」。就剎那而言,有為法依因緣之力,由本無而今有,乃屬暫有還無者,為表示異於無為而假立四相。以本無今有,故稱有位為「生」,暫停於生位即稱「住」,住位前後之變異即稱「異」,以暫有還無,故稱滅時為「滅」。其中,生、住、異三者為「有」,同屬現在;滅為「無」,則屬過去。就一期分位而言,初有,稱為生;後無,稱為滅;已生而相似相續,稱為住;住之相續轉變,稱為異。又無論剎那或一期,皆以前三相為現在,滅相為過去,然有部主張未來有體,遂以生相為未來,滅相為現在。
(5)三論宗之說:僅立生、住、滅 三相。謂萬物皆各有其有為相。〔十二門論觀相門〕
(6)大乘起信論卷中之說:為顯示始覺還滅之分齊,而將不覺流轉門之順序寄與四相。即於三細六粗之九相中,以業相寄與生相,以見相、境相、智相、相續相寄與住相,以執取相、計名字相寄與異相,以起業相寄與滅相,依此而顯示其粗細之相。
(7)釋摩訶衍論卷三之說:①生相,根本無明薰染本覺時所生起之獨力業相、獨力隨相、俱合動相等三種細相稱為生相。②住相,生相所具三相之住位稱為住相,有轉相、現相、智相、相續相等四種。③異相,次於住相而起,其行相稍鈍而生起我執,散動身、口之業,有執取相、計名字相。④滅相,次於異相而起,行相最粗,能造諸業而受苦果,有起業相、業繫苦相。
此外,中觀學派則以不生不滅總破一切法,認為所謂生滅者,均係虛妄分別,為戲論之產物。(參閱「有為」3067 )
(二)對有為法之四種觀相。(1)自性相,觀有為法其自性之相,對境如翳,能見如星,識體如燈,皆瞬息幻滅。(2)著所住味相,對所依住之器世間味著之相,此為顛倒之見著於顛倒之境,故觀其如幻。(3)隨順過失相,隨順無常身、苦受等過失之相,故觀其畢竟如朝露、如水泡。(4)隨順出離相,觀過去、現在、未來三世無所有,如夢、如電、如雲,而隨順無我之出離道。〔金剛般若論卷下、金剛經疏論纂卷下、金剛經纂要刊定記卷七〕
(三)指鳩摩羅什譯金剛般若波羅蜜經所說,眾生對個體心身所錯執之四種相。又作四見、我人四相、識境四相。即:(1)我相,謂眾生於五蘊法中,妄計我、我所為實有。(2)人相,謂眾生於五蘊法中,妄計我生於人道為人,而異於其餘諸道。(3)眾生相,謂眾生於五蘊法中,妄計我依色、受、想、行、識五蘊和合而生。(4)壽者相,謂眾生於五蘊法中,妄計我受一期(從生至死)之壽命,長短不一,因人而異。p2239 - ↑ 가 나 다 라 "四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四相
Basic Meaning: four marks
Senses:
The four marks of existent phenomena are: arising 生, abiding 住, changing 異, and ceasing 滅 (Skt. catur-ākāra, catvāri lakṣaṇāni, catur-lakṣaṇin, caturbhir ākāraiḥ; Tib. rnam pa bzhi po). Also called 四有爲相. 〔倶舍論〕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Hirakawa, Yokoi, YBh-Ind, JEBD]
Four contemplations of the truth of suffering 苦諦: suffering 苦, emptiness 空, impermanence 無常, and no-self 非我. 〔倶舍論〕 [Charles Muller]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生老病死). [Charles Muller]
The four marks of the Dharma 四法印. [Charles Muller]
Also 藏識四相 of the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referring to the initiation, continuation, change, and cessation of the ālaya-vijñāna. T 1666.32.576c3.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Also the four conceptions of personhood taught in the Diamond Sutra and the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我人四相, also known as the four aspects of cognition and objects 智境四相.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5║生
T31n1602_p0484b16║者。謂諸行自相發起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생(生)186)이란 모든 유위법[行]의 자상이 일어나는 성품을 말한다.
186) 생(生, jāti)은 생기(生起)의 뜻으로서, 유위법으로 하여금 미래에서 현재로 옮기게 하는 세력을 가리킨다. - ↑ "生相(생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生相(생상)
만유의 생멸 변화를 설명하는 데 4상(相)을 말하는 중, 만유가 생기는 모양을 말함. - ↑ "생[生]",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생[生]
산스크리트어 jāti
① 생겨남. 일어남. 여러 요소들의 모임. 여러 인연이 모여 어떤 현상이 나타남.
② 태어남. 생존.
③ 태어난다는 의식. - ↑ "생상[生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생상[生相]
사상(四相)의 하나. 여러 인연이 모여 생기는 모습.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2║何等為生。
T31n1605_p0665c13║謂於眾同分諸行本無今有。假立為生。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생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의 제행에는 본래 금생의 유(有)가 없으나 임시로 세워서 생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6_p0700b21║生者。謂於眾同分諸行本。無今有性。假立為
T31n1606_p0700b22║生。問外諸色等亦有生相。何故唯舉眾同分
T31n1606_p0700b23║耶。答為於有情相續建立有為相故。所以者
T31n1606_p0700b24║何。外諸色等有為相成壞所顯。內諸行有為
T31n1606_p0700b25║相生老等所顯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생(生)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의 제행에는 본시 금생의 유(有)가 없으나 가립하여 생이라 한다.
외부의 갖가지 색 따위도 역시 생겨나는 모양이 있는데, 어째서 중동분만을 거론합니까?
유정이 상속하는 것에서 ‘유위의 모양’을 건립하려는 까닭이다. 왜냐하면 외부의 갖가지 색 따위의 유위의 모양은 그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에서 나타나 보이지만 내부적인 모든 행의 ‘유위의 모양’은 생ㆍ노 따위에서 나타나 보이기 때문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6║云何為
T31n1612_p0849c17║生?謂於眾同分中,諸行本無今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나기란 무엇인가. 이를테면 모든 지어감이 본래 없었지만 지금 있게 됨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4║云何生。謂於眾同分。所有諸行。本無今有
T31n1613_p0854b15║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무엇을 생(生)이라고 하는가?
중동분에 있어서 지닌 바의 모든 행위가 본래 없으나 현재는 있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生",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生
梵語 jāta 或 jāti,巴利語 jāti。指生起,有下列之意:
(一)十二緣起之第十一支。又作生支。指由過去之業力而正確結以當來果。據俱舍論卷九之說,此係指在未來世託胎結生之一剎那。然唯識宗作廣義之解釋,認為從「中有」至「本有」尚未老衰之間,皆為生支所攝。〔成唯識論卷六〕(參閱「十二因緣」492)
(二)四相之一。即生相。有為法從未來位生於現在位之際,此生有一催生力,其力若由實體來理解,即是生相。(參閱「四相」2239)
(三)四有之一。即生有。今生託胎受生時之剎那生存。受生者稱為結生、受生;胎生者則稱託胎、託生。(參閱「四有」2192)
(四)八計(與「八不」相對)之一。為「滅」之對稱。八計,即:生、滅、常、斷、一、異、來、去。(參閱「八不中道」409)
(五)指生存、生涯等意。即反覆生死,經過多次之生,稱為多生;現在之生存,稱為今生;過去、未來之生存,稱為他生。
(六)指眾生依受生之差異,而有各種分類。例如九類生,即指胎、卵、濕、化等四生,再加上有色、無色、有想、無想、非有想非無想等五者;而於此九者中,除去非有想非無想,再加上非有色、非無色、非有想、非無想等四者,則稱為十二類生。〔法蘊足論卷十、順正理論卷二十五、大毘婆沙論卷九、卷二十三、成唯識論卷六〕 p2605 - ↑ "生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生相
梵語 jāti,巴利語同。指令未起之有為法由未來流入現在之勝因。 亦即未來可生法的能生之因。略稱生。四相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此有為法之生相別無實法,僅依因緣力而生,以「本無今有」之有,而假名為生相。又就有情之一期相續而言,有情之始生於現在世,即稱為生相。〔大毘婆沙論卷三十九、俱舍論卷五、成唯識論卷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四相」2239) p2616 - ↑ "老",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老
Basic Meaning: old age, decay (Skt. jarā)
Senses:
one of the four basic kinds of suffering 四苦. A provisionally established dharma in Yogâcāra theory. [Charles Muller]
(Skt., jīrṇa, vṛddha; ativṛddha, jarā-jarjara, jarā-durbala, jīrṇatā, pālitya, mahalla, malallaka, *sthavira; Tib. rga b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異",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異
Basic Meaning: to differ
Senses:
To be different, unlike; to become otherwise. Another, a different one. To differentiate, to distinguish.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Non-Buddhist, strange. [Charles Muller]
Unusual, rare, inconceivable; excellent, marvelous. [Charles Muller]
To change; changing. One of the four marks of existence 四相. [Charles Muller]
An abbreviation for 異生—unenlightened sentient beings. [Charles Muller]
(Skt. anyathā-bhāva; jarā, anya, anyathā, nānātva, pṛthak, viśeṣa; atadbhāva, antara, anyatā, anyatra, anyatva, anyathātva, anyathātvatā, anyathī-bhūta, anya-bhūmika, anyonya, apara, arthântara, arthântara-bhūta, itara, itarathā, jarā, nānā, nānā-karaṇa, nānā-bhāva, nānârtha, para, paratra, paratva, pariccheda, pariṇāma, parihāra, paryāya, pṛthaktva, pṛthak-pṛthag-bhāva, pṛthag-bhūta, bhinna, bhinnaka, bhinna-jātīya, bheda, vikāra, vikāritva, vikṛti, vinibhāga-gata, vinirmukta, viparīta, viparyaya, viparyayeṇa, vipāka, vilakṣaṇa, viśiṣṭa, visaṃyoga, visadṛśa, visabhāga, vaidharmya, vyatirikta, vyatireka, saṃcāra)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 ↑ "異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異相
Basic Meaning: difference
Senses:
Differentiation, changing. One of the four stages that all existences are divided into in the course from their arising to their extinction. One of the four marks of conditioned existence 四有爲相 (Skt. bhinna-lakṣaṇa; Tib. tha dad pa'i mtshan nyid). [Charles Muller; source(s): YBh-Ind]
The appearance, or manifestation of difference. When all things are each seen individually, there are discernable differences (see 六相) (Skt. paraspara) (Laṅkâvatāra-sūtra). [Charles Muller]
The differentiated aspect 別異相. Despite the fact that both the enlightened world of pure existences and the world of defiled existences produced by ignorance have true thusness/original enlightenment as their essence, illusory distinctions are produced through the defiled mind of sentient beings. Also called 'discriminated aspect,' and 'arising and ceasing aspect' (Awakening of Faith). [Charles Muller]
The appearance of possessing characteristics (Wujiao jang). [Charles Muller]
(Skt. vilakṣaṇa, anyatva, pṛthaktva; *animitta-lakṣaṇa, anya, anyatnā, anyathātva, anyathā-bhāva, anya-rūpa, nānâkāra, nānā-karaṇa, pṛthak-pṛthag-bhāva, pṛthag-bhāva, viśeṣa, visabhāgâśaya, vihita)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 ↑ "老",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老
梵語 jarā。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色、心諸法相續變異,稱為老。生、老、住、無常稱為四相,老則相當於有部之異相。十二緣起之第十二支為老死。又生苦、老苦、病苦、死苦,稱為四苦。(參閱「十二因緣」492、「心不相應行」1819、「老死」3147)p3145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6║老者。謂諸行前後變
T31n1602_p0484b17║異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노(老)187)는 모든 행이 전후(前後)로 변하여 달라지는 성품을 말한다.
187) 노(老, jarā)는 색심(色心)의 제법(諸法)이 상속(相續) 변이(變異)하는 것을 말한다. - ↑ "異相(이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異相(이상)
[1] 물건이 나서부터 없어지기까지의 상태를 4분한 4상(相)의 하나. 물건이 변하여 달라지는 모양.
[2] 6상의 하나. 사물을 서로 대조하여 그 사이에 존재한 모양의 다른 것. 같은 형태의 눈ㆍ코 등이 있으나 아름답고 추함이 서로 다른 것. - ↑ "異",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異
梵語 jarā。為小乘有部所說心不相應行法之一,四相之一。指事物之變異衰敗。〔俱舍論卷五〕(參閱「四相」2239)p6481 - ↑ "이상[異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이상[異相]
① 육상(六相)의 하나. 여러 모습이 서로 어울려 전체를 이루면서도 잃지 않고 있는 각각의 모습.
② 사상(四相)의 하나. 여러 인연으로 생겨 변해 가는 모습.
③ 중생의 마음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차별 현상.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3║何等
T31n1605_p0665c14║為老。謂於眾同分諸行相續變異。假立為老。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노 불상응행법이라고 합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늙는 것[老]이라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7║云
T31n1612_p0849c18║何為老?謂即如是諸行相續變異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늙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변하고 달라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06_p0700b25║老者。謂於眾同分諸行相
T31n1606_p0700b26║續變異性。假立為老。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노(老)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모든 행의 상속이 변이하는 것을 가립하여 늙는 것이라 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6║云何老。謂彼諸行相續。變壞為性。
무엇을 노(老)라고 하는가?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변하고 깨어지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異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7일에 확인:
異相
(一)四相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異,衰變之義。即令一切有為諸法變易衰敗之法。此法非色非心,為不相應行蘊所攝。然俱舍論謂其為實法,唯識論等則以之為分位假立之法。(參閱「四相」2239)
(二)為「一相」之對稱。一切法其自性差別,非唯一元之義。一切法異為外道毘世師論師之說。中論「八不」中之「非異」,即破斥此說。〔外道小乘四宗論〕(參閱「一相」86、「八不中道」409)
(三)六相之一。為「同相」之對稱。異,差別、差異之義。指一切諸法各各相異之狀態。如瓦、石、柱、椽、樑等形狀各異,為異相;又瓦、石、柱、椽、樑等和合成屋舍,乃合力而不相背,故稱同相。(參閱「六相圓融」1670)p6486 - ↑ "住",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住
Basic Meaning: to abide
Senses:
To stay, stop (Skt. viharati, layana); abide (Skt. upasthita, tisthati); settle.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The act of standing, standing firmly, being fixed or stationary. Standing as one of the four postures 四威儀 (Skt. sthāna). [Charles Muller, Robert Buswell; source(s): monier-williams]
To live, reside, inhabit; exist (Skt. pravrtti). [Charles Muller]
To live peaceably. [Charles Muller]
To linger, or dwell on some object; to attach to; thus, attachment. To fix (Skt. pratiṣṭhita) the mind (citta) on a sensory object; e.g., "to fix the mind on a visual object" (住色生心; Skt. rūpapratiṣṭhitaṃ cittam).This usage appears in one of the most famous lines in Buddhist literature (from the Diamond Sutra): 應無所住而生其心 "They should generate states of mind that are not fixed on anything" . 應無所住而生其心 〔T 237.8.763b1〕 "For this reason, Subhūti, all bodhisattva-mahāsattvas should in this wise generate pure states of mind. They should not generate states of mind that are fixed on visual objects. They should not generate states of mind that are fixed on auditory, olfactory, gustatory, tactile, or mental objects. They should generate states of mind that are not fixed on anything." (cf. Skt: tasmāt tarhi subhūte bodhisatvena evaṃ cittam utpādayitavyaṃ apratiṣṭhitaṃ | na rūpapratiṣṭhitaṃ cittam utpādayitavyaṃ | na śabdagandharasaspraṣṭavyadharmapratiṣṭhitaṃ cittam utpādayitavyam; Vaj San MS 36b2-37a3, HW 120, 8–15) [Robert Buswell]
Continuation; continued existence, continuance in the same state. As the principle of continuity 住相, one of the three (or four) marks of conditioned existence 四相. [Charles Muller]
To stay in a womb (Skt. sthiti). [Charles Muller]
Continued existence (of the universe). [Charles Muller]
The ten abodes 十住 of the 52 stage path of the bodhisattva. [Charles Muller]
One of the conditioned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Charles Muller]
Eternal abiding. [Charles Muller]
In Chan language, it is often combined with a verb to strengthen the verbʼs meaning. [Charles Muller]
(Skt. atinâmayati, adhiṣṭhāna, adhyuṣita, anugata, anuṣṭhāna, abhirūḍha, avatāraṇa, avasāyitva, avasthā, avasthāna, avasthita, avasthiti, asyām, ākramaṇa, āpanna, āpti, ālaya, āvāsa, āśrayatva, āsthāna, āsthita, utthita, upastambha, upasthāna, upâdinna, kṣiti, kṣipta, tiṣṭhat, tiṣṭhantidhriyanteyāpayanti, dhāraṇa, dhriyate, niketa, nilaya, nivāsa, nivāsin, niśraya, niśrita, paviṣṭa, pratipanna, pratiṣṭha, pratiṣṭhā, pratiṣṭhāna, pratiṣṭhāpana, pratiṣṭhāpayati, pratiṣṭhāpayitavya, pratiṣṭhitatva, pratyupasthāna, pratyupasthita, pravartaka, praviṣṭa, prasthita, babhūva, bhūta, bhūmi, yāpayati, vartamāna, vasana, vāsa, vāsin, vāsya, visaṃsthita, viharat, vihartavya, vihāra, vihāritva, vihārin, vṛttin, veṣṭita, vyavasthā, vyavasthāpita, vyavasthita, saṃvasana, saṃvāsa, saṃvāsayati, saṃvāsika, saṃvāsin, saṃveṣita, saṃstha, saṃsthāna, saṃsthita, sakta, sad-bhāva, saṃniviṣṭa, saṃniveśa, saṃniśrita, samādhi, samāpanna, samārūḍha, samāropita, samāśrita, sahatiṣṭhati, sthatā, sthātavya, sthāpayati, sthāpita, sthāyin, sthāvara, sthita, sthitatva, sthitika, sthitikatā, sthititā, sthiti-saṃjñaka, sthira, sthirī-karaṇa;Tib. gnas pa, 'chog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7║住者。謂諸行生時相續不斷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주(住)188)는 모든 행이 생기(生起)할 때 상속하여 단멸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188) 주(住, vivartasthāyin)는 안주(安住)의 뜻이다. 아직 변괴(變壞)가 시작되지 않은 단계이다. - ↑ "住相(주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住相(주상)
현상계(現相界)의 생멸 변화하는 모양을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4종의 순서로 나눈 중, 만유가 머물러 있는 상을 말한다. - ↑ "주[住]",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주[住]
① 머무름.
② 존재함. 늘 존재함.
③ 집착함. 얽매임.
④ 고정적인 상태. 변하지 않음.
⑤ 선어록(禪語錄)에서, 동사 뒤에 붙어 그 뜻을 강하게 함. - ↑ "주상[住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주상[住相]
사상(四相)의 하나. 여러 인연으로 생겨 머무는 모습.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5║何等為住。謂於眾同分諸行相續不變壞。假
T31n1605_p0665c16║立為住。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주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파괴되지 않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머무는 것[住]이라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8║云何
T31n1612_p0849c19║為住?謂即如是諸行相續隨轉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머묾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수시로 유전해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6_p0700b26║住者。謂於眾同分諸行
T31n1606_p0700b27║相續不變壞性。假立為住。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주(住)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모든 행의 상속이 변하여 소멸되지 않는 것을 가립하여 머무는 것이라 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7║云何住。謂彼諸行相續。隨轉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무엇을 주(住)라고 하는가?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따라서 전변하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住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住相
為四相之一。住,梵語 sthiti。為說一切有部及法相宗心不相應行法之一。有為法於生滅之間相續不斷,使法體於現在暫時安住而各行自果者,稱為住相。〔俱舍論卷五〕(參閱「四相」2239)p3267 - ↑ "無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無常
梵語 anitya,或 anityatā,巴利語 anicca。音譯阿儞怛也。為「常住」之對稱。即謂一切有為法生滅遷流而不常住。一切有為法皆由因緣而生,依生、住、異、滅四相,於剎那間生滅,而為本無今有、今有後無,故總稱無常。據大智度論卷四十三舉出二種無常,即:(1)念念無常,指一切有為法之剎那生滅。(2)相續無常,指相續之法壞滅,如人壽命盡時則死滅。另據辯中邊論卷中所舉,就遍、依、圓三性而有無性無常、生滅無常、垢淨無常之別。即:(1)遍計所執性,其體全無,稱無性無常、無物無常。(2)依他起性,依他緣生之諸法有生滅起盡,稱生滅無常、起盡無常。(3)圓成實性,其位乃由垢轉變成淨,故稱垢盡無常、有垢無垢無常。上述之說,不僅以緣生有為之諸法為無常,且認為圓成實性之法亦含有轉變無常之義。又據顯揚聖教論卷十四成無常品,舉出無性無常、失壞無常、轉異無常、別離無常、得無常、當有無常等六種;另舉出剎那門、相續門、病門、老門、死門、心門、器門、受用門等八種無常。又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六則明示十二種無常之相,即:非有相、壞滅相、變異相、別離相、現前相、法爾相、剎那相、相續相、病等相、種種心行轉相、資產興衰相、器世成壞相。另入楞伽經卷七無常品中載有外道之八種無常。
此外,觀世相之無常,稱無常觀、非常觀;說明無常旨趣之偈頌,稱無常偈;安置病僧之堂院,稱無常院、無常堂、延壽堂。〔雜阿含經卷一、卷十、卷四十七、北本大般涅槃經卷十四、法句經卷上、維摩經卷上、大智度論卷十九、卷二十三、瑜伽師地論卷十八、成唯識論卷八〕(參閱「常無常」5705)p6433 - ↑ "無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無常
Basic Meaning: impermanent; impermanence
Senses:
The fact that all things are impermanent is one of the basic premises of Buddhism; the first of the 三明 trividyā; that all things are impermanent, their birth, existence, change, and death never resting for a moment. Everything is in constant motion and change. The antonym of 常住. In Yogâcāra, one of the mental factors not directly associated with a particular function 心不相應行法 (Skt. anitya; anityatā, anityatva; Pāli anicca; Tib. mi rtag pa). [Charles Muller; source(s): Ui, JEBD, Nakamura, Iwanami]
The Dazhidu lun 大智度論 teaches the two kinds of impermanence of momentary 刹那無常 (念念無常) and continuous 相續無常. The former refers to the production and cessation 生滅 that occurs each instant, which the latter indicates change that happens over a period of time, such as the ending of a lifespan, the dying of plants, the evaporation of water, and so forth, seen as occurring through the four phases 四相 of arising 生, abiding 住, changing 異, and ceasing 滅. [Charles Muller; source(s): Iwanami]
Impermanence as one of the sixteen defining activities of the truths 十六行相; also written 非常.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Death,' as in the common phrase 無常迅速. 〔修心訣, T 2020.48.1009a24〕 The death of human beings. To die of illness 病没. 〔法顯傳; 祖堂集〕 [Robert Buswell; source(s): Nakamura]
(Skt. adhruva, anitya-saṃjñā, aśāśvata, aśāśvatatā, kāla-gata, kṣaṇika, calâtmaka, *cyuta, nanityam, bhedanâtmaka, vikṛti, vināśa, vipatti, vyaya, sarvamanityam; Tib. mi rtag pa'i rnam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滅",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
Basic Meaning: to annihilate
Senses:
To finish, end, cease, wipe out, negate, extinguish, exterminate, destroy; cessation, disappearance (Skt. nivṛtti, nirodha; Tib. 'gog pa). The extirpation of afflictions 滅障. The fourth of the four marks of existence 四相. In Buddhism, this term commonly refers to the cessation of afflictions—thus, nirvāṇa 涅槃.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YBh-Ind, Hirakawa, Nakamura, Iwanami]
The noble truth of cessation 滅諦. [Charles Muller; source(s): Iwanami]
The meditative concentration of total cessation of mental activity 滅定. [Charles Muller; source(s): Iwanami]
A view of the universe as being ultimately nothingness 無—nihilism 斷見. [Charles Muller]
(Skt. kṣaya, prahāṇa, bhaṅga, vināśa, vyaya, śama; atīta, atyaya, anityatā, anta-kara, antar-dhāna, antar-hita, apakarṣa, apakarṣaṇa, apagama, apaghātaka, apaha, apracāra, apravṛtti, apradubbūta, *apra-durbhūta, abhāva, abhighātaka, abhy-ud-dhṛ, asta-gama, astaṃ-gata, astaṃ-gama, astaṃ-gamana, astam-ita, astaṃprayātam, uccheda, upaghāta, uparata, uparati, uparama, uparamatva, upaśama, upaśamayati, kṣapaṇa, kṣapayati, kṣit, kṣīṇa, kṣepa, gata, ghātin, cyuta, chinna, cheda, jaya, dhvasta, dhvasyate, naṣṭa, nāśa, nāśana, nāśita, niruddha, nirudhyamāna, nirodha-gāmin, nirodha-jñāna, nirodha-dhātu, nirodhayati, nirodha-satya, nirodhika, nirodhita, nirghāta, nirvāpaka, nirvāpaṇa, nirvāpayitṛ, nirvṛta, nirvṛtti, niśānta, niṣkarṣaṇa, parikṣaya, parinirvāṇa, parinirvāyāt, parinirvāyin, parinirvṛta, paribhraṣṭa, parihartavya, parihāṇi, parihīyate, paryavarodha, paryādāna, paryādīyate, praṇāśa, pratiṣiddha, pratiṣedha, pradhvaṃsin, pradhvasta, pramathana-śamana, pramardaka, pramardana, pralaya, *pralayaṃyāti, pralopa, praśamana, praśamayati, prasama, prahāṇâvāhana, prahātavya, prahīṇa, bhagna, bhagna-villīna, bhaṅgura, bhittvā, maraṇa, mardita, mukta, mṛtyu, lumbinī, vikiraṇa, vigama, vidhamaka, vidhamanatā, vinaṣṭa, vināśayati, vināśin, vinipāta, vinivartana, vinivṛtti, vinodana, vipralopa, vibhaṅga, vibhava, vimātha-kara, virahita, vilīna, vilopa, viṣkambhaṇa, visaṃyoga, vihāni, vihāya, vihita, vihīna, vihīyate, vaināśa, vaināśika, vyāvṛta, vyāvṛtta, vyāvṛtti, vyucchitti, vyuparama, vyupaśama, vyupaśamatā, vyupaśamayati, vyupaśānta, śamatha, śānti, śāntitva, saṃkṣaya, samucchinna, samuccheda, samudghāta, saṃpramathana, hata, hantṛ, hāna, hāni, hiṃsyatī, heya; Pāli nirodha, nibbāna; Tib. 'gog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滅",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
(一)梵語 vyupaśama。寂滅之略稱。即涅槃之意。度脫生死,進入寂靜無為之境地,稱為入滅。(參閱「涅槃」5257、「寂滅」5647)
(二)梵語 anityatā。滅盡之意。又作滅相、無常。為四相之一。謂有為之諸法,皆具有剎那間壞滅之性質。又有情之死,亦稱為滅。(參閱「無常」6433)
(三)梵語 vinaya 之意譯。音譯作毘奈耶。意即律藏、毘尼藏。為經律論三藏之一。乃佛所制有關比丘、比丘尼之禁戒。(參閱「毘奈耶藏」4863)
(四)四諦之一。滅諦(梵 nirodha-satya)之略稱。(參閱「四諦」2356、「滅諦」6932)p6929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2_p0484b17║無常者。
T31n1602_p0484b18║謂諸行自相生後滅壞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무상(無常)189)은 모든 행의 자상이 생기한 후에 소멸하고 파괴되는 성품을 말한다.
189) 무상(無常, anitya)은 색(色)ㆍ심(心)의 모든 현상이 한 순간에도 생멸 변화해서 상주하는 모습이 없는 것을 말한다. - ↑ "滅(멸)",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멸)
(1) 유위법(有爲法)이 없어지는 것. 여기에 잠시멸(暫時滅)ㆍ구경멸(究竟滅)의 2종이 있다. (2) 멸상(滅相). (3) 멸제(滅諦). (4) 열반(涅槃). - ↑ "멸[滅]",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멸[滅]
① 사라져 없어짐. 흩어짐. 여러 인연이 모여 생겼다가 그 인연이 흩어져 없어짐.
②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남김없이 소멸된 열반의 경지.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③ 계율(戒律), 곧 산스크리트어 vinaya의 번역. 계율은 모든 악을 소멸시키므로 이와 같이 번역함.
④ 죽음. - ↑ "멸상[滅相]",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멸상[滅相]
사상(四相)의 하나. 여러 인연이 모여 생겼다가 그 인연이 흩어져 소멸하는 모습.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5_p0665c16║何等無常。謂於眾同分諸行相續變
T31n1605_p0665c17║壞。假立無常。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 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제행이 상속하여 변하여 없어지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무상이라 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12_p0849c19║云何無
T31n1612_p0849c20║常?謂即如是諸行相續謝滅為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덧없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곧 이러한 모든 지어감이 서로 계속하여 없어져감으로 그 성품이 되는 것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06_p0700b27║無常者。謂於眾同
T31n1606_p0700b28║分諸行相續變壞性。假立無常相續。變壞者。
T31n1606_p0700b29║謂捨壽時當知此中依相續位建立生等。不
T31n1606_p0700c01║依剎那。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무상(無常)불상응행법’입니까?
중동분에서 모든 행의 상속이 변이하는 것을 가립하여 무상이라 한다.
【釋】‘변이한다는 것’이란 수명을 마치는 때를 가리키는 것이니, 여기에서 그 상속하는 지위에 의거하여 생 따위를 건립하는 것이지 찰나(刹那)에 의거하지 않는 것임을 숙지해야 한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T31n1613_p0854b18║云何無常。謂彼諸行相續。謝滅為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무엇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는가?
저 모든 행위가 상속하여 없어지는 것을 성질로 한다. - ↑ "滅相(멸상)",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相(멸상)
4상(相)의 하나. 여러 가지로 생멸 변화하는 물(物)ㆍ심(心) 제법(諸法)에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4종 현상이 있는 가운데서, 현재의 상태가 쇠하여 없어져서 과거로 돌아가는 모양. - ↑ "滅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相
四有為相之一。又作滅盡、無常。謂有為諸法於剎那之間壞滅而入於過去之相。又為真如三相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真如寂滅,無分段、變易二種之生死,稱為滅相。法華經卷三藥草喻品(大九‧一九中):「如來說法,一相一味,所謂解脫相、離相、滅相。」此外,有情之死,亦稱為滅。據成實論卷七不相應行品之說,於有情之一期相續上,認其生、住、異、滅之別,其死曰滅。〔增一阿含經卷十二、大毘婆沙論卷三十八、入阿毘達磨論卷下〕p6929 - ↑ "滅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8일에 확인:
滅相
Basic Meaning: to mark of extinction
Senses:
Extinction, as when the present passes into the past. One of the four marks 四相 of conditioned existence (Skt. niruddha-lakṣaṇa, nirodha-dharmin, anityatā, *kṣaya-dharman, *nirodha-lakṣaṇa, *vyaya-lakṣaṇa). 〔起信論 T 1666.32.576c8〕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The absolute, unconditioned aspect of bhūtatathatā.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 ↑ 가 나 "流轉",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流轉
Basic Meaning: continuity
Senses:
Deluded transmigration through life and death. Synonymous with 輪廻. The continuity, through delusion, of rebirth in the six destinies 六道 (Skt. saṃsāra; saṃsṛti; Tib. 'khor ba). The Chinese term 流轉 can be seen in use from the time of the History of the Latter Han 後漢書 in the Zhangjian zhuan 張儉傳.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JEBD, YBh-Ind, Iwanami]
Continuous arising [of the store consciousness] (Skt. pravṛtta, pravṛtti). The ability of conditioned dharmas to continue in the action of cause and effect without stopping. One of the conditioned dharma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theory (Skt. anupravṛtti, anuvādin, saṃsarat, saṃkrānti, saraṇa, srotas, srotobhiḥpravṛttiḥ; Tib. 'jug pa).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1║流轉者。謂諸行因果相續不斷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유전(流轉)193)은 모든 행의 원인ㆍ결과가 상속하여 단멸되지 않는 성품을 말한다.
193) 유전(流轉, pravṛtti)은 표류(漂流)하여 전전(展轉)함이란 뜻이다. 생사가 단절되지 않고 3계(界) 6도(道)를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을 말한다. - ↑ "流轉(유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流轉(유전)
유(流)는 상속, 전(轉)은 헤매는 것. 우리들이 3계(界) 6도(度)에 태어나고 태어나서 그치지 않음. - ↑ "유전[流轉]",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유전[流轉]
번뇌 때문에 괴로운 생존을 되풀이하면서 떠돎. - ↑ "流轉",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流轉
梵語 pravṛtti。漂流、輾轉之意。為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即生死相續不斷,而輾轉於三界、六道之輪迴。對此,如從迷界,而進入涅槃,即稱還滅。屬流轉者,稱為流轉門;屬還滅者,稱為還滅門。四諦中之苦諦與集諦,或十二緣起之順觀(觀十二支緣起從無明乃至老死)屬流轉門。而四諦中之滅諦與道諦,以及十二緣起之逆觀(觀十二支緣起從老死至無明),則屬還滅門。
又唯識宗謂,由善惡之業而生死相續不斷,稱為染污清淨流轉;有為法之剎那生滅相續不斷,稱剎那輾轉流轉;有情之一期相續生滅轉變,稱生輾轉流轉,又作生身輾轉流轉。〔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六,顯揚聖教論卷一、卷十四〕p4884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2║何等流轉。謂於
T31n1605_p0665c23║因果相續不斷。假立流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유전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유전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6_p0700c17║流轉者。謂於因果相續不斷。假立流轉。所以
T31n1606_p0700c18║唯於相續不斷立流轉者。於一剎那或於間
T31n1606_p0700c19║斷。無此言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유전(流轉)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 것을 가립하여 유전이라 한다. 그리하여 오직 상속이 끊어지지 않는 것에서 유전을 건립하는 것이지 찰라나 또는 간단(間斷)이 있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 ↑ 가 나 "定異",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定異
Basic Meaning: distinction of good and evil (causes)
Senses:
One of the 24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explained in Yogâcāra. The principle that the causes and effects of good and evil are different from each other, and are not confused. A provisional element (Skt. pratiniyama, niyama; Tib. so sor nges pa). 〔成唯識論 T 1585.31.3c19〕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Hirakawa, YBh-Ind] - ↑ "정이[定異]",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정이[定異]
제각기 정해진 인과(因果)에 따라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차별성.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3║何等定異。謂於因
T31n1605_p0665c24║果種種差別。假立定異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정이(定異)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의 갖가지 차별을 임시로 세워서 정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6_p0700c20║定異者。謂於因果種種差別假立定異。因果
T31n1606_p0700c21║種種差別者。謂可愛果妙行為因。不可愛果
T31n1606_p0700c22║惡行為因。諸如是等種種因果展轉差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정이(定異)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의 갖가지 차별을 가립하여 정이라 한다.
【釋】‘정이’란 인과의 갖가지 차별을 말하는 것으로, 가애과(可愛果)는 묘행(妙行)이 원인이 되고, 불가애과(不可愛果)는 악행(惡行)이 원인이 되는, 이와 같은 갖가지 인과가 전전(展轉)하는 차별이다. - ↑ "定異",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定異
梵語 pratiniyama。為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百法之一。定,指決定;異,指差別。謂一切事物之善惡因果各有差別而互不混亂之意。唯識宗將一切諸法分成五大類,稱為五位,其中第四類為「不相應行法」,即既不屬色法、心法,亦非無為法,然與色、心、無為法等均有關係之法,共有二十四種,故稱二十四不相應行法,皆為諸法中之假設名目。二十四法中之第十五、第十六、第十七等三法係針對諸法之因果關係而假立之名,即:(1)第十五法,針對諸法因果之「相續性」而假立「流轉」之法,即諸法之因果具有相續不斷之性質。(2)第十六法,針對諸法因果之「別異性」而立「定異」之法,即諸法之善因與惡因、善果與惡果,既已決定因果性質,即展現其互有差別而不相混亂之關係。(3)第十七法,針對諸法因果之「相稱性」而立「相應」之法,即諸法之因果報應有其善惡相應之關係。
瑜伽師地論卷五十二進一步舉出五種定異之差別,即:(1)流轉還滅之定異,如順逆之緣起法即屬之。(2)一切法之定異,謂一切法攝於「十二處」而無有超過、增多者。(3)領受之定異,謂一切法為「三受」所攝而無有超過、增多者。(4)住之定異,謂一切之壽量或劫期等皆有其差異而決定之性質。(5)形量之定異,如一切有情眾生之生身形體、生處,乃至於所依存之器世間、四大洲等,皆各有定異之性。〔顯揚聖教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心不相應行」1819)p3996 - ↑ "相應",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相應
Basic Meaning: association
Senses:
To be associated with; to be concomitant with; combination; to be bound together, existent together. Binding, bound relationship, relationship (Skt. yukti; Tib. 'byor ba). [Charles Muller; source(s): Ui,Stephen Hodge, JEBD, Nakamura, Iwanami]
The concomitance of mind with mental functions. In Abhidharma and Yogâcāra saṃprāyoga (saṃprayukta, saṃyukta) refers to the close connection of conscious functions with other mental factors, wherein the various mental factors are more closely united with consciousness than the elements of matter with one another. This close connection means that the mental elements are the satellites of consciousness. They appear and disappear together; they are produced by the same causes, and have the same moral aspect; and they envelop consciousness, but do not enter into it. [Charles Muller; source(s): JEBD]
Those things which are grouped together under the main topic of a teaching (Skt. anvita, saṃbandha). Accordance, response; in tandem with; together; in synergy with; depending on each other; to be directly associated with. [Charles Muller]
To accompany; to be involved in. [Charles Muller]
Accordance with true principle (Skt. yoga). [Charles Muller]
In the Awakening of Faith, 'association' with certain phenomena means that the mind is aware of their existence as separate objects. See 六染心. [Charles Muller]
Response, correspond, tally, agreement, yukta, or yoga, interpreted by 契合 union of the tallies, one agreeing or uniting with the other.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kt. saṃyoga, yujyate, samanvāgata; anubandha, anurūpa, anuśliṣṭa, anuṣaṅga, abhiyoga, abhisaṃbadhyate, abhisaṃbandha, avacara, aviprayukta, asaṃbhinna, āpta, āyukta, ārabhya, itivartate, upanibaddha, upanibandha, upasaṃhita, upâdāya, paryavasthānīya, paryāpanna, pratirūpa, pratisaṃyukta, prayukta, prāyoga, prasaṅga, bhajana, mela, yathā-yogam, yukta, yukta-yogitā, yuga, yutatva, Yogâcāra, yogârtha, yogin, yogya, viyogā, vihita, saṃyuta, saṃsarga, saṃsṛṣṭa, saṃgṛhīta, saṃdhi, sabhāga, samsṅgin, samanvāgama, samanvita, samāyukta, samūla, saṃpanna, saṃprayuktaka, saṃprayuktaka-hetu, saṃprayuktādharmāḥ, saṃprayujyate, saṃprāyogatas, saṃprāyogin, saṃbaddha, saṃbadhyate, saṃbandhin, sasaṃprāyoga, saha-gata, saha-bhāva, saha-bhū, saha-vartin, sahita, sāṃbandhika, sāhacarya; Pāli sampayutta; Tib. 'byor 'grel)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相應(상응)",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相應(상응)
서로 응함. 곧 계합(契合)의 뜻. 범어에는 사(事)에 계합하는 것과 이(理)에 계합하는 두 가지로 나누어 앞의 것을 욕흘다(欲吃多, yukta), 뒤의 것을 유가(瑜伽, yoga)라 함. - ↑ "상응[相應]",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상응[相應]
① 팔리어 saṃyutta 가르침의 내용을 주제에 따라 분류하여 배열한 것.
② 산스크리트어 saṃprayukta 산스크리트어 saṃprayoga 서로 화합함. 동반함. 수반함. 함께함. 결합함. 관계함. 일치함. 잇따름.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2║相應者。謂諸行因果
T31n1602_p0484b23║相稱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상응(相應)195)은 모든 행의 원인ㆍ결과가 서로 칭합(稱合)하는 성품을 말한다.
195) 상응(相應, samprayukta)에서 상응이란 평등하게 화합한다는 뜻으로서, 법과 법이 서로 화합해서 떨어지지 않는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특히 심왕과 심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4║何等相應。謂於因果
T31n1605_p0665c25║相稱。假立相應。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상응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서로 대칭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상응이라 한다.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6_p0700c22║相
T31n1606_p0700c23║應者。謂於因果相稱假立相應。因果相稱者。
T31n1606_p0700c24║雖復異類因果相順亦名相稱。由如布施感
T31n1606_p0700c25║富財等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상응(相應)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서로 대칭되는 것을 가립하여 상응이라 한다.
【釋】‘인과가 서로 대칭된다는 것’이란 비록 그 종류가 다른 인과 과가 서로 순응하는 것도 서로 대칭한다고 이름한다. 예를 들어 보시 따위에 연유해서 부유해지는 것과도 같다. - ↑ "相應",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相應
梵語 samprayukta,巴利語 sampayutta。相等和合之意。即指法與法相互間有和合不離之關係,特別指心與心所間之關係而言,六因中之相應因即屬此。俱舍論卷六謂,所依、所緣、行相、時及事等五義平等,稱為相應。
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五有:不相離相應、和合相應、聚集相應、俱有(同時生滅)相應、作事(同一目的)相應、同行(心與心所緣同一對象)相應等六種相應。其中之前五種主要係對色法(物質)而言。即:(1)所謂不相離相應,謂一切有方分之色與極微處互不相離,此因由諸色等極微所攝於同一處所互不相離之故。(2)所謂和合相應,謂極微以上一切有方分之色更互和合,如濁水中地水之極微更互和合。(3)所謂聚集相應,謂方分之聚色輾轉集會,如二泥團相擊成聚。(4)所謂俱有相應,謂一身中之諸蘊界處俱時流轉,同生住滅。(5)所謂作事相應,謂於一切所作之事輾轉相攝,如二比丘,隨一所作,更互相應。(6)所謂同行相應,謂心、心法於一所緣輾轉同行,其中更分如下十四種之義:①他性相應,如心不與餘心相應,受不與餘受相應。②不相違相應,如貪與瞋不相應,善與不善不相應。③同時相應,如過去、現在、未來則彼此互不相應。④同分界地相應,如欲界、色界、無色界互不相應,又如初靜慮與第二靜慮不相應。⑤有一切遍行同行相應,謂受、想、思、觸、作意及諸識,於一切位決定相應,隨無一法,餘亦無故。⑥有染污遍行同行相應,謂我癡等四煩惱與染污意,於一切時恆相應。⑦有非一切時同行相應,謂依止於心之善惡心所法隨時生起,或時起信等善法,或時起貪等煩惱法。⑧有分位同行相應,謂與苦樂等諸受與諸相應法同行。⑨有無間同行相應,謂在有心位所緣之心、心法於無間同行。⑩有有間同行相應,謂在無心位所緣之心、心法於間斷同行。⑪有外門同行相應,謂多分欲界所繫之心、心法轉外門。⑫有內門同行相應,謂諸定地所有之心、心法唯轉內門。⑬有曾習同行相應,謂異生所有之心、心法與有學無學之一分心,一向有漏,皆曾習之性。⑭有未曾習同行相應,謂出世之諸心、心法,未曾習之性。
上記總述世間與出世間一切之心、心所法,其相應現起之差別分類。此外如函與蓋一致,稱為函蓋相應;受教者(機)與教法一致,稱為機教相應。又如能觀之心與所觀之境相冥合,稱為心境相應;身口意三者平等,稱為三密相應。〔俱舍論卷四、大毘婆沙論卷十六、成實論卷三〕p4934 - ↑ "勢速",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勢速
Basic Meaning: instantaneousness
Senses:
'Rapidity.' One of the 24 conditioned dharma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theory. An element provisionally established on the rapid energy of conditioned dharmas to arise and cease without an instant of pause (Skt. jāva; Tib. 'gyogs pa). Syn. 迅疾.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3║勢速者。謂諸行流轉迅疾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세속(勢速)196)은 모든 행이 유전(流轉)함이 빠른 성품을 말한다.
196) 세속(勢速, java)은 신속이란 뜻이다. 변화 혹은 동작이 빠른 것을 말한다. - ↑ "勢速",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勢速
梵語 java。乃唯識宗所立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指變化或動作迅速。瑜伽師地論卷五十六舉出三種:(1)諸行勢速,有為法之生滅無常迅速。(2)士用勢速,人類之身、口、意三業作用迅速。(3)神通勢速,神通作用迅速。〔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瑜伽師地論卷三、顯揚聖教論卷一〕p6793 - ↑ "세속[勢速]",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세속[勢速]
신속한 변화나 활동.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5║何等勢速。謂於因果迅疾
T31n1605_p0665c26║流轉。假立勢速。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세속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신속하게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세속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T31n1606_p0700c26║勢速者。謂於因果迅疾流轉。假立勢速。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29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세속(勢速)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신속하게 유전하는 것을 가립하여 세속이라 한다. - ↑ "次第",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次第
Basic Meaning: order
Senses:
Precedence; sequential, in sequence; a sequence. In turn, one after another.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二十四不相應法 in Yogâcāra theory. The provisionally established capacity of conditioned dharmas in their arising and ceasing, to follow the order of before and after in regard to cause and effect, i.e. the characteristic of dharmas 法 is that their arising and cessation is not simultaneous (Skt. anupūrvam, anukrama, krama; Tib. mthar gyis, mtshams sbyar ba). [Charles Muller; source(s): Ui, Nakamura, Stephen Hodge]
'Order' is also considered in more mundane senses, such as the order of seating for monks 次第坐 and so forth.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A term for the ritual procedure manuals used in Japanese Esoteric Buddhism. Shidai 次第 is short for shidaigaki 次第書. [Catherine Pearce; source(s): MJ(p.302)]
As an adverb: immediately, in a flash, right away. [Jeffrey Kotyk; source(s): Hanyu]
Urgently, pressing. [Jeffrey Kotyk; source(s): Hanyu]
(Skt. yathā-kramam, anupūrva, vidhi; anantara, anantaram, anukramam, anugata, anuparipāṭikā, anupūrvaka, anupūrvatas, anupūrvaśas, anupūrvin, anupūrveṇa, anuprabandha, anulomam, anuśleṣa, anusaṃdhi, anusāra, anvaya, ānantarya, ānupūrvī, ānupūrvya, uttarôttara-krama, upaniṣad, upapadyamāna-kālena, kālântara-kṛta, krama-vṛtti, kramaśas, kramāt, krameṇa, krameṇânuparipāṭikayā, tataḥ, param, nirantara, nairantarya, paraṃ-parā, paripāṭi, paryāya, prakrama, pratisaṃdhi, yathā-krama, yathânupūrvatas, yathā-yogam, yathā-vṛddhikāya, yathā-saṃkhyam, vaimātratā, samanantara, samanantaram, samāsatas, samāsena, sarga, sāvadāna; Tib. go rim)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차제[次第]",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차제[次第]
순서. 차례. 변화하는 순서.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3║次第者。
T31n1602_p0484b24║謂諸行一一次第流轉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차제(次第)197)는 모든 행이 하나하나 차례로 유전하는 성품을 말한다.
197) 차제(次第, anukrama)는 순서ㆍ차례라는 뜻이다. 모든 유위법이 동시(同時)가 아니라 전후(前後)의 순서가 있는 상태에 대해 이름붙인 것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6║何等次第。謂於因果一一流
T31n1605_p0665c27║轉。假立次第。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차제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하나하나 차례대로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차제라고 한다.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차제(次第)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하나하나 차례대로 유전하는 것을 가립하여 차제라고 한다.
【釋】‘하나하나씩 유전한다는 것’이란 함께 전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0c27║次第者。謂於因果一一流轉。假立次第因。果
T31n1606_p0700c28║一一流轉者謂不俱轉。 - ↑ "次第",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次第
梵語 anukrama。順序之意。為百法之一,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即一切有為法非同時俱轉,而有前後順序者,稱為次第。據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載,於因果一一流轉中,所假立之名,稱為次第。另據瑜伽師地論卷五十六舉出三種次第,即:(1)剎那流轉次第,又作諸行流轉次第,謂諸行之前後念相續流轉之次第。(2)內身流轉次第,謂一身中十時之次第。(3)成立所作流轉次第,謂身外器界之前後安布次第。上述三種次第,係依諸法流轉之分位而假立者,故非實法。
此外,密教之修法、法會、行事等,記錄儀式之順序,亦稱為次第。如金剛界次第、十八道次第、尊勝佛次第、不動次第等,皆為其例。〔瑜伽師地論卷三、顯揚聖教論卷一、大乘百法明門論、瑜伽論記卷十五下〕(參閱「二十四不相應法」276)p3091 - ↑ "方",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方
Basic Meaning: to make even
Senses:
To compare. [Charles Muller; source(s): JEBD, Nakamura]
Square. Right, correct. [Charles Muller]
Direction;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Charles Muller]
A place, a location. [Charles Muller]
A method, a way, a principle. A technique; a formula. [Charles Muller]
There; in that place; at that time. In that. Now. Early Middle Chinese: pua( (Pulleyblank 1991). 'Just then' an aspecto-temporal adverb. In Han period Chinese with durative verbs: progressive aspect 'verbing' . Aspectual. Simultaneity. Subordinate clause, background information. With nondurative verbs: focusing the initial point of a resultant state. In Buddhist Chinese: with durative verbs 'just' + very recent past (perfective aspect). With nondurative verbs: 'only then' : 'under the condition that X, only then Y' . Simultaneity, recent past. Matrix clause. [Barbara Meisterernst]
Direction. One of the twenty-four mental factors 二十四不相應行法 not associated with mind in Yogâcāra 唯識. The directional orientations of land, mountains, rivers, and so forth based on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四方 and four intermediate directions 四維. [Charles Muller; source(s): Ui]
The ten directions of north, south, east and west, plus the four intermediate directions, as well as the zenith and nadir. Since material existence occupies space, these directions are provisionally established on their mutual relationship. [Charles Muller]
An expedient method; a means of remedying the desire and ignorance possessed by sentient beings. [Charles Muller]
In the preface to his commentary on the Sutra of Perfect Enlightenment 大方廣圓覺修多羅說誼 Gihwa 己和 defines 方 as the self-corrective practices engaged in by the religious aspirant. After sufficient self-achievement 自利, one may then engage in the work of spreading the Dharma to others 利他, a concept represented by the logograph 廣. [Charles Muller]
(Skt. diś, deśa; catuṣ-koṇa; vidhi; bhiṣag-dravya; sama; paścāt; aṃśatā, adhikṛtya, aśra, upanidhāya, kriyā, catur-asra, jana-pada, dig-bhāga, diṅ-mātra, diśatā, diśā, diśi diśi, deśântara, paribhāga, pradeśa, *varga, vartani, vṛtta; Tib. yul, gru)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1a04║方者。謂即於東西南北四維上下因果差別
T31n1606_p0701a05║假立為方。何以故。即於十方因果遍滿假說
T31n1606_p0701a06║方故。當知此中唯說色法所攝因果。無色之
T31n1606_p0701a07║法遍布處所無功能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방(方)불상응행법’입니까?
동ㆍ서ㆍ남ㆍ북과 네 간방[四維]과 상ㆍ하의 인과가 서로 차별적인 것을 방향이라고 임시로 설립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열 가지 방위에 인과가 두루하게 존재하는 것을 방향이라고 가설하기 때문이다.
【釋】여기에서는 오직 색법에 수렴되는 인과만을 해설하고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무색의 법도 처소마다 두루하게 존재해 있으나 그 공능이 없는 까닭이다. - ↑ "方",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方
梵語 diś。乃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即指方位、空間。色法(物質的存在)與色法相對而生存在空間之分位關係,計有東、西、南、北、四維(四隅)、上、下等十方。〔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顯揚聖教論卷一、瑜伽師地論卷三〕 p1869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8║何等為方。謂於東西南北四維
T31n1605_p0665c29║上下因果差別假立為方。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방 불상응행법입니까?
동ㆍ서ㆍ남ㆍ북ㆍ사유(四維)ㆍ상ㆍ하의 인과가 서로 차별적인 것을 임시로 세워서 방향[方]이라 한다. - ↑ "方(방)",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方(방)
【범】deśa 24불상응행(不相應行)의 하나. 동서남북, 사유(四維), 상하 등의 방위.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5║方者。謂諸色行遍分齊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방(方)199)은 모든 색법의 행(行)이 두루하는 한계의 성품을 말한다.
199) 방(方, deśa)은 방위를 가리킨다. - ↑ "時",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時
Basic Meaning: time
Senses:
A certain time or hour. A season. An opportunity (Skt. kāla).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All the time, always; constantly. From time to time. [Charles Muller]
In Yogācāra theory,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Charles Muller]
Sequential time. The 'time' established based on the discrimination of past, present and future (Skt. adhvan). [Charles Muller]
Situation, condition (Skt. avasthā). [Charles Muller]
From time to time. [Charles Muller]
Now; in the present world. [Charles Muller]
As samaya, it means kṣaṇa, momentary, passing.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Translit. ji.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kt. velā; yadā...tadā, atha; athakhalu, antara, itihi, ṛtu, kāla-cakra, kālam, kāla-samaya, kālasyaiva, kālika, kṛtvas, tatra, tasminkāle, tenakālena, tenakhalusamayena, tenasamayean, dāni, dāniidānīm, prakaraṇa, prastāva, muhūrta, yad-avastha, yadā, yuga, sāmayika, sāmayikī; Tib. dus)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4║時者。謂諸行展轉
T31n1602_p0484b25║新新生滅性。 - ↑ 가 나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시(時)198)는 모든 행이 전전(展轉)하는 것이 새롭게 새롭게 생멸하는 성품을 말한다.
198) 시(時, kāla)는 시간, 즉 존재로 하여금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의 시간적 차별을 갖게 하는 것을 말한다. - ↑ "시[時]",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시[時]
① 산스크리트어 kāla 시간. 끊임없이 변해 가는 과정.
② 산스크리트어 ṛtu 계절.
③ 산스크리트어 yuga 기간.
④ 산스크리트어 avasthā 상황. 상태. - ↑ "時",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時
(一)梵語 kāla,巴利語同。音譯迦羅。時節之義。百法之一。為唯識宗二十四不相應行之一。有為諸法相續遷流,令生三世(過去、現在、未來)時間之差別。一般佛教之觀念,均認為「時」乃假立者,勝論外道或時論師則認為「時」乃實在者。有部即稱世無別體,乃依法而立者。因此在大智度論卷一謂,佛教經典中,不以迦羅表示「時」,而稱「時」為三摩耶(梵 samaya)。〔瑜伽師地論卷五十二、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參閱「三摩耶」896、「迦羅」5015)
(二)印度將一年分為三期,即:(1)熱時,一月十六日迄五月十五日。(2)雨時,五月十六日迄九月十五日。(3)寒時,自九月十六日至一月十五日。總稱為天竺三時。以上三期亦稱為熱際、雨際、寒際等三際。關於三期與月日之分配,則有多種異說。
(三)指朝夕為二時,或指迦羅時、三摩耶時(三昧耶時)等為二時。
(四)古印度人以時間之最小單位為剎那,一百二十剎那為一怛剎那,六十怛剎那為一臘縛,三十臘縛為一牟呼栗多,三十牟呼栗多則為一晝夜。最長之時間單位則為阿僧祇劫。(參閱「剎那」4708)p5195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7║何等為時。謂於因果相續流
T31n1605_p0665c28║轉。假立為時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시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유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시간[時]이라고 한다. - ↑ "時(시)",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時(시)
24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하나. 극한(剋限, 꼭 그때)의 뜻. 만유 제법이 생멸 상속하여 단절하지 않는 모양의 위에 가(假)로 이름한 분위(分位).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0c29║時者。謂於因果相續流轉。假立為時。何以
T31n1606_p0701a01║故。由有因果相續轉故。若此因果已生已滅
T31n1606_p0701a02║立。過去時。此若未生立未來時。已生未滅立
T31n1606_p0701a03║現在時。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시(時)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상속하여 유전하는 것을 가립하여 시간이라고 한다.
어째서입니까?
유(有)에 연유해서 인과가 상속하여 전변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같은 인과가 이미 생겨났다가 이미 소멸하였다면, 이를 과거의 시간으로 건립하게 된다. 만약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면 미래의 시간으로 건립하고, 이미 생겨났으나 미처 소멸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시간으로 건립하게 된다. - ↑ "數",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數
Basic Meaning: habituation by repetition
Senses:
...which contributes to the special conscious functions of the six faculties.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JEBD]
Often (Skt. samudācaritatta, punnappunam).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An earlier translation of 'mental factors' or 'mental functions' 心所. [Charles Muller]
Number (Skt. saṃkhyā). To count (Skt. gaṇana, gaṇanā). Countable (Skt. saṃkhyeya). In Yogâcāra, one of the 24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二十四不相應法. Quantification 度量 of the various material and mental dharmas. [Charles Muller]
Intelligence, wisdom 智; especially analytical wisdom (Skt. pratisaṃkhyā). [Charles Muller]
To be counted among—thus, to be of the same type or category, like 類. [Charles Muller]
(Skt. gaṇaya; abhīkṣṇam, punaḥpunaḥ; abhi-gaṇaya, abhīkṣṇa, abhīkṣṇatva, asakṛt, ākhyā, ābhīkṣṇya, gaṇa, gaṇanāmadhigacchet, gaṇayitavya, gaṇita, gaṇitaṃbhavet, parigaṇyamāna, parisaṃkhyāna, paryāya, punar, prasaṃkhyā, bhūyobhūyaḥ, saṃkalana, saṃkhya, saṃkhyā-gaṇita, saṃkhyāta, samākhyāta, sāṃkhya; Tib. grangs)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數(수)",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數(수)
24불상응행의 하나. 물(物)ㆍ심(心)의 온갖 법을 헤아려 세는 수. 곧 1ㆍ10ㆍ100 등의 분위(分位). - ↑ "數",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數
梵語 saṃkhyā。唯識宗作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勝論學派以之為二十四德之一。即表示存在之數量。印度將數分為單數(一數)、雙數(兩數、二數)、複數(多數)三種。從一至無數(梵 asaṃkhya,阿僧祇),通常以如下十進法之五十二種數來表示,即:一、十、百、千、萬、洛叉(梵 lakṣa)、阿底洛沙(梵 atilakṣa)、俱胝(梵 koṭi)、末陀(梵 madhya)、阿由多(梵 ayuta)、大阿由多、那由多(梵 nayuta)、大那由多、鉢羅由多、大鉢羅由多、矜羯羅、大矜羯羅、頻跋羅、大頻跋羅、阿芻婆、大阿芻婆、毘婆訶、大毘婆訶、嗢蹲伽、大嗢蹲伽、婆喝那、大婆喝那、地致婆、大地致婆、醯都、大醯都、羯臘婆、大羯臘婆、印達羅(梵 indra)、大印達羅、三磨鉢耽、大三磨鉢耽、揭底、大揭底、拈筏羅闍、大拈筏羅闍、姥達羅、大姥達羅、跋藍、大跋藍、珊若(梵 saṃjñā)、大珊若、毘步多、大毘步多、跋羅攙、大跋羅攙、阿僧祇等。
阿僧祇又作阿僧祇耶、阿僧企耶、阿僧、僧祇等,譯為無數、無央數,即「無法計數」之意。但由一至阿僧祇為止,原有六十個數,後佚失八數,遂成為五十二數。翻譯名義大集則加上曾佚失之八數,而為六十數。此外,譬喻極大之數,以微塵數來表示;一以下之分數為極小之數(或作十六分之一),稱為歌羅分;最極微小之分數,稱為鄔波尼殺曇分(梵 upaniṣadam,優波尼殺陀分)。
新譯華嚴經卷四十五以一阿僧祇為單位,舉有:阿僧祇、無量、無邊、無等、不可數、不可稱、不可思、不可量、不可說、不可說不可說等十數,此稱為十大數。其算法是將阿僧祇乘以阿僧祇,稱為阿僧祇轉;阿僧祇轉再乘以阿僧祇轉,則為無量;以下各大數皆以此類推。〔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六、顯揚聖教論卷一、大乘百法明門論、瑜伽論記卷十五下〕p7644 - ↑ 가 나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1a08║數者。謂於諸行一一差別。假立為數。一一差
T31n1606_p0701a09║別者於一無別二三等數不應理故。 - ↑ 가 나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수(數)불상응행법’입니까?
제행을 하나씩 하나씩 차별하는 것을 가립하여 수라고 한다.
【釋】‘하나씩 하나씩 차별한다는 것’이란 ‘1’이란 숫자 없이 별도로 존재하는 ‘2’나 ‘3’ 따위의 숫자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5c29║何等為數。謂於諸
T31n1605_p0666a01║行一一差別。假立為數。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수 불상응행법입니까?
제행을 하나씩 하나씩 차별하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수라고 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5║數者。
T31n1602_p0484b26║謂諸行等各別相續體相流轉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수(數)200)는 모든 행 등이 각기 다르고 상속하는 체상(體相)이 유전하는 성품을 말한다.
200) 수(數, saṁkhyā)는 숫자, 즉 존재하는 수량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 ↑ 가 나 "和合性",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和合性
Basic Meaning: harmonization
Senses:
(Skt. sāmagrī). In the theory of the Yogâcāra school, one of the 24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Refers to the necessity for a great number of causes to be gathered and combined in the relationship of cause and effect. For one thing to come into existence, a vast amount of causes are combined. [Charles Muller] - ↑ 가 나 "不和合性",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不和合性
Basic Meaning: non-combination
Senses:
Non-joining; non-assembly (Skt. asāmagrī, visāmagrī). One of the twenty-four factors not associated with mind 心不相應行法 in Yogâcāra theory. In contrast to 'combination' 和合性. A provisionally established element referring to the capability of all existence for separation, opposition and interference. (Tib. spyod pa mi mthun pa'i tshogs; 'du ba min pa) 〔瑜伽論略纂 T 1829.43.97a21〕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6║和合者。謂
T31n1602_p0484b27║諸行緣會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화합(和合)201)은 모든 행이 연(緣)에 따라 모이는 것을 말한다.
201) 화합(和合, sāmagrī)은 화합, 즉 색심의 모든 법이 모여 화합해서 서로 여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 ↑ "화합성[和合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화합성[和合性]
산스크리트어 sāmagrī 현상의 생성에 필수적인 여러 인연이 모이는 성질. - ↑ "和合性(화합성)",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和合性(화합성)
【범】 sāmagrī 24불상응법(不相應法)의 하나. 색심(色心)의 모든 법이 모여 화합해서 서로 여의지 않는 것.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6a01║何等和合。謂於因果
T31n1605_p0666a02║眾緣集會假立和合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화합 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중연(衆緣)에 의해 모여지는 것을 임시로 세워서 화합이라 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1a10║和合者。謂於因果眾緣集會。假立和合。因果
T31n1606_p0701a11║眾緣集會者。且如識法因果相續。必假眾緣
T31n1606_p0701a12║和會。謂根不壞境界現前能。生此識作意正
T31n1606_p0701a13║起。如是於餘一切如理應知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화합(和合)불상응행법’입니까?
인과가 중연(衆緣)에 의해 모여지는 것을 가립하여 화합이라 한다.
【釋】‘인과가 중연에 의해 모여지는 것’이란, 흡사 식법(識法)처럼 인과가 상속하되 거짓된 중연이 화합하여 모이는 것이니, 근(根)이 무너지지 않는 것에서 경계가 현전하여 이 같은 식이 생기면 작의가 바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모든 것도 그 이치에 따라 숙지해야 한다. - ↑ "和合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和合性
梵語 sāmagrī。略作和合。唯識宗所說百法之一,二十四不相應行法之一。指形成心、色等諸法之因緣,能彼此和合之性質。亦即有為諸法生起時,必須由眾多之因緣和合集會之特性,稱為和合性。印度六派哲學中,勝論學派之勝論六句義,其第六句義即和合句義。又勝論學派以此和合性為實法,大乘佛教則以之為分位假立。然小乘之俱舍宗,並未別立和合性之說。〔顯揚聖教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瑜伽師地論卷三〕p3924 - ↑ "不和合性(불화합성)",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不和合性(불화합성)
24불상응행(不相應行)의 하나. 색법ㆍ심법으로 여러 연(緣)이 화합하지 않은 것.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7║不和合者。謂諸行緣乖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불화합(不和合)202)은 모든 행이 연(緣)에 어기는 성품을 말한다.
202) 불화합(不和合, asāmagrī)은 수많은 인연이 화합해서 제법(諸法)이 발생하는 경우, 그 화합을 방해해서 제법이 일어날 수 없도록 하는 성질, 능력을 말한다. - ↑ "불화합성[不和合性]",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불화합성[不和合性]
산스크리트어 asāmagrī 여러 인연의 모임으로 현상이 생성하는 과정에서, 그 인연의 모임을 방해하는 성질. - ↑ "不和合性",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不和合性
梵語 a-sāmagrī。又作異性。「和合性」之對稱。唯識宗二十四心不相應行法之一。即能妨礙諸緣和合而令諸法不生之能力或性質。〔顯揚聖教論卷一、瑜伽師地論卷三、卷五十六、大乘百法明門論〕p1291 - ↑ "六無爲(육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六無爲(육무위)
유식종(唯識宗)에서 무위법(無爲法)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가설(假設)로 6존의 이름을 세움. (1) 허공무위(虛空無爲). 걸림 없음을 성품으로 하여 다른 것을 장애하거나 다른 것에 장애됨이 없어 허공ㆍ공간과 같은 무위. (2) 택멸(擇滅)무위. 지혜로 간택(簡擇)ㆍ판정(判定)하는 힘에 따라 얻는 무위. (3) 비택멸(非擇滅)무위. 지혜의 힘에 의하지 않고, 생길 인연이 없어서 나타나는 무위. (4) 부동(不動)무위. 제4선(禪)에 들어가서 선정의 장애를 여의고 얻는 무위. (5) 상수멸(想受滅)무위. 멸진정(滅盡定)에 들어 상(想)과 수(受)를 멸한 곳에 나타나는 무위. (6) 진여(眞如)무위. 진여가 곧 무위임을 말함. - ↑ "六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六無為
梵語 ṣaḍasaṃskṛta。法相宗對無為法之分類。無為,謂無因緣造作,又無生、住、異、滅之四相;即真理之異名。大乘唯識家以無為法為無體,依識變與法性假立六無為。其法性(依空無我所顯真如)之六無為者,即:(1)虛空無為,謂離煩惱、所知諸障所顯現之真如,其無障礙恰如虛空,故稱虛空無為。(2)擇滅無為,此係就正斷障立名。擇滅,即離繫之意。離一切有漏之繫縛而顯真理,故稱擇滅無為。(3)非擇滅無為,真如之自性本來清淨,離諸雜染,以其非由無漏智之簡擇力,故稱非擇滅無為,此乃大乘之解釋。又有為法之緣缺故不生,此不生若滅,即顯真理,故稱非擇滅無為,此亦非由無漏智之簡擇力,為大小乘共通之解釋。(4)不動無為,指顯現於第四靜慮之無為。第四禪唯有捨受,而離苦樂二受,故稱不動。於滅苦樂受處顯現寂靜之真理,故稱不動無為。(5)想受滅無為,乃顯現於滅盡定之無為。於滅盡定中,滅盡六識心想及苦樂二受,故稱想受滅無為。(6)真如無為,無為乃真實如常而不虛妄變異者,故稱真如無為。六者之中,前五者為詮法性之相的假名,後一者為詮法性之體的假名。
識變(內識所變)之六無為者,即曾聞說虛空等名,隨分別有虛空等相,由數習力故,變現似虛空等無為之相,此所現之相,前後相似而無變易,假說為常。又唯識家或開六無為中之真如無為,成善法真如、不善法真如、無記法真如三者,而立八無為之說。〔成唯識論卷二、成唯識論述記卷二末、百法問答鈔卷九〕(參閱「無為」6437)p1686 - ↑ 가 나 다 "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無為
梵語 asaṃskṛta。無造作之意。為「有為」之對稱。即非由因緣所造作,離生滅變化而絕對常住之法。又作無為法(梵 asaṃskṛta-dharma)。原係涅槃之異名,後世更於涅槃以外立種種無為,於是產生三無為、六無為、九無為等諸說。於小乘各部派中,說一切有部立擇滅無為、非擇滅無為、虛空無為,合為三無為。大眾部、一說部、說出世部於三無為之外,立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想非非想處等四無色處,及緣起支性(十二緣起之理)、聖道支性(八聖道之理)等,總為九無為。化地部則以不動、善法真如、不善法真如、無記法真如取代四無色處,亦作九無為之說。大乘唯識家於三無為外,別立不動、想受滅、真如,合為六無為;或開立真如為善法、不善法、無記法,而為八無為。然無論開立為六無為或八無為,非謂無為有多種別體,而係斷除我、法二執所顯之一種法性;復以此一法性從所顯之諸緣而稱種種之名。準此而言,真如、法性、法界、實相等亦皆為無為法。又以涅槃而言,上記三無為中之擇滅無為、六無為中之真如無為即涅槃;而涅槃乃一切無為法中之最殊勝者。
又關於無為法之體,說一切有部主張其為有體,經量部及大乘唯識家以其為無體,不承認其實相。其中,唯識家依「識變」與「法性」假立六種無為,即:(1)指遠離煩惱所知障之真如,以其無有障礙,恰如虛空,稱為虛空無為。(2)指遠離一切有漏之繫縛而顯之真理,稱為擇滅無為。(3)指本來自性清淨之真如,以其非由無漏智之簡擇力而來,稱為非擇滅無為。(4)指顯現於第四靜慮(第四禪)之真如,以第四靜慮已滅苦、樂二受,寂靜不動,稱為不動無為。(5)指顯現於滅盡定之真如,以滅盡定已滅六識心想與苦、樂二受,稱為想受滅無為。(6)指真實如常,無有絲毫虛妄變異之法性真如,稱為真如無為。〔品類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二十一、卷三十九、俱舍論卷一、卷六〕(參閱「有為」3067)p6437 - ↑ 가 나 다 "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無爲
Basic Meaning: unconditioned
Senses:
Uncompounded, uncreated; (Skt. asaṃskṛta; Tib. 'dus ma byas); that which is not arisen on the basis of causes and conditions. That which is unconnected with the relationship of cause and effect. Absolutely eternal true reality which transcends arising-changing-cessation. Another name for nirvāṇa or tathatā. This was originally an important technical term in Daoism. In Abhidharma there are three types of unconditioned dharmas 無爲法; in Yogâcāra, there are six types 六無爲. [Charles Muller; source(s): YBh-Ind]
Non-active, passive; laisser-faire; spontaneous, natural; uncaused, not subject to cause, condition, or dependence; transcendental, not in time, unchanging, eternal, inactive, and free from the afflictions or senses; non-phenomenal, noumenal; also interpreted as nirvāṇa, Dharma-nature, reality, and dharmadhātu.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Skt. akṛta, anadhvan, anabhisaṃskāra, anabhisaṃskṛtatva, anutpāda, asaṃskāra, asaṃskṛtatva, asaṃskṛta-dha - ↑ "三無爲(삼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三無爲(삼무위)
소승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무위에 허공무위(虛空無爲)ㆍ택멸무위(擇滅無爲)ㆍ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를 세우는 것. (1) 허공무의. 걸림이 없는 것을 성(性)으로 하여, 다른 것을 장애하거나, 또는 장애하여짐이 없는 공간 또는 허공과 같은 것. (2) 택멸무위. 지혜의 간택력(簡擇力)에 의하여 번뇌를 끊는 곳에 나타나는 적멸한 진리. (3) 비택멸무위. 지력(智力)에 의하지 않고, 생기는 인연을 궐(闕)한 까닭으로 얻는 적멸한 무위. 택멸무위가 인위적임에 반(反)하여, 이것은 자연적인 것. - ↑ "삼무위[三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삼무위[三無爲]
세 가지 무위의 상태.
(1) 허공무위(虛空無爲). 마음의 모든 장애와 차별이 소멸된 상태.
(2) 택멸무위(擇滅無爲). 택(擇)은 지혜를 뜻함. 지혜로써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상태.
(3)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지혜로써 소멸된 것이 아니라 생겨날 인연이 없어 번뇌가 생겨나지 않은 상태. - ↑ "三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三無為
梵語 tri-asaṃskṛta。指虛空、擇滅、非擇滅等三種無為法,乃小乘說一切有部對無為法之分類。無為法者,謂真空寂滅之理,本無造作。(1)虛空無為(梵 ākāśāsaṃskṛta),虛空即無礙。謂真空之理不為惑染之所障礙;即以無礙為性,容受萬物而遍滿一切處。(2)擇滅無為(梵 pratisaṃkhyā-nirodhāsaṃsṛka),謂聲聞之人用智揀擇,遠離見思繫縛,證寂滅真空之理。如涅槃、解脫。(3)非擇滅無為(梵 apratisaṃkhyā-nirodhāsaṃskṛta),謂聲聞之人證果之後,諸惑不復續起,自然契悟寂滅真空之理,不假揀擇。〔俱舍論卷一、成唯識論卷二、大毘婆沙論卷三十二、異部宗輪論、入阿毘達磨論卷下〕(參閱「非擇滅無為」4689、「虛空無為」6624、「擇滅」7813)p845 - ↑ "三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三無爲
Basic Meaning: three unconditioned phenomena
Senses:
Anything not subject to cause, condition, or dependence; out of time, eternal, inactive, supra-mundane. The three kinds of unconditioned phenomena according to Sarvâstivāda doctrine: ākāśāsaṃskṛta, space or ether 虛空無爲; pratisaṃkhyā-nirodhāsaṃskṛta, analytical cessation of the contamination of the afflictions 擇滅無爲; apratisaṃkhyā-nirodhāsaṃskṛta, non-analytical or effortless cessation 非擇滅無爲 (Skt. trividham asaṃskṛtam, *asaṃskṛta-traya). 〔倶舍論, 成唯識論〕 . [Charles Muller, Achim Bayer; source(s): Nakamura, Hirakawa] - ↑ 가 나 "九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九無為
(一)即九種無為之意。無為者,謂本來恆存,無因緣造作,不為生、住、異、滅四相所遷之實在法。九者即:擇滅無為、非擇滅無為、虛空無為、空無邊處無為、識無邊處無為、無所有處無為、非想非非想處無為、緣起支性無為、聖道支性無為等。乃小乘之大眾部、一說部、說出世部、雞胤部所立。此中,擇滅無為即簡擇力,乃依智慧力而得之滅;非擇滅無為乃緣缺法不生時所顯之滅;虛空無為以無礙為性,不障礙他法亦不為他法所障,周遍於有形之物體中,恆常不變;空無邊處無為乃至非想非非想處無為即四無色所依之定體。彼能依之五蘊,原為有為法,今就其所依之處,故立為無為;緣起支性無為與聖道支性無為乃十二緣起及八聖道支之理法。緣起支、聖道支雖為有為法,然其理法寂然不動而無變易,故立為無為。〔異部宗輪論、成唯識論述記卷二末〕
(二)擇滅無為、非擇滅無為、虛空無為、不動無為、善法真如無為、不善法真如無為、無記法真如無為、道支真如無為、緣起真如無為等。小乘化地部之所立。此中,前三者及後二者與大眾部等之說同;不動無為乃離定障之苦樂受所顯之滅;善法真如無為乃感善法之愛果,所感之理真實如常;不善法真如無為感不善之非愛果,理法真實如常;無記法真如無為乃不感無記果之理,常然不變。上述之善法、不善法、無記法等真如無為之體雖各一,而其性皆善。〔異部宗輪論、成唯識論述記卷二末〕p233 - ↑ "九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九無爲
Basic Meaning: nine (meditations on) the unconditioned
Senses:
There are two different lists, one being:
analyzed unconditioned 擇滅無爲
non-analyzed unconditioned 非擇滅無爲
immaterial unconditioned 虛空無爲
the sphere of unlimited space as unconditioned 空無邊處無爲
the sphere of unlimited consciousness as unconditioned 識無邊處無爲
sphere of nothingness as unconditioned 無所有處無爲
the sphere of neither thought nor no-thought as unconditioned 非想非非想處無爲
the nature of the branches of dependent arising as unconditioned 緣起支性無爲
the items of the holy path as unconditioned 聖道支性無爲
(Skt. nava-asaṃskṛta) 〔成唯識論述記 T 1830.43.290c17〕 [Charles Muller; source(s): FGD, Soothill, Hirakawa] - ↑ "無爲(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無爲(무위)
【범】 asaṃskṛta 모든 법의 진실체를 말함. 위(爲)는 위작(爲作)ㆍ조작(造作)의 뜻. 곧 인연인 위작ㆍ조작을 여의고, 생ㆍ주ㆍ이ㆍ멸 4상(相)의 변천이 없는 진리를 말한다. 열반ㆍ법성ㆍ실상 등은 무위의 다른 이름. 구사종(俱舍宗)에서는 3무위를 세우고, 유식종(唯識宗)에서는 6무위를 세웠다. - ↑ "무위법[無爲法]",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무위법[無爲法]
온갖 분별이 끊어진 상태에서 주관에 명료하게 드러나는 현상. 분별이 끊어진 뒤에 명명백백하게 주관에 드러나는 현상.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주관에 드러나는,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의식의 지향 작용이 소멸된 상태에서 직관으로 파악된 현상. 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마음 상태.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
참조어
멸법(滅法), 무사 - ↑ "六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六無爲
Basic Meaning: six unconditioned [factors]
Senses:
Six cognitive factors within the Yogâcāra scheme of one hundred factors which are not karmically conditioned (Skt. ṣaḍ-asaṃskṛta). Factors which do not arise, abide, change, or disappear as do all other phenomena. These are:
space (being without obstruction) as unconditioned 虛空無爲(虛空), which is thusness free from cognitive and afflictive obstructions.
destruction of afflictions through analytical meditation as unconditioned 擇滅無爲(擇滅).
cessation without analytical meditation as unconditioned 非擇滅無爲(非擇滅); this is cessation that occurs by the direct insight into the originally pure nature of thusness, which allows the freedom from all afflictions.
motionlessness (or 'undisturbed' ) as unconditioned 不動無爲(不動),referring to the attainment of the fourth level of concentration 第四靜慮.
concentration of cessation of sensation of perception as unconditioned 想受滅無爲(想受滅), that is, entry into the absorption of total annihilation of mental activity 滅盡定. The mental functions associated with the six consciousnesses are terminated.
thusness as unconditioned 眞如無爲(眞如).
Each one of these is said to have two aspects: (1) being based on cognitive transformation 依識變, referring to a mental representation of the Dharma, the aspect of the unconditioned 無爲相, a simulacrum 相似, which is actually conditioned 實有爲; (2) being based on actuality 依法性, in which case it is real 眞理 and truly unconditioned 實無爲. See also 無爲. 〔大乘百法明門論〕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2_p0484b28║無為者。此有八種。謂虛空。非擇滅。擇滅不
T31n1602_p0484b29║動。想受滅。善法真如。不善法真如。無記法真
T31n1602_p0484c01║如。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무위법(無爲法)203)이란, 이것에는 여덟 종류가 있으니 허공(虛空), 비택멸(非擇滅), 택멸(擇滅), 부동(不動), 상수멸(想受滅), 선법진여(善法眞如), 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 무기진여(無記眞如)이다.
203) 무위법(無爲法, asaṁskṛta-dharma)은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멸변화의 유위력(有爲力)을 여읜 불생불멸(不生不滅)ㆍ상주절대(常住絶對)의 법을 말한다. 본래 열반(涅槃)의 이명(異名)이었는데, 후대에 열반 이외에 여러 가지 무위를 건립했다. 이들 여러 가지 무위법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여 법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방법에 따라서 임시로 이들 명칭을 건립한 것이다. 또한 『구사론(俱舍論)』 등 부파불교에서는 무위법이 유위법과 관계없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했으나, 대승에서 무위법은 일체법의 체성(體性)으로 설명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5_p0666a20║何等界法蘊不攝耶。謂法界中諸無為法。此
T31n1605_p0666a21║無為法復有八種。謂善法真如不善法真如
T31n1605_p0666a22║無記法真如虛空非擇滅擇滅不動及想受
T31n1605_p0666a23║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떻게 계법(界法)은 온에 소속되지 않습니까?
법계 내의 모든 것이 무위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위법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ㆍ택멸(擇滅)ㆍ부동멸(不動滅)ㆍ상수멸(想受滅)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T31n1606_p0702a29║何等界法蘊不攝耶。法界中無為法蘊所不
T31n1606_p0702b01║攝。此無為法。復有八種。謂善法真如。不善法
T31n1606_p0702b02║真如。無記法真如。虛空非擇滅擇滅。不動及
T31n1606_p0702b03║想受滅。
T31n1606_p0702b04║如是建立八無為中。當知所依差別故。分析
T31n1606_p0702b05║真如假立三種。不由自性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7월 30일에 확인:
어떻게 계법(界法)은 ‘온’에 소속되지 않습니까?
법계 내의 모든 것이 무위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위법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ㆍ택멸(擇滅)ㆍ부동멸(不動滅)ㆍ상수멸(想受滅)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건립된 여덟 가지 무위 중에도 소의의 차별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진여의 가립을 분석하면 세 종류가 있으니 그 자체적인 성품에 연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 ↑ "虛空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虛空無爲
Basic Meaning: absence of hindrance
Senses:
One of the six asaṃskṛta dharmas, (six unconditioned factors) 六無爲 in Yogâcāra. Passive void or space; two kinds of space, or the immaterial, are named, the active and passive, or phenomenal and non-phenomenal (i.e. noumenal). The phenomenal is differentiated and limited, and apprehended by sight; the noumenal is without bounds or limitations, and belongs entirely to mental conception. An expression of separation from the various hindrances. In Abhidharmakośa philosophy it has a meaning of absolute space, while in Yogâcāra, it is understood as a dimension of emptiness as the mind. 〔瑜伽論 T 1579.30.659a17〕 (Skt. ākāśa, akāśâsaṃskṛta; Tib. nam mkha' 'dus ma byas kyi chos). [Charles Muller; source(s): Soothill, Hirakawa, YBh-Ind]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4c01║虛空者。謂諸心心法所緣外色對治境界
T31n1602_p0484c02║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허공(虛空)204) 무위는 모든 심왕법과 심소법이 외부 색법을 반연하는 바가 다스려진 경계의 성품이다.
204) 여기서 허공(虛空)은 천공(天空)이란 뜻이 아니다. 진여가 번뇌장(煩惱障)ㆍ소지장(所知障)의 장애가 없음을 허공에 비유해서 허공무위라고 한다. 참고로 말하면 부파불교의 『구사론』에서 허공무위는 상주불변의 공간적 실재를 가리킨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7b27║又如經說。一切色想出過故。有對想滅沒故。
T31n1602_p0487b28║種種想不作意故。入無邊虛空虛空無邊處。
T31n1602_p0487b29║具足住一切者。謂諸行相。色想者。謂顯色想。
T31n1602_p0487c01║出過者。謂離彼欲故。如出過義。有對想滅沒
T31n1602_p0487c02║種種想不作意。如是應知。有對想者。謂彼所
T31n1602_p0487c03║依四大想。及餘所造色想。種種想者。謂即於
T31n1602_p0487c04║四大及造色中長短麁細方圓高下。正及不
T31n1602_p0487c05║正光影明闇。如是等類假色所攝種種想。若
T31n1602_p0487c06║正入無邊虛空處時。有對之想不現前故。滅
T31n1602_p0487c07║及種種想不起作意。由如是故超彼能依一
T31n1602_p0487c08║切色想。無邊者。謂十方諸相不可分別。虛空
T31n1602_p0487c09║者。謂色對治所緣境界。虛空無邊處者。謂此
T31n1602_p0487c10║處轉依及能依定。餘如前說。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또한 경전에서 “색(色)에 대한 표상작용[想]38)을 모두 벗어났기 때문이고, 유대색(有對色)에 대한 표상작용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하지 않기 때문에 가없는 허공인 허공무변처(虛空無邊處)에 들어가서 구족하게 머문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일체’란 모든 행상(行相)을 말한다. ‘색에 대한 표상작용’이란 빛깔[顯色]에 대한 표상작용을 말한다. ‘벗어남’이란 그것의 욕망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벗어남의 뜻과 마찬가지로 ‘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 소멸되고,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응당 그렇게 알아야 한다.
‘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란 그것의 의지처인 4대(大)에 대한 표상작용과 나머지로 이루어진 물질39)에 대한 표상작용을을 말한다. ‘온갖 표상작용’이란 곧 사대 그리고 사대로 이루어진 물질에 대해서 긴 것, 짧은 것, 모난 것, 둥근 것, 높은 것, 낮은 것, 반듯한 것, 반듯하지 않은 것, 광선, 그림자, 밝음, 어둠 등 이와 같은 종류의 임시적인 물질에 속한 갖가지 표상작용을 말한다. 만약 무변허공처에 바르게 들어갈 때에는 유대색에 대한 표상작용이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소멸’이라 하며, 온갖 표상작용이 작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색(色)에 대한 모든 표상작용에 의지함을 벗어난다. ‘가없음’이란 시방의 모든 모습을 분별할 수 없음을 말한다. ‘허공’이란 물질을 다스리는 것이 반연하는 경계를 말한다. ‘허공무변처’란 이곳이 전의이고 능히 정(定)에 의지함을 말한다. 그 밖에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38) 상(想)의 심리작용[心所]을 말한다.
39)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의 사대 외에 미취 색취. - ↑ 규기 찬(T.1861).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제4권. 대정신수대장경. T45, No. 1861,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45n1861_p0328a18║空無邊處解脫者。顯揚論云。虛空者。
T45n1861_p0328a19║謂色對治所緣境界。空其色故。無邊者。
T45n1861_p0328a20║十方諸相不可分別。名空無邊。處者謂彼
T45n1861_p0328a21║地中。定等諸所依法。能依行者所緣虛空。
T45n1861_p0328a22║所依之處名為處也。欲色二界相狀易知。
T45n1861_p0328a23║彼界難了獨與處名。空無邊是境。處是能
T45n1861_p0328a24║緣。空無邊之處。依主釋也。下皆准知。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b03║何等虛空。謂無色性容受一切所作
T31n1605_p0666b04║業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허공입니까?
색이 없는 성품을 가리킨다. 일체의 조작된 업을 수용하는 때문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b23║虛空者。謂無色性。容受一切所作業故。無色
T31n1606_p0702b24║性者。謂唯違於色。無性相法意識境界。是名
T31n1606_p0702b25║虛空。意識境界者。謂法界攝故。唯違色言。為
T31n1606_p0702b26║別受等共有真如擇滅非擇滅無常性等。雖
T31n1606_p0702b27║兔角等亦是無性。然彼不與諸法相違。以彼
T31n1606_p0702b28║唯是畢竟無故。又兔角等非唯違色。由與受
T31n1606_p0702b29║等諸法共故。是故唯說與色相違無性相言。
T31n1606_p0702c01║為別受等無色之法。何以故。受等自體是有
T31n1606_p0702c02║性相非無性相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허공’입니까?
색이 없는 성품을 가리킨다. 일체의 조작된 업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색이 없는 성품이란 단지 색에 반대되는 것으로 성품이나 모양이 없는 법의 의식경계를 ‘허공’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釋】‘의식 경계’란 법계에 수렴되기 때문에 단지 색에 반대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별도의 수 따위이기에 진여(眞如)ㆍ택멸(擇滅)ㆍ비택멸(非擇滅)ㆍ무상성 따위를 공유한다. 비록 토끼 뿔 따위도 역시 성품이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제법과 반대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오직 궁극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다 또 토끼 뿔 따위는 색에 반대되지도 않고 수 따위의 제법과 공유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단지 색과 반대되는 것만이 성품이 없는 모양이고 별도의 수 따위이기에 ‘색이 없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 따위는 그 자체적으로 성품이 있는 모양이기도 하고 성품이 없는 모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 대승광 찬(T.1837). 《대승백법명문론소》(大乘百法明門論疏).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7,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44n1837_p0060c15║ 言虛
T44n1837_p0060c16║ 空者,謂無色性、容受一切所作業故,故名虛
T44n1837_p0060c17║ 空。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2_p0850a19║云何虛空?謂若容受諸色。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떤 것을 허공이라 하는가. 마치 허공이 모든 물질을 다 용납해 받아들이는 것과 같음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3_p0854c23║虛空者。謂容受諸色。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허공이란 모든 색을 수용함을 말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2║離諸障礙故名虛
T31n1585_p0006c13║空。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모든 장애를 여의었기 때문에 허공이라고 이름한다.37)
37) 이하 여섯 가지 무위법(허공ㆍ택멸ㆍ비택멸ㆍ不動ㆍ想受滅ㆍ진여 무위)을 판별한다. 소승에서는 무위법이 유위법과 관계없이 별존(別存)한다고 말한다. 대승에서는 무위법이 역시 일체법의 체성(體性)이라고 말한다. 먼저 허공(虛空, ākāśa)무위에 관하여 말하는데, 소승에서 허공무위가 다른 것에게 장애되지 않고 또한 다른 것을 장애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일체법을 능히 포용하여 자유자재하게 행동케 하는 상주불변의 공간적 실체를 말한다. 따라서 이것을 논파하고, 유식학에서 허공무위는 무위법의 이체(理體)가 번뇌장ㆍ소지장을 멀리 떠나서 현현되기 때문에 비유로서 허공이라고 이름한다고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규기 주해(T.1836). 《대승백법명문론해》(大乘百法明門論解). 대정신수대장경. T44, No. 183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44n1836_p0052a06║ 言虛空無為者,謂於真諦離諸
T44n1836_p0052a07║ 障礙,猶如虛空,豁虛離礙,從喻得名。 - ↑ 담광 찬(T.2810). 《대승백법명문론개종의기》(大乘百法明門論開宗義記). 대정신수대장경. T85, No. 2810,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85n2810_p1064a07║言虛空者。無
T85n2810_p1064a08║障礙義。小乘唯約無色所顯。故俱舍云。虛
T85n2810_p1064a09║空但為無礙為性。由無障故色於中行。雜集
T85n2810_p1064a10║瑜伽大同俱舍。大乘通約五蘊無說。故般若
T85n2810_p1064a11║經佛地論云。五蘊無處說為虛空。不能礙物
T85n2810_p1064a12║故名為虛。無色等故說之為空。虛即是空持
T85n2810_p1064a13║業釋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 지욱 해(X.805). 《백법명문론직해》(百法明門論直解). 만속장. X48, No. 8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X48n0805_p0345b12║第五無為法者。略有六種。一虗空無為。二擇滅無為。
X48n0805_p0345b13║三非擇滅無為。四不動滅無為。五想受滅無為。六真
X48n0805_p0345b14║如無為。
X48n0805_p0345b15║ 上之四種色心假實。皆是生滅之法。名有為性。無
X48n0805_p0345b16║ 此有為。假名無為。非更別有一箇無為之法。在于
X48n0805_p0345b17║ 有為法外而與有為相對待也。故云但是四所顯
X48n0805_p0345b18║ 示。然為既無矣。尚不名一。云何有六。正由是四所
X48n0805_p0345b19║ 顯。故不妨隨於能顯。說有六別。一虗空無為者。非
X48n0805_p0345b20║ 色非心。離諸障礙。無可造作。故名無為。 - ↑ "虛空無爲(허공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虛空無爲(허공무위)
[1] 3무위의 하나. 허공은 온갖 곳에 두루 가득하여 다른 것을 장애하지 않고, 또 다른 것에 장애되지도 않으므로 무위. 이 허공이 무위이므로 만물은 각각 그 처소를 얻어서 질서가 정연하여 어지럽지 않게 존재할 수 있음.
[2] 6무위의 하나. 진여(眞如). 모든 장애를 여읜 곳에 나타나는 것. - ↑ 규기 찬(T.1830). 《성유식론술기》(成唯識論述記)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43, No. 1830,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43n1830_p0291b11║論。離諸障礙至故名擇滅。 述曰。即此真如
T43n1830_p0291b12║離諸障礙。故名虛空。由無漏惠簡擇力故。
T43n1830_p0291b13║滅諸雜染。雜染之言通有漏法。究竟證會。
T43n1830_p0291b14║即此真如名為擇滅。即由惠力方證會故。 - ↑ 일여 등 편. 《삼장법수》(三藏法數) 제10권. 대장경보편. B22, No. 117,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B22n0117_p0254a08║【四無記】(出宗鏡錄) 謂不能記別當
B22n0117_p0254a09║ 來之果。又於善惡法中無所記別。故名無記。
B22n0117_p0254a10║ 一能變無記。謂第八識心王。是無記性。與心
B22n0117_p0254a11║ 所五法相俱。則能變現色等一切境界而無
B22n0117_p0254a12║ 所分別。故名能變無記。(五法者。一作意。二
B22n0117_p0254a13║ 觸。三受。四想。五思。是名徧行五法。即第八識
B22n0117_p0254a14║ 心所法也。)二所變無記。謂根身種子器世
B22n0117_p0254a15║ 間三類之境。皆由本識之所變現。以此三境。
B22n0117_p0254a16║ 無分別性。故名所變無記。三分位無記。謂於
B22n0117_p0254a17║ 不相應行中。假無記法立諸分位。由此諸法。
B22n0117_p0254a18║ 不屬善惡。不與心相應。不與色相應。無所記
B22n0117_p0254b01║ 別。故名分位無記。四勝義無記。謂虛空無為。
B22n0117_p0254b02║ 非擇滅無為。有勝義故。而無所作為。故名勝
B22n0117_p0254b03║ 義無記。(虛空無為者。謂真空之理。不為惑
B22n0117_p0254b04║ 染之所障礙也。非擇滅無為者。聲聞之人。證
B22n0117_p0254b05║ 果之後。諸惑不復續起。自然契悟真空之理。
B22n0117_p0254b06║ 不假揀擇也。) - ↑ 세친 조, 현장 한역, 덕청 술(X.802). 《백법명문론논의》(百法明門論論義). 만속장. X48, No. 8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X48n0802_p0311b01║ 此上九十四種名有為法。以是眾生生死之法。乃
X48n0802_p0311b02║ 妄識所計。有造作故。故名有為。名世間法。下六無
X48n0802_p0311b03║ 為。乃出世法。
X48n0802_p0311b04║無為法有六種者。謂虗空無為.擇滅無為.非擇滅無
X48n0802_p0311b05║ 為.不動無為.受想滅無為.真如無為。此六種法。揀
X48n0802_p0311b06║ 異有為。故立無為名。雖云出世法。實通小乘。以不
X48n0802_p0311b07║ 動乃三果那含。受想滅乃滅盡定耳。虗空無為者。
X48n0802_p0311b08║ 從喻得名。謂無為法。體若虗空。無所造作。下五無
X48n0802_p0311b09║ 為。通以此喻。然此虛空喻。有大小不同。如華嚴云。
X48n0802_p0311b10║ 若人欲識佛境界。當淨其意如虗空。遠離妄想及
X48n0802_p0311b11║ 諸取。令心所向皆無礙。又云。清淨法身。猶若虗空。
X48n0802_p0311b12║ 此則直指法界性空。即起信所云。如實空鏡。以體
X48n0802_p0311b13║ 絕妄染。故如虗空。此乃大乘法性真空。實一心之
X48n0802_p0311b14║ 別稱也。此中虗空。義通大小。正取虗豁無有造作。
X48n0802_p0311b15║ 以作下五無為真諦之喻耳。 - ↑ "허공무위[虛空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허공무위[虛空無爲]
삼무위(三無爲)의 하나. 마음의 모든 장애와 차별이 소멸된 상태. - ↑ "虛空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虛空無為
梵語 ākāśāsaṃskṛta。(一)小乘說一切有部所立「三無為」之一。虛空,即無礙;無為,指離因緣造作,不為生、住、異、滅四相所遷之實在法。虛空無為,謂真空之理不為惑染所障礙;即以無礙為性,容受萬物而遍滿一切處。〔俱舍論卷一、俱舍論光記卷一、俱舍論寶疏卷一〕
(二)大乘唯識宗所立「六無為」之一。謂真如離各種障礙,猶如虛空,故稱虛空無為。成唯識論立六種無為,以彼有部所立之虛空無為,非實有之法,於佛證得之法性,為六無為相中之一相。法性之體,離諸障礙,稱為虛空無為,非別有容受萬物之無為虛空。故依有部之說法,則虛空之語直指大虛空。依唯識之說,認為一者喻語,以法性之無為,似大虛空,故稱虛空;一者法性即為虛空,故稱虛空。〔成唯識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疏卷上〕p6624 - ↑ "擇滅",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
Basic Meaning: annihilation of defilements through the power of analysis
Senses:
Eliminating afflictions by the practice of analytical meditation. One of two methods of cessation 二滅;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dharmas 六無爲 (Skt. pratisaṃkhyā-nirodha, pratisaṃkhyā, prajñā-viśesa, savisaṃyoga, visaṃyoga-dravya, visaṃyoga, prahāṇa; Pāli paṭisaṃkhā-nirodha; Tib. so sor brtags pas 'gog pa, so sor brtags 'gog). 〔瑜伽論 T 1579.30.292a19, 成唯識論 T 1585.31.6b29〕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JEBD] - ↑ "擇滅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無爲
Basic Meaning: destruction of defilements through the wisdom of awakening
Senses:
In Yogâcāra theory,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factors 六無爲. 擇滅 refers to the proper discrimination of all dharmas through untainted wisdom. When the defilements are cut off by the wisdom of awakening, they never re-arise (Skt. pratisaṃkhyā-nirodha-saṃskṛta, visaṃyoga; Tib. so sor brtags 'gog pa`i 'dus ma byas kyi chos). 〔成唯識論 T 1585.31.52c1〕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擇滅(택멸)",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택멸)
열반의 다른 이름. 열반은 간택하고 판정하는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끊은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택멸이라 함. - ↑ "擇滅無爲(택멸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無爲(택멸무위)
3무위의 하나. 간택하고 판정하는 지혜의 힘으로 얻은 변화[爲]를 끊어서 없앤[無] 진리. 구사종에서는 3무위의 하나. 유식종에서는 6무위의 하나. - ↑ "택멸[擇滅]",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택멸[擇滅]
택(擇)은 지혜를 뜻함.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시킨 열반의 상태.
동의어: 지연멸(智緣滅) - ↑ "택멸무위[擇滅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택멸무위[擇滅無爲]
삼무위(三無爲)의 하나. 택(擇)은 지혜를 뜻함. 지혜로써 번뇌를 소멸시킨 상태. - ↑ "擇滅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無為
三種無為法之一。即以智慧之揀擇力(正確之判斷力)而得之滅諦涅槃。(參閱「擇滅」7813、「三無為」845)p7814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4c03║擇滅者。謂由慧方便有漏
T31n1602_p0484c04║諸行畢竟不起滅而是離繫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택멸(擇滅)206) 무위는 지혜 방편으로 말미암아 유루(有漏)의 모든 행(行)이 궁극적으로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으며,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206) ‘택멸(擇滅, pratisaṁkhyā-nirodha)’에서 택(擇)은 간택(簡擇)의 뜻으로서 지혜의 작용이고, 멸(滅)은 적멸(寂滅)ㆍ열반을 가리킨다. 택력소득(擇力所得)의 멸(滅)의 준말로서 진여를 가리킨다. 무루(無漏)의 지혜력으로써 진리를 간택해서 번뇌의 계박(繫縛)을 벗어나면, 그곳에 나타나는 유선무루(唯善無漏)의 상주법이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b04║何等擇
T31n1605_p0666b05║滅。謂是滅是離繫。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하게 되면 바로 이계하는 것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c03║擇
T31n1606_p0702c04║滅者。謂是滅是離繫。永害隨眠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하게 되면 바로 이계하는 것이니, 영원히 해가 되는 수면인 까닭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2_p0850a21║云何擇滅?謂若滅是
T31n1612_p0850a22║離繫。此復云何?謂由煩惱對治故諸蘊畢竟
T31n1612_p0850a23║不生。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택멸이란 어떤 것인가. 만약에 택멸이라면 이는 얽매임을 여의는 것이다. 이것이 또 무슨 말인가. 이를테면 번뇌를 대치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쌓임이 필경 나지 않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3_p0854c26║云何擇滅。謂若滅是離繫。
T31n1613_p0854c27║云何離繫。謂煩惱對治諸蘊畢竟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무엇을 택멸(擇滅)이라고 하는가? 혹 멸하는 경우 이계(離繫)를 말한다. 무엇을 이계라고 하는가? 번뇌를 다스리는 것에 의해 모든 온이 마침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3║由簡擇力滅諸雜染。究竟證會故名擇
T31n1585_p0006c14║滅。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간택(簡擇)의 힘38)에 의해서 모든 잡염을 소멸하여 구경에 이르러 깨달아 안다. 따라서 택멸(擇滅)39)이라고 이름한다.
38) 무루지혜의 간택력(簡擇力)이다.
39) 택멸(擇滅, pratisankhyā-nirodha)에서 택(擇)은 간택(簡擇)의 의미로서 무루의 지혜력을 말하고, 멸(滅)은 적멸(寂滅)의 뜻으로서 모든 번뇌의 계박(繫縛)을 벗어난 열반(涅槃)을 가리킨다. 즉 무루의 지혜력으로써 진리를 간택해서 번뇌의 계박을 벗어나면, 거기에 나타난 유선무루(唯善無漏)의 상주법을 택멸이라고 이름한다. - ↑ "擇滅",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擇滅
梵語 pratisaṃkhyā-nirodha,巴利語 patisaṅkhā-nirodha。又作數滅、智緣滅。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為無為法之一種,涅槃之異名。即以智慧之簡擇力(正確之判斷力)而得之滅諦涅槃。滅,乃滅除生死(迷之生存),而使心平和之境地;至此擇滅之境界,斷離煩惱繫縛,永不輪迴。
據大毘婆沙論卷三十一、俱舍論卷一等載,以慧揀擇四聖諦之理而斷除煩惱時,諸有漏法即脫離繫縛,此離繫即稱為擇滅。蓋凡夫自無始以來即有煩惱,彼一切之有漏法皆為煩惱所繫縛;若經由慧力揀擇而斷除煩惱,其時,彼有漏法即能脫離繫縛,故謂之滅,而於「滅」之中獲得離繫,證得解脫。又一切有漏法一一皆為煩惱繫縛,而擇滅即是離繫之名,故擇滅之種類與所繫縛之有漏法之種類相同。所謂斷、離、滅三界,皆以擇滅為其體。依小乘之說,斷界,指斷煩惱(特指九結之中,貪以外之瞋等八結)而得擇滅;離界,指離繫縛(特指貪結)而得擇滅;滅界,指斷滅生死(特指與煩惱有密接不離關係之諸事象,即煩惱之所隨增事)而得擇滅。
擇滅乃無為法,說一切有部以之為三無為之一,唯識宗則以之為六無為之一。又於說一切有部中,認為擇滅為常住實有之法,攝屬於三性中之「善」;於經部等,則以之為假立,而其解釋亦與前述大有所異。依俱舍論卷六載,經部等認為由揀擇力而隨眠不生,名為擇滅。成唯識論卷十舉出二種擇滅,其中,「滅縛得」係斷除煩惱障所得之擇滅;「滅障得」則為斷除所知障等所得之擇滅。
又於性淨、有餘、無餘、無住處等四種涅槃中,性淨涅槃(即真如)非攝於擇滅,其餘三者則總攝於擇滅之中;三者之中,無住處涅槃,其體雖亦為真如,但仍須由真實之擇力滅除餘障而證得,故攝屬於擇滅。而真如與擇滅之區別,在於擇滅為施設有而非實有者。〔品類足論卷一、大毘婆沙論卷三十二、雜阿毘曇心論卷九、大智度論卷四十二、成唯識論卷一、瑜伽師地論卷三、顯揚聖教論卷一、卷十八、入阿毘達磨論卷下、順正理論卷一、大乘義章卷二、俱舍論光記卷一、卷六、成唯識論述記卷二末、卷十末〕(參閱「五縛」1575)p7813 - ↑ "非擇滅",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非擇滅
Basic Meaning: cessation without analytical meditation
Senses:
The cessation of afflictions due to their being fundamentally pure. One of two kinds of cessation 二滅; also called 非擇滅無爲,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dharmas 六無爲 (Skt. apratisaṃkhyā-nirodha, apratisaṃkhyā, asaṃkhyayā kṣayam; Tib. so sor brtags pa ma yin pas 'gog pa). 〔瑜伽論 T 1579.30.293c11〕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YBh-Ind, Hirakawa] - ↑ "非擇滅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非擇滅無爲
Basic Meaning: non-analytical cessation
Senses: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factors 六無爲 in the Yogâcāra theory (Skt. apratisaṃkyā-nirodha). Extinction of the arising and existence of certain seeds not due to the power of awakened wisdom. The nonarising of defilements and so forth due to lack of cause. 〔宗鏡錄 T 2016.48.706c25〕 [Charles Muller]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4c02║非擇滅者。謂因緣不會於其中間諸行不
T31n1602_p0484c03║起滅而非離繫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비택멸(非擇滅)205) 무위는 원인과 조건[緣]이 모이지 않고, 그 중간에 모든 행(行)이 일어나거나 멸하지 않으며, 계박을 여의지 않은 성품이다.
205) 비택멸(非擇滅, apratisaṁkhyā-nirodha)는 지혜의 힘에 의하지 않고[非擇] 얻은 멸(滅)이란 뜻으로서 진여자성을 가리킨다. 그것은 본래부터 청정한 것이지, 수행에 의해 비로소 청정해지는 것이 아니므로 비택멸무위라고 부른다. - ↑ 가 나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4║不由擇力本性清淨。或緣闕所顯故
T31n1585_p0006c15║名非擇滅。 - ↑ 가 나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택멸의 힘에 의하지 않고 본성이 청정하고 혹은 연(緣)40)이 없어서 나타난 것이므로 비택멸이라고 이름한다.41)
40) 유위법이 생겨나는 연(緣)을 가리킨다.
41) 비택멸(非擇滅, apratisankhyā-nirodha)무위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루지혜의 간택력에 의하지 않고 본래자성청정(本來自性淸淨)한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유위법이 생겨나는 연(緣)이 없어서[缺] 생겨나지 않을 때에 현현되는 것이다. - ↑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비택멸무위[非擇滅無爲]
삼무위(三無爲)의 하나. 택(擇)은 지혜를 뜻함. 지혜로써 소멸된 것이 아니라 생겨날 인연이 없어 번뇌가 생겨나지 않은 상태. - ↑ "非擇滅無爲(비택멸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非擇滅無爲(비택멸무위)
[1] 3무위의 하나. 지혜의 간택(簡擇)ㆍ판정력(判定力)에 의지하지 않고 다만 유위법(有爲法)이 스스로 다 없어지는 곳에 나타나는 무위란 뜻. 법이 일어나던 인연이 없어져서 다시 일어날 수 없는데 이른 것. 예를 들면, 깨달은 이는 최초의 번뇌가 일어나던 인연을 끊었으므로 번뇌에 대하여 1종의 무위를 얻는 것 같이, 저절로 기회가 없어지므로 말미암아 생기는 변화하지 않는 법을 비택멸무위라 함. ⇒비수멸(非數滅)
[2] 6무위의 하나. 진여는 본래 청정하고 변화가 없는 것이며, 지혜의 간택하고 판정하는 힘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니므로 비택멸무위라 하며, 또 진여는 유위법의 연(緣)이 없는 곳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비택멸무위라 함.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b04║何等非擇滅。謂是滅非離繫。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비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해도 이계(離繫)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c03║非擇滅者。謂是滅非離繫。不永害隨眠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비택멸’입니까?
이것이 소멸해도 이계(離繫)하지 못하는 것이니, 영원히 해가 없는 수면(隨眠)인 까닭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2_p0850a19║云何
T31n1612_p0850a20║非擇滅?謂若滅非離繫。此復云何?謂離煩惱
T31n1612_p0850a21║對治而諸蘊畢竟不生。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떤 것을 비택멸이라 하는가. 열반과 같고 얽매임을 여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 무슨 말인가. 이를 테면 번뇌의 대치(對治)를 여의어 모든 쌓임이 필경 나지 않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3_p0854c23║非擇滅
T31n1613_p0854c24║者。謂若滅非離繫。
T31n1613_p0854c25║云何非離繫。謂離煩惱對治諸蘊畢竟不生。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비택멸이란 혹 멸하는 경우 이계가 아닌 것[非離繫]을 말한다. 무엇을 이계가 아닌 것이라고 하는가? 번뇌를 다스리는 것을 떠나서 모든 온이 마침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 ↑ "비택멸[非擇滅]",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비택멸[非擇滅]
택(擇)은 지혜를 뜻함. 따라서 지혜로써 소멸된 것이 아니라는 뜻.
① 지혜로써 소멸된 것이 아니라 생겨날 인연이 없어 번뇌가 생겨나지 않은 상태.
② 지혜와 관계없이 본디 청정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
동의어: 비수멸, 비수연진 - ↑ "非擇滅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非擇滅無為
梵語 apratisaṃkhyā-nirodhāsaṃskṛta。舊作非數滅無為。略稱非擇滅。乃說一切有部三無為或法相宗六無為之一。非擇滅,又作非數滅、非智緣滅,為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於有部,謂諸法皆由因緣和合,從未來位轉至現在位,於生之剎那即滅,成為過去之分位。如「生緣」缺時,非擇滅則妨礙該法之生,其法將永久止於未來之分位,絕對不生,稱為緣缺不生。於此,其法係得非擇滅無為,成為畢竟不生法。故凡不由簡擇力,因缺有為法之自生緣而顯示寂滅不生之無為法,即稱非擇滅無為。要言之,擇滅者,聖道所得;非擇滅者,緣缺所得。俱舍論卷一(大二九‧一下):「永礙當生,得非擇滅,謂能永礙未來法生,得滅,異前,名非擇滅;得不因擇,但由闕緣。」
於法相宗,主要指無須待於人之智慧,而自性清淨之真如,稱為非擇滅無為。成唯識論卷二(大三一‧六下):「不由擇力,本性清淨;或緣闕所顯,故名非擇滅。」〔成唯識論述記卷二末、大乘義章卷二、俱舍論光記卷一、八宗綱要卷上〕(參閱「擇滅」7813)p4689 - ↑ "不動滅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不動滅無爲
Basic Meaning: to state of being unmoved by pleasure or pain
Senses:
Uncompounded phenomena of unfluctuating cessation (Skt. āniñjya-asaṃskṛtā-dharma; Tib. mi gyo ba'i 'dus ma byas). 〔大乘百法明門論 T 1614.31.855c18〕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不動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不動無爲
Basic Meaning: undisturbed
Senses:
Leaving the perceptions of the third concentration in the form realm, entering into the fourth concentration, where the perception of pain and pleasure is extinguished and only feelings unconnected with pleasure and pain are taken in.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states' 六無爲. in Yogâcāra 唯識. Reality, separated from the motion of pleasure and pain. See also 不移動. 〔成唯識論述記 T 1830.43.292a24〕 [Charles Muller] - ↑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
괴로움에도 즐거움에도 치우치지 않는 마음 상태. - ↑ "不動無爲(부동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不動無爲(부동무위)
6무위의 하나. 색계 제4선천에 나서 고락을 여읜 곳에 나타나는 진여. 고락의 추동(추動)을 여의고 얻은 적정한 진리이므로 이렇게 이름.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4c04║不動者。謂離
T31n1602_p0484c05║遍淨欲得第四靜慮。於其中間苦樂離繫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부동(不動)207) 무위는 변정천(遍淨天)의 욕망을 여의고 제4 정려를 증득하여, 그 중간에 괴로움과 즐거움의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207) 색계 제3 정려(靜慮)의 번뇌를 여의고 제4 정려에 이를 때, 일체의 괴로움의 느낌[苦受]ㆍ즐거움의 느낌[樂受]을 여의고 오직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 느낌[捨受]와 상응하므로 부동이라 이름하고, 이때 나타나는 진여를 부동무위라고 이름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b05║何等不動。謂已離遍淨
T31n1605_p0666b06║欲。未離上欲苦樂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부동입니까?
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미처 상계(上界)의 욕을 여의지 못하고 단지 괴로움과 즐거움의 소멸이 유추되는 것을 말한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c05║不動者謂已離遍淨欲。未離上欲。苦樂滅無
T31n1606_p0702c06║為。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부동’입니까?
변정천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나, 미처 상계(上界)의 욕을 여의지 못하고 단지 괴로움과 즐거움이 소멸한 무위법이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5║苦樂受滅故名不動。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괴로운 느낌[苦受]과 즐거운 느낌[樂受]이 멸했기 때문에 부동무위(不動無爲)42)라고 이름한다.
42) 색계(色界)의 제3선(禪)의 번뇌를 멀리 여의고 제4선에 태어날 때에 모든 고수(苦受)ㆍ낙수(樂受)가 멸하고 오직 사수(捨受)와 상응한다. 이것을 부동(不動)이라 하고, 이때 현현되는 진리는 부동무위라고 말한다. - ↑ "想受滅",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想受滅
Basic Meaning: mental functions of feeling and perception are extinguished
Senses:
An expression of the condition of the experience of reality, wherein at the time of entry into the samādhi of the extinction of the mano (sixth) consciousness 意識 these two important functions are terminated. This occurs in the concentration of extinction 滅盡定. It is also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states 六無爲, known as 想受滅無爲 (Skt. saṃjñā-vedita-nirodha, saṃjñā-vedayita-nirodha; Tib. 'du shes dang tshor ba 'gog pa). 〔 成唯識論 T 1585.31.6c16〕 [Charles Muller; source(s): Nakamura, Hirakawa, YBh-Ind] - ↑ "想受滅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想受滅無爲
Basic Meaning: concentration of cessation of sensation of perception
Senses:
A deep form of meditation which is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states 六無爲 in Yogâcāra theory. 想受滅 refers to the samādhi of the extinction of the first six consciousnesses. When feeling and perception are silenced, so are the six consciousnesses along with their mental factors (Skt. saṃjñā-vedayita-nirodha-asaṃskṛta; Tib. 'du shes dang tshor ba 'gog pa'i 'dus ma byas). 〔成唯識論述記 T 1830.43.482c28, 瑜伽論略纂 T 1829.43.23c27〕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滅盡定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滅盡定無為
梵語 nirodha-samāpatti-asaṃskṛta。又作想受滅無為。唯識宗六無為之一。指禪定進入無色定之無所有處境界,六識心想及苦樂二受皆滅盡,此時所處之無為狀態,稱滅盡定無為。〔成唯識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疏卷下〕(參閱「六無為」1686)p6932 - ↑ "想受滅無爲(상수멸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想受滅無爲(상수멸무위)
6무위의 1. 진여는 성자가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 상수(想受), 곧 외계의 사물을 마음에 받아 들이고 그 위에 상상(想像)을 더하는 정신작용과 고락을 느끼는 정신 작용을 멸할 때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진여를 이렇게 이름. - ↑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
대상의 특징이나 관념을 떠올리는 표상 작용과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을 느끼는 감수 작용이 소멸된 마음 상태.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5║想受不行
T31n1585_p0006c16║名想受滅。
상(想)ㆍ수(受) 심소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43)라고 이름한다.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상(想)ㆍ수(受) 심소가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43)라고 이름한다.
43) 상수멸무위(想受滅無爲)는 상(想)심소와 수(受)심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멸진정(滅盡定) 중에서 현현된다. 무색계 제3선(禪)의 번뇌를 멀리 여읠 때, 즉 유정천(有頂天)에 태어날 때이다. - ↑ "滅盡定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滅盡定無為
梵語 nirodha-samāpatti-asaṃskṛta。又作想受滅無為。唯識宗六無為之一。指禪定進入無色定之無所有處境界,六識心想及苦樂二受皆滅盡,此時所處之無為狀態,稱滅盡定無為。〔成唯識論卷二、大乘百法明門論疏卷下〕(參閱「六無為」1686)p6932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2).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2_p0484c06║想受滅者。謂離無所有處欲入滅盡定於其
T31n1602_p0484c07║中間不恒現行心心法及恒行一分心心法滅
T31n1602_p0484c08║而離繫性。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K.571, T.1602). 《현양성교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상수멸(想受滅)208) 무위는 무소유처의 욕망을 여의고 멸진정에 들어가며, 그 중간에 항상 심왕법과 심소법이 현행하지 않고, 일부분의 심왕법과 심소법이 항상 현행함이 멸하며, 계박을 여읜 성품이다.
208) 상(想)ㆍ수(受)의 심소(心所)가 생기하지 않는 멸진정에서 나타나는 진여를 말한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b06║何等想受滅。謂已離
T31n1605_p0666b07║無所有處欲。超過有頂暫息想。作意為先
T31n1605_p0666b08║故。諸不恒行心心所滅。及恒行一分心心所
T31n1605_p0666b09║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상수멸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되 잠식상(暫息想)을 작의 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에, 모든 불항행(不恒行)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법이 소멸한 무위법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c07║想受滅者。謂已離無所有處欲。止息想作意
T31n1606_p0702c08║為先故。諸不恒行心心法。及恒行一分心
T31n1606_p0702c09║心法滅。無為。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떠한 것이 ‘상수멸’입니까?
무소유처의 욕을 이미 여의었으되 잠식상(暫息想)을 작의심소법에 앞세우는 까닭에, 모든 불항행의 심ㆍ심소와 항행(恒行)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심ㆍ심법이 소멸한 무위법이다. - ↑ "眞如無爲", DDB.《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Edited by A. Charles Muller. 2022년 8월 1일에 확인:
眞如無爲
Basic Meaning: thusness as unconditioned
Senses:
One of the six unconditioned factors 六無爲 in Yogâcāra thusness 眞如 is the real nature of all existences, yet it is called unconditioned due to the notion that even the awakened wisdom of the Buddha is in itself not really true, since the wisdom of enlightenment is classified as a conditioned existence (Skt. tathatâsaṃskṛta; Tib. de bzhin nyid 'dus ma byas). 〔成唯識論述記 T 1830.43.308a17〕 [Charles Muller; source(s): Hirakawa, YBh-Ind] - ↑ "진여무위[眞如無爲]",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진여무위[眞如無爲]
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 ↑ "真如無為",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2022년 8월 1일에 확인:
真如無為
法相宗六無為之一。此為觀「人、法」二空所顯之真實如常理體。據大乘百法明門論疏卷下載,法性本來常自寂滅,不遷動之義,稱為真如。此種真如,在法相宗即指唯識真性。(參閱「六無為」1686)p5303 - ↑ 무착 조, 현장 한역(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大乘阿毘達磨集論) 제1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5_p0666a20║何等界法蘊不攝耶。謂法界中諸無為法。此
T31n1605_p0666a21║無為法復有八種。謂善法真如不善法真如
T31n1605_p0666a22║無記法真如虛空非擇滅擇滅不動及想受
T31n1605_p0666a23║滅。何等善法真如。謂無我性。亦名空性無相
T31n1605_p0666a24║實際勝義法界。何故真如說名真如。謂彼自
T31n1605_p0666a25║性無變異故。何故真如名無我性。離二我故。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572, T.1605). 《대승아비달마집론》 제1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떻게 계법(界法)은 온에 소속되지 않습니까?
법계 내의 모든 것이 무위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위법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ㆍ택멸(擇滅)ㆍ부동멸(不動滅)ㆍ상수멸(想受滅)을 가리킨다.
선법진여란 어떠한 것입니까?
무아(無我)의 성품이니, 공성(空性)ㆍ무상(無常)ㆍ실제(實際)ㆍ승의(勝義)ㆍ법계(法界)라고도 이름한다
어째서 진여를 진여라고 이름합니까?
그 자성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진여를 무아상(無我相)이라 이름합니까?
두 종류의 자아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 ↑ 안혜 조, 현장 한역(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大乘阿毘達磨雜集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06,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06_p0702a29║何等界法蘊不攝耶。法界中無為法蘊所不
T31n1606_p0702b01║攝。此無為法。復有八種。謂善法真如。不善法
T31n1606_p0702b02║真如。無記法真如。虛空非擇滅擇滅。不動及
T31n1606_p0702b03║想受滅。
T31n1606_p0702b04║如是建立八無為中。當知所依差別故。分析
T31n1606_p0702b05║真如假立三種。不由自性故。善法真如者。謂
T31n1606_p0702b06║無我性空性。無相實際。勝義法界。何故真如
T31n1606_p0702b07║說名真如。由彼自性無變異故。謂一切時無
T31n1606_p0702b08║我實性無改轉故說無變異。當知此則是無
T31n1606_p0702b09║我性。離二我故。 - ↑ 안혜 지음, 현장 한역, 이한정 번역(K.955, T.1606). 《대승아비달마잡집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어떻게 계법(界法)은 ‘온’에 소속되지 않습니까?
법계 내의 모든 것이 무위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무위법에는 다시 여덟 종류가 있으니, 선법진여(善法眞如)ㆍ불선법진여(不善法眞如)ㆍ무기법진여(無記法眞如)ㆍ허공(虛空)ㆍ비택멸(非擇滅)ㆍ택멸(擇滅)ㆍ부동멸(不動滅)ㆍ상수멸(想受滅)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건립된 여덟 가지 무위 중에도 소의의 차별이 있음을 숙지해야 한다. 진여의 가립을 분석하면 세 종류가 있으니 그 자체적인 성품에 연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법진여’란 어떠한 것입니까?
무아(無我)의 성품이니 공성(空性)ㆍ무상(無常)ㆍ실제(實際)ㆍ승의(勝義)ㆍ법계(法界)라고도 이름한다.
어째서 ‘진여’를 진여라고 이름합니까?
그 자체적인 성품이 변하여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釋】일체의 시분에서도 그 무아의 실다운 성품은 전향되지 않는 까닭에 ‘변이하지 않는다’고 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무아의 성품임을 숙지해야 하니, 두 가지의 아(我)를 여읜 까닭이다.1)
1) 『대승아비달마집론』에는 이 문장 다음에 “어째서 다시 무아상(無我相)이라고 이름합니까? 두 종류의 자아를 여의었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추가되어 있다. 이 내용이 들어가야 문맥이 이어지므로 역자는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각주로 보입한다. - ↑ 호법 등 조, 현장 한역(T.1585). 《성유식론》(成唯識論) 제2권.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585,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585_p0006c18║理非妄
T31n1585_p0006c19║倒故名真如。不同餘宗離色心等有實常
T31n1585_p0006c20║法名曰真如。故諸無為非定實有。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 《성유식론》 제2권. 2022년 8월 1일에 확인:
이치가 허망되게 전도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여(眞如)라고 이름한다. 다른 부파에서 근본진리[宗]로 주장하듯이, 색법과 심법 등에서 떠나서 실재의 상주하는 법이 있고, 이것을 이름하여 진여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모든 무위법도 반드시 실유가 아니다.
44) 진여(眞如, tathatā)에서 ‘진(眞)’은 진실, 허망하지 않은 것[不虛妄]을 말하고, ‘여(如)’는 상주일여 무변역법(常住一如無變易法)을 가리킨다. 앞의 5무위는 진여에 의해 가립하는 것으로서 원래 별체(別體)가 없다. 진여라고 말하는 것도 의전문(依詮門)에서 가립하는 명칭이다. 폐전문(閉詮門)에서는 영원히 명언(名言)을 멀리 여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T.1612). 《대승오온론》(大乘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2,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2_p0850a23║云何真如?謂諸法法性、法無我性。 - ↑ 세친 조,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K.618, T.1612). 《대승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그리고 진여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모든 법과 법의 성품은 그 법이 ≺나≻라는 성품이 없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T.1585). 《대승광오온론》(大乘廣五蘊論). 대정신수대장경. T31, No. 1613, CBETA. 2022년 8월 1일에 확인:
T31n1613_p0854c28║云何真如。謂諸法法性法無我性。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K.619, T.1613). 《대승광오온론》. 2022년 8월 1일에 확인:
무엇을 진여(眞如)라고 하는가?
모든 법과 법성(法性)의 법무아(法無我)18)인 성질을 말한다.
18) 자아로 보특가라(補特伽羅, pudgala)를 주장하는 인무아(人無我) 사상과 함께 모든 법에 자성이 있다는 것을 깨트리는 사상을 말한다. - ↑ "眞如無爲(진여무위)", 운허. 《불교사전》. 2022년 8월 1일에 확인:
眞如無爲(진여무위)
6무위의 하나. 진여는 주관적 미집(迷執)인 아집(我執)과 객관적 미집인 법집(法執)이 공하여지는 곳에 나타나는 법. 이것은 조작하는 것이 아니며 생멸 변화하지 않는 항상 불변하는 것이므로 무위라 함.